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구

(절영도에서 넘어옴)

밑줄은 시청 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초자치단체
자치구강서구금정구남구동구동래구
부산진구북구사상구사하구서구
수영구연제구*영도구중구해운대구*
자치군기장군

밑줄은 구청 소재지.

영도구법정동
법정동남항동1가남항동2가남항동3가
대교동1가대교동2가대평동1가
대평동2가동삼동*봉래동1가
봉래동2가봉래동3가봉래동4가
봉래동5가신선동1가신선동2가
신선동3가영선동1가영선동2가
영선동3가영선동4가청학동*


影島區 / Yeongdo-gu

600px
영도구청. 주소는 부산광역시 영도구 태종로 423(舊 청학동 48-3번지). 홈페이지

영도구
影島區 / Yeongdo District
국가대한민국
면적14.13km2
광역시도부산광역시
하위 행정구역11
시간대UTC+9
인구12만 7,978명
(2016년 7월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9,057.18명/km2
구청장어윤태
3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회의원김무성(중구-영도구)
6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홈페이지

1 개요

영 아일랜드

부산광역시의 남부에 위치한 자치구. 인구 12만 7,978명(행정자치부 2016년 7월 통계). 동으로도 바다, 서로도 바다, 남으로도 바다, 북으로도 바다 동으로는 부산만, 서로는 서구, 남으로는 남해, 북으로는 중구남구와 접한다. 1957년 구제(區制) 실시로 영도 지역을 관할로 하는 영도구를 설치하였다. 별칭은 '아일랜드'('영'의 영어표기 'Young'+'도'의 뜻인 Island가 합쳐진 일종의 언어유희)[1]
동해안과 남해안을 아우러 이르는 섬이기도 하며, 면적으로는 여의도와 거의 비슷하다.

2 지리

파일:Attachment/영도구/YI.jpg

부산광역시는 물론 대한민국의 모든 자치구 중 유일하게 오직 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구명과 동일한 영도[2]와 그 부속도서인 해양대 그 자체조도(鳥島), 태종대 남쪽에 있는 무인도인 생도를 포함한다. 조도는 영도사람들 내에선 주로 '아치섬'이라 불린다. 원래 이 섬에서 아침을 맨 처음 본다고 하여 아침(朝島)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鳥)자를 쓰는 듯.

3 역사

신라 때부터 조선시대까지는 절영도(絶影島)라고 불렀다.[3] 과거 영도에는 나라에서 경영하는 국마장이 있었는데, 절영도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곳에서 자란 은 워낙 빨라 달리면 그림자(影)가 끊어져(絶) 보이기 때문에 절영도라고 했다고 한다. 과거에는 영도가 지금처럼 시가지로 꽉 차있지 않았고 초지가 넓었으며 말 키우는 데 방해되는 맹수도 없고 서라벌에서 가깝기 때문에 말을 키우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조에는 신라 33대 성덕왕삼국통일을 이룬 김유신의 공을 치하해 김유신의 손자 김윤중에게 절영도 명마 한 필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사동국여지승람에도 926년에 후백제 견훤고려 태조 왕건에게 절영도산 명마 한 필을 선물했다는 기록도 있다.

임진왜란 이후 공도 정책에 따라 일시적으로 무인도가 되기도 했으며 독립협회러시아의 절영도 조차를 막았다는 내용으로 근현대사 교과서에도 등장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말을 키우는 목장의 섬'이라는 뜻의 마키노시마(牧ノ島)로 불렸으며, 영도대교의 개통으로 교통이 편리해져 부산 시가지의 일부가 되었으며 해방 이후 행정구역을 조정하면서 절 자가 빠지고 영도로 바뀌었다.

국내에서 최초로 근대적인 조선소가 생긴 곳이 영도. 일제시대때 미쓰비시사가 1937년 7월 10일 부산 영도에 조선중공업주식회사(현 한진중공업)를 설립. 1938년 3,000톤 급 건조대 2기, 6,000톤 급 도크를 갖추면서 본격적으로 조선업을 시작했다.

지금의 영도구는 조선시대까지 별다른 지명 없이 동래부 소속의 부속도서로 존재했으나, 1881년에 절영도진이 설치되었다. 영도구에 있는 지명의 상당수는 1885년 절영도 첨사를 지냈던 임익준이 중국전설에 등장하는 장소를 따서 지었다. 섬 중앙에 우뚝 솟은 봉래산부터 시작해서 영선동, 신선동, 봉래동 등이 그 예.

일제강점기부산항 일대가 개발되면서 점점 도시화되었고, 1934년 영도대교가 생긴 뒤 부산 도심의 일부가 되었다. 1957년 부산시에 구(區)제가 최초로 실시될 당시 설치된 6개 구 중 하나.

