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 / 韓日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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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大韓民國 / Republic of Korea | 일본 日本 / Japan |
목차
1 개요
총, 칼 없는 전쟁
아시아 최대 라이벌이자 국가 더비 매치
이기면 모든 것을 얻고 지면 모든 것을 잃는 단두대 매치
지면 까인다. 아주 많이. 특히 자책골 때문에 지면 그걸 넣은 선수는...
제아무리 비인기 스포츠 종목이라고 해도 한일전이라면 사람들의 관심이 대폭 증가하는 한일전 특수 버프가 있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관심이 많아서 특히 축구나 야구같은 열기가 높은 스포츠 종목은 한일전의 평균 시청률이 30% 정도는 우습게 넘어간다. 일본은 지상파 TV 채널 수가 한국보다 많다는[1] 점을 생각하면 상당한 수치다. 하다못해 인터넷상의 찌질이들끼리의 키배라도 한일전 양상이 되어버리면 이목이 집중된다. DC와 2ch의 1차, 2차 사이버 전쟁처럼...
고연전과 연고전 항목이 그렇듯이 대한민국에서는 '한일전'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닛칸센(일한전)'이라고 부른다.[2] 그 외 다른 나라에서도 일한전이라고 언급한다. 2002 한일 월드컵도 한국에서 '한일 월드컵'이라고 했지만 일본에서는 '일한 월드컵'이라 했다. 나 먼저 원리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 그래도 어디까지나 공식 명칭은 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 즉 한일 월드컵이었다. 이건 꼭 자국민이라서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제 3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한일월드컵이 맞는 명칭인게 원래 월드컵의 경우 이런 공동개최일때는 개막전을 하는 나라가 먼저 오게 되어 있다.
당시 일본은 자기네들이 꼭 무슨 일이 있어도 결승전 마지막 파이널 백미니까 만큼은 자기네들이 해야 겠다고 공동신청 논의시 우겨서 우리도 그냥 그러라고 양보해주면서 대신 명칭만큼은 개막전이 한국에서 열리는 만큼 한-일 순서로 오는것임을 분명히 하였고 국제적 룰로도 맞는데 사람이 화장실 들어갈때랑 나올때 다르다고 일본에선 일한으로 말한다. 하기사 만약 입장이 정 반대였다고 하면 우리나라도 공식명칭이 일한월드컵 이었다고 쳐도 우리 스스로는 한일월드컵이라고 자화자찬 했을건 마찬가지겠지만.
한일전의 중요성을 만화 하나로 잘 나타낸 와탕카. 링크
영국의 언론 가디언은 가장 치열한 국가대표 축구 더비로 한일전을 상위 10위 중에서 5위로 선정했다.英 가디언 선정 '대표팀 라이벌전 Top10'...한일전 5위
2 실체
"친선과 숙명, 그리고 대혈투가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하는 오묘한 더비 매치."
조석
"모든 팀에 다 이겨도 일본에 지면 전패고, 다른 나라에 다 져도 일본에 이기면 전승"
김응룡. 야구 대표팀 감독 시절의 발언.기사
양국에게는 그 어떤 경기보다도 중요한 경기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본래의 실력과 상관없이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 전승을 했다가도 이 경기에서 패배하면 비난이 쏟아지며 패배의 원인이 된 선수는 역적, 매국노 취급을 받는다. 반면, 전패를 했다가도 한일전에서 승리하면 "그래도 한일전은 이겼으니까 괜찮다."라고 까임방지권을 받게 된다.
남성잡지 맥심에서는 스포츠에서 가장 보기 싫은 이벤트로 일본전 패배를 꼽았다. 그래서 대표팀은 무조건 일본을 이겨야 한다!...라고 하지만 실상 한일전에서 한국이 지금처럼의 승률을 자랑하는 것도 얼마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80년대 후반까지 축구 농구와 양궁 정도 제외하면 대 일본 승률은 높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나라가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하는 쇼트트랙도 90년대 초반까지는 밀렸던 적이 있었다. 물론 반대 케이스로 90년대까진 일본에게 앞서다가 2000년대에 들어설때쯤 부터 상대전적이 열세로 돌아선 여자배구의 사례도 있지만 드문 편이다.
실제로 70-80년대 초중반까지는 한일전보다 남북한의 남북대결 매치가 국민정서상 관심이 많았고 승패에 연연하며 피를 말리게 했던 경기였다. 물론 여기에는 6~7~80년대의 남북한의 라이벌 정서가 심했던 사회적 시대적 측면이 많이 반영되서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일본도 일본이지만 반공 정서의식이 강한 시대였고 당시엔 남북한 경제력 차이에서도 한국이 딱히 우월할 정도로 앞서있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선 북한이 더 위협적으로 다가와서였다. 과거 60년대 북한 축구가 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르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자 이에 열등의식을 느낀 당시 대한민국 정부가 정부 주도하에 북한만을 꺾기 위해 뛴다는 양지 축구팀을 정보부 산하에 만들 정도였으니까.
실제로 해당 국가의 종합적인 스포츠 실력 수준이 어디까지 인가를 살펴보는 척도로 대표적인 우리가 잘 아는 올림픽을 꼽을 수 있다. 올림픽에서의 메달 순위와 금,은,동 메달의 분포도 등을 따져보면 해당 국가의 전체적인 종합 스포츠 실력을 대충 가늠해 볼 수 있는데 과거 일본이 한국전쟁 이후(그 이전은 전범국이라 참전제한, 2차대전으로 참전안함 아니 전 세계가 전쟁하느라 올림픽 2번 취소크리 등으로 제외) 60년대(64년도엔 개최국으로서 좋은 성적 물론 홈 어드벤티지 감안)와 특히 일본의 버블 경기가 올라가며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시기였던 7~80년대에는 일본의 메달순위는 거의 대부분 한국보다 앞서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후 90년대 들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20년이라고도 한다) 버블경제 붕괴 등 국가경제력이 악재를 달리며 스포츠 수준도 그에 비례해 추락해 올림픽 메달 종합 순위에서 한국에게 역전당하고 밀리게 되었다.
실제로 관련 분야(스포츠와 경제)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해당국가의 국력(경제력을 바탕으로 나머지들)과 스포츠 실력은 비례하는 측면이 있다" 라고 하는데 그것이 그대로 시기별로 반영된 것이라 보면 되겠다. 물론 올림픽이라는 여러 종목을 통틀어 종합적인 스포츠 실력에선 그렇고 세부적인 하나하나 개별 종목 단위로 따져보면 꼭 이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긴 하다. 일반적으로 경제력=스포츠성적 이렇게 연계성이 있다는 거지 무조건 100% 예외 없다는건 아니니까.
이러한 분위기를 선수들도 잘 알고있는지라, 다른 때 같으면 해외에서 경기를 치르고 귀국할 때 공항에서 (크게 털린경우가 아니면) 평범한 모습으로 기자들을 맞이하지만, 유독 한일전에서 일본에게 지고 돌아오는 경우라면 고개를 푹 숙이고 어두운 얼굴로 기자들을 맞이한다. 불쌍해보여야만 국민들에게 덜 까이니까.
양국 사람(네티즌)들 대부분은 막상 한일전이 벌어지기 전에는 '실력도 없고 상대도 안 되는 것들이니까 신경따위 쓸 필요도 없다.'며 서로 안중에도 없는 척, 쿨한 척을 한다. 그러나 막상 한일전이 시작되면 그런 거 없고 미친듯이 응원을 한다. 하다못해 한쪽 국가 선수들이 패배하기라도 하면 해당 국민들의 반응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결국 패배한 쪽은 모든 것을 잃은 듯 허탈감에 빠진다.
역사상 최초의 한일전은 1945년 8.15 광복 이후, 1953년 있었던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아시아 예선전이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출정식을 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일본에게 패배하면 대한해협에 빠져서 죽으라고까지 했다고. 결국, 첫 한일전은 5:1로 압도적으로 대승했고, 이어서 일본에서 또 벌어진 2차전에서는 2:2로 무승부를 이끌어내서 대한민국 최초 월드컵 본선 진출(+아시아 독립국가 최초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뤄낸다.[3] 해방이 된 지 10년이 되었던 즈음이라 국민들은 승전보에 더욱 기뻐하였는데, 무엇보다도 일본에 35년간 식민지배를 당했던 아픈 기억 때문에 축구경기에서 압승했다는 것과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냈다는 것에 환호를 보냈다.
3 왜 이렇게 열기를 뿜는가?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말대로 이웃나라와 사이좋은 나라는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고, 한일관계 역시 이웃나라라서 서로 부딪칠 일이 많다. 과거의 역사나 정치적인 문제를 파고들면, 또 여러 모로 복잡해지기 때문에 양국 사람이 괜히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싸우기도 딱 좋을 만큼 서로 그 점에 대해서는 민감하다. 이런 감정이 간접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바로 한일전(어느 정도는 직접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런 데는 주변국가 중에서 한국과 일본만큼 라이벌 관계를 이룰 나라가 없어서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기껏해야 중국, 몽골, 대만, 북한 정도인데, 사실 한국 및 일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나라는 중국뿐이다. 그나마도 과거에는 중국의 스포츠 실력이 좋지 않았던 데다가 중국은 전통적으로 축구나 야구같은 구기종목보다는 탁구나 체조, 역도 등의 개인 스포츠에서 강세를 보이기 때문에 임팩트가 그리 크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는 축구에서 중국이 한국만 만났다 하면 매번 무승부 내지 패배를 기록하는 공한증을 들 수 있다. 만약 중국이 과거에 스포츠(특히 팀 스포츠)를 조금 더 잘 했더라면 한중전, 중일전이 한일전만큼 성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4]
또한 대한민국과 일본은 '동북아시아에서 공산권 혹은 중화권이 아닌 그야말로 진정한 서방 국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유이한 두 나라이기 때문에,[5] 이에서 파생된 라이벌 의식 역시 한일전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구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리고 이것은 스포츠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의 한일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더군더나 2000년대 들어서는 대한민국의 경제, 기술적 성장으로 인해 대한민국과 일본은 '아시아 전체에서 둘 뿐인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라는 타이틀도 동시에 생겼기 때문에,[6] 대한민국과 일본간의 라이벌 의식은 더욱 심화되었다. 애초에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자신들의 아래라고 생각하며 비하하다가 최근 들어서 진심으로 싫어하는 혐한 감정이 커진 이유도 이 때문이 크다.[7] 그리고 이 역시 위의 문단에서의 라이벌 의식처럼 스포츠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의 한일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4 실전에서
4.1 축구
일반적으로 '한일전'이라고 하면 양국간의 축구 국가대표 경기를 쉽게 떠올리는데 역대 전적은 일본보다 한국이 더 앞서는 편이다. 역대 전적만 봐도 한국이 훨씬 압도적이며 1980년대 이전만 해도 한국에게 일본은 전혀 상대도 되지 못했다. 한국축구의 레전드이자 슈퍼스타 차범근이 활약하던 시기였던 1970~80년대에는 일본은 언제나 한국에게 쪽도 못 쓰고 깨져버렸고, 그야말로 일본은 한국의 밥(...)이었다. 물론, 더 윗세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최정민, 이회택같은 대형 공격수들이 활약하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1994년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 한일전에서 1:0으로 승리했지만, 이라크에게 경기 종료 30초전에 통한의 동점골을 먹히면서 월드컵 본선진출에 극적으로 실패한 도하의 기적을 보면, 일본은 뒷목을 잡고 쓰러질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본이 1993년 J리그를 야심차게 창설하면서 AFC 아시안컵 우승 횟수에서도 한국을 앞서게 되었으며, 한국 축구에 대한 연구와 엄청난 투자로 인해 어느덧 동아시아권에서 한국과 일본이 양강구도를 형성하게 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되었다.
한국이 축구에다가 돈 많이 쓴다고들 하지만, 일본은 한국보다도 2, 3배 정도는 우습게 정도로 더 많이 쓰고 있으면서도 한국을 쉽게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항상 그래왔던 것은 아니고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줬던 종목은 그동안 야구가 압도적이었던 터라 축구는 만년 2인자였다. 물론, 최근에는 일본내에서 야구 열기는 좀 사그라들고 축구 열기가 올라가긴 했지만 금전적 지원 역시 생각하는 것처럼 압도적인 차이는 아니었다.
더구나,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의 경우는 특히 1990년대 들어서부터 버블경제 붕괴의 여파로 인해 국가 경제력이 많이 후퇴하던 상황인지라 스포츠에 그리 많은 돈을 쓸 여력이 안되기도 했다. 뭐... 어쨌든, 일본은 많이 쓴 돈에 비해서 실력향상이 잘 안되는 편이었지만 그나마 2010년대에 들어와서 조금씩 대등해지면서 점점 한국과 전력이 비슷해지는 상황이다.
한일전 축구경기를 보면 알겠지만, 대체로 일본의 아기자기한 패스축구에 대항하는 우리의 방법은 피지컬 축구[8], 이른바 뻥축구인데, 이게 한결같이 잘 통해서(...) 계속 이기곤 한다. 심지어 한국이 패배하는 경기에서도 저 킥 앤 러시, 롱볼패스 때문에 일본이 위기를 맞이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헤딩볼을 잘 따낼 선수가 없다는 것과 수비수들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다.
