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8689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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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끊어진 비밀번호

6366677
1982~1988년
롯데
8888577
2001~2007년
LG
6668587667
2003~2012년
KBO 리그 진행중인 비밀번호
한화
588689967
2008년~현재

1 개요

8888577, 6668587667에 이어 KBO 리그가 만들어 냈고, 또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또 다른 전설의 비밀번호.

한화 이글스의 2008년부터 2016년까지의 순위를 나열한 비밀번호로, 이제 8888577을 넘어선 9년 연속 가을야구 탈락의 기록은 물론, 롯데 자이언츠의 4년 연속 최하위에 이은 3년 연속 최하위, 유일한 6년 중 5년 꼴찌, 9위 꼴찌 독식 등의 안 좋은 순위 관련 기록들을 상당히 많이 포함하고 있는 비밀번호다. 그리고 이 비밀번호는 현재 진행중인 비밀번호라서 더 무섭다.

2013년 9월 21일, 한화 이글스SK 와이번스에 패하면서 신생팀 NC에게도 순위에서 밀리게 되었고, 이제 남은 경기에서 전부 이기고 KIA가 잔여 경기 전패를 해야만 겨우 8위를 노려볼 수 있었다. 그리고 9월 22일, SK전에서 패하면서 꼴찌가 확정[1]되었으며 이로서 6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2년 연속 최하위 기록을 쓰며 해당 문서가 생성되었다.[2]

신생팀에게도 10경기 차 내외로 멀어지며 3할 승률도 간당간당한 2013년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 비밀번호가 어디까지 갈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한화는 나름 기반이 튼실한 삼성, 두산 같은 강팀이나 그들보다는 선수층이 얇아도 최소한 적재적소에 필요한 선수는 다 확보해 놓은 롯데, SK, 넥센, NC, LG, 기아와 달리 아예 전력 자체가 없는지라 비밀번호는 LG 이상으로 찍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3]

결국 롯데 자이언츠의 8888577과 비교되는 기사가 나왔다.

2014 시즌에도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10월 3일, 4위 LG가 넥센에게 압승을 거두고 한화가 롯데에게 패하면서 롯데 자이언츠가 찍었던 8888577과 같은 자릿수의 비밀번호를 기록하게 되었고, 2014년 10월 12일, 롯데에게 패하면서 치킨집 전화번호 5886899가 확정되었다. 이날 2008 시즌의 5를 떼고 886899라고 암흑기를 칭하는 기사도 나왔다. 결국 2015년에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여 8888577의 자리수를 뛰어넘어버렸다. 다행히도 살려조로 대표되는 김성근의 선수 갈아넣기 덕분에 2015년에는 어찌됐든 꼴찌를 면하여 롯데의 4년 연속 최하위 기록도 경신하는 일은 없었지만, 2015 시즌 혹사의 후유증이 꽤 클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4] 잘못하면 LG의 최장암흑기 기록인 6668587667(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를 경신할지도 모른다. 이미 김성근 감독 부임 첫 시즌 58868996 단계에서 8자리는 완성되었고 향후 2년 이내에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면 경질 확정이다. 다만 2015년부터 5등까지 가을 야구를 한다는 이유로 맨 앞의 5를 빼고 88689967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한화가 5를 찍은 해에는 가을야구를 하지 못했으니 무의미한 일. 8888577의 롯데도 앞에 5가 있기는 한데, 그때는 양대리그 시절이라 리그 2위 자격으로 가을야구를 했었다.

여담으로 암흑기가 시작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거둔 패배수는 539패. 롯데8888577 시절 쌓은 패배수 538패보다 1패가 더 많다.

2012년 시즌까지만 해도 엘넥한의 일원으로 비슷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10자리를 써나간 LG 트윈스는 2013~14년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해 비밀번호를 끊고 2016년에도 가을야구를 하게 되었고, 한화와 사이좋게 5자리 비밀번호를 써내려간 넥센 히어로즈도 비밀번호 항목 생성을 피한 것을 넘어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및 창단 첫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하위권 탈출에 성공한 데 반해, 엘넥한 해체 후에도 한화는 계속해서 약팀으로 남아 결국 588689967이라는 비밀번호를 써내려가게 되었다.

