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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 |
공식명칭 | 쿠바 공화국 (República de Cuba) |
수도 | 아바나 |
인구 | 11,210,064명(2015년 통계) |
공용어 | 스페인어 |
정치체제 | 일당제, 단원제, 사회주의, 공산주의 |
국가평의회 의장 | 라울 카스트로 |
임기 | 2008년 2월 24일 ~ 2013년 2월 24일 2013년 2월 24일 ~ 2018년 2월 24일 (예정) |
국가평의회 부의장 | 미겔 디아스카넬 |
임기 | 2013년 2월 24일 ~ |
면적 | 110,860km² |
전체 명목 GDP | 2,340억 달러 |
1인당 GDP(PPP) | 19,800 달러 |
민족구성 | 혼혈인(메스티소, 물라토) 51%, 백인 37%, 흑인 11%, 동양계 1% |
종교 | 가톨릭 및 아프리카 종교 등 다수 |
국가 | 바야모 행진곡 (스페인어: La Bayamesa) |
목차
Patria o muerte, venceremos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우리는 승리하리라
1 개요
República de Cuba[1](레푸블리카 데 쿠바, 쿠바 공화국)[2][3]
카리브 해에 자리잡은 이 지역 최초이자, 현재까지는 최후의 공산주의 국가. 1990년대 공산권 붕괴 이전의 공산국가의 구조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세계 최후의 공산국가이기도 하다.[4] 수도는 라 아바나(La Habana). 줄여서 아바나라고도 한다.[5] 인구는 약 1103만 명(2015년), 국토 면적은 약 11만 1000㎢으로 대한민국보다 조금 넓은 정도다. 북으로는 미국 플로리다 반도, 서쪽엔 멕시코 본토, 동쪽엔 아이티, 남으로는 자메이카를 이웃으로 두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지도를 폈을 때 플로리다 바로 남쪽에 보이는 동서로 길쭉한 나라가 바로 쿠바이다.
카리브 해 최대의 섬나라로 세계에서 16번째로 큰 섬이다. 카리브해 최대의 도서국가로 15세기 후반 그 유명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탐험으로 발견되었다. 에스파냐의 식민통치가 시작되기 전에도 물론 타이노인 같은 선주민들이 살고 있었지만, 에스파냐의 식민통치와 전염병의 영향으로 현재는 수천 명 수준에 불과한지라 어떤 역사가 이어져 왔는지는 거의 알 도리가 없다.
1인당 GDP는 2013년 기준 6,536$로 현재 공산주의 국가 중에선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인접국인 자메이카 같은 나라보다도 높은 수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화대혁명이나 대약진 운동 같은 짓으로 쿠바가 개막장이 된 적은 없었음을 생각해보면 당연하다.[6] 국가 운영을 잘하긴 했으나 도약에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최근까지 쿠바가 미국의 강도 높은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나라를 잘 운영했다고 할 수 있다. 냉전이 끝나고 더는 소련(그리고 그 후신인 러시아)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1992년 미국이 '쿠바 민주화법'을 제정해 국내외의 모든 미국계 기업은 쿠바와 거래를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 무렵 몰락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미국에 지원을 요청하자 미국은 이런 조건을 덧붙였는데, "쿠바와 모든 거래를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쿠바의 수입품 가운데 80%가 줄었는데, 대부분이 식료품과 의약품이었다. 보다 못한 미국 내 NGO들 일부가 쿠바에 대한 식료품과 의약품 금수 조치를 해제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2014년까지 지속되었다. 핵 개발 의혹을 받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조차 풀리려는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미국이 이런 강도 높은 제재를 하는 나라는 거의 없고, 그 와중에도 나라가 막장이 되지 않은 나라는 더 드물다는 점에서 쿠바 정부의 국정 운영능력은 매우 뛰어나다고 해도 좋다.
공용어로는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다. 소련이 해체되기 이전에는 러시아어도 공용어였다.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방문해보면 관광지에서도 영어가 통하지 않으며 심지어 호텔에서도 간단한 영어조차 통하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그나마 통하는 곳은 시가박물관 정도. 쿠바 가이드북에도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으니 간단한 스페인어 몇가지는 익혀서 방문하라고 나와 있다. 그동안 냉전때는 공산권국가들과 관계를 가졌고 이후로는 주로 같은 스페인어를 남미국가들과 교류가 잦은데 학교에서도 영어교육과정이 없는나라에서 영어가 어느정도 통용된다는 주장 자체가 어불성설.
2014년 12월, 소련 붕괴가 20년이 지나고, 쿠바를 봉쇄하기에는 명분도 약해지고 실리도 없어지자 오바마 행정부는 1961년 쿠바 공산혁명 이후 53년 만에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실시하였다. 미국이 對 쿠바 봉쇄정책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상황에서 미국 주도의 아메리카 경제권에 편입된 쿠바의 행보가 주목되는 상황이며, 지금은 前 쿠바의 독재자였던 피델 카스트로가 유지했던 쇄국 정책을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가 미국에 대한 실리적이고 유연한 외교 정책을 통하여 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와 같이 협력을 하여 외교적인 이득을 서로 얻었다.
2 역사
- 쿠바/역사 문서 참조.
3 의료 및 교육 개혁
1959년 혁명 전 쿠바의 의료 및 교육 체계는 매우 열악하였다. 사실상 복지 대책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으나, 집권 후 쿠바 공산당은 적극적인 개혁 정책을 펼쳐 쿠바의 의료복지를 상당한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국내에서는 무상치료만이 부각되고 있으나, 쿠바의 인구대비 의사의 수는 165명당 1명으로 세계 최다를 자랑하며 패밀리 닥터제에 의한 기초 건강 보장(Primary Health Care) 수준은 매우 높은 편이다. 쿠바의 경제에 비한다면 의료체계는 인적자원의 질과 양에선 선진국 이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디에고 마라도나가 엄청난 막장 생활을 계속하는 바람에 버티다 못한 몸이 결국에 반란을 일으켜서 요단강가에서 한쪽발 담그고 있을 때, 그를 다시 지상세계로 끌어다 올린 것도 쿠바의 의료진이었다(...).
그러나 무상의료라고 해도 기본적인 수준은 유지하고 있다만 90년대 소련이 붕괴하여 지원자체가 끊어진 이후부터는 예산부족과 의약품 수입에 애로사항이 꽃핀점으로 말미암아 의료에 대한 제대로 된 개발이나 인프라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전반적인 인프라는 개발도상국 수준이며, 기술적으로는 매우 낙후되어 있고 의약품의 양도 부족하다. 특히 의사는 많은데 비해 병상 부족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패밀리 닥터제와 한의학 체계를 적극 도입한 것도 약품과 병상 부족을 메꾸기 위한 차선책이다. 때문에 집중 치료가 필요한 중환자가 되었을 때는 가급적 병원에 들르지 않는 것을 한 교민은 추천했다. 한국의 의료체계를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나 쿠바에 비하면 가히 천국이나 다름이 없다고... 마이클 무어는 자신의 다큐멘터리 식코에서 쿠바와 비교하여 미국 의료보험체계를 깠으나 사실 쿠바의 의료 체계는 한국에 알려진 만큼 '이상향'만은 결코 아니다.참조. 굳이 따지자면 이상향보단 지옥도에 더 가까운데, 일부 쿠바인들은 국가는 국민들의 의료혜택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보다 외국의 돈 많은 손님들을 치료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는거 같다고 냉소하기도 한다.
더불어 베네수엘라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고 그 대신 의료진이 베네수엘라로 가서 의료봉사를 하기도 한다. 좌익 성향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피델 카스트로가 서로 협력하여 이루어진 성과이다.[7] 참고로 쿠바의 주요 외화벌이가 해외에 거주한 의사들의 송금이라고 한다.
사실 쿠바의 의료 인력 수출은 의사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국가에서 저렴한 비용에 의료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꼼수에나 이용될 수 있을 뿐 정상적인 의료 체계를 갖춘 나라에서 통할 수준은 아니다. 또한 쿠바에서 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대단한 성과가 나오지도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의료수준 자체는 괜찮지 않아도 일단 시스템 자체는 잘 갖추어져있기 때문에 의약품과 인프라 부족 문제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지표로 본다면 양호한 수준이며, 미국을 제외한 주변국과 비교해서도 나은 수준이기는 하다.
애초에 기초 학문 자체가 약하니 토양이 없는 상태라고 해도 무방할 듯. 대한민국의 경우는 기초 학문은 약하지만 임상 의사들의 수준이 비교적 높은 편이기 때문에 임상적으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많이 거두고 있다.
수도 아바나에 있는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이 유명한데, 모든 교육 비용이 공짜이다. 대신 학교를 졸업한 후 수년간 의료 봉사를 의무적으로 행해야 한다고. 외국인 또한 다닐 수 있고 미국인학생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물론 이런 것은 단순히 선의 때문만은 아니고 경제·정치적인 이유도 있다. 제3세계로 의료 봉사를 보내면서 해당 국가로부터 일정 부분의 외화를 받아내거나 혹은 국제 정치적으로 이들 국가로부터 지지를 받아내며 정치적으로도 이득을 취함으로써 일석이조를 노리고 있는 것. 이를 쿠바의 의료 외교 활동이라고 부르는 사람조차 있다. 60년대 서독으로 간호사를 파견했던 남한이 그랬듯이 이런 일이 적은건 아니긴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의료 서비스를 통해 얻어들이는 소득은 2006년의 경우 총 수출의 30% 가까운 금액으로 쿠바 경제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진 않은 부분이지만,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원정 부터 시작하여 나미비아 독립 전쟁, 로디지아 전쟁에 직접 파병 하는 등 쿠바는 혁명 이후 예전 부터 나름 좌파 국제주의의 원칙에 충실했다. 미국이란 거대한 엉덩이가 눈 앞에 깔려 있다 보니 저런 먼 곳들이라도 친구들을 잘 사귀어 놔야 UN 같은 국제 무대에서 그나마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쿠바는 인종차별을 뿌리뽑기 위해 오랫동안 공들여서 교육 개혁을 실시해 왔으며, 그에 따라 문맹률은 아메리카 대륙 최저를 자랑하며 아무리 90년대에 투자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타 중남미 국가들처럼 교육제도 자체가 막장화되지 않고 무상교육 제도도 보장은 되었기에 중남미에서 가장 높은 교육수준을 자랑하며 베네수엘라로 교사들과 교재를 대거 수출하기까지했다. 많은 분야에서 인종차별이 해소되었다. 그러나 뿌리깊은 백인의 흑인 멸시는 여전하여 아직도 사회 일부분에서는 흑인이나 혼혈에 대한 백인의 차별과 경멸이 남아있다.[8] 그래도 미국의 일부 지역이나 유럽-러시아의 백인지상주의자들, 네오 나치- 들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다만 교육수준과는 별개로 고학력자들이 취직할 질 좋은 일자리가 별로 없다는게 문제다. 물론 졸업만하면 직장이 배정되기는 하기때문에 미국이나 유럽, 한국등에서 문제되는 청년실업 문제가 없기는 하지만 90년대 경제난의 후유증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터라 평균봉급이 짜서(달러화 기준으로 친다면 20-50달러 정도로 80년대의 1/10정도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이중화폐제도때문이기도 한다.) 기본생활 이외의 여가생할같은걸 하거나 전자제품 같은걸 사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금액이다보니 자영업에 종사하지 않는 이상 돈을 거하게 벌려면 별수 없이 투잡을 뛰어야 한다. 그래서 상당수 젊은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도 미국으로 가서 돈을 벌려고 하는것이다.
4 인종간 경제격차
쿠바 정부는 공식적으로 인종간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평등한 사회라고 주장하지만 90년대 이후로 경제적으로 개방정책을 펴면서 흑인과 백인 사이에 경제적 격차 문제가 다시 심각해졌다. 사실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는 동구권의 지원을 받았던데다가 체계적인 사회복지정책으로 인해 지니계수도 0.2 초반정도의 수준으로 북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인지라 인종차별 개념이 자연히 약해질수밖에 없어졌지만 90년대 경제난 이후 쿠바가 자본주의를 어느 정도 수용함에 따라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지니계수도 2010년대엔 0.39 정도로까지 상승하고[9]이외에도 여러 제도적/사회적 원인으로 인해 주로 흑인과 백인 사이에 작용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완전한 통제와 배급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체제에 편입된 공공근로자들과 자본주의의 수혜를 받는 시민들, 주로 자영업자와 해외 거주 쿠바인들에게 송금을 받는 사람들 간에는 소득 수준의 차이가 많이 나는데 전자는 주로 흑인들이고 후자는 주로 백인들이다.
세계의 여러 극빈국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해외에 나가서 일하는 근로자나 이주한 국민들의 송금이 쿠바에서도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2000년 아바나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백인 가구의 44%가 송금 수입이 있었던 반면, 흑인 가구는 단 23%만 송금을 받아들이고 있었다(Dela Fuente 2011, 32). 2008년에는 전체 인구의 약 60%가 송금수입을 얻었다. 이렇게 되면 송금을 받는 백인의 비율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흑백 간의 불평등은 더 심해지게 된다(González-Corzo and Larson 2008, 293).
