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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북한의 국가원수 | ||||
대수 | 이름 | 직책 | 임기기간 | 비고 |
1대 | 김두봉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 1948년 9월 9일 ~ 1957년 9월 20일 | |
2대 | 최용건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 1957년 9월 20일 ~ 1972년 12월 28일 | 1962년 재선 1967년 3선 |
3대 | 김일성 | 국가주석 | 1972년 12월 28일 ~ 1994년 7월 8일 | 1977년 재선 1982년 3선 1986년 4선 1990년 5선 |
권한대행 | 김정일 | 국방위원장 | 1994년 7월 8일 ~ 1998년 9월 5일 | 유훈통치기간 국가주석 권한대행 |
4대 | 김영남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 1998년 9월 5일 ~ 2009년 4월 9일 | 상임위원회 위원장직은 현직 |
5대 | 김정일 | 국방위원장 | 2009년 4월 9일 ~ 2011년 12월 17일 | |
권한대행 | 김영남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 2011년 12월 18일 ~ 2012년 4월 12일 | 상임위원회 위원장직은 현직 |
6대 | 김정은 |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 2012년 4월 13일 ~ 2016년 6월 29일 | 직책 폐지 |
국무위원회 위원장 | 2016년 6월 29일 ~ 현직 |
조선로동당 최고책임자 | |||
김일성 | 김정일 | 김정은 |
이름 | 김정은(金正恩) | |
로마자 표기 | Kim Jŏng-ŭn[1] | |
생년월일 | 1984년 1월 8일 | |
본관 | 전주 김씨 | |
국적 | 북한 | |
출생지 | 강원도 원산시[2] | |
배우자 | 리설주 (2012년 혼인) | |
신체 | 168cm(?)~175cm(?)[3], 130kg(?)[4], A형 | |
학력 | 스위스 베른공립중학교(1998년~2000년)[5] 김일성종합군사대학 포병학부 졸업 | |
종교 | 무종교 | |
직책 | 당 | 조선로동당 위원장 |
정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 |
군 |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 |
재임 기간 | 2011년 12월 17일 ~ |
목차
1 개요
김씨조선의 현 통치자이자 북한이 맞이한 세번째 독재자.
기존의 두 독재자들에 비해 권력 승계 당시의 불안정한 정치 기반을 의식하여, 자신의 고모부 장성택으로 대표되는 친족들을 숙청, 공포정치를 펴 나가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도 물론 무자비한 독재자였지만 친가족을 직접 숙청하거나 최고위직의 군 간부들을 며칠 사이에 차례로 제거하는 등의 행동을 함부로 하진 않았다. 이런 김정은의 무분별 대규모 숙청을 통한 공포 정치는 그의 정치적 입지가 건국자인 김일성과 그의 후광을 직접적으로 받은 김정일에 비해 비교적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2011년 12월 17일 아버지 김정일이 죽으면서, 근•현대 공화정 체제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3대 세습으로 만 27세의 젊은 나이에 권좌에 올랐으며 이때문에 최연소 국가수반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6]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모셔오던 늙은 기성 정치가들과는 비교할 것도 없이 젊고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에서 외국 학생들과 함께 유학도 해서 집권 직후 북한의 정치, 사회, 외교 등에 변화가 일지 않을까 하는 세계인들의 주목과, 혹시나 북한을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잠시 있었지만 현실은 시궁창. 아래 서술되는 내용이 전부 그에 관한 사실들이다.
예전에 조선로동당 창당 65주년 기념 아리랑 공연 관람 중 찍힌 사진에 드러난 용모 등을 볼 때 할아버지 김일성을 오마주한 것으로 추측된다. 아버지 김정일 또한 젊을 때 김일성을 오마주했고 김정은도 선전을 위해 김일성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라고 언론에서 추측한다. 실제로 김정은의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 몇 달 전만 해도 머리 스타일과 체격이 달랐다. 언론에서는 김정은이 일부러 후덕하게 용모를 바꾸도록 폭식을 시켰다는 분석이 있었다. 고위 관계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외모 가꾸기 차원에서 성형수술이 있었다고 한다. 그 주장에 따르면 여섯번이나.
물론 북한은 이러한 성형설을 극력 부인하고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차라리 미남[7]으로 성형하지 왜 이 짓을 했을까 싶겠지만 절대군주제의 전제국가 상태로 퇴행한 북한의 상황에서 북한 민중에게 김정은을 이미 신격화된 예전 지도자의 핏줄임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민중들이 김일성이나 김정일에게 하듯이 김정은 역시 신격화된 존재로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충성을 강요한다.
역사상 한 왕조의 후계자가 민중에게 존경을 받던 부왕의 복장이나 외모를 흉내내어 민중에게 어필하는 일은 흔하고 특이한 일도 아니며, 몇세기 이전 왕정 국가에서도 종종 있었다. 21세기인 지금 역시 민주 국가에서도 빛나는 전임자의 이미지를 따라하려는 후임자 등으로 형태가 변형되어 계승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김정은처럼 용모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부족 단위 국가 정도에서나 볼 수 있는, 드문 일임에 틀림없다.
어쨌든 이 때문에 김일성처럼 보이도록 성형한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설, 확실한 정보는 없다. 사실 피를 물려받은 손자인 데다가 똑같이 뚱뚱하고 비슷한 머리스타일까지 갖고 있으며 우리의 편견까지 작용한다면 그 모습이 유독 더 닮아보일 수는 있다. 그리고 2015년 10월경 공개된 연설 장면에서는 예전의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큰 혹이 툭 불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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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말에 따르면, 김정은의 인상을 "어렸을 때보다 얼굴에 살이 많이 붙었다"면서 김 위원장으로부터 "많이 먹어 관록을 붙이라", "위에 있는(높은) 사람이 가늘어선[8] 안 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며, 지도자의 풍채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배불리 먹이고 재워 살을 찌운 듯하다고 한다[9][10] 갑작스럽게 살을 많이 찌워서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있으나 아직 31세 정도로 나이가 젊어서인지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다. 젊은 시절의 방탕한 생활이 바로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김정일, 그리고 현재 그의 형 김정남이 그렇듯이 중장년이 되고 나서 고생할 가능성도 꽤 된다는 사실.
술과 담배도 일찍부터 시작했는데 흡연은 몰래 했지만 음주는 대놓고 했다고. 김정일 가족과 측근들이 참석하는 연회 때 간부들은 앞다퉈 10대인 김정은에게 술을 따르러 왔는데 김정은은 김정일이 보는 앞에서 그 술잔들을 거리낌 없이 비웠다고.
김정일은 김정은이 15세 때부터 "남자는 술을 잘 먹어야 한다"며 음주를 허용했고 담배는 "일찍 배우면 키가 안 큰다"며 피우지 말라고 지시했다. [11] 김정은은 이때부터 조니 워커 최고급 상품을 즐겼고 러시아 보드카 가운데 최고급인 '크리스탈' 1병을 단숨에 들이켰다고. 담배는 툭하면 어른들에게 떼를 써서 얻어 피웠다. 후지모토도 2000년 어느 날 한 초대소(별장)에서 김정은[12]이 검지와 중지를 세워 입에 댄 채 '이거 하러 가자'고 꾀어내 후지모토와 이브 생 로랑을 몰래 피웠다는 증언을 남겼다.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승용차는 벤츠 S600. 좋아하는 스포츠는 농구. 부친인 김정일의 호칭은 파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김정일을 지칭할 때는 '윗선에서'란 표현을 썼다고 한다. 기쁨조 무용수를 볼 때마다 관심을 보였다고. 한번은 기쁨조 공연을 봤을 때 가슴이 큰 여성이 있었는데 "야, 가슴 크다"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2014년 3월 10일 제 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 되었다.
연천 포격 사건을 계기로 국내 방송에 목소리가 자주 공개됐는데, 의외로 걸걸하고 어조가 당당하고 정확하지 못해 듣기에 상당히 거북하다.
2 집권
사실 초창기에는 별 존재감이 없었다. 김일성부터 김정은이 아닌 김정남을 귀여워했고 김정은은 찬밥 신세였다. 이 기사 내용대로라면 김일성은 김정은을 손자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데 이 기사가 과장이라고 쳐도 일단 김정은의 친모 고용희가 정실이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므로 신빙성은 높다. 언론 노출과 해외 출입이 잦았던 김정남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고 김정은은 어느 순간 스위스에서 대학을 다니는 모습이 알려져서 반짝 주목을 받았으나 당시에는 누구도 이 소년이 북한의 새 지도자가 될 가능성을 전혀 몰랐다. 다만 김정일 곁에서 요리를 했던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일찍이 저서를 통해 김정운[13][14]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을 점쳤다. 북한 권력 핵심층과 가까이 일하다 보니 빨리 알았던 듯. 당시에는 대부분의 북한학 학자들도 '3남인데 설마'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그런데 2010년 9월 28일 열린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에서 조선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고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15],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임명받아 김정일의 공식적인 후계자임을 공표했다. 세계 최연소 대장. 물론 이 대장이란 칭호의 의미는 직접적 군 지휘권보다는 정치적인 의미가 크다. 북한군에는 대장과 원수 사이에 차수 계급이 따로 있고, 그 차수급 장성이 십여 명이다. 심지어 마오쩌둥의 손자 마오신위도 아직 소장일 뿐이다. 이쪽은 40세. 더군다나 인민해방군에는 준장 계급이 없다. 즉 인민해방군의 소장이란 한국군의 준장으로 장성 중 최하위직. 사실 이 일이 있기 전에 중장 계급이긴 했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2004년에 하전사(병)로 입대하여 1년 반만에 중장으로 진급했다고.
더불어 김정일의 후계구도가 공식화하면서 대의민주제를 형식상으로나마 표방하는 국가가 3대에 걸친 권력 세습이라는 진짜 군주정 국가를 제외하면 현대사에 유례가 없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리고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이는 현실이 되었다.
사실 2세 세습까지는 성공한 국가들이 꽤나 있다. 싱가포르와 중화민국, 시리아, 아제르바이잔, 가봉, 아이티, 니카라과 등.
- 말레이시아 : 압둘 라작 → 나집 라작. 다만 이쪽은 중간에 무려 3명의 총리들이 더 있었으며 나집은 압둘이 죽고 한참 뒤에 집권했다는 점에서 세습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물론 실상은 세습 못지않게 막장이지만...
- 싱가포르 : 리콴유 → 고촉통 → 리셴룽. 리콴유가 아들 리셴룽에게 직접 세습하기 뭐하니 두었던 허수아비 총리로, 자세한 내용은 싱가포르 참조. 아래의 대만과 달리 싱가포르는 민주주의이기는 한데 엘리트주의에 입각한 일당 우위의 정치를 고수한다. 만일의 이야기지만 리셴룽의 아들 중 1명이 싱가포르 4~5대 총리에 오를 가능성도 있고, 그렇게 되면 3세 세습이다. 이걸 보고 몇몇 정치학자들은 싱가포르를 '잘사는 북한'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다만 집권 자체는[16] 민주적으로 자유 선거를 통해 이뤄진 것이라서 뭐라고 하기 어렵다.[17]
- 중화민국(대만) : 장제스 → 옌자간 → 장징궈로 2세 세습에 성공. 물론 이쪽도 싱가포르처럼 중간에 옌자간(바지사장)을 1명 두었다가 바로 장징궈(장경국)으로 넘어갔다. 장징궈는 집권 말기에 야당 활동을 허용하고 지방자치제도의 근원안을 만든 뒤 계엄령을 해제했으며, 사후(1988년) 총통(대통령)직을 승계한 리덩후이가 총통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고 입법의원 선거가 총선으로 바꾸면서 민주 정치를 확립했다.