또 이 비밀번호에 '꼴찌'가 된 해를 반영하면 5꼴꼴6꼴꼴꼴67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 비밀번호 이전 한화가 꼴찌를 한 시즌은 빙그레 시절 창단 시즌인 1986년, 단 한 번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비밀번호 기간 동안만 무려 5번을 꼴찌를 했으니 더 비참해 보이는 기록이다.[5]

2 안습한 역사

2.1 2008년 : 불운의 시작

멀리 보면 2007년부터 조짐이 보였다. 2007년에도 한화는 잦은 장마비 덕분에 생긴 우천 순연을 최대한 이용해서 붕괴된 선발진을 소수 정예로 끌고 가는 게 가능했기에 중위권을 사수하고 가을 야구도 나가봤을 뿐[6][7], 이미 팀 구성의 약점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2008 시즌에는 꾸역꾸역 승수를 쌓으면서 올림픽 브레이크 이전까지 56승 46패를 기록하며 두산에 승차 없이 3위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잔여 경기가 많이 남아 있긴 했지만, 쉬는 동안 전력 재충전이 될 거라 기대했기에 한화의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3주 동안 류현진이 등판한 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패배하며 무너졌고, 결국 후반기 내내 8승 16패[8]를 기록하며 최종 성적은 64승 62패. 4위 삼성과 승차 1경기 차이[9]로 포스트시즌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2.2 2009년 : 본격적인 암흑기의 도래

지난 해 불운이 있었지만, 2회 WBC에서 김인식 감독이 좋은 성적을 냈고, 김태균, 이범호, 류현진이 좋은 활약을 해 주어 올해도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팬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한 전해에 한화는 엄연히 5할을 넘긴 팀이었으며, 강력한 선발 에이스와 훌륭한 중심 타선, 그리고 믿을 만한 마무리를 보유했기에 시즌 전에는 우승을 예상하는 사람도 많았다. 더군다나 개막전에서 SK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등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김태균이 주루 중 홈에서 포수와 부딪치며 뇌진탕 증세를 보이며 전력에서 이탈했고, 이범호김태완 또한 잔부상으로 이탈하면서 급속도로 추락. 유원상, 김혁민 등 유망주의 더딘 성장세와, 정민철, 송진우 등 노장들의 연이은 은퇴로 인해 끝없는 추락을 이어가며 팀 역사상 2번째 꼴찌와 팀 역사상 최초의 8위[10]를 기록하게 된다. 김인식 감독이 계약기간 만료로 물러나면서 한화가 고른 새 감독은 한대화 당시 삼성 수석코치.

그러나 한대화 부임 이후 팀은 큰 위기를 맞는데, 바로 FA로 김태균이범호가 각각 지바 롯데 마린즈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한 것. 일본으로 진출한 만큼 당연히 보상금과 보상 선수도 못 받게 되면서 한화 입장에선 큰 손해가 되었다. 거기에 유격수를 맡던 김민재 까지 은퇴하며 한화는 순식간에 국가 대표급 1루수, 유격수, 3루수를 잃어버리게 된다.[11] 암흑의 시대가 도래하였구나!

2.3 2010년 : 태균이도 없고, 범호도 없고

파일:Attachment/2010hanwha.jpg

쩔어주는 근자감.

시즌 시작 전 한화는 시즌 티켓 구매 혜택이랍시고 포스트시즌 입장권을 증정하는 것도 아니고 구매 우선권을 부여한다고해 팬들의 속을 제대로 긁어놨다...

2010년을 맞아 새롭게 들어온 전력은 방출 선수들인 전근표, 정원석마정길에 현금 3억 원을 넥센에 주고 데려온 마일영, 두산에 사정사정해서 트레이드한 이대수, 그리고 외국인 선수 두 명밖에 없었다. 개막전에서 지난 해와 달리 SK에 2연패하면서 출발했다.
이후에도 매번 찬스마다 터지는 병살, 단순한 플라이볼도 잡지 못하는 OME급 수비를 보이면서 추락을 반복한다. 그리고 김태완, 이도형의 부상으로 인해 타 팀 방출선수 출신인 정원석, 전근표가 4번 타자를 맡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그나마 투수들 중에서 류현진이 홀로 고군분투하고 2군에서 돌아온 노장 강동우의 활약으로 5월 7일 넥센 전에서 11연패를 끊으면서 타선의 무게감이 다시 생기기 시작하나...했었다.
그러나 7월 초 송광민시즌 중 입대라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한 술 더 떠서 신검에서 현역 부적격 판정을 받고[12] 퇴소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결국 송광민은 이후 사회복무요원으로 가서 2년 간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외국인 선수호세 카페얀이 11패를 찍으며 십일패얀 일찌감치 폭망하며 방출, 대신 데리고 온 부에노 또한 기대에 못미쳤고, 훌리오 데폴라는 선발로 돌아선 뒤 잘 던지긴 했지만 이미 때가 늦은 뒤의 일[13]이었으니...결국 최종 성적은 49승 2무 82패 0.368로 2년 연속 꼴찌.

그나마 류현진의 1점대 평균자책점, 29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 기록이 위안이 되는 와중에도 구대성, 이영우 등 노장들은 하나둘씩 은퇴하며 사라져 갔고, 젊은 선수들은 죄다 미필에 주전 선수들의 연령층도 너무 높았다.