  • 1896년 : 행정구역 개편으로 13부제가 실시되어 동래군 사중면[4]·사하면[5] 관할이 됨.
  • 1910년 10월 1일 : 동래부에서 부산부로 개칭.
  • 1947년 10월 1일 : 일본식 동명을 한국식 동명으로 개정.
  • 1951년 9월 1일 : 부산시 영도출장소 설치.
  • 1957년 1월 1일 : 구(區)제 실시로 영도출장소가 영도구로 승격, 영선동이 영선1·2가동과 영선3·4가동으로 분리.
  • 1959년 : 영선1·2가동이 영선1동으로, 영선3·4가동이 영선2동으로 개칭.
  • 1966년 1월 1일 : 신선2동의 일부가 신선3동으로 분리.
  • 1970년 7월 1일 : 청학동이 청학1동과 청학2동으로 분리.
  • 1979년 8월 8일 : 봉래3동의 일부가 봉래4동으로 분리.
  • 1982년 5월 1일 : 법정동 경계조정으로 영선동3가의 일부가 신선동3가로 편입.
  • 1984년 1월 1일 : 법정동 경계조정으로 신선동3가의 일부가 영선동4가로 편입.
  • 1985년 12월 1일 : 동삼동이 동삼1동과 동삼2동으로 분리.
  • 1994년 7월 11일 : 동삼1동의 일부가 동삼3동으로 분리.
  • 1998년 9월 21일 : 남항동, 대교동, 대평동이 남항동으로 합병.
  • 2007년 1월 1일 : 봉래3동과 봉래4동이 봉래2동으로, 신선1동과 신선2동, 신선3동이 신선동으로 합병.

봉래동과 신선동은 언제 최초로 분동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서 확실히 알 수 없다.

4 교통

4.1 도로

4.1.1 영도의 연륙교

섬인 특성과 꽤나 많은 교통량에 육지와 연결을 위한 연륙교가 4개있다

영도대교(1934년 개통)를 통해 일찌감치 육지와 연결되었고, 일제강점기 부산부로서 개발이 된 동네다. 참고로 1966년 부터는 고정식 교량이 되어버렸지만, 교량 아래로 선박을 통과시키기 위한 도개교우와 이 다리 컨버터블?였던 영도대교 개통식 행사 시 무려 5만명의 인파가 운집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흠좀무 참고로 이 다리가 우리나라 최초이자 단 하나밖에 없는 도개교다. 도로확장을 겸해(왕복 4차선->왕복 6차선) 다시 도개교로 재시공하여 2013년 11월 27일 재개통되었고 매일 오후2시부터 15분간 도개식을 하고 있다. 타이밍에 맞춰 해경 선박도 지나다닌다

영도대교 말고도 부산대교, 남항대교, 부산항대교 를 통해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부산대교는 준공될 당시 시뻘건 타이드 아치를 내세워 지금의 광안대교 마냥 부산의 상징으로 잘 써먹다가 지금은 그냥 과거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 더군다나 지금은 보수공사로 인해 회색으로 재도색해 예전처럼 튀지도 않는다. 남항대교는 2008년 7월 9일에 개통했다.[6] 부산항대교는 2014년 5월 22일에 개통했다.

부산 항만배후도로의 일부인 남항대교와 부산항대교를 연결하는 남항·부산항대교 영도연결도로가 건설되었다. 건설 과정에서 영도구 주민과 부산시간에 이 고가도로를 두고 갈등이 깊었었다. 청계천 복원 사업 등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고가도로를 일종의 기피시설로 인식하는 분위기 까지 편승하는데다가 고가도로 노선이 남항동, 영선 1,2동, 봉래동등 나름 영도에서 상권좀 있다는 곳을 지나가는 탓에 그 지역 주민들의 반대의견이 강하다. 거기다 공사 도중 사고까지 나버렸으니...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고.

4.1.2 도로사정

온 동네가 고저차가 빡세다. 부산이 원래 산이 많고 경사가 심하지만, 영도는 그 중에서도 특별하다. 영도 출신은 다리만 보면 알 수 있을 지도...거기다 섬은 좁은데 사람은 많아서 길이 매우 좁다.(익숙해지면 차를 피하면서 걸을 수 있다. 물론 그래도 날 사고는 다 난다.)
물론 하루이틀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악하고 빡센 고저차가 있는 지역인데도 운전연습학원이 존재한다. 무려 2개씩이나!! 거기다 도로주행코스도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한다. 따라서 주행시험을 앞둔 사람들에게는 일정 지점까지 나가서 코스를 돌며, 급경사에서 코스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면허보유자들의 도로연수는 바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흠좀무

고저차가 심하고 골목길과 막힌길이 많기 때문에 경험 있는 기사분들도 영도만 들어오면 헷갈린다고 농담을 치기도 한다.

4.2 대중교통

부산광역시의 16개 자치구/군 중에서 유일하게 철도가 지나지 않는 자치구이다. 부산 경전철 계획중 하나인 영도선도 미정이고 아직 확정된 사항은 없다. 사실 교통량만 보자면 경전철이 과연 필요한지가 의심스럽지만[7] 시내버스는 노선 대부분이 영도대교부산대교를 통해 육지로 나간다. 남항대교부산항대교를 경유하는 부산 버스 1011 노선이 2015년 11월 28일에 개설되어 유일하게 영도대교와 부산대교를 이용하지 않는 노선이 되었다.

