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문서 : 홍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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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진호의 e2스포츠 관련 활동들을 기록한 문서.
2 주요 경력
2.1 스타크래프트 1 프로게이머
- 2001년
- - 고수를 이겨라(VS 강도경 0:1)
- - 쉐르파배 오픈대회 준우승(VS 조성봉 0:1)
- - iTV 한게임 서바이벌
- -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 - CGGL 경부선시리즈
- - 메가패스배 CGGL 우승(VS 나경보 1:0)
- - iTV 라이벌전
- - 8월 KPGA 32강(VS 박현준 0:1)
- - WCG 2001 최종예선 32강(VS 조정현 0:1)
- - 9월 KPGA 16강(VS 최인규 0:1)
- -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준우승(VS 임요환 2:3)
- - 10월 KPGA 16강(VS 조정현 0:1)
- - GGTV StarWars 2001 Ep2
- - iTV 라이벌전(VS 임창덕 1:3)
- - 11월 KPGA 28강(VS 장진남 0:1)
- - 라이벌 리벤지(VS 세르게이 3:0)
- - 2001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4위(4강에서 김동수에게 1:2패배, 3/4위전 VS 김정민 0:2))
- - 12월 Championship 준우승(VS 성학승 2:3)
- 2002년
- - iTV 신인왕전 우승(VS 장진남 3:1)
- - 2월 22일 2002 KT배 온게임넷 왕중왕전 우승(VS 조정현 3:0)
그러나 이 기록이 - - 1차 KPGA 투어 준우승(VS 임요환 1:3)
- - 2002 NAT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
- - 무한종족최강전(VS 이재훈 3:2)
- - 무한종족최강전(VS 김정민 3:1)
- - 무한종족최강전(VS 박정석 1:3)
- - 2차 KPGA 투어 준우승(VS 이윤열 2:3)[1]
- - 3차 KPGA 투어 Mega Match 준PO(VS 박정석 0:2)
- - WCG 2002 최종예선 1위(VS 한웅렬 2:1)
- - 2002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3위(4강에서 박정석에게 2:3패. 3/4위전 VS 베르트랑 2:0)
- - 무한종족최강전(VS 이재훈 3:1)
- - WCG 2002 은메달(VS 임요환 0:2)
- 2003년
- - 겜TV 고수초청전 준우승(VS 김정민 1:2)
- - 2002 Panasonic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3위(4강에서 이윤열에게 1:3패배. 3/4위전 VS박경락 3:1)
- - KTF Bigi배 4대 천왕전 4위(VS 박정석 0:1)
- - KTEC KPGA Winners Championship 우승(VS 임요환 3:1)
- - 벼룩시장 FindAll배 챌린저 오픈 우승(VS 이윤열 3:0)
- - Stout MSL 패자 8강 1차전(VS 변은종 0:1)
- - iTV 5차 랭킹전 우승(VS 성학승 3:2)
- - 핫브레이크배 마스터즈 8강
- - 2003 Olympus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준우승(VS 서지훈 2:3)
- - 제1회 여수 Cyber 게임대회 4대천왕전 우승(VS이윤열 1:0)
- - WCG 2003 최종예선 16강(VS 김성제 0:1)
- - CJ 가야방송배 준우승(VS 서지훈 0:1)
- - iTV 6차 랭킹전
- - 2003 Mycub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 - TG삼보 MSL 준우승(VS 최연성 0:3)
- - KBC 파워게임쇼 4대천왕전 우승(VS 김정민 2:1)
- - KT Megapass 프리미어리그 P.O.(VS 임요환 1:2)
- 2004년
- - 하나포스 센게임 MSL 패자조 2R(VS 조용호 0:1)
- - iTV 7차 랭킹전
- - Spris MSL 패자조 1R(VS 김환중 0:1)
- - WCG 2004 한국대표선발전 16강(VS 서지훈 0:2)
- - EVER 스타리그 2004 4위 4강에서 임요환에게 0:3패배. 3/4위전 VS 박정석에서 2:3)
- - KT Megapass 프리미어리그 리그챔피언쉽 준우승(VS 박태민 0:2)
- - KT-KTF 프리미리그 4위(VS 이윤열 0:2)
- 2005년
- - IOPS 스타리그 04~05 8강(VS 이윤열 0:2)
- - EVER 스타리그 2005 16강
- - 스니커즈 올스타리그 1R 3위(4강에서 이윤열에게 0:2패배. 3/4위전 VS 강민 2:0)
- - 우주닷컴 MSL 패자조 2R(VS 전태규 1:2)
- - 스니커즈 올스타리그 2R 우승(VS 강민 3:1)
- - 스니커즈 올스타리그 통합우승(VS 이윤열 3:2)[2]
- - KTF 광주 신사옥 준공기념 스타크래프트 클럽 초청전
- - WCG 2005 한국예선 6조 8강(VS 서지수 0:2)
- - So1 스타리그 2005 16강
- - 블리즈컨 2005 우승(VS 박정석 2:1)
- 2006년
- - Blizzard WWI 2006 준우승(VS 강민 0:2)
- - 엘리트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대전투어
- - 엘리트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광주투어
- - 엘리트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서울투어
- -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3위(4강에서 한동욱에게 2:3패배. 3/4위전VS변은종 3:0)
- - WCG 2006 한국예선 F조 2위(VS 김동건 1:2)
- - WEF 2006 8강(VS
마재윤0:2) - -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24강
- - 제1회 CJ 슈퍼파이트 B경기(VS 임요환 2:3)
- - IEST 2006 3위(4강에서 박정석에게 0:2패배. 3/4위전 VS Peter Neate 3:0)
- 2007년
- 2008년
- 2009년
2.2 통산 전적
드디어 2.2다!
드디어 2.2다!
스타크래프트 역대 전적 | ||
상대 종족 | 승패 | 승률 |
vs 테란 | 235승 192패 | 55.0% |
vs 프로토스 | 165승 110패 | 60.0% |
vs 저그 | 127승 94패 | 57.5% |
총합 | 527승 396패 | 57.1% |
3 스타크래프트 1 프로게이머(2000년~2011년)
3.1 플레이 스타일
최적의 자원과 타이밍을 알아내어 몰아치던 폭풍저그.
3.1.1 가난한 저그
지금의 저그도 그런 면이 있지만, 홍진호 이전의 저그는 단순히 빠른 앞마당, 더 많은 자원을 바탕으로 나오는 더 많은 병력으로 승리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 스타일에 도전장을 던진 선수가 바로 황제 임요환이다. 임요환의 해법은 '상대가 자원을 많이 가져가게 놓아두지 않겠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한 타이밍 빠르게 진출해서 자신이 우위에 있는 소수 병력 컨트롤로 이득을 보고, 여기저기 드랍쉽을 날리며 저그를 정신없이 몰아붙여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었는데, 여기에 대응한 게이머가 바로 홍진호다.
홍진호는 기존의 저그와는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자원을 바탕으로 물량을 모으기보다는 끊임없이 몰아쳐서 병력을 교환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런 해법은 프로게이머 변성철이 처음 선보였지만, 임요환의 플레이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끌어올린 것은 홍진호였고 그는 곧 가난한 저그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모든 저그들은 홍진호의 스타일에 영향을 받게 된다.
다른 저그들도 홍진호의 플레이를 많이 모방했지만 홍진호는 히드라 두마리를 빼돌려서 러커 변태(...)라든지, 3센티 드랍2.22cm드랍, 스탑러커, 지형지물과 사정거리 차이를 이용해 뮤탈만으로 아콘 잡기 등 워낙 유기적이고 개인의 센스에 의존하는 플레이를 사용했다.여기서부터 더 지니어스의 기운이... 때문에 훗날 그의 플레이가 정석이 되지는 못했다. 이것은 홍진호의 스타일이 확장과 해처리 확보가 아닌 병력 싸움 위주였음에도 불구하고 컨트롤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닌 탓도 있다. 전성기에도 홍진호는 세세한 컨트롤보다는 조합과 타이밍, 빈틈을 노리는 플레이를 주로 써서 많은 승리를 거두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플레이가 패러다임에 맞지 않게 된다. 결국 훗날에는 이런 스타일이 홍진호 자신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이에 더해서, 가난한 저그 홍진호의 이미지는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맵의 영향으로 대체로 적은 자원과 컨셉 맵이 자주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시절 저그맵이 적어서 홍진호가 맵빨을 못받은 건 아쉬운 일이긴 하다. 상대 선수들이 테란맵 끼고 게임한 건 사실이니. 건틀렛TG 끼고도 셧아웃당한 TG삼보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사실 맵연구 끝난 후대에 보면 테란맵 아닌게 거의 없다
초창기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맵이었던 "네오 정글 스토리". 이 맵에서 테란:저그 밸런스는 105:84로 그럭저럭 맞았었지만, 홍진호가 날고기는 테란들을 모조리 잡아내며 23승 4패를 기록해버려 밸런스가 맞춰진 것이다. 홍진호의 전적을 제외한다면 101:61로 테란의 승이 2배 가까이 난다. 참고로 맵 제작자는 엄재경. 스타리그 해설하시는 그분 맞다! |
혹자는 홍진호 이후 대부분의 저그들이 부유한 것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결국 원점회귀이며, 홍진호가 저그에 미친 영향은 매우 적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홍진호가 제시한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다. 홍진호가 들어가는 타이밍은 그 어떤 저그가 컨트롤 하더라도 이득을 보는 타이밍이다. 그런데 그 타이밍을 잡아낼 수 있는 선수는 당시 홍진호가 유일했다. 홍진호의 컨트롤은 당대에도 특출나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홍진호가 갖고 있는 개념들, 예컨대 병력을 교환하는 타이밍이나 상대의 자원을 끊임없이 견제하는 것 등은 이후 저그에게도 훌륭한 교보재가 되었다. 홍진호의 플레이는 변은종이나 박태민, 박성준 즉 '변태준'이라 불리는 후대의 저그들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는 증언이 많다. 대표적으로 박태민은 인터뷰에서 홍진호의 부대지정까지 따라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고, 박성준 또한 2008년 스타 뒷담화에 출연했을 때 홍진호 빠돌이스러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양박이 인정한 저그. 그러나 2006년에 몰락할 때 즈음해서는 이 감각이 무뎌졌는지 타이밍을 못잡아서 패배한 경기가 많아졌다.