한편 쿠바에서는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와는 달리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공공근로자에 비해 훨씬 높고 일자리의 질도 우월하다. 참고로 쿠바는 공산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공공근로자는 일부 자영업자와 불법 근로자 정도를 제외하면 전국민이 해당된다. 오죽하면 식당 근로자나 택시기사의 월급이 교수나 의사보다 훨씬 높다. 이렇게 된 이유는 월급이 몹시 짜서인데 미화로 칠경우에 월급이 꼴랑 20달러-50달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초 생필품은 매우 싸게 공급되고 공공재도 그럭저럭 돌아가는데다 집세나 의료도 무료이기때문에 실질봉급은 그보다 훨씬 높다고 평가되는 수준이라 그렇게까지 가난한건 아니고 대체적으로 중간급 정도의 생활 수준을 누리는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10] 그럼에도 인터넷을 사용한다거나(인터넷 요금은 한국 pc방 요금보다 비싸서 1시간 정도만 써도 이틀치 일당은 거뜬히 날라간다[11])하는 수준높은 소비문화를 누리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쿠바의 전문직들은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거나 자영업을 겸할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2000년의 자료를 보면 흑인과 물라토는 공공분야에 종사하는 비중이 훨씬 높다. 당시에 약 70%의 백인들이 국가에 의해 고용되어 있지만, 물라토는 81%, 흑인은 84%였다. 반면에 자영업에 취업한 백인들의 비율은 물라토나 흑인들보다 3배 이상 많다. 이는 자영업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상당한 규모의 자본이 필요하고,[12] 사회적, 정치적으로 연결망을 잘 유지하고 있어야 사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쿠바의 흑인들은 사회주의 체제의 열악한 실정에서 벗어날 수단이 백인들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불평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13]
5 스포츠 강국
쿠바는 작은 나라이지만 스포츠 강국으로 통한다. 야구가 절대적으로 인기가 많았으나, 갈수록 야구 인기가 떨어지고 축구 인기가 상승하며 쿠바 최고 스포츠가 야구에서 축구로 바뀌고 있다.
5.1 야구
야구로 외교하는 국가
중남미에서 야구가 처음으로 시작한 나라이기도 한데, 1864년, 네메시오 기제토가 미국 유학도중 야구에 흥미를 느끼고 모국에 전파하기로 결심해서 야구 규칙을 쿠바에 전파했다. 또한 이해 아바나에서 쿠바 최초의 야구경기가 열렸고 10년후인 1874년 마탄사스주에서 첫 공식 야구경기가 개최되었다. 1년후인 1875년에 아바나에 쿠바 최초의 야구팀이 창설되었고 1878년에는 3개의 프로팀이 참가하는 중남미 첫 프로야구리그가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이해 야구 붐은 폭발적으로 늘어나 1890년에는 쿠바내 프로팀이 무려 75개에 달했다고. 물론 이 프로리그는 쿠바혁명이후로는 실업리그로 전환했다.
이런 역사와 인프라 덕에 올림픽, 야구 월드컵등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냈고, 이런 모습들 때문에 아마야구의 본좌로 불린다. 자세한 것은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한편 이 나라 출신인 투수 유네스키 마야가 두산 베어스에서 활약한 적 있고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적 있다. 그 이후로는 폭망해서 방출.
5.2 배구
배구도 남녀 모두 수준급이었다. 특히 여자배구는 90년대는 쿠바를 따라 올 자가 아무도 없을 정도로 세계최강이었다. 소련(현재의 러시아) 이나 중국, 브라질 등 기타 강국들은 쿠바의 기세에 눌려서 기도 못폈다. 쿠바 여자배구는 올림픽 3연패라는 전무무후한 대기록을 세웠다.[14] 1992년 바르셀로나, 1996년 애틀란타, 2000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한 FIVB 배구월드컵 4연패(1989, 1991, 1995, 1999)라는 대기록도 가지고있고, FIVB 세계선수권에서도 3번의 챔피언 타이틀이 있다. 그야말로 90년 쿠바 여자배구는 전성기였었다. 그러나 2004년 아테네올림픽 동메달을 기점으로 많이 내려앉아 현재는 여자배구 최약체로 분류된다.[15] 지금은 올림픽 본선에조차 못오르는 형편이다.
남자배구 또한 여자배구만큼은 아니지만 세계적 강호이다. 쿠바 여자배구가 급격히 세계 배구계 정점에서 추락한 것과는 달리 꾸준히 세계 상위 클래스에 있었고, 최근 2010 세계선수권에서는 은메달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올림픽 금메달도 없을 뿐더러 여자배구와는 달리 남자배구계에서는 완전한 강호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당장에 미국이나 이탈리아, 브라질보다는 약하니까
그런데 최근 2016년 FIVB 월드리그대회에서 쿠바 남자배구 국가대표선수들이 단체로 핀란드에서 성폭행 사건에 연루돼 선수 12명중 3명이 체포되고, 나중에 5명이 추가로 구금되는 사건이 발생했다.[16] 더군다나 해당 선수들중에서는 2016-2017시즌 국내팀과 계약한 선수까지 포함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국제배구연맹의 중징계가 불가피한 가운데, 어수선한 팀 분위기로 당장의 월드리그 경기 문제가 아니라 한달 여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 참가조차도 박탈될 우려가 있는등 불투명해지면서 쿠바 배구에 한층 더 먹구름이 끼게 되었다.
한국 V-리그에서도 레오나르도 레이바, 오레올 까메호, 로버트랜디 시몬 등 쿠바 출신 용병들이 많이 뛰기도 했다.
5.3 축구
중남미에서 최고의 스포츠 강국이라지만, 대신 중남미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축구가 부진한 편이다. 쿠바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할 것. 그래도 1938년 3회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루마니아를 3:3,2:1로 이기고 2차 토너먼트인 8강까지 올라가서 1930년 1회 우루과이 월드컵 대회 4강을 거둔 미국에 이어 북중미 나라로서 2번째 월드컵 1승을 거두고 2차전까지 올라간 팀이다. 비록 8강전에서 우승후보급인 스웨덴에게 0:8로 털렸고 이후로 80년 가까이 월드컵 본선에 못 오르고 있지만.(중미 나라로 다시 1승을 거둔 건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코스타리카가 52년만에 거두게 된다).
쿠바 최고 스포츠가 야구에서 축구로 바뀌고 있다.
"축구는 어디서든지 할수있죠" 톨레도 (24) 가 잠깐 휴식을 취하던 도중 말했다. 야구가 럼바와 여송연 수준으로 문화로 녹아들었던 섬나라에 요즘 축구는 단순한 위협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축구는 신세대가 선택한 스포츠이며 (the sport of choice), 전세계 야구의 미래를 위협하는 세대적 변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쿠바에서 야구가 전국민적 열정이다, 하지만 그 보편성과 중계방송과 공공장소에서의 노출도를 5년전만 해도 불가능이라고 여겨졌던 수준으로 축구에 내주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쿠바 생활야구인들의 삶의 터전이였던 골목, 길가, 공원은 생활축구인들에게 빼앗겼고. 각종 차량과 택시의 뒷부분엔 모두 FC바르셀로나와 타 유럽축구클럽들이 그려진 스티커가 붙어있다.
- "쿠바인은 태생적으로 야구팬이다." 담배숍을 운영하는 차콘씨 (38)가 말했다. "하지만 30세 이하 세대는 야구에 관심이 없다."
매일 사람들이 모여 야구에 대한 토론을 나누는 하바나의 파르케 센트럴에도 축구 이야기가 점점 많이 들린다. 최근 어느날 오후에는 몇십명의 사람들이 두 갈래로 나뉘어 한 갈래는 야구에 대한 토론을 했고, 다른 한 갈래는 축구에 대해, 챔피언스리그부터 쿠바 축구필드의 낮은 질에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간에서 두 부류를 지켜보던 에르난데스씨 (37) 가 말했다. "구세대는 전통을 중시하여 야구를 선호하지만, 신세대는 축구를 선호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양적인 수치로 나태나기 어렵다. 여가와 스포츠를 담당하는 정부 부서 관계자들은 노코멘트였다. 하지만 신세대의 야구인기가 하락중이라는건 야구관계자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사실 쿠바뿐만이 아니라 미국도 겪는 상황이다. (기자가 미국 신세대들 야구 안한다는 칼럼 링크해놓음)
야구가 전통적으로 인기스포츠인 일본도 야구부에 가입한 중고등학교 소년들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28% 정도 하락했다는 자료가 있다. 일본 아마야구 관계들이 따르면 점점 축구에 젊은 생활체육인구를 내주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일본프로야구리그의 시청자수 고령화는 현재진행형이기에 신세대에게서 더 많은 인기를 얻기위해 노력중이다.
현역 시절 투수였으며 지난 50년간 쿠바겨울리그의 유소년을 가르쳤던 칼레고씨 (81) 에 따르면 정부에서 오는 배트, 장갑, 등 여러가지 장비의 공급량이 줄어들고 있다한다.
- "요즘엔 어린이들 야구를 하려면 부모가 경제적으로 형편이 괜찮거나 장비가 보급되는 관련 산업에서 일을 해야됩니다." 그가 말했다. "축구가 더 싸고 하기 쉽죠."
다른 종목과 경쟁과 무관하게, 갈레고씨가 가르치는 유소년들은 예전 세대에 비해 야구의 느린 경기진행에 (따분함을 느껴) 집중력을 빨리 잃는다고한다. 그는 유소년들의 야구에 대한 집중력을 유지시키기위해 다른 배구와 수영같은 다른 스포츠종목을 훈련프로그램에 점점 더 많이 도입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쿠바의 신세대들은 종목의 불편함과는 무관하게 야구를 전시대의 쿠바 민족주의적 유물이라고 본다. 그들에겐 축구가 더 큰 세계와 하나가 된다는 동질감을 준다. "세대적 변화에요" 축구경기가 벌어지는 하바나의 야외공원 Ciudad Deportiva 근처에 서있는 가르시아씨 (24) 가 말했다.
브라이언 코스타 MLB 야구 전문기자 칼럼 (2015년 6월 9일 작성)
골목 야구를 보러가자 했다. 쿠바의 국민 스포츠가 야구란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기에 그랬다. 그런데 가이드 펠리페 이슬라(59)씨의 말이 의외다. 야구 경기를하는 아이들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고개를 젓는 것이 아닌가.
두 시간 가까이 아바나 시내 골목을 다녔다. 정말 맨손 야구는 구경하기 어려웠다. 대신 공원과 거리마다 '맨발 축구'가 한창이었다.
펠리페씨는 "요즘 쿠바의 변화 중 하나가 젊은이들 사이의 축구 열풍"이라고 말했다.
쿠바 축구열풍의 배경은 두 가지다. 2008년부터 국영TV에서 유럽 프로축구팀 경기를 거의 매일 방송해주고 있다. 또 인터넷에서 각종 TV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아 가정집에 배달하는 '빠케테(Paquete)' 덕분이기도 하다.
하비에르씨는 "다저스에서 뛰고 있는 푸이그를 좋아하지만, 요즘은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에 더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가이드 펠리페씨도 "특히 메시가 소속된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간 빅매치가 중계되면 양팀 저지를 입고 집집마다 모여 응원한다"고 거들었다.
펠리페씨에 따르면 월드컵이 열릴 때 쿠바 국민이 응원하는 국가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독일, 스페인 순이라고 한다.
쿠바의 축구 열기는 사회적으로도 의미있는 변화다. 다니 리베라(38)씨는 "축구는 쿠바의 세대를 가르는 기준"이라며 "30대 이상은 야구, 그 아래는 축구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정구현 기자의 기사(2015년 8월 20일 작성)
유럽축구가 연일 방송을 타면서 아이들과 젊은 층에선 야구가 어느덧 ‘올드한 스포츠’가 돼가고 있다.
쿠바 현지 취재를 하면서 ‘쿠바야구 인기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공터나 운동장에서 야구하는 아이들보단 축구하는 아이들이 더 눈에 띄더군요. 방송만 봐도 해외축구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들이 야구보다 많은 듯 보였습니다. 실제로 제가 만나 본 쿠바야구인들과 야구팬들은 하나같이 ‘야구의 위기’를 걱정하더군요
- 요즘 쿠바 사람들은 축구에 대한 관심이 더 높습니다. 특히나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은 축구를 매우 좋아합니다.
박동희 야구 전문기자 칼럼(2015년 11월 4일 작성)
5.4 그밖에
올림픽 스포츠 강국으로,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67개를 땄다.참조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다음의 스포츠 강국으로 통하며, 라틴아메리카와 스페인어권 국가 중에서는 역대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딴 나라다.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아시안게임 격인 팬아메리칸 게임에서도 미국 다음으로 많은 메달을 땄다.