폐선된 부산전차의 영도 지선이 있었다. 영도대교가 개통된 1934년부터 1968년 폐선시까지 운행되었다. 요즘은 소식이 거의 없지만 앞서 말한 영도선 경전철이 구상 단계에 있고, 영도로 들어오는 북항 트램 노선 계획이 2014년 1월 발표되었다.부산전차의 부활?

시내버스 노선은 영도 특유의 도로구조와 버스회사에 따라서 크게 영도구 중앙의 봉래산을 중심으로 동쪽인 태종로을 지나는 노선과 서쪽인 절영로을 지나는 노선, 그리고 영도중복도로(하나길)를 지나는 노선과 북영도 일대를 관통하는 노선으로 나눌수 있다. 사실 다르게 보면 시내버스 노선이 동서로 나누어져 있다고 봐도 무방!! 여기서 태종로 노선은 크게 두개로 종점이 태종대와 동삼동 중리(부산남고등학교 앞)이다. 절영로 노선도 크게 종점이 산복도로고신대학교 부근 두가지로 나눌수 있다. 다르게 이야기 하자면 버스노선 4개로 전지역을 커버 하고 있는 셈. 물론 마을버스도 있다. 그리고 여기의 버스들은 산을 기어오르는 기행을 벌인다. 사실 산을 기어오른다기보다는 앞서 말한 빡센 고저차좁은 도로때문에 산만한 덩치의 버스가 2차선 도로를 뽈뽈거리면서 올라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영도사람들에게 이건 일상이지. 산복도로 질주하는 마을버스 한번 타고 나면 롤러코스터 까이꺼

태종로 노선의 핵심노선은 태종대 종점의 30번, 8번과 중리의 113번, 절영로 노선의 핵심노선은 85번, 508번, 6번, 7번 등등..이중 30번, 508번은 심야버스가 있다.

영도를 관통하는 노선은 부산 버스 1011이 유일하며, 영도 경유 첫 급행버스(입석금지)로 운행된다.[8] 청강리공영차고지를 출발하여 해운대, 광안대교, 부산항대교, 남항대교, 을숙도대교를 거쳐 녹산공단까지 가는 노선. 한진중공업과 영선2동주민센터 단 2곳에만 정차하므로[9] 이용할 영도주민들은 주의. 아니 애초에 1011번은 영도에서 타기 힘들다. 게다가 차량총량제 덕분에 일부 노선은 배차가 개판이 되었지.

5 특성

5.1 경제

중구, 서구, 동구와 함께 부산의 구도심으로 분류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들 지역에서는 존재감이 가장 희박하다. 태종대가 어디 붙어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부지기수다(물론 부산사람들은 다 안다).

남포동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인지 전통적으로 상권이 상당히 미약하다. 중구로 대표되는 구도심의 상권의 주 고객층이 영도구 주민들이기도 하다.

소재 주요 기업으로는 한진중공업 본사가 있다.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조선공사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가 청학동에 있다.(본격상륙함인 독도함 역시 한진중공업에서 건조됨) 사실 공기업이었던 대한조선공사는 1989년에 한진그룹으로 흡수되긴 했지만 대기업으로서 지방에 본사를 둔 기업이 흔치 않다. 다만 한진중공업 말고도 그 옆에 영세 조선소가 들어서 있어서 청학동 일대의 주거환경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꼽히고 있긴 하다. 하지만, 영도의 경제가 거의 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한진중공업이 필리핀 수빅으로 조선소 이전을 발표했을때는 노조와 인근 상인들이 들고 일어나기도…. 돈을 많이 꼴아박은 수빅 조선소에 수주량을 몰아주고 있기 때문에, 2009년 이후 영도 조선소의 선박 수주량은 0이다. 노조와 시민단체는 영도 조선소를 사실상 철수시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단 노조 지도부와 일부 노조원은 사실상 항복을 하고 업무에 복귀한 상태이나, 이에 반발하는 노조원들이 이에 반발하여 계속해서 시위를 벌였다. 3차례의 희망버스 방문을 거쳐 국회에서는 청문회가 열렸고, 해고 직원들은 이대로 꿈도 희망도 없는 나날을 보내나 싶었는데 2012년 11월 10일 재취업 형식으로 전원복직이 확정되……나 싶었는데, 위에 언급한 영도조선소 수주물량 분배문제에다 노조원에게 대한 158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으로 인한 갈등의 불씨가 12월 22일 조합원 故 최강서 씨의 죽음으로 다시 폭발하고 말았다.