절망적일 정도로 선수가 없는 상황임에도 구단 프런트는 일본에서 복귀한 이범호KIA 타이거즈에 빼앗기고, 스토브리그에서 최영필, 이도형과의 FA계약을 거부하고 반 강제 은퇴시키는 등 도저히 리빌딩을 하려는 의지가 있는지조차도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기껏 이범호 보상선수로 데려 온 선수가 군 복무를 앞둔 안영명이었다거나 2군 전용 구장조차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2.4 2011년 : 뒤늦은 리빌딩의 시작

시즌을 앞두고 김태완, 황재규가 공익근무요원으로, 정현석은 경찰청에 입대했다. 웬만한 유망주들은 죄다 미필이니 원... 대신 한상훈고동진이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마치고 소집 해제되어 돌아왔지만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4월부터 류현진, 훌리오 데폴라가 털리면서 8위로 추락, 그렇게 3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나 싶었다.

그러나 5월부터 장성호, 강동우의 복귀와 한상훈, 오선진, 이여상, 김혁민의 각성으로 서서히 성적이 나아지기 시작하더니 넥센을 제치고 7위로 올라섰다. 여기에 부진을 책임지고 팀 대표 이사와 단장이 바뀌고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대타 등 한대화 감독의 작전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기 시작하며 한대화 감독의 야왕신드롬이 폭발한다.

이후 부진하던 오넬리 페레즈, 훌리오 데폴라를 퇴출하고 데니 바티스타, 카림 가르시아를 데려왔고, 이대수가 6월쯤부터 맹활약하면서 후반기 약진 속에 최종 성적은 LG와 함께 공동 6위. 시즌 막판에 연패만 하지 않았으면 5위도 가능했고 실제로 구단 고위층에서도 5위 달성시 보너스를 걸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상대 전적으로 따지면 7위가 되기 때문에 2013년도 신인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에 이어 2번째 순위로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더불어 3할을 때린 이대수가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경사도 맞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 이것이 플루크였음이 드러났다. 여담이지만 세이버메트리션 사이에서는 이 해 한화의 6위 달성이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최고 미스테리라고(...).[14][15] 그런데 이거라도 안 했으면 롯데를 넘어서는 6년 연속 최하위라는 대기록을 달성할 뻔 했다.

2.5 2012년 : 탈꼴찌의 기쁨도 잠시 뿐...

시즌 시작 전 FA로 송신영을 영입하고, 일본으로 진출했던 김태균김도망의 복귀, 특별법을 통해 박찬호를 데려오는 등[16] 나름의 전력 보강을 이루었다. 무엇보다 작년에 6위로 탈꼴찌에 성공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리빌딩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시범경기 성적은 3위로 서서히 포스트시즌에 도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해 주었다. 그러나 한화에서 가장 인기 많았던 치어리더였던 김연정은 롯데로 가버렸다.

그러나 선수들과 프런트는 시즌 초부터 성적을 내야 한다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했고, 결국 시즌 초부터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를 보여주며 날개도 없이 최하위 자리로 떨어졌다.[17] 시즌 초부터 대전구장의 리모델링 공사가 늦어져 청주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컨디션이 꼬이기 시작했다. 김태균, 박찬호, 류현진이 분전했지만, 작년 탈꼴찌에 힘을 보탰던 이대수, 신경현, 강동우, 한상훈은 부진그리고 본헤드 플레이에 시달렸으며, 송신영분식회계를 일삼았고, 박정진은 2년 간의 혹사로 인해 일찌감치 시즌 아웃, 가르시아 대신 데려온 브라이언 배스, 션 헨은 먹튀 행각을 보이며 퇴출됐다.

5월 말에는 팀의 성적을 비관한 팬의 한대화 사칭 게시글 사건까지 벌어졌다. 결국 시즌 중인 8월 말 한대화 감독이 전격 경질되고, 한용덕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는 등 우여곡절 끝에 최종 성적은 원점으로 돌아온 8위. 시즌 초반부터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일명 환승역 없는 8호선. 류현진의 7년 연속 10승 좌절과 함께 시즌 초의 꿈들은 전부 산산조각났다. 김태균이 타격왕을 차지했고, 오선진이 주전 3루수로 자리잡는데 성공하였으며, 송창식안승민의 후반기 호투, 한용덕 감독대행의 후반기 팀 운영이 그나마 볼만한 것이었다. 근데 시즌 내내 꼴찌하고도 승률 4할은 찍었다.(.408) 심지어 다음 시즌의 기아와의 승률이 거의 차이가 없었다!!![18]

시즌 종료 후 류현진이 공개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로 진출했고, 양훈의 입대와 박찬호의 은퇴로 선발 로테이션에 구멍이 뚫리게 되었다. 송신영이 NC로 이적했고, 스토브리그에서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등[19] 별다른 전력 보강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한화는 김응용 전 해태, 삼성 감독을 선임하는 초강수를 둔다. 비록 전력 누수는 심했지만, 내년부터는 NC 다이노스가 새롭게 참가하는 만큼, 그리고 김응용 감독이 해태와 삼성 시절 성적이 굉장히 좋았고 해태 말년에 팀이 추락했어도 최소한 꼴찌는 하지 않았던 만큼[20] 최소한 탈꼴찌는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럴 것만 같았다.

