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대하드라마 | ||||
KBS 영웅군주 트리오 | → | 정도전[1] | ||
광개토태왕 | → | 대왕의 꿈 |
1 개요
백제, 고구려의 멸망을 신라 관점에서 해석한 드라마.
2012년 9월 8일부터 2013년 6월 9일까지 방영된 전 70부작 KBS 대하드라마. 가제는 태종 무열왕이었으나 본격적인 방영을 준비하면서 해당 명칭으로 확정되었다. 이는 포커스가 김춘추 1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한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제작진도 이 점을 노리고 있는 듯 타이틀에는 태종무열왕의 비중이 가장 크지만 트레일러상에선 김유신을 흥무대왕이라고 명시하고 있고 스토리 상으로도 김유신의 비중이 진 주인공에 가깝다. 참고로 흥무대왕이라는 이 시호는 최종화의 나레이션에서도 깨알같이 설명했다.
중심 소재 및 배경은 신라의 29대 태종 무열왕 시기(삼국통일전쟁기)이다. 앞서의 두 작품이 그 당대조차 끝까지 제대로 못 다뤘던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진평왕 연간부터 문무왕의 재위 중반까지 5대에 걸쳐 포커스를 맞추었다[2].
신라의 24대 진흥왕 소재를 기대했다는 의견도 있으나 '신라의 전성기'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삼한통일에 박차를 가한 무열왕과 뒤이은 문무왕, 신문왕으로 이어지는 시기 쪽이 더 적격이다.[3] 게다가 진흥왕은 고구려로 치면 광개토대왕보다는 오히려 태조왕이나 미천왕에 가까운 케이스로, 6세기가 신라의 본격적인 도약기임은 사실이나 최전성기라고 보기엔 조금 모자란 감이 있다. 다만 무열왕의 치적은 무력에 바탕한 정복보다 외교적 수완에 기운 측면이 좀 더 강한 것은 사실. 그 대신 무력 담당인 흥무대왕 김유신과, 삼국통일의 공로로 그 능역까지 대왕암이라 불리우는 문무왕이 있다.
메인 주인공의 태종 무열왕(김춘추)역에는 대조영 이후 모처럼 사극불패로 유명한 그리고 나라를 두 번이나 건국한 최수종이 이번엔 통일신라를 세우기 위해 복귀한다. 또 다른 주연인 김유신 역에는 연기파로 유명한 최재성이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최재성이 승마 연습 중 낙마사고로 부상을 입어 하차하게 되었으며 결국 김유석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몸을 추스린 최재성은 계백 역으로 다시 캐스팅 되었다.
2 전작들과 차별화되는 점
앞서 KBS 대하사극이 3연타(천추태후-근초고왕-광개토태왕)로 시망했던 점과 제목이 전작들처럼 뒤늦게 확정되었다는 점이 우려로 거론됐었다. 다만 전작들이 꽤나 뜬금없는 이유로 뜬금없게 제목을 바꾼 것과 다르게, 이 작품은 충분히 그럴 만한 당위성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웰메이드 사극으로 유명한 무인시대 사단의 재참여도 주목을 받았다. 무인시대 당시 참여했던 PD, 작가, 그리고 서인석, 임혁, 장동직, 홍일권 등의 주요 배우들까지 10년만에 다시 뭉쳤다는 점 또한 기대를 모았다. 거기다 다른 연기자들의 연기력도 대체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편. 맞수인 의자왕 역에는 최철호가 투입되어 모처럼 그가 보여줄 폭군 연기 또한 기대되었으나 의자왕의 배역 비중이 커지면서 스케쥴 문제로 배역이 비담으로 바뀌었으며, 대신 이진우가 투입됐다.
전작들과는 다르게 별도의 원작을 인용하지 않고 유동윤 작가가 집필한 각본이 스토리의 얼개가 되는 것 역시도 차이를 보인다. 덕분에 전작들의 경우엔 원작의 방향성과 결부되어 이런저런 논란들이 많았으나, 이 작품은 그런 논란에서 한발 벗어나게 되었지만 승만의 난 파트에서는 조연에 대한 출생의 비밀 등 과거 사극에서 써먹은 클리셰와 무리수적인 설정이 나와 비판이 일기도 했다. 이후 신라, 백제, 고구려의 본격적인 외교전이 중심이 되면서부터 궤도에 올랐던 드라마는 백제의 멸망과 부흥운동, 신라 내부의 정쟁과 계속되는 반란, 김춘추와 김유신의 우정과 갈등과 화해, 김춘추의 승하, 백강 전투 격전이 묘사되는 가운데 조기종영이 확정되면서 자연히 이후 벌어지는 통일 과정의 비중은 줄어들게 되었다.
대왕 세종이나 감독의 전작 천추태후처럼 방영 직전에 다큐멘터리처럼 작품 제작 컨셉과 메이킹 과정, 제작진과 출연진 인터뷰, 의상 제작 등을 다룬 스페셜 방송을 내보낸 것이 이색적이다. 여담으로 같은 시대를 다룬 삼국기도 방송 전 전야제라는 이름으로 촬영 뒷이야기 등을 담은 다큐를 방송한 적이 있는데, 이는 국내 최초 드라마 제작 다큐멘터리라고 한다. #
3 방영
3.1 방영 전
2012년 4월 말에 광개토태왕이 종영된 후 곧장 편성되는 대신 9월에 편성 계획되었다. 이는 김유신 역 최재성의 부상에 따른 배역 교체가 있었고, 2012 런던 올림픽 기간(7월 27일 ~ 8월 12일)과 2012 여수 엑스포 기간(5월 12일 ~ 8월 12일)도 있었던 것으로, 공백 기간에는 주로 올림픽 특집프로와 다큐멘터리가 편성되었다. 사실 올림픽 기간 사극 시청률의 전반적인 부침은 피할 수 없기 때문.
사실 사극 방영 시점의 간격이 벌어지는 경우는 대왕 세종 종방 때에도 있었다. 게다가 불멸의 이순신 종방 때에는 대체할 작품이 없어서 중국 드라마인 칭기즈 칸을 땜빵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었다. 또한 광개토태왕이 막장성 탓에 100부작에서 92부작으로 약 한달가량 급 조기종영되었던 것도 원인 중 하나.
3.1.1 캐스팅 말말말
김춘추역의 최수종보다 15세 젊은 박주미가 김춘추의 이모인 선덕여왕 역에 캐스팅 되었다는 소문이 돌며 적절하지 못한 캐스팅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5월 22일 그녀가 종편 드라마에 출연을 확정지음으로서 이 소문은 사실 무근이 되었고 결국 6월 14일 기자 간담회에서 박주미가 선덕여왕으로 출연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녀가 대표적인 동안 탤런트이고 최수종보다 10세 연하라는 것이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지만..[4]
중요한 것은 작중 선덕여왕 재위기의 김춘추의 나이가 20대 후반 ~40대 중반으로, 최수종의 실제 나이야 어쨌든 결코 50대 최수종이 소화하지 못할 연령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차피 최수종은 이 드라마에서 무열왕이 환갑 가까운 나이로 임종을 맞는 시점까지도 연기해야 하며, 그 자신도 이 바닥에서 알아주는 동안으로 대조영을 찍을 때 아역 없이 10대 시절까지 연기한 바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에서 대조영 때도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의 캐스팅 논란은 최수종이 어린 나이까지 소화해서가 중심이 아니라 엄연한 이모 배역을 조카 배역보다 오히려 10살, 또는 20살 가까이 어린 배우에게 맡겼다는게 가장 큰 문제. 잠깐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선덕여왕 또한 아역부터 시작해 나이들어 사망할 때까지 쭉 등장하는 주연급 배역인데도. 이 외에도 선덕여왕과 사촌지간인 진덕여왕 역에도 1983년생인 손여은이 캐스팅되는 등 나이고증과 맞지 않는 캐스팅이 몇 차례 나왔다.
3.2 방영 개시
2012년 9월 2일 스페셜 방송을 시작으로 9월 8일 본격 방영을 시작했다. 김유신이 백제 멸망 이후 신라가 당나라에 접어주는 태도에 반발하여 거병하여 김춘추와 칼을 맞대는 장면으로 긴장감을 조성하고 본편으로 넘어갔다. 이에 대해 실제로 있지도 않은 사건을 무리해서 묘사했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62화 방영분에서 이 인트로 장면은 무열왕의 불길한 꿈으로 밝혀졌다(…). 물론 이건 무열왕이 그만큼 김유신에 대한 경계가 높았다는 것을 상징하는 극적 장치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김유신은 소정방과의 유명한 대화[5] 등에서도 엿보이다시피 당나라를 상당히 아니꼽게 생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사실 이렇게 당나라의 개입을 두고 김유신과 김춘추가 대립구도로 갔다는 해석은 이미 2003년 사극 영화인 황산벌에도 묘사된 바 있다. 이 영화는 다소 블랙코미디 끼가 있긴 하지만... 그런데 이 장면이 김춘추의 꿈이라고 나온 이후 드라마에서 김유신이 김법민과 손을 잡고 친당파에 맞서 반기를 들다가 결국 전면전 직전 춘추와 유신의 독대를 통한 타협으로 마무리된다.
드라마는 진평왕의 후사 결정을 둘러싼 갈등을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대략적인 인물 등장과 함께 김춘추, 김유신의 아역과 덕만(선덕여왕), 김용춘, 사도태후, 숙흘종, 진평왕 등 주요 비중이 될 인물들이 드러났다. 같은 시기 같은 나라를 다룬 MBC의 선덕여왕과 비교되는 점이 꽤 많은데, 우선 논란이 많은 미실이 나오지 않는다! 이환경 작가의 연개소문(드라마)에서도 초반부터 미실이 높은 비중으로 등장한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차이를 보이는 점. 진지왕의 폐위도 미실이 아니라 모후인 사도태후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설정되었다.
