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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의 국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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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 | 이집트 | 일본 | 우루과이 | 우크라이나 |
비상임이사국 (2017년 ~ 2018년) | ||||
에티오피아 | 카자흐스탄 | 볼리비아 | 이탈리아 | 스웨덴 |
수도 쿠알라룸푸르(KL)의 야경.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유명하다.
국기 | [3] |
공식명칭 | 말레이시아 (Malaysia) |
면적 | 329,847㎢ |
인구 | 30,513,848명 (2015년 통계) |
민족구성 | 67% 말레이족 24.6% 화교계 화족 7.3% 인도계 인족 |
수도 | 쿠알라룸푸르 (행정수도 푸트라자야) |
GDP(명목) | 3,756억 달러 (2015년) |
1인당 GDP(명목) | 12,127 달러 (2015년) |
GDP(PPP) | 8,001억 달러 (2015년) |
1인당 GDP(PPP) | 25,833 달러 (2015년) |
정치체제 | 연방제, 입헌군주제, 일당제, 양원제, 의원내각제 |
국왕 | 압둘 할림 (Abdul Halim) |
재위 | 1970년 9월 21일 ~ 1975년 9월 20일 1975년 9월 20일 ~ 2011년 12월 13일 2011년 12월 13일 ~ 2016년 12월 13일 (예정) |
총리 | 나집 라작 (Najib Razak) |
임기 | 2009년 4월 3일 ~ 2013년 4월 3일 2013년 4월 3일 ~ 2013년 5월 6일 2013년 5월 6일 ~ 2018년 4월 3일 (예정) |
부총리 | 아흐마드 자히드 하미디 (Ahmad Zahid Hamidi) |
공용어 | 말레이어 (공용어), 영어 (국가어)[4] |
국교 | 이슬람 |
종교분포 | 이슬람 61.3%, 불교 19.8%, 기독교 9.2%, 힌두교 6.3% 등 (2010년) |
화폐단위 | 링깃 |
대한수교현황 | 남북한 동시수교 (남한 1960, 북한 1973) |
1 개요
Malaysia Travel Video Guide |
말라야 반도와 보르네오섬 북부에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 수도는 쿠알라룸푸르. 행정중심도시는 푸트라자야. 사실 쿠알라룸푸르와 푸트라자야는 매우 가깝기 때문에 동일 생활권이다. 이웃나라는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브루나이.
연방 국가, 줄여서 마련(馬聯)[5] 또는 이말련(末聯)이라고도 한다. 말련으로도 이 문서로 들어올 수 있으며 조선일보에서는 "말" 글자에는 한자를 붙이지 않은 말聯이라는 표기를 사용한다.
정식 수도는 쿠알라룸푸르이며, 행정수도는 푸트라자야이다.[6] 푸트라자야는 헌법상 정식 수도는 아니고, 우리나라의 세종특별자치시처럼 정부 청사가 소재한 행정 도시이다.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쿠알라룸푸르와 푸트라자야는 1개 주와 같은 위상을 가진 직할시이다. 도시의 위상은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비유할 만한 도시는 세종시 개발 이전의 과천시라고 보면 된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약 25km 떨어져 있는데, 한국에서도 이 정도 거리는 서로 인접한 시군의 중심지 거리 정도이고, 또 말레이시아 면적이 남한의 3배가 넘고 그것도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두 부분으로 분할되어 있다 보니 25km면 그냥 붙어있는 거나 다름없다.
2 역사
동남아시아의 역사 | ||
미얀마 | 라오스 | 베트남 |
말레이시아 | 태국 | 캄보디아 |
브루나이 | 필리핀 | |
싱가포르 | 인도네시아 | 동티모르 |
2.1 고대
최초로 말레이시아에 인간이 거주한 건 약 4만 년 전으로, 이들은 오랑아슬리라고 불리며 인구의 11%를 차지한다. 말레이인들은 이들을 야만인이나 짐승 취급했으며 노예가 되거나 살해당하기도 하였다. 지금 말레이시아의 인구의 54%를 차지하는 말레이 계열의 사람들은 20,000년 전부터 말라야 반도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말레이시아에는 이 말레이 계열도 여러 족으로 나뉘지만, 보통 부미푸트라로 통칭되어서 하나의 말레이계로 본다.
기원후에는 여러 왕국이 이 지역에 존재했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남긴 기록으로 존재 여부와 위치가 확인되는 국가들은 '랑아수', '적토국', '단단' 등으로서, 각각 파타니, 끌란딴, 뜨렝가누 등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Andaua 2001: 22). 이 국가들은 대략 6세기부터 중국 사서에 나타나는데, 중국 남조 국가들이 남방과의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덕분이라고 여겨진다. 7세기 이후에는 스리비자야라는 말레이계 해상왕국이 지금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반도에서 번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국가들이 고대 국가의 체제를 갖추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현 말레이시아 사회와의 연계성을 증명하기에도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역사에 있어 가장 핵심인 '사람' 과 '사람의 활동' 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결국 말레이시아의 역사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1400년대 초반으로서, 말라카 왕국의 건설과 함께였다.[7]
2.2 말라카 왕국
말라카 왕국의 건국자는 통상 '팔렘방의 한 왕자인 파리메스와라'였다고는 하는데, 스리비자야 왕실 가계의 왕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일반적인 설명은 팔렘방이 자와의 공격을 받고 패하자, 그가 추종자를 거느리고 탈출하여 말레이 반도 방면으로 정착하였다는 것이다. 처음 정착한 곳은 말레이 반도 남단에 있는 떼마섹 섬이었는데, 파리메스와라는 이 곳을 '사자의 도시' 라는 의미로 '싱아푸라' 라고 불렀으니, 바로 오늘날의 싱가포르이다. 이곳에서 다시 믈라카(Melaka)로 옮긴 것이 1402년의 일이다.[8]
말라카 왕국은 해상 국가이자 무역의 중심지로 크게 번성했는데, 그 성공 이유는 대강 이 정도로 요약된다고 한다. 먼저, 말라카의 지배자들은 국제 상인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주력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말라카 해협은 해적들이 들끓던 곳이었다. 말라카는 이런 해적들을 상대로 상인들을 보호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또한 교역 시설을 확충하여 화재 및 도난 방지를 위해 지하 창고까지 지었다고 한다. 이렇게 무역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법과 행정이 매우 정교하게 짜여져 있어 상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덕분에 말라카 왕국은 100년 넘게 흥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1511년 향료를 찾아나선 포르투갈인들이 향료를 독점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곳으로서 말라카를 공격, 치열하게 맞서 싸웠으나 결국 멸망당한다. 그 이후로는 네덜란드를 포함한 여러 유럽 세력에 의해 지배를 당하다 결국 영국의 영향권으로 완전히 편입되었다.
2.3 영국의 지배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나자 영국의 동남아시아 진출은 급진전했다. 네덜란드가 나폴레옹의 공격을 받아 정복당하고, 왕은 영국으로 망명해 아시아 지역에서의 네덜란드 지배권을 모두 영국에게 위임했다(1795). 그러자 영국은 더욱 대담하게 동남아시아 식민지 경영에 착수하여 페낭에 영국 상관을 설치하고, 말라카 및 바타비아를 접수했으며, 향료 제도에 이르기까지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영국은 페낭을 얻었고, 이 곳을 시작으로 해서 1819년에 싱가포르를 건설하기까지 말레이 반도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증대해 갔다. 1824년에는 네덜란드와 맺은 조약(런던 협약)에 의해 수마트라, 자와(한국에 익히 알려진 자바(Java)는 영문명) 등 현재의 인도네시아 지역은 네덜란드가, 말레이 반도 지역은 영국이 관할하기로 결정되었다. 결국 페낭, 말라카, 싱가포르를 한데 묶어 '해협 식민지(Straits Settlements)'를 만들기에 이른다(1826). 하지만 이 때까지의 영국의 관심은 무역로 장악이었을 뿐이고, 특히 중요한 것은 '중국으로의 길' 이었다. 해로상의 거점을 장악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당시까지는 말레이 반도에서 수익성 높은 자원이 생산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19세기부터 영국은 말레이 반도 그 자체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주석이 있었는데, 주석을 이용한 함석 제조 기술이 발전하고 수요가 증대함으로써 말레이 반도의 주석 광산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던 것이다.
주석 광산의 운영에는 세 집단이 관련되어 있었다. 첫째는 주석 광산을 보유한 술탄이었고, 둘째는 그것을 운영하는 영국의 자본가들이었으며, 셋째는 바로 주석 광산에서 일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이었다. 이렇게 말레이 반도로 건너온 중국인들이 뛰어난 교육열과 부지런함으로 영국령 말레이시아의 중간 공무원들이 되기도 하고 말레이시아의 경제권을 장악하기도 하면서 소외된 말레이계 사람들과 점점 반목하게 된다. 당시 영국인들은 말레이계열은 착하고 성실하지만 단순하고 게으르고, 중국인들은 능력있지만 영악하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편향적인 말레이계-중국계 고정관념은 동남아에선 아직도 통한다. 심지어 멀리 떨어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통한다. 영국인 지주들은 말레이계 사람들을 하인으로 삼아 집안일을 시켰고 중국계를 부두나 시장에서 일하게 했는데, 이 때문에 아직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구 통계 작성시에 '기타' 항목이 아닌 별도 항목으로 작성될 정도로 숫자가 많다.
2.4 독립
이렇게 영국의 술탄들을 통한 사바사바하게 간접적인 통치는 계속되는데, 일본이 태평양 전쟁이라는 병크를 터트리게 된다. 이 때 말라야를 점령한 일본은 중국계를 때려잡는 삽질을 하면서 결국 패배하고서 항복한다. 이후에 돌아온 영국은 말레이시아에 자치를, 그리고 1957년에 결국 독립을 허용한다.
