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좌

(본좌로드에서 넘어옴)

本座

1 인터넷 유행어

本座

원래는 본인을 지칭하는 말이거나, 무협소설이나 고전소설에 가끔 등장하는 스스로를 높여 부르는 말로 80년 중반 즈음엔 교과서에 사용되는 표준어 채택규정에 의해 삭제되어 사라진 단어 취급되었지만, 2000년대 초기에 아햏햏 코드를 타고 인터넷상에서 부활하게 되었으며, 디시인사이드에서 이른바 햏력이 높은 사람을 지칭할 때 본좌라 부르면서 유행어가 되었다.

참고로 본좌라는 말이 뜨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이 짤방이다.

500px
중국 드라마 서유기의 짤. 방송사는 舊 ABO[1]. 짤방의 인물은 아마도 황미대왕으로 추정된다.

요즘에도 '감히 본좌 앞에서 ~'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다. 거기에 2006년 말에 터진 김본좌 사건으로 인해 더욱 널리 펴졌다.

남이 써주는 경우와, 자신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원래 용법은 자기보다 아랫사람 앞에서 자신을 가리키는 '이 몸'이나 '본인' 같은 1인칭이나[2], 웹상에서의 용법은 상대의 이름 뒤에 ~본좌라고 붙여서 상대를 칭송하는 경우(예:김본좌, 허본좌, ㅍㅖㄱㅍ본좌(...) 등)와, 자기 입으로 본좌라고 칭하여 스스로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경우(예:본좌 수햏10년에 득햏하였소)가 있다. 또한 어떤 분야나 직업에서 최고의 기술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기도 한다.

반대의 개념은 막장이며, 상대방이 감히 접하지 못할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면 굇수로 진화할 수 있다.

본좌를 더 축약해 'ㅇㅇ좌'라고 칭하기도 하며(예:명민좌) 2011년 현재는 대체어가 나와서 그다지 쓰이고 있지 않다. 이라든지... 느님이라든지.

대부분의 개념을 갖춘 본좌들은 본인이 본좌로 불리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 한다. 본인이 싫어하는 경우에는 억지로 본좌라고 부르지 말자...

연세가 50세 이상인 분들의 경우 문서나 일기에 본좌라는 표현을 간간히 쓰는 걸 볼 수 있다.

본좌떡밥은 죽었어도 스타크래프트 갤러리에선 아직도 XX좌란 표현을 많이 쓴다. 햇반광고를 보고 햇반좌, 스갤 댓글광고를 보고 광고좌 이런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쪽 캐릭터가 스스로를 본좌로 칭하면 십중팔구는 셋샤 (拙者) 라는 자신을 낮추는 표현을 말도안되게 정반대로 오역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신분이 높지 않은 캐릭터가 쓰거나 겸양으로 자신을 낮출때 쓰는 표현인데 처참할 정도로 정반대의 뜻인 본좌로 써버리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한자로 봐도 옹졸할 졸 拙 자로서 겸양하고 자신을 극히 낮출때나 쓰는 표현이기에 본좌와는 거리가 멀고 셋샤를 쓰는 캐릭터들이 쓰는 문장을 봐도 본좌라는 자존망대한 표현을 쓸만큼 나르시스트적이거나 고압적인 경우는 없다시피한데 왜 이런 표현이 정착됐는지는 불명이다.

2 스포츠계의 본좌

스포츠계의 본좌급 선수들을 일컫는 통칭. 다만 구기종목의 경우 선수들의 플레이스타일과 성향이 매우 다양하여 본좌급이라는 칭호는 자주 쓰이지 않는다. 다만, 선수들이 쓰는 기술(예를 들어 축구의 프리킥, 농구의 덩크슛) 등에서 본좌 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도 한다. 구기종목에선 개인이 아닌 팀으로서의 본좌급 팀도 존재한다. 본좌라는 의미가 좋은 의미에서의 본좌 이전에 여러 방향으로의 본좌라는 칭호가 형성될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에서 전세계적으로 본좌급 칭호를 받는 선수나 팀은

전 세계적으로 본좌급 칭호를 받는 선수는

등이 있다.

