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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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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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가
(커자)
客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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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어: ئۇيغۇر مىللىتى (우이구르 밀리티), ئۇيغۇرلار (우이구를라르)
터키어: Uygur milleti(Uygur Türkleri), Uygurlar
영어 : Uyghur
중국어 : 한문(维吾尔) 병음(Wéiwú'ěr,웨이우얼)

1 개요

중국의 화약고

중앙아시아, 동시에 중국의 서북부에 있는 튀르크 계통의 유목민으로서 본래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였으나 서쪽으로 이주한 뒤 다양한 국가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겨 왔다. 아울러 이 위구르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을 관할하는 중국의 자치구인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의미하기도 하며,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이름으로 위구르스탄(혹은 위구리스탄)[2], 동투르키스탄, 중국인들은 동돌궐(...)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심도시는 위륌치(ئۈرۈمچى شەھىرى‎/Ürümqi, 중국어 발음으로는 우루무치(乌鲁木齐))이다.

자치구내 최고봉은 서쪽에 위치한 쿤룬 산맥 의 최고봉이기도 한 쿤구르 산 이다.[3] 그리고 신장위구르자치구는 가운데 타클라마칸 사막 이 있는 타림 분지를 중심으로 만년설로 덮여있는 높은 산맥들이 톈산 산맥이 북쪽에, 쿤룬 산맥이 남쪽에 있다. 그리고 서쪽에는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 고원 이 있다.

2 역사

2.1 기원

위구르는 중국 기록상 철륵 부족의 일원으로서 약 6세기경 분화되었고 이후 꾸준한 돌궐제국의 적국으로 상대하였으나 번번히 패퇴하였고 713년경에는 돌궐제국의 토벌에 못이겨 일시적으로 당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가기도 했다.

2.2 위구르 제국

위구르는 한자로는 회골이나 회흘, 회홀 등으로 쓰는데, 중당시대에 꽤나 강성한 국가였다. 대표적인 것이 741년 동돌궐을 멸망시키고 세웠다가 848년 키르기즈인의 침공으로 멸망한 위구르 제국(위구르 칸국). 안록산이 일으킨 안사의 난이 일어나자, 당나라를 지원해주면서 수도 낙양을 약탈하고, 심지어 당나라 황족인 옹왕이 보는 앞에서 당나라 사신더러 춤을 춰보라고 협박하고, 사신이 거부하자 칸이 직접 매질을 해 죽여버릴 정도로 당나라를 업신여기고 무시했다.[4] 위구르에 바치는 조공 때문에 당나라 사람들의 허리 펼 날이 없었다고 할 정도.

2.3 동투르키스탄으로의 이동과 이슬람화

위구르 제국 멸망 후 위구르인은 원 거주지인 몽골지방에서 현 거주지인 동투르키스탄으로 대이주하여 현지의 인도 유럽어 계통 백인들이랑 혼혈하여 지금의 위구르인을 형성하였다. 위구르는 불교를 믿다가 다른 튀르크계 종족들과 마찬가지로 11세기 경부터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했으며, 15세기에 이르면 현재의 동투르키스탄 전체가 이슬람화하게 된다. 한국에서 회교처럼 이슬람에 관한 것들에 회(回)자를 붙이게 된 것은 몽골 제국 시대에 이슬람화한 위구르인들이 고려에서 많이 활동했기 때문이다. 고려 말에 원에서 귀화해 조선의 개국공신이 되고 경주를 본관으로 받은 설장수가 대표적이다.

중세, 근세의 위구르는 차가타이 칸국티무르 제국의 지배와 그 외의 여러 중소국가들의 난립이 이어졌다. 그러다 17세기에 이슬람계 종교 귀족인 백산당(ئاق تاغ)의 아파크 호자(ئاپاق خوجا‎)와 그의 후손들이 이 지역-동투르키스탄을 장악했고, 이것이 현대의 위구르로 이어진다.

2.4 청나라 치하의 위구르족 (18세기 후반~19세기)

아팍 호자의 후손들의 통치가 계속되던 중, 1759년, 만주족의 중국 정복 왕조인 청나라건륭제는 서역침략을 계속하였고, 이 지역을 새로운 강역이란 뜻의 신강(新疆, 신장)이라고 이름 붙이고, 지역의 부족장을 베그(伯克, بەگ)로 임명하여 이슬람 주민을 통제하였다.