4.2 여자배구
반면, 여자배구의 경우는 한동안 한 팀이 연승을 달리다 어느 시점부터 연패를 당하는 패턴을 보여왔다.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까지는 한국이 일본보다 우위였지만 2004 아테네 올림픽 조별라운드에서 한국이 일본을 이긴 이후부터 2012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전에서 정말 오랜만에 승리할 때까지 무려 22연패라는 치욕스런 결과를 내기도 했다.
그래도,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여자배구 A조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일본을 3대 1로 꺾었다. 배구 외에도 여자축구의 경우도 일본이 한국에 더 앞서는 수준이다. 그 밖에 여자농구나 여자핸드볼 등의 종목은 한국이 일본을 앞서는 수준이다. 그래도 여자농구의 경우, 2013년때 최초로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20점차로 패배하기도 했다.
4.3 야구
야구는 두 번의 WBC에서 쓴 맛을 봤지만, 올림픽에선 2차례 목메달을 안겨줬고 전적이 앞선다(14승 10패)[9]. 참고로, WBC의 대진이 이렇게 병맛스런 이유는 "한일전이 돈이 가장 되니까."라는 설득력 있는 가설이 존재한다.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이후 전적은 14승 8패이며, 일본이 프로급 선수들로 꾸려서 본격적으로 맞붙은 2003년부터 2016년 까지는 16전 8승 8패로 동률을 기록하고 있다[10].
2015 WBSC 프리미어 12의 경우 일본의 자금이 투입되어서 진행된 대회라 대회진행이 편파적이었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2015 WBSC 프리미어 12/논란 항목 참조.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 모든 악조건을 깨고 우승했다.
4.4 게임
게임의 경우, 일본과 한국이 주로 하는 게임이 달라서 그런지 많이 갈리는 편.
슈팅게임을 포함한 오락실 게임의 경우 한국이 무난하게 발린다. 이걸 대표하는 말이 "일본 동네 기록이 전한기록". 대전격투 게임의 경우 그쪽에서 인기있는 게임과 이쪽에서 인기있는 게임에 따라 우세가 천차만별로 갈리는지라, 세계적으로 인기많은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정도를 제외하면 비교는 거의 의미가 없는 편.
리듬게임의 경우 KAC 2012 사운드 볼텍스 부스 부문[11], KAC 2013 유비트[12], 리플렉 비트[13] 부문에서 한국인이 김사자 선생의 도움으로 챔피언 자리를 가져갔다. 게다가 The 4th KAC에서는 유비트 본선진출한 8명중 5명이 한국인[14]이고 DDR[15]에다가 리플렉비트[16]까지 우승에 성공. PC 리듬게임으로 끌고가면 더 확연해진다.[17]
PC 게임은 당연히 한국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아서 승부가 성사되지도 않는다.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는 스타크래프트나 리그 오브 레전드까지 갈 것도 없이, 도타 2나 카운터 스트라이크 같이 한국에서 인지도가 낮은 종목들도 나름 강력한 데 비해 일본에는 제대로 된 프로 팀조차 없다.
4.5 반응들
기업의 경우도, 특정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한국기업과 일본기업이 경쟁구도로 되어 물고 뜯고 싸우는 모습을 볼수 있다.
과거 인조이재팬 등의 사이트는, 한일전의 승자에 따라 사이트의 주인이 바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쪽이 득세하였다. 주요 떡밥은 독도인데, 승자가 바뀌어도 주제는 안 바뀐다.
시키면 한다! 약간 위험한 방송에서는 한일전때 한국에서 일본을 응원하면 어떻게 되는지 실험했다. # 댓글을 보면 그야말로 키배의 향연을 볼수 있다.
5 양국 선수들은 원수지간인가?
물론 이건 국가대표전의 이야기. 비록 한일전에서 목숨걸고 싸웠어도, 해외의 같은 소속팀에서 한국 선수와 일본 선수가 뛰는 경우에는 서로 친해지는 경우가 많다. 구자철이 임대갈 때, 하세베 마코토가 호소가이 하지메에게 전화해서 챙겨달라고 했다거나#, 볼튼 원더러스로 임대간 미야이치 료가 이청용을 가장 친한 친구로 뽑기도 했고#, 박지성도 J리그에서 뛸 때 동료들과 친하게 지냈다. 박주호와 구자철의 팀메이트인 오카자키 신지(레스터 시티로 이적)도 그 둘과 매우 친하게 지낸다. 박찬호와 노모 히데오도 좋은 관계를 맺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 그 외에 펜싱 대표선수들 끼리도 사이 좋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더구나 추신수는 같은 텍사스 레인저스 동료인 다르빗슈 유를 가리켜 팀의 월드 시리즈 진출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을 정도.
사실 국가간의 경쟁 의식을 굳이 개개인의 문제까지 가져올 이유도 없고, 가깝고 자주 부딪치는 만큼 오히려 인간적으로는 서로를 잘 알고 정이 드는 경우도 있다.
어쩌니저쩌니 해도 유럽이나 미국같은 외지에서는 어쨌거나 같은 문화권인 동아시아인끼리 서로 의지도 되고 친해지기 쉽다. 게다가 야구나 축구등의 스포츠의 경우 아무래도 동양인들은 메이저리그나 프리미어 리그 등 높은 레벨의 무대에 진출하여 도전하는 입장에 가까우니만큼 자신과 같은 길을 가는 상대에 대한 동질감 혹은 일종의 전우애에 가까운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고 한다. 박찬호가 마이너리그 시절 때 스즈키라는 마이너리거 동료가 있었는데 신라면이나 김치를 즐겨먹고 한국노래를 즐겨듣으며 굉장히 친하게 지냈다. 오죽하면 박찬호는 너 혹시 한국계 아니냐? 이렇게 질문했을 정도인데 물론 그는 아니야~ 즉시 답했다고 한다. 스즈키는 아쉽게도 메이저리거로 성공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박찬호가 매우 아쉬워하며 일본에 편지까지 보내자 고맙다면서 답장을 한 적도 있다.
물론 프로구단에서 서로 적대감을 가지는 경우도 있긴 하다. 김선우같은 경우 메이저리거 시절 일본인 팀 동료 오카 토모카즈와 멱살잡고 서로 욕하는 통에 감독이던 프랭크 로빈슨에게 둘 다 혼나던 적도 있었다.[18] 하지만 이런 경우는 꽤 적다. 같은 팀으로서 우선 친하게 지내는 게 먼저이니까 서로 이랬다간 팀워크가 깨지는게 당연하니, 당연히 감독에게 둘 다 찍히기 일쑤이다.
정리하자면, 경기가 지니는 의미로 인해 한일전에서는 치열하게 싸우지만[19] 한일전을 벗어나 한 팀이나 같은 리그에서 뛴다면 동업자 정신 하에 얼마든지 친분을 쌓을 수 있으니 한일전의 모습만 가지고 선수 개개인에게 적대감을 강요하지 말자.
6 여담
삿포로돔에서 야구, 축구 모두 발린 영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자세한 것은 삿포로 참사 항목 참조. 2003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대만과 일본에게 지면서 2004 아테네 올림픽 예선에서 떨어졌던 일이나, 2011년 한일 정기전에서 졌던 일이 대표적이다. 아무래도 돔구장 자체에 익숙하지 못한게 문제였던 것 같다.
참고로, 남자 스포츠 선수들 한정으로 병역면제가 걸린 거라면(...) 진짜 패배하면 역적 + 입대 크리.
7 한일전과 비슷한 국가간의 더비 매치가 일어나는 경우
- 잉글랜드 VS 아르헨티나 1982년 포클랜드 전쟁과 비롯, 디에고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의 마이클 오언의 할리우드 액션 때문에 축구로는 사이가 안좋다고 볼 수 있다.
- 미국 VS 멕시코 - 북중미 맹주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더비. 물론, 역사적으로도 사이가 좋지 않다.
물론, 그 밖에도 여러 국가의 대진이 있다. 자세한 사항은 이웃나라/안 좋은 사이에서 확인해 보길.
8 역대 한일전 전적
8.1 축구
8.1.1 축구 한일전 전적
2016년 1월 30일 남자축구를 기준으로 78전 40승 23무 15패를 기록하고 있다.
- 1990년 7월 27일 다이너스티컵 베이징 2:0 승리.
- 1992년 8월 29일 다이너스티컵 베이징 2:2(2PK4) 무승부(승부차기패).
- 1992년 8월 22일 다이너스티컵 베이징 0:0 무승부.
- 1993년 10월 28일 월드컵 아시아예선 도하의 기적.[20]
- 1993년 10월 25일 월드컵 아시아예선 도하 0:1 패배
- 1994년 10월 11일 아시안게임 히로시마 8강전 3:2 승리.[21]
- 1995년 2월 21일 다이너스티컵 홍콩 1:1 무승부.
- 1997년 5월 21일 친선전 도쿄 1:1 무승부.
- 1997년 9월 28일 월드컵 최종예선 도쿄 대첩 한국 2-1 일본 역전승
- 1997년 11월 11일 월드컵 최종예선 서울 0:2 패배.[22]
- 1998년 4월 1일 친선전 서울 2:1 승리.
- 1998년 12월 7일 아시안게임 방콕 2:0 승리.[23]
- 2000년 4월 26일 친선전 서울 1:0 승리.
- 2000년 12월 20일 친선전 도쿄 1:1 무승부.
- 2003년 4월 16일 친선전 서울 0:1 패배.
- 2003년 5월 31일 친선전 도쿄 1:0 승리.
- 2003년 12월 10일 동아시아선수권 요코하마 0:0 무승부.
- 2005년 8월 7일 동아시아선수권 대구 0:1 패배.
- 2007년 7월 28일 아시안컵 팔렘방 0:0(6PK5) 무승부(승부차기승).
- 2008년 2월 23일 동아시아선수권 1:1 무승부.
- 2008 AFC U-19 아시안컵 8강전 한국 3-0 일본 대한민국 승리
- 7대회 연속 청소년 월드컵에 참가했던 일본은 이 패배로 인해 16년만에 FIFA U-20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다.
8.1.1.1 2010년
2010년 2월 14일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 |||
한국 | 3 | 1 | 일본 |
新 도쿄 대첩
평소와는 정 반대로, 양국의 젊은 층은 내심 자국팀의 패배를 염원하던 경기. 한국의 축구팬들은 중국전에서 3:0으로 패한 허정무가 이 경기에서의 패배를 통해 경질되길 바랐고, 일본도 비슷한 이유로 감독인 오카다가 해임되길 바랐다. 통칭 "개작두 매치". 그리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일본의 주요 인터넷 사이트들에서는 목표대로 4강 달성![24] 비록 4개국 참가지만. 같은 코멘트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이겼지만 다들 허정무를 까는 분위기. 이럴 수가, 한일전의 법칙들이 모두 엇나가고 있는 건 공한증이 깨져서 그런걸지도... 그리고 한국팬과 일본팬들이 한 마음으로 뭉친, 어느 의미로 참 기념비적인 시합이다. 오카다는 결국 경질되지 않았다. 반대였어도 같았겠지
이 경기에서 일본이 선보인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면 당분간 성인대표팀 경기에서 한국이 지는 모습은 보기 어려울것 같다. 한국은 지난 10여년간 선수들의 체형이 많이 유럽화되었고 조용하지만 꾸준히 발전한 반면 일본은 도쿄 대첩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나아진바 없는 서글픈 피지컬을 선보였다. 여기에 10년 넘게 지속된 최전방 공격수의 부재...점유율도 더 높았고 열심히 공 돌려가며 기회를 만들었지만 넣어줄 사람이 없으니 한국은 거칠게 피지컬로 밀어 붙이고 위기 상황에선 바로 걷어내면 그만이었다.[25] 앞선 중국전에서 중국선수들의 피지컬에 개발살났던 조용형은 일본 공격수들과 만나자 파워 넘치는 스토퍼로 변신했다.
2010 남아프리카 월드컵 본선에서 일본이 1라운드 2승 1패로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루긴 했다만, 그렇다고 한국이 일본한테 쫄 것 같지는 않다.
2010년 남아프리카 월드컵 평가전 | |||
한국 | 2 | 0 | 일본 |
2010 남아프리카 월드컵 평가전 한일전은 2:0으로 승
여전히 일본 대표팀의 체력은 그야말로 안습 수준. 비록 상대가 국대 내에서도 체력 하나만 믿고 간다는 차두리라지만 일본 수비진들은 차두리가 돌파하기 위해 몸을 부딪히자 그냥 나가 떨어져버렸다. 게다가 박지성의 선제골은 경기시작 전반 6분만에 들어갔으니 참...한국의 체력을 앞세운 압박 축구에 일본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참고로 이날 일본 국가대표 출정식이 열릴 계획이였으나 결국 연기되었다. 그리고 3년 뒤 이 상황은 한국에게 그대로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 오는데...자세한건 최강희호 참조.
여담으로 여기서 그 유명한 산책 세레모니가 나왔다.