드라마 초반 사극 매니아들은 KBS 대하사극 중 드디어 본방사수를 할 만한 작품이 나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예외적으로 선덕여왕(드라마)의 미실과 비담을 돌려달라는 식이라거나, 혹은 뜬금없이 영호남 지역갈등을 대입시키는 괴반응들이 있지만[6] 전체적으로는 호평이 주를 이뤘다. 아예 소재인 태종무열왕 자체를 까면서 반민족 운운하는 반응도 있으나 이는 근현대적 민족주의를 고대사에 대입하거나, 일제시기 식민사관의 잔재로 신라나 조선을 폄하하는 시각이 개입되었음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그러한 의도적인 폄하와는 별개로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그들과 관계없는 일반 시청자들이나 사극 매니아들에게서도 비판의 소리가 제기되었다. 바로 다음 단락에서 다루는 주연 배우들의 사고로 인한 결방 및 승만왕후의 난 분량을 지나치게 끌면서 극의 진행이 늘어졌고, 최수종이 목소리 연기를 마치고 복귀한 이후에도 드라마는 삼한통일의 국제전과 정치, 외교를 원하는 시청층의 기대와 달리 김춘추와 김유신 두 사람의 인간적인 관계가 극의 중심 내용으로 부상하며 스케일이 줄어든 드라마가 되었다는 비판이 사극 마니아들로부터 나왔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흥미도가 떨어져 일반 시청자들이 이탈하여 10% 미만까지 떨어진 막판 시청률로 나타나게 되었다.
김춘추가 승하한 후에는 그나마 다행히 막판 들어서의 전개는 밀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특히 68화의 백강 전투는 한국 사극 사상 유례없는 고대의 수상전을 묘사하였으며, 이제껏 사극 속 수상전에서 흔치 않았던 충각 전술과 갈고리 전술, 투석기 활용, 수상 화공 등 시청자들의 갈증을 풀어줄 실감나는 수상 전투 장면들이 묘사되었다. 동시에 병행된 백병전은 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볼만한 전투였다는 평까지 나올 정도이며 방영 여유만 된다면 족히 2회 이상은 끌어도 좋을 정도의 고증과 물량 투입이 엿보이는 묘사였으나 아쉽게 1회 내에서 종결되었다. 이에 그동안 최수종의 인지도나 출연료 탓에 정작 길게 나와야 할 이런 장면들이 편집당하는 대신 무열왕 치세 비중이 높았던 것 아닌가 하는 반응도 나왔다. 마침내 결말에 이르러 주인공 김유신의 죽음 및 후세의 평가가 드라마의 대단원이 되었고, 이후 나당전쟁의 승리와 문무왕의 행적 등의 후일담이 해당되는 장면과 함께 10분만에 나레이션으로 처리되면서 70회에 걸친 숨가쁜 전개도 비로소 그 막을 내렸다.
3.2.1 주연들의 연이은 사고와 투혼
이 드라마의 흥행이 지지부진했던 원인은 다른 것도 많긴 했지만 특히 운이 나빴는지 주연급 배우들에게 탈 것과 관련된 사고가 꽤 있었다. 본래 김유신으로 내정되었던 최재성이 낙마사고로 하차하고 김유석으로 교체되기도 했으며, 최수종도 교통사고와 낙마사고를 각각 한번씩 겪었다. 선덕여왕 역의 박주미도 2012년 10월 23일 늦은 밤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는 도중 뜻하지 않은 차량 추돌사고를 당해 매니저, 코디네이터와 함께 부상을 입었는데 다행히 안전벨트 덕에 타박상 정도로 그쳤지만 결국 8주 진단을 받고 하차하기로 결정됐으며, 해당 역은 유준상의 아내인 홍은희가 이어 가게 되었지만 그 여파로 총 4주를 결방하여 총집편 방영으로 대체했다. 관련기사 그러다 연말에는 또 다시 주인공인 태종 무열왕역의 최수종이 촬영 도중 빙판에 말이 미끄러지면서 낙마 사고를 당해 결국 수술을 하게 되었다#[7]. 계속되는 사고와 악재가 겹치는 시청률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결국 제작진은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하기에 이르렀다#. 최수종의 부상이 가볍지 않아 결국 수술을 받았다. 이에 결국 새해 첫 방송은 신년 특집 다큐멘터리로 대체했다. 1월 12일부터 방영 재개. 제작진은 대본상으로 최수종의 출연을 최소화해서 회복을 돕도록 배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그 결과 회복기간인 3주간은 최수종이 드라마에 멀리 가 있다는 설정으로 직접 출연하지 않고 대신 목소리 연기만 나오게 되었다.
이처럼 주연 배우들의 사고로 인한 2~3차례의 방영 중단은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로, 같은 방송사에서 방영했던 각시탈에서도 엑스트라 출연자가 사망하게 되었던 사례도 있었는데 이 드라마 역시 배우들의 촬영사고가 이어지는 불운이 겹치게 되었다. 결국 제작진 측에서는 배우들의 신변 안전 등을 고려하여 더 이상 촬영사고가 없도록 배우들의 건강상태 그리고 촬영세트 상태 등을 철저히 점검하고 말 등의 동물들도 수의사 등을 통해서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등 안전한 촬영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드라마 촬영장에 액운이 낀 것이 아니냐', '각시탈도 그렇고 KBS 드라마에서만 유독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배우들이 괜한 고생과 사고를 당하는게 아닌가 걱정된다'는 등의 우려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악재의 연속이라 할 만한 부분들이지만 제작진 측도 이런 갑작스런 사태에 대한 대비가 미흡한 것은 개선되어야 할 점이다.
그러나 이런 악재 와중에도 주연을 맡은 배우들은 배역에 대한 애착과 열의로서 전례 없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특히 타이틀 롤인 최수종은 골절상을 입는 부상 속에서도 작품에 대한 애착이 크다면서 완치되지 않은 몸으로도 중도 하차 없이 목소리라도 출연을 계속 했다[8]. 실제로 맡은 배역에 대한 애정과 관심 또한 대단해서 촬영 중에도 줄곧 김춘추 관련 서적들을 숙독하며 김춘추의 이상과 진정성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고 그에 맞게 연기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대본 리딩 때는 배역에 몰입하다 그만 눈물을 쏟기도 했을 정도라고.
또 선덕여왕 역 박주미 역시 교통사고 후에도 출연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천명하였기에 제작진이 몇주간 거듭 회의를 거치고서야 배역 교체가 이뤄졌고, 낙마사고로 주인공 김유신 역이 불발된 최재성 역시 기어이 라이벌 계백 역으로 컴백하여 열연했다. 이렇듯 주연들과 스텝 모두 드라마에 대한 애착과 투혼 및 상호 배려가 빛났으며, 이러한 미담은 연기자의 갈등과 트러블로 얼룩졌던 근초고왕 등의 사례와 대비된다.
3.2.2 시청률 고전과 조기종영
초반부 시청률은 대략 12~13% 대로 그럭저럭 출발했었다. 그러나 승만의 난 파트와 4주 결방을 기점으로 극의 흐름이 너무 뜬 탓인지 이 시점부터 시청률은 전작인 천추태후와 광개토태왕보다 낮고, 근초고왕보다는 소폭 높고, 대략 대왕 세종 중후반부의 시청률과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대왕 징크스인가 이후 10% 초반대에 머물던 시청률은 60회가 넘어가면서부터는 68회에서 잠시 두자릿수로 반등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8~9%대 시청률을 기록하였고, 결국 최종회에서 한자리 수 시청률(TNmS 전국 8.9%, AGB닐슨 전국 9.3%)을 기록한 KBS 대하드라마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는 대 히트작 용의 눈물 이래 KBS 대하드라마에서는 단 한번도 없었던 일이다. 평균 시청률 또한 약 11.2%로 한일합방 100주년을 맞이해서 특별편성된 자유인 이회영(7.6%) 보다는 높았지만 자유인 이회영을 제외한 역대 최저였던 근초고왕(11.0%)보다 겨우 0.2%p 높은 정도였다. 총 제작비 280억을 투입하고 방영하기 앞서 스페셜 방송에 사극계의 거물이라 할 수 있는 최수종까지 투입했음에도 시청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앞서 최수종 주연작 중 태양인 이제마도 중반부터 흥행이 부진했으나 이쪽은 대하사극은 아니었다.
이런 와중 당초 기획인 80회에서 10회 단축한 70회로 조기종영이 결정됐다. 제작진의 입장으로는 주연배우들의 부상으로 인한 약 5주간의 결방이 있었던 차에 종영일자를 맞추다 보니 회수 조정이 있게 된 것일 뿐 시청률로 인한 조기종영은 아니라고 한다.
결국 70회로 종영. 원래 후속으로 강철왕을 편성할려고 했으나 노조의 반대로 무산 되었으며 이후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 정도전 방영 이전 까지 다큐멘터리 혹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대체하였고, 이후 주로 글로벌 다큐멘터리가 해당 시간대에 편성되었다. 이에 대해 예산 문제라거나 시청률 문제는 아닐까 하는 입담이 오가고 있다.
3.3 특색
3.3.1 고증 관련 반응
사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 고증과 관련하여, 앞서 당대 신라를 묘사한 사극인 연개소문(드라마), 선덕여왕(드라마), 계백(드라마) 등에 비해서는 확실히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고증에 대한 지적 사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 비해서는 상당한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신라계와 가야계의 미묘한 차별 정서도 잘 반영하였고, 갑옷도 근초고왕(드라마) 당시 선보였던 근초고왕의 유일한 의의로 인정받는 것들을 다시 활용하여 호평받았다. 다만 근초고왕 때 제작한 갑옷을 계승하여 쓰다보니 목경갑이 옆으로 트여있어 목울대를 가리지 못하는 구조를 그대로 이어받은 점은 옥의 티 아니냐는 반응도 있으나, 실제 당대 유물로 출토된 신라와 가야 갑주들을 보면 의외로 목울대를 가리지 않는 목경갑이 많아서 오히려 이쪽이 더 고증에 부합할 가능성이 높다. 신라 갑옷 유물과 그 복원도, 가야의 목경갑.
초반에는 전투 장면마다 모든 장군과 병사들이 투구를 썼으나 차츰 주연 배우들이 투구를 착용하지 않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건 주인공 신라 진영의 주연 배우들 얘기고, 적국인 백제군의 경우 수장인 의자왕부터 잡졸들에 이르기까지 다들 투구 착용에 충실한 걸 보면 투구 고증에 관심이 없는 것 같지도 않다(…). 그래도 주조연들 모두 갑주는 빠짐없이 착용하고 있었으나 대야성 전투가 나왔던 36회에선 성주 품석과 김춘추의 아들 법민도 갑주를 착용하지 않고 돌격하는 모습도 모여줬다.