한 번씩 노사문제로 떠들썩해질 때마다 정문과 담을 업그레이드 해서, 현재 한진중공업 정문은 거의 성문이 되었다.현재 콘크리트로 정문을 막아버리고 대선조선쪽은 철문으로 막아놓았다. 본격 노사공성전

5.2 관광

관광지로 태종대가 유명하기는 하지만 정작 영도구 주민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소풍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아웃 오브 안중.(가족 단위로 가끔 오는 사람들이거나 운동삼아가기도 하다만.) 하지만 2010년 1박2일 촬영장소로 다시 각광을 받고있다.(이승기이대호 선수 방문) 태종대 옆의 태종대 자유랜드내의 곤포의 집은 여름에 만남의 장소로 일품이었다. 그 당시엔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곳이 근처에 없는지라. 다만 유원지가 시설 노후화와 입장객 감소로 문을 닫아버렸고 2008년 말에 철거된 후 2010년 9월에 공원주차장으로 조성되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신혼여행 코스 중의 하나였다. 2000년대 초반 초딩들은 아마 소풍으로 태종대 자유랜드를 한 번쯤은 와 봤을 것이다. 그리고 상당히 낡고 노후화된 놀이기구를 타고 충공깽에 빠진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태종대 앞에서 을 태워주는 할아버지가 오래도록 영업하고 있었는데 2008년까진 확인했으나 2010년 이후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말등이 굽어 있었다.) 그 외에 주변 가게에서 풍선 터뜨리기 등 카니발놀이를 할수있다. 물론, 난이도는 엑스퍼트. 공기총 쏘기의 경우 총이 오래돼서 그런지 쏴도 맞질 않고, 공기총으로 쏴서 맞춰도 인형이 쓰러지질 않는다.(가게에 따라 다르긴 하다. 2015년 요즘은 꽝 없음! 이라는 팻말을 내건다. 얼마나 손님이 없으면..)

이래저래 이미 쇠락해버린 관광지의 느낌. 따라서, 개인 혹은 단체 단위로 오는 사람들은(단체 관광은 거의다 중국인&일본인 관광객들이 대다수이다.) 거의가 부산 사람이 아닌, 태종대의 현실을 모르는 타지 관광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태종대공원 내 순환도로를 타고가는 다누비열차를 타거나, 도보로체력고갈갈 수 있는 태종대등대+등대인근 자살바위는 태종대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태종대 자갈마당은 바다를보며 조개구이를 섭취할 수 있는 명소하지만 비싸고, 신용카드 사용이 힘들다는 단점)

정작 영도구 주민들은 태종대보다는 절영해안산책로를 더 많이 찾는 편이다. 계단이 많고 고저차가 심해서 걷기가 상당히 빡쎄어 운동은 잘 된다.(절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아침운동하는 인근주민들의 아침운동 코스로 잘 쓰인다. 왕복 한 번 하고나면 어지간한 산행 수준과 맞먹는 운동량을 요구하는지라…….

봉래산을 올라가는 등산코스도 잘 갖춰져 있는데(주로 남부여객 종점 근처에서 등산코스가 시작된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부산타워에서 바라보는 풍경 싸다구를 날릴 수준의 절경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풍경 보겠답시고 올라갈 바엔 그냥 용두산공원에서 5천원 주고 편안하게 엘레베이터 타고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걸 추천. 부산타워와는 또다른 절경이 바로 리아스식 해안선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쪽 끝으로 거제도,가덕도로 시작해서 다대포 송도 신선대 해운대 달맞이고개까지 경치를 감상할 수 있고 부산의 해안선을 다 볼 수 있는 곳은 영도 봉래산이 유일하기 때문에 부산타워에서 보는 풍경과는 또 다른 부산의 멋을 느낄 수 있다

국사 교과서 등에서 선사시대 유물로 중요하게 평가받는 동삼동패총이 영도구에 있다. 실제로 가보면 매우 아담한 규모로 3분이면 다 둘러볼수 있다. 이 패총의 조개유적을 이미지로 한 마스코트 영가비(영도+조가비)가 영도의 공식 마스코트로 지정되었다. 차 타고 돌아다니다 보면 심심찮게 보이는 조개껍질 모양의 마스코트 캐릭터가 그것.

5.3 교육

주요 소재 대학교로는 한국해양대학교, 고신대학교가 영도구에 있다.

한국해양대학교는 영도 옆에 방파제로 연결되어 있는 조그만 섬인 조도(鳥島)를 통째로 캠퍼스로 쓰고 있다. 흠좀무. 다만 대학가 풍경을 기대하지 말자. 참고로 말하자면 이 학교 앞에는 매립지랑 횟집 몰려있는 하리선착장이 전부다. 하지만 2010년 부터 매립지에 동삼혁신도시의 입주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선원학교로 유명했던 부산해사고등학교(舊교사는 드라마 친구 촬영지)와 해기사 양성시설로 유명한 한국해양수산연수원(구 해기연수원)이 이 학교 앞 매립지로 이전했으며, 기타 해양유관기관들이 입주 할 예정이어서, 수년 후에는 이 일대의 모습이 크게 변모할 것으로 전망된다.(2012년 7월에는 국내유일의 국립 해양테마 박물관인 국립해양박물관이 개관하였다.)
참고로 괜찮은 학교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부산내에서도 교육수준이 그닥 좋지못하다는것이 지배적이다. 이유를 들자면 영도구 특색일수도 있겠으나 어른들이 배타는직업이많아서 저소득층과 편부모,편가정도 제법 있고 맞벌이 가정이 많아서 애들을 거의 방치하다시피한다는것 영도중학교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말씀으로는 동래구,금정구에 비하면 편차가 20%이상 날거라는것 개인의견이 아니라 영도구 주민들도 어느정도 인정하는 부분도 크다.다들 착해요 공부를 못해서 그렇지.그래서 조금만 열심히 해도 선생님들이 관심가지고 잘챙겨주신다!

