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일반적인 프로토스가 5전제에서 마재윤을 이길 확률, 2.69%. 불가능이 아니다, 명백한 가능성."
"프로토스가 저그에게 왜 지는지 모르겠어요. 3:0 안 당하시게 열심히 연습하셨으면 좋겠어요."
곰TV MSL 시즌1 결승에서 당시엔 듣보 토스에 불과했던 김택용이 이른바 본좌로 추앙받던 마재윤을 3:0으로 떡실신 시킴으로서 많은 스타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던 사건. 스타계의 세네갈 쇼크로 회자된다.[1]. 그리고 김택용에게는 인생경기였던 결승전이었으며 이후 김택용은 일약 e스포츠의 대스타가 되었다.
2007년 3월 3일은 스타판을 뒤흔든 일대 대사건이 벌어진 날이자 암울하기만 했던 프로토스의 역사에서 전환점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때의 충격은 "스타크래프트가 나온 이래 이 이상의 충격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훗날 스타판에서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면서 이 말은 무색하게 되었지만 경기 외적 요소와 관련되지 않고 오직 경기 내용만으로서의 '순수한', 그리고 승부조작 같은 것과는 무관한 '깨끗한' 의미의 대사건으로서는 3.3 혁명의 임팩트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2] [3]
오랜 시간이 지나 스타크래프트 1이 프로 리그에서 사라진 지금 시점에서 보면 이 사건은 스타판의 정점기라고 할 수 있다. 시청률상으로 봤을 때 스타판은 2004년경부터 급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2007년에 정점을 맞았다. 이후 2008년부터는 하락세였고 2010년경에는 승부조작 여파를 제하더라도 스타판이 많이 쇠미해진 상태였다. 시청률 그래프 같은 것을 보면 승부조작은 이미 하락세인 상황에서의 추가적인 결정타였다는 분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온게임넷 시청률 자료와 링크한 글의 댓글 자료를 참고 바람.
스타판에 3.3혁명이 있다면 바둑판에는 이창호 九단의 상하이 대첩(2005년 농심신라면배)이 있다. 상하이 대첩이 2.69% 드립의 원조.
2 배경
곰TV MSL 시즌1 4강전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당시 4강 멤버는 강민, 김택용, 마재윤, 진영수 이렇게 구성되어 있었는데 마재윤은 본좌 소리를 듣고 있던 저그의 정점, 아니 당대 e스포츠의 정점이었다. 또 강민은 원조 스타 플레이어이자 프로토스의 마지막 희망이었다.진영수 역시 양대 리그에서 활약하며 한창 주목받고 있던 유망주였다. 그러나 김택용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16강전에서 이병민에게 관심 흡수 공격을 받고 탈락해 버린 뒤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던 듣보 프로토스였다. 그나마 준수한 외모와 소속 팀의 프로리그 우승 덕에 여성팬들이 조금 있긴 했지만 그것 뿐이었다.
MSL 4강의 첫번째 대결은 강민과 김택용의 프프전이었다. 당시 강민의 토스전은 최근 10경기 9승 1패[4]를 기록하는 등 물이 올라있던 시점이었고 김택용의 토스전 전적은 2승 5패로 초라했다. 더구나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김택용은 자신의 MSL 데뷔전에서 강민을 상대로 진 적이 있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강민과 마재윤이 프링글스 MSL 시즌1 때처럼 다시 결승에서 성전을 벌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성전 항목에도 설명되어있듯 실제 강민과 마재윤의 대결은 전적상 마재윤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그럼에도 그 수많은 토스빠들이 성전을 밀었던 것은 그나마 상대할 수 있는 토스는 강민 뿐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떡밥으로 적절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김택용은 강민을 3:0이란 압도적인 스코어, 압도적인 경기 내용으로 제압하며 결승에 진출한다. 설상가상으로 마재윤이 혈전 끝에 진스막을 3:2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하자 모두가 "이제 토스는 끝장이다!" 라고 외치고 다녔고 모두가 마재윤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김택용이 아무리 그 강민을 찍어 눌렀다곤 하나 그것은 토스전일 뿐이었다. 당시 김택용의 저그전이 준수했다고는 하지만 공식전 승률은 간신히 6할을 넘는 수준이었고[5] 반면 마재윤의 당시 토스전은 21승 3패로 8할 7푼 5리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나마 저 3패 중 2패는 강민과의 5전제 중 1세트씩을 프링글스 MSL 시즌 1 결승전과 프링글스 MSL 시즌 2 4강전에서 내준 것에 불과했다. 두 번 모두 결과는 3:1로 마재윤의 최종 승리였다. 나머지 1패는 박정석에게 프로 리그에서 당한 경기였는데 박정석의 날빌에 당한 경기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시즌 내내 마재윤이 제대로 토스에게 패한 적은 없었다는 소리다.
당시의 반응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김택용이 3:0으로 지면 당연한 결과, 3:1로 지면 강민과 동급의 프로토스, 3:2로 지면 프로토스 본좌" 라는 의견이 나왔고 모두가 이에 수긍했을 정도였으며 김택용이 3:2로....라고 하면 "헛소리 하지 마!" 이런 소리가 나왔다. 3:2 김택용 승도 거짓말 마라는 소리가 나오는데 김택용이 3:0으로 이기는 것은 더욱 더 현실성이 없다보니 예상은 커녕 농담으로도 주고 받지 않았다. 오죽하면 마까들 조차 김택용이 3:1로 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정도였는데 이마저도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들 했으니 말 다 했다. 애초에 발상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 이미 2월 24일 이윤열을 꺾고 신한은행 스타 리그 S 3에서 우승한 마재윤을 막을 자는 없는 것 같았다. 뉴스 기사에서도 마재윤을 견제하는 기사라고는 기껏해야 '임요환만큼의 감동이 없구만!' 같은 시덥잖은 수준의 기사들 뿐이었다.
또한 김택용은 "프로토스가 왜 저그에게 약한지 모르겠다", "3:0 안 당하게 열심히 연습하고 오라" 고 도발해 놓고는 태국 푸켓으로 팀원들과 함께 전지 훈련 명목으로 여행을 떠나버린다. 당연히 사람들은 "마재윤에게 질 게 뻔하니까 연습도 안 하고 도망간 거다", "푸켓 가서 여권 흘려보내고 안 돌아오는 거 아니냐?" 라고 조롱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김택용에게는 푸켓몬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거기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서 마재윤이 무시무시한 테란 맵들을[6] 뚫고 이윤열을 잡으며 우승하자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마재윤의 승리를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이 당시 여러 스타 커뮤니티에서는 농담으로라도 김택용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이 없었다. 김택용이 MSL 우승한다는 얘기만 꺼내도 겜알못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은 상황. 오직 극소수의 엠히빠들만이 '열심히 해봐라' 라는 격려를 남겼을 뿐.[7]
MBC GAME은 결승 예고를 통해 프로토스가 마재윤을 이길 확률이 2.69%[8]라는 통계를 내놓았으며 그나마 '기적' 이라는 말로 김택용에게 균형을 맞춰주려는 문구조차 수많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스타판의 감독들, 기자들 모두가 마재윤의 승리를 예상했고 마재윤 자신도 그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결승전 예고 동영상에서는 "글쎄요... 우승 세 번은 더 하고 오셔야 되지 않나..." 라는 도발을 했고[9] 다른 선수가 했다면 가루가 되도록 까였을 말이었지만 그때는 모든 당대의 최강자들을 모두 꺾고 온 본좌였고 상대는 토스이자 그때 당시는 듣보잡 신예였으니 모두가 이해했다.
따져보면 의외로 김택용에게 희망적인 측면은 많았다. 우선 2경기 맵 리버스 템플을 제외하면 맵들이 모두 프로토스에게 웃어주는 맵이었다. 1, 5경기 맵 롱기누스 2는 토스가 강세를 보였던 맵이고 4경기 맵 데저트 폭스는 아예 섬맵이었다. 3경기 맵 블리츠 X 또한 딱히 토스가 불리한 맵은 아니었다. 또한 마재윤은 수 차례의 프로토스전을 하느라 분석할 표본이 많았지만 김택용은 2006년 12월 이후 저그전을 한 적이 없어서 마재윤이 분석할 만한 경기 자체가 얼마 없었다. 게다가 김택용의 팀원 중 하나가 또 다른 어쩌면 마재윤보다 더 엄청난 토스의 재앙이자 다전제에서 토스를 상대로 절대로 진 적이 없었던 박성준이었다. 마재윤 못지 않은 최강의 스파링 파트너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런 희망조차 결승 상대가 마재윤이라는 점 하나에 묻히는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토스전 승률이 87.5%에 달한 데다 승률을 제하더라도 토스전 경기력 자체가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 당대 마재윤의 토스전 실력은 전성기 토스전 본좌 박성준도 묻어버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저그가 숨도 못 쉴 정도로 불리한 롱기누스 2에서의 마재윤의 승률을 보면 맵 유불리고 뭐고 생각 못할 만했다. 그때 당시는 레어 삼지창을 토스들이 잘 막지 못했던 시대이기도 하니까 그랬을지도...
