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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일 (목) 03:10 기준 최신판
width=50% | " />?width=70 마이 리틀 텔레비전 역대 우승자 | ||||
MLT-34 | → | MLT-35 | → | MLT-36 | |
No. 078 아라치 No. 079 마루치 | → | No. 084 인실.KIM No. 085 콩까남 No. 086 콩진호 | → | No. 088 꿀연재 | |
보미 이대훈 | → | 김가연 임요환 홍진호 | → | 손연재 |
前 스타크래프트 1 프로게이머, 코치 | ||||
前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코치, 감독 | ||||
프로필 | ||||
이름 | 임요환(林遙煥) | |||
생년월일 | 1980년 9월 4일 | |||
국적/출신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 |||
키/몸무게 | 177cm, 72kg | |||
혈액형 | B형 | |||
가족 | 1남 3녀 중 막내[1] 배우자 김가연 첫째 딸[2] 김서령 둘째 딸[3] 임하령 | |||
소속 | IS (2000년 10월~2002년 10월) 동양 오리온 (2002년 11월 25일~2003년 12월 22일) 4U (2003년 12월~2004년 4월) SK텔레콤 T1 (2004년 4월 13일~2006년 10월) 공군 ACE (2006년 10월~2008년 12월 21일) SK텔레콤 T1 (2008년 12월 22일~2010년 6월) SlayerS (2010년 11월 9일~2012년 8월 15일) SK텔레콤 T1 (2012년 8월 16일~2013년 9월 26일) | |||
종족 | 테란 | |||
ID | BoxeR | |||
별명 | (테란의) 황제, 임대괄 등 다수. 각종 별명들은 임요환/별명 항목을 참고. | |||
종교 | 천주교(세례명 : 고르고니아) |
임이최 | ||
임요환 | 이윤열 | 최연성 |
황제(皇帝)
e스포츠와 SK텔레콤 T1의 대부
1 개요
한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前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이자 前 SK텔레콤 T1의 3대 감독. 2013년부터 포커 플레이어로 활동중이다.
2 주요 경력
우승 기록 | |||||||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 |||||||
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자 | |||||||
2000 프리챌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김동수 | → | 임요환 | → |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임요환 | |||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자 | |||||||
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임요환 | → | 임요환 | → | 2001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김동수 | |||
2002 KPGA TOUR 1차리그 우승자 | |||||||
[4] | → | 임요환 | → | 제2차 KPGA 투어 우승자 이윤열 | |||
WCG 2001 스타크래프트 부문 금메달 | |||||||
[5] | → | 임요환 | → | WCG 2002 금메달 임요환 | |||
WCG 2002 스타크래프트 부문 금메달 | |||||||
WCG 2001 금메달 임요환 | → | 임요환 | → | WCG 2004 금메달 서지훈 |
2.1 스타크래프트 : 브루드 워
2.1.1 개인리그
1999년 제1회 SBS 멀티게임 챔피언십 우승 (VS김일재 2:1)
2000년 M.police배 게임대회 우승
2000년 제1회 Game-Q 스타리그 준우승 (VS임성춘 1:3)
2000년 제2회 크레지오 대회-서바이벌 프로대전 우승
2000년 제1회 Korea.Cnet 게임대회 우승
2000년 삼성 디지탈배 KIGL 추계리그 프로게이머 랭킹 우승
2000년 삼성 디지탈배 2000 KIGL 왕중왕전 우승
2000년 CCGF 2000 16강
2001년 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VS장진남 3:0)
2001년 제3차 Game Q 스타리그 우승 (VS최인규 3:0)
2001년 온게임넷 라이벌전 (VS김정민 0:2)
2001년 온게임넷 Last 1.07 우승 (VS기욤 패트리 3:0)
2001년 iTV 제2차 랭킹전 3위
2001년 온게임넷 라이벌전 (VS최인규 1:3)
2001년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VS홍진호 3:2)
2001년 천안 사이버게임체전 4강 (VS강도경 1:2)
2001년 WCG 2001 3차 예선 우승 (VS조정현 2:0)
2001년 WCG 2001 금메달 (VS베르트랑 3:0) [6]
2001년 iTV 아듀! 2001 최고수전 (VS주진철 3:2)
2001년 2001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준우승 (VS김동수 2:3)
2002년 2002 KT배 온게임넷 왕중왕전
2002년 iTV 3차 랭킹전 준우승 (VS이윤열 1:3)
2002년 제1차 KPGA투어 우승 (VS홍진호 3:1)
2002년 2002 NAT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
2002년 제2차 KPGA투어 8강 (VS홍진호 0:2)
2002년 무한 종족 최강전 (VS강도경 3:1)
2002년 무한 종족 최강전 (VS임성춘 0:3)
2002년 iTV 4차 랭킹전
2002년 제3차 KPGA투어 3위 (VS최인규 3:2) [7]
2002년 2002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준우승 (VS박정석 1:3)
2002년 도둑맞고 못살아 이벤트 (VS박성훈 2:1)
2002년 WCG 2002 금메달 (VS홍진호 2:0)
2002년 겜TV 고수초청전 (VS홍진호 0:2)
2002년 제4차 KPGA투어 Mega Match 준PO (VS조용호 1:3)
2002년 2002 Panasonic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2003년 KTF Bigi배 4대 천왕전 우승 (VS이윤열 2:1)
2003년 KTEC KPGA Winners 준우승 (VS홍진호 1:3) [8]
2003년 iTV 5차 랭킹전
2003년 핫브레이크배 마스터즈 4위 (VS변길섭 1:3) [9]
2003년 KBC 파워게임쇼 Ting배 준우승 (VS변길섭 1:2)
2003년 Stout MSL 패자 4강 4차 (VS이윤열 1:2)
2003년 2003 Olympus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3위 (VS박경락 3:1) [10]
2003년 Toona배 Big4 Special 우승 (VS박정석 2:0)
2003년 iTV 6차 랭킹전
2003년 2003 Mycub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2003년 2003 KBK 제주 페스티벌 3위 (VS윤종민 2:1)
2003년 KTF Bigi 프리미어리그
2004년 KT Megapass 프리미어리그 2003 챔피언 (VS변길섭 2:0)
2004년 KT-KTF 프리미어리그 2003 통합 2위 (VS이윤열 1:3)
2004년 NHN 한게임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03~04 16강
2004년 MBC게임 개국3주년 특별전
2004년 WCG 2004 1차 예선 최종전 (VS이병민 0:2)
2004년 KT-KTF 프리미어 2004
2004년 EVER 스타리그 2004 준우승 (VS최연성 2:3)
2004년 IOPS 스타리그 04~05 16강
2005년 스니커즈 올스타리그 1라운드 8강 (VS박성준 0:2)
2005년 우주닷컴 MSL 패자조 2R (VS이재훈 0:2)
2005년 스니커즈 올스타리그 2라운드 3위 (VS박성준 2:1) [11]
2005년 CKCG 2005 8강 (VS이윤열 0:2)
2005년 WCG 2005 2차예선 (VS안기효 1:2)
2005년 So1 스타리그 2005 준우승 (VS오영종 2:3)
2005년 CYON MSL 패자 8강 2차전 (VS박정석 0:2)
2005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8강 (VS최연성 1:2)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16강 (VS죄가람 1:2)
2006년 프링글스 MSL 시즌1 8강 최종진출전 (VS박용욱 1:2) [12]
2006년 WCG 2006 한국예선 H조 4강 (VS김준영 0:2)
2006년 프링글스 MSL 시즌2 8강 [13]
2006년 제1회 CJ슈퍼파이트 A경기 (VS마배신 0:3)
2006년 제1회 CJ슈퍼파이트 B경기 (VS홍진호 3:2)
2006년 2006 게임음악회 e스포츠대전
2007년 제4회 CJ슈퍼파이트
2007년 도너스 캠프 드림매치 (VS마배신 0:2)
2007년 곰TV MSL 시즌2 32강
2007년 서울 국제 e스포츠 페스티벌 256강 (VS박재영 1:2)
2008년 곰TV 스타 인비테이셔널 16강
2008년 곰TV 클래식 시즌2 64강 (VS조일장 0:2)
2009년 e스타즈 헤리티지 2009 4강 (VS이윤열 1:2)
2009년 IEF 2009 29강 풀리그
2009년 IeSF 스타 인비테이셔널 클래식 4강 (VS홍진호 0:2)
2.1.2 팀리그
- 2003년 KTF EVER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우승
- 2003년 LG IBM MBC GAME 팀리그 우승
- 2004년 SKY 프로리그 2004 1라운드 준우승
- 2004년 Tucson MBC GAME 팀리그 우승
- 2005년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우승
- 2006년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우승
- 2006년 SKY 프로리그 2005 그랜드파이널 우승
- 2006년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우승
- 2009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우승
- 2010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준우승
2.1.3 총 전적
총 전적 | 603승 430패(58.4%) |
vs 테란 | 153승 131패(53.9%) |
vs 저그 | 281승 152패(64.9%) |
vs 프로토스 | 169승 147패(53.5%) |
2.2 스타크래프트 2
- 2010년 소니 에릭슨 스타크래프트 II OPEN Season 2 4강
- 2010년 G-Star 2010 스타크래프트 II 올스타전 8강
- 2010년 소니 에릭슨 스타크래프트 II OPEN Season 3 32강
- 2011년 소니 에릭슨 글로벌 스타크래프트II 리그 시즌 Jan. - Code S 16강
- 2011년 인텔 글로벌 스타크래프트II 리그 시즌 Mar. - Code S 32강(코드A로 강등)
- 2011년 LG 시네마 3D 글로벌 스타크래프트II 리그 시즌 May. - Code A 16강
- 2011년 펩시 글로벌 스타크래프트II 리그 시즌 July. - Code A 32강 (코드B로 강등)
- 2011년 소니 에릭슨 글로벌 스타크래프트 II 리그 시즌 Nov. - Code A 24강 (코드S로 승격)
- 2011년 MLG Anaheim 3위
- 2012 핫식스 2012 글로벌 스타크래프트 II 리그 시즌 1 Code S 32강
- 2012 핫식스 2012 글로벌 스타크래프트 II 리그 시즌 2 Code A 48강
2.3 임요환이 가진 기록들
- 첫 프로게이머 억대 연봉 달성자.[14]
- 역대 테란 다승 2위이자 역대 다승 2위.[15]
- 온게임넷과 MBC 게임, 양대 리그를 통틀어 테란 1대 우승자이자 유일한 스타 1 양대 리그 로열로더.[16][17]
- 스타크래프트 유일 WCG 2회 우승.[18]
- 최장 기간 연속 케스파 랭킹 1위(17개월; 2001년 11월~2003년 4월).
- 스타리그 최초 테란 우승자.
- 스타리그 최초 2연속 우승자.
- 스타리그 최초 3연속 결승 진출.
- 스타리그 최초 전승준.
- 스타리그 최초 100승.
- 스타리그 최다 승(듀열과 챌린지 기록 포함).[19]
- 스타리그 테저전 최고 승률(54전 39승 15패 72.2%).[20]
- 스타리그 최고 승률 우승(12전 11승 1패 91.7%).
- 스타리그 최다 결승 진출(6회).[21]
- 스타리그 최다 준우승(4회).[22]
- 스타리그 최고령 결승 진출(26세).
- 스타리그 결승에 진출한 해가 가장 많은 선수.[23][24]
2.4 임요환/상대전적
임요환과 주요선수들의 상대전적은 임요환/상대전적을 참고하면 된다.
3 프로필
The Emperor
e스포츠의 개척자이자 선구자(참고)
전 세계 e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명성 있고 유명한 프로게이머
(원글번역글)[25]
한때 스타크래프트는 몰라도 임요환은 안다는 말까지 나왔으며,[26] 스타판 밖에서는 콩진호가 더 유명한 것 같지만. 스타크래프트 2 전향 당시 일어난 파장은 그가 여전히 스타판에서 가장 큰 상징성을 갖는 게이머임을 보여줬다. 10여 년간 계속해서 그가 팀과 e스포츠에 끼치는 영향을 인정받고 있는 유일한 게이머.
실제 스타크래프트 1 리그의 시작과 전성기는 모두 임요환으로 시작해 임요환과의 관계성으로 끝나는, 임요환 유니버스 내에서 이루어졌다. 단적인 예로 사대천왕과 본좌라인이 형성된 것은 모두 임요환을 가운데에 두기 위한 개념 정립. 심지어 팀단위 대회에서도 임요환의 SKT T1, 이에 대립하던 당시 KTF 매직엔스는 反임요환의 상징적인 인물인 박정석, 홍진호여기서도 두번째, 강민을 영입함으로서 팬덤 간 경쟁 구도를 심화시키며 프로리그를 전성기로 이끌었다.
또한 골프처럼 개인스폰서를 받는 방식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을 마다하며 후배들 육성을 위해 기업스폰서를 받아냈고 그것이 스타리그뿐 아니라 프로리그까지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됐다. 다른 나라가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소규모 대회조차 버거워 할 때, 리그 개최와 10만 관중 동원을 이끌어낸 것이다. 링크 e스포츠라는 단어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만들어준 프로게이머의 산실인 셈.
한때 팬 클럽 회원이 60만에 달했으며 이러한 그의 성공기는 스타판에 대한 멸시가 심하던 방송가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이후 팬 클럽 회원 수가 40만 명까지 줄어든 모습을 보면서 계속해서 자신을 쇄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보여주었다. 다만 20만 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임요환이 싫어서 나가겠다' 하고 나간 건 아니고, 다음 측에서 휴면 아이디, 중복 아이디 등을 대거 정리하는 등의 이유가 컸다. 물론 이 경우 또한 '팬'으로서의 의미를 크게 둘 순 없지만...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판에서 은퇴하기 전 팬 클럽의 회원 수는 약 45만 명. 이는 다른 나라가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소규모 대회조차 버거워 할 때, 10만 관중을 데리고 리그 개최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링크
김가연과는 결혼식만 안 했을 뿐 혼인 신고는 2011년 2월에 이미 마쳤다고 한다. 2016년 5월 8일 결혼식을 치렀다.링크
SlayerS 해체 사태로 e스포츠의 생불 대우를 받게 되었다.링크
pgr21의 한니발이라는 유저가 임요환이 걸어온 길에 대해 정리해둔 좋은 글이 있으니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스타판을 처음부터 봐왔거나 임요환의 팬이라면 가슴이 사무치게 찡할 것이며, 팬이 아니라도 뭉클할 정도로 감동적인 글이다. 링크ⓐ
온게임넷과 MBC 게임, 양대 리그를 통틀어 테란 1대 우승자이자 유일한 스타1[27][28] 양대 리그 로열로더.
이외에도 많은 대회에 출전했으나 초기 게이머들이 다 그렇듯 모든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본좌론 떡밥 때문에 커리어 싸움이 벌어지면서 많이 폄하된 경향이 있으나, 임요환은 기반이 쌓인 리그에서 커리어를 쌓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이므로 동등하게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임요환이 쌓았던 커리어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현재에 전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커리어 싸움이 큰 의미가 없다. 이는 커리어와 별개로 임요환이 현재까지 e스포츠계에서 단언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는 것으로 증명 가능.
올드게이머들에게는 부득이하게 벌어지는 현상인 정리되지 않는 과거 커리어와 더불어 본인의 30대 게이머를 향한 의지로 인해 떨어지는 승률과 손상되는 개인 기록등의 현상을 모두 겪었는데, 요환단물을 빨고 싶었던 양대 리그는 골든마우스 제작이나 32강 체제, KPGA의 MSL 편입 등 자신들의 전당에 임요환의 이름을 올려 커리어를 유지시키기 위해 갖은 힘을 다 쓴바 있다.
예를 들어 골든마우스는 임요환의 결승 진출로 인해 다시금 우승을 노릴 수 있게 되자 급히 만들어졌고, 신한은행배에서 임요환이 차기 리그 진출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듀얼로 떨어지자 이번 리그부터 24강으로 확대라며 노골적인 임요환 특별법을 만든바 있다. MBC GAME 역시 KPGA 전적과 커리어는 MSL로 계승되지 않음을 공식 발표해 놓고는 2007년 임요환에게 MSL 우승자 뱃지를 전달하며 은근슬쩍 그를 MSL 우승자 전당에 올려버린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6 이후 임요환의 성적 하락은 두드러져, 특례로 얻은 커리어는 없다시피 하다. 임요환 최대의 커리어는 30대 게이머라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킨 부분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자.
그러나 사실 양대 리그만 따져도 임요환은 본좌급 커리어가 맞다. 일단 결승 진출 횟수가 무려 7회로, 육룡 중에서 택뱅을 뺀 전원의 결승 횟수를 더해도 임요환보다 적다. 거기에다가 2001년 2002년 2004년 2005년 4년간 결승에 진출하였고 2005년에는 나이가 26세라는 어려움을 안고서도 약진하여 결승에 진출하였다. 2001년에 결승에 진출한 선수가 2005년에 결승에 진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이라면 대단하다고 말할 수 밖에없다.[29][30] 스타리그 결승전이 쉬워 보이나 [31]참고로 결승 진출 횟수만 따지면 최연성, 송병구, 김택용보다 많다(쵱과 뱅은 5회, 택은 4회. 그리고 마레기가 6회). 임요환보다 양대 리그 결승 진출을 더 많이 해 본 선수는 이윤열, 이제동, 이영호뿐이다(각각 순서대로 10회, 9회, 8회). MSL에서는 얼굴도 못 비췄다는 평판이 있으나 임요환의 최전성기인 2001년엔 MSL이 없었다.[32] 그리고 2002년부터 열린 MSL의 전신인 KPGA Tour에서부터도 임요환은 우승 1회, 4강 1회로 스타리그에 비해 적다 뿐이지 MSL에서도 톡톡히 활약하고 있던 셈. 결코 커리어가 적은 선수가 아니다. 거기에다가 2002년 경부터 집중적으로 열린 각종 이벤트전이나 iTV 랭킹전, 프리미어리그에서도 결승에 진출한 경험이 있다. 특히 프리미어리그는 일반적인 이벤트 대회와 달리 지명도와 실력에서 상위권 선수들만을 모아 진행한 리그이며 상금규모, 팬들의 주목 또한 남달랐던 대회이기 때문에 이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했다는 점은 특히 고무적이다.
온게임넷 스타리그 연속 출전은 9회이다. 최고 기록은 아니고(뱅이 최고 기록) 타이 기록은 투신 박성준, 그리고 dlqudals & 택꼼.
2006년 1월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16강에서 온게임넷 개인리그 본선 사상 최초로 100승을 달성. 참고로 상대가 바로 송병구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송병구는 스타크래프트 1으로 스타리그에서 정확히 100승을 달성했다.
티빙 스타리그를 마지막으로 스타크래프트 : 브루드 워로 열리는 리그가 종료되었기 때문에 리그가 부활하지 않는 한, 깨지지 않을 스타리그 통산 최다 승 보유자(챌린지 리그와 듀얼 토너먼트가 포함된 전적이기 때문에, 정확히는 온게임넷 개인리그 최다 승. 통산 108승) 현역 최다 승자인 송병구가 기록을 갱신 할 수 있었으나, 100승만 겨우 채우고 1승 2패로 16강 탈락. 100승은 달성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진에어 스타리그부터 따지면 1승 5패 하고 두 번 모두 16강에서 광탈한지라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동시에 스타 1로 치러진 스타리그 최다 승, 최고 승률 우승자(11승 1패로 1패 우승이며, 승률은 91.6%). 정명훈이 티빙 스타리그에서 전승 우승 혹은 1패 우승 기록에 도전했으나 허영무에게 3:1로 패배하면서, 결국 최고 기록으로 남았다.
한편 한국 프로게임계에서 현역으로 가장 오래 활동한 프로게이머(13년). 다만 2012년 10월 슬레이어스의 해체로 인해 '선수'로 활동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복귀할 수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해당 시점까지 선수로서는 최고참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7~8년만 활동해도 '올드'로 분류될 정도로 이 판의 선수 생명이 길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본인의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기록적인 일이다.
물론 앞서 설명했듯 현재 e스포츠계의 정확한 출발점을 잡을 수는 없으나, 방송 리그가 시작된 것부터가 1999년부터인 데다가, 스타크래프트가 1998년 나왔다는 점, 임요환이 1.5세대 프로게이머로 분류되는 점을 생각하면 1999년경이 활동의 시작이었다고 봐도 무리는 없다.
앞서 언급했지만, 무엇보다 본인이 말했던 대로 2009년 당시 기준으로 최초이자 둘뿐이었던 30대 프로게이머가 되었다.[33] 이후로는 아예 종목을 전환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면서 의미를 되새겼다. 다른 한 명은 여성 게이머인 이종미이나, '프로게이머' 활동은 여성부 리그 폐지 이후 미미한 탓에 비길 것은 못 된다.
시청률에서도 역대 스타리그, MSL, 프로리그를 통틀어 1, 2위를 마크했는데, So1 스타리그 결승전과 4강전이 그것. 최고 시청률인 So1 스타리그 4강전의 기록은 1.73%이다.
스타크래프트 개인리그 10-10 클럽 달성 기록을 가지고 있다(스타리그 본선 14회, MSL 본선 10회 진출).
(출처: 온게임넷 홈페이지, 나만큼 미쳐봐)
4 주요 활동
4.1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4.1.1 테란의 황제, 즉위하다(1999~2002)
게임 아이디는 SLayerS_`BoxeR`인데 길드를 만들려다가 무산되어서 길드원 같은 아이디가 되었다고 한다. 유난히 사칭 아이디가 많이 돌았던 프로게이머이기도 하다.
그가 데뷔할 때 테란은 하수와 고수의 격차가 극명한 시절이었다. 리플레이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테란은 암울하다는 이야기가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떠돌았고, 실제 배틀넷 종족 비율에서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특히 브루드 워 1.07 패치 초중반까지는 테란이 완전 죽을 쑤던 시기였는데, 저그에게는 9드론 6저글링 이후 패스트 러커를 못 막아서 GG, 프로토스에게는 다크 템플러를 못 막아서 GG 치던 동네북 신세였다.
저그가 강세인 시대에서 래더순위 10권안 8위의 유일한 테란유저가 나타났다. 그가 바로 임요환이다. 단숨에 래더순위 2위로 오르며 SLayerS_'BoxeR'라는 아이디를 알렸고 프로데뷔하게된다.
임요환은 오리지날 시절 활동하던 forever 클랜 해체 후 SLayerS 창설이 무산되고 소속이 없는 상태로 활동하던점도 특이점이다. 당시 유명 게이머들은 LeGenD, GM, NC, Sam 등 명문 클랜 소속이 많았는데 임요환은 어디서 튀어나와 소속도 없고 보도 못한 희한한 수를 써서 이기는 이상한 게이머였던 것이다.