영국은 말라야의 여러 술탄국들이 한나라가 되어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가 같이 말라야인으로서 살게 된다는 이상을 가지고 독립을 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말레이인들은 불만을 품었다. 굴러들어온 돌이나 다름없는 화교계가 말레이시아의 경제를 점령하게 되니 말레이인들은 당연히 참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영국, 말레이계, 중국계 지도자들의 합심으로 독립은 해냈다. 말레이계가 군인과 경찰, 공무원 쪽을 차지하게 되고, 공용어는 말레이어로, 교육과 경제정책은 말레이 계열을 우대하는 한편으로, 중국계나 인도계도 말라야 국민으로서 그대로 말라야에서 살 수 있었다. 거기에 경제적 기득권도 빼앗지 않고 계속 인정해 준다는 것이 요지이다.
2.5 싱가포르 축출
싱가포르와 보르네오 섬의 사라왁, 사바 지역은 영국에서 독립한 후 말라야 가입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싱가포르가 특히 문제였는데,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가 다수이지만 싱가포르만은 중국계 화교가 압도적 다수였던 것이다. 거기다가 싱가포르는 식민지 시절부터 말레이 반도의 압도적인 경제 중심지. 말라야는 중국인이 다수인 싱가포르 사람들이 들어와서 경제를 휘어잡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 잠시 합쳤다. 말라야에 싱가포르, 사라왁, 사바가 편입, 나라가 확대, 개편되면서 말레이시아(Malaysia)라는 국명이 이 때 생겼다. 말라야 연방(Malay)+섬을 나타내는 접미어 -(ne)sia. 이 때가 1963년.
당시 싱가포르 주의 총리였던 리콴유는 '말레이시아인들의 말레이시아'(Malaysian Malaysia)를 주창했다. 인종에 상관 없이 '말레이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모든 말레이시아인에게는 똑같은 권리와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말레이계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이었다. 경제나 학업면에서 말레이계가 너무 뒤쳐져 있으니 이대로 똑같이 평등하다면 말레이계는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되었던 것이다. 물론 리콴유-싱가포르-중국계의 주장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어쨌든 국가적인 중국계 차별은 중국계에겐 억울한데다가, 중국계라고는 해도 몇 대째 말레이시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치열한 국가관의 차이는 신생 독립국의 존립을 흔드는 위험한 문제였다. 결국 1965년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 주를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쫓아내기로 한다. 그리고 싱가포르 주의 총리 리콴유는 울면서 독립을 선언했다. [9][10]
"저에겐, 싱가포르의 독립은 아픔의 순간입니다. 저는 말레이와 싱가포르가 통합되어 말레이시아라는 한 나라가 될 거라고 평생을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2.6 현대
장기집권한 마하티르 총리와 말레이계 최대정당 UMNO는 굴러들어온 중국계(인구 25%), 인도계(10%)에게 시민권을 준 대신, 말레이계에게는 도움이 많이 되고, 중국계와 인도계는 차별로 느낄 만한 강력한 정책을 시작하였다. 1969년 당시 말레이계의 인구는 60%였지만 경제에서 말레이계가 가지고 있는 지분은 4%일 정도로 취약했기 때문. 덕분에 1969년 총선에서 중국계 정당이 약진했을 때 말레이계는 분노와 두려움에 폭동을 일으켜 중국계의 상점과 집을 불태우고, 수백 명을 능욕 살해했다.
우선 교육이 문제인데, 워낙 교육열이 높은 중국계가 계속해서 사회 엘리트 지위를 점했기 때문에 말레이계의 교육수준을 높임과 동시에 중국계 학생을 엿먹일 불리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대학입학시험은 말레이어로만 보게 하거나, 가장 인기가 많은 공립대학에서 학생들을 뽑을 때 말레이계는 60%, 중국계는 30%, 인도계는 10% 이런 식으로 비율을 정해 말레이계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줬다. 심지어는 대학 강의조차도 대부분이 말레이어다. 요즘은 이런 낯간지러운 배당은 폐지했지만, 말레이시아에서 공립대학 들어갈 때의 여러 방법 중 가장 쉬운 matriculation 를 뽑을 때 말레이 계열을 90% 뽑게 해놔서 눈가리고 아웅이다. 대학입학시험 때도 알음알음 말레이 계열에게 더 점수를 준다고도 하고... 위키나 인터넷에서 돌아다녀보면 입시제도에 대한 불만으로 사자후로 토하는 중국계 학생들의 좌절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모국을 등지고 근처 싱가포르로 떠나는 중국계 젊은이들도 꽤 된다고 한다.
다만 화교들은 돈이 잘 벌리거나 사회에서 실력으로만 판가름나는 학문으로 다 돌아서서 의대생들이나 상공업 관련 학과를 보면 말레이 학생들은 적고 죄다 화교 학생들 뿐이다. 게다가 아무리 성적을 나쁘게 줘봤자 사회에 나와서 본격적으로 일을 하면 그냥 공부 열심히 한 말레이계 학생들보다는 지옥을 뚫고 올라온 화교계 학생들이 대체로 실력이 좋다고 한다. 현지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들의 대체적인 평가는 말레이계나 중국계(화교계), 타밀계(인도계) 모두 거기서 거기라는 평가가 주된 평가라고 한다.
경제 쪽에서도 신경제정책을 세우면서 말레이계 중산층을 밀어주는 모습을 보인다. 차나 집을 살 때 말레이계는 10% 더 싸게 살 수 있었고, 정부가 자동차 회사 프로톤이나 페트로나스 같은 석유대기업을 만들면서 말레이인들이 취직하기 훨 유리하도록 하였다. 공무원 뽑을 때도 마찬가지며, 기업을 설립할 때 말레이인의 지분이 30% 이상이어야 한다는 법 등도 마찬가지. 산업면에서도 농업에서 프로톤 등을 중심으로 한 자동차, 석유, 광물 공업 등 중공업으로의 전환을 꾀했다. 일본의 자본과 기술투자를 받은 가전제품, 반도체 제조업도 성공적이었다.
말레이시아의 정책은 성공했다. 독립 당시 대부분의 말레이인들은 가난한 농부였지만, 지금은 말레이계 중산층이 튼튼해졌고, 빈곤율도 60%에서 10%으로 낮아졌다. 구매력 환산 GDP는 2012년 현재는 $16,942(명목GDP는 2012년 기준 $10,578). 동남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와 브루나이를 제외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튼튼한 중산층에, 시골에서도 우리나라 시골의 90년대 수준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프로톤이나 페트로나스같은 잘나가는 대기업에, 쿠알라룸푸르나 페낭 같은 매력적인 도시도 생겨났다. 이런저런 안전장치의 품질이 문제가 많고 세계 시장에서 견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현지 기준으로 쓸만한 차를 만드는 프로듀아(Perodua), 프로톤같은 말레이시아 자동차 기업도 있다.
좀 가혹한 중국인 차별정책도 결과적으로 보면 나름대로 성공이었다는 평이다.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역설적으로 말레이시아에 인도네시아 같은 반화교 폭동도 없고, 여전히 잘 나가는 경제를 생각해보면 말레이 특혜정책은 올바른 정책이었다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물론 중국계와 인도계는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중국계와 인도계를 끝까지 2등급 시민으로 취급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말레이 계열의 지도자들도 조급한 마음을 내비추고는 한다. 말레이계 특혜 정책을 강력 추진하던 마하티르 전 총리도 요즘은 말레이 학생에게 쉽게 대학가서 이슬람법 따위 공부하지 말고, 제발 공학공부 같이 어려워도 쓸모 있는 거 공부하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현 총리인 라작은 Satu Malaysia, 한국어로 하나된 말레이시아라는 모토하에 말레이계 특혜를 줄여나가려는 모양이다. 위에 언급한 대로 화교들은 공학쪽이나 의학쪽으로 진출을 많이 해뒀으며, 이것은 말 그대로 실력만 믿고 가는 학문이기 때문에 정부에서조차 손 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다, 학점받기 쉬운 이슬람 법이나 이슬람 문화를 공부하는 말레이계 학생들이 원망스러울 뿐이며 현실은 중국계가 경제에서 계속 두각을 나타내는 판이다.
3 지리
태국 아래의 말레이반도에서 맨 끝의 작은 섬인 싱가포르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말레이시아와, 여기서 아예 남중국해로 300여 키로미터 떨어진 보르네오 섬의 북부 지역, 그 중 작은 부분인 브루나이를 제외한 북부 보르네오 거의 전 지역을 국토로 두고 있다. 즉, 국토가 서로 연결되지 않은 비연속국인 셈. 게다가 중간 해역 상에는 인도네시아령인 리아우 섬까지 끼어 있다. 인도네시아와는 말라카 해협을 두고 해상 경계선을 이루며 보르네오 섬에서는 다시 육상 경계선을 이룬다. 왜 이런 비연속국이 됐는지는 연방제 국가이기 때문이며, 자세히는 위의 역사 항목 참조. 서말레이시아의 면적은 약 13만 제곱키로미터로 북한보다 좀 더 크며, 동말레이시아의 면적은 약 20만 제곱키로미터로 한반도보다 약간 작다. 면적이 더 작지만, 인구의 거의 80%는 수도가 위치한 말레이반도 인 서말레이시아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수도 쿠알라룸푸르가 위치한 반도의 서부와 그 수도권 지역인 클랑 밸리(Klang Valley, 클랑 강 유역)의 집중화가 강해, 중앙의 산맥과 정글 너머의 반도 동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다. 특히 강과 산맥과 도시의 관계, 도시의 상대적 위치나 위상, 역사의 깊이 정도 등에서 한반도와 묘한 공통점이 있다는 건 재밌는 사실.