1468073893x2372228391.jpg
한화팬이 아이폰 5를 사야만 하는 이유.jpg 그러나 이 아이폰이 한화용으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21]
아이폰은 한화에게 드러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꿇어라. 이게 너와 나의 눈높이다.

2.6 2013년 : 프로야구 최초 9위(...)의 불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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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색깔이다. 그러고보니 한화 상징색보색이다!
#588689의 보색잼
코드넘버 588689잼

시범 경기 때부터 8위를 찍으며 불안감이 커져갔다[22]. 개막전부터 롯데에 2연속으로 역전패하면서 2연패로 시작, 이후 연패를 끊어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힌 김응용의 이해할 수 없는 선수 운용에 힘입어서 KIA - 넥센 - 삼성 - LG에 연속 스윕패하고 개막 13연패(...) 신기록을 쓰고 말았다. 이 때 해탈한 한화 팬을 대상으로 붙은 별명은 보살팬(...). 그나마 NC 다이노스상대로 3연승을 거두며 연패를 끊었고, 4월 21일 두산을 0:1로 이기면서 탈꼴찌에 성공. 그렇게 해서 탈꼴찌까지는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5월 이후 가파른 NC의 성장세에도 미치지 못하며 3할 승률 달성에도 허덕였고, 전반기 종료 후 NC와는 6경기 차이로 9위 자리를 일찌감치 굳히고 있었다.

파일:Attachment/2013hanwhaquiz.jpg

2013년 6월 20일 편파 중계에서는 이딴 자학성 퀴즈나 내면서 팬들의 속을 또 한번 뒤집어놓았다. 이 시점에서도 꾸준하게 바닥을 깔아주고 있었으니...참고로 이날 경기에서도 KIA에게 패배했다.

그렇게 2013년 9월 1일, 넥센전에서 패배하면서 4강 트래직넘버가 소멸했다. 8위 NC와의 경기 차이가 10경기 이상이었기 때문에 탈꼴찌조차도 가능성이 없었던 상황. 그나마 삼성, LG에 뿌린 고춧가루 세례만이 한화 팬들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휴식일이었던 2013년 9월 11일, 롯데가 NC를 꺾으면서 5~6위 트래직넘버도 소멸했으며, 2013년 9월 21일, SK전에서 패배하면서 7위 트래직 넘버가 소멸했고,[23] 9월 22일 SK전에서도 패하면서 탈꼴찌 트래직넘버조차 완전히 소멸, 프로야구 최초 9위의 불명예와 함께 588689가 확정되었고 이 항목이 작성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지난 해에도 SK전에서 패배하며 최하위가 확정되었는데, 비밀번호를 찍기 시작한 2008년 이후는 둘째치고 1986년 7위 이후 최악의 성적인 42승 1무 85패 승률 0.331이라는 성적을 받아들게 되었다.[24][25]


그 뿐만 아니라 팀 성적, 개인 성적도 망해버렸는데, 팀 홈런, 팀 타율, 팀 도루, 팀 평균자책점 등 모든 면에서 8~9위를 벗어나지 못했고, 투수진은 이적생 송창현과 용병 데니 바티스타대나 이브랜드, 마무리 송창식을 빼면 거진 전멸해버렸으며, 작년에 이어 올해도 10승 투수조차 배출하지 못하고 말았다. 타자들도 구장을 넓힌 부작용 탓에 김태균을 제외하면 10 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조차 없을 정도로 위력적인 타선을 상실하고 말았다.[26]

2.7 2014년 : 9구단 체제 2년, 9위 독식 2년

~~한화구단 사무실번호 042-588-6899 참고로 041-588-6899는실제 천안시 국번이다.[27]

FA로 정근우이용규를 영입하고, 외국인 선수로 펠릭스 피에, 앤드류 앨버스, 케일럽 클레이를 데려와서 기대를 모았으나...개막 경기 승리 이후 4월 4일부터 6일까지 SK전을 스윕당한 걸 시작으로 해서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LG가 급격히 추락해서 9위로 떨어지긴 했지만 한화도 8위를 유지했을 뿐 7위로 치고 올라가지는 못했다.

급기야 610 대첩 이후 LG 트윈스와 같이 공동 8위가 되더니 6월 15일 NC전 패배와 LG의 SK 상대 승리가 겹치면서 한화는 9위로 떨어졌다. 6월 21~23일과 7월 1일~3일까지의 LG 3연전을 각각 루징 시리즈와 스윕패로 장식하면서 LG를 7위로 올려줌과 동시에 한화의 9위는 굳어져 갔다. 8월에 12승 7패로 약진하면서 그래도 탈꼴지와 4강 희망을 조금은 품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여전히 탈꼴찌는 요원하였고, 9월달에 KIA를 제칠 수도 있었으나 9월 9일부터 12일까지 넥센전과 두산전 연속 스윕패로 인해 희망은 계속 사라져 갔다. 아시안게임 직전까지 8위와의 승차는 1게임 반.