2.1 지역 또는 국가

2.2 축구에서의 본좌

수많은 레전드들이 명멸했던 축구계이지만, 가장 위대한 선수 10명을 꼽을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선수 5명이 있다.

시기 순으로

이 다섯 명은 선수들의 업적도 후덜덜 그 자체인데다 국가 밸런스도 적절(...)해서 누가 뽑든 거의 빠지지 않고 첫손 꼽히는 선수들이다.

  • 디 스테파노 : 챔피언스 리그 5연패의 주역. 국적은 아르헨티나지만 클럽에서 빛나는 업적을 레알 마드리드에서 쌓아 올렸기 때문에 스페인에서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 요한 크루이프 : 발롱도르 3회 수상자이자 축구계의 혁명이라 불린 토탈 사커의 지휘자. 그 때까지만 해도 축구 변방이라 평가받던 네덜란드아약스를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월드컵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 프란츠 베켄바워 : 최고의 리베로이자 수비수. 요한 크루이프의 라이벌로, 그를 꺾고 월드컵을 손에 든 독일바이에른 뮌헨의 황제. 인기에서 밀릴 수 밖에 없는 수비수였음에도 첫손 꼽히는 것부터 그의 위엄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들 이외에도, 이들 못지 않은 평가를 받으며 레전드로 대우받는 선수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페렌츠 푸스카스, 에우제비우, 미셸 플라티니, 레프 야신, 가린샤, 지쿠, 지네딘 지단 등도 가장 위대한 선수를 꼽으라면 함께 꼽히는 선수들이지만 위 다섯 명은 넷상에서 "펠마크베디"라는 용어가 관용적으로 사용될 정도로 커리어로나 상징성으로나 이 다섯명은 축구계의 본좌 대우를 받기에 충분한 선수들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한 시대를 지배했던 이들의 상징적인 위상이 그렇다는 것이지 가장 위대한 선수를 투표한다면 펠마크베디가 5위까지 꼭 채운다는건 아니고, 위에 언급된 다른 선수들도 자주 언급된다.

2.3 야구의 타격 본좌

임이최마 같은 식. 이들은 거의 250대 홈런을 넘었다.(!) 그 중 300홈런을 넘기지 못한것은 타격의 달인 장효조와 헐크 이만수, 마포 마해영 뿐(!) 사실은 삼성 라이온즈에도 가 있다. 저기다 까지 합치면 00년대 이후 삼성을 우승시킨 본좌라인 완성. 왠지 투수도 끼워넣은것 같지만 넘어가자

삼성 라이온즈

전통적인 타격의 팀 답게 타격본좌가 가장 많다. 통합 우승 클린업이었던 장효조, 이만수[6] 현재까지도 최고의 클린업으로 불리는 이마양 등이 유명하다.

