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葬禮
Funeral(Ceremony)
목차
1 개요
"혹시 고인과 관련되어 이문서에 들어 오셨다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죽은 자를 위해 치러지는 의식.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시신이 위치한 곳을 무덤이라고 한다. 지방, 문화권, 종교 교리에 따라 그 방식과 절차가 다르다. 장례식 현장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보통 장송곡이라고 불린다.
2 현대 한국 사회통념
현대에 이르러서도 관혼상제 중에서 혼례와 함께 난이도가 극악하기로 손꼽히는 의식이다. 관례(성인식)는 없어졌고[1] 제례(제사)는 많이 간소화됐다.[2] 과거에는 장례에 필요한 모든 절차적 지식과 풍습들을 가문의 연장자가 전수받는 형태였으나, 점차 사회가 핵가족화되고 세분화되면서 어려워졌다.
2.1 상조 회사의 서비스를 받는 경우
해당 항목 참조.
2.2 장례식장의 서비스를 받는 경우
장례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준비도 하지 않았어도 상조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 장례식장에는 전문 장례지도사들이 상주하므로 그냥 장례식장만 가면 장례식장의 의전팀장이 알아서 다 해준다. 장례식장의 장례지도사들은 장례지도사 국가자격증을 받은 전문가들이다. 장례식장에서는 사장을 포함한 전직원이 반드시 국가장례지도사여야 하도록 제도화되었다.
이처럼 전문가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콘티를 짜주며, 시키는대로만 하며 되지만 아주 손 놓고 있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결혼식 절차를 결혼식장에서 전부 도와주지만 신부와 신랑이 넋놓고 있어도 되는게 아니듯이. 특히 상주는 슬플 여지도 없이 매우 바쁘다. 연락하랴 조문객 받으랴……여기에 장남장손이라면 설상가상3일장을 치루는 동안, 장례지도사는 휴식은커녕 수면 시간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토나오게 바쁘다. 당연하지만 3일간 장례지도사들은 장례식장에서 외박해야하며 집에 가지 못한다. 장례식장에서 365일 일하는데다 시신을 만지는 더러운 직업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더불어 살인적인 근무시간과 환경, 최저시급을 겨우 받는 수준, 웬만한 3D업종 빰치는 탓에 꺼려지는 직종이다. 이는 상조회사가 더욱 악독하다고. 대학의 장례지도학과가 줄줄이 문을 닫는 추세다.
장례식을 치르거나 상주가 되는 경우에 대비하여 국가유공자나 기초생활수급자는 그에 알맞은 증명서를, 또한 의사에게 공식적으로 발급받은 고인의 사망증명서를 반드시 장례식장에 제출해야한다. 관, 유골함, 수의, 화장터, 납골당 역시 장례식장에서 알아서 카탈로그로 가지고 있다. 맨손으로 찾아가서 고르기만 하면 된다. 단, 매장은 수목장림등이 아니라 개인적인 매장터가 필요한 경우 직접 산역꾼[3]을 고용해야 하며, 바다 한가운데에 유골을 뿌릴 경우 자신이 탈 배를 미리 구해야한다.
즉, 사망진단서(자살 등 사고사의 경우 검사지휘서도 포함)[4]를 가지고 고인의 시신을 운구하여[5] 장례식장에 가기만 하면 된다. 장례식장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알아서 해준다. 여기서 상조의 무의미함과 폭리를 알 수 있다. 사실 예전보다 나아졌다는게 업계 사람들의 평가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장례식장에 와서 말그대로 장례식장이 하라는대로 다 해서 엄청난 폭리를 취했으나 상조업체가 난립하면서 그나마 폭리 수준이 조금 꺼졌다.
개인이 준비해야 할 것은 영정으로 쓸 사진 뿐이다.[6] 영정사진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주민등록증에 있는 사진을 확대하여 영정사진으로 대용한다.
2.2.1 수의
- 장례식장에서 수의를 구매할 경우 : 미리 수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국식의 경우 한분의 고인에게 입히는 수의는 20~30가지의 물품과 옷이 들어간다. 개인적으로 수의를 만드는 사람들은 전문 장례지도사가 아니기 때문에 무슨 무슨 물품이 들어가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래서 상주가 가져온 수의로는 서양식 복장 혹은 특수직업 종사자 (군인, 성직자 등)가 아닌 한 장례를 치룰 수가 없어(물품이 부족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한 수의는 그대로 쓰레기가 되고 정식 수의를 다시 구매해야 한다. 장례식장에서 수의를 팔기 위해 트집잡는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부족한 물품으로는 장례를 못 치룬다고 보면 된다. 이는 부케도 면사포도 신부화장도 신부헤어도 없이 드레스만 덜렁 입은 결혼식과 같다. 물론 반대로 생각해보면 제대로 셋팅하면 개인 준비해도 아무 상관 없다는 소리다.
- 고인의 유언에 의해 수의 이외의 옷을 입을 경우 : 2013년 신문기사에 따르면, 50대 여성 A씨는 남편에게 "수의를 입히지 말고 내가 평소 좋아했던 옷을 입혀서 관에 넣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어차피 화장해 재가 될텐데 수십만원짜리 수의를 입는 것이 낭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A씨의 남편은 고인이 사망한 후 유언대로 수의를 입히고 염을 하는 대신 평소 아내가 즐겨입던 옷을 입히고 유품을 넣어서 함께 화장했다. 그는 "장례문화를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아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더 의미있는 일이라고 여겼다"며 "아낀 수의비용은 아내 이름으로 좋은 곳에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일순 한국골든에이지포럼 회장(연세대 의대 명예교수)은 "오늘날의 망자가 과연 일생동안 한번도 입지 않은 수백년 전의 낯선 의상을 입고 의례를 치러야하는지 생각해볼 일"이라며 "평소 입었던 면옷을 입으면 이질감도 없고 자연친화적이다"고 조언했다. 이런 의식을 택하는 경우 수의로 사용할 겉옷, 속옷 (팬티, 브래지어, 양말, 스타킹), 신발 등은 개개인이 준비해야 한다. 수의 이외의 예시는 한복, 정장, 드레스, 교복(고인이 중고교생인 경우), 군복(고인이 군인인 경우), 평상복 등이 있다. 우리 전통 장례방식을 현대화시켜서 되살린다면 현재로서는 자연히 이쪽으로 될 가능성이 높은데[7], 이는 우리 전통은 평소에 입던 옷 중 가장 좋은 것을 입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고인이 외국인일 경우 : 고인의 유족과 상의하는 것이 좋다. 출신국의 장례방식을 원할 수도 있고, 한국식 장례방식을 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고인이 현직 성직자일 경우 (스님, 신부 등) : 해당 종교단체의 관례를 따르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장례식장에 맡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그 성직자가 입을 수의는 종교단체의 관례에 따라 준비한다.
2.3 참조 : 한국 장례 문화에 스며든 일제의 잔재
상장과 완장, 꽃장식, 삼베 수의와 유가족들이 입는 검은 상복은 일본 식민통치의 산물이다.
1934년 11월 10일 조선총독부 의례준칙에 따라 눈에 띄게 변한 건 상복이다. 전통 상복인 굴건제복(屈巾祭服·거친 삼베로 만든 옷)을 생략하고 두루마기와 두건을 입도록 만들었다. 유족이 한복이나 일본 전통복장을 입었을 때 왼쪽 가슴에 나비 매듭으로 맨 검은 리본을 달도록 했다. 또 양복을 입은 사람은 왼쪽 팔에 검은 완장을 달게 했다. 이것이 상장(喪章)과 완장의 시작이다.[8] 상장과 완장은 항일인사들이 장례식에 모여 집회를 열지 못하도록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복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았다. 69년 ‘가정의례준칙’은 삼베로 만든 상장을 가슴에 달도록 규정했다. 2009년 ‘건전가정의례준칙’에도 상장 조항이 있다. 완장은 가정의례준칙에선 빠졌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았다.[9]
장례식장의 꽃도 일본을 거쳐 들어왔다. 26년 순종 국장 장례식 사진첩에 따르면 영좌 주변에 화환이 놓인 장면을 볼 수 있다[10] 국내전통장례에 사용된 꽃은 수파련(水波蓮)이라고 상여에 다는 종이꽃이 전부였다. 헌화나 화환 문화가 서양에서 비롯된 것이라 치더라도 요즘 장례식장에서 볼 수 있는 꽃 장식은 100% 일본식이다. 우리 전통은 영좌 뒤에 병풍을 치는 것이었다.