3.1 기후
대부분의 지역이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는 열대우림기후에 속하며, 적도의 바로 윗 부분인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우기와 건기의 구분히 다소 모호하나, 현지인들은 건기를 따지는 편이다. 그렇지만 결국 건기라고 비가 아예 안 오는 것이 아니고 우기에 심하면 하루 3번 정도 소나기가 내리는 것이 건기에는 하루 한 번 정도로 줄어드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다. 때문에 울창한 열대우림이 많으며 말레이반도에는 아마존보다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즉 공룡시대 때부터 있어왔다고 하는 정글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있다. 게다가 가끔 있는 홍수 및 산사태를 제외하면 자연재해도 매우 드문 축복받은 땅. 적도 무풍대에 위치한 국토 덕분에 필리핀에 가까운 동말레이시아 지방 이외에는 태풍은 거진 오지 않는다고 보면 되고, 이웃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과는 딴판으로 지진이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화산도 없다. 다만 인간이 만들어낸 신개념 스모그(헤이즈라고 불린다)가 매년 3~4월의 건기에 서말레이시아 지역을 괴롭히는데 이는 황사 저리가라 할 수준으로, 수마트라 섬의 플랜테이션을 매년 한 번씩 갈아엎으며 태운 재가 그대로 날아오는 것이다. 고온 다습한 열대성 기후이고, 연평균 기온은 32℃, 연평균 강우량은 2,410㎜이다.
3.2 천연자원
동말레이시아 앞바다인 남중국해는 빙하기에 육지였던 대륙붕 지역으로 석유와 천연가스 가 매장되어 있다. 말레이시아는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로 유명한 국영 석유 회사인 페트로나스(페트로 나쇼날, 즉 국영 석유회사란 뜻)에서 이를 채굴하고 있어 대한민국에 비해 기름값이 싼 편이다.[11] 브루나이에서 무상복지가 지원되는 것도 다 남중국해의 천연자원 덕이고, 중국의 남중국해 영해 분쟁도 이와 관련된 점이 있다. 또한 날씨 덕분에 세계 1위 규모로 팜나무 플랜테이션 (과자 재료로 쓰이는 그 팜유맞다)을 재배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고무나무 플랜테이션도 많았다.
3.3 행정구역
말레이시아는 연방제 국가로서, 과거 영국 시절 지배를 받던 술탄 국가 등이 서로 모여 합쳐진 것으로, 연방정부가 있으며 주정부가 따로 있으며, 따라서 주 말고도 워싱턴 D.C.와 비슷한 연방 직할구가 존재한다. 주는 서 말레이시아에 11개, 동 말레이시아에 2개로 총 13개이고, 이 연방직할구는 3개가 존재한다. 서 말레이시아에는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와 세종특별자치시의 모델이 된 푸트라자야 총 두 개, 동 말레이시아에는 브루나이 앞에 무역 특구로 지정된, 울릉도보다 조금 큰 섬인 라부안이 그 남은 하나이다.
지방 군주가 있는 주는 ★표시한다.
3.3.1 서 말레이시아 (말레이 반도, 구 말라야 영토)의 주 목록
연방직할구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의 서울이다. 수도권 집중이 대한민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푸트라자야: 세종특별자치시의 모델이 된 곳이지만, 쿠알라룸푸르와는 공항철도로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호주의 캔버라와 비슷한 느낌의 도시계획이 되어있다.
주들은 수도에서부터 반시계방향으로 나열한다.
슬랑오르★ (Selangor) : 쿠알라룸푸르를 연방 정부에 떼어준 주로, 우리나라의 경기도에 해당하는 곳이다. 인천광역시에 해당하는 포트 클랑(Port Kelang)이란 항구도시가 있으며 여기는 술탄이 거주한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이곳으로 가는 길에는 부평구 나 부천시 같은 프탈링자야(Petaling Jaya) 나 말레이시아의 서울대인 말라야 대학교가 위치한 샤알람(Shah Alam), 수방자야(Subang Jaya) 와 같은 베드타운과 몰이 밀집한 도시들이 있으며, 가장 인구가 많은 주라는 점도 비슷하다. 쿠알라룸푸르와의 경계가 매우 지저분하다. 주의 동쪽 경계도 의외로 쿠알라룸푸르에서도 가까운데, 이곳은 거의 설악산 높이의 산이 있어 피서지로 유명한 겐팅 하이랜드가 있고, 워터파크와 카지노 리조트가 있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느그리슴빌란★ (Negeri Sembilan): 아홉이란 뜻의 슴빌란에서 알 수 있듯 주 아홉 개가 모여 만든 또 하나의 주 (...) 로, 슬랑오르에서 싱가포르로 가는 길에 나타나는 첫 주로 대한민국의 충청도와 비슷한 위치이며, 공항에서 수도 반대 방향으로 가면 곧 슬랑오르와 이 주의 경계가 나온다. 주요 도시로는 스름반(Seremban), 포트 딕슨(Port Dickson), 닐라이(Nilai) 가 있다. 삼성 디스플레이의 현지 공장이 위치해있다.
믈라카 (Melaka, Malacca): 대한민국의 경주시 나 부여군처럼 역사유적이 많은 동명의 시가 위치한 주이다. 주가 작은 편이라 주요 도시도 동명의 시 하나이다. 오늘날의 말레이시아의 역사가 시작된 곳으로 볼 수 있으며, 주로 포르투갈의 흔적이 많은 편이다.
조호르★ (Johor): 대한민국의 경상도나 전라도에 해당하는 주로, 남쪽 끝이 싱가포르에 맞닿아 있으며, 싱가포르와 강과 같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조호르바루(Johor Bahru, New Johore의 뜻)가 주요도시며, 면적은 경상북도와 비슷한 편이며, 모든 주 중 유일하게 말라카 해협과 남중국해 모두에 걸치고 있다. 한 때는 플랜테이션 농업이 성황리였으나, 오늘날에는 싱가포르 경제권역에 흡수되어가는 느낌이 강한 것에 불만이었던 말레이시아 정부가 최근 이 도시 근처에 외자 유치에 힘을 써서 이스칸다르 신도시를 짓고 있다. 이러한 원인 중 하나는 조호르바루가 싱가포르의 배후지 정도로 변해간다는 인식 때문인데, 조호르 주의 강물이 싱가포르의 식수로 이용되고 있으며 해협을 가로지르는 상수도관으로 공급된다. 또한 조호르 주 자체의 항만은 시설이 부족하고 수심이 얕아 싱가포르에 의존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으며, 말레이시아의 싼 물가와 싱가포르의 상대적을 비싼 임금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러 조호르바루에서 싱가포르로 출퇴근하는 말레이시아 인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워진 이스칸다르 신도시를 가장 많이 선전해주는 외국자본이 아시아 최초의 레고랜드. 좀 더 가면 헬로키티월드도 있다. 그러나 이외의 지역은 상당히 덜 개발된 지역이며, 특히 남중국해 연안 지역은 반도 동부 지역이라 산업보다는 자연관광이 더 주류인 곳이다. 주말은 금요일과 토요일.
파항★ (Pahang): 대한민국의 강원도에 해당하는 주이다. 강원도처럼 면적도 상대적으로 넓으며 자연을 이용한 관광사업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말레이시아 최대의 정글 국립공원이 두 개나 있기 때문이다. 이 국립공원 내에는 말레이시아의 진 원주민인 오랑아슬리 (Orang Asli) 가 살고 있다. 주요 도시는 항구도시인 쿠안탄(Kuantan)으로 강릉시나 속초시와 비슷한 위상. 남중국해상의 띠오만(Tioman) 섬은 산호초와 섬에 사는 개 만한 모니터 도마뱀으로 유명하다. 이 도마뱀이야 굳이 이 섬에 안 가더라도 이 동네에선 가끔 마주칠 수 있다. 사람이건 도마뱀이건 서로 도망가는 게 문제지 우기에 비가 특히 많이 내리며, 특히 파항 주 중에서 슬랑오르 주와 페락 주에 가까운 경계에 위치한 카메론 하이랜즈는 고원지대로 말레이 반도에서 가장 에어컨 바람 빼고 가장 서늘한 곳으로 현지 유명 피서지다. 특히 이 서늘한 기후를 이용해 열대우림기후에선 익사하거나 쪄죽어버리는 딸기를 먹어보겠다는 말레이시아인의 눈물겨운 의지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곳곳에 딸기 조각상은 흔히 볼 수 있는데(...) 정작 딸기는 그 맛이 안 난다 카더라
트렝가누★ (Terengganu):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강원도 혹은 함경도 일부 지역 같은 주. 주요도시로는 쿠알라트렝가누(Kuala Terengganu)가 있으며 원산시 같은 느낌이다. 이 주는 특히 보수적인 이슬람 지역으로 알려져 있고, 부미푸트라 계가 훨씬 더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주다. 그러나 산업은 화교가 여전히 다수인 말레이시아 사정을 반증하듯 이 곳은 자체적 산업기반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지역이다. 쿠알라 트렝가누에는 국교가 이슬람교인 말레이시아에서도 보기 힘든 쿠란 구절이 크게 적힌 대형 전광판 싸인이 도시를 굽어보고 있는 점이 매우 독특하다. 바다거북을 사랑하는 위키러가 이 도시의 시장에서 탁구공 같은 것을 파는 걸 보면 사지 말자. 바다거북 알이다. 실제로 이 도시 앞바다와 그 앞의 르당 섬은 바다거북의 주요 산란 지역으로, 바다거북 알의 불법 채취가 심하며, 환경보호를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19세기 술탄국 시절에 인근 클란탄의 술탄국끼리 전쟁을 한 특이한 역사가 있다. 주말은 금요일과 토요일.
클란탄★ (Kelantan): 한국의 함경북도 쯤 되는 주. 바로 아래의 트렝가누 주와 함께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지역으로 꼽히며, 강을 경계로 하는 태국 국경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사실 이 태국 지역은 영국에 의해 의사와 상관없이 태국에 편입된 술탄국으로 현재는 태국 주 3개로 되어있다.두만강이 생각난다 주요 도시로는 코타바루(Kota Bharu)가 있다. 클란탄에는 특유의 방언인 클란탄팟타니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많다. 자신의 주 이름조차 클란탄이 아니라 '클라떼'로 발음하며, 억양이 특이해 지역마다 방언이 많고 언어도 많은 말레이시아임에도 타지역 사람은 잘 못 알아듣는다. 주말은 금요일과 토요일.