인천 아시안게임 휴식기가 끝나고 기아와 탈꼴찌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3경기를 연패, 10월 3일 롯데전에서도 패하면서 4위 트래직넘버가 완전히 소멸됐다.[28] 10월 5일 5위인 SK에 패하면서 5위 트래직 넘버도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11:1로 패해 롯데에 밀리는 것이 확정[29], 6위 트래직도 소멸했다. 그 후 롯데보다 경기수가 적은 두산이 6위, 롯데가 7위가 되었는데 10월 8일 두산이 KIA를 이기면서 7위 트래직 넘버가 소멸되었다.

이 시점에서 사실상 꼴지는 확정되었고 기적이 일어나야만 8위인 상황이 되었다. 10월 11일 오전 시점에서 KIA가 4경기, 한화가 3경기를 남겨둔 상황[30]이어서 잔여경기 수로만 보면 한화가 불리했으나, KIA의 상대가 1위 삼성(3경기). 2위 넥센(1경기)이었던터라 이미 4강 탈락을 확정지은 롯데와의 2연전이 있던 한화가 KIA에 비해서 남은 일정상 더 유리하다는 예측도 있었다. 그러나, 한화가 11일과 12일의 롯데와의 2연전에서 모두 패배한 반면, KIA가 삼성에 1승(11일)1패(12일)를 거두면서 8위 트래직 넘버마저 완전히 소멸, 3년 연속 꼴찌, 2년 연속 9위[31]가 확정되며 이 항목도 5886899로 갱신되었다.

13일엔 시즌 마지막 홈 경기를 치렀는데, 최근 수년간 마지막 홈 경기에서 보여준 좋은 모습을 기대했지만, 올해는 그마저도 없이 삼성에게 22:1이라는 핸드볼 스코어로 떡실신당했다. 2014 타고투저야구 피날레 그 와중에 올해 나름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 신인급 외야수인 장운호 선수가 헤드샷을 맞고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가는 일까지 벌어지며 최악의 시즌 마지막 홈 경기가 되고야 말았고, 관련 기사의 덧글에는 "내년에 10위 하면 16진수 써서 5886899A 하면 되겠다"는 등의 드립이 이어졌다(...) 왠지 드립이 아닌 것 같다. MLB, NBA 꼴찌는 U[32] 36진법이냐

사실 2년 연속 꼴찌보다 답이 없어 보이는 건 세부적인 성적들. 류현진 판 돈을 팀에 투자했다는데 팀 순위 9위, 팀 실책 1위, 팀 방어율 신기록[33] , 팀 득점 9위, 팀 피홈런 1위, 팀 홈런 8위[34], 팀 실점 1위, 팀 병살 1위, 팀 탈삼진 9위, 팀 장타율 9위, 팀 피안타율 1위의 참 주옥 같은 기록들은 한화 팬들이 도저히 내년을 기대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프런트는 정신을 못 차렸는지 다음 감독은 철밥통 코치들 중에서 내부 승격이 대세라고 한다. 그나마 물망에 오른 한용덕이나 이정훈에 대한 팬들의 평가 자체는 그리 박하지 않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코치로서의 기량에 대한 것으로 1군 감독으로서의 기량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은데다, 내부 승격했다가는 프런트와 코치진의 일명 "칰무원"들이 갈아치워질 리가 없기에 5886899A 확정 더 기나긴 암흑기가 초래될지도 모르는 상황. 해당 기사가 나오자 타 팀 팬들은 비웃고 있고 한화 팬들은 우릴 호구로 보는 거냐면서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한화는 타 구단이 해체되어 다시 사라져 7,8,9구단 체제가 되지 않는 이상 KBO 역사상 최초 7위, 최후 8위 꼴찌, 최초 9위, 최후 9위 꼴찌를 달성한 팀이 된다.(...) 타 구단이 해체되어서 사라진다 해도 기록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2.7.1 2014년 보이지 않는 희망

2012년부터 건설한 새로운 2군 경기장인 서산 야구장 이 완공되면서 체계적인 2군 육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2군 구장은 KBO 내에서도 수준급인 시설로 알려져 있다. 또한 2012년부터 드래프트 이외에도 가장 많은 신고 선수를 영입하고, 2012년 천안북일고를 우승시켰으며 육성에 있어서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이정훈 감독을 2군 감독으로 선임하며 뒤늦게나마 육성 체계를 완성시켰다. 문제는, 2014년에 이상군이 육성군 코치로...왓더?! 그래봐야 실권없는 명예직이다.