- 시리아 : 하페즈 알 아사드 → 바샤르 알 아사드. 이들 부자 역시 철권통치로 시리아를 50년간 통치하여 사실상 아사드 왕조를 개창한 것과 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 아제르바이잔 : 헤이다르 알리예프 → 일함 알리예프
- 콩고 민주 공화국 : 자이르의 모부투 세세 세코 정권을 전복시킨 초대 대통령 로랑 데지레 카빌라가 암살당한 이후 그 아들 조제프 카빌라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 아이티 : 아이티의 초대 대통령인 프랑수아 뒤발리에가 그의 아들 장 클로드 뒤발리에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주며 세습에 성공했다. 사실상 이게 가장 김정은과 비슷하며 장 클로드 뒤발리에가 대통령 물려받을 당시의 나이가 고작 19살이였다.
미국의 조지 부시, 존 아담스 부자, 남한의 박정희, 박근혜 부녀, 인도의 인디라 간디 모자, 파키스탄의 부토 부녀,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부녀처럼 타 민주주의 국가들에도 2대가 나란히 최고집권자에 등극한 경우는 제법 많이 있지만, 이들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아버지(또는 어머니)의 후광만 입었을 뿐 집권 자체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 한 것이므로 위의 경우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
물론 신격화를 동반한 김일성-김정일 세습의 막장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싱가포르와 중국은 서구 언론에서 아시아 민주주의 위기의 진원지로 칭하는 국가다. 능력있는 일당 독재로 국가가 부유해지면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국가 경영의 책임을 소수의 엘리트들에게 위임하는데 비해, 민주주의는 선거권을 가진 시민이 가장 피곤한 정치 제도다. 전 국민적 레벨의 시민 의식, 교육 수준, 가치관 등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하며 시민의 끊임없는 권력자 감시 제도 등이 모두 있어야 이상적인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싱가포르나 중국 같은 경우와 같이 대다수의 시민들은 정치나 국가 경영에 무지해도 소수의 엘리트들이 착실한 개념을 갖고 국가를 경영하면, 민주주의보다 더욱 효율적인 국가 성장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성공 사례(!)들이 많을수록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의 확산'에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 그리고 이런 국가들의 성공 사례를 빌미로 독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무능한 정권들이 아시아에서 활개를 칠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독재 정권은 초기에는 개념으로 경영하더라도 점차 견제가 없는 상황에서 독재자나 그 측근들이 부패하는 '절대 권력의 절대 부패' 공식에 빠진다.[18][19]
3 가족
남한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소장 유성옥氏에 따르면 1984년 1월 8일 생으로 추정되었으나 북한에서는 1982년생으로 선전한다. 조작의 이유로는 김일성의 탄생년인 1912년과 끝자리를 맞추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다.[20] 권력승계 뒤에는 생일을 1월 1일로 선전하는 중. 김정일도 원래는 1941년생인데 김일성과 맞추기 위해 1942년생이라고 조작한 전력이 있다.
김정일과 고용희의 아들로 알려져 있었는데, 사실은 고용희의 아들이 아니라 현 비서인 김옥의 아들이라는 설이 나왔다. 탄생년을 맞춘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는 김정일과 김정일의 가족에 당 내부 아주 고위층들만이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라지만, 북측에서 사실이라 확인한 바는 아직 없다. 고용희 소생의 김정철이 유전자 이상으로 매우 여성스럽고 몸도 약하며 고용희가 김정철 이후에 딸을 1명 출산한 이후로 더 이상 출산을 못하여 김옥이 낳은 김정은을 자기 아이로 키웠다는 것.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 같다는 이유로 김정일은 김정철을 멀리했다고. 김정일은 김정은에게는 매년 성대한 생일잔치를 열어줬지만 김정철에겐 생일[21]이 막내딸 김여정의 생일[22]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같은 날 몰아서 공동 생일상을 차려줬다 한다.
장남 김정남이 마카오 등지에서 측근들에게 이야기한 말이 교민 사회에 퍼지면서 남한 기자가 김정남을 취재할 때 물어보기도 했지만, 김정남 자신은 부인했다. 그런데 기자가 만난 측근들은 부인하지 않았으니 진실은 어디에? 또한 김정은은 야심이 매우 큰 인물로 김정일 몰래 김정남을 암살하려는 시도도 했었다고.
참고로 고용희는 제주도 출신 재일교포의 딸이었고 1960년대 대규모 북송 때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이 때문에 김정일이 사망하자 김정은의 혈통적 순수성에 흠이 되지 않도록 조총련의 위상이 격하되는가 하면 고용희의 출신에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하지만 이미 소문은 소문대로 나 버렸고, 현재 김정은의 가장 큰 흠이 되었다. 정실 부인도 아닌 김일성의 허락을 받지 않은 여자, 게다가 북한에서 적대계층으로 취급받는 남조선계 출신(제주도)+재일교포 출신으로서 일반인이었다면 최하위계층 대접을 받을 인물인 것이다. 김일성가의 후손, 즉 '백두혈통'의 순수한 혈통이 아니라는 점이 김정은에게 큰 약점으로 따라다니고 있다.[23]
가족 관계는 아니지만 여자 관계로는 현송월, 려심, 서은향 등이 있다.
4 학력과 성격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에서 '박운(박은)'이라는 가명으로 유학하며 중고등학교 과정을 밟았다. 이에 대해 실제로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닌 건 김정은이 아닌 형 김정철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있으며, 형제가 함께 유학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베른 국제학교에서 김정은의 성적은 자연과목이 6등급 가운데 3.5등급이었고 문화·사회·독일어에서도 낙제를 겨우 면했다. 영어도 고급반에 들어갔다가 진도를 못 따라가서 보통반으로 내려갔는데, 독일어보단 영어가 나았다고 한다. 그러나 수학과 체육은 꽤 잘했고 특히 농구 경기에는 강한 승부욕을 보였다고 한다.
스위스에서 땄다는 학위에 관해서도 논란이 많은데 스위스 주재 북한 대사관의 아들로 신분을 위장하여 취득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추가로 대학은 북한판 합동군사대학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5년제)을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학창시절 성격은 매우 조용한 성격이었고, 여자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성인 잡지를 가방에 넣고 다니다 선생에게 걸린 적은 있다고. 어렸을 때부터 NBA의 광팬으로 코비 브라이언트와 함께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간직했다고 한다.
한편 김정은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는 스위스인 동창생은 김정은에 대해 "그 녀석은 좋은 녀석이었다"고 평했다. 그는 일본 만화를 좋아하고 만화를 좋아하는 남한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김정은은 스위스 유학 시절 공부하지 않고 일본 만화를 즐겨보고 수업 시간에도 즐겨봤다고 한다. 특히, 만화중에서는 포켓몬을 제일 좋아하고, 자기 주변인들에게 포켓몬을 꼭 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레알 북켓몬스터
또한 그의 기본적 성격은 호전적이라고 한다. 유학 시절때 포켓몬 본다고 동급생들이 놀리자 바로 책 집어 던지고 동급생들과 싸울려고 해서 주변 친구들이 말리자 겨우 진정했다고 한다. 포켓몬 덕후를 건드리면 아주 X되는거야
성격은 대담하고 지는 것을 싫어하는 다혈질적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 그의 성격들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는 다음 이야기가 있다.
한때 김정일 측근들은 김정철·김정은 형제를 각각 '큰 대장 동지'와 '작은 대장 동지'로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은 열살 무렵 이모 고용숙[24][25] 이 자신을 '작은 대장'으로 부르는 것을 듣고 "왜 내가 작은 대장이냐"고 따졌고 이후 김정은의 호칭은 '작은'이란 수식어가 빠진 '대장 동지' 또는 '김대장 동지'가 되었다고 한다. 또 김정일 일가가 백두산 초대소에 1주일간 머물 때 하루는 온 가족이 산 정상에 올랐는데 김정은이 갑자기 후지모토 곁에 다가가 "산 내려갈 때까지 참을 수가 없어. 후지모토, 저쪽으로 같이 가자"며 으슥한 곳으로 후지모토를 데려가선 근처에 화장실이 보이지 않자 후지모토에게 '동반 노상방뇨'를 권유한 적도 있다고 한다. 백두산엔 북한이 김정일 생가라고 선전하는 '백두산 밀영'이 있어 산 전체가 성지나 마찬가지인데 후지모토는 "북한 일반 주민들이 보기엔 정신 나간 짓이었다"며 "나 혼자 그러다 발각됐다면 총살됐을 것"이라고 회고했다고... |
어릴 적 화가 나면 구슬을 형의 얼굴에 던지고 60세가 넘은 김일성의 부관을 발로 툭툭 차며 '땅딸보'라 놀리는 등 버릇없고 거친 면모도 있다고 한다. 후지모토 겐지와의 인터뷰 참조.
아버지를 참배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애육원에서 고아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실제로 성격이 여린 편이라는 말도 있고, 연기라는 말도 있다. 전문가인 강명도 교수의 의견으로는, 김정은 자신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일찍 떠나보냈기 때문에 고아들을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아이들에 대한 동정심에 눈물을 흘린 것 같다고 한다.
2016년 3월, 중국은 북한의 적이며, 중국을 상대로 핵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WWIII fears as Kim Jong-un threatens China with 'nuclear war' and declares country 'an enemy'
5 신비주의
그동안 이름이 김정운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그렇게 알려진 당시에도 "'김정은'을 잘못 쓴 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 '김정은, 김정운, 김정훈' 등이 거론되어 꽤 혼란스러웠다고. 기사.
김정은이 후계자가 될 것임을 예측한 후지모토 겐지도 '김정운'으로 소개하였다. 일본어로는 '은'이든 '운'이든 'ウン'으로 옮기기 때문에 모종의 착각이 있었던 듯. 실제로 그의 저서에서 그가 직접 쓴 한글을 보면 'ㅜ'와 'ㅡ'가 자주 뒤바뀌어 있다. 북한에서는 이 두 발음이 남한에 비해 구별이 힘든 것도 이유 중 하나.[26][27][28] 일본에서 2003년 발간된 만화 '김정일입문' 서두의 계보를 보면 생뚱맞게도 金正雄(김정웅)으로 표기했고 'ウン' 발음으로 되어 있다.[29] 동생 김여정은 아예 한자 표기도 없던 걸로 보아 북한 매체는 이름이나 한자 표기는 거의 안했던 듯하다.
그리고 한 대만 사진작가가 북한에서 기록한 벽보에 김정은으로 쓰여 있었음을 촬영하여 인증해 정부에서도 김정은이 맞다라 확인하고, 그 뒤로는 언론에서도 김정은으로 쓴다. 기사.
북한에서는 구름처럼 떠돌아 다닌다는 느낌을 주는 구름 운(雲)이 연상되는 글자를 주요 인물의 이름에 쓰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원래는 '운'이 맞지만 '은'으로 개명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북한말로 '은(銀)'이라는 말은 '보람 있는 값이나 결과'라는 의미를 뜻한다고 하므로 은으로 개명했으리라는 견해도 있다.
이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한자 이름까지 金正恩으로 보도하자[30] 중국, 일본 언론에서도 종래의 '은'에 해당하는 銀, 殷 대신 恩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31]
여담으로 이름이 김정은으로 드러나자 남한의 김정은이 무척 속상했다고. 그래서 배우 김정은은 농담으로 자신의[32] 나이가 더 많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 북한의 이 김정은에게 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방송용 애드리브였지만...
하도 신비주의(?)가 강해서 일본 언론은 그의 얼굴을 찾으려고 발악했는데 TV 아사히에서 특종이라고 찾아낸 얼굴이 김정은이 아닌 남한의 일반인의 사진이었다. 참고로 일본 네티즌들은 믿고 낄낄대다가 오보 파동 나자마자 TV 아사히를 놀렸다.
그런데 피해자는 이 사건을 계기로 명예훼손 합의금이라도 탔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돈을 빌리러 오거나 비꼬는 바람에 직장도 잃고 잠도 못 잘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지병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문제의 사진에 비해 초췌해진 모습이 SBS '큐브'를 거쳐 방송에도 나왔다. 하지만 이 사람은 TV 아사히로부터 한 푼도 못 받았다. SBS에서 전화로 TV 아사히에 문의했으나 대답을 회피했다. 아사히 TV는 자국에서도 정정보도에 인색하기로 악명이 높다.
