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한/창작물

1 개요

'주먹 하나로 성공한 깡패'라는 것은 영원한 남자의 로망인 탓으로, 김두한의 이야기는 오랫 기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이로 인해 김두한 관련 창작물 역시 나름대로의 길고 긴 역사를 거쳤으며, 먼저 나온 작품들이 이후에 나온 작품들에 영향을 미쳐 가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였다.

아래의 내용은 읽는 이가 김두한 본인의 행적, 관련 역사에 대해 일정한 지식을 갖추고 있음을 전제로 작성되었다. 따라서 김두한 항목을 먼저 읽는 것이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1963년부터 2008년까지 주요 창작물들이 대략 5년(짧은 경우 4년, 긴 경우 7년)을 주기로 등장했다는 점. 2008년 이후로는 특별한 작품이 등장하지 않았으나,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을 억지로 집어넣으면 김두한 창작물 5년 주기설이 성립한다! 2019년 경에 새로운 작품이 등장할 지 기대해 보자

2 1960년대

2.1 김두한의 자서전

창작물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창작물들이 1963년 발간된 김두한의 자서전 '피로 물들인 건국 전야' 및 1969년 라디오 회고록 '노변야화 - 김두한 편'에 절대적으로 그 내용을 기초하고 있으므로 이 둘에 대해서도 먼저 언급하기로 한다.

2.1.1 피로 물들인 건국 전야 <1963년 자서전>

이 책을 한마디로 논하면 다음과 같다. 조폭미화물계의 삼국유사

굳이 삼국유사를 드는데는 이유가 있다. 관련 장르에서 가장 최초의 저작물 중 하나이지만, 실제 역사 기록으로 보기엔 문제점이 상당히 많기 때문. Q: 그럼 조폭 미화물계의 삼국사기는 뭔가요? A: 그딴거 없어.

정치인이 자서전을 출간하여 자신의 행위를 미화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흔한 일이기 하지만, 바로 그 김두한의 자서전이라는 점 때문에 제법 주목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주먹 세계에 로망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 읽어 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자서전이 당시 어느 정도로 팔렸으며, 어느 정도까지 인기를 끌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당시 반응이나 평가에 관한 특별한 기록 또한 없다.[1]
하지만 어느 정도 반향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아래에 기록할 <노변야화 - 김두한편>이 방영된 계기가 되었다.

문제는 신뢰할 만한 내용이 아니라는 점. 이 자서전의 내용으로 김두한의 실제 행적을 재구성하겠다는 것은, 조양은의 자서전으로 조양은의 행적을 재구성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쨌거나 이 자서전 반, 소설 반인 이 저작물을 통해 김두한의 공식적인 인생 스토리가 완성되었다. 특히 김두한은 이 자서전을 집필하는 중에 자신의 개인사를 상당 부분 다듬고 창작하여 완성시킨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김두한은 자신이 정진용 사건으로 오키나와 미군 형무소에 수감되어 미군 주먹들과 겨뤘다고 주장하거나 사사오입 개헌 당시 감금되어 투표에 참가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데, 둘 다 당시 실제 기록과 전혀 다른 거짓말이며 자서전 집필 이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김두한 자서전은 워낙 오래전에 출판된 탓에 40년 가까이 절판된 상태였다. 그러나 2003년 야인시대가 화제가 되자 쓰레기가 원본 쓰레기를 다시 들춰내어 다시 복원 출판되었다. 이로 인해 2015년 현재도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다.

한편, 1966년의 <명인옥중기>라는 책이 발간되었는데, 제목에 나와있듯이 몇몇 정치인들의 수감 생활 회고록을 한데 묶어 편찬한 책이다. 사실 정치인들의 수기나 자저선 내용을 무단 발췌하여 만들어진 책으로서, 김두한 관련 내용 역시 그의 자서전에서 일부를 도용한 것이므로 김두한과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는 책이다. 그외에도 1972년 유황영이라는 사람이 <풍운아 김두한>이라는 저작물을 발표하였으나, 역시 김두한 자서전의 표절이다.

2.1.2 노변야화 - 김두한 편 <1969년 동아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노변야화 - 김두한편.
자서전이 출판된지 6년이 지난 1969년, 김두한은 동아방송노변야화라는 라디오 회고 프로그램에 출연하는데, 대체적인 내용은 그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것이나 세부적인 부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고, 자서전에 기재되지 않았던 일화도 있다. 당시 진행자였던 권오기의 증언.
이 프로그램은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음이 확실한데, 실제로 <노변야화 -김두한편>은 해당 프로그램에서 가장 긴 에피소드로서 다음해인 1970년까지 무려 84회에 걸쳐 방송되었다. 어쨌거나 이 프로그램을 통해 김두한의 정신나간 자서전 내용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전파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1969년과 1970년에 박창규란 인물이 <독립전야의 사형인들>, <독립전야의 반공수들>, <피로 물드린 민족사 : 김두한의 증언>라는 책을 낸다. 제목도 거창하고 여러 권이지만, 사실은 전부 같은 내용이며 그냥 김두한 회고록이다. <노변야화 - 김두한 편>이 방송을 타고 인기를 끌자 기존의 자선을 보완해서 재출간한 것일 확률이 높다.
저자인 박창규가 누구인지, 그의 다른 저서들, 그리고 이 저서들과 김두한 자서전과의 관계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일일이 대조해보려면 전국의 대학 도서관을 일주해야 한다. 다만, 이 박창규의 저서들은 김두한의 원래 자서전보다 내용이 더 길고 상세하며 보충된 내용도 많은데, 물론 김두한의 이야기가 더 길고 상세해질수록 뻥은 더 심해진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때문에 이 박창규라는 인물은 원래부터 김두한의 자서전을 대필한 장본인이었거나, 김두한의 승인 하에 그의 자서전을 추가 보완한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김두한의 일화라고는 하는데 정작 김두한의 자서전에선 찾아볼 수 없거나 내용이 부실한 경우, 그 출처는 박창규의 저서 내지 <노변야화 - 김두한 편>이다. 그런데 어차피 이따위 책들을 일일이 대조하여 연구한 사람은 전무하므로 정확한 관계는 밝혀내가가 귀찮 어렵다. 덧붙여서 박창규의 저서들은 2015년 현재에도 중고서점 등에 약간의 매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딴 걸 누가 사
한편, 2003년 김두한 자서전이 복간될 때 박창규의 저서들은 잊혀진 상태로 무시당했다. 사실상 박창규의 저서들은 김두한 자서전 ver.1.5인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안습.

2.2 최초의 김두한 영화

이러한 상황에서 발빠르게 나서는 존재들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B급 영화 제작자들. 이 무렵 최초의 김두한 관련 창작물이 등장한다.

2.2.1 팔도사나이 <1969년 영화>

다음 무비에 소개된 영화 내용

김효천 감독, 장동휘 주연의 최초의 김두한 영화. 단, 이 영화 주인공의 이름은 김두한이 아니며 주인공의 어린 시절 성장담을 제외하면, 김두한의 인생사와는 많은 부분에서 다른 창작된 이야기이다.

줄거리는 대충,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고아였던 주인공이 누군가에게 거둬져 무술을 익혀, 조선팔도의 주먹들을 이끌고 야쿠자와 대결한다는 쌈마이한 내용.
당시 영화계는 제목에 팔도를 집어넣고, '팔도에서 모인 사람들'이 뭔가를 한다는 플롯이 대유행했다. 때문에 '팔도'가 붙은 각종 코메디, 신파, 활극이 제작되었는데, 이 영화는 그런 영화들 중 액션물 쪽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이다.

연도에서 보면 알겠지만, <노변야화-김두한 편>이 방송되기 전에 만들어졌고 발표되었다.[2] 원래 1960년대 액션 영화들은 대부분 항일이나 반공을 소재로 하고 있었는데, 마침 김두한의 성장담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본격적인 김두한 이야기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고아로 자라다가 어느 노인에게 거둬진다.'는 부분을 제외하면 김두한의 이야기와 유사한 점이 적다. 때문에 김두한 자서전의 내용을 본격적으로 참고한 것 같지는 않다. <노변야화 - 김두한편> 역시 방송되기 전이었으므로 참고대상이 될 수 없었다.

한편, 현역 정치인인 김두한을 영화 주인공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아무리 1960년대라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 이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김두한이나 김좌진 같은 실명이 등장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출생과 성장 부분을 빼면 원래의 김두한 이야기와도 줄거리가 상당히 다른 것도 이 때문이었을 수 있다. 개봉 당시 관객들이 이 영화를 김두한 영화로 인지하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김두한 본인은 이 영화를 만족스러워했고, '이건 내 이야기'라며 말하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자기를 미화한 영화인데 싫어하는게 더 비정상이다. 어쨌든 이 영화는 이후 유행을 타는 깡패영화, 협객물의 초기 작품들 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감독인 김효천은 이후 대놓고 김두한 타이틀을 내건 영화들을 쏟아냈으므로, 이 영화는 이후 등장할 김두한 시리즈의 효시로 취급되고 있다.

특히 이 영화의 감독인 김효천은 이후 나오게 될 모든 김두한 창작물의 아버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환경: 아버지! 이 영화 뿐 아니라 아래에서 언급할 영화 <김두한 시리즈> 역시 김효천에게서 탄생된 결과물인데, 대중들의 김두한에 대한 관심은 이 영화 <팔도사나이>와 <김두한 시리즈>로 인해 더욱 뜨거워진 것이기 때문. 김효천은 본인의 항목에 대략 설명되어 있듯이 원래부터 그쪽 세계(?)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수많은 깡패영화 협객물을 감독하거나 제작에 관여하였다. 한편, 당시 영화계에서는 이런저런 깡패 액션물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는 이 당시 영화계 쪽에 상당수의 건달, 깡패들이 진출해있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3 1970년대

최초의 김두한 영화이지만 김두한 실명은 등장하지 않는 영화가 나온 5년 뒤, 드디어 김두한 타이틀을 내건 최초의 본격적인 김두한 영화가 등장한다. 비슷한 시기에 최초의 김두한 만화 역시 등장하였다.

3.1 실록 김두한 <1974년 영화>

다음 무비에 소개된 영화 내용
김효천 감독, 이대근 주연.

두번째 김두한 관련 영화로, 김두한 시리즈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되었다. 김두한 역은 바로 그 이대근. 무명이었던 이대근은 이 영화로 액션배우의 대명사가 되었다.

줄거리는 대체로 김두한 회고록의 일제시대 내용에 충실한 편이다. 김두한의 신비로운 출생담과[3] 신마적과의 대결을 베이스로 깔고, 여기에 영화만의 오리지널 요소로서 정의로운 김두한의 보스 나관중(?!)에 대한 복수 및 일본인 야쿠자 악당 야마구치(..)와의 대결을 집어넣었다. 다만, 나관중은 김기환을 모티브로, 야마구치는 하야시를 모티브로 했을 가능성은 있다. 즉, 김두한 회고록의 일제시대 내용을 바탕으로 항일 페이소스를 끼얹은 수준. 모든 김두한 관련 쓰레기의 진정한 출발점

일단 <노변야화 - 김두한편>이 상당한 인기를 끈 덕분에, 김두한 이야기에 대한 영화계의 관심이 부쩍 높아진 상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마침 김두한이 1972년 사망한 덕분에 영화화의 장애물이 완벽하게 소멸. 당시의 저작권법 수준으로는, 김두한의 사망은 곧 그의 이야기를 영화화하는데 있어 아무런 장애물이 없게 되었음을 의미. 또한 사망한 사람이므로 '현역 정치인의 영화화'라는 문제점도 완벽히 제거된 것이다.

정확한 스코어는 알 수 없지만 영화는 꽤 흥행한 것으로 전해지며, 몇몇 후세의 영화인들도 이 영화에 대해 간혹 언급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중절모와 가죽 장갑을 착용한 비장미 넘치는 건달 협객'이라는 이미지는 이 영화를 넘어 아예 한국 대중문화의 장르적 클리셰가 되었으며, 이후에 나올 모든 김두한 관련 창작물에 영구한 흔적을 남겼다.[4] 그러는 한편으로 창작물에서의 김두한 미화는 위의 팔도 사나이와 이 작품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3.2 김두한 시리즈 <1975년 영화 시리즈>

시대가 시대인지라 <실록 김두한>이 성공을 거두자 이런저런 후속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주연은 모두 이대근으로 동일하지만, 감독은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위의 <실록 김두한>과 아래의 영화 세 편을 묶어, 총 네 편의 영화가 일반적으로 <김두한 시리즈>라고 불린다. 이 시리즈에 81년의 두 작품을 더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김두한 시리즈>라고 하면 74, 75년의 영화 네 편을 가리킨다. 사실 <실록 김두한> 이후의 영화들은 단지 흥행작의 자기복제물에 불과한 수준이므로 정확하게 분류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긴 하다. 참고로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세 편 모두 개봉연도가 1975년으로 동일(..)한데, 이것으로 당시 한국 영화계의 실정이 어땠는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덧붙여서 김두한 시리즈는 당시 동남아로 수출(!)까지 되었다고 한다.