삼베 수의가 전통 수의(壽衣)의 대표가 돼버린 배경에도 일제가 있다. 우리 전통은 수의는 생전 입던 옷 가운데 가장 좋은 걸로 마련하는 거였다.[11] 그래서 묘 이장(移葬) 과정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수의를 보면 화려하다. 대개 비단이나 명주로 만들어졌다. 부모를 여읜 자식이 ‘나는 죄인’이라는 뜻으로 삼베 상복을 입었다.[12]
현대 유가족들이 검은 상복을 입는 것 역시 일본의 영향.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사람이 죽었을 때 흰 옷을 입었다. 사극에서 국상이 나면 모든 백성들이 흰 옷을 입고 남성은 백립이나 삿갓을 쓰는 것도 이 때문. 그러나 일제시기 검은 옷을 상복으로 입는 서양 문화가 정착해 있던 일본 상복문화가 들어왔고, 가정의례준칙에서 양복을 상복으로 입을 떄는 검정으로 하는 규정이 생기면서(참조) 지금은 검은 상복이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
2.4 인터넷 데이터
디지털 시대를 맞아, 장례절차 중에 고인의 생전 인터넷 활동기록이나 데이터도 함께 처분해야 한다는 캠페인도 진행되고 있다. 특히 고인의 미니홈피나 블로그, 카페 가입내역, 각종 사이트 계정, 기타 등등의 흔적들을 일일이 찾아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태. 간혹 유족의 결정으로, 또는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지우지 않은 흔적은 하나의 작은 분향소(?)가 되어 네티즌들의 애도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한다. 젊은 나이에 운명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그 유족들에게는 중요한 문제.
또한 이와 유사하게 소위 "디지털 유산" 에 대하여 상속권을 요구하면서 법정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즉 남겨진 고인의 정보들을 보호해 주거나 내지는 삭제해야 하는지, 아니면 가까운 가족들에게 유산상속 개념으로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것을 흔히 "잊혀질 권리 논쟁" 이라고도 하며, 국내에서도 의외로 발빠르게 법제화 논의를 밟고 있는 중이다. # 일부는 그것들에 대한 당연한 상속을 주장하지만, 고인의 사생활일 수 있는 디지털 유산을 타인에게 넘겨주는 것은 고인이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상태. 유럽에서는 이미 이러한 논의가 상당히 진척된 상태이며, 디지털 장의사라고 하여 고인의 가입정보 및 흔적들을 찾아다니며 지워 주는 직업도 등장했다.
반대로 서울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운영하던 블로그 같이 고인이 생전에 남긴 인터넷상의 글들이 고인을 기리는 추모의 현장이 되는 경우도 있다.
페이스북 환경설정에서는 본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포스팅/사진/영상을 대신 관리할 사람을 지정할 수 있다.
3 동물과 인간의 장례
흔히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사망자에 대한 태도를 언급하면서 다루기도 한다.[13] 동물도 지능이 있기 때문에 죽음을 인식하긴 하지만, 의례로써의 장례를 치르는 건 인간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물들 역시 장례를 치르기도 한다. 코끼리의 경우, 건기에 새끼가 견디지 못 하고 죽으면 뼈를 냄새맡고, 모여서 애도한다. 죽은 동료의 시신 앞에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적지 않은 동물들의 특성이나,[14] 엄밀히 말하면 인간만의 특별한 장례라 한다면 역시 "의례로서의 장례" 라고 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는 네안데르탈인이 최초의 매장풍습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행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왜 이와 같이 매장이라는 새로운 행위를 했느냐에 대해서는 몇몇 의견이 제시되어 있는 상태이다. 특히 망자의 시신은 썩은 고기를 먹는 육식동물들을 네안데르탈인의 거주지로 유인하는 미끼 역할을 했기에, 이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시신을 땅 속에 묻는 행위가 나타났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후 시간이 흘러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나면서 비로소 현대적인 의미의 장례라 할 수 있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여겨진다. 이들은 동굴 밖 따로 지정한 곳에 망자의 시신을 묻고, 망자가 생전에 즐겨 사용하던 석기 도구류, 망자가 생전에 즐겨 착용하던 장신구 종류를 시신과 함께 묻어 주었다고. 즉 망자의 소유물이나 재산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을 죽어서까지 사용하라고 함께 넣어 준 것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그들에게 사후세계에 대한 이해까지 있었는지는 딱 잘라 확신하기 어렵다.
4 장례방식
- 국가장(國家葬) - 국가원수(대통령, 국왕, 총리 등) 또는 국가에 헌신하여 순국한 위인들을 추모하는 장례식.
- 사회장(社會葬) - 사회에 헌신하거나 공헌 또는 공로를 인정받은 사람 또는 사회 유명인사를 추모하는 장례식.
- 가족장(家族葬) - 가정 또는 가족중심으로 진행되는 일반 장례식.
- 그 외 장례방식
- 회사장(會社葬) - 회장, 사장 등이 순직 또는 사망하였을 때. 경우에 따라 말단 직원까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15]
- 행정장(行政葬) - 시장(市長), 군수, 구청장 및 공무원이 순직하였을 때.[16]
- 학교장(學校葬) - 교장, 교감, 교사가 순직하였을 때[17]. 경우에 따라 학생이 사망했을 때(특히 수학여행 도중 혹은 등교중 대형참사로 학생 여럿이 사망한 경우) 하기도 한다.
- 부대장(部隊葬) - 사령관,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및 특무장교나 특무사관 또는 부사관급 군인이 순직 또는 전사(戰死)하였을 때. 경우에 따라 병사가 전사 혹은 순직했을 때 이루어지기도 한다.[18]
5 종교별 장례법
당연한 말이지만 국내의 장례법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거나 하여 설령 개신교장이더라도 유교장의 풍습을 아예 외면 하진 않으므로 엄격하게 특정 장례법에 완전히 맞추기 보다는 양쪽의 예절을 따져보고 절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개신교장이면서도 절을 인습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장이든 샤워나 머리를 감는 행동은 실례라는 인식도 존재한다.
5.1 불교
불교는 화장을 주로 한다. 불교의 화장은 장작 위에 시신을 안치하고 종이로 만든 연꽃 등으로 가린 후 불을 놓는다. 종파에 따라서 칠공을 한지로 막고 그 위에 먹으로 눈, 귀, 입 등을 표시하는 법도 존재한다. 이후 유골을 부수어 유골함을 만들고 부도에 안치한다. 덕망이 높은 승려는 생전에 업적을 필적하여 탑에 모셔두곤 한다. 장례식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서 만들어진 사리는 공덕의 표시로 사용되며 유골과 함께 보관되거나 사리와 유골을 따로 안치한다.
이는 신자(신도)가 아니라 스님들의 장례를 치루는 방식이며, 불교 신자의 경우에는 유교 장례 방법과 같은 방식으로 장례를 치루되 나무로 된 염주[19], 다라니경을 관에 넣거나 명정[20]에 연꽃을 그려넣는다. 고인이나 유가족과 친분이 있었던 스님들이 빈소에서 경을 외는 일은 있으나 기독교(천주교)와 달리, 염습이나 제사를 지낼 때에 스님이 제례를 주도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간단히 말해 유교와 장례 방식은 같되, 입관에 쓰이는 물품이 조금 다르다.
일본의 경우 한국과 문화가 전혀 다르므로[21] 장례 방법도 불교식이 일반적인데 정토진종의 영향인지 일반인도 죽으면 열반한 것으로 간주하여 형식적으로 출가시키고 법명을 지어준 뒤[22] 화장하는 식으로 장례가 진행된다. 이 때문에 한국과 달리 장례식 및 추모식에서 스님이 직접 진행하는 비중이 매우 크며 스님을 알선해주는 사이트까지 여럿 존재하는 상황이다. 윗 문단에서 일제 잔재라고 언급한 하얀 수의[23]가 다름아닌 일본 불교의 장례법에서 유래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장삼(?)을 수의로 입힌다는 소리이며 위 그림처럼 지팡이, 삿갓, 산카쿠킨[24]도 같이 해준다.
5.2 유교
유교는 매장의식을 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화장 문화의 확산으로 인해 화장묘를 만드는 경우도 많다.
