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철도 환경/역사

공사중
이 문서의 내용은 2010년에 철도창설 제111주년을 기념해 한국철도공사에서 출간한 '철도주요연표'를 많이 참조하였음을 밝힌다.

더불어 [1] 이 블로그도 참고하자.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철도의 구체적인 역사가 이야기처럼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다.

1 조선 말기(1870~1910) : 개화의 상징, 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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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기관차 모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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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지어질 당시의 인천역

1.1 연표

연도일자일어난 일
1877년2월수신사 김기수가 일동기유에서 처음 일본철도 시승기를 소개
1882년1월 1일영국, 일본의 회사들이 한국의 철도 부설권을 요구
1889년이하영이 철도 모형을 고종과 백관들에게 소개하며 철도의 필요성을 역설
1892년3월 25일한국철도 건설을 위해 제임스 모스(James R. Morse) 초빙
1894년7월의정부 공무아문에 철도국 신설.
일본 외상의 사절과 함께 경부선경인선 철도 부설에 관해 논의
1895년2월청일전쟁일본군이 평양-진남포 간 협궤철도를 부설. 종전 후 철거
1896년3월 29일경인철도특허조관 체결. 제임스 모스가 경인선 철도 부설권 획득
7월 3일프랑스 피브릴르(Fives Lile) 사가 경의선 부설권 획득
7월 15일국내철도규칙 7조 재정 및 공포. 궤간을 영척 4척 8촌 5분의 표준궤로 확정
1897년1월 15일국내철도규칙 개정. 표준 궤간을 5척의 광궤로 변경
3월 22일우각동역에서 경인선 철도 기공
8월 24일일본 회사가 경부선 부설권을 획득
1898년5월 10일제임스 모스가 경인선 부설권을 일본의 경인철도인수조합에게 양도
9월 8일경부선 부설 최종 허가
9월표준 궤간을 표준궤로 환원
1899년5월 17일서대문~청량리 간 서울전차 개통
6월 17일경원선함경선 부설권을 국내 회사가 획득
6월 18일경인선의 완공 구간에서 모갈 탱크(Mogul Tank) 기관차가 최초의 시운전
6월 19일건설열차 최초 운전
6월 30일프랑스 피브릴르 사의 경의선 부설권이 소멸
7월 8일국내 회사가 경의선 부설권을 획득
7월모갈형[1] 기관차를 인천공착장에서 최초로 조립
9월 13일궁내부 내장원에 서북철도국 설치
9월 18일한국 최초의 철도 경인선노량진~인천 구간 개통
1900년7월 8일한강 교량 준공. 경인선이 서대문역으로 연장
12월 4일한국철도 최초의 운전규정 제정
12월 11일한국철도 최초의 신호규정 제정
1901년6월 25일일본의 경부철도주식회사 설립
8월 22일영등포에서 경부선 북부구간 기공식
9월 21일초량에서 경부선 남부구간 기공식
1902년3월경의선 서울~개성 구간 착공
12월 18일영남지선철도회사에서 마산선 부설권 획득.
1904년1월 3일마산선 착공
4월 9일경의선 개성~평양 구간 착공
6월 25일경의선 평양~신의주 구간 착공
1905년1월 1일경부선 전 구간 개통
5월 26일마산선 개통
9월 11일부관연락선 운행 개시
1906년1월남대문정거장 준공
4월 3일경의선 완전 개통
4월 16일초량~서대문 간 최초의 급행열차 운행
1907년4월 20일융희호 운행 개시
1908년4월 1일경부선경의선융희호 직결 운행 및 부산정거장 영업 개시
1909년12월 20일부산전차 운행 개시
1910년1월 1일호남선 착공
8월 29일경술국치
10월 15일경원선 착공
10월 16일평남선 개통

1.2 설명

대한제국의 마지막 몸부림과 그것을 끊어놓는 일본의 철도 부설.