크다★ 그 뜻이 아니다 (Kedah): 끄다라고도 하며, 한국의 평안도 정도에 해당하는 주다. 역시 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다만 국경부터 말라카 해협쪽으로 비스듬하게 길쭉한 모습이다. 2차대전 시절에도 영국에 의해 잠시 태국에 병합된 적이 있었던 강동6주... 술탄국이었다. 그런데 사실상 해안 지역에만 도시가 분포하며 내륙 지역은 산맥과 정글이 자리해 막상 태국으로 가는 길도 많지 않고, 오늘날에는 사실상 페낭 경제권으로 주요도시 또한 숭아이쁘따니(Sungai Petani))라는 페낭 주와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의 비단은 전통의상 치마에도 쓰이며, 태국 양잠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질감과 패턴을 보여준다. 말라카 해협앞의 부속 섬으로는 관광지인 랑카위(Langkawi) 섬이 있으며, 태국의 푸껫과 나름 가깝고 비슷한 편. 사실 이 섬은 아래 후술할 프를리스 주에 더 가깝다. 주말은 금요일과 토요일.
프를리스★ (Perlis): 면적이 서울특별시의 1.3배 정도인,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작은 주로, 싱가포르가 탈퇴한 덕에 꼴찌가 됐다. 주요 도시는 캉아르(Kangar)가 있으며, 태국 핫야이로 넘어가는 국제철도가 이 주를 지나간다. 신의주 같은 위상이다. 현지에서는 신발 산업이 유명한 주다. 말레이시아의 아홉 군주들 중에 유일하게 술탄이 아닌 왕 칭호를 쓴다.
풀라우피낭 (피낭, Pulau Pinang): 우리나라에는 '페낭'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 풀라우는 섬이란 뜻으로 이름 자체는 페낭 섬을 의미하지만, 페낭 섬 이외의 반도 본토 지역에도 버터워스 (Butterworth)라는 도시를 포함에 절반의 땅이 더 있다. 프를리스 다음으로 작은 주지만, 쿠알라룸푸르 에 이은 제 2의 도시면서 역사는 수도보다 오래되고, 서북쪽에 한참 떨어져 있는 점 등이 평양직할시와 비슷한 위상이다. 다만 작은 섬에 있는 점이 다르다. 육지인 버터워스에서 섬으로 넘어가려면 다리나 카페리를 이용해야 하고, 다리는 두 개가 있다.이 중 더 긴 피낭대교는 사장교로 13.5km 의 길이를 자랑하며, 한국의 현대건설이 지은 것. 또한 대한항공 화물기 직행편이 이 도시까지 있다. 이 섬에는 조지타운 (Georgetown) 이라는 영국의 무역항이 있다. 이곳은 빅토리아 시대의 건축양식이 화교들 그리고 화교와 말레이계의 혼혈인 바바/뇨냐 의 양식이 섞여 매우 독특한 풍광을 자아내는 곳이며, 현지에서 가장 길거리 야식이 맛있는 곳으로 꼽힌다. 중국계의 비중이 다른 주에 비해 매우 높은 곳이며 따라서 말레이 계통 주에서 볼 수 있는 주별 호칭도 없으며 주의 국왕도 없다. 싱가포르처럼 독립을 원했던 적이 있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추가바람. 이곳의 중국계는 현지화된 복건어를 써서 복건어화자가 많은 싱가포르와도 닮았다. 반면 쿠알라룸푸르의 중국계는 광동어 화자가 많은 편이다.
페락★ (Perak): 주요 도시는 이뽀(Ipoh) 이번에도 그 뜻이 아니다!!! 피낭과 마찬가지로 중국계가 많은 주다. 도시는 이외에도 타이핑(Taiping), 쿠알라캉사르(Kuala Kangsar) 등이 있으며 쿠알라 캉사르는 마치 행정수도처럼 주의 국왕 왕궁이 있는 곳이다. 쿠알라룸푸르와 슬랑오르에서 페낭에 가는 길목에 위치한 한국의 황해도 같은 위상의 주. 주석 채굴로 유명했으며, 석회암 지대가 많아 채석장도 쉽게 볼 수 있는 주다. 카메론 하이랜즈로 가는 길목이 있는 주. 참고로 이뽀(Ipoh)는 미인(중국계)과 음식으로 유명한 도시이며 말레이시아의 대표적 커피인 올드타운화이트커피도 여기서 시작되었다.
3.3.2 동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 북부)의 주 목록
동 말레이시아는 광활한 면적과 천연자원의 생산기지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울창한 정글 때문에 같은 섬 안에서도 도로보다는 항공이나 해안선을 따라 해운에 의존하는 편이다. 전체 면적의 2/3에 가까운 면적임에도 인구는 20%밖에 없고, 주도 두 군데이며, 이 두 주는 모두 국왕을 선출하지 않는 주다.
자치주나 특별행정구는 아니지만, 서 말레이시아 사람이 여기에 오려면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 자국민도 엄연히 90일 무비자가 찍힌다. 여기서 공부하고 싶거나 취직하려면 아예 정부에 비자를 신청해야 한다.
연방직할구
라부안 (Labuan): 동 말레이시아 유일의 연방직할구로 브루나이 근처에 있는 섬이며, 말레이시아 사바 주 해안에서 8km 정도 떨어져있다. 브루나이에서 영국, 또 일본에서 다시 말레이시아로 넘어간 복잡한 역사의 섬이며, 역외금융특구 및 남중국해의 수많은 석유 및 천연가스 채굴 등의 오프쇼어 산업의 전초 기지로 육성하기 위한 목적에서 연방직할구로 지정되었다. 라부안 섬 크기는 울릉도와 비슷하나 평지가 많다.
사라왁 (Sarawak)
북한과 비슷한 면적의 거대 주이며, 그 자체로 서말레이시아 하나와 맞먹는 크기다.인구는 약 250만. 가장 큰 도시는 쿠칭(Kuching)으로 고양이란 뜻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떠올리진 말자 이외에도 시부(Sibu), 빈툴루(Bintulu), 미리(Miri) 가 있다. 본래 브루나이의 영토였으나 식민지 침탈의 복잡한 역사 끝에 지금에 이르게 되었고, 이미 브루나이 시절부터 다양한 부족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이들 민족의 입김이 센 지역이다. 주요 민족으로는 이반(Iban), 믈라나우(Melanau), 비다유(Bidayuh)와 오랑울루(Orang Ulu) 등이 있다.
사바 (Sabah)
필리핀 남부와도 맞닿아 있는 지역으로, 사라왁 주의 동북부에 브루나이 다음으로 위치해 있다. 인구는 약 300만. 상술했듯이 필리핀 남부까지 지배했던 브루나이의 역사와 맞물려 필리핀 무장세력이 2013년 침투했던 그 곳이 바로 사바 주 동부의 술루 해와 술라웨시 해 연안의 소규모 항구 도시들이다.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휴양지 코타키나발루(Kota Kinabalu)도 이 사바 주에 위치하고 있긴 한데, 피해를 입은 도시와는 아예 다른 남중국해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수익성 작물이 재배되고 있으며, 동북부는 험준한 산맥 속에 동남아시아 최고봉(4,101m)인 키나발루 산이 있다. 사바도 사라왁처럼 소수민족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소수민족이 거주하는데, 사바 주 전체 인구의 17%를 차지하는 카다잔두순(Kadazan-Dusun)족과 14%를 차지하는 바자우(Bajau)족이 살고 있다. 사바 주 최동단 해안이 철수권고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므로 주의.
4 분리주의
동말레이시아 보르네오 북부 지역에는 알고보면 심각한 지역감정이 있으며, 인도네시아 서뉴기니(이리안 자야) 지방이나 파타니, 얄라, 나라티왓등 태국 남부의 말레이계 이슬람 지역, 민다나오 등 필리핀 남부의 이슬람 지역들처럼 분리 독립이나 자치 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반 말레이시아 분리 독립운동 단체들이 존재하고 있다. 애당초 동말레이시아랑 서말레이시아(말레이시아 본토 지역)는 역사 이래 한번도 엮인 적이 없는 지역들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이 지역 주민들은 스스로를 '말레이시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헌데 동말레이시아 지역에 속해있는 보르네오 섬 북부의 사바와 사라왁이 독립 국가로 분리 독립하게 되면 말레이시아와 앙숙인 태국과 인도네시아, 싱가포르가 이득을 볼수도 있다. 이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게 말레이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이들 보르네오 섬 북부 사바와 사라왁 지역이 분리 독립하게 되면 말레이시아의 영토는 말레이 반도 본토 지역으로 한정되고 보르네오 섬 북부 지역의 석유 매장지등 지하 자원들 상당수를 잃게 되고 지정학적으로 자국과 앙숙관계인 여러 동남아 이웃 나라들에게 사실상 포위되는 등 타격이 심화된다. 게다가 이 지역이 독립할 경우 말레이시아와 인접한 태국 남부의 이슬람 지역의 분리 독립 문제로 말레이시아와 대립하고 있는 태국과, 중국계가 많다는 이유로 60년대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하는 등 말레이시아와 역사적인 반감이 있는 싱가포르로서는 반 말레이시아 동맹 국가를 하나 더 얻게 되어 말레이시아를 더욱 더 압박할 수 있게 되고... 게다가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와 보르네오 북동부 인근 해역에서 암발랏, 스바틱 등 몆 군데의 섬들을 놓고 말레이시아와 분쟁을 치르고 있다. 만약 이 지역이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할 경우,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국가 경계선 특히 보르네오 지역에서의 양국 국경선은 이제 말레이시아와 무관하게 된다.[12] 따라서 양국의 국경선은 수마트라 섬과 말레이 반도 사이의 말라카 해협 일대로 한정된다. 더불어 보르네오 북부 지역이 새로 독립국이 될 경우 국가승인 및 국교 수립의 조건으로 이들 지역이 말레이시아 영토였을 때 말레이시아와 영토 분쟁을 치렀던 암발랏, 스바틱 등 이들 보르네오 북동부 근해의 섬들을 완전한 인도네시아 영토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여 영유권 분쟁을 종식시켜 완전히 자국 영토로 만들수도 있다.