3.1.2 부유한 저그(?)
흔히 온게임넷의 홍진호만 생각하며 홍진호를 어떻게든 레어에서 게임 끝내던 가난한 저그로 기억하는데. 이는 저그는 레어 싸움, 드론은 인구수 방해, 그래서 홍진호는 부유한 저그는 못한다는 엄재경의 포장술과 폭풍저그라는 별명이 만들어낸 편견에 가깝다. 반면 KPGA 시절의 MBC게임은 리버 오브 플레임, 플레인즈 투 힐, 블레이드 스톰 등 풍부한 자원과 로템형의 스탠다드한 맵을 오랜기간 사용했고, 이런 맵에서 홍진호는 부유한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2003년 올림푸스 스타리그나 위너스 챔피언쉽으로만 올라가도 홍진호는 울트라리스크를 주력으로 한 목동저그를 즐겨 사용하고 있었다.
사실 가난하지만 몰아치는 공격형 저그와 후반을 바라보며 부유한 플레이를 시도하는 수비형 저그를 명확하게 구분내리기는 쉽지 않다. 흔히 생각하는 공격형 저그라 하면 드론이 적고, 계속 병력만 뽑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공격형 저그는 중반 이후로 물량을 뽑아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초반에 드론을 많이 뽑는다. 즉, 초반에 드론을 많이 뽑아 중후반에는 병력만 찍는 것이다. 홍진호가 대단했던 것은 이 드론 뽑는 타이밍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끔은 드론 째기에 집착하다 삼연벙 같은 촌극을 벌이기도 했지만, 결코 부자 플레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가끔씩 저그들이 초반 대비를 허술하게 하다가 앞마당이 뚫려버리는 것을 생각해보면 당시 홍진호의 이러한 플레이는 놀라운 수준이다. 박성준조차 2005년에 전성기 이윤열에게 드론 뽑는 타이밍이 읽히자 아이옵스배 결승전에서 0:3으로 패한 반면, 홍진호는 2005년에도 이윤열을 격퇴하며 스니커즈 올스타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스니커즈 올스타리그는 이벤트리그다
3.1.3 평가
각 종족전을 비교하면 우선 홍진호의 대 테란전은 역대에서도 손꼽는 수준이다. 2008년 당시 한 스타팬이 역상성 100전을 조회한 적이 있었는데 유일하게 대 테란전 70%를 달성한 저그가 홍진호였다. 저그전 역시 삼연벙으로 유명한 EVER 2004 스타리그 8강전에서 전대회 우승자 박성준을 꺾을 정도로 강력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광역 데미지에 약한 저그 유닛들의 특성상 병력위주의 게임을 선호했던 홍진호는 프로토스에게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었다(그래도 5할은 찍어줬다). 김동수와 박정석에게 4강에서 패하며 결승길을 열어준 것이 홍진호고, 2005년에도 So1 스타리그 16강에서 오영종에게 묻지마 다크로 관광당하면서 사신토스라는 별명을 선사해준 것도 홍진호였다. 이 때문인지 2004년 EVER 스타리그,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S2에서 가을에 토스가 우승하지 못한 것이 홍진호를 만나지 못해서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단순히 실력을 떠나서, 그가 지금까지 이름을 남긴 이유는 또한 조용호와 함께 초기 저그의 운영 및 빌드와 그에 알맞는 개념들을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홍진호는 대표적인 천재 게이머였다. 이윤열 옆에 그를 두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인데, 저그가 타 종족의 도전을 받을 때 가장 유연하고 완벽한 대처를 보여주는 것이 홍진호였다. 조용호가 저그 빌드의 연구에 미친 영향은 더 크지만 그 자신은 승률이 낮았던 것에 비해 홍진호는 전성기에는 테란전에 강했다. 즉, 저그에게는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조용호 역시 홍진호의 영향을 짙게 받았으며, 박성준을 포함한 후배 저그들은 모두 홍진호의 플레이를 기반으로 했다. 박태민은 홍진호보다 전성기가 뒤에 왔을 뿐 후배는 아니다. 특히 홍진호의 업적은 라바 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운 것이다. 단순히 물량만 모으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 드론을 뽑고 어느 시점에 병력을 뽑아야하는 지, 이 타이밍에 뽑은 병력을 어떻게 소비해야하는지 제대로 설명하고 있었다.
결론을 내리자면, 당시 홍진호의 플레이는 무작정 가난한 저그, 혹은 부유한 저그라고 낙인찍을 수 없는 수준이다. 그보다는 진출과 유리한 교전을 위한 타이밍 감각, 이를 뒷받침해주는 드론 수의 인구수 낭비 억제최적화, 그리고 그 결과로 화면상에서 펼쳐지는 병력상의 우위가 쉴새없이 몰아치는 폭풍저그 홍진호의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3.2 데뷔와 전성기(2000년~2003년)
Hanbitsoft OSL YellOw vs nO.1 2001-02-16 @ Hall of Valhalla
▲홍진호의 온게임넷 스타리그 첫 승. VS 유병준. 2001년 2월 16일. 당시 홍진호의 유닛 색상은 황색. 머리도 노란색
데뷔 초기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테란맵 라그나로크와 홀 오브 발할라라는 반섬맵을 끼고도 결승에 진출하여 임요환에게 5경기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며 주목을 받았다. 심지어 라그나로크에서 김정민에게 테저전 저그의 유일한 승리를 따내는 기적을 보여주었으며, 결승전에도 전략적인 성큰러쉬로 임요환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또한 현재는 이벤트전으로 격하되어버렸지만 수준있는 게이머들이 참여한 KT 왕중왕전 건담테란 조정현을 결승전에서 3 : 0으로 완벽히 개발살내버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초창기 닉네임은 '제2의 최진우'였는데 본인이 제2의 최진우보단 제1의 홍진호가 되고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적으로나 그 이외의 여러 면으로나, 그는 스타판에서 영원한 제 21의 홍진호가 되었다.
파일:Attachment/홍진호/2.png
2002년 2월 20일부터 약 2달에 걸친 홍진호 최고포스 구간. 보다시피 정말 후덜덜한 수준으로, 32전 30승 2패(승률 93.8% )에 달하는 대기록이다. 뭐야 몰라 이거 무서워... 심지어 이 기록은 테란맵들의 향연에서 온갖 테란들을 씹어먹으면서 창출한 대기록이다. 전성기 홍진호가 우승을 못한 이유로 라그나로크, 홀 오브 발할라, 플레인즈 투 힐 등의 테란맵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것은 절대 푸념이 아니다. 게다가 스노우 바운드 같은 프로토스가 극도로 유리한 전장도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이윽고 프로토스들은 대학살당했다.(누가 2에다가 강조 해놧냐)
폭풍과 같이 쉴새없이 공격을 몰아쳐 '폭풍 저그'라는 별명이 생겼으며 팬층도 두터워 동시기의 프로게이머인 임요환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이후 '임요환의 제자/후계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전성기를 구가했던 이윤열과도 박빙의 상대전적을 유지했다. 소위 임진록이라는 타이틀 매치는 스타판에서 흥행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키워드로 자리 잡았는'데, 사실 '임진록'이 정립될 시기, 소위 프로게이머 1.5세대로 분류되는 임요환은 이미 전성기 끝물이었고 프로게이머 2세대로 분류되는 홍진호는 이제 막 등장한 루키였다. 때문에 vs 임요환전 못지않게 vs 이윤열전(소위 '달콩록')에서 당대 테저전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박빙의, 그리고 재미있는 경기를 더 많이 만들었다고 회자되기도 한다. 여기에 02시즌~03시즌 초까지 한참 암울기였던 프로토스의 유일한 희망 박정석을 더해 임요환-홍진호-박정석-이윤열의, 사대천왕 구도가 만들어지고, 이들 간에 대결을 벌이는 사대천왕전 같은 이벤트가 열리기도 했다.
이후 이윤열을 위시로 한 테란 진영의 아카데미 더블커맨드로 모든 저그들이 깨지고 있었음에도 홍진호만은 더블 커맨드가 내려앉은 직후 병력 공백기를 노리는 타이밍 러쉬라든지, 진출한 테란 한방 병력과의 교전을 피하는 도망자 저그를 구사하며 끝끝내 살아남았다. 반면 다른 저그들은 조용호라는 걸출한 저그가 등장해 목동저그를 개발하기 전까지 엄청나게 쓸려나갔다.