아무리 역사 상에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이지만 철도가 근대화의 상징이라는 것까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신식 문물을 접하고 온 사람도 꽤 있었고. 하지만 잘 알다시피 이 시기 조정의 재정 상태는 거의 파탄 직전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철도 부설을 추진하지는 못하고 부설권을 미끼로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마침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후 현재 인천에 위치해있는 제물포가 개항장으로 변하자, 서울과 제물포를 잇는 철도를 부설해보고자 한다. 슬슬 일본이 위협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조정은 어떻게든 미국의 모스에게 이 구간을 잇는 철도 부설권을 맡겨 보려 했으니, 이 노선은 바로 경인선. 하지만 농간 끝에 결국 일본이 경인선의 부설권을 쥐게 된다. 뒤이어 경부선경의선의 부설권도 일본에게 넘어가며 한국의 철도는 시작부터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영향 몇 가지를 이야기해보자면,

  • 경부선의 선형 : 전통적으로 서울과 부산을 잇는 최단 경로는 영남대로(혹은 동래로)라 불리는, '서울-용인-이천-충주-문경-대구-밀양-부산'의 루트였다. 하지만 러일전쟁으로 급하게 철도가 필요했던 일본은 청주와 추풍령을 정말 애매하게 지나가는 루트를 선택한다. 이에 대해, 충주와 상주의 유림들이 반발해서라는 설과, 조령의 공사 난이도가 높아서라는 설, 다른 열강들의 대체 철도 부설을 막기 위한 설이 있다. 아마 정말 절박했던 일본은 유림들의 반대도 귀찮고, 공사가 힘들며, 이미 영향권 아래 들어온 조선에 또다른 열강들이 뻗치는 것은 더더욱 싫었을 테니 셋 다일 가능성이 높다. 덕분에 영남대로상에 위치했던 전통적인 도시들은 경부선이 지나가는 대구와 밀양 정도 빼면 모조리 몰락해버렸다. 이 때문에 천안과 충주의 운명이 뒤바뀌었고, 희대의 철도도시 대전이 탄생하는 떡밥이 되었다.
  • 서울역 : 원래 경인선의 서울 쪽 시종착역은 연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노량진역이었다. 하지만 경성을 대도시로 키우려던 일제는 도시 중앙에 간지나는 철도역 하나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한강을 건너는 철교를 지나 남대문 앞의 작은 정거장이었던 곳에 거대한 역사를 짓고 그곳에 경부선을 종착시키니, 이것이 바로 현재의 서울역 위치에 있는(정확하게는 문화역서울 284로 쓰이는 구 서울역 건물)인 경성역이다.
  • 경의선의 시종착역 : 본래 대한제국의 경의선 부설 계획에서 경의선의 시종착역은 마포였다. 하지만 일본이 부설권을 가져가면서 일본군 주둔지였던 용산으로 경의선을 끌어오게 된다. 이후 경성역을 거점역으로 만드려는 계획에 따라 수색에서 분기해서 경성역으로 가는 노선을 만들고 이쪽을 경의선 본선으로, 용산 방향을 용산선으로 분리하게 된다. 그런데 수색~서울 간 선형이 억지로 경의선을 끌어오려다보니 급곡선이라, 당대의 최대 난구간이 되었다. 바로 현재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의 서울~신촌 구간이며 심지어 이 구간은 현재도 서행을 한다(...)
  • 표준궤와 좌측통행 : 일본은 열도에선 협궤를 쓰는 주제에 한반도에는 표준궤로 노선을 깔았는데, 멍청해서가 아니라 경의선과 직결되는 남만주철도를 염두에 두고 한 설계였다. 후대 사람들 입장에서는 참 다행. 그리고 일본이 좌측 통행을 하고 있던 터라 한반도에서도 당연히 철도는 좌측 통행이 정립되었다. 훗날 도시철도법 덕분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게 좀 문제기는 하지만...