2010년 10월 12일 한일 친선 경기 | |||
한국 | 0 | 0 | 일본 |
그런데 겨우 몇 달만인 2010년 10월 12일 한국에서 열린 한일전 친선 경기에선 일본이 한국을 압도하였다. 경기는 일단 0-0으로 겨우 비겨버리면서, 해외 언론이 혼다 케이스케를 칭찬하기까지 했다. 겨우 몇 달전과 정반대의 상황이 되면서 앞으로 일본전이 어찌될지도 모르겠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지만...겨우 친선경기 1경기 갖고 난리냐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2010년 U-17 여자 월드컵 결승전 | |||
한국 | 3 | 3 | 일본 |
PK | 5 | 4 |
2010 FIFA U-17 여자 월드컵 결승전 한국vs일본 - 3:3 무승부 후 승부차기로 한국이 우승.
2:3으로 한국이 지고 있다가, 후반 33분 이소담이 교체멤버로 들어오자마자 동점골을 터뜨리고, 무승부로 만든 후 승부차기까지 가서는 5:4로 승리하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승부차기 | ||||
순번 | 일본 주자 | 결과 | 한국 주자 | |
1 | 다나카 | 골 | 노골 | 이정은 |
2 | 와다 | 노골 | 골 | 여민지 |
3 | 나카다 아유 | 골 | 골 | 이소담 |
4 | 하마다 | 골 | 골 | 김다혜 |
5 | 나오모토 | 골 | 골 | 김아름 |
6 | 무라마츠 | 노골 | 골 | 장슬기 |
합계 | 4 | 5 |
정말로 피말리는 순간의 연속으로, 한국의 첫 번째 주자로 나온 이정은의 슛이 히라오 에리의 선방에 걸리면서 시작부터 분위기가 일본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그 것도 잠시 뿐이었다. 경기는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법. 곧바로 와다 나오코의 슛이 홈런이 되고 여민지가 슛을 성공시키며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고, 양팀 모두 다섯 번째 주자까지 다 성공한 상태에서 양팀의 운명을 가르는 순간이 왔다. 일본의 여섯 번째 주자로 나온 무라마츠 토모코가 마치 2010 남아프리카 월드컵 16강전 일본 대 파라과이의 승부차기에서 고마노 유이치의 슛이 골대를 때리고 날아가는 바람에 일본의 사상 첫 8강을 좌절시켰던 장면이 오버랩되는 듯한 실축을 저지르고 만 것. 흔들라는 골망은 안 흔들고 골대를 흔들었다. 한국의 여섯 번째 주자는 장슬기였다. 성공시키면 바로 우승을 하게 되는 상황. 그리고 장슬기의 슛은 골로 연결되었다. 한국의 첫 FIFA 주관대회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FIFA가 주최하는 경기에서 최초로 우승(여자대회 최초)한데다, 일본과 결승전에서 만나서 체력을 모두 소진하는 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5 : 4로 승리. 한국 축구계의 역사를 새로 쓴 대단한 경기다. 반면 일본은 FIFA 주관 대회에서 우승 한 번 없이 준우승만 3번째가 됨으로써 콩라인으로 등극했으나 2011 여자월드컵에서 아시아 최초 우승 겸 FIFA 주관 대회 성인대표팀 첫 우승[26]이라는 금자탑을 쌓으며 콩라인 탈출.
여담으로, 일본 국대는 이상하게 승부차기에서 약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2010년 남아프리카 월드컵에서도 앞서 말했듯이, 파라과이에게 승부차기로 무릎을 꿇은 적도 있었고, 한일전도 승부차기가 있었다. 2007년 동남아 아시안컵 3위 결정전이 그 경기였는데, 하뉴 나오다케의 슛이 이운재의 손에 막히는 바람에 한국의 3위가 확정되었다. 2015 아시안컵에서도 예외는 아니라서, 승부차기 끝에 UAE에게 졌다... 예외로, 1992년 현재 A3컵과 같은 대회인 다이너스티컵에서 한국과 2:2로 비겨 벌인 승부차기에서 4:2로 이긴 것과, 2007 동남아 4개국 아시안컵에서 호주를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4:3으로 승리한 것과 2004 중국 아시안컵에서 요르단을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4:3으로 승리한 적이 있는데 그것도 겨우 이긴 것이다. 그리고 보다시피 U-17 여자 국대에게도 이 징크스가 그대로 이어지면서 우승컵을 한국에게 내주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 2010 AFC U-19 아시안컵 8강전 한국 vs 일본 - 3:2로 한국 승
- 이건 단순한 8강전이 아니라, 2011 FIFA U-20 월드컵 출전권이 걸린 중요한 경기였다. 더구나 2010 AFC U-16 아시안컵 예선 탈락[27]으로 인해 2011 FIFA U-17 월드컵 출전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동생들 몫까지 해 줘야 할 상황이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전반에 두 골을 내주며 무너지는 듯 하다가 집념으로 이를 악물고 맹공을 퍼부어 세 골을 몰아쳤다. 그리하여 한일간의 공세가 점점 거세진 끝에 3:2 역전승으로 낙착. 이 경기에서 심판이 거의 일본 편을 들어주다시피 했기 때문에 졸지에 일본은 네티즌들로부터 '심판 매수하고도 못 이겼다'는 조롱을 받았다. 그리고 U-19 아시안컵에서 준우승만 6번 한 일본의 첫 우승은 또 2년 뒤를 기약해야 했다.
- 참고로 2년전에도 8강전이 한일전이었고 그 때 한국의 3:0 승리로 한국은 2009 FIFA U-20 월드컵에 진출하였고 일본은 탈락했다. 이번에도 역시 한국이 승리하며 한국은 2011년 FIFA U-20 월드컵 진출을 확정지으며 5대회 연속 U-20 월드컵 본선 진출하고 일본은 복수의 리벤지를 꿈꿨지만 아 X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 2대회 연속 U-20 월드컵 예선 ☆★☆광탈☆★☆로 2년 전의 악몽을 재현하였다.
- 2010년 10월 12일 친선경기
- 숏패스를 통한 점유율 축구를 들고나온 일본이 점유율 면에서는 압도적이었지만 이쪽도 딱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나마 한국에서 이래저래 과소평가 당하던 혼다 케이스케가 맹활약.
- 후반에는 일본이 올린 크로스가 최효진의 팔에 맞으면서 핸들링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 한일전답게 친선경기라는 이름이 무색한 분위기였다(…).[28] 경기시작 전부터 관중석은 폭죽쇼로 달아올랐고, 일본 선수들이 공을 잡을 때마다 야유가 이어졌으며, 이순신이나 안중근 등이 그려진 걸개가 걸리기도 했다.
8.1.1.2 2011년
2011년 1월 25일 아시안컵 4강전 | |||
한국 | 2 | 2 | 일본 |
PK | 0 | 3 |
2011 AFC 아시안컵 1월 25일 4강전 한국 vs 일본 2:2(전후연장) '승부차기 3:0패(전적상으로는 무승부)
이 경기는 Top 3에 걸린 다음 대회 자동 출전권이 걸린 경기였다. 만일 이기면 결승에서 져도 그냥 자동 출전이지만, 져서 3위 결정전으로 밀려나면 거기서 이겨야 다음 대회 자동 출전이고 지면 국물도 없는 상황. 일본은 4년 전의 복수도 할 겸 자동 출전권을 못 받는 바람에 남아공 월드컵 준비 기간 중 아시안컵 예선을 치러야 했던 기억이 있었고, 한국도 이를 알고 있기에 동기부여는 확실히 되었다.
전반 23분 박지성이 콘도 야스유키에게 패널티 킥 찬스를 얻어 기성용이 골을 넣었다. 후에 마에다 료이치에게 실점을 하고 승부는 연장으로 흘러갔다. 연장 전반 일본에게 패널티 킥이 주어지고, 정성룡이 혼다 케이스케의 패널티 킥을 막았지만 달려들어온 호소가이 하지메에게 실점했다. 연장 종료 직전까지 1:2로 밀려가던 한국은 경기 종료 6초 전 황재원이 극적으로 동점골을 넣으며 환호에 휩싸였고, 경기는 승부차기로 흘러갔다. 승부차기에서 일본은 4골 중 3골을 성공(한 골은 홈런볼)한 반면 한국은 일본 골키퍼에게 2골을 막히고 한 골은 골대를 벗어나면서 한점도 얻지 못해 3:0 패배. 직전의 환희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어 버리는 순간이었다.[29]
승부차기에서 한국은 비교적 어린 선수들을 먼저 내보냈는데, 이에 대해서 말이 많다. 긴장감에 대한 우려 때문에 '경험자'를 내놓는 것이 승부차기의 일반적인 양상이며, 박지성을 비롯해 경력이 제법 있는 선수를 뒤로 미룬 것[30]은 이해하기 힘든 처사라는 것. 한일전이니 만큼 엄청난 중압감이 더해졌을 것임을 생각하면...
뭐가 됐든 3:0은 너무 심했다는 의견이 많다. 때문에 DC 등지에서 삼연뻥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결과적으로 승부는 연장전 포함 2:2, 승부차기 3:0으로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덕분에 호전적인 집단 디씨에서는 2 + 2 + 3 + 0 = 7, 그리고 정성룡의 연봉이 7억이라는 이유로 세븐 갤러리를 신나게 털었다.
참고로, 이 경기는 4강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일본과 호주간의 결승전보다 시청률이 더 높았다. 더군다나 한일간의 4강전은 화요일 밤, 결승전은 토요일 밤이었다. 일본의 한일전 관심도를 보여주는 사례.
2011년 8월 10일 친선경기 | |||
한국 | 0 | 3 | 일본 |
300px
2011년 8월 10일 친선경기 3:0 완패. 축빠들 사이에선 삿포로 참사라고 불린다. 이렇게 졌다. 왼쪽 수비수 두 명이 부상으로 실려나갔다.
자세한 내용은 삿포로 참사 참조.
8.1.1.3 2012년
- 2012년 AFC U-19/U-16 선수권 지역예선 (2011년)
- U-19는 지난대회 일본이 8강에서 한국에게 지고 광탈하는 바람에 시드가 내려가서 지역예선부터 1/3 확률로 한국과 같은 조에 묶일 가능성이 생겼고, 결국 한 조가 됐다. U-16은 반대로 일본이 톱시드를 받았지만 지난대회 지역예선에서 광탈한 한국의 시드가 하위권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역시 한국과 같은 조에 묶였다.
- 2011년 9월 14일 U-16 예선 4:2 승.
-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먼저 치러진 U-16 경기. 경기 시작 5분만에 오카무라 고로에게 실점을 허용해 불안한 스타트를 끊었지만 전반 20분 황희찬의 동점골과 전반 43분 이건의 역전골이 터지며 2:1 승리 상태로 전반 종료. 후반 29분 스기모토 타로에게 동점골을 또 허용했지만 7분만에 유원종이 골을 넣으며 달아났다. 그리고 종료 직전 역전골의 주인공 이건이 쐐기골을 터뜨리며 4:2 승리로 경기 종료되었다. 이로써 베트남전 무승부로 시작부터 왠지 불안했던 한국 U-16 대표팀은 난적 일본을 잡고 본선 진출의 가능성을 높였다. 그리고 다음 경에서 대만을 8:0으로 잡고 홈팀 라오스를 상대로 0:0 무재배를 했지만 캄보디아를 10:0으로 압살하며 3승 2무로 조 2위. 일본을 이겼던 덕분에 당당히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31]
- 2011년 11월 10일 U-19 예선 1:0 승.
- 태국 촌부리에서 치렀다. 참고로 이쪽은 마지막 날에 치르는 경기다. 그런데 하필이면 첫날 태국한테 0:1로 깨지고 시작했기 때문에 본선행을 위해서라도 일본은 꼭 잡아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마지막 경기에서 태국은 3승 1무로 일찌감치 본선 확정에 3전 전패 상태의 대만과 괌은 서로의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광탈인 상황이고 한일양국이 남았는데 G조에 인도네시아가 2승 1무 1패로 버티고 있어서 2승 1무인 일본은 괌이 골셔틀 역할을 해 준 덕에 29골차 이상으로 지지만 않으면 무조건 본선이었던 반면 2승 1패인 한국은 지면 좆망인 상태에 몰렸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한국이 불리한 상황. 전반은 무득점으로 끝나다가 후반 35분 문창진의 결승골을 잘 지켜서 1:0 승리, 한국이 조 2위로 치고 올라가 본선 직행하고 일본도 조 3위 추가 진출권을 받아서 한일 양국이 본선에 동반 진출했다.
- 참고로, 예선 탈락을 걱정하는 처지였던 한국이 이듬해 치러진 U-19 본선에서 우승했다. 일본은 8강에서 이라크한테 지고 탈ㅋ락ㅋ
-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축구 동메달 결정전 카디프 대첩 2 : 0 승
- 한일전 축구 역사상 동메달(3위 결정전)을 놓고 겨루는, 여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보기 힘든 사상 최고의, 그리고 최악의 데스매치. ALL or NOTHING.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 양국은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4강에 진출했고 각각 멕시코와 브라질에게 패배함으로써 한일전을 치루게 되었다. 단순한 동메달 결정전이 아니었는데, 한국 축구 입장에선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따느냐, 일본 축구 입장에선 44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느냐가 걸린 시합이었다. 이러니 '최초의 메달 매치 한일전'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병역 면제까지 걸려 있어서, 버프 of 버프, 아니 없으면 짜내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즉,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32]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 결국, 한국이 박주영의 선제골, 구자철의 추가골로 일본을 2:0 (김보경의 골포스트 맞는 슈팅이 들어갔다면 3:0으로 떡실신 시킬수 있었을텐데...)으로 제압하고 동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일본은 조별예선에서 스페인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면서 조별리그, 16강 4전 전승의 파죽지세로 4강까지 진출했지만 결국 4강, 동메달 결정전을 모두 패하면서 목메달을 가져갔다. 자세한 경기 내용은 카디프 대첩 항목 참조.