홍진호는 다른 종족의 최강자가 바뀌어 나갈 때도 굳건히 저그 1인자의 지위를 지키고 있었으나, 최연성의 등장 이후에는 점차 성적이 저조해지기 시작한다. '부동의 저그 1인자'로 꼽히던 그의 자리는 박성준, 박태민, 변은종 등의 신진 저그들이 각각의 스타일을 드러내며 차지해갔다. 특히 저그 최초 온게임넷 우승이 박성준에게 넘어간 것은 단순히 팬들의 아쉬움뿐만 아니라 홍진호, 강도경 등의 2세대 저그 프로게이머들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였다? 또한 이는 '홍진호가 했어야 될 우승을 빼앗았다'는 이유로 박성준이 한동안 비호감 프로게이머로 남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저그 팬의 절반은 홍진호의 팬이었고, 심지어 박성준이 우승했을 때 상대는 홍진호와 같은 팀이었던 박정석이었다. 홍진호의 팬들 입장에선 박성준은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은 홍진호의 치어풀에 박성준의 우승을 폄하하는 내용을 실린 적이 있어 논란이 일었던 적도 있다.
5회 준우승이라는 것이 놀림감, 우스갯소리로 폄하되기도 하나 홍진호가 당시 테란을 상대한 맵을 보면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저그가 불리할 수밖에 없는 섬맵/반섬맵(유보트, 홀 오브 발할라, 시메트리 오브 사이 등)이 사용되고 있었고, 엎어지면 코닿는 러쉬거리의 맵(플레인즈 투 힐이나 라그나로크 등)도 정말 많았다.
더욱이 그가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 서지훈과 같은 당대 최고의 테란들이었다. 그가 결승에서 대결한 테란들의 결승 당시의 테저전 실력은 임요환의 2001년 대저그전은 77승 17패 81%였고 이윤열의 2002년 대저그전은 78승32패 70%였으며 2003년 서지훈의 대저그전은 51승22패 69% 2003년 최연성의 대저그전은 27승5패 84%로 홍진호는 3년연속으로 저그를 제일 잘 잡는 테란들과 결승에서 수없이 대결하였다. 홍진호는 임요환에게 삼연벙을 당하기 전까지 5드론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할 정도로 무른 면이 있었는데, 설령 그런 면이 그를 정상의 자리로 이끌지는 못했다 해도 오랜기간 저그의 자존심으로 자리매김한 업적은 폄하될 수 없는 부분이다.
결승전 종료후 시상 中. 좌측부터 우승자 서지훈, 준우승자 홍진호, 3위 임요환. |
역시 가장 아쉬운 대회라면 올림푸스 스타리그 결승전이다. 홍진호 스스로도 마지막 기회라 생각할 만큼 맵도 이전의 어느 시절보다 좋았으며, 상대도 서지훈이라는, 임요환, 이윤열(이 시절최연성은 아직 신인이었다)보다는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테란이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1경기가 서지훈 측의 에러로 재경기가 선언되고 1,5경기 다른 전략을 준비해왔던 홍진호는 5경기 전략을 1경기에 사용했다. 결국 5경기까지 가면서 패배. 무대 위에서는 서지훈의 우승을 축하했지만 끝난 후 눈물을 흘렸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
2003년은 홍진호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승을 단 한번도 하지 못했음에도 우승 타이틀을 하나씩 거머쥐었던 서지훈, 강민을 제치고 "함께하는 온게임넷 스타리그Gamer Ranking+"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03년의 홍진호 함온스 플러스 랭킹은 782.0점으로 2위였던 강민을 519.0점으로 따돌리고 1위를 기록했다. 또한 2003년 한해를 기준으로 계산하는 "함온스 Gamer Ranking"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한국e스포츠협회 랭킹에서는'2위를 기록했다. 다만 KPGA 랭킹은 말이 많았다. 2004년 1월자 기사에서는 "KPGA 공식랭킹의 포인트 산정기준을 공개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팬들의 의견을 반영해 공식랭킹을 수정하거나 새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팬들의 지지가 없는 랭킹은 무의미하다. 필요하다면 누적랭킹과 최신랭킹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라고 하기도 했다.
정규 시즌 우승이 없다는 점으로 그의 경력이 저평가받기도 하는데, 그의 전성기가 임 - 이 - 최로 이어지는 테란의 초전성기였으며 테란>저그의 상성을 생각해 보면 운이 나빴다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전적 통계를 내면 묘하게 이벤트전에서 강하며, 몇몇 이벤트전에서는 임 - 이를 꺾고 우승한 적도 있다. 다만 그 경기가 후대에 이벤트전으로 전해질 뿐 정규 시즌 우승도 차지하지 못했고 테란이 절정기를 구가하던 시기이지만 승률로 보나 임팩트로 보나 2003년의 홍진호는 종족 불문 당대 최고 프로게이머였음은 자명한 일.
또한 2010년을 기준으로 역상성 100전 최고승률(VS T 70%) 기록을 가지고 있는 등 당대에 독보적인 실력을 갖춘 게이머였다. 특히 테란천국이던 시절 희대의 테란맵 라그나로크(VS 김정민)와 어나더데이(VS 김현진)에서 테란이 아닌 종족으로 유일하게 테란을 이겼고 더불어 기량이 많이 떨어진 2010년 이후에 리쌍도 답이 없다며 포기한 희대의 토스맵 중원에서 홀로 장윤철을 꺾은 적도 있다. 다만 하늘이 임요환을 낳고 홍진호를 낳았을 뿐.
당대에 이윤열, 강민, 서지훈, 박용욱 등이 모두 우승을 경험했던 선수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때의 홍진호는 말 그대로 우승 빼고 다해본 플레이어였다.
3.3 몰락(2004년말~2008년)
전성기 이후 최연성의 등장은 홍진호의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을 무위로 만들어버렸다. 임요환도, 이윤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홍진호를 상대로 최연성은 더블커맨드를 앞세워 무자비하게 격파해버렸다. 일단 드러눕고 보는 수비와 누적 자원으로 뿜어내는 중후반 물량으로 이득을 극대화하는 최연성의 스타일은 공격성과 번뜩이는 전장 선택 능력으로 저테전의 강자로 군림하던 홍진호에게는 천적과도 같았으며, 결국 홍진호는 2005년을 기점으로 쏟아진 최연성을 기반으로 한 양산형 테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만다. 여기에 2003년 마이큐브 스타리그 이후 첼린지리그로 떨어졌다가 올라온 EVER 스타리그 2004 4강전에서 그 유명한 삼연벙의 희생자가 되며 홍진호는 그의 최대 무기였던 테란전의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결국 홍진호는 끝끝내 테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후 양박(박성준, 박태민)과 마준동까지 이어지는 후배 저그들이 테란 극복의 역사를 기록한다.
성적부진이 장기화되자 사람들로부터 "진호야 군대가라"라는 말을 듣게 되고, 화려했던 뮤탈 컨트롤도 뮤탈짤짤이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며 노킬 투다이의 콩탈이라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어찌나 콩탈이 까였는지 홍진호 본인도 한동안 테란전에 뮤탈 운영 자체를 배제하다시피 할 정도로 트라우마틱한 반응을 보였다. 물량 중시 테란에게는 3가스를 가져가기 전의 뮤탈 활용이 필수적이다시피 한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저테전의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한 것은 당연지사. 잘만 하던 저럴과 히럴도 홍진호의 자신감 하락이 전투력 하락으로 이어지며 테란전 기량이 급감하고 말았다. 홍진호의 뮤탈이 콩탈의 오명을 벗어던진 것은 공군 ACE에서 맹연습을 한 이후에야 가능했다.
하향세의 절정이던 2005년 WCG 예선 당시, 서지수전에서 2 : 0으로 패배한 이후 상한 육회를 먹고 배탈이 났다는 프론트 보도, 이른바 '폭풍설사' 사건은 KT 매직엔스 프론트의 많은 삽질 중 단연 백미라 할 만하다. 이어진 사상 초유의 리플레이 공개 거부 사태로 인해 스타크래프트 갤러리에서 까이고 까여 가루가 되기도 했었다. 사실, 이 날 예선조차 뚫지 못한 건 홍진호뿐만 아니라 김정민, 변길섭, 조용호, 강민, 박정석 등 사실상 팀 전력 전부였으니 다같이 배탈난게 맞나 보네육회의 오명을 뒤집어 쓸 건 단지 홍진호뿐만은 아닌 셈인데, 문제는 홍진호가 패한 상대가 하필 서지수였다는 것. 게다가 서지수는 홍진호를 이긴 후 다음 상대인 삼성 박성준에게는 그냥 2:0으로 패배했기 때문에 더욱 까였다. 더 가관인 것은 박성준도 최종 진출자는 되지 못했다는 것. 패자뿐인 싸움
이후 So1 스타리그에서는 오영종에게 묻지마 다크관광을 당하며 사신토스 별명을 선사하는 등 그리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가, 815와 개척시대 등의 특이한 컨셉의 맵들이 대폭 활용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였다. 24강 조별대진에서 전상욱의 벙커링을 막고 특유의 맹공으로 역전, 16강에 진출하여 이병민과의 경기에서 2 : 0 승리를 거두고 8강에서 최모씨와의 경기도 2 : 1로 승리한 것이다. 하지만 4강에서 한동욱에게 3 : 2로 아깝게 무너지며 우승 도전은 종료된다. 콩빠에게는 정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회인데 결승전 상대가 조용호나 변은종 둘 중 하나로 변수 많은 저저전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나마 3, 4위전에서 변은종을 셧아웃시켜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나 이후 시즌 2에서 허무하게 탈락해버린다. 이것이 마지막 메이저 대회였다. 이것 때문에 한동욱은 홍진호의 마지막 우승기회를 막아버렸다고 한동안 까였다
2007년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막장 퇴물의 길을 걸었다. 마레기의 등장으로 저그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버린데다 돌아오고 보니 그나마 홍진호의 강점으로 뽑히던 상황판단과 컨트롤이 눈에 띄게 떨어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인 듯하다. 실질적으로 이후 홍진호의 인기는 게이머의 성적에서 나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스덕들 사이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컨텐츠에 의존했다. 예를들면 2에 대한 집착이나 콩댄스, 드론은 인구수 방해된다 등등. 이 즈음부터 소위 '황건적'이라는 까인지 빠인지 불분명한 세력의 준동으로 홍진호를 까는 문화가 조성되어 갔다. 콩댄스와 스동갤이 흥했던 것도 이 시점.