안경 뺀 잘생긴 유재석
임요환이 독보적인 최강으로 군림했던 시절은 게임큐 우승,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 우승, WCG 2001 우승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양대 리그가 정립되기 이전이라 최근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임요환의 전성기를 코크배와 KPGA 1차, 그리고 홍진호와 같은 시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시절의 임요환은 세 종족전에서 모두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저테전에 있어서 임요환은 김정민류의 '한방 병력 괴멸 → 순회공연' 방식 대신 드랍십을 이용한 자원줄 타격과 빠른 압박으로 경이적인 저그 학살자로 등극했으며, 테테전에서는 골리앗과 드랍십을 주력으로 동시대 테란 게이머들에게 우위를 점했다. 테프전에서 그가 약점을 보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전성기의 그는 테프전에서 대단히 강력했다. 김대건의 메카닉, 임요환의 바이오닉 같은 이야기가 팬들 사이에서 떠돌아서 그렇지 임요환은 메카닉도 강했는데 이는 원 팩 더블커맨드 빌드에 기인한 것이었다. 앞마당 확장으로 패러다임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제시된 원팩 더블을 임요환은 기가 막히게 활용했고, 한동안 프로토스전에서도 강력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 우승 직후 임요환은 각종 행사에 끌려다녀야 했다. 이 시절의 팀은 단순히 '연습 상대 구하기 쉬우라고 만든 클랜' 정도의 개념이었으며, 감독은 매니저 정도의 개념이었다. 스타리그 우승 이전의 임요환도 게임계에서 어느정도 유명인사였지만,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스타리그 우승 후이다. 인지도가 급격히 오른 임요환은 PC방 행사를 포함해 여러 행사를 돌아야 했다.
이후 코카콜래배 스타리그에서 홍진호를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 당시 사용된 맵들이 심각한 테란 맵이라는 사실과 점수제 진출 논란등이 재조명받으며 임까들이 임요환 부커론의 근거로서 유용한 자료로 써먹게 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임요환 부커론은 그저 후대에 안티들이 만들어낸 억지에 불과하다고 볼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 임요환의 기량은 국내 프로게이머들 중에서도 최상위층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부커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34] 임요환의 우승이 단순히 맵빨로 이루러졌다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 이 당시 임요환의 전적을 뺀 테란의 총 전적은 저 테란 맵들을 끼고도 14승 13패로 거의 5할(...)이며, 심지어 부커론의 주요 골대가 되는 두 맵 중 하나인 홀 오브 발할라는 임요환 전적을 뺀 테저전의 경우 승률 5할 정도 되는 테란의 테란과 저그의 백중세이다.[35]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맵이 테란에게 유리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임요환의 우승을 맵빨, 부커빨이라고 폄하하는 건 좀 무리가 있다. 한빛소프트배에서 8강까지 살아남은 테란 게이머는 임요환을 빼면 '살아 있는 마린' 이운재 단 한 명에 불과하다. 코카콜라배에서 8강까지 오른 테란은 임요환, 조정현, 변길섭 등 3명이다.
또 코카콜라 리그가 진행되던 당시에는 맵 밸런스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던 시기라는 것 또한 감안을 해야한다. 즉, 라그나로크 같은 맵이 사용된 것은 밸런스가 엉망인 블리자드 공식맵을 썼던 초창기 스타리그와 마찬가지로, 맵밸런스라는 개념의 부재로 인한 사건이라고 보는것이 타당하다. 애초에 당시 온게임넷에게는 의도적으로 테란을 밀어줄 정도의 밸런싱 능력이 없었다. 온게임넷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고, 테란인 임요환의 우승을 부커하기 위해서 테란맵을 도배한거라면, 저그맵인 레가시 오브 차를 넣을 이유가 없다.
초창기 스타리그에서 맵 밸런스가 제대로 조율되었던 리그는 거의 없다. 예를 들면 노스텔지아[36]를 뺀 모든 맵이 토스맵이었던 마이큐브배 스타리그도 토스를 부커질한 리그라는 소리는 듣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심지어 저그맵까지 끼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코카콜라배 스타리그만 부커 소리를 듣는 것은, 이러한 부커론 자체가 임까들이 만들어낸 악의적인 담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카콜라 배의 부커론을 비난하는 의견들은 하나같이 테란맵을 깔아서 '테란을 밀어줬다'가 아닌, '임요환을 밀어줬다'는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실제로도 이 리그에서 테란이라는 종족은 딱히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실제로 부커가 있었다면 단순히 선수 개인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경기 자체의 신뢰성까지 연결되는 심각한 문제이다. 단순히 운영 미숙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임요환을 의도적으로 부커하려는 의도였는지는 증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커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후자의 가능성만을 언급하며 의도적으로 온게임넷 스타리그 자체를 폄하하고 있다는 것에 주의하자.[37] 그런 논리대로라면 길로틴과 개마고원을 위시한 토스맵들을 썼던 마이큐브배는 토스 부커 리그이다.라는 주장이 있으나...
임요환 부커론의 근거는.
1. 팬들이 맵 발표 이후 다수가 밸런스 문제로 반대한 라그나로크 맵(t:z=13:1, z:p=0:1, p:t=0:1)의 사용을 강행하였다. 특히 엄재경이 강력하게 사용할 것을 주장했는데 맵 밸런스가 깨진 맵을 마치 별 차이 없는 양 포장하는 엄재경의 발언이 비난받기 시작하게 된 게 바로 이 시기 부터다.
2. 유일무이한 재경기 점수제(총 2경기 점수를 합산하여 높은 점수를 획득한 순서대로 진출)를 임요환의 16강 재경기에만 써먹고 폐지했다. 당시 재경기는 1테란(임요환) 2저그가 참여했는데 테저전만 2경기를 하는 테란과 달리 저그들은 테저전 1경기 저저전 1경기를 하게되는데 저저전의 경우 알다시피 가난하게 운영하며 저글링 싸움을 하다가 쥐어짜내서 레어를 올려 공중전을 하던 패러다임이 당시에도 쓰이고 있었고 자원이나 건물 면에서 테저전에 비해 점수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즉 처음부터 불공정한 제도였던 것이다.(그마저도 깔끔하게 2승으로 올라갔다면 논란이 없었겠지만 3인이 1승1패 동률로 재재경기가 나와야 하는 상황에서 점수제로 진출)
3. 당시 온게임넷에서는 맵 추첨을 공개방식이 아닌 비공개로 추첨하여 일방적으로 선수들에게 통보하고 있었다. 따라서 내부적으로 하려고만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맵 추첨 조작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4. 임요환은 온게임넷이 간판선수로 특별히 관리하던 선수임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온게임넷이 매번 공정한 운영을 한 것도 아니다. 그 예로 임요환의 3회 우승이 가시권에 들어오자 당시 온게임넷은 최초 3회 우승자에게 골드마우스+3연속 본선진출권+본선에 진출한 모든 선수들의 조편성을 최초3회 우승자가 3시즌 동안 마음껏 편성할 수 있는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발상이자 특혜를 파이터포럼 등에 기사로 내서 간을보다가 스타팬들의 반대여론이 빗발치자 슬그머니 취소한 적이 있다. 신한은행배 스타리그에서 임요환이 차기리그 진출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듀얼로 떨어지자 뜬금없이 본선 16강을 24강으로 확대한 사실도 있다.(차기 시즌 본선에서 떨어진 듀얼 진출자 중 추가로 8명을 더 뽑았는데 이 중 임요환이 포함되어 차기 시즌 본선에 진출하였다) 종목은 다르지만 워크래프트3 리그에서 이미 본선 진출자를 다 뽑아놓고도 외국 유명게이머들이 방한하자 그들을 리그에 참여시키기 위해 다시 본선진출자를 새로 뽑는 짓을 자행하여 사전에 본선에 진출했던 선수 중 일부가 탈락하여 본선 진출을 못하게 된 사건도 존재한것만 봐도 온게임넷이 항상 공명정대하게 운영을 했다는건 현실과 거리가 멀다.
5. 당시 저그 상대로 테란이 유리한 맵인 라그나로크(13:1)의 경기비중이 다른 테란 선수들에 비해 터무니 없이 높게 나왔다. 전 시즌에서 임요환이 강세를 보여 '요환 오브 발할라'라는 별명이 붙은 네오 홀 오브 발할라(앞마당에 가스없는 반섬맵)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연 얼마나 쓰여졌기에 부커논란까지 나왔는지 확인해보면.
16강 - 라그나로크 2경기(2승), 레가시 오브 차 1경기(1패)
16강 재경기(2승1패 3자 동률) - 라그나로크 1경기(1승), 네오 정글스토리 1경기(1패) (1승1패 3자 동률로 재재경기를 했어야 하나 점수제도입)
8강 - 라그나로크 2경기(2승), 네오 홀 오브 발할라 1경기(1승)
4강 - 라그나로크 1경기 (1승), 네오 홀 오브 발할라 1경기(1승)
결승 - 라그나로크 1경기(1승), 네오 홀 오브 발할라 2경기(2승), 네오 정글스토리 1경기(1패), 레가시 오브 차 1경기(1패)
결승포함 15경기 중 맵 비중이 라그나로크 7, 네오 홀 오브 발할라 4, 네오 정글스토리 2, 레가시 오브 차 2
유일하게 4가지 맵이 모두 쓰인 결승을 제외하면 10경기 중 라그나로크 6, 네오 홀 오브 발할라 2, 네오 정글스토리 1, 레가시 오브 차 1이다.
더구나 임요환은 결승을 포함하던 포함하지 않던지 간에 라그나로크와 네오 홀 오브 발할라에서는 전승을 네오 정글스토리와 레가시 오브 차에서는 전패를 기록했다. 라그나로크가 비공개 밀실추첨을 통해 이렇게 많이 배정되지 않았다면, 해괴한 재경기 점수제를 도입하지 않았다면 과연 임요환이 2연속 우승을 자신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참고로 임요환이 전패를 기록한 네오 정글스토리는 테란이 저그를 압도하는 상성맵이었다.)
6. 이런 부커론에 대해 엄재경은 터무니 없다고 주장하나 그 엄재경이 바로 저그가 테란 상대로 극악의 승률을 보인 라그나로크를 리그 시작전 빼자는 팬들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집어넣을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 장본인이다.
부커론 반론에 대한 재반론을 하자면
1.'임요환의 기량은 국내 프로게이머들 중에서도 최상위층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부커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다. 그러한 주장대로라면 우승은 100퍼센트나 다름없다는건데 그런 선수가 2승 1패로 재경기까지 갔을리가 만무하다(재경기 결과 1승1패 였으나 재재경기 대신 해괴한 점수제로 8강 진출) 당연히 3승으로 바로 8강 진출을 했었어야 논리적으로 맞는 설명이 아닐까. 게다가 16강 재경기 조차 점수제의 덕을 입지 못했다면 진출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부커질이 의미가 없다는게 말이 되는가. 결승전만 봐도 홍진호가 임요환 상대로 라그나로크와 네오 홀 오브 발할라를 제외한 두 맵에서 모두 승리하였다. 심지어 테란이 상성면에서 명백히 우위를 가진 네오 정글 스토리 마저 홍진호가 승리했다 1, 5 경기 맵이 홍진호가 승리한 맵이었어도 임요환이 무조건 우승한다 자신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코카콜라배에서 라그나로크 및 네오 홀 오브 발할라를 제외한 임요환의 승률은 0퍼센트에 불과하다.(임요환이 코카콜라배를 전승우승이라도 했다면 부커질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실제 결과는 어떠한가? 더구나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수라도 우승을 100퍼센트 자신할 수 있을까? 스타크래프트1 역대 최고 승률을 가진 이영호도 무적의 포스를 자랑하던 시기에 결승에서 역스윕을 당한적이 있다. 우승을 100퍼센트 자신할 수 있는 선수란 상상속에서나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온게임넷에서 몰랐을리는 만무하다.)
2. '당시 임요환의 전적을 뺀 테란의 총 전적은 저 테란 맵들을 끼고도 14승 13패로 거의 5할(...)이며, 심지어 부커론의 주요 골대가 되는 두 맵 중 하나인 홀 오브 발할라는 임요환 전적을 뺀 테저전의 경우 승률 5할 정도 되는 테란의 테란과 저그의 백중세.'라는 주장 역시 부커론의 본질과 거리가 먼 주장인데 부커론은 임요환(특정선수)에게 유리하게 리그가 운영되었다는 주장이지 테란(특정종족)에 유리하게 리그가 운영되었다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증거가 바로 임요환 부커론의 근거로 쓰일 수 있다. 라그나로크는 이미 대 저그전에서 공인된 테란 맵이었고 네오 홀 오브 발할라 역시 전 시즌에서 '요환 오브 발할라'라고 불릴 정도로 임요환이 잘하는 맵으로 소문난 맵이었으며 네오 버전으로 그대로 차기 시즌에 사용되었다 타 테란 선수의 경우 이 맵들에서 대 저그전 쏠림현상이 미미하나 유독 임요환만 저그를 많이 만났다.(라그나로크의 추첨비율은 아무리봐도 정상이 아니다.)
3. 마이큐브배 스타리그의 맵 구성을 가지고 코카콜라배 부커론과 비교하는것도 어이없는 주장이다.
마이큐브배가 그런 구성을 가지게 된 것은 이전 시즌들에서 토스 본선진출자가 많아야 2명 남짓되는 종족 불균형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었고 토스 유저들이 이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품었는데 맵이 토스에게 불리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당시엔 많았다.
여론의 압박과 종족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면 흥행면에서도 좋을게 없다는 판단 때문에 맵을 토스라는 종족에 유리하게 구성했을지는 모르겠으나 임요환 부커론 처럼 특정선수의 연속우승만들기 또는 특정선수 유리하게 밀어주기 와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밀실행정으로 비공개로 맵을 추첨하여 특정선수에게 유리하게 배정하는 것과 특정종족이 유리한 맵을 공개추첨 하는 것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참고로 마이큐브배에서 설령 온게임넷이 프로토스 선수 중 밀어줄만한 선수를 선택했다 가정했더라도 그런 선수는 당시 MBC게임 스타우트배 우승으로 절정의 포스를 뽐내고 마이큐브배 본선진출로 프로토스 최초 양대리그 동시우승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전성기를 맞이한 강민 정도인데 강민의 패러독스 대 저그전은 단 한 경기 뿐이었다. 반면 코카콜라배 임요환의 라그나로크 배정비율은?)
4. 부커질을 한게 사실이라면 오히려 저그가 유리한 맵이었던 레가시 오브 차를 몇 경기는 사용해줘야 자연스럽다.
100퍼센트 라그나로크나 네오 홀 오브 발할라만 나오게 추첨을 조작한다면 그거야말로 부커질을 자인하는 꼴이 아니고 뭐겠는가.
게다가 15경기 중 라그나로크+네오 홀 오브 발할라 = 11경기, 레가시 오브 차 2경기다. 4가지 맵이 모두 사용된 결승전을 제외하면 10경기 중 라그나로크+네오 홀 오브 발할라 = 8경기, 레가시 오브 차 1경기다 비율면에서 상대가 되질 않는다.
5. 당시에 맵 밸런스가 논란이 되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맵 공개 후 플레이를 해 본 유저들에 의해 밸런싱 파괴는 널리 알려진 상황이었고 러시거리가 너무 짧다. 스팀팩 한번쓰고 효과가 떨어질때 이미 적 기지 앞까지 도착하더라는 사실에 근거한 우스개 소리까지 나돌 정도였다.
그런 이유로 맵 사용 폐지 논란이 거세게 불었던 것이다.(결국 강행되었지만)
또한 단 한 경기(그마저도 임요환이 승리)만 경기가 진행되어 논란은 되지 않았지만 테란 vs 토스의 밸런스도 심각했다.
진출 통로가 너무 좁아서 토스가 조여지면 해법이 없었고 반면 테란은 언덕 시즈로 본진과 멀티가 완벽하게 동시방어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부커론이 사실인지 여부는 온게임넷 전현직 직원의 내부고발이라도 있지 않는 한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사전 공개 후 폐지요구가 극심했던 라그나로크 채택 강행, 테란이 점수가 높을 수밖에 없는 16강 재경기 점수제 도입, 전 시즌에 임요환이 두각을 드러냈던 맵을 차기시즌에 재 사용, 비공개 추첨으로 배정된 라그나로크와 네오 홀 오브 발할라의 대 저그전 임요환 배정 비율이 타 테란 선수에 비해 터무니 없이 높다는 사실과 그것이 임요환의 연속 우승에 호재로 작용했다는 점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일부에서는 부커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임까 내지는 임요환 안티로 몰아가고 있으나 그러한 주장이 나온것은 온게임넷의 과도한 특정선수 우대와 불공정하게 보이는 운영 때문이지 임요환에 대한 호오와는 무관하다.
타 선수들이 유사한 상황에 처했다면 그 선수들 역시 동일한 논란에 휩싸였을게 분명하다.
코카콜라배와 같은 시기 진행된 WCG 스타크래프트 국가대표 선발전을 10승 무패로 진출하여 2001 WCG를 10승 무패로 전승우승하게된다. 그후 2002 WCG를 우승하며 WCG 스타크래프트 부문 유일한 2연속우승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
2001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온게임넷 스타리그 3연속 결승진출에 성공하지만 아쉽게 준우승으로 마무리된다. [38]
이후 결승전 하루 앞두고 행사를 뛸정도로 여러 행사 [39]를 돌면서 기량이 떨어지는 등의 일을 겪으며 최강의 자리는 이윤열에게 물려주며 내려오게 되지만[40] 임요환은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었으며, 어느 정도 기량을 회복한 임요환은 적어도 2003년까지는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최상위권 테란으로 군림했다. 저그전, 테란전은 여전히 극강이어서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이윤열을 KT-KTEC 위너스 챔피언십 4강에서 꺾은 적도 있다. 하지만 토스전에서 약점을 보였는데, 이는 임요환의 토스전 전술적 능력이 시대에 점점 뒤쳐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흐르며 올림푸스 스타리그 4강에서 서지훈에게 0:3으로 패하고 스타우트 MSL 패자 4강 4차에서 이윤열에게 2:1로 패하며 빠른 APM을 앞세운 신세대 테란들에게 한수 아래로 뒤쳐지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부터 마이큐브 스타리그 16강 진행할 때까지 약 2년 8개월 동안 저그전 34승 10패, 승률 77%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성기인 2001년과 2002년만해도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저그 플레이어는 홍진호뿐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그를 학살하고 다녔다.
4.1.2 주춤, 하지만 쓰러지지 않으며(2003~2006)
2003년 말~2004년 여름 사이 본인의 성적이 정체기에 들어서고,[41][42] 2003년 말 후원사이던 오리온이 후원을 포기하면서 은퇴설이 돌았지만, 정작 본인은 오히려 본인보다 팀을 살려내기 위해 가장 힘쓰던 시기였다.[43] 한동안 4U라는 스폰서 없는 팀을 본인의 상금으로 운영하며 활동하던 임요환은 마침내 SK 텔레콤이라는 스폰서를 잡아냈다. 이 시기까지는 이전의 인기와 팀을 이끈 리더십이 인정받으면서 호감형 게이머로 자리잡고 있었다(단, 이전의 얼라이마인 사건 등으로 안티도 있긴 했다).
▲ 2004 에버 스타리그 결승전. 감동의 골마를 딴 임요환의 모습
그러던 중 챌린지리그 우승을 해 시드를 따내 진출한 EVER 스타리그 2004에서 화려하게 부활해 임진록에 임했고, 팬들은 기대를 만발했으나 보여준 것은 삼연벙. 때문에 양 선수 모두 여론상으로 큰 타격을 받았고, 결승에서 최연성에게 패한 뒤 우는 그의 모습이 나가자 정작 경기는 명경기로 잘 치렀음에도 임까들의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 결승전은 2004년 센게임 MSL의 머머전과 같이 '사제 대결'이라 하여 테테전 명승부로 회자되고 있으며 특히 결승 4경기는 역대 테테전 명경기중 하나이다.
"별로..별로 안좋아요"라는 명언을 남긴 최연성은 요환이형이 울었던 모습은 처음봤다며 자기는 그 눈물의 의미를 잘 알고있다며 임빠다운 모습을 보였다.티원의 슬플 팀킬의 역사 이후 최연성의 설명에 따르면 5세트에서 임요환이 진 이유는 실수로 탱크 하나를 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은 실수 때문에 우승을 놓쳤다는 사실이 얼마나 뼈아프게 다가올 지 프로인 최연성도 직감했던 것이다. 또한 최연성은 “내 우승을 축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마지막 결승전일지도 모르는 경기에서 모든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부분이 아쉬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유종의 미를 제대로 거두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유난히 역전승이 많았다. 815 패러독스 대첩이나, 2002년 WCG, 2005년 So1 4강전 등. 이는 아래에서도 설명하겠지만 임요환의 집요한 승부욕과도 관련이 있으며,[44] 이 때문에 명경기도 많이 낳았지만 그의 GG 타이밍이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라는 이름으로 승부에 세계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과연 놀림받을 일인가?[45] 과연 뭘해도 까이는구나 이후에 다시 성적이 떨어지면서 빠와 까 개념이 옅어지고 '올드 게이머'로만 기억되었으나 So1 스타리그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임요환은 많은 사람들이 '이젠 어렵다'고 생각했을 스타리그에서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스타리그 최다, 최고령 결승진출, 역대 최고 시청률(결승)을 기록하며 PC방 예선에서 듀얼토너먼트로, 듀얼 토너먼트에서 스타리그로, 그리고 스타리그에서 결승까지 단번에 오르게 된다. 그것도 무려 약점이라 여기어졌던 프로토스전에서 승리하면서...
특히 4강전 임요환 vs 박지호 전은 지금까지 회자되는 E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역전승 중 하나이다.(2006년 제1회 대한민국 e스포츠대상 최고 역전승 수상)
▲ 2005 so1 스타리그 4강(임요환 vs 박지호)
이 날의 역전극은 가공할만한 후폭풍을 일으켰다.마지막 승리와 함께 하늘을 향해 주먹을 뻗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임요환이 주훈 감독과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는 동안 경기장 내에는 첫 가을의 전설이 시작되었던 날 - 2001 SKY - 이 그랬듯 관중들이 승리자의 이름을 연호했다. 이번에는 전설의 주인공이 아니라, 전설에 도전하는 자를 위한 연호였다.
또한 당시 주요 4대 스타크래프트 포털(파이터포럼, 우주, 스갤, PGR)이 과다한 접속량으로 동시 마비되어, 길게는 수 시간에 걸쳐 이어졌으며 네이버 검색순위에는 10위권 내에 임요환, 온게임넷, 박지호, So1, 파이터포럼 등이 동시에 이름을 올렸다.
임요환의 팬카페에는 3000여 개의 글이 새로 올라왔으며 360여 명의 신규 가입자, 그리고 3만 이상의 회원이 방문하여 왕의 귀환을 축하했다.pgr 한니발님의 글
허나 다시 한 번 가을의 저주를 받아 안타까운 준우승. 그의 인기 요소 중 하나였던 '끊임없는 부활'은 일단 이 선에서 마무리된다. 이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에선 8강에서 최연성에게 패해 탈락, 24강으로 확대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에선 16강 탈락을 겪었으며 군 입대 직전인 프링글스 MSL 시즌 2에서는 8강까지 갔지만 입대 때문에 아쉽게 하차해야 했다.