- 2012 U-20 여자 월드컵 8강전
- 2012년 8월 30일 오후 7시 30분부터 도쿄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지는 한일전. 원래대로라면 여자 축구 강국인 일본의 우세가 예상되기에 일본 측이 열을 낼 이유가 없어 보였지만, 바로 위에 적힌 2012 런던 올림픽에서의 한일전에서 맛 본 비참한 패배가 자극제가 되었고,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등으로 크게 악화된 한일관계로 인해 열기가 폭발했다. 일본 언론은 런던 올림픽의 패배를 거론하며 "복수"를 외치고 있고, 일본인들은 "욱일기를 들고 응원하러 가자"며 기세를 올렸다.
- 반면 한국 대표팀은 2010년에 개최된 FIFA U-17 여자 월드컵에서 일본을 물리치고 우승한 바로 그 멤버를 주축으로 "타도 일본"을 외쳤다.
- 하지만 한국은 전반 8분 선제골을 허용하고 15분에 동점골을 만들어냈으나, 전반 19분, 37분에 골을 먹고 결국 3-1로 패했다.
- 경기장 곳곳에 욱일기가 잔뜩 걸려있었는데, 일본 서포터측 트위터를 보면 운영 스탭이 욱일기를 내거는 것에 대해 경고를 하고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실랑이가 벌어졌던 모양이다. 계속해서 걸어놓고 있으면 퇴장시키겠다는 등의 경고를 했으나, 결국 관중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강력한 처벌을 내리지는 못한 모양.
- 한편, 일본팀은 숙적 한국을 3:1로 꺾고 4강에 진출하자 축제분위기였다.
- 2012년 AFC U-16 선수권 조별 리그
- 이란 테레란에서 2012년 9월 25일 오후 1시(현지시각) 벌어진 경기. 한국은 그 전 경기에서 황희찬(포항제철공고)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북한을 3:0으로 압살하고 기분 좋은 출발을 한 가운데 일본 역시 사우디아라비아를 2:0으로 꺾은 터라 이 한일전에서 승부가 갈리면 경우에 따라 이긴 쪽이 일찌감치 조 1위로 본선을 확정지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드디어 시작된 운명의 한일전이 시작되었다.
- 전반 12분 황희찬의 선제골로 분위기를 잡은 한국은 10분만에 오가와에게 동점골을 얻어맞았으나, 그로부터 20분이 채 못 지난 전반 41분 최주용(매탄고)의 골로 다시 달아났다. 얼마 후 전반이 종료되고, 후반전 내내 계속 2:1 상태를 유지하다가 후반 43분쯤에 승부에 쐑기를 박는 고민혁(울산현대고)의 추가골이 터지며 한국의 3:1 승리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그리고, 북한 대 사우디의 경기에서 북한이 사우디를 2:1로 격파한 덕분에 한국의 여유로운 8강행이 확정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남아있는 사우디와의 경기를 심적 부담 없이 치르게 되면서, 8강행을 위해 북한과 단두대 매치를 해야 하는 일본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 허나 그 후 한국과 일본은 각각 사우디와 북한을 이기고 둘다 8강에 올라갔는데, 8강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을 만난 한국은 승부차기에서 패배하며 U-17 월드컵 진출 자체가 무산됐지만(...) 일본은 결승전까지 가는데 성공하고 [33], 그 다음해에 열린 U-17 월드컵에서 16강까지 가는데도 성공한다.
8.1.1.4 2013년
- 2013년 동아시안컵 대회
- 7월 28일에 한국에서 열린 경기이자 2013년 들어서 국대팀으로 처음 벌어진 한일전이었기에 관심이 컸다. 무엇보다 0:3 대패 설욕이 가능한가 했는데...호주와 중국을 상대로 무득점에 아쉬운 모습을 보인 한국 국대팀은 일본의 카키타니 요이치로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으나 윤일록이 동점골을 기록하며 추적하는가 했지만, 결국 90분 막판에 또 다시 카키타니 요이치로에게 또 골을 허용하면서 1:2로 패했다. 결국 2무 1패로 한국은 3위를 기록하고 일본은 2승 1무로 우승을 했다. 13년만에 국대축구경기가 열린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경기였는데 삿포로 참사에 이어 2연패 및 한일전 4경기 연속 무승(2무 2패)을 기록하게 되었다.[34] 전날, 여자 축구가 일본 축구를 이기면서 불타오르던 그 분위기에 제대로 초를 쳤다.
런던 올림픽에 이어 이번에도 경기 외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였다. 한국 서포터인 붉은 악마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적힌 대형걸개를 걸어버린 것. 이것도 박종우의 독도 세레머니와 마찬가지로 FIFA 규정에 위반될 소지가 있는 행동인지라 주최측에서 철거를 지시했으나, 이를 이유로 붉은 악마측에서는 응원을 보이콧 해버렸다. 한국의 홈그라운드 경기였음에도 일본측의 응원소리만이 들렸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 또한 일본 서포터측에서도 욱일기 응원을 펼치려다가 주최측의 제지로 성사되지 않았다는 모양이다.
8.1.1.5 2014년
- 2014년 AFC U-16 챔피언십 8강전 2-0 승
- 이승우: "저희는 뭐 저희 플레이에 맞게 저희가 준비한 거를 하면, 일본 정도는 뭐 가볍게 이길 수 있다고 보고 있어요"
- 이승우 항목 참조. 한국이 초특급 유망주인 바르셀로나 유스 선수 이승우의 두 골
원맨쇼에 힘입어 일본에 2-0으로 승리, U-17 월드컵행 티켓을 따내고 일본을 광탈 시켰다. 이날 하프라인부터 드리블로 골키퍼까지 재쳐버린뒤 넣은 이승우의 골은 단연 압권.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축구 토너먼트 8강전 1-0 승
- 한국이 U-23 대표+와일드카드로 나온 반면 일본은 전원 U-21 대표로 나왔고, 홈 이점도 있는 한국은 90분 내내 일본을 몰아붙였다. 허나 마무리 과정이 심각하게 안습했던 한국은 후반 막판까지도 일본의 골문을 못 열고 있었다... 허나 후반 40분 일본의 페널티박스 안에서의 공중볼 경합에서 일본 수비수가 이종호을 뒤에서 내리 찍어준 덕분에 페널티킥을 얻고, 장현수가 킥을 성공, 위의 U-16팀에 이어 일본을 또 한번 광탈시켰다. 한국의 이광종호는 그 이후로도 승승장구해서 결승에서 북한을 꺾고 금메달을 따는데 성공한다.
- 2014년 AFC U-19 챔피언십 조별예선 1-2 패
- 서명원, 황희찬, 김신, 김건희, 백승호 등 공격라인만큼은 역대 최고라고 평가받았던 한국은 조별예선 첫경기에서 베트남을 6-0으로 이겼지만 두번째 경기에서 중국을 상대로 졸전 끝에 0-0으로 비기고, 1승 1무에 조 1위 상태로 세번째 경기인 일본전을 맞게 됐다. 첫경기에서 중국에게 2-1로 패한 일본은 두번째 게임이였던 베트남전에서 3-1로 승리했지만 여전히 조 3위,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무승부만 해도 무조건 U-20 월드컵의 출전권이 걸린 8강전에 올라가는 상황이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무승부를 노린듯한마냥 소극적으로 나온 한국은 시작하자마자 당연하게 거센 공격으로 나온 일본에 경기 내내 밀리고, 일본의 에이스 포워드인 미나미노에게 두골을 헌납하며 2-1로 패배한다. 중국은 마지막게임인 베트남전에서 종료 직전 동점골을 넣고 1-1로 무승부를 기록해서 조 2위를 사수, 결국 이번엔 예전 대회들과는 반대로 일본이 한국을 광탈시킨 셈이 되었다... 한국의 실망스러운 2014년 월드컵 대참사 후 위의 U-17세대와 U-23세대가 호성적을 내고 성인대표팀도 슈틸리케호로 재편성 후 좋은 내용을 보여주면서 분위기가 좋아지던 한국 축구계에 단번에 찬물을 끼얹은 셈. 담당 감독인 김상호는 당연하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중이고[35] 팬들은 위에 나온 수많은 유망주들이 세계무대를 경험하지 못하게 됐다는 점에서 매우 아쉬워하고 있는 중이다. 반면 일본은 그동안 이 연령대에서 그들을 끝없이 괴롭혀왔던 한국에게 제대로 복수를 하고 진짜 오랜만에 U-20 월드컵에 진출하는게 매우 유력하게 된 셈.
- 하지만 그래도 일본이 U-20 월드컵으로 가는일은 없었다. 한국과의 사투에 모든 힘을 쏟아낸 일본은 이어지는 8강전에서 북한에게 승부차기로 거짓말처럼 참패를 당했다. 역시 일본은 이 레벨에서는 한민족 팀들과 뭔가 마가 낀듯.
8.1.1.6 2015년
- 2015년 동아시아컵 2차전 1-1 무승부
- 2015년 8월 5일 슈틸리케호의 첫번째 한일전. 장현수의 PK 성공으로 한점 앞서갔으나 야마구치 호타루의 중거리 슛으로 무승부가 되었다.
두 팀 모두 유럽파 등 최정예 맴버는 제외하고 동아시아 리그 출신들(한국), J리그 출신들(일본)로만 구성하였기에 전반적으로 답답한 승부가 펼쳐졌는데, 주도권을 한국이 잡긴 했지만 FIFA랭킹에서 한국보다 앞서는 일본 역시 만만찮은 상대였다. 결국 전반에 한골씩 주고받은 뒤에는 한국이 장악하고 일본이 간혹 역습을 펼치는 모양새가 이어지다가 무승부로 마무리가 됐다.
한편 이 경기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주전을 빼고 1.5진급으로 경기를 벌이면서 어느 정도는 실험 목적도 있음을 드러냈다. 재미있는 점은 할릴호지치 감독도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8.1.1.7 2016년
수비로 일낸다
그야말로 삿포로 참사를 뛰어넘는 대참사
경기 시작 전, 일본은 우승 자판(JAPAN)기라는 개드립을 대한축구협회가 공식 응원구호(...)로 지정할 정도로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짙었다. 사실 일본은 지난 경기들을 무패 돌파했고 최소 실점까지 달성하여 결승에 오르기는 했지만 대체로 경기력이 좋지 않았고, 운에 상당히 의존한 감이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실력차는 극명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듯 우리나라 대표팀은 전반전부터 공격과 수비가 잘 조율된, 그야말로 이상적인 축구를 하며 일본을 압도했고, 전반 20분, 권창훈의 선제골과 후반 2분, 진성욱의 멋진 터닝슛으로 2:0으로 점수를 벌리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두가 대한민국의 낙승을 점쳤고 우리나라 중계 및 해설진들 역시 일본 축구를 조롱하는 것을 넘어 아예 걱정까지 할 정도로 설레발을 먹었다.
이후 후반 초반까지 파상공세를 받아내던 일본은 후반 15분부터 역습에 특화된 선수들을 잇따라 투입했는데 대회 내내 선보였었던 이 매크로 용병술은 또다시 적중하여 결국 21분 경에 교체 투입된 일본 선수가 만회골에 성공했으며, 만회골을 넣은지 1분도 안돼 우측에서 날아온 크로스 + 헤더로 눈 깜짝할 사이에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버렸다. 이 때 잠시 한 눈 팔거나 다른 채널로 돌렸던 시청자들은 점수판을 보고 방송사고로 오인하거나 축구에도 2점슛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카더라.
그래도 다들 설마 지겠어? 란 생각을 했었으나... 후반 35분경, 만회골을 넣었던 선수에게 다시 역습 당해 역전골까지 쳐먹히면서 한국 대표팀은 단 14분 동안 3골을 연달아 실점해버리고 만다. 이런 만화에나 나올 법한 대역전극에 충격 받은 대표팀은 어떻게든 다시 따라가려는 움직임을 보여주려는 모습은 있었으나, 선수들 힘이 다 빠져 크게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대로 패배했다. 일본 선수들 이름으로 말장난을 하며 무사태평하던 중계진들 역시 크게 당황해 말을 더듬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패배의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의 전술을 제대로 분석하지도, 대처하지도 못한 점이었다. 일본은 대회 기간 동안 항상 후반을 노리는 역습 위주의 축구를 구사했고 실제로 절반이 넘는 골을 후반 혹은 연장전에서 기록하며 꾸역꾸역 올라왔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대표팀은 2골을 먼저 득점했음에도 불구, 수비진 및 3선 라인을 지나치게 끌어올리고 신나게 공격하며 수비를 등한시하는 등 과욕적으로 경기를 운영했고, 후반에 일본이 항상 하던대로 역습에 특화된 선수들을 투입하는 것을 보고도 전술을 수정하지 않다가 비슷한 패턴으로 3연속 실점하게 된 것이다.