3.2.1 협객 김두한

감독은 김효천.
1편의 바로 뒷 이야기로 일제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 김두한 회고록과는 차이가 있는 오리지널 스토리가 주를 이룬다. "상하이 박", "고노에" 등 가상 인물들과의 대결이 주 내용인 전형적인 쌈마이물이다.
1편과 마찬가지로 흥행에 성공했다고 전해진다.

3.2.2 김두한 제3부 폭탄열차편


깨알같은 '빨갱이는 모두 내게 맡겨라!'

감독은 고영남. 고영남은 무려 100편의 작품을 연출한 7~80년대 대표적인 다작 감독이다. 김효천과 달리 고영남은 제작사에서 시키니까 찍었을 뿐 딱히 김두한 이야기에 애착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세한 내용은 고영남 항목을 참조할 것.
제목에 훤하게 나와있지만, 김두한이 9월 총파업 때 철도 노동자들에게 테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반공 소스를 잔뜩 끼얹어 만든 액션물이다. 원래부터 김두한이 자신을 미화하기 위해 했던 과장되고 왜곡된 이야기가, 영화를 위해 적당히 각색되며 완벽하게 안드로메다 열차를 타버렸다.

3.2.3 김두한 제4부

감독은 3부와 마찬가지로 고영남. 쿨하게 부제 같은 건 붙이지 않고, 그냥 <김두한 제4부>가 영화 제목이다.
원래부터 안드로메다 행이었던 김두한 시리즈가 완벽하게 안드로메다로 가며 대미를 장식.
줄거리는, 정부 수립으로 풀려난 김두한이 관직을 얻지 못하고 새출발하려 했으나, 악덕 공장장에게 학대 받는 옛 부하의 불우한 처지를 목격하고 마음이 아파, 공장장 일당을 일망타진한다는 오리지널 김두한 이야기와 전혀 별개의 내용. 이게 어디가 김두한 얘기냐!![5]
시리즈 순서 상으로는 김두한의 정계 진출을 다뤄야 하지만, 아무리 고인이 됐다해도 김두한의 정계 시절 이야기를 다루기엔 여러가지 위험요소들이 많아 아예 오리지널 스토리를 만들어 내었을 수도 있다. 사실상 '김두한'이라는 이름만 바꾸면 별개의 영화인 셈.

3.3 만화: 풍운아 김두한 <1974년>

한편 영화 <김두한 시리즈>와는 별개로, 만화 쪽에서도 김두한 열풍이 불어닥쳤다.

최초의 김두한 만화는 대체로 <풍운아 김두한>이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김창호. 김창호는 1970년대 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린 탓에 나무위키에도 항목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잊혀졌으나, 1970년대 당시 이런저런 대본소 만화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작가로 알려져 있다.

출판년도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 <협객 김두한> 이전에 출간된 성인극화 만화로, 김두한 이야기가 영화계보다 만화계에 약간 더 빠르게 소개,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발표된 시점을 고려했을 때 69년의 <팔도 사나이>에게서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고, 내용상 김두한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한편, 만화 쪽에서 김두한 창작물이 나온 것은 영화 쪽에서와는 별개의 경로였던 것으로 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같은 해인 1974년에 시라소니 관련 첫 창작물인 <히라소니> 만화 시리즈가 나오기 시작했고,[6] 유지광 관련 창작물 역시 같은 해에 <주먹천하(유지광의 혈서)>등의 작품이 등장했기 때문. 특히 시라소니의 경우, 김두한이나 유지광과는 달리 이 시점에 만화를 그릴 때 참조할 만한 텍스트 자체가 전무했던 상태. 결국 대체 어떤 이유, 어떤 자극에 의해 이들 만화가 만들어졌으며 왜 이 시점에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김두한의 자서전 출간 이후 몇년에 걸쳐 깡패 이야기, 일화에 대한 흥미가 증폭되었고, 이것이 영화계와는 별도로 1974년 경 만화계에서 한번에 폭발했다... 정도로 보면 될 듯하다. 참고로 1974년은 유지광의 자서전이 출간된 해이므로, 유지광의 자서전도 하나의 기폭제다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워낙 작품을 구하기가 힘든 탓에 줄거리는 알기 어렵다.[7] 다만, 한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이미지 파일로 추청컨대,[8] 김두한의 회고록 내용을 바탕으로 상당히 미화한 내용일 것으로 추정된다.[9]

당연하지만 이 작품의 성공 및 <김두한 시리즈> 영화의 성공으로 비슷한 성격의 대본소 만화들이 등장하였다. 일단 김창호 본인은 1976년 <소년 김두한>이라는 어린이 버전(?)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 역시 김두한 회고록의 내용에 근거한 미화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단 시작부터 김옥균 할아버지 설로 시작한다. 그외에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김두한 2부니 3부니 하는 김창호의 작품들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다른 작가가 그린 각종 표절작들 또한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3.4 기타

<김두한 시리즈>의 흥행 및 유지광의 자서전 출간에 영향 받았는지, 박창규의 책이 1974년에 나왔다. 제목은 <(실록)김두한무장반공비사>. 이걸로 박창규의 김두한 관련 출판물은 제목만 바꾼 채로 네 권째 등장(..)했으며, 김두한 자서전은 판본만 5개에 이르게 되었다(..). 다행히 박창규의 짓거리 관련저서 출판은 이게 마지막.

또한 1976년 오세발이라는 사람이 <(대풍운아)김두한 : 속편> 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이 책은 김두한 관련 3류 표절 출판물 중 가장 선구적인 작품이다. 당연히 3류이므로 의미가 없는 게 함정. 나중에 1987년과 1988년에 다시 재간되었다. 이 또한 김두한 3류 표절 출판물의 전형적인 행적이다(..).

사실 이 책들은 그나마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이것들이 정식 출판물이기 때문. 1970년대 초중반에 정식 출판물이 아닌 불법, 해적판 출판물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통해 김두한 인기가 한층 더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4 1980년대

80년대 이야기를 하기 앞서, 70년대 중반의 상황을 잠깐 설명한다.
영화 <김두한 시리즈>와 만화 <풍운아 김두한>이 인기를 끌자 다른 실존인물들에 대해서도 상당히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인기를 얻은 것이 바로 시라소니. 연대순으로 볼때 시라소니 영화들은 모두 김두한의 라디오 회고 및 <김두한 시리즈>, <풍운아 김두한> 이후에 등장하고 있다. 다만, 시라소니 만화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김두한 만화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현하긴 하였다. 유지광의 경우, 그의 자서전인 <대명>이 출간된 시점은 1974년. 즉, 김두한 자서전 및 라디오 회고록 이후의 일이다. 김두한 자서전 등에 대해 사람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자 이에 영향 받아 유지광 역시 자서전이 출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거지왕 김춘삼의 경우, 김두한 회고록이 나오기 이전인 1950년대 후반부터 알려진 깡패였긴 하나, 창작물이 나온 것은 역시 김두한 창작물이 인기를 끈 이후. 따라서 김춘삼 창작물은 김두한 창작물의 인기를 끄는 것을 보고 뒤늦게 만들어진 것이다.

관련 출판물들의 정확한 발표 시기를 알 수 없기에 추정에 불과하나, 당시 조폭 관련 창작물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연대순으로 확장,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1. 1963년 김두한 자서전 발표
2. 1969년 영화 <팔도 사나이> 및 김두한의 라디오 회고록 등장.
3. 1974년 김두한 자서전을 본따 유지광이 자서전을 발표.
4. 1974년과 1975년, 김두한 자서전 및 유지광 자서전을 통해 김두한, 유지광, 시라소니 관련 만화들이 등장. 한편 이와 별도로 같은 시기 영화 <김두한 시리즈>가 발표됨.
5. 이후 80년대가 될 때까지 시라소니, 유지광, 김춘삼 관련 영화들이 만들어짐.

덧붙여서 김두한의 상징이었던 배우 이대근은 몇년 뒤 시라소니 영화에서 시라소니로 출연하는 치사한 짓(..)을 벌였다. Q:시라소니가 더 쎄요? 김두한이 더 쎄요? A:그냥 둘 다 이대근이야. 심지어 이대근은 또 다른 영화에서 김춘삼 역으로 출연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어쨌든지 간에 1970년대 중반 이후 한동안 김두한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김두한 시리즈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인 김효천이 감독이 아닌 제작자를 하겠다며 현장을 몇년 떠난 탓이 가장 크다. 다음으로 아무리 70년대 영화계가 B급 영화의 천국이라해도 김두한 영화가 흥행한지 얼마 안된 시점에 또다시 김두한 영화를 낸다는 것은 역시 무리수. 이로 인해 한동안 영화계에서 김두한이 아닌 비슷한 류의 다른 인물 시라소니라던가 시라소니였다던가 그러니까 시라소니 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거나, 아예 오리지널 인물을 만들어 내세웠다. 김춘삼 영화는 망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70년대 후반에는 홍콩 영화를 모방한 국적 불명의 무협영화가 유행하였는데, 이로 인해 김두한 등을 다룬 협객물은 살짝 유행이 지나 버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다시 김두한 인기에 기대어 관련 창작물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4.1 1981년의 영화 두 편

아래의 두 영화는 <동협상사>라는 제작사에서 동시에 만들어 같은 해에 개봉하였다. <동협상사>는 역시나 <김두한 시리즈>의 아버지인 김효천이 세운 회사.

당시 이 두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는지는 알기 어려우나 크게 흥행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사실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했더라도 그것이 더이상 의미가 없는 시대가 곧바로 닥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스크린 쿼터제의 개정으로 인해 더이상 70년처럼 풀빵 찍듯 싸구려 공장제 영화를 찍어내는 것이 무조건적인 흥행을 보장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 그리고 이 덕분에 한국 영화계에서도 작가정신을 갖춘 신인 감독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 80년대 등장한 감독들에게 있어 <김두한 시리즈>는 그저 70년대식 싸구려 액션의 대명사에 불과하므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시간이 더 흐르자 양질의 헐리우드 영화가 수입되어 이들과의 경쟁이 본격화되었고,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홍콩 느와르가 등장하여 이들과 경쟁해야 되는 처지가 되었으므로 <김두한 시리즈> 같은 협객물은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구닥다리가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저예산 상업 영화 쪽에서도 유행하는 인기 장르 자체가 바뀌어 버렸다는 점이다. 바로 그 유명한 3S정책으로 대 에로영화시대가 열린 것.[10] 실제로 이전까지 김두한의 대명사였던 이대근은 <뽕>과 <변강쇠>로 순식간에 정력남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이미 유행이 지나가는 중인데 1981년 막차 타고 영화 만들었다는 얘기

4.1.1 김두한형 시라소니형 <1981년 영화>

김효천 감독. 이강조(김두한), 시라소니(신우철) 주연.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실린 영화 소개[11]

줄거리는 간단하다. 일제시대 의리로 투합한 시라소니와 김두한이, 함께 일본인 야쿠자 50명을 때려잡는다는 내용. 참고로 그 야쿠자 50명은 전원 훈도시 차림이다.

줄거리만 딱 보아도 여러모로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슈퍼맨 vs 배트맨 시라소니 항목에 대충 나와있지만, 시라소니 관련 영화는 김두한보다 뒤늦은 시점인 1979년과 1980년에 발표되어 흥행했는데, 이 시라소니의 유행을 이전의 김두한 유행과 짬뽕시켜 억지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슈퍼맨 vs 배트맨 당연히 실제 김두한이나 실제 이성순 이야기와는 십만 킬로미터 쯤 떨어져 있다. 무엇보다도 김두한과 시라소니(이성순)의 관계는 현재 확실히 밝혀진 내용이 없다. 그 단적인 예시로 길고 아름다운 김두한 항목에 시라소니나 이성순이라는 단어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이성순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1958년에 이정재 일당에게 도끼로 린치당했다는 1960년 기사 정도가 거의 유일하다. 단지 두 사람이 비슷비슷한 우파 정치깡패였으므로 오고가며 얼굴 정도는 서로 아는 사이였을 가능성이 있다.

기존의 김두한 배우이자 시라소니 배우인 이대근이 캐스팅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둘 중 한 배역에 캐스팅할 경우 밸런스가 깨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이름값이 적은 이강조와 신우철이 각각 김두한 역과 시라소니 역에 캐스팅되었으나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하였다. 주연 배우 두 사람이 무명이나 마찬가지인 점이 걸렸는지, 상대 여배우들은 남자 배우들보다 몸값이 더 비싼 배우들이 캐스팅되었다. 바로 원미경장미희. 쓸데없는 데서 고퀄리티

4.1.2 김두한과 서대문 1번지 <1981년 영화>

이혁수 감독. 이대근 주연.
위의 <김두한형 시라소니형>이 개봉된지 두 달 후에 개봉되었다. <김두한형 시라소니형>과 이 영화는 영혼의 동반자 정도 되는 관계라 할 수 있는데, 제작사도 같고, 각본 역시 이일목으로 동일하다.[12]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동시에 출연하지 않는 관계로, 김두한 역에는 이대근이 별 문제 없이 출연하였다. 그러는 한편, 김효천 감독이 두 편 연달아 제작과 감독 투잡을 뛰는 것은 무리였는지 이 영화의 연출은 이혁수가 맡았다. 참고로 이혁수는 79년과 80년에 김효천이 제작한 시라소니 영화를 연출했던 적이 있다.

