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滅의 李舜臣 / Immortal Admiral Yi Sun-sin
KBS 대하드라마 | ||||
무인시대 | → | 불멸의 이순신 | → | 서울 1945 |
연출│이성주, 김정규
극본│윤선주, 박영숙, 윤영수, 장기창
주연│김명민, 최재성, 이재룡, 최철호, 김명수 등
해설│김종성
1 개요
충무공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KBS 1TV의 전 대하드라마. 2004년 9월 4일부터 2005년 8월 28일까지 주말 사극으로 총 104화가 방영되었다.
2014년 영화 명량의 인기로 인해서 9년 만인 2014년 9월 1일부터 2014년 10월 28일까지 매주 월 ~ 목요일에 재방영했었다. 방영내용은 이전의 내용을 33회로 축약하며, 전문가의 해설을 추가로 덧붙여 재편집하여 방영하였다. #
참고로, 유튜브 Drama KBS 채널에서 2015년 12월 26일까지는 다시보기가 가능하였으나, 그 다음날인 12월 27일 이후로는 다시보기를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KBS도 그날(12월 27일)부로 유튜브 영상 국내 서비스를 중단해버렸기 대문이다. 선생은 앞으로 유튜브에서 불멸의 이순신을 다시 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 화질 영 안 좋은 KBS 공식 홈페이지에 가서 보셔야 한다는 것이오!
1~25회
26~50회
51~75회
76~100회
101~106회
2 원작?
원작은 소설인 '칼의 노래'와 '불멸'로 보도되었다. 칼의 노래는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당시 베스트셀러이고 김탁환의 불멸은 디시 도서갤의 어느 유저의 말에 따르면 전쟁사 매니아들이라면 찾는 숨겨진 두 가지 걸작으로 알려진 작품[2]이었다. 다시 말해 잘 안 알려진 원작이라는 이야기.
사실상 후술할 내용에서 김훈이 자신의 작품 이름을 빼달라고 하긴 했지만 칼의 노래와 겹치는 부분은 첫회의 고뇌 장면이나 명량해전 전야부분. 사실상 이름만 빌려준 셈이고 대부분의 내용은 김탁환의 불멸에서 따왔다.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인, 원균 맹장론, 거북선 침몰[3], 역적가문, 겁쟁이를 넘어선 천하의 개쌍놈[4] 이순신이라는 요소[5]가 포함된 것이 그것이다. '불멸'의 내용에서 그러한 요소가 나온 걸로 보아 해당소설에서 차용된 것으로 보인다.
김탁환의 불멸의 경우는 사실 김탁환이 연작으로 구상한 허균에 대한 이야기에서 중간 부분에 해당되는 이야기, 김탁환은 허균이 조선을 개혁으로 이끌 반항아이자 혁명가로 묘사했기 때문에 마지막 부분에서 허균이 이순신에게 역성혁명을 유도하는 발언을 하고 이순신은 거기에 솔깃해서 가담하려다가 일이 잘못되어[6] 전사를 가장해 자살하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문제는 이 작품이 드라마화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상당히 많은 독자들과 역사 덕후들의 비판을 받았고 결국 드라마를 위해서 개작한 10권짜리판으로 개정되었다.[7] 드라마의 독자적인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넣었고 이순신도 인간적이지만 천하의 개쌍놈은 아닌 것으로 변형, 다만 이순신 가문 역적론[8]이나 원균 맹장론은 그대로 수록했다.
다만 김탁환에 대해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김탁환식의 역사 인식은 미국의 포스트모던형 대하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실지로 고어 비달의 "미국 제국사"[9]등에서 묘사한 역사 서술방식, 즉 역사적 사실과 현대의 정치사를 (어느정도의 왜곡을 가미해) 묘하게 대입하는 방법이나 인물묘사 방법[10]이 비슷하다. 다만 고어비달의 경우는 적어도 현존하는 역사기록을 대조함으로서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서 성실하게 반응하고 토론하는 반면, 불멸에 나오는 그 많은 기록에 대해서 김탁환은 거의 무응답을 하는 편.
3 비판
아무래도 한국역사상 최고의 영웅 중 하나로 꼽는 인물에 대한 드라마이니만큼 그 관심이 매우 컸고 관심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면들이 보여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대부분은 고증에 대한 비판이 많고 플롯상의 헛점(몇몇 인물들의 중도하차/공기화, 잦은 노선 변경 등)이 뒤를 잇는다.
처음 홈페이지 인물소개도나 기획의도에 의하면 나름대로 명나라나 일본측 인물들도 기존의 스테레오 타입 대신 선인과 악인을 골고루 배치하여 균형을 잡으려는 기획의도가 있었다고 하나 이순신 영웅 만들기의 일환으로 일본군 장수들이 이순신에게 매번 캐발리고 "(이를 악물며)이이이순신, 이이이이이이이순시이이이인~!!"이라고 이를 가는 로켓단스러운 패턴이 반복된다(...). 거북선! 백만 볼....아니 물대포!! 물론 몇몇 일본 장수는 나름의 개념을 가진 모습도 나오나 대부분은 007 영화의 악역을 못 벗어나는 게 문제. 다만 이 정도였는데도 왜군을 미화한다고 비판이 빗발쳤으며, 사실 훨씬 이전에 방영된 조선왕조 5백년에 나온 수많은 일본측 인물들에 대한 묘사[11]가 더 입체적인 걸 보면 작가의 역량 문제일 수도 있다.
또한 작품이 진행되면서 조민기등 배우들의 이탈 및 설정 문제로 1~5화에 나온 장면이 후반부에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나온다. 참고로 김명민의 목소리 톤이 확연히 달라지는데 연기를 하면서 나이에 따른 목소리를 내기 때문.
이순신이 녹둔도 전투 이후 여진족장을 사로잡아 부하들의 복수를 하고 백의종군을 끝낸 뒤 부하들의 무덤 앞에서 "나는 다시는 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하는 장면은 감동적인 연출이 돋보인다. 문제는 이 장면도 심각한 고증 오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녹둔도 전투는 패전이 아니다. 녹둔도 전투의 양측 병력규모와 전과를 살펴보면 이건 아무리 낮게 쳐도 무승부다. 이런 전투를 무슨 이순신 인생의 최대 트라우마 쯤으로 만들어놓고 일개 만호인 정운이랑 만호도 못되는 이운룡이 전투를 가지고 상관인 이순신을 모욕하는 전개까지 집어넣었으니... 참고로 둘 다 원균+이일 같은 무개념인은 아니다. 특히 이운룡은 나중에 7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는 정도의 인물. 문제는 원균의 최후마저도 장렬하고 감동적이다(...). 원균 역할을 맡은 최재성의 연기력이 원균의 이미지업에 기여한면은 있으나 최재성과의 인터뷰에서 드러났듯 배우 본인도 원균맹장설에 영향을 받아 연기했기 때문에 왜곡된 미화의 혐의를 벗기 힘들다. 그래도 깔건 깐다, 좋은 예로 상찌질이 이일도 납득하는 상황을 원균은 불렀으면 잡아버리면 끝이지 왜 번복하고 Gi Ral이삼?이라는 식으로 상황판단 제대로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식으로 은근히 깔 건 다 까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전격 사극의 탈을 쓴 원균 찬양의 왜곡드라마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원작 소설부터 그랬지만, 원균과 이순신의 관계가 형님과 아우로 그려지고, 어린 순신이 원균 시다바리였다는 식의 묘사는 길이길이 까일 단초를 제공하였다. 제작진 관련자에 따르면 처음 역사고증을 위해 초빙한 전문가(?)가 하필 원균맹장론을 믿는(…) 사람이라 그렇게 된 거고 이후 제대로 된 사학자에게 "너님들 지금 무슨 짓 하는지 알기나 함?"이란 말을 듣고 열심히 수정해 나갔다고... 덕택에 그 이전까지 호방(?)하고 털털(??)하던 원균이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임명된 이후 역사대로 본격적인 찌질이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초반의 여파 때문에 원균을 역사에 부합하는 찌질이로 완전히 만들기는 힘들었고, 결국 잘 만들었음에도 역사 왜곡 드라마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는 원균역의 최재성 배우의 포스도 한 몫했다.
그 결과 드라마 안티 사이트인 필멸이 만들어졌으며, 임진록 게임 카페에서 불멸 안티 카페가 된 부흥 카페는 나중에 역사 카페로 크게 흥해버린다.[12]
한국 사극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인 주인공 주변인물 바보 만들기(...)도 꽤나 심각하다. 충무공 이순신이 함대 포격전에 대해서 말만 꺼내면 반대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적과 싸우는데 배는 무슨 쓸모가 있으셈?, 안전하게 싸워서 뭐하게?라는 식으로 반발하는데, 이사람들이 정말로 정신이 있다면 대마도 정벌때에도 해안선 방어선을 바다에서 포격한 후 상륙작전을 감행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이런 소리 따위를 하지도 않을테고, 죽을 땐 죽더라도 시작은 안전하게 전투를 해야 피해도 적을 것이라는 것을 무과를 통과해서 군인이 된 사람들이 모를리가 없다. 돌대가리 원균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머지 장수들도 너무 주인공의 이미지를 띄어준다는 취지 아래에서 상식부재로 만들어버렸다(...). 다만 드라마다보니 이러한 갈등없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다면 극의 흥미가 떨어지기때문에 억지로 갈등요소를 집어넣는 것도 고려해야한다. 그 와중에 구루시마나 와키자카는 버프를 먹었다
드라마에서 채용했던 이순신 쿠데타론이나 자살설 등이 있었을 법한 가정이나 기정사실처럼 받아지는 것도 부작용이다. 이순신 항목을 참고할것.