또 보르네오 섬 북부 지역이 독립하고 난 뒤 영토가 말레이 반도 일대만 남은 말레이시아는 어떻게 흘러갈지도 관건일 듯 하다.
4.1 14번째 주
말레이시아판 51번째 주. 항목 참조.
5 교통
현지에서 KLIA로 흔히 줄여 부르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은 말레이시아의 관문 공항이다. 이 공항을 허브로 사용하는 말레이시아 항공과 에어아시아는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전체를 대표하는 큰 규모의 항공사들이다. 반도와 섬으로 이루어진 넓은 국토 덕분에 국내선 항공도 매우 활발하다.
최근에 기존에 있던 LCCT(Low Cost Carrier Terminal)을 폐쇄하고 KLIA 2 공항이 생겼다. 원래 에어아시아와 같은 저가 항공사들은 구 공항인 LCCT 또는 수방 공항이라 불리는 술탄 압둘 아지즈 샤 공항[13]에 있었다. 하지만 에어아시아가 제2의 국적 항공사로 승격되고 수요도 점차 늘어나자 에어아시아만을 위한 공항을 만들기로 협의하고 KLIA 옆에 KLIA 2 공항을 신규 오픈하여 저가 항공사들만 따로 취항하게 됐다. 물론 수방 공항은 폐쇄된 것은 아니고 또 기존에 이용되던 LCCT 공항은 현재 화물 공항으로 이용 중이다. KLIA는 1993년 6월 1일, KLIA2는 2014년 5월 2일에 오픈되었다.
철도교통은 말레이반도는 말레이 철도(KTM)이 3개의 간선 위주로 운행하고 있다. 주요 역은 버터워스 역, 쿠알라룸푸르 역, KL 센트럴 역, JB 센트럴 역 등. 태국의 핫야이와 싱가포르로 이어지는 국제열차, 화물열차도 활발히 운행되고 있다. 싱가포르의 우드랜즈 역도 말레이 철도가 관할한다. 보르네오 섬의 북보르네오 철도는 말레이 철도와는 전혀 별개로 운영되며 관광열차 위주로 다닌다.
6 정치
영국의 지배하에 있던 술탄국들이 독립하여 결성한 연방 국가이며, 영국의 영향을 받아 입헌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국왕은 의외로 임기가 정해진 선출직인데, 9개 주의 술탄 중에서 선출된 국왕(Yang di-Pertuan Agong)이 5년을 임기로 왕위에 오른다... 근데 사실상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한다.가야? 이 13개의 주 중에서 9개의 주에는 술탄이 있다. 다만 느그리슴빌란 주의 수장은 최고지도자(Yang di-Pertuan Besar), 프를리스 주의 수장은 왕(Raja)이라고 부른다.
2011년 12월 왕위에 오른 압둘 할림(Abdul Halim) 국왕은 크다(Kedah) 주 술탄인데, 이미 1970년부터 5년간 국왕으로 재임한 바 있다. 왕위에서 물러난 후에 수십년이 지나고 보니 다시 크다 주의 순번이 돌아와 두 번째로 왕위에 오른 셈. 말레이시아 독립 이후 한 사람이 두 번 국왕에 오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다만 올해 물러날 예정이며 나이 때문에 다시 오를 일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입헌군주제 국가인 만큼, 실권은 총리가 주도하는 내각에 있다. 내각책임제 국가이며 이는 말레이시아를 지배했던 영국의 유산이다. 그런데 법을 제정할 때는 마지막에 국왕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입헌군주제지만 완전한 허수아비 왕은 아닌 셈.[14] 그리고 국왕에 대한 대부분 국민들의 인기는 높다고 한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국가지만 실제 민주주의 수준은 동남아에서 민주주의가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동티모르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독립 이래 국민전선(Barisan Nasional, BN)이 60년 가까이 집권 중이며 1969년 총선 때를 제외하면 개헌선을 쭈욱 차지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세력이 가장 커서 줄곧 집권해 왔다.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등의 장기집권 독재자도 여럿 있었다.
특히 1970년대 이후로부터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거나 사법부의 독립성이 침해된다는지 하는 경향이 강해졌으며 이 와중에 1990년 총선에서 여권의 분열에 따른 여당의 개헌선 확보 실패 여부가 관심거리가 된 적이 있고 1999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 돌풍이 불면서 정권교체 여부가 화제거리가 된적이 있었지만 두 차례의 총선에서는 국민전선의 개헌선 확보로 마무리 되었고 2000년대 초중반에는 야당이 큰세를 얻지 못한채 침체된 상황에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총선에서는 BN이 개헌의석인 2/3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140/222석), 몇몇 주의회에서 야당에 다수당 자리를 내주는 등 사실상 패배했다고 보는 분위기. 수십년간 지속되던 말레이계 우대정책에 대한 중국계 등 소수민족의 이탈과 이슬람 정당들의 선전이 주요원인이었다.
근데 이렇게 되자, 야당인 인민정의당 지도자인 안와르 이브라힘이 동성애 혐의로 기소되었다... 흠좀무. 이슬람이 국교인 이 나라에서 동성애는 최대 20년의 징역과 태형에 처해진다. 안와르 이브라힘은 원래 마하티르 전 총리 밑에서 부총리를 하던 사람인데, 이미 1998년 동성애와 부정부패 등의 혐의로 쫓겨나서 6년간 옥살이를 했으나 결국 무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출소한 뒤에는 야당의 핵심인물로 부각되었다가 또 다시 동성애 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그는 부당한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결국 2012년 1월 9일, 검찰이 제출한 DNA 자료에서 신뢰할만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하여 무죄가 선고되었으나 검찰이 여기에 대해 항소했고 결국 2015년 말레이시아 대법원은 동성애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였다.
이후 2013년 총선에서 워낙 접전이라 정권교체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예상보다 큰 의석차로 국민전선(BN)이 야권연합인 인민연맹(PR)를 누리고 승리하여 정권을 연장하였다.(133석 vs 89석) 그러나 득표율은 BN이 PR보다 뒤쳐진데다가 유권자들을 매수하고 선거에서 쓰인 안 지워지는 잉크가 지워진다는 등 관권, 금권선거를 했다는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야당에서 불복하고 있는 중. 물론 그렇다고 해도 야권이 선거에서 패한 결정적인 요인은 게리맨더링(지도 참조)이었다. BN(파란색)은 47%를 득표했으나 선거 결과를 보면 거의 전국을 휩쓸었고 야권연합은 50.9%를 득표했음에도 패배했다. 더욱이 선거구 수 자체도 도시보다 농촌 지역에 편중되어 있었는데, 가령 말레이시아의 수도권 지역인 슬랑오르 주의 경우 인구는 전국의 20%인 587만 명인데 선거구는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22개에 불과했다. 그리고 슬랑오르 주에서는 BN이 38%, PR이 59%를 득표한 야당 강세 지역. 말레이시아는 의원내각제이면서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완전 소선거구제로 비례대표가 없기에 게리맨더링이 투표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렇게 집권을 연장하고도 국민전선의 지지는 하락하고 있으며 특히나 2015년 이후로 저유가로 세수가 급속히 줄고 물가가 급속히 상승하는 사태까지고 벌어지고 총리가 사우디로부터 검은 돈을 받았다는 증언까지 나오면서 인기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오죽하면 머지않아 정권교체가 진짜로 있을 가능성도 꽤 있다.
말레이인들은 대개 UMNO에게 몰표를 주는 경향이 강하며, 중국계와 인도계는 따로 노는 편이지만 1969년 총선에서 중국계 정당이 약진하자 말레이인들의 폭동이 벌어져서 크게 데인 후에 일부 중국계와 인도계 정당이 국민전선에 편입되면서 해당 계층 내의 부유층이나 중상류층 사이에서 반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여당연합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었다. 2008년 총선 이후로는 소수민족계 정당의 판도가 완전히 뒤집혀졌고, 일부 말레이인들도 UMNO에서 이탈했다. 물론 말레이인들 대다수는 아무리 불만을 가지고 있더라도 젊은층을 제외하면 총선에서 UMNO를 지지하는 경향이 여전히 있기는 하다.
6.1 군사
7 사회
동남아에서는 싱가포르, 브루나이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인데다가 적어도 동남아시아의 다른 빈국들[15]에 비할 때는 비교적 평화롭고 안전하기 때문에 외국인들의 이민의 대표적인 대상지로 꼽힌다. 하지만 주민들도 겉으로는 친절한 듯 해도 외국인들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다소 알아둘 필요가 있다.
사실 외국인에 대한 반감은 한국보다는 덜하고, 외국인 취업 제한 역시 한국과 동일하므로[16] 이곳으로의 이민이 그냥 평범한 이민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무려 12년을 거주해야 하고, 현지 사회의 국어인 말레이어, 그것도 수도권 방언을 구사하는 데 문제가 없어야 한다.[17]
때문에 대게는 영주권이나 MM2H를 선호하는 편. 하지만 MM2H는 일종의 투자이민제도로 부자가 아니면 꿈 깨야 하고, 영주권도 일부 외국인들의 범죄를 핑계로 제대로 안 주는 편이다. 그리고 설상 국적을 취득했다 하더라도 방심은 금물. 외국인의 꼬리표가 붙을 경우 자국민이라고 주장해도 믿지 않을 수 있거니와 까딱하면 국적 말소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18]
심지어 현지 문화를 좋아하면 현지인들도 좋아하지만 그걸 바탕으로 직업으로 삼으려 하면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 잘하니 빠져라 라는 식. 외국인들에게 의외로 친절한 것 같아도 살기 시작하면 180도 달라지는데, 외국인이 현지화 되는 것을 제한하는 엉터리 법률도 존재한다. 풀라우피낭 주에서는 외국인이 현지 음식을 하는 게 음식의 맛과 질을 떨어뜨린다며 금지했을 정도.