류현진LA 다저스로 가면서 남겨준 2500만 달러의 포스팅 금액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 2013년 FA 시장에서 그걸로 화끈하게 질러 버렸다. 먼저 이대수 4년 20억원, 한상훈 4년 13억원, 박정진 2년 8억원으로 내부 FA 후보자를 잔류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정근우를 4년 70억원, 이용규는 4년 67억원으로 영입하며 FA 빅4 중에서 2명을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2014년 시범경기에서는 3월 15일까지 한화 이글스는 팀 평균자책점 1위라는 괜찮은 성적을 냈다. 관련기사 다만, 이 기사가 나오자 마자 3월 16일 경기에서 LG 에게 12:2 로 대패했다. 시범 경기라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경기가 아니라, 팀의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 이 선수 저 선수 투입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불 지를만한 애들이 질렀다 여튼 투수진 문제는 2014년 한화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외국인 선수를 통해 선발진 문제는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겠지만 빈약한 계투진이 해결되지 못한다면 한화의 리빌딩 기간이 생각보다 오래 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2015 시즌부터는 kt wiz도 1군에 합류하기 때문에 자칫 A를[35]두자릿수 순위마저 찍을 수도 있다. 9호선을 넘어 혼자 공항철도 탑승.[36] 사실 보안문제가 대두되는 현대사회에서 비밀번호에 영문자를 넣으려고 하는거라 카더라.

하지만 부실한 투수진을 결국 극복하지 못한 채 2014년 10월 12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패하면서 3년 연속 최하위(8위, 9위, 9위)가 확정되었고, 희망고문은 그저 희망고문이었을 뿐이다. 최다 연속 최하위 부문에서도 8888577의 롯데와 타이 기록을 세우기까지 1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이 팀은 솔직히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안 됩니다 너희의 빛은 꺼졌다. 이제 끝났다. 아~~~!! 제대로 망했어요!!!

그나마 투수진에 비해 양호한 야수진의 경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닌데, 구장을 넓힌 부작용으로 인해 20홈런 타자가 배출되지 않고 있으며, 프로 11년차인 이용규최진행, 김회성과 함께 1군 야수진 중 막내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력 선수들이 대부분 30대 이상으로 팀의 평균 연령층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운 좋게 비밀번호를 끊어낸다 하더라도[37] 한화의 전통인 들쭉날쭉한 성적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FA나 트레이드로 전력 보강을 시도한다 해도 이런 고참/주력 선수들이 부진에 빠지거나 타 팀으로 이적/은퇴했는데 유망주/신인 선수들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다면 지속 가능한 강팀으로의 성장이 불가능할 뿐더러 실질적인 암흑기는 더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8 2015년 : 미래를 불태우며 성적을 얻었지만 결국 가을야구 실패

시즌 초반 한화팬들 : 성적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태워도 좋다
성적지상주의류 甲 그리고 후반기 팬들은 이런 발언을 한 것을 후회했다

2015년 성적에 따라서는 최초 7위, 최초 9위, 최초 10위를 모두 가져가는 팀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다행히 신생팀 kt wiz이 잘 망쳐줘서(?) 다행히 그 일은 면했다. 옛날에 대전 연고였던 모 팀 덕분에 최초 8위까지 챙기는 것은 면하게 되었다. 후임 감독이 얼마나 리빌딩을 잘해주냐가 탈꼴지 및 비밀번호 탈출의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

2014년에 FA의 대어를 낚으며 팬들에게 희망고문을 선사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째 꼴찌를 이어 갔다.애초에 투수진이 막장 of 막장인데 가을 야구 한다는 발상이 웃기긴 햇지만 만약 그대로 이어졌다면 2015년도 그냥 포기하는게 나을 분위기였으나, 한화 수뇌부는 2014년 10월 25일에 김성근을 감독으로 선임했다. 김성근씩이나 되는 감독을 데려온 것 자체가 구단이나 팬 입장에서는 더 이상 하위권 전전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고 당장의 성적을 내주길 바라는 의도라는 평이 많다.

김성근 감독의 이야기에 따르면 근본부터 문제점이 많으며, 특히나 체력에 있어서는 독립 야구단으로 존재했던 고양 원더스 선수들보다 심각하다고 말해 한화의 근래 처참한 성적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김성근감독이 이 비밀번호를 깰 수 있을지 아니면 한화의 꼴찌본능이 김응용에 이어 김성근까지 잡게될지 두고 봐야할 듯.김성근도 못고치면 해체하는게 맞는듯 의외로 김성근 때문에 비밀번호가 연장될수도 있다.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프런트에 FA 영입, 그것도 투수의 영입을 직접 강력하게 요청하였는데, 한화 프런트는 이 요청에 한화는 권혁, 송은범, 배영수 3명의 투수 FA를 성사시켰으나 팬들이 원하는 장원준이 아니였고 FA의 큰손이였으나 투자 대비 효율은 의문이였다. 2년연속 7점대 방어율 송은범과 삼성타선을 감안하면 어느정도 한화의 행복수비에 좋은모습을 보여줄수있을지 의문인 배영수에 대해선 펜들에게도 호불호가 갈렸다. 적어도 투자하는 모습은 좋지만 송은범,배영수는 보상선수까지 주면서 대려올 선수인가?라는 것이였다.그리고 이들의 걱정은 현실이됬다