모든 스포츠가 다 그렇습니다. 포기하면 거기서 끝이고...뭔가, 감동의 도가니탕을 만들려면 그 백번 중의 한번이 나올때가 그때인거니까
해서, 그 진광이랑 경기했을 때도 마찬가지인거에요. 거의, 저도 연습 때, 아비터를 써준 사람이 한명도 없었거든요.그래서, 다 캐리어전만 연습하고 아니면 셔틀 뭉탱이로 가서 막 드랍해가지구 골리앗..드랍쉽하고 이제 막 대등하게(비등하게?) 싸우거나 막 그래서 했던건데, 아비터는 처음 당해봤어요. 그래서 아주 안 좋은 상황까지 갔었는데 그것도 끝까지 이악물고 포기 안 하고 하다보니까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된 거거든요. 그런게 있어요. 저도 약간...상대가 엄청 강할 때, 아 이만 하면 내가 이겨야되는데, 아 이정도면 얘가 포기할 만한데, 포기를 이상하게 안 해. 잘하는 애가. 그러면은 되게 질려요. 막 질려가지고 내가 해야할 플레이도 잘 못하게 되고.
아마 도진광이나 지호도 아마 그랬을 거에요.
아 이정도 했으면 당연히 이정도 포기해야하는데, 의외로 막.. 더 이를 악물고 댐비는거지.
그러면 자기가 하는 플레이가 주눅들어서 못해요. 그럴때가 있어요. 그런데서 역전이 천천히 나오는 건데…
-- 임요환 아프리카 방송 중
유독 임요환 경기에서 역전승이 많이 나온 이유는 위와 같은 마인드 때문이라 생각된다.
vs 도진광 하이라이트. 2003 마이큐브 스타리그 16강전
2004 EVER 스타리그 임요환 스페셜.
한편 성적이 떨어진 이후에도 임요환은 팀에서 중요한 무게추 역할을 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입대한 이후 오버 트리플 크라운을 찍고 있던 팀이 순식간에 몰락해버린 것은 임요환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제대 이후 팀의 부활에 대해서도 임요환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는 꾸준히 나왔다.
'프로게이머는 몰라도 임요환은 안다'는 말처럼 이 시기는 파워 인터뷰, 공군사관학교 강연 등 게임 외 방송 활동이 활발했던 때였으며, '팬 클럽 60만' 등의 언급과 함께 수많은 프로게이머를 대체하는 대명사로도 자주 쓰였다.
4.1.3 전성기의 플레이 스타일
단지 한 경기에만 써먹고 그 이상은 절대 쓸 수 없는 빌드, 임요환 선수는 굉장히 중요한 경기에서도 과감하게 쓰죠!- 엄재경 해설 (2005 신한은행 스타리그 16강 박성준과의 신 815 경기 中)
임요환의 가장 기억에 남는 자질 중 하나는 그의 놀라운 창의력이다.- The Pimpest Plays (Gamers Extreme and SCLegacy.com (2002~2007)) 링크
임요환의 게임은 이기든 지든 재밌다. [46]
임요환이 만든 101가지 테란전략링크[47]
방송에서 수많은 자신만의 전략을 선보였고, 스타크래프트 2로 전환할 당시까지도 허를 찌르는 전략을 주력으로 많이 들고 나왔다.[48] 그야말로 날빌의 선구자. 다만 임요환의 빌드는 이후 '날빌'을 넘어서 '정석'으로 편입되는 경우나, 기존에 버림받던 유닛들이 테란의 빛으로 대두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이러한 예로는 그의 마이크로 컨트롤을 통한 견제에 활용되었던 벌처(이건 임요환만의 공은 아니지만), 드랍십 등이 잘 알려져 있지만, 골리앗 등의 유닛도 그의 공을 입었다. 임요환이 골리앗을 활용하기 전까지 골리앗은 그저 걸어다니는 터렛이었다. 임요환이 골리앗을 사용한 후에 바로 패치된 탓도 있긴 하지만, 그는 골리앗의 아버지라 불릴 만한 존재이다.
또 빌드나 가격, 제대로 활약할 수 있는 타이밍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유닛이나 유닛 스펠도 고집스럽게 사용하여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스트의 락다운과 사이언스 베슬의 디펜시브 매트릭스. 고스트의 경우 생산 조건이 몹시 까다롭고, 그런 까다로움을 감수하고 생산을 하더라도 크게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유닛이다. 그러나 이를 고집스럽게 뽑아 락다운의 긴 사거리를 이용해 적의 시즈탱크를 무력화시키거나, 리콜하러 오는 아비터에 대한 방어, 캐리어나 리버 등의 고급 기계 유닛을 묶어놓는 등. 스스로 고집스럽게 고스트를 잘 써먹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핵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사이언스 베슬의 EMP의 지원을 받고 넥서스를 한방에 깨버리는 임요환의 플레이는 단연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
디펜시브 매트릭스의 경우에는 대 프로토스 전에서는 EMP의 중요성, 대 저그전에서는 이레디에잇이 가지는 저그 고급 유닛의 저격의 위상으로 그렇게 까지 선호되는 유닛 스펠은 아니었으나 임요환은 이것도 꽤 유용하게 써먹었다. 디펜시브 매트릭스를 사용한 마린 한 마리가 럴커들의 어그로를 끄는 사이 다른 마린들이 럴커를 처리한다든가, 드랍가는 드랍십에 따라 붙어 적진에 상륙한 병력에 디펜시브를 걸어 오랫동안 귀찮게 한다든지. 이레디에잇을 안 쓴것도 아니었고 본인 역시 성동격서 식으로 베슬의 지우개를 밀어넣는 전략도 선호했으나, 디펜시브 매트릭스는 그의 미세한 단일 유닛 컨트롤과 맞물려 다른 프로게이머들보다 화려하게 사용되었다. 이는 이후 후대 게이머들이 한방 전투에서 집중 공격을 받는 탱크에 디펜시브를 걸어 화력 지원을 해주는 식으로 응용해서 제법 유용하게 써먹는 계기가 됐다.
또한 소수 유닛에 대한 마이크로 컨트롤이 스타크래프트 역사상 최고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매우 뛰어나다. 드랍십 컨트롤은 임요환의 드랍십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심지어 팬 카페의 이름도 '임요환님의 드랍십이닷-_-'이며 임요환이 운영하는 PC방 이름 역시 '임요환의 드랍십'이다. 이른바 '드랍동', 초기 게이머들의 팬 카페를 ~동으로 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진호동', '정석동' 같이 이름이 아닌 별명으로 불린 팬 카페는 그의 것이 유일하다.
한때 배틀넷에는 '임요환 마린 컨트롤'이라는 유즈맵도 많이들 돌았다. 물량보다 컨트롤로 승부하는 대표적인 게이머. 대신 '임즈모드'로 불리는 시즈탱크 컨트롤은 그의 토막 성향을 대변하는 유력한 근거이다.
그의 또다른 무기로는 절대 타이밍으로 불리는 무시무시한 타이밍 감각이 있다. 과거 임요환이 테란의 신성으로 발돋움하던 시절, 수비 위주로 휘둘리던 다른 테란과는 다르게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병력으로 적의 약점을 기막힌 타이밍에 찔러 승리하는 경기가 많았다. 주훈과 초시계를 들고 연습했다고 하며 2마린 1메딕 1파이어벳 타이밍에 뛰쳐나간 바이오닉 병력이 성큰이 채 지어지지 않은 저그를 우주로 보내는 경기가 자주 나왔다. 그가 그 나이에도 5할 승률을 유지하는 것은 전략과 이 기막힌 타이밍 감각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단, 정전 배럭이라 불릴 정도로 후반 운영이나 생산 능력이 불안하다는 약점이 있다(컨트롤을 얻는 대신 물량을 포기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실 임요환의 전성기로 평가받는 2001년까지는 물량에 대한 개념이 크게 없던 시기였기 때문에 전성기 당시에는 물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별로 받지 않았다. 정확히는 물량의 폭발이라는 개념이 종족을 불문하고 도입된 시기는 임요환의 뒷세대라고 볼 수 있는 박정석, 이윤열 등의 전성기 이후 이들의 플레이가 보급화 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그 전까지 물량은 오직 저그의 것이였으며, 테란은 수비와 병력의 조합의 김정민식 플레이나 컨트롤 위주의 임요환 플레이가, 프로토스는 소수 정예의 하드코어식 러시 아니면 병력의 비율을 맞춘 뒤 스톰을 가미한 올-인 한타식 임성춘의 플레이가 근원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박정석의 데뷔 리그인 코카콜라배에서 사람들이 본 시선(토스인데 멀티 먹고 병력만 뽑으려고 하는 기이한 선수.)이나 이윤열의 등장에 대한 시선(물론 현련한 컨트롤 또한 주목받았지만 가장 주목받은 건 그 컨트롤 뒤에 쌓이고 있는 어마어마한 물량이었다.)을 보면 그 당시 테란이 물량이 달린다는 소리는 황당한 말에 가까웠다. 되려 그것을 두고 제2의 타이밍 ━컨트롤에 집중하느라 쌓인 자원으로 한타가 벌어진 이후 생각보다 빨리 병력이 다시 공격을 온다거나 자원줄이 거의 끊긴 상황에도 어느 정도 병력이 꾸역꾸역 나오는 것 등━ 이 존재한다는 말까지 듣기도 했다. 이는 그의 집요한 승부욕과 연관되어 기이한 역전승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임요환의 물량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게 되는 것은 임요환이 압박과 타이밍을 지향하는 게이머이기 때문이다. 이 압박이 잘 먹혀들면 경기가 수월하게 풀리지만, 실패하면 기회비용 면에서 커다란 손해를 보게 된다. 임요환은 초반 압박의 대가로 SCV 생산을 지불했고, 이것이 중후반 물량에서 약점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임요환도 잘 째고, 별다른 난전 유도 없이 멀티태스킹이 없이 진행하는 상황에서는 200 빠르게 채우고 진출한다. 사실 밥만 먹고 게임만 하는 프로게이머가 물량을 정말 그렇게 못 뽑아내겠는가? 물론 난전 상황에서는 멀탯이 안돼서 못 뽑긴 하지만 토스전 약점으로 물량이 거론되는 경우가 많은데, 스 1에서 임요환의 토스전의 문제는 일제시즈로 대표되는 전술적인 문제가 크다. 토스전은 저그전과는 달리 하나하나의 유닛의 체력이 아주 높기 때문에 [49]손 빠르기나 컨트롤 보다도 자리 잡기가 훨씬 중요하다. 이영호나 최연성이 토스전에서 강력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
임요환의 생산력의 약점을 드러내는 별명으로 '저축테란'이 있다. 임요환의 전술적 우선순위가 자원배분 및 생산의 매크로 컨트롤보다 교전시 병력 관리 등의 마이크로 컨트롤에 맞춰져 있기에, 중후반 난전 상황에서 정교한 컨트롤과 창의적인 공격으로 승점을 따는 데에는 능하지만 반대급부로 공방에 치중하는 순간 물량확보에 약점을 보이는 특성을 지니며, 중후반 자원관리가 되지 않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임과 콩을 모두 까며 진행했던 티빙 스타리그 마지막 임진록 당시에도 불리한 전황 가운데 자원이 쌓이는 임요환을 두고 전용준 캐스터가 "임요환의 장점은 저축이에요! 항상 잔고가 빵빵해요 임요환은요!"라 외치며 스덕들에게 큰웃음을 주었다.
여담으로 임요환의 플레이를 본 블리자드의 한 직원이 "난 테란을 저렇게 만든적이 없다!"라고 경악을 했다 한다. 그만큼 임요환이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재치있는 전략, 전술적 플레이의 대가라는 증거.
4.1.4 공군 ACE(2006~2008)
2006년 10월 9일 전산 특기병으로 공군에 입대하여 공군 게임단인 공군 ACE에서 활동하다 2008년 12월 21일 전역하였다. 임요환공군전산소입단공군에이스창단식
임요환의 군입대를 앞두고 해외사이트인 팀리퀴드에서 응원과 황제의 귀환을 원하는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군입대반응
사실 임요환의 입대로 공군 ACE가 탄생했다는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50] 고참이 송병석과 아이들 사건을 비롯하여 딱히 사이가 좋다고는 말 못하는 강도경이라 임요환이 까일것을 염려한 임빠들이 선물 드랍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는지 여러 매체의 인터뷰로 미루어 보았을 때 강도경에게 임요환이 많이 까인 것 같다.
예전에 김정민이 했던 프로게이머 토크쇼 스타7224 5회 1부 후반부와 2부 초반부를 보면 평소에는 비교적 차분하시던 그분께서 강도경 이야기만 나오면 분노에 사무친 어휘를 구사하시는 것을 볼수 있다. 공군 시절 강도경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평소 미디어 앞에 나왔을 때와 같은 인자한 모습이 아니라, "내 그놈을 가만 두지 않으리라!"라고 할 정도로 그에 대한 뼈에 사무친 분노를 매우 솔직하게 드러냈다. 강도경이 임요환의 생일날에 생일빵을 했는데 임요환을 모포로 덮어 놓고 단순히 한 발로 밟는 것이 아닌, 점프 후에 두 발로 임요환을 내리찍는 아주 격렬한 생일빵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생일날에는 생일빵을 없애버리는 주도면밀함을 보였고, 생일빵이 폐지된 강도경의 생일날이 공군 에이스의 분위기가 최고로 안좋았던 날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서 임요환은 강도경 생각만 하면 뒷골이 땡긴다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현재 강도경과는 사이가 나쁘지 않다고 한다. 심지어 강도경이 KT의 코치가 될수있게 도움을 준것이 그분이라는 소리도있다. 역시 생불
우선 수없이 많은 이벤트전을 함께 다녔던 임요환 선수가 기억에 남는다. 프로리그 경기 하루 전날인데도 모 부대에서 있는 이벤트전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의지가 강하고 싫은 소리 잘 안하는 임요환 선수도 하소연할 정도로 스케줄이 빡빡했다. 당시에는 코치도 없어서, 군내 행정업무, 이벤트 참석, 경기분석… 팀 해체설까지 나돌아 선수들도 나도 많이 힘들었다.- 군 관계자
공군 에이스 창단 직후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경기가 있는 날에는 서울까지 몇시간을 오가는 거리를 이동하고 업무시간에는 공군 업무를 보고 그 외 시간에 연습을 하는 등.. 특히 임요환은 각종 행사와 캠프에 끌려다녔다. 행사의 황제
그 상황 속에서 2007 프로리그 전기리그에서 3.3혁명으로 급부상한 김택용에게 승리하여 팀을 승리로 이끌고,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마재윤을 이기고, 천적이라고 여겼던 강민과 슈퍼루키 이영호에게 하루에 2승을 챙기며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한빛과의 에이스결정전 출전 윤용태와 경기에서 고스트의 락다운을 보여주며 예술과 같은 승리를 얻었다. 공군에이스의 존폐위기가 해결되었던 시기로 전용준 캐스터의 "대한민국 공군에이스가 왜 필요한지 임요환이 공군에이스에서 어떤 인물인지 이스포츠에 어떠한 인물인지 제대로 보여줬어요" 라는 흥분의 해설과 임요환의 세레모니가 유명하다. 또 이 경기를 통해 공군은 잠시나마 10위를 기록했다. 공군밑에 한빛과 이스트로 최종순위는 11위로 공군역사상 유일하게 꼴지를 하지 않은 시즌이기도 하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 리그에서 11승 10패로 염보성과 함께 테란 다승 공동 1위로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그 분의 나이와 열악한 군생활을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사실이 아닐수없다.
특히나 명경기가 많은데 완벽한 테테전을 보여준 구성훈, 민찬기, 안상원, 고스트를 사용한 윤용태전 등등... 또한, 이른바 망했어요로 잘 알려진 박정욱과의 경기와 강민 핵관광 경기도 이 무렵에 있었다.
스타뒷담화에서 김정민 해설은 공군에서의 임요환에 대해 "요환이형 같은 경우는 사실 대단하다는 말도 이제는 지겨울수도 있는데 최근 경기를 제가 프로리그 중계를 했잖아요. 게임을 몇년을 했어요. 요환이형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제가 처음 요환이형을 봤을 때 고등학교 갓 졸업했을 때 그때랑 똑같아요 .매 경기마다 질리지 않는 경기를 보여줄것 같은 다른 게이머들이 많이 배웠으면 좋겠어요. 게이머들이 다들 요환이형을 존경한다고 하잖아요. 그 존경하는 모습을 닮을려고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라는 이야기를 했다.
또 서지훈은 임요환이 프로리그에서 잘하는것을 보고 나도 할수있다는 생각을 갖게한다고 이야기했고 이에 김정민은 괴물같은 인간이라고 임요환을 표현했다. 이처럼 임요환은 아슷트랄한 5할 본능으로 수많은 명경기를 만들어냈고 지켜보는 올드들 에게조차 감명을 주었다.
곰티비 2007 프로리그 조회수를 보면 1위부터 10위까지 단 2경기 제외하고 모두 임요환의 경기라는 것을 알수있다. 양산형 경기속에서도 전략으로 빛이 발한시기로 군대에 있어도 그의 존재감과 인기를 알수 있다. 2007 프로리그 TOP 10
4.1.5 전역 후 스타크래프트 1 복귀(2009~2010)
전역 후 SKT T1으로 복귀하였으며, 코칭 스태프로 활동했다. SKT T1의 주훈 전 감독은 임요환이 제대해서 친정 팀에 복귀했을 때 선수로서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코칭 스태프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감독직을 물려줄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는 감독이 박용운으로 바뀐 뒤에도 계속된 안이었지만, 최종적으로 본인이 이를 포기해서 없던 일이 되었다.
2009년 01월 17일 제대 후 프로리그 첫번째 출전에서 패배하였으며, 2009년 07월 12일의 두 번째 출전에서도 정ㅋ벅ㅋ자 박지수를 만나 패했다. 초반부터 중반까지 나쁘지 않게 운영하며 정ㅋ벅ㅋ자를 몰아세웠지만 후반에 나온 정ㅋ벅ㅋ자의 드랍십에 털리며 GG. 경기 후에 인터뷰에서도 9까지는 잘했는데 마지막 1에서 털렸다며 스스로도 '욕먹을 경기'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굴욕인 것은 자막의 이름이 임요'한'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 자막 담당 PD의 안위가 걱정된다.
2009년 07월 13일 e - 스타즈 헤리티지 매치 박정석과의 경기에서 물량전 끝에 제대 후 첫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로써 박정석과의 전적은 15:15가 되었다. 그칠 줄 모르는 5할 본능. 7월 14일에는 오영종을 격침시키며 토스전 2연승을 달리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저 둘은 군인 신분이고, 현역 프로 선수와의 승리는 아직 미지수인 상황.
참고로 대 박정석전에서는 얼굴이 붉어지고 이마에는 핏줄이 섰으며 땀까지 뻘뻘 흘리는, 한 마디로 긴장한 상태에서 아슬아슬하게 이겼기 때문에 과연 이것을 부활의 신호탄으로 보아야 할지는 미지수. 심지어 입도 닫았다! 시합에 집중해 만족스러운 플레이가 나올때는 눈이 풀리고 입이 벌어지지만, 긴장하거나 경기가 불리하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눈이 또랑또랑해지고 입이 닫힌다...
대 오영종 전에서는 그냥 아무런 재미도 감동도 없이 완만하게 승리(so1 스타리그때 이렇게 했으면...). 7월 24일에는 몸 담았던 팀 콩군 공군 ACE 홍진호와의 경기를 펼쳐 핵 2연발을 날려버렸다...홍진호에게 2연발이라니 뭔가 노린건가
인터뷰를 들어보면 정명훈에게 장인정신이 담긴 벙커링 전략을 개발, 전수하였다. 그리고 정명훈은 이걸로 화승을 요단강 건너로 보내버렸다. 보통 벙커링이 아니고 상대에게 더블 커맨드 페이크를 주고 엇박자에 들어가는 악마와 같은 개량형 벙커링.
14일 '09-10 프로리그 맵테스트'에서 임요환이 박명수를 잡아내고, 압도했다. 더군다나 사용된 '로드러너'는 오프라인 맵 테스트에서 저그가 테란에게 15승 1패를 기록한 캐저그맵이었다.
9월 26일 돌아온 임진록에서 우승하였다.
하지만 스타리그와 MSL에서 각각 열린 예선전에서는 탈락해버렸다.
10월 25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1라운드 SKT T1과 화승 OZ의 경기에서 임요환은 박준오를 상대로 2세트 경기에 출전한다. 상대가 아직 많은 경험을 쌓지 못한 신인 선수였고 워낙 T1의 엔트리가 팬심을 자극하도록 짜여져 있었던 만큼 이벤트성 출전일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고, 일부 팬들은 퇴물 선수가 얼굴마담 + 코치 노릇이나 하지 뭣 하러 출전했느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당일 양 팀의 엔트리는 1세트 박재혁 vs 이제동, 2세트 임요환 vs 박준오, 3세트 김택용 vs 김태균, 4세트 정명훈 vs 손주흥의 순서로 짜여 있었다. 초반 1·2세트를 내주더라도 후반 3·4세트에 포진한 에이스급 선수들을 통해 차후를 도모하려는 의도였던 듯.
그러나 예상했던 것보다 임요환의 경기력은 중간 이상이었고, 임요환이 따로 준비해온 듯한 독특한 빌드와 파이어뱃 위주의 특이한 병력 구성, 입구에 홀드 상태의 메딕을 배치한 메딕 장판파 등 여러 볼거리가 많아 경기 내용은 상당히 재미있었다는 평가가 다수를 이루었다. 무엇보다도 핵ㅋ관ㅋ광ㅋ. 경기 도중, 제2멀티에서 뜬금없이 뉴클리어 사일로가 건설되기 시작하자 현장에서도 TV앞에서도 스갤에서도 환호성이 들려왔다. 테란이 아직 완전한 승기를 잡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만약 다른 선수가 그랬다면 이기든 지든 비판을 면치 못했겠으나 이번엔 임요환이 했기에 달랐던 듯. 실제로 그 핵은 아직 여력이 남아있던 박준오를 정신적으로도,자원적으로도 안드로메다에 보내버렸다.
'앞으로는 핵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겠다'라는 경기 후 인터뷰를 한거로 보아 뭔가 또다시 새로운 걸 준비하는 듯. 그리고 이것은 정명훈이 2연핵을 씀으로써 증명되었다. 관광용이긴 했지만.
10월 31일 IEF 2009 조별 리그에서 취미로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우크라이나 32세 직장인 등 외국 게이머들에게 패하고 광탈, 팬들은 임토 히로부미라는 별명을 지었다. 하지만 그 직전 김택용과 매정우가 중국 게이머들에 패하고 광탈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일명 코요토미 매데요시 때문에 크게 까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반쯤은 얼굴 마담인 임요환과 코/매는 기대치가 달랐기 때문. 이런 난장판에서 살아남은 건 송순신과 의병장 이철민이었다. 11월 24일날 프로리그 경기에서 홍진호와 경기함으로써 임진록이 이루어졌는데 프로리그 공식 무대에선 첫 대결이다(이전 포스트시즌에서 한 번 있었긴 했다).
11월 24일 적절하게 병력을 모아서 한방 병력을 보내는 전형적인 테저전을 보여줬지만, 하이브를 늦게 타면서 저글링과 러커를 모은 홍진호의 한방 '포... 포풍'으로 임요환의 병력이 잡아먹히면서 전세가 기울고, 핵을 홍진호의 멀티에 쐈지만 져버렸다. 경기 직전까지는 웃다가 지고 난 이후에는 울먹이는 표정이라 까였다.
