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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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2013)
The Atto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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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양우석
각본 양우석, 윤현호[1], 이정화
출연 송강호, 오달수, 김영애, 곽도원, 임시완, 정원중, 이성민, 송영창, 조민기
장르 드라마
제작사 위더스 필름, 윌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촬영 기간 2013년 4월 9일 ~ 2013년 7월 12일
개봉일 2013년 12월 18일
상영 시간 127분
총 관객수 11,375,944명 (최종 / 국내 상영영화 역대 9위)
국내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해외등급 PG-13 이상 관람가
역대 대한민국 1000만 관객 영화
7번방의 선물
(2013, 12,811,213명)
변호인(영화)
(2013, 11,375,944명)
겨울왕국
(2014, 10,296,101명)

1 개요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2013년에 개봉한 대한민국의 영화.

1980년대 부산에서 활동했던, 한 인권 변호사의 일대기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2] 그가 변호했던 부림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알려져 여러 면으로 화제가 됐다. 제작자는 이 영화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명확히 밝힌 바 있다. 참조 또한 변호인의 시나리오를 쓴 윤현호 작가도 영화의 주인공인 송우석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서 따온 것이라고 강연에서 밝힌 적이 있다.참조
단, 변호인 코멘터리 디스크에서 말한 내용에 따르면 정치적 논란이 일어날 만한 부분은 편집과정에서 제외하였다고 한다.

2 예고편

▲ 첫 번째 예고편
▲ 두 번째 예고편

3 시놉시스

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다섯 번의 공판이 시작된다!
1980년대 초 부산. 빽도 없고, 돈도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부동산 등기부터 세금 자문까지 남들이 뭐라든 탁월한 사업수완으로 승승장구하며
부산에서 제일 잘나가고 돈 잘 버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다.
10대 건설 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전국구 변호사 데뷔를 코 앞에 둔 송변.
하지만 우연히 7년 전 밥값 신세를 지며 정을 쌓은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국밥집 아줌마 순애(김영애)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구치소 면회만이라도 도와주겠다고 나선 송변.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진우의 믿지 못할 모습에 충격을 받은 송변은
모두가 회피하기 바빴던 사건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하는데...
"제가 하께요, 변호인. 하겠습니더."

ㅡ (출처 : 출처 : 네이버 영화)