디테일적 측면에서는 앞서 사극들에서 다소 소홀하게 넘어간 점이 없잖은 경주의 거대 봉분들과 12지신상도 묘사가 나온다. 초반 한차례 등장한 이후 재등장은 없지만... 또한 도성의 원경을 보여주는 CG에 있어선 KBS 노하우의 집약이라 칭해도 좋을 정도의 최상급 퀄리티를 보여준다. 복식상으로도 왕실의 중년 남자들에게도 당대의 트렌드(?)인 귀고리를 착용시키는 등 여러모로 신경 쓴 티가 난다.
다만 극에 등장하는 집단인 귀문의 간부들 패션은 아무리 카리스마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지나치게 고증을 파괴하였다는 점이다. 대조영(드라마)의 설인귀나 주몽(드라마)의 철기군의 예처럼 당시의 의상이라기엔 너무 급진적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길달의 부하 중 호랑[9]은 디아블로 2의 어새신처럼 손갈퀴를 휘두르고, 비형랑의 부하인 여전사 시노는 건곤권을 쓰며, 설화에서 김유신에게 검술을 가르친 스승인 난승은 무협틱한 봉두난발로 나온다. 그리고 가장 분장의 파격도가 높은 길달의 경우는 실사판 북두의 권에 나오는 레이를 닮았다는 반응도 있다. 이는 다른 캐릭터들의 정석적인 복식과 비교하여 너무 튀어서 아쉬운 부분.
진평왕의 할머니이자 진흥왕의 왕비인 사도태후에 대한 호칭 고증의 경우, 마마 대신 폐하라고 하는 점은 고증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흔히 궁중의 여인들을 부를때 쓰는 '마마'라는 호칭은 고려 원 간섭기 때 생겨난 말인데도 이제까지의 다른 삼국시대 사극에서는 이를 씹어버리는 용례가 많았다. 그러나 사도태후의 정식 품계는 태상태후라는 정체불명의 용어인데 이런 것보다는 더 뚜렷한 호칭이자 그 용례가 사서에서도 확인되는 '태왕태후'를 썼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것 역시 화랑세기의 것(사도태상태후)을 변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비담이나 알천, 김춘추가 섭정 자리에 오르자 너나 할것 없이 '섭정 폐하'라 잘못 부르는 점도 눈에 띈다. 섭정은 왕의 대리인으로서 여전히 왕의 신하이지 왕이나 태후가 아니기 때문.
자문에는 정통 한국 고대사 전공자인 성균관대학교 박사 김기섭과 서강대학교 총장 이종욱 교수를 고증 자문역으로 올려놓았다. 고증을 맡고 있는 이종욱 교수가 위서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 진서론을 받아들이는 점에서 화랑세기와 연루된 고증이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일단 이 드라마 역시 여전히 화랑세기의 흔적은 남아있는데, 화랑들의 리더가 풍월주로 지칭된다든가[10], 등장 화랑 중 한명의 이름이 염장이라는 것이라든가, 천명공주가 선덕여왕의 언니로 설정된 점[11], 그리고 승만부인 손씨가 화랑세기의 행적대로 김용춘과 덕만을 시기하고 사도태후의 뒤를 이어 용춘 세력을 견제하는 인물로 나온다는 점 등은 화랑세기의 설정을 고려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화랑세기에만 등장하는 진평왕의 후궁인 보량궁주와 그 아들 보로전군도 등장한다. 그러나, 승만부인은 엄연히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인물이고 나머지 인물들도 이름과 기본적인 모티브만 빌린 듯 이들의 드라마에서의 행적은 화랑세기와는 크게 다르다. 보량궁주만 보더라도 화랑세기에선 오래도록 살아남아 노년에 죽지만, 드라마에선 등장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자객들에게 추격받고 살해됐다. 염장 역시 화랑세기에선 젊은 시절부터 풍월주 후계자 갈등 이후 김유신과는 악우로 묘사됐지만, 드라마에선 오히려 김유신이 선뜻 지위를 양보해주려 하는 등 관계개선을 통해 의리를 유지하며 친우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작진에 의하면 사서만으로 부족하거나 밋밋한 내용은 화랑세기를 참고는 하되, 미실과 용수처럼 사서와 정면 상충되는 부분은 사서를 우선해서 따르고 화랑세기의 비합리적인 부분은 배제한다는 방침이라고 한다. 그에 따라 김춘추의 아버지가 김용수가 아닌 김용춘으로 설정되었고, 덕만공주의 혼인에 대해서도 화랑세기에 나오는 용춘, 용수, 흠반, 을제 대신 삼국유사에 따라 숙부인 갈문왕[12]과 결혼한 것으로 되었고 일찍 사별했다[13]. 결정적으로 미실의 비중을 빼버린 대신 비슷한 기믹을 실존인물인 사도태후와 승만왕후가 서로 나눠서 이어받았다. 미실이 이미 선덕여왕(드라마)로 엄청난 푸쉬를 받았던 캐릭터임에도 극의 진행에서 일부러 그녀 및 그녀의 혈족을 배제한 것은 사서와 충돌하는 부분이 너무 크기 때문. 이에 따라 화랑세기상에서 미실과의 직접적인 친족관계에 있는 세종, 미생, 하종, 보종 등 풍월주를 거친 인물들도 전부 등장하지 않고 미실의 다른 자녀들도 마찬가지로 당연히 등장하지 않는다.
신라 왕실 특유의 근친혼으로 꼬인 족보는 이 드라마에서도 잘 반영되고 있다. 기록상 국반 갈문왕은 진평왕의 동생으로 덕만과는 삼촌-조카 관계인데, 말하자면 진평왕의 할머니인 사도태후는 자기 손자와 증손녀를 결혼 시키려 하는 셈이다. 또한 용춘은 진지왕의 아들로 진평왕과는 사촌사이인데 김용춘의 부인은 진평왕의 딸인 천명공주로 진평왕과 김용춘은 사촌형제 사이면서 장인과 사위가 된다. 더불어 김용춘 역시 사도태후의 손자이므로 사도태후는 자기의 증손자겸 외고손자인 김춘추를 눈엣가시처럼 보는 셈.(물론 아들조차 폐위시킬 정도로 비정한 성격이라고는 하지만) 게다가 드라마 상 숙흘종과 만호부인은 부부인데 만호부인은 진평왕의 생모[14]이므로 만호부인은 남편이 죽자 남편의 작은아버지에게 재가하여 딸인 만명부인을 낳는 셈이니 진평왕과 만명부인은 이부 동생이자 당고모가 되게 된다. 다시 말해 김유신은 진평왕, 김용춘과는 6촌이 되며 김춘추와는 7촌으로서 김춘추와 김유신은 서로 처남-매제 겸 장인-사위가 되게 된다. 다만 이런 관계도를 막장 드라마 뻘 친인척 관계로 보는 건 요즘의 시각이고, 신분제가 엄격하던 당시의 기준으론 오히려 이것이 지극히 당연했다.
무왕과 의자왕이 출연하면 으레 나오는 서동요나 선화공주 관련 내용은 거의 없다. 사실 선화공주가 등장해 무왕의 아내이자 의자왕의 어머니로 나온다면 무왕은 진평왕의 사위가 되고 선덕여왕의 형부가 되며 김용춘의 동서가 되고, 의자왕은 진평왕의 손자이자 선덕여왕의 조카이자 김춘추의 이종사촌이 되므로 극의 전개에 있어 조금 애매해 질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초반 승만의 난 파트에서 집중적인 고증 문제가 노출된 바 있는데, 초반 승만왕후에 대해 악역성을 부각시키고자 진평왕의 후계자로 쓸 자식을 몰래 바꿔 키우는 출생의 비밀 클리셰를 설정함으로써 고증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또 드라마상에서 반란이 성공했다가 비담에 의해 수포로 돌아간것과 다르게 기록상 칠숙은 석품 등과 함께 반역을 모의하다 처형당했지 실제로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파트에 묘사된 화백회의의 결의 장면이 만장일치가 아닌 다수결로 나타난 것도 고증 문제가 제기되는데, 그 전까지는 잘만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다가 여기서 다수결 결정 묘사가 나왔다.[15] 이 와중 진평왕은 승만왕후가 먹인 환약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짐으로써 그 직전까지 신하들을 호령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천추태후(드라마)의 성종 캐릭터처럼 왕후에게 휘둘리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아마도 MBC의 히트 사극 선덕여왕(드라마)의 인기 요소를 참고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런 것치곤 그리 재미가 높지도 않았고 승만왕후 역시도 미실같은 매력적인 악역과는 거리가 먼 일방적인 악역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승만의 난 파트에서 사서와 어긋나는 부분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생몰년과 관련해서는 이전 선덕여왕(드라마)에 비해 대체로 실제 사서 기준 나이를 잘 따르고 있는 편이긴 하나, 몇몇 인물들(김후직, 호림, 김용춘)의 극중 나이와 생몰년은 사서와 맞지 않아서 역사왜곡 사례로 지적받는 부분이 있다. 구체적으로 580년에 병부령에 올랐다는 김후직이 진평왕 말기에도 병부령을 지내어 실제 역사대로면 30년 넘게 병부령을 맡고 있는 셈이 되었고, 31화에서는 호림이 선덕여왕 재위 초 비담에게 살해됐으나 실제 호림은 비담의 난 평정에 공을 세우고 선덕여왕 사후 상대등 알천과 함께 화백회의에 참가하는 조정의 고위 관료를 맡을 만큼 오래 살았다. 645년 황룡사 9층 목탑 건설을 주관했다는 기록이 나타나 있는 김용춘도 극중에서는 다소 이른 시점인 642년 대야성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되었다. 그리고 김용춘을 죽인 검일도 실제로는 대야성 함락 후 백제에 투항하여 백제가 멸망할때까지 살아있었는데도 김용춘을 찌르고 자신도 김용춘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사서처럼 김춘추가 단지 딸이 백제군에게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이성을 잃고 복수에 매몰된다는 전개는 너무 찌질해보여서 시청자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어서 당위성을 주려고 이런 설정을 둔 것으로 보이나, 역사왜곡 시비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대야성 전투와 관련해서는 성주인 김품석을 백제군의 계략에 말려든 충직한 용장처럼 묘사한 것도 역사왜곡 문제가 제기됐는데[16], 여기에 대해서는 일단 대외적으로 백제군의 계략 전말이 드러나지 않아 신라에선 기록처럼 죽었다고 알려진 걸로 처리 됐고 또 극중 김춘추의 입을 빌어 "성주가 그렇게까지 용렬한 인간이었다면 어찌 대야성 백성들이 투항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일치단결해 결사항전했겠는가"라는 발언을 밝혀 각색하였으나 정사의 내용과는 크게 상충된다. 작중 품석은 등장하지 않은 대야성의 충신 죽죽의 역할까지 흡수했다고 볼 수 있는 셈. 물론 이 부분은 김품석이 주인공인 김춘추의 사위 보정을 받아서 지나치게 미화된 것이긴 하다.