드라마 종영 이후 제작 관계자 중 누군가가 "이 드라마는 만들어지지 말았어야 할 드라마"라고 언급한 발언을 담은 기사가 있었다. 기사의 맥락으로 볼 때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너무 사전계획이 자주 변경되고 출연자들을 막 굴려가면서 주먹구구로 찍은 일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발언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규리 같은 경우는 중요 설정에 비해서 나중에는 거의 공기 비중이었고, 이영남의 경우는 동귀어진하려다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덕수이씨 종친회장은 이 드라마를 시청한 후 탄원서 제출이나 방송중지 가처분신청 등 용단의 조치를 취할 생각을 할 정도로 노발대발했다.
임진왜란 시기에 일본 극우들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망언을 하여 반일감정이 고조되는 영향으로 시청률이 상승하는 효과는 보았지만 옥포해전이 재탕 편집으로 논란을 일기도 했다.
김훈은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방송국에다가 '칼의 노래'가 원작이라고 써져 있는 부분을 지워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주연 김명민이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이 '칼의 노래'에서 나오는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말한 것을 생각하면, 문제가 심각해졌다.
신진 사극작가들이 투입되고 이전의 KBS 정통사극들과는 좀 궤를 달리하는 면이 많이 보여서, 익숙하지 않은 요소가 기존의 시청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한 면도 존재했다.
4 특징
문제점이 있더라도 불멸의 크리넥스라든지 역사적인 고증 오류들을 제외하면 명작이라는 호평이 많았다. 일단 빠른 전개를 들 수 있다. 이는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의 평에서도 종종 언급되는데, 상대적으로 KBS의 정통사극에 비해서는 전개가 빠르고 감정선의 굴곡이 크다. 이는 트랜디한 사극들을 비롯한 비교적 최근 사극의 경향이며 이 드라마도 새로운 사극 시청층의 입맛에 맞는 편이다. 당시 이순신으로 캐스팅된 김명민이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주었고 그 덕분에 많은 젊은층들이 사극에 관심을 갖는 계기도 되었다. 정통사극으로는 드물게 부녀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
CG 활용 역시 많이 칭찬받는데 요즘 보자면 상당히 어색한 CG이지만 당시 한국 드라마에서 이 정도로 CG를 적극 활용한 경우는 없었다.[13] CG는 해상전투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총통을 발사하거나 수많은 전선들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물론 육지에서의 전투도 CG를 많이 활용했다. 다만 방영 도중에 제작비수급 문제로 CG의 활용과 촬영규모는 초반과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고 중반부에는 조금 부실한 편이다.
또한 한국 사극 매니아들 사이에서 전투신 볼만한 사극 추천해달라면 높은 확률로 추천받는 사극이다. 해상전의 경우 동일소재였던 MBC 조선왕조 오백년 임진왜란편의 미니어쳐 전투신과 달리 CG를 적극 활용한 전투신을 보여주었는데 퀄리티가 나쁘지 않다. 함포 사격때 일부러 고증을 무시하면서까지 대포알이 폭발하도록 표현하여 격렬한 전투를 묘사하였다.[14] 단 문제점은 해상전을 지휘하는 함장과 제독등의 지휘 구호와 지시가 대부분 "발포하라"와 "사격하라"거나 "힘을 내라" 등 고무하는 것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배의 선회각도나, 포격지점, 닻과 노, 돛의 상세한 조작에 대한 지시등이 없으며 총대장이자 제독격인 이순신조차도 각 함선에 대한 지시가 부재하거나 모자라다. 이점은 육지전에서도 마찬가지
그밖에 녹둔도 전투를 제외한 이순신 장군과 관련없는 육지에서의 전투도 괜찮은데[15], 용인 전투, 이치 전투, 진주성 전투, 평양성 전투 등 지상 전투들을 상당히 공들여 찍었다. 문제는 제작진이 공들여서 찍었다는 것이지 시청자들이 보기에도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며, 상술했듯이 총 제작비 분배가 잘못되어 제작비 수급이 부족하여 육지전투 중 몇몇은 인원부족이 두드러지게 눈에 띌 정도였다. 개중에서 충분한 cg로 커버된 것이 많지만, 그것조차 모자랐던 신이 많다. 어찌됐건 이런 전투신의 발전은 후에 대조영에 이르러 정점에 이른다. 그러나 근초고왕에서 이런 노하우를 깎아먹었다.하지만 정도전으로 부활했다가 징비록에서 크게 너프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전투시 먼치킨 장수들의 무쌍난무가 나오긴 하나 보통 사극에서 장수들에게 픽 하고 베이는 졸개역할만 하던 졸병들에게 비중을 많이 뒀다. 전투 장면에서 병사들끼리 엎치락 뒤치락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식. 그리고 용인 전투 장면의 경우 보통 사극처럼 도망갈때 그냥 후다닥 도망가는게 아니라 몇몇은 가다가 넘어지고 쓰러진 동료 부축하다가 같이 베어죽거나 하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명량 해전에선 낫으로 미친듯이 일본군을 패죽여대는 분노한 조선수군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에다 졸병들만의 액션도 많이 나온다. 몇몇 병졸들은 아예 약방의 감초격으로 비중이 상당히 높다. 가끔은 장수들보다 졸병들이 더 잘 싸우는 느낌이 들 정도. 하지만 이후 나오는 사극들은 이런 장면들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잘 언급되지는 않지만 의외로 액션이 나쁘지 않다. 장수의 통상적인 가로세로 베기에 갑옷입은 잡졸들이 픽픽 쓰러지는 전통적인 묘사도 많이 나오지만 적의 허리에 꽂힌 칼을 뽑아서 찌른다거나 밀착 상황에서 장도를 짧게 잡고 목을 벤다거나 하는 창의적인 액션도 심심찮게 나온다. 칼에 꽂히기 직전 발로 적을 차서 공격을 저지하기도 하며 창을 들고 어깨를 서로 맞춘 병사들이 칼을 든 적들을 협동해서 찌르거나 넘어진 상황에서 죽창으로 다리를 타격해 넘어뜨리는 것도 예전 사극에서는 잘 안 나오는 '현실적인' 액션이었다. 1화나 100화의 황세득의 칼부림이나 104화의 배 위의 액션은 특히 볼만한 편.
다만, 이렇게 개개인의 무력이나 액션의 묘사에 치중한 나머지 집단전으로서의 특징은 전혀 못살렸는데, 당시 한국사극들 공통사항이지만, 육지전에서도 특별히 대열없이 싸우고, 연출이나 안전상의 문제였는지 혹은 노하우의 부족인지 거의 대부분의 전투씬이 개인과 개인의 격투씬 위주였다. 다만 이 특징은 이 작품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 연출풍토가 전체적으로 그런탓..
시나리오 작가의 특징인지 몰라도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묘사 및 극적 긴장감이 탁월한 것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녹둔도 전투에서 조선군 진지가 여진족에게 함락되는 편에서 방어측의 처절함에 대한 묘사는 시청자들에게 '있었을법한 현장감'을 느끼게 해준 모양이다.[16] 이 장점은 칠천량 해전에서 명량 해전 종료 때까지의 편에서 극대화 되었다. 여기에는 영상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OST도 한 몫 했다. 굳이 시대를 감안하지 않아도 음악의 퀄리티는 대단히 훌륭한 편이다. 거북선 출격 브금은 흡사 거대로봇이 진격할 때 나오는 음악 같다 카더라
또한 예고편의 수준이 상당히 높다. 옥포 해전, 명량 해전 등의 해전이나 진주 대첩 등 중요한 지상전의 예고편에는 예고 영상과 함께 전투에 대한 의미를 담은 문구를 집어 넣는데, 특유의 함축성과 배경 음악이 잘 어울린다. 명량 해전과 노량 해전에서는 원작 중 하나인 칼의 노래에서 그 문구를 따오기도 했다. 명량해전 예고에서는 '오라, 나의 적이여, 물살 우는 울돌목으로'라는 부분이 있고, 노량해전에서는 '오라, 아득한 적이여,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라는 부분이 있다.
세키가하라 전투를 예견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와키자카 야스하루에게 "임진왜란 때려치우고 너는 내 부하가 되셈"이라는 발언을 한 것이다. 실제로 와키자카는 임진왜란 종전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도 다카토라, 가토 기요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 구로다 나가마사등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출병을 갔던 다른 무장들이 동군으로 편을 서자 덩달아 동군으로 편을 섰다.[17] 이는 암시 하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이순신과의 경쟁에서 정정당당히 겨뤄 승리를 하기 위해 고뇌하는 장수로 그려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차피 승산이 없는 싸움따윈 일찌감치 접으라고 종용하지만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전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순신과의 대결을 피하지 않는 남자다운 모습으로 묘사했다.
캐릭터성도 상당히 칭찬해줄 만하다. 녹둔도편의 수하들의 캐릭터 빌드업이라든지, 고니시 유키나가, 그리고 원균마저도 상당히 입체적인 캐릭터를 그려낼 수 있었다. 특히 원균은 까이기도 하지만, 맹장설을 유지하면서도 찌질함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꽤나 개연성 있는 캐릭터 체인지를 주려고 노력한 모습도 보였다.