세계 최초 올림픽 8회 진출이란 대 기록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결승전에서! 그것도 일본에게! 잘 하다가! 3골을 내리 내어주며 패배한 점에선 비판을 받을만 하며, 설레발은 필패라는 공식은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경기가 되었다.
여러 커뮤니티의 네티즌들은 축협 및 감독의 경기전 언플과 어이없는 참사급 패배에 분통해 하고 있으며, 도하 쇼크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욕댓글수는 미친듯이 증가하고 있다. 기사
한 축구팬은 패배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아이폰과 앉던 의자를 부수기도 했다(...).#
여담으로 네이버 지식인에 축구 경기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한 용자가 나타났다! 보러 가기
8.1.2 풋살
풋살 항목에도 나오듯이 일본은 이란과 더불어 아시아 최강급 풋살 강호이다. 그러나 한국도 10여년전에는 아시아 풋살 챔피언십 준우승도 하고 아시아 강호급이긴 했지만 이제는 약체로 추락했다.
풋살 챔피언십에서 한일전 대회가 이뤄진 건 2001년 이란에서 열린 2회 대회 3,4위전. 한국은 2-1로 일본을 이기며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2002년 대회부터 한국이 4위, 일본은 2위를 거둔 뒤로 성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2004년 8강을 마지막으로 토너먼트도 넘지못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2002년부터 4회 연속 준우승을 거두더니만 2006년 대회는 그동안 이란이 모조리 우승을 독식하던 이 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뒀고 2012년 대회도 우승했다. 이와 반대로 한국은 2008년부터 조예선 꼴지로 계속 탈락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12년만에 이 대회에서 한일전이 치뤄졌다. 2014년 5월 1일 베트남에서 열린 AFC 제13회 아시아 풋살 챔피언십에서 한국 대표팀은 일본에게 무려 0:12로 대참패를 거두면서 이 대회 참가 2번째 최다 실점패(최다 실점은 2012년 이란에게 조예선에서 1-14로 패했다) 를 당했다. 뭐 경기전부터 일본은 아시아 풋살에서 상위랭킹인 반면, 한국은 중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기에 대패가 예상되긴 했다. 참고로 한국 풋살 대표팀은 같은 조의 우즈베키스탄에게 0-3,키르기스스탄에게 1-4도 패하면서 조 꼴지로 일찌감치 탈락했다.
그런데 일본은 이 대회 결승까지 올라 아시아 최강으로 알아주던 이란과 비겨 승부차기 끝에 우승하면서 2연패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니 한국이 저렇게 크게 질만했다는 걸 보여준 셈. 투자나 관심도에서 한국과 다르게 풋살에 열정을 기울여 갈수록 발전되어가며 FIFA 풋살 월드컵 본선도 여러번 진출해 16강 토너먼트도 오른 일본과 달리 한국 풋살 대표팀의 존재와 관심도가 적고 모르는 이가 많은 현실이다. 이전 문서에선 한국이 풋살 자체를 거의 모른다 라고 했는데 한국도 그정도는 아니다. 단지 풋살을 하면서 그냥 축구인데 작은 골대, 작은 면적 공간에서 적은 인원으로 하는 미니 축구 게임으로 알고 넘어가는 것일 뿐 하긴 축구나 풋살이나 스케일이 조금 더 커지고 작아진 것을 제외하면 큰 틀은 거의 흡사한 종목이다 보니 따로 구별을 잘 두지 않아 그런 면도 있다. 더불어 한국에서는 어차피 축구로 일본에 앞서는 전적이니 풋살까진 굳이 관심이 따로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라 볼 수 있을 듯 하다. 물론 역으로 말한다면 한국이 풋살에 전체적인 투자나 인기도가 올라간다면 축구 전적에서 일본을 앞서는 만큼 금세 따라잡을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고 할 수는 있겠다.
8.1.3 클럽 축구
아무래도 클럽축구 한일전은 국대경기가 아니라서 비중이 적어보인다. 게다가 외국 선수가 같이 활약하며 일본 팀에 한국선수가 얼마든지 뛰기에 한국선수 골로 한국 팀이 지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36] 그래서 한일전으로 많이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일단은 한국과 일본 클럽축구 자존심도 걸려있고 2006년부터 아시안 챔피언스리그를 한국과 일본 클럽이 번갈아 우승(2006년 전북, 2007~8년 일본, 2009~10년 포항과 성남 우승)하면서 신경을 쓰여서인지 언론에서도 신경(한국보단 되려 일본이 더 열폭하곤 했다. 2007~8년 우라와와 감바가 피파 클럽월드컵에서 3위를 거두자 2006년 대회에서 겨우 5위(?)를 한 전북보다 일본 클럽이 우위라고 자뻑하는 글을 신문에 싣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포항이 똑같이 3위를 거두자 입다물었다.)을 쓴다.
2010년에는 한국 클럽 4팀 전원이 16강에 오른 점을 두고 일본에서도 더 신경을 쓰고 반대로 2011년에는 일본 클럽 4팀 전원이 16강에 오르자 이번이야말로 일본의 우승 탈환이라는 투로 크게 보도하기도 했다.(그러나 이번에도 8강까지 전원 탈락) 반대로 한국에선 아챔리그 중계도 하지않으며 좀 방송이나 언론이 무시하는 대조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2011년 9월 27일 전북 현대 모터스가 이동국의 4골에 힘입어 6:1로 세레소 오사카를 크게 이길 당시 한 개념없는 전북 서포터의 일본어 걸개가 문제를 일으켰는데 일본 대지진을 축하한다는 글을 일본어로 써붙여넣었다. 세레소 측 항의로 얼른 내리게 했지만, 결국 일본 축구협회까지 항의하였고 결국 장본인이 사과글까지 올렸지만 일본의 정치적 여러가지로 사죄하지 않은 점을 들먹이며 이 사람을 옹호하는 의견도 보인다. 하여튼...
2011년 한일전 클럽축구 대결에선 한국이 압도적인 우세 및 완승을 거둔 셈이다. 참고로 전북이 거둔 6:1 일본 클럽 대승은 2000년대 아시안 클럽컵에선 최고 한일전 골득점차.(다른 대회에선 한중일 챔피언 대결이었던 A3컵 2006년 대회에서 울산 현대 호랑이가 J리그 우승팀으로 올라온 감바 오사카를 이천수의 해트트릭으로 6:0으로 이긴 게 최고 골득점차)
2012년에는 전번도 준우승팀인 전북 현대 모터스가 가시와 레이솔에게 1:5, 0:2로 대패하면서 탈락하고 한국은 2팀이 탈락하고 일본은 3팀이 16강에 오르면서 우쭐거리나 했더니 울산 현대가 일본 클럽과 2승 1무를 거두고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까지 거두면서 2채널을 비롯한 일본 축구 사이트에선 또 일본이 클럽축구에서 한국에게 밀렸다고 하는 자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승횟수에서도 차이가 심하게 나는데 K리그는 2012년까지 우승 10회, 준우승 5회인데 반해 일본은 우승 5회, 준우승 3회다. 심지어 K리그는 80년대에 경비와 일정문제로 아시아 대회에 7년간 불참하는 패기를 보여주기까지 했고, 결승이 한일전일 경우 진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근데 결승전이 한일전이 경우가 한 번 밖에 없었다.
의외로 클럽전적은 비슷하다. J리그 출범이후 공식전적은 2013년 현재 105전 42승 25무 38패 164득점 159실점이며 ACL만 국한했을때, 28승 16무 27패 109득점 111실점으로 거의 막상막하다.
8.2 야구
한일전/야구 항목 참조.
8.3 기타 종목
- 축구와 야구 한일전과 대등한 위치로 주목받는 한일전이다.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피겨스케이터들이면서, 둘 다 자국의 국민 히로인급 위치에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맞대결은 개인적인 라이벌 구도를 넘어, 한일전 그 자체로 취급된다. 해외 해설가들도 이를 잘 알고 있어, 한일 양국의 역사적 상황을 거론하며 이에 대해 언급한다. 주요 대회 직전만 되면 한국과 일본에서는 두 선수의 전력, 기량, 경기 프로그램을 비교 분석하는 기사와 방송들이 쏟아지는 등, 그야말로 범국가적인 이벤트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둘 다 1990년 9월 출생으로 김연아가 딱 20일 먼저 태어났다. 두 사람이 주니어로 데뷔한 2004-2005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서 처음 맞붙었던 것을 시작으로, 줄곧 국제 대회에서 경쟁해왔다. 상대 전적에서는 2008-2009시즌부터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에 우위를 점하고 있다.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남자 수구 3, 4위전
- 카타르와 홍콩을 크게 이겼지만 중국과 일본에게 예선에서 크게 패배하면서 빛이 바랬던 한국남자 수구 대표팀은 예선에서 4:14로 완패당한 일본과 3, 4위전에서 또 만났다. 설욕을 노리고자 열심히 나섰지만 이 경기도 5:9로 패하면서 20년만에 아시안 게임 수구 메달(1990년 아시안 게임 동메달 획득)은 한일전 패배로 실패했다.
- 2012 런던 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 준결승전이었고, 역시나 한국의 압승. 결승전에서 만난 중국이 더 어려운 상대였다(이건 1점 차로 승리).
-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양궁 개인전 결승전
- 2012 런던 올림픽 여자배구 3, 4위전
- 한일 배구 역사상 메달(3위 결정전)을 놓고 겨루는 여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보기 힘든 최고 최악의 데스매치. 남자축구와 똑같은 대진표가 나온 건 우연이다. 세계랭킹 1위 미국에게 패한 한국과, 세계랭킹 2위 브라질에게 패배한 일본이 대결하게 되었다.
- 사실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이런 매치업이 나올 줄은 예상조차 못했다. 일본은 2010년 세계선수권 대회 3위 이후 다시 세계랭킹 Top 5에 올라('10 세계선수권 대회 이후 최고 성적은 세계랭킹 3위) 난적 미국, 브라질, 러시아, 이탈리아, 중국을 잘 피한다면 내심 금메달을 바라는 입장이었지만, 한국은 2004 아테네 올림픽 이후 국제전에서 그리 좋지 못한 성적을 거뒀고, 2012년 7월 세계랭킹에서도 15위를 기록, 8강 토너먼트 진출은 언감생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올림픽 최종예선전에서 일본을 정말 오래간만에 꺾었고, 강호들[37]을 꺾은 자신감까지 더해진 상황. 그러나 실력이 비슷한 편으로 평가받고 있었던 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의 한일 매치와 달리 배구는 일본 쪽 성적이 더 좋다는 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 경기에서 한국이 이길 거라고 기대하는 한국인들은 많지 않았다.
- 한국은 나름 분투했지만 세트 스코어 0:3으로 완패하였다. 김연경을 제외하면 한국의 공격은 일본의 수비를 뚫기 역부족이었고, 수비력에서 차이가 나면서 끝끝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여자배구대표팀이 어째서 '김연경과 아이들'이라고 불리는지 깨닫게 해준 경기. 그러나 예상치 못한 올림픽 4강 진출에 배구협회의 병크가 전해지면서[38][39] 비난보다는 많은 격려를 보내고 있다.
- 한국 국가대표팀인 CJ 블레이즈와 일본 국가 대표팀인 램페이지의 맞대결. 킬 스코어 7:1로 일본팀이 압도적으로 쳐발리며 CJ 블레이즈 압승. 그나마 일본이 얻은 1킬은 혼자 떨어져있던 플레임을 노리고 다섯 명이 모여서 기습을 하고 겨우 얻었다. 그리고 바로 항복.
- WCG 이후에도 NLB에 LJL 1위 팀 rascal jakal이 8강 시드를 받아서 출전한 적이 있다. 물론 준프로급도 안되는 아마팀을 상대로 완패를 당하는 결과. 그 이후에도 detonation같은 팀이 나이스게임TV 주최 대회에 나온적이 있지만 세트승조차 딴 기록이 없다.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컬링 여자 1차전
-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사상 처음으로 컬링 종목에 참가하게 됐다. 컬링이 한국이나 일본이나 그다지 인기있는 종목은 아니지만, 컬링 종목의 첫 경기 상대가 하필이면 일본이었고 이 경기가 하는 시간은 한국 시간으로 오후 2시라 한국인들이 생방송으로 보기 쉬운 편이었으므로 많은 관심이 쏠렸다. 마침 이 시간대에 한국 선수가 참가하는 다른 경기가 없었던 탓도 있다. 얼마나 관심이 쏠렸는지 경기 당시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 10위권에 '컬링', '컬링 규칙', '컬링 생중계' 등의 검색어가 오르락내리락했고,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컬링'과 '컬링 규칙'이 인기 검색어 10위권에 있었을 정도.
- 초반에는 일본에 뒤지다가 6엔드에서 7:5로 역전승을 하면서 주도권을 잡고, 리드를 마지막 10엔드까지 유지하면서 긴장 끝에 12:7로 승리했다.