여기서 정확히 해야 하는 것은, 현 신장 위구르자치구는 위구르인이 주로 살았던 타림분지(서남부)와 오이라트계인 준가르인들이 주로 살고 있던 알타이를 중심으로 한 지역(동북부)을 모두 합한 지역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청나라가 준가리아의 준가르인들을 모조리 학살(제노사이드)한 이후, 청나라는 타림분지에 있던 위구르인과 중원에 있던 한족들, 그리고 칼미크인들을 모두 이 공백지로 불러 사민정책을 실시했다. 즉, 알타이를 중심으로 한 신강 동북부는 원래 준가르인들의 영역(준가리아, 혹은 모굴리스탄)이었고, 준가르인들이 제노사이드를 당한 이후에 청나라가 한족과 위구르족을 이쪽으로 이주시켜 살게 했으므로, 동투르키스탄 전체는 위구르족의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민족, 사회, 종교적으로 한족과 너무 달라 중국이 이곳을 영토로 삼은 현재까지도 저항이 만만치 않다. 거기다 원주민(준가르인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저런식으로 귀속논쟁을 벌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어쨌든 무슬림들은 비무슬림들인 청나라의 지배를 거부했고, 이곳에서는 위구르족 말고도, 회족들(한족계 무슬림들)은 감숙성에서 자주 봉기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종족성 다양성에서 보듯이 단결이 안되었고, 이런 종족간 증오심 외에도 이슬람의 교파 간 문제 때문에 서로를 공격하는 팀킬도 자주 벌어졌다. 예를 들어 둥간족(회족)과 위구르족은 종교는 같았지만 자주 살육극을 벌였다. 그리하여 이런 반란들은 모두 청나라에 각개격파 당하고 만다. 아팍 호자의 증손자이자 '호자 형제'라는 별명을 가진 부르한 웃딘 호자와 칸 호자 형제는 위구르군을 이끌고 청군에 맞서 싸우지만 패배하여 서쪽의 카슈가르와 옐켄까지 밀린다. 1759년 여름, 마지막 근거지인 카슈가르에서 도주한 호자 형제는 인도로 도망가기 위해 무리 4,000명을 이끌고 파미르 산중으로 도망갔다가 청군에 잡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청나라의 지배 동안 이곳에서는 무슬림들에 의해 무려 42차례의 봉기가 일어난다. 1820년에는 '호자 형제' 부르한 웃딘 호자의 손자인 자한기르 호자(جهانگیر خوجا‎)가 파미르를 넘어 진격하였다. 1826년, 자항기르는 그를 따르는 백산당의 무리를 이끌고 카슈가르를 함락하고 옐켄, 호탄 등의 도시를 정복했지만, 청나라의 진압군에 패배하고 파미르 산중에서 붙잡혀 처형당하고 말았다(1827년). 19세기 중반, 청이 혼란에 빠지면서 위구르인들을 포함한 이곳의 회교도들은 일제히 일어나 저항했으며, 카슈가르로 넘어간 자한기르 호자의 일족은 청을 상대로 한 성전을 부르짖었다. 1864년 신강을 비롯하여 중국 본토인 감숙-섬서성 각지에서는 대대적인 무슬림의 반란이 일어났고 청은 이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였다.

하지만 이 반란은 단일세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여러 세력 사이의 주도권 다툼으로 팀킬이 벌어지게 된다. 이 때 서쪽 중앙아시아의 코칸드 칸국에서 넘어 온 야쿱 벡 (ياقۇب بەگ, Yaqub Beg)[5]이 아팍 호자의 후예를 군주로 세워 카슈가르를 근거지로 다른 세력들을 평정하고 위구르인 뿐만이 아닌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을 믿는 여러 민족을 모아 일곱 도시의 나라라는 뜻의 예티샤르(카슈가리아 왕국)를 세운다. 예티샤르는 카슈가르(قەشقەر, Qeshqer)[6], 야르칸트(يەكەن, Yeken)[7], 호탄(خوتەن, Xoten)[8], 아크수(ئاقسۇ, Aqsu)[9], 쿠차(كۇچار, Kuchar)[10], 코를라(كورل, Korla)[11], 투르판(تۇرپان, Turpan)[12] 등을 아우르는 이슬람 세력의 통일국가였다. 1872년에는 러시아 제국[13], 1873년에는 오스만 제국[14], 1874년에는 영국[15]에게 독립 국가임을 인정받았다. 이 와중에 러시아는 만주, 몽골처럼 동투르키스탄을 식민지로 만들려 획책하였으며 파병하여 굴자(غۇلجا, Ghulja)[16]지역을 강점한다.

당연히 청은 가만놔두지 않아 흠차대신 좌종당에게 군사를 주어 신강을 합병하게 했다. 오스만, 러시아, 영국은 야쿱벡 왕국에 서양식 무기를 지원했으나, 좌종당은 태평천국과 염군의 난을 진압하면서 수많은 실전을 겪은 역전의 노장으로 야쿱벡이 상대하기는 버거웠다. 여기에 야쿱벡은 샤리아를 엄격히 적용하는 탈레반식 정책을 밀어붙이는 등, 지나친 이슬람화 정책으로 위구르족 사이에서도 "호로자식"이라고 청나라? 욕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현지에서 신망을 잃고 있었다. 원래 튀르크인은 모든 종교에 관대했던 유목민이었고 정체성을 이슬람에 두지만 이슬람 원리주의는 경기를 일으키는데 거기에 돌직구를 던졌으니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17] 청나라군의 원정은 치밀하여 멀리에서 온 만큼 둔전을 하면서 보급이 원할치 못할 경우까지 대비했다. 1876년, 주둔지 정비를 마친 청나라군은 공세로 나왔고, 야쿱벡군은 변변한 공세도 해보지 못한채 청나라군의 압도적인 병력과 화력에 패하고, 위륌치를 빼앗겼다.