시범경기에서는 신생팀인 KT에도 밀리면서 꼴찌를 기록했다.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일 뿐이고 정규시즌에 들어가면 달라질 것이라 기대하는 팬들도 있지만 지면서도 경기 내용조차도 별로 좋지 않다며 불안해하는 시선도 있다. 과연 한화는 김성근 매직으로 정말 달라질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김성근이 입칰효과에 걸려들 것인가? 팬들은 기필코 전자의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현실은 김성근이 팀을 찍어누르고 있다

일단 4월까지의 성적을 보면 지난 5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13승 11패 승률 .541로 선전했다. 신생팀 kt의 승률 조공이 마음에 걸리긴 하고[38] 더 가 봐야 알겠지만 이 여세를 쭉 몰아간다면 2008년의 롯데와 2013년의 LG처럼 비밀번호에 종지부를 찍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지고 있다. 5월에는 탈보트의 2군행 및 김경언의 부상 등이 겹치면서 좀 삐걱거렸지만 팀 성적은 귀신같이 5할을 지켰고, 6월도 중위권을 사수하는 상태.하지만 8월이 들어서며 DTD의 조짐이..... 안정적인 5위를 사수하다가 8월 중반부터 6위로 떨어졌다.

9월 들어서는 치열한 5위 싸움 전개 중. 악이랑 깡으로 5위 싸움에서 나가리 되지 않고 버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결국 못 버티고 떨어졌다. 감독 한명으로 인해 DTD를 시전하지, 감독 특유의 어그로 유도 때문에 작년 LG 지분 다 가져가 9개 구단 연합(...)의 타도대상이 되었지, 리빌딩 하다가 더 부서져버렸다... 김성근이 종신감독 대열(물론 안 좋은 의미)에 들어간 건 덤. 김성근 영입하자던 팬 청계산에서 봅시다 항간에서는 블랙메탈러 보문산 호루라기[39][40] 때문에 암흑기가 장기화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여기다 막판에 데려온 에스밀 로저스는 NC 상대로 2패를 당한다.

결국 시즌 최종전 kt wiz에게 패배하면서 포스트 시즌 탈락이 확정되었다. 같은 날 SK가 NC를 꺾으면서 kt wiz에게 이겼다고 한들 PS 진출은 실패.

마지막 잔여경기에서 KIA가 4연패를 기록하면서, 한화는 최종 6위로 결정되었고, 비밀번호의 8번째 자리는 6으로 확정되었다. 58868996. [41]

2.9 2016년 : Again 2012 9년째 좌절된 독수리의 가을

2.9.1 시즌 전 전망

2014년, 2015년 연속으로 FA 큰손이었던 한화는 2016년에도 또다시 FA 큰손으로 거듭났다.

우선협상 마지막 날, 김태균에게 4년 84억원의 대박을 안기며 프랜차이즈 스타를 예우했다. 또한, 조인성도 2년 10억원에 재계약을 이어갔다. 그리고, 타구단 협상 이틀 째 2016 FA 대어로 꼽히는 정우람을 4년 총액 84억원에 영입했다. 또한 심수창도 4년 총액 13억원에 싸인하며, 고질적인 투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다시 한 번 천명했다.그리고 심수창 보상선수로 김성근감독이 지명한 재미있는 유망주를 뺏긴다 다만 여기서 심수창 같은 투수는 트레이드로 데려올 수 있는 투수였고 제2의 송은범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만큼 팬들은 의문이였다. 윤길현,손승락도 아닌 2016년 기준 36세인 심수창을 보상선수까지 줘가면서 데려올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점에서 2015년장원준을 놓치고 FA대어는 못 잡는다는 인식에서 정우람을 잡은건 대 환영이지만 3루수가 약한만큼 박석민도 잡거나[42][43] 아니면 정우람1명으로 만족하고 트레이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어야 했다는 여론이 강했다.그리고 심수창/2016년에서 증명됬다
2015년 시즌 커다란 임팩트를 남긴 특급 용병 에스밀 로저스와의 재계약 여부가 이슈가 되었는데, 총액 190만 달러(계약금 20만 달러 + 연봉 170만달러)에 재계약 했다고 12월 2일에 발표했다. 이는 2015년 더스틴 니퍼트의 150만 달러를 크게 넘어서는 기록이다.