여담으로, 신라 때의 인물 설화에서는 남성에 대한 일반 호칭으로 郞(사내 랑)을 쓰는 것을 반영해서인지 (연오랑과 세오녀 설화, 화랑인 기파랑이 등장하는 찬기파랑가, 비형랑 설화 등) 극중에서는 실존 인물에 대해서도 드라마 선덕여왕의 선례를 따라서 郞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다. 유신랑이 대표적이고, 아예 "저 랑(사내)은 누구입니까?"라는 대사까지도 있다.
3.3.2 각색
본작의 진평왕은 초반에 군약신강의 구도 하에 있기는 하지만 이제까지 사극에서의 역대 진평왕들처럼 권신들에게 휘둘리는 무기력한 군주가 아니라, 신하들의 공세에 고심하면서도 나름대로 자기 주장이 있고 사려가 깊은 왕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막판에 가서 찌질해지는건 똑같다.
진평왕의 맞수인 백제 무왕에 대해서도 역대 사극 가운데 가장 무왕다운 호전적이고 냉철한 군주로 묘사했다. 오히려 무왕 본인이 주인공인 사극 서동요나 무왕 치세 백제가 주 무대인 계백(드라마)에서보다 더 무왕스러울 정도. 덕분에 그동안의 사극에서 인식된 유약하고 숫기없던 무왕의 이미지를 일신해냈다.
또한 여태까지 신라 관련 사극에서 별로 존재감이 없었던 국반 갈문왕에게 어느 정도 비중을 부여한 것도 주목할 점. 전형적인 광인이지만 간간이 사도태후에 대한 디스라든가 김춘추와의 대화, 숙흘종 및 알천에게 뼈 있는 소리를 던졌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비형랑[17]에 대해서도 조명을 맞추었는데, 귀신들의 우두머리라는 원전의 설화적 내용을 '귀문'이라는 의적 집단의 리더라는 설정으로 현실감 있게 각색했다. 마찬가지로 원전에서는 비형랑의 수하였다가 배신을 저지르고 처단된 여우 길달 역시 금빛 여우라는 이명의 악역으로 각색되어 등장한다. 그 외 비형랑의 심복으로 설정된 난승과 길달의 심복으로 설정된 모척 등은 모두 실제로 기록상에 있는 인물들이다.
초반 로맨스라 할 수 있는 천관녀와 김유신 사이의 러브라인에 대해서는 한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커플링으로서 사실상 결말이 예정되었던 셈인지라 시청자들은 일찌감치 안타까움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7화에서 마침내 동굴에서 키스와 합방(?)[18]까지 진도가 나갔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만명부인이 올라와 설화대로 둘을 갈라놓았다. 망했어요. 근데 이건 실제 설화가 그러하니 어쩔 수 없는 부분. 근데 그 유명한 김유신이 말 목을 베는 일화가 나오지는 않았고, 천관녀가 김유신에게 일방적인 절연 선언을 하자 김유신이 천관녀에게 받았던 정인의 징표를 버리고 바위를 베는 것으로 바뀌었다. 다행히 말 한 마리 살렸다 그리고 천관녀는 8화에서 길달에게 붙잡혔다가 김유신과 길달이 대적하다가 위기에 처한 김유신을 위해서 길달의 등을 은장도로 뒤에서 찔렀고 분노한 길달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금빛 여우를 베어버렸으니 말 대신 여우를 벤 셈인가?
또한 김춘추와 김유신이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룰 것을 맹세하며 그 내용을 비석에 새기는 것은 오늘날에도 전하는 임신서기석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이 맹세를 하는 작중 시점인 서기 612년은 바로 임신년으로 실제로 임신서기석의 임신년은 서기 552년설과 서기 612년 설이 있다. 다만 실제 임신서기석이 나라에 대한 충성과 유교 경전을 습득할 것을 맹세한 비석인 것과 달리 여기서는 삼한일통의 맹세로 바뀐 것이 차이.
10화에서는 강남스타일이 패러디되었다! 염장이 사정부와 화랑도의 화해를 위한 연회자리에서 술에 취해 "우린 모두 서라벌 풍이야!"라는 대사를 치더니 말춤을 작렬하며 "이랴"라는 추임새까지 넣었다. 서라벌이 서울의 어원이 되었다는 설이 현재 국문학계 다수설인 만큼 매우 절묘한 패러디.
김춘추와 문희의 만남도 각색이 가해졌다. 축국을 하긴 하지만 삼국유사에서 옷고름이 찢어져서 그걸 꿰메려고 한 것이 아니라 김춘추가 술에 취해 김유신의 집에 묵게 된 사이 문희가 김춘추의 숙소로 들어가 술에 취해 자신의 부인인 줄 착각했던 김춘추와 거사를 치르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보희가 문희에게 꿈을 팔지 않는데, 이는 만명부인에게 그 꿈이 어떤 꿈인지 들어버렸기 때문인 듯. 대신 보희는 비형랑과 플래그가 세워졌다 결국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김유신의 여동생 화형식도 나오는데 여기서는 사서처럼 동생을 김춘추와 무리하게 엮으려고 쇼를 연출한 것이 아니라 승만왕후의 계략과 가문의 존망, 그리고 문희 스스로 김춘추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함이라는 여러가지 당위성을 부여해 각색되었다.
클리셰적 측면에서 보자면 천민 체험 코스라든가 출생의 비밀 같은 무리수급 클리셰에서 벗어난 것은 주목할 만 하다. 김유신의 경우 이 비슷한 부모의 연애 비사가 묘사됐지만, 김유신 출생에 얽힌 김서현과 만명부인의 이야기는 엄연히 삼국사기에 존재하는 실제 이야기이며, 내용도 "자네에겐 내 딸 못 주네!" 식의 흔한 장인-사위간 갈등 스토리라서 사실 출생의 비밀 축에도 못 낀다. 일단 여태까지 연개소문, 대조영, 선덕여왕, 광개토대왕 등 주요 사극 주인공들이 실제로는 별 문제없는 성장기를 보낸 것과 별개로 천민 체험과 출생의 비밀을 적용시켜 고증을 씹어먹었다는 지적을 받았고, 심지어 대왕 세종의 세종대왕조차도 생뚱맞게 유배 체험 코스를 다녀왔던 것을 상기해보자(…). 다행히 이 작품은 위와 같은 상투적인 클리셰를 벗어났다.
그러나 정권 전복을 꾀하는 비밀결사의 존재[19]는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그리고 13회에서, 물론 주인공에게 적용된 것은 아니지만 단골 클리셰 중 하나인 출생의 비밀이 묘사됐다. 승만왕후가 낳은 첫아이가 딸인지라 왕자를 낳지 못했다고 폐출될까봐 두려워 한 승만왕후가 자신의 딸을 살수에게 넘기고 시골 아낙의 아들을 훔쳐와 원자로 삼은 것. 단, 설령 데려왔다 하더라도 승만왕후 소생의 아들은 일찍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쪽도 그런 운명을 밟을 듯하며, 실제 방송분에서도 두통으로 쓰러지며 사망 플래그를 세우는 모습이 나왔다. 결국 끈질긴 왕후의 난 끝에 왕의 핏줄로 인정해줄테니 죽이라는 협정에 맞추어 이미 위독한 상태에서 승만왕후에게 독을 받아 마시고 죽어버렸다. 그 이후에야 이 끈질긴 난은 그 협정으로 목숨을 건져 유배가는 것으로 끝났다. 이렇듯 승만왕후가 전형적인 악역으로서 등장이 길어지면서 선악대립이 단순해지고 조정의 당파싸움을 조장해서 주인공인 김춘추와 김유신을 사지에 내몰려 하는 등 대부분의 캐릭터가 선역인지 악역인지 종잡을 수 없었던 무인시대에 비해서는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진정한 악역이자 보스인 의자왕에 대해선 그래도 상당히 입체적인 캐릭터를 부여하고 있다. 다른 사극에서 적국 왕들이 대부분 찌질이나 소인배, 혹은 전투광 수준으로 묘사되는 것에 비하면 은근히 대접이 좋은 것 같기도….
스토리 초반 진평왕에 대해선 나름의 강단있는 묘사에도 불구하고 권신들과의 파워 게임에서 압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쉽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당시 외세의 잦은 침공을 겪은데다 남성 후계자가 부재한 탓에 집권 후반 레임덕이 상당했을 점은 감안하더라도 딸에게 성공적으로 왕위를 물려줄 만큼 더욱 강단있게 묘사했으면 하는 반응도 뒤따랐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13화에서 놀라운 반전이 벌어졌는데, 병세를 위장한 진평왕이 절묘한 기만책을 사용하여 단숨에 권신들을 굴복시키고 군강신약의 구도를 만든 것이다. 이에 깜놀한 상대등 숙흘종이 고개를 내리깔고 "우리는 폐하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소이다"라며 움츠러드는 장면은 압권.