쿠바가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 무렵이다. 다른 소련이나 동유럽 국가처럼 공산권 특유의 스포츠 육성 정책을 실시한 것이 결실을 본 것이다. 이러니 쿠바 스포츠 자체가 트레이닝법도 나라 경제 수준에 비해 의외로 선진화 되어있고 환경도 좋은 편이다. 그리고 아직도 사회주의를 유지하고 있으니 쿠바의 선수들은 전업으로 뛰는 프로선수라도 공식적으로는 전원 아마추어(특히 복싱)라는 점이 국제대회에서 더욱 유리하게 작용한다. 야구나 권투나 다른 나라들은 자국의 리그나 프로 라이센스 관계로 대표팀에 나오는 선수들은 최강의 전력이라고 하기엔 모자라지만, 쿠바만큼은 제약없이 내보낼 수 있다. 이 때문에 성공을 위해 목숨걸고 외국으로 튀는 선수들도 많다(…)[17]
다행히 미국과의 국교가 정상화 되면서 이런 위험을 무릅쓸 일이 없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있다. 다만 경제 제제는 여전히 유효해서 완전히 자유화 될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보인다.#
2013년 9월, 쿠바 정부는 드디어 자국 스포츠 선수의 프로진출을 허용하는 정책을 공표했다.[18] 이로써 쿠바의 우수한 야구·배구선수 자원이 세계 야구리그와 배구리그 곳곳에 전파되어 야구·배구 수준에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쿠바는 미국과는 아직도 껄끄러운 관계라 대다수의 선수들이 미국보다는 아시아권인 한국, 일본 등지로 많이 진출하길 원하고 있는 듯 하다. 특히 한국프로배구는 사전에 쿠바 배구 선수들을 접촉하여 중국, 일본에 뒤쳐졌었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쿠바 출신 선수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2012-13 시즌에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등록명 레오, 대전 삼성 블루팡스)[19], 쿠바 국가대표 출신인 카메호 오레올 드루티(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등이 처음으로 V-리그에 진출했고, 이 중 레오는 대한민국 무대에 적응하면서 V-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군림했다. 2013-14 시즌에는 역시 쿠바 국가대표팀 출신인 마이클 산체스 보줄레프(등록명 산체스,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가 레오와 함께 V-리그에서 뛰고 있으며 2014-15 시즌에는 쿠바 국가대표팀의 간판 센터인 로베르틀란디 시몬 아티스가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에서 뛰고 있다.
또한 2014년에는 일본프로야구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는 베이징 올림픽 야구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뛴 프레드릭 세페다와 우리나라에 금메달을 안겨준 율리에스키 구리엘과 계약했다고 한다. 일부 팬들은 우리나라는 알아보지 않았냐는 소리를 했지만 사실 위의 배구에서도 봤듯이 몇몇 구단이 조사는 했었다고 한다. 특히 삼성 라이온즈는 직접 사람을 보내기도. 물론 장점만 있다고 할순 없다. 이 점들은 박동희의 칼럼을 참조. 아직 KBO에 쿠바 출신 타자는 단 한명도 없다.
육상 높이뛰기의 하비에르 소토마요르는 2m45의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약쟁이
열대지방 국가로 동계 스포츠 인프라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동계 올림픽에는 참가조차 한 적이 없다. 쿠바는 동계 올림픽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한 나라 중에서는 하계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딴 나라이기도 하다.
6 정치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콤비가 군사혁명을 완성시킨 뒤, 민족주의와 공산주의가 조화된 국가로 갈 뻔했지만, 미국의 등쌀에 소련을 택하는 바람에 그냥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버렸다. 사실 197-80년대에는 그럭저럭 굴러간편이기는 했지만 소련이 망한 후에 경제 사정이 어려워졌고 현재는 90년대 초반에 비하면 어느정도 괜찮아진 편이었지만 이 당시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있기때문에 여전히 월급수준이 낮은데다가 물자가 상당히 부족하고 제때 공공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편이다.
2011년 4월 19일, 쿠바 공산당 제6차 당대회에서 피델 카스트로가 공산당 제1서기직도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물려주면서 마침내 모든 공식 직책에서 은퇴, 사인(私人)으로 돌아갔다. 1959년 집권한 이래 무려 52년 만. 그의 집권 기간 동안 미국에선 대통령이 무려 10명이 바뀌었다. 공식 직책에서는 모두 물러났지만, 피델 카스트로의 영향력, 현 쿠바의 1인자가 그의 동생이라는 점을 볼 때 국가 최고원로로서 가장 권위있는 조언자의 역할을 할 것으로 추측된다. 형의 자리를 물려받은 라울은 300여 개의 경제개혁안을 통과시켜 쿠바 체제의 일신을 꾀하고 있다. 그리고 2012년 10월 쿠바인의 해외여행 제한 완화를 결정해 의사를 포함한 고급기술자의 정부허가 없는 국외 여행도 자유화시켰다. 그동안은 이런 고급기술자는 해외 망명과 두뇌 유출 등을 우려해 여행을 제한하고 있었던 것.
일단 생각보다는 자유가 존재하는 나라다. 한국에서 생각할 때, 사회주의 국가라면 일단 윗 동네를 생각해서 사회주의 국가는 지도자 동무의 사진에 절을 하고 세뇌교육을 받아서 수령님 수령님 하는 말을 입에서 떼지도 못하는 동네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과거 사회주의권이 존재하던 시절에도 "최소한 우리는 북한처럼 1인 우상숭배는 하지 않는다"면서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비웃을 정도로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 중에서도 최악의 비정상으로 통했다. 거기다가 북한에선 심지어 90년대 이후에는 공산주의 사상의 시조인 카를 마르크스의 책을 금서로 분류하는 등 이젠 사회주의 국가로 분류하기도 어려울 정도. 헌법상에서나 사회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 뿐, 결과적으로는 그냥 봉건적 세습왕조가 존재하는 국가일 뿐이다.[20]
쿠바의 펑크 록밴드들의 존재가 확인되어서 서방국가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한 바 있다. 내래 인민의 펑크록을 보여주갔어 일단은 대놓고 기자 앞에서 나라 욕을 해도 안 잡아가는 것도 우리로서는 윗 동네에 비교해 본다면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서구권 사회주의/좌파 진영에서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나 '자아의 자유'를 중시했고, 특히나 데탕트 이후 이런 분위기가 지배적이 되어서, 무리한 개인숭배라든가 자아비판 같은 것은 금기시되었다. 동구권 현실 공산주의는 사정이 좀 다르긴 했지만서도. 뭐 이미 쿠바에 자본주의 음악의 상징이라고 할만한 힙합 음악가들도 있다. 내래 인민의 힙합을 보여주갔어
물론 친미적인 언론보도는 금기시 되어있고, 실제로 했다간 잡혀갈 각오를 해야 하는 1당 독재국가이지만, 놀랍게도 쿠바에서는 성조기 비키니를 입은 처자를 해안에서 발견할 수도 있고, 서구 문물이 정식 수입되지는 않지만 암시장에 나가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거의 70~80년대에 남대문 시장에서 수입품 사던 것, 세운상가에서 빨간 거 사던 것을 생각해보면 되는 수준이라 한다. 그 얘기는 다시 말하자면 독재는 독재라는 거고, 사회적으로 독재가 강압하는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라는 것이지만.[21]
사회 시스템은 사실 성공적인 국유화 정책 덕분에 의외로 공공재가 어느 정도는 돌아가는 편이다. 일단 시스템상으로는 그렇다.(...) 기본적으로는 쿠바의 환경 자체가 양호한 측면도 있고 시스템 자체가 막장인 북한에 비하면 훨씬 나은편이다. 일단 교육제도는 무상교육이 이루워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따위보다는 질이 훨신 괜찮으며 문화 전반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서인도제도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90년대 경제난의 후유증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시설은 보장못한다.
정치 시스템은 일당독재이긴 하지만 중국처럼 정치 없는 관료제의 특성이 크다. 그리고 중국보다 관료제의 폐해가 덜 하다. 사회 일각에서는 "이제 우리도 슬슬 다당제 할 때 되지 않았나?"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실정. 제일 잘 되어있는 것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실시된 지방자치제로서, 당과 사상에 관계 없이 지역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선출하는 선거로 유명하다. 물론 국회의원, 최고지도자(정확히는 혁명평의회 의장) 선거에 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22]의 편집인이자 유엔 자문의원인 이냐시오 라모네가 피델 카스트로와의 인터뷰를 출간하며 덧붙인 서문을 읽으면 쿠바의 정치 현실에 대한 대략적인 감이 올 것이다. 물론 걸러 들을 부분은 알아서 걸러 듣자.
계속되는 외부의 침략에 대항해, 카스트로 체제는 국내에서 필사적인 단합을 권장했다. 그래서 일당체제의 원칙을 유지했다. "포위된 성채에서 모든 이견은 배반이다."라고 외친 성인 로욜라 이냐시오(Loyola Ignacio)의 낡은 신조를 자기 방식으로 적용하면서,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엄한 제재를 가했다. 그래서 국제사면위원회의 연간 보고서는 자유분야(표현의 자유, 의견의 자유, 정치적 자유)에서 쿠바 당국의 행위를 비난하고, "쿠바에는 의견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수십 명이 수감됐다."라고 보고했다.어떤 이유든간에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오늘날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이 선진국에서 철폐한 사형제도를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 어떤 민주주의자도 견해 차이로 구속된 사람들이 있으며, 최고형인 사형제도를 아직도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상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제사면위원회의 이런 비판적 보고서는 쿠바에서 육체적 고문이나 정치범의 실종, 정치적 암살이나 공권력으로 진압된 시위가 있다고 지적하지는 않았다. 또한 쿠바 체제에 반대한 그 어떤 민중 봉기도 언급하지 않았다. 혁명이 일어난 후 46년이 지났지만 그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반면 '민주적'이라고 여겨지는 인근 국가들-이를테면 콜롬비아의 경우는 제외하더라도 과테말라, 온두라스, 도미니카 공화국이나 심지어 멕시코까지도-의 노동조합 지도자들, 반체제인사들, 기자들, 신부들, 시장들, 시민단체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살해되고 있다. 하지만 그 일로 처벌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일상 범죄는 국제여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외에도 앞서 언급한 국가들이나 대부분의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수천만 명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놀라운 사망률, 문맹률, 무주택자, 실직자,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 거지들, 거리의 아이들, 빈민가, 범죄율, 온갖 종류의 범죄……. 쿠바에서는 이런 것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알려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쿠바에서는 특정 개인을 공식적으로 숭배하지는 않는다. 비록 피델의 모습은 언론과 방송,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공식적인 초상화나 동상은 없으며 동전도 없다. 피델 카스트로를 기념하는 거리나 건물 혹은 기념탑도 없다. 아직 살아 있는 혁명의 지도자들에게 헌정된 것도 없다.
외부의 압박 속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겪고 있지만, 주권을 고집하는 이 조그만 섬나라는 인종주의 철폐, 여성해방, 문맹 추방, 유아 사망률의 급격한 감소, 일반적인 문화 수준의 향상 등 인간 차원의 진보에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성과를 얻었다. 교육과 건강, 의료와 스포츠 연구 분야에서 쿠바는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국가 그룹에 속할 정도이다.
외교 분야에서 쿠바는 가장 능동적이고 활발한 국가 중 하나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카스트로 체제는 중앙아메리카의 나라들(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니카라과)과 남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의 게릴라들을 지원했다. 또한 쿠바 군대는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큰 규모의 전쟁, 특히 에티오피아와 앙골라 전쟁에 참가했다. 쿠바는 앙골라 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엘리트 사단을 격퇴했다. 이로써 남아프리카 인종차별 체제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쿠바 혁명 이후 미국과 외교 관계를 공식적으로 끊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교류를 위해 아바나와 워싱턴 D.C에 상대의 이익대표부를 두고 있었다. 아바나 주재 미국대표부 청사의 경우 쿠바 정부에서 묘한 꼼수(?)를 썼다고. 청사 건물을 형편없는 것으로 만들어 줬다거나 대표부 직원들의 활동을 방해하는 등의 짓은 하지 않았지만, 대신 미국대표부 건물 주위에 미국 CIA에게 암살당한 쿠바 인사들의 사진을 걸어 놨다고.