감독인 이혁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1970년대와 80년대의 전형적인 상업 영화 감독으로 대부분의 필모그래피가 액션과 에로에 집중되어 있다.[13] 이혁수는 김효천이나 고영남과는 달리 영화사에 특별한 족적은 남기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나무위키에 존재하는 이혁수 본인 항목의 내용은 부실 그 자체(..). 김두한 항목 작성하다 이곳저곳 내용 메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여기까지 메꾸기엔 힘이 딸린다- 그러나, 이 사람의 어떤 한 작품은 나무위키에 등재되어 있는 영광(..)을 누리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1996년 작 알바트로스#s-8(..). 90년대에 만든 알바트로스의 내용이 그럴진대, 1981년작인 <김두한과 서대문 1번지>의 내용이 어떨지는 상상에 맡긴다.

<김두한형 시라소니형>은 그나마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쌈마이 영화라지만, 이 영화는 대놓고 반공으로 갔다. 김두한에게 지시를 내리는 장택상조병옥. 그리고 '매국노 여운형의 암살' 따위의 정신 나간 내용이 등장한다. 까놓고 말해 김두한 관련 영화 중 최악의 쓰레기다

4.2 소설의 등장

영화 쪽에서는 이렇게 김두한 및 깡패 협객물이 사라져 갔으나.. 엉뚱한 쪽에서 김두한 인기가 다시 불타오르니, 1985년 김두한을 주인공으로 한 대하소설이 등장했다!

4.2.1 인생극장 <1985~88년 연재소설>

연재 지면은 조선일보. 총 연재회수 1,432회. 1987년 단행본 출간명은 바로, 장군의 아들. 지은이는 홍성유.

이 소설을 한마디로 논하면, 조폭미화물계의 토지(소설)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신문 연재소설은 오늘날의 스포츠신문 연재 만화 내지 포탈 사이트의 웹툰 정도의 위치라 할 수 있는데, 이 소설은 연재 당시 상당한 인기를 끌어 3년 간 연재되었다. 당시 신문 연재소설이란... 대체로 신문 발행부수를 높이기 위해 대중적인 소재나 묘사들을 지향하되, 메이저 신문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 어느 정도 퀄리티와 교양성을 충족시키는 작품들이 연재되었다. 때문에 대하소설들이 많았다. 이 쪽 방면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역시 최인호. 한편, 한때 화제가 되었던 이원호의 <강안 남자>도 이런 부류의 신문 연재 소설이다. 다만 <강안 남자> 정도로 대놓고 뽕빨 + 조폭 미화물로 간 경우는 거의 없다.

홍성유는 소설가로서 이런저런 책들을 냈던 작가로 대중소설계에선 꽤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등단작은 '비극은 없다'도 잘 알려진 작품이고 작품 자체도 꽤 많았고 라디오 연속극이나 TV 미니시리즈로 만든 작품들도 있었다고 한다. 평론이나 이런것도 꽤 괜찮은 편이었다는 증언. 오늘날 젊은 사람들에겐 많이 잊혀진 이름인 탓에 나무위키에서도 이전 버전에 이 사람을 졸지에 듣보잡(?)비슷하게 설명하였지만 실제 그 정도 취급 받을 사람은 아니다.

이 사람의 대표적인 흥행작이 바로 <인생극장>인데 당시에 꽤나 인기가 많았고 김두한 부하의 인터뷰 같은게 실리기도 했었다고 한다. 서울대 행정학과라는 고학력 출신으로 이런저런 문인단체에서 감투를 썼고, 도박이나 식도락에 관심이 높아 관련 서적 몇 권을 내었다고 한다는 약력이 전해진다. 사실 기본적으로 잘 알려지고 필력 있는 작가가 아니었다면 이 <인생극장>이 오늘날 대표적인 김두한 미화물로 이름이 알려질 일도 없었을것이다.작가 홍성유 이력

전체적인 분위기는 딱 남자들을 위한 판타지 내지 대중적인 역사 소설 비슷한 그 무엇. 대체로 역사 + 조폭 + 무협 +약간의 멜로을 뽕짝한 뒤, 점잖고 옛날 티 나는 문체로 옛날 이야기마냥 줄줄 느긋하게 이야기를 전개시킨 소설이라 보면 된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김두한의 자서전과 회고록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시대 정황 및 풍경, 문화에 대한 고증이 제법 충실하여 시대소설로서도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고 있고, 동시대의 다른 깡패들, 정치깡패들에 대한 자료, 일화에 대한 수집도 잘 이루어져 소설 내에 충실히 반영이 되었다. 문장 또한 옛날 문체긴 하지만 프로 소설가로서 어느 정도 수준은 되기에 여타의 싸구려 불쏘시개와는 차원이 다르다. 예를 들어 실존인물이었던 박계주[14]가 등장하여 김두한에게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원래 김두한과 박계주의 관계는 이전까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런데 홍성유는 실존인물이었던 박계주를 등장시켜 역시 실존 인물이었던 김두한과 연결시킴으로써 이 이야기에 시대적 특성과 사실성을 불어넣고 있는 것. 이런 면모는 확실히 평범한 불쏘시개 조폭미화물의 수준은 아니다.

또한 이 소설을 통해 김두한 이야기에 도입된 오리지널 요소들이 상당수 존재하며, 김두한 일화와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이 이 소설을 통해 비로소 창작물의 캐릭터로서 정립되었다. 예를 들어 하야시의 경우, 김두한의 회고록에서는 지나가던 거물 야쿠자 우두머리 노인네 정도로 언급되었으나, 이 소설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하나의 캐릭터로서 생명력을 얻게 되었으며, 정진영(야인시대)의 캐릭터, 즉, '뒷골목에서 불우하게 자랐으나 어린시절부터 사회주의 사상을 독학하여 결국 김두한과 갈라서게 된 비극적인 인물'이라는 캐릭터 역시 원래 홍성유의 소설을 통해 정립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두한에게 우호적인 신마적 역시 이 소설에서 정립된 캐릭터이며, 김두한의 오른팔 김무옥의 캐릭터가 정립된 것도 이 소설을 통해서이다. 그외의 김두한이 직접 언급하지 않은 수많은 동시대 깡패, 주먹들 역시 이 소설에 포함됨으로써 그들 나름의 캐릭터가 정립되었다. 그밖의 김두한의 로맨스 상대인 여인들 역시 이 소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어쩔 수 없이 김두한 미화로 흘러간다는 점. 사실 이전까지의 다른 김두한 창작물들도 항일이라는 포장지를 씌웠다지만, 그 포장이 원체 엉성했기 때문에, 나이가 어리거나 머리가 썩은 위인들 외에는 현실과 창작의 구분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김두한 항일'이라는 설정, 그리고 각각의 인물들의 개성, 성격들이 매우 그럴싸하게 재창조되었다. 즉, '적극적으로 반일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주로 일본인들과 싸운, 내적으로는 항일인 우직한 김두한' 및 '그에 대립하거나 동조하는 인물들'이라는 캐릭터가 이 소설을 통해 완벽하게 정립된 것이다. 덧붙여서 이 소설은 이런 관점 하에 창작물들 중 최초로 김두한의 친일 행적, 즉, 경성특별지원청년단(반도의용정신대) 문제를 과감하게 언급하였다. 물론 일제의 패망이 멀지 않은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동료들을 위해 몸을 사렸다는 식.
간단히 말하자면, 입체적인 주인공, 중간보스, 최종보스, 조력자, 라이벌, 아군이 된 적, 적이 된 아군 등의 캐릭터가 이 소설에서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의 내용에 이르면 한계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원래부터 김두한의 이야기는 해방 이후의 시점에 다다르면 더이상 남자들을 위한 판타지로 머무를 수 없고, 시대착오적인 반공미화물이 될 수 없다는 한계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데, 조선일보에서 연재되었다는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작품 역시 그런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김두한 스스로가 이미 미화, 왜곡하고 은폐한 그의 행적들이 이 소설을 통해 한층 더 미화, 왜곡, 은폐되어 버렸는데, 김두한이 벌인 각종 노동자 테러, 시위 진압, 좌우합작 반대 투쟁 및 테러 행위 등은 언급되지 않거나 축소되며, 모든 것은 남로당과의 투쟁이자 좌익 주먹들과의 항쟁이라는 식으로 설명되었다.

이 때문인지 소설은 김두한이 정진영 사건으로 재판정에 서게 된 대목에서 갑작스럽게 마무리되었다. 홍성유 본인은 소설 마지막에 '마침내 이승만 박사가 귀국한지 1개월만인 5월 21일 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되면서 우익진영은 또다시 반탁투쟁을 전개하게 되지만, 김두한을 위주로 한 투쟁사의 속편도 후일에 다시 기술을 할 것을 약속해둘 따름이다.'라는 문장으로 끝맺음을 하였지만, 결국 속편은 나오지 않았다.

이와 같은 문제로 이 소설이 연재될 당시나 출간되던 당시에 제법 인기를 끌었고 완성도도 어느 정도 되긴 하였는데, 여타 평론가들이나 역사가들, 다른 언론들은 이 소설에 대해 별다른 논평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대중 소설은 아예 본척 만척하는 시대였긴 하지만.. 즉, 조금이라도 깨친 사람들은 이 작품 자체를 투명인간 쯤으로 취급해버린 것.

어쨌거나 당시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 연재가 종료된 뒤인 1987년 고려원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과정에 독자 공모를 통해 장군의 아들로 제목이 바뀌었다. 사실 '인생극장'이라는 기존의 제목은 너무 임펙트가 없긴 했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등장한 "장군의 아들"이라는 명칭, 칭호는 훗날 김두한을 썩 바람직하게 보지 않는 모든 이들의 짜증을 불만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이후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장군의 아들 영화가 큰 인기를 얻자 1991년 재출간. 그러나 신문 연재 당시에는 하루에 한회 씩 읽는 재미로 읽었던 것이, 소설로 보면 무려 8권에 달하는 분량인데다 설명충 장황한 이야기 전개로 인해 약간 지루한 면이 적지 않다. 거기다 내용이 내용이니... 결국 시간이 흐르자 서서히 잊혀져갔으며, 90년대 말에 출판사인 고려원이 망해버린 탓에 이 소설 역시 공중에 붕 떠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야인시대>가 방영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야인시대 특수를 노리고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총 9권으로 재출간되었다. 2015년 현재까지도 인터넷 서점에서 자음과 모음판의 일부 품목을 구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1권과 9권은 절판되어 전권 구입은 불가능. 그런데 왠지 뜬금없게도 2011년 한국경제신문의 인터넷 사이트인 한경닷컴에서 이 소설이 연재됐었다. 덕분에 2015년 현재에도 이곳에서 이 소설 전편을 읽을 수 있다.

4.3 드라마

일단 한국 근대사를 다루는 드라마에서는 조연으로라도 등장은 했다. 그 대표 사례가 제1공화국(드라마). 여기선 강인덕이 김두한 역을 맡아 남로당의 이강국과 싸우는 장면이 등장했다. 그 과정에서 김수임과 대면하기도 했다.

한편, 1989년에 김두한 창작물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높아진 다른 정치깡패들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헉헉), 한 깡패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무풍지대.

4.3.1 무풍지대 <1989년 KBS 드라마>

이환경 각본. 드라마에 대해서는 무풍지대(드라마) 항목을 참조.
무풍지대 자체는 유지광을 다룬 것이지만, 김두한 역시 동시대의 관련인물이므로 이 드라마에 주변인물로서 등장한다.
유지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가 자서전까지 출간한 계기는, 앞서 말했듯이 김두한과 당대 깡패들에 대한 열기와 관심에서 비롯된 것. 그러므로 이 드라마 역시 김두한 캐릭터의 비중이야 어쨌든 김두한에 대한 열기와 관심의 연장선 상의 결과물이다.
사실 이 드라마를 찍은 것 자체가 이보다 약간 앞서 나온 <인생극장>의 인기를 보고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인생극장> 덕분에 당대 주먹들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으나, 이미 김두한 관련 창작물들은 잔뜩 존재하고 있었고, 판권 또한 아래에서 언급할 문제의 영화로 넘어가버린 탓에, 그 대안으로 유지광 이야기를 드라마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어쨌든 김두한은 유지광이 속해있던 이정재와는 대립하는 관계였으므로, 이 드라마에서도 김두한의 비중이 딱히 높지는 않다. 대신 한 번 나오면 압도적으로 강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집필한 작가 이환경은 언젠가 김두한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써보자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

4.4 기타

한편,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터 각종 김두한 관련 출판물들이 등장하였다. 특히 <인생극장>의 영향이었던지 1985년 이후에 집중되어 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위키러라면 동네 서점 구석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에서 봤을 법한 전형적인 3류 출판물들이다. 솔직히 중증의 위키병이 아니라면 여기까지 알 필요는 없다..
당시 3류 출판물들의 특성상, 저자로 올라와 있는 이들이 실제 저자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어차피 자기들끼리 서로서로 베끼고 편집부에서 이름만 내건 경우도 허다하다. 다만, 특기할 만한 작품과 저자들에 대해서는 약간의 내용을 설명해 둔다.