거기에 조선시대를 사극이지만 배경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조선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일본과 명나라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한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특히 조선 사극 역사상 최초로 오다 노부나가가 등장했다는 점은 상당히 기념비적인 요소이다. 이 오다 노부나가 역에는 야인시대에서 김영태 역을 담당한 바 있는 박영록이 담당했다.
무엇보다도, 전투씬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아주 일품이다. 작중 배경 자체가 임진왜란인데다가, 조선의 암담하기 그지 없는 내부 상황, 적에게 유린당하는 백성들, 그런 적과 맞서싸우기 위한 장수들의 고뇌와 준비조차 여의치 않은 암울한 상황, 그에 반해 강대하기 그지없는 적의 모습 등을 묘사하는데 상당히 공을 들였기 때문에, 적과 맞서싸워 승리하는 전투씬은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준다.
아무래도 좋은 사실이지만, 이 사극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주, 조연 할 것 없이 꼬박꼬박 투구를 쓰고 나온다! 물론 간혹가다 안 쓰는 경우도 있지만[18], 대부분은 그렇다. 최근에 고증면에서 꽤 호평받은 정도전조차도 투구를 잘 쓰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5 이야깃거리들
- 2004년 무렵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의 문제로 중국에 반일감정이 고조됐을 때, 이 드라마의 1~4화의 분량을 인터넷을 통해 보고 자국 방송국에서 수입해줬으면 하는 중국 쪽 네티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 화려하면서도 자주 등장하는 해전씬들에 혹한 서양 쪽의 팬들도 있는 모양. 일본 2ch에서는 '비열한 가토 기요마사가 정의로운 이순신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건가…. 왠지 보고 싶을지도'라는 식의 반응이 있었다(...)
자폭물론 가토 기요마사는 역사상으로도 그랬듯이 작중에서 이순신과 직접 대면하여 싸운 적은 없다. 이순신 때문에 보급로가 끊겨 화내는 장면은 있었지만.수군vs육군
- 워낙 이순신의 실제 인생 역정이 드라마틱한지라 시나리오상의 논란이나 이런저런 고증 오류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하던 외국인들에게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드라마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순신 장군 본연의 위대함이 드라마의 문제점을 꿰뚫고 튀어나오는 상황(...).
- 총 제작비는 350억 ~ 400억 수준으로 이 정도의 제작비라면 중반 이후 30%는 꾸준히 유지했어야 제작비를 만회하고 수익을 얻을수 있는데 몇몇 전투나 마지막회를 제외하곤 30%를 넘기지 못했다.
- 원래 이순신 역은 최민수, 송일국, 정준호 [19]등이 물망에 올랐었다. 그리고 당시 무명배우였던 김명민이 이순신 역으로 낙점 되었고 이 선택이 김명민이라는 노력파/연기파 배우를 음지에서 끌어올리게 되었다. 이 작품을 계기로 김명민이 대상을 받고 서서히 뜨기 시작했고 하얀거탑과 베토벤 바이러스 등으로 연기 본좌의 반열에 올라섰다.
- 다른 사극 3편과 함께 일본에 수출되었다.
야 신난다.한류에 관심없던 일본 중장년 남성층의 관심을 모았으며, 한국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위대한 인물의 일대기는 비록 자국군을 패퇴시켰더라도 감명을 준 듯하다. 오히려 일본에서 듣보잡인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바람에 "이만큼이나 분전한 맹장을 우리가 몰랐었다니 부끄럽다"는 감상도 있었다고. 사실 이건 이 드라마에서 좀 과장되어서 그런거고 그렇게까지 유명한 장수는 아니었고, 실제로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장수들 중 진정 유명한 장수들은 이 드라마에선 잘 나오지 않았다. 와키자카의 경우 이순신의 라이벌 캐릭터가 되는 바람에 엄청난 버프를 받은 셈.[20] 특히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의 대장선과 맞장뜨러 가다가 전위군이 조란환에 맞아죽으며 그를 보호하자 그 전위군을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양편으로 밀쳐 치워버리고 당당하게 앞에 서는 장면은 그야말로 폭풍간지. 일본시청자들의 감상중 하나구로다 가쓰히로는 "한국은 일본에게 빌빌거리기 때문에 그렇다"며 씹었지만 이 인간 하는 소리들이 다 이런 수준이니 무시하자.또한 이 드라마 내 해전 장면 중 일부는 일본 사극에서도 쓰였는데, 엄연히 KBS 측으로 NHK가 허가받은 것이다.
- 이렇게 많은 오류들로 인해 비판도 많은 드라마이긴 하지만 연기나 대사, OST 등에서는 수작으로 평가받을 점이 많아서 수많은 팬들을 양산해 냈다.
일명 불빠. 디시인사이드에 최초로 생긴 드라마갤러리가 불멸의 이순신갤이기도 하다.윤 작가 사극 드라마의 공통점인 것 같기도 하다.
- 이들은 보통 불빠[21]라고 부르며 디씨인사이드 불갤(불멸의 이순신 갤러리)에서 유명한 짤방들을 배출하고 디시 전체 갤러리들 중 활동량으로 치면 순위권에 들었을 정도. 불갤의 불빠들을 주축으로 강력한 요구 덕분에 거의 무산되어 가던 OST를 포함한 DVD가 발매되었다. 하지만 OST는 포함되었으나 드라마는 축약본으로 편집되어 많은 실망을 샀다.
- 그리고 여기서 갈라져 나와서 김명민갤을 세우게 되는데 불갤러들의 무수한 짤방러쉬와 사람들의 수많은 댓글에도 불구하고 김유식이 끈질기게도 갤을 만들어주지 않자, 만두 조공을 통해서 갤이 겨우 만들어지게 되었다.
- 미국인 온리 콤판은 이 작품을 보고 감동해 관련서적을 뒤지고 관련지역에 직접 방문조사 등을 해 시나리오를 만들고, 여기 다른 여러 사람들이 살을 붙여 만화 '이순신 : 전사 그리고 수호자'를 출간했으며 2015년 11월 국내에서 싸인회도 했었다.유튜브 영상 미국의 한 판타지 소설 작가도 인터뷰중에 이 드라마를 언급하며 보편적인 비극적 영웅상에 대한 표현으로 평가했다. 실제 이순신에 대한 짤막한 언급으로 보아 드라마적 각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드라마가 묘사하는 영웅담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듯.
- 등장인물의 90%가 남자고[22], 나름대로 미/호남형인 얼굴이다 보니 사극으로서는 부녀자 계층이 활발히 활동한 사극이기도 하다. 당연히 역사적 인물이자 성웅인 이순신을 BL 소재로 쓴다고 반발도 있었지만 부녀자들은 그런 거 상관 없이 커플링 활동을 계속 했다. 국내 온리전도 개최되었다. 국내 최초&유일 정통사극 온리전. 이후에 많은 사극 동인행사가 열렸지만 '퓨전사극' 말고 '정통사극'이 동인에서 활발한 적은 없었다.
- 여담으로 주인공인 이순신 역을 맡은 김명민 씨는 정작 이 작품에 출연한 성인 남성 배우 중에서는 광해군 역을 맡은 이준을 제외하면 가장 연소자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설정상 한참 나이 차이가 나는 날발 역을 맡은 이한갈 씨도 김명민 보다 1살 연상.
- 무수한 까임을 받는 불멸의 작가인 김탁환은 해군사관학교에서 교수를 맡았던 일이 알려져 어이없다는 반응들이 나왔다.[23] 더욱이 SBS에서 나온 프로그램 방영 내용 중 해사 방문했을 때 사관생도들이 환영하는 장면에 어이가 없다는 이들도 생겨났다. 사실 불멸이 비난받는 것도 한국 해군 수뇌부의 무개념적 환영행사가 불난 집에 기름 퍼부은 꼴이나 다름없다. 다만 작가로서의 실력은 탁월하여 이광수의 환생 아니냐(...)는 말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 드라마의 주요 무대인 전라 좌수영, 경상 우수영, 행궁, 왜군 진지 등은 전북 부안군의 드라마 촬영장에 세트를 제작해 촬영했다. 드라마를 제작하기 전 촬영장 후보지로 이순신과 관련있는 지역인 전남 여수시, 경남 통영시 또한 고려했으나 세트장 및 교통 여건 등을 고려해 볼 때 부안군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 2005년 KBS 연기대상은 대상을 줘야 할 사람이 넘쳐날 정도로 대박이 터진 드라마들이 넘쳐났던 시상식이었다. 당시 함께 출품된 작품들이 해신, 쾌걸 춘향, 부활, 장밋빛 인생 등이었고, 대상후보로 거론된 사람들은 최수종, 손현주, 엄태웅, 최진실, 송일국, 김해숙, 수애 등이었다. 당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김명민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상후보로 거론되지 않을 만큼[24] 김명민이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줘서 대상을 누가 받을지 시상식 전부터 다들 알고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김명민 뿐만 아니라 그 아역을 맡았던 유승호는 아역배우상을 받았고, 무명배우였던 박철민도 이 작품으로 상을 받으면서 재조명되었다.