4 등장인물

송우석 [3] (송강호)
대전에서 판사직을 거친 고졸 출신의 세무 변호사이다. 영화의 모델이 된 부림사건[4]에서 해당되는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 #2[5] 송우석은 우연히 부산 학림사건 변호를 통해 인권 변호사로 각성하고 그 후 각종 시국, 공안사건 및 노동쟁의 변호인으로 활동하게 된다. 처음에는 소시민적이면서도 약간 속물적인 모습을 보이며 학생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데모하는 거라며 학생 운동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으나[6] 한 달이 넘도록 행방불명이었던 순애의 아들인 진우가 부독련 사건에 얽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모습에 충격을 받고 진우가 읽은 책들을 밤새 읽은 후 자신에게 사건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던 김상필을 찾아가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라고 말하며 진우를 비롯한 학생 9명의 변호인이 된다.
박동호 (오달수)
송변의 사무실의 사무장. 개업초기 혼자 사무실을 운영했던 송변은 점점 일감이 많아지게 되자 선배 변호사를 통해 사무장을 수소문하게 되고 소개로 찾아온 박동호를 채용하게 된다.[7] 국밥 좀 그만 먹자고 해도 송우석에게 붙들려서 질리도록 국밥을 먹는 불쌍한 사람(...)[8][9] 사무장으로서의 능력은 꽤 있는 듯 변호사들이 너도나도 부동산 등기업무에 뛰어들어 매출이 줄어들자 세무 관련으로 전문 분야를 돌리자고 제안하며 자신의 인맥으로 많은 여러 건수를 물어온다. 송변의 부하직원이라기보다는 거의 동업자의 모습. 초기엔 진우 변호건에 대해 말리고[10] 해동건설 건에 대해 계약하자고 주장하며 한때의 우석처럼 소시민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변해가는 우석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닿은 게 있었는지 탈세혐의로 공안이 뒤져놓아 엉망진창이 된 사무실을 보고 우석이 내가 다 치울 테니까 비서랑 잠시 출근하지 말고 쉬고 있으란 소리에도 "이걸 어떻게 혼자서 다 치워" 라면서 울고 있는 비서에게도 "너도 울지 말고 같이 정리나 하자" 라고 말하며 치우는 간지를 보인다[11]. 에필로그에서도 방청석에 앉아있는 모습이 나온다. 여담으로 송변의 모델이 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의 모습은 오달수를 닮았다. 박동호의 모티브가 된 장원덕 씨 인터뷰.
최순애 (김영애)
장조모님이 어머니가 되셨다 송변의 단골 식당 주인. 작중으로부터 7년 전, 송우석이 막노동 일을 하며 힘겹게 가족을 부양했을 때 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도망갔다가 진우에게 들킨 적이 있었다. 이후 현재 시점에서 빚을 갚게 되는데 "묵은 빚은 돈 몇 푼으로 빚 갚는 거 아니다, 마음과 발로 갚는 거다. 자주 오란 말이다!" 라고 송우석의 사례를 거절했다. 한때는 모종의 사건 때문에 송우석에게 소금을 뿌리며 쫓아내기도 했지만[12] 진우가 국보법에 걸려 잡혀 들어가자 전에 소금 뿌린 거 미안하다며 제발 좀 도와달라며 송우석에게 눈물로 호소하게 된다. 이후 우석이 부른 증인이 경찰의 계략으로 끌려가고 재판에서 패해 침울한 우석에게 "너는 할 만큼 했다" 며 위로한다.[13] 6년 후에는 우석의 재판에 방청객으로 참여한다.
차동영 (곽도원)
공안 책임자. 계급은 경감. 작중 진 최종 보스. 일제시대 특별고등경찰[14]이었던 아버지를 6.25 때 학살로 잃었다. 서울에서 공적을 인정 받아 부산으로 내려왔다. 윗선으로부터 사건을 조작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며 이에 따라 철저히 사건을 조작하게 된다. 그의 말을 보면 국가가 있어야 국민을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약간의 희생이 있어도 국가권력은 공고히 유지되어야 하며 자신은 경찰이라는 입장에서 필요악적 존재로 더러운 일을 맡아 한다는 식이다.[15] 진우 일행을 고문하여 거짓 자백을 받아내더니 법정에서 송우석의 증인 신청에 당당히 응한다. 송우석이 재판중 '"니는 니가 애국자 같나? 천만에! 니는 애국자가 아이고, 죄없고 선량한 국가를 병들게 하는 버러지고, 군사정권의 하수일 뿐이야!"'라는 일침을 찌르는 말에 달리 대응할 말이 없는지 벌컥 화를 내며 "입닥쳐! 이 빨갱이 새끼야!"라고 소리친다. 다르게 해석해 볼 여지도 충분한데, 작중 차동영이 보여주는 행동은 전형적인 국가주의의 최악의 형태를 보인다. 자신이 충성하는 '국가'를 위해서는 어떤 행동도 합리화되는 식이다. 이런 차동영의 국가관은 국보법을 앞세우는 증언 태도와 조작을 해서라도 예방해야 한다는 수사 철학(?)에서도 옅보인다. 그런 국가관이 송 변호사를 통해 근본부터 부정당했으니 자신의 애국심과 근본이 부정당하는 '억울함'에 글썽이며 분노했을 수도 있다. 감독이 어떤 연기를 주문했는지, 배우가 어떤 심정으로 이 연기를 했는지 인터뷰가 있다면 확실하겠지만, 작중 내 장면으로는 이런 상반된 해석도 가능하다. 마지막에 증인으로 등장한 자신의 부하인 윤중위의 증언을 계략으로 무효화시키곤[16] 이후 행적은 불명.[17] 곽도원의 인터뷰에 의하면 연기 모델은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이라고 한다. 그에 관련된 수기나 기사, 그리고 사진까지도 꼼꼼히 보면서 캐릭터를 연구했다고. [18]
박진우 (임시완)
최순애의 아들. 손녀사위가 아들이 됐다 부산대 공과대학 재학생이다.[19] 1학년이다. 송우석이 학생 운동에 대해 고등학교 동창인 이윤택과 한바탕 싸운 뒤 "엄마가 저렇게 고생해서 너 공부 시키는데 너도 데모하면 천벌받는다" 고 말하자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것이고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산 것[20]" 이라고 받아친다. 여성들을 모아놓고 야학을 운영하던 중[21] 차동영 일당에 의해 공안에게 납치되듯이 잡혀가 온갖 고문들을 당한다. 영화에서는 구타, 물고문은 기본이고 얼굴에 수건을 덮고 라면 국물을 코와 입에 부어버리는 속칭 코렁탕 고문, 손발을 철봉에 묶어 온몸을 패는 '통닭구이' 고문까지 재현했다. 그 수위는 《남영동1985》과 맞먹을 정도.[22] 그 시대의 청년들이 마주해야 했던 폭력성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실제는 저것보다 더 심했을 테니까. 박진우의 모티브가 된 송병곤씨의 글. 6년 후엔 우석의 시위대 앞에서 박종철군의 영정을 들고 있었고 영화판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소설판에서는 방청석에 앉아있었다.
김상필 (정원중)
송우석 변호사의 선배격의 인물로 인권변호사로 추정[23][24]된다. 다행히 초반에 송우석에게 돈을 빌려줄 만큼의 자금은 있었던 듯하다. 중반부에는 독재정권에 의해 변호사 자격 중지 상태가 돼서 사건을 맡아줄 변호사를 찾아다닌다[25]. 송우석에게 여러 충고를 했을 때 현실에 좌절하는 인물로 보이기도 했지만 극후반부에는 송우석의 제1변호사이자 변호사 99명의 대표가 된다.
이윤택 (이성민)