여담으로 현재 남아있는 결승전 개인 화면은 마재윤의 것 뿐이다. 당연히 마재윤이 이길 것이니까 김택용의 개인 화면은 아무도 저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세상에 김택용의 편은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10] 다만 김철민 캐스터는 결승전 바로 직전에 김택용의 세트 스코어 3:0 승리를 예상했다. 그런데 '아듀 MBC 게임' 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건 당시 히어로 소속이었던 김택용을 위한 립 서비스였다고 한다.[11] 이윤열도 결승 직전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예상은 아니고 김택용 선수가 마재윤을 이겨줬으면 한다고 인터뷰를 했다.
3 혁명 발발
그렇게 시작된 결승전의 열기는 뜨거웠다. 마재윤의 팬들은 MSL까지 우승하여 양대 리그동시 우승과 단일개인 리그4회우승의 대업을 마재윤이 달성할 것을 지켜보고 있었으며[12] 마재윤의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김택용이 얼마나 버틸까?' 정도가 관심사였다. 그나마 김택용을 응원했던 이들[13]조차 '우승은 바라지도 않으니 선전만 해다오' 라는 마음으로 경기를 관전했다.[14]
3.1 1경기 롱기누스 2
오만한 챔프발언은 곧 패배 플래그였거늘
그러나 1세트 롱기누스 2에서부터 모두의 예상을 꺾는 대이변이 일어난다. 김택용이 선승을 거둔 것. 포지도 짓지 않고 더블넥서스를 감행한 김택용은 집요한 프로브 정찰로 드론 펌프를 찍는 마재윤의 운영을 간파한다. 레어가 완성될 때까지 프로브는 살아있었다. 이후 마재윤은 5시쪽 중립멀티까지 확보. 그리고 프로브가 죽고 얼마 안 있어 스타게이트에서 커세어가 날아와 확장들과 레어 이후의 건물을 확인했고 스타게이트 1곳에서 커세어를 계속 뽑으면서[15] 오버로드 견제를 하기 시작한다.
이후 김택용은 삼룡이 멀티를 시도하면서 마재윤의 본진과 5시 멀티에 다크 템플러를 난입시키며 마재윤의 자원 관리와 병력 운용을 어렵게 하며 본진에 지어진 스파이어를 깨뜨린다. 그래도 마재윤은 본좌 명성에 걸맞게 김택용의 삼룡이 멀티를 소수 병력으로 견제해 깨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김택용의 주 병력에 의해 얼마 안 가 걷힌다. 김택용은 이 병력으로 마재윤의 미네랄 멀티와 앞마당을 공격함과 동시에 본진에서 스파이어를 깨뜨리고 나서 죽지 않고 본진 구석에 숨어있던 다크 템플러가 드론을 썰고 스포닝 풀에 공격을 가해 마재윤의 병력 운용을 어렵게 하였다. 그러면서 김택용은 미네랄 멀티와 9시 중립 멀티를 가져간다. 마재윤이 앞마당으로 침입한 김택용의 병력을 정리하자 김택용은 한 타이밍 병력을 다시 모아서 마재윤의 5시 중립 멀티를 공격한다. 마재윤은 이 병력을 무시하고 김택용의 미네랄 멀티를 공격하나 미네랄 멀티에 지어진 캐논과 옵저버와 드라군을 대동해서 우글우글 몰려서 내려오는 김택용의 추가 병력에 의해 깔끔하게 정리당하고 마재윤의 5시 중립 멀티가 파괴당하면서 GG를 선언한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사용된 롱기누스 2로 하여금 마재윤 압살용 맵으로서의 면모도 보여 주게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마재윤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강민도 선승을 딴 적은 있었기 때문이며 맵 자체도 토스에게 이점이 있는 맵이었기 때문. 그저 김택용의 노림수가 적중한 정도로만 보는 시선도 있었다. 이 승리로 강민과 동급이라는 말이 나오며 팬들도 김택용이 어느 정도 실력은 있는 선수임을 인정한다.
사실 이전의 경기를 보면 마재윤이 롱기누스에서도 토스를 상대로 엄청난 성적을 거두기는 했지만 이런 식의 운영을 준비한 적은 없었다. 대부분 땡히드라와 같이 페이크 후에 들어가는 심리전을 극한으로 활용해서 거둔 승리였다. 결국 마재윤의 당시 심리는 셋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자신이 그동안 보여준 경기의 이미지를 역이용하려 들었거나, 김택용을 얕잡아 봐서 날로 먹으려 들었거나, 아니면 정찰이 너무 철저했기에 심리전을 걸 상황 자체가 안 되었거나. 마재윤은 1경기의 압도적인 패배 직후 상기된 얼굴로 웃통을 벗으며 멘탈이 쪼개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3.2 2경기 리버스 템플
그리고 2세트 리버스 템플. 당시 리버스 템플은 극상성맵이라 테란>저그>토스>테란이라는 구도가 성립했으며 당시 분위기도 당연히 "아무리 그래도 설마 마재윤이 이 맵에서 토스한테 지겠어" 였고 당연히 이 맵에서 김택용이 이길 확률은 극히 낮았을 뿐더러 김택용 자신조차 이를 인정했기 때문에[16] 전문가들이나 팬들도 김택용이 어떻게든 앞의 세 경기 중 한 경기라도 이겨서 역상성 맵인 반섬맵 데저트 폭스가 배치된 4세트까지 가도록 하는 게 미약하게나마 김택용에게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김택용은 이전에 토스맵에서도 지는 수준 낮은 토스들 따위와는 수준이 매우 다름을 보여주었다. 김택용은 1세트처럼 마재윤의 본진을 훤히 들여다보고 이후 뮤탈을 성공적으로 막으면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내었다. 이를 기반으로 삼룡이 시도와 동시에 리버를 동반한 한 방 러시를 시도하나 샌드위치 당해서 막혔다.[17] 바로 이 순간이 마재윤이 이날 경기 중 유일하게 김택용에게 우위를 점했던 순간이다. 그래봤자 압도적인 상황까진 아니었고 주도권을 거머쥔 상황 정도였지만. 이 불리한 상황에서 커세어로 오버로드를 몰아간 끝에 본진에 다크를 드랍해 평화롭게 일하던 드론 13마리를 몽땅 썰어버리고 스포닝 풀까지 깨서 아주 개발살을 내놓은 다음 다시 모은 한 방으로 저글링 생산과 성큰 건설이 불가능해진[18] 마재윤을 완전히 꺾어버린다. 이 경기에서 마재윤의 결정적인 실수는 한 방 병력을 잡아먹고 이겼다 싶어 오버로드 속업을 안하고 퀸즈 네스트를 올려버린 것.[19] 직전 교전에서 커세어가 뮤탈을 다 잡아낸 것도 컸다. 커세어가 오버로드를 모는 사이 다크 드랍을 시도했고[20] 이후 프로토스의 병력을 모은 찌르기에서 김택용이 승기를 잡는다. 이 때 러커를 한 번에 안드로메다로 관광 보낸 스톰 역시 명장면이었다. 그리고 이후 알려진 사실이지만 해설이 당시 말했던 것과는 달리 이 경기의 드라군은 사업도 안 되어있었다. 경기를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드라군이 사업했으면 공격할 수 있었을 곳에서 공격을 못했다[21]. 하지만 김택용의 압도적인 피지컬과 세심함, 그리고 절묘한 위치에서의 스톰이 승부를 갈랐다고 볼 수 있다.
여담으로,이 2경기에서 마재윤은 레어를 올릴때 본진도 아니고 앞마당도 아니고 중앙쪽으로 노출된 미네랄멀티에 있는 해처리를 레어로 변신시켰는데,이렇게 되면 중간에 레어가 깨져버렸을 시 큰일이 난다.혹시 이것도.. 에이 아니겠지
2세트가 끝나고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당시 저그가 결승에서, 그것도 마재윤이 토스에게 0:2로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토스는 김동수vs봉준구[22]의 온게임넷 결승전 이후 양대 개인 리그 결승에서 저그를 이긴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김택용에 대해 다시 보게 되고 결승이 시작하기 전에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토스가 결승에서 저그를, 그것도 마재윤을 보기 좋게 셧아웃 시키는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리플레이 저장이 되지 않았다. 정말로 신이 마재윤을 버렸던 것일까?