지난 2013년 2월 24일,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의장이 아바나에서 열린 제8기국회(정식명칭은 인민권력국회) 1일차 회의에서 TV로 전국에 중계된 연설을 통해 이번 임기가 끝나는 2018년 2월 24일에 퇴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피델 카스트로와 혁명 동지인 호세 라몬 마차도 평의회 수석부의장, 라미로 발데스 부의장 등이 배석한 자리에서의 은퇴 공약인 만큼 형 피델과 다른 원로들과의 정치적 합의도 이미 끝난 것으로 판단되며, 동시에 차기 지도자로 라울 카스트로 본인보다 거의 30살이나 어린 미겔 디아스카넬 전 교육부장관을 지명했다. 이로써 공전의 3대 세습을 이뤄낸 북한과 달리 쿠바는 카스트로 형제의 60년에 걸친(...) 치세가 끝남과 동시에 권력 이양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공언한 셈이다.[23]
이 공약에 대해 일단 외국의 반응은 호의적인 편. 다만 피델 카스트로 의장이 퇴임한 뒤에도 형처럼 어느 정도 '섭정'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며, 라울 카스트로 의장 자신도 "개혁은 계속하겠지만 나는 자본주의 발전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발전을 위해 의장이 된 것."이라고 선을 그은 만큼 카스트로 형제가 살아 있는 동안은 쿠바의 개혁은 체제 유지를 위한 선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물론 그조차 하지 않고 핵실험으로 세계의 어그로를 끄는 북쪽 동네보다야 훨씬 낫다 일단 2014년 12월 17일 미국과 국교를 재개함에 따라 큰 변화는 예고되고 있으며, 과연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할 대목.
2013년 12월 10일, 고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추모식에서 만난 라울 카스트로 의장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악수를 나눈 것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물론, 주로 미국에서.공화당은 대놓고 히틀러 드립까지 치고 있다.
2014년 들어 2014년 크림 위기로 러시아와 유럽-미국의 동서 갈등이 고조되자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4월 28~29일 러시아 외무장관이 쿠바를 방문해 크림 문제와 관련된 협의를 했다는데, 러시아가 쿠바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쿠바는 그 대가로 러시아의 행동을 지지해줄 것으로 보인다.#
2014년 7월 1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4년 만에 쿠바에 방문해 라울 카스트로 의장과 만나고 양국의 산업, 에너지,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정을 맺고 쿠바가 소련에 진 부채 352억 달러의 90%를 탕감해주었다.# 특히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에 맞서 러시아와 쿠바는 2001년 폐쇄된 아바나의 루르데스 감청기지를 재가동하기로 합의했다.관련기사이래 놓고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 해 러시아의 뒤통수를 쳤다
2015년 7월 1일, 마침내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선언했다. 그 이후 2016년 3월 11일, EU와 쿠바는 관계정상화를 하기로 합의했다.#
7 경제
2009년 쿠바의 산업구조. 회색은 미분류, 황토색은 니켈과 시멘트 등 광업, 진한 갈색은 시가와 주류제조 등 사치품, 진한 상아색은 사탕수수 및 설탕 산업, 보라색 계통은 의약품 제조, 어두운 하늘색은 철강산업이고 밝은 하늘색은 식품제조업이다. 가운데 조그맣고 진한 고동색은 석유 생산. [24]
진영에 따라 평가가 극으로 갈리는 게 특징이다. 우파 쪽은 쿠바가 지상의 지옥이며 국민들이 도망가는 나라라고 말하고 있고, 반대로 좌파는 미국의 제재[25]에도 불구하고 중앙 아메리카에서 가장 잘 나가며 국민들이 사람답게 사는 곳이니 천국 아니냐고 말한다. 답부터 말하자면 둘 다 틀렸는데, 쿠바가 중앙아메리카의 파탄 지대 중심으로 보면 괜찮은 국가이긴 하지만 못사는 나라인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의 코앞에 위치한 나라로 수십년에 걸친 경제제재를 받았음을 감안한다면 나름 선방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26]
1950년대 이후 서방세계와의 경제 봉쇄가 지속되고 동구권의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된 이후에는 공산품이 매우 부족한 편이다. 사실 1970-80년대에는 경제가 그럭저럭 굴러갔기에 질이 좀 떨어지는 편이었어도 소련에서 쿠바에게 퍼주는게 꽤 많았기 때문에 그런대로 공산품을 구할수 있었기는 한데, 1989-90년에 동구권의 공산 정권이 붕괴함에 따라 더 이상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 결정적이어서, 쿠바의 90년대 초중반에는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보다야 나은 수준이지만 상당한 헬게이트가 열렸었다. 이때 식량 공급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고. 지금이야 경제개방정책도 시행하고 남미에 좌파 정권이 속속 들어서면서 쿠바에 많이 우호적이 되어 외화 수급과 소비재 수입이 원활해졌고, 또한 베네수엘라로부터 석유 지원도 받기 때문에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TV나 전화기, 라디오 등도 국내에서는 고물상에서 조차 보기 힘든 옛날 물건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보통. 또한 석유가 생산되는 산유국임에도 경제 봉쇄로 인해 수출하지 못하다 보니 돈은 못 버는 편이다. 덕분에 쿠바 내의 기름은 매우 저렴한 편이지만, 안타깝게도 정유시설을 돌릴 물자나 자금이 없다 보니 대충 분류한 저질의 휘발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베네수엘라에서 의료를 대가로 석유를 공급받는 것도 이 때문.물자가 부족한 쿠바의 현실 다만 중국에서 쿠바 유전에 꽤나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2010년대 후반이 되면 얘기가 달라질수있기는 하다.
아바나 시내에는 1940년대 머큐리 승용차나 1950년대 포드, 1950년대 비틀, 1970년대 라다[27]를 비롯한 올드카들이 마구 굴러다닌다. 농담 삼아서 전세계 올드카 덕후들의 지상락원이라고 한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무역 봉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경향이므로 올드카 덕후처럼 올드카를 아낀다기 보다는 "있는 게 이것 밖에 없으니 고쳐서라도 써야지 뭐"라는 마인드이므로 차량 자체의 상태는 별로 좋지 않다. 오히려 오리지널리티를 중요시 하는 올드카 덕후들에게는 일단 굴러가게만 만들어 놓아야 하므로 정품이 아닌 그냥 부품을 막 이용해서 마구잡이로 수리한 올드카를 보며 울지도 모른다(?). 거기에 쿠바산 기름은 질이 형편없어서 자동차에 더욱 악영향을 준다. 실제로 이런 오래된 자동차의 매연은 실로 끔찍한 수준으로, 증기기관차 수준의 검은 연기를 뿜뿜하며 달리는 경우가 상당하다. 전세계 관광객들이 쿠바에서 가장 적응하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이다. 다만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남미권과의 관계가 좋아졌고 중국이나 러시아의 경제도 그런대로 좋아지면서 상당한 지원을 받을수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현대적인 차들도 많이 등장해서 볼보,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차량도 많이 볼 수 있다. 다만 쿠바내에서 이들 자동차의 가격은 비싸기에[28] 대다수 쿠바인들은 자동차를 빌려서 사용하며,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은 쿠바내에서도 상당히 잘먹고 잘사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그리고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인해 시리아, 북한과 더불어 코카콜라를 찾아볼 수 없는, 세계적으로 드문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리아와 마찬가지로 자체적으로 콜라를 만들어 판다.
지리적, 기후적 조건은 좋고 자급자족 농업에 힘쓰고 있으며, 기본적인 식량 자급은 되지만 아무래도 농기계가 부족한 문제도 있고 해서 환경 및 농업 특성상 생산량이 적은데 수요가 많은 식량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식량의 40% 정도를 수입에 의존한다고. 2000년대 이후로는 미국에서도 식량을 수입한다. 그럼에도 쿠바를 여행한 론리 플래닛의 저자 토니 휠러는 중미에서는 그래도 제법 살만한 나라이자 중미 최대의 지옥같은 나라 아이티에 견주면 천국과도 같다고 평했을 정도.[29] 중미 국가들 중에서도 우수한 수준이다. 다만 과거 막대한 소련의 지원이 줄어서인지 예전보다 배급품이 적다는 불만이 많지만, 쿠바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들어오면 과거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 시절처럼 굶주리던 시절이 돌아오거나 아이티와 같은 꼴이 될까봐 반정부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몇 번이나 반정부 폭동이 일어나기를 기대했다가 실패했던 이유도 이런 민심의 탓이 결정적인 셈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비교적 자유롭지 못하고, 경제가 1990년대 이후 계속 어려웠던 탓에 많은 쿠바의 젊은이들이 자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찾기를 원하는 것도 사실이다. 젊은 운동선수들의 해외 망명은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뉴스. 2010년대에 대표적으로 알려진 사례로, 메이저리그 선수인 야시엘 푸이그의 탈출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정부에서도 운동 선수들의 해외 리그 진출을 허용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미국에서 제대로 성공하면 넘사벽급으로 돈을 벌 수 있다보니 탈출 행렬은 여전하다. 사실 메이저리그 같은 경우에는 캐나다 팀도 있으므로 원칙적으로는 캐나다 야구팀에서 뛰는 것이 가능하지만 미국 입국이 불가능하다. 다만 메이저리그급까지 안되는 선수들은 베네수엘라 리그나 멕시코 리그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며, 실력이 메이저리그 급이 되어도 돈을 많이 주는 일본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 다만 2010년대 후반에 들면 완전히 사라질 풍경.
게다가 서방 세계의 경제 봉쇄로 인해 자유로운 수입·수출이 불가능하므로 국제 시세에 영향을 적게 받아(...) 가격도 저렴한 편. 아바나에 위치한 국영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여행자는 길게 줄을 섰던게 왠지 화가 나서 그곳에서 판매하는 아이스크림에서 비싼 것을 죄다 주문했다가 기겁했다고 한다. 한 사람이 먹기에는 많은 양이 나왔는데 한국이라면 몇 만원은 넘을 양이 여기에서는 우리 돈으로 겨우 250원이었다고 한다. 바닐라맛 큰 스푼으로 3스푼, 딸기맛 2스푼, 초콜릿맛 4스푼, 와플과 케이크까지 있는 세트를 죄다 합친 값이 이 정도. 왜 이리도 싼가 하면 국영 가게이기에 보통 서민이 먹을 값은 겨우 30원 수준이라 쿠바인들이 모처럼 외식하자면 이런 곳에서 줄을 설만큼 먹어볼 여유가 된다는 것이었다. 특이 사항으로는 1990년대 이래로 비료나 농약 등도 부족한 터라 어쩔 수 없이 유기농 방식으로 농사를 시작했고. 게다가 트랙터 등의 농기계 또한 가동할수없게 되면서 90년대 중후반기 내내 유기농 방식으로 지은 농작물을 먹고 살아야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쿠바의 관광객수가 크게 늘어나서 유기농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나라라는 타이틀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쿠바인이라고해서 건강에 관심없는것은 당연히 아니기 때문에(...) 석유와 식량의 수급이 원할해진 이후에도 지속해서 유기농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고 덕택에 현재에도 소가 쟁기를 끌고 말이 수레를 끌어서[30]농사짓는 경우도 잔존하게 되었는데, 유기농 덕후라면 한번쯤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상당수의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하지만 역시 미국의 경제 제재 덕분에 들어오기 어려워서인지 비싸다. 현지인 친구를 사귀게 된 한국 여행자가 '선물로 샴푸라도 사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샴푸 가격을 물어보자 그 친구가 대답하기를, "여기는 보통 월급이 한국 돈으로 몇 만원인데 샴푸 하나가 싼 게 2천 원이 넘어."라고(...) 심지어 길가에 돌아다니는 호객꾼들마저 돈을 달라고 하긴 커녕 샴푸를 달라고 할 정도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로 메이드인 차이나 제품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과의 정상적인 교류가 불가능하니 공식적인 루트로 수입이 불가능하고, 유럽제나 일제상품은 비싸다보니 그나마 선택할수 있는 제품이 메이드인 차이나인건 당연지사다. 물론 여기서도 숙박업 영업등으로 돈 버는 계층은 존재하기 때문에 종종 유럽제나 일제, 심지어 한국제품들도 팔리기는 한다.
하지만, 이런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쿠바의 경제에 큰 도움이 된 것이 바로 미국이었다. 우선 영어가 비교적 잘 통하고 지리적으로 가깝다 보니 편법을 써서라도 쿠바로 여행오는 미국인 관광객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는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계 미국인도 있는데 냉전 때라면 모를까 경제가 어려워진 이후에는 이들의 돈도 감지덕지인지 반정부 인사같은 특별한 예외가 아니면 쿠바계 미국인들의 입국도 허용하고 있다. 또한 쿠바의 주력 수출 상품인 시가 중 많은 양이 미국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었다. 형식적으로 캐나다나 멕시코 등지로 수출한 다음 미국으로 밀반입한 것. 미국 정부에겐 불법 행위이지만 쿠바산 시가의 수요가 만만치 않아서 밀수가 성행했다.
2014년 4월 28일, 쿠바 정부가 국영기업들(2,800여 개, 500만 명 종사)의 운영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여 재고품의 가격 조절, 종업원의 자율 임금 인상제도 도입 등을 실시했다.# 이는 중국식 사회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로의 경제개혁에 첫 발을 디딘 것으로 여겨진다.