송우석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신문 기자. 작중에서는 '부산신보' 라는 신문사 소속으로 나온다. 아지매 국밥집에서 송우석과 싸운다. 정직한 기자들은 죄다 신문사에서 쫓겨난다고 울분을 토하면서도 본인은 생계 때문에 정부의 언론 통제/조작에 그닥 입 닫고 직장에 앉아있던 자기혐오가 그 당시 파워 속물근성 및 아무것도 모르고 술 취해서 망언하던 송우석을 보고 폭발한 듯하다. 학생 운동을 두고 송우석과 갈등을 겪은 후 법원에서 학생들의 변호인으로 온 송우석에게 "니 돈 좀 버니까 심심했는가베?", "니 정치할려 그러나?" 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송우석의 진심 어린 변호를 본 후에는 4차 공판 직전 계란 테러로 옷이 더러워진 송우석과 옷을 바꿔 입어주고 이후 우석이 증인을 확보하자 우석의 부탁대로 외국 기자들을 끌어와서 언론의 힘을 보여주게 된다. 국가 제 4부의 역할 : 입법/사법/행정 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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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주 (송영창)
부독련사건을 담당한 단독부 판사. 송우석이나 피고들의 말을 딱딱 잘라먹고 편파 판정을 하는 흔한 악당 판사의 면모를 보여주며 재판 직전에 검사와 변호사들을 모두 불러모아 대충 정리하자고 말한다[26]. 나중에 윤택이 외국 기자들을 모아준 덕분에 결국 윤중위를 증인으로 채택하지만 차동영의 계략에 의해 송우석과 증인을 퇴정시킨다. 그래도 완전히 악인은 아닌 듯 비록 3년형을 선고하긴 했어도 검사측에 2년 뒤 가석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고 한다. 사실 국보법을 들먹이며 고자세로 일관하긴 했지만 시종 검사측이 송우석에게 논리로 발린 데다가 외신까지 들이닥친 상황이라 이 정도에서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듯.[27]
강병철 (조민기)
부독련사건을 담당한 검사.[28] 차동영과 결탁하여 부독력 사건의 학생9명을 기소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차동영이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만을 증거로 유죄판결을 받아낼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송우석이 자신이 내놓은 증거를 모조리 반박하고, 피고인이 무죄임을 입증하는 여러가지 증거를 제출하여 자신을 압박하자,법정에서 나와 쓰레기통을 걷어차며 성질을 부린다 크게 당황한다. 영화 말미에 윤중위를 증인으로 내세운 송우석에 의해 완전히 코너로 몰렸으나, 차동영이 윤중위의 휴가기록을 말소하자반칙이야 반칙 다시 상황이 급변되어 윤중위를 탈영병으로 만들어,그의 증언을 무효화 하는데 성공했으나,결국 다른 변호인들과 타협해 징역3년을 구형하는 대신 2년후 가석방으로 풀어주기로 하는 양형거래를 한다. (송우석의 변론이 아예 쓸모가 없었던건 아니었던 셈이다.)
장수경 (이항나)
송우석의 아내.
대한민국 육군 군의관으로 계급은 중위. 소속 부대는 가상인 듯하다.[29] 차동영 경감의 밑에 배치받고 고문실에서는 '윤과장' 으로 불리며 고문취조를 당하는 학생들의 진료를 맡게 된다. 진심으로 괴로워했는지 심하게 구타 당한 진우를 응급치료할 때 '기절한 척하고 있어' 라고 말하고 링거 맞고 있을 동안은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도 한다. 결국 마지막 공판 당시 휴가를 나와서 짜장면 배달부를 매개로 송우석과 접촉, 증인으로 나서서 증거 조작 및 고문사실을 폭로하지만 차동영의 계략에 의해 탈영병으로 전락하여 육군 헌병들에게 끌려가고, 그의 증언 역시 삭제된다.[30] 1987년의 추모식 때 잠깐 모습이 비춰졌다. 참고로 윤성두 중위라는 인물과 그 역할은 실제 부림사건에는 등장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과 설정이다. 아마도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하다.
해동건설의 부회장. 회장의 아들이기도 하다. 회사의 증여세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송우석을 찾아갔다 그에게 정식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한다. 하지만 후에 송우석이 부독련사건의 변호인이 되어서 정부의 조작에 훼방을 놓자 송우석을 짜르라는 압박이 들어오자 송우석과 독대를 한다. 국세청에 줄 뇌물 액수와 변호사 수임료가 비슷함에도 굳이 변호사를 고용하려는 이유로 송우석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고 발언한다. 설정만 보면 그야말로 드라마 등에 나오는 악덕 재벌 2세 같아보이지만 송우석과의 독대에서 밝힌 바로는 미국 유학 시절 겪어봤던 미국식 민주주의를 진정으로 부러워하고 그게 한국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차지한 정치인들은 말을 들어처먹을 리 만무하고 그렇기에 힘으로서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국민 소득이 지금의 3배 이상 올라야 한다면서 지금은 물러나라고 송우석을 설득하지만 끝내 송우석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돈과 권력밖에 모르는 졸부와는 확실히 다르지만 지나치게 현실적인 입장인 사람이다. 부림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의(1981~82년경) 우리나라 1인당 GDP는 2천달러 대였다. 그게 3배가 된 때는 87~89년대 3저 호황기다. 그런데 80년대 후반과 90년대 IMF가 일어나기 전까지의 빈부격차는 지금과 비교해봐도 전례 없는 수준으로 감소하는 추세였다.
부독련사건의 변호인 중 한 명. 한때는 전위대에 몸담았던 육사 17기 허삼수 준장 공안 검사 출신으로 법조계의 현실을 잘 알아서 '국보법 사건은 어차피 유죄로 끝날 테니 형량이나 줄이면 다행이다' 란 소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송우석과 사사건건 충돌하는 편. 하지만 송우석의 활동과 끝내 진실을 밝혀내는 걸 보고는 송우석이 옳았고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한다. 이후 변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후 송우석의 99명 변호인에도 제2변호사로 참석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모티브가 된 당시의 실제 인물들에 관해 정리한 글.

5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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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석은 사건을 조작한 진범인 차동영까지 증인으로 불러내 심문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친구이자 기자인 이윤택의 진실한 기사에도 불구하고 언론으로부터 '법정에서 난동을 부린 변호인' 으로 몰리며[31][32] 다른 변호사들로부터 '빨갱이 변호사 물러나라' 라는 비난과 계란 세례를 받게 된다. 게다가 공안의 감시까지 붙은 상황.