그리고 일부 일본의 환빠 비스무리한 사람들은 요코다 메구미가 사실은 김정은의 어머니라고 주장한다. 요코다 메구미가 덴노의 후손이라 일본의 고귀한 피를 이어받고 싶은 김정일이 요코다 메구미를 납치하여 김정은을 낳았고 김정은은 그로 인해 한일 혼혈이며 일본에 호의적이라는 것.[33] 불쏘시개 책도 있다.
스위스의 한 언론매체는 슈퍼주니어 예성을 김정은으로 만들었다. 사진은 U 활동 당시 앨범 자켓 사진이다. 당시 김정은의 이름을 김정운으로 잘못 알고 있었고 해당 매체들은 예성의 본명인 김종운과 김정운을 혼동했다. 아마도 발음상 외국인들은 헷갈렸을 수도. 이 때문에 예성은 당시 실시간 검색순위 1위를 굳게 지키기도 했다. 본인도 정말 깜짝 놀랐다고...
6 3대 세습
2010년 1월 8일의 그의 생일날 북한에선 TV에 연간 김일성 출생일, 한국전쟁 휴전일[34], 공산당 창단일로 딱 3번 트는 행사용 노래 '축배를 들자'를 틀었다. 그의 어릴 적 생일 축가로 지어진 노래 '발걸음' 또한 가사를 개사하여 북한 어린이들 사이에서 자주 불러서 여러가지로 후계자의 윤곽이 확실하다. 끝내,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세계 최연소 국가 지도자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다.
하지만 이 '최연소 국가지도자'가 최종적으로 지도자 계승 및 정권 안정을 무사히 마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한다. 기반을 다질 여유가 충분했던 아버지 김정일과는 결정적인 간극이 있어서다. 전문가들이 대부분 동의하듯이 북한은 불안정하고, 김정은의 기반은 극히 불안하다. 서로 물고 뜯는 싸움이 맨날 나는 정치판에서 구를 대로 구른 정치인도 조금의 실수로 파멸하거나 심지어 생명까지 날아가는데 한 번 생각해보자. 김일성 세대와 오랜 세월 동안 짬밥을 같이 먹어가며 성장한 김정일조차도 김일성이 사망하자 황장엽이 반기를 들었음을 보면 더욱 그렇다. 북한에서 황장엽 같은 사람이 혼자 뿐일까?
김정일도 세습으로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그는 1967년 갑산파 숙청 때 일선에서 활약했고 69년 조선로동당 선전부 부장이라는 요직을 맡아 훌륭하게 수행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게 차근차근 기반을 쌓아 삼촌 김영주와 이복동생 김평일을 밀어내고 1인자의 자리에 올랐는데, 그런 그가 공식 후계자가 된 것이 33세이며 당 중앙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달성한 상태였다.
높게 잡아도 20대 후반에 아무런 공적도 없는 김정은과는 처한 상황이 전혀 다르다. 거기에다 권력 승계에는 정치력도 중요하지만 현 북한의 상황으로 봤을 때 군부지도력이 중요한데, 김정일은 아버지인 김일성이 꽤 장수해서 아버지의 후광으로 권력을 굳힐[35] 시간이 충분했지만 김정은은 아버지인 김정일이 오늘내일 하는 상황에서 아버지나 할아버지 후광도 적게 받았기 때문에 김정일이 사망한 현 시점에서 이제야 군부 관련 감투 하나 얻어받은 김정은이 얼마나 장악할 지가 의문이다. 수틀리면 내전으로 치닫을 수도 있다.
김정은의 세습에 북한 내부에서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거 순 낙하산 인사인데?" 하는 분위기라는 것. 실제로 2010년 9월에서 10월 무렵엔 김정은 1명 뿐만 아니라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일가를 모조리 비난하는 삐라가 평양에서 돌았다고 한다. 그 가운데 남한에도 동요로 널리 퍼진 '곰 세 마리'를 개사한 것이 유명하다. 원수를 빼도 십여 명의 차수가 있는 북한군에서 대장 계급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란 설이 있다.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그 사이 김정일이 중국을 자주 드나드는 것도, 2010년 9월 말의 인민회의에서 소위 '후견인'들을 요소요소에 배치시킨 것도 다 지지 기반이 불안해서였다. 김정일이 사망한 시점에서 김정은이 도요토미 히데요리 꼴이 날 지 아무도 모른다.[36]
또 북한은 2010년 9월 29일 공개한 조선로동당 당규 중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인민 대중의 완전한 자주성 실현'으로, '사회주의 완전 승리'에서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로 고치는 등 호전성을 줄이고 정권 유지에 급급한 행보를 보인다.
김정일이 사망한 이 시점에서 김정은의 권력 체계가 부실해진다면 북한엔 헬게이트가 열릴 가능성이 다분하고, 이미 헬게이트구만 그 불똥이 국내에 튀지 않으리라곤 누구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남한에서 이미 4.19, 5.16, 10.26, 12.12, 6.29와 같은 대내적 급변 사태가 여태까지 숱하게 터졌지만 남북관계에 딱히 큰 변동이 없었던 점을 들어 북한 체제가 이제까지 그 어느 때보다 허술한 요즘 상황에서 남한에 도발하긴 무리라는 견해도 있다.
도쿠가와 막부가 무리한 전쟁으로 나라를 피폐하게 한 도요토미 측과 반대 노선을 걸은 경우를 가정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남한에의 무력 도발을 정체성 유지의 중요한 카드로 생각할 만한 북측의 주요 군벌들을 생각해 보면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임은 맞다. 더욱이 "선군정치"는 부친의 "유업." 실제로 김정은 본인이 비교적 순조로이 정권 이양을 이뤄도 정체성과 명분을 강화하고 내부 불만을 식히는 의미에서 도요토미 테크를 타면 남측에 강경책으로 나올 가능성도 충분하다.
시사in의 주장에 따르면,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생전 김정일의 총애를 받던 그 딸 김설송이 원래 유력한 차기주자였으나, 2008년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의원이 당시 한나라당 당내경선에서 이명박에게 패하면서 여성 후계자 계획이 지지를 받기 어려워져, 대안으로서 김정은이 부상했다더라.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시사인에서도 지적되는 부분이지만, 시사인의 북한, 국제 파트 정보의 질은 함량 미달이다.# 그 때문에 반박도 있다.
7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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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엉 파이가 없어 아빠 이거 어떻게 해야 돼?
앞으로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빚을 상속한 덕택에 정말 제대로 곤욕을 치르게 생겼다. 자세한 것은 북한의 국채 참조.[37]
8 포스트 김정일 체제
김정은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듯한 김정일의 모습. 이 당시 아들이 뿌듯하다는 듯이 웃기도 하고 그야말로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인간적인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두명이 저질렀거나 저지를 행패를 생각한다면 한 편의 호러 영화가 따로 없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이른 나이에 정권 전면에 섰다. 12월 19일 조선중앙TV의 특별 방송에서도 김정일 추모위원회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리면서 권력 서열 1위로 차기 후계자로 낙점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남한의 전문가들은 1994년 당시 김정일의 승계 과정보다 훨씬 불안정하지만 김정일이 구축해놓은 시스템과 중국의 지원으로 체제 붕괴나 내전까지는 이르지 않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김정은의 지지 기반이 미약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김정일이 해왔던 1인 절대 독재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요직에 있는 고모 김경희, 고모부 장성택 등의 심복을 중심으로 하는 당의 세력 분포에 따른 집단 지도 체제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 과정에서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총살형에 처해졌다는 박남기처럼 내부의 권력 투쟁이 격화하면 많은 숙청이 따를 가능성도 있다. 허나 예측과는 달리 장성택은 숙청되었으며, 유력한 심복으로 지목되었던 김경희 역시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며 사실상 잠적했다. 이를 통해 김정은이 정권 안정을 이제 자신하고 있다는 예측도 있다.
김정은의 상황을 김정일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김정일은 70년대 후반에 김일성의 후계자로 결정되면서 20년 가까히 정치 일선에 나섰으며 김일성 말년에는 계승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사실상 실권을 장악했다. 김정은이 정치 전면에 등장한 것은 2, 3년에 지나지 않으며 계승은 받았으나 실권을 장악했는지는 모른다. 직책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다다. | |
반박 | 하지만 '김일성-김정일의 직계 혈통'이자 '차기 지도자'로 김정일 생전에 인정받았으니 겉으로 보이는 직책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북한은 혈통이 지배하는 전제 왕국이다. |
김정일은 50대의 원숙한 나이였으나 김정은은 30대 초반의 젊은이일 뿐이다. 숙청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의 국회라 할 수 있는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에서 김정은보다 어린 사람은 거의 없다. 김정은은 나이 든 간부들을 숙청하려 들 테고 이 때문에 권력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 |
반박 | 다만 김정일이 생전에 김정은의 경쟁자로 여겨지는 이들을 미리미리 치워놨기 때문에(...) 이점은 있다. 김평일, 김정남은 해외를 떠돌며 사실상 유배된 상태고, 김정철은 몸이 너무나 병약해서 지도자로서는 부적합한 상태인 데다가 권력에 관심이 없어보인다. 장성택은 이제 숙청되었다. 김정일처럼 확고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딱히 강력한 대항 세력은 없다. 오히려 김정은이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최소 몇십 년은 살 테니 '구심점'이 될 수 있다. |
김정일은 김일성의 첫번째 아내 김정숙에게서 태어난 적장자(嫡長子)였으며 이것을 자신의 우월한 혈통성으로 내세우는 데 널리 써먹었다. 반면 김정은의 어머니는 재일교포 무용수 고용희다. 게다가 김정은은 장남은커녕 아들 중에서 막내다. 북한은 겉으로는 공산주의를 내세우고 있음에도 철저하게 혈통의 순수성을 따지고 조선시대 유교 사회처럼 신분을 중시하는 사회이다. 따라서 고용희의 신분은 북한에서는 오랑캐 출신의 첩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인지 김정숙과는 달리 고용희는 신격화하지 않고, 존재 자체가 숨겨져 있는 듯하다. | |
반박 | 다만 그렇다고 김정일의 다른 자식들이 딱히 혈통 면에서 김정은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김정남의 어머니 성혜림도 북한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존재는 아니었다. 그리고 고용희의 혈통이 그렇게 걸리면 날조하면 된다.[38] |
김정일은 후계자 시절에 충분한 홍보 기간이 있었으나 김정은은 몇 년 간의 홍보에도 아직 대중에 명확하게 각인된 인물이 아니다. 김정일도 그리 대중에 많이 나서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김정은은 현재까지는 김정일 이상으로 비밀스럽게 움직이며 대중에 나서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북한 정치에서 일반 대중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지만 김정은은 아직 할아버지나 아버지 수준의 카리스마가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정일이 어느 정도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면서 권력을 잡았다면 김정은에게 있는 것은 진짜로 '조상의 후광'밖에 없다는 것. | |
반박 | 하지만, 2015년 현재 김정은은 안정적으로 승계에 성공했고 특히 장성택을 제거하는 위업(...)까지 달성했다. 이제 김정은에게 대항할 만한 인물은 최룡해 뿐인데 그 최룡해마저도 2014년 1월에 김정은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는 연설을 했다. |
아무리 '김일성 숭배'에 익숙한 북한 사람이라도 난데없이 얼마 전에 나타난 새파란 20대 청년에게 복종하라는 것을 누가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게다가 집권 얼마 전의 북한의 화폐개혁 같은 실정이 벌어진 탓에 민심이 매우 나빠졌다. 그래도 김정은은 김일성이 살아 생전의 외모와 같은 점에 희망을 걸지만 글쎄? 실제로는 1984년 생인 김정은이 북한에서는 1982년 생으로 취급하는 것도 1942년 생인 김정일과 정확하게 40년, 1912년 생인 김일성과 정확하게 70년의 연령차가 난다는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 |
반박 | 그래서인지 김정은은 포상과 처벌을 번갈아가며 남발하고 점점 자리를 잡아간다. 그리고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예 어린 김정은을 계속 내세워야 실권자가 마구 바뀌는 대혼란보다는 낫다는 판단을 할 확률이 높다. |
김정일은 어린 시절에는 일반인과 같은 삶을 살았다. 이 때문에 최소한의 현실 감각과 정치 감각은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정은은 태어날 때부터 장군가의 인간으로 철저하게 우대를 받고 길러졌기 때문에 현실 감각과 정치 감각이 제대로일지 의심스럽다. 김정은은 조선의 숙종이나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미츠처럼 날 때부터 지배자인 자이므로 왕조 시대의 인간을 현대에 집어던져놓은 것과 같을 수도 있다. | |
반박 | 그러나 주체사상 도입 이후 사실상의 절대왕정국가가 된 상황에서 현실 감각을 운운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고 설레발이다. 애초에 북한 사회 자체가 다른 민주주의 사회 내지는 공산주의 사회와는 전혀 다른 형태이기 때문에 딱히 어려울 건 없다. |
사망 발표 직후엔 일단은 김정일 장례에 모든 관심이 집중해서 별 탈은 없지만 장례가 끝나는 순간부터 북한 내 정권들의 존폐 여부에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김정은 초기에 집단 지도 체제 안에서 정권 안정에 변수를 줄 수 있는 건 오극렬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달려있으며 김정은의 나이가 아직 어리니 형 김정남은 물론 누나인 김설송도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른다. 여기에 김정일의 이복형제인 김평일까지 가세할 수도 있어 안정적인 승계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정작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의 계승이 순조로운 듯하다. 상중임에도 상당히 빠르게 인사를 정비하는 모습이 보여서다. 대표적으로 25일 군부를 이끌고서 조문을 하는 모습에서 그의 고모부이자 핵심 실세로 예상하는 군부에 아무 직책이 없었던 장성택이 대장 직위를 달고 조문하는 모습이 잡혔다. 이 점은 현재 북한의 실세 장성택이 군부에도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하니 김정은 체제가 군부에도 작용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게 김정일의 생전 지시인지, 아니면 김정은 독단적으로 결정한 행위인지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김정일이 생전 '자신과 닮았다'라고 한 발언처럼 김정일만큼의 정치 능력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다.