여하튼 외국인들에게 불친절한 나라다 보니 이민을 하려 한다면 좀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특히 이민국의 그 무례함은 악명을 떨칠 정도. 구글에 'do malaysia hate foreigners'라고 치면 글이 수두룩하게 나오는데 오죽하면 욕을 꺼낼 정도로 정도가 심하다고 한다. 특히 방글라데시 일대에서 온 사람들은 여기서 툭하면 무시당하고 차별을 받는데, 설상 '조센징'처럼 한국인을 욕하거나 '쪽바리'처럼 일본인을 욕하는 편은 아니나 방글라데시 하면 '방글라', 인도네시아 하면 '인돈' 등 이들에 대한 혐오감은 상상 이상이다. 아프리카, 특히 나이지리아 출신들은 몇몇의 범죄 등이 문제가 되어 전체가 범죄자로 매도되는 일이 흔하다고. 때문에 이 쪽에서 오는 사람들은 살면서 툭하면 말레이시아를 욕해댄다. 물론 말레이시아인들의 반응은 '싫으면 왜 왔냐? 걍 나가라'일 뿐.
참고로 다중국적을 일체 허락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나라이다. 북한조차도 형식적으로는 특수한 상황에 한해 일부 허락된다고 하나 말레이시아는 그렇지도 않다. 그러므로 말레이시아 국적자와 결혼해서 낳은 아이를 대한민국에 출생신고를 할 생각은 해서는 안 된다.[19] 만약에 걸리면 그날로 나라에서 추방당한다. 또한 이러한 특성상 귀화하기 위해서는 본국 국적을 포기해야만 한다. 때문에 리오넬 메시는 말레이시아로 귀화할 수 없다.[20] 말레이시아 인 추기경이라도 나오면 어쩌려고 그러지[21]
드물게 여기 와서 원정출산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레이시아 국적법은 미국과는 달리 부모 중 최소 한 쪽이 말레이시아 국적자여야 한다이므로, 만약에 대한민국 국적의 부부가 여기 와서 원정출산 하더라도 아이의 국적은 대한민국이다. 따라서 이 점에 유의해야 한다.
7.1 민족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로 크게 나뉜다. 말레이계는 국교인 이슬람을 믿고, 중국계는 불교와 기독교 그리고 무신론, 인도계는 힌두교를 믿는다. 중국계 기독교인 중에는 성공회, 가톨릭이 대부분이며 특히 영어 이름을 세례명으로 쓰는 경우도 많다. 젊은 여자들의 경우 아그네스나 베로니카, 클라라, 이본느 등의 세례명 이름을 메인으로 많이들 쓰는데 중국계 젊은 층의 종교 성향이 기독교와 무종교/무신론 둘 중 하나로 양분되어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젊은 층이 많아져서이다.
중국계와 말레이계 사이에는 통혼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20세기 후반 부터는 중국계-말레이계간 혼혈이 늘고 있긴 한데... 아직 그 숫자는 적은 편. 국교가 이슬람인 말레이시아에서는 말레이=무슬림이고, 타 종교로 개종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말레이인이 아니다. 또한 이슬람 교리상 무슬림과 결혼하려는 자는 반드시 이슬람으로 개종해야만 한다.[22] 중국계들 역시 자기들끼리 결혼하는 것을 바라기 때문에 말레이계와 중국계는 잘 섞이지 않고 있다. 아니 그 전에 법적으로 국교가 이슬람으로 비무슬림과 무슬림의 결혼은 금지되며 특히 기독교인과 무슬림의 결혼은 엄격히 금지된다. 사실 상 중국계가 말레이인과 못 섞이게 막아놓은 것. 게다가 인구의 8%나 되는 타밀계 인도인들도 저들끼리만 살고 있다.
그나마 중국계와 인도계 사이의 통혼은 이루어지고 있다만 극소수이며 이는 아시아 정서 상 어쩔 수 없다.[23] 특히 종교적으로 불교/기독교인과 무교인이 많은 중국계, 힌두교인 인도계, 이슬람을 철저히 믿는 말레이계는 물과 기름이다. 이는 유독 말레이시아에서 심한 편으로, 옆나라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의 화교들이 동화되었다. 말레이시아의 화교 비율이 훨씬 높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최근 중국의 급성장으로 인해 사회 내부에서 화교의 영향력이 다시 자라남에 따라 이들이 국가를 장악할 것이라는 공포감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전부터 이현상을 사실은 정부가 권력을 유지하기위해서 만드는 환상이라는 것이 점점 알려지면서 말레이족 과 화족가 더 좋은 관계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오랑아슬리라 불리는 원주민은 200만 명 가량이나 있지만 존재감이 희박하다. 베트남어와 같은 어족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무슬림 인구수를 늘리려고 이들에게 법적인 회유와 협박을 동시에 하면서(동시에 소수민족인 이들의 정체성도 말살하고) 이슬람 반강제하는 정책을 하기도 했다.
7.2 종교
흔히 말레이시아의 이슬람은 종교적으로 아랍이나 남아시아, 북아프리카의 극도로 보수적이고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짙은 나라들과 대비되어서 (인도네시아와 함께) 이슬람 국가 치고는 온건한 나라라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인터넷이나 언론 등에서 말레이시아를 이야기할때 보통 타 종교와 공존하는 온건한 이슬람 국가라고 소개되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그러나 중동이나 남아시아,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여러 악습들이 나타나지 않아서 그렇지 여론조사를 보면 말레이인들은 사실 이슬람권을 통틀어서도 매우 보수적이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신봉하는 국가에 속한다.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소말리아 같은 아랍/남아시아/아프리카권 이슬람 국가들의 병크에 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반면 바로 옆나라 인도네시아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많지만 말레이시아보다는 이슬람권임에도 사회 분위기가 어느정도 널널하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사람들 중 개방적인 축에 드는 무슬림들은 말레이시아를 바로 위에서 설치는 꼴통 내지는 광신도 나라(...!)라면서 까는 걸 자주 볼 수 있다.[24] 참고로 인도네시아는 무슬림이 다수인 세속국가이다. 그러다보니 필연적으로 종교적인 색채를 지울 수 밖에 없으며 그러한 사실은 국민교육헌장급인 Pancasila에 잘 나와있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후반으로 오면서 말레이시아 사회 전반에 이슬람 신앙운동(다와)이 전국적으로 펼쳐지면서 심해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지금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잊을만하면 폭력사태를 일으키기도 하고[25], 비무슬림(주로 중국계 기독교인)에 대한 차별도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매우 심각하다. 특히 이웃 인도네시아처럼 중국계는 기독교와 엮여 더 미움 받는다. 물론 중국인들 중에도 기독교인의 수는 약 10% 정도이지만, 근래에는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26]
세계구급 여론조사/사회조사 기관 퓨 리서치 센터(Pew Reserch Center)의 조사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무슬림의 86%가 샤리아법 도입에 찬성하고(이는 심지어 파키스탄보다 높았다!), 찬성한다는 응답자 중 60%가 간통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투석형에 찬성했고 62%가 비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에 대한 처형에 찬성한다고 응답했을 정도. 그 외에 응답자의 82%가 종교 지도자가 정치에 영향을 끼치는 걸 찬성했고, 혼전 성관계나 동성애, 음주 등에 대해 부도덕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90%대를 찍었다. 참조. 최근의 퓨 리서치 조사에서는 말레이시아 무슬림들의 11%가 IS(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다에시)에 호감이 간다고 지지했다. 게다가 이슬람 근본주의세력이 말레이시아에도 퍼지기 시작하고 말레이시아 이슬람의 보수화가 시작되면서 학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아랍화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27]
그리고 또 하나 심각한 건 비무슬림에 대한 종교의 자유 제한과 결혼 차별 문제. 무슬림은 비무슬림에게 이슬람을 전파하든 말든 상관 없지만 비무슬림[28]이 무슬림을 개종시키면 사회적으로 무지막지한 차별과 정부에 의한 핍박,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간간히 무슬림에 의한 사적인 폭력에 직면한다. 비무슬림 여성과 무슬림 남성의 결혼도 금지되고, 양육권을 뺏는다. 때문에 비무슬림들의 법정투쟁과 인권투쟁도 많이 벌어졌다. 백이면 백 무슬림 주류인 말레이 정부가 이기지만(...) 이런 심각한 차별은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에서도 매우 흔한 일이다. 화교나 비이슬람 거주자들의 대학 입학도 제한되어있고, 반대로 화교나 비이슬람 측들의 학교 건립이나 여러가지도 꾸준히 막고 있다고 한다. 가톨릭으로 개종했더니 별별 세금 고지서가 마구 날라오고 직장도 잘린 부모를 둔 대학생의 하소연을 보면 여기도 꽤 시간이 많이 걸려야 할 듯 싶다. 게다가 말레이시아의 유명 래퍼가 이슬람을 모욕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는 일이 발생되었다.#
다만 다민족·다문화 국가인 말레이시아 특성상 무슬림들에게 적용하는 이슬람적인 문화를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한 비무슬림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지는 않기 때문에 특히 한국인 같은 외국인들이 이런 문화를 인지하기는 어려운 편이다. 예를 들어서 말레이시아 내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 등을 착용해 몸을 가려야 하지만 말레이시아 내 중국계나 외국인들은 여자들이 길거리에서 민소매 옷에 핫팬츠 입고 맨살 맨다리를 내놓고 다녀도 모스크에 들어가거나 할 때 말고는 별로 터치가 없다.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는 것도 없고, 돼지고기나 맥주의 구입과 취식도 무슬림들만 제한하지 중국계나 외국인들은 제한이 없다. 즉 현지인들 간의 문제일 뿐 관광객은 한국에서 하던 대로 해도 무방하다.