사실 까이는 축으로 보이지만 은근히 까면서 옹호도 한다. 이래저래 임요환, 홍진호 등의 인물은 이미 스타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들이기도 하고...
2010년 2월 4일-5일 벌어진 양대 PSL에 참가했는데 특이하게도 경기에 집중하고 싶다며 자신의 경기가 방송되는 것을 거부했다. 하지만 결국 탈락. 그래도 양대 예선에서 모두 조 4강까지 찍었다.
그리고 2010년 설이 지난후 자신의 거취를 다시 생각해보겠다는 인터뷰를 했다.
일단 위치는 선수라기 보다는 최연성과 같은 플레잉 코치라고 하는 게 더 맞을 정도. 이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벤치나 달구면서 억대 연봉 가로챈다고 말이 많지만 그건 섣부른 판단이다. 임요환이 T1에 있으면서 가지는 존재 가치와 그가 가지고 있는 올드 팬 숫자, 그리고 팀 내에서 임요환이 맡은 후배들의 멘토 역할 때문에 확실히 그는 적어도 돈 받은 것만큼 착실히 일하는 존재이다. 물론 거기에 MSL이든 스타리그든 진출하여 16강에 들어주고, 더 나아가 우승까지 해서 SKT T1 최초 골든 마우스까지 타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임요환이 나와주길 바라나 티원이 팀 사정이 막장이라 나올 기회가 없는 실정. 하지만 만약 그가 자기를 그나마 써줄 팀을 찾아 간다면서 다른 팀으로 가버린다면, 일단 T1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올드 팬 감소의 위험이 있다. 임빠가 많이 줄었다곤 하나 아직 많다.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아 앞에서 날뛰질 못하는 것뿐. 또 팀 내 멘토를 잃게되는 일을 동시에 겪게 될 것이, 임요환이 공군 갔을 때의 티원이 어떻게 됐는지 보면 대강 짐작이 될 것이다. 물론 복합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당장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스캔들이 존경할 만한 멘토를 가지지 못한 팀에서 발생했다는 걸 생각해보자.
그러던 와중에 2010년 4월 13일, 뜬금없이 탤런트 김가연과 결혼설이 났다.(일단 열애는 사실이란다.) 이전에도 김가연과의 열애설이 나긴 했지만 발표 타이밍이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스캔들이 터져 퍼져나가기 시작했던 시기인지라 승부조작 사건을 덮기위한 방패막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실정. 덕분에 스타판의임벙커, 임논개, 살신성임 , 황제의 타이밍, e스포츠의 수호자 등으로 불리며 반 농담으로 칭송 받기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임빠와 임까들은 모두 한입을 모아서 "아무리 지금 그분 나이 30세라 하더라도 8살 차이 + 중3 딸내미를 가진 이혼녀와 결혼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 하다!"며 모두 함께 절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토를 다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다가 그의 활동에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있는 점이 높이 사면서 둘에 대한 관계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추세이다. 프로리그 경기 때도 그렇고 광안리 결승전에서도 커피와 과자, 빵등을 싸오는 등 임요환 개인만이 아니라 SK팀 전원에게 여러모로 보살펴 주는 모습이 보인다. 최연성과도 친분 관계가 두터우며 그를 매우 편하게 '연적생'이라고 부르기도....
실제로 조작관련 논란이 한동안 확실히 잠잠해졌다. 폭풍우와 같은 떡밥이 많이 차분해졌던 느낌. 오오 위대한 임커링의 힘. 그리고 그분의 유일한 라이벌도 연이어 강민의 올드보이에서 떡밥을 터트려 처음 터졌을 때보단 희석된 분위기였다. 물론 5월 16일 승부조작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는 논란이 눈덩이처럼 커졌으나, 이건 임요환 홍진호 할아버지가 와도 못막으니...
프로리그 4라운드 KT 롤스터전에서 진가를 보였다. 직접 나온건 아니지만 매치포인트에서 꼼딩의 경기를 철저히 분석해서 그 파해법을 정명훈에게 건네주었다고... 이로써 매치포인트에서 리쌍 모두를 격침시켰다.
2010년 5월 8일에는 프랜차이즈 카페인 카페 베네의 성대지점을 개업해 카페점장이 됐다. 일단은 이름만 내건 점장이 될 것 같긴 하지만 은퇴 후를 준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덕들은 '카페에서 커피콩을 볶는다'며 카페 개업은 운명이 아니냐는 드립을 치기도...
컨디션 난조 및 실력 저하로 양대 리그 예선에 불참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스덕들은 드디어 은퇴인가라는 추측을 내놓았다. 하지만 2010년에 승부조작 사건 중에 터진 열애설로 인한 후폭풍과 프로리그에 집중하여 다시금 재기를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왔다. 그러나 스갤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임요환의 출전은 기대하긴 글렀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 나오지 않으니 기대하지도 까지도 못하겠다며 떨어져나가는 팬들도 많다. 팀을 탈퇴하는 한이 있더라도 빨리 스타 2로 전향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
한때 09-10 신한은행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나올지 나오지 않을지 꽤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2010년 8월 7일 광안리 결승전, 팀원이라서 나오기는 나왔으나 정작 경기에는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더구나 이번 결승전에는 애인인 김가연 그리고 자신의 부모까지 몸소 찾아왔었는데도 나가지 않았다. 그의 경기 출전을 기대하던 팬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고, 앞으로의 그의 프로게이머 생활에도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다. 이후 인터뷰를 통해 30대 프로게이머 선언이 빈말에 그쳐 팬들이 상심하게 만든데 대해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이때 가장 큰 변화를 오게 되었고, 무언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4.2 스타크래프트 2 진출(2010~2012)
2010년 9월에 열린 프로게이머 정기 소양 교육에 장염을 이유로 불참했고, T1의 일본 워크샵에도 불참했다. 이미 9월부터 스타크래프트 2로 전향한다는 설이 파다했고, 그로 추정되는 배틀넷 ID까지 거론되는등 상당히 신빙성이 높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거취를 밝히지 않아 속을 태우다가, 공식적으로 10월 9일에, 진행 중인 GSL 시즌2 예선에 참가한다는 공식발표가 나왔다. 10일, 예선전 2일차부터 참가.
사실 APM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올드 게이머들에게 스타 1 보다는 스타 2가 유리한 면이 있었다. 인터페이스가 간단하고 일꾼 컨트롤이나 유닛생산 같은 것들이 획기적으로 편리해졌으며 부대 유닛수는 '12 → 무한대'라 전략에만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게 되면서 외국 유저 참여 수도 늘었다. 임요환 본인도 온게임넷 드리머 인터뷰에서 자신의 초반 전략이 다 막혀버리고 손이 부대 지정 1~3 정도에 익숙해져 있는 자신에게 200 vs 200 싸움은 익숙하지 않아 조급해지면서 승률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 발표 이후 'GSL 그게 뭐였지?' 같은 반응을 보이던 사람들도 '임요환이 나온다면 봐야지' 같은 반응을 보이며 역시 황제의 위엄을 느끼게 해줬다. 무엇보다 위의 공식 발표에 담은 아래의 메시지는 그가 왜 e스포츠계에서 '황제'라는 고유명사에 어울리는 선수인지를 보여주는 명문이라고 평가된다.
"이번 GSL 시즌2를 통해 새로운 분야에 발을 내딛게 되는데 무궁무진하게 발전될 '스타2'의 새로운 역사에 개척자 중의 한 명으로 남고 싶습니다. 또, 앞으로 '스타2'를 통해 팬들에게 좋은 경기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 뿐이지만 때로는 성적이 좋지 않거나 실망스럽더라도 승패를 떠나 노력하는 마음을 봐줬으면 합니다. 저를 비롯해 전향 선언 후 새로운 출발선에 선 모든 이들을 응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 '새로운'이라는 단어는 제게 항상 열정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이 열정이 그대로 팬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이것이 제가 20대 프로게이머일 때의 모습과 다른 30대 프로게이머로서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입니다. 저는 '스타1'을 그만두고 '스타2'로 전향하는 것이지 결코 프로게이머에서 은퇴하는 것은 아닙니다" |
자신의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동안 이윤열, 박성준 등을 비롯해 먼저 스타크래프트에서 스타크래프트 2로 전향하며 개척자를 자처한 후배들에 대한 팬들의 응원을 정중하게 요청했을 뿐만 아니라, 전향한 프로게이머들을 함부로 은퇴 처리하고 기록을 삭제하는 것도 모자라 '상금 사냥꾼', '후배와 e스포츠에 대한 배신자' 등으로 모욕한 KeSPA와 UNN들까지 점잖게 꼬집는 뉘앙스의 발언이었다. 게다가 이 바닥에서 임요환이 가지는 무게감이라는 걸 생각하면 전향했다고 협회나 UNN들이 까는 건 자살 행위. 당연히 e스포츠 커뮤니티는 열광의 도가니.
그러나 데일리e스포츠 등은 이벤트 리그 참여라고 황제의 심기를 건드리며 디스질을 했다. 이후 황제에 대한 반란군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국내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스타 1 e스포츠 대회와 프로게임단을 버리고 이제 막 출시된 스타 2의 이벤트 대회를 선택했다", "공군 게임단에서 군 생활을 하는 등 기존 e스포츠계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대우와 혜택을 받았으면서 위기에 직면한 현 e스포츠계를 외면하고 스타 2로 가버린 건 배신이다", "이영호, 이제동 같은 후배 선수들은 e스포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대선배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스타 2로 옮겨가는 모습이 씁쓸하다."스2는 E스포츠 아니냐? 등등 개드립이 나왔다. 물론 황제를 능멸한 대가로 폭풍 같이 까였다.
위에서 말했듯 SK 프론트 측에서는 임요환에게 지도자의 길을 권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감독 자리라는 편한 길이 있음에도 선수 생활을 계속해 나가길 원한 것이니 기득권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되고, 엄연히 계약 만료 후 다른 선택을 한 것인데 배신 운운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 이건 회사로 치면 계약 끝난 사원이 "관리직으로 올려줄게, 몇년만 더 있어라" 라는 제안 거절하고 더 장래성있는 회사에 취직했더니 배신했다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거다.
2010년 11월 3일. 더 이상 협회 소속 프로게이머가 아닌, 아마추어로서 자격이 전향되었고, 케스파는 당연히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반면 임요환은 그러거나 말거나 발표 직후 인텔의 후원으로 개인 후원 2억 원을 포함한 5억 원 후원으로 새로운 게임단을 창단하기로 결정했다. 그야말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발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11월 9일. '슬레이어스' 클랜을 결성했다.카페 주소 초기 가입 조건은 다이아몬드 리그 1800점 이상이었으며, 타 팀과 클랜에 가입된 경우엔 가입이 제한되었다. 넷카마 방지를 위해 여성 신청자는 직접 전화한다고 한다 Play XP에도 클랜 만든다고 글을 올렸으나, 이 글에 찌질이가 달라붙어 인증 드립을 치다가... 성지가 되어버렸다. #성지
선수로서 자세한 활동 기록은 임요환/스타크래프트2 항목 참조.
4.3 SKT T1 코치 복귀와 감독 승격(2012~2013)
2012년 8월 16일 SlayerS를 떠나 친정팀 SKT T1의 테란 전담 코치로 영입되었다. 디스이즈게임 등의 매체에서는 은퇴라고 표현했으나 김가연 슬레이어즈 구단주의 트위터에 따르면 은퇴는 아니며, 향후 선수 복귀 가능성도 있다는 듯. 자세한 사항은 8월 17일 SK 텔레콤 본사에서 있을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그리고 1월 26일, 6연패를 달성하며 험난한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4라운드 시작 직전인 4월 3일, SK텔레콤의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사실 그 전부터 거의 감독이기는 했다. 수석 코치로 활동했으니...
감독이 되고 나서 인벤에서 진행한 인터뷰
12-13 프로리그 종료 후 얼마 되지 않아 2013년 9월 26일, 건강 등의 일신상의 이유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스타2 프로게이머 크리스 로랑줴는 임요환이 사퇴를 발표한날 트위터를 통해 From what conversations I remember with boxer. He was initially suppose to only be the terran coach for SKT.After some time he was suppose to coach all members, which he said was really hard for him; to much. He said it was a big burden on him. 라는 말을 남겼다.
은퇴한 김택용의 인터뷰를 보면 "내가 은퇴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요환 감독님이 팀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며 "마치 나 때문에 그만 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고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나를 위해 모험을 서슴지 않았던 임요환 감독님께 항상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라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던 좋은 결과만 있었으면 좋겠다" 등등 임에대한 미안한 마음과 감사함을 밝혔다.
또 정윤종은 "임요환 감독님이 정말 유명하다 보니까 관심을 많이 받았잖아요. 경기 하나에 팬들의 반응이 도가 지나치다 보니까 고생을 많이 하셨죠. 관심으로 포장을 한 거지 너무 심하게 비난을 했어요"라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고 원이삭은 "당시에 (김)택용이 형을 경기에 내지 않는다고 욕먹었잖아요. 실제로 군단의 심장을 연습하라고 지시하셨었어요. 저희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 감독님이 비난을 받고 있으니 정말 안타까웠어요. (정)명훈이 형도 연패를 하면서 계속 출전했던 이유가 정말 단순했어요. 팀에 테란이 없었으니까요"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말했다.
임요환의 빈 자리는 얼마 전 군 복무를 마친 최연성이 수석 코치로 승격되어 대신하게 된다.
4.4 프로 포커 플레이어로 전향(2013~)
거의 모든 사진의 포즈가 똑같은 건 기분 탓이다
프로 포커 플레이어로 전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베르트랑과 같은 길을 걷게 된 셈이다. 전향 선언 후 가진 인터뷰.
이게 다 원사운드 때문이다
그리고, 2014년 1월에 첫 출전한 마카오 포커 컵에서 $1500 Turbo(1350+150)라는 '노 리미트 홀덤' 종목의 사이드 이벤트에 참가하여, 235명 중 8위라는 괜찮은 데뷔 성적을 기록하였다. 상금은 약 126만 원 정도. 해당 이벤트 결과 표 임요환이 참가한 종목은 메인 이벤트(Red Dragon)는 아니고, 수많은 사이드 이벤트 중 하나이다.[51] 이런 사이드 이벤트에서 TOP 10에 든 일반인은 디시인사이드에도 몇몇 있는데 언론이 과대포장한 감이 크다. 실제로 이 대회만 보더라도 다른 사이드 이벤트에서 우승한 한국인이 2명이나 있다. 한국인 김모 씨는 우승 상금으로 1억 원을 받았고, 다른 한국인 최모 씨 역시 우승하여 1600만 원을 챙겼다.
2014년 2월 세부 APT 대회에서 10,000+1,000 홀덤 종목에서 2위를 하며 상금 $4,600를 획득하였다. 2014년 6월 마닐라 APT 대회에서 3종목에 참가하여 합계 $5,600를 획득하였다. 대회 최고 성적은 280+20 종목의 4위. 2014년 8월 마카오 포커 컵 대회에서 1500 노 리미트 홀덤 터보 종목에서 3위를 하며 $3,800를 획득하였다. 비록 사이드 종목이긴 하나, 몇 번씩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보면 아직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되었기에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2016년 1월 마닐라 APT에서 메인 이벤트를 비롯해 각종 사이드 이벤트에 참여했다. 가장 높은 성적은 20,000 + 2,000 홀덤에서 27명 중 1위를 하면서 상금 ₱225,200($4,717)를 획득하였다. 또한, 다른 사이드 이벤트에서도 상위권에 오르며, 이 대회에서만 상금으로 ₱413,200($8,646), 한화로 약 1000만원을 획득했다.
2016년 7월 27일 APT 메인이벤트에서 준우승을 기록하였고, 상금으로 $33,100(한화로 환산하면 약 3600만원)을 획득했다. 지금까지 참가 기록중 가장 좋은 성적이다. 관련기사 그리고 8월 10일 APT Poker Weekend Series의 50,000+5,000 홀덤 종목에서 다시 2위를 하며 상금으로 ₱480,000($10,218), 한화로 약 1100만원을 획득하였다.
2016년 8월 16일 기준 총 상금은 $92,826이다. 임요환 기록 표
5 IS에서 SKT T1까지
이 IS 가 아니다
5.1 1인 후원에서 팀 후원을 이끌어내다
프로게이머로 활동한 지 2년 만인 2001년 나는 드디어 ‘테란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으며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다른 종족에 비해 암울하다는 ‘테란’이라는 종족으로 거둔 주요 리그에서의 두 차례 우승은 나를 스타 게이머로 만들었다. 하지만 게임계는 여전히 암울했다. 게이머들이 속한 팀들은 대부분 작은 스폰서조차 없었다. 프로게임팀이지만, 에이전시와 같은 의미였다. 2002년 나는 3년 넘게 속해 있던 팀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스폰서 없이 대회 상금만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데 많은 한계가 느껴졌고, 진정한 프로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홀로 서서 스폰서를 찾으며, 나는 WCG에서 우승했다. 그래서 나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시키고 ‘동양 오리온’이라는 회사로부터 후원을 받는 프로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개인 스폰서를 받으며 1년 동안 활동하는 동안 나는 팀원들의 필요성 을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스타크래프트는 대전 게임이기 때문에 실제 대회에서의 경기처럼 철저한 연습이 뒷받침돼야 리그에서 성적을 거둘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팀원들과 실전 같은 연습이 필요했다. 지금처럼 개인 스폰서링을 받는 풍토는 게임판을 오히려 축소시키고, 프로게이머의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20대 초반에 프로게이머의 수명이 다하는 것은 바로 안정적인 생활과 연습환경이 뒷받침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프로게이머로 오래 활동하고 싶었고, 후배들 또한 안정된 직업으로서 프로게이머 활동을 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한동안은 스폰서 없이 팀 활동에 주력했다. 감독님께서는 팀을 창단할 기업을 열심히 찾아다녔고, 드디어 우리는 2004년 4월 SK텔레콤과 함께 ‘프로게임단 T1’을 창단했다. 만약 내가 홀로서기를 감행하지 않았다면, 우리 팀이 ‘4U’라는 이름으로 스폰서 없는 기간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 SK텔레콤 T1 팀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SK 텔레콤 소속 프로게이머 ‘임요환’ 또한 없었을 것이다. 나는 동양의 스폰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나와 팀원들이 SK텔레콤의 프로게임팀을 창단할 것이 라는 확신도 없었다. 다만 내가 그리고 우리 팀원들이 홀로 섰을 때 우리는 프로라는 이름을 달고 우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러한 결단이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었다. -- 임요환 월간중앙(05) '내 인생의 결단의 순간' |
임요환이 PC방에서 배틀넷 신화로 군림하던 어느날 IS 감독 김양중이 프로게이머 제의를 청해왔고 그때부터 정식으로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IS 소속으로 스타리그를 2연속 우승하면서 임요환은 스타가 되었고 송호창이 이끄는 게임아이와 조정웅이 이끄는 팀이 IS에 합병을 하게 되는데 불행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합병된 IS는 임요환, 홍진호, 이윤열로 최고의 전력을 자랑했지만 송호창은 돈 벌어먹을 생각만하며 임요환이 마시는 음료수에도 값을 매기고 돈을 내라 했고, 박정석과 치룬 스카이 2002 결승전 전날에서도 주방용품 이벤트를 돌리는 등 여러 문제로 어려운 찰나에 임요환은 IS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건 바로 임요환을 발견하고 키운 김양중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
빈털터리로 임요환이 나가면서 프로게이머로써 생명이 끝날수도있던 김성제마저 나가게 도와줬으니 열받은 송호창은 다른 팀 감독들한테 임요환 연습 시켜주지 말라고 압박했다. 임요환은 고립되었지만 임요환을 탐내는 KTF, 쏘울 팀에서 연습을 도와줬다고한다.
임요환은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WCG 2002를 우승하고 KTF, 동양에서 제의가 왔는데 게임판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동양 창단을 택한다. 하지만 동양은 오직 임요환만 바라보고 1억을 제시했기 때문에 연봉이야 있었지만 그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고 숙소는 완전 오피스텔 한구석 좁은 숙소였다.
거기서 임요환, 김성제, 이창훈, 당시 아마추어 최연성, 주훈 등이 다 함께 생활했고 임요환의 연봉으로 동양팀은 힘들게 팀 생활을 꾸려나갔다. 당시 주훈감독의 자차인 빨간색 프라이드에 8명(최연성, 이창훈이라는 190대 거구 2명과 180의 임요환 포함)이 타고다닌 일화는 유명하다. 링크 특히 2번이나 차가 퍼졌는데 하필이면 임요환이 방송촬영할때만 퍼졌다고 한다. 방송을 보면 임요환이 꺼진 차를 능숙하게 밀고 늦은 스케줄에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링크 동양시절에도 임요환의 개인 스폰으로 팀을 운영해야 했기에 상황이 많이 열악했던 것이다. 같은 시기 GO팀과 비교해도 정말 눈물나는 환경이다.링크 이때만 해도 동양은 임요환의 원맨팀이나 다름 없었고 그 와중에 임요환도 점점 하락세가 오게 된다. 그렇게 힘들게 동양은 첫 프로리그 우승을 했지만 보상은 커녕 팀의 사정은 점점 어려워졌고 동양은 여전히 '임요환만' 계약하길 원했고 임요환은 팀과의 계약을 원했기에 계약을 파기했다.
그러면서 비스폰팀인 4U시절이 시작된다. 이 이름 안에는 '팀을 사라(사유)'라는 뜻이 담겨있기도 하다. 이때의 임요환, 주훈은 상금과 사비를 다 털면서 팀을 운영하며 힘들게 살아가야 했다. 4U팀 숙소공개 영상을 보면 두유와 과자로 한끼를 때우기도 하고, 좁은 방에서 여러명이 발도 제대로 못뻗고 잤다고 한다.이 때 한 벌에 50만원 정도하는 유니폼을 팀원 모두에게 해줄 수가 없어서 이창훈, 최연성용으로 한 벌, 임요환, 김현진용으로 한 벌, 김성제, 박용욱용으로 한 벌 이렇게 3벌만 만든 덕분에 팀리그때 출전선수 한명만 유니폼을 입고, 나머지는 모두 사복이였던것을 볼수있다. 또 먹을 게 없어서 팬 카페에서 반찬을 보내주기도 했고, 차가 고장 났는데 돈이 없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경기장까지 간 적도 있다.
팀리그 결승때는 동대문에서 츄리닝 디자인으로 상의만 해 입을 정도였으며 임요환이라는 스타가 있기에 스폰서 제의는 많이 들어왔지만 SKT를 잡으려고 작정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던 시절을 견디며 살은 것이다.
위에서부터 보면 알겠지만 정말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동양 오리온 시절 KTF EVER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우승, 임요환의 2003 Olympus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3위, 박용욱의 2003 Mycub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최연성의 TG삼보 MSL 우승, 4U 시절 LG IBM MBC GAME 팀리그 우승, 임요환의 KT-KTF 프리미어 리그 2003 준우승을 달성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52]
그리고 드디어 2004년 4월 SK텔레콤과 함께 ‘T1’을 창단했다. 이는 대기업을 이스포츠에 끌어들이면서 프로리그가 활성화되고 이스포츠가 발전하는데 큰역할을 하게 되었다.