이에 송우석은 짜장면 배달부와 옷을 바꿔 입고 사무실을 탈출하게 되며 고문실을 직접 목격했던 윤중위를 성당에서 만나 증인이 되어달라 설득한다. 짜장면 배달부가 우석이 시키지도 않은 짜장면을 메모와 함께 사무실로 갖다주라고 했다는 걸 보면 정황상 휴가를 나온 윤중위가 송우석에게 짜장면 주문을 매개로 접촉한 것[33]. 또한 선배 변호사인 김상필과 이윤택에게 부탁하여 외국 기자들을 모아달라고 한다. 이후 송우석은 마지막 공판일 아침에 판사를 찾아가 윤 중위를 증인으로 신청하며 '증인 신청 기각하면 기자들 불러놓고 양심 선언으로 기자회견 열 거구요. 거기 외신들도 온다고 하던데... 아 그리고 저는 옆에서 증인 신청을 기각했다는 게 이 재판이 완전히 조작된 것이라고 말할 겁니다' 식으로 엄포를 놓아서 증인 신청을 받아낸다.

마지막 공판. 외국 기자들도 와서 함부로 재판을 끝낼 수 없는 상황에 윤중위가 증인으로 등장해 모든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송우석의 열변이 이어지면서 모두들 승소할 거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차동영이 나타나 검사에게 뭔가를 건네주고 검사는 윤중위에게 군인인데 여기 어떻게 나왔냐고 물으면서 윤중위는 사실 무단 군무이탈 그러니까 탈영병이라면서 이 증언은 그냥 탈영병이 자신의 죄를 없애기 위한 거짓말이라면서 증언이 무효라고 말한다. 윤중위는 자신이 정식으로 휴가를 신청해서 나왔다고 항의했지만 이미 차동영의 술수로 헌병들이 법원까지 온 뒤였고 판사는 증언 삭제+변호사 측의 증인 보호 요청 거부+이 법정은 일단 윤중위 군사재판에 쓴 뒤 2시간 뒤에 다시 시작 콤보로 다 된 판을 뒤엎는다. 송우석은 재판장석까지 달려가 판사의 팔을 잡고 법봉을 못 치게 하지만[34] 결국 경찰과 군인들이 들어와 송우석과 윤중위 둘 다 끌려나간다. 송우석은 최순애의 국밥집에 찾아가 미안하다고 하지만 최순애는 변호사님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냐며 괜찮다고 하며 박동호의 안내를 받아 들어온 김상필 일행이 2년 후에 석방하기로 했다[35]고 전해준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송우석은 그 소식을 들은 뒤에야 비로소 손을 움직여 묵묵히 국밥을 먹는다.

시간이 흘러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자 송우석과 김상필 등은 시민들과 함께 추모행진을 벌이게 되고 결국 시민들을 선동한 혐의로 구속된다.[36] 이후 재판을 받게 되는데 송우석의 제1변호사를 자청한 김상필이 "변호인 인원이 많은 관계로 방청석에 앉게 되었으니 참석 변호인단을 호명해 달라" 라고 말하며 명단을 판사(송영창이 아닌 다른 판사)에게 제출한다. 판사는 "이게 다...?" 라며 놀라더니 이름을 쭉 읽어나가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서 변호사란 직함을 생략하고 이름만 불러야 될 상황이 된다.[37] 판사의 호명에 따라 각 변호사가 일어나서 대답하는 동안[38] 아내는 송우석을 바라보고 송우석 역시 뒤를 슬쩍 돌아보다가 판사석(과 관객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다 웃으면서 화면이 어두워진다. 그리고 '이 사건을 위해 부산의 변호사 142명 중 99명이 출석했다' 송우석 본인까지 치면, 단 42명의 변호사만이 남아있던 거다[39] 란 자막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참고로 99명 출석은 실화다. 출처.

6 흥행

왓챠
사용자 평균 별점 4.2 / 5.0
한국 박스오피스 1위 영화
추가바람
(2014년 1주차)
변호인
(2014년 2주차)
겨울왕국
(2014년 3주차)


12월 19일 하루 개봉으로 23만명을 동원하여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는 물론 한국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나 《7번방의 선물》 등의 동일기간 기록도 뛰어넘는 기록을 세웠다. # 12월 25일, 개봉 7일만에 300만 관객을 넘어섰다. 화려한 특수효과가 쓰인 것도 아니고 비교적 가까운 시대를 다루고 있는 사극이라서 제작비가 75억원에 불과(...)하기[40] 때문에 이미 12월 25일까지의 흥행으로 손익분기를 넘었다고 한다.

12월 22일, 개봉 5일만에 관객 수 175만을 돌파하면서 송강호는 《설국열차》, 《관상》이 각각 900만을 모은 것과 합쳐서 한 해 동안 2천만의 관객을 모은 전인미답의 흥행 기록을 달성했다.[41] 조금 더 나아가 보자면 《설국열차》가 7월 31일, 《관상》이 9월 11일 개봉이므로 기간으로 따지면 1년도 아니고 단 6개월 만에 3천만 관객을 동원한 셈이 된다.

12월 23일에 200만 관객, 12월 25일에 300만 관객, 12월 28일에 400만 관객, 12월 30일에 500만 관객, 2014년 1월 1일에 600만 관객, 1월 4일에 700만 관객, 1월 6일에 800만 관객, 그리고 1월 12일 개봉 25일만에 900만 관객을 넘어서면서 2013년 송강호가 주연으로 나온 3개의 영화가 모두 900만을 돌파했다. 이는 《7번방의 선물》, 《광해, 왕이 된 남자》, 《아바타》보다 빠른 속도이다. 1월 13일, 937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앞서 송강호 주연의 작품의 기록을 깨뜨리고 여기에 송강호 주연 최다관객 영화 2위에 등극했다. 최종보스화 되는 과정?

마침내 1월 18일, 아바타보다 일주일 빠르게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한국 영화로선 아홉 번째, 외화까지 포함하면 열 번째 천만 클럽 달성. 양 감독으로서는 데뷔작이 천만을 때렸으니 느낌이 남다르지 않았을까

영화의 흥행으로 송강호는 한 해에 약 3천만 관객을 모은 최초의 기록과 더불어 배급사인 N.E.W는 2013년 한해에만 투자와 배급, 제작에 나선 《7번방의 선물》(1281만), 《감시자들》(550만), 《몽타주》(209만), 《신세계》(468만), 《숨바꼭질》(560만)과 이 영화 흥행(2013년에 거둔 것만 합친 568만까지)을 합쳐서 한국 영화 6편만으로 무려 3500만 관객이 넘는 대박을 벌어들여 다른 경쟁사인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롯데 엔터테인먼트를 제쳤다. 또한 이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기면서 N.E.W에서 배급한 2013년 개봉 한국 영화 6편으로만 4000만 관객 기록까지 세우게 되었다.

2월 1일에는 1100만 관객을 넘어섰고 2일에는 1111만 관객을 넘기면서 《실미도》를 제치고 역대 영화 흥행 9위(한국영화 8위)에 올랐다. 3월 들어 IPTV로 유료 상영을 시작하면서 최종적으로 1136만 4천여 명을 기록했다.

미주 지역에도 2월 7일 개봉했다. 출처. 다만 현지인에게 크게 통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흑역사디워》를 제외하면 미주 지역에서 개봉되는 대부분의 한국 영화는 리미티드 방식으로 배급되게 된다. 사실 비단 한국 영화 뿐만 아니라 미국에선 어지간한 해외 영화는 리미티드 개봉이다. 심지어 영국 영화나 옆나라 캐나다 영화조차도 어지간한 대작이 아니라면 리미티드로 걸리기 일쑤.