야쿱벡은 영국의 중재로 청나라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선에서 강화하려 했으나, 이미 승기를 잡은 청나라군이 야쿱벡의 요구를 들을 필요가 없었고, 계속 밀어붙였다.[18] 야쿱벡은 추격하는 청나라군을 피해 중앙아시아 깊숙히 가다가 홧병이었는지 급사했다. 이것으로 야쿱벡의 예티사르 왕국은 청군에게 멸망하고, 신강은 다시 청나라의 영역이 되었다(1876년). 전후 청나라는 이미 쿨자의 서부를 비롯해 한반도의 10배 가량 되는 광활한 신강 영토를 러시아에 뺏긴 상태였으며 쿨자 남부까지 뺏길뻔하다가 이후 러시아와 쿨자조약을 체결하여 간신히 쿨자를 되찾아 신강에 신강성을 설치하고, 이는 중화민국 때까지 내려오다가 중화인민공화국이 생기자 이곳은 신장자치구가 된다. 야쿱벡의 미성년자 아들들은 청나라에 잡혀 거세심영되어[19] 환관이 되었다.

2.5 20세기 전반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 조정 자체가 붕괴하면서 군벌시대에 들어섰으며 위구르는 여전히 중화민국/북양정부의 영역으로써 양증신, 금수인 등 한족 군벌에게 통치당하게 된다. 이시기 위구르 민족주의가 태동하였는데 위구르라는 이름은 원래 동투르키스탄의 투르크족을 총칭하는 의미로써 현재 위구르족은 과거의 위구르와는 혈연적으로 많이 다르다. 위구르라는 이름도 러시아 학자가 제안해 위구르 제국의 이름을 붙여 후대에 붙인 이름. 현대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유대인과 비슷한 존재. 1930년대,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공화국' 임시정부(제 1 돌궐공화국)를 세우고 다시 독립을 선언했으나, 회족 군벌인 마씨가문에 의하여 개발살났다. 후에 국민당 소속의 한족 군벌인 성스차이(盛世才)가 이곳에서 집권하고 진주하였다.

성스차이는 엄청난 기회주의자로서 국민당 정부에 의해 신장성장에 임명되었으나, 신장 국경을 맞댄 소련의 힘이 커지자 소련에게 접근했고, 중국인으로서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근처인 산시성에 본거지를 둔 중국 공산당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마오쩌둥의 동생인 마오쩌민을 이곳에 연락담당으로 머무르게 하기도 했다. 이 당시 성스차이는 국민당-소련 사이에서 반독립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위구르를 동투르키스탄 소비에트 인민 공화국으로 소련에 합병시키려 하였다. 만약 됐다면 위구르는 현재 독립국가가 되었거나 러시아체첸처럼 중국에 무력 합병되었을거다.

그러나 독소전쟁이 벌어지고 소련이 대패하자, 갑자기 우디르급 반공을 외치며 소련인 고문과 마오쩌민을 처형하고 일본에 접근했다. 그러다가 소련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이후 부활하고 독소전쟁에서 승리할 것 같자 다시 소련에 접근했다. 그래서 스탈린에게 "잘못했으니까 다시 꼬붕짓 할테니 한번만 봐주셈"이라고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성스차이의 배신행위를 괘씸하게 생각했던 소련은 그 편지를 장제스에게 보냈고, 화가난 장제스는 성스차이를 농업부장에 임명하는 형식으로 신장성장에서 해임했다. 그가 신장에서 얼마나 해먹었는지 50개의 트럭에 온갖 사치품을 가득 싣고 왔다고 한다. 결국 동투르키스탄은 중화민국/국민정부에게로 귀속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자 곧이어 발발한 국공내전이 벌어지고, 이때 잠시 이곳의 위구르족은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제 2 돌궐공화국)을 세워 다시 독립을 선언하지만, 공산군이 승리하자 동투르키스탄 공화국 내부에서는 정치적 장래를 둘러싼 내분이 생긴다. 결국 1949년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부르한 샤히디(بۇرھان شەھىدى‎, Burhan Shahidi)는 중국 공산당과의 연합을 선언했고[20], 부주석이었던 이사 유수프 알프테킨(ئەيسا يۈسۈپ ئالپتېكىن‎, Isa Yusuf Alptekin)을 따르던 사람들은 이에 반대해 터키로 망명했다. 이로서 동투르키스탄은 중국령이 되었고, 1955년부터 신장 위구르 자치구라고 불리게 되었다. 중심 도시는 우루무치(위구르어로는 위륌치ئۈرۈمچى).

3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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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지역의 인구분포. 파란색은 위구르, 빨간색은 한족, 노란색은 카자흐족.