2 일제강점기 초기(1911~1939) : 전쟁을 위한 철도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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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역 개통당시의 열차의 모습(1912)

2.1 연표

연도일자일어난 일
1911년6월 1일한강 교량 준공
6월 10일군산선 이리~군산 구간 착공
7월 11일호남선 대전~연산 간 부분 개통
10월 15일경원선 용산~의정부 간 부분 개통
11월 1일압록강철교 준공
11월 10일최초의 국제열차 운행 시작
1912년3월 24일군산선 개통
1913년4월 1일최초의 야간열차 운행
7월 9일전남선 송정리~광주 구간 부설 허가
8월 21일경원선 원산 이북 구간 착공
1914년1월 22일호남선 전 구간 개통
3월 17일전라선 이리~전주 구간 부설 허가
8월 16일경원선 전 구간 개통
10월 1일함경선 착공
11월 17일전라선 이리~전주 구간 부분 개통
1915년8월 1일함경선 원산~문천 구간 개통
10월 15일남대문역 증축. 경성역으로 개칭 영업 개시
1916년7월 21일함경선 문천~영흥 구간 개통
11월 15일함경선 청진~창평 구간 개통
1917년7월 31일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서 한국철도 위탁 경영 시작
11월 1일경동선 대구~하양 구간 개통
11월 25일함경선 풍산~회령 구간 개통
1918년10월 31일 하양~포항 구간 개통
11월 1일경동선 영천~경주 구간 개통
1919년함경선 함흥~영흥 구간 개통
1921년10월 10일진해선 진해~창원 구간 착공
11월 1일충북선 조치원~청주 구간 개통
1922년6월 1일경남철도 천안~온양 구간 개통
6월 10일안성선 착공
7월 1일전남선 송정리~광주 구간 개통
12월 21일전남선 전 구간 개통
1923년12월 1일경남철도 온양~광천 구간 개통
1925경남선 개통.
1929광려선 착공.
1930광려선 개통.
1934특급열차 하카리 투입.

2.2 설명

본격 전쟁하려고 신나게 철도 깔던 시기.

그나마 이때는 일제가 좀 먹고 살만한 시기였고, 일본 정부가 미쳐 돌아가기까지는 좀 시간이 남아있던 터라, '전쟁은 보급! 보급은 철도!'라는 걸 잘 인식하고 있던 시기였다. 덕분에 일제는 한반도 여기저기에 신나게 철도를 깔기 시작했다. 물자 보급과 더불어 호남 지방의 쌀을 수탈하기 위한 도쿄행 양곡셔틀 철도들도 많이 지어졌다. 뭐 하여튼 이 때 현재 한국의 간선망이 거의 완성되었다. 이 당시에 지어진 노선들이 경북선, 경원선, 경전선, 동해남부선, 장항선, 전라선, 중앙선, 충북선, 함경선, 호남선 등. 현재에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들을 하고 있는 철도가 많다. 아, 경전선은 빼고...

그리고 질적인 성장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데, 특급열차가 투입되고 국제열차가 돌아다니는 등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게 많던 시기였다. 시기상으로는 일제강점기의 무단통치기, 문화통치기와 거의 비슷하며 식민지 근대화론에서 가장 집중하는 시기이기도 하나, 일제가 한반도의 백성들을 위해 이걸 깐 게 절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단적인 예로, 호남선의 초기 선형은 일제 기준에서 일본 본토 방향(한반도의 경우 부산역 방향)을 상행으로 잡아 호남선은 대전역에서 현재의 대전선을 타고 나가는 지선 형태로 놓았다. 애초에 호남선의 목적이 호남 지방의 곡물들을 일본으로 빠르게 수송하기 위함이었으니..이 때문에 서울을 오가는 호남선 열차는 대전역에서 기관차 방향을 바꾸는 불편을 겪었다.

3 전쟁의 혼란 속에서(1940~1953) : 한국철도 최대 암흑기

3.1 연표

3.2 설명

좆망.