SK텔레콤이 임요환을 중심으로 한 4U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SK텔레콤의 고위 관계자가 프로게임단을 만든다는 보고서를 받으면서 실무자에게 물었다. "가장 잘하고 유명한 선수가 임요환인 것 같은데 농구로 치면 허재 정도 되나?"라고 물었더니 실무자가 상관의 마음을 사로잡는 한 마디 "허재는 발에도 못 미치고요. NBA의 마이클 조던입니다" 이 한 마디에 SK텔레콤 T1의 창단 결재 서류에 사인이 곧바로 됐다고 한다. [53]
5.2 공군에이스 창단
“제가 군대를 안가면 오히려 후배들이 병역특례를 받기 힘들어집니다.”
임요환이 군 입대를 앞두고 사석에서 지인에게 밝힌 얘기다. 그는 지난해부터 국회에 월 2~3회 다녀올 정도로 국회의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날 마지막 대회에도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팬으로 참석할 정도였다. 그 때문에 ‘병역 특례’ 유혹을 많이 받았다. WCG에서 두 차례 금메달을 따 어느 정도의 자격을 갖췄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자신이 병역특례를 받으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오히려 후배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에서 군 입대를 결정한 것이다. 2006년 한겨레 기사
공군에이스가 내세운 공군 소속 프로게임단의 창단 조건은 게임단 창단시 임요환이 입대할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임요환은 또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6 팀에서의 임요환
임요환에게 가장 적절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과소평가된 카리스마. 진짜 카리스마는 번뜩거리는 눈빛이나 우렁찬 목소리, 혹은 100미터 밖에서부터 감지되는 위압감과는 별반 상관이 없다. 문제를 해결하고 길을 열어줄 수 있는 개척자야말로 마력을 지닌 존재로 불릴 자격을 얻는다(본래 카리스마는 '족장의 마력'이라는 뜻이다). 임요환은 벌거숭이 땅에 도로를 닦고 마천루를 더한 장본인이다. 시스템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며 본인은 뒷걸음질을 쳤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스템, 그리고 그 시스템 안에 속한 다른 이들 역시 분명 그의 영향을 받았다. 현재 임요환은 최고령(이라 봤자 30대 초반이지만) 프로게이머다. 후배 선수들이 걷고 있는 길은 그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 나 있다.--소설가 배명훈 W 인터뷰에서
동양시절부터 4U, SKT T1 창단과 우승과 오버트리플크라운 중심에는 임요환이 있었다. 그가 군입대한 뒤 T1이 귀신처럼 몰락하고, 그가 제대하니 T1이 기적처럼 우승했다는 것만 보아도 팀에 임요환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거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T1 소속 선수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임요환이 열심히 게임을 하는 것 자체가 팀의 버팀목이자 멘토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임요환은 전략적인 부분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는 선수였다.
최연성의 말에 따르면 "프로리그 08-09시즌 광안리 결승전에서 요환이 형이 명훈이가 쓸 전략을 짜준 적이 있는데 해당 맵을 완전히 분석했고 정찰 시간, 빌드 시간까지 다 정했다. 그리고 나서 명훈이는 경기 전에 일부러 내 옆에서 얘기를 나눴고, 그건 곧 저그전 메카닉을 쓴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회심의 전략이 통하면서 명훈이가 이제동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요환이형은 우리가 의식하는 모든 부분을 전략화시켰고, 존경할 수 밖에 없는 대상이었다" 라고 한다.
또한 김택용은 "요환이형도 제대한 뒤에 감각을 찾으려고 정말 열심히 연습하더라고요. 오전 10시부터 새벽까지, 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연습만 하세요. 후배들도 요환이형이 팀에 합류한 이후 자발적으로 추가 연습을 시작했죠. 요환이형이 SK텔레콤에 복귀한 이후 팀도 상승 곡선을 그렸고 우승까지 했죠. 요환이형 덕이 커요" "요환이형이 합류하고 나서 달라진 점이 또 있네요. 새로운 전략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요즘 테란이 저그를 상대할 때 기계 유닛을 많이 쓰잖아요. 임요환 선배와 최연성 코치가 함께 연구하니까 특이한 플레이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정말 놀랐어요"라고 말했다.
이처럼 그가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났다. 단순히 경기에 나가서 이기는 것만이 아닌, 팀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팀원들을 독려해주는 역할을 맡은것. 혹자들은 후기의 임요환은 그저 얼굴마담이라며 벤치나 데우며 후배들 앞 길을 막지 말고 은퇴나 하라는 식으로 매도하지만, 몇몇 유명한 일화들만 살펴봐도 임요환이 팀원들에게 어떤 존재인지는 잘 알수 있다.
일례로, 홍진호와 결승 연습을 하다가 파해법을 못찾아 답답해하는 최연성에게 지나가듯 2스타를 하라고 조언해주고, 이윤열과의 결승전에서 임요환의 빌드를 사용하여 이긴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전략적인 부분뿐 아니라 최연성의 데뷔를 앞두고 "세상을 깜작 놀라게 만들 선수"가 있다며 기를 살려주고, 데뷔전에서 패드 밖으로 마우스가 나갈 정도로 긴장했던 최연성에게 "너 누구랑 연습해? 랭킹1위랑 연습하는데 뭘 그렇게 긴장하냐"며 자신감을 심어주고 자체 랭킹전에선 거의 1등을 하던 고인규가 스타리그에서는 그만큼 실력을 내지 못하자 임요환이 고인규를 불러서 "넌 고인규다"라며 고인규를 격려했고 그 후 고인규가 듀얼에 진출한 일화 역시 유명하며, 또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현장에서 공개된 엔트리에서 강민을 보고 긴장해 떨던 박용욱은 "박용욱이 항상 이기던 강민을 또 만났네"라는 임요환의 말 한 마디에 긴장감이 자신감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처럼 임요환이 팀을 이끄는 방식은, 최연성이 스무도에서 말한것처럼 "'이거 하지마. 이건 아니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한다면 이렇게 될 거야. 선택은 네가 해"라며 조언은 적극적으로 해주지만 선택은 본인에게 맡기는 것이라고 한다.
주장으로서 말보다는 모범으로 묵묵히 연습하는 모습을 보며 존재 자체만으로 힘이 되는 스타일로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구조가 아닌 점이 다른 팀과 다른 점이였고 이러한 임요환의 리더쉽이 개성이 강한 팀을 하나로 묶고 강팀으로 이끌었다고 생각된다.
여담으로 임요환은 티원의 분위기 메이커였다고 한다. 장난을 치는 이유는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도 있고, 팀워크를 다지는 의미도 있다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어쩔수 없이 서먹해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후배가 선배를 너무 어려워하면 연습을 하기도 힘들어 진다. 의견 교환도 힘들고. 이를 막기 위해 재미나게, 즐겁게 게임과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분위기를 풀어주는 것이다. 또 팀에서 다소 동떨어진 선수들에게는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7 e스포츠를 알리다
임요환은 각종 지상파 프로그램에 출연, e스포츠를 널리 알리는 홍보 대사 역할도 자임했다. 2001년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게임 중독자로 오인을 받은 에피소드도 있지만 2006년 파워 인터뷰에 나서면서 업그레이드된 e스포츠의 이미지를 세상에 알리기 했다.
이 밖에도 출발 드림팀, 브레인 서바이버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섰고 영화 '도둑맞곤 못살아', KBS 드라마 '사랑은 이런거야' 등에 출연하면서 e스포츠를 알리면서 홍보 대사로 적극 활동했다. 그 결과 스타크래프트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임요환은 안다는 말이 생겨났다. [54]
7.1 아침마당 & 출발 드림팀
진행자(이상벽, 이금희) : 임요환 선수도 사이버머니가 1억이 넘게됩니까? 임요환 : 전 연봉이 1억 넘는데요. 진행자 : PK(주 : Player Killer)를 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상대를 죽이고 싶을 때가 있나요? 임요환 : PK요? 패널티킥이요? 진행자 : 아이템 현금거래라는거 해본 적 있나요? 임요환 : 아이템은 모르겠고, 동양오리온(주 : 임요환 선수의 소속팀)과 현금거래를 한 적이 있죠. 진행자 : 게임을 많이 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시나요? 임요환 : 성적이 잘 나오죠. 진행자 : 게임에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앞에 있는 중독자들에게 한마디? 임요환 : 무슨 게임하시는데요? 중독자 : 리니지요. 임요환 : 제가 한번 해보고 말씀드릴게요 진행자 : '이제' 게임중독자가 아니시니, 시청자분 들에게 한 마디 하신다면? 임요환 : 정말 게임 열심히 해서 최고의 선수가 되겠습니다 |
진행자를 죽이고 싶다
2001년 생방송으로 진행된 아침마당에 당시 억대연봉을 받고 있는 프로게이머를 초대해놓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한것이다. 당시 PD는 주제도 미리 알려주지 않아 당황했다고 한다. 어처구니 없는 질문 내용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넘기는 황제의 인성을 확인할수있다.
방송이후 임요환은 인터뷰에서 “방송 후 한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인터넷과 신문에서는 연 일 난리였지만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네티즌들의 활발한 반론 덕분에 이번 일이 “사회적으로 게임문화의 이해를 넓 히는 긍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55]
또 2003년 출발 드림팀에 출연해서 프로게이머팀이 활약하였으나 이창명이 이름 없는 애들이 이겨버리면 재미가 없다며 이들을 무시하면서 재경기를 한 적이 있다. 심지어 스태프 장비와 쓰레기까지 치우게 했다고한다. 역시 이창명이다. 그러나 현재와선 듣보잡과 황제 수준의 격 차이가... 그리고 이창명은 얼마전 음주운전에 거짓말까지 한게 드러나면서 더욱더 막장인간으로 낙인찍혔다
7.2 파워인터뷰 임요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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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에게 프로게이머를 권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앞으로 저희 프로게이머들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저희 프로게이머가 좀 더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좀 더 넓은 시장을 만들어서, 밀어줘도 되는 직업이다 하는 생각을 하실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나중에 제가 게임을 그만두더라도 게임 하면 임요환이라고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제가 최고, 최초라는 말을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스포츠가 이만큼 발전한 것도 제가 여기까지 온 것도 모두 기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그러나 기적은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쉬는 날에도 집에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연습할 때 문자가 와도... 그냥 무시합니다. 게임을 연습하는 도중에 전화를 받거나 전화를 하게 되면 맥이 끊겨서 연습해 주는 사람이나 저나 상당히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집에 자주 가지 않는 건, 집이 편해지다 보면 쉴 때마다 집에 가고 싶고, 아까 '감옥'이라고 표현한 숙소를 나가고 싶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니 오해 없었으면 좋겠고...저도 앞으로 노력을 하겠습니다... 특히나 친구들에게 많이 미안한데…그중에 한 친구는 만난지 꽤 오래되었고 죽마고우인데 어느날 사고를 당해서 하늘로 갔더라구요.. 그전에 책에 썼던 친구 말고.. 너무너무 미안하고.. 그런 안좋은 추억이나 기억들을 없애기 위해 노력할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둘다 죽마고우였는데.. 지금이라도 제 사과를 받아줬으면 좋겠고.. 왜 절 울릴려고 하세요
파워인터뷰에 나와 이스포츠와 프로게이머 임요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가 이스포츠를 얼마나 사랑하고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하는지
그에게 왜 황제라는 칭호가 붙는지를 알수있다. 파워인터뷰 링크
방송후 팀리퀴드에 인터뷰가 번역되어 화제가 되었다.링크
7.3 청와대, 공군사관학교 방문
2003년 청와대에서 열리는 ‘참여정부 문화산업정책 비전 보고’에 프로게이머 대표로 초청을 받아 프로게이머로서는 최초로 대통령과 만나게 된다. 총 초청인원 180명중에 10명이 맨앞에 앉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임요환의 자리였다고한다. 특히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홍보 하기 위해 유니폼을 입고 간 모습이 눈에 띈다.[56]
2005년 공군 사관학교에 인성교육 강사로 초청되었다. MBC뉴스데스크
7.4 영화, CF, 방송 기타 활동
동양 오리온시절 핫브레이크 광고에 출연했다. 광고 찍을때 너무 많이 먹어서 핫브레이크는 좋아하지않는다고한다.핫브레이크광고
LG텔레콤 광고에 당대 최고의 스타 전지현과 함께 출연했다. LG텔레콤광고
생각대로 T 임요환편에 출연했다. SK텔레콤광고
인텔 광고에 출연하여 너의 CPU를 믿어봐라는 끔찍한명대사를 남겼다. 링크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CF들의 공통점은 프로게이머 임요환이란 점이 강조되어 있다.
2001년 KBS 사랑은 이런거야에 PC방 게임하러오는 프로게이머역으로 출연했다.
2002년 소지섭이 주연한 망작 영화 '도둑맞곤 못살아'에 출연한 적도 있다. 본격적 연기 데뷔는 아니고 까메오 출연인데, 역할이 게임 죽도록 못하는 테스터 요환 역.[57] 이다.
2003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브레인 서바이버'에도 출연한 적 있다.
2001년 SBS 김동완의 텐텐클럽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연예인들의 연예인으로 싸인을 받았다고한다.
2001년 KBS 표인봉.이동우의 "라디오가 좋아요" 8개월간 고정 출연하였다가 하차하였다.
하차 이유는 바쁜 스케줄로 인한 연습시간 부족과 성적 부진, WCG 준비였다고한다. 특히 이 시기에는 해설진조차 임요환 선수가 다시 연습시간을 확보하고 연습을 많이 하고있다고 말할정도로(즉, 그 전까지는 제대로 된 연습을 못 했고, 이를 해설이 알고 있을 정도였다는 것.) 임요환의 게임 외 스케줄은 살인적이였다고 한다.
그의 전성기로 평가받는 2001년 한편에서 그의 이스포츠에 대한 살인적인 홍보 스케줄도 함께 있었다.
프로게이머 중에서 처음으로 스타 관련된 책이 아닌 '나만큼 미쳐봐'라는 자서전을 냈는데, 이 책을 읽어보면 임요환의 성장 과정부터 고생 스토리, 프로게이머로서 성공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이야기가 적혀있다. 대체로 임요환의 팬이거나 그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내용의 책. 덤으로 그의 화보도 책 뒤에 몇 페이지 실려있다. 전문 모델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화보의 퀄리티도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다.
2009년 6월, 2년 동안 진행되었던 그의 자서전 영문 번역이 완료되었다. 누군가 개인적으로 번역한 것으로 보이며 수많은 외국 스덕후들이 접속, 열심히 읽어대고 있는 듯하다.
또 프로게이머 개인의 명경기를 모은 DVD가 발매된 유일한 사람이다. 장진남, 홍진호와의 결승전, "자 동원합니다 프로브까지 동원합니다. 탱크 일부는 시즈모드 됐고 일부는 콩콩통통통통통통"으로 유명한, MC용준을 탄생시킨 이재훈과의 기요틴 경기 등이 담겨 있다.
프로게이머들이 만든 GG 앨범(Game Generation - Progamer Project Album)에 참여하였으며 가수 파인애플의 앨범에도 참여(나레이션과 더불어 노래까지 불렀다)했다. 찾아서 듣는 것은 상관 없지만 양쪽 다 손발이 오그라들 위험이 있다.
2005년 프로게이머 최초로 시구를 했다. 그것도 팀복을 입고 시타는 최연성으로 시구가 패대기가 된이유는 최연성이 못치도록 너무 세게 던지다가 망했다고 한다. 안습2005시구
제대후 2009년 흑역사를 뒤로하고 완벽한 시구를 성공했다. 2009시구
YTN STAR에 프로게이머 임요환으로 출연하여 스타크래프트에 대해 홍보했다.링크
2004년 SBS 가요대상에 시상자로 나온다.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의상이 정말 대단하다. 링크
2009년 12월 16일 멜론 뮤직 어워드에 김택용과 함께 시상자 자격으로 출연했다. 정말 손발이 오그라드니 호기심에라도 보지 않기를 권한다. 다만 저런 손발이 오르라들 멘트를 직접 날릴만큼 황제가 스타판에 대해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수 있는 광경이긴 하다.
“프로게이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노력이다”"프로게이머는 게임 외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뿌리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프로게이머란 직업은 좋아하는 일인 게임을 직업 삼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직업 특성상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 MBC FM4U '꿈꾸는 라디오, 윤건입니다'
"게임의 세계에서는 속임수나 공짜가 없습니다. 게임을 하는 그 순간 만큼은 프로게이머란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게 정정당당하게 게임을 하거든요. 이번 선거도 깨끗한 선거가 되길 바라구요. 저도 투표를 하니까 어리다고 관심없어 하지 마시고 꼭 투표합시다"-- 2006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투표참여 캠페인
7.5 해외에서도 e스포츠의 황제
LA 타임즈에 황제 임요환으로 소개되었다.원글번역123
월스트리트저널 지면을 장식하였다. 링크
미국 명문 UC버클리대에 ‘임요환 강좌’가 떴다. 강좌는 교수가 아니라 학생이 강좌를 열고 직접 강의하는 데칼(DeCal) 방식이다. 강의 교재는 '스타크래프트 이론'이며, ‘손자병법’과 임요환의 자서전 ‘나만큼 미쳐봐(2004)’가 추천 부교재라고 한다. 앞으로 "한국에서 60만 팬클럽을 거느린 임요환의 기술과 생각을 수강생들과 함께 논의하고, 한국 프로게이머들의 게임 장면을 보여주겠다”고... 링크
영문 위키피디아에도 그의 페이지가 있으며, CNN을 통해 전파를 탄 적도 있고 해외 팬 사이트까지 있다. 역시 황제의 위엄... [58]
구글 번역기에 임요환이라고치면 임요환의 아이디인 Boxer로 번역된다. 영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언어에 적용이된다. 16년 5월 기준 Im Yohwan이라고 번역된다..
The Daily Dot선정 e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선정됐으나 몇 년 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슈퍼스타가 1위를 차지하면서 2위로 내려왔다. 나름 세월의 변화가 느껴지는 순위 변동 원글번역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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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를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기원전 기원후로 나누었듯이[61] 게임 방송의 역사는 임요환을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그가 온게임넷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로 스타리그와 e스포츠는 해외와 비교해 대단히 독특한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임요환은 보기 힘든 플레이를 주로 펼쳤다. 그는 맵과 유닛을 연구하고 분석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전략형 게이머였고, 이는 보는 재미가 있는 스타크래프트를 만들게 되었다.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하기는 어렵지만, 방송 리그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이것은 해외와는 달리 모든 경기를 방송하는 국내의 방송 리그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예를 들자면, 해외 e스포츠의 흐름을 타는 MLG를 보면 3일 만에 수백 경기가 치러지고 대회가 끝이 난다. 1회용 전략보다는, 정석적인 빌드와 운영 능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국내 대회는 짧아도 한 달, 길게는 3개월까지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모든 경기가 방송된다. 경기 수도 적다. 그만큼 보는 것에 최적화 되어 있다. 따라서 임요환이 매일 새롭게 가지고 오는 전략은 시청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 결과, e'스포츠'라고 불리게 될 만한 결과물을 낳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게임계의 스타판 팬덤의 양상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른 게임 커뮤니티는 대부분 게임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게이머와 관련된 이야기는 부수적인 반면 PGR21이나 스갤 같은 스타 커뮤니티를 가보면 아예 프로게이머 이야기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일반 유저들이 하는 게임의 빌드나 유닛 이야기를 다루는 일이 적을 지경이다.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는 축구 커뮤니티나 야구 커뮤니티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당대 프로게이머들 중에서는 보기 드문, '연예인'과 비슷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다. 이슈를 만들 줄 알았고 그것이 대중들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올지 잘 알고 있었다. 이를 두고 최연성은 "임요환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떤 반응을 가져올지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마디로 대중스갤을 잘 다루는 사람이었다. 집념 어린 승부욕이라든가, 플레이 중에 사장된 유닛이나 빌드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재탄생 시킨다든가 하는 점은 그를 '자유스럽고 독특한 캐릭터'로 기억하게끔 했다. 쇼맨십이나 입담이 탁월한 편이라 게임 외적으로도 여러번 이슈를 낳았다.
또한 그는 꽃미남 게이머 중 하나였다. 안티들에게는 머리가 크다고 놀림받지만, 분명 당시대 일반인들에게는 칙칙한 게임 폐인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프로게이머 중에서 핸섬하고 말끔하게 생긴 사나이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는 스타판에 여성 팬덤의 비중을 크게 늘리게 된다. 아니, 스타 1과 관련된 리그에서 오히려 오프라인 관중은 여성 팬덤이 없으면 유지가 안 될 상황까지 와 있다. 오프라인에서 송병구나 박성준처럼 남성 팬의 환호성이 크다는 것이 오히려 화젯거리가 될 정도. 대부분은 여성들 소리밖에 안 들리니까. 임요환 이후로 프로게이머에게서 아이돌의 가능성을 찾게 된 방송가들은 게이머들을 분장시켰고,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따로 외모를 관리하는 선수들이 생기며 칙칙한 게임 폐인이 아닌 '게임하는 멋진 오빠들'의 이미지를 만들게 되었다. 이것은 '한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로서 그 선수를 존경하는' 경우가 많은 다른 게임계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이다. WCS 예선전에서 이제동이 출전하자 목동을 가득 매운 여성 관중을 보며 곰TV 해설진이 여성이 많이 왔다며 주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기업팀이 최초로 주목한 게이머도 역시 임요환이었다. 당시 전 소속팀인 오리온이 해체되고, 스폰서가 없이 4U라는 팀으로 꾸릴 때, 임요환에게 억대 연봉의 스카웃 제의가 왔지만 "E스포츠의 판을 키우기 위해서는 팀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며 거절했고 그결과 SKT T1이 창단 되었다. 그리고 SKT T1에서 임요환은 국내 프로게이머 최초로 억대 연봉을 체결했다. 물론 이전에도 스폰서를 받는 게임단은 있었으며, 스타리그를 발전시키는데 공헌한 것은 임요환만의 공은 아니며 다른 훌륭한 게이머들의 노력이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억대 연봉 계약을 게이머 최초로 체결한 것은 의미가 크다. 당시까지만 해도 프로게이머란 상금 사냥꾼이었고, 워 3나 스타 2에서 스폰서 계약을 체결한 게이머들도 있지만 이는 네이밍 스폰서로서 전면적인 지원보다는 조금 더 느슨한 계약 관계이며, 선수들 역시 연봉보다는 대부분 상금에 의존해 생활을 한다. 그러나 기업들이 들어오면서 스타 1은 조금은 다른 양상이 되었다. 개인리그 우승 경험이 없는 신상문이 프로리그의 성적으로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은 해외에서는 드문 일이다. 즉, 그는 프로게이머를 상금 사냥꾼에서 직업으로 변화시키는 데 선봉 역할을 했다.