현재 중국의 지배가 흔들릴 경우, 가장 먼저 독립운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민족으로 꼽히고 있으나 2000년 기준으로 신장의 인구 구성비는 위구르인 835만(45%), 한족 749만(41%), 카자흐인 125만(7%), 기타 8%의 비율이었으며[21], 중국 정부의 정책으로 한족들이 정착하여 제 2의 인구로 넘어서는 중이다. 티베트와 마찬가지로 머릿수에서 밀리는 상황이라 전망은 그리 밝지는 않다. 출산율의 경우도 중국공식 통계에 따르면 2명 정도로 많이 높은 편은 아니다.

같은 투르크계 국가인 터키는 내부 혼란에다 인구의 최소 10-15%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이 반란 일으켜 족치느라 바쁘고 인근 투르크스탄 국가들은 약체에다가 내부의 혼란까지 심해져 도울 형편이 안 된다. 또한 주변 이슬람 국가중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파키스탄마저 친중정책의 일환으로 위구르 독립운동 단체를 테러단체로 명시하고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기 때문에 외국의 도움을 받기도 힘들어 보인다.

물론 중국 정부로서는 가장 골치 아픈 곳이다. 2009년 7월 5일부터 이곳에서 위구르족의 대규모 독립시위가 발생해 진압한다고 천 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는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2008년 티베트 사태의 재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사건으로, 중국은 2008년과 마찬가지로 강경진압으로 일관하였고, 위구르족의 대응은 점차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즘으로 격화되었다. 터키에서는 이를 심하게 비난했고 보복으로 중국인에 대한 폭행이 벌어지기도 했다. 알 카에다는 중국 정부를 규탄하며 개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애초에 위구르인들의 주 종교가 이슬람이므로 이슬람 과격파인 알 카에다의 개입의 여지는 있어 왔다. 인도 공화국파키스탄의 갈등이 고조되는 카슈미르와 붙어 있는 점도. 결국 7월 19일 중국의 발표로만 사망자 197명, 부상자 1,721명에 달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망명 위구르인 조직인 '세계위구르회의'는 중국 당국과 한족의 공격으로 살해당한[22] 위구르인은 최대 3,000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러시아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유라시아 연합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칠 것이 확실시 되기 때문에 중앙아시아에서 만큼은 중국과 러시아가 미묘한 관계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도와 이들 지역에 매장된 수많은 자원들은 러시아가 서방 쪽으로 기우려는 동유럽보단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집중할 가능성을 높여준다.[23] 참고로 카자흐스탄우크라이나보다 경제규모가 큰 국가. 과거 소련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이들과의 경제통합은 경제블록간 주도권 다툼이 가열되는 국제 외교환경속에서 러시아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24] 2015년 1월 공식출범을 앞둔 유라시아경제연합은 그 출범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러시아는 2014년 4월 창설 준비위원국(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총리 회담을 마친 후 "모든 부분에 대해 사실상 합의했다"고 밝혔다. 국제사회는 사실상 러시아가 EEU(유라시아경제연합)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회원국 간 통합과정을 진척시켜 EU와 비슷하게 단일통화를 쓰는 수준에까지 이르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중국 역시 구상하고, 또 야심차게 추진하는 신(新) 실크로드 경제권과 경쟁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데,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신(新) 실크로드 벨트와 유라시아 경제연합의 존재는 두 나라를 껄끄로운 관계에 놓이게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2014년 3월 1일 중국 윈난성 쿤밍역에서 위구르족 무장단체에 의한 칼부림 사건이 일어났다. 신장 분리주의 테러 단체에서 자행된 이 사건은 10명의 남성과 1명의 10대 여성이 1m의 위구르 전통 장칼을 휘두르면서 발생하였다. 당시 역을 지키던 경찰은 예상 못한 터라 곤봉으로만 무장하고 있어서 경찰도 2명이 사망하였다. 10명의 테러리스트들은 결국 출동한 무장경찰들한테 사살되었고 1명의 10대 여성 테러리스트는 생포되었다. 이 사건에 따라 29명의 사망자를 포함한 172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위구르족 역대 테러 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기록되게 되었다.

2014년 7월 31일, 중국 당국은 저명한 위구르족 경제학자 일함 토티 중국 민쭈대학 교수를 '국가 분열죄'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토티 교수는 신장자치구의 독립을 요구하는 동투르크스탄 외부 세력과 신장의 독립운동을 고취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9월 18일, 이틀간의 공판이 마무리됐는데, 중국 당국은 공판이 열린 신장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시 법원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AP통신은 공판을 참관하려는 서방 외교관들이 중국 공안에 막혀 법원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고 전했다. 유엔과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중국 정부의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일제히 토티 전 교수의 석방을 촉구했다.

2014년 9월 23일, 중국 정부의 위구르족 정책을 비판하던 위구르족 저명 경제학자인 일함 토티 전 중앙민족대학 교수가 '국가 분열'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AFP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은 이에 대해 즉각 반발하며 23일 낸 성명에서 "토티 전 교수와 같은 시민사회 지도자는 중국 내 민족 갈등의 근원을 해결하는 필수적 역할을 한다"며 "이들이 평화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했다는 이유로 박해받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이런 가혹한 선고는 중국 내 위구르족의 인권을 신장하려는 토티 전 교수의 평화로운 노력에 대한 응징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유럽연합도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은 전적으로 부당한 것"이라며 토티 전 교수를 즉각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류샤오보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인권이 시궁창이라과 이들이 석방되기는 쉽지 않을 듯.