양대리그에 진출도 못하는 막장스러운 성적에도 불구하고 1군 로스터에는 항상 남았다. '얼굴 마담이냐'는 비난도 생겨났다. 참고로 이때는 김철 감독 시기와 겹친다.
한편 2008년 곰TV 클래식에서 윤용태를 잡고 16강을 찍으면서 다시 재기하는 듯하였으나 개인리그 예선에서 탈락하고 프로리그는 팀플이 폐지된데다 후배 저그유저인 배병우와 온게임넷 스파키즈에서 이적한 찬레기의 합류로 인해 출전할 자리를 잃은 뒤 공군으로 입대한다.
3.4 입대와 군 복무시의 경력(2008년~2010년)
공군 입대시에는 기대치가 매우 낮았으나, 선임 오영종이 이제동보다 더 열심히 연습하는 유일한 선수라 평할 정도로 집중력을 올려 혹독하게 게임에 정진한 결과 전성기 이상의 마이크로 컨트롤과 피지컬을 갖추며, 이로 인해 향상된 교전 능력을 바탕으로 게이머로서 부활에 성공하였다. 특히 입대 후 첫승이었던 6.20 황색혁명은 모든 스타크래프트 팬들을 감동시킨 명승부 중 명승부.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영상.
군 복무 당시 홍진호의 상세 경력은 홍진호/공군에이스 경력 문서를 참조.
군 복무중 소속팀 KT 롤스터가 위너스 리그를 우승했는데, 감독이고 선수고 해설이고 전부 콩을 깠다. 해설진은 황신의 저주를 깨느냐 마느냐 이야기했고, 이지훈 감독과 KT 선수들은 군대로 잠시 피하시어황신이 우승을 허락하셨다라며 콩을 까댔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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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호의 친정팀 KT 롤스터는 위너스리그 우승의 여세를 몰아 숙적 SKT T1을 꺾고 프로리그 09-10 시즌의 최종 우승자가 되었는데, KT가 우승을 확정지을 때 광안리를 찾았던 홍진호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팀이 우승한 것에 대한 기쁨과 자신이 있을 때 우승하지 못했던 아픔이 겹치면서 흘린 눈물이었으리라. 스갤이나 PGR21 등에 서식하던 스타리그를 초창기 때부터 봐 온 스덕들은 이 장면이 나오는 순간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1경기에 출전한 KT의 주장 故 우정호는 고인규를 물리치고 홍진호를 강권하여 콩댄스를 함께 하기도 하며, 팀의 최고의 순간을 대선배와 함께 하려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2010년 12월 29일에 드디어! 전역했고, 2010년 12월 30일, 홍진호 갤러리에 폭풍 같은 인증글을 남겼다. 인증글.
12월 30일. KT 롤스터와 팬들이 가진 송년회에선 한 프로토스 유저를 상대로 마우스만 사용하는 핸디캡 매치를 벌여 패하기도 했다.[5] 인터뷰에서 현재 스2는 해본적이 없으며 전향할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스2로 전향한 이윤열과 임요환에 대해서는 '게이머 생활을 연장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니 좋은 선택이었다'고 코멘트를 남겼다.
이등병 때는 굉장히 기 죽은 모습이 많이 찍혔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다. 본인 말에 따르면 박정석한테 기대를 많이 걸었는데, 박정석이 가장 심하게 관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실세가 된 후에는 평소 성격처럼 장난을 많이 쳤다고 한다. 이주영이 홍진호가 정말 믿음직한 후임이라 말하고, 박정석도 홍진호가 후임 관리를 잘한다고...
3.5 전역 이후의 활동(2010년~2011년)
공군 활동기 출전 기회가 생기면서 간간이나마 승리를 보여주었기에(+ 부실한 KT 저그 라인) 전역 후 기대를 모았으나, 전역 이후에 김형준이 등장하는 예능프로에 감독을 맡는 등 방송인이 되어간다고 까였다. 입대 전에 프로게이머 생활을 30대까지 하겠다고 했지만 별로 자신없고 의지가 없는 듯한 말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했었는데, 공군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서 올드팬들은 큰 기대를 했다. 그런데 전역 후 또 방송으로 빠지는 모습을 보이니 까가 늘어날 수밖에. 같은 올드인 박정석, 이윤열 등은 어떤 식으로든 게임계에서 출전하며 활동 중이고, 특히 임요환이 '팬들에게 계속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신조 하에 노력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것 때문에 더욱 비교가 되었다. 실제로 전역 이후에 경기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 은퇴했으니 안타까움이 더하다.
박카스 스타리그 2010의 결승전이 정명훈 VS 송병구로 치뤄지게 됨에 따라 결승전이 열리는 광주에 직접 내려갔다. 두 선수가 홍진호와 팀이 다른 것을 감안하면 영락없는 콩라인 계승자 선정을 위한 방문...
군 전역 이후 박정석과 함께 인터뷰를 했는데 여자친구 관련 내용이 안습. 이등병 시절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울상을 짓고 있었더니 박정석이 표정이 안 좋다고 갈궜다고 한다. 게다가 전역하니 여자친구는 이미 결혼한 뒤라고. 아아...황신이여...
2011년 3월 3일에 열린 MSL 서바이버 예선에서 노준규에게 마패를 당하는 치욕을 겪으면서 0 : 2으로 패배하여 탈락하였다. 방송인이 현역 게이머에게 이길 수 없는건 당연한거 아닌가?
2011년 4월 9일 위너스리그 결승전에서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SKT T1에게 팀 KT 롤스터가 준우승을 하면서 준우승의 전설을 이어갔다. 적그리스도 갓영호에게 심판을 내리신 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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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간지 발산…. 방송인은 이미지 관리 하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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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KT 프로필 촬영 현장에서. 포모스 기사 제목도 대놓고 마지막으로 또 다른 간지를 남기고... 이제 그만좀 까라고
3.6 은퇴(2011년)
2011년 6월 15일 밤, 자신의 다음 팬 카페에서 은퇴 의사를 밝혔다. 안주하는 것이 부끄럽다면서 프로게이머의 길을 그만두고, 안주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히 스갤은 대폭발&절망. 안 그래도 쓰레기 하나가 나대는 바람에 우울한 때였는데 홍진호의 은퇴 소식까지 겹쳐 스갤은 패닉 상태였다. 그나마 황신 은퇴 추모의 의미에서 야갤, 와갤, 스투갤 등의 테러를 시도했으나 잠깐 글쓰기를 내리거나 소수가 도배하는 정도로 그쳤다. 말 그대로 스타판과 황신의 모습이 일치하는 안타까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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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잘 살펴 보면 글이 22줄임을 알 수 있다. |
'새로운 도전'이라는 부분에서 스투 전향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있지만 프로게이머의 길을 그만둔다고 했으므로 확률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2 지지자들은 무조건 스2로 오길 바라고 있다
데일리e스포츠의 기사에서 홍진호의 은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게임방송국의 섭외 제의였다고 나오며, 온게임넷의 경우는 박용욱 해설이 공익 입대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은퇴 후 해설자 전향의 가능성이 높았으나, 홍진호 본인이 e스포츠와는 관련된 일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황이라 이 역시 가능성이 적다. 그리고 해설하기에는 발음이...
6월 25일 KT 롤스터와 위메이드 폭스의 경기 시작 전 홍진호의 은퇴식이 치러졌다. 원래는 1시 프로리그 시작 이전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온게임넷 측과의 협상을 통해 프로리그 방송 시간인 1시부터 TV를 통해 방송되었다. 그리고 은퇴식이 치뤄지는 6월 25일 태풍 '메아리'가 대한민국에 상륙해 전국을 강타했다. 아아 폭풍….
전용준 캐스터가 2남 중 "둘"째, 22회 준우승 등 콩 까는 기록들을 읊으면서 은퇴식이 시작, 홍진호는 정장을 입고 무대 위에 등장해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지만, 2등도 많이하면 이렇게 기억해 준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서 기쁩니다."라는 멋지지만 뭔가 슬픈 소감을 남겼다.
소감을 남기기 직전에 한 팬이 남긴 치어풀 중에는 이러한 말이 있었다.
"저그의 진정한 왕 부디 영원하소서."
그리고 부상으로 순금 22돈으로 만들어진 골든마우스가 주어졌다(하지만 정식 골든마우스는 아니고, KT에서 온게임넷의 협조를 얻어 제작한 이벤트성 물품이라고역시 비공식전 최강자 비콩식 골마). 이외에 KT의 격려금도 그에게 주어졌다.
이 은퇴식에는 같은 팀의 박정석뿐만 아니라 임요환, 이윤열도 참석해 사대천왕이 한 자리에 모여 그를 기렸으며 스타2 oGs의 플레잉코치인 박상익, 과거 KTF의 인사 정암 송병석도 참석하였다.
그리고 보통코빠 박완규가 와서 그를 위해 '비밀'을 불러줬다. 박완규는 "홍진호에게 가장 어울리는 숫자는 2가 아닌 1이다."라고 말해줬다. 이유는 그가 사분오열된 스타크래프트 판을 하나로 묶어줬기 때문이라고. 덧붙여 자신은 라이벌팀 티원의 팬이지만 홍진호는 비단 라이벌팀 선수이기만 한 게 아니라 모든 스타팬들의 프랜차이즈 스타라며, 김택용이 진 경기 중 유일하게 홍진호와의 경기에서는 박수를 쳤다는 말도 하였다.