일본에선 송강호임시완이 출연했음에도 2년 넘게 개봉을 하지 않았으나...[42] 2016년 7월에 선행공개, 11월 12일에 개봉이 예정되어 있다. 일본 예고편에서는 엔자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 표현은 일본 사법계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건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엔자이 사례를 보면 한국의 부림사건 같은 공안 조작 사건 또한 있기 때문에, 이 영화의 소개로 엔자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 예고 자막을 보면 송우석이 대한민국 헌법 조문을 외치는 장면에서는 "한국의 헌법"이라는 부연설명 없이 직역한 것으로 보인다.

7 미디어 믹스

3월 12일에는 OST가 발매되었다.

2014년 4월 18일 소설판이 발매되었다. 전자책으로도 구입 가능하며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몇몇 장면이 나오며 몇몇은 영화와는 살짝 다르게 나온다.가장 압권인 부분은 주인공 송우석의 장인이 빨갱이였다며 보수신문이 폭로하는 장면인데, 실제 영화로도 찍었던 장면이었지만 정치적 논란을 우려한 제작자에 의해 삭제된다. 삭제된 장면들은 변호인 블루레이판에서 확인가능하다.

7.1 홈 미디어

2014년 2월 26일 다운로드 서비스와 VOD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2014년 7월 30일 초회 한정판 DVD가 발매 되었으며 2014년 8월 20일 일반판 DVD가 발매 되었다.

2014년 9월 24일 한정판 블루레이와 일반판 블루레이가 동시 출시되었다. 한정판 블루레이는 출시 이전부터 예약을 받았으며 출시 이후부터 유통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DVD 판과는 달리 삭제 장면 등 없던 스페셜 피처가 추가된 것이 특징.

7.2 이모저모

  •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은 부산학림사건이라 불리는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하였다. 1981년 발생한 공안 사건인데 사회과학 독서모임 회원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하여 고문한 뒤 기소한 사건이다. 당시의 공안 책임자는 뒤에 국회의원 3선을 지낸 최병국[43]이었고 무료 변론을 맡았던 측이 노무현김광일, 이흥록, 장두경, 박재봉, 정차두[44]였다.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후엔 정치적으로는 용공사건이란 얘기가 나왔으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남아있다가 2009년에서야 무죄가 선고됐다. 다만 국보법에 대해서는 법원이 파기하지 않아 판단하지 못했고 집시법과 계엄법 등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관련 기사. 모티브가 된 부림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대해서는 다음 항목을 참고하기 바란다. 관련 항목. 2014년 2월 12일, 부산지법은 부림사건의 재심에서 국보법 위반을 포함한 모든 혐의에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 2014년 9월 25일 대법원에서 부림사건 관련자들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로 최종판결하였다. 꼭 이슈화 되어야 판결이 나지
  • 당시 공안 검사였던 고영주는 부림사건이 조작이라는 것을 부인하면서 영화의 내용 중 일부가 과장이거나 거짓이라고 말했다.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 이유는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고 국가를 부정하려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기사 링크. 여기에 대한 반론 기사 링크. 이후 방송문화진흥회(즉 MBC)의 이사장을 역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국정감사에서 노무현과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라 하는등 극우적 발언으로 빈축을 사고있다.
  •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1987년 '대우조선 이석규 사망 사건' 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전국적으로 노동운동이 시작된 시기였다. 그러던 중 8월 거제군에서 대우조선소 노동자 이석규가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노무현 변호사는 진상조사 요청을 받고 거제로 파견되었다. 노동자와 유족들을 도와 사태 수습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온 노 변호사는 '장례식 방해' 와 '3자개입' 혐의로 구속되고 부산구치소에 수감되어 23일간의 옥살이를 하게 되는데 부산변호사회는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고 공동변호인단을 꾸린다. 그 후 변호인단은 노 변호사에 대한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하게 되는데 당시 노 변호사의 변호인으로 참여한 변호사의 수는 무려 99명에 달했고 그 중 부산 지역 변호사만 91명이었다. 이는 당시로는 사상 최대의 변호인단 규모였다. 영화에서는 6월 항쟁을 즈음하여 열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추모식에서 체포된 것으로 묘사된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마지막 법정의 모습엔 수형번호 33번이 찍힌 죄수복을 입고 피고인 자리에 선 송우석이 그려지는데 이 역시 실제 법정에 섰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 그대로이다.
  • 변호인의 모티브가 된 부림사건보다 시기상으로 앞서 일어났던 대표적 용공조작 사건이었던 학림 사건이 재심 결과 무죄로 결론 나면서 판사를 맡았던 사람들이 2012년에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다들 알 만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2심의 배석 판사를 맡았었기 때문에 2012년 대법원 재심판결 이후 민주당에서 사과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
  • 아우성으로 유명한 구성애씨의 남편이 부림사건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구성애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부부가 함께 펑펑 울면서 관람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남편이 여기도 저기도 맞았겠지 하는 마음에 내내 울면서 온 몸 곳곳에 뽀뽀를 해 주었다고...[45]
  • 배우 송강호와 배역의 모티브가 된 노무현 대통령은 경남 김해시 출신이라 고향이 같다. 때문에 송강호는 《밀양》 이후 간만에 경상도 사투리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 속 모자(母子)로 등장하는 김영애와 임시완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부산 출신이다. 학교도 둘 다 부산에서 나왔다. 김영애는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임시완은 부산대학교 기계공학과 중퇴.
  • 시사회 후 박찬욱 감독이 울다가 부은 얼굴로 영화를 추천하는 인터뷰를 했다. 영상 보기. 영상에 김지운, 봉준호 감독의 추천 인터뷰도 포함되어 있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 제작자는 아래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라고 뜨는 엔딩 크레딧 끝부분에서는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감독은 물론이고 이창동 감독과 배우 김옥빈의 이름도 볼 수 있다.
  • 개봉 전 상황으로 봐선 영화적 완성도와 상관 없는 이유로 영화의 가치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정식 개봉하기도 전에 누리꾼들 사이에서 진영논리가 팽배하게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런 진영논리의 싸움은 개봉 후에도 이어졌다. 다만 시사회와 개봉 후의 관객 반응과 영화 평론가의 비평에서는 진영논리를 제외하고도 대체로 호평이었다. 물론 모티브가 모티브인 만큼 감정적 서술이 자주 보이는 것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이 진영논리는 훗날 《국제시장》과 《연평해전》에서 좌우만 바뀌어 비슷하게 벌어진다.. 어찌되었든 결국엔 극과 극은 통한다는 걸 보여준 사례였다.
  • 아무래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보니 송강호가 처음에 거절했다고 알려졌는데 송강호 본인은 "그런 영화 외적인 부담감보다는 순전히 내가 그 분의 삶을 잘 묘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김영애는 정치적 외압을 우려해 출연을 망설였다고.
  • 위와 같은 이유로 투자가의 유치에도 어려움이 있었으나 송강호의 출연이 결정된 이후 투자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한편 송우석의 나이가 30대 중반으로 설정되어 몇몇 30대 배우에게 시나리오가 전달되었으나 대부분 난색을 표했고 송강호도 장고 끝에 수락을 결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시사회 당시 이에 대한 질문에 송강호는 "급전은 항상 필요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 원래 개봉일은 2013년 12월 19일이었으나 2013년 12월 18일 전야 개봉으로 변경되었다.
  • 영화가 영화인 만큼 논란이나 화제의 영화에 대해서 언급될 때마다 들끓는 이동진 평론가의 블로그 댓글란이 또 난리가 났다. # 이에 대해서 이번에는 이동진 평론가가 평소의 부드러운 문체에 비해서 날이 선 답글을 다시 올렸다. # 이동진이 영화에 대한 장점과 아쉬운 점들을 들어 정치성과 거리를 두고 평을 적었음에도 정치성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용기 없다는 뉘앙스의 댓글을 단 누리꾼들 탓. 사실 모티브가 된 인물이 인물이다보니 리뷰 중에서도 그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소견을 밝힌 리뷰가 많긴 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영화 리뷰인데 그런 점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공격하는 게 옳은 것은 결코 아니다. 몰지각한 이들이 몰려와 댓글 테러를 가하는 바람에 이례적으로 답글을 쓴 것이다.
  • 영화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인 주한 영국 대사관에서 역사학자 'E.H. 카' 에 관한 소개[46][47]와 그의 저작인 '역사란 무엇인가' 에 관한 추천을 담은 문서를 발급 받은 일, 변론에서 '서울대 추천 도서가 이적 표현물이면 서울대도 빨갱이인가' 라고 말한 것이나 조지 포먼무하마드 알리권투 경기 비유[48]를 통해 검사의 주장을 논박한 일 등은 당시 부산 학림사건 공판에서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었다가 옥살이 한 당시 대학생(경희대학교)이었던 50대 남성이 32년만에 무죄를 받았다. 2014년 11월 25일, 서울북부지법 형사5 단독 변민선 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던 김모씨에대한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내렸다. 당시 1982년에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던 김모씨(53)는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러시아 혁명사', '사회사상사' 등을 읽었다는 이유로 고문당하였으며 "북한에 동조하는 이적활동을 했다"고 강압에 의한 자백을 하였다. 판사는 판결과 동시에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사법부가 가혹행위를 눈감고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피고인에게 사죄하였다.#
  • 영화에 나오는 요트 에피소드 또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당시 노 변호사는 영화에 나온 것 처럼 1988 서울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요트를 타면서 부산요트클럽 회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냥 나가볼까 하는 레벨이 아닌 진짜 올림픽을 목표로(!) 일본까지 가서 강습을 받기도 했었다.[49] 공교롭게도 이 요트가 훗날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노 변호사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1991년, 조선일보의 '노무현 의원은 호화요트를 소유한 상당한 재산가' 라는 내용의 보도 때문이었다. 노 의원은 이에 대해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조선일보는 자매지인 주간조선을 통해 계속해서 악성 루머를 인용한 기사를 썼다. 이에 노 의원은 조선일보를 상대로 손해배상 및 사죄광고 청구에 관한 민사소송을 걸었고 1심에서 '명예훼손이 명백하다' 며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노 변호사가 소유했던 요트는 80년대 당시 가격으로 120만 원 정도 하던 소형 요트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현대 포니2 자동차의 출시 당시 가격이 약 350만 원 하던 시기였다. 1심 판결 이후 조선일보 사장과 해당 보도를 한 담당 기자가 사과를 했고 소송은 취하되었지만 이후 조선일보의 공식 정정보도나 사과보도는 없었다. 이것을 반영한 듯 영화 속에서도 송우석을 찾아온 김상필이 요트를 보면서 '태평양을 횡단할 수 있는 호화요트 장만했다고 소문이 났다' 는 식으로 얘기한다.
  • 노 변호사가 사법시험 합격 전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 막노동을 하던 도중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도망갔던 일과 나중에 성공한 후 식당에 돈을 돌려주러 간 일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물론 메뉴가 돼지국밥이었다거나 그 집 아들이 코렁탕 먹으러 끌려가거나 한 일은 없었지만 영화에 도입된 설정은 엄연히 실화에서 차용한 에피소드이다. 노무현 회고록 등을 보면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실려있다.
  • 양우석 감독은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해서도 균형을 맞추었다. 학생들이 고문 당하고 마지막으로 말을 맞추는 장면에서 임진우 앞에 친구가 "우리가 서울에서 김씨를 만나고 내려오는 길에 벚꽃을 보면서 예쁘다고 했잖아" 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으며 임진우는 멍한 표정을 짓는데 거짓말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 기가 차서일 수도 있고 어떻게 저렇게 사실처럼 술술 말할 수 있는가라면서 놀라서일 수도 있다. '서울 사는 김씨' 는 당시 주사파의 지도자격이었던 김현장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김씨를 만나고 내려오는 길' 이라는 그들이 지어낸 거짓말에 '벚꽃을 보고 예쁘다고 했다' 는 학생들 사이의 진실이 교묘하게 섞이면서 거짓을 지어내고 그것을 실제와 연결시키는 것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마음이 무너지는 장면을 연출한 의도일 수도 있다.
  • 마지막에 변호사 99명이 재판에 참석한 놀라운 장면도 실화이다. 이 마지막 장면은 김광일 변호사의 평전 '참 멋진 놈 하나 만났디라'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에서처럼 김광일 변호사가 재판부에 출석한 변호인을 일일이 호명해줄 것을 요청하고, 그 요청에 따라 99명의 변호인이 한명 한명 일어나 응답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그 순간 김 변호사가 변호인석에서 벌떡 일어나서 이렇게 요구했다.

