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의 등장인물에 대해서는 위구르(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 문서를, '북두의 권'의 등장인물에 대해서는 위글 옥장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목차
주의. 이곳은 여행자제 국가·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여행경보 2단계인 여행자제로 지정되었습니다. 해당 지역은 치안이나 위생 등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에 따라 테러 등으로 현지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해외 여행 시 반드시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사이트에서 해당 국가 또는 지역에 대해 정보를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틀:여행경보/설명문서}}
섬네일을 만드는 중 오류 발생: 파일이 없음 중국의 제1급 행정구역 [행정 약칭] | |
화베이 지방 | 베이징 시 [京] · 톈진 시 [津] · 산시 성(山西省) [晋] · 허베이 성 [冀] · 내몽골 자치구 [内蒙古] |
화둥 지방 | 상하이 시 [沪] · 산둥 성 [鲁] · 안후이 성 [皖] · 장쑤 성 [苏] · 장시 성 [赣] · 저장 성 [浙] · |
중난 지방 | 광둥 성 [粤] · 하이난 성 [琼] · 허난 성 [豫] · 후난 성 [湘] · 후베이 성 [鄂] · 광시 좡 족 자치구 [桂] · 마카오 특별행정구 [澳] · 홍콩 특별행정구 [港] |
둥베이 지방 | 랴오닝 성 [辽] · 지린 성 [吉] · 헤이룽장 성 [黑] |
시베이 지방 | 간쑤 성 [甘/陇] · 산시 성(陕西省) [陕/秦] · 칭하이 성 [青] · 닝샤 후이 족 자치구 [宁] · 신장 위구르 자치구 [新] |
시난 지방 | 충칭 시 [渝] · 구이저우 성 [贵/黔] · 쓰촨 성 [川/蜀] · 윈난 성 [云/滇] · 티베트 자치구 [藏] |
중국 56개 민족 | ||||
한족 汉族 | ||||
55개 소수 민족 | ||||
장족 (좡족) 壮族 | 회족 (후이족) 回族 | 만주족 (만족) 满族 | 위구르족 (웨이우얼족) 维吾尔族 | 묘족 (먀오족) 苗族 |
이족 (이족) 彝族 | 토가족 (투자족) 土家族 | 티베트족 (짱족) 藏族 | 몽골족 (멍구족) 蒙古族 | 동족 (둥족) 侗族 |
포의족 (부이족) 布依族 | 요족 (야오족) 瑶族 | 백족 (바이족) 白族 | 조선족 (차오셴족) 朝鲜族 | 합니족 (하니족) 哈尼族 |
여족 (리족) 黎族 | 카자흐족 (하싸커족) 哈萨克族 | 태족 (다이족) 傣族 | 사족 (서족) 畲族 | 율속족 (리쑤족) 傈僳族 |
동향족 (둥샹족) 东乡族 | 흘로족 (거라오족) 仡佬族 | 납호족 (라후족) 拉祜族 | 와족 (와족) 佤族 | 수족#s-3 (수이족) 水族 |
납서족 (나시족) 纳西族 | 강족 (창족) 羌族 | 토족 (투족) 土族 | 무로족 (무라오족) 仫佬族 | 석백족 (시보족) 锡伯族 |
키르기즈족 (커얼커쯔족) 柯尔克孜族 | 경파족 (징포족) 景颇族 | 다우르족 (다워얼족) 达斡尔族 | 살납족 (싸라족) 撒拉族 | 포랑족 (부랑족) 布朗族 |
모남족 (마오난족) 毛南族 | 타지크족 (타지커족) 塔吉克族 | 보미족 (푸미족) 普米族 | 아창족 (아창족) 阿昌族 | 노족 (누족) 怒族 |
에벤키족 (어원커족) 鄂温克族 | 킨족 (징족) 京族 | 기낙족 (지눠족) 基诺族 | 덕앙족 (더앙족) 德昂族 | 보안족 (바오안족) 保安族 |
러시아족 (어뤄쓰족) 俄罗斯族 | 유고족 (위구족) 裕固族 | 우즈베크족 (우쯔볘커족) 乌孜别克族 | 문파족 (먼바족) 门巴族 | 악륜춘족 (어룬춘족) 鄂伦春族 |