매장 방식이 굉장히 복잡한 편인데,[25] 보건복지부 장사정보시스템에서 설명하고 있는 전통 유교식 장례 절차는 총 19개에 달한다. 아래의 설명은 위 링크의 설명을 기본으로 하므로 유교의 의례서에 따른 자세한 설명을 원한다면 링크를 방문하길 추천.
유교적 절차에서는 임종 전부터 의례가 시작된다. 우선 '천거정침'이라 하여 자리를 옮긴다. 임종을 맞는 분을 그 분이 평소 거처하시던 곳인 정침에 모시는 절차로, 유교적 세계관에서 안정된 죽음은 죽음의 장소를 포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정침'에 모신 상태로 임종하지 않은 모든 죽음을 '객사'로 치기도 한다.[26] 이어 사람이 죽으면 첫 절차로 고인의 웃옷을 들고 지붕에 올라 북향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세 번 '복(復)'을 외친다.[27] 죽은 이의 혼이 다시 몸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의식이다. '초혼'[28]이라 하며, 이때 외치는 말을 따라 '복'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극이나 중국역사드라마에서 황제나 큰 인물이 죽으면 내관이 지붕에 올라가 웃옷을 흔들면서 죽음을 알리는것이 이것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왕이나 황제의 죽음이라면 '상위복(上位復)', 왕후나 황후의 죽음이라면 '중궁복(中宮復)'이라 외친다. 집안에 따라 이 단계에서 저승사자에게 대접하는 상인 사잣밥을 차려내기도 한다.
첫날 행해야 할 절차는 크게 네 가지이다. 상주와 그 외에 장례를 주관할 사람들이 문서담당, 금전출납 담당, 손님맞이 담당, 의례 주관자 등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상을 맞아 겉옷과 관과 신발을 벗는 '입상주(立喪主)', 사후경직으로 시신이 굳기 전에 시신을 주물러 풀어주고 손과 발을 가지런히 수습하여 한지로 묶는 '수시(收屍)', 시신을 깨끗하게 닦는 '습(襲)', 사람들에게 고인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이다. 사망 2일 후에 시신에 수의를 입히고 관에 넣을 수 있도록 삼베로 감싸 묶는 것을 '소렴'이라고 하는데, 소렴 때 '반함'이라 하여 시신의 입 안에 흰 쌀이나 엽전, 구슬 등을 물리기도 한다.[29] 일반적으로 수시와 습과 소렴을 함께 행하며, 그래서 염습이라 한다. 염습한 후 명정을 쓰며, 명정을 쓴 이후에는 가까운 사람은 들어와 조문하고 곡 할 수 있다. 이후 염습한 시신을 3일 혹은 5일간 살아 있는 이와 같이 대한 후 관에 집어넣는데 이것을 전통 절차에서 '대렴'이라 하며, 현대에는 흔히 '입관'[30]이라고 한다. 전통 절차에서 대렴을 3일차에 행하는 것은 부모가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효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입관시 시신이 관이 움직일 때마다 관짝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막기 위해 보공을 채운다.[31]
4일차에 '성복(成服)'한다. 모든 복인(服人), 즉 상복을 입을 의무가 있는 모든 사람들이 상복으로 갈아입는 절차다. 죄인이라는 의미로 삼베 옷을 입고 가슴에 최를 달며, 대나무 지팡이를 짚는다. 이때부터 탈상까지 쭉 상복을 입는데, 그 기간은 고인과 촌수가 얼마나 가까우냐 등에 따라 다르다.[32] 참최, 재최, 대공, 소공, 시마의 다섯 가지 복제를 '오복'이라 하며, 입는 기간은 다시 예법에 따라 다르다. 참최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상에 3년간 입지만 재최는 1년, 9개월, 5개월 등으로 나뉘는 식으로 매우 복잡하다.[33] 이 오복에 따라 고인을 위해 상복을 입을 의무가 있는 친인척을 '유복친(有服親)'이라 한다. 이때부터 '조(弔)'를 할 수 있는데, 현재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상(問喪)'이다.
또한 이 즈음부터 '치장(治葬)'을 시작한다. 무덤 터를 잡고 고유제, 즉 산신에게 미리 알리는 제사를 치른 다음 미리 묘혈을 판 뒤 회격이라 하여 석회를 바른다. 관도 준비하는데, 역청을 바르고 칠성판[34]을 까는 등 복잡하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관은 죽은 뒤에 머무를 유택이니 맏사위가 준비해야 한다'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정통 유교식으로 장례를 치를 경우 선비, 대부도 3개월을 지내며[35] 제후 5개월, 천자 7개월을 지낸다. 이 기간동안 미리 무덤 조성 준비를 하는 것. 무덤에 들어갈 지석[36]을 준비하고 죽은 이의 행적을 기록한 묘지명을 작성하는 일 등이 포함된다. 조선 왕실의 치장은 '산릉도감'이라 하여 임시관청을 설치하여 감독했으며, 산릉도감의 제조는 가까운 종친이 맡았다.
그 후 관을 상여에 옮기고 장지(시신을 매장할 위치)로 가는 의식을 '발인' 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미리 물건을 진열해두고 한 차례 제사를 올린 뒤 곡을 하는 등 발인 준비를 하는 것을 '천구'라 한다. 이청준의 소설 '축제'에서는 이 천구 절차에[37] 상여꾼들이 손발을 맞추고 상엿소리를 연습하는 모습이 묘사되어있다. 발인할 때는 악귀를 물리친다는 방상씨 탈을 앞세워 명정, 만장, 공포, 상여 등이 순서대로 줄을 서서 행진한다. 상여 뒤에는 상주, 복인, 상복을 입을 의무는 없으나 친인척 관계인 무복친, 일반 조문객 순서로 따라가는데, 만약 죽은 사람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별세한 경우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복인의 뒤에 따른다. 발인 도중에 제사를 지내는데 이것을 '노제(路祭)' 라고 한다. 원래는 발인하여 가는 도중에 길가에서 치르는 제사를 뜻하지만 현대에는 굳이 노제를 따로 준비하여 지낼 경우 고인과 생전에 연이 깊었던 곳을 둘러둘러 가는 식으로 진행된다.[38] 제주도에서는 발인 전날을 일포라 하여 일포날 문상을 간다.
관을 넣은 뒤 흙을 다져 봉분을 만드는 것을 '급묘(及墓)'라 하는데, 묘혈에 관을 내려놓는 절차를 흔히 '하관'이라 부른다. 하관한 뒤 흙을 채우고 땅을 다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달구질'이라고 한다. 많이 할수록 좋으나 홀수회차를 맞춰야 한다. 봉분을 만드는 동안 '제주'라 하여 신주에 글씨를 넣는 일을 진행하고, 제주가 끝나면 한 차례 제사를 지낸 뒤 발인을 따라 왔던 사람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곡을 하며 돌아가는 것을 '반곡(反哭)'이라 하는데, 봉분이 완성된 뒤 후토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석을 묻는 것까지 지켜볼 자식이 한 사람은 남아야 한다. 이제 우제를 치르는데, 총 세 번 치르며 가장 먼저 장사 당일 첫 번째 우제인 초우제를 지낸다. 장지까지 거리가 너무 먼 경우 집에 돌아와 치르지 못하고 여관 등에서 치르기도 한다. 십간을 번갈아 강일(剛日)과 유일(柔日)로 나누는데, 초우제 이후 첫 번째 유일에 재우제를 치르고[39], 재우제 다음 첫 강일[40]에 다시 삼우제를 치른다. 일반적으로 고인을 땅에 묻은 뒤 사흘이 되면 삼우제까지 다 치르게 된다.
고인의 벼슬이 없거나 낮아 죽은 달을 포함해 3개월간 장사지내는 유월장을 치를 경우 삼우제 다음 졸곡제(卒哭祭)를 치른다. 그 이상인 경우 3개월 후에 치른다. 이때부터 수시로 하던 곡을 멈추고 아침저녁에만 곡을 올린다. 흉사를 당해 치르는 제사가 점점 일상적인 제사로 대체되는 과정이다. 국가의 경우 길가빈군흉(吉嘉賓軍凶)의 오례 중 흉례가 길례로 전환되는 시점이며, 이 시점부터 임금은 상복을 벗고, 관례적으로 이 시점에 실록 편찬도 시작된다.