- 똑같은 시기를 다룬 징비록이 2015년 2월 14일부터 방영 되었는데 이 작품에 출연한 주요 배우들 일부가 가토 기요마사 역의 이정용, 권율 역의 김영기을 제외하고 징비록에서 다른 역할로 출연한다.
- 방영 당시 높은 인기 덕택에 특집 프로그램까지 방송되었다. 이 방송에 의하면, 가장 비싼 의상은 김명수가 연기한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갑옷이었으며, 작 중 가장 많이 나온 대사는 "장군"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가장 많이 나온 대사는 "방포하라!"였다고.(...)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오쿠보 히로모토 감독이 스프링캠프때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전술 구상을 했다고 한다. 기사
- 이것을 토대로 만들어진 플래시 게임이 존재한다.[1]
부엌칼 사기론유상철의 분노도 사기....
- KBS는 <불멸의 이순신> 후속으로 서울 1945를 2004년 8월 20일 내보낼 예정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송일국, 채림의 캐스팅이 거론되었으나 제작비 탓인지 보류되었으며 결국 KBS는 2001년 2TV에서 방영된 명성황후를 재방송할 예정이었지만 시청자들의 반발과 내부적인 사정으로 편성이 취소되자 KBS는 100부작이었던 <불멸의 이순신>을 4부 늘린 104부작으로 끝냈으며 당시 <서울 1945> 자리에는 칭기즈 칸이 편성된 바 있었다.
6 등장인물
불멸의 이순신/등장인물 참조.
7 고증오류들
아래는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고증오류들이다. 다만 제작 시스템적 한계나 드라마의 예산적 한계도 있고, 쌓인 노하우도 적고, 이런저런 고증을 납득이 갈만하게 해줄 전문가도 공짜로 일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제작과정에서 천사람이 한마디씩만 해도 천가지가 되는 수많은 피드백(혹은 불평)을 일부라도 수용하려 노력한 흔적도 보이는 바 나름대로 열심히 만든 제작진을 까기보다는 실제와 혼동하지 말자는 의미로 보는 편이 낫다. 다만 드라마적 허용을 감안해도 다소 좋지 않은 선례. 특히 난중일기 중 명량대첩도 불치급 난독증 상태로 해석했다는 비아냥을 두고두고 듣게 남겼다는 평이 중론이다. 오죽하면 김명민의 연기만으로 모든걸 다 덮었다라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 극 초반에는 대포의 반동이 전혀 없다가 지적을 받고 중반부 이후 방영분에서는 대포 발사 후 뒤로 당긴다.
무반동포?
- 대포알이 폭발한다. 그 당시 조선군의 총통은 비격진천뢰와 같은 일부 무기 이외에는 운동에너지만으로 적을 살상하는 금속덩어리 대포알이 쓰였다. 이 점을 시청자들에게 지적받았는지 중반부 이후 방영분에서는 대포알이 폭발하지는 않는 대신 아스팔트 내지 우레탄 파편(?)이 튀기 시작했다. PD의 인터뷰로 보아 고증과 시각적 연출 사이에서 의도적으로 후자를 택한 듯하다.
- 4화에서는 대장군전이 미사일처럼 폭발했는데 104화에서는 배에 구멍을 뚫고 깨부순다.
- 실제 출생연도를 따지면 십대 초반이었을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조선으로 건너와 이순신과 칼부림을 벌이다 상처를 입고 쫒겨난다. 그리고 와키자카를 나레이션으로 일본 최고의 수군 장수라며 띄워준다.[25] -- 아무래도 드라마다보니 라이벌격인 인물이 필요했고 그래서 선택된 인물이 와키자카 야스하루이다. 더불어 이 역을 맡은 김명수의 연기가 훌륭하기도했고.
- 극중 조선수군의 복장은 한국 사극전통으로 여전히 포졸복이지만 일본군의 갑옷은 말단까지 착용률이 높다.
- 여기엔 논란이 있다. 조선군의 갑옷비율은 아직까지 답이 없다. 매일 욕을 먹는 포졸복이나,
역덕후매니아들이 바라는 갑옷무장이나 고증면에서는 둘 다 맞는 것이다. 조선내의 기록만 봐도 갑옷을 입었다는 기록과 갑옷을 입지 않았다는 기록이 상충한다. 따라서 이 지적은 별 의미없는 지적이다. 흔히 갑옷설은 일본에서 그려진 조선역해전도나, "프로이스의 일본사에서 묘사하는 조선군은 단단한 가죽갑옷에 유럽인과 같은 철모를 쓰고 있다고 한다." 라고 하는데, 조선군 갑옷설의 대표적인 근거사료의 저자인 프로이스는 조선에 넘어온 적도 없고, 조선에서 전해온 소식을 들었을 뿐이다. 프로이스의 일본사를 믿는다면 탄금대 전투의 조선군은 7만명이고 2차 평양성 전투도 일본군이 승리했으니 후퇴했을 뿐이다. 고로 조선군 갑옷문제는 상당수 역덕후들의 '희망'때문에 감정적으로 기록을 취사선택한 감이 크다. 오히려 사극에서 포졸복은 조선후기를 베이스로 하면 옳은 고증이다. 조선후기의 숱한 풍속화, 행차도, 전투도 모두가 갑옷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 그럼 전기는 다르지 않냐고 할 수 있는데, 전기는 고증이라고 하기에 남은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다만 "중앙에서 갑옷의 보급을 위해 노력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동래성 해자유물이 발견됨으로써 조선군의 갑옷비율의 가능성이 높아졌으나, 아직은 부족하다. 게다가 그 갑옷도 찰갑형이고, 결정적으로 동래성 해자 발굴은 불멸의 이순신이 종방된 한참 후인 2008년이었다.[26]
- 다만, 그 당시 서양에도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군복을 통일했던 나라가 없던 것을 상기하자. 임진왜란기 갑옷의 비율은 미지수라는 것이 정답이고, 이 때까지 찰갑이 주류였다가 실전경험으로 주류가 두정갑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추정하는 정도이다. 당장 승정원일기에 이순신이 당시 수군이 갑옷을 다 벗고 싸웠는데 왜 입히냐고 말하는 기록도 있어서 기록이 상충된다. 고로 이 드라마에서 포졸복을 입힌 것은 전혀 잘못된 고증이 아니며, 고증의 선택에 불과할 뿐이다. 당시 세상에 20만 군대를 죄다 철갑옷을 입힐 수 있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조선은 왜 장수 빼고 다 포졸이고, 일본은 왜 다 갑옷이냐 - 동시에, 갑옷이 있었어도 오히려 갑옷을 벗고 싸웠다고 하는 것이 의복 고증 방법에서는 더 맞다. 이런 상황에서 의복고증은 가장 가까운 시대의 고증과 그 당시 다른국가들의 복식과 비교해가면서 맞추는 것이므로 포졸복으로 해도 비판할 여지는 없다.
- 물론 갑옷 보유량을 보았을 때 병사들이 갑옷을 기피했을 수는 있지만 이 드라마에 나온것처럼 아무도 안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약무기가 일반화된 조선 후기의 그림을 가지고 이 시대를 그리는 것은 좀 무리이다. 조선군이 갑옷을 많이 입고 다녔다는 뚜렷한 증거도 없지만 시대상이나 전투방식상 아예 안 입었을리도 없다. 즉, 일본군과 조선군의 갑옷 비율이 지나치게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은 옳은 지적이 될 수 있다. 많은 지적을 받았는지 이후 같은 작가의 사극 대왕 세종에서는 조선군이 환골탈태한다(...). [27]
- 한편 일본군의 복장 역시 갑옷의 비율이 높을 뿐 틀린 부분이 많다. 특히 갑옷이 임진왜란이라는 시대에도 불구하고 낡고 낡은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시대, 무로마치 시대 갑옷이 난무한다.[28][29] 그래서 그런지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갑옷이 원래는 헤이안 시대 풍의 낡은 갑옷이었다가 이후 전국시대풍의 뿔갑옷(…)을 입게 된다. 이 외에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무장은 장창 50%, 활 20%, 조총 20%, 사무라이 10% 였음에도 불구하고 장창은 고작 한두번 나오고 활은 명량해전 즈음에나 등장한다. 장창은 공들여 만든 1~4화에서는 기본무기로 자주 비치는 것으로 볼 때 준비를 못했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액션 연출의 측면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일 수도 있다.
- 당연한 이야기지만 임란전 전라좌수영에서의 거북선 침몰같은 사건은 없었다. 당시 너무도 충격적인 사건이라 여러 신문에 나왔다. 어쩌면 불멸의 이순신 방영중 논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폭발적인 화제를 몰고 왔다.