당시만 해도 듣보 토스였던 김택용이 아무도 넘볼 수 없었던 마재윤에게 세트스코어 2:0으로 앞서고 있는 충격과 공포 속에서 "본좌님께서 드라마틱한 결승전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1, 2경기 패하신 거다!" 라는 인지부조화가 돋는 마빡이들의 발악외침이 들려오고 있었다. 3경기의 전장 블리츠 X는 토스나 저그나 할 만 했기 때문에 마재윤의 팬들은 여기서 승리를 거두면 4경기 데저트 폭스[23], 다시 한 번 자신에게 강한 롱기누스 2에서의 5경기를 따내는 기적의 리버스 스윕으로 본좌답게 드라마틱한 우승을 보여줄 것이다라고 당시의 마재윤의 팬들은 마지막으로 희망고문을 하는 중이었다.
3.3 3경기 블리츠 X
마재윤의 지휘봉을 김택용이 꺾어버리고 있는 그런 모습입니다!- 이승원 해설이 김택용의 다크템플러가 마재윤의 레어를 파괴한후 말한 멘트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이! 강민 선수를 3:0으로 꺾을 확률 0.45% 마재윤 선수를 꺾을 확률 2.69%!그 확률을 김택용 선수가 이루어 냅니다. 최연소 우승자! 최초로 결승전에서 E스포츠 사상 최초로!
결승전에서 프로토스가 저그를 꺾는 대파란! 프로토스의 대재앙의 종결!
- 김철민 캐스터가 김택용의 우승이 확정된후 말한 멘트
그리고 이어지는 블리츠 X에서의 3세트. 이 맵은 토스가 유리한 롱기누스 2, 저그가 유리한 리버스 템플과는 달리 두 종족 모두 할 만한 맵이었다. 예상 외로 김택용이 처음 두 경기를 가져가자 모두들 충격에 빠졌고 "이러다 진짜 2.69%가?" 라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으며 김택용이 푸켓 여행을 떠나면서 친 3:0 드립이 현실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2.69%는 3:0이든 3:1이든 3:2든 프로토스가 이기는 모든 확률을 합한 값이었고 실제 결과였던 프로토스가 3:0으로 이길 확률만 저 계산에서 따로 빼면 약 0.385%에 불과했다.
이 경기에서 김택용은 마재윤의 본진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으나 대신 마재윤의 앞마당에 파일런을 소환해 마재윤의 앞마당을 늦춰버렸고 초반이 이전 경기와 비슷한 상황으로 흘러가면서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이후 김택용은 러커 전환 타이밍에 삼룡이를 먹고 동시에 소수 공업 질럿을 난입시켰다. 이때 스커지가 커세어에 끌려가 다 녹아버렸고 거기서 승부는 기울어졌다. 물론 질럿도 마재윤의 진영에서 러커의 방해를 무시해가며 난장판을 벌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스커지 전멸로 인해, 가장 중요한 승부처인 커세어의 오버로드 대량 학살을 막을 방법이 없어졌기 때문. 이렇게 난장판과 학살을 벌이다 마지막에는 마재윤의 레어를 4다크로 부숴버리는 진풍경을 보여주며 기적을 일으켰다.
승부가 기울기 직전 캐스터가 나는 마재윤이다라는 발언을 한뒤 얼마 안가 김택용이 마재윤의 유닛들을 녹여버리는 장면이 일품.
한편 마재윤은 이 경기에서도 앞선 경기의 멘탈붕괴가 영향을 크게 줬는지 여러 잔실수들을 범하며 자멸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스커지가 커세어에 둘이서 따로따로 자폭을 한다든가 스커지 및 뮤탈리스크가 커세어에 녹도록 그냥 놔둔다든가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때의 충격이 퍼져나간 결과는 앞서 말했듯 스타판에서 경기로는 실현된 적이 없는 수준이었으며 마지막 경기에서 마재윤이 GG칠 때까지 엠겜 해설진들이 한 해설 내용을 그대로 외우는 팬들까지 나왔다. 레어와 스포닝 풀이 연달아 깨지고 GG를 칠 때쯤에 히드라들이 동서로 왔다갔다 하면서 움직이는 걸 너구리 게임 음악과 합친 동영상[24]까지 나왔을 정도.
리플레이 저장 오류는 이때도 일어났다. 마지막 경기의 전체 개인 화면. 11분 50초쯤을 참고.
3월 3일에 3연속 3 해처리 하다가 3연속 커세어 다크에 3:0으로 썰린 것으로 정리된다. 최수범!
참고로 김택용이 우승을 확정지은후 나온곡은 My Chemical Romance -Welcome to the Black Parade이며. 김택용의 우승 시상식에서 원피스 5기의 오프닝인 BOYSTYLE의 마음의 지도의 MR버전이 나오기도 했다.
이것이 저프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비수류 더블넥서스의 시발점이다. 줄여서 비수 더블넥, 비수류 더블이라 부른다.[25]그리고 비수 더블넥을 기점으로 강민 때부터 시작된 더블넥서스 체제는 김택용에 의해 이제 기존에 있던 빌드와 결합·개량하는 단계로 이어지게 된다. 실제로 김택용은 이 경기에서 나온 비수류 커세어 다크 이후에도 기존 강민의 정통 커세어 리버, 예전에 한창 나오다 사장되었던 하이퍼 토스까지 모조리 개조시키며 저프전을 이끄는 선두주자가 된다.
4 혁명 그 이후
이런 역사적인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몇몇 커뮤니티들은 혁명 당일엔 상당히 조용했다. 왜냐하면 마재윤이 이길 것을 의심치 않고 경기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고 그나마 경기를 본 사람들은 트래픽을 폭주시켜서 경기를 안 본 사람들이 결과를 아는 게 늦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언론에서 김택용 승리라는 기사가 뜨고 VOD가 업데이트 되고 나서야 사람들은 3월 3일에 대사건이 터졌음을 알았다. 심지어는 김택용 승리 기사가 뜨고도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라는 반응을 보인 사람도 있었다. 물론 꿈이 아니고 실제 상황이었다.
다만 그래도 김택용은 한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이 당시에는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가 시작되기 전의 폭풍전야라 여기에 집중하는 사람도 많았던 데다 마빡이들과 이윤열 팬(통칭 벼멸구)들의 병림픽으로 인해 우승자인 김택용에게는 포커스가 잘 오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김택용이 주목받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종족 최강전과 2회 케스파 컵. 이후 김택용은 전성기를 열어나가며 택뱅리쌍 중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냈으며, 반대로 마재윤은 이 사건 이후 흑운장에게 배틀 관광과 메딕 리스토어레이션 쇼를 당하고 다음 스타리그에서는 지난 대회 4강 리벤지 매치에서 패했고 에버 스타리그 2007에서 다시 만난 김택용에게 처절히 찢겨져 나가면서 마막장이라는 불명예 별명까지 얻었다. 그래도 곰TV MSL 시즌 3에서는 4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2008년 그 이후에는 8강 진출조차 로스트사가 MSL 2009 한 번밖에 하지 못하고 프로리그에서는 마논개로 전락.[26] 그 이후 승부조작에 연루되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몰락하게 되어 3.3 혁명의 가치는 더욱 부각되게 된다.
김택용이 보여준 오버로드 사냥 후 본진 견제는 이른바 '비수류 커닥'으로 불리며 기존의 커세어 다크와 다른 형태의 운영을 보여주었다. 당시 토스들은 3.3 이후 비수류 커닥을 열심히 연구하였으며 저그들도 커닥 이후 기존처럼 토스 본진 앞을 연탄밭으로 조이다가는 본진이 털릴 수도 있는 상황이 나오면서 연탄밭 플레이를 하는 빈도가 줄어들게 된다.
이는 토스도 저그가 하는 대로 맞춰 가면서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사실 비수류 커닥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이 바로 그것으로 커세어를 뽑으면서 저그 본진을 정찰하는 동시에 오버로드를 견제하면서 멀티를 늘리거나 병력을 모아 한 방을 노리거나 견제를 하는 플레이가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이후 토스vs저그전의 격차는 엄청나게 줄어들게 되었다. 토스 유저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3.3 혁명 직후.
또한 김택용이 심소명을 두려워한다는 게 알려지면서[27] 심소명식 히드라 몰아치기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이는 한상봉 등의 공격형 저그들의 히드라 몰아치기로 계승된다. 김택용이 한때 임이최마 이후 가장 유력한 5대 본좌 후보로 지목된 것도 우승 횟수와 저 3.3혁명 때문.