그리고 사후 1년이 지나 처음 돌아오는 기일에 지내는 제사를 '소상'이라고 한다. 재최 1년복을 입는 사람은 이때 탈상한다.[41] 3년 간[42]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43]를 지내고, 두 번째 기일에 '대상'을 치른다. 상주도 상복을 벗고 흰 옷으로 갈아입는다. 대상을 치르면 신주를 사당으로 모시며, 이때 5대조의 신주가 사당에서 철거되므로 따로 고하는 제사를 지낸다. 대상이 지나면 빈소를 철거하지만 여전히 일상복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대상 두 달 후, 27개월째 되는 날에 평상시로 돌아가 담담해지기를 기원하는 제사인 담제를 치르고, 27개월 혹은 28개월째에 치르는 길제를 통해 집안의 종손이 바뀌었음을 공표하고 완전히 일상복으로 갈아입는다. 상례의 모든 절차가 완료되며, 이후는 제례로 대체된다.
여기까지의 내용이 너무 길고 복잡하다고 여길 수 있으나 실제로는 중요하지 않은 작은 절차들은 다 생략한 것이다. 문종, 인종이 삼년상 제대로 치르려다 건강악화로 죽었다는 설이 제기되는 이유....(...) 현재는 삼일장을 치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임종, 염습, 입관 후 사망 3일째에 발인하고 장례를 마무리하고, 문상은 발인 전까지만 받는 경우가 많다. 탈상 시기는 각기 다른데, 49재[44]때 탈상을 하기도 한다. 삼우탈상이라고 하여 삼우제를 치른 후에 탈상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장례 후 3일째가 되는데, 현대에는 초우제, 재우제는 생략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장례식을 치른 당일에 탈상하기도 한다.
5.3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는 교파별 의식에 따라 다르지만 성직자가 집전한 뒤 시신을 매장하고 묘비를 세우는 매장을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화장도 부활의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여 존중하는 추세다. 장례에 대해서는 교파별로 명칭이 다르다.
그리스도교 전통에는 망자를 위한 전통적인 성찬례를 별도의 준비된 기도문으로(위령 감사송이나 혹은 레퀴엠용 미사곡 등) 바치는 경우가 있으나, 동방 교회처럼 그러지 아니한 경우도 있다. 성공회, 가톨릭, 정교회에서 장례식은 망자의 사망 시점부터, 빈소에서의 추도식 등 각종 예절, 성당에서의 장례 예식 혹은 장례 미사/성찬례, 그리고 최종적인 매장 혹은 화장 및 유해 봉안의 시점까지 모두 포괄한다.
한국 천주교에는 연도라는 고유한 장례 의식이 있는데, 전통적인 장례 예식과 천주교의 위령기도가 결합하여, 특유의 가락에 맞춰 시편과 성인 호칭 기도 등을 이어 바치며 망자의 안식을 기원하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식의 장례예식에서는 장례미사는 발인 때 장례의 마무리 느낌으로 한 번 하는 것으로 끝내고, 장례의 처음부터 발인할 때까지는 자녀와 문상객들, 성당 연령회를 중심으로 한 같은 성당 신자들이 돌아가며 연도를 반복하는 것이 장례 예식의 중심이 된다. 현재의 양식이 정립된 시기가 무려 18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 천주교만의 독특한 기도 양식으로 손꼽힌다. 장례 미사때 사제와 평신자의 관의 위치가 달라지는데, 사제가 신자들을 제대에서 바라보듯이 놓여지며, 평신자는 그 반대로 제대를 볼 수 있는 위치에 시신이 놓여진다. 이는 각각 마지막으로 집전하는 미사, 그리고 바치는 미사를 의미한다.
유럽과 미주 등지에서는 장례를 치룰 때 관을 열어놓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경우에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고 있다. 장례 미사 때 때도 김수환 추기경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관을 훤히 보이게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이와 비슷한 문화권의 전통으로, 정교회에서는 원래 장례 예식이 끝난 후 참석자 모두가 망자의 안식을 빌며 시신에 돌아가면서 마지막 입맞춤을 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정서상 그렇게까지는 하지는 않으며 관에만 가볍게 입맞춤을 하며 작별을 고한다.
한편 정교회에서는 망자를 위한 추도식을 장례 기간 중 죽은 지 3일째, 9일째, 그리고 40일째에 한다. 추도식을 할 때는 '꼴리바'(Koliva)라는 특별한 예물을 앞에 두고 하는데, 밀이나 보리 등을 쪄 익혀, 포도, 설탕, 달콤한 향료 등 버무린 뒤 위에 슈가파우더 등을 뿌려 하얗게 장식하고, 이 외에 다양한 달콤한 말린 과일 등으로 장식하여 초를 올린 것이다. 이 달콤한 향료들은 망자가 영혼의 세계에서 달콤한 안식과 낙원에서의 행복함과 기쁨을 누리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주재료인 밀 등 곡물은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큰 열매를 맺는' 성경 속 비유에 근거하여, 썩는 육신이나 이 썩을 육신이 부활로 썩지 않은 몸이 되어 큰 기쁨을 누릴 것을 의미하며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토착화되어, 가장 비슷한 음식인 '약밥'을 만들어 예물로 올린다.
이 세 교파는 상장예식이 시간과 단계별로 세세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아예 전례서 한 권이 나온다. 정교회의 경우에는 망자의 사망 시점부터 망자가 죽은 후 40일 째, 최종적인 영혼의 세계의 들어간다는 날 이후 부터 하는 일반 추도식까지 포함하여 작은 포켓용 핸드북으로 전례서가 나와있으며, 성공회는 성공회 기도서에 상장 예식을 수록했다. 여기에는 신자, 비신자를 위한 기도문과 매장, 화장 등 다양한 경우를 위한 기도들이 수록되어 있다. 천주교 또한 상장 예식이 별도의 전례서로 편찬되어 있고, 이는 로마 미사 경본, 입교 예식서, 축복 예식서 등과 함께 '로마 전례서'(Rituale Romanum)을 구성한다.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 일각에서는 장례예배라는 표현 자체가 교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예배의 목적은 어느 때나 절대자에 대한 것이어야지 특정 개인을 주인공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나 여전히 개신교계의 주류는 장례예배를 거행하는 것이다. 비신자의 사망에 있어서도 가족이 신자일 경우 가족의 요청을 받아 목사가 장례예배를 거행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이 장례예배나 추도식 그리고 빈소에서 기도를 드릴 때 직접적인 그 영혼의 안식을 빈다는 등의 의도 없이 순수하게 유족에 대한 위로와 기억 정도에만 그치도록 주문한다. 이는 개신교 교리인 '산 자는 죽은 자와 교통할 수 없다'는 것과 '죽은 사람은 그 즉시로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에 근거하여 가르치기 때문이다. 빈소에서 국화꽃을 준비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개신교인들을 위해서이다.
또한, 근대 이후 엠버밍 기술의 부활 및 발전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5.4 조로아스터교
조로아스터교는 불에 더러운 것을 태우는 행위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겨서 풍장이나 조장을 하고 있다. 현재는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이런 장례의식은 많이 쇠퇴하였다.
5.5 유대교
부활교리에 의거하여 동굴에 시신을 모신 뒤 시체가 썩으면 그 유골을 관에 담는다. 성경에 나와있는 예수 역시 이 장례방식을 따랐고, 죽은 지 3일만에 부활하였다고 한다.
5.6 이슬람교
마찬가지로 부활신앙에 따라 땅에 시신을 모시는 매장을 하는데, 염을 한 시신에 수의를 입혀 무덤 안 묘실에 모신다. 관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터키의 장례문화를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고인이 사망하면 의사를 통해 사망을 확인하고, 가까운 모스크에서 이맘을 불러서 장례식을 준비한다. 다만 이곳 풍습이 유교식 매장례와 달리 최대한 빨리 매장하는 것을 도리로 여기기때문에, 부고를 요란하게 돌리지는 않으며 대개 아침에 죽은 사람은 그날 저녁에, 저녁에 죽은 사람은 다음날 아침에 매장하는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고인의 친족이라 할지라도 타지에 나가있으면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도 흔하다.