2014년 6월 하순,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이 경영진과 함께 쿠바에 방문해 쿠바의 인터넷 환경을 파악하고 귀국했다. 슈밋 회장은 미국의 쿠바 금수-경제제재 조치를 비판하고 이의 해제를 주장했다.# 이로 보아 50년이 넘게 이어진 미국의 '쿠바 봉쇄'도 차후 변화가 있기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4년 12월 역사적인 미국-쿠바 간의 국교정상화 선언에서 미국이 쿠바에 대한 봉쇄정책의 실패를 자인함에 따라 봉쇄정책 자체는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위에 설명한 것처럼 미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국교정상화를 결사반대하고 있어 실제로 국교정상화나 봉쇄정책 폐기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았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케네디 행정부의 대 쿠바 봉쇄정책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쿠바와의 국교정상화를 발표했다. 교황청과 캐나다가 중재를 했으며 지난 1년 동안 비밀합의가 계속 이루어진 결과. 라울 카스트로 의장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 봉쇄 이후 최초로 양국 정상간의 전화 통화를 실시했고, 수개월 내 아바나에 미국 대사관을 설치하고 고위급 회담을 통해 실무사항을 조율할 예정이다.
8 군사
- 쿠바군 문서 참조
9 여행
9.1 가는 방법
공산주의 국가라 여행금지국가인 줄 알고 있는 사람도 제법 많은데, 미수교국이긴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쿠바에 들어가는 것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대한민국 내에서도 이미 쿠바에 대한 여행제한 조치는 1990년대에 폐지되어, 쿠바를 방문해도 별도의 신고나 허가 절차를 정부에 할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 국민도 쿠바 정부의 허가만 받으면 쿠바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 대한민국 국민은 제3국의 쿠바 공관에서 비자를 받으면 된다.
미국과의 오랜 마찰 때문에 미국인을 적대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달러를 손에 쥔 관광객이라면 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망명 쿠바인까지도 환영한다! 달러 앞에선 배신자고 적국 국민이고 그딴거 없다.[31] 게다가 대다수 지역에서 영어로 어렵지 않게 소통할 수 있고,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 중 하나이다. 2015년 미국 국무성에서 발표한 쿠바의 치안 상황 자료를 봐도 미국인관광객이라는 이유로 적대적인 상황에 처할 일은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냥 미국인 관광객이기 때문에 소매치기나 좀도둑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하라고 할 뿐이다. 다만 미국에서 쿠바를 가기 위해서는 미국 내 여행사나 사이트에서 비행기 표를 끊는 게 불가능하므로, 대부분 캐나다에서 또는 멕시코 칸쿤에서 출발하는 쿠바행 항공편을 구입하는 편. 그래서 쿠바에 마블 코믹스 같은걸 들고 가도 정치적으로 친미만 아니라면 문제 없다.
현재 쿠바에 정기적으로 취항하고 있는 항공사들 중 주요 항공사로는 에어 쿠바나, 아에로멕시코, 인터제트, 에어 캐나다, 아에로플로트, 에어 프랑스, KLM, 아비앙카 항공, 버진 애틀랜틱항공 정도가 있다. 이 중 쿠바로만 여행을 가는 경우라면 보통 에어 캐나다의 인천 - 밴쿠버 - 토론토 - 아바나 경유편을 이용하게 되고, 중남미나 기타 지역을 묶어서 여행을 하게 된다면 멕시코 칸쿤에서 아바나행 왕복 비행기표를 사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인터제트 항공사를 이용하면 멕시코 시티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다만 칸쿤이나 멕시코 시티를 가더라도 한국에서 멕시코로 가는 직항 노선이 없어서 결국은 캐나다에서 환승해서 한국-캐나다-멕시코-쿠바 이렇게 가야 한다. 칸쿤-아바나 왕복은 시즌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 돈으로 비수기시 30만원 내외 성수기시 50만원 내외 수준, 비행기 표 살 때 비자와 비슷한 개념인 투어리스트 카드($25)를 사야 한다.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우선 생각보다 말끔한 공항 시설에 한번 놀라게 되고, 공항에서 아바나 시내로 들어가는 교통수단이 택시밖에 없다는 점에 다시 놀라게 된다.(...) 시내로 들어가는 비용은 흥정하기 나름이지만 대략 25 ~ 30 CUC. 단, 야리코미 플레이의 일종으로 공항에서 3km 정도를 걸어가면 버스를 타고 아바나 시내까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버스를 타면 가격은 0.2MN. 시도해 볼 생각이 있다면 도전해 보길. 단, 버스의 혼잡도는 한국의 출근길 버스는 장난으로 여겨질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므로[32] 짐이 많다면 얌전히 택시 타자.
영국 런던의 개트윅 공항에서도 다른 나라를 경유하지 않고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공항으로 한 번에 가는 직항 노선이 있는데, 버진 애틀랜틱항공에서 운항 중이다. 즉 영국인들은 캐나다나 멕시코를 거치지 않고 바로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쿠바를 오갈 수 있다.
2015년 12월 28일에는 중국국제항공이 베이징 - 몬트리올 - 아바나 노선을 취항했다. 인천/김포 환승을 포함하면 티켓값은 300만원이 확 넘어간다.
미국과 정식 수교와 동시에 미국-쿠바 간 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2016년 7월 7일. 알래스카 항공, 아메리칸 항공, 델타항공, 프론티어 항공, 제트블루, 사우스웨스트 항공, 스피릿 항공, 유나이티드 항공 취항 허가를 내줬다. 이로써 올 가을부터 취항을 시작하여 한국에서 쿠바로 갈 때 환승하기 편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4212번을 타면 경유 필요없이 티머니와 여권 하나로 쿠바 시내까지 갈 수 있다 카더라. 기종은 BS106이라 카더라[33]
산요 본선을 타면 갈 수 있다.
9.2 돈
법정 통화는 쿠바 페소. 대한민국에서는 취급하지 않으므로 쿠바에 도착해서 환전해야 하는데 쿠바와 미국의 사이가 개판이었던 관계로 미국 달러의 취급이 매우 안 좋다. (수수료를 와장창 떼어 간다. 미국 달러는 10% 커미션을 뗀다.) 고로 한국에서는 미리 캐나다 달러나 유로, 멕시코 페소로 환전해 가는것을 추천한다. 덧붙여 골때리게도 쿠바가 명색이 사회주의 국가인 관계로 통화도 내/외국인용의 2종류가 있다. '페소 콘바타블레'라고 하는 태환권 CUC(쎄우쎄 혹은 꾹이라고도 읽는다), '모네다 나씨오날'이라고 하는 쿠바 내국인용 돈인 MN. CUC는 북한의 '외화와바꾼돈표'와 비슷한 개념이라 처음 환전을 하면 전부 이걸로 준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CUC을 MN으로 다시 환전하는데 "원칙적으로" MN은 외국인이 쓸 수 없으므로 CUC->MN은 환전이 가능하지만 MN->CUC는 환전이 거의 안 되었다. 하지만 지금 쿠바에서는 MN을 폐지하고 CUC로 모든 화폐량을 통일하는 작업중이라 예전같이 MN->CUC을 안 바꿔주지는 않는다고. 단, 길에 흔히 볼수 있는 환전소는 안되고 아바나의 Obispo거리의 대형은행에 가서 말을하면 바꿔주니까 참고.
이전에는 CUC을 호텔이나 택시비 공산품 등을 살 때만 사용하고, MN은 농수산품이나 길거리 음식같은 곳에 따로 사용해서 여러모로 헷갈리는 구조였지만, 요즘은 길거리 음식이나 차비도 대부분 CUC으로도 살 수 있기때문에 굳이 MN으로도 바꾸지 않아도 된다. 물론 비자나 마스터카드도 된다. 조건이 미국은행에서 발행하지않은 카드일 것. 그리고 비자는 대부분 통용되나, 마스터 카드는 제한적이다. ATM에서도 사용가능하다. 다만 환율상으론 당연히 CUC이 비싸서 MN으로 받아야할걸 그대로 CUC으로 받는 천하의 개쌍놈들도 있으므로 너무 맘놓고 CUC을 뿌리지는 말자.
쿠바-미국 관계 개선 이후의 상황은 추가바람.
9.3 국내 교통
시내 이동시에는 주로 걷거나 택시. 4212번버스도 있기는 하지만 노선도 애매하고 자주 오지도 않는다. 장거리 이동시에는 버스나 기차 중 택일인데, 버스의 경우에는 정시에 운행하는 편이지만, 열차가 좀 빅재미라 쿠바 기차 수준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수준. 오죽하면 론리 플래닛에 이런 말이 있다. "쿠바 열차의 80%는 연착되고, 나머지 20%는 운행이 취소된다. 흠좀무. 3-4시간 연착은 일도 아닌 수준으로 일어나고 272km거리인 아바나-산타클라라간 이동에 7시간 이상이 걸리는 멋지구리한 체험도 할 수 있다(...)[34] 이렇게 된 이유는 석유공급이 원할해지면서 버스운행이 일단은 그런대로 운행 할수있게 된 반면에 철도는 그 동안 시설의 노후화가 심각하게 진행된데다가 시설을 고치거나 할려면 상당한 돈을 투자해야되는데 쿠바정부에서 돈이 없기 때문에 별로 투자를 못핶고 덕택에 철도 상태가 90년대 수준에서 조금 나은 수준에서 못 벗어났다는 듯하다. 단, 아바나-관타나모 구간을 왕복하는 especial 등급은 제외. 이 열차는 대략 우리나라 무궁화호 수준은 된다. 일정이 넉넉하다면 한번 쯤 일반등급 열차를 타보고 대한민국 철도의 우수함을 온몸으로 체감해 보자.(...)
보통 쿠바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택시를 아예 하루동안 돈을 내고 타고 가거나, 쿠바내의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거나(쿠바에서 여행사는 흔히 길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호텔 내에 조그만 데스크에서 일을 한다.), 그래도 쿠바 내에서 외국인 대상으로 하는 괜찮은 버스인 비아술(VIAZUL) 버스를 타고다닌다. 비아술 버스는 외국인 전용으로 물가에 비싸고, 춥고, 또한 우리나라 시외버스처럼 도시들을 경유하기 때문에 불편한 사람을 잘 못탈수 있다. 차라리 타 도시로 갈때는 흥정을해서 택시를 타거나, 벤을 타는게 더 이로울수 있다. 아바나 내에서는 택시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탈 것이 존재하는 데, 낮 동안에만 돌아다니는 마차라거나(1회에 20CUC), 2명밖에 타지못하는 인력자전거(10CUC)가 있다. 보통 택시는 모네다는 안받지만 인력자전거나 마차는 경우에 따라서 모네다도 받아주니 혹시라도 환율계산 잘못해서 모네다가 남는다면 흥정을 잘해 볼 것. 쿠바 택시를 타면 미터기가 있는데도 안키는걸 볼수 있는데 론리 플래닛에 의하면 미터기를 키면 회사와 나누어 갖는데, 안키면 운전사 지갑에 들어간다 라고 적혀있다(...).
9.4 치안
2015년 미국 국무성에서 발표한 쿠바의 치안 상황은 MEDIUM 등급(중간). 세계적인 수준으로 치안이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전반적인 치안이 막장을 달리는 중남미 기준으로 친다면 우루과이와 더불어서 치안은 그런대로 좋은 나라다.[35] 하지만 살인이나 폭행같은 강력사건은 별로 없어도 소매치기, 절도(주로 물품 빼돌리기)[36]같은 비폭력범죄는 빈번하다고 한다. 그리고 국교 정상화를 통해 미국과 유럽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이에 따른 관광객 대상 강력사건의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쿠바는 주민통제에 주력하는 독재국가 답게 경찰 공무원이 무척 많고, 거리에 깔린 정복, 사복 경찰도 많아서 과연 그 우려대로 강력사건이 증가할 지는 미지수. 거리의 순찰 경관은 관광객이 뭘 물어보거나 도움을 청하면 친절하게 안내해주기는 하는데, 드물게 만날 수 있는 사복 경찰은 조심해야 된다. 쿠바도 현 정권에 반발하는 재야정치운동가들이 있는데[37]이들을 돕는 외국인을 감시하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이 감시대상 근처에서 얼쩡거린다 싶으면 불심검문에 들어간다. 문제는 쿠바 경찰은 대부분 신분증을 잘 안 들고 다닌다는 거(...). 쿠바에서는 범죄자가 간 크게 경찰을 사칭하는 사건이 없고, 신분증을 분실하면 크게 문책 받기 때문에 잘 안 갖고 다닌다. 그래서 관광객이 "니가 경찰인지 어케 아냐 신분증도 없는데?" 라며 검문을 거부하면 바로 정복 경찰들을 불러서 연행해간다(...). 게다가 쿠바 경찰서에 일단 연행되면 외부와 연락도 못하고 유치장에 갇혀서 며칠씩 살 수도 있다.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서인지 이런 외국인들한테는 가혹행위는 하지 않지만, 외부와 연락도 못하므로 갇힌 사람은 미칠 노릇이다. 그러니까 쿠바를 여행하다가 사복 입은 현지인이 " 경찰인데 여권 좀 보여주세요 " 라고 요구하면 일단 얌전하게 보여주는 게 좋다. 다른 국가(심지어 프랑스에서도)에서는 범죄자가 관광객을 대상으로 경찰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검문하는 척 여권과 금품을 훔쳐가는 일이 있지만 쿠바에서는 자기가 경찰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은 분명히 경찰이다(...).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매춘업이 상당히 발달해있다. 사실 쿠바법상으로 매춘은 불법이지만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어느정도 봐주고 있는 면이 있는 것 물론 가끔가다 큰일이 벌어졌을때는 단속을 강화하기 때문에 이때 간다거나 처신 잘못하면 추방당하거나 추방당할수있다. 매춘부 중에는 미성년자도 꽤 있어서 미국이나 유럽 관광객이 멋 모르고 이런 미성년 매춘부와 성관계를 했다가 귀국 후 처벌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38]
9.5 유명한 것, 주의해야 할 것
쿠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특산품은 역시 시가다. 아바나의 국회의사당(까삐똘리오) 근처에서 얼쩡거리고 있으면 시가를 사라는 삐끼들이 은근히 달라붙는데, 이런 블랙마켓의 시가는 주로 공장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이 한두개씩 빼돌려서 파는 일종의 장물이라, 이런것 샀다가 출국할 때 세관에 걸리면 난리 나는 수가 있다.(까삐똘리오 뒷편에 유명한 쿠바 시가 공장이 있다. 여기에서 좋은 시가를 구매할 수 있고, 시가 공장 투어를 여기에서 시작한다.) 난리가 나는 수준은 아니고, 그냥 세관에서 말도 없이 압수하는 경우가 많다. 웬만하면 좀 비싸더라도 멀쩡한 정식 매장에서 사자. 아니면 공항 매점에서 사는 방법도 있다. 면세점은 비싸다(…). 쿠바산 시가는 쿠바 외의 다른 나라 면세점에서도 제법 구할 수 있으며, 이 중 재미있는 물건으로는 시가잎 100%로 만든 궐련이 있다. 보통 시가 브랜드로 유명한 꼬이바(Cohiba)에서 나오는 물건인데, 예전에는 쿠바 국내에서만 판매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수출이 되기 시작했는지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서도 볼 수 있다.