마재윤은 이후 곰 TV 슈퍼 파이트 종족 최강전에서도 땡 히드라를 하다가 김택용의 깔끔한 수비에 막혀 완패를 하면서 확실한 김택용의 한 끼 식사로 전락해 버렸고 이후 중요한 고비에서 언제나 김택용에게 져버리는 안습함을 보여주고 만다. 대표적인 경기는 EVER 2007 스타리그 8강 2세트와 3세트. 1세트를 공식전 사상 처음으로 김택용 상대로 승을 거둔 마재윤이였으나 2세트에서는 스타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만한 대역전패를 당하고 다음 경기에서는 전장과 후방을 가리지 않는 김택용의 스톰 쇼에 휘말리면서 완전히 발린다.[28] 결국 4강 자리를 김택용에게 내주고 만다. 그 외에 WWI, IEF등 주요 이벤트 대회 결승전에서도 김택용이 몇 차례 마재윤을 발랐다. 김택용 우승 상금 셔틀 다만 다음 MSL인 곰TV MSL 시즌2에서는 8강, 그 다음 MSL인 곰TV MSL 시즌3에서 4강에 올라가는 등 바로 몰락하지는 않았으나(이것도 과거의 위엄과 대비되면서 무진장 까였다) 결국 2007-08 시즌을 넘어가면서 총체적으로 성적이 안 나오면서 마막장이라고 불리며 몰락해 버린다. 그래도 프로토스전에서만큼은 그 기세가 여전했다. 포모스 기준으로 3.3 혁명 이후에도 2007년 공식전 프로토스전은 16승 5패, 비공식전 포함하면 33승 13패를 기록했다. 물론 여기에는 김택용을 상대로 공식전 1승 2패, 비공식전까지 합쳐 2승 7패를 기록한 전적도 포함되어 있다. 3.3 혁명 이후 2006 시즌이 종료되었으므로 그 이후의 전적만이다. 혁명 이전까지 합치면 한동안 유행했던 이야기인 10:2 전적이 나온다. 한편 이벤트전이 많았음은 3.3 혁명의 재현이 흥행 소재였음을, 그리고 그만큼 이때의 충격이 컸음을 짐작케 한다.
반면 김택용은 단숨에 인기 스타가 되었으며[29] 저그를 한 끼 식사로 여기는 저그전 역대 최강 토스로 자리매김했고[30] 은퇴할 때까지 현존 토스 최강자로 꼽혔다. 다만 이때와 다음 MSL인 곰TV MSL 시즌2 우승을 기점으로 안티도 급격하게 늘어나 버렸다(...)
그 외에도 많은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졌는데 이날 이후 푸켓에 아둔의 성지나 정신과 시간의 방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 이날 이후로 마재윤은 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곡식 별명이 이어진 것. 당시 홍진호는 콩으로 불렸고 이윤열은 경기 전 상대방에게 겸손해지라는 의미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라는 발언을 해놓고 정작 경기에서 져버린 이후 벼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스갤에서 한 네티즌이 '콩도 나왔고 벼도 나왔으니 이젠 팥인 거냐' 는 말이 대히트를 기록해 마재윤은 팥이 되었다. 이외에 '지는 순간 얼굴이 팥색으로 변해서' 등의 설도 돌고 있다. 후에 팥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는 했다(...) 마야 물러가라! 정확하게 말하면 이젠 팥한테도 미안한 상황이다
해당 경기는 회원들의 경기 평점을 모아 게시하던 PGR21에서 10점 만점에 9.9점을 기록하였으며 그나마 이 9.9점도 한두 유저가 실수로 10점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 이 정도의 임팩트 있는 경기와 평점이 공식적으로 나올지도 의문이다. 비공식 평점까지 합치면 이제동이 9.96점으로 1위. 프로 리그 중 4세트 추풍령에서 인스네어로 진출한 정명훈의 병력을 싸 먹고 5세트 데스티네이션에서 김택용과의 엄청난 명경기로 기록을 깼다. 3.3 혁명은 9.92점이다. 그런데 이 평점은 PGR21에서 평점 부여제를 폐지한 이후 임시로 부여한 것이어서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다. 아니, 모두가 10점을 줘도 할 말이 없는 완벽한 경기력을 김택용은 보여주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스타 팬들의 활동에도 변동이 일어났다. 그동안 마재윤의 본좌 포스에 눌려있던 다른 선수들의 팬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게 되면서 마재윤의 팬들이 스갤에서 포모스로 이주하는 현상이 생겨난 것. 그 여파에 타 저그 선수들 팬이나 저그빠들도 포모스 등으로 대피(?)를 하게 됐으며 테란, 토스빠들은 연합해서 한동안 저그빠들을 압박했다. 특히 2006년 저그와 테란의 기세에 눌려 빛을 보지 못했던 토스빠들은 한동한 스갤을 장악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당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결승전날 스갤에서 열린 찌질 파이트(자신의 아이피와 닉을 걸고 그 선수가 우승하지 못하면 그 선수를 지지한 아이피와 닉은 스갤을 떠남)에서 이윤열에 걸어서 스갤을 떠난 몇몇 갤러들이 다시 스갤에 돌아와 마재윤을 까거나 토스빠들과도 엮이면서 스갤에서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니 이긴 건 김택용인데 왜 니들이 좋아해?
5 혁명의 의의
3.3 혁명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더 이상 토스들이 저그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심지어는 다전제 토스 킬러 박성준이라고 할지라도. 그래서 박성준이 꿀 잔뜩 빨았나 보다[31] 어찌 보면 3.3 혁명의 가장 큰 유산은 바로 아무리 저그가 상대라고 해도 심리적으로 꿀리지 않게 되는 프로토스의 자신감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비수류에 대한 파훼법이 나온 이후로는 다시 자신감을 상실하였다
실제로 이후 저그전에 강한 모습을 보이는 A급 프로토스들이 엄청나게 출현했다. 김택용을 포함하여 윤용태[32], 김구현이 그랬고 이들을 포함해 육룡이라 불리는 프로토스 라인이 형성되어 결국 클럽데이 온라인 MSL에서 토스빠들은 전성기를 맞게 된다. 한편 공군 입대 전의 오영종은 비수류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하여 프로 리그에서 저그전 연승 가도를 달리기도 했고 진영화 역시 이러한 조류에 영향을 받은 프로게이머로 포함시킬 수 있겠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A급 선수들을 제외하면 프로토스는 여전히 저그 밥(승률차 5%) 수준이었다. 그래도 캐X밥(승률 차이가 10% 이상 나는)에서 그냥 밥 이하로 떨어진, 밸런스 변이를 일으킨 대사건이다. 옛날토스가 작렬하던 시절에 프저전이 2:8 수준의 극악 밸런스를 가지고 있었다면 혁명 이후에는 B급 프로게이머 간에는 3:7, 저그전 잘한다고 소문난 윤용태 수준의 A급 프로게이머 정도면 테저전 수준의 상성 종족전 밸런스인 4:6 정도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본 상성을 감안해 본다면 이 정도는 거의 밸런스 혁명 수준이다. 물론 2012년 저프전의 신 수준의 S급 플레이를 보이고 있는 김택용에게는 5:5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3.3 혁명 이전부터 저프전은 중위권 이하에서는 이미 5:5로 맞춰져 있었다. 러커 조이기, 소울류, 레어 트라이던트 등 저그가 프로토스를 상대로 휘두르던 무기들은 이미 토스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수명을 다해가고 있었다. 3.3 혁명은 갑작스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축적된 프로토스의 노하우가 김택용이라는 게이머에게 결집된 것에 가깝다. 오히려 3.3 혁명 직후 고난이도 멀티 태스킹과 최적화를 요구하는 김택용의 플레이를 어설프게 흉내내다 패하는(...)[33] 프로토스들이 다수 보였을 정도. 3.3 이전에도 박성준이나 마재윤 같은 S급 저그들에게 토스들이 쓸려나가서 그렇지 롱기누스와 같은 토스 우세 맵에서는 B급 저그들이 A급 토스들에게 쪽도 못 쓰고 패하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 역사상 최강 수준의 저그를 상대로 당대의 프로토스가 압도적인 승리를 따낸 것은 스타판 역사를 통틀어도 단연 충격적인 사건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즉, 이 결승전을 폄하할 근거는 못 된다는 소리.