2012년 4월 11일 열린 제4차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의에서 아버지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 자신은 조선로동당 총비서 대신 '제1비서'라는 직책을 신설하여 취임해 조선로동당의 당권까지 장악했음을 공식화했다. 아버지 김정일이 김일성의 직책이던 '조선로동당 주석' 자리를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하고 자신을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취임했던 전철을 그대로 밟은 것. 그리고 4월 13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아버지 김정일을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다시 국방위원장 대신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했다니 이뭐병. 그런데 북한 사람들 사이에선 어감상 '국방위원장'보다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더 높게 느껴져서 애비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한 패륜아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아버지를 영원한 총비서로 남겨서 자신이 국방위원장에 취임하나란 추측도 했으나 국방위원장직 역시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만들어버림에 따라 헌법을 바꿔서 총비서가 아닌 제1비서로서 당 중앙군사위원장에 취임한 것에 비추어보면 향후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당 중심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2016년 5월 6일 36년만에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를 개최하였고, 5월 9일 새 직책인 조선로동당 위원장직을 신설하여 여기에 직접 자신이 취임하면서 완전히 당 중심으로 국가운영을 바꿨다. 北 김정은 '신설' 노동당 위원장 취임…김일성 따라 당 중시
그리고 2016년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하고 국무위원장에 추대되었다. 北김정은, 최고인민회의서 국무위원장 추대…'유일체제' 완성
9 행보
해당 문서 참조.
10 선전
그래도 청년 시절에 문화예술계 쪽에서 들이대기 시작하면서 10년 넘게 자기 입지를 강화해 나왔던 아버지인 김정일과 달리 북한에서 아무 경력도 없다가 갑자기 띄워주려다 보니 넣을 게 없어서 별 해괴한 선전을 해댄다고 한다. 3살 때부터 백발백중의 사격실력을 갖췄다든가, 140km 이상의 거리를 승용차로 운전했다든가, 7살 이전에 전차 등의 중장비를 조종했다는 양판소, 무협지 수준의 소설이 북한 측의 선전 내용이라고.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한 국가의 지도자라는 사람이 대국적으로 볼 수 있는 전략적 시야를 갖춘게 아니고 전차 운전할 줄 알고, 자동차 운전할 줄 알고 사격 잘 하고 해 봐야 별로 의미가 없는 소리다. 그렇게 따지면 대다수 국가에서 가장 지도자에 걸맞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특수부대원, 공작원, 정보기관원이 될 것이다. 차라리 그게 더 낫지 않을까 지도자에게 걸맞는 능력은 여러가지가 있기야 하겠다만 적어도 개인의 전투능력이 아니라 한 사회를 제대로 구성할 수 있는 능력, 전시 전략적 식견을 가져 자신이 속한 사회의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능력, 다른 국가와의 외교적 마찰을 줄여 속한 사회의 구성원이 세계적으로 활약하게 해 줄 수 있는 능력 정도가 필요하다.[39]전투능력이 모든걸 지배하는 원시 북한 사회의 족장 그런데 인민은 인민대로 굶기고, 외교적으로 북한을 불신의 대상으로 만드는 지도자에게 '자기 집권을 위한 능력'말고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3살에 운전을 했니 백발백중이니 하는 말도 안되는 선전은 반대로 말하면 '그것밖에 선전할 것이 없어서'인 것이다.
차라리 저런 황당한 소리를 선전이라고 할 바에야, 어릴적부터 북한의 나아갈 길을 걱정한 속깊은 아이였다거나, 오만한 미국인들을 말빨로 꺾었다거나 하는 소잿거리로 선전하는게 나았을 것이다.[40]
그 밖에 김정일이 발에 땀나게 중국, 러시아 등을 오가며 건수를 벌어오면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의 공이 컸다는 식으로 밥을 떠먹여주었다. 정말 눈물 나는 자식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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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로 "이게 뭐지 먹을 수 있는 건가?" 그건 거울입니다
북한 정권이 김정은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바로 2009년에 북한에서 자체 기술을 확보했다는 컴퓨터 수치제어 공작 기계의 핵심 기술인 C&C, 본격 적색경보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이다. 북한 언론에서는 이것을 김정은의 치적이라 주장하고, 과학 기술에 능한 지도자라며 CNC 홍보 노래까지 만들어 북한 주민들에게 전파한다.
하지만 CNC 기술은 이미 1940년대 말~1950년대이쯤 되면 거의 컴퓨터가 개발되고 직후나 다름없잖아...에 미국이 개발해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공작 기계의 기본 기능으로 여길 만큼 매우 보편화 되었다. 물론 미국이 1940년대 개발했다고 이 기계가 만들기 쉬운 건 절대 아니다. 일본은 1967년, 한국은 1987년이 되어서야 자체적인 CNC 개발에 성공했다. 게다가 이것을 못 만드는 나라도 많은데 굳이 안 만드는 이유는 기술력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CNC 공작기계를 수입하는 것이 개발하는 것 보다 싸게 먹혀서라고 한다. 어쨌든 이 기술을 2010년에 와서야 '과학 기술의 혁명'이라고 선전하는 것을 보면 북한이 시대에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나홀로 21세기 뿐만 아니라, 아무리 CNC 절삭가공기계 개발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생산된 제품의 품질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CNC 양산 가공품 보다 더 열악할 것이라 예상된다.
탈북자를 사살하라는 잔혹한 명령을 내렸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때문인지 2010년, 2011년에는 남한으로 입국하는 탈북자 수가 많이 줄었다. 탈출이 힘드니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난 모양이다. 남한으로 들어오는 사람 수는 줄었지만 중국으로 탈북하는 숫자는 여전한 듯. 하지만 중국에 탈북자 체포를 강력하게 요청했고 공안이 빡세게 잡아 들이고 있어서 섣불리 남한으로 가려는 시도 자체를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탈북자가 중국에 계속 정체되고 있는 상황. 이런 중국 공안의 행태가 계속되자 미 의회기구에서 공개적으로 비판성명을 내기도 했다.
사실 김정은 체제에서 탈북자의 수가 줄어든 것은 단순히 김정은이 잔혹하게 나오는 것 뿐만 아니라 2000년대 후반 들어 탈북하는 인물들의 양상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탈북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북한체제 내에서 생계적 곤란함을 겪는 하위계층 위주었다. 말인즉 이들은 애초에 북한에서도 처치곤란이라 잡아도 이득이랄게 없으니 다소 널널하게 단속 해왔고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많은 수가 탈북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그렇다고 대놓고 탈북을 방조하면 자신들의 체제가 실패했다는걸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니 일단 형식상으로라도 단속은 해왔고, 그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강화가 되자 탈북 과정에도 일정한 비용이 들게 되고, 이러한 비용이 계속 상승하면서 탈북할 수 있는 계층 자체가 점점 한정되게 되었다. 여기에 상기한대로 김정은의 명령도 있기 때문에, 원 주류 탈북자들인 하위계층의 탈북은 성공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그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문제는 이번엔 탈북에 소극적이였던 중상위계층이 탈북에 적극적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정치계에 만연한 숙청 등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함과, 더불어 김정은이 도입한 외부 문물의 여파로 이제는 자유 국가들의 문물을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다방면으로 북한의 체제에 염증을 느끼는 내부 분위기가 중상위계층 사이에서 점차 팽배해지면서 이들이 탈북에 앞장서게 됨으로서 탈북자들의 양상이 크게 변화한 것이다. 실제로 2000년대 후반 이후에 탈북한 인물들 상당수는 북한 내에서 중류 계층 이상에 속하는, 원래 북한 체제에서도 경제적 어려움이 크게 없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탈북했다는건 과거처럼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정치ㆍ사회적 이유로 탈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미래가 없는 사회에서는 잘 먹고 잘 살아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41].
이처럼 탈북을 하는 계층이 점차 핵심 성분으로 옮겨간다는 것은, 북한 체제를 사실상 떠받치고 있는 기반 자체가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말 그대로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기둥이라 이들이 떠나면 북한 당국도 곤란해지기 때문에 단속 강도가 엄격해진 것이다. 실제로 체포되거나 송환되는 탈북자들의 처벌이 오히려 경제사회적 계층이 높은 인물들에 대한 처벌의 강도가 높은 것만 봐도 탈북자에 대한 북한 정권의 인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흡사 과거의 동독을 보는 것과 같다)[42]
김정은의 탈북자에 대한 잔혹한 처벌 명령은 그가 북한 내의 현 탈북자 상황의 의미와 특성을 아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1 개혁개방
그딴 거 없다
사실상 시도하지 않다고 하지만 매번 시찰을 나올 때마다 "세계적인 추세"를 강조하는 등 여러 모로 선대와는 다른 행보 때문에 중국식으로 체제는 보수적으로, 경제는 개혁/개방으로 나가는 노선을 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물론 진짜로 개혁/개방을 펼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릉라인민유원지 시찰때 모습. 당연히 여기도 평양에 있다. 뒤에 사람들이 소름돋는다
김정은 곁의 안경 쓴 남자는 류훙차이(劉洪才) 중국 대사. 그 곁의 선글라스 낀 아주머니는 김경희. 남한에서 대통령과 미국 대사가 나란히 놀이 기구를 탔다든지 했다면 말이 좀 많았을 것이다. 지네들이야 조중동맹의 일환이니 뭐니 하겠지만 이 만큼 북한의 중국 의존도가 심하다는 방증. 김정은 맞은 편에 앉은 장령 정복을 입은 남자는 이목구비상 아무리 봐도 최룡해. 그 밑의 한 서양인은 놀랍게도 영국 외교관으로 밝혀졌다고. 영국은 평양에 대사관을 둔 서방국가들 중 하나로, 영국과 북한과의 관계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43][44]
나이가 젊은 탓인지 인터넷이나 미디어 노선, 놀이동산 건설 같은 오락 노선에 뜻밖으로 많은 공을 들이는 듯하다. 하지만 이게 대부분 평양과 평안도 지역에만 집중된데다가 보수적이면서 식량난까지 겪고 있는 북한 사회에서는 당연히 반응이 나쁘다. 그래서 이런 저런 불만이 나온 게 귀에 들어갔는 지 # 김정은 "유원지건설 반대하는 자들 무자비하게 내쳐라" 격노 지난 2012년 한 해 동안 40여 개 대규모 놀이공원과 체육시설 등을 새로 세웠고, 이 가운데는 원산 마식령 스키장과 "남포 해수 수영장" 등이 있다. 진짜 암군포스 그 자체.