인트로 장면에서 김유신이 신라와 당나라의 친교 정책에 반발하여 거병을 일으키고 주군에게 칼을 겨눈 장면의 사실성에 대해서도 뒷말이 있었는데, 결국 스토리 상 친당과 반당을 놓고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62화에서 1화 인트로 장면이 다시 나왔고 사실 김춘추의 꿈으로 밝혀졌다. 레알 대왕의 꿈 물론 이후 극중에서 김유신이 태자와 합심해 친당파 척결을 내걸고 반기를 들긴 했으나, 얼마 후 무열왕이 병마에 시달리는 까닭에 재위 중 급하게 통일을 추진하려 했다는 진상이 밝혀지면서 결국 서로의 의중을 읽은 무열왕과 김유신이 한발짝씩 물러나 삼한 통일이라는 대명제를 목표로 원만히 대타협을 이루는 것으로 매듭되었다. 즉 내부 갈등이라는 각색을 통해 신라가 당에 끌려다니기만 했다는 피해의식을 떨치고 나름대로 의미있는 메세지를 부여한 것. 또한 무열왕이 기존의 대의를 숭상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초심을 잃고 현실에 영합하는 묘사를 보여줌으로써 정치인 김춘추로서의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며,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당에 대적할 당위와 복선을 제공한 것이기도 하다.
3.4 드라마 구성상의 장점과 한계
3.4.1 장점
- 7세기 당시의 국제관계 조명
- 지금까지 삼국통일전쟁을 다룬 작품들은 여럿 존재하지만, 당시의 삼국과 주변국인 당나라는 물론 왜와의 역학관계까지 모두 비중있게 다뤄낸 사극은 사실상 본 작품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신라가 주인공 진영이기 때문에 신라 쪽 묘사가 가장 크고 자세한 것이야 당연하지만, 제작비를 아끼려고 하면 설렁설렁 넘어갈 수도 있는 '다른 나라'인 당나라의 저자거리, 왜국의 조정이나 항구 같은 세트까지도 공들여 묘사하고 그들 나라의 내부 사정을 보여줌으로써 분명 이 작품의 미장센은 한극 사극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고대 일본의 경우 실제 역사에서는 삼국과 매우 긴밀한 연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병풍처럼 묘사된게 사실인데, 본 작품에선 삼국과 고대 일본과의 관계는 물론 당시 한반도를 침공한 왜군의 면면까지도 각본에 비중 있게 포함해 을사의 변, 다이카 개신 등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고대사에 대한 국제적 시야를 넓힘에 하나의 성취를 이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의미 있는 주제 의식
- 그간 제작된 고대사 관련 사극들이 태고의 영광을 재현한다거나, 혹은 그야말로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전기물적인 요소를 극의 주된 테마로 삼음으로써, 재미 면에선 어떨지 몰라도 사극이라는 장르만이 갖는 역사적 교훈성이라거나 시사점 등의 영양가 면에서는 정말 건질게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나마도 딱지만 정통사극으로 달고 있을 뿐, 아예 각색조차도 아닌 완전한 허구에 기반해서 극이 전개되는 경우[20]도 적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별다른 주제가 있나 싶을 정도인 게 태반이었다. 이에 비해 본 작품은 앞서와 달리 상당히 의미 있는 주제들을 보여주었다. 일단 삼국 통일이라는 한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에 대한 화두는 물론이고, 귀문단을 통해서는 골품제 및 양천이라는 계층갈등 속에서의 부조리에 대한 극복 의지를 보여주었으며, 치열한 대당/대일 외교전을 통해서는 국제적 역학관계가 국가에 끼치는 시사점을 제공했다. 게다가 주 무대인 신라에 대해서도 민족 반역자라는 일각의 관점을 배제 없이 하나의 안티테제로 차용하여 삼국 통일의 역사적 의의를 더욱 강화하였다.
- 백제 망국에 대한 상당한 비중
- 이제까지의 삼국통일 관련 사극에서 백제는 황산벌 전투 정도를 빼면 그 몰락 과정이 비루하기 짝이 없게 그려졌고, 의자왕은 그야말로 암군이었으며[21], 특히 백제 정규군 이상으로 나당연합군의 애를 먹였던 치열한 백제 부흥운동은 거진 축약 내지 생략된 바 있었다. 물론 백제와 긴밀한 관련을 맺는 왜 역시도 찬밥 취급되긴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과거 사극들에 비해 본 작품에서의 백제는 그 망국 과정에 상당한 포커스가 배분되었다. 일단 몰락하기 이전부터 신라를 상대로 다양한 첩보전과 외교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의자왕이 비록 말년에 사서처럼 암군이 되긴 하지만 수완가적인 측면이나 성숙한 인품 같은 긍정적인 면모도 자주 보여주었으며 나당연합군에 무릎을 꿇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백제의 왕으로서 정체성을 어필하는 등 이전 사극의 찌질이같은 이미지와는 다른 묘사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앞선 사극들에서 백제 멸망 이후의 전개를 대충 넘어간 것과 달리 줄기차게 이어진 부흥 세력과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상당한 묘사를 할애함으로써, 그간 황산벌 전투 외엔 거의 각인되지 않았던 백제 몰락 과정에 대해 주의를 환기한 것 역시도 특기할 점이다.
3.4.2 한계
- 영웅 사관에 가려진 인물의 입체성
- 근래 고대사 사극의 트렌드에서는 벗어났으나, 주인공들의 풍모가 초인적으로 묘사되어 한 개인으로서의 어둡고 나약한 일면이 가려지는 기존 사극의 경향은 여전히 떨치지 못했다. 즉 기존 사극에서 역시 초인적인 풍모로 등장한 왕건, 허준, 이순신, 세종 같은 소위 '위인'들처럼, 이 사극의 주인공들도 인간적인 결점은 그다지 드러나지 않은 다소 붕 뜬 '위인'적 존재로서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묘사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보는 시각과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삼국통일은 어떤 거창한 대의에 입각하기보다 신라가 생존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김춘추의 백제 정벌은 국가적 대업 성취 외에 그 개인의 복수적 동기가 작용했음도 인정되는 부분이다. 게다가 김유신도 실제 사서상으론 동생을 김춘추와 엮으려 하는 등 나름대로 권력자로서 인간적인 고뇌와 야심이 있었음도 사실이다. 물론 김춘추 내면에 있는 부정적인 일면 역시 또 하나의 자아로서 수시로 등장한 바 있고, 그 말년에는 불의와 타협하며 타락하는 일면도 묘사되면서 인간적인 한계도 드러내지만, 어쨌든 묘사의 무게추가 위인에 가깝게 기운 것도 사실이고 이는 실제로 그가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당대의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과도한 감이 있었다. 이 때문에 드라마적으로도 흥미를 유발하는 역동성이 떨어지고 단조로운 전개가 된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 상상 씬의 빈번한 활용
- 역대 KBS 주말 대하사극은 물론 타 방송사의 사극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꿈이라든가 상상 씬이 많았다. 특히 방송 도중 문제시되었던 연화의 웨딩드레스 신 또한 비록 배우 본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고는 하나 그걸 상상 씬이란 이유로 그냥 덮어갈 수는 없다는 점과 말 그대로 고증파괴, 시공간초월의 사례라서 문제가 되었다.[22] 물론 상상 씬도 잘만 활용하면 배역의 내면을 표현하기에 매우 효과적인 장치이고[23], 주인공 무열왕 역 최수종의 경우에도 1인 2역으로 자신의 페르소나와 다투는 연기가 상상이라곤 해도 초심이 흔들릴 때마다 이를 다잡아주는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긴 했지만, 이런 식의 연출이 필요 이상으로 자주 묘사되는 것은 그만큼 다른 방면에서의 감정 전달이 부족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인트로와 막바지에 묘사된 김춘추와 김유신의 정면대결, 김춘추 사후 즉위한 김법민이 김유신의 하극상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장면 등을 상상 씬으로 처리했다. 이런 잦은 상상 씬은 아시발꿈으로 끝나는 작품들이 그렇듯 시청자들에게 허탈감과 단조로움을 유발하기 쉬우며, 시청률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극의 중요한 부분을 이런 작위적 기법에 의존한 작가적 역량이 아쉽다고 할 수 있다.
- 비중 배분의 문제
- 이제까지 제작된 국내 대하 사극들을 훑어보면 예산 문제라든가 시청률을 의식한 것인지 극의 비율 조정에 있어 밸런스가 맞는다기보다는 언밸런스라는 평가가 오히려 더 많았는데[24], 이런 점에선 본 작품도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70회라는 빡빡한 분량 내에서 긴 연대기와 복잡한 국제 관계에 포커스를 맞추어 핵심적인 내용들을 담아내었다는 것은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극의 전반부 진평왕의 치세는 극의 초반 분량 정도로만 다뤄도 충분함에도 전반부를 통째로 할애하여 지나치게 비중을 늘려 잡았고 설상가상으로 칠숙의 모반 기도를 픽션인 승만의 난으로 확장시켜 6주 이상의 과도한 분량을 할애했다. 또한 이후 본격적인 통일전쟁 과정에서도 대외적인 전쟁보다는 신라 내부의 정쟁과 갈등 묘사를 훨씬 늘려 잡았다. 주류 시청자들이 삼국통일이라는 소재에 기대한 것은 이러한 정치 사극이 아니라 호쾌한 전쟁 사극일 것이었기에, 정치 사극에 가깝게 배분된 비중은 시청자들의 이반을 유발했으며, 특히 조기종영으로 인한 삼국통일전쟁의 대미인 나당전쟁의 축약은 안타까운 부분[25]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비율을 반대로 두어 진평왕 치세를 간략하게 넘어가고 태종 무열왕, 특히 문무왕의 치세를 대폭 늘려 잡았다면 더 밸런스가 적절했으리라는 반응이 많다.