그리고 3.3 혁명이 가지는 또 하나의 큰 의의는 양대리그 결승을 통틀어 온전한 프로토스가 온전한 저그를 상대로 결승에서 이긴 전무후무한 경기였다는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15년 역사에서 토스와 저그가 결승에서 맞붙은 적은 랜덤이 낀 경우를 제외하고 총 8번[34][35]인데 그 중에서 3.3 혁명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토스가 패했다. 상성, 역상성을 가리지 않고 치열하게 치고받았던 저테, 프테 결승과는 달리 원사이드하게 저그에게 패해왔는데[36] 그럼에도 이 한 번의 승리가 가져다준 임팩트가 워낙에 컸고 토스빠 입장에서는 통쾌하기 그지 없는 결과였기에 다른 7번의 결승이야 아무래도 좋은 것쯤으로 여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스타판의 황혼을 뜨겁게 불태웠던 택뱅리쌍 시대의 시작을 화려하게 장식한 것. 극강의 포스를 자랑하던 마재윤이 김택용에 의해 몰락하고 샛별이었던 이영호, 이제동, 송병구, 김택용이 포텐이 터지면서 이후 스타 2로 세대 교체될 때까지 스타판을 점령한다.
6 김택용은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가?
3.3 혁명이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만큼 사람들이 제각각 경기에 대한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종합하자면, 먼저 마재윤이 방심했다는 것. 사실 마재윤의 프로토스전은 압도적이었으되 경기 내용을 보면 각종 낚시질과 심리전을 통해 프로토스를 속이고 땡 히드라, 뮤탈리스크, 러커, 하이브 난전 등 다양한 무기를 휘두르며 프로토스를 끝내는 경기가 대부분이었다. WCG 2007 그랜드 파이널에서 낚시질에 실패하자 중국 토스 샤쥔춘(沙俊春)에게 패한 것에서 볼 수 있듯 박성준처럼 단순한 정면 힘 싸움에 능한 저그는 아니었다는 소리다. 그런데 3.3 혁명 경기는 김택용이 날빌만을 준비할 것이라 예상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우승을 낙관한 것인지는 몰라도 3경기 모두 3 해처리 운영과 드론 째기만을 고집했고 김택용의 프로브는 레어가 완성될 때까지 살아남으며 이 상황을 고스란히 지켜보았고 캐논 대신 넥서스를 먼저 지으며 부유하게 빌드를 운영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로토스에게 최악의 해로 기억되는 2006년의 프로토스 전멸기가 이유로 꼽히기도 하는데 프로토스가 워낙 개인 리그에서 잘 올라오지 못하고 그나마 올라오는 프로토스들도 강민, 박용욱 등 고전파 프로토스 중심으로 한정적이었다 보니 이들 외에 다른 프로토스와 맞설 기회가 없었고[37] 연속적인 테란과의 결승이 그의 프로토스전의 감각을 떨어뜨리면서 프로토스는 항상 이들 잡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마인드로 임했다가 당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둘째로는 테크닉. 김택용 이전까지 손이 빠른 것을 십분 활용하는 프로토스라면 박정석 정도였다. 이후 윤용태 등이 있긴 했으나 박정석이나 윤용태나 그 빠른 손으로 전투에서 이득을 보는 정도였지 김택용처럼 적극적인 멀티 태스킹을 시도하진 않았다. 임성춘, 김동수, 강민 등 대부분의 프로토스들이 손이 결코 빠르지 않았고 유망주 시절의 송병구가[38]토스빠들의 사랑을 받은 것에서 알 수 있듯 프로토스에게 느린 손이란 일종의 미학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김택용은 이후 '동시 5군데 견제'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빠른 손을 통해 견제 후가 아닌 견제와 동시에 테크 건물과 생산 건물을 확보하거나 정면 싸움을 하며 후방에 다크 템플러를 드롭해 드론을 썰어버리는 등 프로토스가 적극적으로 난전을 시도했고 2006년 최고의 난전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마재윤을 말 그대로 썰어버렸다.
셋째로는 시야. 느린 손을 가졌음에도 2006년 마재윤의 멀티 태스킹이 최고라 평가받은 것은 전장을 전체를 관망하는 시야에 있었다. 그러나 김택용의 시야는 그보다도 더 넓었다. 정확한 타이밍에 들어오는 다크 템플러 드롭이나 커세어의 오버로드 테러, 한 방 병력의 진출은 마재윤의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넷째는 맵. 위에 서술되어 있듯 맵들이 전반적으로 김택용에게 웃어줬다. 롱기누스는 테저전이 워낙 많이 일어난 전장이라 테란맵이라는 이미지가 있으나 저프전에 한해서는 더블넥서스 하기 좋은 데다 미네랄도 풍부하다. 여기에 중립 멀티의 2 가스는 토스가 다수의 하이 테크 유닛을 조합하기 수월하게 해준다는 요소까지 토스에게 도움을 주는 등 토스맵이었다. 데저트 폭스는 저프전에서 토스가 극단적으로 유리하다는 섬맵이다. 마재윤의 승리를 예상했던 관계자들도 모두 '데저트 폭스만큼은 김택용이 유리하다' 고 예측했다. 블리츠 역시 스코어상으로도 개념맵으로 저그가 딱히 불리하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좁은 소로와 정해진 루트로 인해 저그가 난전이나 드랍을 벌이기도 어려우며 2인용 맵의 특성상 프로토스가 수비적인 운영을 하며 반땅 싸움으로 끌고 가기 좋은 맵이어서 이래저래 토스가 할 만한 요소가 있는 맵이었다. 4개의 맵 중에서는 그나마 리버스 템플이 김택용에게 불리한 맵이었다. 하지만 이 맵 또한 손쉬운 더블넥서스를 통해 2 가스를 확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불리하긴 해도 과거 머큐리 수준의 토스 압살 맵은 아니었다. 레이드 어썰트나 머큐리 같이 프로토스 입장에서 폭탄이나 다름없는 맵을 끼고 저그와 결승을 치르던 과거 박정석보다야 훨씬 나았던 셈. 더구나 타 종족전만 치르기는 했지만 김택용은 혁명 이전까지 리버스 템플에서 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저 특징은 당시 그리 크게 부각되지 못했는데[39] 당시 마재윤의 실력은 저그맵이건 토스가 저그를 압살하는 맵이야 어떻든 토스면 거의 한 끼 식사, 아니 에피타이저급인 때였기 때문이다. 못 믿겠다면 저프전 밸런스가 비등비등한 롱기누스에서의 마재윤의 당시 전적은 12승 1패에다가 저프전은 5전 전승을 기록하고 있었다. 당장 마재윤의 전적만 빼도 저그의 승률은 30%대로 곤두박질친다. 또 경기가 3:0으로 끝나버려 나머지 섬맵 데저트 폭스까지는 가지도 않았다. 김택용의 우승에 맵이 유리하게 작용한 것은 1세트 롱기누스 정도에 불과했다. 2세트 리버스 템플은 아예 저그가 유리했던 맵이었고 3세트의 블리츠는 맵 밸런스 자체가 좋았던 맵이라 밸런스 논쟁거리가 없다. 또 게다가 이후에도 김택용은 맵의 유불리와 관계 없이 마재윤을 만날 때마다 압살했다.
다섯 번째로 빌드. 김택용이 가져온 1 스타게이트에서 커세어를 꾸준히 뽑으며 리버든 다크 템플러든 하이 테크 유닛을 통해 견제한 후 한 방 병력이 진출하는 이른바 비수류는 이후 네오 사우론 저그의 등장 이전까지 3 해처리를 붕괴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는 빌드였다. 많은 프로토스 유저들이 커세어는 단순히 첫 오버로드 잡고 테크 보는 용도[40]로만 쓰는 경우가 많았다. 강민이나 김성제 등 다수의 커세어를 뽑는 토스[41]도 있었지만 그들도 김택용처럼 적극적으로 커세어를 활용하진 않았다.
그동안 프로토스들이 저그들에게 농락당한 것은 드라군의 캐먹튀성으로 인해 히드라, 저글링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스타게이트/로보틱스/템플러 테크를 선택해야 했고[42] 이것이 레어 단계의 뮤탈, 러커, 땡 히드라 등에 털렸기 때문이다. 더블넥서스를 갖춘 후에는 3개의 테크를 올리는 부담이 덜해져 일방적인 학살은 줄어들었지만 마재윤 정도 클래스의 S급 저그들은 더블 넥서스를 갖춘 프로토스조차도 레어 단계에서의 심리전을 통해 프로토스의 오판을 유도[43]하고 레어 단계의 유닛으로 밟아버리곤 했다.