-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4강전
- 2차 리그에서 중국을 이기는 등 나름 승승장구하고 있던 일본 농구대표팀은 4강전에서 숙적이자 홈팀인 한국을 만나게 된다. 일본이 좋은 스타트에 힘입어 2쿼터 중반까지만 해도 리드하고 있었으나 그 후 한국이 리듬을 찾기 시작했고, 그 후로 쭉 리드하기 시작한다. 일본이 4쿼터 막판에 6점차까지 따라오긴 했으나 한국이 결국 71-63으로 승, 결승에 진출했고 결승에서 이란을 꺾으며 부산 아시안게임 후 12년만에 남자농구에서 금메달을 따는데 성공한다. 참고로 일본도 3/4위 전에서 카자흐스탄를 꺾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 아이스하키 2016 IIHF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디비전 1 그룹A 3차전
- 1982년 스페인 하카에서 열린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C풀 에서 0:25로 진이후 일본에게 연패를 했었지만[40]
이번에는 일본을 이길수있는지 의문이였으나 34년만에 처음으로 일본을 이겼다.
- 1피리어드 마이클 스위프트(하이원)[41]의 골과 김기성 , 신상훈(둘다 안양한라 소속)의 골로 일본을 3:0으로 이기면서 34년만에 처음으로 이겼다.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대한민국/배구 A조 예선
- 김연경 선수의 활약이 컸다. 19:25로 일본에게 1세트를 넘겨주며 불안하게 시작하였다. 일본은 주 공격수인 사오리 선수의 오픈 공격으로 득점을 올렸다. 이어 다른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면서 한국 수비진 가운데를 뚫으며 1세트는 일본이 이겼다. 그러나 2세트부터 청신호가 켜졌다. 7:7로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한국은 김연경과 양효진의 공격이 잇달아 성공하면서 승기를 잡았다. 김연경 선수의 후위 공격과 김희진 선수의 퀵 오픈 공격이 터지면서 일본의 수비벽을 무력화시켰다. 나가오카 선수의 서브 실수와 수비진의 더블 콘택트 등 실수를 범하면서 일본 측은 무너졌다. 한국이 2세트를 25:15로 따냈다. 3세트에서는 김연경과 이재영의 공격이 터졌다. 김연경은 직선 공격과 자신의 장점인 대각공격을 잇따라 선보이며 일본 수비진을 흔들어놓았다. 이재영은 15-14 상황에서 두 차례 연속으로 오픈 공격을 성공하며 점수 차를 3점으로 벌였다. 3세트에서 김연경은 직선 공격과 자신의 장점인 대각공격을 잇따라 선보이며 한번 더 일본 수비진을 흔들어놓았다. 이재영은 15:14로 일본이 앞서는 상황에서 두 차례 연속으로 오픈 공격을 성공하며 점수 차를 3점으로 벌였다. 마지막 4세트에서는 양효진 선수가 나가오카 선수의 오픈 공격을 연속으로 블로킹하며 승리에 한 발짝 다가섰다. 4세트에서까지 한국은 일본에 역전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4세트도 25:21로 이겨 세트 스코어 3:1로 한국의 승리로 마무리지었다.
9 가상매체에서의 한일전
한일전이 현실에서도 많은 관심을 불러들이는 라이벌절인 만큼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등 에서도 한일전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가대표 차원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 스포츠 만화나 애니메이션인 경우에는 거의 필수요소급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스토리를 다루는 작가가 한국인이냐 아님 일본인인가에 따라서 당연히 내용과 결과가 보통 한쪽으로 치우치는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축구가 주제인 일본측의 만화나 애니의 경우 축구에서 꽤 오랜 시간동안 한국에 열세를 보여서 그런지 결과만큼은 무승부로 마무리 짓는 모습도 꽤 자주 볼수 있다. 단, 바둑이 주 소재인 히카루의 바둑에서는 한국이 최종보스이며 한국이 이긴다.
9.1 한국의 만화/애니메이션
한국의 승률이 엄청나게 높다. 단 첫 판은 지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9.1.1 축구 만화/애니메이션
- 슈팅
- 한국 U-19 vs 일본 U-19 AFC U-19 챔피언십 결승전 - 2-1 한국 승: 일본에서 열린 AFC U-19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한국이 전반전에 이한얼의 프리킥 골로 앞서나가다 일본의 에이스 스트라이커인 마사요시에게 동점골을 먹고 밀리는 와중 주인공인 나동태의 결승 헤딩골에 힘입어 한국이 2-1로 승리, AFC U-19 대회의 우승을 차지한다.
- 한국 U-20 vs 일본 U-20 FIFA U-20 월드컵 4강전 - 3-3 무승부 후 PSO 5-4 한국 승: AFC U-19 결승 후 청소년 월드컵 본선 4강에서 다시 만난 이 두 팀은 나동태의 선제 헤딩골을 시작으로 게임 내내 엎치락 뒤치락하며 호각의 모습을 보였다가[42] 후반 21분 경에 천인성이 헤딩으로 골을 넣으며 한국이 3-2로 앞서나간다. 하지만 종료 직전 마사요시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먹으며 승부는 연장까지 가고, 연장에서도 승부가 가려지지 않자 승부차기까지 가게 된다. 승부차기에서 양측이 두 번씩 실축[43]하며 승부차기까지 연장으로 가는 치열함을 보이는데 결국 일본의 일곱번째 키커 오타케가 실축한 후 천인성이 결승골을 넣어서 한국이 결승전에 진출하게 된다. 그 후 일본은 가나에게 3/4위전에 1-0으로 패하고 한국은 결승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동태의 해트트릭에 힘 입어 3-3까지 따라붙으나 동태가 해트트릭을 한 뒤 실신해 교체아웃된 후 6-3으로 뒤집어지며 패배, 우승에 실패한다.
- 한국 vs 일본 2002 한일 월드컵 4강전 - 3-2 한국 승: 북한과 남북 단일팀을 이룬 대표팀은[44]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일본과 4강전을 치루게 된다. 일본은 초반에 에이스 스트라이커 마사요시가 선제골을 넣는 등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였으나 나동태가 공포의 슛[45]으로 동점을 만들고, 그 이후 이어진 한국의 찬스에서 동태의 중거리 슛을 골키퍼가 펀칭으로 쳐낸 것을 전도현이 받아 침착하게 역전골을 넣고, 후반전에 박영철의 프리킥 패스를 현철석이 스콜피온 킥으로 골을 넣는 등 한국이 어느새 3-1로 앞서게 되었고, 일본은 후반 막판에 마사요시가 만회골을 넣고 끝까지 밀어붙이지만 종료 직전 에이스 마사요시의 슛이 살짝 빗나가며 결국 패배, 한국이 결승에 오른다.[46] 그 후 일본은 2-1로 스페인에게 3/4위전에서 패하고 한국은 이탈리아와 결승에서 2-2로 비긴 후 연장전에서 주인공 나동태의 골든골로 승리[47], 일본 요코하마에서 아시아 국가 최초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다.
- 폭주기관차
- 한국 vs 일본 프로축구 올스타 친선전 - 5-2 한국 승: 원래 정식 A매치 한일전이 될 예정이였으나 일본측에서 이 게임을 프로축구 올스타 전으로 격하시켜서 A매치가 아니였지만[48]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나카타 히데토시의 클론인 하카타와 오노 신지의 클론인 고노 등 베스트가 다 참여한 게임이였다. 초반 일본에 밀리던 한국은 주인공 중 한 명인 괴력의 슈퍼루키 김호천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5-2로 대승. 여담으로 이 만화는 초반에 상당히 반일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며[49] 한국 독자들에게도 비난을 받았었다.
- 한국 vs 일본 2006년 월드컵 대비 친선전 - 1-0 한국 승: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06 월드컵 대비차원에서 열린 친선경기. 이 게임은 위 게임과 달리 그냥 별 특징없는 친선전으로 짧게 묘사됐고 한국이 김호야의 쌍둥이 동생인 김호야의 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50]
9.2 일본의 만화/애니메이션
일본의 승률이 더 높다. 일본 작품이니 대부분 그렇게 묘사되는 게 당연하다.
9.2.1 축구 만화/애니메이션
- 캡틴 츠바사 월드 유스
- 예전의 어느 월드컵 예선전 - 3-0 한국 승: 일본 유스팀의 가모 감독 등 코치진의 예전 월드컵행 좌절에 대한 회상에서 나오는 장면. 시기를 대충 잡아보면 아마 80년대 초반의 월드컵 예선전이였는듯 하다.
- 한국 U-19 vs 일본 U-19 AFC U-19 챔피언십 결승전 - 2-0 일본 승: 양측이 이미 U-20 월드컵 진출권을 획득한 상태라서 승리를 향한 집념이 다소 떨어져 있었다는 언급이 나온다. 일본이 오오조라 츠바사, 휴가 코지로 등 베스트 멤버로 임했던 반면 한국은 스타 플레이어인 차인천이 부상으로 빠진 상태였고, 이용운이 홀로 분발했지만 결국 츠바사와 휴가의 골로 일본이 우승한다.
- 캡틴 츠바사 골든 23
- 한국 U-19 vs 일본 U-19 AFC U-19 챔피언십 결승전 - 1-1 무승부 후 PSO 6-5 일본 승: 츠바사나 휴가 등 주요 캐릭터들은 이미 이 연령대를 지나서 그들에게 해당되는 올림픽 세대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 만큼 이 경기는 딱히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예전에 휴가의 보조역할이였던 사와다 타케시의 사이드 스토리 수준. 토너먼트가 한국에서 열렸다는 언급이 나온다. 일본은 종료 직전까지 0-1 로 뒤지고 있었으나 그 후 컴백의 묘사도 없이 경기 후 스포츠신문의 뉴스스토리로(...) 사와다가 종료직전 동점골을 넣은 후 승부차기에서 6-5로 이겨서 우승했다는 기사가 짧게 나온다.
- 우리들의 필드
- 한국 vs 일본 1998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 - 0-0 무승부: 어느 중립국에서 펼쳐진 리그방식의 최종예선에서[51] 주인공인 다카스기 가즈야의 일본팀이 한국과 2차전에서 붙는다. 한국팀은 유명우라는 홍명보 클론, 장정구라는 최용수 클론과 윤성용이라는 최성용 클론들을 주축으로 일본에 맞서고 일본팀의 중심인 가즈야를 윤성용에게 철저하게 맨마크 시켜서 무너트린다는 게임플랜을 쓴다. 후반전 중반까지 이 작전은 잘 먹혔지만 윤성용이 가즈야의 활동량과 스태미너를 버티지 못하고 토하고 쓰러지는(...) 바람에 이후 한국이 극단적인 수비전술로 전환해서 0-0 무승부를 겨우 사수하는 식으로 끝낸다. 이후 일본팀과 더불어 한국팀도 본선진출에 성공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 휘슬
- 도쿄 선발팀 vs 서울 선발팀 - 3-3 무승부: 특이하게 국가대표 차원의 경기가 아니라 도쿄와 서울의 대표 선발팀들의 친선 게임으로 펼쳐진다 (경기가 펼쳐진 장소는 서울). 천재적인 플레이메이커형의 미드필더인 이윤경이란 선수의[52] 활약과 홈 팬들의 응원에 힘입은 서울선발팀이 초반에 2-0으로 앞서지만 이 만화의 주인공인 카자마쓰리 쇼를 교체투입한 도쿄 선발팀이 이후 페이스를 찾아가며 2-2 무승부를 만들었고, 종료 직전 재일교포인 카쿠 에이시[53]의 프리킥 골로 3-2로 역전시키는데, 종료휘슬이 울리기 전 뻥축구를 이용한 마지막 역습으로 서울선발팀이 극적으로 무승부를 사수하는데 성공한다. 무승부였지만 일본만화인데도 불구하고 한국팀의 일격을 끝으로 경기가 끝났고 일본팀이 안타깝게 비겼다는 점에서 꽤 특이한 전개였다고 할 수 있다[54]. 여담으로 이 한국원정 편은 일본에서 재일교포로 살아가는 에이시의 고충에 대해서도 나름 진지하게 다루는 듯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꽤 호평을 받았다[55].
- 에어리어의 기사
- 한국 vs 일본 U-22 친선전 - 1-1 무승부: 일본의 홈에서 일본과 한국의 올림픽 대표가 친선전 게임에서 붙는다. 한국은 프랑스의 리그앙에서 뛰고 있고 "아시아의 지단" 이라는 별명을 가진 박종현이라는[56] 스타 플레이어와 홍정수와 임동국 등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을 앞세워 일본에 도전. 그리고 본작에서 불과 몇주 전 에노시마 고교의 골키퍼로 나왔던 리 아키토시라는[57] 재일교포 선수도 한국팀에 깜짝 뽑히게 된다. 아나운서가 해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많은 한국이 대부분 국내 고교생인 일본팀에게는 큰 테스트가 된다는 언급도 한다.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박종현이 선제골을 뽑아내지만 일본은 그 후 그를 철저히 마킹하면서 무력화시키고 후반에 동점골을 넣으며 경기는 1-1로 끝난다.
- 이나즈마 일레븐 애니메이션
- EP81 FFI 이나즈마 재팬 vs 파이어 드래곤 (한국) - 4-3 이나즈마 재팬 승: 파이어 드래곤 팀에 일단 작품내에서 아무래도 전 보스캐 들이 소속되다 보니 아시아 최강팀으로 대접받고 있었으며, 준결승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인 더 바라크다를 4:0으로 격파하고 아시아 지역예선 결승전에 진출해 이나즈마 재팬과 겨룬다. 우승후보까지 오른 팀답게 이나즈마 재팬과 밀고 당기는 박빙의 승부를 펼치지만, 결국 4:3으로 패배, 세계대회행 티켓을 넘겨주게 된다. 여담으로 한국팀의 주요 캐릭터들중 두 명은 아무리 귀화를 했다고 쳐도 한국인이라 보기 매우 힘드니 이걸 진정한 한일전으로 봐야 하는지 매우 애매하다(...)