  • 장효조 - 야구계의 타격본좌 하면 4할 타율의 백인천을 제치고 가장 먼저 팬들에게도 언급되는 인물임에도 불구, 이 항목에 추가되지 않았다. 아래의 다른타자들과 달리 중장거리형 교타자지만 그 성적만큼은 홈런과 장타율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문에서 저 양준혁의 상위호환 수준. "장효조가 치지 않는 공은 볼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구안이 뛰어났으며 단 한번도 두자릿수 병살타를 친 시즌이 없다. 거기에 타격기술까지 합쳐지면서 .331/.430/.459 라는 말도 안되는 통산 스탯을 남겼다. 타율은 단연 KBO 역대 통산 1위. 그 양준혁 조차도 통산 타율이 .316, 통산 출루율이 .420 이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타격본좌였다. 덧붙여 장효조가 좌타자라는 점과 대두(...)라는 점 때문에 팬들사이에서는 장효조, 양준혁, 최형우를 엮어 좌타대두라인이라 불린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엮여서 부르는 말. 간혹 이 사이에 이승엽을 넣기도 하나 대두라기에는 머리사이즈가 애매해서인지(...) 이승엽은 이 라인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더 많다.
  • 이만수 - 삼성 라이온즈의 시작은 이만수로부터 시작된다. 한국 프로야구 1호 안타, 1호 타점, 1호 홈런, 최초의 트리플크라운 기록이라는 다양한 타이틀 등등 원년 멤버이자 97년도까지 삼성에서 활동했으며 16시즌동안 통산 타율 0.296, 홈런 252, OPS 0.907의 기록을 남겼다. 비록 삼성에서 쫓아내기는 했지만 아직도 대구팬들은 이만수를 잊지 못한다. 현재 SK 와이번스의 감독으로 활동 중. 그리고 2014년 시즌종료와 함께 계약끝, 재계약 실패.
  • 양준혁 - 살아있는 전설이자 방망이를 거꾸로 들어서도 3할대를 유지하는 타자. 93년도에 혜성같이 등장해서 처음으로 신인왕에 수상했고. 데뷔이후 한번도 놓치지 않고 100안타를 기록, 16년 연속 100안타라는 역사를 써나가고 있으며 한국 프로야구에서 최초로 개인통산 2000안타를 이루어낸 선수다. 성구회에 2번째로 가입한 멤버이자 장종훈의 홈런 대기록을 넘어선 레전드급의 선수. 99년 임창용과 트레이드 과정으로 인해 삼성을 잠시 떠났지만 2002년부터 삼성에 복귀해 한국시리즈 3번 우승을 이루었다. 2010년 은퇴
  • 이승엽 - KBO 역대 최강의 타자, 1995년 데뷔 타율 .285에 홈런 13개라는 신인으로서는 놀라운 활약을 보였으며 97년부터 본격적으로 장타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데 97년 32개, 99년 54개, 2003년 56개로 왕정치(오 사다하루)의 기록을 넘어선 영원한 국민타자. 2002년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도를 했으며, 2006 WBC와 베이징 올림픽때에 애국심으로 나라를 구해준 영웅이기도 하다. 더 이상 설명이 必要韓紙?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으로 활동했다가 2011년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2012년 시즌에 삼성 라이온즈로 다시 복귀해서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한화 이글스

  • 장종훈 - 연습생 신화, 1987년에 데뷔해 90년부터 92년까지 홈런, 타점 부문 타이틀을 3연패했으며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40홈런을 돌파, 통산 340호 홈런을 기록하는 등. 이글스의 4번타자로 자리잡았다. 비록 통산 홈런기록은 양준혁과 이승엽에게 넘기기는 했지만 그는 영원한 이글스의 대표적인 타자다.

현대 유니콘스 - SK 와이번스

  • 박경완 - 90년대 대표적인 포수이자 진갑용, 김동수와 함께 포수 트로이카로 자리매김했던 박경완. 이만수가 못다한 포수 300홈런을 기록했다.
  • 박재홍 - 호타준족의 선수로서 30-30 클럽을 3번이나 달성하고 인천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매김하였다. 때로는 사고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래도 인천팬들에겐 미워 할수 없는 선수이다. 2012년 10월 3일 드디어 300홈런을 기록했다.

OB 베어스/두산 베어스

  • 심정수[7]-너무나도 뛰어난 성적[8]을 올렸던, 크보 역대 최고의 우타자라고 할 수 있는 선수. 그러나 수술 휴유증과 부상으로 33세라는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은퇴해야했던[9], 비극적인 선수.
  • 김동주

롯데 자이언츠

해태 타이거즈/기아 타이거즈

  • 이종범 - 90년대 한국야구계를 뒤흔들었던 레전드. 30-30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1994년 타율 .393 84도루는 지금도 수차례 회상되는 기록이다. 그놈의 생고기 2000년대 초반에도 3할에 4~50도루는 거뜬히 했다.

천조국의 수많은 본좌들은 야구 관련 인물(MLB) 항목과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항목 참조. 예를 들면 이 분.