정말 위 단어 하나만으로도 설명 가능하다. 태평양 전쟁 끝발, 남북분단, 한국전쟁. 더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

일단 태평양전쟁 말기 물자가 급해진, 아니 정말 있는 것은 박박 긁고 없는 것도 만들어내야 할 정도로 물자가 궁했던 일제는 결국 철도에 손을 댄다. 이 시기 수려선이나 안성선, 전남선의 광주 이북 구간, 경북선 예천~안동 구간 등을 그냥 통째로 뜯어가버렸다. 이게 다 금속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경북선의 경우 결국 영주로 연결하면서 영주를 경북 내륙의 터미널로 만들어 효율성 측면에서 전화위복이 되었지만, 수려선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전남선의 폐선 구간도 다시 돌아오지 못한 채 그냥 광주선으로 남았다. 그나마 수려선의 경우 현재는 분당선 수원역~기흥역 구간과 용인경전철, 그리고 수도권 전철 경강선, 경강선(월곶~판교 구간 및 여주~서원주~강릉 구간)이 일부 구간을 대신하고 있으며, 광주선도 대구광주선 떡밥이 있다.

이렇게 최악의 암흑기를 지나 광복이 되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나 했건만 결국 남은 게 하나도 없었다. 이 시기는 정말 개판으로, 증기기관차 돌릴 석탄조차도 없어 경부선이 하루 1왕복으로 축소될 지경이었다. 그렇다. 그 경부선이! 더 심한 경우로는 그렇게 하루 1왕복으로 운행하던 경부선마저 운행이 중단되어 경성역에서 출발하던 열차가 경인선 1왕복밖에 없던 시기도 있었다. 거기다 당시 철도 종사자들의 증언을 보면 정말 개판 5분 전이었던게, 운전할 줄 아는 사람도 몇 없고, 신호는 사람이 신호기에 횃불 들고 올라가서 직접(...), 폐색은 모두 수신호와 통표(...)로 처리했을 정도로 답이 없었다.

거기다 광복이 된 지 얼마 안 돼 남북이 분단되어버렸다. 당장 사람으로 치면 경의선은 머리만 남은 셈이 됐고, 그나마 상태가 나은 경원선도 허리가 잘렸으며, 동해북부선은 발목만 남기고 온몸이 절단된 셈이 되어(...) 끝내 현재까지 복구되지 못했다. 그나마도 어떤 개새X가 전쟁을 내는 바람에 있던 것까지 모조리 날아가버렸다. 그나마 남한에 있던 철도는 덜 손상을 입었지만 북한의 경우 제공권과 제해권을 가지고 있던 유엔군이 신나게 불바다를 만든 탓에 있던 철도까지 모조리 날려먹었다.

위에서 봤다시피 일부 인간들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떠들어 댔는데, 일단 일본이 철도를 지은 이유는 알다시피 전쟁 수행과 물자 수탈이지 결코 한국인을 위한 게 아닌 것은 온 국민이 아는 사실이고, 아니 막말로 그 철도 조차도 써먹어보지도 못하고 전쟁으로 다 날렸으니 참 역사의 블랙 코미디이다. 결국 날린 철도는 이후 남북한 정부가 '남북한 국민의 세금으로' 대부분을 복구하고 복선화, 전철화했다. 지금의 철도로 본다면 결코 그 잘나신 일제 때 '지어 준' 게 아니게 된 셈이다. 태평양전쟁 이전까지는 의도가 불순했든 아니든 한국철도의 시작과 근간에 밑바탕이 되어줬다는건 조금 인정한다만, 지금 철도는 해당사항 없다는 소리다. 즉, 우리에게 있어서 '일본이 철도를 지은 것'이 광복 이후 대한민국이 발전하는데 크게 영향을 주거나 기여하진 않은 것이다.

4 산업화 시기(1954~1973) : 간선철도 중흥기

4.1 연표

4.2 설명

1960년대가 되면서 산업화가 진행되기 시작하자, 산업화를 위하여 필요한 자원을 캐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철도가 놓이게 되었다. 문경선과 가은선, 태백선, 중앙선 등이 그러한 예. 이는 여객운송의 목적(대체적으로 근로자의 출퇴근)도 있지만, 자원을 실어나르기 위한 화물운송의 역할도 상당히 컸다.