  • '이용(李龍)'이라는 인물이 <대의: 실록 김두한>이라는 소설을 1984년 발표하였다. 목차를 통해 볼때 대체적으로 김두한 자서전을 그대로 베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무풍지대 3>이라는 제목으로도 존재하는데, 나중에 나온 드라마 <무풍지대>의 인기에 편승해 유지관 자서전을 베껴 무풍지대 1, 2권을 출간하고, 기존의 김두한 출판물은 억지로 3, 4권으로 끼워 넣은 것으로 보인다. 출판연도 기록이 워낙 엉망이므로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으며, 1980년대 동안 이런저런 이름으로 재출간을 반복하였다.
  • '김기팔'이라는 인물이 <(새벽의 기습)김두한과 이정재>라는 출판물을 1985년 발표하였다. 저자인 김기팔의 경우 제1공화국(드라마)를 쓴 각본가 김기팔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제1공화국의 36회 제목이 <김두한과 이정재>이다.
  • 안광제'라는 인물이 <(풍운아)김두한 : 주먹 하나로 천하를 누비며 부정부패와 싸운, 대의에 산>이란 쓸데없이 긴 제목의 소설을 1985년 발표하였다. 전형적인 3류 출판사의 3류 출판물로서 김두한 자서전에 김두한 영화를 짬뽕하여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안광제의 다른 저서로는 실용서적이나 고사성어서적, 성인극화소설 등이 있는데(..) 당시 전형적인 3류 작가의 밥 먹고 살기위한 커리어이다. 한편, 이 책은 여러 차례 이름을 바꿔 가며 출판되었는데, 심지어 2003년에도 야인시대 특수를 노리고 출판되었을 정도(..). 사실 이 문단에 적힌 김두한 출판물들은 다 이런 경우이다. 그럴 사람이 있는지는 의문이나 이 책들에 대한 정보를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RISS 등에서 직접 검색하기를 바란다.
  • 언론인이자 저술가인 '서병조'가 1985년 <풍운아 김두한>이라는 출판물을 발표하였다. 전국 어딘가 대학 도서관 몇 군데에 책이 존재한다.
  • 1987년에 갑자기 여러 출판물이 출판되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인생극장>의 영향이거나, 당시 깡패 영화가 한편 나왔다거나, 그냥 3류 출판사들끼리 원고를 공유했거나(..) 등의 이유였을 것이다. 귀찮으므로 특별한 정보가 없으므로 이름만 한꺼번에 기재한다. <장군의 아들(김두한) - 지은이: 정필태>, <(한시대를 풍미한 인물 김두한, 그의 활약상) 장군의 아들 - 지은이: 황명환>, <장군의 아들 : 김두한 인생일기 - 지은이: 황인규>, <풍운아 김두한 - 지은이: 오세발>.
<풍운아 김두한(오세발)>의 경우 위에서 말했듯이 70년대 등장한 최초의 3류 김두한 소설의 재출간작이긴 하다. 뭐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지만.

5 1990년대

어쨌거나 이듬해인 1990년, 무풍지대와 상관 없이 엄청난 화제를 끌며 한 영화가 제작되었고, 개봉되었다. 그리고 전설이 되었다. 이후 이 영화의 인기에 영향 받아 몇개의 관련작들이 나오게 된다.

5.1 영화

5.1.1 장군의 아들 <1990년 영화>

임권택감독. 박상민 주연>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장군의 아들 항목 및 각종 리뷰들을 참고할 것. 다들 알고 있듯이 전설의 작품이며, 이보다 더 빼어난 미학적 성취를 달성한 김두한 관련 영상물은 그 이전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2010년대의 관점으로 이 영화를 다시 보면 몇가지 흥미로운 점을 알 수 있는데, 일단 이 영화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수준 높은 피카레스크물로 볼 수 있다는 것, 거기에 미장센이 매우 뛰어난 당대 풍경 묘사와 액션씬들이 곁들어졌으며, 여기에 닳고 닳은 항일 김두한 클리셰는 양념 수준으로 첨가되었다는 점, 그리고 김좌진과 김두한의 관계는 영화 마지막에야 마지못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설명된다는 점이다.

일단 영화의 기본적인 줄거리 자체는 김두한 자서전이 아닌 소설 <인생극장>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어차피 소설 자체가 자서전에서 출발한 것이긴 하지만, 영화는 아예 실제 역사가 아닌 소설로부터 출발했기에 김두한의 실제 이야기와 상당히 동떨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장군의 아들>의 이야기는 영화라는 하나의 닫힌 세계 속에 존재하는 남성적 판타지로서, 실제 역사와는 별개의 창작된 이야기로 봐야한다. 위에 나와 있듯이 이 영화의 김동회나 하야시의 캐릭터는 자서전이 아닌 소설 <인생극장>을 통해 정립된 것이며, 김두한의 조력자인 신마적 캐릭터 역시 <인생극장>에서 창작된 것. 영화 속의 김두한 캐릭터 역시 소설과 영화라는 이중의 필터를 통해 재창조된 인물로서, 실존인물 김두한과 별개의 존재로 봐야 할 것이다. 일단 덩치부터가 다르다
한마디로 말해, 이 영화는 '실존인물 김두한'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독립된 창작물로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영화가 워낙 완성도가 높고 흥행에 대성공함으로써 오히려 이 영화 속의 김두한 캐릭터가 실존인물 김두한에게 역으로 투사되어 버리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원래 임권택은 이 영화를 썩 내켜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이때까지 '김두한 영화'라는 것은, 위에 나열된 70년대식 쌈마이물의 대명사였기 때문. 그러나 제작자인 이태원#s-4이 소설 <장군의 아들>의 인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김두한 영화를 만들자고 임권택을 설득했고, 감독 본인도 '70년대식 쌈마이물을 이 시점에 다시 만든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품게 되어, 결국 전설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러는 한편 이 영화는 이미 제작 당시부터 큰 화제가 되었는데, 물론 임권택이 감독한다는 것이나 신인배우들의 대거 기용도 그 원인중의 하나이지만, '김두한 이야기를 영화화한다는 그 자체' 또한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한편, 1편 뿐 아니라 시리즈 전체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김동회의 경우, <인생극장>의 김동회 캐릭터 거의 그대로에 가깝다. 김두한 자서전에는 이런 인물이 등장하지 않으므로, 이 영화가 실제 김두한의 회고는 신경 쓰지 않았고 원작소설의 각색에만 신경 썼다는 증거가 된다. 다만 3부작 전개를 위하여 김동희 캐릭터에 소설과 다른 영화만의 몇가지 오리지널 요소가 도입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어린 시절 둘이 함께 거지 생활을 했다는 것.

한편으로 아무리 소설의 제목을 그대로 따온 것이라지만, 장군의 아들이라는 명칭은 이 영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전파되었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불만을 사고 있는데, 이는 '장군의 아들'이라는 칭호 자체가 김두한 본인보다 김좌진을 강조함으로써 사실상 김두한의 논란투성이 행적을 은폐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 게다가 장군의 외손녀니 장군의 외종손이니 하는 표현들까지 등장하면서, 해당 실존 인물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들이 김좌진의 위상으로 미화 내지 광고되고 있다는 비판 또한 제기되게 된다.

또한, 이 영화의 시나리오 원안은 김용옥이 했는데, 기본적인 줄거리는 소설에서 나온 것이고 이 영화의 미학적인 특징들은 엄연한 임권택의 것이므로 그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원작소설과 비교해 보면 상당히 많은 부분이 사뭇 달라지긴 했다.
평론가 정성일 등은 김용옥의 철학이 이 영화에 약간의 흔적을 남겼다고 평가했으나, 우매한 중생으로서 도저히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어쨌든 김용옥은 자신이 썼다는 영화의 기본적인 내용과는 달리, 같은 해에 뜬금없이 '김두한은 김좌진 아들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하여 사단을 일으켰다. 김용옥의 주장은 신동아에서 먼저 발표했으며, 이후 <도올세설>이라는 자신의 저서에 실었다. 이에 과련된 이야기는 김두한#s-3에 언급되어 있다. 다만 <장군의 아들> 영화에서 김좌진 아들 이야기는 전체적인 내러티브와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수준으로 막판에 짧게 삽입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부분은 김용옥이 아닌 다른 극작가들이 가필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영화 중간중간 김두한이 김좌진 후손인 내용이 나온다. 굳이 표현을 안 했을 뿐이다. 대표적인것이 김두한에게 다른 사람들이 넌 보통 사람과 달라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거나, 경찰이 김두한을 항상 감시하거나 김두한에게 서울시내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제한을 두기도한다. 김두한이 단순히 서울시내를 빠져나가서 외부에 놀러갔다왔을뿐인데 경찰에 잡혀간다. 즉, 일종의 감시대상으로 찍혀서 서울시내 밖으로 함부로 나갈수없는 위치였다는것이다. 영화내내 은근히 김두한의 이런 상황에 대한 묘사가 나오다가 마지막에 대사로 장군의 아들임이 구체화된다.

5.1.2 장군의 아들 2 <1991년 영화>, 장군의 아들 3 <1992년 영화>

원래 임권택은 1편을 연출한 뒤 빠질 생각이었으나 어마어마한 흥행 덕분에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이후의 두 작품을 연달아 연출하게 되었다.
간단하게 말해 <장군의 아들 2>는 1편에 버금가는 걸작. 기본적인 줄거리는 역시 소설 <인생극장>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일례로 김두한과 소설가 박계주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는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소설 <인생극장>에서 창작된 것. 그리고 김두한의 로맨스 상대인 송채환이라는 인물 역시 <인생극장>에서 창조된 인물.[15] 다만 2편의 주요 적수로 등장하는 마루오까는 김두한 원래 회고록에서도 비중있게 언급되는 인물이며, 이런 까닭에 예전에 만들어진 70년대 김두한 시리즈에서도 마루오까 캐릭터가 이미 등장한 바 있다.

그러나 <장군의 아들3>은 보는 사람들도 슬슬 지겨워졌고 이야기나 연출 모두 전작들에 비해 힘이 빠져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줄거리 역시 김두한의 오리지널 이야기와는 안드로메다만큼의 차이가 있으며, 원작인 <인생극장>과도 제법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특히 김동회와 김두한이 하야시의 본거지를 습격한다는 내용은, 김두한 회고록이나 원작 <인생극장>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 내용이다. 3편으로 시리즈를 마무리 지으려다보니 이런 결과가 발생한 듯하다.

이로써 김두한 관련 창작물 중 최고의 걸작이 마무리되었다. 당연하게도 <장군의 영화> 3부작이 종영된 이후, 김두한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열기는 오히려 더 뜨거워졌다. 사실 영화의 줄거리는 김두한 본인의 자서전과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갔기 때문에, 온갖 꼬꼬마들이 사실은 이렇네 저렇네 하며 참견하는 분위기가 이루어졌기 때문.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상황에서 누군가가 감히 또다른 김두한 창작물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웠다. 왜냐면, 임권택이 만든 것에 필적할 만한 것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 결국 이로 인해 한동안 김두한 창작물은 더 만들어지지 못했으며, 이 상태로 제법 시간이 흘렀다.

5.2 드라마

그러나 시간이 어느정도 흐르자 '김두한 말고 동시대 다른 인물을 다루면 되지'라거나 '아예 오리지널 주인공을 만들어서 협객물을 만들면 되지'라는 쌈빡한 아이디어로 두 편의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아래의 드라마였다.

5.2.1 왕초<1999년 MBC 드라마>

각본은 변원미. 내용에 대해서는 왕초 항목을 참조할 것.

사실 실존 인물 김춘삼은 김두한과 뚜렷한 접점이 없는 인물이다. 일단 김춘삼의 나이부터가 김두한보다 열살 가까이 어리기 때문에 김두한이 한창 주먹질을 하고 있을 시기에 김춘삼과 마주쳤거나 어울렸을 가능성은 비교적 낮은 편이다.