독룡족 (두룽족) 独龙族 | 혁철족 (허저족) 赫哲族 | 고산족 (가오산족) 高山族 | 납파족 (뤄바족) 珞巴族 | 타타르족 (타타얼족) 塔塔尔族 |
5대 화교 | ||||
복건 (푸젠) 福建 | 광동 (광둥) 广东 | 해남 (하이난) 海南 | 조주 (차오저우) 潮州 | 객가 (커자) 客家 |
위구르어: ئۇيغۇر مىللىتى (우이구르 밀리티), ئۇيغۇرلار (우이구를라르)
터키어: Uygur milleti(Uygur Türkleri), Uygurlar
영어 : Uyghur
중국어 : 한문(维吾尔) 병음(Wéiwú'ěr,웨이우얼)
1 개요
중국의 화약고
중앙아시아, 동시에 중국의 서북부에 있는 튀르크 계통의 유목민으로서 본래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였으나 서쪽으로 이주한 뒤 다양한 국가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겨 왔다. 아울러 이 위구르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을 관할하는 중국의 자치구인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의미하기도 하며,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이름으로 위구르스탄(혹은 위구리스탄)[2], 동투르키스탄, 중국인들은 동돌궐(...)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심도시는 위륌치(ئۈرۈمچى شەھىرى/Ürümqi, 중국어 발음으로는 우루무치(乌鲁木齐))이다.
자치구내 최고봉은 서쪽에 위치한 쿤룬 산맥 의 최고봉이기도 한 쿤구르 산 이다.[3] 그리고 신장위구르자치구는 가운데 타클라마칸 사막 이 있는 타림 분지를 중심으로 만년설로 덮여있는 높은 산맥들이 톈산 산맥이 북쪽에, 쿤룬 산맥이 남쪽에 있다. 그리고 서쪽에는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 고원 이 있다.
2 역사
2.1 기원
위구르는 중국 기록상 철륵 부족의 일원으로서 약 6세기경 분화되었고 이후 꾸준한 돌궐제국의 적국으로 상대하였으나 번번히 패퇴하였고 713년경에는 돌궐제국의 토벌에 못이겨 일시적으로 당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가기도 했다.
2.2 위구르 제국
위구르는 한자로는 회골이나 회흘, 회홀 등으로 쓰는데, 중당시대에 꽤나 강성한 국가였다. 대표적인 것이 741년 동돌궐을 멸망시키고 세웠다가 848년 키르기즈인의 침공으로 멸망한 위구르 제국(위구르 칸국). 안록산이 일으킨 안사의 난이 일어나자, 당나라를 지원해주면서 수도 낙양을 약탈하고, 심지어 당나라 황족인 옹왕이 보는 앞에서 당나라 사신더러 춤을 춰보라고 협박하고, 사신이 거부하자 칸이 직접 매질을 해 죽여버릴 정도로 당나라를 업신여기고 무시했다.[4] 위구르에 바치는 조공 때문에 당나라 사람들의 허리 펼 날이 없었다고 할 정도.
2.3 동투르키스탄으로의 이동과 이슬람화
위구르 제국 멸망 후 위구르인은 원 거주지인 몽골지방에서 현 거주지인 동투르키스탄으로 대이주하여 현지의 인도 유럽어 계통 백인들이랑 혼혈하여 지금의 위구르인을 형성하였다. 위구르는 불교를 믿다가 다른 튀르크계 종족들과 마찬가지로 11세기 경부터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했으며, 15세기에 이르면 현재의 동투르키스탄 전체가 이슬람화하게 된다. 한국에서 회교처럼 이슬람에 관한 것들에 회(回)자를 붙이게 된 것은 몽골 제국 시대에 이슬람화한 위구르인들이 고려에서 많이 활동했기 때문이다. 고려 말에 원에서 귀화해 조선의 개국공신이 되고 경주를 본관으로 받은 설장수가 대표적이다.