그래도 인도네시아보다는 못하다지만 어느 정도의 세속화는 진행된 국가이다. 수많은 불이익과 차별을 감내해야 하지만 적어도 사우디나 이란, 아프가니스탄처럼 무슬림이 비이슬람으로 개종하면 처형하고 수용소에 처넣고 고문하고 하지는 않는다. 특히나 최근의 경제 발전에 따라 점차 종교색이 빠지고 있다.
또한 말레이시아 주류인 수니파에 의한 시아파 탄압도 논란거리다. 2011년 3월엔 말레이시아 정부 주도로 시아파를 이단이라 공식선언했으며, 개인 신앙 유지를 제외한 시아파 포교행위를 불법화했다.
7.3 언어
언어는 말레이어가 공용어이지만, 소수민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 중국어, 힌두어, 아랍어, 기타 말레이어 계통의 소수 민족언어도 쓰이고 있고, 영국의 영향으로 영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29] 영어는 말레이계, 화교, 인도계 사이에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화교들도 광둥어, 하카어 등의 중국어 방언을 쓰고 있지만, 영어나 표준중국어도 널리 쓰이고 있다.
어학연수 목적지로는 옛날에 영어권 식민지였고 물가가 저렴한 동남아시아 국가라는 점에서 필리핀과 비슷한 속성이 많은데, 필리핀에 비해 치안이 훨씬 좋고 유흥문화도 이슬람 문화 때문에 발달하지 않은 나라라서 영어를 배우기는 필리핀보다 좋은 점도 많다. 다만 필리핀에 비하면 잘 사는 나라기 때문에 한국이나 서구권만큼은 아니지만 필리핀보다는 물가가 비싸다.
7.4 비자
항목 참조
7.5 치안
말레이시아는 정세가 안정적이고 총기규제도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싱가포르 다음으로 치안이 괜찮은 수준이다. 따라서 필리핀처럼 총격살인 등 강력범죄는 드물기 때문에 조금만 조심해도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치안도 양호한 편이나 대도시인만큼 강력 범죄가 드문 대신 소매치기, 오토바이 날치기 등 좀도둑이 상당히 많다. 쿠알라룸푸르의 명동격인 부킷빈탕에 날치기를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붙어있을 정도다. 차도 반대쪽으로 크로스백을 단단히 매고, 목걸이 등 장신구도 되도록이면 빼고 수수한 차림으로 다니자. 말레이시아의 도시에는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도 중국계가 더 많이 살고 있어서 복장을 수수하게 하고 다니면 현지인인지 관광객인지 구분도 잘 안 된다.
본토와 멀리 떨어진 사바 주 동부 해안과 그 주변 섬들은 필리핀 남부와 가까워서 반군이 배를 타고 사람들을 납치, 몸값을 요구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등 정세가 매우 불안하기 때문에 여행자제/철수권고 구역으로 정해져 있어 각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외 지역에는 여행경보가 발령되어 있지 않으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나 그 근교도시에서도 몸값을 노린 납치 성범죄가 가끔 벌어지므로 웬만하면 밤에 인적 드문 곳은 피하도록 하자. 사실 밤에 인적 드문 곳은 어느 나라건 위험하긴 하다. 동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서유럽과 이웃 싱가포르가 치안이 좋다고 하지만 여기서도 거의 밤에 무턱대고 나가거나 하면 현지에서도 미쳤다고 하는 곳이 꽤 된다.[30] 여기서도 그렇지만 미국이나 중남미 그리고 이웃 필리핀 등 총기 소지가 허가된 곳에서는 잘못하면 끔살 확정이다.
8 경제
- 말레이시아/경제 항목 참조.
9 외교
외교면에서는 은근 골때리는 부분들이 많은데, 사실 윗동네만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말레이시아가 타국과 외국인에 대해 예의가 없기로 악명이 높은데, 외국에서 온 사람들을 툭하면 차별하고 무시하는 일들이 한둘이 아니며 특히 방글라데시나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은 나라와 문화까지도 건드리고 그러면서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외국인들에게 친절한 것 같아도 뒤에서는 제노포비아가 만연해서, 외국인에 대한 골수적인 배타성은 상상 이상일 정도이다. 이민국의 무례함은 굳이 긴 설명을 할 필요도 없고, 특히 알바생을 구할 때도 말레이시아처럼 지나치게 자국민이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 고집 부리는 나라는 없다.[31][32] 이 때문인지 외국인들은 말레이시아를 떠나면 종종 말레이시아를 욕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레이시아 측에서 외국인들의 문화까지도 은근 많이 건드리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이들이 역으로 말레이시아 문화를 욕하는 경우도 많다. 이 글들을 보자.
하지만 말레이시아인도 외국에서는 당연히 외국인인 법. 당장 대한민국에 와도 말레이시아인이란 더할 바 없이 외국인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당장 대한민국에서도 말레이시아인들을 '깜둥이'니 '개슬람'이니 하는 식으로 그들에게 여과없는 모욕을 가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말레이시아인들은 종종 외국인들이 자기네 문화를 거부한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으나, 정작 본인들은 외국 가서도 현지 문화를 거부하기 일쑤이고, 현지 사회에서도 종종 핍박을 받거나 하는 일들이 많다. 한마디로 말하면 적반하장.
자세한 내용은 말레이시아/외교와 부미푸트라 정책 참조.
10 문화
10.1 음악
한때 유머러스하고 뭔가 싼티난 특수효과가 돋보이는 PV와 몬데그린 가사에 힘입어 컬트적인 인기를 얻을 뻔했지만 안습하게도 빠삐놈 등에 묻힌 통칭 인도 최강 락커 시리즈를 부른 가수는 인도인이 아니라 '삼바락'이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가수 다크키라고 한다. 물론 인도계이다. 그리고 이 가수는 내한공연(?)을 한 적도 있다. 안산시의 제3세계 외국인문화 행사의 음악공연 아티스트 자격으로 초대된 것이기 때문에 정규 내한공연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하지만...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유명하다. 마하티르가 말레이시아에도 세계적인 악단이 필요하다며 석유재벌 페트로나스의 돈을 끌어다 멋진 콘서트홀도 세워서 1990년에 창립. 단번에 아시아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국내 클래식계에서도 말레이시아의 클래식 투자와 관심도를 부러워하며 음악춘추라든지 객석같은 월간 클래식 잡지에서도 이명박 서울시장 때부터 기획되었다가 늘 취소하던 서울시 오케스트라홀 건립문제와 여러가지로 견주는 곳이 바로 말레이시아 오케스트라들이었다.
영국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한국보다 팝의 역사가 더 오래 되었는데, 일단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가요계는 포크, 트로트 위주였지만 말레이시아는 이미 팝이 정착해 있었다.[33] 대표적인 팝의 전설 P. 람리와 아내 살로마 등이 유명하고, 소위 '팝의 여왕'이라 불리던 고(故) 샤리파 아이니와 노르아니자 아드리스, '재즈의 여왕'이라 불리던 셰일라 마지드 등의 여가수들도 인기가 많다. 1980년대 후반부터 발라드 일색에서 벗어나 댄스, 락 등의 변화를 대대적으로 추구했으며 람라 람, 파우지아흐 라티프, 지아나 제인, 자이톤 사메온 등의 수많은 전설들이 생겼다. 하지만 1996년 시티 누르할리자가 등장한 이후로는 모두 다 처발렸고, 그 뒤로는 그 어떠한 가수도 시티를 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물론 다 옛말이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 중 하나, 이슬람은 사실 음악을 금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음악이 사람들을 안 좋은 쪽에 빠지도록 유도한다는 이유 때문. 한국 유학생들이 종종 하는 소리가 '한국에는 학교에 음악 수업이 있는데 여기는 없다'라고. 왜냐하면 음악이 금기된 특성상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초·중등 교육에서 음악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말레이계 공립학교에만 국한된 이야기이며, 중국계 사립학교들은 별도의 음악 수업을 두고 있다. 그리고 철저한 이슬람 국가임에도 음악산업이 발달해 있으며, 이웃나라인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안습하게도 한국에는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흠좀무
10.2 스포츠
스포츠는 축구가 제일 인기가 많다. 머르데카컵으로 70년대에 한국에서도 유명했던 적도 있다. 축구 열기는 지금도 여전하며, 말레이시아 수퍼 리그(1989년부터 M 리그라는 명칭을 썼다가 2004년부터 수퍼 리그로 바꾸고 2부리그는 프리미어리그로 이름을 바꿨다.)의 Selangor FA처럼 인기있는 팀은 평균관중이 4만이 넘는다. 황금기는 라이벌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리그에서 활동하던 시절. 싱가포르 라이온과 Selangor FA는 리그의 최강자이자 최대의 라이벌이었으며 이들이 말레이시안 컵 파이널에서 붙으면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불타오르곤 했다.하지만 1995년 이후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리그에 참가하지 않고 자국 리그인 S리그를 운영한다. 다만, S리그에는 말레이시아 팀이 하나 참가하고 말레이시아 리그에는 라이온스 XII가 참가한다.
국대에 대한 것은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또한 수도인 쿠알라룸프르에는 아시아 축구 연맹 본부가 위치해 있다.
배드민턴도 인기가 많은 편인데, 이는 빈약한 스포츠환경에서 전국민이 편하게 즐길수있는 스포츠중 하나이기 때문이며 말레이시아에는 리총웨이(Lee Chong Wei, 李宗偉(이종위)라는 국제적인 배드민턴 선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말레이시아는 한개의 은메달만을 획득했는데 이 은메달이 리총웨이가 벌어온 은메달이었다.[34]
그리고 영연방 나라답게 필드하키를 꽤 하는 편이다. 필드하키 같은 경우, 2001년에 일본을 제치고 플레이오프 끝에 필드하키 월드컵에도 진출한 바 있다. 아시아 필드하키 선수권 대회인 하키 아시안 컵에서는 4강에 5번 진출하는 성적을 냈다. 2007년 인도 대회에서 사상 최고인 3위를 거뒀는데 조예선에서 일본을 2-0, 3,4위전에서 다시 만난 일본을 5-3으로 이겼다. 참고로 준결승전에서 한국에게 1-2로 패했다(우승은 한국을 7-2로 이긴 인도 공화국). 아시안 게임에서도 제법 강호이긴 한데 남자 필드하키는 은메달 1개,동메달 6개, 여자 하키가 동메달 1개를 받았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남자 필드하키는 4위를 차지했다. 크리켓도 그럭저럭 하지만 크리켓 월드컵에 한번도 나가본 적도 없기에 세계적으로 보면 약체.