그런데 김택용이 1 스타게이트에서 커세어를 꾸준히 뽑으며 가져온 효과는 첫째로 뮤탈리스크를 봉쇄했고 두번째로 후방에서 오버로드를 잡아주기 때문에 전진 러커 조이기가 소멸되고 인구수 관리에도 차질을 주었으며 마지막으로 저그에게 히드라리스크를 강제했다. 여기에 빠르게 공업을 돌리며 조합을 갖춘 프로토스의 병력이 진출하고 히드라밖에 남지 않은 저그의 병력을 학살해 버렸다. 저프전이 암울하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과거부터 수적으로 아주 우세하지 않는 한 레어 단계의 힘 싸움은 조합을 갖춘 프로토스가 저그를 압도했다. 특히 레어 단계에서 주축 유닛이 되는 히드라는 개드라라고 불릴 만큼 초반엔 강력하지만 사실 조합을 갖춘 프로토스에겐 한 끼 식사에 불과하다. 게다가 가스를 먹기 때문에 저그 입장에서는 저그의 강점인 자유로운 체제 전환을 막아버리기 때문에 부담스런 유닛이다. 그럼에도 토스가 밟혔던 건 레어에서 저그가 힘 싸움을 해주지 않아서였는데 비수류는 저그의 다양한 카드를 봉쇄하고 힘 싸움을 강요하는 판을 만든 것이다. 게다가 2경기 리버스 템플과 같이 한 방 병력이 소멸한 후에도 커세어가 시간을 끌고 재차 한 방 병력이 진출하는 등 김택용은 1 스타게이트에서 커세어를 뽑는 것도 충분히 효율적이라는 것을 증명해냈다. 이후 '김택용의 플레이=저프전의 트렌드' 라 할 만큼 김택용의 플레이는 모든 프로토스의 연구거리가 되었다.
그 이후에 저그에서도 비수 더블넥을 상세히 연구하기 시작했고, 연구 끝에 탄생한 것이 네오 사우론 저그, 탈 네오 사우론 저그이다. 이제동은 기존의 3해처리 빌드에서 발전된 네오 사우론 저그로 드론 째기와 다수의 해처리 건설을 통해 비수 더블넥의 장점 중 하나인 레어 3지창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을 상쇄시켜 결국은 아무리 견제를 해도 드론은 계속 나오고 하이브 테크까지 무난히 밟아나가며 디파일러+저글링+히드라+러커+울트라 조합으로 완전히 토스의 물량을 밀어버리며 저프전 강자로 등극하게 된다. 이후에 이제동은 한박자 빠른 커세어 리버, 공발업 질럿러쉬에 네오 사우론이 무너지자 탈 네오 사우론 저그를 만들어내며 비수류 계열을 완전히 파훼한다. 비수류의 등장과 이에 대응하는 네오 사우론, 탈 네오 사우론 저그의 등장으로 인해 지금까지 3해처리 레어 트라이언트, 토스의 지상 한방이나 커세어 리버로 승부가 결정되었던 중세 저프전에서 커세어의 재발견, 그리고 저그의 대응책이 발전하면서 현대 저프전의 본격적인 서막을 열게 되었다.
그 다음 요소로는 정찰. 1, 2세트에서 파일런 서치를 했는데 한 방에 찾았다는 것은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포지 대신에 넥서스를 먼저 짓게도 만들고 견제도 수월해지며 무엇보다 상대가 본진 입구를 가로막기 전에 정찰이 되었기에 마음대로 테크 트리를 보며 맞춰나가는 것이 가능해졌다. 참고로 1, 2, 3세트 다 한 방에 찾을 확률은 1세트 1/2, 2세트 2/3, 3세트 100%, 합쳐서 3분의 1이었다.[44] 게다가 김택용은 1, 2세트에서는 정찰 프로브를 기가 막히게 생존시키면서 마재윤의 초반 테크 트리를 손바닥 보듯이 훤히 봤다. 심지어 2세트에서는 정찰 프로브로 앞마당 해처리 건설까지도 계속 방해하면서 마재윤의 초반 테크 트리를 완전히 비틀어 놨다. 그리고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지만 마재윤의 첫 오버로드의 방향은 1, 2세트 전부 엉뚱한 스타팅 포인트를 향해있었다.
반면 마재윤에게 웃어줄 것으로 보였던 요인들은 대체로 빗나갔다. 우선 경험의 차이라는 점에서 마재윤의 우세를 점친 사람들이 많았다. 마재윤은 각종 리그를 막론하고 여러차례 대형 무대에서 경기를 치러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큰 무대에서도 떨지 않고 제 기량을 발휘할 것으로 보였다. 반면 첫 개인 리그 결승에 진출한 신인 김택용은 경험이 없어 제 기량을 발휘하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반대로 김택용은 긴장한 기색 없이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 나갔다. 정작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건 마재윤. 2세트에서는 본진 일꾼이 다크 템플러 1기에 몰살당하는데도 눈치 채지 못했고 3세트에선 해설이 언급한 대로 궁지에 몰린 경험을 처음 했기 때문인지 유닛을 흘리는 등의 잔실수를 반복하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던 것. 사실 김택용이 개인 리그에서는 첫 결승이었지만 프로 리그 결승전이나 플레이 오프의 에이스 결정전 같은 주요 무대를 밟아본 경험이 있다. 당시 김택용의 소속 팀 MBC GAME HERO는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펼쳐진 2006 전기 리그 준우승 및 후기 리그와 통합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는 등 역대 최고의 상승세였다. 그리고 그 후기 리그 결승을 진출 확정하는 에이스 결정전에 나선 것도 김택용이었다. 김택용도 이러한 큰 무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심리적 중압감에 시달리지 않고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또한 김택용이 결승전을 코앞에 두고 팀원들과 함께 푸켓에 휴가를 갔기 때문에 연습량이 부족했을 거라는 예상이 있었다. 하지만 마재윤 또한 일주일 전 스타 리그 결승을 치루느라 MSL 결승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불과 일주일 정도였다. 게다가 심시티가 어설펐다는 점[45]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김택용의 경기 준비가 어설펐던 점은 없었다.
오히려 김택용은 이후 인터뷰에서 푸켓에 갔다 온 것은 자신에게 좋은 휴식이 되었다고 회고했던 걸로 봐서는 그 푸켓을 다녀오는 기간이 김택용의 컨디션을 조절하는 데 있어서 크게 영향을 주었고 반면 계속되는 리그에 다른 종족, 다른 상대를 맞이하느라 연습에 매진했던 마재윤이 오히려 자신의 컨디션 관리에 실패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종합하면 상대의 준비가 허술했고, 패러다임에서 앞섰으며, 맵이 좋았고, 기량에서 앞선 데다, 멘탈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운까지 좋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김택용의 승리는 당연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7 스타판 최대 기념일
이날의 엄청난 임팩트는 벌써 몇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어서 스갤에선 3월 3일이 되면 갑자기 그날로 타임 머신을 탄 듯한 글들이 연속해서 올라오며 그걸 즐기며 서로 낄낄대는 스타판 최대 기념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스갤의 친구 김택신이 되어버린 김택용 덕분에 2009년 말부터 무시무시한 기세로 5대 본좌 자리를 노리고 있는 이영호와 3월 3일에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신vs인간의 대결을 펼친다는 떡밥(코랜드 파일날)이 급속도로 퍼지는 등 3월 3일은 여러 모로 스타판에선 잊을 수 없는 날이 된 것은 분명하다 할 수 있겠다.
그리고 2년 후, 김택용은 포..포풍에게 그대로 혁명을 당하고야 만다
2010년 3월 3일은... 비극이 벌어졌다. SKT T1와 MBC GAME HERO의 위너스 리그 경기에서 보이지 않는 상대가 이날의 주인공이었던 김택용까지 꺾고 선봉 올 킬을 달성했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 평하기를 3.3으로 흥한 자 3.3으로 망한다. 택신께서 코랜드 파일날 참가하시느라고 안 나온 것일 수도...있..나?
그리고 이날 축구 국대 평가전에서 한국은 드록신이 이끄는 드록국을 2:0으로 이겼다! 역시 진정한 신은 김택신 뿐이다
2014년 3월 3일에는 마재윤은 영구 제명당해 강제 은퇴당하고 김택용도 2013년 9월에 은퇴하면서 경기장이 아닌 아프리카에서 3월 3일을 맞게 되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으랴. 김택용은 이날 3.3 혁명 VOD를 돌리며 추억팔이를 했고 시청자들은 공식 인터뷰에선 볼 수 없었던 김택용의 개인적인 회상이나 에피소드 등 여러 가지 이야기에 즐거워했다. 이날 33개, 333개, 3333개(!)씩 3으로 숫자를 맞춰 별풍선이 터졌으며 이날 김택용은 어마어마한 양의 별풍선을 쓸어담았다.