임요환은 국내 스타 팬덤 문화와 방송을 만들어낸 창조자임이 분명하다. 물론 이는 그의 공로를 주목한 엄재경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포장도 포장지 안에 들어갈 내용물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임요환이 없었다면 엄재경이 아무리 애를 썼어도 팬덤 문화를 지금의 위치로 올려놓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으로 임요환을 높이고 김슬기나 김대건처럼 임요환과 동시기, 혹은 약간 이전의 시기에 이름을 날렸던 테란 게이머들은 1.07 임요환 이후 세대에게는 업적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안티들의 주장일 뿐이다. 하지만 단순히 안티들의 주장이라고 볼 수만은 없는 것이 실제로 [1] 이런 글들이 인터넷에 옛날부터 떠돌아 다녔는데 여기서 디펜시브로 럴커 촉수 유인 하는 작전은 이기석때부터 있었고, 배럭스 날리기, 팩토리 날리기, 전진 몰래 건물도 마찬가지다. 강민 항목에 더블넥서스는 이전세대의 업적이니 강민이 창조한 것처럼 주장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 있는데 상당히 배치될 수 있는 내용이니 걸러서 생각하길 바란다. 이들의 업적이 임요환 탓에 묻혔다기 보단 이들이 임요환만큼 롱런하지 못했고 임요환만큼 활약하지도 않았다. 세월에 흐름에 따라 묻힌거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그의 뒤를 이어 시대의 지배자로 등장한 이윤열은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구세주이자 가장 큰 흥행 카드였던 임요환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유만으로 악성 팬덤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하지만 악성팬덤은 어느 게이머에게나 존재했다.[62] 재밌게도 이와는 별개로 이윤열과 사석에서의 사이는 좋다. 이윤열 결승전 방치 사건때 자신의 팀 후배보다 이윤열을 챙겨준 일화나 결승전에 마우스를 빌려주는 등 이윤열의 임요환군입대 고별사를 보면 존경의 마음이 거짓이 아님이 느껴진다. 그냥 방송에서 대놓고 요환이 형이 닦아 놓은 길을 따라가겠다고 말하는 게 이윤열.
그리고 임요환이 군대갈 시기가 되자 공군에서 그를 영입하기 위해 공군 ACE를 창단해 후배 프로게이머들의 병역문제를 해결시켜 주었으며, 프로게이머로써 청와대에 초청받았을때 그는 정장 대신 새하얀 SKT T1 유니폼을 입고 갔다. 팀 창단을 위해 영입 제안도 거절하고 힘든 4U시절을 겪은 모습이나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 그가 E스포츠에 대해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또 그의 이러한 노력 끝에 E스포츠가 어떤 모습으로 발전했는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게이머들에게도 성공의 아이콘으로서 게이머들에게 강한 영감을 주는 존재이자 올드 게이머들은 임요환이 계속해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힘을 얻으며, 게임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본 김정민 해설조차 "괴물 같은 형이야"라고 언급할 정도라니 임요환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
9 그를 둘러싼 논쟁
9.1 전적과 본좌 논쟁
2001년도 임요환의 주요 대회 승패기록 ⊙ 2001년 1월 - GhemTV Let' go 한국최강 프로게이머 토너먼트 초청전 - 3승으로 우승 임요환 (랜덤저그) 승 vs 강도경(랜덤테란) 패 임요환 (랜덤프토) 승 vs 변성철(랜덤테란) 패 임요환 (테란) 승 vs 김동수(프로토스) 패 ⊙ 2001년 4월 -zzgame 32강 프로게이머 초청전 - 6승 무패로 우승 임요환 승 vs 김정민(테란) 패 임요환 승 vs 강도경(저그) 패 임요환 승 vs 김동우(저그) 패 임요환 승 vs 국기봉(저그) 패 임요환 2 vs 유병준(테란) 0 (결승) ⊙ 2001년 5월 - 제3회 게임큐(Game-Q) 스타리그 - 9승 1패로 우승 임요환 승 vs 봉준구(플토) 패 임요환 승 vs 김동수(플토) 패 임요환 패 vs 최인규(플토) 승 임요환 승 vs 이기석(테란) 패 임요환 승 vs 강도경(저그) 패 임요환 2 vs 김정민(테란) 0 (루저스 결승) 임요환 3 vs 최인규(플토) 0 (결 승) ⊙ 2001년 5월 -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 11승 1패로 우승 임요환 승 vs 정완수(저그) 패 (16강전) 임요환 승 vs 박용욱(플토) 패 (16강전) 임요환 승 vs 정대희(저그) 패 (16강전) 임요환 승 vs 임성춘(플토) 패 (8강전) 임요환 승 vs 장진남(저그) 패 (8강전) 임요환 승 vs 국기봉(저그) 패 (8강전) 임요환 2 vs 박용욱(플토) 1 (준결승) 임요환 3 vs 장진남(저그) 0 (결 승) ⊙ 2001년 9월 -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 11승 4패로 우승 임요환 승 vs 박태민(저그-16강전) 패 임요환 승 vs 성준모(저그-16강전) 패 임요환 패 vs 김신덕(저그-16강전) 승 임요환 승 vs 김신덕(저그-재경기) 패 임요환 패 vs 성준모(저그-재경기) 승 임요환 승 vs 임성춘(플토- 8강전) 패 임요환 승 vs 홍진호(저그- 8강전) 패 임요환 승 vs 변길섭(테란- 8강전) 패 임요환 2 vs 이근택(저그- 4강전) 0 임요환 3 vs 홍진호(저그-결승전) 2 ⊙ 2001년 10월 - WCG 스타크래프트 국가대표 선발전 - 10승 무패로 우승 임요환 승 vs 이준규(저그-64강전) 패 임요환 승 vs 민광현(저그-32강전) 패 임요환 2 vs 김환중(플토-16강전) 0 임요환 2 vs 조형근(저그- 8강전) 0 임요환 2 vs 최수범(테란- 4강전) 0 임요환 2 vs 조정현(테란-결승전) 0 ⊙ 2001년 12월 - WCG (world cyber games) 스타크래프트 부문 - 10승 무패로 우승 임요환 승 vs 팔코 엥겔스(DkH.MMMBop) (저그) 패 임요환 승 vs SG-Whear_us (프로토스) 패 임요환 승 vs Marius Paul Van Greunen(madfog)(저그) 패 임요환 승 vs 찰스 왕 (iori_au) (테란) 패 임요환 승 vs 스티븐 킹(smuft_ca) (프로토스) 패 임요환 승 vs Mats Kleredal (Kenka) (테란-16강) 패 임요환 승 vs Zdravko Georgiev Georgiev (저그-8강) 패 임요환 승 vs Victor Goossens (Nazgul) (프로토스- 4강) 패 임요환 승 vs Grospellier Bertrand (테란-위너스결승) 패 임요환 승 vs 그로스펠리에 베르트랑(Elky) (프로토스-결승) 패 ⊙ 겜비시 스타대회 KPGA TOUR WINNERS CHAMPIONSHIP 임요환 승 vs 박태민(저그) 패 ⊙ 온게임넷 특별전 라스트 v1.07 임요환 3 vs 기 욤(플토) 0 ⊙ 온게임넷 특별전 WCG 게이머파티 임요환 3 vs 프레드릭(저그) 0 ⊙ psb 그랑프리 개인전 임요환 승 vs 조용호(저그) 패 ⊙ ggtv 4대천왕전 임요환 패 vs 임성춘(플토) 승 임요환 승 vs 강도경(저그) 패 임요환 승vs 기 욤 (플토) 패 임요환 패 vs 강도경(저그) 승 임요환 승 vs 이운재(테란) 패 (정파vs사파 2위전) ⊙ ggtv 스타워즈 에피소드1 임요환 승 vs 장진남(저그) 패 임요환 승 vs 박효민(저그) 패 임요환 승 vs 김동수(플토) 패 임요환 패 vs 유병준(테란) 승 임요환 패 vs 최인규(플토) 승 ⊙ ggtv 스타워즈 에피소드2 임요환 승 vs 홍진호(저그) 패 임요환 승 vs 김동수(플토) 패 임요환 승 vs 김동준(플토) 패 임요환 승 vs 박효민(저그) 패 임요환 2 vs 김동수(플토) 1 (결승전) 총 전 적: 96전 85승 11패 (승률 88.5%) 대저그전 42전 37승 5패 (88.1%) 대플토전 36전 31승 5패 (86.1%) 대테란전 18전 17승 1패 (94.4%) |
모든 스타 팬이 인정하는 임이최마 라인의 필두이지만 이것이 정설화 되기까지는 많은 논쟁이 있었는데, 이것은 많은 스타 팬들이 그의 최전성기를 코카콜라배 스타리그에서 1차 KPGA(MSL의 전신)까지의 짧은 기간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최전성기는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1패 우승 + 동 시즌에 진행된 게임큐 전승 우승'을 이뤄냈던 1.08 직전의 1.07시대, 즉 2000년~2001년 중반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이 시기는 테란이 세 종족 중 최약체로 꼽히며 테란 유저 또한 많지 않던 시절이고 수많은 대회가 만들어지고 사라졌다. 그러한 와중에 양대 리그가 정립되며 이전에 그가 우승했던 당시의 메이저 대회들은 모두 묻혔고, 그런 이유로 그의 데뷔전 및 총 전적, 승률 등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기록이 이루어지기도 전이 그의 전성기인 탓에 관계자들조차도 정확한 전적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일부 임빠들만의 주장이 아닌 여러 매체에서 공식적으로 언급되었던 부분. 이것이 그의 전적과 승률이 확실치 않은 이유이고, 이것이 우승 횟수와 그로 인해 본좌라인의 네 명 중 가장 커리어가 적은 것이 아니냐는 본좌 논쟁이 일어났다. 또 2001년 후기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11승 4패로 우승하고 동시에 당시 스타리그보다 더 중요한 대회었던 WCG 국가대표 선발전을 10승 무패로 우승, 2001 WCG를 전승우승하였다. 다음 해인 2002 WCG에서도 홍진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세계 대회에서도 2인자 입증한 콩진호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유일하게 2연패를 차지한 프로게이머가 되었는데 2013 WCG를 마지막으로 폐지되면서 이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지 않게된다. 이처럼 2001년 최고의 선수가 누구냐는 말에 임요환이라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것이다.
4대 본좌의 첫 번째 기준인 MSL 3회, 스타리그 1회 우승을 들어 본좌 기준에 미달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사실 처음엔 그딴 거 없었다. 이 기준도 초기에는 양대 리그 3회 우승이었으며 후에 덧씌워진 것.
처음 본좌론이 대두될 무렵 본좌의 요건은 대략 시대를 이끌었는가, 정상의 자리에 흔들림 없이 오래 머물렀는가, 그리고 대다수의 스타 팬이 본좌라 할만큼의 포스가 있었는가 의 세가지 정도로 스타 팬들 사이에서 '재미로' 일컬어지던 것이었을 뿐이다. 지금의 조건은 4대 본좌론이 굳어진 후 스타 팬들이 덧붙이고 덧붙여 만들어낸 기준이므로 그걸 다시 임요환에게 되돌려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임요환이 걸어온 시대 영상[63]
본좌론은 스타 팬들이 서서히 인정해 가며 굳어진 것이지 철저히 우승 횟수나 커리어를 토대로 하여 하루아침에 누가 떡하니 내민 것이 아니다. 최전성기 시작점이 1.08이 아닌 1.07 시대였음에도 그가 쌓은 커리어가 나머지 본좌들에 뒤지지 않고, 최전성기 이후에도 WCG 우승, 스타리그 준우승 등 꾸준한 커리어를 쌓으며 지금까지 게이머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그를 둘러싼 본좌 논쟁은 무의미한 일로 보아야 맞을 것이다. 애초에 재미로 시작한 일에 죽자고 달려드는 빠와 까 때문에 문제시되는 것뿐.
또한 선수생활을 엄청나게 오래했고 이미 나이를 많이먹고나서도 많은게임을 했기때문에 통산승률이 낮아지는 올드게이머의 전형적인 특성을 그대로 받았다.
9.2 승부욕
경기가 기울면 쉽게 GG를 선언하는 후배 게이머들과는 다르게 최후까지 집요하게 버티는 편으로 그로 인해 무수한 관광을 당했지만, 마이큐브 스타리그에서 펼쳐진 도진광과의 경기에서와 같은 집요한 버티기로 역전승을 거두는 경우도 간혹 존재한다. 특히 위의 도진광과의 경기는 이른바 '패러독스 대첩'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자세한 것은 경기영상 참조).
게다가 승부욕과 더불어 스탑 러커 혹은 드랍십의 이동 경로에 대한 귀맵 논란이라든지 얼라이마인, 문준희 전에서의 채팅, 벙커링 실패 후의 ppp 사건 등 이슈도 많았다. 이 중 실제로 얼라이마인 사건이나(해당 항목 참조), 입대 전 메이저 대회 입성을 앞두고 맞붙은 MSL 서바이버 최종전에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진출을 눈에 앞두고 있던 김민구를 밟아버린, 벙커링 실패 후의 급작스런 ppp 요청 사건 등은 정말 크게 논란이 됐다. PPP 사건은 하도 논란이 커서인지 MSL 서바이버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온게임넷의 스타 뒷담화에서 해당 사건의 정황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임요환이 당시 PPP를 요청했던 것은 공격 사운드에 이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벙커링이 해당 게임의 첫 번째 공격이었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는 공격 사운드가 이상했던 것을 몰랐고, 벙커링을 시도하면서야 공격 사운드 이상을 알아챈 것이다. 정황을 듣고 나면 이해는 할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퍼즈 요청 타이밍이 하필 벙커링을 실패했던 직후 상황이기에 논란의 여지는 남겠지만 말이다.
이처럼 방송 경기의 규정 중 상당수가 이로 인해 만들어진 것도 사실이라고하나 저 사건들은 규정을 알면서도 악용했다는 것은 임까들의 주장이다. 많은 프로게이머가 아마추어적인 마인드로 어뷰징(승부조작)은 했지만 나만 한 것도아니고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로 규정을 악용했을 때도 임요환은 깨끗했다.
또 지금은 은퇴한 올드 게이머 송병석은 "귀로 러커를 확인했다 해도 마린은 전진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지만...다른게이머가 귀맵을 의심받을때는 프로게이머로써의 자질을 칭찬했다. 역시 임까
사실 귀맵은 지금도 논란이 되는 중요한 떡밥이고, 이로 인해 MBC GAME의 경기장(코엑스 시절의 세중게임월드와 히어로센터)에는 방음벽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양대 방송사에서 사용 중인 타임머신이 생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여하튼 임요환의 이런 성향의 영향이 과거에는 금기시 되어왔던 저그의 4드론을 비롯한 도박 전략을 정규 리그로 끌어 올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전에도 종종 4드론을 시도하는 사람은 있었고, 임요환 이외에도 날빌을 쓴 사람은 많았다는 점에서 저 주장은 무리가 있다. 올드 게이머중 변성철이라는 게이머가 4드론으로 유명했고, 최초로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5드론을 시도하기도 했다. 다만 그만큼 날빌을 자주 사용했기에 날빌로 이겼을 때 상대적으로 덜 까이게 되는 계기 정도는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임요환 특유의 전략적인 승부수를 자주 띄우는 스타일에서 실제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수비적인 중후반 싸움 타파를 원하는 팬들에게는 환영받지만 중후반 운영 싸움을 선호하는 팬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임요환은 반칙을 한 것 도 아닌 데다가 스타크래프트는 뻔한 전략만을 가지고 싸우는 게임이 아니다. 애시당초 스타크래프트가 인기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이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게임이라는 데 있고, 사실상 이점 때문에 스타크래프트를 보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툭 까놓고 말해서, 맨날 하던 대로 무난하게 앞마당 가져간 후에 배럭이나 팩토리 쫙 늘리고 병력 뽑아서 밀면 이기고 밀리면 지는 평범한 게임들로 점철되었다면 이스포츠 역사에서 스타가 15년에 달하는 역사를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중후반 운영전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선호받지 않을 수 있지만, 이는 취향의 문제이지 비난할만한 사항까지는 아니다. 또한 임요환이 초중반 전략을 잘 구사하긴 하지만, 그렇지 않고 무난하게 운영을 한 경기도 상당히 많았다. 사실 전성기 시절에는 중후반 운영에도 능수능란했던게 임요환이다.
스타크래프트 2에서도 날빌에 치중하며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4월을 기점으로 다시 부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적극적으로 200 대 200 운영 싸움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중. 특히 날빌로 인식되던 전진 병영을 운영으로 끌고 들어와 이후 테란 게이머들이 전진 병영 운영이라는 괴이한 빌드를 자주 보여주고 있다. 이 빌드의 장점이라면 해병의 동선이 짧아져서 초반 빠른 압박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이 전진 병영을 보고 부담을 느껴 병력을 뽑아 막을 채비를 하느라 초반 잠시나마 소극적인 운영을 하게 된다는 것. 그 동안 임요환은 병영을 뒤로 돌리고 일꾼을 생산하며 운영을 준비한다. 또 다전제에서는 계속 전진 병영을 하다가 갑자기 한 판 뒤에 틀어박히며 더블이나 의료선 드랍을 준비하는 등 그 분 답게 심리전의 수단으로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다.
간혹 저기에 희생된(?) 게이머들의 인생을 망치게 했다면서 저 경기중에 하나가 언급되는 날엔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심지어 EVER 2004 이후에는 삼연벙의 여파로 한동안 스갤 대부분의 게시글이 임요환을 까거나 저주하는 내용 뿐이었을 정도. 사실 삼연벙은 홍진호의 어이없는 붕괴라고 불러도 무방했지만 그냥 임요환만 까였다. 참고로 임요환은 벙커링은 막힐것을 전제하고 이후의 운영을 준비했었다.
8차 서바이버 때 인터뷰를 예로 들어 승부욕으로 후배마저 희생시켰다고 말하는 까들도 있다. 8차 서바이버 때 윤종민은 김택용과 시합이 있었고 이 시합의 승자가 다시 한 번 임요환과 맞붙어 여기서 이긴 사람이 9차 MSL에 진출할 수 있었다. 문제는 임요환이 김택용을 이기고 올라온 윤종민을 이긴 뒤 인터뷰에서 '윤종민에게 프로토스전 연습만 시켰고 그래서 이긴 거 같다' 라고 농담조로 이야기 한 것을 까들이 진지하게 비판한다는 것. 얼마나 토스전 연습만 시켰길래 저그전 최강이라는 택신까지 잡은걸까?
상식적으로 개인 리그에서 팀 선배가 테란전 연습을 하지 말라고 한다 해서 따른다는 것도 믿기 어렵고, 인터뷰에서 저런 막장스러운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농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식적으로 임요환이 프로토스전 연습만 시켰다면 왜 자기 입으로 인터뷰에서 떠들겠나(...) 거기에 윤종민은 팀플을 주력으로 하던 게이머여서 누구보다 개인리그 커리어에 대한 갈망이 큰 상황이었다.
훗날 MLG에서 같은 팀원인 문성원과 코드 S 진출 티켓을 놓고 경기를 펼칠 때 '문성원이 임요환을 위해 져줄 게 분명하다'라는 루머가 돌자 문성원을 따로 불러 '루머 따위 신경쓰지 마라. 우린 프로게이머니까 게임에만 집중하면 된다' 라는 충고를 하거나 패배할 때 '꼭 우승해라'라는 말을 쓴 것, 그 경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문성원과 결승전 상대인 정종현 상대 대책 회의를 가지기도 했던 멘탈을 보면 비록 문성원이 지긴 했지만 윤종민의 인터뷰 일화를 '정말 임요환이 후배의 앞길을 망쳤다' 라고 곧이 곧대로 믿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후에는 오히려 임요환이 문성원에게 져 줬다는 루머도 잠깐 돌았다. 마지막 3경기가 워낙 보기 드문 역전 승이라. 그런데 문성원은 이런 극적인 역전승이 워낙 많은 게이머다. 임요환도 극적인 역전패를 종종 당했었고
이 승부욕 때문인지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당시 거의 모든 선수들(역전패나 말도 안되는 저질경기력을 보여줬던)이 팬들에게 의혹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임요환은 농담으로조차 의심을 받지 않았다. 그 이유인 즉슨 "임요환은 워낙에 승부욕이 강해서 억만금이 들어와도 상대방에게 일부러 져주거나 져달라는 부탁을 절대로 받아들일리가 없다(...)"라는 것이 그 이유다. 좋은건가 좋은거지 뭐
즉 그의 승부욕에 대해 평가하자면. 어느 프로게이머가 승리를 마다할 것이며 어떤 사내가 최강자를 꿈꾸는 야심이 없겠는가. 그저 임요환의 재능이 이쪽이라 그런것이다.
9.3 슬레이어스 해체 사건
슬레이어스 해체 사건 참고.
10 그 외
박정석의 재발견이 이루어지고 나도현에서 민찬기까지 이어지는 잘 생긴 선수들의 등장 덕분에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초창기 임요환은 미남 선수로 유명했다.사실 한빛배나 코카콜라배를 전후하여 화면에 담긴 임요환의 모습은 곱상하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미청년으로 특별히 스타일링을 하지 않아도 기본은 넘는 외모와 무시무시한 실력, 그리고 간지 침묵 컨셉(…)이 겹쳐졌기 때문에 인기가 더 많았다.
IS시절 팽팽한 20살 그분의 모습. 타고난 좋은 피부는 지금까지도 여전하지만 이때는 게이머들의 증언에 의하면 정말 광이 났다.
이후 머리크기의 재발견(…)과 본인의 노화, 성적 하락, 성격과 승부욕 논쟁 등이 이어지며 이런 이미지는 서서히 줄어들게 되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여전히 나이를 고려해봐도 꽤 잘생긴 편이기는 하다. 방송에 출연할 때도 종종 그런 소리를 듣곤한다. 화보 사진이 떴을 때도 나오는 반응은 잘생겼는데...참 잘생겼는데...머리가 크다 아무튼 남자들만 보는 스포츠로 여겨졌던 이스포츠에 여성들을 끌어들인 최대 공로자 중 한 명이다.
8시 뉴스에 예비군훈련장면이 우연히 포착된다. 기자가 임빠인가링크
한국 e스포츠에 사실상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 지금껏 많은 일에 관여해 왔고 또 그 인기로 인해 많은 안티와 선입견을 낳기도 했지만 출발 드림팀, 아침마당, 파워인터뷰 등 많은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e스포츠의 인지도 향상에 기여해 온 것이 사실이다.(임까들이 아무리 부정한들) 아무튼 그가 e스포츠의 아이콘이자 역사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듯.
과거에 프로게이머 5명이 중국 원정을 떠난 일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중국 스타크래프트가 지금보다 훨씬 더 듣보잡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5 : 0을 예상했지만 스코어는 4 : 1. 장밍루(T)에게 (당시에는 실력도 출중했던, 거기에 해외에는 세계 최강으로 인식되었던) 임요환이 패배했다는 사실에 인터넷에서는 만리장성 테란을 영입하라는 우스개를 벌이기도 했다. 굳이 T1에 샤쥔춘과 루오시안이 온 이유.