한 보루 사다가 국내로 가져와 흡연자에게 선물하면 재미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시가는 겉담배로 향을 즐기는 것이지 속담배를 하면 안 되는데 이걸 모르고 필터 담배를 피울 때처럼 깊이 빨아들이면 헬게이트를 맛볼 수 있다고 한다. 독하다! 무지하게 독하다! 한모금 빨았는데 앞이 안 보인다는게 절대 과장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한모금 빨자마자 거하게 오바이트 때렸다. 한모금 빠는 순간 딸꾹질을 하는 바람에 기도가 아니라 식도로 연기가 넘어갔다고(...).
그 외에 럼주 하바나 클럽도 유명하고(1년산, 3년산, 5년산, 7년산, 그리고 200만원짜리 7년 이상. 보통 선물용으로 구매하는 7년산이 2014년 1월기준 16.9CUC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줄 만한 가격 대 성능비 최고의 아이템으로는 3페소 지폐 혹은 동전이 있다. 보통 화폐 단위는 1, 2, 5, 10만 있는데, 쿠바에는 유독 3페소가 있다. 그리고 이 돈의 표지 모델은 체 게바라. 은행이나 환전소에 가서 지폐를 내밀면서 3페소로 환전해달라고 하면 친절하게 해주니까 조금 바꿔다가 지인에게 주면 엄청 신기해한다. 참고로 상인들이 외국인들을 보면 체 게바라 동전을 기념 주화인 척 몇 배의 가격을 불러서 파는데 그냥 바가지 씌우는 거니까 환전소에 가서 당당하게 싸게 얻자.
다만 전술했듯이, 한국과는 정식 수교가 되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에(다른 나라에 주재하고 있는 대사관이 겸임한다든지 하는 것도 없다.) 어떠한 트러블이 발생하더라도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으며, 외교부의 안전여행 정보에도 쿠바는 내용이 없다. 한인회가 있기는 하지만 타국에 비해서 극히 소규모이기 때문에 도움을 받기가 곤란할 수도 있다. 위급할 경우에는 KOTRA 직원이 상주하고 있으므로 이쪽 전화번호를 찾아서 연락하는 것이 더 빠를 가능성도 있다.(멕시코와 겸임) 늦은 밤에 혼자 돌아다니지 않는다던지 하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이건 웬만한 선진국에서도 지역에 따라 늘상 지켜야 할 규칙이다.)은 지키도록 하자. 그래도 치안은 그럭저럭인 편으로 한국인이 많이 가는 일부 국가들과는 달리 강도, 살인, 강간 등의 강력범죄보다는 도둑이나 소매치기 정도를 주의하는 수준이다.
민간 숙박업(일명 까사)을 고를 때 가장 유의할 점이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은 무허가 숙박업소도 많다는 사실이다. 걸리면 벌금을 내야 한다. 그래도 눈치껏 잘 피하면 되고 걸리면 마찬가지로 벌금이 엄청난 무허가 숙박업소 주인도 만일을 위하여 투숙객에게 미리 피할 요령을 가르쳐 준다고 한다. 그냥 이런저런 것들 따지지 말고 정식 허가를 받은 숙박업소를 골라도 되지만, 이럴 경우에는 세금을 내야 하기에 좀 비싼 편이다. 쿠바 관련 여행책자나 기행책자를 보면 무허가 업소에서 괜찮게 지낸 경우도 자주 나오는 편이다. 요즘은 어지간하면 정부에서 허가를 다 내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아바나 까삐똘리오 근처 호텔이나 뒷편에 가면 까사가 많다. 문 앞에 흰색 바탕에 하늘색 닻 모양이 그려져 있으면 정식 허가된 까사다. 2014년 1월 기준 까사의 하룻방 세는 30~40CUC 정도.
9.6 여행에 필요한 기타 정보
- 아바나 에 까삐똘리오 근처에 까사중에 한국인에게 유명한 까사를 가면 한국어책이나 여행객들이 만든 정보북이 있는걸 알수 있다. 쿠바에서는 인터넷 하는게 상당히 어려우니 정보북을 사진 찍어서 돌아다니자.
- 유명한 호텔가면 2-4.5CUC 정도로 한시간에 인터넷을 쓸수 있다. 길거리에서 구하면 3CUC 에 사고 (오삐스뽀 거리의 통신사에서 줄서서 사면 2CUC에 살 수 있다. 하지만 줄이 길다. 시간이 없다면 길에서 사자.), 호텔이나 공원등에서 할수 있다. 사람들이 길가에 많이 모여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면, 와이파이 존이다. 옆에 껴서 이용하자(...)
- 와이파이 연결하기 정말 힘들다. 어제 연결이 되던 스팟도 다음날 가면 안되기 부지기수. 특히나 노트북으로 와이파이 연결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인증서에 막혀서 연결하기 어렵다. 핸드폰으로 최대한 해결하자.
- 입국 신고 시 가끔 여행자 보험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재수 없으면 그 자리에서 비싼 돈 주고 가입해야 된다고 한다. 보험 증서 확인은 꼼꼼히 하는 편은 아니니 일 몇 천원 짜리 보험에라도 가입해서 증서를 꼭 캡쳐해가자.
10 관타나모 해군 기지
관타나모 만 문서 참고
11 기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태어난 곳이다. 사람들은 여유가 있고 춤과 음악 등을 즐기며 살아간다고 한다.
건기와 우기가 있는 아열대 기후를 보인다.
2016년 3월, 유명한 DIPLO가 속한 Major Lazer가 아바나 말레꼰에서 공연을 했다. 당시 운집 인파는 40만이라고 한다. 쿠바 거리를 돌아다니면 실제로도 저스틴 비버, 미국 힙합 가수들의 노래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이후 롤링스톤즈도 아바나를 찾아 무료 공연을 했는데 이번엔 60만이 모였다고 한다....
쿠바 요리는 마늘을 꽤 많이 쓴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 때는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구워서 가족끼리 나누어 먹는다고 한다. 다만 길거리 가판대나 대중식당에서 파는 음식은 소스를 적게 쓰는 경우가 많아 다소 밋밋하거나 단출한 편으로 딱 싼맛에 먹을만한 수준이라는 평이 많은 편. 다만 그와 별개로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는 설탕이 듬뽁 들어간다(...) 사실 쿠바가 90년대에 설탕산업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사탕수수가 꽤 재배되기는 하고 국민들 입맛도 거기에 맞추어져있기에 간식에 설탕이 듬뽁 들어가는게 마냥 이상한 일은 아니기는 하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파는 음식은 소고기가 들어가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것 이외에는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 정찬으로 먹는 음식과 비슷하며 꽤나 휼룡한 음식들을 맛볼수 있다. 물론 가격대는 쿠바 물가를 기준으로 한다면 꽤나 비싸지만 말이다. 물론 코펠리아[39]같이 가성비가 최강인 음식점도 있다. 단지 줄을 오래서야할뿐
12 대외관계
12.1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2014년 5월, 쿠바에 대한 봉쇄를 해제하고 교류를 확대, 증진할 것을 촉구하는 정치적 움직임이 미국 내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벌써 50년 넘게 이어진 미국의 쿠바 봉쇄가 과연 해제될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결국 7달 뒤, 이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게 된다.
12월 7일,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 국가 지도자들이 미국 정부가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를 해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카리브공동체(CARICOM) 15개 회원국은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쿠바에 대한 54년의 금수조치는 '무의미한'(senseless) 것이라고 비판하고 제재를 당장 해제하라고 촉구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윈스턴 두터란 총리는 CARICOM 정상회담을 아바나에서 개최하고 내년 4월 파나마에서 열리는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 쿠바를 초청하기로 한 것은 "쿠바가 서방세계에 완전히 복귀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파나마 정상회의에 초청을 받은 미국 정부는 쿠바 참석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즉 실질적으로 미국-쿠바 관계가 '정상화' 되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소리.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열흘 뒤에는...
2014년 12월 1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공식 성명을 통해 쿠바와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위한 공식 협상에 돌입할 것임을 선언했다. 이로써 미국과 쿠바가 케네디 대통령 시절 단교한지 무려 53년만에 대사관 개설을 포함하는 국교 재개의 가능성이 가시권에 올라섰다. 일단 미국 정부는 쿠바 당국이 간첩 혐의로 수감해 온 미국인 앨런 그로스를 석방한 것을 계기로 관계정상화를 선언했으므로 어느 정도 체면은 세운 셈이며, 물론 실리도 챙긴 것이 된다.[40] 미국 정부는 이날 외교관계 회복에서부터 여행자유 확대, 수출입 품목 확대, 테러지원국 해제 검토 등 다양한 내용의 새로운 대(對)쿠바 정책을 발표했다. 자세한 항목은 여기를 참조.
또 쿠바-미국의 국교 정상화에는 프란시스코 교황과 교황청이 큰 역할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대놓고 교황과 가톨릭 교회의 역할에 감사한다고 말했을 정도. 미국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교황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냈으며, 올 여름 라울 카스트로 의장에게도 편지를 보내 대화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미국의 발표가 있은 17일이 공교롭게도 교황의 생일이어서 일부러 노린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 영국 일간지《가디언》은 "교황의 생일에 이런 역사적인 발표가 나온 것이 우연인지, 계획된 연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일은 매우 신중했던 교황청의 지난 30년간 외교 역사상 가장 큰 성과"라고 평했다.# 2015년 5월 10일에는 라울 카스트로가 바티칸을 방문해 교황과 회담을 가졌으며, 교황 또한 9월에 쿠바를 방문할 예정이다. 교황과 교황청의 이런 기여에는, 프란시스코 교황이 대외 관계에 크게 관심을 가진 것도 있지만 쿠바 국민의 대다수가 다른 중남미 국가들처럼 천주교 성향이 강하다는 것도 작용한다. 쿠바 국민의 최소 70% 이상이 천주교 신자로 등록되어 있다. 물론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천주교를 비롯해 종교에 대한 탄압이 있었지만 1991년 이후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풀고 요한 바오로 2세가 쿠바를 방문한 이후 크리스마스를 공식 공휴일로 지정하는 등 쿠바 정부와 천주교의 관계가 크게 개선된 편이다.