중세, 근세의 위구르는 차가타이 칸국과 티무르 제국의 지배와 그 외의 여러 중소국가들의 난립이 이어졌다. 그러다 17세기에 이슬람계 종교 귀족인 백산당(ئاق تاغ)의 아파크 호자(ئاپاق خوجا)와 그의 후손들이 이 지역-동투르키스탄을 장악했고, 이것이 현대의 위구르로 이어진다.
2.4 청나라 치하의 위구르족 (18세기 후반~19세기)
아팍 호자의 후손들의 통치가 계속되던 중, 1759년, 만주족의 중국 정복 왕조인 청나라의 건륭제는 서역침략을 계속하였고, 이 지역을 새로운 강역이란 뜻의 신강(新疆, 신장)이라고 이름 붙이고, 지역의 부족장을 베그(伯克, بەگ)로 임명하여 이슬람 주민을 통제하였다.
여기서 정확히 해야 하는 것은, 현 신장 위구르자치구는 위구르인이 주로 살았던 타림분지(서남부)와 오이라트계인 준가르인들이 주로 살고 있던 알타이를 중심으로 한 지역(동북부)을 모두 합한 지역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청나라가 준가리아의 준가르인들을 모조리 학살(제노사이드)한 이후, 청나라는 타림분지에 있던 위구르인과 중원에 있던 한족들, 그리고 칼미크인들을 모두 이 공백지로 불러 사민정책을 실시했다. 즉, 알타이를 중심으로 한 신강 동북부는 원래 준가르인들의 영역(준가리아, 혹은 모굴리스탄)이었고, 준가르인들이 제노사이드를 당한 이후에 청나라가 한족과 위구르족을 이쪽으로 이주시켜 살게 했으므로, 동투르키스탄 전체는 위구르족만의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민족, 사회, 종교적으로 한족과 너무 달라 중국이 이곳을 영토로 삼은 현재까지도 저항이 만만치 않다. 거기다 원주민(준가르인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저런식으로 귀속논쟁을 벌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어쨌든 무슬림들은 비무슬림들인 청나라의 지배를 거부했고, 이곳에서는 위구르족 말고도, 회족들(한족계 무슬림들)은 감숙성에서 자주 봉기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종족성 다양성에서 보듯이 단결이 안되었고, 이런 종족간 증오심 외에도 이슬람의 교파 간 문제 때문에 서로를 공격하는 팀킬도 자주 벌어졌다. 예를 들어 둥간족(회족)과 위구르족은 종교는 같았지만 자주 살육극을 벌였다. 그리하여 이런 반란들은 모두 청나라에 각개격파 당하고 만다. 아팍 호자의 증손자이자 '호자 형제'라는 별명을 가진 부르한 웃딘 호자와 칸 호자 형제는 위구르군을 이끌고 청군에 맞서 싸우지만 패배하여 서쪽의 카슈가르와 옐켄까지 밀린다. 1759년 여름, 마지막 근거지인 카슈가르에서 도주한 호자 형제는 인도로 도망가기 위해 무리 4,000명을 이끌고 파미르 산중으로 도망갔다가 청군에 잡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청나라의 지배 동안 이곳에서는 무슬림들에 의해 무려 42차례의 봉기가 일어난다. 1820년에는 '호자 형제' 부르한 웃딘 호자의 손자인 자한기르 호자(جهانگیر خوجا)가 파미르를 넘어 진격하였다. 1826년, 자항기르는 그를 따르는 백산당의 무리를 이끌고 카슈가르를 함락하고 옐켄, 호탄 등의 도시를 정복했지만, 청나라의 진압군에 패배하고 파미르 산중에서 붙잡혀 처형당하고 말았다(1827년). 19세기 중반, 청이 혼란에 빠지면서 위구르인들을 포함한 이곳의 회교도들은 일제히 일어나 저항했으며, 카슈가르로 넘어간 자한기르 호자의 일족은 청을 상대로 한 성전을 부르짖었다. 1864년 신강을 비롯하여 중국 본토인 감숙-섬서성 각지에서는 대대적인 무슬림의 반란이 일어났고 청은 이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였다.