아직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 철도는 중요한 명절 귀향 및 여행 수단이었다. 다만 속도는 느려서 서울~부산간 7시간~11시간 (정확한 시간은 수정바람) 까지 걸리기도 하였고, 자리 또한 오늘처럼 편한 자리가 아닌 서서 가거나 통로에 앉아서 가기도 하였다. 읭? 내일로, 무궁화호... 어르신들이 하나 쯤은 가지고 있는, 대전역의 가락국수 추억이나 기차 내 삶은 달걀 추억도 이 때 생긴 부분.

또한 서울로 상경하는 여공 등의 중요한 상경수단이기도 하였다. 서울역에서 내리면 으리으리한 대우빌딩(현 서울스퀘어)이 보였는데, 시골에서만 살다 서울로 처음 올라온 여공들에게는 충격과 공포 시전. 때문에 서울역 광장에서는 대우빌딩 몇 층 쳐다보면 얼마 내라.[2] 하는 식으로 여공들을 삥 뜯는 사기꾼들도 횡행하였다.

5 경제 발전기(1974~2003) : 간선철도의 퇴보와 도시철도의 탄생

5.1 연표

5.2 설명

한 때 서민들의 중요한 이동수단이었던 철도는 1980년대에 오히려 퇴보한다. 고속도로의 등장과 마이카 확산 때문. 1970년 마침내 경부고속도로가 완전 개통되면서, 서울~부산까지의 소요시간은 5시간으로 단축되었다. 바야흐로 자동차를 통해 1일 생활권이 실현된 것. 더불어 호남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등도 덩달아 개통되었다. 시외 이동 주역이 철도에서 도로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여객운송의 경우 철도를 위협하는 고속버스 가 새롭게 등장했으니... 당시 고속버스는 1인 운전기사와 1인 여승무원이 동승하는 시스템이었다. 물론 지금의 편안한 고속버스에 비교하면 현실은 시궁창. 하지만 그레이하운드(현 중앙고속)를 시작으로 동양고속, 한진고속, 천일고속, 광주고속(현 금호고속에 합병됨), 한일고속 등이 줄줄이 고속버스 사업에 뛰어들었으니, 당시에는 고속버스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셈이다. 철도는 여객운송을 고속버스에 빼앗기고 만다.

고속버스와 더불어 철도를 위협했던 수단은 다름아닌 자가용 승용차, 상위 0.1%만이 가질 수 있었던 자가용이 대중들에게 확산되기 시작한 것. 80년대로 가면 명절 중요 귀향수단이 철도가 아닌 자가용으로 바뀌게 된다. 이 흐름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마찬가지. 철도 및 버스가 확대되긴 하지만 여전히 자가용이 여객운송의 중심에 있다.

한편 화물운송에서도 철도의 역할은 위축된다. 첫째 이유는 석탄 산업의 퇴조. 강원도 남부를 중심으로 충북, 경북에 걸쳐있는 탄광들은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줄줄이 폐광되거나 규모가 축소되었다. 또한 고속도로의 등장도 그 이유다. 철도에 비해 문전연결성[3]이 높은 도로교통이 발달하기 시작하니, 화물운송을 하는데 있어서 철도는 매력을 잃어갔다. 전국적으로 촘촘히 쳐진 고속도로와 달리 철도는 그 수가 극히 적기 때문. 또한 경제적으로도 500km 이하 단거리 운송의 경우, 도로교통이 가장 효율적이다. 남한 땅 내륙에서 멀리 잡아야 500~600km 정도니... 가은선, 문경선, 삼척선과 같은 산업철도들이 줄줄이 직격탄을 맞았다. 꽤 많은 이들은 이때를 '한국 철도의 로망'이라고 곱씹기도 한다. 부산진역에 정차하는 통일호, 2010년대 들어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운행계통 등.

결국 철도는 70년대 말부터 80년대 들어 도로 교통에 그 위상을 넘겨주고 그 위상이 하락했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경향은 90년대까지도 쉽게 바뀌지 않았다.