5.3.1 영도구 소재 각급학교

대학교

고등학교

  • 광명고등학교 (동삼동 226-118)
  • 부산남고등학교 (동삼동 616)
  • 부산보건고등학교 (영선동4가 200)
  • 부산영상예술고등학교 (신선동3가 71-1)
  • 부산체육고등학교 (동삼동 525)
  • 부산해사고등학교 (동삼동 1125-21)
  • 영도여자고등학교 (동삼동 514-13)

중학교

  • 남도여자중학교 (신선동2가 102)
  • 동삼중학교 (동삼동 331-41)
  • 부산남중학교 (남항동2가 217-1)
  • 신선중학교 (신선동3가 40)
  • 영도중학교 (동삼동 510-5)
  • 영선중학교 (신선동3가 8)
  • 태종대중학교 (동삼동 523-1)
  • 해동중학교 (동삼동 산57)

초등학교

  • 남항초등학교 (영선동4가 247)
  • 대교초등학교 (봉래동4가 18)
  • 대평초등학교 (남항동2가 65-9)
  • 동삼초등학교 (동삼동 258)
  • 봉삼초등학교 (동삼동 510-8)
  • 봉학초등학교 (청학동 389-53)
  • 상리초등학교 (동삼동 1123-11)
  • 신선초등학교 (신선동3가 76-6)
  • 영도초등학교 (신선동1가 251)
  • 절영초등학교 (동삼동 1124-5)
  • 중리초등학교 (동삼동 454-34)
  • 청동초등학교 (청학동 71-1)
  • 청학초등학교 (청학동 412-3)
  • 태종대초등학교 (동삼동 962)

5.4 정치

15대16대17대18대19대20대
영도구김형오/재선
신한국당
김형오/3선
한나라당
김형오/4선
한나라당
김형오/5선
한나라당
이재균/초선[10]
새누리당
중구-
영도구
김무성/6선
새누리당
김무성/5선
새누리당

부산광역시에서 호남 및 제주특별자치도[11] 출신의 외지인이 많은 편이다. 때문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언제나 승리하긴 하지만 득표율이 압도적이지는 않다.

지역구 국회의원으로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영도구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이었다. 무려 5선. 그것도 연속으로. 18대 총선 때 무소속 대표(!)에게 매우 아슬아슬하게 이겨서 그런지 19대 총선에는 결국 불출마했다.[12] 18대 총선때, 고가도로 논란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김형오 국회의원이 이 지역의 지지율의 악화로, 낙선할 뻔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10년이 넘는 표밭인 영도구 선거구에 출마했음에도 불구하고 서 겨우 960표 정도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퍼센티지로는 대략 1.5%차.

파일:411089.jpg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개표상황. 영선1동을 제외한 나머지 동들이 이재균 후보를 지지했다.

후임 국회의원으로 국토해양부 차관 출신의 이재균 씨가 당선되었는데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였고, 이어진 재보궐선거에서 김무성이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65%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김무성 후보는 인근 부산 남구을에서 4선의원을 지내서 영도와는 큰 인연이 없었고, 상대 후보인 민주당 김비오 후보는 영도에서 정치적 기반을 닦은 인물이다. 그럼에도 접전이 아닌 30%이 넘는 득표율차로 승리한 것은 그만큼 영도 민심이 많이 바뀌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영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노년층 인구가 많은데다 보궐선거 특성상 젊은 층들이 투표를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결국 20대 총선 때 다시 투표를 했더니 김비오 후보가 40.7%를 얻어서 낙선되었기에 김무성 후보가 당선되긴 했지만 득표율이 압도적이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

현 구청장은 어윤태인데, 이 사람은 한국프로야구LG 트윈스의 대표이사를 역임하면서 팀의 암흑기를 이끌던(?) 분이었다. 엘빠에게는 이순철과 함께 금지어 취급을 받는다나?

새누리당(보수정당) 우세지역우세정당 평균 득표율보수정당 경합우세지역우세정당 평균 득표율경합 지역각 당 경합세 득표율민주계열 경합우세지역우세정당 평균 득표율더불어민주당 우세지역우세정당 평균 득표율
남향동65.5%
영선제 1동56.5%
영선제 2동62.5%
신성동62.5%
봉래제 1동60.5%
봉래제 2동64%
청학제 1동59.5%
청학제 2동57.5%
동삼제 1동57.5%
동삼제 2동63.5%
동삼제 3동60%
  • 위 표는 지방선거의 광역비례대표 정당 지지율이나 기초비례대표 정당지지율 +α 가 되는 지방선거의 광역선거, 총선, 대선등의 1:1구도 내 각 양대 정당의 양자구도 시의 대략적 평균 지지율을 나타낸 것입니다. 실제 선거에서는 후보나 각종 변수, 구도, 후보 등의 변화에 따른 크고작은 득표율 오차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6 이야깃거리