-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 있으면 알겠지만 임진왜란 7년 내내 이순신 휘하에서 죽은 병사가 100명이 채 안된다. 그런데 거북선이 가라앉아 한방에 200명 가량이 죽었다고 하니 역덕들은 그야말로 엄청난 분노가 폭발하였다. 그 바람에 기사가 실린 네이버 댓글란은 헬게이트가 열렸다. 역사적으로 아무 기록도 없는 200명을 물귀신으로 만들어 버린 것도 웃기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당시 배는 나무로 만들어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 기록을 보면 꼭 불로 태웠다는 구절이 나올정도로 대포 몇발 맞아도 구멍만 날뿐 가라앉지는 않는다. 거북선은 나무가 아니라 철로 만들어서 가라앉았다는 주장을 제작진측에서 할 수 있겠지만, 조선 역사 기록에는 철로 만들었다는 구절이 안나온다. 거북선을 나무로 만들었다는 말이 없으니 철갑으로 만들수도 있지 않겠냐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게 치면 아예 고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 더 낫다(...). 제작진의 상상력의 부족이 아쉬운 부분.--애초에 실험 모형은 잘만 떠다녔는데, 실형이 가라 앉는다는 건 실형을 만들때 크기 비례 무게 계산을 똑바로 안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 해전이 벌어지면 수군장수들이 왠지 치어리더가 된다. 만호/첨사/부사 같은 상위 지휘관들이 백병전이 아닌 포격전에서 엄호 사수를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적어도 적들을 침몰시켜라~!/한놈도 살려보내지 마라~!!라는 말보다는 훨씬 복잡한 명령은 내렸을 것이다(...).
닻줄을 끊어! 닻줄을 끊어야갓어, 도선 못하게 닻줄을 끊어!!말할 것도 없이 명량을 보자, 적어도 거기서는 장수들이 더 바빠보인다(...).하지만 징비록에서는...
- 몇몇 해전에서 참전하지도 않았던 장수들이 참전하는 것으로 나온다. 대표적인 예로 노량해전에 멀쩡히 싸우고 있는 와키자카 야스하루 라든가,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의 지휘 아래에서 전투하고 있는 가리포 첨사 이영남, 충청수사 권준[30], 순천부사 우치적이 있다.
그 와중에 짤린 사람은 이운룡이 점은 아무래도 드라마다보니 계속해서 새로운 인물을 추가하기가 부담스러워서 그랬던걸로 보인다.
- 조선북부지방의 장면에서 수군들이 나온다. 문제의 장소인 녹둔도는 원래 정규군이 항시 주둔하는 곳이 아니고 인접한 조산보로부터 병력이 파견되는 곳인데, 녹둔도를 포함하여 조산보 관할구역 내의 조선군은 육군 토병 48명에 남도에서 파견되는 부방군 30명을 합쳐 육군 78명이 항시 배치된다. 참고로 이것은 녹둔도 전투 당시 기준의 편제표이다. 사실 함경도는 육군과 수군의 구분이 사실상 없는 곳이다.
- 압도적인 병력차를 뒤집고 승리에 가까운 무승부를 일궈낸 녹둔도 전투가 졸지에 패전, 이순신 최대의 콤플렉스로 둔갑했다.
- 육군 영주였던 시마즈 요시히로가 수군 총대장으로 둔갑한다. 애초에 일본군에는 해군 영주 육군 영주 이런 개념 따윈 없었다. 고로 이건 뻘소리. 시마즈가문이 당시 서쪽 다이묘들 중엔 제일 유명하고 용맹해서 총대장으로 지목한듯. 다만 시마즈가 전력 대부분을 노량해전에서 잃은 건 사실이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순신에 의해 야망이 꺾인 뒤 광인처럼 죽는다. 이게 꽤 심각한 오류인 것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언이랑 항목만 읽어보더라도, 악역이긴 하지만 드라마 내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인물에 대한 표현이 얼마나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다른 일본 영주들이 구키 요시타카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도도 다카토라는 이순신에게 패한 직후 구루지마 미치유키에게 개갈굼당한다. 영주간에 세력차가 있긴 하더라도 일단 각 영주들은 동등한 관계라는 임진왜란기 일본 군대의 특징을, 중앙집권적 국가와 그 역사에 익숙한 한국에서 이해하지 못해 발생한 케이스인 듯하다. 만약에 진짜로 구루지마가 도도한테 이런 짓했으면 바로 ㅈㅈ. 다카토라가 7만석이긴 하나 도요토미 히데나가 휘하의 1인자였고, 히데나가 사후에도 그 재능을 높게 본 히데요시가 직접 발탁해서 멍청한 조카에게 붙여 줄 정도로 능력있는 사람인데 반해, 구루지마는 걍 듣보잡이었다. 당시는 일본이 통일되긴 했어도 안정되지 않은 시대라 구루지마 같은 약소 다이묘는 강대 다이묘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근데 와키자카의 휘하에 있는 도공인 장평이 도도와 동감하자, 와키자카의 세력이 무서워서 감히 장평의 말에 뭐라고 토를 달지 않았다.
- 조총의 성능이 미군의 M1 소총 정도는 되는 듯한 묘사가 종종 보인다.[31] 비슷한 문제로 총통들이 전부 현대의 박격포 수준의 사거리를 가진것 처럼 나온다. 작중에서 사용되었다고 언급된 천자총통만 보더라도 최대 사정거리가 1km 조금 못미치는 수준인데, 스크린으로만 본다면, 일본배와 함대사이의 거리는 족히 6~7km는 넘어보인다. 라는 의견도 있으나 사실 이부분은 문제가 없어보인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1Km 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긴거리이다. 당시 판옥선의 세로 길이가 20여m였다는걸 생각하면 1Km는 그의 50배에 달한다. 6~7Km라고 하는데 이 거리면 사람이 한시간 반은 쉬지 않고 걸어야 도달하는 거리이고, 그사이에 판옥선이 300~350개는 들어갈 거리인데 이정도 거리면 판옥선 정도의 크기의 배라면 거의 점으로나 보이지 거의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당장 유명한 명량 해협의 길이는 약 1.5Km에 지나지 않고 폭은 300~500여m에 불과하다. 6~7Km라면 일본군과 조선군이 울돌목 폭의 4~5배가 되는 거리에서 서로 포격전을 벌였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말이 되지를 않는다.
1km는 그렇다 치고 6~7km는 해도 해도 너무 불렸다. 현대인들은 차만 타고 다니니 거리감이 없나보다.물론 해상전의 특성상 배가 지속적으로 흔들리므로 천자총통이 최대의 사거리를 발휘할 여건이 되지 않았을 것은 분명해 보이는 만큼 조준사격이 가능한 거리는 훨씬 짧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해도 불멸의 이순신의 함대간 거리는 문제 없어 보인다. 다시 말하거니와 1Km는 판옥선 세로 길이의 50배에 달하는 거리이다. 아래 사진은 불멸의 이순신 한산도 대첩중 한 장면이다. 파일:Attachment/불멸의 이순신/Example.jpg 멀어 보이지만 측정해보면 10개 정도 들어갈 거리 밖에 안되고, 원근법을 적용해도 20개를 넘지 않을 것이다. 이게 판옥선 50개 까지 거리가 된다면 그게 1km이다. 기실 불멸의 이순신의 포격전은 되려 너무 짧은 감이 있다. 그냥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지도에서 500m정도의 거리에 있는 건물을 창밖으로 내다 보자. 이정도 거리만 되도, 엄청나게 작아 보인다. 그러나 판옥선의 크기는 20m에 불과하다. 만약 사실성을 살린답시고 안택선과 판옥선간의 거리를 500~1000m로 설정했다면 배가 너무 작아보여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 일본 수군이 보유한 연락선 내지 척후선인 고바야, 주력 전투함선인 세키부네, 지휘관이 탑승하는 지휘선인 아타케부네(안택선)가 드라마에서는 고바야를 제외하고는 모두 판옥선과 비슷한 크기로 나온다. 그 중 아타케부네는 그나마 실제 형태와 비슷하게 나왔고 세키부네는 실제 형태와 맞추기는 했지만 판옥선과 크기가 비슷한 크기로 높아진 채 나왔다. 실제 역사에서는 주력인 세키부네는 통일되지는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판옥선에 비해 한층 정도 낮았다.
- 황진이 이치 전투에서 전사하는 것으로 나왔는데 실제 역사에서 황진이 죽은 것은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였다.
- 부산포 해전에서 일본군이 비격진천뢰를 사용한다.
대체 제조법은 어떻게 알아낸 거야...[32] 게다가 녹도 만호 정운이 이 비격진천뢰에 맞아 전사하는 것으로 나온다. 다만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게, 일본에서도 비격진천뢰와 비슷하나 크기가 약간 작은 포락옥[33]이라는 폭발형 화약무기가 있었다. 이를 묘사한 것이라면 이 점은 어느 정도 눈 감아줄 수도 있다. 혹은, 이전 장면들을 보아, 조선군의 진천뢰를 노획한 것일 가능성 또한 있다. 참고로 녹도 만호 정운은 부산포 해전에서 상륙하여 돌격하던 도중에 머리에 총을 맞고 전사했다.
- 칠천량 해전에서 일본군이 함포 사격을 많이 하여 조선군을 개발살내며 조선군의 함선 거의 전부가 격침당한 것으로 나온다. 당시 왜선의 설계 자체가 함대간 포격전에는 어울리지 않으며 실제로는 전후 여러 가지 정황을 따져봤을 때 조선의 함선 대다수가 격침당했다기 보다는 그냥 버려지거나 뿔뿔이 흩어졌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명랑해전 직후 비정상적으로 빨랐던 재건 속도도 그렇고...