3 프로게임계에서의 본좌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라인
갓라인본좌어카게콩라인락라인짝지라인
강라인염라인투명라인역적라인SAB라인스막라인
잉여라인패왕라인0승 클럽레기라인 

600px

3.1 개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 중에서 일정 기간 동안 아무런 적수가 없었던 사람들을(흔히 '본좌로드를 걸었다'라고 표현한다.) 뜻했던 말.
당연히 어원은 1번이다. 본좌의 계보는 임이최로 칭해지며, 그 이외에 준본좌가 있다.

3.2 본좌론의 태생

최초로 스타판에서 본좌란 말은 박성준에게서 나왔다. EVER 스타리그 2005에서 이병민을 꺾고 최초의 저그 2회 우승자로 우뚝 선 박성준의 팬들은 박성준을 ‘박본좌’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후 박성준은 알 포인트, 네오 포르테로 대표되는 3해처리 강제맵의 탄압과 테란들의 기량 향상 및 스타일 파악으로 인해 슬럼프를 겪었고, 자연스레 사라지는 말이 되었다.

3.3 본좌론의 형성

이후 본좌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한 것은 마레기에 이르러서이다.

우주닷컴 MSL 우승을 시작으로 CYON MSL에서 비록 조용호에게 패해 준우승을 했으나 최연성을 5:0[12]으로 완파, 프링글스 MSL 시즌1에서 강민을 꺾고 우승, 프링글스 MSL 시즌2에서 세 번째 우승을 달성하자 '현재 최강 게이머가 누구냐'라고 하면 단연 마레기가 되었고, 마레기는 마본좌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부족했다. 이전에도 이윤열최연성과 같이 시대를 뒤흔든 강자는 나왔으나, 이윤열은 어디까지나 천재로 남았고 최연성은 괴물로 남았던 것을 생각해보라. 역사를 재편할 힘은 게이머 1인의 실력만으로는 부족했다.

여기서 거든 것은 CJ 엔투스를 창단하며 e-sports에 발을 내딛은 CJ였다. 2006년 최강의 프로게이머를 임요환 정도로만 알고 있던 대중들에게 CJ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열리는 슈퍼파이트에서 임요환을 포함 주요 강자들을 떡실신시키는 마재윤의 모습은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이후 마레기의 스타성을 발견한 CJ는 2회 슈퍼파이트에서 골든마우스를 획득한 이윤열을 초청했고 마레기는 그 이윤열마저 3:1로 꺾어버린다.

여기에서 마레기가 신화로 등극하는 스토리가 펼쳐진다.

시작은 12월 케스파 랭킹에서 이윤열이 1위를 차지한 사건이다. 이윤열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에서 우승했고 프로리그 다승순위 2위에 에결 5전전승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지만, 마레기 역시 프링글스 MSL S1, S2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프로리그 개인전 다승순위 4위로 전반적으로 더 좋은 성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다. 팬덤은 관계자들이 마레기를 탄압한다고 생각했고, 이는 다음 시즌 MBC게임온게임넷에서 나란히 롱기누스 2리버스 템플을 공통맵으로 선정하며 이러한 심적인 의심은 확신이 되간다. 여기에 MBC게임에서는 데저트 폭스가, 온게임넷에서는 네오 알카노이드가 추가로 선정되며 거들었다. 이렇게 되자 이전에는 없던, 격한 반응이 일어난다.

다만 맵의 경우에는 납득이 안 되는 것도 아닌게, MSL에서는 박태민부터 시작해서 조용호, 마레기까지 2년이 넘는 기간동안 5회 연속으로 저그가 우승했다. 게다가 저저전 결승만 두 번이었다. 이 정도로 한 종족이 득세하면 견제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고, 실제로 그동안은 견제를 해 왔다.