영도에는 '영도할매'에 관한 미신이 있는데, 사람을 너무나 좋아하는 영도할매가 봉래산 꼭대기에서 영도를 내려다보며 지키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영도로 이사를 들어오는 사람은 너무나 좋아하면서 그 사람의 하는 일이 잘 되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그러나 영도 사람이 밖으로 나가버리면 그 사람은 오야시로님의 저주……, 아니 영도할매의 저주가 내려서 3년만에 쫄딱 망해서 다시 영도로 들어오게 된다고 한다. 회피하는 방법은 영도할매가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이사하거나, 할매가 잠든 새벽에 (도망치듯이)이사해야 화를 피할 수 있다고 카더라.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표준 설정이고, 소수설로는 10년 넘게 살았으면 이미 많이 살았으니까 영도에서 나가도 봐준다거나, 반대로 10년 이하만 봐준다거나 하는 말도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1년에 몇번정도 할매신이 지정한 날이 있는데 그날 이사를 하는 방법이 있다.그날이 되면 이사센터의 업무량은 폭발한다 카더라 대도시 안의 섬이라는 특수한 지리적 조건 때문인지, 이게 단순한 지역 미신치고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아는 이야기라, 영도구민은 물론 영도 밖 부산시민이나 심지어 부산 밖에 사는 젊은이들도 가끔 아는 사람들이 있다. 봉래산 꼭대기에 영도할매 바위가 있다. [13]

영도에서 출생하여 자란 학생이 대학을 영도 바깥에 있는 부산의 지역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면, 통학시 항상 바다를 건너게 되므로(물론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서 다니는 거지만) 해외 유학생이라는 농담을 듣게 된다. 아오, 내가 진짜 3년 내내 저소리 듣느라고 미치는 줄 알았다. 물론 고신대나 한국해양대로 진학하게 되면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영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

섬이라는 특성과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주특별자치도 출신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 영도다. 그래서 제주도민회관과 제주은행의 유일한 부산지점이 영도구에 있다. 활동하는 제주 출신 해녀 할머니만 150여 명이 있으며 제주 돼지고기나 고기국수 등을 파는 가게도 종종 있다.

2011년 7월 27일 집중호우로 백련사 아래 절영로 구간의 1개 차로가 무너져내리면서 교통이 두절되었다. 이 때문에 이 도로로 다니던 시내버스가 대거 태종로(한진중공업 앞 큰 도로)쪽으로 우회운행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희망버스와 겹쳐 출퇴근시간의 교통이 마비되어버렸던 흑역사가 있었다. 다행히 복구는 완료되어 교통사정도 원래대로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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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상황.

하일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인으로 귀화한 미국 출신의 방송인 로버트 할리가 처음 한국에 정착했던 곳과 현재 사는 곳 또한 영도구. 그래서 그는 '영도 하씨'라는 본관을 새로 부여받았다. 대한민국에서 영도 하씨의 인구는 2016년 현재 4명.

2014년 2월 15일 남외항에서 화물선과 유류공급선이 충돌하면서 바다에 기름이 약 23만 7000리터가 유출되었다. 이는 지난 1월말에 있었던 여수에서의 사고보다 더 많은 양이 유출되었으며 다행히 아직 해안 근처에는 기름띠가 보이지 않고 있으며 대략 양식장이나 해안등과는 6Km 떨어진 곳이고 당장 오일펜스가 설치되어 작업중이지만 하필이면 기름이 벙커C유라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흔히 영도 주민들을 다른 지역의 부산 시민들이 비꼬는 말로 "영도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다. 바다로 고립되있는 지리적 특성상, 옛날부터 주민들의 배타성과 텃세가 심했다고. 지금이야 별 상관없는 이야기다.

2016년 4월 17일. 절영산책로 해안가에서 강풍에 배가 휩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여파로 기름이 유출됐는데 영도구 공무원 및 해경이 일요일부터 나와서 방제 작업을 실시했다. 평화로운 휴일에 비상근무 걸려서 강제 출근하게 된 것에 위로를(...)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많이 정착한 까닭에 주거환경이나 도로구조가 난잡해진 부분도 있다. 정상적인 도시발전 과정을 거쳤다면 현재 해운대와 비슷한 분위가 되었을듯.

7 행정동 일람

파일:Attachment/영도구/map.jpg

7.1 남항동

관할 법정동은 남항동1가·남항동2가·남항동3가·대교동1가·대교동2가·대평동1가·대평동2가이다. 부산대교가 개통된 이후에도 한동안 영도구의 관문 역할을 했던 동네. 관할구역 대부분이 평지이나 바닷가를 중심으로 소규모 영세 조선소가 몰려있는 탓에 전반적으로 너저분하고 낙후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그래도 시내버스의 절반 이상이 이곳을 지나가는데다 다리 건너서 바로 남포동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교통 하나는 무지하게 편리하다. 제주은행 부산지점이 남항동1가에 있다.