은퇴식 마지막 세레머니에서 임요환은 스타2 패키지 CD를 줬다...지만 정작 준 패키지는 비어 있었다고 한다. 스타2를 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찾아 오라는 의미라고. 홍진호: ?? / 임요환: 잔말말고 너도 와ㅋㅋ 니가 와야 삼연벙 또 하지ㅋㅋ 스타2에서 임진록이 벌어지면 다시 한 번 곰TV 서버 폭발 여담으로 임요환의 스타 2 드립은 스갤에서도 흥했다.
그 후 은퇴식 날 1SET 끝나고 광고시간 종료 후 2SET를 시작하기 위해 방송이 재개된 시간이 정확히 2시 22분이었다. 그리고 제 2세트에 노란 셔츠를 입고 출전해 전상욱과 vs 테란전 200번째 경기이자 프로게이머로서 마지막 경기를 2인용 맵 얼터너티브 12시에서 치뤘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2해처리 체제에서 올인 뮤탈 + 약간의 저글링을 통한 전성기 시절의 폭풍 스타일로 전상욱을 몰아쳐 잠시 환호성을 부르기도 했으나 경기가 장기화되면서 결국 패배했다.
이 경기로 전상욱에게 상대전적이 4승 2패가 되었고 전상욱은 이 경기의 승리로 통산 200승을 찍었다.
마지막 경기의 패배로 KT와 폭스의 스코어는 0 : 2가 되었으며 이후 폭스가 2패 후 2승을 거두어 최종 스코어 2 : 4로 폭스가 승리하였다. 참고로 이 날 경기 6세트 강현우 vs 전태양의 경기에서는, 강현우의 다크템플러 러시 중 랙이 걸려 레프리가 게임 중단을 선언했고[6], 이후 경기가 재개되는 카운트다운이 3에서 멈춰, 경기를 보는 모든 관중이 2를 외치는 해프닝이 있었고, 황신의 가호가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 사실 KT롤스터 코칭스태프 쪽에서 심판진에게 어필하는 상황이었고, 이에 카운트다운이 중단된 것이었다. 그래도 은퇴식같은 날까지 2 남겨놓고 멈추는 건 좀 심하잖아 어필 이후 경기는 속행.
이날만큼은 스갤은 물론이고 스투갤 역시 한 마음으로 은퇴 경기를 지켜보며 그를 기렸으며, 스타2 유저들 중 상당수가 그의 은퇴식을 계기로 스 1을 다시 시청했던 만큼 둘 사이의 반목이 줄어들기를 기대하는 유저들도 있는 듯.
그리고 teamliquid는 그의 은퇴를 기려 Power Rank "2"위로 선정했다.그만 좀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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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은퇴식 날...무슨 운명인지, 그는 그렇게 원하던 1위를 했다. 은퇴식의 사회를 본 전용준 캐스터가 은퇴식만이라도 1위 하게 해달라고 했다…. 아아… 그는 멋진 선수였습니다.
현재 스타판의 태동기를 함께한 올드들 중 예우받는 은퇴식을 한 유일한 선수이다. 게다가 이 은퇴식은 소속팀, 팬들이 함께 해 준 은퇴식이었다.
3.7 은퇴 이후 스타크래프트 관련 활동(2011년~)
은퇴 이후인 2011년 7월 4일, 펩시 GSL July. 코드 A 경기에서 선수 아이디를 소개하는 역할로 찬조출연했다. # 단순 찬조출연인지 향후 스투로 전향할지를 놓고 스갤과 스투갤이 처절하게 싸우는 중 본인이 앞으로 이스포츠 계열 활동을 안한다 했으니 단순 찬조출연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데 홍진호가 2번째로 소개한 선수가 해설진 2명의 승자예측을 동시에 받으며 2 : 0으로 3번 모두 승리했다. 4경기에서는 첫번째로 소개된 안호진이 2 : 1로 승리하며 무마되었으나, IM팀 소속인 안호진선수가 그날 입은 것이 황색 티셔츠였기에 단순히 콩 vs 황 구도라서 그랬을 뿐이라고...
7월 6일 신애와 밤샐기세.scx가 종방되면서, 공식적으로는 양대 방송사에서 방송 활동을 모두 종료했다. 이날 디시뉴스에서는 홍진호와 인터뷰를 한 기사가 올라왔다.#
그런데 7월 14일! 베넷어택에서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프로게이머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홍진호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는데… 상대 아마추어에게 이 자식이라고 내뱉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스타 2 프로게이머들의 소양 교육을 하게 된다고 한다. # 홍진호: 팬들과 저그 유저들을 위해 테란 유저들은 삼연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7월 22일 양민이 뿔났다에 특별출연. 여기서 홍진호 가상리그 우승을 목표하는 것을 컨셉트로 잡고 방송을 했는데 결국 우승했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2로부터 벗어났다면서 1자 모양의 트로피를 받았지만...시상식이 정말 비범했다. 우승자에게 입히는 옷이 황색, 그것도 90년대 말, e스포츠 극 초창기에나 입던 촌티나는 옷에, 축하 BGM이 바로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질 않나…. 제보에 따르면 당시 조연출이 콩빠라서 오프닝부터 마지막까지 BGM을 전부 '혼자'서 선정했다고 한다.
8월 5일에는 부산 해운대에서 임요환과의 스타크래프트 2 이벤트전을 펼친다.#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8월 5일 밤 22시에 경기가 치러지며, 관련 말풍선 채우기 이벤트가 7월 29일 오후 2시 22분에 시작된다. 이벤트 상품으로는 참여자 수가 22명 미만일 때 스타 2 패키지 2개, 22명 이상 222명 미만일 때 블리자드 머니 클립 2개, 스타 2 패키지 2개, 222명 이상일 때 Geforce GTX 460 그래픽 카드 2개, 블리자드 머니 클립 2개, 스타 2 패키지 22개를 준다. 굳이 8월 5일 밤 22시, 7월 29일 오후 2시 22분으로 시간표현을 다르게 하는 걸 보면 이거 작정하고 까는 거다. 경기 결과는 2:1로 임요환의 승리. 2세트 무너진 사원에서 2시 저그로 시작해, 바퀴 폭풍드랍과 이후 뮤탈 견제로 임요환을 몰아붙인 끝에 승리. 그 와중에 본진이 날아갔지만 그 때 임요환은 자원줄이 끊긴 상태였다. 참고로 경기가 종료된 시점인 오후 11시 34분 현재 팬들의 승리 예측 투표 결과는 임요환이 77.8%, 홍진호는 22.2%...그리고 그날 네이버 인기검색어 순위도 2위.
그리고 2011년 8월 19일 프로리그 결승에서 직관을 온 것이 포착되었다. 이날 KT가 T1을 꺾고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결국 KT가 우승 못한 건 황신이 선수 엔트리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던 거다.
그리고 2014년 2월 5일, 친한 프로게이머들을 모아 경기를 펼치는 스타 파이널포를 기획, 참가, 우승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 문서 참조.역시 이벤트전의 황신
2014년 2월 16일 위메프 곰 TV 클래식 8강에 출전해서 구성훈을 상대했으나 0:2로 패배했다. 준비는 많이 해온 티가 났으나 피지컬이 따라주지 않았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벽을 실감해야 프로게이머의 미련을 버릴 것 같았다"라며 초반 승부가 아닌 운영으로 경기를 푼 이유에 대해 밝혔다.#
2015년 11월 7일 블리즈컨 2015에서 공허의 유산 발매 기념 집정관 모드 이벤트전에 출전하였다. 2:2 매치였는데 두 번 연속으로 2시 방향에 걸린 것도 모자라 2패를 하여 2위가 되었다.(...)
2016년 2월 20일 KT에서 마련한 초청전 기가 레전드 매치에 출전하였다. 대회 날짜가 2일만 늦춰졌으면 좋겠다. 임요환을 2-0으로 꺾었지만 결승에서 이윤열에게 1-2로 역스윕당하며 20시 20분 2위를 차지했다.
4 스타크래프트 1 관련 사담
4.1 준우승의 설움,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
앞서 말했듯 저그 게이머를 손에 꼽으라면 빠질 리 없는 강력한 그리고 스타일 강한 게이머였고, 이를 증명하듯 당시대의 저그유저 중 가장 많이 결승에 진출한 게이머이기도 하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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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우승자가 결승에서 홍진호를 만난 건 아니야.하지만 결승에서 홍진호를 만난 자는 모두 우승했다는 것을 명심해.
모든 테란 우승자가 홍진호를 만나 우승한 것은 아니야.하지만 결승에서 홍진호를 만난 테란은 모두 우승했다는 것을 명심해.
홍진호가 출전한 모든 이벤트리그에서 전부 우승을 했던 것은 아니야.하지만 홍진호가 우승한 리그는 전부 이벤트가 되었다는 것을 명심해.