- 조연 캐릭터성의 단순화
- 등장 캐릭터들 중 극에 감칠맛을 전해야 할 조연급의 캐릭터들이 밋밋한 편이었다. 물론 주인공 김춘추를 맡은 최수종의 연기는 호연이었고[26], 김유신 역의 김유석도 초반 청년기의 뻣뻣함을 중년기 이후의 노익장으로 만회하였으며, 비담 역의 최철호라든가 계백 역의 최재성 등의 숙련된 연기력과 개성도 여느 사극의 주연급 이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극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서는 이런 주연들을 받쳐주는 조연들의 적절한 비중과 개성이 요구됨에도 드라마가 삼한일통이라는 무거운 주제로 일관되게 진지함을 추구한 나머지 주연들을 거드는 비중에 그쳤다. 일례로 비담의 난 과정에서 김춘추의 책사 역을 맡는 강수의 경우 등장 씬에서의 강렬한 이미지[27]로 기대를 받았지만 정작 비담의 난 이후로는 김춘추를 거드는 특색 없는 역할에 머물렀다. 김삼광이나 김군관[28] 등도 잦은 등장에 비해 역할 자체는 행동대장 수준이었고, 김인문은 대당 외교 중개역으로서 단편적으로 묘사되었다. 말하자면 개그 하나 없이 시종 진지한 역할이 대부분인데다 그나마도 평면적이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29]
3.5 배우개그적 요소
재미있게도 주요 출연진 상당수가 과거 출연한 작품에서 신라의 적국 소속의 배역을 맡았다. 즉 이전 작품에서는 신라와 대립하던 배역들이 여기서는 반대로 신라 중흥을 위하여 힘을 모으고 있다는 것.
일단 주인공인 김춘추 역의 최수종부터가 태조 왕건에서 신라를 멸망시킨 장본인이며,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김춘추와 마찬가지로 후삼국을 통일하여 삼한 일통을 이뤄낸 인물이라 묘하게 싱크로율이 있다. 게다가 대조영에서는 무열왕과 15년 생몰이 겹치기까지 한다. 이젠 환생이라고 둘러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대체역사가 된다. 더군다나 최수종이 장보고 역을 맡은 해신에서는 후반부에 장보고가 왕위를 넘보는 진골귀족 김양에게 반발하여 난을 일으키려 했으나 이내 장보고가 염장에게 암살당하고 정년, 최무창 등 청해진의 남은 세력들도 김양이 보낸 군사에 의해 전멸하여 결국 무산되었으며, 장보고의 딸이 아닌 김양의 딸이 문성왕과 혼인하는 등 실제 역사 속에서도 장보고는 미천한 출신(다만 해신에서와 달리 천민 출신이 아닌 평민 출신이었음)의 지방호족으로서 진골귀족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배우개그가 성립되었다. 3번에 걸친 신라와의 악연을 대왕의 꿈에서 끊어냈구나. 더더욱 숙흘종 역의 서인석 역시 태조 왕건에선 후백제의 견훤 역을 맡아 신라를 침공해 경애왕을 폐위시키고 경순왕을 옹립했다. 반면 삼국기에서는 김유신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김유신의 후견인이자 외조부 역을 맡은 것. 그리고 이번 김유신 역의 김유석은 계백에서 백제의 마지막 충신 흥수 역을 맡았었다. 심지어 김유신의 아역인 노영학조차 계백에서는 의자왕의 아역이었다(…). 또한 작중 초중반 화랑도의 책임자로 등장했던 호림 역의 이일재는 SBS 연개소문에서 김춘추의 원수인 백제 장군 윤충 역을 맡은 바 있다. 게다가 백제를 멸망시킨후 백제의 백성들을 학살하고 약탈을 일삼으며 승전을 기념하는 잔치에서 의자왕에게 온갖 굴욕을 주는 역할로 나온 소정방을 맡은 정흥채씨가 SBS의 연개소문에서는 의자왕과 백제의 백성들을 위해 충절과 목숨을 바치는 계백역으로 나왔던점이 매우 아이러니하다. 이 정도로까지 배역이 극단적인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또한 견훤 숙흘종 역의 서인석이 날리는 배우개그가 상당한데, 과거 자신이 맡았던 배역의 대사를 적극적으로 패러디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초반에 회상 형식으로 잠깐 지나간 부분(4분 0초)에서 황제는 폐위되었소이다! 드립을 날리며 삿대질까지도 똑같다(…). 항상 '대왕'으로 지칭하는데 여기서만 호칭을 '황제'라고 한 것부터 의도적이라 할 수 있다.[30] 알천을 부를 때는 "이보시오 파진찬!"이란 대사를 치기도 했다(3분 22초). 또한 33회에서는 비담과 알천에게 무릎을 꿇고 비담의 모략으로 옥에 갇힌 외손주 김유신의 구명을 청하며 "우리 유신이를 살려주시게"라고 비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는 근초고왕(드라마)에서 부여구(근초고왕)의 할아버지인 흑강공의 대사와 겹친다. 이제 "으으으 고구려 으으으 연개소문"이러면서 당태종 배역 오마쥬만 하면 되었겠으나 이건 무산됐다
한편 전작인 광개토태왕(드라마)에서 고구려 왕실의 전복을 획책했던 악역인 국상 개연수 역을 맡았던 최동준은 본작에서 연개소문으로 환생복귀함으로써 드디어 수세기만에 꿈☆을 이루게 됐다(사실 그는 무인시대에서도 반역자 조위총 역이었다). 더욱이 서동요에서 그의 배역은 다름아닌 진평왕이었다(…).
더군다나 최수종은 전작 대조영(드라마)에서는 주인공 대조영으로 등장하며 연개소문을 "합하"라고 존칭하는 등 의붓아버지처럼 각별히 따르며 고구려 부흥에 혼신을 바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본작에서 그가 맡은 김춘추는 대조영과 반대로 연개소문과 국운을 다투는 정적이며 극중 최수종의 마지막 미션도 고구려 정복이 된 셈이라서(물론 고구려 멸망을 보진 못한 채 죽지만), 대조영에서의 최수종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실로 묘한 위화감을 일으킨다(…). 한편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 역을 맡았던 임혁과는 초반 나름대로의 정치적 동반자 포지션을 맡다가 극이 진행되면서 이 또한 왕위를 다투는 정적이 되었다. 결국 경쟁에서 패한 알천이 왕위를 양보하여 끝은 훈훈하게 마무리. 대조영에서도 결국 대중상은 왕이 되지 못하고 후견인에 머무르며 아들 대조영이 발해의 첫 왕이 된 것까지 생각한다면...
또 과거 드라마 대조영에서는 최수종(대조영 역)과 그야말로 둘도 없는 절친이라 할 수 있었던 최철호(걸사비우 역)가 본작에선 반역자 비담으로 등장해 김춘추와 철천지 원수지간이 된 것 역시 상당한 개그 포인트. 이 또한 대조영을 기억하는 시청자라면 극과 극의 관계 구도가 위화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극중 김유신의 유언 역시 배우를 맡은 김유석의 이력을 생각하면 이런 요소가 있다. 김유신이 신라가 당군을 저지하려면 "육지에서는 매소성, 바다에서는 기벌포에서 저지해야 한다"고 당부하는데, 이는 김유석이 계백(드라마)에서 흥수 역을 통해 백제가 나당연합군을 저지하려면 "육지에서는 탄현, 바다에서는 기벌포에서 저지해야 한다"고 당부한 성충의 유언을 강조했던 모습과 싱크로가 떨어지기 때문.
하나 더 재미있는 건 문무왕 역의 이종수와 당태종 역의 윤승원은 둘 다 SBS 연개소문에서 김유신 역을 맡았던 배우들이다. 이종수는 청년 김유신, 윤승원은 장년 김유신. 즉 이 사극에는 김유신을 맡았었거나 맡는 배우가 서인석과 김유석까지 합쳐 총 4명인 셈이다. 아역이었던 노영학까지 합치면 5명. 분신술
그리고 작중에서 법민이 비담에게 "비담! 네 어찌 힘없는 아녀자를 폭행했느냐!"라고 다그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비담 역의 최철호가 후배 여배우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던 전력에 비추어 보면 어쩐지 미묘한 부분. 설마 노리고 각본을 썼나?
대조영에서는 이적 장군을 맡았던 선동혁이 본작에서는 그 부관인 유인원을 맡는다는 점도 개그 포인트. 왜냐하면 극중의 이적 장군이 "내가 한때는 선황제를 따라 요동을 공격했다~~"면서 자신의 리즈 시절 활약을 자랑하는데, 다름아닌 그 연기를 맡았던 배우가 본작에서 부관이 되어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4 등장 인물
해당 페이지가 존재하는 인물들은 그 페이지 내에 작성 요망.
4.1 주요 인물들
- 김춘추(태종 무열왕) - 최수종(아역 : 채상우[31])
- 김유신 - 김유석(아역 : 노영학) : 작중 등장인물 중 전회 출연한 유일한 인물.
- 덕만공주(선덕여왕) - 박주미[32], 홍은희[33](아역 : 선주아)
- 승만공주(진덕여왕) - 손여은
- 승만왕후 - 이영아(아역 : 김현수)
- 김법민(문무왕) - 이종수(아역 : 김진성)
4.2 김춘추 가문 사람들
- 김용춘 - 정동환
- 천명공주 - 조경숙
- 보라궁주 - 추소영
- 문명왕후(김문희) - 린아 : 이영아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배역인데 과연 사극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 우려가 있었고, 드라마가 진행됨에 따라 연기 신인인데도 안정감이 있다는 평가와 베테랑보다는 호소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로 나뉘고 있다.
- 보희부인(김보희) - 민지아
- 고타소 - 박그리나[34](아역 : 정다빈)
- 김품석 - 김홍표[35]
- 김인문 - 전광진[36] : 다혈질인 형 법민보다 냉정 침착한 성격. 아버지 김춘추를 따라 외교 활동에 동행하고 있다.
- 자의왕후 - 최규현 : 문무왕의 왕후이자 신문왕의 모후.
- 김정명(신문왕) - 조용진(아역)
4.3 김유신 가문 사람들
- 김서현 - 최일화
- 만명부인 - 김예령
- 재매부인 - 김현숙 :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김유신 집안의 종부. 삼국유사 원전에서 김유신의 '부인'이라는 언급은 없지만 재매부인을 김유신의 부인으로 보는 해석이 있어서 이 해석을 적용해 극중에서 김유신의 부인으로 등장했었다. 다만 극중 비중은 병풍급이었다가 소리 없이 사라진다.
- 지소공주 - 가원 : 김춘추의 딸이자 김유신의 마지막 부인. 김유신의 임종을 지켜보며 흐느끼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 김흠순 - 박재웅
- 김삼광 - 김동윤[37] : 김유신의 장남. 사고뭉치 법민의 뒤치닥거리를 하는 설정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열전에는 지소부인의 소생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재매부인의 소생으로 나온다.