6 현재(2004~) : 한국 철도 100주년을 지나 철의 르네상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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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도시철도 1호선 개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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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도시철도 3호선 개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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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1일 경부고속선 1차 개통식.

6.1 설명

철도의 역습

한동안 도로에 눌려 침체되었던 철도는 90년대 고속철도가 기공되면서 다시금 활력을 얻기 시작한다. 또한 분당선, 안산선, 과천선, 일산선 등 주요 광역철도들이 추가로 개통 및 연장되면서 도시철도(지하철)까지 합치면 철도가 다시금 부흥하는 시기가 90년대와 2000년대이다.

철도가 부흥하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주로 신도시 개발, 자가용의 폭증으로 인한 도로 정체 증대, 철도 및 지하철의 정시성 확보, 도시집중화로 단번에 많이 운송할 수 있는 이동수단의 필요, 자동차보다 3배 빠른 속도 등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자가용 증대로 인한 도로정체 및 도시집중화로 인한 "단번에 많이 운송할 수 있는" 이동수단의 필요가 주 원인으로 꼽힌다.

위에서 이야기한 분당선, 일산선, 과천선, 안산선 등이 1기 신도시 개발에 맞추어 개통되고, 1996년에는 5,6,7,8호선이 연달아 개통된다. 이로서 서울 지하철은 기존 4개 노선에서 총 8개 노선으로 늘어났으며, 경인선 및 경부선(수원), 경원선(의정부) 외 4개의 광역철도가 추가된다. 이후 9,10,11호선 등 3기 지하철이 2001년까지 계획되었지만 IMF크리로 망했어요...

2000년대 들어 한국철도는 다시 한 번 대격변을 겪게된다. 다름아닌 2004년의 KTX 개통. 이로서 기존 새마을/무궁화가 담당하던 여객철도운송을 KTX가 담당하여,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 으로 만들게 된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유리궁전이 늘어났다 카더라 그러나 KTX 도배질로 인하여 기존열차들이 찬밥신세가 되어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 못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점, 철도포인트의 개악, KTX 여승무원 비정규직 관련 문제, KTX와 전혀 상관없는 경춘선, 중앙선, 경전선 등의 열차 감축 등은 코레일의 새로운 문제가 되고 말았다. 또한 지하철 및 고속선 외 기존 광역철도망은 신규개통이 없었다는 점도 문제. 이 부분은 2010년대 들어 원주-강릉 철도, 경원선 월정리 연장, 여주~문경 간 철도, 동해중부선 부설 등으로 다시 추진되고 있다.

한편,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경의선과 동해북부선이 다시 연결되었는데, 이와 더불어 도라산역과 제진역이 각각 민통선 내부에 새롭게 생기게 된다. 2007년 5월 남북철도 시범운행 및 2008년까지의 화물열차 운행을 제외하면 남북간 철마는 아직 달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도라산역은 안보관광지로서 나름 이름값을 하고 있지만 제진역은 지못미...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동해중부선 개통과 동해북부선 연장을 통하여 북한과는 상관없이 제진역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들어서는 수도권 도시와 서울을 연결하는 광역철도가 본격적으로 개통되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지하철 9호선이 개통되고, 2011년에는 신분당선이 새롭게 개통되었다. 분당선 또한 왕십리~수원 까지 연장되었으며 중앙선, 경춘선, 경원선 연장, 경의선, 수인선 광역철도가 개통하였다. 수도권 위성도시의 입장에서는 출퇴근 러시아워때 막히는 도로교통보다는 정시성이 보장되는 철도가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다.

철도의 고속화도 꾸준히 추진되어 2015년에는 호남고속철도가 오송~광주송정 구간으로 새롭게 개통되었고, 2017년에는 수서~평택간 고속철도가 신규개통할 예정이다. 2018년에는 평창올림픽에 맞추어 원주~강릉 간 KTX가 새로 개통될 예정이다.