이벤트전 우승을 제외하고는 우승과 인연이 없는데, 스타리그에서 두번, KPGA를 포함한 MSL에서 세번 준우승을 했을 뿐 개인리그 우승은 한번도 차지한 적이 없다. 워낙에 홍진호가 2의 상징이 되다보니 이 공식리그 준우승을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많은데, 홍진호가 준우승만 했던 이유를 살펴보면 생각보다 간단하다. 모든 게이머를 통틀어 결승 대진운이 가장 없었기 때문이다.사실 그것도 운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홍진호가 개인리그 결승에 올라간 횟수는 무려 5번이나 되지만, 단 한번도 테란 이외의 종족을 만난 적이 없으며, 게다가 상대했던 테란도 보통 테란이 아니라, 각각 전성기 시절의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 서지훈이었다. 임이최 세명은 본좌 소리를 듣던 게이머였고, 서지훈 또한 상당히 강력한 게이머였는데, 이들의 최전성기의 기량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치뤘던 것이 홍진호의 결승전이었고 그 결과 준우승만 차지하게 된 것이다. 물론 정상급 테란을 잡고 우승한 저그의 사례(대표적으로 박태민, 이제동)도 있으므로 이것만 가지고 홍진호의 준우승의 이유에 대한 절대적인 해명이 될 수는 없겠지만은...
그가 속했던 팀 또한 그가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팀리그에서 한번, 프로리그에서는 다섯 번이나 준우승만 했을 뿐 우승은 한번도 거머쥐지 못했다. e-sports계의 명문구단이라 불릴만큼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던 그의 소속팀 KTF 매직엔스는 프로리그와 팀리그는 물론 조용호가 MSL에서 우승할 때까지 단 한번도 정규 리그의 우승을 한 적이 없을 정도다. 심지어 투나SG시절에서도 프로리그에서 준우승했었다.
이 시절 기록을 보면,
- 2003년 12월, 이윤열과 함께 KTF 매직엔스 임대 생활을 마치고 투나 SG로 복귀.
- 복귀하자마자 네오위즈-피망 프로리그에서 준우승.
참고로 이때 투나 SG의 결승 진출이 확전된 상황에서 홍진호가 임대로 왔었고 이적 첫 경기가 프로리그 결승전이었다. 개인전 2경기와 팀플 1경기(홍진호,이윤열)를 출전했는데 3패(...)를 기록하면서 팀 준우승에 일조했다. 팀원들이 차려놓은 밥상을 발로 차버린 셈. - 이후 2004년 4월 홍진호가 KTF 매직엔스로 정식 이적(이윤열은 남았다).
- SG는 팬택 앤 큐리텔 큐리어스로 새롭게 창단. 이후 팬택 앤 큐리텔 큐리어스는 이병민과 이윤열을 앞세워 SKY 프로리그 2004 2라운드에서
홍진호를 이적 보낸지 겨우 반 년 만에 귀신같이우승. - 정작 홍진호가 몸담게 된 KTF 매직엔스는 SKY 프로리그 2004 3라운드에서 준우승.
- KTF 매직엔스,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에서 준우승.
- KTF 매직엔스, SKY 프로리그 그랜드파이널에서 준우승.
- 2008년, 홍진호 공군 ACE 입대.
- KT 롤스터, 홍진호가 아직 말년병장이던 2010년 10월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9-10에서 마침내 우승.
- 홍진호 전역 후 KT 롤스터 복귀. 신한은행 프로리그 2010-11의 3라운드 위너스리그에서 또 준우승.
- 2011년 6월 홍진호 은퇴.
- KT 롤스터, 신한은행 프로리그 2010-11에서 우승.
그냥 통합 결승 때까지만이라도 게이머 생활 계속하시지아냐 그러면 우승 못했어
...공포가 따로 없다.
4.2 우승도 있다!
그런데, 사실 우승 기록이 전무하지는 않다. 꽤 수준 높은 사람이 몰려있는 곳에서도 우승을 따낸 사례가 좀 있다. 다만 지금은 그 대회들이 이벤트전으로 격하되었을뿐
특히 가장 빛날만한 우승경력은 2002 KT배 온게임넷 왕중왕전 우승. 왕중왕전의 경우 2000년 1회 대회 때 우승자가 기욤 패트리인데 그의 프로게이머 국내 커리어중 가장 빛나는 우승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경기 내용이 2 : 0으로 지고 있는 상대에서 국기봉을 역스윕. 더군다나 다음 시즌 시드까지 확보했었다. 이것은 당시 온게임넷과 스타팬들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으로 왕중왕전이 당시에는 결코 정규리그에 못미치는 대회가 아니었다는 게 드러난다. 게다가 온게임넷은 기욤패트리를 소개할 때 하나로통신배 우승과 왕중왕전을 합쳐 2회 우승자로 소개했다. 당시 왕중왕전의 무게감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해당 문서 참고.
그리고 MBC게임의 왕중왕전이라 할 수 있는 KT-KTEC 위너스 챔피언쉽에서도 우승 경험이 있다. KPGA 1차~4차 투어의 상위 입상자들을 모아 승부를 가린 대회로, 김철민 캐스터 역시 우승 후에 첫 메이져 대회 우승이네요라고 했으며, 1회 MSL인 스타우트배에서 시드가 지급되었다. 이때의 시드는 네 장으로, 4차 KPGA 투어 우승/준우승자인 이윤열/조용호, 위너스 챔피언쉽 우승/준우승자인 홍진호/임요환이다. 여담으로 위너스 챔피언십(MBC게임)+왕중왕전(온게임넷)+파인드올배 챌린지 오픈(겜TV)을 합쳐 홍진호 역시 (이벤트전)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근데 왜 정규리그는...
덧붙여 iTV배 스타리그에서도 우승한 전력이 있다. 2003년 5차 랭킹전. 참고로 ITV배 스타리그는 온게임넷 스타리그보다 먼저 시작된 게임방송의 원조다. 그러나 지금은 이윤열의 그랜드슬램을 이야기할 때 정도나 언급될 뿐이라 아무도 정규에 넣으려 하지 않을 듯. 이 리그는 나중에 폐지되면서 역사에서 잊혀져 버렸다. 만일 이 리그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줬더라면 홍진호도 충분히 우승자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양대리그 체제가 갖춰지면서 이들 대회는 전부 정규리그 기록에서는 제외당해서…. 콩빠들도 홍진호가 워낙 잘하다보니까 "언젠가는 우승하겠지?"식으로 생각했다. 거기다가 진성콩빠(=스타리그 올드팬)의 상당수가 임요환과 팬층을 공유하기 때문에, 스타리그-엄재경 사관에 순응해버린 것도 크다. 결국, 이러한 태도는 이후 박성준의 질레트 우승을 "결승전에서 테란 안 만났다", "머큐리끼고 우승했다"라는 이유로 우승을 격하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의 박성준은 듀얼토너먼트에서 임요환, 16강전에서 한동욱, 8강전에서 서지훈, 4강전에서 최연성을 꺾고 결승전까지 올라갔는데도 말이다. 홍진호의 팬이 저그빠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적절한 예시이다.
요약하자면 스타리그/MSL 정규리그 위주로 커리어를 대접하는 시대가 오면서, 하필 그 정규리그에만 우승 경력이 없던 홍진호의 다른 우승 경력은 자연스레 묻혀지고, 이후에도 정규리그 우승을 못한 탓에 자연스레 2인자 기믹이 붙어버리면서 2등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은 흥행을 위해 방송사가 우승을 말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엄재경의 스토리텔링은 홍진호 이후에도 끊임없이 저그, '테란을 꺾고자 하는 2인자 저그'를 붙들고 이루어졌다. 박성준이 질레트배에서 우승하자 저그의 한이 풀렸다고 했음에도 IOPS배에서는 또 다시 테란을 꺾지 못했다고 저그의 한이 풀리질 않았다고 하다가, EVER 2005에서 우승해서 저그의 한이 풀렸다고 발언을, 그리고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에서는 이윤열을 꺾은게 아니기 때문에 저그의 한이 풀리질 않았다고 드립하는 등 끊임없이 스토리를 이었다. 결국 홍진호는 저그의 대표주자였기 때문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보았고, 이 과정에서 희생 당한 것이다. 물론 본인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해버렸다면 논란이 없었겠지만(...). 그러면 그 대회가 정규리그 취급을 못 받았을지도
정작, 홍진호는 이에 대해서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냥 대인배라서(...) 일수도 있지만 그렇게 따지다 보면 더 억울한 사람도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컨데 김정민은 당시에는 방송사 게임보다 중요했던 오프라인 대회에서 무수한 우승을 거두었지만, 방송사 위주로 정립되면서 사실상 커리어 이미지가 4강 테란 정도로 절단나버렸다. 이런 선수는 사실 한 둘이 아니고, 스타리그에서 꾸준했던 홍진호는 상대적으로 덜 희생당한 편이었다. 이스포츠가 커지면서 생긴 안타까운 성장통이라고 볼 수 있겠다.
스타크래프트 은퇴 이후 2013년 7월 13일, 더 지니어스:게임의 법칙에서 상금 7천 9백만 원을 거머쥐며 우승했다! 콩 까지마!시즌 2 예고가 떴으니 정규시즌이다. 근데 복날우승이라 삼계탕에게 밀려 검색어를 2위했다.
4.3 프로게이머로서
- 랜덤 실력이 매우 좋은 게이머로, 저그로 종족을 정한 후에도 랜덤 실력이 출중해서 타 종족으로 팀원들 연습을 도와줄 정도였다고 한다. 이게 2006년의 인터뷰에서 나온 사실이니 전성기 기량을 유지하는 동안 타 종족 역시 잘하는 편이었다는걸 알 수 있다. 실제 올스타전에서 랜덤 테란으로 박정석의 랜덤 프로토스(랜덤이었는데 주종이 걸렸다)를 멀리 보내버린 적이 있다. 또, 2003 에버 프로리그 올스타전(030816, 기요틴)에서도 랜덤 프로토스로 박정석의 랜덤 저그를 관광 보낸 바 있다(근데 영상초반에는 홍진호 저그라고 뜨는걸로 봐선 즉흥적으로 랜덤을 택했다가 프로토스가 나온듯?). 각종 프로그램에서 프로게이머들끼리 랜덤전이나 팀밀리를 할 때 많은 게이머들이 홍진호와 같은 팀을 하려고 했을 정도. 이런 모습을 보면 확실히 게임 센스는 천재적인 것으로 보인다.