하지만 공화당과 미국 내 쿠바 망명자 커뮤니티는 '미국의 적에게 면죄부를 줄수 없다' 라며 맹렬히 반발하고 있으며, 공화당 소속인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카스트로 정권과의 관계는 쿠바 국민이 자유를 만끽하기 전에는 정상화는 물론이고 재검토조차도 안 된다" 라고 공식성명을 발표했다. 현재 미국 의회는 상하 양원 모두 공화당이 우세하기 때문에, 오바마가 국교 정상화 법안을 의회에 회부해도 공화당의 거부로 실제 국교정상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근데 했다#
2015년 4월 11일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의장이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미주기구 정상회의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양국 정상이 회동한 것은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을 일으키기 3년 전인 1956년 이후 무려 59년 만이자 1961년 양국이 국교를 단절한 이후 54년 만이다. 이 날 회의에서 라울 카스트로 쿠바 평의회 의장이 역대 미국 정부의 쿠바 봉쇄 정책을 매우 격한 어조로 비난하여 일순간 분위기가 얼어붙는듯 했으나 이어진 발언에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몰라도) 오바마 대통령은 정직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쿠바 봉쇄 정책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라고 언급하면서 사실상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였으며 오바마 대통령 역시 "역사의 한 장을 넘기자."라고 화답해 국교 정상화가 빨리 추진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몇 가지 민감한 사안이 있지만 서로의 의견을 양보하여 절충할 경우 미국-쿠바 수교는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4월 14일을 기해 쿠바를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하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이 승인하고 미국 의회에 통보하였다. 이것은 말 그대로 통보이며, 의회는 45일간의 검토를 통해 이에 대해 찬반의견을 나타낼 수 있을 뿐 이에 대해서 거부할 권한은 없다. 결국 5월 29일 공식적으로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했다. 이제 남은 것은 수교 밖에 없는 듯. 이에 대해서 의회는 다만 악명높은 쿠바 관타나모 기지 처리에 관해서는 협의 과정이라 야당인 공화당이 반대가 심해서 처리과정에 진통이 예상된다. 항목을 참조해보면 알겠지만 말이 미군 기지이지 사실상은 중동 테러범 수용소로 운용되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가 거부권으로 의회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공화당이 발목을 잡기에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7월 초 국교 회복 발표 전망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양국 대사관 설치와 대사 임명 등에 대해서도 협의가 거의 끝났다고 한다. 단, 쿠바에 대한 금수 조치 해제는 미 의회의 권한이기 때문에 국교 정상화와 함께 단행되기 힘들 듯 하다. #
7월 1일(현지시간)으로 양국이 국교정상화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7월 20일(현지시각)으로 워싱턴 D.C와 아바나에 양측의 대사관이 54년만에 재개관하면서 미국-쿠바 양국의 관계 정상화가 마무리되었다. 상대국 주재 이익대표부를 대사관으로 격상시키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다만 쿠바 주재 미국대사관은 업무 자체는 당일부터 실시하되, 정식 개관식 행사는 2015년 8월 14일 존 케리 국무장관이 쿠바에 직접 방문해서 성조기를 공식 게양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참고로 미국 국무장관의 쿠바 방문은 1945년 이후 처음이다.
분위기를 감지한 코난 아저씨가 쿠바를 2월에 공식 방문했다. 쿠바에서 보는 코난 쿠바편 2015년 2월 행한 코난 쇼로, 미국의 연예 프로그램을 쿠바에서 촬영한 것은 쿠바 혁명 이후 최초라고 한다. 이 소식은 CNN 앤더슨 쿠퍼도 짤막하게 보도했다. 마침 코난 오브라이언이 이 쇼에서 CNN과 앤더슨 쿠퍼를 살짝 풍자했는데, 쿠퍼 역시 이를 보도하며 농담으로 맞받아쳤다.
국교정상화 이후 비록 미국에 의한 금수 조치 해체는 안되지만 경제부문에서 급증하였는데 그 중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도 새로운 촬영지 장소로 주목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분노의 질주 8 (Fast8) 촬영장소로 선정되었는데 1960년대 이후 처음 메이저 스튜디오가 쿠바에서 첫 영화 촬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2016년 3월 21일부터 이틀 간 캘빈 쿨리지 이후 88년만에 미국 대통령이 첫 쿠바 공식 방문히였다.
2016년 6월 초에 아메리칸 항공과 프런티어 항공, 제트블루, 실버 에어웨이스, 사우스웨스트 항공, 선 컨트리 항공이 정식으로 쿠바 취항을 허가받았다.
여담이지만 미국과 쿠바간의 수교로 쿠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 할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는 웃지못할 얘기도 있는데 이는 쿠바에 대한 경제재제 해제안이 완전히 통과되면 자연히 쿠바인들에 대한 특혜 법안도 폐지되고 쿠바인들도 앞으로는 멕시코인 등 타 히스패닉과 비슷하게 취급되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에 일하러 가기가 어려워지는거 아니냐는 우려가 많아서라고(...) 여하튼 덕택에 쿠바를 빠져나갈려는 쿠바인들이 부쩍 늘어난 덕택에 에콰도르, 콜롬비아,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멕시코, 과테말라 등 타 중남미 국가들 사이에서 몰려드는 쿠바 밀입국자 덕택에 골치를 썩는 중.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가 종교의 자유, 정치범들을 석방하지 않으면 단교하겠다고 말했다. #
현재 주쿠바 미국대사를 임명한 상태이지만 공화당이 많은 상원의 인준이 필요해 통과가 어려울 전망이다. #
아직도 어색한 정치적 관계과 별개로 경제적 관계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미국 정부가 쿠바를 방문하는 자국민에게 개인 소비 목적에 한해 쿠바의 최상급 럼과 시가를 무제한으로 사 올 수 있도록 허용했다.# 대쿠바 금수조치에 대해서도 이스라엘과 함께 첫 기권을 하였다.#
12.2 러시아와의 관계
러시아와는 매우 우호적인 관계이고 소련시절부터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쿠바는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많이 들여오기도 했으며, 지금도 러시아제 무기를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측은 쿠바에 설치된 구소련기지를 다시 활용하는 것을 검토중이다.#
12.3 대한민국과의 관계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과는 미수교 국가로 현재까지도 수교를 맺지 않고 있다.
한때 공산주의 혁명 이전까지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때 UN의 바티스타 정부가 대한(對韓) 지원에 적극 동참하여 물자원조를 보내주었던 국가로 이 때까지는 한국이 고마워해야 할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59년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을 일으키게 되면서 한국과의 교류를 단절하고 이후로 극도의 공산국가로 변신하여 국제사회에서 북한, 시리아 등 일부 사회주의 국가들과 함께 한국의 입장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고 주한미군의 주둔을 문제삼아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국가라는 주장도 펼쳤다. 북한의 외교적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것.
1988년 서울특별시에서 열렸던 하계 올림픽 때는 IOC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동조에 맞춰 아예 불참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올림픽 직후에 냉전 구도가 붕괴되면서 쿠바도 대한민국과 점차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였다. 1992년 양국 체육관련장관 회담이 개최되어 스포츠 교류의 길을 텄다. 1997년 무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쿠바가 불참했지만, 이는 적대적인 관계때문에 불참한 것이 아니라, 쿠바 자체가 동계 대회에 참가할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7년에는 양국간의 협력의정서가 체결되었고, 2005년 9월에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KOTRA 무역사무소가 개설되는 등 양국 관계가 점차 변화되어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경제, 문화적인 관계 개선일 뿐, 아직 외교적인 관계 개선은 아니다. 여전히 쿠바와 대한민국의 외교관계 복원은 미정이다.
북한과는 1960년 수교한 이래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으며 평양과 아바나에 양국간 상주공관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특히 남한에 대한 적대심과 반감면에서 맞장구를 칠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1960년에는 사탕수수와 기타 자원을 두고 딜을 한 바가 있고, 피델은 윗동네 태조와 절친이었다. 2011년 김정일이 죽자, 쿠바 정부는 사흘간 애도를 표할 것을 선포하고 정부기관에 조기를 게양했다
2013년 3월에는 쿠바에서 북한으로 가다 파나마에 기항했던 북한 화물선 청천강호에 MiG-21 전투기와 지대공 레이더 부품이 실려있던 사실이 밝혀져 파나마 당국에 억류되고 외교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물론 북한과 쿠바는 대외적으로만 친밀할 뿐이고, 실제로 쿠바 정부는 북한을 지옥과 같은 나라로 여기며 경제적으로 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다. 실익을 중시한 한국과의 관계와는 정반대. 실제로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은 거의 하지 않고 있으며, 그냥 말로만 칭찬해 주는 수준. 북한에서 주재하며 외교인사로 일했던 전직 쿠바 외교부 인사의 증언으로는 90년대 후반 대기근이 닥친 북한에서 있다보니 쿠바는 북한에 견주면 풍요롭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쿠바는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최소한의 배급제도는 유지시켜 놨으며 미국의 위협에도 국방비를 삭감하고 관광업을 진흥시키는 등의 대비책을 강구함으로써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북한은 경제 개혁 조치를 2000년대 와서야 한데다가(산업기반 자체가 아작나서 별 효과는 없지만) 군축도 별로 하지 않아 여전히 식량난에 시달리는 중이다.
참고로 쿠바에도 한국 이민자들이 살고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구한말 시기인 1905년 조선을 떠나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에네켄·알로에 농장으로 이민을 갔던 한인들 중 300여명이 쿠바로 이주해서 현재 4~5세대까지 정착한 것. 쿠바의 에네켄 농장도 멕시코의 그곳과 다를 바가 없이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했지만, 그곳에서 한국인 학교를 세워 우리말을 가르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내는 등 고국의 독립을 위해 한몫을 거들었다. 이들의 후손인 2~3세들중에서 쿠바혁명에 가담한 사람들도 있고[41] 쿠바의 정계·학계·예술계 등에 진출한 사람도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쿠바와는 적성국 관계가 되자 이들의 존재가 잊혀졌으나, 2000년대에 들어 다시 조명받기 시작했다. 쿠바의 한인 이민자에 대해서는 2009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시간의 춤>을 참조하기 바란다.
여담이지만 이들 교민들은 현재 대한민국과 북한 어느 쪽으로도 교민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과거 공산권 국가였던데다 현재 미수교국이기 때문에, 그리고 북한의 경우에는 쿠바 혁명 이후 북한 대사가 직접 찾아갔는데 이들이 태극기를 걸고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는 이유로 반동분자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연원이 대한제국이고, 대한제국의 국기와 국가가 각각 태극기와 애국가란 것을 생각해보면 교민들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은 셈이다.
쿠바에서 발행된 새 10페소짜리 지폐 뒷면에는 현대중공업에서 쿠바에 납품한 이동식 발전소가 그려져 있다. 쿠바 전역에 300대가 넘게 설치될 예정이며 쿠바 총 전력수요의 30% 이상을 생산할 정도로 대규모라고 한다.
2014년 4월 20일, 쿠바 사상 최초로 한국어 능력시험이 실시되었다. 총 71명이 응시했으며, 수교 여부와는 무관하게 쿠바 등 제3세계에서도 높아지는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 시험 개최가 성사될 수 있었다고 한다. # 해당 기사를 보면 미수교국에다 오랜 기간 동안 사실상의 적성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쿠바 주민들이 한국과 한국 문화를 대하는 태도가 의외로 호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은 쿠바 내에서도 북한을 후진국으로 여기며 비하[42]하는 경우가 많고, 북한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그저 카스트로 쪽의 의리일 뿐이지 부자세습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우상화등의 행각으로, 냉전 시절에도 소련에게조차 비웃음 당하는 처지였으며 1990년대 이후로 북한이 경제적으로 막장의 길로 달려들고 반대로 중국이 엄청나게 성장하면서 북한의 1인당 GDP를 압도적으로 따돌리게 되면서 중국에게도 비웃음 당하는 처지로 전락하였다
2014년 12월 쿠바-미국 관계 정상화 추진이 선언되면서 한국-쿠바 간의 수교도 이루어질지, 쿠바 교민들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교민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될지 주목되고 있다. 미국이 53년만에 쿠바와 국교 정상화를 하면서 한국에 수교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북한 쪽에서도 매우 긴장하고 다급해한다고 한다. 다만 이들도 한국의 경제력, 국력을 고려하여 여러 교류가 있긴 하지만, 그놈의 북한과의 의리 (김일성과 피델 카스트로의 친분 등) 때문에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카스트로는 김일성과 친분이 있다고 해서 남한을 적대하지는 않았으며,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의 지도자가 된 김정일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등 북한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지도 않았다.[43]
이렇다 보니 한국과 쿠바간의 민간 교류는 활발히 이루어지는 편이며 2013년을 기점으로 국영텔레비전에서 한국드라마를 편성하여 인기를 끈 이후부터[44] 쿠바 내에서 한류가 퍼지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 첫 쿠바 유학생이 들어오는 등# 개발도상국 중에서 가장 빠르게 한국과 민간 교류에서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로 이 유학생은 쿠바와 수교를 추진하는 한국 외교부 협상팀과 쿠바로 돌아간다. 쉽지는 않지만 기대를 해보자.
한-쿠바 수교 추진이 가시화되었다는 기사가 떴다. 역시 북한이 최대 변수인 듯하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첫 외교부장관으로 쿠바를 방문함으로써 정치적인 관계 복원의 첫걸음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조이기에 들어간다
12.4 기타 국가들과의 관계
UN에서 미국의 대쿠바 제재 해제 조치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무려 24년 연속으로 압도적인 찬성속에 통과되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세계에서 미국을 제외한 다른나라들은 쿠바에 대하여 상당히 우호적이다.
상기 언급한 결의안의 2015년 스코어는 191vs2. 물론 반대 2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다. #
쿠바는 일본과 관계를 맺고 있어서 일본은 쿠바에게 거액의 채무를 면제해 주기로 결정했다.# 2016년 9월 22일.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 총리 최초로 쿠바를 공식적으로 방문하였다. #
13 쿠바가 무대로 등장하는 작품들
※ 해당국의 작품은 제외한다.