후에 2번째로 홍진호가 장밍루에게 2:0 관광을 당하는데
또한 시합에서 타자를 많이 치는 편이며, 대표적인 것은 군대 가기 전 고별 시합 때의 골리앗들이 합체를 하던데?. 그의 채팅 중 유명한 것은 문준희와의 듀얼 토너먼트 포르테 맵 경기의 '쫍아...ㅠㅠ'. 이 채팅에 혹한 문준희는 떡밥을 물어버린 물고기마냥 문준희는 입구를 계속 조여대면서 임요환의 유닛이 몰멀이나 진출을 못하게끔 대치 하였으나 역으로 임요환은 이렇게 쳐 놓고서는 이미 타 스타팅에 몰래 멀티를 해놓은 뒤 채팅에 제대로 낚여버린 문준희를 완전히 개발살냈다. 사실 포르테맵이 좁은것은 사실이고 '쫍아...ㅠㅠ'가 몰래 멀티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니 그분이 거짓말 한것은 아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선수들의 채팅은 자유로웠고 사건 당사자가 까와 빠를 몰고다니는 그분이라서 화제가 되었다는 것도 크다. 애초에, 상대방을 조여놓고 몰래 멀티를 체크하는 것은 기본중 기본이고, 문준희는 이 기본중 기본인 일조차 수행하지 않아 게임을 말아먹었을 뿐이다. 이 사건 뒤, 게임 내 채팅 행위에 대한 격한 논쟁이 스타 커뮤니티에서 벌어졌다. 결국 얼마 후 경기 중 자유롭게 채팅을 하는 행위에 대해 제재를 가하게 된다. 이후 손찬웅이라는 GG 대신 zizi yO를 사용하기로 이름이 높은 게이머가 있었는데, 다 이긴 경기에서 '상대의 GG가 나오기 전에' zizi yO를 쳐 버린다. 이 경기는 우여곡절 끝에 손찬웅이 이기지만, KeSPA 공식 경기에서 GG와 PPP 이외의 채팅을 할 경우 벌금을 물게 하는 규칙이 만들어졌다. 우스갯소리로 채팅 금지가 아니었다면 임요환의 전성기는 지금보다 훨씬 길었으리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참고로 하루에 60000번 탁탁음?, 15분씩 20번, 영어로도 친다고 주장하여, 역시 절륜남이자 황제임을 증명하였다.
홍진호의 콩간지와 더불어 합성 소스로 잘 사용되는 이 짤방이 있다. 흔히 말하는 임간지 짤방. 하도 합성이 많이 되어서 원본마저 합성으로 보일 정도이지만 어쨌든 정말 많이 쓰이긴 쓰였다. 인간의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표정들 중 하나.
파일:Attachment/임요환/050326-01.jpg
한때 유명했던 소위 '드랍킥' 짤방. 위의 임간지 짤방과 함께 한때 필수요소였던 짤방이었다. 그의 팬 카페 이름과 합쳐져 '임요환님의 드랍킥이다'라는 말도 따라 유행. 임요환 드랍킥의 비밀
다른 선수의 이름마저 직접 개명해 주신다.오오 황제 오오!
10월 27일 기사도 연승전에서는 3초간 출현했다 나갔다(...). 하지만 그 포스만으로도 대기실은 술렁술렁에 채팅방은 폭주했다. 오오 황제의 패기.
협회와 UNN들이 그분을 까는 기사를 쓰긴 했으나 이윤열과는 달리 아직 그분은 협회가 은퇴 처리를 안 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10-11 프로리그 개막전 홍보 전단물에서는 이미 스타 2로 전향한 그분이 실려 있을 정도. 아직도 요환 단물을 빨아먹으려는 협회의 검은 속내가 보인다.
그리고 GSL 시즌 2 8강전 이윤열과의 경기 후 협회는 전격적으로 임요환을 은퇴 처리했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된 임요환의 다음 행보를 지켜보자.
GSL에서 이윤열에게 승리 후 포모스의 모습. 한큐에 도대체 몇을 까는 거야?? 임간지가 보인다
2016년 2월 20일 KT GIGA 레전드 매치에 출전할 예정이라고 한다.
10.1 임진록
임요환과의 라이벌로 여겨지는 홍진호와의 경기를 일컫는 말. 대체로 4강전 이상에서 임요환과 홍진호의 경기를 말하지만 둘 다 몰락한 이후부터는 그냥 만나기만 해도 임진록이라고 한다. 자세한 사항은 임진록 항목의 4번을 참조. 임진록을 시초로 머머전, 택마록 등 많은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으며 임요환이 입대하기 직전까지 수많은 떡밥을 제공했다. 물론 임요환의 입대 후 둘 다 제대로 몰락하는 바람에 더 이상 리턴 매치를 구경하기는 힘들게 되었다. 임요환이 입대하기 직전 열린 슈퍼파이트의 마지막 임진록에서는 '내가 져도 전적은 내가 더 앞선다'며 임요환이 홍진호를 대놓고 약올리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한빛소프트,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으로부터 2002 WCG 우승까지의 기간을 임요환의 전성기로 생각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 뉴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딱히 케이블을 타지도 않았으며 그나마 기록도 대부분 소실된 진짜 전성기보다 기록 및 영상 자료가 남아있으며 임진록이라는 이슈도 있는 이 시대가 더욱 임요환의 전성기 같은 느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2009년 7월 24일, 또 한 번 임진록이 찾아온다.
결국 3연벙에 이은 2연핵으로 승리. 그리고 임정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9년 9월 26일 올스타전에서 홍진호를 메카닉으로 제압하며 상대 전적 63전 35승 28패를 기록중이었다.
이 경기에서의 채팅 드립이 재미있다. "꼼수대마왕" 이라며 매도를 하는 홍진호, "메카 사기" 라며 투덜대는 홍진호, "조... 좋은 헌납이다" 라는 명대사를 남긴 임요환 등등.
참고로 메카 사기라며 홍진호가 투덜댈 때 엄재경은 벙커링도 사기라는 벙커링 드립을 했고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벙커링 드립을 시전했다.
올스타전 답지 않게 흉흉했던 경기. 다른 선수들은 이벤트전 답게 경기를 하였으나 이 둘은 피말리는 경기를 치뤘다.
2009년 11월 24일에 열린 또 한 번의 임진록에서, 임요환은 892일 만에 홍진호에게 패한다. 이번에도 핵을 두 번이나 날렸지만, 홍진호의 전력엔 큰 타격을 주지 못했고, 두번 날려서 홍진호가 힘을 얻은거다 첫 번째 핵 시도에선 오히려 홍진호가 이레디에이터가 걸린 울트라로 고스트를 압살시키려고 하는 기지를 발휘했기 때문에 오히려 홍진호가 더 돋보였다. 단 두 번째 핵 발사시 고스트의 레이저포인트를 드론 머리 위로 지정하여 어디에 쏘려고 하는지 모르게 한 것은 역시 임요환다운 센스였다.
2010년 8월 14일에 프로리그 올스타전이 열렸는데 이때 다시 한 번 임진록이 개막, 임요환은 다시 한 번 육개월만에 홍진호에서 패한다. 이때 마지막에 핵을 준비했지만 홍진호에게 커맨드 센터를 먹히면서 그대로 임요환이 참패. 그리고 홍진호는 이 때 안드로메다를 정말로 보여줬다. 하지만 세리머니로 애인하고 악수하다가 목졸림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큰 웃음을 선사. 그리고 그분은 백스테이지에서 홍진호에게 복수를 했다. 다만 황신의 행운럴커의 활약과 자신이 보여주고 싶어한 플레이가 나오지 못해 대단히 아쉬워했다.
2012년 8월 4일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 마지막 스타리그에서 임진록이 성사되었다.
마린산개로 홍진호의 러커 여러마리를 잡아내는 컨트롤을 보여줬지만 소떼에 커맨드 센터를 두 개 먹히고 마지막 임진록에서 패배, 경기가 끝난 후 홍진호와 함께 콩댄스를 추었다.
10.2 가을의 저주
질레트배까지는 임요환을 이기면 우승한다는 징크스도 있었다. 사실 이는 임요환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스타리그에 잔존했었는가를 증명하는 것이었을 뿐. 실제 질레트배 우승자도 듀얼에서 임요환을 이긴 기록이 있었으니... 가을의 전설 또한 토막인 임요환을 결승에서 이긴것 뿐이라는 평가절하가 있었다. 이는 이후 택뱅리쌍세대에서 임요환과 무관하게 승리를 거둔 가을의 프로토스가 등장하며 불식. 홍진호 왈 테란을 일으킨 자 홍진호, 프로토스를 일으킨 자 임요환, 저그를 일으킨 자 박정석이라고...
홍진호의 저 멘트는 2005 Ever배 스타리그 결승에 걸렸었던 임요환 응원 현수막의 패러디로 추정된다. 원전은 테란을 일으킨 자이고 임요환 응원구였으나, 아이콘적 존재이면서도 토막으로 유명한 임요환과 그 결승의 결과 탓에, "테란을 일으킨 게 임요환을 그 자리에 올려준 홍진호지 왜 임요환이냐"라는 이유로 희화화 된 드립. 여기에 저막 이미지 박정석,[64] 사실 이 3인의 전성기 승률을 보면 절대 막장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셋 모두 해당 종족전의 본좌라고까지 불렸다. 다만 조금씩 전성기가 지나가며 임팩트 있는 사건(승률 절대 불균형인 맵에서 유일하게 1패한 기록을 가지고 있거나 주요 경기에서 꼭 졌다거나 우승 리그에서 특정 종족을 한 번도 안 만나고 올라갔다거나)들이 늘어나면서 그런 이미지가 생긴 것뿐 사실 전성기 시절 임요환이 토막이라면 토막 아닌 게이머 없다. 이건 홍진호, 박정석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진출하여 2개 대회에서 우승하고 4개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준우승을 차지한 4개 대회가 하필이면 모두 가을 시즌과 겹치고 있는 상황. 본래 3개 대회째 준우승할 때까지만 해도 그의 대 프로토스 승률과 연관되어 초대 토막에 올랐지만, 그의 밑에 있는 토본 선생이나 그 뒤를 있는 토막들에 비한다면 그다지 토막이라 불릴 선수는 아닌듯.
하지만 2004 '에버 스타리그'에서 최연성에게 3:2로 진 것을 보면, 비단 프로토스를 상대로 한 가을의 전설 피해자로만 볼 정도는 아니다. 결국 토막이라는 이유보다는 '가을의 저주'의 피해자라 보는 것이 합당할지도. 한두번도 아니고 4연속으로 가을에만 지는 걸 보면 정말이지 누군가에게 저주를 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리고 가을의 저주는 GSL에서도 이어져 결승 진출을 눈앞에 놓고 4:0 완패를 당했다. 스 1 시절에는 '저그? 그거 먹는 거임?' 하고 씹어먹었던 저그에게 패배. 이제는 정말 굿이라도 해야 할지도...
2011 WCG 해설에서 프로토스가 선전하고 전용준 캐스터가 가을을 언급하자 "지금 제 앞에서 가을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라고 반응. 황제께서 이 항목을 보셨나보다.
10.3 고스트
2007년 후반에 프로토스전에서 고스트의 적극적인 활용을 시도했으나, 별로 효과가 없었던 듯하다. 게다가 그 승률마저 5할 본능.
2007년 5월 22일 강민과 프로리그에서 맞붙었을 당시 캐리어 8기를 동시에 락다운으로 묶고 골리앗으로 그 중 7기를 잡아냈지만 정작 경기에서는 패배한 것이 대표적인 예(...).
2008년 프로리그 대 윤용태전에서 보여준 고스트의 아비터 락다운으로 대세가 되는 듯 했지만... 2009년 봄부터 2010년 프로리그까지 고스트가 나오는 경기는 거의 없다. 임요환 수준으로 활용하는 사람도 없는듯 했고, 그냥 그랬던 수준. 나중엔 임요환도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9년 후반 들어서면서부터 저그전에서 관광을 때릴 때 핵을 자주 쓰고 있다. 홍진호, 박준오 등이 주요 희생자. 정명훈도 매치포인트에서 핵을 선보였는데 핵을 쏜 매치포인트라는 맵이 테란이 7시인 경우 6시 지역이 핵 공격에 상당히 취약하다는 게 밝혀지면서 이 맵에서는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10.4 게임 외의 활동
더 지니어스 TOP3 | ||||
시즌 1 게임의 법칙 | 시즌 2 룰 브레이커 | 시즌 3 블랙가넷 | 시즌 4 그랜드 파이널 | |
우승 | 홍진호 | 이상민 | 장동민 | 장동민 |
준우승 | 김경란 | 임요환 | 오현민 | 김경훈 |
3위 | 이상민 | 유정현 | 최연승 | 오현민 |
스타 무한도전에 특별출연한 적이 있다. 한 판만 더 하자고 떼 쓰고, PD 유혹(?)하고(게다가 성공), MC들을 갈구고, 작전 짜자고 포즈를 거는 등 다른 게스트로서는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스포츠계에서 인기나 짬이 특급 레벨이다 보니 게임 외의 일로 게임 방송에 나오면 무척이나 편한 듯하다. 게임 예능에 나오면 그날 특집 잔치를 벌이는 것은 당연하고 프링글스 MSL 조 지명식에서 임요환의 자세나 태도에 대한 평은 '조금 지나면 드러눕겠다'. 게임 예능에서도 무척 편한 모습이었으나 점차 예능 MC진들이 임요환 아래 세대의 게이머나 신임 캐스터들로 채워지면서 다소 서먹해진 모습.
2012년 3월 29일 김가연과 해피투게더에 출연하였다.
파일:Attachment/임요환/KongKong.jpg
홍진호 님이 이 글을 싫어합니다
목표도 두가지 홍진호 준우승도 두번째 파일명도 콩콩
2013년 12월 7일부터 방영중인 더 지니어스:룰 브레이커에 출연하였다. 전 시즌 우승자 홍진호와의 라이벌 구도를 노린 제작진의 의도로 보여지며, 본인도 '진호보다 잘하는 것, 그리고 진호는 준우승'을 목표로 삼으며 참가하였으나, 메인 매치 전패를 기록하며 결승전에 진출했으며 결승전에서도 이상민에게 패배함으로서 전패준을 달성하였다. 즉 위 짤방과 정반대로 본인이 준우승했다. 그래도 목표 하나는 이루긴 했다.
자세한 내용은 임요환/더 지니어스 항목 참조.
11 기타
11.1 시각장애인과의 대결
2004년 블리자드가 주최한 행사에서 한 시각장애인 이민석군과 프로게이머 임요환 선수와 승부를 벌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65]
당시 경기 영상.
맵이 1:1 전용 맵인 challenger[66]다. 맵이 작고 단순하기 때문에 충분히 외울 만하다. 자원 채취 가능한 곳도 몇 군데 없다. |
경기는 3판 2선승제로 펼쳐졌다. 정상적으로 게임이 진행된다면 프로게이머인 임요환이 무난히 이길것이 자명하므로, 임요환에겐 상당한 핸디캡이 주어졌다. 1경기에서는 게임을 하는 내내 안대를 끼고, 두번째 경기는 3분간 안대 착용 + 게임하는 내내 미니맵을 가리고 플레이했고, 3경기만 아무 핸디캡 없이 치뤄졌다. 당연히 첫 경기는 임요환이 무난히 졌고, 세 번째 경기는 임요환이 무난히 이겼다. 해당경기 당시 채팅을 하여 구설수에 오른적이 있었는데, 내용은 '당황스럽네', '이 친구 너무 잘 한다' '(미니맵을 못 보니)답답하다'[67] 같은 내용이었다. 그 당시 해설에 앉아있던 김동수가 왜 시각 장애인 상대로 채팅을 하는지 의문스러워했다가 채팅으로 소리를 방해하는거라는 해설을 하였다. 이에 시각장애인을 상대로 비열한 방법을 사용하여 이겼다는 루머가 퍼지자,임요환 갤러리에서 반박글을 올리기도 했다.#
11.2 트리비아
- 그의 경기를 모은 DVD를 온게임넷에서 발매한 적이 있다.[68]
- 초창기 E스포츠시절, 이지혜와 같이 각기 남녀 프로게이머를 대표했다. MANUL 2001.10이란 책에 인터뷰가 실려 있다. #
- 그 영향력으로 인해 SKT T1에서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선수협을 만들 수 있는 인물로 꼽혔던 인물. 그러나 이후 이름을 부를 수 없는 마
볼드모트와의 합동 인터뷰에서 선수협을 대신 만들어 달라고 해 '네가 아니면 아무도 못할 일을 왜 남한테 시키냐'라고 까인 적이 있다. 그런데 이창훈이 은퇴할 때의 인터뷰에 따르면 2005년경에 강도경, 홍진호 등과 힘을 합쳐 임요환이 선수협을 만들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감독들의 눈초리와 타 팀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인하여 무산되었다고.- 생각해보면 프로 구단들이 안정화되어야 선수들도 협회를 만들 명분이 생긴다. 그리고 한국에 기업팀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2004년이고, 몇년 지나 체계화되며 안정화 되었을때 임요환은 전성기도 지나갔을 때였고, 무엇보다 군문제가 있었다. 즉 e-스포츠 선수들을 위한 협회를 만들 수 있었던 골든 타임때 임요환은 활동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임요환이 군에 있었을때 임요환의 영향력을 대체할 프로게이머가 없었다. 임요환은 제대하고 얼마 안 되어 한 인터뷰에서도 선수협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했고[69], 몇달 뒤에 마재윤과 합동 인터뷰 당시에 한 말의 뉘앙스를 보면 "지금은 제대로 된 현역 선수들중에는 너(마재윤)의 영향력이 가장 크니 네가 선수들의 구심점이 되어라. 나는 원로(?)로서 절대적으로 지지해주겠다."이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스타판에 거대한 흑역사가 들이닥쳐서 선수협이 아니라 업계의 존폐를 걱정하게 되었다.
- 유튜브 TeamLiquid 공식 계정에서 Hall of Fame이라는 플레이 리스트로 임요환의 온게임넷 개인리그 첫 승리 경기(한빛소프트배 16강 vs 정완수)부터 마지막 승리 경기(신한은행배 시즌1 vs 최가람)까지를 모아놓았다. 그리고 명예의 전당 헌액식 영상도 있으니 팬이라면 필견.
그냥 승연적공간을 보자
- 왠지 소속팀 마스코트에게 까이는 듯. 벙키 자체가 임요환의 단점의 오마쥬인 이유로 팀 프론트가 임까인 게 아니냐는 설도 있다. 큰 머리 + 벙커, 이쯤 되면 대놓고 임까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임까와 임빠는 구분이 어렵다, 저게 애정일까, 까일까, 둘 다일까?
- '임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기독교 신자 가운데 요한이라는 이름을 쓰는 이들이 많아서 그런 듯. 그냥 일상에서 잘못 알고 있는 정도면 괜찮은데 방송이나 신문같은 언론 매체에서까지 임요한이라고 대놓고 오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 특히 김가연과의 열애설이 터진 이후로는 더더욱.
검색 한 번 하면 나오는 걸 가지고 대놓고 실례를 하고 있네참고로 임요환은 가톨릭 신도는 맞으나, 세례명은 '고르고니오'다. 이름과는 관계 없다.
- 전역 이후에도 탤런트 김가연과 열애설이 터진적이 있다. 임요환 자신은 열애설이 터졌을때 매우 기분이 안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위에 나오다시피 사실이었다.
- 박상면과 소지섭이 출연한 코미디 영화 '도둑맞곤 못살아'에 까메오 출연했다.
- 2007년 5월 5일 어린이날 기념으로 마서스와 이벤트 경기를 한 적이 있는데, 우측하단에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창에 한 사람이 '임요환 귀두세키'라고 쓴 것이 그대로 나간 적이 있다(...).
주작 인성 수준참조 링크
- 2003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브레인 서바이버'에도 출연한 적 있다. 다 맞는 분위기에서 혼자 틀리질 않나, 말 몇 마디 한 후로는 이래저래 병풍 역할만 하고 버로우했다.
- 2009년 9월 18일. 소녀시대의 유리와 서현이 이상형이라고 밝혀 충공깽을 불러일으켰다.
- MBC의 개그프로에서도 박준형과 함께 공중파를 탔다. 난입한 박준형에게 스타 실력이 떨어진다는 말에다 미네랄에 일꾼 3마리씩 붙이라는 잔소리를 들었다. 덤으로 벙커링에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한다.
- 2009 NATE MSL 결승 리쌍록에서 이영호가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유는 이영호의 원 배럭 더블을 깰 만한 빌드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본인은 이제동이 승리하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알고도 못막는 전략은 있어서는 안 된다. 과연 콩 까는 데는 도가 텄다. 하지만 그분이 강림하실 줄 누가 알았겠는가...
- 리얼스토리 프로게이머 SKT T1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프로토스를 못하는 듯하다. 오죽하면 '동료들이 입을 모아 프로토스를 못한다'라고까지 했다. 간식배 발끈 프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70] 동료들이 박용욱에게 "프로토스 임요환에게 지면 이름을 입용욱으로 개명해야 한다"고 했을 정도.
스타 시작했을 땐 주종이 프로토스였다더니 이게 웬...
-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 4화에 출연... 그분과 옆에 같이 있던 괴수 코치에게 아임 유어 맨 안무를 가르쳐주고 같이 안무를 맞춰서 춤까지 췄다. 보고 있으면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웃기기도 웃기면서 동시에 손발이 오그라든다. 6화에서 서경종이 말하기를 이스포츠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4화에서는 임요환을 상대로 벙커링 금지, 메카닉 금지, 공중 유닛 금지, 초반 러시 및 견제 금지 등등 엄청난 제약을 걸고, 오직 배럭스에서 나오는 바이오닉만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하여 게임을 했지만 마린 테크노 댄스, 2연 핵관광, 무한 파이어뱃 물량 등등으로 관광을 당하며 GG. 쵱코치는 핵을 쓰는 걸 보며 반칙패를 주장했지만 배럭스에서 나온 유닛인 관계로 반칙패는 수용되지 않았다. 중반 러시는 벙커를 3개씩이나 건설하는 삼연벙을 선보여주시기까지 했다. 이것 참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 강민의 올드보이 3회에 출연하여 그간 스타리그 예선 통과의 힘들었던 점과 심정을 털어놓은적이 있다.
-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팬이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 강민의 올드보이 10화에 뉴캐슬 저지를 입고 나왔는데, 그저 패션 아이템으로 사용되기에는 국내에 물량이 그렇게 나올 편도 아니고.
- 돌아온 뒷담화 말미에 제자와 함께 출연,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스캔들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자신이 인정한 본좌 후배가 이 사건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데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 켠김에 왕까지에 제자인 최연성과 그리고 김가연과 함께 출연했다. 임빠, 임까 스갤러 모두 이윤열은 100승 찍고, 홍진호는 공군에서 분투하고, 박정석은 스타리그까지 진출했는데 프로리그에도 안 나오고 이런 거에나 나온다고 합심해서 까고 있다. 하지만 스타리그는 몰라도 프로리그의 경우 일단 박용운 감독이 내보내야 타임 머신 들어가서 벙커링을 하든, 핵을 쏘든 뭐든 하는데 그렇지를 않으니 뭐...
- 메탈 밴드 더 크레센츠의 2집 수록곡인 Ride of Valkyries는 임요환 헌정곡이라고 한다.