- 오영종의 말에 따르면 연습을 굉장히 열심히 한다고 한다. 이제동보다 열심히 하는 선수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이제동은 모든 게이머들이 연습 많이 한다는 평을 아끼지 않는 게이머이다). 과거 다른 선수의 미니홈피에도 새벽 3시까지 연습하는 홍진호의 사진이 올라온 적 있었고... 하지만 전성기적엔 연습을 많이 안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스스로도 연습량보다는 센스로 플레이했다 밝히기도 했고, 실제로 홍진호의 플레이는 대단히 감각적이었다.
- 택뱅리쌍과 상대전적이 대등한 프로게이머이기도 하다(vs 이제동 1승 1패, vs 송병구 4승 4패, vs 김택용 1승 1패. 단 vs 이영호는 같은 팀이었던지라 전적 없음). 이제동과는 썸다운 세리머니와 35분짜리 하이브 명승부, 송병구와는 스타리그에서 자주 마주쳤던 데다 콩라인의 수장과 계승자의 관계, 김택용과는 6.20 황색혁명, 이영호와는 팀 선후배 등으로 택뱅리쌍과도 이런저런 관계가 맺어져 있다.
각 대결 횟수가 왠지 2와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이영호 빼고
- KT 매직엔스의 마스코트 쇼군은 홍진호를 상징한다. 티원의 마스코트 벙키가 임요환을 상징하는 것과 마찬가지. 그러나 인기는 벙키가 더 높다.
마스코트까지 콩라인그러던 중 쇼군은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 박카스 스타리그 2010 결승전에서 오프닝을 MC용준과 함께 장식했다. 그리고 콩라인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우승과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먼 존재. 참으로 적절한 정의다.) 비록 자기 라인들의 선수들이 한두 번의 이탈을 하더라도 자신도
100회우승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서이벤트전이지만너그러이 그들을 명예 콩라인으로 대우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정명훈에게 결승 시작 전 박카스를 줬는데 정명훈은 그 박카스를 마시고 송병구를 3:0으로 셧아웃시켰다. 그리고 박카스 스타리그 2008 때의 이영호처럼 정명훈의 유니폼은 주황색...
- 스갤웹툰 공포의 PC방에서 pc방 예선 준우승을 한 허영무에게 황신의 가호를 내려 와일드카드전을 통과하게 한다. 홍진호는 "내가 은퇴하니까 이제 콩라인도 없는거다"라며 꼭 우승하란 말과 함께 사라지는데, 처음 웹툰이 나왔을 당시만 해도 그냥 웃자고 보는 웹툰이었지만... 허영무가 진짜로 우승해버렸다! 진짜로 황신의 가호인걸까
- 본인 트위터에 따르면 허영무가 준우승할까봐 현장 직관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왠지 슬픈 배려...
- 2011년 9월 28일, 켠김에 왕까지를 촬영중이라는 소식이 트위터에 올라왔다. Wii로 베이징 올림픽을 하는 중이라고. 방영 날짜는 아직 불분명하며, 빠르면 11월 초에 방영될 예정. 여담이지만 트위터에 살려달라고 올렸다.(...)
- 2011년 8월 15일 젤나가 동굴에서 벌어진 곰 TV 스페셜 매치 임요환vs홍진호 전에서 홍진호가 맹독충을 쓰자, 임요환이 채팅으로 '니가 그 연두색 콩 좋아할 줄 알았다'라고 했다!
- 2012년 9월 4일 GSL 2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2번째로 인터뷰 영상이 나왔다. 첫번째로는 이정훈이 나왔고 그의 모습을 본 중계진은 외계어를 구사해 앞부분 내용이 묻혔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난 후 중계진은 둘을 훈콩으로 엮어줬다.
4.4 스타크래프트 예능 활동
4.4.1 강민의 올드보이
본격 콩까는 프로그램프로그램의 최종보스. 자세한 건 해당 문서 참고. 5화에서 엄청난 예능 감각을 보여줬는데 이 편이 방송되었을 때가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과 연이어 임요환이 연애스캔들 터트렸던 시기라 임논개를 뒤따르는 콩논개, 역시 그분의 유일한 라이벌라는 말이 나오기도. 그리고 실제로 스갤에서는 대단한 효과가 나타났다.
- 공개된 에피소드에 의하면 황신이 22일에 새마을호를 예약하자 2호차 22호석이 나왔다고 한다.#
- 그리고 2010년 7월 8일 포모스와의 인터뷰에서 문제의 2호차 22호석 새마을호 표를 '인증'했다.
이제는 한국철도공사 승차권 발권기도 콩을 까고 있다. 그런데 사실 표 발급해준 TMO 담당병사가 스갤러였던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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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황신!! |
4.4.2 드리머
2010년 7월 23일 온게임넷 10주년 기념 올드게이머들에 대해 재조명하는 '드리머'에 1회 출연하였다. 가장 아쉬운 경기는 올림푸스 스타리그 결승전으로, 서지훈에게 패배한 이후 무대 위에서 울었다고 한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던지, 홍진호의 형이 굉장히 닮았다던지 하는 가정사도 나왔다. 이등병 시절엔 개념없어서 맞선임에게 대든 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후임을 받고 선임들을 이해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태민, 서지훈, 박영민의 인터뷰로 미루어보아 꽤나 후임들을 갈궜던 모양. 스탭롤에서 그네와 미끄럼틀을 타는 장면이 잡히기도 했다.
4.4.3 기타
- 제대해서 KT롤스터로 복귀한 후 출연, 질문에 대답을 할 때마다 폭풍 같은 전기를 받았다. 하필이면 특집이라고 2회 방송했다.
- 감독. 이 프로그램을 기점으로 '방송인이냐'는 비판이 폭증했다.
- 프로그램 말기에 출연, 은퇴 이후 프로그램이 폐지되기까지 잠시나마 얼굴을 더 비추었다.
- 2011년 2주년 특집부터 출연, 이후 100회 특집에도 출연하고 2013년에 재등장.
4.5 콩은 까야 제맛
이렇듯 강한 게이머, 저그의 기초를 다진 게이머, 2015년 현재까지도 스타판에서 활동하며 살아있는 전설로 남은 게이머 홍진호. 그가 보여준 승리와 세운 업적은 물론 팬들과 함께한 오랜 시간은 분명히 많은 게이머와 팬들의 존경을 받아야 마땅한데… 실제 상황은…
스갤러 A : 콩은 까야 제맛!스갤러 B : 콩 까면 사살!
스갤러 C : 콩은 두 번 까야 제맛!
스갤러 D : 콩 까면 3대가 폭풍설사!홍진호 : 고만해 미친놈들아.
현실의 홍진호는 스갤을 넘어서 대한민국 인터넷 서브컬처계 전반에서 가장 많이 까이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치인을 제외하면 제일 많지 않을까 까이는 방법도 기상천외하며, 까이는 이유도 셀 수 없다. 본 문서에 따로 분류되어 있는 준우승 횟수, 콩댄스,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폭풍설사 정도는 기본 중의 기본. 콩탈과 드론 조공 그리고 삼연벙 등등. 또한 희대의 2인자라는 의미로 그냥 2에 관련되면 모든 것을 그의 콩공으로 돌리게 된다. 2를 볼 때마다 그분을 경배하라!
이러한 끝없는 까임 떡밥들은 스갤을 비롯한 스타크래프트 관련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있으며, 또한 즐긴다. 이 까임은 비단 스타관련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DC인사이드 전체, 아니 일정 이상의 남성 이용자를 보유한 인터넷 전반에 넓게 퍼져있다(스덕 외부로의 확산은 2008년부터로 보이며, 이런 확산에는 당시 엔하위키가 상당한 공헌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까이는 만큼 수명이 는다면 홍진호 또한 불로불사에 닿았으리라...
콩까가 준동한 것은 삼연벙 이후이다. 삼연벙 사건 이후 초기에는 이기기 위해서 별 짓을 다 한다며 임요환을 깠지만, 과도한 홍진호 실드에 대한 반동+이후 저그들이 벙커링을 잘 막아낸 사실+홍진호의 성적이 하락한 것에 대한 반동으로 콩까가 늘었다. 그러니까, 2006년까지만 해도 콩까는 택까, 꼼까, 벼까, 임까와 같은 진짜 까였다. 콩까가 문화로 자리잡은 것은 2007년 경,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 시절이다. 이 시절 스갤은 PGR21이 문을 닫음으로써 명실상부한 스타 커뮤니티의 중심지가 되어있었다. 중계권 협상, MSL 예선 보이콧 등으로 매일매일 우울한 하루를 보내던 스갤러들은 새벽마다 콩까기 문화로 하루의 슬픔을 달랬고, 결국 이것이 빠와 까를 떠나 스갤러의 소양이 되어버린 것이다.
즉 까야 제맛의 경지에 올라섰다는 것. 올드 게이머는 대체적으로 호감의 아이콩콘이 되어있기 때문은 물론, 까다 보니 정들었다는 팬들도 존재. 결국 그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시간이 지나도 지칠 줄 모르는 까임과 함께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그는 황신이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게 된다.