사실 김춘삼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시점 자체가 1956년 경으로 김두한의 본격적인 행보를 벌인 것보다 이후의 시기이며, 보육원 사업[16] 및 중부시장 일대에서 깡패, 부랑자 조직을 결성하여 1959년에서 1960년 경 제법 거물로 성장하여 세간에 알려지게 된 인물이다.
1959년 합심원의 조직원들이 거리에서 헤매던 소년들을 폭행하고 강제로 끌고가려다 발각된 사건
1960년 깡패조직에서 새롭게 떠오른 김춘삼이 지명수배되어 도주한 사건

사실 김춘삼이 등장했을 무렵에는 김두한은 이미 공식적인 깡패 세계에서 손을 털고 비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수많은 후배 깡패들을 만났겠지만 정치계에 입문한 상태. 그런데 이 김춘삼이라는 인물이 훗날 미화되고 왜곡되어 깡패 창작물의 세계에 편입된 것은, 역시 김두한에 대한 관심과 열기 혹은 당대 깡패들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 즉, "뭐? 김두한 시리즈가 인기를 끌어?" => "그럼 다른 깡패는 누가 있었지?" => "맞다 김춘삼이 유명했었지!" 라는 경로. 애시당초 김춘삼 관련 최초의 영화인 <거지왕 김춘삼>부터가 김두한 시리즈가 인기를 끈 직후인 1975년 12월에 개봉했으며, 이때 김춘삼 역에는 김두한 시리즈로 떠오른 신예 이대근이 캐스팅되었는 것에서 그 흔적이 드러난다.[17] 그러나 후속작이 없었다는 것으로 보아 딱히 흥행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내용 또한 당연히 상당히 왜곡, 미화된 것이다.

이후로 김춘삼 창작물은 오랫동안 자취를 감춘 상태였는데, 위에서 언급한 <인생극장(소설)>, <무풍지대>, <장군의 아들(영화)> 등이 인기를 얻자 그러한 인기에 기대어 1990년 <거지왕 김춘삼>이라는 자전적 소설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김춘삼은 자신의 거지패에 '맨날 일본놈과 싸우던' 김두한이라는 자가 있었다고 써 버렸다!

그리고 이 자전소설을 바탕으로 드라마 <왕초>가 제작된 것. 즉, 드라마 <왕초>뿐만 아니라, 아예 모든 김춘삼 관련 창작물이 원래부터 김두한 창작물에 인기에 기대어 만들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자전 소설 역시 김춘삼과 김두한의 관계를 억지로 강조한 상태였는데, 여기에 기반한 드라마 <왕초>는 이러한 점을 더욱 강조, 결국 김두한이 김춘삼의 친구로서 주요한 인물로 등장하게 되었다.

한편, 김두한 배역에는 이훈이 캐스팅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 드라마의 김두한 캐릭터의 성격 자체는 실존 인물 김두한의 성격과 제법 닮았다는 점. 김두한은 원래 단순과격한 성격이지만 싸움 실력이 좋고 말재주도 좋은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건 그냥 이훈이잖아? 그리고 위의 길고 긴 김두한 행적에서 볼 수 있듯이 공명심이나 허영심 또한 상당했는데, 이 드라마의 김두한 캐릭터는 그런 면이 제법 잘 부각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드라마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거나 김두한의 문제투성이 실제 행적들을 제대로 묘사한 것은 물론 아니다. 게다가 그 반대급부로 주인공 김춘삼은 보고 있으면 넋이 가출할 지경으로 잔뜩 미화되고 왜곡되어 있다(..). 겨우 이정도인데도 김두한 추종자들은 이 드라마를 싫어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들의 어설픈 흔적을 한국 위키피디아의 왕초 항목의 '뒷이야기' 문단에서 볼 수 있다. 굳이 초딩이 쓴 듯한 이 내용을 해석해보면, 대한청년단의 수립년도와 극중 시간적 배경의 불일치를 주장하고 있는 듯한데 지적 자체는 맞다. 그러나 어차피 대한청년단이 설립되기 이전부터 김두한은 대한민청과 대한노총에서 신나게 우파용역깡패질을 하였으니, 드라마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 고증 오류는 봐줄 수 있는 문제이다. 까놓고 말해 일반인 중에 대한청년단- 대한민청- 대한노총 등의 단체의 성격과 명칭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긴 존재하는지? 그리고 대한민청이 일반인과 관계가 없다는 말은, 아무래도 대한민청이 후두려 팬 사람들은 모두 좌익 빨갱이라서 '일반인'이 아니라는 의미인 듯한데, 그럴 리가 있겠냐? 당연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은 되네

5.2.2 불문율(만화)<1995~2005년(미완)>

현강석 글. 김정수 그림.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을 참고할 것.
1940년대로 추정되는 시대를 배경으로 임대호라는 가상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활극 액션물이다. 기존의 김두한 창작물 및 시라소니 창작물 등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으로 시라소니와 김두한 역시 중요 인물로 등장한다. 다만 시라소니 쪽이 더 중요 인물이며, 전체적으로 볼 때 김두한 창작물보다는 시라소니 창작물 쪽의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뻔하디 뻔한 '항일 주먹 판타지'인데, 이야기 전개가 제법 그럴듯하고 작화도 뛰어나다고는 못해도 어느 정도 수준은 되었던 탓에 큰 인기까지는 아니어도 소소하게나마 인기를 끌었다. 한편, 김두한 회고록이나 시라소니 회고록 등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 일화들도 일부 삽입되어 있다.

어쨌거나 내용이 내용이니만큼 김두한에 대한 미화는 피할 수 없었다. 여기에 더하여 해방 이후의 이야기들까지 그리려고 했다는데, 이랬다면 당연히 더 큰 왜곡과 미화가 따랐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2005년 연중되어 10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5.3 기타

흥미롭게도 1990년대에는 김두한과 관련된 3류 출판물들이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80년대에 나왔던 3류 저작물들 중 일부가 재간행된 정도. 이는 1990년대의 출판계가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재편성되는 과정이었음을 입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관련 게임이 몇편 출시되었다.

  • <장군의 아들(게임)>
정확한 정보는 알 수 없지만, 대체로 1990년대 초반, 즉 <장군의 아들(영화)> 개봉 이후 출시된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은 세가 마스터 시스템패미컴
1996년 1편이 출시되었고, 1998년 2편이 출시되었다. 시라소니김두한이 플레이어블 캐릭터이다. 이후 도쿄야화라는 김두한과 관련 없는 별개의 시리즈로 발전하였다.

6 2000년대

이렇게 김두한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여전히 높지만, 김두한을 주인공으로 하는 창작물, 특히 영상물은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지 않던 상황에서 드디어 김두한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제작되는데... 그것은 바로,

6.1 야인시대<2002~2003년 SBS 드라마>

이환경 각본.
야인시대 항목 및 김두한(야인시대) 항목 참조을 참조할 것. 사실상 야인시대 1부와 2부, 3부는 별개의 작품으로 봐도 좋을 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각각을 별개로 취급하여 설명한다.

6.1.1 야인시대 1부

김두한 역은 곽정욱.
이쪽은 소년기 시절이다.

일단 드라마는 일종의 프롤로그로서 김좌진과 김두한 신비로운 출생으로부터 시작한다. 대체 왜 출생부터 이런 식으로 묘사하는지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한데, 어차피 이전까지 나온 모든 김두한 미화물 및 자서전 또한 이 출생담을 강조한다. 횟수 또한 매우 짧고 분위기 면에서 2부와 큰 차이가 없는지라 1부는 제외하고 1, 2부로만 나눠서 보기도 한다.

6.1.2 야인시대 2부

김두한 역은 안재모.
일단 <야인시대 2부>는 위에 나와 있는 길고 긴 김두한 창작물의 연장선에 놓여있는 작품이다. '중절모의 협객'이라는 이미지 내지 패션은 1970년대 <김두한 시리즈>에서 비롯된 것이고, '김두한의 주변 인물들 및 각종 일화의 정리'는 <인생극장>에서 정립한 내용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또한, '인기와 화제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최근의 화제작이었던 <장군의 아들(영화)>에 대해서도 당연히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가장 직접적인 부분은 주인공에 캐스팅된 안재모는, 70년대 <김두한 시리즈>의 김두한이었던 이대근보다 <장군의 아들>의 박상민에 더 가까운 이미지라는 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드라마는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른 <야인시대> 자체만의 고유한 개성과 줄거리를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야인시대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김두한 창작물 중 가장 김두한 자서전에 충실하게 만들어졌다.
사실 이전의 주요 작품들은 의외로 김두한 자서전에 그렇게까지 충실한 편은 아니다. 70년대 <김두한 시리즈>는 김두한 자서전 내용 중 일부만을 따와 만들어졌고 사실상 줄거리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쌈마이물이었다. 그리고 <인생극장>은 김두한 자서전에 등장하지 않는 것들까지 집대성하여 쓰여졌으며, <장군의 아들(영화)>는 아예 김두한 자서전이 아닌 <인생극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2차 창작물이기 때문에 김두한 자서전의 내용과는 더욱더 거리가 멀어졌다. 특히 야인시대 항목에 나와있는 비판 내용과는 달리, <장군의 아들(영화)>은 <야인시대>와 가장 거리가 먼 창작물이다. 이러한 점은 이 두 작품의 줄거리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알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장군의 아들>의 핵심인물인 김동회는 김두한 자서전에는 안 나온다는 이유로 <야인시대 1부>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역설적이게도 <야인시대 2부>와 가장 유사한 창작물들은 김두한 자서전을 적당히 베낀 80년대 3류 소설들이다. 다만, <인생극장>의 경우, 이전까지 나온 관련 작품 중 가장 내용이 충실하고 풍부한 작품이었던 관계로, 표절까지는 아니라도, 영향 받은 흔적들이 몇몇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캐릭터 구성. 일단 하야시 일당과 김무옥 캐릭터에서 그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쌍칼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김두한 자서전에서는 '그냥 그런 사람이 있었다' 정도 인 것을 <인생극장>의 김기환이라는 캐릭터와 신마적 캐릭터를 적당히 섞어 투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진영 캐릭터의 경우 아예 그냥 <인생극장>의 캐릭터를 그냥 베낀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다만 이런 와중에도 작가가 절대적으로 우선시한 것은 김두한 자서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기환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이 인물은 실존인물임이 확실하며 정황상 김두한보다 한단계 급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두한이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자서전에 기록한 덕분에 자서전에 등장하지 않는 관계로 <야인시대 2부>에서는 통째로 삭제.

어쨌거나 쌈마이물로서 <야인시대 2부>는 김두한 자서전의 내용이 비교적 흥미롭게 각색되어 있는 편이다. '쌍칼을 이긴 구마적, 구마적을 이긴 김두한'이라는 에스컬레이트 식 구성이나, 신마적과 김두한의 대결, 하야시 일당과의 대결 등은 드라마라는 제작 환경을 고려하면 제법 높은 완성도로 그려졌고, 이로 인해 남자 시청자들의 지지와 열광을 이끌어냈다. 특히 10대 남자애들의 인기를 끌었는데, 실제로 당시 이 드라마의 시청자 계층은 10대 남성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그러나 실제 역사 관련 문제에 대해 논하자면, 위의 이야기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드라마는 충실하게 김두한 회고록을 바탕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 상태로 '항일 김두한'이라는 이미지를 묘사하다보니, 그 어느 창작물보다도 가장 적극적으로 실제 김두한의 행적을 미화, 왜곡하는 결과가 발생하였다. <김두한 시리즈>등의 기존 영상물들이 그저 쌈마이 물을 만드는 과정에 적당히 '항일'이라는 포장지를 씌운 수준이라면, <야인시대 2부>는 그냥 김두한의 행적 전부를 적극적으로 여러분 이거 다 항일인 거 아시죠?라는 식으로 묘사해 버린 것. 그리고 이는 80년대 김두한 관련 3류 출판물들이 보인 짓거리와 동일한 수준의 짓거리이다.

일단 김두한을 길러준 정체불명의 원노인의 경우 택도 없이 독립운동가로 그리는데, 김두한 자신은 원노인이 형평운동을 통해 김좌진과 인연이 있다는 되도 않는 주장을 했을 뿐이다. 참고로 원노인을 독립운동가로 묘사한 작품은 <야인시대 2부>가 유일하다.
또한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 역시, 차마 이것까지 미화하긴 양심에 걸렸는지 김두한의 주장을 100% 받아 들인 형태로 삽입되었다. 사실 이 사건은 김두한 관련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은 생뚱맞은 주장으로서, 김두한조차 '그냥 알고보니 다이너마이트가 내 쪽에서 유출된 것'이라는 정도로 주장한 것에 불과하다. 대체 김두한이 왜 이런 '아니면 말고' 식의 이야기를 주장했는지, 이 드라마가 왜 굳이 이런 일화를 삽입하였는지는, 딱히 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가장 악질적인 부분은 경성특별지원청년단(반도의용정신대) 문제. 김두한의 택도 없는 변명을 200% 반영하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김두한의 친일 의혹 참조. 솔직히 깡패 새끼들이 군대 안 가겠다는 핑계 대고 경시청과 손 잡고 완장질한 거 이 드라마에선 김두한이 희생하여 여러 사람 목숨 건졌다는 식으로 묘사되었다. 참고로 이 과정에 하야시가 개입한다는 내용은 <인생극장>을 살짝 표절한 것이다.