특히 연건축면적 1만8379㎡에 달하는 대형목욕·체육시설인 류경원 건립에 중국 투자를 끌어들이면서 10년간 석탄·광물 수출로 대납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자원도 헐값에 넘겼다라 알려졌다. 또 기사 제목처럼 위락시설 건설 자재를 가정집 건설에 돌리면 좋겠다는 내각 제안에 격노했다고. 평양에는 워터파크 문수 물놀이장도 세운다.#[45]
조금씩 배급되는 식량의 질을 개선하는 듯 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쌀밥 먹는 사람이 50%도 안되는 판국이니, 갈 길이 멀다. # 장성택 숙청 이후 참모들에게 사마충의 명언(?)을 뒤튼 듯한 쌀 대신 고기를 공급해 식량난을 해소하겠다는 말을 했는데, 이게 웃기려고 한 말인지 아니면 정말 그러면 된다고 생각하는지 아리송하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다.[46] 저 기사에선 장성택 측근도 술김에 숙청한 것이란 말도 있다.
실제로는 그냥 북한의 실권자들이 내세운 허수아비일 뿐이고, 대표적인 개혁파 장성택의 숙청은 군부와 개혁파의 정면대결에서 군부의 승리를 뜻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즉 세상 물정 몰라 사리분별 못하는 애를 하나 앉혀 놓고, 군부 실력자들이 옆에 붙어 정보를 차단해 듣기 좋은 말만 하면서 사실상 실세로 군림한다는 뜻.
그 자신이 북한 교육과정을 거친 엘리트가 아닌 탓인지, 김일성종합대학 등에 적용되던 '직통생 입학'과 '병역 면제' 등의 특권을 폐지하고, 그 뿐만 아니라 2011년 신입생을 아예 받지 않고 대학생들을 아파트 공사에 동원하는 만행을 벌였다. 제 딴에는 공정한 지도자 코스프레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북한을 지탱해오던 특권 핵심 계층의 지지를 깎아먹는 정책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47]
12 건강
파일:Attachment/김정은/fuckinghog.jpg
이 문서의 내용만 보면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으로 당장 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인간이지만 김씨 백두혈통 집안만 전문으로 연구해온 전문병원[48]이 2개나 있는데다가 진짜로 좀 이상하다 싶으면 전용기[49] 타고 우방국이나 중립국으로 날아가 그 나라 유명 의료진으로부터 치료를 받기 때문에 그리 쉽게 죽을 인간은 아니다. 사실 이 집안 족속이 죽었다는 말은 북한 중앙텔레비전에 리춘히가 검은 상복 입고 나와서 펑펑 울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믿으면 안된다. 게다가 김정일도 저 나이 때 저 정도 병은 달고 살다가 죽었다. 김정은보다 더 심했는데 김정일은 19살 때부터 비만에 지방간을 달고 있었다.
- 2013년 김정은의 신체는 키가 172센티미터, 몸무게는 90킬로그램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문서 맨 위에서는 168cm이라고 나와 있는데, 이는 기쁨조의 선발 기준 중 하나가 "키 168cm 이상"인 것과, 김정은이 7cm 키높이 구두를 신는다는 것 등 여러 가지 증거가 나와 추정치가 수정되었기 때문이다.
- 2014년 2월 6일, 북한전문언론 데일리NK에서는 2014년 2월 공개된 김정은의 사진을 내과전문의 박현종 원장에게 문의하여 '100킬로그램 정도'로 보인다는 분석을 기사화했다.
- 2014년 5월 8일자 조선일보에서는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이 살이 많이 쪘다는 기사를 썼다. 고모부를 숙청한 이후 정신적인 고통 때문에 폭음과 폭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100kg으로 추정되던 체중이 120kg으로 불었다고 한다.
- 2013년 기준으로 BMI 지수는 26.12에서 30.42로 추정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정은의 2013년 당시 상태를 과체중으로 보았다. 보통 한국에서는 BMI 지수 25부터 비만으로 보는데, 원래 표준은 BMI 30부터다. BMI 35부터가 고도비만. 즉 2013년 당시의 김정은은 비만으로 볼 소지는 있어도, 고도비만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셈이었다. 하지만 2014년에 나온 위의 기사들을 보면, 2014년 현재 김정은은 국제 기준으로도, 대한민국 기준으로도 고도비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정은의 키를 [50] 170cm라고 두고, 저 위의 기사들이 추정한 체중이 맞는다고 하면, 2014년 5월에 측정한 김정은의 bmi 지수는 41.52. 110kg 정도로 추정해도 38.06이다. 다만 bmi 지수는 피측정자의 체지방량, 근육량을 고려하지 않은 지수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운동선수들은 근육량과 골격 때문에 bmi 지수가 높게 나오고, 내장지방이 있다 해도 체중 자체는 정상인 사람들은 bmi 지수가 낮게 나온다. 하지만 김정은은 운동선수들처럼 키가 크거나 근육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앉은 자리에서 쳐먹기만 하고 남에게 시키기만 하면서 살았으니 가관이라고 하겠다.
- 게다가 이 자는 현대인의 건강을 좀먹는 삼신기를 모두 가지고 있다. 비만, 흡연, 음주. 비만의 경우는 그냥 비만도 아니고 저 젊은 나이에 벌써 고지혈증에 걸려있다.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은은 어린 시절부터 음주와 흡연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만, 음주, 흡연이라는 건강에 안 좋은 삼신기를 모두 장비해서, 젊은 나이임에도 김정은의 건강이 나쁘리라는 분석이 나오는 판국이다. 특히 비만이야 고도비만만 아니면 큰 문제는 없다지만 음주와 흡연은 이야기가 다르다. 실제로 2014년 신년사 음성을 분석한 결과, 4초 간격으로 숨을 허덕거림을 포착해 건강 이상을 의심받는다. 찍히는 사진마다 뒷짐을 지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데 이건 숨이 차서 그런 거라고.기사
- 201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20주기 추모식에 나타난 모습을 보면 다리를 저는 모습을 보였으며, 상당히 컨디션이 나쁜 표정으로 등장했다. 또한 이마에 흉터를 입은 것도 노동신문 사진에서 관찰되었는데, 특별히 숨기거나 하지 않는 걸로 보아 어디 넘어지거나 부딪쳐서 생긴 상처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아직까지는 건강 문제가 대두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30대 초반의 한창인 청년이 당장 나자빠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김정은이 불편한 몸 이라고 언급했다. 관련기사
- 2014년 10월 현재 한달 가까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의 건강이상설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고인민회의에도 불참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 듯. 이 때문에 대외적으로 사망설에 쿠테타설까지 난무하였다. 이런 상황이 북한 입장에서는 꽤나 곤란했던지 최룡해를 포함한 최고위급 인사가 급작스럽게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가하면서 대외적인 논란을 잠재우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생각보다 건강이상이 심각하다고 한다. 최근 김정은을 치료하고 돌아온 독일과 프랑스 의료진이 자국 정보기관에 다리뿐만 아니라 얼굴에 병색이 완연했으며 내분비계 및 핵심 장기에 이상이 있다 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 정부에도 통보되었는데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김정은의 수명도 그리 길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중병설이 사실이라고 해도 불치병이 아니라면 김정은 본인이 작정하고 열심히 몸관리하고 치료를 잘 받으면 기대 수명이 늘어나겠으나, 한창 기반을 다져야 할 독재자에게 그럴 여유가 있을지 의문.
- 정신이상설까지 나왔다. #
- 좌골 신경통을 앓고 있다는 설이 있다.
- 급격히 불어난 몸에 이상이 와서 위 밴드 수술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 발목낭종 제거 수술을 했다고 한다. #
- 2015년 8월 10일 동아시안컵에 참석하고 돌아온 여성 축구 대표팀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뒷모습이 찍혔는데, 뒷목 살이 심하게 접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자기 할아버지처럼 목 뒤에 혹이 난 사진이 확인되었고, 국가정보원에선 이에 대해 확인된 바가 없다는 발표를 했다.#
13 패기머리
김정은의 기괴한 헤어스타일은 북한 내에서는 '패기머리'라고 불리고 있다. 이 헤어스타일은 김정은만의 전유물은 아닌데, 주민들 특히 주로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는 정보가 있다.참조 실제로 2014년 황병서 방남 당시 황병서를 수행한 경호원들이 모두 이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것이 관찰되었다.채널A(동영상)
또 다른 소식통에 의하면, 두발규제 때문에 북한 남학생들은 김정은과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도록 당국에 강요당하고 있으며 이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지 않으면 바리캉으로 밀어버린다고 한다.데일리NK
이 제한은 학생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다. 교원(교사)에 대한 헤어스타일 통제는 북한 남학생과 맞먹는다. 북한의 '공식 이발소'는 무조건 이 헤어스타일로 만들어버린다. 사설 이발소가 있지만 값이 몇배나 비싸고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조선일보
14 발언
한치의 드팀[52]도, 한 걸음의 양보도 없이 오직 수령님, 장군님식으로 무조건 끝까지 강행하자.-태양절을 맞아 처음으로 공개한 육성이 담긴 공식연설 中
2015년 한반도 남반부 공화국을 무력 통일하기 위한 통일대전을 준비하라.
조선 혁명 완수를 위해 적들과 총결사전을 벌이자.[53]
미제와 어떤 형태의 전쟁도 가능하다.[54]
조국 통일 대전, 생각보다 앞당겨질 것.
공장이 어떻게 이렇게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나, 위대한 장군님의 업적을 말아먹고 있다.-2014년 공장 시찰 도중[55]
침략적인 외세와 야합하여 동족을 반대하는 핵 전쟁 연습에 매달리는것은 스스로 화를 불러오는 위험천만한 행위입니다.
경제 건설의 성과는 인민 생활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북조선, 청년 강국으로서 세계적 위상을 떨쳤다.
담력과 배짱이 영웅남아답다. (중략) 3살 때 총을 쏘았고, 3초 내에 10발의 총탄을 쏘아 목표를 다 명중시키며 목표를 100% 통구멍낸다. (중략) 3살 때부터 운전을 시작해 8살도 되기 전엔 굽이와 경사지가 많은 비포장도로를 몰고 질주했다. (중략) 초고속보트를 200㎞로 몰아 외국 보트회사 시험운전사를 두 번이나 이겼다 ... (중략)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 혁명활동 교수 참고서 '비범한 천품' 항목 中...
장군님의 넓은 도량이 6.15 공동선언을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2016년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연설 中
15 평가
아직 집권 기간이 짧아 아버지 김정일에 비해서는 인상이 옅은 편이나 그 뒤를 이어 전세계 공인 최악의 독재자 그리고 정신승리 독재자 아이콘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다만 북한 내에선 세외 부담이 줄어든 데다가 수산물 수출 금지를 하며 장마당의 단속도 덜하는 등 나름대로 민생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서 생각보다 괜찮은 지도자란 평을 듣는다고.[56] 1990년대 고난의 행군과 2009년 화폐 개혁의 영향으로 김정일의 평가가 엄청 나쁘다 보니 그 반대급부로 김정은의 지지도가 높아진 감이 있지만... 물론 아직 집권 초반인지라 나중에 어떨지는 모른다. 거기에 은하 로켓 발사도, 12월의 2차 발사에서 성공했으니 자랑질도 늘었다.