"출석한 변호인의 수가 많고 방청석에도 다수가 앉아 있어 변호인의 출석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우니 재판장께서 직접 변호인을 호명하여 출석 여부를 확인하여 주십시오."
결국 재판장은 장시간에 걸쳐 변호인을 일일히 호명하여 출석 여부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많은 변호사가 선임되었을 뿐 아니라 직접 법정에 출석하여 노무현 변호사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판부가 직접 확인하도록 함으로써 재판의 분위기를 유리하게 이끌고 재판부에도 압박을 가하는 일종의 시위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원로 변호사들까지 포함한 그 많은 변호사들이 방청석 여기저기에서 "나도 출석했소" 하고 한 명 한 명 일어날 때의 감동과 그런 상황을 연출해낸 김 변호사의 순간적인 판단력은 그 후 오랫동안 변호사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 '참 멋진 놈 하나 만났디라' 143~144 페이지

  • 본 영화의 표를 대량구매했다가 막판에 대거 환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것도 관객수가 많은 주말을 노려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주말 객점율이 평일 객점률보다 낮은 말도 안되는 상황이 일어났다고. # 이것이 사실이라면 평점 테러와 엮여서 고의적인 영업방해일 가능성이 높았겠지만 배급사 측은 전 극장을 확인했는데도 확인된 바가 없다며 이를 부인했다. #
  • 1000만 관객을 넘자 공짜표가 남발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몇몇 기업에서는 자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할 목적으로 배급사와의 협의를 통해 《괴물》 등의 한국 영화나 외국 영화들을 보여줌으로써 자사를 홍보하는 방식을 홍보수단의 일종으로써 행하고 있다.[50] 따라서 이는 각 기업들의 홍보 수단으로 해당 영화를 상영했을 뿐이며 배급사와 협의를 통하여 관람객 수를 통보하여 업체에서 돈을 주기 때문에 공짜표를 뿌린다는 주장은 엉터리 주장이다. 변호인의 배급사인 NEW는 이러한 공짜표에 대해 배급사와 관계 없는 행위라는 발표를 하였다.
  • 문재인은 198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여 그 이후에 노무현과 합류하였으므로 부림사건과 연관이 없다. 다만 마지막에 99인의 변호인이 호명되는 장면에서 문재인과 닮은 엑스트라가 등장한다. 실제로 99인의 변호인 중 문재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반영한 듯하다. 더하자면 그래도 평생의 파트너인 문재인을 아예 없애기는 아쉬웠던지 영화 중 사무실 비서의 성이 문씨이다. 문재인이 노무현의 비서실장이었음을 감안한 설정인 듯하다. 그리고 99인 변호사 중 호명된 박상순의 모티브는 박원순이라고 한다. #
  • 부산광역시가 배경이기 때문에 당시를 보낸 현 4, 50대 이상의 부산 시민들에게는 익숙한 장소가 많이 나온다. 사실 부산의 모습은 그 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어서, 젊은 층에게도 익숙한 장소들이다.
  • 부산이 배경이긴하지만 상당부분이 대전에서 촬영되었다. 송변호사가 계란을 맞는 법원 외부장면과 법원 안에서 기자친구와 만나는 장면은 대전 중구에 있는 옛 충남도청사에서 촬영되었다. 그리고 김변호사집 앞에서를 사건을 맡겠다고 하는 장면등은 대전 동구 정동일대에서 촬영되었다. 이들 지역은 대전에선 구도심이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개발에서 소외되어 옛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다. [1]
  • 돈 들일 필요가 없는 영화이긴 했지만 송우석이 변호사일 때의 재판정과 송우석이 피고인인 재판정을 동일한 장소에서 촬영한 것에 대해선 지나치게 무성의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하다못해 내부 인테리어만이라도 약간 변화를 주는 것이 좋았을 텐데 마이크 위치까지 동일하다.
  • 배경이 1980년대이기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전두환이 묘사된다. 땡전뉴스라든가, 관공서 사무실에 부착된 사진이라든가, 송 변호사가 "불법적인 일은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라고 따지자 함께 변호를 하던 박병호 변호사가 "법대로 하자면 대통령부터 반란 수괴죄로 잡혀가야 된다" 라고 답하는 내용이 나오는 등 여러 부분에서 언급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동영이 경감으로 임명되는 장면에서 직접적으로 전두환의 이름이 언급된다. 그리고 차동영이 경감으로 임명되어 보안사와 술을 먹을 때 "부산에서 광주 같은 일이 일어나면 안된다" 는 보안사 대령의 언급도 나온다.
  • 영화의 소재 중 하나로 돼지국밥이 등장하는데 정작 송우석 역을 맡은 송강호체질상 고기가 신체에 맞질 않는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생선이나 채소류를 즐긴다고 한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은 돼지국밥을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삼계탕을 좋아했다고 한다. 영화 내에서도 송우석이 돼지국밥을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돼지국밥 자체를 먹는 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송강호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부분 중 하나.[51]
  • 흥행 대진운이 매우 좋은 편인데 변호인에 1주 앞서 개봉해 흥행을 위협할 수 있던 대작이던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가 부율 문제로 서울 소재의 CGV와 롯데시네마에서 상영하지 않게 되었고 《변호인》보다 1주일 후에 개봉했던 《용의자》는 평타 정도의 작품이었다. 흥행 페이스가 결정되는 초반에 이렇다 할 대작을 만나지 않은 것은 정말로 운이 좋은 일이었다. 그 이후 작품은 2014년 1월 16일에 개봉하는 《겨울왕국》 정도였다. 결국 《겨울왕국》에게 1위를 내주었지만 그럼에도 좋은 성적을 꾸준히 이어나갔다.
  • 천만 관객 돌파를 기념하여 본편 공개 4분 영상이 공개되었다. 출연 배우들의 감사인사 뒤에 본편을 볼 수 있다.
  • 미주지역에서는 와이드 릴리스가 아니라 한인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한 리미티드 개봉이지만 미국의 양대 권위지라고 할 수 있는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 모두 이례적으로 리뷰기사를 게재하였다. 뉴욕 타임즈평, 워싱턴 포스트평.
  • 이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기자 현대사 실존 정치인을 다룬 영화들이 여럿 기획되고 있으나 그 중에선 반대 정치이념적인 망상으로 홍보되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육영수 여사를 그려낼 퍼스트 레이디-그녀에게 # 같은 경우엔 박근혜 대통령 취임과 같이 투자설명회가 있었으나 각본이나 여러 모로 비아냥을 듣으며 투자가 뚝 끊겼다. 그러다가 이 영화 대박으로 해당업체에서 다시 영화를 기획하고 있으나 역시나 평이 무척 안 좋아서 별다른 제작투자 소식이 없다. 더불어 서세원은 '노무현 대통령 영화도 대박을 거둬들였으니 이제 내가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직접 감독하여 전국 3000만 관객이 당연히 와야 한다' 느니, '하나님 뜻으로 만들어야 한다' 느니 온갖 종교적, 정치, 이념 편향적 헛소리를 지껄여 비웃음을 들었고 보수 언론들에게도 좋은 반응이 없다. 서세원 항목 참고할 것.
  • 중국에서는 개봉되지 않았지만 인터넷으로 본 네티즌들이 민주화를 억압하는 자국의 상황과 대비하여 영화를 극찬한 모양이다. 장쯔이도 웨이보에서 이 영화를 극찬했다고 한다. #
  • 2014년 홍콩 우산 혁명에 참여한 인원들은 한국이 거친 민주화를 위한 희생을 배웠다면서 이 영화를 예로 들었다. #
  • 노무현 변호사가 부림사건에서 거의 활약을 하지 못하였고 주변호인단도 아니였다는 주장이 있으나, 부림사건의 피해자들 전원이 노무현 변호사가 가장 열성적으로 변론했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심지어 당시 판사였던 서석구 변호사도 본인의 블로그에 쓴 글에서 노무현 변호사가 재판 중 부림사건 피해자들에게 고문이 있었음을 폭로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고,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변호사가 부림사건 당시 피해자들에게 고문이 있었음을 폭로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고 증언하였다. 앞선 주장은 부림사건 당시 검사로서 사건을 맡았던 고영주 변호사의 주장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영주 변호사는 명백한 고문의 증거가 있음에도 부림사건 피해자들에게 고문이 가해진 바가 없었다고 주장했다가 대법원이 부림사건의 수사과정에서 고문이 있었음이 인정한 최종판결로 인해 반박된 사례가 있기 때문에 그의 주장에는 근거가 희박하다.
  • 당시 차동영 경감의 원형이자 담당검사였던 고영주 변호사는 군사정부 이후에도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고 박근혜 정부들어서도 방송문화 진흥위원회 위원장을 맡는등, 중용되고 있으며, 2015년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발언하여 물의를 빚었다. 기사
  • 이 영화를 배급한 NEW는 2013년 대박을 냈음에도, 정권에 찍혀 강도높은 세무조사를 받았는 후문이 있다. 강우석 감독의 멘트 그리하여 2014년에는 거의 활동을 못하다가, 2015년이 되어서야 군홍보성 영화인 《연평해전》을 배급하여 어느정도 숨통이 트였다고..
  • 영화내에서 송우석(배우 송강호 분)이 얘기하는 법률 중에는 "헌법 제26조 4항 무죄 추정원칙에 따라..." 라고 얘기한다. 현행 헌법에서는 제27조 4항이 맞으나, 배경이 되는 1981년의 헌법은 당연히 1987년의 9차 개헌이 있기 전의 제5공화국 헌법이며, 이 때 무죄추정의 원칙을 규정한 조항은 제26조 4항이었다. 오히려 제27조 4항이라고 했으면 빼도박도 못하고 틀린 것이다.