프랑스의 한 기자가 위구르족 문제를 중국 당국의 소수민족 탄압으로 보도하자 중국은 서방측이 중국에만 이중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이 기자의 보도비자 갱신을 거부하고 추방했다. 기사

위구르의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레비야 카디르가 있다. [25]

3.1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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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위구르 자치구
شىنجاڭ ئۇيغۇر ئاپتونوم رايونى‎[26] (위구르어)
新疆维吾尔自治区[27] (중국어)
행정 구역(위구르어)(중국어)인구(`10)민족 구성(`10)
1일리 카자흐 자치주
(이리 카자흐 자치주)[28]
ئىلى
Ili
伊犁
Yīlí
2,482,592한족 35.2%
위구르족 26.8%
2위륌치 시
(우루무치 시)
ئۈرۈمچی
Ürümchi
乌鲁木齐
Wūlǔmùqí
3,112,559한족 74.9%
위구르족 12.5%
3카라마이 시
(커라마이 시)
قاراماي
Qaramay
克拉玛依
Kèlāmǎyī
391,008한족 81.7%
위구르족 11.5%
4알타이 지구
(아러타이 지구)
ئالتاي
Altay
阿勒泰
Ālètài
603,283카자흐족 54.4%
한족 38.6%
5타르바가타이 지구
(타청 지구)
تارباغاتاي
Tarbaghatay
塔城
Tǎchéng
1,219,369한족 65.7%
카자흐족 19.8%
6투르판 시
(투루판 시)
تۇرپان
Turpan
吐鲁番
Tǔlǔfān
622,903위구르족 69.0%
한족 25.0%
7쿠물 시
(하미 시)
قۇمۇل
Qumul
哈密
Hāmì
572,400한족 69.4%
위구르족 17.8%
8케슈케르 지구
(카스 지구)
قەشقەر
Qeshqer
喀什
Kāshí
3,979,321위구르족 90.6%
한족 8.0%
9악수 지구
(아커쑤 지구)
ئاقسۇ
Aqsu
阿克苏
Ākèsū
2,370,809위구르족 75.9%
한족 22.9%
10호텐 지구
(허톈 지구)
خوتەن
Xoten
和田
Hétián
2,014,362위구르족 96.2%
한족 3.6%
11뵈르탈라 몽골 자치주
(보얼탈라 몽골 자치주)
بۆرتالا
Börtala
博尔塔拉
Bó'ěrtǎlā
443,680한족 65.0%
위구르족 13.3%
12산지 회족 자치주
(창지 회족 자치주)
سانجى
Sanji
昌吉
Chāngjí
1,428,587한족 75.3%
회족 9.5%
13키질수 키르기스 자치주
(커즈러쑤 키르기스 자치주)
قىزىلسۇ
Qizilsu
克孜勒苏
Kèzīlèsū
525,570위구르족 64.7%
키르기스족 27.3%
14바인골린 몽골 자치주
(바인궈렁 몽골 자치구)
بايىنغولىن
Bayingholin
巴音郭楞
Bāyīnguōlèng
1,278,486한족 59.3%
위구르족 31.8%
15시헨제 시
(스허쯔 시)
شىخەنزە
Shixenze
石河子
Shíhézǐ
380,130한족 91.9%
16우자취 시ۋۇجياچۈ
Wujyachü
五家渠
Wǔjiāqú
9만(`14)
17툼슉 시
(투무수커 시)
تۇمشۇق
Tumshuq
图木舒克
Túmùshūkè
142,601주로 위구르족?
한족 31.5%
18아랄 시
(알라얼 시)
ئارال
Aral
阿拉尔
Ālā'ěr
158,593한족 89.9%
19베이툰 시بەيتۈن
Beytün
北屯
Běitún
7.63만(`11)
20바슈에김 시
(톄먼관 시)
باشئەگىم
Bash'egim
铁门关
Tiĕménguān
5만(`14)
21코슈외귀즈 시
(솽허 시)
قوشئۆگۈز
Qosh'ögüz
雙河
Shuānghé
5.38만(`14)
22쾩달라 시
(커커다라 시)
كۆكدالا
Kökdala
可克达拉
Kěkèdálā
7.5만(`15)
23쿠룸카슈 시
(쿤위 시)
قۇرۇمقاش
Qurumqash
昆玉
Kūnyù
4.75만(`16)

현 중국 행정구역상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4개 지급시(우루무치, 커라마이, 투르판, 하미), 5개 자치주, 5개 지구, 9개 자치구 직할 현급시로 이루어져 있다. 2010년대 들어서는 자치구 직할 현급시가 계속 설치되고 있는 중이다.

4 한족과 갈등

중국 본토족으로 불리우는 한족과는 사이가 영 좋지 않은 편으로 이슬람을 믿는 성향과 이슬람 방식을 따르는 방식이 한족들의 생활과 달라서 중국 내에서도 한족과 마찰을 빚는 일이 잦은 편이다.