성격은 변덕이 엄청나게 심해서 아무도 종잡을 수가 없다. 갑자기 뜬금없이 포상을 마구 뿌리면서 선심을 쓰다가도 어느순간 돌변해서 줄줄이 숙청도 벌이며, 심지어는 이러한 행태를 단 몇 시간에 동시다발적으로도 한다. 일례로 탈북자들을 김정일 정권 때보다도 더욱 탄압하면서 인민을 먹여살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발언도 했으며, 장성택을 사형에 처하자마자 곧바로 표창을 거의 남발 수준으로 마구 뿌렸다. 게다가 경미한 범법자[57]들을 정치범 수용소에 가뒀다가 은혜를 베푼답시고 뜬금없이 석방시키는 짓을 되풀이한 적도 있었다. 근데 북한에서는 꽤 예전부터 잦았던 케이스 중 하나이긴 하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보여준 행태라서 딱히 이상할 건 없다. 파악 당하지 않으려고 종잡을 수 없는 존재로 군림하면서 측근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스타일 그대로다. 이런 모습은 김일성이 스탈린으로부터 배웠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탈린도 다른 사람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되면 그 의견을 따르는 면이라도 있었지만, 김정은은 누구라도 자신의 의견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그날로 공개 처형시키는 등의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권력 유지에 효율적인 방법이기는 하나, 인권이 중시되는 21세기에 이 방법은 도덕적으로는 최악이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김일성의 서민적 이미지를 답습해 노련한 독재자라고 평했다. #
15.1 통치력
15.1.1 긍정론
애초에 있을 리가 없다.
과거의 시스템은 답습해도 적어도 정권을 유지할 만한 능력은 있는 듯하다는 평가도 있다. 먼저 1년 만에 자신의 지도력을 해칠 만한 노련한 군부실세인 리영호를 숙청하며 군부를 휘어잡고, 별 혼란 없이 당과 장악하는 면을 봐서는 아예 권력장악에 숙맥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장성택을 처형한 뒤, 대규모 체제이탈 망명사태가 벌어지고, 숙청이 벌어지리라는 예상이나 보도가 이어졌으나 2014년 4월까진, 체제가 흔들리는 징후가 없다. 도리어 장성택의 심복이라며 숙청설이 나돌았던 여러 인물들[58]을 유임시켰다라 확인했고, 4월의 당직-내각개편에서도 장성택 잔당 숙청및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상했으나 급격한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내각이 돌아감을 확인했다.
민심의 불만도 교묘히 컨트롤하는 노회한 모습도 있는데, 2013년에는 2012년에 대규모 수해로 식량난이 극히 악화해 특히 봄철의 보릿고개에 인민의 불만이 폭발, 김정은 체제가 흔들릴 것이라는 예상이 돌았다. 그러나 2013년 김정은은 고난의 행군으로 수십만을 굶겨 죽였던 김정일과는 달리 신성불가침이었던 군량미를 대규모로 풀어서 인민의 불만을 교묘히 넘겼다. 뿐만 아니라 2013년 초의 박봉주의 시장 개혁조치가 일단 성공적이라 평가받고[59] 식량 생산이 크게 늘었으며, 중국에 헐값으로 자원을 넘긴 뒤에 받아온 외화로 비료를 대규모로 수입하는 등, 김정일처럼 산을 깎는 다락밭 개간 같은 뻘짓 없이 합리적으로 식량증산에도 힘쓰는 등의 모습이다. 일단 미국의 평가로도 식량난은 10년 후에는 거의 극복할 것이라고 평가받을 만큼 김정은이 먹고 사는 문제를 나름 신경 쓰는 것 같다. #
북한이 사실상 신정 일치 국가인 만큼 김씨 일가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나 세력이 없고, 외국에서 오래 생활해봤으니 세상 물정에도 그리 어둡지는 않으리라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60] 또한 김정일이 첫째, 둘째 아들을 제치고 셋째아들을 골랐음을 보면, 김정은에게 뭔가 싹수가 보였기 때문에 물려줬다고 봐야 합리적이다.[61]
1994년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때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3년 안에 쫓겨나리라고 했지만, 죽을 때까지 권좌에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정권을 처음 10년 정도만 안정적으로 유지하면 선조들처럼 종신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공포정치로 인해 집권의 혁심세력인 간부들의 이탈과 탈북이 새로운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을 뿐 아니라. 반감을 사고 있는 점 등은 김정은 정권이 장기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요소다.
15.1.2 부정론
할아버지인 김일성과 아버지였던 김정일의 능력에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아버지였던 김정일의 개막장처신이 그 첫번째 이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여성편력으로 인해 후계자 선정을 어렵게 만든 것은 자업자득인 셈이다. 당장 김씨 가문의 우상화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백두혈통'을 내세울 근거를 빼앗아버림으로서 명분면에서도 약했고 더구나 1980년대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아와 논란은 많았지만 비교적 순탄하게 후계자로 임명받을 수 있었던 자신과는 달리 김정은은 후계자 수업도 받은 일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건강 악화로 인해 갑작스럽게 지명된 처지라 권력 기반이 약할 수 밖에 없었으며, 여기에 결정타는 해외에서 자랐다는 약점이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약한 통치 기반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이미지를 힘입는 소위 호가호위식 정치권력으로 인해 상당한 제한을 받게 되었고, 자신의 독창적 정치스타일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에 인민생활향상이랍시고 내세웠던 정책들이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현실적 필요성을 외면한 정책들이 대부분이어서 오히려 괴리감만 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기에 결정타는 외교 정책에 있어서 거의 공기와 같이 존재감이 없다보니 더더욱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1. 김정일 자신의 잘못된 처신과 후계자 선정에 대한 소홀함 2. 김정은 자신의 권력기반 결핍, 그리고 이미지 구축실패와 이에 따른 정책의 독창성 등이 김정은의 통치 능력이 없다고 할 만큼 부족하다라고 할 수 있겠다.
집권 이후 줄곧 김일성과 김정일이 했던 국내 통치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평안도 지역에만 인프라를 올인하고 민심을 신경 쓰고 공포정치와 널뛰기하는 인사조치까지 똑같다. 이 정도만으로는 개인의 능력을 알 수 없지만 일단 과거의 시스템을 바꿀 생각은 거의 없고 현상유지에 만족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외관계에 있어서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득을 얻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도 김정일 시절보다 험악해졌는데 최소한 김일성-김정일 라인까지는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면서까지 통제를 무시하려는 듯한 행동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3차 핵실험은 중국에게도 상당한 위협감을 주며 그 사이에도 김정은이 조용조용 지내려는 중국의 의도와는 반대로 나가니,[62] 일반 중국 국민부터 공산당 수뇌부까지 북한에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63]. 남한과의 관계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극도의 긴장 상태를 만들어냈다. 남한이야 정권 교체와 함께 대북정책이 강경하게 변했다고 해도, 과거 대북지원을 받던 시절에서 10년도 안 지났는데 마치 그런 시절이 없었던 것처럼 호전적인 태도로 돌변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민간인의 생명까지 뺏는 무력도발까지 감행했다. 그나마 북한을 현상유지시키는 통치력을 그나마 능력이라고 과장해서 평가해도 외교능력에 있어서는 도저히 능력이 있다고 볼 수가 없다[64].
2014년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그동안 중국과 삐걱대던 외교관계의 결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 3차 핵실험 이후 북-중 경제협력사업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급기야 중국이 북한의 항구를 빌려 동해를 통한 물류 통로를 개척하려던 계획을 수정해 러시아의 항구를 이용하려 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를 해봤자 북한이 지금처럼 호전적인 태도를 유지하면 전쟁이 일어나 투자회수를 못할 위험이 높은 데다가 도저히 통제도 안되고 예측도 안되는 북한보다는 차라리 러시아가 낫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2000년대 북한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던 중국 기업들은 비참할 정도로 열악한 인프라와 북한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정책 때문에 하나둘 등을 돌리고 있다. 돈 떼먹히는 게 기본이었고 감시까지 하면서 송금도 제대로 못하게 막았다고 하니 중국 기업들의 신뢰를 얻지 못함은 당연하다[65].
정확히 말하면 통치 스타일은 비슷하나, 정치 능력은 할아버지나 아버지보다 훨씬 떨어지는 편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김일성은 빨치산 항일무장투쟁 활동을 하며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을 알았고, 김정일은 1970년대부터 정치에 나서기 시작했고 김일성이 죽은 1994년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정치인으로서 활동하며 나름의 내공을 쌓았다. 그러나 김정은은... 2010년에 갑툭튀해서 정치감은 전혀 없는 상태에서 2011년 겨울, 최고지도자가 된다. 그래서 무식하게 고모부까지 죽이며 공포 정치로 자신의 정치력을 포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공포 정치 역시 김정은의 자충수로 돌아오고 있는 실정이라는 게 문제가 되고 있다. 현 북한 주민은 할아버지, 아버지때와 같은 충성심은 많이 희석된 편이고 간부들 역시 계속되는 공포 정치로 인해 보신주의[66]가 강해지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고 심지어 일부 간부들은 탈북까지 고려하고 있다. 하다못해 해외주제 북한공관원들은 본국으로의 소환도 거부할 정도이니 말 다한 것이다. 이는 올해 2015년 4월 말에 일어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숙청으로 그 정점을 찍었는데 심지어 현영철은 김정은 자신이 직접 임명한 인사였음에도 숙청시켰으니 다른 일반 간부들의 속내는 더 다른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15.2 아동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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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도 어린이를 상당히 좋아한다. 위에 나온 것처럼 조선소년단 대표단을 열면서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부유층이나 중산층만 아니라 하류계층을 중점으로 모아서 했다. 2013~2014년 초반에는 고아원과 유아 복지 시설을 대폭 늘리고 특별히 신경을 써서 운영하도록 별도로 명령을 내리는 등 빈민층 아이도 신경쓰고 있다.
처음에 공산주의를 내세웠던 북한은 공공복지에 투자를 많이 했고 김정일 때도 고아원을 짓는 등 신경을 썼지만 나라가 쫄딱 망해가면서 우선 순위에서 밀렸는데 김정은이 다시 신경을 쓴 것이다. 이에 대해서 탈북자를 지원하던 주성하 기자가 꽃제비 수가 줄었다고 말할 정도로 성공적으로, 꽃제비 지원을 할 필요성도 없어진다고 할 정도다. 단순한 쇼 이상으로 무언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어린이날에 해당하는 '국제아동절'을 기념해 6월 1일에 수도 평양 중심부의 만수대지구에 신설한 경상유치원을 시찰하고 놀이기구도 기증했다. 민심을 얻기 위한 연출이겠지만 어색함이 너무 심하다. 그런데 이 시기는 황해도 지역의 경우 식량부족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고 함경도 쪽은 소금이 부족하다고 한다.
해외에 나가있는 관료들을 들볶아도 벌써 2만명이 아사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락시설 시찰이나 하는 행보가 불합리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백두혈통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땅은 평양과 평안도라서 그렇다. 조부때부터 지지기반이 되어온 평양,평안도 지역 주민들의 민심은 극도로 살피고 지원을 쏟지만 다른 지역 주민들이 어떻게 되든 그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조부 김일성때부터 계속 그래왔기 때문에 과거 통치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김정은도 똑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평양에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충성계층만 모아놓은 만큼 다른 지역 주민들은 믿을 수 없는 동요계층이자 천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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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최루탄
김정은 사진에서 특히 울며불며 매달리는 건 김정은이나 김정일 때 1번이라도 그들을 직접 대면하거나 만져본 인민은 바로 평양으로 거주지를 옮기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일부 탈북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대한민국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나, 이러한 사례가 실제적으로 확인된 바는 한 번도 없다.
또한, 호위총국에서 근무하며 김정일을 근접 경호했던 한 탈북자는 위와 같은 주장에 대해 완강히 부인하며,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와 함께 사진을 찍을 때는 3차까지 예비 인원을 두고 철저히 준비한다"며 "결코 즉흥적으로 누구를 만나거나 하는 일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참고로 북한에서 지방 거주자가 평양으로 이주할 수 있는 것은, 김일성상 수상자이거나 공훈 혹은 인민 칭호를 받은 경우에 한정한다.