라그나로크라는 말도 안되는 맵에서 테란을 상대해야했던 홍진호의 시기나, 우승하자마자 다음 시즌에 3해처리 강제 맵이 깔리던 박성준도 있었지만, 홍진호의 시기에는 맵에 대한 논의 이전에 테란맵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고(테란 최약종족설 참조. 애초에 라그나로크 떡밥 자체가 임요환을 까기 위해서 후대에 발굴된 것이다.), 박성준은 그를 대놓고 까지는 않지만 그의 우승을 반기지는 않았던 팬들, 말하자면 소극적 안티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더 많았던 시절이라...

그리고 마레기는 이 상황에서 신화와 같은 궤적을 써내려가며 양대리그 결승에 올랐고, 급기야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서 이윤열을 3:1로 격파하고 우승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이때 마레기는 임요환을 계승한다. 실력과 커리어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e-sports의 아이콘을 말하는 것이다. 과거 임요환이 테란 최약종족설하에서 테란을 구원한 구세주이자 황제로써 센세이션을 일으켰 듯이, 마레기는 저그의 구원자이자 그 누구도 실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절대자가 되었다. 이 엄청난 드라마 속에서 마레기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고, 드디어 역사를 재편하기에 이른다. 일주일 천하였지만(...)인용 오류: <ref></code> 태그를 닫는 <code></ref> 태그가 없습니다 그의 천하는 1주일로 끝났다고 보는 게 맞다. 덤으로 덧붙이자면 3.3 혁명 이후 2개월동안(오프시즌 포함) 마레기는 그가 밥으로 여기던 강민, 임요환, 최연성 등에게 공식전 비공식전 등 여러 경기에서 모조리 털렸다.(...) 마레기를 완전히 나락으로 떨궈버린 흑운장은 덤</ref>

이전의 스타판 역사는 사대천왕으로 대표되는 '임요환 유니버스'였다. 강민이나 조용호, 박성준 같은 게이머들이 그 업적과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프로토스, 저그의 대표자는 박정석홍진호가 된 것은 박정석과 홍진호가 임요환과 연계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윤열이 탄압받은 것은 이윤열이 저 셋을 모두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임요환 유니버스를 붕괴시킬 가능성이 있던 게이머였기 때문이며, 최종적으로 이윤열 역시 임요환 유니버스, 즉 사대천왕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최연성은 처음부터 임요환의 제자를 자처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임요환의 세계에 편입될 수 있었다.

이 시절까지는 본좌, 누가 가장 강하냐가 화두에 오른 것이 아니라 누가 가장 '포스트 임요환'에 적합한가였다. 그런데 마재윤은 임요환과의 연결고리 없이 독보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임요환과 마재윤 사이를 이을 연결고리를 스타 팬덤들은 그 이전의 이윤열과 최연성에게서 찾았다. 임요환을 시초로 두고, 이윤열-최연성-마재윤의 커리어상의 공통점을 기준으로 '임이최'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기에 이른다.

3.4 본좌론의 기준

원래부터 본좌라는 말은 마재윤의 별명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기준 같은 것들은 사실 없었다.(박성준때 부터 나온말이 맞지만 잠깐 동안 말만 나왔었지 박성준의 별명으로 정착 되진 못했다.) 하지만 본좌가 최강자라는 의미로 바뀌게 되는데, 사실 최강자라는 말이 너무나 애매하고 주관적이어서 싸움이 일어나며 논란이 심각해지자 스타판의 팬덤들은 이러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뭔가 확실하게 정의를 내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결국 다음과 같은 기준을 만들어 낸다.

  • 1년간 개인리그 3회 우승 이상 (양대리그 우승 필수)
  • 1년간 총 승률 70%이상
  • 본좌 후보의 빠나 까들 모두가 인정해야 함

3.5 본좌론의 영향

본좌론은 스타판의 역사를 뒤바꿔 놓았다.