이외에도 자질구레한 문제점들이 많다. 예를 들어 김두한이 크자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려 했다거나, 친일파를 미워하고 일본인들과 대립했다거나 등등. 다만 <야인시대 2부>는 '김두한 - 협객물 - 쌈마이물' 이라는 장르적 정체성이 강하므로, 항일 문제는 그저 깡패물이라는 남성적 판타지 장르가 공중파에서 방영되기 위한 변명으로서 기능하는 장치.. 정도로 봐줄 수는 있다. 한 마디로 헐리우드 영화에서 나치가 허구헌날 악당으로 등장하듯, 이 드라마도 '깡패 김두한 액션물'을 만들기 위해 그저 일제라는 절대악을 강조했을 뿐이라고 봐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6.1.3 야인시대 3부

핵지뢰. 한국 드라마 역사상 최악의 조폭미화물. 21세기에 방영된 쌍팔년대 식 반공 드라마로 남을 뻔 했지만... 레전설.

내용과 재미 양쪽 모두 2부보다 못한 탓에 시청률이 반토막이 나 버렸다. 일부 시청자들은 <야인시대 3부>의 근현대사 왜곡으로 채널을 돌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잘 보다가 아빠가 왜 갑자기 채널을 돌려 버리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당시 꼬꼬마들. 그렇다 해도 평균 시청률은 30% 정도로 높은 편. 다만 정확한 매회 시청률 추이는 알 수 없다.

가장 먼저 캐스팅 문제를 지적해야 되는데, 김영철이 김두한 역을 맡은 것부터가 문제다. 일제에게서 해방된 1945년 당시 김두한의 나이는 겨우 28세였다. 김두한이 국회의원에 처음으로 당선되었을 때의 나이로 따지더라도 38세에 불과. <야인시대 3부>의 내용 대부분이 김두한이 28~38세 사이에 일어난 일인데, 김영철이 이 드라마에 출연했을 때 나이는 한국나이 50세(...). 참고로 당시 안재모의 나이는 한국나이 24세였다. 그냥 김영철이 태조 왕건으로 잘 나가게 되고, 마침 같은 각본가기부터 하니까 삘받아서 캐스팅 한것 밖에 지나지 않는다.

고증 부분에 있어서도 그야말로 최악. 깡패들 자서전 외에 참고한 자료가 있는지조차 의문이 들 지경. 무엇보다도 김두한이 자서전을 통해 스스로를 왜곡하고 미화한 것을 아예 작가가 의도적으로 한층 더 미화하고 왜곡한 것. 특히 극작가인 이환경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왜곡된 역사관과 사상을 이 드라마에 투영한 것이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각색된 부분에도 문제가 상당하다.

예를 들어, 개코의 죽음에 관한 에피소드는 김두한이 뻔뻔하게 지껄인 얘기한 일화에서 비롯된 것인데, 김두한에 따르면, 부하들이 대규모의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탓에 책임을 지우기 위해 부하들을 창고에 가두고 불을 질렀다는 것. 현실성도 없고 내용도 썩은 이따위 이야기를 '성추행으로 오인받자 일벌백계'로 바꿔 묘사했으니 이 드라마의 왜곡, 미화 수준이 어떤 지경인지는 두 말하면 잔소리. 특히 '개코 자신은 친절을 베풀었는데 여성 노동자들이 이를 성추행으로 의심하고 개코를 궁지에 몰아넣었다'는 각색은 작가의 의도 자체가 상당히 의심스럽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서정범 교수 무고 사건을 보고 온 듯한데(...), <야인시대 3부>는 이 사건과 정반대인 경우로 보면 된다. 즉, 민간인 학살을 굳이 여성 + 노동자들의 마녀사냥이라는 이상한 방식으로 각색함으로써, 작가인 이환경이 자신에게 내재된 여성혐오와 노동자 계급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는 것..

다음은 김규식여운형에 대한 협박과 암살 시도에 대한 묘사. 일단 아무리 썩은 각본가라도 김두한조차 여운형에 대해 언급할 때 '훌륭한 사람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말한 것에서 눈치를 깠는지 그러한 기조를 따르고는 있다. 그러나 한편 김두한은 여운형 암살에 간접적으로 참여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주장은 또 드라마에서 삭제해버렸다. 당연하지만 좌우합작이나 찬탁 반탁 문제 역시 전형적인 김두한 식 변명 및 일부 보수우파들의 주장에 따르고 있다.

김두한이 벌인 일 중 가장 확실한 행적이며 가장 확실한 우파 깡패짓, 즉 9월 총파업 당시 노동자들에게 벌인 테러 및 강제 진압 문제 역시 쓰레기 같은 방식으로 미화했다. 아예 김두한이 회고한 내용에서 더 나아가, 막판에는 상대방 주먹과 일대일 대결을 벌여 문제를 해결했다는 식의 병신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

정진영 관련 내용 역시 미화와 표절이다. 정진영 캐릭터의 형성에 대해선 위의 <인생극장>에서 설명하였는데, <야인시대>는 이미 1부부터 이러한 캐릭터를 표절하였다. 그나마 인생극장은 80년대 조선일보 연재물답게 정진영이 공산당이 된 순간 이미 빼도 박도 못할 악인이 되었다는 입장으로, 그의 마지막을 철저한 악당의 최후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야인시대 3부>는 친구(영화)에서 도용한 듯한 '두 친구 사이의 비극'이라는 컨셉까지 집어넣었다. 이로 인해 <야인시대 3부>에서 그려진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정진영의 최후는 새빨간 거짓말. 정진영은 지하실로 끌려가 김두한 일당에게 몽둥이로 얻어맞아 죽었다.[18] 애초에 정진영의 본래 이름은 정진이었는데[19] 사건의 야인시대는 김두한의 잘못된 기억인 정진을 썼다는 점에서 모티브인 실존인물 정진룡에 대한 왜곡과 야인시대 정진영의 왜곡이 안 생기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게다가 이후의 이야기들은 김두한이 늘어놓았던 근거 없는 허풍에 철저히 따르고 있는데, 존 리드 하지미군정이 김두한과 우파를 처음부터 곱게 보지 않았다거나, 사형선고를 받은 김두한이 오키나와로 보내져 미국ㅎㄱ 주먹들과 대결했다는 따위의 이야기들이 바로 그것. 존 리드 하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 사람은 그냥 전형적인 반공주의자 미국 군인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조차 김두한을 곱게 보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김두한이 미쳐 날뛰었기 때문. 또한, 오키나와 형무소에서 미국인들과 주먹 대결을 펼쳤다는 것은 1963년 자서전 집필 당시 만들어진 허풍에 불과. 1960년대 이후 김두한이 미국인들과 주먹 대결을 펼쳤다고 주장하고 나선 이유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으로 보인다. 4.19 이후의 민족주의 정서에 편승하려고 한 게지

김두한이 6.25 때 부산에서 상류층의 행태에 분노하여 캬바레를 습격하였다는 것도 이 드라마의 전형적인 왜곡, 미화 내지 이환경 식 각색. 일단 이 에피소드는 김두한은 부산에서 철도 파업에 참여하여 노동자들을 이끌었다는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김두한은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한 이후, 계속해서 노동자 문제와 복지 문제에 관심이 많은 , 이와 관련된 문제들에 제법 진보적인 을 해왔으며, 심지어 1960년대에는 본인 자서전이나 회고록에서 북유럽식 복지 정책을 해야한다는 위엄 돋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물론 노동자들을 신나게 두들겨 패왔으며 죽는날까지 깡패 후배들을 끼고 돌아다니던 인간이 이딴 말을 늘어놓으니 믿는 사람은 전무(..). 그런데 이환경은 파업 관련 내용을 부유층의 캬바레 습격이라는 전혀 엉뚱한 내용으로 각색한 것. 왜 작가가 노동 관련 문제를 부유층 습격이라는 내용으로 바꿔치기했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또한 이환경은 김두한이 주장한 내용 중 복지나 노동 문제에 관련된 것은 이 드라마에서 전혀 등장시키지 않았는데, 이정도면 단순한 각색이 아니라 확신범이라 보아도 좋을 듯하다. 덧붙여 왜곡 미화 쩔던 1970년대 <김두한 시리즈>조차 김두한을 노동자들의 친구라고 왜곡할지언정 이환경과 같이 아예 삭제해버리고 180도 다른 이야기로 바꿔 버리는 치사한 짓은 하지 않았다.

김두한이 국회의원이 된 후 자유당과 충돌하는 이야기도 당연히 미화, 왜곡. 일단 김두한 등의 우익깡패들은 자유당에서 숙청되자 밥그릇과 떡고물을 주장하며 각자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했다가 다시 자유당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김두한의 경우, 이 과정 중에 김관철 살해 미수 사건을 저질러 국회 등청은 커녕 감방행이 달랑달랑했던 상태. 이로 인해 김두한이 자유당 재입당을 조건으로 모종의 거래를 제안했을 확률이 큰데, 이런 거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사사오입 개헌이기붕에게 사사건건 깽판을 쳤다... 였을 확률이 높다. 이걸 전후 관계를 거꾸로 바꿔 버리면, '사사오입개헌에 반대해서 자유당이 김관철 살해 미수 사건을 핑계로 김두한을 보내버렸다.'는 식이 되어 버리는데, <야인시대 2부>는 실제로 그런 짓을 저질러 버렸다. 참고로 드라마에서는 '오래전에 김두한이 김관철에게 총을 겨눴다' 정도로 묘사되는데, 김관철 사건은 선거 한 달 전에 자기들끼리 이권 갈등을 벌이다가 김두한이 지 성격 못 버리고 저지른 사건이며, 살인미수와 더불어 불법적으로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 또한 문제가 되었다. 자유당이 김두한을 일부러 보내버리고 말고 할 한 것이 없었다는 얘기.

그외에 자잘한 왜곡, 미화는 손가락이 아플 지경이니 더 설명하지 않는다.

덧붙여 <야인시대 3부> 초반부에 뜬금없이 아편밀매에 대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이건 <소설 인생극장>에 등장한 에피소드를 슬쩍 표절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인생극장> 외에 김두한과 아편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다른 창작물이나 기록이 전무하기 때문.[20]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닌 이상 표절이 의심된다.

또한 <야인시대 3부> 중후반부에 이르면 이정재(깡패), 시라소니 이야기가 주내용이 되는데, 이건 당연히 유지광의 자서전에서 따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라소니 소스를 약간 끼얹은 것이다. 그런데 김두한 드라마면 김두한이나 내보낼 것이지, 대체 다른 쓰레기 깡패들 이야기까지 해야할 이유가? 십중팔구 김두한 이야기만으로는 이야기 전개가 어려워진 탓에 이정재를 끌어들인 듯한데,[21] 작가의 전작인 무풍지대와 별반 다르지도 않은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집어넣어 질질 끈 덕분에 원래 100부작 예정이었던 드라마가 124부작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드라마 연장은 작가인 이환경이 방송국에 직접 요구한 것. 심지어 이정재, 시라소니 파트가 김두한 파트와 잘 어울려지냐면 그것도 아니다. 실제도 당시 방영분을 보면 주인공이 김두한인지 이정재인지 헷갈릴 지경. 사족이나 마찬가지였던 이정재, 시라소니 파트를 고집하지 않았다면 원래 분량 안에 충분히 끝났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 드라마는 김두한 자서전의 내용을 바이블로 삼은 뒤, 여기에 작가 스스로가 각색하고 재창작한 쉴드들이 덮였다. 문제는 그런 행위가 김두한에 대한 지독한 미화로 이어졌다는 것. 심지어 자서전과 다른 부분마저도 <인생극장>의 아이디어를 도용했을 가능성이 있고, 작가인 이환경의 수구꼴통적인 가치관이 상당 부분 투영되었다. 결과적으로 한국 현대사에 대해 비뚤어지고 왜곡된 시각이 잔뜩 투영된 공중파 최악의 현대 사극 드라마, 2000년대에 만들어진 쌍팔년대식 반공 미화물이 탄생하였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실제 역사라는 관점으로 볼때, 2000년대 한국 드라마 최악의 쓰레기, 역대 최악의 조폭미화물이라 해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2003년 당시 <야인시대 3부>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메이저 언론의 경우, 시청률 등의 지엽적인 문제만을 기사화했을 뿐 그 내용에 대한 논평은 전혀 하지 않았다. 사실상 이전 김두한 창작물들과 마찬가지로 그 내용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외면해버린 것. 프레시안이나 오마이뉴스 등 당시 막 활성화되기 시작한 인터넷 언론 등에서 비판 기사를 기고한 사람들이 있긴 하였으나, 직업 언론인이나 학자들이 아니어서 메이저 언론만큼의 위상은 없었고, 그 내용 또한 부실하였다. 그나마 이 문제를 상세하게 다룬 것은 한겨레21에 연재된 역사학자 한홍구의 칼럼이 유일무이하다.