- 반굴 - 김지훈
- 관창[38] - 윤홍빈
- 김원술 - 백승우
4.4 신라 왕실 사람들
- 진평왕 - 김하균
- 사도태후 - 정재순
- 만호태후 - 조양자
- 마야왕후 - 임난형
- 국반 갈문왕 - 홍일권[39] : 진덕여왕의 아버지. 전형적인 광인이지만 간간이 사도태후에 대한 디스라든가 김춘추와의 대화, 숙흘종 및 알천에게 뼈 있는 소리를 던지는 것을 보면, 실은 상식적인 면모도 있으면서 일부러 미친 척 하거나 위악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각혈을 하면서 사망 플래그를 세우다 결국 병사하고 말았다.
- 보량궁주 - 이시원
- 보로전군 - 장민교
- 연화 - 홍수아(아역 : 강예서) : 진평왕과 승만왕후의 딸. 아들을 원했던 승만왕후의 모략으로 버려지고 귀문의 시노 슬하에서 자랐다. 결국 승만왕후가 쫓겨날 때 친모와 해후를 가졌고 장성해서 비담의 총애를 받는 기녀로 있으면서 비담에 대한 복수를 노리고 있으며 김유신도 '비형랑을 죽인 원수'라고 여기고 있다. 법민과 플래그가 세워진 상태. 하지만 비담과 김춘추 진영 사이를 오가며 암약하다가 비담이 죽고 나서
커플 브레이커 유동윤 작가의 작품인 만큼음독자살. 한편 마지막 등장이었던 49화에서 법민과 상상 속의 혼례식을 올리는 장면에서 화려한 퓨전한복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바람에 고증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홍수아 측은 마지막 촬영이었기 때문에 의상을 별도로 준비한 것이었다고 해명하면서 '상상씬이었기 때문에 감독도 수락하고 촬영했는데 논란이 생길 줄은 몰랐다'고 했으나,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아무리 상상이라지만 퓨전사극도 아닌데 고증파괴라는 등 부정적 반응이 높았다. # 하지만 시각을 달리 보면 주몽과 태왕사신기, 전작인 광개토태왕을 위시한 대다수 사극들의 갑옷 고증 파괴에는 한없이 너그럽다[40]가, 상상씬에 등장한 드레스를 가지고 기사의 베스트댓글을 위시한 배우와 해당 의상을 제작한 한복 업체에 대한 도를 넘은 과도한 비난이 쏟아지는 등, 비판하는 시청자 본인들의 눈에 유독 띄는 특정 부분에 이중잣대를 적용한 것도 사실이다.
'갑옷이야 완벽하지 않아도 그 시대의 물건으로 볼 수 있지만 드레스는 누구나 현대의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 그렇기에 드레스는 절대 넘어갈 수 없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상술한 세 드라마에서 나온 갑옷은 현존하는 어떤 유물이나 벽화자료에서조차 등장하지 않은 명백한 판타지라는 점에서 드레스와 하등 다를 게 없다. 한국 갑옷 문서에 주몽이나 광개토태왕에 나온 것과 같은 갑옷이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 빠를 것이다. 근초고왕과 대왕의 꿈이 호평받은 것도 비록 완벽하지는 않아도 고증을 재현하려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거꾸로 광개토태왕 같은 드라마에서 나온 갑옷은 상상씬이 아닌 실제로 등장인물들이 입고 다닌다. 결국 고증된 자료라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문제의 갑옷은 명백한 역사왜곡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갑옷은 사람들이 잘 모르니 고증을 무시해도 되고 대중들이 잘 아는 드레스는 문제라며 비난하는 것 역시 올바른 태도라고 할 수 없다.[41] 그렇기에 이런 반론 역시 여전히 드레스에만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논리이다.
4.5 신라 주요 인물들
- 알천 - 임혁
- 을제 - 이우석
- 숙흘종 -
견훤서인석 - 임종 - 양재성
- 호림 - 이일재
- 염장 - 배도환(아역 : 김기두)
- 김후직 - 박칠용
- 만춘 - 백재진[42] : 숙흘종의 충복. 의도적으로 국어책 읽기를 연기의 영역으로 승화시키려는 것인지, 대사에 성조가 없다! 이런 톤의 연기가
띠꺼워서악역으로서 캐릭터성을 어필하기 좋다는 점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7회에서는 일개 화랑에 불과한 김유신에게 경어를 썼는데, 엄연한 장군직임에도 일개 화랑에게 경어를 쓴 것을 보면 김유신의 외조부이자 자신의 주인인 상대등을 의식해서거나 혹은 자신의 신분이 6두품 이하이기 때문이기 때문인 듯 하다. - 검군 - 김혁
- 칠숙 - 이철민
- 석품 - 염철호
- 원광 - 이대로
- 찬덕 - 최범호 : 가잠성 성주. 백제군과 끝까지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나무에 머리를 부딪혀서 자결하는데, 이건 찬덕이 느티나무에 머리를 부딪혀 자결했다는 삼국사기 열전의 기록을 반영한 것이다. 삼국사기 해론 열전은 찬덕과 그의 아들 해론의 합전이다.
- 비담 - 최철호[43]
- 금강 - 김명국[44]
- 검일 - 이병욱[45]
- 천광 - 유민호 : 실제 역사에서는 고구려 정벌까지 참전했고 문무왕 때는 고위 관직까지 올라서 문무왕 때의 주축으로 활약하는 인물인데 여기서는 백제와의 싸움에서 전사한다.
- 염종 - 강지후
- 사진 - 이원석 : 자신의 이익에 따라 비담과 김춘추 사이에서 편을 바꿔 붙는 기회주의적인 인물. 결국 간계를 꾸미다 김유신에게 최후를 맞는다.
- 강수 - 김태형
- 김품일- 이원발
- 예원 - 최왕순
- 양도 - 이명호
- 군관 - 정욱
- 동타천 - 김형일 : 당나라 중급 장수에게 당하는 등 취급이 의외로 안습한 인물(...)
- 김진주 - 최규환 : 신라 내부에서의 마지막 악역. 병부령에 오른 뒤 김유신을 정적으로 여겨 내심 해할 뜻을 먹지만 결국은 모든 계획이 실패하고 김유신에게 최후를 맞는다.
- 김진흠 - 정동규
4.6 귀문단
- 비형랑 - 장동직
- 난승 - 김경룡 :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서는 김유신의 스승이지만 김유신의 스승 역을 비형랑이 가져가 버려서 김유신의 부하처럼 활약했다. 당에 다녀오는 김춘추를 대신해 사망하는 온군해의 역할을 대신하여 죽었다.
- 길달 - 이정용 : 초반의 핵심 악역으로서 엄청난 액션들을 도맡아 소화하는데, 놀랍게도 대부분 스턴트 없는 본인 연기(!)라고 한다.
- 온군해 - 노영주(아역)
- 천관녀 - 이세영
- 시노 - 김진이[46]
- 차비 - 이아이
- 모척 - 장준녕
- 호랑 - 마야(가수)
- 묘랑 - 김현정
4.7 고구려 주요 인물들
4.8 백제 주요 인물들
- 무왕 - 박철호
- 의자왕 - 이진우
- 부여융 - 공정환
- 부여효 - 김민기
- 부여태 - 허정민
- 부여풍 - 장태성
- 계루 - 차기환 :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는 이름을 찾을 수 없는 가공 인물이다. 그러나 신라에 사신으로 왔다가 비담의 손에 사망.
- 윤충 - 최우준 : 대야성을 함락시키는 등 백제의 주력 장수로 활약하다가 김유신의 대야성 탈환전에서 전사한다.
- 성충 - 김원배
- 의직 - 최동엽 : 백제가 멸망하는 660년까지 생존했던 게 확인되는 인물인데 극중에서는 김유신의 대야성 탈환전에서 전사한다.
- 계백 - 최재성[48]
혹자는 강조의 재림이라 하더라 - 계백의 아내 - 조은숙
- 화시 - 홍인영[49]
- 흥수 - 임병기
- 상영 - 원석연
- 충상 - 김용헌
- 도충 - 김철기
- 도침 - 정승우
- 복신 - 김영기
- 충승 - 조태봉
4.9 당나라 측 인물들
- 당태종 - 윤승원 [50]
- 당고종 - 서동수
- 소정방 - 정흥채 [51]
- 이적 - 한태일
- 유인궤 - 김영선
- 유인원 - 선동혁
- 왕문도 - 황천우
- 동보량 - 방형주
- 손인사 - 최낙희
- 설인귀 - 성민수
4.10 일본 측 인물들
- 사이메이 덴노 - 김민경
- 고토쿠 덴노 - 김진국
- 텐지 덴노(나카노오에 왕자) - 안홍진
- 소가노 이루카 - 정진각[52][53]
- 나카토미노 가마타리(후지와라노 가마타리) - 노승진[54]
- ↑ 종영 이후 하반기 동안에는 다큐멘터리, 파일럿 프로그램 등을 대체 방영했다가 2014년 1월에 방영 시작.
- ↑ 당초엔 신문왕 치세까지도 조명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 ↑ 삼국시대 배경의 게임 천년의 신화에서도 신라편 주인공은 무열왕이었다.
- ↑ 그리고 박주미가 부상으로 하차하면서 박주미보다도 8살이 더 젊은 홍은희가 선덕여왕이 되었다. 당초 논란이 일었던 박솔미보다도 2살 더 젊다(…).
- ↑ 소정방이 하루 늦었다는 이유로 독군 김문영을 참수시키려 하자, 김유신이 군문에 서서 도끼를 부여잡고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백제보다 너희 당나라부터 치겠다!"고 일갈했다. 드라마에서는 이 도끼로 책임자인 자신의 아들을 손수 처형하겠다면서 대신 당군도 상응하는 책임을 치르게 하겠다고 으름장 놓는 것으로 쌈박하게 묘사됐다.
- ↑ 일부 의견은 일리가 있는데, 그야말로 폭풍간지 그 자체였던 선덕여왕의 미실 캐릭터에 반해 승만왕후 캐릭터가 사람들에게 현재 크게 어필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악역인지라 식상하다는 반응도 나타났다.