2012년 6월에는 북한 각지에서 뽑힌 수만 명의 조선소년단 대표단을 평양으로 데려와 소년단 창단 66주년 기념 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이 행사를 통해 집권 이래 2번째 공개 연설도 했고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개최한 은하수관현악단의 기념 연주회도 관람했다. 이러한 행보는 1990년대에 태어난 청소년 세대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의 발로 같다. 참고로 여기 참여한 상당수 아해들의 부모들이 소년단 창립기념회에 참석하려는 과정에서 하류층으로 서류를 조작하는 등의 비리를 저질렀다가 드러나자 말 그대로 하류층으로 전락했다는, 참으로 훈훈한 후문이 있다.
선전에서도 지속적으로 어린이와 함께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지도자가 친근한 이미지를 내세우는 서방, 한국 등 국가에서도 그렇게 자주 어린이와 만나지 않는데 김정은은 어린이와 자주 만난다. 당장 이 문서의 김정은 사진을 보면 의외로 어린이와 함께하는 사진이 많을 것을 볼 수 있다. 아버지 김정일이 선군정치와 비밀주의, 엄숙주의를 바탕으로 근엄함을 내세우며 군부대를 주로 시찰한 것과 차이가 있다. 단순히 이미지 메이킹으로 그냥 만나보고 사진만 찍는 게 아니라 꼭 붙어있고 웃으면서 대하는 등 어린이를 좋아하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막 나가는 독재자라도 애들을 좋아하고 관련된 지원을 해주는 타입은 드문 편이 아니니 딱히 선량한 면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참고로 아돌프 히틀러는 동물보호에 아주 관심이 많았고, 나치독일은 근현대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만들었다.
보육원 어린이에게 한 답변이 화제다. 티비에서 무얼 봤냐는 질문에 김정은을 보았다 라고 답변하자 재미는 없었겠구나 하고 답변했다. 기사
15.3 풍자
/풍자 참조.
15.3.1 별명
15.3.1.1 북한
김일성과 김정일과는 달리 젊은 나이인 채 북한의 지도자에 올라서 그의 어린 점을 비꼬는 별명이 많다.
- 열흘이 : 김일성의 지시는 1년을 가고, 김정일의 지시는 1개월이 가지만 김정은의 지시는 10일밖에 안간다는 점에서 그의 미숙한 정치력을 비꼬는 은어.
- 멍은이 : 멍청한 정은이의 준말.
- 18장군 : 그의 생일인 1월 8일을 욕설로 비하하여 부르는 말.
- 꼬맹이
- 쇠매 : 북한에서 인기리에 방영했던 애니메이션 소년장수 주인공의 이름에서 온 별명. 덧붙여 리설주의 별명은 소년장수의 히로인인 국화.
- 설주 남편
- 뜯개문 : 물건을 뜯어내는 도구를 가리키는 북한 북부 지역 사투리 '뜯개'에서 딴 유행어. 김정은 지시문이 "주민들로부터 뭔가 뜯어낼 구실을 만들어 준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
- 둘째 며느리 : 북한 속담 '둘째 며느리를 맞아보아야 첫째 며느리가 무던한 줄 안다.'에서 유래한 별명. 김정은을 김일성, 김정일과 비교해 그보다 못하다는 걸 의미.
- "지도자급" 돼지고기 : 북한 장마당에선 비계가 많이 붙은 돼지고기를 "지도자급" 돼지고기라고 한다. 물론 거기에서 지도자라고하면 누굴 말하는지 잘 알것이다. 본래 지도자급 어쩌고 하는 단어가, 북한 정부 당국이 김정은 우상화의 일환으로 뭐든지 최고 등급을 뜻하는 유행어로 의도적으로 퍼뜨린 단어라, 저렇게 비하적으로 쓰여도 껀수가 없어 뭐라고 못하고 있다고 한다.
- 최고존엄 :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을 공식적으로 최고존엄이라 부른 것에서 비롯된 별명. 김정은을 김정은이라 안 부르고 그냥 최고존엄이라 부르는 것이다. #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쓰이는 걸 보면 남북한 모두 같은 한민족은 맞는 듯
15.3.1.2 남한
당연하겠지만사실 온갖 험한 욕설을 갖다 붙여도 모자라다.
김정은은 김일성의 목 뒤의 혹이나 김정일의 곱슬머리와는 달리 신체적으로 두드러지는 부분이 없으니 그냥 그의 체형을 비꼬아서 부르는 일이 많다. 그냥 돼지라고 부른다든지...꿀꾸리우스라고 한다든지... 여기서 파생된 묘호가 돈종 (豚宗) 혹은 돈조 (豚祖)이다. 또한 김정은의 정면사진이 어금니처럼 생겨서 어금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인터넷 상에선 김정은의 사진을 짤방으로 합성해서 조롱하는 경우가 많으며 아예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부자를 한꺼번에 묶어서 욕하는 경우가 많다.[67]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라는 초대형 병크가 발견되어 인터넷의 풍자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자 덩달아 온갖 커뮤니티의 유머글에 기하급수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도 짤과 표정이 다양해서 이러다 정들겠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핵 업적이 짤 만드는 거 밖에 없는 새끼 그래도 이 새끼는 지가 권력은 쥐고 있는데
한편 2011년 북한의 선전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 게시판에 희대의 명문 김정일 미친놈 김정은 개새끼가 올라왔었다. 세로드립을 썼기에 사이트 관계자들의 검열을 무사히 통과했다고 하며 자세한 것은 우리민족끼리 테러 사건 문서 참조바람.
15.3.1.3 중국
진싼팡(金三胖) : 김씨네 셋째 뚱보
싼팡즈(三胖子) : 세번째 돼지
중국이 인정한 뚱보 3세[68]
중국도 비록 동맹관계이기는 하지만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선 곱게 보지 않는 편이다. 그 이유는 중국의 지도자들은 독재자였어도 피나는 투쟁과 노력 끝에 부강한 현대 중국을 만들었지만 북한 김씨왕조 패거리들은 후계자가 무능한데도 줄이나 잘 서서 부귀를 누리기 때문이다. 건국자들의 위상부터가 다르다. 마오쩌둥은 수십 년간 투쟁을 한 끝에 중국을 건국하였지만 김일성은 소련의 필요로 인하여 만들어진 지도자에 불과하였다. 개혁개방을 시작한 덩샤오핑도 마오쩌둥과 같이 혁명과 건국에 참가한 건국원로임과 동시에 마오의 폭정으로 피폐해진 중국을 부강하게 만든 지도자다. 하지만 김정일은 그저 아버지를 잘 만난 무능력자가 정치적인 능력만 좋아서 북한 지도자가 되었고 북한을 세계 최악의 파탄국가로 전락시켰다.
시진핑과 김정은을 비교해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시진핑은 아버지 시중쉰이 펑더화이의 측근이었기 때문에 숙청당해 낙후된 촌락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고 이후에도 오랜 관료생활과 정치활동을 통해 노련한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태어나기만 명문가에서 태어났을 뿐 지금 그가 누리는 권력은 젊은 시절부터 스스로 쌓아 온 경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은 시진핑 말대로 그저 부모 잘 만나서 지도자가 된 철없고 막무가내인 애송이일 뿐이다. 미국 견제라는 전략 때문에 북한을 끝까지 잡고 있을 뿐, 북한이 그렇게 강조하는 북중혈맹은 이미 예전에 사라진 지 오래이다. 제 말을 잘 들어야 할 밑씻개가 통제도 안 되고 능력도 없는 놈들이니... 그 탓에 현 중국에서도 북한과 김씨왕조를 비판과 풍자하는 내용이 돌아다녀도 중국정부는 이를 단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을 단속해 달라는 북한 요구를 단칼에 거절하였다.
하지만 2015년 10월 진싼팡즈가 허셰 당하고[69] 말았다.
홍콩에서는 하워드란 대역배우[70]가 김정은과 매우 닮은 외모를 이용해서 광고 등을 촬영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오바마 닮은꼴은 길어야 8년이지만 자신은 김정은이 암살당하지 않는 한 평생 해먹을 수 있다'고(...) 천잰데? 재미있는게 이 사람은 2014년 홍콩 우산 혁명 시위에 김정은 차림으로 참여해 '시민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중국 정부는 북한과 다를 바 없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5.3.1.4 서구권
딤정은(Dim Jong-un) : 학창시절 때 공부를 못하고 둔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런데 김정은의 유학시절 이름이 '박은'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15.3.2 3대 전시 치적 건물
아래 3개 치적 건물들은 나름대로 시설이 고급화 되어있다. 문제는 관광객이 오기에는 교통이 아주 불편하며 무엇보다 이 시설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하는데 전기 공급부족으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굶주리는 인민들을 먹일 돈으로 이런 것들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미친짓이다.
16 기타
- 북한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이 돼지의 이름을 치면 자동으로 볼드 처리가 된다.[71] 참고로 북한에서 볼드처리한 김정은 3글자 전부 PUA 특수문자 처리를 하였고 입력시 자동으로 인식해서 저 문자로 변환하게 된다. 쉽게 말해서 저기서 볼드처리된 문자는 한글이 아니라 개별 특수문자이다. PUA 코드는 U+F120, U+F121, U+F122(김, 정, 은)으로 '' 라고 표기된다. 전용 폰트가 없거나 북한에서 직접 손을 대지 않은 운영체제에선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해당 PDF
문서 상태가?에서 복사하여 다른곳으로 붙여 넣어서 확인해보자.
- ↑ 북한에서는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쓰기에 이렇다. 남한에서는 2000년에 이미 폐지.
- ↑ 평안북도 창성군이라는 추측도 있다. 이와 별개로 북한 당국에서는 평양직할시가 출생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 ↑ 남한 정보 당국에서는 김정은의 키를 175cm로 추정하고 있다. [1]
- ↑ 2013년에는 90kg로 추정되었는데 몇 년 사이 급격히 늘고 있다. 장성택 처형 이후로 특히 스트레스성 폭식이 늘어났다고 한다.
- ↑ 언론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중퇴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비정상회담에서는 알렉스와 동문이라고 한다.
- ↑ 관련 기사. 참고로 이전 최연소 국가수반의 자리는 부탄의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이었다.
- ↑ 김정은의 다이어트 후 예상도를 보면 나름 잘생겼다. 건강 문제 단락의 맨 밑 사진을 참조. 또한, 김일성이랑 김정일도 젊었을 때는 그럭저럭 잘 생긴 편이였다.
- ↑ 말라선
- ↑ 지금도 일부 후진국에서는 뚱뚱한 사람을 부유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풍조가 있고, 19세기 유럽에서는 비만일수록 고상해보인다는 이유로 귀족들이 일부러 살을 찌우기도 했다.
- ↑ 그런데 이 사람은 북한 정권의 상황이 바뀔 때마다 말이 자주 바뀌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후지모토 겐지에 따르면 김정일은 김정은을 '대담하게' 키우려고 했다고 한다. 그가 김정철을 상대적으로 맘에 안 들어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밝혔다.
- ↑ 당시 17세
- ↑ 당시에는 '정운'으로 알려져 있었다.
- ↑ 일본어를 배운 사람은 알겠지만 '은'이나 '운'이나 일본어로 ウン이 된다. 대외비였던 것을 일본인인 후지모토가 말하면서 이렇게 알려졌나 추측된다.
- ↑ 위원장이 김정일
- ↑ 헌법을 뜯어고치거나 심한 인권 탄압 같은 것 없이
- ↑ 10점 만점에 8점 이상으로 국제 사회에서 '완전 민주주의'로 분류되는 일본도 싱가포르와 다소 유사하게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의 세습이 잦지만 이건 독재국가라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 국가이되 대중주의보다 엘리트주의가 우세하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 ↑ 보다 자세한 건 국가 막장 테크 문서를 참조하기 바란다.
- ↑ 그리고 싱가포르나 중국의 독재도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는 시간대라 그렇지 역사적으로 보면 아직 100년도 못 채운 젊은 독재 정권들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연도가 1949년으로 아직 7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싱가포르나 중국의 정권들은 변화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신경 쓰고, 반발을 달래기 위해 조금씩이지만 분명히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북한과는 비교조차 할 수가 없다.