- 제임스 본드와 본드걸이 만나는 장소이자 자오가 인종변경을 위해 성형수술을 하던 곳.
쿠바의 의학은 세계제일!
-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피난민을 받아들이고 좀비를 물리쳐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다.
- 치코와 리타
치코리타 - 타나토스
- 무라카미 류의 소설. 쿠바를 무대로 한 여주인공의 인생 고백이 주 내용이다.
- 첫 미션인 'Operation 40'의 배경이다. 주인공 알렉스 메이슨이 동료 요원들과 함께 피델 카스트로를 암살하려는 내용의 미션이기 때문에 쿠바에서 상당히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한 멀티플레이 맵인 Crisis, Havana, Villa도 쿠바를 배경으로 한 맵이다.
- 영화 어 퓨 굿 맨은 관타나모 기지의 미 해병 경비 부대를 무대로 한다.
- 영화 후안 오브 디 데드 (고어 주의!) 쿠바와 스페인 합작 좀비 영화. 쿠바에서 좀비 창궐 사태가 벌어지지만 정부는 반혁명/미제국주의자의 소행이라며 사실을 감추기 급급한 와중, 동네 건달 후안은 가족과 친구들을 규합하여 좀비 처리 대행업이라는 돈벌이를 구상하는데….
- 어쌔신 크리드 4
- 작중 주 무대중 하나가 아바나다.
- 메탈기어 솔리드 V 그라운드 제로즈에서 네이키드 스네이크가 애국자들 산하의 수감시설인 "캠프 오메가" 에 잠입한다. 수감시설 형태(바깥에 노출된 철창 안에 감금)가 관타나모 기지와 많이 비슷하다.
- 스플린터 셀: 블랙리스트에서 샘 피셔가 흑막의
테러용 병력 셔틀이자정보를 가지고 있는 무기상 겸 브로커인 "레자 노우리"가 수감되어 있는 관타나모 기지에 죄수로 위장해 들어간다. 물론 들어갈땐 마음대로였겠지만 정보를 얻고 나서는 기지를 지키는 미군 보초병들을 피해 몰래 빠져나와야 하며, 죄수복을 착용중이라 발각당하면 미군 병사들이 탈옥수를 잡기위해 달려오는 끔찍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샘 피셔의 포스 에셜론도 엄연히 미국 대통령 직속 정보기관이니 이미 관타나모 기지에 샘 피셔를 들여보내며 나중에 CIA가 매우 화낼 일을 저질렀는데[45] 같은 미국 병사들을 죽이는 건 미친 폭거나 다름없으니 미군 사살 금지라는 제약이 걸려있고, 플레이어는 장비 회수 전까지는 테이저건 하나 달랑 들고 기지를 들키지 않고 (장비 회수 전에 들키면 미션 실패) 몰래 빠져나와야 한다. - 엑스파일 코믹스 만화 시즌 10기 #10에서 1960년대 피그만 사태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 아이유의 노래 Havana
- 쿠바에서 보물찾기
- ↑ 영어로는 '큐바'라 읽으며, 일본에서도 이 발음을 따라 'キューバ'라 표기한다.
- ↑ 다른 이야기로 이때까지 공산주의 나라 가운데 공산주의를 생각나게 하는 말(사회주의, 인민 등)이 나라 이름으로 안 쓰인 유일한 공산주의 나라다.
- ↑ 공산주의스러움이 묻어나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혁명 이전의 국호, 국기, 국가를 그대로 쓰고 있다!
그런데 별과 붉은색이 이미 국기에 들어가 있어서 공산국가 국기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다 - ↑ 북한은 현재 주체사상이라는 사이비 사상이 이념이고 중국, 베트남, 라오스는 일당독재 체제는 유지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이미 자본주의로 전환한 지 오래라 공산주의로 볼 수 없다.
- ↑ 영어로는 하바나로도 읽히는데, 동일 도시이므로 착각하지 말자.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를 비롯한 로망스어군 언어에선 H가 묵음이어서 그렇다. 그리고 영어식 철자는 Havana. B가 아니라 V이다.
- ↑ 정확히 얘기하자만 1990년부터 1993년까지 4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시기가 있었다. 이 시기에 동구권 국가와의 무역이 끊기고 강도높은 재제를 받으며 쿠바 경제는 막장일로에 달리게 되었다. 그래도 재빠르게 관광업을 활성화 시켜서 국가재정을 확충시켜나가고 유기농 농법으로 일단 비료수입을 줄여내면서 일단 한숨은 돌려놓았고 2000년대에 러시아의 외교정책 전환이나 중국과 베네수엘라의 지원으로 어느정도의 성장은 이뤄놓았기에 북한에 비하면 훨씬 잘사는 편이다.
똑같이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은 도대체 왜...? - ↑ 다만 2015년 이후부터는 베네수엘라가 유가가 떨어지면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데다가 12월에 치러진 선거에서 야권이 의회 개헌선을 차지하여 여소야대가 된 관계로(...) 경제적 지원이 대폭 줄어들어서 이전처럼 활발하게 협력이 이루워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 쿠바 인구 중 절반인 51%가 에스파냐계 백인이며 이들이 사회중추로 자리잡고 있다. 나머지 물라토(흑백혼혈) 37%, 흑인 11%로 구성.
- ↑ 하지만 그럼에도 쿠바의 빈부격차 수준은 주변국에 비해서는 "양호한 편"이기는 하다. 북중미에서는 캐나다 정도나 쿠바보다 낮은 수준이고, 남미기준으로 봐도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가히 넘사벽 수준. 물론 이건 라틴아메리카 지역과 미국의 빈부격차가 유럽에 비해 월등히 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 ↑ 그렇지만 쿠바정부에서 개방정책을 펴면서 이런 배급제도를 예산문제를 이유로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고 있기에 점차 살수있는 물품수가 줄어들고있다고 한다 그 대신 자영업자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는 있지만
- ↑ 쿠바는 북한과 다르게 자국민들의 인터넷 사용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대개 위성을 받아 인터넷을 받아스는 방식으로 가정용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지 않은데다가 이용요금도 비싸기 때문에 인터넷은 전문직이나 꽤나 돈있다는 사람들이나 사용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인트라넷 정도야 쓸수있기는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인터넷은 부유층의 상징이다시피나 한것인것. 그나마 2010년대 들어서는 미국과의 국교수교 정상화를 계기로 어느정도 인터넷이 점차 확산되어가고 있는 추세이고 베네수엘라나 중국의 지원으로 가정용 인터넷망 사업이 진척되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다.
- ↑ 백인들이 이 자본을 확보하는 경로는 앞서 언급한 해외 거주 쿠바인들의 송금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 자본시장 따위가 있을 리 없으므로..,
- ↑ 이상 쿠바의 인종간 소득격차에 대한 서술은 <주종택, 쿠바의 관광산업과 히네테리스모: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접합, 라틴아메리카연구 Vol.27 No.4, 2014.11, 57-89 (33 pages)>를 참고하였음.
- ↑ 브라질 여자배구팀이 2008년, 2012년에 2연패하면서 타이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 ↑ 그랑프리 최약체 그룹인 3그룹에 포함되고 있다.
- ↑ 피해자가 미성년자라고 한다.
- ↑ 특히 탈냉전 이후인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야구 쪽을 중심으로 선수들의 망명 사례가 늘어나기도 했다.
- ↑ 이전 판에는 해외진출을 전면불허한다고 써 있는데, 정확하게는 프로 진출만 불허했고, 아마추어의 경우에는 소련 해체 이 후 국가대표를 은퇴한 30세 이상의 선수에게 진출을 허용했다.
- ↑ 단, 레오는 청소년대표까지는 했으나 청소년대표 이후 망명을 했다.
- ↑ 하지만 그 헌법도 2009년에 개정하면서 '공산주의'라는 문구는 모두 삭제했다. 하지만 사회주의와 계획경제 노선은 유지한다 했으니
유지할 거리는 있었나?사회주의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닌 셈이지만.어디까지나 헌법상으로만이다. - ↑ 사실 서구의 공산주의 나라는 흔히 동양인들이 생각하는 완전히 닫힌 공산주의 나라란 생각과는 달리 체제 유지만 잘되는 선에서 어지간하면 개인적인 사생활에 터치하지 않았다.
- ↑ 르몽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좌파신문. 국제적으로도 정론지로 명성을 얻고 있다. 디플로마티크는 월간 국제뉴스 잡지로 르몽드가 28개 드언어로 75개국에서 발행하고 있다. 한국판도 발행 중.
- ↑ 애초에 라울 카스트로는 피델, 체 게바라와 함께 혁명의 중심 인물 중 하나이기도 했기 때문에, 형제 사이의 권력이양이라 해서 북한의 권력세습과 동일선상에 놓기는 힘들다. 따라서 북한 김씨보다는 조선 초기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고려 초기 태조 왕건과 신숭겸, 중국 삼국지 시대 오나라 손권과 주유,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후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주더, 신라 중기 문무왕과 김유신 정도의 관계와 비교해야 맞다.
- ↑ [1]
- ↑ 사실 북한보다 미국의 제재가 더 철저하고 더 효과적이었던 곳이 바로 쿠바다.
- ↑ 90년 소련 붕괴 이후, 교역이 활발했던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교역을 거의 할 수 없었고, 미국의 경제재재는 냉전 종식 이후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상당히 선방했다 할 수 있다.
- ↑ 소련의 대중차
- ↑ 한국으로 친다면 자가용 1대 소유하는데 몇억씩 드는 수준이다.
- ↑ 실제로 아이티와 비교해보면 천국 맞다. 물론 아이티를 본질적인 측면에서 망가뜨린 것은 미국보다는 프랑스.
- ↑ 다만 이건 1990년대 이후로 쿠바에서 소를 노동력으로 쓸 목적으로해서 소의 도축을 금지시켰기 때문인 영향도 있다. 그래서 소의 도축이 힘들어지게 되면서 자연히 소들을 노동력으로 쓰게 되었고 2010년대 와서도 소의 도축을 금하는 법령 자체는 남아있기대문에 현재도 지속적으로 노동력으로 쓰고 있는 것.
- ↑ 실제로 쿠바계 미국인이 고향에서 쓰는 돈은 쿠바의 귀중한 수입원 중 하나이다.
- ↑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지붕까지 승객이 가득한 정도로 생각하면..
- ↑ 남아메리카나 동남아 등의 개발도상국에 연식이 다 된 중고 버스를 판매하는 사례가 많다. 이 때 기존의 행선판같은 부착물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것.
- ↑ 비아술이나 택시타고는 3시간이다
- ↑ 사실 그때문에 쿠바 여행이 인기를 끄는 측면이 있다. 다른 남미국가로 갈때 목숨을 보장하기 힘든 경우도 빈번하니까
- ↑ 여기서 가장 흔한건 물품 빼돌리기나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 바가지 씌우기다. 왜냐하면 돈벌기 쉬우면서도 위험부담은 적기 때문이다.
- ↑ 물론 쿠바에서도 야당은 있기는 하고, 무소속 후보들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국정선거에서 후보자들을 철저하게 심사하기 때문에 재야운동가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지라 별 의미는 없다.
- ↑ 미 국무성 자료에는 처벌 받을 위험이 있다고 명시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처벌 받은 사례가 있는 지는 불명.
- ↑ 쿠바에서 베스킨라빈스 21급의 아이스크림 전문점으로 통한다.
- ↑ 실제로 미국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쿠바와의 통상 금지로 미국 경제가 입는 손실액은 연간 12억 달러(약 1조 3,140억원)에 달한다. 물론 쿠바도 피해가 커서 매년 6억 8,500만 달러(약 7,500억 원)의 경제적 손해가 발생했다고.
- ↑ 물론 재산을 몰수당하고 미국으로 울며겨자먹기식으로 간 사람도 일부 있다고 한다.
- ↑ 대충 1970-80년대 소련인들이 러시아어로 번역된 북한 서적을 보면서 낄낄거렸던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 ↑ 2010년 초반 쿠바 여행을 간 한국 여행자가 전직 쿠바 외교부 인사였다가 은퇴하여 게스트 하우스도 차리고 사는 노인을 만나 듣던 이야긴데 김일성 사후 카스트로는 김정일에 대하여 실망한 반응을 공식석상에서 보이기도 하고 고난의 행군 당시 대놓고 쿠바 정계에서 카스트로가 김정일을 미친 놈이라고 욕한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을 정도이다...
- ↑ 물론 훨씬 이전부터 다른 나라의 텔레노벨라는 잘만 수입되고 있었다.
애초에 타 남미국가들과 교류가 제법 활발하니 수입되지 않을리가 전혀 없지만 - ↑ 피셔를 관타나모로 들여보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CIA측 파견요원 브릭스는 이 일을 포함한 여러가지 활동 내역들로 포스 에셜론으로의 파견 명령은 영원할 줄 알라는 통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