또한 가라테도 상당히 잘한다. 역대 아시안 게임 가라테 총메달은 일본이 금 26개,은 10개, 동 7개를 받은 일본에 이어 금 12개, 은 8개, 동 7개인 이란이 추격 중이며 말레이시아는 금 8개, 은 7개, 동 15개를 받았는데 전체 메달 수로 따지면 이란을 제치고 일본에 이어 2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 3개를 받은 일본, 이란에 이어 카자흐스탄, 대만과 더불어 금메달 2개(와 동메달 2개)를 받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 나라에 있는 도시인 조호바루에서 이란 대표팀을 3:2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프랑스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지었다.일본 사람들은 이 일을 조호르바루의 환희로 불려지면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98 월드컵 본선에선 3전전패...일본 관중이 죠 쇼지에게 침세례로 응수
11 말레이시아 출신의 유명인
- 시티 누르할리자 - 말레이시아의 국민 가수
- 양자경(楊紫瓊, Michelle Yeo) - 화교로 미스 말레이시아 출신
- 지미 추(周仰傑, Jimmy Choo(주앙걸) - 유명 구두브랜드 지미추도 중국계 말레이시아 디자이너이다.
- 안젤리카 리(Angelica Lee) - 화교로 홍콩 호러영화 디 아이즈(The eyes,2002)에 주인공 역으로 나왔다. 현재는 홍콩인이 되었는데 남편이 홍콩 영화감독 옥시드 팡이라 그렇다.
- 정이건(鄭伊建, ekin Cheng) - 화교로 홍콩 영화에 많이 나왔다.
- Danny Choo(周國棟(주국동) - 댄스 트루퍼로 유명한 말레이 화교계 오타쿠. 위의 지미 추의 아들로, 출생지는 영국, 주 활동 거점은 일본이라서 좀 복잡하다.
- 토니 페르난데스 - 에어아시아 CEO
- 제임스 완(溫子仁(온자인) - 영화감독. 중국계로 쿠칭 출신이며, 이후에는 퍼스에서 성장했다. 국적은 오스트레일리아다.
- 파우지아흐 라티프 - 말레이시아의 여가수
- 엘라 아미누딘 - 말레이시아의 여가수, 일명 락의 여왕
- 아칙 스핀 - 말레이시아의 가수
- 자리나 자이누딘 - 말레이시아의 배우
12 말레이시아 출신의 가상 인물
- 마리얼레트리 - 카밀라 아마누딘
- ↑ 사바 주 동부 도서, 동부 해안 지역
- ↑ #
- ↑ 영국 동인도회사의 깃발을 참고해 만든 것. 성조기와는 무관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성조기 역시 동인도 회사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있다.
- ↑ 그 외 각 지역마다 다양한 언어를 쓰고 있다.
- ↑ 마래서아(馬來西亞) 연방의 줄임.
- ↑ 2001년 이전에는 쿠알라룸푸르가 행정도 담당했다. 지금도 일부 행정은 쿠알라룸푸르가 여전히 담당한다.
- ↑ 출처 : 최병욱, 『동남아시아사』
- ↑ 하지만 이 역시 정확한 것은 아니다. 최근 발표된 또다른 논문에 따르면 13세기로 보기도 한다.
- ↑ 이런 예를 남아공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남아공은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까지 인종차별을 원활히 하기 위해 흑인 밀집 지역을 넷이나 독립시켰다. 이들 지역 출신 흑인들은 별달리 할 것 없이 날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갔다. 대내적으로는 이들에게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주지 않기 위해, 대외적으로는 '저 흑인들은 남아공 사람이 아니라 흑인 국가에서 남아공으로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에요'라고 주장하기 위해 형식상 독립을 시킨 것이었다. 이들 나라는 만델라 정권이 들어서자 남아공으로 재편입하였다.
- ↑ 소련을 구성하던 15개 공화국 가운데 9개 공화국도 등 떠밀려 독립한 케이스다. 소련 존속에 관한 전연방 국민투표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들 9개 공화국들은 계속 소련이 존속하길 바랐었다. 그러나 권력에 환장한 이 작자가 제 손으로 자기 조국을 파괴시켜 버리며 소련을 구성하던 15개 공화국은 모두 독립국이 되어 버렸다.
- ↑ 다만 정제기술이 없어 대한민국에서 정제된 석유를 역수입하는 형식때문에 산유국치고는 현지가격이 비싼편이다.
- ↑ 일단 말레이시아가 이 일대를 지배하던 영향력이 완전히 소멸되니까...
- ↑ 1998년 KLIA가 개항하기 이전까지는 말레이시아의 관문 역할을 했었다. 당시에는 KLIA가 이 공항을 의미했다. 물론 지금은 일부 저가 국내선만 운용.
- ↑ 1994년 헌법개정 이후 국왕의 권한은 더 축소되었다.
- ↑ 특히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동티모르 등.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은 이들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역시 좋다고는 할 수 없다.
- ↑ 두 나라 다 외국인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내국인을 고용할 수 없다는 증명서가 필요하다.
- ↑ 하지만 누가 얼마나 말레이어를 잘 하는 지 알 길이 없어, 국적 신청을 해 놓고도 빠꾸맞는 일이 한 둘이 아니다.
- ↑ 자국민도 자국 혐오를 보이거나 스스로를 외국인이라 선언하는 행동을 하거나 할 경우 국적 말소의 사유가 될 수도 있다.
- ↑ 굳이 이 말을 넣은 이유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특성 때문. 어디를 가나 대한민국에도 출생신고를 하기 때문에 넣은 말인데, 만약에 말레이시아에 출생신고를 해서 말레이시아 국적을 부여해줬다, 그러면은 대한민국에 출생신고를 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 ↑ 뜬금없이 리오넬 메시를 예시로 든 이유는, (메시의 출신국인) 아르헨티나는 자국민의 국적 포기가 국적법으로 막혀있기 때문. 따라서 아르헨티나 국적을 가진 사람이 말레이시아에 귀화를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 ↑ 추기경에 서임되면 자동으로 바티칸 국적을 갖게 된다.
- ↑ 일반적으로 무슬림 남자의 경우 타종교인과 혼인이 가능하지만 무슬림 여자는 무조건 무슬림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한다.
- ↑ 당장 대한민국에서 혼혈아들의 처지를 생각해 보자. 누구든 막상 외국인 노동자랑 결혼하여 혼혈을 낳고 싶진 않을 것이다. 동아시아인의 순혈주의는 매우 강하다.
- ↑ 타임-라이프 북스의 동남아시아권 자료집을 보면, 이미 1980년대부터 이런 인식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또 최근 한겨레의 기자가 인도네시아에 취재를 갔는데, 마침 테러로 인도네시아 분위기가 흉흉하던 때였다. 그 때 기자를 태우고 다니던 운전기사가 말하길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지는 테러는 다 말레이시아 놈들 짓이라며 편견에 가득차서 까는 걸 보기도 했다고 한다.
- ↑ 대표적으로 2010년대에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해진 알라 호칭 소송과 관련된 기독교 성당 방화 및 사제 폭행 사건이라던지
- ↑ 참고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동말레이시아 원주민들이다. 서부에 비해 동부의 기독교인 비중이 높다.
- ↑ 클란탄 주에서 생겨난 수퍼마켓에서 남녀가 따로 줄을 서야하고 남성의 여성 네트볼 관람 금지와 무속인의 활동 금지와 12월에 등장한 술과 돼지고기를 제공하지 않은 항공사의 등장, 행정수도에서 늘어나고 있는 아랍풍 건물 등.
- ↑ 힌두교나 불교는 극소수로 적극적인 포교를 하지 않으므로 사실상 타겟은 화교교회의 기독교인들, 특히 쪽수가 많은 가톨릭 중국인들이 표적이다. 당장 중국계는 대놓고 이래저래 불이익을 받고 말레이인과 결혼도 금지한다.
- ↑ 단,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영향으로 영국식 영어가 널리 쓰인다.
- ↑ 종종 이런 국가 태생 사람들이 한국와서 밤에 취해 길바닥에 드러누워 자던 한국인들 보고 충격받는 경험이 많다고 할 정도이니...싱가포르는 밤에 돌아다녀도 별 문제 없기는 하다. 홍콩도 밤에는 행인보다 경찰이 더 많이 보일 정도이며 오히려 돌아다니던 사람이 불심검문을 당하기 일쑤다. 서유럽과 호주 같은 데는 치안이 좋긴 해도 한국 생각하고 밤에 돌아다니면 미친 짓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호주의 경우 범죄율이 요즘 갑자기 늘었다.
- ↑ 웬만한 직원구함은 'Malaysian Only'이다. 아주 대놓고 'only'만 큼직하게 대문자로 적어놓면서 골수적인 성향을 여과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직업들의 상당수는 계산원이나 홍보대사라는 점. 그냥 말만 통하면 점원이 어떻게 하는 지를 가르쳐 줘서 시켜주면 끝날 일인데, 이것마저도 자국민이어야 한다는 고집이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
- ↑ 많은 직업들이 특정한 인종만을 고집해서 말레이시아인이면서 타인종들이 '인종차별적'이라고 비판하는 경향이 다소 있으나, 그래도 이런 것도 말만 통하면 시켜준단다. 하지만 외국인이라면 아무리 말이 통해도 안 시켜준다고.
- ↑ 한국에서는 1980년대 중후반에 정착했다.
- ↑ 그래서 리총웨이는 사실상 국민영웅 수준이며, '다토'라는 작위가 그에게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