7.2 영선1동

관할 법정동은 영선동1가이다. 영도에서 가장 번화한 곳. 영도구의 상업시설 대부분이 여기에 몰려 있다. 남항동과 마찬가지로 관할구역 전체가 평지이기도 하지만 남항동에서 볼 수 있는 조선소가 없기 때문에 주거환경 치고는 그나마 괜찮은 동네. 남항시장이 이 곳에 있다.
남항대교와 부산항대교 연결도로 확장공사(봉래로타리→남항대교까지)로 인해 8통을 중심으로 인구가 빠지고 있어 고민거리. 자칫하면 영선2동과 합쳐질 가능성도 보이고 있다.
지명의 유래는 동해에 있다는 전설상의 섬인 영주와 봉래산의 합성.

7.3 영선2동

관할 법정동은 영선동2가·영선동3가·영선동4가이다. 북쪽과 남쪽의 고저차가 엄청난 것이 특징이며, 보통 이송도라고 하면 여기를 가리킨다. 절영해안산책로의 진입로가 여기에 있으며, 특히 진입로 윗부분의 깎아지른 절벽에 주택이 몰려있는 특이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주거환경이 결단코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송도와 남해바다를 구경할 수 있기 때문에 전망 하나는 더없이 좋은 동네. 남항대교의 진입로가 이곳에 있다.

7.4 신선동

관할 법정동은 신선동1가·신선동2가·신선동3가이다. 원래 법정동의 영역에 맞춰 신선1동·신선2동·신선3동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급격하게 인구가 줄어서 현재는 행정동이 통합된 상태. 덕분에 딱 경계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쌍욕 퍼부어가며 머나먼 동사무소로 간다. 신선동1가 주민 : 봉래2동사무소와 영선1동사무소가 코앞인데! 제길! 여름 + 빡센 고저차 + 보행자 배려 제로의 도로환경과 맞물리면 가기싫다.
그게 봉래산 기슭에 자리잡은 동네가 다 그렇지만 낡은 주택이 광범위하게 널려있으며, 당연하게도 상업시설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달동네하고 비슷한 곳. 현재 이곳에 뉴타운홍보센터가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지금과 같은 불경기크리로 인해 당분간은 재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을 듯 하다. 영도구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해있지 않은 동네.
지명의 유래는 이곳에 있는 사당의 주신이 여신선이라 '새로운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뜻.

7.5 봉래1동

관할 법정동은 봉래동1가·봉래동2가·봉래동3가이다. 부산대교의 진입로가 이곳에 있어서 사실상 영도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남항동과 마찬가지로 바닷가 쪽은 영세 조선소와 창고,부두가 몰려있기 때문에 음산한 분위기를 내지만 조금만 내륙으로 들어가면 그나마 번화한 동네. 해동병원이 이 곳의 랜드마크가 된 상태.
지명의 유래는 봉래산과 동일.

7.6 봉래2동

관할 법정동은 봉래2동은 봉래동4가·봉래동5가이다. 한진중공업이 이 곳에 걸쳐있다. 그외에는 신선동과 마찬가지로 낡은 주택들이 몰려있어서 전반적으로는 낙후된 달동네 풍경을 면치 못하고 있다. 봉래2동은 인구감소로 인해 봉래3동과 봉래4동이 통합되어 신설되었다. 신선동과는 달리 바닷가를 끼고 있기 때문에 고저차가 엄청난 곳. 다만 고지대의 경우에는 부산항 신선대부두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전망은 꽤 좋은 편이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7.7 청학1동

관할 법정동은 청학동(일부)이다. 한진중공업이 이 곳에 걸쳐있다. 그외에는 신선동과 봉래동과 같이 마찬가지로 낡은 주택들이 몰려있어서 전반적으로는 낙후된 달동네 풍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청학1동에 있는 일명 '해돋이마을'은 도심속 오지마을로 소개된 적이 있다.

7.8 청학2동

관할 법정동은 청학동(일부)이다. 이곳 또한 낡은 주택들 몰려있는걸로 치면 두말하면 입아프다. 아파트가 꽤 있기는 하지만 동삼동보다는 못하다. 버스가 꽤 많이 다니는 길목이기도 하다.(8,30,88,88-1,101,113,135,186,190,심야30,영도구5번(미연장)). 영도구청이 이곳에 있다.

주요 아파트로는 한라아파트,일신마리나아파트,한일유엔아이아파트,미주아파트,원우아파트 등이 있다.