- 명량 해전에서 철쇄로 이긴다. KBS 역사 스폐셜에서 철쇄설이 등장한 이후 떡밥이 됐는데, 이는 아직까진 신뢰성 있는 기록이나 근거가 없는 억측이다. 애시당초 수십, 수백척의 배가 빠른 조류를 타고 오는 무게를 쇠사슬이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다.[34]
- 명량 해전에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손수 칼을 뽑고 싸우다가 적장을 베어 쓰러뜨린다. 다만 이는 표현을 위한 허용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칼부림을 하면서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세상의 모순과 인생의 역경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다가 적장과 함께 모두 베어버리고 승리를 얻는 감동적인 장면이기는 하다. 허나, 난중일기 표현으로 설계를 해도 위 해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즉, 원균을 두둔하기 위한 저급한 수작일 뿐이다. 실제 역사상로는 화살을 맞고 죽어서 떠내려 가는 걸 건져내어 목을 베었으며, 이순신이 직접 일선에서 칼을 휘두를 정도는 아니었다.
- 명량 해전에서 처음부터 부하 장수들과 함께 싸운다. 하지만 난중일기의 기록으로 미루어봐서는 상당한 시간을 이순신의 상선 혼자 싸운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극중 이순신과 더불어 처음부터 전선에 나아간 장수들은 실제로는 명량 해전에 참가하지도 않은 권준, 우치적, 이영남 뿐이다. 게다가 이 세 장수는 드라마상에서 이미 이순신과 죽음을 함께 할 정도로 돈독한 신뢰 관계를 쌓은 사이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자들이 뒤에서 놀고 있으면 그간 드라마의 방향과도 맞지 않기 때문에 이순신과 처음부터 같이 싸우는 것으로 묘사된 것이다.
이쯤 되면 동인지 수준안위, 김억추, 김응함 등은 실제 역사대로 초요기가 올라간 뒤에야 합류했다. 이 부분은 고증과 극적 연출 사이의 절충안을 적용한 듯하다.
- 노량 해전에서 이순신이 와키자카 야스하루와 대결을 벌이지만 실제로 와키자카는 노량해전에 참전하지 않았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주인공과 시종일관 대립하는 인물이 필요한 것으로, 그 인물을 와키자카로 정하여 각색한 부분이다. 근데 이 각색은 10년 후인 징비록에서도 거의 고쳐지지 않았다. 다만 징비록에서의 와키자카는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영남과 동귀어진이 아닌 영혼까지 탈탈 털려 멘붕 상태가 된 채로 철군하는것이 다른 점.
적어도 와키자카의 취급이 안습하다는 점에서는 불멸의 이순신보다 낫다하지만 정작 불멸의 이순신 세대들은 대접이 후했던 불멸의 이순신의 와키자카가 익숙해서 징비록의 와키자카에 대해 위화감을 느꼈겠지
- 일본 활을 거꾸로 들고 쏘는 장면이 있다.
- 녹도만호 정운은 수사 이순신을 녹둔도에서 패한 패전지장이라며 까고 이순신도 이를 인정한다.
개념은 어디로이일을 빠는 김탁환상관한테 거짓말하는 걸 찬양하고, 이를 용인하는 조선왕조 찬양하는 쓰레기
- 원균의 수하이자 이순신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인물로 우치적(이재포 분)이 대두되었는데, 사실 우치적은 이순신이 백의종군할 때도 울며 전송하며 노자를 보탤만큼 이순신과도 친한 인물이었다. 칠천량 해전 이전에 전라도 순천부사로 재직해서 직책상 원균과 가까이 지내야 했던 경우[35]는 있었지만, 충무공의 백의종군 시기의 일기를 보면 순천부사 우치적이 초계로 자주 찾아와 원균의 망령됨을 하소연 하는 장면이 몇 군데 나온다.
사실 제정신 박힌 군인이라면 누구나 원균을 좋아할 수 없긴 하다.우치적: 원균놈이 통제영을 완전 개판으로 만들어놨어요. 그 놈은 통제사 같은 거 하면 안되는 놈이에요.드라마에서는 원균의 북방시절부터 충직한 심복으로 출연해, 원균이 죽고 나서야 이순신에게 감복하는 설정으로 고인드립에 해당될 만큼 심한 왜곡을 저질러 버렸다. 여러모로 원균 맹장설을 억지로 드라마에 끼워 넣을려는 시도에 희생된 듯. 심지어 직책상 하급자인 송희립이 칠천량 패전 이후 감히 상급자인 정3품 순천부사 우치적에게 주먹을 날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그랬으면 참형감이다.
- 우치적과 함께 사극 최대 피해자 2호는 바로 윤두수(정동환 분)라는 주장이 있지만, 실록으로 확인되는 윤두수의 언행을 봐도 이 인물은 그다지 괜찮은 인물로 평가하는데는 상당한 무리가 있는 인물이다. 관직 생활 초부터 뇌물을 받아서 탄핵된 실록의 기록이 존재하는데다가, 그 이후의 언행도 거의 막장 수준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원균을 단순히 두둔하는 정도가 아니라 고금에 둘도 없는 명장 이라는
개소리말을 하기도 하고, 평양성 지킨다고 호언장담하다가 털리질 않나, 제멋대로 장문포 해전을 기획하여 다 말아먹질 않나, 조정에서 이순신을 못마땅 해하는 선조에게 편승하여, 전시에는 지휘관을 바꾸면 안 되나 이순신은 반드시 체직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한다. 그것도 정확한 근거조차 없이 그저 김응서같은 잡신(雜臣)의 말만 듣고 저렇게 주장한 것이다. 결국 이 사람도 칠천량 해전의 직접적인 주역이라 봐도 무리가 없다. 게다가 더 기가 막힌 것은 칠천량 해전 이후의 언행인데, 선조실록에 의하면 칠천량 해전 이후 비보를 접한 조정에서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통제사를 임명하지 말고 각지의 수사들이 고을 단위로 방어하게 하자는 정신나간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건 까놓고 말해서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수임하기 싫으니 단일한 지휘관을 임관시키기를 포기하고 병력을 분산시켜 왜 수군의 대병력에게 각개격파 당하자는 소리나 진배 없다. 임란 초기에 조선 육군이 탈탈 털린 원인을 생각하면 이 사람이 과연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인간인지 의구심이 든다. 오히려 정동환 씨 특유의 연기력으로 인해 정치 싸움에 매우 능숙한 노대신으로 버프했다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 그러나 윤두수가 군사적으로 무능한 것은 사실이지만 본작에서 윤두수 묘사를 보면 윤두수가 아주 악독하고 교활한 노대신으로 왜곡된 건 사실이다. 윤두수 뇌물 사건의 경우 선조수정실록 1578년 10월 1 기사를 보면 윤두수의 뇌물 스캔들은 동서인의 정쟁과정에서 불거진 일일 가능성이 크다.
- 서인강경파였던 정철과도 친했던 류성룡은 비록 윤두수와는 당색이 다르나 나쁘지 않은 관계를 형성하는 등 류성룡 입장에서는 윤두수는 나름대로 말이 통하는 사이였다. 실제로 서애탄핵 사건떄도 류성룡은 자신말고 윤두수를 명나라로 보내기를 추천하였다 비록 류성룡과 윤두수의 당색은 달랐지만 어느 정도 말은 통했고 이야기는 가능했던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는 류성룡의 성향때문일 가능성도 있는데 실제로 류성룡은 남인의 수장이지만 당파를 떠나 두루두루 잘 지낼만큼 인간관계가 좋았다.
- 또 서애집의 내용에 의하면 윤두수의 부음을 듣자 남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사람은 오늘날 쉽게 얻을 수 없다. 지나간 임진년 무렵에 만약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담당하게 하였다면 우리들은 이미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요사이도 자못 공평한 의론을 주장했는데 갑자기 이 지경이 된 것도 운수이니 어찌하겠는가."라고 안타까워 하는 기록이 있다. [2]
- 일본 장수들의 명칭이 왔다갔다 한다. 조선 측에서는 아무래도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같은 장수들을 일본식이 아닌, 한문명으로 소서행장, 가등청정등으로 불렀을 가능성이 높을텐데, 대부분 일본식으로 부르고 있다. 이게 왜 고증 문제에 오르냐 하면, 1~4화에서는 이순신이 고니시 유키나가를 소서행장이라고 불렀으며, 왜란 초반을 다루는 부분에서 류성룡을 비롯한 다른 조선측 인물들도 가토나 고니시를 한문 이름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 이순신 휘하 장수들이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을 부르는 호칭이 '장군'으로 잘못되어 있다. 사실 이는 엄청난 무례이며, 실제로는 통상, 사상, 혹은 통상 대감이라 칭해야 맞다. 사실 임진/정유년 당시 삼도수군통제사는 신설된 관직이라 일반 수군절도사가 겸하는 것이며, 삼도 수군의 전군 지휘권 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므로 정3품 수군절도사와 마찬가지로 '영감'이라 불려야 맞다. 그러나 이순신은 거듭된 승전으로 그 품계가 정2품 정헌대부까지 올라갔으므로 대감이라 칭해야 한다. 물론 선조는 칠천량 패전 이후 급히 이순신을 전라좌도수군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로 재기용하면서도 예전의 품계를 돌려주지 않고 일반 수사와 같은 정3품 절충장군에 머무르게 하다가 명량해전 다음 해 명 경리 양호의 끈질긴 압박에 못 이겨 마지못해 그 품계를 올려준다. 또한 전란 이후 시기엔 삼도수군통제사는 품계가 종2품관(관찰사와 동급)으로 격상된다.
- 일부 상식이 없는 사람들은 정3품 품계명이 절충'장군'이기 때문에 정3품까지를 '장군'으로 부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아무 근거도 없는 헛소리일 뿐이다.