6.2 연표

연도일어난 일
2004한국 최초의 고속철도경부고속선 개통 및 경부고속철도 운행 시작.
통일호 완전 퇴역.
광주 도시철도 1호선 개통.
호남선 전 구간 복선전철화 및 호남고속철도 운행 시작.
2005대구 도시철도 2호선, 부산 도시철도 3호선 개통.
수도권 전철 중앙선 개통.
수도권 전철 1호선 천안 연장.
영동선, 충북선 전 구간 전철화.
경인선 전 구간 2복선화.
2006대전 도시철도 1호선 개통.
수도권 전철 1호선 소요산 연장.
경부선 전 구간 전철화.
2007장항선 군산~장항 구간 개통으로 군산선장항선에 편입.
남북철도연결사업에 따라 동해선 제진~감호 구간 연결. 인천국제공항철도 구간 개통.
수도권 전철 분당선 죽전 연장.
수도권 전철 중앙선 팔당 연장.
인천 도시철도 2호선 계양 연장.
대전 도시철도 1호선 반석 연장.
2008장항선 신창까지 구간이 복선전철화되고 수도권 전철 1호선 신창 연장.
수도권 전철 중앙선 국수 연장.
부산 도시철도 2호선 양산 연장.
광주 도시철도 1호선 평동 연장.
2009서울 지하철 9호선, 수도권 전철 경의선 개통.
수도권 전철 중앙선 용문 연장.
2010수도권 전철 경춘선 개통. 경부고속선 부산 연장.
서울 지하철 3호선 오금 연장.
인천국제공항철도 서울 연장.
경전선 마산 까지 복선전철화 및 경전선 KTX 운행 시작.
2011한국 최초의 경전철부산 도시철도 4호선 개통.
한국 최초의 무인운전 노선인 신분당선 개통.
부산김해경전철 개통.
수도권 전철 분당선 기흥 연장.
전라선 전 구간 복선전철화 및 전라선 KTX 운행 시작.
2012한국의 마지막 스위치백영동선 스위치백 이설.
수도권 전철 수인선, 의정부 경전철 개통.
경원선 백마고지 연장.
서울 지하철 7호선 부평구청역 연장.
수도권 전철 경의선 공덕 연장.
수도권 전철 분당선 왕십리망포 연장.
대구 도시철도 2호선 영남대 연장.
2013용인경전철 개통.
수도권 전철 분당선 수원 연장.
2014순천만 PRT개통.
수색직결선 개통 및 인천국제공항철도에 KTX 운행 시작.
수도권 전철 경의선수도권 전철 중앙선이 직결운행을 시작하여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탄생.
2015경부고속선 대전, 대구 도심구간, 호남고속선, 평택선, 대구 도시철도 3호선 개통.
건천연결선 개통 및 동해선 KTX 운행 시작.
서울 지하철 9호선 종합운동장 연장.

7 한국 철도 차량의 종류

관련문서: 열차 등급

(폐지된 열차부터 현재 열차 전부 포함)


3등 객차 비둘기호 통일호 무궁화호 새마을호 누리로 ITX-새마을 ITX-청춘 KTX KTX 산천

  • 도시철도(광역철도) 전동차는 제외하고 일반열차 종류만 서술함.
  • 1974년 열차 등급 개정 이전까지 노선마다 다양한 열차 명칭들이 있었는데 명칭만 통일되지 않았던 것일 뿐 차량은 비둘기호나 통일호 객차였다.

(비둘기호, 통일호 문서 참고)

  • 1984년 열차 등급 개정 이후로 4등급 체계 (새무통비-새마을,무궁화,통일,비둘기) 가 정해진다.
  • 2000년 비둘기호 폐지, 2004년 통일호 폐지 및 고속철도 KTX 개통.
  • 위의 6월 18일 기사에 있는 것
  • 이를테면 "3층까지 쳐다봤으니 300원 내라." 하는 식.
  • door to door. 목적지에서 목적지로 쉽게 이동시킬 수 있는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