- 갤럭시 2~3화 FFIV2 아시아 예선 신생 이나즈마 재팬 vs 파이어 드래곤(한국) - 2-1 신생 이나즈마 재팬 승:전작의 FFI와는 달리 여성선수들을 출전시키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 차이점이지만,대표팀 결성 때부터 초보자들로 구성되었고 팀원들의 마음도 잘 맞지않아 분위기가 어수선했고 제국학원과의 연습시합에서도 엄청난 점수차로 질정도로 약체신세인 신생 이나즈마 재팬이 수많은 난관을 짊어진채 아시아 예선에서 파이어 드래곤을 첫 상대로 맞이하게 된다. 전반전에서는 파이어 드래곤의 막강한 공세와 수비에 신생 이나즈마 재팬은 제대로 경기에 임하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던 중 이충윤이 래피드 파이어로 1점을 따내 파이어 드래곤의 승리로 확정되는듯 했으나,후반전에서는 텐마의 갓 윈드와 츠루기의 데빌 버스트로 2점을 내면서 신생 이나즈마 재팬의 역전승으로 끝났다. 경기가 끝난 직후 파이어 드래곤의 선수들은....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J드림
- 한국 vs 일본 1994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 4-3 일본 승: 하프라인에서 일본 골대에 골을 넣는 홍명보 클론에다, 한국 골대에서 일본 골대까지 드리블하여 골을 넣는 최용수 클론 등 내용면에서 이 한국팀은 실로 괴물들이 모인 집단였다만 결국 일본팀의 주인공의 활약으로 한국에게 4:3으로 승리한다. 하지만 하필이면 이게 도하의 비극을 다루는 만화라 현실과 똑같이 일본은 마지막 경기인 이라크전에서 이라크와 비기면서 한국이 월드컵 진출에 성공.
9.2.2 야구 만화/애니메이션
9.2.3 권투 만화/애니메이션
- 내일의 죠
- 김용비 vs 켄모치 켄 스파링매치 - 김용비의 KO승: 김용비는 야부키 죠와 붙기 전에 자기보다 두 체급 위인 라이트급의 켄모치 켄 선수와 시합을 벌였는데 말그대로 안드로메다 우주관광을 보내버렸다. 본인은 전혀 티나는 상처 하나도 없이 1라운드가 끝나기도 전에 상대를 이미 걸레로 만들었는데, 이때도 조금만 욕심을 부리면 바로 KO로 끝낼 수 있지만 어차피 10라운드 안에 쓰러뜨리면 똑같은 KO라고 여기며 모든 공격 때마다 상대의 반응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냉정하게 시합을 이끄는 무시무시한 포스를 보여줬다.
- 야부키 죠 vs 김용비 동양타이틀매치 - 야부키 죠의 TKO승: 죠는 자신보다 더 처참한 인생역정을 걸어온 한국전쟁 경험자인 김용비의 시합 전에 한 말들에 의해 위축되어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며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시합내내 김용비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다. 하지만 두들겨 맞는 도중 자신과의 대결을 위해 스스로의 의지로 금식의 고통을 감수한 리키이시를 생각하며 깨달음을 얻은 죠의 어퍼에 의해 김용비는 링 바깥으로 나가떨어지면서 패배. 사실 김용비의 패배의 더 결정적인 부분은 그의 피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피투성이로 미친듯이 덤비는 죠를 보고 결국 몸이 굳어버려 버텨내지 못한 부분도 있다.
10 물론, 예외는 있다
의외로 한일전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없는 경우가 있는데, 한 종목에서 실력이나 기량 차이가 너무 나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경기를 가져갈 수밖에 없을 경우가 바로 그 때다. 예를 들어 핸드볼의 경우 대한민국의 남녀 핸드볼은 세계급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 반해 나머지 아시아 팀들은 안습 그 자체. 럭비는 반대로 일본이 아시아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는 반면, 나머지 아시아 팀들은 샌드백 수준이다.
또한 농구에서도 남녀 모두 일본이 한국과 중국의 수준에 넘사벽으로 밀리기 때문에 농구는 한중전이 더 재미있다는 평이 있다. 실제로도 아시안 게임 결승전에서 한국과 중국은 자주 만나는 편이다. 하지만 2012년 들어 슬슬 이런 양상도 변화하고 있다. 2013년 중국은 남녀농구 모두 몰락하는 대신 대만 남자농구가 고개를 들은 상태에다, 그 동안 여자농구에서 한수 아래라 생각해왔던 일본은 센터 도카시키 라무와 파워포워드 마미야 유카라는 신예들의 등장으로 2012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부터 기존의 아시아 강국들을 밀어내고 있다. 2013년 아시아 여자농구권대회에서도 일본이 20점차 이상으로 승리하고 한국을 두 번 이기며 우승하는 등 대파란을 일으키며 대한민국 여자농구에 경계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2014 FIBA 세계 여자 선수권 대회 터키에선 정작 일본은 13위 한국보다 못한 실력을 보여주며 순위도 바로 밑인 14위였고 되려 중국이 6위까지 진출하며 가장 좋은 성적을 냈기에 중국 여자농구가 살아있음을 보여줬다.게다가 한국조차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을 위하여 2진급을 보내 비록 일본과 같은 3전전패지만 선전했던 평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아시안 게임에서 여자 한국농구팀이 남자팀과 같이 동반 금메달을 수상했다. 하지만 엄청난 인구에 시장성과 투자를 하는 중국 농구는 부활 가능성이 컸고 2015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중국에게 역전패를 당하며 한국은 6위로 탈락, 2016 올림픽 진출 플레이오프조차 나가지 못했던 반면, 중국이 우승하며 올림픽 본선 진출, 필리핀이 2위, 이란이 3위, 일본은 4위를 차지하며 셋이 플레이오프로 나가 대조를 이뤘다.
그리고 배구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강호에 속하는 것도 맞긴 하고 아시아에서도 상위권이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중국과 일본이 한국보다 더 상위에 있기 때문에[58], 배구는 중일전이 더 재밌다는 평이 많다. 거기에 2000년대 후반부터 여자배구 한정으로 태국까지 끼어든 상태라 중태전 혹은 일태전이 더 재밌다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 한국은 이 두 나라를 이길 전력은 아직까진 충분하다. 실제로 2010년대 들어 남자배구 한일전에서 대한민국이 일본을 3:0 셧아웃으로 발라버리는 경기가 많으며, 여자배구는 2004년부터 2012년까지 22연패를 했으나 2012년 들어 일본 여자배구도 세대교체를 겪고 있는 중이라[59] 판도가 바뀔 수 있다. 그러다가....2000년대 와서 남자배구 및 농구에서 이란이 아시아 최강급으로 발전해버려 한중일이 이란에게 고전 중이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남자 농구는 극적으로 이란을 제치고 우승했지만 남자배구는 4강전에서 일본에게 패했다. 그리고 그 일본은 이란에게 패하며 이란의 첫 아시안 게임 남자 배구 금메달을 넘겨줘야 했으니. 더불어 한국남자배구는 2000년대와서 이란만 만나면 연패를 기록 중이다. 그나마 2015년 이란을 이기며 설욕했지만... 하지만 2016년 리우데자이네루 올림픽에서 여자배구 한일전을 김연경의 캐리로 발라버렸다 !자세한 건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참고.
또, 일본이 저런 딜레마를 겪는 종목은 바로 바둑이다. 바둑 역시 인기가 많고 실력도 좋은 편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과 한국의 등쌀에 밀린지 오래다. 그나마 2013년 이마야 유타라는 신성이 나와서 6관왕을 휩쓸면서 점점 고개를 들고 있지만...
여자축구는 비인기 종목인데다가 상기 예시들과는 반대로 일본이 너무 강해서 한일전이 재미가 없는 케이스. 최근 들어서 일본의 기량이 급상승하면서 2011 FIFA 여자 월드컵 독일에서는 한국이 예선광탈, 일본이 우승, 2015 FIFA 여자 월드컵 캐나다에서는 한국이 첫 16강 진출, 일본이 결승진출 등 한일간의 실력차가 넘사벽급으로 벌어지면서 주목받지 않는 한일전 중 하나가 되었다.
그나마 한국 입장서 조금 위로가 될 만한게 2015년 여자 동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 여자 국가대표팀이 일본 여자 국가대표팀을 2:1로 누르는 이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변이라 하기도 좀 그런게 일본여자대표팀은 바로 직전에 월드컵 우승에 취해서 이 대회는 주전 다 빼버리고 나온 대회라서 일본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냥 한국이 오랜만에 정신승리는 할 수 있는 자양분은 될 듯~ 일본 내에서는 물론 2011년 우승을 통해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져있었던 터라[60] 한국 남자 축구의 오만 쇼크 이상급의 굴욕 분위기일 듯 했는데 생각보단 조용했다. 어차피 이미 일본은 직전 월드컵 우승에 바로 전 대회서 준우승으로 2회 연속 결승에 올라가 잘했기 때문에 일본 축구협회에서는 한중일 이벤트성에 지나지 않는 동아시아대회는 고생한 1진급 핵심 선수들 좀 쉬게 해주고 이번엔 그냥 2진급들에게 기회주자며 월드컵 핵심 주전 멤버들을 대거 제외한 2진 3진급으로 꾸렸다. 따라서 일본 내에서도 어느정도는 성적은 체념한지라 별 반응 없었고(실제로 일본은 2015년 동아시아 대회 여자부에선 꼴찌 차지) 무관심의 대한민국에서는 그냥 "한일전 이겼네, 아싸" 정도의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던지라 여자축구가 얼마나 비인기종목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61]
11 관련 문서
- 도쿄 대첩
- 도쿄 대첩(야구)
- 도하의 기적
- 도하 참사(야구)
- 도하 참사(축구)
- 삼성전자 VS 소니
- 동북아무역타워 vs 아베노하루카스[62]
- 삿포로 참사
- 이웃나라/안 좋은 사이
- 졌지만 잘 싸웠다
- 한일 베이스볼 클래식
- 한일 슈퍼게임
- 한국군 vs 자위대
- 그 외 일본과 관계된 문서 모두
-
임진왜란 - 카디프 대첩
-
김성근/2015년[63] -
서울 지하철 9호선 vs 도쿄 메트로 도자이선 or 사이쿄선[64] -
경인대첩
- ↑ 전국적으로 한국은 5개, 일본은 7개.
- ↑ 실제로 후지 테레비에서 닛칸센(日韓戦)을 칸니치센(韓日戦)이라고 표기했다가 욕을 먹은 적이 있다.
- ↑ 왜 홈 & 어웨이가 아닌 두 경기 모두 어웨이인 일본에서 치렀냐면 역시
프린스 리프레지던트 씅만 리께서 "일본 놈들을 한국 땅에 발을 들이게 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 때문...이라기보단 솔직히 조금 쫄렸는데 왜놈들이 안방에서 승리할 경우,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이마저도 일본한테 질까봐 출전 자체를 포기하려고 했는데 당시 대한체육회장 이기붕이 이길수 있다고 간곡히 설득했고 감독 이유형이 먼저 진다면 돌아오지 않고 차라리 현해탄에 빠져 죽겠다고 간청해 간신히 출전을 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과 맞상대는 극력 피하려 했던 모습과 비슷하다. - ↑ 물론 한중전이 더 재밌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농구와 바둑. 중일전이 재밌는 경우는 배구.
- ↑ 중국과 몽골, 북한은 모두 공산권이고, 대만은 자유권이긴 알다시피 중국 때문에 외교는 커녕 정식 국가 승인도 받지 못하고 있는 미승인국이다.
- ↑ 많은 한국인들이 이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홍콩, 대만, 싱가포르, 이스라엘 등을 언급하는데, 사실 홍콩은 정식 국가가 아닌 중국의 자차구에 불과하며, 국가로 분류한다고 해도 도시국가이기 때문에 각종 통계 등에서도 많이 빠진다. 대만의 경우 중국 때문에 외교는 물론 정식 국가 승인도 받지 못하고 있는 미승인국이며,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은 GDP, 1인당 국민소득 및 제조업 경쟁, 기술력에서 대만을 이긴지 벌써 한참이다. 싱가포르 역시 도시국가인데다 경제 성장에서 중간무역지대로써의 혜택으로 경제가 성장한 것이 크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과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싱가포르는 아직도 민주주의가 없는 독재 국가라는 것이며, 대부분의 국제적인 기구들과 단체들은 국가를 분류할 때 특정 국가가 아무리 잘살더라도 그 나라가 비민주적, 전제주의적 독재 국가라면 그 나라를 선진국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싱가포르는 소위 선진국 클럽이라 불리는 OECD에 가입하지 않고 경제 수준에 맞지 않게 전세계 135개 개발도상국들의 모임인 G77의 정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으며, 역시 경제 수준에 맞지 않게 북한 및 아프리카의 독재 국가들과 매우 친하게 지내는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스라엘의 경우 중동에 위치하여 공식적으로는 아시아에 위치한 것이 맞고 또한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도 맞으나, 지리적으로 유럽에 더 가깝다는 점 및 이 나라의 주류 민족인 유대인들이 아시아보다는 미국 및 유럽에서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점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세계적인 국제기구 및 기업, 단체들은 이스라엘을 아시아 국가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아시아에서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은 대한민국 및 일본이 전부라고 보는 게 맞다.