- 2010년 들어서는 애인인 김가연이 순위 정하는 여자에 출연해 그의 사생활을 이것저것 공개하고 있다. 피부가 여자 못지 않게 좋다든가, T1의 연습 시간은 새벽 0시까지라든가 등등등(…).
- 참고로 임요환의 한 달 용돈은 3만 원이라고 한다. 여친에게는 나이 들어 안 어울리는 날이 오기 전에 입고 싶은 거 마음껏 입어두라며 카드를 만들어주고 본인은 여친에게 3만 원씩 타서 쓴다고...
- 2010년 10월 26일 애인 김가연이 놀러와에 '연하남과 연애하는 누님'들로 출연하면서 게스트로 함께 나왔다. 그런데 본래 10월 11일 예정되었던 방송이 프로야구 중계 관계로 결방, 다음주인 18일에는 싸이·성시경 특집이 방송. 그래서 놀러와는 스타크래프트 팬들에게 까이다가 가루가 되었다. 놀러와에 출연한 임요환의 마무리 멘트는
"여자 꿈에 묻히지 마라"
- 스타크래프트 2로 전향하고서 배틀넷에서 IdrA를 만나고는 Grack이라는 훌륭한 이름을 황제께서 하사하셨다. 황제의 위엄.
- GSL 시즌 3를 앞두고 슬레이어스 클랜 창설을 발표하고 한창 인원을 모집 중인데 미오웨라 때문에 까이고 있다. 프로게이머나 방송경기 출전은 생각도 안하겠다고 하던 인간이 다시 나와서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과하고 싶었다라는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을 했으니 욕을 먹는 것은 당연지사. 임요환에 대해서는 '왜 이런 놈을 받아들여서...'라는 의견이 대다수. 더불어 GSL 시즌 3 진출 후의인터뷰를 보면 미오웨라(전용수)를 슬레이어스 클랜 소속으로 인정하는 발언이 있다.
- 임빠들은 임요환이 미오웨라의 문제를 몰랐을 거라고 하지만 인터뷰에 임요환이 미오웨라를 언급했을 때마다 기사 덧글에 비난이 있었던 것만 생각해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이고, 임요환도 인터뷰에서 미오웨라를 클랜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발언과, 팀과 클랜의 관계에서 책임을 간과하는 듯한 발언으로 스스로 까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중이다.
- 2010년 11월말에 tvN에서 "임요환의 날개"라는 이름으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주 내용은 임요환의 GSL 시즌2 도전기, 그리고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보고 있으면 임빠로서는 눈물 뿌리는 장면이 많다. 그 중 요통에 시달리다가 김가연과 함께 병원에 가게 되는데 의사 曰 "이런 요통에 시달리는 것은 보통 40~50대인데...이것 직업병임...", 결국 물리치료받는데 왜 이 지경이 될정도로 계속 게이머 생활을 하느냐는 말에 "이정도 가지고 투정부리면 팬들앞에서 뭐가됨?" 과연 황제 1편 2편로가면 다시보기로 볼 수 있다.
- 최근 OSEN에서 브란젤리나 커플이라 하여 기사와 함께 사진을 몇장 올렸는데....
- [2]
- 김가연과 함께 왕후장상이나 입을 법할 옷을 입고 나와서 훈훈한 포스를 풍겨주셨다.
- 2011년 SBS에서 설특집 스타 커플 최강전에 김가연과 함께 유일한 진짜 커플(...)로 등장, 벼봇춤에 이은 새로운 전설을 쓸 것인가 생각되었지만...
- 김가연이 소녀시대의 Hoot!에 맞춰 춤을 추는 동안 가만히 경호원 역할에만 충실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MC들의 요청에 황제께서 활을 당기기 시작했다!
- 2011년 설특집 KBS 연예인 복불복 마라톤 대회에도 김가연과 함께 출전하였다. 그런데 둘이 천천히 걸어다니며 데이트만 해서 분량은 별로였고, 아예 자막에 '출전의 목적은 데이트?'라고 나올 정도. 몇 등 했으며 뭐뭐에 걸렸는지는 아예 방송이 안 되었다.
- 2011년 6월 25일 그의 영원한 라이벌의 은퇴식에 참석하여 선물로 스타 2 패키지 CD를 주었다. 박스 내용은 비어 있었는데 트위터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이는 언제든지 스타 2를 하고 싶으면 오라는 메세지였다고 한다. #
- own3d에서 스타 2 개인 화면 방송을 하니 관심이 있는 사람은 가보자. #
- 2012년 4월 이후론 게임에 임하지 않고 병원을 다니며 재활 치료에 집중하고 있던 상황. 아직 창창한 30대 나이이지만 목과 허리 디스크, 어깨통증, 요통 등등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수준. 의사 말로는 겉은 훤칠한 30대지만 속은 60대 노인이라고. 이전에도 계속 통원치료는 해왔지만 결국 의사 조언대로 게임을 쉬고 재활 치료에만 집중하는 중이라고 한다.
- 신사의 품격 10화 오프닝에 보면, 4인방이 PC방에 가서 스타 2를 하다가 전지현이 가게 왔다는 소리에는 쿠폰 주라는 말밖에 안 하지만 임요환이 왔다는 소리에는 하던 게임을 그만두고 5분 거리를 택시 타고 갈 정도의 인기를 가진 걸로 표현되었다.
40대라면서 스타 많이 좋아하시네요?
- 누나가 3명 있는데, 그 중 둘째 누나의 남편 즉 둘째 매형이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에서 코치를 맡고 있는 전 배구 선수(고려증권과 삼성화재에서 활약) 손재홍이다. 둘째 매형도 누나보다 연하라고 한다(...)
- SNL에서 2013년 11월 23일 카스 2: 임진왜란 편에서 일본 사무라이로 출현했다! 그리고 작중 대사 중에서 "역시 콩은 까야 제맛이지!"등 아는 사람은 모두 실컷 웃을 수 있는 드립을 날렸다!
- 2014년 03월 SNL 게임즈에서 또 한 번 더 카스 2: 병자호란 편에 출연하여, 김민교와 같이 홍진호를 사살하는데, 이때 '콩은 같이 까도 제맛(...)'이라고 외치며, 보상으로 궁녀를 구하러 갔는데 궁녀가 부인 김가연이라, 사살했다. 그리고 그 뒤에 PC방에 찾아온 김가연은 임요환의 머리를 붙잡으며 게임만 하니까 머리가 큰 거라며 디스하면서 끝난다.
- 부인인 김가연의 말에 따르면 타고난 천재성으로 남들이 이해 못할 말을 한 마디씩 툭툭 말을 던진다고 한다. 그러나 게임계에서는 최연성이, 현실에서는 김가연이 그 한 마디를 알아듣고 풀어헤쳐서 써먹기 때문에 임요환이 지금 이렇게(...) 됐다고..
- 그리고 컴맹으로 유명하다. 예전부터 인터넷 게시판에 글 같은걸 올리는 데 쩔쩔맸다고 한다. 김가연의 증언에 따르면 인터넷 뱅킹도 못한다고...
- 그리고 현재 임요환은 아프리카 티비도 활동하고 있으며 홀덤 풀팟과 더불어 시청자들과 스타크래프트 1, 스타크래프트 2 경기를 시청자와 같이 이벤트로 경기를 한다(자세한 것은 아프리카 티비 '임요환'을 검색해서 확인해보자).
- 네네치킨 배 블레이드 앤 소울 비무전(PvP 리그)에서 홍진호와 이벤트전으로 임진록을 펼쳤고 압도적으로 이겼다. 또한 임데이날은 소환사 선수인 이상준을 상대로 3판 중 첫 판을 가져가기도 했다. 이날 이상준 선수의 유일한 패배였다. 다만 이상준 선수와의 둘째 판에선 압도적으로 밀렸고[71] 셋째 판에선 콤보 한 번이 제대로 들어가긴 했지만 결국 진 걸로 봐선 상대 선수인 이상준의 방심도 컸던 것 같다.[72] 하지만 져줄생각은 결코 없었다고 한다. 임요환의 게이머로서 마음가짐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경기로 블소팬들의 엄청난 극찬을 받았다. 전용준캐스터말처럼 스타리그 분위기가 날정도로 임요환을 외치는 함성이 엄청났다. 링크
- 2014년 8월 3일 출발 드림팀 2기 244화 방송에 출현하여 자신의 22살 시절 사진을 공개하고 언론에 기사화됐다. 또한 부인인 김가연과의 깨알(?)같은 내조 개그를 연출했다.
- 놀러와에서 한 발언에 의하면 요벙, 대갈, 임대가르시아 등 별명은 자신도 알고 있는 수준을 넘어서 김가연이 임요환을 임요, 요벙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스덕이 아닌 작가는 여보의 애칭이라 생각했나 보다.
본격 그분의 그분도 까는 삼연벙.
- 스타 2 슈퍼스타 챌린지의 임진록 리턴즈에서는 황신의 발언으로 이상한 거 하는 사람이 되었다.
- 2015년 8월 1일 득녀했다.
그리고 깨알같은 첫번째 댓글:저 마린이는 커서 혼자 러커를 잡습니다
11.3 머리 크기
앞에서 실컷 설명했듯 화려한 전적만큼이나 머리 크기 또한 독보적인데, 임대가르ㅅ.. 읍읍 자신을 포함한 팬들은 그저 어깨가 좁을 뿐이라고 항변하지만[74] 2010년 9월에 방영한 온게임넷 프로그램 드리머에서는 본인 스스로 '얼굴이 큰 것'이라고 말한다. 공군 입대 당시 전투모 사이즈가 58. 직접 보면 실제로 그렇게 머리가 크다는 느낌은 없다. 게다가 군모 크기로 따져보았을 때 강도경이 임요환보다 더 머리가 크다(임요환 58호, 강도경 60호). 흠좀무.
여담으로 선수 시절 임요환만큼이나 머리가 컸던 모 후배가 임요환에게 장난친다고 "그래도 형보다는 머리가 작잖아요 ㅎㅎ"라고 했다가 빡친 임요환이 최연성을 소환해 애들 관리를 어떻게 하냐고 갈굼을 시전한 적이 있었다. 전상욱도 머리 크기에 관해 디스했다가 최연성을 통해 내리 갈굼당했다는 기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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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24일에는 난데없이 예비군 A로 SBS 8시 뉴스 출연(...). 스덕들의 반응은 "그 머리에 맞는 철모가 있긴 있구나(...)." 군부대에서 머리가 컸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자면 다른 사람들과 철모를 착용한 방식이 차이가 있다. 일단 철모가 뒷머리 부분을 덮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귀가 나와 있다. 이 말은 철모가 귀 위쪽 부분에서 걸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군부대에서 머리가 큰 사람의 경우 부유대와 가죽 끈을 제외하고서야 철모를 착용할 수 있다.
- 2013년 12월 10일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포수 부문 시상에 시상자로 나왔다. 직접 강민호에게 전달해 주기까지.
이제는 모두가 알아주는 아이콘??아무리 임대갈이라도 머리 크기는 강민호한테 안 된다.
- ↑ 여담이지만 집안의 장손이라고도 한다.
- ↑ 김가연과 전 남편 사이에 가진 딸. 빠른 96년생으로 2014년 현재 대학교 1학년. 임요환과는 16살 차이.
- ↑ 2015년 8월 1일 출생
- ↑ 대회 창설
- ↑ 대회 창설, 전신이라고 볼수있는 WCGC에서는 박태민이 우승을 했다.
- ↑ 승자어드벤티지 1승
- ↑ 메가매치 P.O에서 박정석에게 1:2패배
- ↑ 4강에서 이윤열에게 3:1승리
- ↑ 4강에서 이윤열에게 1:2패배
- ↑ 4강에서 서지훈에게 0:3패배
- ↑ 4강에서 강민에게 1:2패배
- ↑ 8강 승자전에서 전상욱에게 1:2패배
- ↑ 군입대문제로 자동기권
- ↑ 2002년 동양(오리온)과 계약할 당시. 연봉 계약과 별도로 핫브레이크 CF에도 출연했다.
- ↑ 역대 다승과 테란 다승 1위는 이윤열.
- ↑ 다만 MBC 게임 로열로더는 논란이 있다. KPGA 때 기록을 MSL로 포함시키느냐 하는 문제 때문.
인정 안 되면 이윤열은 금뱃지까지 내놔야 한다MBC 게임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로열로더 문서 참조. - ↑ 스타 2까지 확대하면 조성주 또한 양대 리그 로열로더이다. 그러나 조성주 또한 SSL 초대 우승자이고 스타리그는 현재 사실상 폐지되었기 때문에 양대 리그 로열로더 여부에는 논란이 있다.
- ↑ 2001, 2002년 WCG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 ↑ 그러나 스타리그 본선 기록만 포함해도 83승으로 1위이다.
- ↑ 30전 이상 기록 중 1위.
- ↑ 그 다음이 5회 진출한 박성준, 정명훈, 4회 진출한 이영호, 이제동, 이윤열, 송병구.
- ↑ 정명훈과 동일.
- ↑ 2001년,2002년,2004년,2005년
- ↑ 2003년,2005년,2006년,2007년의 이윤열과 동률.
- ↑ 원래는 1위로 랭크되었으나, 2016년 8월 이후로 한 계단이 내려갔다. 이 사람이 새로운 1위가 되었기 때문.
- ↑ 이윤열이 복수용달에 나와서 말한 일화 중에 택시를 타고 가는데 택시 기사님이 직업이 뭐냐고 물어봐서 프로게이머 이윤열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임요환은 아는데..."라는 대답을 듣게 되고, 그 말을 듣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 ↑ 다만 MBC 게임 로열로더는 논란이 있다. 로열로더항목 참조.
- ↑ 스타2까지 확대하면 조성주 또한 양대리그 로열로더이다. 그러나 조성주 또한 SSL 초대 우승자이고 스타리그는 현재 사실상 폐지되었기 때문에 양대리그 로열로더 여부에는 논란이 있다.
- ↑ 실제로 한동욱은 2006년에 우승하고 2007년에 마지막으로 개인리그에 진출했고 그 이후로는 본선에 올라간 적이 없다. 마재윤의 경우에도 2007년에 스타리그 우승을 했지만 2008년이후 스타리그 36강 진출조차 없었다.
- ↑ 실제로 올드게이머들 중에 연단위 까지 시간차이를 내면서 결승에 진출한 선수는 2003년,2004년,2005년,2006년,2007년의 이윤열, 2004년,2005년,2008년의 박성준 정도 밖에 없다.
- ↑ 콩라인 개념이 생겨나고 준우승을 반복하는 선수들이 생겨나자 준우승을 깔보는 경향이 강해졌으나 스타리그에서 준우승자는 16명중 2위이고 임요환 시대의 (KPGA)MSL에서도 16명중 2위이다. 결승진출 이라는 것 자체가 부단히도 어려운것으로 진출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 ↑ KPGA Tour 1차부터 MSL의 전신으로 보아 MSL에 편입시키는데, KPGA Tour 1차리그도 2002년 2월에 시작
- ↑ 사실 공식 나이에는 언제나 만 나이를 써야 하므로 실제로 30대 프로게이머가 된 것은 2010년이긴 하다. 나머지 한명은 임재덕 여담으로 임재덕 선수는 브루드워,스타2 통합으로 봤을때 30대 프로게이머 최초의 메이저 대회 우승자다.
- ↑ 극단적인 비유이지만, 리오넬 메시와 박주영이 경합을 하는데 박주영은 평범한 운동화를, 메시는 나이키의 초고급 축구화를 신었다고 따지는 격이다. 물론 저 당시 타 게이머들과 임요환이 박주영과 메시만큼의 압도적인 실력차가 있었던 것은 아니긴 하지만.
- ↑ [3]
- ↑ 당시 기준으로 개념맵이었다. 다만 마이큐브 배에서는 토스가 테란 상대로 전승을 거뒀다.
- ↑ 워크래프트에서는 실제로 이러한 부커 리그가 있었고 리그 폐지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요컨대 멀쩡한 리그를 주작리그와 동급이라고 모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 ↑ 1,5경기 맵수정사건은 임요환 입장에서는 정말 안타까울뿐이다
- ↑ 2002 스카이 스타리그 결승전 하루전날 앞두고 주방용품 판매 행사를 뛰었는데, 정작 임요환이 받아야할 돈은 못 받고 송호창이 갈취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 ↑ 사실 이 시점에서 임요환은 이미 올드, 좋게 봐줘도 중견급 게이머였다. 라이벌이 홍진호라는 것 때문에 다들 잊고 있는 사실이지만, 임요환은 홍진호, 이윤열보다 한 세대에서 반 세대 선배급으로, 오히려 강도경, 김동수와 더 가까운 세대이다.
1.5세대 - ↑ 이 무렵 박성준에게 패해 온게임넷 스타리그 연속진출 기록이 깨졌다. 또한 MSL에서는 TG삼보 MSL부터 당골왕 MSL까지 본선무대에 진출하지 못했다.
- ↑ 그래도 제1차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통합 준우승을 달성한다.
- ↑ 오리온이 개인 스폰 연장을 제의했으나 팀 전체를 스폰해줄 것을 원한 임요환이 거절.
- ↑ 본인이 회고하길 딱 스타리그 3회 우승만 달성하고 은퇴하려 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3번째 시도가 계속 막힌 게 이스포츠 흥행에 크게 기여했다.
- ↑ 그가 만든 명경기 중에는 이러한 승부욕으로 역전에 성공한 경우가 많다. 도진광의 프로토스를 상대로 기적과 같은 역전승을 거둬 지금도 회자되는 명경기를 만들기도 했다.
- ↑ 2005년 10월19일 기준 온게임넷 VOD 순위 TOP 10이 전부 임요환의 경기다. 링크
- ↑ 사실 링크의 전략들을 전부 임요환이 만들었다고 하긴 힘들고, 101가지가 전부 '전략'이라고 부를만한 것도 아니긴 하다. SCV 댄스를 전략이라 할 수는 없잖은가.
- ↑ 아래에도 후술되어 있지만, 200이 꽉 찬 상태에서 건설로봇을 버리고 지게로봇으로 땜빵하는 전술과 바이킹 뭉치기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바이킹 뭉치기는 블리자드의 빠른 패치(...)로 없어졌지만 지게로봇은 그 이후 테란들의 장기전 기본 스킬이 된 정도로 영향을 끼쳤다.
- ↑ 기본유닛에 불과한 질럿이 실드 포함 160이다! 시즈탱크보다도 체력이 높다.
- ↑ 애초에 공군 게임단의 창립 조건이 임요환의 입대였다.
- ↑ 참고로 메인 이벤트인 Red dragon의 우승 상금은 약 2억 원이고, 8위 상금도 2600만 원 정도 되는 큰 규모이다.
- ↑ 이건 지나친 미화인데 당시 모든 프로게이머가 다 저런 열악한 환경에서 게이머 시절을 보냈다. 성과를 낸 임요환, 최연성, 박용욱 개인이 대단한거지 이들만 특별히 열악한 환경에서 해낸것처럼 말하는것은 모순이다
- ↑ 게이머그라피 1편
- ↑ 게이머그라피 | 임요환② 무엇이든 처음이었다|작성자 iloveoov
- ↑ 일간스포츠(0308)
- ↑ 임요환은 "유니폼이 그 어떤 정장보다 나를 훨씬 더 잘 표현해 줄 것 같다."라는 말을 남겼다.
오오... - ↑ 97전 1무 96패. 그것도 1무는 전원이 꺼져서 무승부 처리 된 것이라서 일 때려치우려는 역할이다.
- ↑ BoxeR 이라고 쳐도 리다이렉트가 된다. 단, 맨 앞의 B와 맨 뒤의 R을 대문자로 입력해야 한다.
- ↑ 물론 예수와 비슷한 행보를 걸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가 인류사에 미친 영향이 임요환이 e스포츠에 미친 영향과 비견이 된다는 의미다.
- ↑ 그래도 의미가 잘 와닿지 않는다면 농구에서 마이클 조던이나 축구에서 펠레 정도의 위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히려 분야에 대한 기여도만 따진다면 그 이상이다. 펠레,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 등 모든 스포츠 분야에는 압도적인 실력과 퍼포먼스로 스포츠를 부흥시킨 선수들이 있지만 그들이 나타나기 전에도 이미 스포츠로서 성립되어 대회, 스폰서, 리그 등 활동하기 위한 조건이 갖추어 있었기에 선구자로 부르기는 힘들다. 반면 임요환의 시대에는 게이머를 직업으로 삼는다는 개념 자체가 흐릿했으며 그저 게임을 좋아하거나 잘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즐기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 아마추어의 행사를 정상급 게이머가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대형 방송사에서 게이머를 보도하는 시대로 이끈 주역인 만큼 어느 분야의 어떤 선수도 비견하기 힘든 공로를 세웠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 물론 예수의 탄생 시기는 정확히 기원후 1년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후대 역사학자들의 실수로 갭이 생긴 것이지, 처음에 기원전, 기원후를 제정했을 때는 예수의 탄생을 기원후 1년으로 잡았던 것이 맞다.
- ↑ 스타판은 임빠와 임까로 나뉜다는 말처럼 많은 팬수만큼 악성안티에 시달린것이 임요환이다.
- ↑ 원본은 루리웹의 모 유저가 만든 팬짤이다.#
- ↑ 어디까지나 이미지이다. 박정석은 저그전 12연승을 달린 적도 있는 준수한 실력을 가진 게이머였다. 다만 마레기와 박성준에게 발려댔을 뿐.
- ↑ 승패를 떠난 두 사람의 아름다운 명승부에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라는 당시 기사도 남아있다. 중앙일보
- ↑ 싱글 플레이에서 맵을 선택할 때 기본적으로 커서가 가 있는 맵이다.
- ↑ 경기 영상, 17:00에 캐스터가 "임요환 선수가 미니맵이 안보여서 답답하다고 채팅을 했어요"
- ↑ 2003년 mycube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 C조 3경이 임요환VS도진광경기시작전, 방송에서 언급됨.
- ↑ 선수협을 만들고 싶지만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고 중심이 되어야 할 1세대 프로게이머들이 은퇴해서 코치나 해설이 되어서 선수들의 입장을 대변하기가 힙들어졌고, 그나마 남은 선수들도 공군 소속이 많아서 함께해줄 사람이 거의 없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 ↑ 이때 스코어상으로 박용욱 팀이 이미 졌다.
- ↑ 이상준이 임요환을 회복시켜주기도 했다.
- ↑ 이상준 선수가 이전 무왕 선수의 홍진호 농락을 보고 자신도 임요환을 농락해보려고 1경기 때 스킬 트리를 비무 트리가 아닌 다른 트리로 가져갔다. 그 상태에서도 충분히 유리하게 가져가긴 했지만, 순간을 캐치한 임요환이 한방 콤보로 이상준 선수를 잡아냈다. 이후 경기에서도 홍진호와 무왕 선수의 대결처럼 일방적인 농락은 나오지 않았고 서로 합을 주고받는 치열한 경기였다.
- ↑ 태명은
깨알 같은마린(아이 태명으로 인증하신 황제의 위엄)스덕들 최고의 관심사는 아이의 머리크기라고 카더라 - ↑ 하지만 남자에게 있어 대두보단 좁은 어깨가 훨씬 치명적인 단점으로 통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