문화면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중화문화보다는 거의 대부분 이슬람 및 터키 문화에 가까운 편이라 현지에서도 보면 중국땅이면서도 중화풍의 분위기보다 중동 투르크 및 이슬람 분위기가 있는 문화유적들이 많아보이는 편이다. 얼핏보면 중국 내 무슬림가(街)나 이슬람촌을 연상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중동 투르크 및 이슬람 문화가 짙은 편이라 중국이라고 믿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한족들 대부분은 중화사상보다 이슬람 율법사상을 따르는 이들을 영 좋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다. 또 라마단 등 이슬람 금식기간에도 이들이 이슬람 문화를 따르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겼으며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중화민족의 단일화 정책에 따라 한족들과 같은 시간을 보내거나 통혼 혼혈을 장려하였으며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돼지고기나 술을 먹는 것을 강요받기도 하였다.

한족들은 대부분 한자를 쓰는 편이 많지만 위구르족은 아랍문자를 쓴다.

요리 및 음식에 있어서도 돼지고기 소비가 많은 중국이지만 위구르 지역에서는 이슬람 율법사상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위구르인들은 여타 이슬람 국가처럼 돼지고기와 술을 입에 대거나 먹지 않는다.[29] 양고기는 양쪽 모두 자주 먹지만

그 외에도, 워낙 뭉쳐 살다보니, 타 민족과 시비가 붙는다 하면 우르르 모여들어 위협한다거나, 좀도둑질을 당했다거나, 바가지를 씌운다는[30] 체험담 위주에 일부분 괴담이 나돌아다니고있다. [31]물론 체험담이기 때문에 100% 신뢰하는건 권장하지 않으나, 그만큼 인식이 나쁘다는 뜻.

그래서 중국 정부는 이슬람 생활과 문화가 위구르족에게서 분리독립 요구와 테러를 발생시킨다고 생각하여 위구르인들에게 이슬람 문화를 금지하며 한족처럼 세속화를 강요한다.[32] 그러다보니 이 금지조치가 위구르인들한테 심한 반발을 야기시키고 있다. 이슬람 국가들도 이런 이슬람 문화 금지조치에 비난을 한다. 하지만 이럼에도 중국 정부는 세속화만이 위구르인의 독립요구와 테러를 막는다며 세속화 원칙을 고집하고 있다.

5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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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인들이 만든 동투르키스탄의 깃발. 터키 국기를 파란색으로 바꾼 디자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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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테러모의혐의로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된 위구르족 독립운동가들.

위구르 독립운동 단체는 약 50개가 있다. 현재는 위구르의 대모(代母) 라비야 카디르(رابىيه قادىر)가 독립운동을 지휘하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중국 정부에서 반동분자로 찍혔으며 국외로 추방당한 상태다. 중국 정부가 달라이 라마만큼 가장 싫어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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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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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 수장인 에미르 압둘 하크 알 투르키스타니. 중국 정부에게서 제거 1호 대상이다. 2010년 2월 15일에 중국군의 무인기 공격으로 사망한줄 알았지만 부상만 당했지 생존하였고 2014년 6월에 치료를 끝내고 등장해 생존해 있다는 것을 밝혔다.

특히 위구르 무장단체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ast Turkestan Islamic Movement, ETIM)은 중국에 대해 폭력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하고 있어 중국 정부의 골칫거리다. 위구르로 사건 터졌다하면 이 단체가 항상 관련되어 있다. 특히 ETIM은 군세에서 열세라는 것을 알고 게릴라전, 폭탄 테러, 독극물 투여, 암살로 중국을 괴롭힌다. 그러다보니 중국 정부는 ETIM을 테러단체이자 국가의 주적으로 정하고 군대와 경찰, 특수부대를 투입해서 ETIM을 제압하려고 애쓴다. 게다가 이 ETIM은 문제가 있는 것이 동투르키스탄이 정교일치의 신정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이념을 주장하니 명백한 광신도 집단이다. 또한 악명높은 국제테러단체 알 카에다와도 친분이 있어 그들과 거래하고 무기, 자금지원을 받고 있어 국제사회에서 독립군으로 인정못받고 테러단체로 지정되어 있다.

사용언어는 위구르어이며 세로로 쓰는 위구르 문자가 있었지만, 중공 수립 후 1982년까지는 라틴 알파벳을 차용하다가 현재는 아랍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어와 비교를 통해 다른 외국어에 비하면 배우기가 쉽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건 위구르 교과서만 봐도 뻥이고[33] 실제 난이도는 터키어와 비슷하다는 평이며 당연히 터키어도 속설과 다르게 쉽지는 않다. 6개월 정도만 해도 현지인처럼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은 과장에 가깝다.문자는 더 답이 없다. 구체적인 예로 음독과 훈독, 성조 등을 고려하고도 한자를 제대로 알면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일본어와 중국어의 난이도를 생각해보자그럼 한자는 쉽단 말이야?.