하지만 이 반란은 단일세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여러 세력 사이의 주도권 다툼으로 팀킬이 벌어지게 된다. 이 때 서쪽 중앙아시아의 코칸드 칸국에서 넘어 온 야쿱 벡 (ياقۇب بەگ, Yaqub Beg)[5]이 아팍 호자의 후예를 군주로 세워 카슈가르를 근거지로 다른 세력들을 평정하고 위구르인 뿐만이 아닌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을 믿는 여러 민족을 모아 일곱 도시의 나라라는 뜻의 예티샤르(카슈가리아 왕국)를 세운다. 예티샤르는 카슈가르(قەشقەر, Qeshqer)[6], 야르칸트(يەكەن, Yeken)[7], 호탄(خوتەن, Xoten)[8], 아크수(ئاقسۇ, Aqsu)[9], 쿠차(كۇچار, Kuchar)[10], 코를라(كورل, Korla)[11], 투르판(تۇرپان, Turpan)[12] 등을 아우르는 이슬람 세력의 통일국가였다. 1872년에는 러시아 제국[13], 1873년에는 오스만 제국[14], 1874년에는 영국[15]에게 독립 국가임을 인정받았다. 이 와중에 러시아는 만주, 몽골처럼 동투르키스탄을 식민지로 만들려 획책하였으며 파병하여 굴자(غۇلجا, Ghulja)[16]지역을 강점한다.
당연히 청은 가만놔두지 않아 흠차대신 좌종당에게 군사를 주어 신강을 합병하게 했다. 오스만, 러시아, 영국은 야쿱벡 왕국에 서양식 무기를 지원했으나, 좌종당은 태평천국과 염군의 난을 진압하면서 수많은 실전을 겪은 역전의 노장으로 야쿱벡이 상대하기는 버거웠다. 여기에 야쿱벡은 샤리아를 엄격히 적용하는 탈레반식 정책을 밀어붙이는 등, 지나친 이슬람화 정책으로 위구르족 사이에서도 "호로자식"이라고 청나라? 욕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현지에서 신망을 잃고 있었다. 원래 튀르크인은 모든 종교에 관대했던 유목민이었고 정체성을 이슬람에 두지만 이슬람 원리주의는 경기를 일으키는데 거기에 돌직구를 던졌으니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17] 청나라군의 원정은 치밀하여 멀리에서 온 만큼 둔전을 하면서 보급이 원할치 못할 경우까지 대비했다. 1876년, 주둔지 정비를 마친 청나라군은 공세로 나왔고, 야쿱벡군은 변변한 공세도 해보지 못한채 청나라군의 압도적인 병력과 화력에 패하고, 위륌치를 빼앗겼다.
야쿱벡은 영국의 중재로 청나라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선에서 강화하려 했으나, 이미 승기를 잡은 청나라군이 야쿱벡의 요구를 들을 필요가 없었고, 계속 밀어붙였다.[18] 야쿱벡은 추격하는 청나라군을 피해 중앙아시아 깊숙히 가다가 홧병이었는지 급사했다. 이것으로 야쿱벡의 예티사르 왕국은 청군에게 멸망하고, 신강은 다시 청나라의 영역이 되었다(1876년). 전후 청나라는 이미 쿨자의 서부를 비롯해 한반도의 10배 가량 되는 광활한 신강 영토를 러시아에 뺏긴 상태였으며 쿨자 남부까지 뺏길뻔하다가 이후 러시아와 쿨자조약을 체결하여 간신히 쿨자를 되찾아 신강에 신강성을 설치하고, 이는 중화민국 때까지 내려오다가 중화인민공화국이 생기자 이곳은 신장자치구가 된다. 야쿱벡의 미성년자 아들들은 청나라에 잡혀 거세심영되어[19] 환관이 되었다.
2.5 20세기 전반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 조정 자체가 붕괴하면서 군벌시대에 들어섰으며 위구르는 여전히 중화민국/북양정부의 영역으로써 양증신, 금수인 등 한족 군벌에게 통치당하게 된다. 이시기 위구르 민족주의가 태동하였는데 위구르라는 이름은 원래 동투르키스탄의 투르크족을 총칭하는 의미로써 현재 위구르족은 과거의 위구르와는 혈연적으로 많이 다르다. 위구르라는 이름도 러시아 학자가 제안해 위구르 제국의 이름을 붙여 후대에 붙인 이름. 현대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유대인과 비슷한 존재. 1930년대,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공화국' 임시정부(제 1 돌궐공화국)를 세우고 다시 독립을 선언했으나, 회족 군벌인 마씨가문에 의하여 개발살났다. 후에 국민당 소속의 한족 군벌인 성스차이(盛世才)가 이곳에서 집권하고 진주하였다.