- ↑ 이 사고로 최수종이 탄 말은 죽었다.
- ↑ 게다가 사고 직후에도 자신이 주연한 영화(철가방 우수氏) 홍보 병행이라는 강행군까지 펼쳤다. 물론 이 때는 부상으로 잠시 쉬는 기간이긴 했지만.
- ↑ 이 배역은 가수로 활약중인 마야가 연기한다. 그나마 리타이어 할 때에는 궁녀로 변장한 상태에서 다소곳하게(...) 죽었다.
- ↑ 동국통감 등에서는 풍월주를 화랑의 전신으로 보고 있으며 화랑의 리더로 보는 것은 화랑세기 뿐인데, 다른 호칭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정사에 있는 국선이나 화주(삼국유사) 등의 호칭을 쓰는게 더 낫지 않은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 ↑ 일단 정사인 삼국사기에는 덕만이 장녀라고 되어 있다.
- ↑ 기록상으로는 단 한줄, 음(飮)갈문왕이라고 언급되는데 학계에서는 반(飯)을 오기한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에 따라 드라마에서는 국반(國飯)을 음갈문왕으로 상정했다.
- ↑ 선덕여왕 재위 시절 당태종이 모란 그림을 보내어 여왕의 배필 없음을 조롱했던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다.
- ↑ 진평왕의 아버지인 동륜태자가 죽자 숙흘종에게 재가한 것으로 나온다.
- ↑ 실제로는 만장일치가 아닐 시 그 안건은 바로 부결처리되었다.
- ↑ 기록상으로 김품석은 검일의 아내를 빼앗는 등 고타소의 속을 썩이다가 백제 윤충의 항복하면 생명은 보장한다는 사탕발림에 성 밖으로 나가 잡혀 죽었다.
- ↑ 진지왕의 사생아.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선덕여왕(드라마)에 등장하는 비담의 진짜 모델은 실존했던 상대등 비담이 아니라 이 사람이다.
- ↑ 둘 다 바로 전의 키스 할 때와 의상이 달라져 있다.
- ↑ 최근 퓨전 사극에서 자주 우려먹는 패턴으로 주몽의 다물군, 선덕여왕의 복야회, 계백의 위제단, 대왕 세종의 고려 부흥 결사, 뿌리깊은 나무의 밀본 등이 이에 속하며 본 드라마에서는 귀문이 비슷한 역할을 담당한다. 물론 등장 3회만에 간부들을 제외한 조직원 전멸(…) 크리로 명맥만 겨우 건졌지만 하여간 이런 기믹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 ↑ 특히 대조영부터 광개토태왕까지 일련의 KBS 대하사극들은 이런 경향이 매우 강했다.
- ↑ 사실 이건 다수의 사서에서도 견지하는 시각이지기도 하다.
- ↑ 이 경우는 배우 본인이 사극에 출연하는 것을 망각했다고 볼 수 있다.
- ↑ 실제로 연극 같은 경우는 내면과의 대화를 통한 독백 등 이런 식의 연출이 굉장히 빈번하다. 한정된 공간과 시간을 두고 최대한 많은 감정을 담아내는데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
- ↑ 사실 용의 눈물,무인시대,정도전(드라마)처럼 비율 조정에 성공하여 주연들의 일대기를 제대로 조명한 케이스가 오히려 희귀한 케이스다.
- ↑ 심지어 한반도에서 당군을 몰아내는 최종 전투에 해당하는 매소성 전투, 기벌포 전투가 생략되었다.
- ↑ 초중반까지의 캐릭터성은 올곧은 이미지 위주였지만,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내면의 야심에 흔들리며 번민하는 모습도 보였고, 막판에는 상당히 현실주의적인 측면도 부각되었다.
- ↑ 민담을 받아들여 머리에 뿔 분장을 하고 나온다.
- ↑ 이름이 김군관이다. 진지왕의 외손자로 김진주 이후 병부령으로 승진.
- ↑ 이는 개그 캐릭터들의 맹활약으로 극의 흥을 돋웠던 대조영에 비해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대조영의 경우는 이런 요소가 좀 지나쳐서 진중함을 깨는 바람에 심한 허구성과 맞물려 퓨전사극 아니냔 비아냥까지 듣기도 했지만...
지나침은 모자람만도 못한 법이니 - ↑ 반면 시대적 배경이 겹치는 선덕여왕(드라마)에서는 진흥왕이 진흥대제로 불리고 진지왕이 진지제로 불리는 등 신라 왕이 아예 대놓고 황제 칭호를 쓰기 때문에
그럼 왜 덕만 본인은 선덕여제가 아닌 선덕여왕이지?선덕여왕 한정으로는 해당 배우개그의 고의성이 떨어진다. 즉 "황제는 폐위되었소이다!"라는 대사 자체가 MBC 사극 선덕여왕 세계관의 신라인들에겐 단순히 진지왕의 폐위를 선언하는 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셈이다.따지고 보면 태조 왕건과 해신에서도 신라 왕이 황제 칭호를 썼지만 그 두 사극은 훨씬 이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했으니... - ↑ 인수대비(드라마)에서 단종 역으로 인상적인 열연을 펼쳤다.
- ↑ 극 초중반을 맡았으며 원래 여왕의 최후까지 연기하기로 했었지만 이후 갑작스럽게 일어난 교통사고로 인한 큰 부상으로 부득이하게 하차했다.
- ↑ 극 중반부터 박주미 대신 투입되었다. 박주미와 홍은희 둘 다 KBS 오전 프로그램인 여유만만의 진행을 맡은 바 있으며 그것도 박주미가 하차한 후에 홍은희가 후임으로 진행을 맡았다는 걸 감안하면 정말 미묘한 배우교체다.
설마 노린 거 아냐? - ↑ 근초고왕(드라마)에서 부여화의 시녀인 단단이 역을 맡았던 배우다.
- ↑ 전설의 고향 단골 주연으로 유명한 배우. 본작에서는 신라의 장수지만 연개소문(드라마)에서는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건 역을 맡았다. 그 외에도 사극 경력이 있어서 무인시대에서는 이의민의 불행한 장남 이지순,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조수창 역을 맡았다.
- ↑ 역시 근초고왕에서 부여구의 사위이자 부여진의 남편인 사기 역을 맡았던 배우다.
- ↑ 회상신에서 김서현의 아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 ↑ 김품일의 아들이라 혈통은 다르지만 김유신의 양자로 들어갔으므로 이쪽에 넣는다.
- ↑ 무인시대에서 최충헌의 심복 김약진, 공주의 남자에서는 금성대군역으로 호연을 펼쳤다.
- ↑ 광개토태왕이 갑옷 고증으로 많은 비판을 받은 것이 사실이나 대개 사극 매니아나 고증에 관심이 있는 일부 시청자 위주로 이루어졌을 뿐, 이 드레스 논란과는 달리 각종 기사가 쏟아지는 식으로 크게 공론화되지도 않았다.
- ↑ 만약 잘 모르니 고증을 무시해도 된다면 근초고왕이나 대왕의 꿈 같이 제작진의 노력으로 우수한 고증을 이룬 드라마는 도태되고, 주몽이나 광개토태왕같이 고증을 무시한 드라마는 범람할 것이다.
- ↑ 각시탈에서 봉실장 역을 맡았다.
- ↑ 처음 맡을 예정이던 의자왕 역을 고사하더니만 결국 이 역을 맡게 됐다(…).
- ↑ 무인시대에서 이의방의 의형제 채원 역,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송희립 역, 천추태후(드라마)에서는 야율적렬 역, 무신(드라마)에서는 쿠빌라이 칸 역을 맡았다.
- ↑ 무인시대에서 박진재, 근초고왕에서 부여휘 역을 맡았다. 형인 부여찬과 나란히 출연. 워낙 KBS 사극에 단골 등장이라 위화감은 없다.
- ↑ EBS의 어린이 드라마-청소년 드라마 출신으로 <언제나 푸른 마음>부터 <감성시대>-<내일>-<네 꿈을 펼쳐라>까지 주연으로 출연했고, 후속 드라마인 <학교이야기>에서 알바 뛰듯 간간히 나왔으며, 심지어 박보영과 이민호가 출연한 <비밀의 교정>에서는 교생선생님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흠좀무. 현재는 주로 연극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 ↑ 근초고왕(드라마)에서 부여준의 장남이자 부여화의 큰 오빠인 부여민 역을 맡았던 배우다.
- ↑ 최철호와 마찬가지로 처음 맡을 예정이던 김유신 역 대신 결국 이 역을 맡게 됐다(…).
- ↑ 이미지가 낯설지도 모르지만 바로 그 유명한 '공대 아름이' CF의 주인공이다!
- ↑ 전작 광개토태왕(드라마)에서 가공인물인 하무지를 담당. 전작에서 그렇게 중원에 가고 싶어 하더니 이젠 아예 황제가 되었다(...)
- ↑ 대표작인 임꺽정 역으로 유명. 근초고왕(드라마)에서 단범회의 일원이자 치희의 오빠인 두고 역을 맡았던 배우다.
- ↑ 무인시대 1화에서 이소응의 뺨을 후려쳤다가 광속 퇴장당한 한뢰 역을 맡았던 배우다. 이번 작품에서도 출연 1화만에 역사대로 나카노오에 왕자에게 끔살. 안습.
- ↑ 실제 역사상 소가노 이루카가 권력을 휘두르며 깽판을 친 건 맞지만 그의 아버지이자 소가 가문의 가주인 소가노 에미시가 버티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즉, 진짜 실세는 이루카가 아니라 막후에 있던 에미시라고 봐야 하며, 실제로 이루카가 암살당하기 직전까지 에미시는 멀쩡하게 살아 있다가 이루카가 제거된 사실을 접한 후에야 자살한다. 다만 에미시가 아니라 이루카가 나카노오에 왕자의 최우선 제거 대상이 된 건 이루카가 워낙 호족들의 어그로를 끈 탓.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방송분량 상 크게 다루지 않고 넘어간 걸로 보인다.
- ↑ 추노에서 끝에 궁궐에 들어간 업복이와 눈을 마주친 동료 노비인 반짝이 아버지 역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