한국(恨)이라는 감정과 매우 흡사한 감정표현을 위구르도 가지고 있고, 명절에 그네타기와 한국의 씨름과 흡사한 위구르식 씨름놀이, 널뛰기를 한다고 한다.

서울 용산구국립중앙박물관에 위구르의 유물 컬렉션이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승려이자 도굴꾼이었던 오타니 고즈이가 투루판과 둔황 등지에서 약탈한 문화재로 이 중 일부가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흘러들어가서 현대까지 남아있는 것. 일제시대, 한국전쟁은 물론 (본의는 아니었으나) 문화대혁명 등 중국의 지속적인 문화파괴 정책을 피해 살아남은 훌륭한 유산. 이걸 중국에게 돌려줘야한다는 주장도 있고, 위구르족이 독립한 후에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도 있다. 물론 그냥 우리가 가지자는 의견도 있다.

참고하자면, 이 오타니 유물엔 오래 전 중국이 실크로드 교역할 때의 유물들이 많다. 그래서 아주 엄격히 보자면 위구르족이 이 유물의 소유권을 주장할 권리는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실질적으로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위구르어의 발성법과 일부 단어들은 터키 남동부지방의 터키어 사투리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 지방 출신들은 위구르어를 들으면 완전히는 아니지만 대략 60% 정도는 알아듣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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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친중 성향의 위구르족도 없는 것은 아니다. 2015년 1월에 재신망(財新網)에서 발표된 중국 인민해방군 장성 인사에서 위구르 출신인 하리무라티 아부더우러허만(哈里木拉提·阿不都热合满)[34] 대교가 소장으로 진급했다. 사진은 대교 시절의 사진. 1961년생으로 기술통 출신이다.그리고 위구르족 시선으로 보자면 위구르판 이완용. 뭐그래도 이완용과 다르게 직접적으로 나라를 팔아먹진 않았으니...

유명 농구선수인 아딜잔이 바로 위구르인이다.