그런 식이면 정2품 상계 정헌'대부'는 호칭이 '대부'겠다?(...)정3품 당상관에 해당하는 무관을 '장군'으로 지칭하는 것은 실례이며, 해당 호칭은 만호나 첨사에게나 쓰는 호칭이었다. 그러므로 이순신이 한산도 대첩으로 정헌대부로 오르기 전에도 정3품 당상관인 이순신을 장군으로 호칭하는 심각한 결례에 해당하며, 정2품 정헌대부의 품계를 받기 전에는 영감이라 불러야 맞는 것이다. 물론 정헌대부의 품계를 받은 이후부터는 당연하지만 대감, 혹은 통상대감이라 칭해야 한다.
- 또한 이순신이 정유년에 파직되어 직위 해제된 뒤, 명량해전 이후 다시 정2품 정헌대부의 품계를 되찾기 전까지도 계속 통상 대감이나 통상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파직 됐던 사람이라지만 정2품 상계 정헌대부까지 올라간 경력이 있고, 삼도수군통제사의 직함을 가진 이상 굳이 그보다 아래 품계인 정3품의 관료를 부르는 호칭인 영감이라고 불러서 상관의 떨어진 직급을 인식시켜줄 필요가 있었겠는가?
- 일본 무장들이 서로를 칭할 때 "가토 장군", "고니시 장군" 등으로 칭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일본에서 장군은 쇼군, 즉 세이이타이쇼군(정이대장군) 1명 뿐이며, 겐지의 후예가 아니면 감히 칭할 수 없는 호칭이었다. 만약 극중에서처럼 서로를 장군으로 칭한다면 이는 반역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면하기 어려운 중죄에 해당했다. 특히나, 히데요시마저 쇼군을 칭하지 못하고 공경의 양자가 되어 관백을 칭했다.
- 이 당시 일본의 경우 서로를 칭할 때는 성 + 관직명으로 칭하는게 보통이었다. 고니시 유키나사의 경우 셋츠노카미였으므로 셋츠노카미 혹은 고니시 셋츠노카미로 칭하는 게 맞다. 서로 친근한 사이인 경우 이름 뒤에 도노(殿)를 붙여 호칭하였으므로, 유키나가 도노라고 하는 것이 맞다. 한국 사극에서 이러한 일본의 상황을 완벽하게 적용하기는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유키나가 님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하겠다.[36]
- 방송에 나고야가 잘못 나와 있다. 일본군의 진격지인 나고야를 저 먼 오와리의 나고야로 보는데, 사실은 규슈에 있는 나고야 지방이다. 상식적으로 조선 쳐들어 가는데 제일 가까운데서 쳐들어가지 빙 돌아서 쳐들어갈까.
- 도도 다카토라가 엄청 중후한 인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아첨 아부의 제왕. 주인을 7번 바꾼걸로 유명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한테 붙어 많은 공을 세우지만 이에야스조차 너무 아첨이 심해서 마음에 안든다고 할 정도였다. 사실 이는 고증오류라기 보다는 도도가 딱히 누구에게 아첨할 만한 상황 연출을 할 필요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배역을 맡은 최동준 씨가 무게감있는 연기를 많이 해서 생긴 사례로 보인다.
- 듣보잡에 가까운 일본 무장들은 마치 일본에서 대단한 위치에 있는 것 마냥 설명했다. 사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서 참전한 높은 위치에 있던 무장은 드라마에선 잘 언급되지도 않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모리 데루모토, 시마즈 요시히로, 도도 다카토라 등으로, 불멸의 이순신에서 띄워준 장수들은 신인 무장 or B급 무장이었다. 가토나 고니시, 구로다 등등은 전쟁에서 잔뼈가 굵긴 했지만 A급은 아니었고 오히려 당시 잘나가는 신예느낌이 강했다. 오히려 진정한 A급 이상은
콩라인다테 마사무네와 이 당시 일본 전체최강자인장수풍뎅이혼다 타다카츠, 그리고 그 혼다의 주인인 S급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다. 하지만 혼다는 자신의 주인을 따라서 아예 임진왜란 자체를 불참했고 다테는 임진왜란에 참전했다고는 하지만 참전한 전투가 고작 제2차 진주성 전투 정도에 불과했으며, 때문에 여기서 띄워준 장수들 항목에는 와카자카나 고니시보다는 전술한 도도 다카토라나 시마즈 요시히로가 들어가야 맞다.
- 진주대첩에서 전사한 김시민은 시체 아래에 있던 왜병에게 저격당하는 것이 아니라 분전 중에 린칭당해 죽는 것으로 나온다.
- 부산진 전투의 지휘관이었던 정발은 흑의 장군 즉, 검은 갑주를 입고 부산진 방어에 참전했는데 드라마에서는 청색 갑옷이다. 10년 후 징비록에서는 검은 갑주를 입고 나타난다.
- 왜란 전 수군의 훈련 상태가 개잉여로 묘사된다. 수군은 육군과 다르게 전문적으로 함선 위에서 전투를 치루어야 하기에 전문적 훈련의 난이도가 육군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임진왜란 도중에는 수군에서 쌩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육군에 지원하겠어!라는 생각에 수군입대를 피하려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조선 수군이 이순신이 수장이 된 후 전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건 맞지만, 어쨌든 드라마에서 표현된 것처럼 노도 제대로 못다루는 격군과 화포 장전도 모르는 포수 같은 잉여들은 아니었다.
- 노량 해전 당시 이미 잘린 인물들이 그 직책을 그대로 역임하고 있다. 정운의 후임 녹도만호인 송여종도 등장하지 않는 걸 보면 새로운 인물을 캐스팅하기에는 여건이 맞지 않은 듯 하다.[37]
-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당시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쌍벽 수준의 실력자임에도 불구하고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띠꺼운 부하로 묘사된다. 더군다나 실제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을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에게 후사를 부탁하지만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그냥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속썩이는 바람에 홧병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는 걸로 묘사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보기와는 다르게 상당히 꼴통으로 묘사되었다. 물론 히데요시가 죽은 뒤 이에야스가 장절하게 뒤통수 쳐버린 것은 사실이며, 위에서 보듯 이를 암시하고 있다.
- 분명 웅치 전투가 조선군의 패배로 묘사하고 나레이션이 "패배했다"고 말하는데 이치 전투 승리 후 병사들이 환오성을 지르는 장면에서 나오는 해설은 이치 전투와 웅치 전투를 세트로 묶어서 승리했다고 말한다. 뭥미?[39]
- 6대 국왕이었던 단종 임금이라는 명칭이 불쑥 튀어나오는데 노산군으로 강등되었던 단종이 단종이라는 묘호를 받게 된것은 불멸의 이순신에서 백 년 뒤인 숙종 24년(1698년)의 일이다. 단종과 더불어 김종서 또한 만고의 충신으로 표현하는데 김종서가 역적에서 충신으로 복관된 것은 이로부터 거의 150여년 뒤인 영조 시기이다. 즉, 선조 시기인 이 시대에서 단종은 아직 노산군이었고 김종서는 역적 취급이었으므로 명백한 고증오류. 선조는 단종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고 단종에 대한 동정 여론 형성에 크게 기여한 남효온의 육신전을 보고 역정을 냈다.
- 이덕형이 이항복을 부를때 '오성' 이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오성'은 이항복이 받은 군호인 '오성부원군'에서 딴것일 뿐, 호가 아니다. 이항복의 호는 '백사' 이므로 정상적이라면 '백사'라 불렀어야 한다. 오성과 한음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 거제 현령 안위를 비롯한 충무공 휘하 장수들의 임관 시기가 크게 잘못되어 있다. 드라마의 묘사를 보면 거제 현령 안위는 칠천량 해전 이후, 명량 해전 직전에 조선 수군에 보직 발령을 받고 다시 수군통제사에 기용된 이순신을 처음 만나는 것처럼 행동하며 자기 소개를 하는데, 어이없게도 안위는 이순신의 파직 이전에 이미 임관하여 부산 왜영에 불까지 지른 인물이다(...)[40]
- 고니시 유키나가가 흔히 알려진 붉은 십자가 깃발을 사용한다. 원래 고니시가 붉은 깃발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주교 금지령으로 임진왜란 시기에는 십자가 깃발을 사용하지 않았다.
- 제작진들을 두둔하기 힘든 절대 요소로 안위를 명량 대첩에서 개막장으로 그려냈다. 김탁환 앞잡이란 소리가 이래서 나오는 것이고, 더 나아가 이를 추진한 KBS 사장 정연주와 당시 대통령 노무현이 역사적 평가가 절대적으로 우호적 대접 받기가 힘들게 되었다. 더구나 순흥 안씨가 희안하게도 반발이 보이지 않았는데, 창빈 안씨 손주가 선조란 점에 침묵한 것이 아닌가라는 심증도 난무하는 형국이다.
- ↑ 1화 방영 당시.
- ↑ 그런데 그 유저가 지적한 다른 한 작품이 바로 김경진의 격류였다. 그 덕에 다른 이들에게 전쟁사 매니아는 고증능력 없는 입만 남은 것들이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존재로 낙인 찍혔다.
- ↑ 이건 김탁환의 원작에도 안 나오는, 윤선주 작가의 독자적인 설정이다.