7.9 동삼1동

관할 법정동은 동삼동(일부)이다. 동삼동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관계로 영도구에서 가장 사람이 많은 동네. 동삼동의 아파트단지 대부분이 이곳에 몰려있다(이곳에 있는 함지그린아파트는 한때 부실공사 의혹을 받아 엄청 씹히기도 했다). 고저차도 엄청나지만 급경사가 많기 때문에 걸어가기에는 상당히 빡센 동네이나 주거환경은 의외로 괜찮은 편. 중리선착장과 절영해안산책로의 진입로가 이곳에 있다. 중리선착장 옆에 있는 자갈해안은 80년대 까지만 해도 해수욕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점점 자갈이 쓸려나가 지금은 해변에서 조금만 들어가도 수심이 급격히 깊어지는 수영금지구역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여름에는 해수욕하러 오는 사람이 있다.(입장료나 바가지가 없으니까. 단, 당연히 수영금지 구역이므로 수영하려면 해양안전도 미흡하다는 것도 미리 알아두자.) 자갈마당 안쪽에는 제주출신 해녀할머니들이 채집한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곳도 있다. 지명은 영도의 동쪽에 있는 상/중/하리 3개의 마을을 합친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부산 버스 113번의 종점인 영도중리는 이 곳을 의미한다.

또한 국립해양박물관이 여기 있다.

7.10 동삼2동

관할 법정동은 동삼동(일부)이다. 관광지로 유명한 태종대와 하리선착장, 그리고 한국해양대학교로 설명이 끝나는 동네. 태종대 입구에 자유랜드가 있었지만 2007년 5월 18일에 부산시의 행정명령으로 폐쇄되었다. 선착장이름에서 보이듯이 상중하리 중 하리지역이다.

7.11 동삼3동

관할 법정동은 동삼동(일부)이다. 원래 동삼1동의 일부였지만 동삼주공아파트가 있는 부분만 따로 떼서 만들어진 동네.
1,2단지가 임대아파트인 까닭에 인구가 늘어나던지 그대로일 수 있으나 줄어드는건 거의 없는 동. 상중하리 중 상리지역이다. 상리초등학교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 임대 아파트가 밀집된 지역이라 소외 계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주공아파트 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거의 급경사 지역인데 소외 계층의 거동이 많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지형이다.

8 관련 항목

  1. 다만 영도구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고령층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16년 3월 주민등록인구 기준으로 영도구 인구의 20.7%가 65세 이상이었는데, 이는 부산에서는 동구(21.9%)와 중구(20.9%)에 이어서 세 번째로 높은 순위.
  2. 면적 14.0 km²의 작은 섬이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섬 중 제주도, 거제도에 이어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섬이다.
  3. 삼국지 미디어에서 조황비전과 함께 명마로 자주 등장하는 절영과 같다.
  4. 동삼동·청학동. 동삼동의 경우 상구룡리와 하구룡리로 나눠져 있었다.
  5. 현 남항동·대교동·대평동·봉래동·신선동·영선동. 당시에는 이들 동네가 전부 영선리였다.
  6. 남항대교의 개통으로, 기존 암남동(송도)에서 영도까지 자가용으로 30분 이상이 걸리던 것이 단 3분으로 단축(!)되었다. 또한 도보로 25분 남짓이면 왕복할 수 있는 산책로가 설치되어 인근 시민들의 운동코스로 애용되고 있다.
  7. 도로가 한산하다는 게 아니다. 도로가 매우 협소해서 교통 체증이 항시대기중이다.
  8. 남항대교부산항대교자동차전용도로라 1011번 말고도 영도를 관통하는 노선을 만들려면 좌석버스나 급행버스 아니면 시외버스로 만들어야한다. 영도대교와 부산대교는 인접해있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영도/부산대교로 들어와서 남항/부산항대교를 타고 나가거나, 부산항대교로 들어와서 남항대교로 나가야되는데, 그럴 만한 노선형태가 좌석버스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외버스로 신설한다면 해운대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하여 진해거가대교를 통과하여 거제, 통영으로 가는 노선을 뚫어야 영도를 관통하는 게 가능한데, 아직까지 그런 노선이 없다. 만든다고 해도 영도에 시외버스 정류장을 만들지 않는 한 남항·부산항대교 영도연결도로를 이용할 게 뻔하다. 해운대에서 출발한다해도 진해, 거제, 통영 이외 경남방면은 훌륭한 대체재가 있고, 부산종합버스터미널이나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다면 운행경로상 굳이 영도를 관통할 이유가 없다. 아마도 안될거야.
  9. 이로 인해 1011번은 영선2동에서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유일한 노선이 되었다. 부산 버스 501 폐선 후 10년만에 영선2동에서 한진중공업 쪽으로 가는 노선이 다시 생긴 셈. 그런데 구 501번과는 달리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며, 급행버스라 요금이 비싸므로 차라리 영도우체국에서 환승하는 것이 낫다.
  10. 13.2.14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
  11. 그래서 제주은행의 유일한 부산지점이 영도구 남항동에 있다.
  12. 사실 국회의장을 지낸 의원은 차기 총선은 불출마하는게 국회의원들의 관행이라고 한다. 물론 법적으로 정해진게 아니기에 다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서 국회의장을 지낸 사람들은 불출마가 그대로 정계 은퇴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3. 이 미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는데, 625 전쟁 이후 영도로 몰린 피난민들이 전쟁이 끝나도 고향으로 돌아가지못하고 영도에 정착해버린 것이 유래라고 하는 설이 있다.
  14. 과거에 질 좋은 말을 길렀던 데서 영도라는 지명이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