이러한 상황은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사실 2002~3년의 인터넷 여론 활동은 2010년대와 매우 달랐다. 디시인사이드에서도 사람들이 얌전하게 햏자 놀이나 하던 시대. 이 당시는 악플이란 단어조차 없던 시대로, 악플을 다는 행위 자체가 극소수의 악성 트롤러들이나 행하는 것으로 여겼다. 또한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특정한 대상에 비판을 제기하기 위해선 반드시 일정한 논리나 근거가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2010년대와 같이 "일단 까고 보자"라는 식으로 나서는 사람 또한 없었다. 결국 <야인시대 3부>는,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에 대해 불만스럽게 생각함에도, 특별한 비판이나 비평 없이 종영되었다.

이렇듯 야인시대 3부는 비판 만으로도 야인시대에 대한 내용중 역대 최다를 자랑하고, 그 내용 하나하나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이 드라마는 마지막에 말아먹은 최악의 조폭 미화물로 남을 뻔 했지만......

2010년 심영의 내가 고자라니 소스가 발굴되고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상술했듯이 김두한 역의 김영철 배우 캐스팅미스캐스팅이 맞긴 하다. 하지만 공산당 할거야 안할거야! 개소리 집어쳐!등 명대사를 여럿 만들정도로 카리스마 있는 열연을 펼치셨고, 이것은 배우 김영철 하면 딱 생각나는 배역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특유의 정치적이고 심리적인 면모가 부각되기 때문에, 최근도 어느정도 3부를 거리낌 없이 보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다. 최악의 조폭미화물이자 정치극에 지나지 않아 순수한 격투물이였던 2부에 압도적으로 묻혔던 방영당시 상황과는 반대가 되어버린 상황. 내가 고자라니 발굴 이후에 단순히 당시 상황만 보지 않고 야인시대 자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도 있는만큼 심영 소스는 그만큼 합필갤 뿐만 아닌 야인시대 자체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6.2 기타

야인시대 덕분에 김두한 관련 출판물이 때아닌 활황세를 맞았다. 이로 인해 2002년에서 03년 사이 몇몇 김두한 관련 출판물이 등장하였다. <인생극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2년에 재출간. 80년대 김두한 관련 3류 소설 중에서도 일부가 재출간 되었다.

  • 2002년 동아일보에서 <노변야화 김두한편>을 편집하여 <조선제일의 협객 김두한이오>라는 단행본으로 출판하였다. 오디오 카세트 2개까지 부록으로 싣는 쓸데없는 친절함까지 선보였다.
  • 2002년 이환경이 <야인시대 소설판>을 출간하였다. 전 시리즈 5권. 대체적으로 시나리오를 소설로 그대로 옮긴 내용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읽어본 자들에 따르면, 몇몇 인물들의 이름 등 부분적으로 드라마와 차이가 있다고 한다.
  • 2003년 정병철이라는 인물이 <후계자 1 : 김두한과 조일환>이라는 저서를 출간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김두한 자서전을 복붙한 것은 아니라는 점. 주로 김두한의 말년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조일환은 김두한의 후계자라고 주장한 깡패로서, 결국 이 책은 이 두 사람을 한데 묶어 광고 효과를 노린 깡패 찬양물에 불과. 한편, 2권은 이정재 및 박정희 정권부터 5공까지의 정치깡패를 다루고 있다.
  • 2005년 윤형복이라는 인물이 <김두한 일대기>라는 3권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내용은 알 수 없지만, 2000년대 나온 출판물 중에서 재출간이 아닌 몇 안되는 오리지널(?)한 김두한 출판물이라는 의의가 있다.
  • 돈독 오른 미친 작자들이 2002년과 03년 야인시대 인기에 편승하여 각종 어린이용 김두한 만화를 출간하였다.이딴 쓰레기를 자녀에게 사준 부모는 없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정확한 집계는 불가능하나,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및 네이버 책 정보에 등재되어 있는 작품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야인시대 : 시라소니와 김두한> 이준희 글 그림
<주먹황제에서 국회의원으로 : 김두한> 박지은 글, 정수영 그림
<(장군의 아들)김두한> 배인완 글 그림
<(의협)김두한. 상, 하권> 화도엔터테인먼트 글, 박성혁 그림
<(소년 김두한의)야인시대 1. 주먹황제 김두한> <(청년 김두한의)야인시대 2. 주먹황제 김두한> 오수#s-4 글 그림. 과거 아이큐 점프에 <천재들의 합창>을 실었던 그 오수다..
<협객 김두한> 선우백 글 그림.
<장군의 아들 김두한> 장길수 글 그림.
<장군의 아들 김두한> 신웅 글 그림.
<야인 김두한> 정재홍 글 그림. 성인 극화이므로 위의 어린이용 만화와는 구분된다. 그러나 어차피 김두한 자서전이나 야인시대를 적당히 베낀 물건으로 보이므로 큰 의미는 없다.
  • <남아일대기> 김현수 글, 신지석 그림.
성인 극화. 02, 03년의 수많은 김두한 만화 중 그나마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듯한 작품. 김두한, 시라소니, 이정재 등이 등장하나 주인공은 임호라는 오리지널 캐릭터이다. 어차피 대단한 작품은 아니므로 읽었다는 사람도 없고 별 의미가 없다.
  • <쿠당탕탕 스타군단> 손태규 글 그림.
나무위키에는 스타스쿨로 등재되어 있다. 원래 <스타스쿨>은 1993년 연재되었던 작품이며, 2002년 스타스쿨 2부로서 <쿠당탕탕 스타군단>이 연재된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김두한은 수많은 패러디 캐릭터의 하나로 등장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이 작품을 김두한 창작물로서 보기엔 어렵다. 뭐 어차피 작가인 손태규 항목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몰락해 갔던 작가의 당시 사정이 안습해서 여러모로 용서가 된다(..).
드라마 자체는 1950년대 예술가들을 조명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화룡이 주요인물로 등장하는 까닭에, 김두한 역시 지나가는 정치깡패 출신 정치인 정도로 짤막하게 등장. 사실 위의 쓰레기들 목록과 함께 묶이기엔 억울한 드라마인데, 이 항목은 김두한/창작물인 관계로(..).
  • 코미디 '영구야 영구야'에서 주인공 영구가 잠시 김두한 부하로 나온 적이 있다. 여기서 김두한은 김희라가 맡았고, 박헌영은 무려 이봉원이 맡았다.

7 야인시대 이후

꽤 오랜 시간 동안 김두한 창작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주요 김두한 창작물의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대략 5년을 주기로 주요 창작물들이 등장하였는데, 야인시대 이후로는 10년을 훌쩍 넘겼다.

무엇보다도 김두한 이야기로 50년을 우려먹었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로 보인다. 설령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르게 만들고 싶어도, 장군의 아들이라는 관련 창작물 최고 걸작이 존재하는 있는 이상 이 작품을 넘어서거나 어느 정도 근접한 수준에 다다러야 할 것인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

당연하지만 역사 왜곡 문제도 큰 문제거리. 2000년대 초반까지는 어떻게 넘어갔다 치지만 2010년대는 환경이 완전히 다르다. 김두한 창작물의 판이 크면 클수록 온갖 사람들이 제법 근거를 갖춘 자료를 들이대며 비판과 비난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작가가 자료 수집 중에 나무위키의 크고 아름다운 김두한 항목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특히 2010년대의 트렌드란, 별의별 시시한 이유만으로도로 언론 기사 댓글란이나 커뮤니티에서 악플을 달고 키배를 벌이는 것인데, 김두한 창작물을 만들겠다고 나설 경우 과연 사람들이 어떠한 행동을 할지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투자자들 역시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뻔히 이런 사정을 알면서 김두한 창작물에 투자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적다.

그러나 <야인시대>가 방영된지 5년이 지난 2007년과 2008년, 새로운 김두한 창작물에 대한 시도가 있긴 하였다.

  • 2007년 소나기 아츠라는 제작사에서 <장군의 아들 뮤지컬>을 만들겠다고 언플 발표했으나 무산.
  • 2008년 김두한의 아들이자 김을동의 동생인 김경민이 2008년 장군의 아들 4탄을 만들겠다고 발표. 이 시점은 아래에서 논할 <내가 고자라니>가 큰 인기를 얻은 직후였으므로 이로 인한 영향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김경민이 두루마리 한복을 입고 온갖 언론사들을 끌어모아 제법 요란하게 언플을 하였으나 무산. 전형적인 '투자자들을 모으기 위한 뻥튀기 언론 플레이'였으나, 정작 투자자가 모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굳이 <장군의 아들 4탄>으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당연히 임권택이 이따위 영화를 감독할리도 없고, 다른 사람이 감독해봤자 전작들과 비교되어 까이기나 할 것이 뻔했던 상황이므로 제정신이 박힌 투자자라면 투자할 리가(..). 또한 <장군의 아들>이란 제목을 사용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김영빈 감독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심지어 누나인 김을동조차 반대 의사를 내비쳤는데, 직업 정치인인 김을동 입장에선 이 시점에 김두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이야기. 김두한 영화가 화제가 되어봤자 사람들이 김두한의 행적을 파고들며 온갖 이야기가 오고갈텐데, 이런 것이 정치인인 김을동에게 결코 유리할 리가 없기 때문.
한편 이때 김경민은 파인트리 엔터테인먼트라는 페이퍼 컴퍼니 회사를 창립하고 신인배우를 모집하겠다며 다음 까페를 개설했는데, 아무리 연예인이 되어 뜨고 싶다해도 이런 막장 플랜에 반응한 사람은 극소수. 참고로 이 까페에 남아있는 가장 최근의 글은 2013년 신천지의 홍보글이다(..).

이후로는 별다른 계획이 나오지 않았다. 언젠가 깡패 이야기에 환장한 미친 투자자와 제작자가 나설 수도 있겠지만... 이 글을 읽는 위키러, 당신이라면 2010년대 중반에 낡디 낡은 김두한 이야기를 돈 주고 사서 보고 싶은가? 네!

그러나 여전히 가능성은 남아있다. 남자들은 어쩔 수 없이 주먹질하는 이야기에 환장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직접적으로 김두한과 관련된 것은 아니나 이와 연관된 아래의 창작물들이 등장하였다.

7.1 내가 고자라니 <2008년 인터넷 >

2008년 디씨인사이드에서 한참 합성물로 등장, 필수요소로 인기를 끌었다. 자세한 내용은 내가 고자라니합성 갤러리, 합성 갤러리/역사 등의 항목을 참조.

창작물이 아닌 단순한 인터넷 합성물이지만, <야인시대> 및 실제 김두한에 대한 평가와 지식, 사람들의 5~60년대 현대사 관련 지식, 각종 인터넷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므로 이 항목에서는 하나의 창작물로서 다룬다.

원래 내용 자체는 김두한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단순한 인터넷 밈이다. 심영 피습 사건과 실제 김두한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내가 고자라니의 실제 역사 문서를 참조할 것.

문제는 이 합성물이 폭주하면서 <야인시대 2부>가 다시 주목받게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 이 합성물과 관련된 내용의 이해 및 새로운 합성물의 발굴을 위해 상당수의 사람들이 <야인시대 2부>를 다시 감상하고, 그 내용을 퍼나르는 일까지 벌어졌다. 새로운 합성물 발굴은 실패했지만(..) 정작 이 과정 중에 일부 소수의 사람들이 왜곡된 역사지식을 습득하게 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다. 김두한의 민폐 클라스는 21세기까지 계속된다!

특히 나무위키 현대사 문서 중 상당수가 피해를 입었다. 대체로 나무위키의 문서들은 <내가 고자라니> 열풍이 불던 시기인 2008년 경(이때는 엔하위키 시절)에 만들어진 것들이 많은데, 하필이면 같은 시기 불어닥친 <내가 고자라니>로 인해 많은 문서들이 김두한 똥물에 직격당했다. 영향을 받았다. 아니, 오히려 <내가 고자라니>가 먼저 유행했고, 이로 인해 <야인시대 2부>에 등장한 현대사 관련 정보에 궁금했던 사람들이 대충 관련 내용을 찾아 작성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내가 고자라니>는 사람들에게 현대사에 대한 궁금증은 심어줬지만 왜곡도 시켜준 셈.
어쨌거나 이로 인해 나무위키 현대사 문서 상당수에 야인시대 관련 링크나 관련 내용, 대사 등이 기재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봐줄 수 있는 일인데, 문제는 몇몇 문서 중에는 <야인시대 2부>의 내용만이 기재되어 있거나, 급기야 <야인시대 2부>의 내용을 실제 역사로 착각하고 기재한 경우까지 존재한다는 것.
당연하지만 엔하위키, 리그베다 위키를 거쳐 나무위키까지 오는 동안 나무위키 밖의 인터넷 세계에서도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또한, 나무위키 정도로 왜곡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위키위키백과라던가 위키백과라던가 위키백과...에도 그 아름답지 않은 엉터리 현대사 지식의 발자취를 남겼다(..).