- ↑ 이를테면 개인적 감정으로 적장에게 인질을 준다든가, 주저하고, 원균에게 처맞고, 정치적인 원한이 있는 장수들(이를테면 원균파)을 고의로 작전에서 빼거나 역적모의를 꿈꾸다가 윤두수에게 디스당하고 자살하는 등.
- ↑ 다만 원작과 달리 이순신 천하의 개쌍놈 부분은 드라마에서는 당연히 많이 편집되었다.......정도가 아니라 거의 없애버렸다. 애초에 드라마 제목부터가 이순신이다.(...)
- ↑ 여차저차 윤두수가 그걸 알아서 경고 편지를 보냈다.
- ↑ 최초의 '불멸'(미래지성,1998)은 4권이었다.
- ↑ 사실 이 관련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문열의 <시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다만 시인의 주인공 김삿갓은 진짜 역적 자손. 그리고 이걸 고증을 무시하고 그냥 소설이라 생각한다면 말은 된다. 그렇게 출중한 명장이 두 번이나 과거에 떨어진 거나 조정 등쌀에 평생 고통받았던 것도 그렇고.
- ↑ 미국 건국부터 1960년대까지를 무대로 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그린 대하 소설, 한국에서는 "대통령 링컨"만 번역되었다
- ↑ 대통령 링컨의 경우는 미국에서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었다. 정치적으로 약간 비겁한 일을 하고 지나치게 인간화된 링컨이나 제국주의적인 시각으로 남북전쟁을 그렸다는 점
- ↑ 나름대로 전쟁에 대해서 고민하는 세스페데스나 오다 쥬리아를 만나는 고니시 유키나가, 뛰어난 전략가로 그려진 이시다 미츠나리, 끝판왕의 포스로 일본측 이야기를 끌고 나간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죽을 때 허망한 모습을 보여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 ↑ 군사소설가 김경진(소설가)은 드라마를 보고 열받아서 쓴 <임진왜란>에서 원균은 당연히 구제불능의 왕찌질이로 표현했다. 이순신은 위엄과 카리스마를 가진 구름 위의 인물로 나온다.
- ↑ 태조왕건에서 CG가 쓰였으나 당시엔 기술력의 한계로 불화살을 표현하는 정도였다.
- ↑ 다만 실제로도 비격진천뢰 등 화약이 폭발할 가능성 자체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긴 하다.
- ↑ 예외적으로 울산성 전투는 이치 전투+평양성 전투 짜집기다.
- ↑ 실제 직업군인이었다는 한 미국인은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전쟁묘사와 그 감정에 관해서 자신의 파병경험에서의 현실을 회상하며 찬사를 하기도 했다.
- ↑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와키자카는 원래부터 도쿠가와 편에서 싸우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전이 시작될 때 서군의 진영인 오사카 성에 있었던 바람에 서군 진영으로 떠밀린 것. 하지만 세키가하라 전투 직전에 도쿠가와에게 편지를 보내 서군 진영으로 참전할 의사가 없음을 밝혀 동군 진영으로 남아 목숨을 보존했다. 더 자세한 내막은 본 항목 참조.
- ↑ 작중 의병들은 투구를 안 쓰고 나온다.
그래도 한국 사극에서 주연들 투구 쓰는 게 어디야 - ↑ 정준호가 출연한 영화 천년호에서 정준호의 부하로 나온 배우 이한갈은 '불멸의 이순신'에서 날발 역으로 출연했다
- ↑ 아무래도 이순신의 역대 해전들 중에서 가장 첫손으로 꼽히는 한산도 대첩에서 상대 지휘 장수가 바로 와키자카 야스하루였기에 라이벌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순신의 해전들 중에서 명량 해전과 함께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되는 해전인데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명량 해전에도 참군했었기에 더더욱 라이벌 기믹에 적합한 인물이었을 듯. 실제로 드라마에서 한산도 대첩의 연출은 다른 전투들에 비해서 제작진이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난다.
- ↑ 불갤의 불'빠'들은 흔히 말하는 '무개념 빠'라고 부를 수 없으며, 김경진의 임진왜란을 읽고 드라마의 고증 오류에대해 정확히 알아 이 드라마에 대해 비판할 점은 정확하게 비판했다.
- ↑ 초반부에 선조로 나오다 제작진과의 마찰로 하차한 조민기의 말에 따르면 "대본 연습을 하러 갔는데 군대 제대 후 여자가 이렇게 없는 자리는 처음이었다" 였다고 한다.
- ↑ 단 김탁환은 해사졸업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단기 교수사관이었고 불멸을 쓴 것은 전역 후 훨씬 미래의 일이다.
- ↑ 그나마 장밋빛 인생의 최진실이나 해신의 최수종 정도가 거론되었지만 극소수의 의견에 불과했다.
- ↑ 정작 칠본창 내에서도 가토와 후쿠시마에게 가장 무시당한 인물이 바로 와키자카인데
- ↑ 조선 전기의 군복 고증은 대왕 세종 항목 참고.
- ↑ 문제는 대왕 세종에서 조선군이 입고 있는 두정갑은 조선 중기부터 입기 시작한 갑옷이다... 조선 초기에는 찰갑 계열 갑옷을 착용하였다.
- ↑ 참고로 헤이안 시대는 문인중심사회였다.
전국시대가 문인중심사회였다고 우겨대는 거나 다름없다가마쿠라 시대와 무로마치 시대는 이후의 전국시대처럼 무인중심사회였지만 전국시대에 비하면 훨씬 안정적인 사회였다.전국시대가 평화로웠다고 우겨대는 거나 다름없다 - ↑ 세월이 흘러 대왕 세종의 대마도 정벌 장면에서는 반대로 당시 일본이 무로마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시대 갑옷이 나오는 고증오류를 범했다(...). 소 사다모리가 가신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소 사다모리 옆에 전국시대 인물인 가토 기요마사의 갑주가 있고, 전투장면에선 소 사다모리가 무로마치 시대 갑옷이 아니라 전국시대 갑옷인 도세이구소쿠를 착용하였으며(그나마 가신들은 고증에 맞게 무로마치 시대 갑옷을 착용하였음) 대마도 병사들의 복장도 무로마치 시대 병사들의 복장이 아니라 전국시대 아시가루 복장이다(머리에 삿갓형 투구인 진가사를 썼음).
- ↑ 특히 권준은 희대의 병크로, 칠천량 이후에는 충청수사로 임명되어 한양 수호를 임명받았기 때문에 그 이후 전투부터는 참가한 적이 없다. 이전문서에 권준이 그 이후 이순신 지휘를 받지 않은 것처럼 서술되어 있었지만, 충청수영도 엄연히 삼도수군통제영 휘하로 편제되어 있는 만큼 지휘를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칠천량 이후에도 해전에 참가했다고 묘사한 것은 오류가 맞다.
- ↑ 이를테면 뛰면서 연발 사격이라든가 저격이라든가... 당시 엑스트라로 동원됐던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방아쇠 당기는대로 펑펑 터지니까 재미들려서 연발로 갈긴 엑스트라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좀 많았던지라 연출측에서도 제대로 통제를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 ↑ 사실 드라마상에서 일본군이 조선군포로를 협박해 노획하고 사용법을 알아내는 장면이 있었다.
- ↑ 호로쿠. 아즈치모모야마시대부터 사용된 무기이기 때문에, 시대적으로 맞아떨어지기는 한다.
- ↑ 철쇄설의 경우 조선시대의 기록인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나타나는 기록이고, 전설로도 유명하다. 물론 일차사료 고증이나, 그 당시 상황이나, 물리적인 문제나 모두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이런 말까지 없으면 도저히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도 그런 주장이 나왔다는 정도로만 맞다. 그보다는 조선후기 신권 세력들은 인조 이후부터 서인 후계였기에 그들이 비호한 원균이란 말종을 두둔하려는 수작으로 생각할 수 있다.
- ↑ 이순신이 파직당하기 전의 직책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였으므로 교체된 원균 또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직을 겸임했다. 칠천량 해전 당시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는 배설이 맡았다.
- ↑ 보통 일본의 역사소설에서도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
- ↑ 지나가듯 등장은 했다. 문제는 드라마내 비중이 역사와 비교하면 넘사벽으로 전무하다는 것(...)
- ↑ 이는 옥의 티이다.
- ↑ 실제 웅치전투가 조선군의 패배인 것은 사실이나 일본군 피해도 상당했다.
- ↑ 여담으로 안위의 책임은 아니지만, 이 전공 때문에 오히려 이순신은 선조에게 공격을 받았다. 이순신은 안위의 전공을 선조에게 보고하였는데, 정보의 혼선으로 안위의 전공이 사실이 아니라는 잘못된 보고가 올라 오자 선조는 '이순신이 전공을 탐하여 허위로 보고해서 조정을 속였다'며 비난했다. 이후에 안위의 전공이 사실임이 밝혀지자 이번엔 '이순신이 부하 장수의 전공을 가로챘다'며 말을 바꾼다. 근데, 정보 혼선이라고 보기에는 이순신을 까내리기 위해 육하원칙도 무시한 반론을 통해 정치적 단합을 하였음을 인증한 대표적 인물이 다름아닌 이원익이다.
- ↑ 사실 임란 당시 명군이나 명나라 관리들은 자신보다 2~3 품계 높은 조선 관원에게 무례하게 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