- ↑ 김정철이 1981년 9월 25일 생인데 김정은이 1982년 1월 8일에 태어났다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8월 이후라는 전제하에 1982년생일 가능성 자체는 꽤 높다.
- ↑ 9월 25일
- ↑ 9월 26일
- ↑ 홍길동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김정은은 홍길동과 같은 케이스다. 어머니의 출신 성분 때문에 김정은은 서자인 것이다.
- ↑ 고용희의 여동생이다.
- ↑ 스위스에서 김정은 형제를 돌보던 중 1998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일종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데, 일부 기사에는 2013년 데니스 로드맨 방북시 김정은이 관계자에게 은연중에 이모의 안부를 물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 ↑ 남한 표준어의 ㅡ는 평순인 /ɯ/, ㅜ는 원순인 /u/로 대립이 확실한데 북한 문화어는 ㅡ를 원순 모음으로 발음한다. ㅐ와 ㅔ의 구분처럼 두 음의 변별력이 무너진 것.
- ↑ 거기다가 북한의 로마자 표기법에서 ㅡ는 u로 표기한다.
- ↑ 참고로 로마자 표기명도 Kim Jong-un이었으니...슈퍼주니어 예성의 본명이 '김종운'인 관계로 서구권에서는 한때 오해도 생겼다고 한다.
- ↑ 일본어 화자의 청취 감각으로는 한국어의 '은, 응, 운, 웅'이 모두 'ウン'과 같게 들리기 때문에, 북한의 공식 한자 표기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되는 대로(...) 아무 한자나 때려박은 것으로 보인다.
- ↑ 관련 기사
- ↑ '정운'으로 알려져 있었을 때의 한자 표기는 '正雲'으로 표기해 왔다. 물론 북한 당국의 한자 인증(?)이 없었기에 일단 자의적으로 표기했다.
- ↑ 인터뷰에서는 한두 살 차이라고 했는데 실제 배우 김정은은 1974년생으로 김정은과는 9살 차이(북한 김정은이 빠른 84년생, 우리의 한국 여배우가 74년생).
- ↑ 아마 김정은의 어머니인 고용희가 재일교포로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것을 바탕으로 루머를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 ↑ 북한은 주민들에게 한국전쟁을 자신들이 이겼다고 선전하며 이 날을 전승절로 기념하고 있다.
- ↑ + 아버지를 사실상 대리한
- ↑ 도요토미도 대영주들한테 충성 서약 요구하고 결혼 동맹 추진하며 눈물까지 흘리며 부탁하는 등 굽신거렸지만 끝내 그가 죽고 난 뒤에 도요토미 가는 멸망의 길을 걷고 만다.
- ↑ 문제는 통일되면 저걸 우리가 갚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모르는게 아니라 거의 확실시된다. - ↑ 단, 이 경우 총련 등의 반발이 있을 것이다.
- ↑ 심지어 인간 백정이라 욕먹는 이오시프 스탈린도 이런 능력 자체는 갖추고 있었다. 대숙청으로 자국의 경직화를 초래하고 인민을 수탈하긴 했지만 남은 인력 및 물자와 기술력을 긁어모아 굴린 끝에 독소전쟁에서 승리하여 희대의 악마 아돌프 히틀러를 자살로나마 지옥행 급행열차에 태우고, 소련을 미국에 필적할 강대국으로 만들어 냉전으로 대표되는 양강체제를 구축하였다. 양강 체제로 인한 소련의 국력, 인식도 증가는 자연스럽게 외교판에서의 권력 강화를 낳았다. UN 안보리의 다섯개 상임이사국 중 하나에 소련과 그 후신 러시아가 당당히 한 축을 차지하게 된 것이 그 증거이다. 즉, 스탈린은 6.25 전쟁에도 개입되어 있는 놈이긴 하지만 적어도 김씨 일가 삼인방 따위와는 비교가 미안할 정도로 능력이 훨씬 뛰어난 지도자였음에는 틀림없다.
- ↑ 참고로 그런 선전은 김정일 때 썼던 선전이다. 그들의 선전에 따르면 소련 대사가 거들먹거리며 김정일에게 "동무도 우리 소련 대학교에서 공부할 거죠?" 라고 묻자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좋은 대학교(김일성대학)가 있다. 난 거기서 공부할 거다." 라고 말해서 소련의 오만한 대국주의에 반대해 북한의 자존심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제 아비 시절보다 선전 방법이 퇴보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3살 때 총을 쐈다느니 하는 것보다 이런 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 ↑ 인간의 근본욕구가 채워지게 될 경우 다음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눈을 옮긴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수차례 나타난 사실이다. 당장 남한만 해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을 거쳐 먹고사는 문제가 해소되는 순간부터 군부독재를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 ↑ 동독도 초창기에는 은근히 자국민의 탈주를 바라는 편이였다. 당시 탈주자들은 대부분 기반이 미약한 하층민이나 근로능력 저하로 노는 노령층 등 생계적 곤란함을 이유로 탈주하는, 동독 당국에서도 처치곤란한 이들이라 서독에 떠넘겨 노는 입 좀 줄여보자는 심보였기 떄문. 실제로 초기에는 서독으로 가는 비자를 쉽게 내주는 등 은근히 부추겼(?)다. 그러다 청년층이나 중산층 등 사회지지기반들이 탈주하기 시작하자 비자 발급 조건을 까다롭게 올리고 적극적으로 단속에 들어가다가 나온게 베를린 장벽이다.
- ↑ 아이러니한 건 영국과 불편한 관계인 국가들. 프랑스는 한국전쟁에서 남한의 편에서 북한과 싸워준 나라인 데다가 북한과는 단 1번도 외교관계를 수립한 적이 없으며(물론 영국도 한국전쟁에 UN군으로 남한 편에서 같이 참전했었다.), 아르헨티나는 일단 외교는 수립했었으나 1977년 방화사건으로 외교를 단절했다. 그렇다고 북한이 아르헨티나를 적대한 건 아니고 오히려 북한은 이후 1990년과 2007년에 아르헨티나에 관계 재개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북한/외교 문서 참조. 다만 영국은 북한 외에도 쿠바와도 공식수교중이고, 남북한 동시수교이지만 북한보다 남한과 친하게 지낸다.
- ↑ 두번째 아이러니는 1990년에 북한에서 아르헨티나에 관계 재개를 희망한다고 메시지를 보냈으나 당시 카를로스 메넴 정권의 아르헨티나는 친미외교 중이어서 씹혔는데 정작 오히려 포클랜드 전쟁으로 국교단절한지 10년도 안 지난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같은 해에 관계를 재개했다.
- ↑ 이를 두고 김정은에게 피터팬 증후군이 있는 거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유학하면서 꿈꿨던 환상을 북한의 현실에다가 만들어 놓으려고 하는 그런 허황된 꿈이 있어서 이 같은 행보를 보인다는 것.
- ↑ 주민들에게 고기를 공급하겠다고 가축을 키울 바에야, 막장이 된 기초 식량 생산에나 신경쓰는게 더 낫다. 단순히 생각해 봐도, 그 가축들이 먹을 사료를 키울 토지에 사람이 먹을 작물을 심는게 더 빨리 식량난을 타개할수 있을 테니까.
- ↑ 김일성도 그렇고 막장으로 악명높았던 김정일도 특권계층과 그와 관련된 정책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데 아들놈이 감히...
- ↑ 1976년에 설립된 장수 연구소와 1982년 설립된 만수무강 연구소가 바로 그것이다. 장수 연구소는 자연요법과 한의학,만수무강 연구소는 서양의학 전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이들 기관의 진짜 이름은 각각 북한 기초의학 연구소와 임상의학연구소다. 평양의대 안에 있다.
- ↑ 비행기 싫어하는 김정일도 아플 때는 탔다고 한다.
- ↑ 맨 위에 168cm라고 나와 있는 걸 그나마 반올림해서
- ↑ 기사에 첨부된 사진을 자세히 보면 배경이 참 푸르고 푸르다.10월의 북한이라고 볼 수 없기에 8월에 찍은 사진과 영상을 공개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 ↑ 흔들림을 뜻하는 이북 방언
- ↑ 2014년 제7차 사상일꾼대회에서
- ↑ 2015 열병식 육성연설 중 나온 연설 중 일부
- ↑ 두 팔을 흔들며 격노하는 김정은의 영상은 조선중앙TV가, 발언의 내용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 ↑ KBS 스페셜 <북한, 어디로 가나>도 참고
- ↑ 북한 기준으로 범법자일 뿐이지 다른 나라 기준으로는 범법자도 아니다. 예를 들면 탈북이나 기독교 등.
- ↑ 예를 들어 강석주.
- ↑ 이 때문에 장성택의 가신이었던 박봉주가 주군인 장성택 처형에도 살아남았다고 할 만큼 이 조치는 성공적이었다.
- ↑ 식량 증산은 아비보다 제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법을 쓰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사람 먹을 물도 없는데 자라 공장에서 자라를 키워내라 하는 등 얼토당토하지 않는 명령을 내리고 명령만 하면 뚝딱 만들어내는 양 생각하는 것을 보면 세상 물정에 밝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여기에 인민에 대한 실질적인 연결성을 가진 농장과 같은 농업관련 시설로 주로 현지지도를 나갔던 김일성과 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은 인민의 실생활과는 전혀 관계없는 관광지 또는 사치성 시설에 대한 현지시찰이 대부분이라는 점에도 차이가 난다.
- ↑ 당장 김정은의 형인 김정철은 지도자로서의 야망이 결여되어 있고 너무나 온순하다는 이유로 접혀나갔다는 점에서도 확실이 증명되고 있고. 사실은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에 방해가 되는 세력들을 숙청하고 이복형제들까지 '곁가지'라고 하면서 다 몰아냈으니 김정은이 정권을 이어받기에는 수월했다.
- ↑ 북한의 도발은 일본의 재무장화의 명분이 되고 한국의 군비 증강에 영향을 주며, 미국의 아시아 개입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 이는 곧 아시아 전체의 군비 증가 및 전쟁 위험성 증가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것들은 중국의 입장에선 반드시 막아야 할 과제들이다.
- ↑ 당장 북한의 전혀 가망없는 경제 상황은 중국 정부로서도 골칫거리다. 원조를 한다고는 하지만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도 않고 계속 악화되는 경제난으로 인해 북한 주민의 탈북이 늘어남으로서 이들의 처리도 고민을 해야 할 처지다. 물론 지금까지는 체포해서 다시 북한으로 넘기지만 언제까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이렇게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툭하면 도발로 나오는 북한의 태도 역시 중국의 인내심을 점점 한계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다.
- ↑ UN 상임이사국이라는 위치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현재의 형편상 북한을 언제나 감싸고 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다못해 미국까지 북한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나와 줄 것을 중국에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북한을 그대로 버려두기에는 북한의 붕괴는 중국에게도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현재로서는 북한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대화로서의 협상' 또는 '기권'이라는 형태로서 대응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전세계를 상대로 어그로를 유발하는 북한의 행태를 계속 이런 식으로 대응할 경우, 국제사회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부정적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중국이 상당히 곤란한 형편에 놓인 것은 부인하지 못한다.
- ↑ 당장 중국이 북한의 AIIB 신청을 거절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도록. 북한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신용불량자 + 구제불능자'란 인상이 굳혀진 나라다.
- ↑ 북한판 십계명인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의 5조 6항에 보신주의를 반대해야 한다고 적혀있는데 김정은의 공포정치가 오히려 북한의 사회주의체제를 손상시키고 있는셈이다.
김정은: 노오력이 부족해 - ↑ 장성택과 엮어서 조롱하는 건 덤으로, 온갖 종류의 패드립을 먹는다.
- ↑ 중국에서 뚱보3세를 금칙어로 지정했다고 한다.
- ↑ '검열 삭제 당하다'라는 중국 인터넷 은어이다. 자세한건 문서 참조.
- ↑ 본래 직업은 대중음악인
- ↑ 아예 3대 돼지들이 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