장례식은 모스크에서 예배 후에 치뤄지며, 이때 이맘은 모인 조문객들에게 "고인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라고 묻는데 조문객들은 "그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라고 세번 대답한다. 상갓집에서는 헬와라는 달콤한 과자를 대접하는데, 상갓집 일손이 바쁠 때면 고인의 이웃들이 과자와 음식을 준비해서 부조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영결식 전에는 조문객들과 유족들이 다함께 모여서 헬와를 만들어 나눠먹는데, 헬와를 만들때 냄비속의 헬와를 한 사람씩 나와서 숟가락으로 저으며 "그는 생전에 내 빚을 탕감해주었다."와 같은 고인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나누며 추모하는 의식을 한다. 이때 울거나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은 금물인데, 사람이 죽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인데다가 지나치게 슬퍼하면 고인에게 누를 끼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영결식때는 남자들만이 장지로 향하며, 묘지에는 널판을 깔고 시신을 관 없이 안치한 다음에 널판으로 그 위를 잘 덮고 그대로 흙으로 덮는다. 봉문은 대개 관모양으로 돌벽을 쌓는식으로 만들고, 과거에는 생전 고인의 지위를 본딴 '터번' 모양의 비석을 세웠지만, 오늘날은 고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쿠란의 구절을 담은 비석을 세운다. 장례식이 끝나면 다시 한번 조문객과 고인의 이웃들을 초청해서 잔치를 열고 상복은 입지 않는다.
6 기타 장례방법
매장된 시신 근처에 나무를 심는 수목장이 있다. 시신을 화장하여 나온 유골(뼛가루)을 고인이 생전에 가장 가고 싶어하던 곳에 뿌려주는 형태가 있지만 아무데나 뿌리는 건 불법이다.
스웨덴에서는 빙장(氷葬)이 개발되었다. 시신을 액체질소로 얼려서 작은 입자들로 만든 다음에 매장한다. 이렇게 매장한 유골의 완전분해는 1년이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화장과 달리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며, 토양의 오염도 적어서 친환경적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녹색장이라고도 한다.
티베트에서는 시신을 토막내어 독수리들에게 주는 조장을 시행한다.[46] 이를 두고 야만적이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지리적 특성에 의한 문화적 특징이니 이해해야 한다. 산지라서 땅이 거칠어서 제대로 파기도 어려워 매장할 수도 없고 나무가 없어서 화장도 하기 힘들기에 택한 장례 문화이다. 예전에 몰지각한 외국인들이 이 장례식을 마구 촬영한 후 야만적이라 어그로 비난하기도 했지만 해외 다큐멘터리로 알려져서인지 요즘은 그런 비난이 없어졌다.[47] 더불어 이 조장은 티베트 말고도 과거 흉노나 미국 원주민들, 많은 지역에서도 흔한 장례[48]였다. 또한, 그들은 시신을 먹은 독수리가 하늘을 날면 죽은 자의 영혼이 하늘로 간다고 믿는다.
그 밖에도 극지방 이누이트들은 똑같이 죽은 사람을 북극곰에게 줬다. 여기도 추운 지역이라 시체를 묻을 수도, 묻어봐야 썩지 않고 땔감도 없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었기에 생겨난 장례였다. 이쪽도 곰에게 시신을 먹힌 사람은 곰으로 다시 태어나고, 그 곰이 사람들에게 사냥당해 먹히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세아니아 어느 섬에서 죽은 이를 깨끗히 씻은 다음에 먹는 식인 장례도 있었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장례방식으로 '풍장'(風葬)이란 것도 있다. 시신을 외딴 곳에 방치해 썩게 놔두는 방식으로, 위의 조장과 다른 점은 짐승이 함부로 시신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높게 지은 오두막에 시신을 안장하고 거적 등으로 가리거나 또는 동굴, 높은 나뭇가지 위 등의 장소에 시신을 안장한다.
형벌 중에서는 죽은 후 장례를 금지시키는 형벌도 존재한다. 이 경우는 대부분 사형수인데 사형으로도 죗값을 치를 수 없다고 판단되는 범죄자에게 내리는 극악무도한 형벌이였다. 소포클레스의 희곡 <안티고네> 역시 반역자인 오빠의 시신에 장례를 치러주는 것을 외숙부 크레온이 금지하자 이에 안티고네가 반발하는 것이 작품의 주요 갈등 구조.
미국에서는 한때 우주 관련하여 SF소설 작가나 우주 과학에 기여한 사람 중 몇몇을 선발하여 화장한 재를 로켓에 심어 우주로 내보내는 우주장을 1997년부터 실행했다. 참조 이렇게 우주장으로 장례를 치른 사람 중에는 스타 트렉의 작가 로덴베리, 슈메이커 레비 혜성을 관측한 학자 유진 슈메이커, 전직 우주 비행사인 고든 쿠퍼 등등의 명사들도 있다. 이런 우주장을 대행해 온 셀레스티스 사는 현재 우주장을 치를 사람들에 대해 신청을 받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우주장이 꽤 신박한 장법이어서인지, 미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일본에서는 우주장례라는 것을 상품화 했다. 말 그대로 유골을 로켓을 이용해 우주공간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우주장례 비용은 한화 약 450만원으로 의외로(?) 저렴하며 인공위성에 실려 240년간 지구 궤도를 도는 것은 950만원이다. 이외에도 달까지 운반하거나 태양계를 벗어나는 등의 방식이 있다고는 하는데 물론 실제로 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 것이다. 달은 지구 모두의 유산이라 했던것같은데 시신을 달로 그냥 보내도 되는걸까
중국에서는 무덤을 만드는 형태의 매장형 장례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아무래도 인구가 14억이니 그렇게 했다가는 땅이 남아나질 않을 것을 우려한 조치일 것이 높다. 그래서 국가에 큰 공헌을 하거나 어지간히 큰 위인이 아니거나 시신이 너무 뚱뚱해서 화장장 소각로에 들어가지 못하는[49] 이상은 시신을 관에담아 묻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대신 화장[50]이나 빙장[51]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한다.
파푸아뉴기니의 포어족은 친척이나 지인들이 사망자의 시신 일부를 먹는 장례문화가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서 망자의 혼이 산자들과 함께 하게 된다는 믿음이라고.
고대에 순장이라는 잔인한 장례가 있었다.
7 장례식 풍경
2002 월드컵 때는 한국 팀이 4강에 가자, 상갓집에서 춤추고 만세를 부르는 고인드립이라지만 돌아가신 분들도 관 속에서 만세를 외쳤을 것이다 자연사 였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난리법석이 TV 뉴스를 타기도 했다. 그리고 두고두고 짤방으로 쓰이지
어느 외국인 기자가 대한민국의 장례식장을 직접 가 보고 "축제와 같은 느낌이다."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하긴 그냥 암울한 분위기의 다른 나라의 장례식과는 달리, 육개장과 수육과 소주 등을 먹고 마시면서 한쪽에서는 화투를 치고 있고[52] 밖에서는 윷놀이를 하고 있고. 서로 싸우고, 웃고, 울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나 보다. 이를 일종의 카타르시스, 즉 슬픔이라는 감정을 다른 형태로 승화시켜 배설하는 형식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한국 특유의 장례 분위기를 소재로 다룬 장편소설 <축제(祝祭)>가 있다(임권택 감독의 동명의 영화의 원작). 실제 진도군에서는 '다시래기'라 하여 출상 전날 밤에 춤추고 노래하면서 논다. 일종의 재담극.[53] 뿐만 아니라 출상 때에도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상여를 따라간다. 북과 꽹과리 등 악기 필수. 이때 상여를 매고 가면서 부르는 이제 가면 언제 오나라는 상여소리가 유명하다. 관련 다큐멘터리도 있는데 이에 대해 상당히 심도 있게 다루었다.
사실 한국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손님이 장례식장에서 너무 슬퍼하는 것도 유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가장 슬퍼해야 하는 유족들도 애써 손님 맞이를 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너무 슬퍼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이승에 와서 가족들과 조문객들이 너무 슬퍼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이승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되어서 쉽게 저승으로 가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일부러 밝은 분위기로 즐겁게 놀면서, 저승에 가서도 걱정말고 즐겁게 잘 지내라는 뜻이기도 하다.
노환 등 자연사로 사람이 잠 자듯 편히 가면 호상(好喪)[54][55]이라 하여 식장 분위기도 자연히 밝아진다. 조선 시대에도 장례 후에 장구 치고 북 치면서 축제를 벌이는 풍습이 있었다니 나름 유서 깊은 문화다. 만약 친가족이 아닌 먼 친척이나 지인의 장례식에 가게 되면 아무리 슬프더라도 포풍오열 말고 적당히 슬퍼하고 적당히 있자. 사실 노환으로 죽은 사람의 장례식 풍경이 의외로 가벼워지는 것은 서양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장례식에서는 친척들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이 예의상 참가하므로 가족끼리 오랜만에 만나기도 하고 수십년만에 친구를 만나기도 하니[56] 의외로 분위기가 가벼워진다.