먼저 MSL이 진정한 의미에서 스타리그와 동급의 리그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4차 KPGA 투어시점부터 MBC게임은 스타리그 다음가는 리그로 꼽혔으며, 다른 방송국의 폐지와 맞물려 2004년 센게임 MSL을 기점으로는 MSL 역시 스타리그와 같은 양대리그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러나 인지도의 문제이든, 연출력의 문제이든 사람들에게 스타리그>MSL이라는 인식은 여전했다. 대표적으로 최연성은 3회 연속 우승을 달성했음에도 게임 내적으로는 거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임요환이나 마재윤이 그랬던 것처럼 스타판을 재편하는 것에는 이르지 못했는데, 이는 MSL의 마이너리티함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다.[13]

그런데 본좌론의 관점에서 프로게이머를 평가하는 것의 가장 큰 구성요소는 양대리그의 우승 커리어였고, 이로 인해 MSL은 드디어 스타리그와 동등한 위치의 리그로 올라갔다.[14] 물론 이는 본좌론을 만들어낸 마빡이들의 입장에서, 마재윤의 커리어가 MSL에 치우쳐져 있기 때문이었다. 우승 기록마저도 잊혀져가며 프링글스 MSL S2에서 한 번 부정당한 KPGA 투어가 다시 부활한 것은 임요환을 마재윤과 엮기 위해서 KPGA 투어가 반드시 MSL의 역사로 편입되어 인정받아야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윤열, 최연성, 마재윤이 가진 3회 MSL 우승 커리어는 과거 "테란크래프트" "맵이 너무 무난해서 힘싸움만 나온다" "우승하는 놈이 계속 우승해서 재미없다"라는 식으로 MSL에 가해지던 비판은 MSL은 실력있는 자만이 우승한다는 프리미엄으로 돌아왔다. 다시 말해 실력의 MSL, 당대 최강 MSL이라는 슬로건은 이것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15]

또한 게이머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스타일이나 매너와 같은 외적 요인을 모조리 던져버리고 오로지 승률과 커리어만으로 프로게이머를 평가하게 되었다. 예컨대 과거 본좌와 같은 커리어를 남기지 않았음에도 그 스타일이나 업적을 인정받던 조용호, 한동욱, 오영종 같은 게이머들은 '본좌로드에 실패한 자들'로 전락한 것이다. 여기에는 뛰어난 기본기를 가진 드래프트 세대들의 유입으로 게임 내적인 부분에서 스타일리스트들을 찾기 어려워지고 오로지 누가 잘하느냐만 남아버린 게임 양상도 한 몫을 거들었다. 리그 브레이커라는 말은 이러한 팬덤들의 성향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쌩신인들이 로얄로더라는 포장을 받던 것에 비해, 본좌론이 부상한 이후의 스타팬들은 오로지 5대 본좌가 누구냐에 집착했고, 본좌 후보로 여겨지는 게이머들의 길을 가로막는 게이머들의 실력에 대한 칭찬보다는 '리그의 흥행을 망친다'는 식의 비난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3.6 본좌론의 위기

그러나 결국 08년 이후 택뱅리쌍 시대가 오자 본좌론은 위기를 맞기 시작한다.

택뱅리쌍의 시대에는 이들이 걸핏하면 결승에 진출하고 또 우승하며 수많은 기록들을 갈아 엎었고, 3.3 혁명 이후 잠깐은 김택용이, 그 뒤에는 이제동이('구못쓰' 소리 듣던 시절), 그리고 그 뒤에는 이영호(소위 '갓영호')가 차례로 스타판의 패권을 쥐었다. 송병구는 커리어로는 다소 부족하나, 꾸준히 이들과 맞서며 라이벌 구도를 구축했다. 물론 대체적으로 이랬다는 것이지, 2010년의 이영호를 제외하고 4명 모두 서로를 완전히 찍어누르기 까지는 못했고 개인리그와 프로리그 성적이 영 딴판인 경우도 많았고, 하여튼 이렇게 상황이 돌아가면서 '커리어'는 기준으로서는 상당히 무력화되고 말았다.