위구르와 카자흐스탄 접경지역의 사막지대, 즉 커라마이(克拉玛依/قاراماي رايونى/Karamay) 시의 동북쪽 일대는 별도로 유명 미스터리 스팟이기도 하다. 흔히 "Mogui Cheng" 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악마의 도시"마계촌? 라는 섬뜩한 별명을 갖고 있는 암석사막인데, 바람이 불 때마다 어디서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소리가 들려 온다고 한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산들바람이 불 때에는 온 사방에서 마치 수백만 개의 작은 방울들이 가볍게 흔들리는 듯한 소리가 나며, 때로 이것은 리드미컬하게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기분 좋은 경쾌한 느낌을 준다. 그러다가 날씨가 나빠져서 거친 바람이 불게 되면 분위기는 급변한다. 거센 바람으로 모래와 흙먼지가 피어올라 시야를 어둡게 가려 버리고, 잔잔한 방울 소리 같았던 정체불명의 소리는 이제는 수십만 마리의 호랑이들과 코끼리들이 동시에 울부짖는 소리, 여성이 흐느끼는 듯한 소리, 아기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듯한 소리가 섞인 듯한 괴음으로 바뀌게 된다. 평화롭고 조금은 신비롭기까지 하던 관광명소 사막이 일순간에 레알 악마들의 무도회라도 열리는 듯한 공포스러운 장소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 관련 웹 포스트(영어)
  1. 중남 지방을 허난 성, 후베이 성, 후난 성의 화중 지방(华中地方)과 광둥 성, 하이난 성, 광시 좡족 자치구, 홍콩 특별행정구, 마카오 특별행정구의 화난 지방(华南地方)으로 나누는 분류도 많다.
  2. 정확히는 동투르키스탄(중국어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혹은 "신장"이라고 쓰지만 중국이 중점적으로 쓰고, "동투르키스탄"이 전부터 불려와 통용된다.)의 투르크족 거주지역을 의미하지만 위구르족들이 제일 많은데다가 대표적인 투르크계 민족이기도 하고 이들이 제일 적극적으로 독립의지가 강하다보니 사실상 위구르인들의 지역이라는 의미로도 쓰는 듯 하다
  3. 현재 중국이 관할하고 있는 샥스갬 지역을 포함하면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최고봉은 초고리 봉(K2) 이다. 하지만 샥스갬 지역은 인도와 영유권 분쟁중 이며 샥스갬 지역을 제외하고는 파미르 고원쿤룬 산맥 에 위치한 쿤구르 산 이 최고봉이다.
  4. 이 일을 직접 목격한 옹왕은 위구르를 극렬히 증오하여 나중에 황제가 됐을 때 그들과의 동맹 맺기를 거부하다가 신하의 간절한 조언으로 겨우 위구르와 동맹을 맺었다.
  5. 타지크인 혹은 우즈벡인으로 추측된다.
  6. 지금의 카스지구(喀什地区) 카스(喀什).
  7. 지금의 카스지구(喀什地区) 사처(莎车).
  8. 지금의 허톈지구(和田地区) 허톈(和田).
  9. 지금의 아커쑤지구(阿克苏地区) 아커쑤(阿克苏).
  10. 지금의 아커쑤지구( 阿克苏地区) 쿠처(库车).
  11. 지금의 바인궈런몽골자치주(巴音郭楞蒙古自治州/ᠪᠠᠶᠠᠨᠭᠣᠣᠯ ᠮᠣᠩᠭᠣᠯ ᠥᠪᠡᠷᠲᠡᠭᠡᠨ ᠵᠠᠰᠠᠬᠤ ᠵᠧᠦ) 쿠얼러(库尔勒).
  12. 지금의 투루판(吐鲁番).
  13. 당시 중앙아시아 튀르크계 거주지역 대부분을 석권, 위구르와 국경을 맞댄 주변국이었다.
  14. 당시 이슬람 세계의 종주국과 같은 나라였고 위구르인처럼 튀르크계여서 큰형님이나 다름없었다.
  15. 지금의 인도 공화국파키스탄이 당시 영국령으로, 위구르와 국경을 맞댄 주변국이었다.
  16. 일리(ئىلى, Ili)라고도 한다. 지금의 이리카자흐자치주(伊犁哈萨克自治州/ىله قازاق اۆتونوميالى وبلىسى) 일대.
  17. 현재 터키의 집권당과 대통령 에르도안이 이슬람 원리주의자이지만 세속주의를 철폐하지 못하는게 이때문이다.
  18. 특히 위구르가 독립하면 다른 민족들도 독립하려고 할것이 분명해서 청의 입장에선 반드시 막아야 했다. 현재 중국이 소수민족의 독립에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며 무자비하게 탄압하는게 이때문이다.
  19. 현재 기준으로는 잔인하지만 그 당시 기준은 연루되지 않았다고 해서 인도적인(...) 견지에서 사형대신 거세형을 당한 것이다 사형보다는 고자가 인도적이다.
  20. 물론 말이 연합이지 실제론 항복선언이지만.
  21. 1950~60년대에는 위구르족이 절대 다수였으나, 한족들이 유입되어서 비율이 바뀌었다. 특히 우루무치는 한족이 무려 75%에 이른다고 한다. 다만 지금 한족이 몰려사는 북부 준가르 분지 지역은 위구르족보다는 카자흐족이 더 많이 사는 지역이었다.
  22. 물론 한족 민간인들의 공격은 중국 정부가 대상자들을 처벌한다고는 하나....
  23. 특히, 세르비아는 2018년까지 EU 가입 조건을 충족시키고 2020년까지 EU에 가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와 더불어 나토 가입의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그외의 동유럽과 중부유럽 국가들은 이미 서방 세력권으로 편입했거나(2002년 12월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발트3국, 키프로스, 몰타, 폴란드, 체코 등의 신규 가입, 2007년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 가입, 2013년 7월 크로아티아의 신규가입) 편입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2009년 12월 몬테네그로와 EU 간 비자면제 시행과 몬테네그로 정부의 EU와 나토 가입 추진, 2010년 12월 알바니아와 EU간의 비자면제 시행과 2013년 9월 알바니아의 국정목표로 EU가입 추진, 보스니아의 EU가입 추진, 2014년 EU와 조지아-몰도바와 협력협정 체결 추진 등) 이러한 경향은 러시아와 유대관계가 높았던 우크라이나에서 조차도 일어나고 있는데, 비록 러시아가 크림반도 합병을 했지만 야누코비치 정권 시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무척 좋은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면 서부 지역의 친 EU정부 수립은 어쨌거나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감소했음을 의미한다.
  24. 참고로 카자흐스탄에는 러시아의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와 여러 군사훈련 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에도 러시아의 공군 기지가 있다. 타지키스탄에는 7,000명의 러시아 병력이 주둔 중이다.
  25. 위구르의 독립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
  26. Shinjang Uyghur Aptonom Rayoni; 신장 우이구르 압토놈 라요니
  27. Xīnjiāng Wéiwú'ěr Zìzhìqū; 신장 웨이우얼 쯔즈취
  28. 인구 통계는 자치주의 일부인 알타이 지구와 타르바가타이 지구를 제외함.
  29. 헌데 이슬람권 지역도 경우에 따라서 술을 마시거나 제조하기도 한다.
  30. 2012년 뉴스로 공개된 체가오(切糕, 절고) 사건을 빌미로 이슈화 되었다.
  31. 민족 갈등은 덮어 감추려는 중국 정부 때문에 뉴스는 적은 편이다.
  32. 예를 들면 수염을 기르거나 히잡을 머리에 쓰는 행위. 최근에는 이슬람 종교행사의 핵심인 라마단 의식도 금지되었다.
  33. 외국어도 어떤 외국어냐에 따라 다르다. 일단 위구르어는 교착어이기 때문에 굴절어나 고립어 계통의 언어보다는 쉽게 배울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이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다는 몽골어나 일본어에 비하면 다소 어려운 편이다.
  34. 아부더우러허만 부분을 잘 보면 "압둘라흐만"을 음역한 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