그러나 젊은 사람이 비명횡사하거나, 드물지만 대형 사고로 줄초상이라도 나면 자연히 식장 분위기는 침울하다. 이럴 땐 분위기 봐서 눈치껏 행동하는 게 좋다. 다만 젊은 사람이 살신성인하여 수많은 목숨을 구하고 자신은 상을 당했다던지 하면 유가족들이 의로운 행동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침울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호상이라고 할 수도 없으므로 이럴 때도 행동에 있어 조심하는 것이 낫다. 아무리 분위기가 호상에 준한다고 해도 의사자 선정 등 여러 복잡한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는 상갓집에서 노름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에, 동네에 장례식이 열리면 그 쪽으로 몰려가서 도박판을 벌인다. 물론 판돈 중에 일부는 걷어서 부의금으로 상주에게 전달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관이 묘지 안으로 들어갈 때 문상객과 유족이 손뼉을 치고 환호를 한다고 한다. 진정한 고인드립 그 이유는 고인이 그 동안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현실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천국으로 간다고 믿기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을 축하하는 뜻이라고.
뉴질랜드에서는 망자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하카를 추기도 한다. 수백명의 정장입은 남정네들이 비장에 찬 모습으로 부르는 하카는 그야말로 장관. 20초 부터 감상
일본은 장례식 후 조문객들에게 소금봉투를 나누어 주는데 집에 들어가기 전 몸에 소금을 뿌려 혹여나 모를 부정한 잡귀를 쫓아내라는 의미라고 한다.먹는 거 아니야
아프리카 남부의 장례식도 일종의 축제 분위기를 띄고 있으며 즐겁게 노래를 부를 모습이 보여지는데 넬슨 만델라의 장례식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만의 흔한 장례식 풍경. 노래는 흥겨운데 왠지 우주가 느껴진다 대만과 중국은 장례식에 사람이 많이 올수록 호상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장례식장 분위기를 밝게 하고 조문객들을 많이 모으는 편인데,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조문객들을 모은다는게 좀 과했던지라 스트립쇼에 뱀쇼까지 펼쳐지는 지경이 되자(클릭시 후방주의) 정부에서 법으로 장례식장에서의 스트립쇼를 금지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그리고 한국과 일본같은 경우 점점 더 고령화로 진행되면서 70대인 고인의 자녀가 상주를 맡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옛날이었으면 자신들의 장례식이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니 이들이 체력적으로 부담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게다가 70대 자녀의 자녀가 되는 고인의 손자도 50줄을 바라보는 경우가 대다수라 체력이 팔팔하지는 않아서 장례식이 진행될수록 피로가 누적된 유족들이 "이러다가 줄초상 나겠다."라는 말을 내뱉기도 할 정도다.
7.1 서브컬쳐에서의 장례식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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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가 죽었다는 뜻이므로 스포일러 주의하자.
- 마마마 : 미키 사야카의 장례식에 카나메 마도카가 참석한다. 눈 부분이 잘린 미키 사야카가 미소짓는 흑백 영정사진이 인상적이다. 이 때 흐르는 bgm은 쿄코 테마곡인 anima mala... 그 때 마도카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보고 무언가 심상찮은 것을 짐작한 마도카의 엄마 카나메 준코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는 계기가 된다.
- 시문 : 마미나의 장례식 당시 귀족 출신이 아닌 아엘 등의 시뷰러들은 같은 콜임에도 불구하고 참석을 할 수 없었다. 마미나의 유해를 운송하던 시빌레는 적국의 공격을 받아 추락하고 마미나의 시체는 관에서 빠져나와 꽃밭에 떨어지는 연출이 나온다.
- 스타워즈 : 에피소드 1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는 다스 몰과의 싸움에서 전사한 콰이곤 진을 화장하는 장면이 나오고,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에서는 마지막에 루크와 레아를 출산하고 사망한 파드메의 장례를 치루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에피소드 6 제다이의 귀환에서는 루크가 아나킨 스카이워커로 돌아온 다스 베이더를 화장을 한다.
- 스파르타쿠스(드라마) : 여기에서는 화장을 주로 한다. 바티아투스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는, 훈련소 공터에 화장할 준비를 갖춰 놓은 후 피와 함성으로 고인을 천국에 보내겠다며 고인의 시체가 불타는 동안 검투사들이 격렬한 검투를 벌인다. 스파르타쿠스의 아내 수라나 바로 역시 화장을 했다.
- 스프링 어웨이크닝 : 학교 진급 시험에서 낙제를 한[57] 모리츠가 자살을 해 그의 학교 친구들과 마을 소녀들, 모리츠의 아버지와 멜키어의 어머니가 장례식에 참석한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 멜키어가 장례식을 지켜보며 Left Behind를 부르는데, 넘버 막바지에 멜키어가 모리츠 아버지의 가슴에 손을 얹자 모리츠 아버지가 오열을 터뜨리는 것이 인상적이라는 평이 많다. 참고로 원작 희곡인 사춘기[58]의 해당 장면에서는 어른들이 자살한 모리츠에 대해 악담과 저주, 비아냥을 흘리고 심지어 아버지마저 그 놈은 내 자식이 아니었다는 대사를 한다. 흠좀무.
- 은하영웅전설 : 제국측 장례식에서는
저승사자파울 폰 오벨슈타인이 거의 항상 장례를 맡는다.[59] 정작 그 오벨슈타인의 장례식은 작중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아이러니.그 전에 애니가 끝난다그 날 국장를 치를 또 다른 사유가 발생했으니 오벨슈타인의 장례따윈 아웃오브안중이다양 웬리의 장례식에는 적장 나이트하르트 뮐러가 와서 경의를 표했다. 후반에 죽은 인물은 렌넨캄프 같은 조연에 가까운 인물에도 장례식 풍경이 등장한 반면, 초반에 죽은 키르히아이스나 장 로베르 라프 등의 인물은 주연에 가까운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장례식 풍경이 싹 잘려 있다.그 사례가 아니더라도 죽어 나가는 주요 인물이 너무나 많은 작품의 특성상 시기가 안좋다면 장례식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없다.
- 코드 기아스 반역의 를르슈 : 셜리 페넷의 장례식에 그녀의 학교 친구들이 참석한다. 이 때 아냐 아르스트레임의 상복이 심히 인상적인데, 원래 나이트오브라운즈 의상에서 팔레트 스왑만 흑백으로 한 의상을 입고 있는지라 장례식에서 배꼽을 노출한 핫팬츠 차림을 하고 있게 되었다.
- 후궁견환전 : 심미장의 장례식에서 그녀의 연인인 온실초가 감히 영전에 똑바로 서지 못하고 안쓰럽게 상체만 빼곰히 내밀고 쳐다보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후 옹정제(후궁견환전)의 장례식에서는 후궁들의 흰 옷과 은색이 주가 된 대랍시, 가자두를 감상할 수 있다. 흰색으로 옷을 맞춰 입은 태감과 흰색으로 포장한 듯한 자금성 분위기도 감상포인트.
- 흑집사 : 장의사가 동네 아이들에게 '인생에서 마지막이자 최고의 세레모니, 장례식이야' 라고 말해주는 것을 시작으로.
- 나루토 : 3대 호카게의 장례식에서 마을사람들이 검은 옷을 입고 국화를 식단 위에 차례로 올려두었다.
7.2 문상방법
1. 장례식에 참여할 때는 상주를 만나기 전에 정장 상의를 제외한 외투와 모자를 벗는다.[60]
2. 상주에게 목례를 하고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3. 국화가 아닌 분향일 경우 오른손으로 향을 잡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친 상태에서 초로 불을 붙이고 향로에 꽂는다.[61][62]
4. 일어나서 영정에 두 번 절을 한다. 이때 상주의 종교에 따라 절을 하지 않는 경우 묵념을 한다.
5. 영정에서 물러나서 상주와 맞절[63]을 한다. 이 경우에도 종교에 따라 고개를 숙여서 예를 표하는 경우도 있다.
6. 평소 안면이 있는 경우 상주에게 짧은 위로의 말을 하되 고인과 관련된 질문은 삼가야 한다.
7. 끝나고 나올 때는 두세 걸음 뒷걸음질로 물러난 뒤 몸을 돌려 나오는 것이 예의이다.