더욱이 당시 스타판에서 가장 안티가 많은 인물 중 하나였던 이제동이 5회 우승을 달성하며 마재윤의 커리어마저 뛰어넘게 되자, 본좌급 커리어임에도 본좌로 인정받을 수 없는 이중적인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러자 본좌론의 기준은 '압도적인 절대성', '포스'로 바뀌어 버렸고, 이것은 각자의 주관성에 의해 본좌 주장이 횡행하는 코미디스러운 상황을 낳고 말았다. 택뱅리쌍은 한 경기 한 경기 이기고 질 때마다 찬양과 까임이 폭발적으로 등락하는 스갤 식의 분위기가 널리 퍼져 나갔다. 자연히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본좌론은 회의에 휩싸였고, 홍진호가 스타판의 키워드가 된 이후로는 '홍진호와 같이 본좌 이외에도 수많은 선수들이 이름을 빛내지 않았느냐'는 논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맞춰서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이 일어나서 본좌론이 위기를 맞는듯 했고, 실제로도 본좌론을 진지하게 주장하는 경우는 사라졌다. 실제로 본좌론을 가장 많이 써먹었던 스갤에서도 마레기가 조작질을 한 이후로 '야. 이젠 XX가 본좌 아니냐?'라는 말은 거의 나오지 않게 되었다. 다만 본좌론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몇년간 스타판을 지배해왔던 강한 화두였기 때문에 일종의 밈이나 문화로서 사용되는 경우는 아직도 제법 많이 보이는 상태. 이를테면 스갤에서는 xx좌라는 말을 야갤의 갑에 해당하는 단어로 많이 사용한다. 처음에는 사람에게만 붙이던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물건에도 쓰이기 시작했고, 이후로는 시간 등의 개념이나 바람 같은 자연 현상에도 XX좌를 붙이면서 놀게 된다.[16]

사실상 이제동의 커리어가 임이최마 중 이윤열를 제외하고 나머지 3명을 넘어섰는데도 본좌로 인정받지 못한 것만 봐도 본좌는 그냥 사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객관적인 커리어로 전성기를 판단해봐도, 전성기 기간으로 봐도 이제동이 임요환, 최연성, 마재윤에 부족할 것이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포스가 어쩌니, 09년도는 저그판 아니었냐는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몇몇 안티들 때문에 본좌론은 사실상 흐지부지 되어 버린지 오래다.

이후 이영호가 정말 사람 같지도 않은 미친 활약을 펼치면서 스타판을 지배하게 되자 팬들은 '이영호는 본좌보다도 위에 있는 존재다'라고 주장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게 갓라인이다. 다만 갓라인 항목에도 써있지만 이는 오로지 이영호를 띄워주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드립에 불과하다. 갓라인을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17], 갓라인에 속한 게이머도 이영호 뿐이다.

도움글

3.7 본좌론의 묘비

현재 현역 게이머는 없다.

임요환스타크래프트 2로 전향했다가 SKT T1의 코치로 이적했었다가 감독이 되었다. 이후 프로 포커 플레이어가 되었다.

이윤열스타크래프트 2 전향 후 활동하다가 2012년 6월 19일 프로게이머 은퇴를 선언했다.

최연성은 군에 입대했으며, 이후 SKT T1으로 돌아와 스타2팀의 감독을 역임 중이다.

그리고... 이 단어의 처음이자 끝이었던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누군가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채 죽음을 먹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의 환호를 즐기고 있다.

3.8 기타

일본 wikipedia 스타크래프트 항목에도 본좌의 계보라는 타이틀로 작성되어 있었다. 흠좀무. (2009년 8월 19일판을 끝으로 현재는 삭제되었다.)
외국 스덕들도 본좌 뜻을 알고 있다. 구글에 bonjwa라고 검색해보면 팀리퀴드 위키 항목이 나오고 누가 본좌인지 외국스덕들이 토론하는 글이 꽤 나온다.