8 참조

8.1 관련 문서

8.2 외부 자료

9 인터뷰

  1. SBS드라마 리멤버 - 아들의 전쟁 극본을 담당.
  2. 고졸출신, 대전에서 판사를 했으며, 아들이름이 건호. 이것만 봐도 대충은 짐작이 간다.
  3. 이름은 보다시피 배우와 감독의 이름에서 각각 따온 것이다(강호+양우석).
  4. 극중에서는 부독련사건으로 언급됨
  5. 실제로 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고졸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대전지법에서 판사로 6개월간 재직 후 귀향하여 부동산 등기 전문 변호사와 세무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노무현 변호사가 상고를 나온 것은 세무업무에 꽤 도움이 되었다고 자서전에 쓴 바 있다. 기초적인 회계학, 즉 부기의 지식이 없다면 아무리 법조문에 정통해도 세법관련 업무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당시 변호사들 중에 이런 역량을 갖춘 사람은 드물었다. 다만 부산상고(현재의 개성고등학교)는 당시 1, 2등 아니면 써주지도 않을 정도로 지역 탑클래스 고등학교였기에 설명만큼 빽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와 함께 일했던 장원덕 씨(본 작에 나오는 박동호의 모티브가 된 인물)의 인터뷰에 의하면 상고 선후배들이 사건을 줬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는 부산지역의 세무사였고 사건을 물어다 주면서 상부상조도 했다고... 그리고 위 인터뷰에 의하면 등기를 은행에서 떼는데 당시 부산상고는 은행을 가거나 아니면 대학을 갔다. 즉 은행 가면 죄다 노무현 대통령 선후배들이라는 것. 실제로 이제는 끝물이기는 하지만 지역 은행에서는 당시 부산대학교 상과대학과 함께 양대 파벌이라고 한다.
  6. 이 때문에 동창생인 윤택과 단골집에서 대판 싸웠다. 사실 이때 송우석은 소위 SKY 출신 변호사들 때문에 숱한 고생을 하곤 했었다. 이것이 고학력 지식인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출이 되었던 것이다.
  7. 더 나아가 커피 끓여줄 여직원까지 채용했다가 사모님께 추궁을 당하게 된다.
  8. 송우석은 송우석대로 옛날에 신세를 졌던 국밥집 아지매(아줌마)에게 은혜를 갚으려고 그런 것이었다. 좋은 일이긴 하지만 매번 시달리는 박동호 입장에서는...
  9. 참고로 돼지국밥은 최대한 누린내를 없앤, 국물만 놓고 보면 순댓국과 크게 다를 게 없는 물건조차 호불호를 강하게 타는 편인데 이 당시 국밥이면 해당 지역 출신자라 해도 못 먹는 사람한테는 이만저만 고역이 아니다. 물론 지금도 원주민들이 즐겨 찾는 집은 다 그렇지만... 수백 사줬으면 그냥 수육맛으로 먹었을 텐데 하지만 박동호도 처음 식사할 때는 연신 좋다고 감탄사까지 연발하면서 먹은걸로 봐서는 박동호도 돼지국밥을 못먹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10. "오늘부로 송변 니는 니 편한 인생 니 발로 걷어 찬기라" 는 대사에 압축된다.
  11. 현실론을 펼치며 말리면서도 막상 일이 터졌을 때 도망가지 않고 옆을 지켜주는 사람 위치.
  12. 이건 명백히 송우석이 잘못한 일이었다. 영업 끝났는데도 고등학교 동창들과 국밥집에서 밥을 먹다가 TV 뉴스에 나온 학생 운동 건 때문에 이윤택과 갈등을 넘어 몸싸움까지 벌였다. 이에 국밥집을 어지럽히게 되는데 이걸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며 진우와도 언쟁을 벌이다 "너 그렇게 싸가지 없게 굴면 밖에서 호로자식 소리 듣는다" 고 말하자 마침 이걸 들은 최순애가 분노한 것. 호로를 보면 알겠지만 이 말은 남편도 일찍 잃고 혼자 진우를 부양한 순애에겐 거의 역린을 건드린 꼴이었다.
  13. 그 말이 맞긴 하다. 그리고 우석이 재판에서 패배한 건 비겁한 차동영 경감 등 부패한 이들 때문이지 우석 때문이 아니다.
  14. 일제 시절 특별고등경찰은 '특고' 라고 불렸으며 주로 사상범이나 독립운동을 수사하던 경찰 내 특수조직이었다. 이들은 공공연한 고문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일본 내에서조차 피의자를 고문으로 사망케 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사건 조작에도 능해서 조선어학회 사건과 같이 단순학술단체도 독립운동 단체로 둔갑시키기도 하였다. 정보기관이 없던 당시의 일본 제국에서 군 소속의 헌병대와 함께 사실상의 정보기관 노릇을 했다. 당연히 특별고등경찰 소속의 한국인은 친일파로 분류된다. 그리고 바로 사실상 이 특별고등경찰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기관이 바로 공안조사청.
  15. 그리고 이는 송우석이 재판정에서 발언한, 후술되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과 상반되는 입장이다.
  16. 아직 군의관 신분인 윤중위의 휴가 기록을 말소시켜서 휴가 중이던 그를 탈영병으로 만들어 연행해간다.
  17. 여담으로 제작 발표회에서 영화 속 역할 때문에 임시완의 팬클럽이 제일 두렵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시사회 무대 인사에서도 "이 손이 임시완을 때린 손입니다! 제 손을 잡으면 임시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관객들과 손을 잡았다고 한다(...) 이 밖에도 관객들에게 직접 박카스를 나눠주기도 하는 등 무대인사에서 상당히 열정적인 영업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상.
  18. 피해자들 및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 사건에서 '차동영' 이라는 캐릭터에 가장 가까운 인물은 담당 검사였던 최모씨였다고 한다. 차동영이란 인물은 이 사람과 당시 고문경찰관들을 합쳐서 창조해낸 빌런 캐릭터로 보인다. 검사역의 인물에서는 이러한 면이 제거돼 버리고 나니 재판정에서의 무능한 모습만 강조되게 되었다.
  19. 전 버전에서 현 부경대학교 공과대학의 전신인 부산공대에 다니는 학생으로 기술했는데 부림사건 당시 부산공대는 부산공전이라고 불리는 전문대였다. 부산공전을 포함한 전문대학을 그냥 대학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와서다. 그러나 부림사건에서 부산공전 학생은 한 명도 없었고 연루자는 모두 서울대 혹은 부산대생 출신이었다. 실제 모델이 된 인물도 부산대학교 재학생이었으며 영화적 맥락을 봐도 진우는 4년제 대학생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러므로 부산공대는 부산대 공대의 준말이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실제로도 임시완은 부산대 기계공학과를 다녔다. 1년 다니고 중퇴했지만 임시완이 부산대 선배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진우 역에 더욱 욕심이 났다고 밝혔으며, 치열한 오디션에 합격한 것도 부산 사투리를 잘 구사한 영향이 있었기 때문에 아주 우연은 아닐지도 모른다.
  20. 최명희의 소설 '혼불' 에서 인용한 대사다. 이 대사는 2차 공판 후 진우가 송우석에게 "다 끝났다던데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라 말할 때 송우석이 이 말을 진우에게 그대로 돌려준다.
  21. 밤중에 열렸고 수업 내용이나 참가한 여성들이 '누나한테 첫사랑 얘기좀 해봐' 라며 박진우를 놀리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운영되던 여공들 대상 야학이었던 듯하다.
  22. 실제로 임시완은 1주일 동안 고문 장면을 찍다가 얼굴의 실핏줄이 터져 한동안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다. 하지만 적나라한 고문 장면이 거북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임시완은 당시 아이돌 활동과 고문 연기를 병행했는데 덕분에 캐릭터 감정 잡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근데 이 정도? 숙소 안에서는 진우의 우울한 감정을 유지하느라 방 안에서도 잘 안 나왔다는 카더라가 있다. 참고로 임시완이 고문 연기에 쏟아부은 노력은 택시 편에서 광희의 증언이 있다. 셀카로 우는 장면 찍기, 물고문 장면 찍기 등
  23. 실존인물로 노무현에게 부림사건을 넘겨준 김광일 변호사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정계에 입문하여 노무현을 김영삼에게 추천하여 정계입문 시킨 것이 바로 김광일씨다. 3당 합당 직후에는 노무현과 함께 꼬마민주당에 남았으나 민주당이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할 당시 합류하지 않고 정주영이 만든 통일국민당으로 갔다. 이후 다시 김영삼 진영에 합류해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특히 탄핵 직후인 2004년 월간조선 인터뷰에서는 노무현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변신에 능한 야심가' 라며 엄청나게 깠다. # 2010년에 사망하였다.
  24. 실제 부림사건의 피해자 및 그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재판 준비는 김광일 변호사가 거의 80-90%는 했다고 한다. 실제 피해자나 가족을 만나거나 하는 것도 김광일 변호사가 거의 했었다고. 노무현 변호사는 김광일 변호사가 사정상 맡지 못하게 되자 부득이하게 맡은 것에 가깝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스타가 된 노무현을 깠는지도...