이는 기본적인 절차이고 기본 에티켓 정도로 알아두면 좋다. 처음 문상을 가는 경우 실수를 하기도 하는데, 대개 고인을 찾아와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지 실수를 가지고 흠을 잡는 상주는 없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런 거 따질 경황이 없다. 젊은 사람이 이런 실수를 하면 '이런 거 잘 안 해보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다만 위 항목에서 설명한 호상이나 잘 돌아가셨다 같은 말은 절대 함부로 꺼내지 말 것. 호상도 유족들이나 상주와 가까운 조문객끼리만 내뱉는다. 그것도 노인이 자연사나 병사했을 때, 잘 파고들면 거기서도 제법 오랫동안 힘든 삶에 찌달리거나 한이 맺힌 채로 돌아가시지 않고, 편안히 눈을 감으셨을 때 혹은 사고로 일시에 사망했을 때나 '(슬프지만)그래도 호상 아닌가' '오래 병에 시달리는 것보다 덜 고통스럽게 보내드린 게 낫다'는 뉘앙스로 위로하듯 꺼내는 말일 뿐이다. 진심으로 기쁘다거나 잘 돌아가셨다는 말이 절대로 아니다. 특히 젊은이/학생의 자살 및 사고사의 경우는 절대 저런 말을 써서는 안 되니 각별히 주의. 요약하면 잘 모르겠으면 그냥 쓰지말자.
이후 상주나 그 가족들의 안내를 받아서 식사를 대접받고 나오면 된다. 마지막으로 상갓집에서 술 마실 때는 건배하지 않는다. 정철연의 마조앤새디에서도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등장했다.
7.3 조의금
조의금 봉투에 이름을 쓸 때는 '조의(弔儀)' 또는 '부의(賻儀)'라고 적힌 봉투 왼쪽 끄트머리에 이름을 세로로 적는다. 조의금을 낼 때는 헌 지폐로 내는 것이 좋다. 새 지폐는 축하의 의미가 있어 고인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정서이기 때문에, 새 지폐를 내야 할 경우 한두 번 접어서 내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액수의 경우 기본은 집안 사정을 잘 생각해서 내주어야 한다. 나중에 조의금을 낸 사람의 집에 일이 생겼을때 어느정돈 금액을 맞춰서 주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무작정 많이 내면 부담스럽기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축의금과 마찬가지로 홀수 액수에 10 단위가 넘어가면 10,20,30 순으로 맞춰서 내는 것이 좋다. 학생은 어른 대신 온게 아니라면 자기 돈으론 내지 않아도 된다.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게 상주의 입장이다.
2016년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라, 공무원이나 그 가족의 경조사에서 낼 수 있는 경조사 비용은 1회 10만원으로 한정되어 있으니 참고할 것.
7.4 운구중 버스전용차로 이용 관련
운구중 장의버스와 같이 다니는 경우 고속도로에 들어섰다면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장례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허용되는 것은 아니고, 일단 범칙금통지서가 날아온 뒤 사망진단서 등 증빙자료를 경찰에 제출하면 감경해주는 방식이다. 반드시 장의버스와 같이 다녀야 버스전용차로에 들어설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없으니 주의.
8 관련 용어
- ↑
수능고등학교 졸업식이 성인식의 위치에 있기 때문. 친구들끼리 술마시고검열삭제를 하며노는 걸 성인식이라고도 하기도 한다. - ↑ 종갓집같은 곳을 제외하면 제삿상 차리고 술 따르고 절 하는 정도가 끝. 요즘은 제삿상을 차려주는 서비스도 있다!
- ↑ 관을 묻기 전에 미리 매장터에 가서 산신제를 지내고 포크레인 등으로 땅을 파두는 직업. 개장·이장 전문이라는 현수막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산역꾼이다.
- ↑ 장례식장, 화장터, 봉안당, 상주 및 유가족의 결석계 등 수많은 곳에서 요구하므로 사망진단서(사망신고서)를 최소 10장은 구비하자.
- ↑ 장례식장에서 운구차를 보내주기도 하고 그냥 앰뷸런스를 부르면 된다.
- ↑ 평소에 미리 찍어놓는 게 좋다. 노화에 따른 자연사나 암에 걸려 죽는 거라면 그나마 준비할 시간이라도 있으니 좋지만 전쟁터에 갔다가 전사할 수도 있고,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는 게 사람이다. 그리고 늙고 병들기 직전의 초췌한 모습으로 남기 싫다는 이유로 요즘은 건강할 때 미리 찍어두는 경우도 많다.
- ↑ 아래에도 적혀있지만, 삼베 수의를 입히는 것은 일제의 잔재이다. 조선총독부가 1934년에 만든 의례준칙이라는 책에 처음 나온다. 삼베 상복은 고인이 아니라 오히려 남은 사람들이 자신은 죄인이라는 심정으로 입었던 것.
- ↑ 검은 완장(black armband)은 먼저 1770년대 영국에서 애도의 표시로 채택되었다. 리젠시 시대(Regency Era, 1795~1837년 사이) 동안 남자와 남자 아이들은 검은색 정장과 검은색 크레이프 완장(black crepe armband)을 착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애도 복장은 1837년에서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기간 동안 절정에 도달해서 여왕의 사랑하는 남편 앨버트의 사망 시 여왕의 종은 최소 8년 동안 검은색 크레이프 완장을 착용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1907년 3월 28일, 보스턴 아메리칸스 야구단의 감독 칙 스탈이 자살하고 1907년 3월 31일에 열린 야구 경기에서는, 보스턴 아메리칸스의 선수들과 상대 선수들이 필드에 서서 나비 매듭으로 맨 검은 리본(black crepe bows)을 왼쪽 팔에 착용하고 조의를 표하였다. 오늘날은 애도의 상징으로 검은 완장을 착용하는 관습이 퇴색하고 있다. 다만 검은 리본은 여전히 기억 또는 애도의 상징으로 검은 리본을 착용해서 죽음을 슬퍼한다. 그리고 보통은 양복에 검은 리본을 달고 장례식에 가서 애도하지만,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지에 리본 사진을 올려서 추모하는 방법도 있다. 검은 리본을 착용하거나 표시해서 전쟁 포로, 실종 군인들을 애도하는 등 개인이나 조직은 이따금 특정사건 후 희생자, 피해자를 애도하려고 리본을 사용하기도 한다.
- ↑ 박태호 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정책실장은 “최근엔 아예 완장이 군 계급장처럼 변질됐다”며 “넉 줄 완장은 맏상주가, 석 줄은 나머지 아들들이, 두 줄은 사위가, 한 줄은 손자·형제 등이 각각 차는 게 마치 전통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 ↑ 이철영 을지대 교수(장례지도학)는 “영좌를 꽃으로 장식하는 건 일본 문화”라며 “80년대 일본의 상조문화가 부산에 처음 상륙했을 때 꽃 장식이 함께 유입됐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하는 장례업자는 “장례업계에선 매년 일본 전문가를 불러오거나 일본으로 건너가 최신 꽃 장식을 배운다”며 “요즘 꽃 장식이 더 화려해지고 있는데, 이 역시 일본을 따라 한 것”이라고 말했다.
- ↑ 만약 우리 전통 장례방식을 현대화시켜서 현대 한국인에게 적용한다면 한복을 입히거나, 평상복 중 좋은 것을 입힐 경우 서양식 장례에 쓰이는 수의와 비슷해져 버린다.
- ↑ 박성실 단국대 명예교수(의상학)는 “조선의 일부 극빈층이 삼베 수의를 썼을 수도 있지만 현재 발굴된 건 없다”며 “수의가 생전에 입던 옷이라 목덜미나 소매에 때가 탄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 실제로 연세대학교 수시 논술로 출제되기도 했다.
- ↑ 일부 연구자들은 이런 애도반응은 전체 죽음 장면들에서 놀랍도록 적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동물들이 생애 중 수많은 죽음을 목격함에도 왜 매번 애도반응을 보이지 않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동물들은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죽게 되겠지" 인식이 있다고 밝혀졌다. 개는 자신이 죽을 때가 다가오면 주인이 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죽음을 맞이한다. 자신이 죽는걸 보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 고래는 자신이 죽을 때가 되면 알아서 해변에 올라와서 죽는다고 한다. 자살하는 동물도 있다.
- ↑ 임기 또는 현역에 한정하며 임기종료로 인한 전임자나 이임자 및 퇴직자는 해당되지 않는다.