게다가 독일 스타2 사이트 이름은 bonjwa.de

승부조작 사건 이전에는 임이최라는 말이 입에 잘 붙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뒤에 다른 글자를 붙여서 부르는 말이 굉장히 유행했다(예: 임이최동, 임이최택, 임이최엄, 임이최창, 임이최꼼, 임이최율희, 임이최온 등등등). 그러나 승부조작 명단 공개 이후 설사 쓰더라도 는 빼고 그냥 임이최 테란 본좌라인으로 부른다.

가끔 임이최베(팅)같이 다양한 방법으로 깔 때도 쓰인다.

4 대중매체의 본좌

이 경우 반드시 사람을 지칭하는 경우는 아니다. 흔히 본좌급 작품이라고 부르며 단순히 완성도 뿐만 아니라 후세에도 영향을 줄 정도로 대단한 경우로 이해하면 된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이렇게 있다.
  1. 한때 중국 무협 드라마를 전문적으로 방송했던 방송국이었지만 2011년에 중국어교육방송으로 장르가 바뀌면서 방송 비율이 대폭 축소되었다. 여기에서 방송했던 대표작은 양문호장, 신조협려2006, 철치동아 기효람 등.
  2. 예전에 허 모 후보님이 '내가 바로 본좌다'고 한 적이 있는데, 엄연히 따지면 '내가 바로 나다'(…)랑 똑같은 뜻이다. IQ 430이라면서요
  3. 김동성의 전성기 시절엔, 다른 선수들이 아예 이기고 싶단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김동성 항목 동영상 참조.
  4. 장거리 부문 한정
  5. 국내 및 아시아 축구 팬들에게는 공포의 알본좌라고 불리운다. 아시아 한정...이라고는 하지만 유벤투스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도 비겼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옛날 얘기.
  6. 나머지 한명은 김성래인데 타격본좌에 끼지는 못한다. 이는 부상의 여파로 선수생활을 접을뻔한 위기를 겪으며 기록에서 상당히 쳐졌기 때문.
  7. 타팀에서 개인 최다 홈런을 기록한 적도 있고 홈런왕을 차지한적도 있지만 일단 두산 쪽으로 분류한다.
  8. 2003년엔 OPS가 1.198에 BB/K가 2에 육박했다. 이게 인간이야? 그런데도 아시아 홈런 신기록과 세계 최연소 최소경기 300홈런을 친 그 사람에게 MVP를 빼앗겼다. 12할에 육박하는 OPS를 기록하고도 MVP를 못 한 선수는 야구 역사를 통틀어도 정말 몇 명 없다. OPS 1.250찍고 4할을 치고도 MVP 못한 선수도 있다.
  9. 은퇴 직전해인 07년엔 .258로 홈런왕을 했다! 진짜 장타력은 사기였다...
  10. 심정수와 마찬가지. 다만 이 쪽은 홈런왕을 차지한 적은 없다.
  11. 2011시즌까지의 기준으로 보다면 통산 홈런개수는 225개 다만 타격 7관왕의 임팩트가 강해서 이쪽으로 넣는다.
  12. 5전 3선승제 3:0, 3전 2선승제 2:0
  13. 최연성이 이후 2회의 스타리그 우승을 차지하긴 했으나, 이 시점에서 최연성은 상당부분 포스나 승률을 잃은 상태였고, 테란맵에 대한 불만이 많이 제기되기도 했다.
  14. 대신 전해지던 다른 리그, 예를 들어 WCG프리미어 리그 등은 그 정통성이나 수준을 의심받으며 듣보잡 대회로 전락하고 만다.
  15. 우습게도 이후 MSL의 행보는 이와 정반대가 되어버리지만...
  16. 시간은 스2의 편이기 때문에 시간좌, 승원좌가 햇반 광고를 따라했으니 햇반좌, 태풍 무이파이가 스타 결승전을 쓸어버렸으니 태풍좌 등등.
  17. 가끔 이영호 팬중에서 상태가 좀 안 좋은 사람들은 진지하게 주장하긴 했다.
  18. 이 게임의 명성도 명성이거니와, 전문기술을 모두 만숙을 찍을 경우 얻는 업적이름이 '본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