요약하면 콩까기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꾸준한 화제거리이자 떡밥, 이슈이자 공감대로 아직도 남아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겠다. 좀 심하게 비약해서 이 바닥의 선수 까는 문화의 가장 큰 공로자는 홍진호가 아닌가하는 의견도 있을 정도이다. 3연벙처럼 게임을 마구 던지는 것만이 홍진호의 특성은 아니고 그건 실력이야, 스타리그에서 불리한 상황에서 컴퓨터 이상이 생기자 바로 GG를 치고 나갈 정도의 인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말말말 중 '저그로 합니다. 남들이 못해 본 승리, 제가 해보고 싶어요.' 항목 참고.
다만 이를 너무 과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에 콩까기 문화를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제기되어 문서 맨 위에 경고문이 기재된 적도 있었다! 사실 아래의 '그림자살인 평점 2.2점 사건'에서 보듯이, 이것은 결코 가볍게 볼 일만은 아니다.
또한 이런 과도한 콩까기 문화가 홍진호를 조롱거리로 만들었고, 결국 홍진호가 게임에 대한 열정을 잃게 만든 원인이 된 것이 아닌가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5 스타크래프트 1 이후 게임 관련 활동(2011년~)
5.1 스타크래프트 2 도전(2011년)
펩시 GSL July. 결승전에서 심상치 않은 떡밥이 흘러나왔다. 결승전 전 틀어 주는 영상에서 홍진호가 망치로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를 부수는 영상과 함께 'I'm coming'이라는 문구가 뜨더니, '2011.08.12'라는 날짜와 '프로젝트 A'라는 단어가 뜬 것. 뭔가 곰 TV 와 함께 스타크래프트 2와 관련된 이벤트를 벌이는 것은 분명하나, 그 이벤트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스투유저들이 가장 기대하는 시나리오는 강민의 올드보이와 같이 홍진호가 코드 A 획득을 위해 노력하는 프로젝트. 허무 맹랑한 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확실히 무시못할 가능성이었다. 하필이면 프로젝트 A라고 하는 바람에 더 수상했다.
다만 스타크래프트2 레디액션이 2주간 결방되어서 12일쯤엔 다시 방송을 시작한다는 점에 미루어 홍진호가 참여하는 개편된 레디액션 방송일 것이라는 관측이 주요했으나, 8월 9일 기사와 당일 GSL에서 해설자들의 입으로 "홍진호의 코드 A 도전기"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12일 '홍진호의 Project A'라는 이름으로 첫 회가 방영되었다. 결국 홍진호의 올드보이
1화에서는 홍진호를 스타크래프트 2 예선 리그에 출전시키는 서약을 받아내는 것에서 시작해서 종족을 선택하는 과정까지의 내용을 다뤘다. 조금 고민하지만 역시 저그를 선택. 이 날 방송에서 스타 1에서 저그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는데, 악당이 되어 깨 부수고 싶은 의도였다고. 그리고 결국 정의는 승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같은 날 김가연이 홍진호의 개인 에이전트를 맡게 되었다는 기사가 뜸으로 SlayerS 입단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다만 김가연은 에이전트일뿐이지 입단은 아니며, 이것은 차후 홍진호가 직접 결정할 일이라는 입장이다.
이에대해서 한쪽은 골드 리거가 어디 가냐는 비관적인 입장이고, 다른 쪽은 임진록 때 메카닉 등의 기본기는 충분히 갖추고 있음을 보였고 선수 생활의 경력도 길다는 이유로 해 볼 만하다는 입장. 물론 양쪽 다 콩이 코드 A에 진출하길 바라는 것은 똑같다. 본격 콩까=콩빠
다만 본인은 전향이라는 단어에 상당히 부담을 느끼는 듯. 자신의 실력이 아마추어 수준보다 떨어진다고 인정하고 있으며[8], 프로젝트 A 자체도 도전에 의의를 두는 것이지 실제 스타 2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게 될 지는 미지수이다. 에이전트를 맡게된 김가연씨도 자신의 트위터에서 홍진호의 전향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전향 같은 단어로 부담감을 주지말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대망의 코드A 예선이 있는 9월 3일...하필이면 두 번째 경기에서 Maelstrom이라는 선수에게 패배해 코드A 진출에 실패했다.
5.2 리그 오브 레전드 감독 홍진호(2012년~2013년)
2012년 2월 22일 22번째로 창단된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임단 Xenics Storm의 감독이 되면서 E-Sports로 돌아왔다.이쯤되면 홍진호가 2를 따라가는건지 2가 홍진호를 따라가는건지 모르겠다# 팀 합숙을 2월 2일 시작하고 발표를 22일에 했다(이후 인터뷰를 보면 어느정도 본인이 의도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날 하필이면 2월 내내 떠들썩했던 강용석 국회의원의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고소사건이 드디어 종결되면서 전 인터넷이 이 이야기로 불타오른 날이라 묻혔다.
2월 14일, LOL의 국내 첫 정규리그인 '리그 오브 레전드 더 챔피언스 스프링 2012(=LOL 더 챔피언스)의 출정식이 있었는데, 조 추첨식에서 B공을 뽑았다. 이 정도면 정말 무섭다.
2월 22일 LOL the Champions 예선전에서 Xenics Storm의 첫경기를 치렀는데, 2경기 연속 22킬을 기록하면서 승리, 예선 통과를 확정지어 성공적으로 데뷔하였다! 그리고 2월 27일 나는 캐리다에 출연이 확정됐다!
3월 28일, 챔피언스 스프링 2012 제 2경기에서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히는 북미지역 No.1 CLG를 상대를 하게 되었는데 초반에 기습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결국 기가 막힌 역전극을 펼쳐내며 12킬 2데스로 CLG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게 된다. 해설진들도 2드립을 뿜어내며 이 정도면 무섭다라고 드립을 칠 정도(...)
4월 20일 열린 8강전에서 제닉스 스톰은 MKZ를 상대로 1경기는 압도적으로 유리함을 이끌어내면서 22분에 서렌을 받아내면서 승리하였다. 2경기에서는 22킬로 게임을 승리로 끌어낼 수 있었지만, 21킬째 상황에서 MKZ의 남은 챔프는 우르곳 한명 뿐일 때 우르곳을 잡으려던 SBS의 시비르가 무리하게 다이브를 해서 우물 포탑에 맞고 사망하는 등 실패하고 경기가 더 길어지다가 승리. 이후 넥서스 앞 난전속에서 23킬이 되는순간 모든 관객이 비탄의 탄식을 내뿜었다 22킬은 하지 못하였지만 제닉스 팀의 서포터였던 폭풍의 분노 잔나가 2킬 2데스 22어시를 기록하였다! 해냈다, 해냈어! 잔나가 해냈어!! 그리고 5월9일 제닉스 스톰과 팀OP의 경기에서 승리해 3등으로 상금 200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OLYMPUS the Champions Winter 2012-2013 이후 안습의 상황. 예전 Storm은 하필 모기업 Xenics와의 문제로 인해 팀원 전원이 계약해지를 당해버렸고, 2팀이었던 Tempest는 예선 탈락. 그런데 계약해지한 팀원의 이야기에 따르면 선수단 관리나 오더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감독의 자질에 대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Xenics Storm 문서 참조. 게다가 남는 시간에는 프로 포커 플레이어로 연습도 하고 있다는 루머도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고, 관련 질문을 받으면 본인은 감독직이 별로 맞지 않았다는 것과 선수들과 불화가 생겼다로 넘어가고 있다. 애초에 팀 설립 배경 자체에 어른의 사정이 개입해 있다는 설도 있다. 이후 모 대학 강의에서 홍진호는 1년간의 감독을 실패라고 자평하며 안타까워했다.
결국 2013년 LOL 클럽 마스터즈를 앞두고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 구단 프론트로 이동하였다.우승 경험 있는 등빨 좋은 예전 팀 동료는 감독으로도 우승했는데 홍진호는...
- ↑ 결승전 역스윕은 대개 김준영 vs 변형태, 이제동 vs 정명훈, 이영호 vs 김정우만 기억되고 있는 편인데, 사실 최초는 바로 이 결승전이었다.
기억에 안 남는 게 좋은 거냐 나쁜 거냐 - ↑ 참고로 우승상금이 2200만 원이었다. ㅇㅅㅎㅅ
- ↑ 역대 다승 2위
- ↑ 실제로 홍진호가 군 제대 후 다시 KT에 복귀했을 때 KT는 위너스리그에서 SKT에게 패해 준우승을 했다.
콩까지마!! - ↑ ...KT 롤스터 팬들과 함께 하는 송년회에서 팬들과 함께하는 프로리그로 진행됐다. 성승헌 캐스터와 전문 MC 장용휘가 진행을 맡은 이번 프로리그는 팬과 선수들이 함께 섞여 한 팀을 이룬 채 7전 4선 승제 프로리그 방식으로 경기가 이루어졌다. 핸디캡 매치로 진행된 본 경기에서 박정석은 주종이 아닌 테란으로 경기를 해 승리를 거뒀으나 홍진호는 마우스만 사용한 경기에서 패하는 등 팬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경기 결과 박정석이 속한 최용주 팀이 4대1로 홍진호, 이영호가 속한 강현우 팀을 꺾고 승리 상품인 문화상품권을 획득했다(이상 출처 포모스). 이 이벤트전은 아프리카에서 방송을 했다고 한다.
- ↑ 강현우 쪽 문제라는 심판의 설명이 있었다. 키보드 조작 실수로 윈도우 바탕화면으로 나갔다고
- ↑ 원본은 카모가와 겐지 "노력한 사람들이 모두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반드시 노력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 사실 스1의 저그와 스2의 저그는 완전히 다른 진영 수준으로 운영상의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