참고로 <내가 고자라니> 덕분에 김두한 창작물의 5년 주기설이 지켜졌다(..). 2007년의 뮤지컬 시도와 2008년의 영화 시도가 무산되었는데, 이 인터넷 밈이 2008년에 유행함으로써 5년 주기설을 지켜낸 것.

7.2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 <2014년 KBS 드라마>

김두한 및 김두한 창작물과의 관련성, 실제 역사와 관련된 부분에 한해 언급한다. 드라마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 항목을 참조할 것.

원작은 방학기시라소니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아예 시라소니가 아닌 오리지널 인물 신정태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며, 신정태가 시라소니와 김두한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인물이라고 주장하였다. 일단 이 인물의 이야기 중 김두한 이야기와 유사한 부분은 '김두한의 출생담' 뿐이다. 그 외 나머지는 딱히 김두한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 다만 신정태와 그의 보스와의 관계는, 실존인물 김두한의 이야기가 아닌, 김효천의 74년 영화 <실록 김두한>과의 유사성이 엿보인다.

사실 방학기의 원작이나 김두한의 자서전이나 시라소니의 평전 모두 정치깡패를 왜곡, 미화했다는 한계가 내포되어 있다. 드라마의 제작진 역시 이 점을 꺼림칙하게 여겼는지 아예 새로운 인물을 만들었으며 시대 배경을 일제시대로 국한하여 이 문제를 회피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신정태란 캐릭터가 항일주먹이라는 쉴드를 내건 것은 실존 인물 김두한과 관련이 없다는 식으로 눈감아 줄 수도 있다. 다만, '항일주먹'이라는 설정 자체가 50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 유서 깊은(..) 김두한 창작물의 닳고 닳은 설정임은 분명하다.

어쨌거나 드라마는 김두한 관련 창작물임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김두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묘한 포지션에 있다. 덕분에 시청자들 역시 이 드라마를 실제 역사가 아닌 판타지, 창작물로서 인식하고 시청하였으며, 딱히 실제 역사와 관련된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 또한 없었다.

한편, 놀랍게도 이 드라마는 초반에 많은 기대를 받았다. 또한 야인시대김두한의 알려진 이야기들 간의 관계를 따지는 사람도 제법 존재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드라마 자체가 똥망작(..)으로 흘러갔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하였다. 야인시대를 돌려달라는 멍청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김두한 창작물 5년 주기설을 지켜낸 공(?)을 세웠다. 2008년 <내가 고자라니> 이후 6년이 지난 시점에 이 드라마가 등장했기 때문. 과연 2019년 무렵에 또다른 김두한 창작물이 등장할지 기다려보자(..).

7.3 기타

없다.
2003년 이후 김두한 관련 2차 창작물은 씨가 말랐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야인시대> 종영 이후 특별한 작품이 나오지 않은 것이 큰 이유. '고자라니'가 아무리 인기가 좋았더라도 이게 출판 시장이나 게임 시장, 방송계에 미친 영향은 몇군데 패러디 대사 정도로 들어간 것만 빼면 전무한 수준.

특히 2차 출판물과 관련하여, 그 많고 많던 2류 3류 김두한 출판물의 수가 화끈하게 줄어든 것이 눈에 띈다. 아니 솔직히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전무하다(..). 이는 한국의 출판 문화가 상당히 달라졌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간단히 말해 2차 창작물 이라 쓰고 유행에 기댄 3류 출판물이라 읽는다 시장 자체의 판도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 예전처럼 인기 좀 있다고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내용을 복사 요약해서 출판물 하나 뚝딱 만들어내는 시대가 아니게 되었다. 일단 책 값부터가 비싸서 사보기도 부담이 된다. 편집부가 판단하기에 상품성과 기획력이 일정 수준이 되지 않으면 출판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된 것. 이는 어린이 출판물 시장 역시 마찬가지. 2010년대 시점에, 위인이라고 전혀 볼 수 없는 김두한 따위를 어린이 위인전이나 역사책으로 팔아먹을 출판사는.... 전문성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어린이용 김두한 관련 출판물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임 시장 역시 마찬가지. 일단 김두한 게임은 1990년대 말 야화 시리즈 말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잠시 잊기로 하자(..). 국산 패키지 게임 자체가 소멸되어 버린 상황인데, 김두한이라는 소재는 패키지 게임 말고는 만들기가 영 애매한 소재. 따라서 2000년대, 2010년대에 김두한 게임은 등장한 적도 없고 앞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물론 스마트 폰 게임이라는 신세계가 열린 상태라 '맛폰용 김두한 게임' 의 가능성은 존재한다.....지만 인기를 끈 1차적인 김두한 창작물이 전무한 상태에서 굳이 김두한 관련 게임을 만들 사람이 있을지는... 물론 김두한, 시라소니 같은 소재에 열광하는 사람은 50년 넘게 존재한 관계로 언젠가 갑자기 툭 튀어나올 수도 있긴 하다.

어쨌든 <야인시대> 이후 김두한 관련 미디어물, 창작물로서 언급할 만한 것은 다음의 세 가지 물건 정도.

  • <김을동과 세 남자 이야기> 김을동. 2011년.
자서전...이라고 하기엔 수준이 낮아 민망했던지, 자전적 에세이라 칭하였다. 이딴 책을 누가 읽겠느냐만은 정치인 김을동의 자기 주장, 회고가 담긴 책으로 김두한에 관련된 이야기도 약간이나마 포함되어 있다. 애초에 미화와 왜곡이 예상된 수순이었는데, 그나마 김두한에 대해 많이 다루기도 영 거시기했던지, 목차로 볼 때 다음의 딱 두 가지 정도만 다룬 것으로 보인다.
  1. 약자의 우두머리 그러나 빵점 아빠였던 ‘김두한’
2. 정치인 김두한, 그리고 의문의 죽음
...과연 목차만 딱 보아도 불쏘시개라는 것을 100% 확신할 수 있다(...).
  • <주먹으로 꽃을 꺾으랴 : '마지막 협객' 명동 신상사 풍운의 일대기> 신상현, 한기홍[22] 2013년.
당연하지만 신상사 본인 입장에서 서술한 것이기에 김두한 관련 이야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김두한 자서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서술되었을 것이므로, 김두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찰하고자 하는 연구자가 있다면 참고할 만하다.
  • <춘앵전> 전진석글, 한승희 그림. 2012년 만화.
윙크에서 연재된 순정만화로 여성 판소리 명창이자 여성국극의 명인이었던 임춘앵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
내용만 보면 김두한과 영 관련이 없는데, 어찌된 일인지 김두한이 등장한다. 대충 우리가 아는 그 김두한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며, 주인공 임춘앵의 조력자. 이로써 이 만화의 스토리 작가인 전진석은 남자들이나 관심있던 김두한이라는 똥물을 부녀자들에게도 끼얹은 셈(..).
참고로 나무위키 내에서 판소리가 아닌 만화 <춘앵전>과 관련된 항목은 딱 셋이다. 윙크, 김두한/창작물, 전진석. 그 중에 춘앵전의 내용을 약간이라도 언급한 것은 이 항목이 유일(..).
  1. 추정에 불과하나, 이 자서전이 처음으로 출판되었을 당시에는 조양은과 그의 영화인 <보스>와 유사한 취급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즉, 화제는 되었으나 구해서 접하는 사람들은 특정 계층이나 김두한 등 조폭물에 매료된 사람에 국한되었을 것이라는 얘기
  2. 이 영화의 개봉일은 1월 17일이고, 노변야화 김두한 편의 첫 방송일은 10월 14일이다.
  3. 당시에도 김좌진이 상당히 인기있는 인물이었고, 김두한의 출생 성장 이야기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4. 단 중절모 패션 자체는 카사블랑카 등의 고전 헐리우드 영화나 1972년 발표된 당시 최신 흥행작 대부(영화)에게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5. 다만 모티브 자체는 김두한이 부산 철도 파업에 참여했다고 주장한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두한의 주장은 원래부터 개소리 허풍일 확률이 높고, 영화는 이런 원래의 이야기조차 알아내기 힘들 정도로 각색되었으니 뭐..
  6. 이 작품은 대체로 이재학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인 심만기는 1,2권을 자신이 그렸다고 인터뷰하였다. 심만기의 인터뷰.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
  7. 혹시 자기 집 창고 같은데서 이 책을 발견했다면 소중히 보관하도록. 수집가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다.
  8. 네이버에서 '김창호 풍운아 김두한'으로 검색하면 찾아볼 수 있으나 해당 블로그의 주소는 따로 링크하지 않는다.
  9. 흥미롭게도 이 만화의 맨 앞부분에서 '김두한, 그는 깡패가 아니었다.'거나 '후일 그가 깡패 출신 국회의원, 양아치 출신 국회의원이라고 떠들고 있지만'이라는 해설이 등장하는데, 이는 곧 그 당시에도 김두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상당수 존재하였다는 증거이다.
  10. 게다가 같은 싸구려 영화라도 에로 쪽이 액션 쪽보다 제작비가 더 싸다!
  11. 이 칼럼에서 작성자가 <김두한형>을 아래의 <서대문 1번지> 이후에 나온 외전격 영화라고 하였으나, 두 영화의 개봉일자로 따져봤을 때 이는 작성자의 착각이다. <김두한형> 쪽이 두 달 앞서 개봉하였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계열의 영화가 연이어 제작될 경우에는 먼저 만들어진 영화가 나중에 개봉되는 일도 있을 수는 있다
  12. 이일목은 19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이런저런 B급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한 인물로 무려 120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완성도가 어땠을지 짐작이 된다. 감독으로도 데뷔하여 세 편의 영화를 찍었으나 평가는 그닥. 이 세 편의 영화 중에는 시라소니(1992년 작) 영화도 포함되어 있다.
  13. 1986년에 연산군 영화를 만들기도 했는데, 연산군 역이 이대근(!)이다. 이 때 이대근은 이미 뽕과 변강쇠로 에로배우로 변신한 상태였지만 연산군 영화은 볼거 없다는게 정설. 그 이유는 장녹수 역이 강수연이었고 강수연 자신이 노출을 극히 꺼려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화끈하게 집단 누드 장면이 나오는건 동시 개봉한 유인촌 주연의 연산일기가 최고 였다.
  14. 1930년대 '순애보'라는 대중소설로 큰 인기를 끈 작가이다.
  15. 참고로 연기자 송채환은 이 영화로 데뷔했는데, 자신의 배역이었던 '송채환'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던지 이후 본명인 권소연 대신 이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16. 고아들을 모아 이런저런 일앵벌이라던가 앵벌이라던가 그러니까 앵벌이에 이용해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연히 상당한 금액의 정부보조금도 착복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실제로 적발된 사례가 있다. 이 짓을 한 군데서 한 것도 아니고 전국 십여 개 곳에서 하였다. 거지이란 칭호가 괜히 붙은 것이 아니었던 것.
  17. 덧붙여 이 영화의 감독은 훗날 <김두한과 서대문 1번지> 연출하게 되는 이혁수이다.
  18. 다만 이 드라마의 원작 소설은 김두한이 정진영을 지하실에 가둬 둔 후에 어떻게 처분할 지 고민(자기 친구니까 멋대로 패죽일 수 없기 때문에)하던 중 부하였던 신영균이 김두한의 명령 없이 제멋대로 정진영을 몽둥이로 때려 패죽였다고 서술되었다. 비록 심하게 미화되었을 지언정 차라리 이게 실존인물 정진룡의 죽음에 더 가깝다.
  19.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기사 제목이 정진룡 살해사건으로 표기되었단다. 당시엔 깡패들조차 좌우로 나뉘어 서로 유혈이 난무하는 패싸움질을 일삼던 시대인데다 정진룡은 일제시대부터 높은 급의 깡패였고 좌익 관련 사건도 여러 저질렀기 때문에 동아일보가 일부러 오보를 낼 가능성은 낮다. 결정적으로 후술되는 정진은 김두한 본인의 근거하여 언급한 것인데다 언급한 시기도 사건이 발생하고 20년 쯤 뒤에 언급했다. 사건시 정황을 파악하여 즉각 보도한 언론사의 주장과 20년이 쯤 되서야 언급한 개인의 주장의 신뢰성은 당연히 전자가 높고 후자가 떨어지는 건 명약관화이다.
  20. 존재한다면 얼마든지 수정바람
  21. 실제로 <야인시대 2부>의 인기가 상당히 떨어진 상태였는데, 이정재와 시라소니 스토리가 본격화되자 기사회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22. 월간중앙 선임기자로 인터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