8 여담
한편 2009년 1월 15일 벌어진 로스트사가 MSL 2009 개막전은 택마록이었다. 역전된 입장에서 사용된 예고 영상 "공포와 절망은 확률이 아닌 현실이다". 상대는 2년전 김택용에게 "우승 3번은 하고 오셔야..." 라는 말을 남겼던 마재윤. 이에 김택용은 "이제 우승 3번 했으니 제대로 붙자" 며 조 지명식에서 마재윤 지목하고 "우승 3번 하고 왔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면서 마재윤과의 전투에 임했지만 정작 이 경기에서는 관광당했다. 그냥 관광도 아닌 엘리미네이션. 이를 두고 스타크래프트 팬들은 3.3 혁명에 대한 마재윤의 진압이 시작되었다며 이를 1.15 진압은 개뿔 삼일천하이라 칭했다. 물론 그러고 다시 한동안 김택용한테 탈탈 털렸지만(...)[46]
3.3 혁명 이후 마재윤과 김택용 사이에는 일종의 라이벌 관계[47]가 형성되었고 각각을 다룰 때도 3.3 혁명은 빼놓을 수 없는 떡밥이 되었지만 두 사람은 실제로는 친했다고 한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해 마재윤이 스타판과 팬들을 저버리고 마프리카 방송을 시작했을 때 김택용은 현직 프로게이머로서는 제일 먼저 마재윤에게 일침을 가했다. 한편으로 배틀넷에 친구로 등록되어있던 김택용이 접속하는 순간 마프리카가 종료된 것이 알려지면서 마재윤은 '역시 마조작 잡는 건 김택용!' 이라는 조소를 사기도 했다. 실제로 김택용이 접속해서 종료한 것은 아니지만 타이밍이 너무나 절묘했던 것.
마재윤이 3.3 혁명 이후로 하향세를 타면서 혁명이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의 원인이 되지 않았냐는 의견도 있긴 한데... 2009년까지 마재윤이 처참히 몰락했고 최연성이 종족을 바꿔보라고 할 정도로 게임에 흥미를 잃었다고 하니 간접적인 원인 정도는 될 것이다[48] 그래도 그게 승부조작의 변명거리는 못 되니 그저 까야 제맛.
참고로 양대 개인 리그 결승에서 프로토스가 3:0 셧아웃으로 우승을 차지한 것 역시 이때와 2000 프리챌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둘 뿐. 역상성 종족인 저그 상대로 이런 기록을 세웠으니 아이러니하다.[49]
스타크래프트는 아니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로 치러진 NAVER 2015 LoL KeSPA Cup에서는 아마추어 클랜 팀인 ESC Ever가 4강에서 롤드컵 우승팀 SKT T1을 잡아내는 대이변을 달성한 것은 물론 결승전에서도 프로 팀인 CJ 엔투스를 꺾고 감격의 우승을 차지하며 리그 오브 레전드 판 3.3 혁명의 주인공이 됐다.- ↑ 세네갈 쇼크와 3.3 혁명 이후 프랑스와 마재윤이 걸어온 행보가 이상하리만치 비슷하다. 프랑스는 세네갈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이후 그 대회를 1무 2패로 마감. 그나마 다음 번 월드컵에서 준우승이라도 했지만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 예선 광속탈락. 그리고 마재윤 역시 급격한 하락세를 겪다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범죄마도 일련의 사건으로 국가대표팀에서 퇴출 - ↑ 물론 이것이 마재윤의 승부조작으로 인해 외적으로 특수한 평가를 받는 것 또한 사실이다.
- ↑ 무엇보다 이 일이 첫번째 사례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거 이후에도 충격적인 3:0 , 4:0 승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3.3혁명이란 전례가 있었던 만큼 이것보다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미 최초의 충격에 받을 수 있는 모든 충격을 받았기때문 불리한 조건 불리한 상성 신인 대 배테랑 압도적인 스코어 나올 수 있는 대부분의 요소는 모두가 나왔기때문에 이것보다 충격적인 게 나오려면(..)
- ↑ 단, 그 1패가 김택용을 상대로 진 경기긴 했다. 근데 이후 리벤지 매치에서 강민이 이겨서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다.
- ↑ 물론 프로토스가 저그전 6할이면 상당히 준수한 성적인 것은 맞지만 대부분 하부 리그에서 올린 전적이었다. 게다가 조용호나 심소명 같은 토스전 최상위권 저그들에게 진 기록도 있어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 ↑ 당시 사용되었던 맵은 롱기누스 2, 네오 알카노이드, 리버스 템플, 히치하이커 4개의 맵이었는데 롱기누스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는 테저전 저그 압살 맵이었다. 박태민이 똥테에게서 롱기누스 저테전 첫 승을 얻었을 때 두부 에러가 나왔을 정도. 알카노이드 시리즈는 김준영 말고는 테란을 상대로 제대로 플레이할 수 있는 저그가 없었다. 애초에 반 섬맵이라는 것부터 저그한테는 숨통이 조이는 것. 리버스 템플은 테란이 마음 먹고 역언덕을 이용하면 저그는 자멸할 수밖에 없었다. 히치하이는 그나마 최종 맵밸런스 5대5를 기록했지만 초반엔 5:0의 전적이었다. 부활한 이윤열을 이긴 마재윤의 실력이 얼마나 출중했었는지 알 수 있다.
- ↑ 이 시절은 앞서 말했듯 김택용이 신인이었던 시절이라 김택용 개인 팬들조차도 희박한 때였다.
- ↑ 이때 예고 제작한 김영진 작가의 말에 따르면 원래는 확률 말고 다른 컨셉으로 가려다가 상대 전적을 보고 '확률로 가보면 어떨까' 라는 호기심에 자기가 아는 모든 수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위 동영상에 나오는 확률을 계산했다고. 단, 정확히 말하면 이 확률의 계산은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 왜냐면 마재윤의 토스전 승률만을 기준으로 계산했고 김택용의 저그전 승률, 맵의 전적 등 기타 변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물론 이에 대해선 대상을 '김택용' 이 아닌 '일반적인 프로토스' 로 잡았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있긴 하다). 하지만 당시 마재윤의 토스전은 그야말로 무적이었기 때문에 혁명 이전까지는 이 확률에 대해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리고 당일 결승전에서 이 통계가 나오게 된 계산 과정이 자막을 통해 공개되었다.
- ↑ 로스트사가 MSL 2009 조 지명식 이후에 밝혀진 바로는 방송사에서 저 발언을 하도록 부추겼다고 한다.
- ↑ 그렇지만 같이 연습을 했던 엠겜의 저그 선수들은 모두 김택용의 승리를 예상했다.
- ↑ 실제 결승전에서 김택용이 압승을 거두자 경기를 중계하던 김철민과 해설진은 예상치 못한 결과에 경악했다.
- ↑ 당시 마재윤의 팬 중에는 이윤열의 그랜드 슬램을 결승전 시간차가 있었다는 이유로 폄하하고 마재윤이 진정한 최초 양대 우승자가 될 것이라고 떠벌리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더불어 이윤열의 그랜드 슬램을 무시하고는 곧 열릴 예정이었던 슈퍼파이트를 끼워 넣고 마재윤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할 거라며 설레발을 쳤다. 당시에는 이윤열이 스타리그 결승에서 마재윤에게 관광 수준으로 농락당해 벼라는 별명을 얻었기 때문에 무시하는 여론이 더 심했다.
- ↑ 위에 언급된 대로 김택용의 개인 팬들은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팀 MBC 게임 히어로의 팬+이런 곳에 반드시 불려나오는 팀원들+코칭 스태프들이었다.
- ↑ 단, 당시 김택용과 연습 게임을 많이 해왔던 엠히 저그들은 김택용이 3:0으로 충분히 승리할 거라 생각했다고 하며 은퇴한 염보성이 아프리카TV 방송에서 말하길 외부의 시선과는 달리 김택용과 연습했던 저그들은 다 김택용이 3대 0으로 이길 줄 알았다고 한다.
- ↑ 2경기도, 3경기도 김택용은 똑같이 커세어를 줄로 뽑아낸다. 이것이 이전의 다른 프로토스와 김택용이 차별화된 부분.
- ↑ 김택용 본인도 말로만 3:0 당하지 마라고 도발했지 실제로 이 맵 때문에 3:0으로 이길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고. 그나마 데저트 폭스가 있기 때문에 3:1이나 3:2 정도의 승리를 예상했다고 한다.
- ↑ 당시 해설도 지적했듯이 바로 같은 대회 16강전에서 마재윤은 김택용과 같은 팀의 박지호를 상대로 이와 같은 빌드를 무난히 막아내고 승리한 기록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박지호는 초반에 마재윤의 본진을 제대로 보지 못한 페널티가 있었다.