  25. 한편으로는 다른 변호사와의 이야기에서 '이걸로 우리까지 얽으려 할 지 모른다' 고 한다.
  26. 애초에 일반 사건이 아니라 국가보안법 사건인 데다가 사법부도 군사정권의 영향력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뻔한 짜고 치는 고스톱일 수밖에 없다. '서로 편한 게 편한 거지' 라는 사고이겠다.
  27. 하지만 영화에서와는 달리 실제 판사를 맡았던 사람은 서석구 변호사로서 부림사건에서 1심재판에서 피고인 이호철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가 진주지원으로 좌천당했다. 이 후 변호사를 개업했다. 또한 김영삼 정부 시절만 해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명언을 남기며 전두환 전 대통령을 기소유예 처분한 검찰을 비판하고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등 인권변호사로 맹활약했다. 하지만 김대중 집권 중기부터 흑화해서 현재는 5.18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반대하고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비판하는 등 우익 성향으로 전향하였다.
  28. 캐릭터 모티프는 한나라당 중진으로 활동한 최병국 전 의원으로 보인다. 재판 중 조지 포먼과 무하마드 알리에 대한 변론에 김일성 찬양이라고 이야기한 게 최병국 당시 검사라고 한다. 이 내용은 훗날 월간 '말'지에 자세하게 묘사되었다. (시사 팟캐스트 '이이제이' 노무현 특집 참조.
  29. 왼팔에 달고 있는 부대마크가 실제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30. 정황을 보면 차동영이 위에 꼬질러서 윤중위의 휴가 신청을 무효화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주먹구구식 행정체계의 헛점을 이용하여 몇 시간 만에 이미 처리된 휴가를 말소시켜 그를 근무지 이탈자로 만든다.
  31. 당연하지만 윤택이 쓴 기사는 그대로 짤렸다. 윤택이 쓴 기사를 편집장 책상에 올려두고 다음 아침에 신문을 확인하니 정작 기사는 '인민재판을 선동한 변호사' 라고 기사 제목이 붙여진 장면이 나온다. 게이트키퍼가 윤택의 기사를 통과시켰다면 그 다음날 그 신문사는 폐간되었겠지
  32. 기사 제목에 법정(法庭, 공판정을 말한다)이 아닌 법정(法定, 법에 정하여진)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점은 옥의 티.
  33. 이때 둘이 만난 장소가 성당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절대자 앞에 선 인간으로서의 윤중위의 내면의 양심 혹은 6월 항쟁 당시 민주화 인사들을 보호한 김수환 추기경과 성당의 입장 등 여러모로 생각할 여지를 준다.
  34. 고증오류. 대한민국 사법부에서는 1966년 이후로 법봉과 법모를 쓰지 않는다.
  35. 정확히는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송우석의 행동이 판사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판사가 강력히 주장해 검사와 협상하여 더 이상 항소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1년 일찍 가석방을 시켜준다고 했다.
  36. 이때 송우석은 검사에게 취조를 당하게 되는데 검사가 "그게 법조인으로서 할 행동입니까?" 라고 묻자 송우석은 "추모회라는 건 원래 조용하게 하는 건데 그것도 두렵다고 막으면 되겠습니까" 라고 말하고 "그래도 법조인인데 이런 데 나오면 되겠냐" 는 말엔 "법이 국민의 이런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해주지 않는데 이런 일에는 법조인이 당연히 앞장서야죠" 라고 말한다.
  37. 그리고 자세히 들어보면 송강호라는 이름도 호명된다. 엄청나게 많은 변호사 숫자에 검사가 질겁하는 모습은 덤.
  38. 살펴보면 극 초반에 송우석을 '고졸', '삐끼 같다' 라고 조롱하던 변호사들도 그 자리에 참석한 모습을 볼 수 있다.
  39. 그 시간에도 변호사들이 다른 사건으로 법정출석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부산 변호사 전원이 그 한 사건을 위해 법정에 출석한 것이다!
  40. 대개 총 제작비의 1/3정도가 홍보비로 쓰이기 때문에 순제작비는 50억 전후일 것이다. 실제 든 비용은 순수 제작비가 42억, 홍보비가 33억이 들었다고 한다. 80년대가 배경이기 때문에 당시를 재현한 세트, 소품 등의 제작비를 생각하면 상당히 빠듯한 예산을 쓴 영화다. 캐스팅도 송강호나 오달수를 제외하면 그렇게 유명하거나 출연료가 비싼 배우들을 안 썼기에 가능한 일. 홍보비가 비교적 많이 든 이유는 전국투어 시사회에 든 비용이 많기 때문이다.
  41. 사실 류승룡이 《7번방의 선물》과 《광해, 왕이 된 남자》를 합해 1년 2천만을 먼저 달성하긴 했는데 송강호는 이제 3천만을 앞두고 있다. 또한 류승룡보다 송강호가 더 화제가 되는 것은 《설국열차》에서도 주인공 정도를 제외하면 가장 강렬한 역할을 맡았고 나머지 두 영화는 영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탑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역량으로 흥행을 시켰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전인미답의 경지. 결국 세 영화 모두 천만관객급 영화가 되었다. 뭐야 무서워. 사실 오달수도 《도둑들》(2012년 여름), 《7번방의 선물》(2012년 겨울)로 2천만을 1년만에 돌파했고 조금 지나 2년동안 이 작품으로 3천만 클럽에 이르렀다
  42. 흥행과는 별개로 송강호야 봉준호, 박찬욱 영화를 통해 일본내에서도 고정적인 팬층을 갖고 있으며, 임시완의 경우 한류 그룹 2세대인 제국의 아이들 멤버라 기대해볼법 한데도 개봉을 하지 않았다. 사유는 불명. 훨씬 마이너한 영화였던 《카트》의 경우 엑소파워로 개봉 및 비디오 렌탈까지 다 되었다.
  43. 극중 주요인물은 모두 실제와 다른 이름이므로 직접 언급되진 않지만 간접적으로 이름이 지적된다. 송변이 수임을 만류하는 사무장에게 '당신 아들 병국이도 이런 세상에 살게 할 거냐' 고 말하는 장면. 참고로 이때 사무장의 대답은 '외국으로 유학 보낼 거니 괜찮다' 고...
  44. 이들 역시 작중에서 이름이 바뀐 채로 등장한다.
  45. 지금은 성교육 강사로 알려져 있지만 젊은 시절 구성애씨는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사회운동가였다.
  46. 실제로 카의 외교관 경력에서 소련 근무는 없다. 리가의 주 라트비아 영국 대사관에서 2등 서기관으로 근무한 적은 있지만 이 당시의 라트비아는 소련의 구성국이 아니었기 때문. 소비에트 연구의 최고 권위자라는 점에서 소련에 살았던 영국 공산주의자로 포장한 듯. 그리고 소련 붕괴 전인 당시 한국에서 라트비아라는 나라가 존재했던 걸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47. E.H.카는 영국 사람이며 영국 외교관으로서 학계와 외교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졌던 사람이다. 또한 영국은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에 파병해준 우방국이다. 전 버전에서 1942년 조지 오웰이 '카 교수는 충성의 상대를 히틀러에서 스탈린으로 바꾼 것 같다' 라고(출처 : 영문 위키피디아) 말한 것을 인용하여 카가 공산주의자였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역사적 맥락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당시 영국과 소련은 나치 독일이라는 적을 두고 같이 싸우고 있었고 영국은 행여나 스탈린이 히틀러와 단독강화를 맺을까봐 노심초사했다. 카는 영국 외교부의 러시아 전문가로서 소련측의 비위를 맞추면서 연합국측에 붙잡아두는 일을 맡아 했는데 철저한 반스탈린주의자인 조지 오웰이 카가 주도하는 친소정책을 비판한 것다. 당시 조지 오웰의 반스탈린 서적인 동물농장은 출판이 보류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치 카가 공산주의로 전향한 것처럼 써놨으니... 그리고 결정적으로 '역사가 무엇인가' 는 서슬 퍼런 유신 시절에도 금서로 지적된 적도 한 번도 없다.
  48. '무하마드 알리하고 조지 포먼하고 권투 시합을 하는데 김일성이 알리 편을 들었을 때 피고인도 알리 편을 들었다면 그것도 이적행위냐?' 고 따져 묻자 당시 최병국 검사가 '북괴를 찬양하는 발언을 자제해 주십시오' 라고 말한 것.
  49. 참고가 될 만한 동영상. 0분 44초부터 지한파 끝판왕은 덤
  50. 한 예로 모 상조업체에서 《괴물》 무료관람권을 뿌린 사례를 담은 기사에 보면 설명회 및 가입 신청서까지 걷은 다음에야 영화를 상영함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게 어디가 공짜냐? 이런 거 안 본다" 고 하던 이도 있을 정도이다. 이걸로 괴물을 극장에서 공짜로 본 이들도 '2시간 동안 저런 상품광고를 참고 듣고 봐야 하는데 이게 대체 어디가 공짜야?' 라며 반론했을 지경.
  51. 그런데 자세히 보면 딱 한번 먹는 장면이 나온다
  52. 당초 미국 개봉만 언급된 상황에서 개봉 극장 목록이 올라왔는데 이때 캐나다 극장도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