- ↑ 임기중 순직한 자에 한정하며 임기가 종료되어 퇴임 및 이임한 전직 행정수반이나 전직 공무원은 해당되지 않는다.
- ↑ 임기중 순직한 자에 한정하며 임기가 종료되어 퇴임 및 이임한 사람은 해당되지 않는다.
- ↑ 임기 및 현역자에 한정하며 전역자 및 퇴역자는 해당되지 않는다.
- ↑ 옥이나 돌로 되어 타거나 썩지 않는 제품은 관에 함께 넣을 수 없다. 불법이다.
- ↑ 관을 덮는 붉은 천. 관보(관싸개)와 별개의 물건이며, 위에 고인의 성명이 한자로 적혀져 있다.
- ↑ 이에 대해서는 일본/문화 문서에서 종교 문단을 참조바람.
- ↑ 한국에서도 간혹 죽기 직전에 법명을 지어주는 경우가 있긴 하나 흔하지는 않다.
- ↑ 사실 시코쿠 순례할때 입는 복장과 유사하다.
- ↑ 흔히 일본 미디어에서 귀신이나 요괴가 머리에 쓰는 삼각형 천이 바로 저것이다.
- ↑ 고등학교 때 윤리와 사상을 배운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묵자가 이를 비판하고 맹자가 반박한다. 묵자vs맹자는 윤리와 사상에서 흔하디 흔한 떡밥이다.
- ↑ 특히 임금이 정침에서 죽지 않는 것은 큰 문제로, 공적인 공간에서 고명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 ↑ 이때 옷은 허리부분을 붙잡고 흔든다. 영상물에서는 흔히 한복의 동정을 붙잡고 흔드는데, 잘못된 것이다.
- ↑ 지붕이 아니라 산정에서 외친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김소월의 시 '초혼'이 묘사하는 것이 이 절차라 보는 시각도 있다.
- ↑ 이 반함은 보통 '저승길 노잣돈' 정도로 인식된다. 배가 고플 테니 쌀을 물려주고, 저승까지 여비가 필요할 테니 노잣돈으로 엽전이나 구슬을 넣는다는 식.
- ↑ 현대에는 고인이 생전에 매우 아끼던 사람의 경우 입관시 참례시키지 않기도 한다. 고인이 이승에 미련을 못 떼기 때문이라는 듯.
- ↑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우는 정인보의 '자모사'에 등장하는 '보공 되고 말어라'의 그 보공이다.
- ↑ 예송논쟁 할 때 헷갈리게 만드는 주범, 아니 예송논쟁 자체를 유발시킨 주범이라 할 수 있다. 장자와 차자를 포함한 여러 아들, 장자부와 차자부를 포함한 여러 며느리에 대한 상복이 다르기 때문에 장자 대접이냐 서자 대접이냐를 놓고 싸운 것.
- ↑ 심지어 '단문복'이라 하여, 3개월만 입는 시마 이하의 복제도 있다.
- ↑ 5푼 정도의 두께로 북두칠성 모양 구멍을 뚫은 판. 죽음을 상징한다고 하며, 고문할 때 뉘이는 칠성판의 유래다.
- ↑ 벼슬이 낮거나 없는 사람은 '유월장'이라 하여 죽은 달을 포함해 3개월간 장례를 치르지만 벼슬이 높은 공경대부는 죽은 달을 제외하고 3개월을 지냈다.
- ↑ 무령왕릉 지석에는 모월 모일 이곳의 토지신께 고유하고 얼마에 값을 치러 무덤터를 샀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 ↑ 정확하게 '천구'라고 지칭하지는 않았다.
- ↑ 예를 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는 서울광장에서 치러졌고, 故 신해철의 노제는 그의 분당 작업실 등을 지나는 루트로 진행됐다.
- ↑ 예를 들어 유일인 '을'에 해당하는 날 장사를 치렀으면 다음 유일인 '정'에 해당하는 날 재우제를 치른다.
- ↑ 강일과 유일이 번갈아 오기 때문에 그래봐야 재우재 다음날이긴 하다.
- ↑ 물론 재최 1년복 이하 재최 9개월, 5개월, 3개월과 대공, 소공, 시마는 이미 탈상한 후이다.
- ↑ 여기서 3년은 사실 햇수로 3년이지 실제로는 만 2년을 의미한다.
- ↑ 삭망제(朔望祭). 각각 삭제와 망제로 엄격히 구분하기도 한다.
- ↑ 제(祭)가 아니라 재(齋)다! 항목 참조.
- ↑ 정교회는 장례예식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성찬예배 전통과 명칭은 없다. 다만, 성찬예배 중간 혹은 끝에 '장례예식'을 별도로 거행한다.
- ↑ 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글판에서 생생하게 촬영한 바 있는데 그야말로 원초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참 특이하게도 독수리들이 사람이 죽으면 알아서 모이고 시신을 가지고 오면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당시 잡지에선 조장이 아니라 천장(天葬)이라고 부른다고 나온 바 있다.
- ↑ 한비야도 한 백인 관광객이 조장을 비난하다가 현지인들에게 당신들은 이런 배경이라면 어찌할 건가? 죽은 시체를 그냥 당신의 집안에 두고 방치할 건가? 라는 분노어린 반박을 듣고 데꿀멍하고 그냥 물러선 걸 본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 ↑ 소설 <마지막 모히칸>에서도 친구이던 원주민 운카스가 죽자 이렇게 장례를 한다. 이걸 보고 백인들이 야만인이라고 하자, 황량한 배경에서 저것처럼 아름다운 장례는 없다는 주인공(백인이지만 원주민들과 자라났다)의 반론에 백인들은 반론도 못했다.
- ↑ 중국 최고 비만 남성인 쑨 모씨가 사망하자 쑨 모 씨의 시신이 화장장 소각로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정부에서 쑨모씨의 시신을 매장하는 것을 허락 했다고 한다.
- ↑ 불에 시신을 태워서 보관하는 형태의 장례 누구나 흔히 알고 있을 것이다.
- ↑ 이 형태의 장례는 특이한데 시신을 얼음처럼 얼려버린후에(물론 얼음보다 훨씬 강력한 액체질소를 이용) 시신을 부숴 가루로 만들어 친환경 용기에 담아 매장하는 형식이다.
- ↑ 단적인 예로, 장례식에서 섯다를 하면 10과 4의 "장사"를 제일 높은 족보 "38광땡"보다 패를 더 높게 쳐주는 불문율이 있다. 상주에게 돈을 빌리면 끗발이 좋다는 속설도 있는데, 실제로 이렇게 하면 아무리 같이 밤샘을 해주는 친구라도 안 좋게 보인다.
- ↑ 중요 무형문화제 제 81호.
- ↑ 장의를 관리하는 이른바 장의사를 뜻하는 말도 호상(護喪)인데, 한자만 봐도 다르니 사용시 주의를 요구한다.
- ↑ 병사(病死)여도 고령으로 병사하였으면 호상(好喪)으로 친다.
- ↑ 예를 들어, 50넘은 사람이 고등학교 동창을 30년 넘어서 재회하는 상황이 많이 일어난다.
- ↑ 뮤지컬 작중의 묘사로 보았을 때, 모리츠를 못마땅하게 여긴 학교 선생들이 부당하게 낙제시켰다고 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 ↑ 혹은 '눈뜨는 봄'(Fruehlings Erwachen)
- ↑ 오벨슈타인의 직책은 신제국 성립 이전에는 총참모장, 그 이후에는 국방부 장관이니 군 고위 간부의 장례를 주관하는 위치에 있을 수 밖에 없다.
- ↑ 당연하지만 장례식 복장은 검은색 계열의 정장 혹은 단정한 옷이 좋으며, 화려한 색상의 정장은 입지 않는다. 직장에서 바로 문상을 가느라 정장색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넥타이라도 검은 색으로 하는 게 좋다. 우리나라 한정으로 흰색 계열의 옷도 좋다. 학생의 경우 교복을 입어도 좋다.
- ↑ 이때 향에 불꽃이 꺼지지 않을 경우에 입으로 불어서 끄는 것을 삼가자. 예의가 아니다. 보통 살짝 흔들거나 왼손으로 가볍게 바람을 일으켜서 끄자.
- ↑ 초나 라이터로 불을 붙이지 말고 성냥을 이용해야 한다는 말도 있긴한데 자세히 아는 분이 수정바람.
- ↑ 한 번만 절한다. 두 번은 고인에게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