- ↑ 알아둬야 하는 것이 일본의 혐한감정은 없다가 요새 갑자기 생겨난 그런것이 아니라 그전부터도 존재했었던 것이었지만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가였던 당시에는 그다지 크지 않았고 일반적인 분위기는 "얘네는 원래 그런애들이야,"라고 하는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거기다 세계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경제적인 위상이 넘사벽이었던 시절에는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분위기였으나 일본의 경제력이 쇠약세를 보이는 틈에 한국이 치고 들어오자 경계심이 높아진 것이다.
- ↑ 지금은 한국 국대의 피지컬은 세계적으로 봐도 평균 이상은 된다. 평균 신장도 170cm 후반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한 국가들 중 상위권에 속했다. 그러나 199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 국대의 피지컬은 세계적인 수준에는 모자랐는데, 일본 국대는 이러한 한국 국대보다도 못한 피지컬을 가진 선수들이 모여있던 팀이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피지컬만 놓고 보면 한국 국대가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다. 물론, 축구는 피지컬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 ↑ 단 이 이야기는 1999년 이전 이야기고, 1999년 시드니 올림픽 예선 부터는 아시안 게임을 제외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프리미어 12, 올림픽 야구에는 베스트 라인업이 출전한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부터 2015년 까지 한일전에서 전력차가 난 상황에서 맞붙은 경기는 도하 참사 당시 일본의 사회인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 국대에게 10대 7로 패배한 경기가 유일하다.
- ↑ 일본이 당황스럽게 여기는 것은 프로야구 역사가 긴 일본이 30년이 갓 지난 한국 프로야구의 기량이 자신들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구나 경기운영면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이자 당황스러움을 넘어 당혹감까지 느끼는 형편이다.
- ↑ 레밀리아 우승
- ↑ FEFEMZ*우승
- ↑ NICHAN.T 우승
- ↑ CORBY.QS, G.G.D.QS, SHION-Y, FEFEMZ*, 그리고 우승자인 A.K.R-Y
- ↑ FEFEMZ* 우승
- ↑ NICHAN.T가 2연패를 달성했다.
- ↑ 오락실 게임에서 과거에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이유는 일단 유저수 자체나 지명도가 너무 낮고 정발이 안된 기기가 많았는데 그 문제가 해결되면서 정발된지 꽤 지난 기체 종목에서 많은 실력자가 양산되는 상황.
- ↑ 생긴 것과 다르게 김선우는 의외로 파이터 스타일이다.
- ↑ 한일전뿐만이 아니라 프로 의식을 지닌 선수라면 누구든 친분보다는 자신에게 돈을 지불한 구단과 그 구단을 응원하는 팬들을 위해 싸운다. 국가대표전은 물론 개인의 출세를 위한 바탕이 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나라에 대한 책임이니 사명이니 하는 것들이 들어간다. 사실 한국과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 선수들도 마찬가지이다. 터키랑 그리스랑 사이가 무지 나쁘지만 유럽 여러 리그에서 같은 팀에서 각자 잘 뛴다든지 종종 아랍 선수들이나 이스라엘 유태인 선수들이 한팀에서 뛸때도 우선은 같은 동료임을 먼저 생각하며 뛰기도 한다. 전쟁도 여러번 벌이며 원수지간인 인도와 파키스탄도 크리켓 리그에서 같이 사이좋게 같은 팀 동료로 경기에 임하듯이 이런 건 흔한 모습이다. 이런 곳에서 서로 싸워봐야 그 팀에서 둘 다 비난과 같이 징계대상일 뿐.
- ↑ 사실 한일 맞대결이라기보다는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일본, 이라크, 이란의 진흙탕 싸움이었다.
- ↑ 양 팀 공히 1년 전 월드컵 예선의 앙금이 남은 상태에서 엄청난 난타전을 벌였다. 1990년대 대표팀의 명승부 가운데 하나. 선제 골은 1년 전 도하에서 대한민국을 무너뜨린 미우라 카즈요시가 넣었으나, 결국 황선홍이 2골을 넣으며 일본 킬러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
- ↑ 이 날 대한민국이 이겼다면 일본은 UAE에게 밀려 완전 탈락했고, 조호르바루의 환희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 최용수가 2골을 넣었다.
- ↑ 오카다 감독은 월드컵에서의 목표가 4강 진입이라고 발언했다.
- ↑ 결승골과 쇄기골은 모두 일본의 공격이 실패한 상황에서 들어간 카운터 어택이었다.
- ↑ 피파 주최 여자대회에선 북한(2008 U-17)과 남한(2010 U-17), 일본(2011)이 여자 월드컵을 각각 우승해서 3번 우승을 거둔 거와 달리 남자 대회에선 아직까지도 1989년 U-17 월드컵 축구 스코틀랜드 대회 우승을 거둔 사우디아라비아가 유일하다.
- ↑ 원래 U-16은 기복이 심하기 때문에, 한국의 AFC U-16 아시안컵 예선 광탈은 이변이라고 쳐주기도 뭐하다. 위키백과의 이 항목과 이 항목을 보면, U-19쪽 예선은 본선 진출팀이 거의 상위 시드팀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U-16쪽은 본선 진출팀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 ↑ 조석은 자신의 축구웹툰에서 이 상황을 두고 '친선과 대혈투가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하는 이 오묘함'이라고 적절히 표현했다.
- ↑ 당일 언론에선 '축구라기엔 너무 거대한 드라마'라며 미친듯이 띄워줬다.
- ↑ 물론 박지성의 경우는 고교 전국대회 때 승부차기 실축으로 팀의 패배를 경험한 이후로는 가급적 승부차기를 안한다고 밝히긴 했지만...
- ↑ 일본 4승 0무 1패 (12점) / 한국 3승 2무 0패 (11점) / 라오스 3승 1무 1패 (10점)
- ↑ 참고로 한국이 준결승에 진출하면서 해외에 이 병역 관련 문제가 알려져, 이와 관련된 주제가 꽤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축구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이야기.
- ↑ 하지만 일본도 한국처럼 우즈베키스탄에게 승부차기로 져서 우승엔 실패했다
- ↑ 더군다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2000년 이후 홈 개최 A매치 한일전에서 승리가 없다(!). 마지막 승리의 장소도 바로 잠실. 하석주의 골로 1:0으로 승리했고, 그 하석주가 전남 드래곤즈 감독이 되는 동안 무승행진(...).
- ↑ 베트남전 대승 후 남은 중국전이나 일본전 중 한 게임에서는 승부를 걸었어야 하는 상황에서 두게임 다 수비적으로 소심하게 임했고, 5일 안에 3게임을 해야 했던 정신나간 스케쥴 와중 선수들 로테이션도 거의 돌리지 않았다! 결국 베트남전 선발라인업에서 절반을 바꾸며 적절하게 로테이션을 돌린 일본에게 체력이 방전된 한국 선수들은 스피드와 체력면에서 당연하게 밀렸고, 마지막 20분동안 제대로 된 슛마저 한번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 ↑ 가장 최근으로 2011년 대회에 유일하게 일본 팀으로 아시안 챔피언스리그 8강까지 오른 세레소 오사카에 김보경이 뛰고 있는데 김보경이 8강전 1차전 세레소 안방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4-3으로 전북 현대 모터스를 이기자 매국노라는 비난(?)까지 올라온 바 있다. 그리고 김보경은 2차전에선 시작 10분도 안돼 부상으로 코뼈를 크게 다치고 2주 정도 치료를 위해 실려나갔고 결국 세레소 오사카는 이동국에게 해트트릭까지 내주면서 대패했다.
- ↑ 세르비아, 브라질, 이탈리아
- ↑ 배구회관 건물 매입으로 인한 대출금 상환으로 애초에 배구협회 살림이 빠듯했고, NH농협금융지주(KOVO V-리그 공식후원사)의 지원금 2억원 중 출정식 연회에만 8,000만원을 쓰는 병크를 저지르고 남은 1억 2천만원으로 빠듯하게 올림픽을 치뤘다고 한다. 감독, 코치, 전력분석관 단 세 명만 코칭스탭으로 참여하여 대표팀 운영은 물론 행정적 업무도 병행한 일과 180cm 넘는 선수들이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타고 런던에 갔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진다. 거기에 배구협회장인 모 정당 대통령 경선후보의 입방정은 덤.
- ↑ 국가대표 선수가 이코노미석이라는 것은 정말 말도 같지도 않은 것이다. 보통 대한민국 이외의 국가에서는 국가대표선수라 하면 기본적으로 퍼스트 클래스 내지는 최소한 비지니스 클래스로 비행기를 타게 되어 있다. 일례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디팬딩 챔피언 이탈리아와 지난 대회 준우승국인 프랑스가 조별리그에서 조 꼴찌로 나란히 탈락하자 그것 때문에 받은 벌이 비지니스석에 탑승해서 귀국하는 것이였다.
- ↑ 그나마 2001년 아시안컵에서 1:1로 비기면서 연패를 끊음.
- ↑ 특별귀화 선수다.
- ↑ 전반 16분에 마사요시에게 동점을 허용한 뒤 전반 21분에 키무라 요시히로에게 역전골을 내주고, 전반 30분에 나동태의 53미터 프리킥 슛을 골키퍼 키쿠치 카와모리가 간신히 막아낸 걸 전도현이 동점골을 넣었다.
- ↑ 한국은 세번째 키커인 강찬과 네번째 키커인 이한얼이, 일본은 두번째 키커인 히사이시와 세번째 키커인 가토가 실축.
- ↑ 사실 북한이 그들의 최고 선수인 박영철만 남한팀에 보낸 정도니 단일팀이라 하기에도 뭐하다.
- ↑ 동태가 청소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이 끝난 뒤 아버지와의 특훈을 통해 완성한 슛으로 그라운드에 낮게 깔리면서 초고속으로 날아가는 슛이다.
- ↑ 이때 마사요시는 자신의 슛이 골로 연결되지 않자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그대로 주저앉아 머리를 박고 그라운드에 쓰러진다. 물론 만회골을 넣기 전에 표백제의 바이시클 킥을 육탄 방어하다가 이마가 깨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 ↑ 여담으로 이 만화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갓 시작할 쯤에 완결이 되었는데(다만 마지막 권 발매는 월드컵 이후였다.), 실제로 한국이 간발의 차이로 월드컵 결승 진출을 놓치며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고 만화에서처럼 한국이 진짜로 이탈리아를 골든골로 이겼다는 점을 보면 꽤 흠좀무 하다.
- ↑ 이게 왜 중요하냐면 훗날 김호천이 네덜란드로 귀화하는데 그가 유일하게 한국 국가대표로 뛴 이 매치가 A매치로 인정되지 않은 덕에 그가 내덜란드 대표로 뛰는데 지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 ↑ 일본 골키퍼의 할아버지는 아예 대놓고 혐한이였고 골키퍼도 경기 후 반성을 하긴 하지만 그 전 까지는 조센징이라고 욕도 하며 한국을 도발하는 등 대놓고 어그로를 끌었다.
- ↑ 이때 일본 골키퍼는 호야의 드리블에 이은 골을 보고 "이런 초 그레이트한 드리블은 처음이다...!"라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 ↑ 이전 1994년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쓰였던 방식이다. 작가가 새로운 최종예선 방식이 발표되기 전에 이 만화를 그린듯 하다.
- ↑ 일본 유학의 경험이 있었고 도쿄선발팀에 카쿠 에이시의 사촌.
- ↑ 한국명 곽영사
- ↑ 작가가 이에 대해서 일본 내 혐한초딩 독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는지 애니메이션에서의 전개는 이와 반대로 서울팀이 4-3으로 앞서가다 도쿄팀이 종료직전 극적인 골로 4-4 무승부를 사수하는 식으로 바뀐다.
- ↑ 근데 일본캐릭들만 미형으로 그리고 서울선발팀의 캐릭터들을 너무 조폭같이 그렸다고 혹평하는 이들도 있다.
- ↑ 설정상 박주영을 베이스로 한 선수 같다.
- ↑ 한국명 이추준.
- ↑ 거기다가 심판이 한국인이 배정된다면 막장으로 흘러간다.
- ↑ 세터 다케시타 요시에가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은퇴한 것을 비롯, 중앙에서 한국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센터 아라키 에리카는 출산으로 한동안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다.
- ↑ 국대팀 전체가 일본의 국민훈장에 해당하는 국민영예상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 ↑ 남자 축구로 입장을 바꿔서 대한민국 국대가 공식전에서 독일을 격파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생각해보자.
- ↑ 완공시기도 2014년으로 비슷하며, 높이 역시 아베노하루카스 301m 대 동북아무역타워 312m로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 ↑ 김성근이 애초에 재일교포출신인데다 일본 고교야구 방식으로 팀을 운영하기 때문에 네이버 댓글에서는 9개 구단이 한화전을 승리했을 경우. 한일전이란 별명이 붙었다.
- ↑ 이 쪽은 러시 아워 시의 혼잡도 대결. 당연히 이긴 건 우리의 9호선이지만 이건 이겨도 이긴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