성스차이는 엄청난 기회주의자로서 국민당 정부에 의해 신장성장에 임명되었으나, 신장 국경을 맞댄 소련의 힘이 커지자 소련에게 접근했고, 중국인으로서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근처인 산시성에 본거지를 둔 중국 공산당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마오쩌둥의 동생인 마오쩌민을 이곳에 연락담당으로 머무르게 하기도 했다. 이 당시 성스차이는 국민당-소련 사이에서 반독립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위구르를 동투르키스탄 소비에트 인민 공화국으로 소련에 합병시키려 하였다. 만약 됐다면 위구르는 현재 독립국가가 되었거나 러시아의 체첸처럼 중국에 무력 합병되었을거다.
그러나 독소전쟁이 벌어지고 소련이 대패하자, 갑자기 우디르급 반공을 외치며 소련인 고문과 마오쩌민을 처형하고 일본에 접근했다. 그러다가 소련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이후 부활하고 독소전쟁에서 승리할 것 같자 다시 소련에 접근했다. 그래서 스탈린에게 "잘못했으니까 다시 꼬붕짓 할테니 한번만 봐주셈"이라고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성스차이의 배신행위를 괘씸하게 생각했던 소련은 그 편지를 장제스에게 보냈고, 화가난 장제스는 성스차이를 농업부장에 임명하는 형식으로 신장성장에서 해임했다. 그가 신장에서 얼마나 해먹었는지 50개의 트럭에 온갖 사치품을 가득 싣고 왔다고 한다. 결국 동투르키스탄은 중화민국/국민정부에게로 귀속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자 곧이어 발발한 국공내전이 벌어지고, 이때 잠시 이곳의 위구르족은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제 2 돌궐공화국)을 세워 다시 독립을 선언하지만, 공산군이 승리하자 동투르키스탄 공화국 내부에서는 정치적 장래를 둘러싼 내분이 생긴다. 결국 1949년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부르한 샤히디(بۇرھان شەھىدى, Burhan Shahidi)는 중국 공산당과의 연합을 선언했고[20], 부주석이었던 이사 유수프 알프테킨(ئەيسا يۈسۈپ ئالپتېكىن, Isa Yusuf Alptekin)을 따르던 사람들은 이에 반대해 터키로 망명했다. 이로서 동투르키스탄은 중국령이 되었고, 1955년부터 신장 위구르 자치구라고 불리게 되었다. 중심 도시는 우루무치(위구르어로는 위륌치ئۈرۈمچى).
3 현황
신장 지역의 인구분포. 파란색은 위구르, 빨간색은 한족, 노란색은 카자흐족.
현재 중국의 지배가 흔들릴 경우, 가장 먼저 독립운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민족으로 꼽히고 있으나 2000년 기준으로 신장의 인구 구성비는 위구르인 835만(45%), 한족 749만(41%), 카자흐인 125만(7%), 기타 8%의 비율이었으며[21], 중국 정부의 정책으로 한족들이 정착하여 제 2의 콩 인구로 넘어서는 중이다. 티베트와 마찬가지로 머릿수에서 밀리는 상황이라 전망은 그리 밝지는 않다. 출산율의 경우도 중국공식 통계에 따르면 2명 정도로 많이 높은 편은 아니다.
같은 투르크계 국가인 터키는 내부 혼란에다 인구의 최소 10-15%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이 반란 일으켜 족치느라 바쁘고 인근 투르크스탄 국가들은 약체에다가 내부의 혼란까지 심해져 도울 형편이 안 된다. 또한 주변 이슬람 국가중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파키스탄마저 친중정책의 일환으로 위구르 독립운동 단체를 테러단체로 명시하고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기 때문에 외국의 도움을 받기도 힘들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