- ↑ 극초반이 아닌 이상 히드라러커만 가지고는 템플러 이상으로 조합된 토스 병력을 잡기 힘들다. 아무리 스톰에 픽픽 쓰러져서 쓸모 없는 것 같이 보여도 그 스톰+질럿의 칼빨과 드라군의 공을 체력 약한 딜러인 히드라가 맞지 않게 해 줌과 동시에 잘만 하면 상대에게도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저글링이 있어야 토스 병력을 쉽게 상대할 수 있다.
물론 스톰은 러커 하나가 맞는 게 훨씬 좋다 - ↑ 물론 저렇게 하는 게 정상적인 행동이다. 자기 오버로드가 한 곳에 비정상적으로 뭉쳐있는 상태에서 상대가 다크 드랍 하는 경우만 아니면.
- ↑ 브루드워 시스템상 유닛이 한 번에 죽으면 아군이 공격당한다는 메시지가 뜨지 않는다. 덕분에 다크템플러 한 기가 일꾼을 모조리 잡아먹고 스포닝풀까지 깨 버렸다.
- ↑ 다만 해설진들의 편에서 변호해 주자면, 먼저 해설진은 업그레이드 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에 비추어 공격력 업그레이드가 아닌 사정거리 업그레이드라고 생각했으며 이후 커세어의 공격력 업드레이드가 되었다. 즉 사업이 아니었다고 인정했다. 다만 게임 화면보다 해설에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려운 부분이었을 수도. "공업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있죠 지금 옵져버가.", "아 공1업 됐네요. 네."
- ↑ 게다가 봉준구는 랜덤 유저. 1경기는 프로토스를 했기 때문에 완벽하게 저그 상대로 이긴 것도 아니었고, 러커가 스톰 한 방에 죽는 1.07 시절의 대회였다. 5전 3선승제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프로토스가 저그를 상대로 승리한 적이 꽤 있긴 하지만 당대 S급 저그들이 올라오는 결승 무대에서만큼은 저그가 진 적이 없었다.
- ↑ 반섬맵이라 토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나 혹시 마재윤이라면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 ↑ 이건 나중에 김택용vs박성준 전에서 김택용이 히드라 올 인에 뚫리다 갑자기 PC가 다운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역으로 패러디되었다.
- ↑ 김택용의 아이디인 Bisu[Shield]를 따서 지어진 이름.
- ↑ 그런데도 마재윤은 2007년 동안 김택용을 제외하면 여전히 토스전 승률이 높은 저그 중 하나였다. 당시 토스전 성적에서 김택용 전을 빼면 마재윤의 승률이 급격히 올라간다. 그러나 2007년 하반기부터 다른 프로토스들의 대저그전 실력 상향, 테란과 프로토스에게 웃어주는 맵밸런스 등이 맞물려 김택용을 제외한 다른 토스들과의 전적도 하향세를 타기 시작한다.
- ↑ 결승전 전에 연습 경기를 했는데 김택용이 3:2로 간신히 이겼다고 한다. 게다가 데저트 폭스에서 심소명의 필승 전략이 있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아쉽게도 3.3 혁명 이후 둘이 맞붙은 적은 없고 이전에 공식전에서는 심소명이 한 번 승리를 거둔 바가 있다.
- ↑ 특히 3경기에서 마재윤은 하이브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내내 저글링의 아드레날 글랜즈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경기 영상에서 저글링의 공격 속도를 보면 알 수 있다.
- ↑ 김택용이 경기한 곰 TV MSL S 3 결승전이 Daum 스타리그 결승전 시청률보다 높으며 박카스 스타 리그 4강에서의 시청률도 역대 스타 리그 시청률에서 손에 꼽힌다.
둘 다 졌지만 - ↑ 대 저그전 최종 승률이 71.5%(133승 53패)로 토스로써는 거의 불가능한 승률을 올렸다. 보통 토스는 대 저그전에서 70%는 커녕 60% 승률을 올리기도 버거워한다. 참고로 저그 프로게이머의 대 토스전 최고 승률은 투신 박성준의 68.1%(비공식전 포함 69.9%)인 것을 보면 얼마나 괴물같은 기록인지 알 수 있다.
- ↑ 물론 박성준은 은퇴할 때까지 다전제 프로토스전의 절대 강자였으며 자신이 골든 마우스를 획득했을 때 희생양으로 삼은 선수는 도재욱(그것도 3:0)이었다. 참고로 그의 다전제 대프로토스 승률은 무려 83%. 프로토스를 껌으로 안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 ↑ 윤용태는 김택용이 혁명가가 되어 비수류를 배포하기 전부터 저그전을 잘했다. 윤용태가 저그를 상대하면서 비수류 스타일을 도입한 것은 커세어 정찰 정도. 윤용태의 저그전은 윤용태만의 전투력과 그 전투력에서 파생되는 저그의 치열한 공격에 항전해 가면서 한 방을 만들어내 가공할 스톰 적중률과 조합의 힘으로 뚫어버리는, 전형적인 올드 프로토스의 저그 상대법이며
한 마디로 센터 공 굴리기자신의 전투력을 믿고 적극적으로 달려들거나 배를 째는 극단적인 운영이었다. 윤용태 본인은 저그를 잘 상대했지만 전투력이 차원이 다른 윤용태만의 특화된 방식과 빌드였기 때문에 비수류의 영향은 없었다. 윤용태는 2011 시즌을 제외하곤 계속 이 방식을 고수하면서 저그전 60% 승률을 유지해 왔으며 2011 이후 미묘하게 비수류를 도입하다가 저그전이 처절하게 망가지고 있는 중. - ↑ 심지어 김택용과 시대를 양분한 토스 송병구조차 김택용식 플레이를 하려다가 경기를 그르친 적이 많았다. 얼마 후 자기 색을 찾긴 하지만.
- ↑ 토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선수로는 박성준,
마재윤, 이제동,박찬수가 있으며 여기에서박찬수를 제외한 게이머들이 각각 우승 2회씩을 차지했다. - ↑ 기욤vs국기봉, 김동수vs봉준구의 경우 랜덤이 들어가 있었다.
- ↑ 풀세트까지 간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은 단 한 번 나왔다. 나머지 6번이 전부 3:1.
- ↑ 그나마 이 셋이 올라온 리그도 MSL이었다. 스타리그에서 오영종이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활약하긴 했지만 마재윤 원래 온막이라 오영종 등과 만날 기회가 없었다.
- ↑ 알다시피 송병구는 손이 느린 프로게이머로 유명하다. 평균 APM이 200 중반~200 후반이 나오는데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결코 느리지 않지만 프로게이머 다수가 APM 300 이상을 찍는 편이라 그들에 비하면 느린 편.
- ↑ 일부
마빡이들이 김택용의 우승을 맵빨이라고 비하했다. - ↑ 과거 저그전 강자로 이름을 알렸던 전태규만 해도 1 스타게이트에서 커세어 하나 이상 뽑는 건 낭비라고 할 정도였다.
- ↑ 재밌는 경기 중 하나는 아카디아 2에서의 김성제와 서경종의 경기. 비수류와 유사하게 진행된 경기이다. 어찌 보면 비수류 프로토 타입?
- ↑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드라군리버를 쓰면서 '드라군 생각보단 쓸 만한데?' 라는 인식이 퍼지고 드라템이 나온 거지 그 전까지 드라군이 중심이 되는 전략은 단 한 개도 없었다(...)
- ↑ 프링글스 MSL S 1 결승전, 이른바 성전은 프로토스의 광통령, 강민조차 이것에 번번이 낚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결승전 이후 토스빠들은 "강민마저 저그를 넘을 수 없는 것인가" 하며 멘탈붕괴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 ↑ 1경기 1/2의 확률로 원서치를 한 것은 순수하게 운이 작용한 요소지만 2경기의 경우 일반적으로 그다지 멀지않은 공중상의 거리에서 오버로드가 오지 않으면 프로브는 일반적으로 반대편 스타팅부터 정찰하게 된다. 결국 원 서치를 할 확률은 1/3이 아니라 대각 거리로 안 걸릴 확률, 즉 2/3이었다고 볼 수 있다.
- ↑ 특히 1세트 때 입구 심시티를 이상하게 해서 드라군이 본진에 갇혔다(...) 건물 몇 개를 부순 다음에야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 ↑
마재윤과 김택용의 상대전적은 4:13, 즉마재윤의 승률은 23% 정도밖에 안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가끔 가다 김택용을 잡은 경우를 제외하면 완전히 탈탈 털렸다는 소리다. - ↑ 물론 상대 전적은 앞서 살펴봤듯 처참하기 그지없다.
- ↑ 실제로 박태민과의 경기에서 테란으로 플레이하기도 했지만, 패배했다.
- ↑ 스타우트 MSL에서 강민이 3:0으로 이윤열을 잡은 적은 있지만 승자전 어드밴티지 1승을 받아서 실제로는 2:0으로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