이번에도 포스트시즌 못 가면 말이 안 된다라는 말이 한화 팬들을 넘어서 다른 팬들에게도 공공연히 입에 오를 정도로 한화의 2016시즌 준비 행보는 과감하다. 보상선수 문제로 인한 신인자원 약화 등의 문제를 감수하고서라도 현재 즉시 쓸 수 있는 정우람, 심수창을 영입하고 김태균을 후하게 대우하며 붙잡는 등 180여 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썼고, 에스밀 로저스와도 190만 달러라는 거액에 재계약 했다. 또한 삼성넥센 나는 일이 발생하면서 치고 올라갈 공간도 넉넉하게 마련되었고, [44] 다른 팀 역시 공격적인 투자로 선수진을 보강했다고 하나 그 비용과 이름값에 있어서 이번만큼은 한화를 넘어설 구단이 없다. 따라서 반대로 이번에마저 포스트시즌을 구경하지 못한다면, 한화는 또다시 미래를 팔아 현재를 산 댓가로 나락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시즌.

구단에서 재차 추가로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으므로 우승은 힘들어도 2/3위는 해야 하고, 최소 4위는 해야 할것이다. 그래도 5위면 가을야구 간다는 명분은 있지만, 6위 이하는 위험하다. 더구나 상위팀 전력이 죄다 약해진 걸 생각하면. 만약에 꼴찌 가능성이 아예 없는건 아니지만 를 한다면 무슨 일 날지 신 빼곤 모른다. 김성근 본인으로서는 2016년이 반세기 감독인생 중 최대 위기인 시기고, 최근의 한화 이글스가 김성근에겐 역대 최고의 강적이다. 2015년은 한화 이글스의 판정승으로 인해 1차전은 한화 이글스의 승리. 김성근이 한화 이글스 손아귀에서 제대로 죽어서 나올지 어떨지는 신만이 안다. 과연 김성근이 한화의 손아귀에 죽을까, 한화가 김성근의 손아귀에 죽을까? 결과는 한화가 김성근 손아귀에 죽었다.

2월 9일 일본 고치현에 위치한 시영 구장에서 일본 시코쿠 독립리그 구단인 고치 파이팅독스와의 연습경기에서 4-8로 패했다. 9회초에만 6점이나 내줬다. 이 게 우승후보로 거론되는 프로팀이 맞나 싶다. 게다가 고치 파이팅독스는 프로야구 구단도 아니고, 독립야구 구단이다. 독립야구단한테 패하는 프로팀 2월 12일에는 김민우의 역투에 힙입어, 5-0으로 영봉승.
2월 14일 일본 오키나와 킨스타디움에서 열린 2014~2015년 일본 퍼시픽리그 2년연속 꼴찌를 기록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에서 0-4 영봉패를 당했다. 이쯤 되면 한심해진다 여기다가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선수들은 거의 1군 백업 또는 2군급이였고, 한화는 강경학, 김경언, 최진행 등 1군급을 콜업해놓고도 영봉패했다는 것. 라쿠텐이 일본의 한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만년 하위권을 면치 못 하는 팀인 걸 보면, 답이 없다.
이 것도 모자라서, 2월 16일에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2군과의 연습 경기에서 4-5로 역전패한다. 강경학, 김경언 등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영봉패한다. 참고로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센트럴리그 바닥을 기는 그야말로 답 없는 팀임에도 불구하고, 1군도 아니고 2군에게 패했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참고로 한화가 상대한 DeNA 2군 선수진들은 1할~2할을 오가는 거진 백업이며, 몇 명의 선수들은 아예 1군 경험도 없다. 이런 팀에게 패한 한화는.. 아 망했어요.[45] 작년 한화는 시범경기 꼴지였다.

그런데 3월, 시범경기가 재개되자마자 모두의 예상을 깨고(...) 파죽지세로 12일까지 전승을 달렸으나 13일 삼성전에서 8대 1로 대패하면서...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시범경기 결과 승률 0.563 으로 4위를 하였다. kt정도를 제외하면 묘하게 현실성 있는 순위표라는 게...

2.9.2 개막 이후 경과, 전반기

2002-2004년 757의 흑역사를 거친 후 실질적인 3위를 해서 흑역사를 단절했던 2005년, 2011년 탈꼴찌 후 만만찮은 전력 보강을 했음에도 다시 꼴찌를 했던 2012년의 갈림길에 선 한화. 그러나... 4월 25일까지 3승 16패 승률 0.158을 기록하며 독보적인 꼴찌를 달리는 중이다. 게다가 시즌 초부터 선발이 무너지고 불펜이 무너지고 수비도 무너지고 타선이 침묵하는 등 팀 자체가 총체적 난국이다.2012년보다 더한데?

게다가 더 큰 문제는 2군마저 박살났다고 한다. 4월 25일 기준 2군도 2승 1무 12패 승률 0.143으로 남부리그 최하위인 상황. 아래에서 받쳐주지를 못하니 1군의 붕괴는 이미 예정된 수순이다. 틀렸어. 이대로 가다간 58868996A[46] 찍을 기세야.

5월 당시 9위와도 승차가 상당했고 대부분사람들이 한화가 10위로 끝날거라는 예상에 의심이없었다.여기에 김성근 감독까지 부상으로 이탈하자 한화의 꼴지는 확정이며 82삼미의 팀승률까지 넘을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었다.최초100패이미 백인천 시절 롯데의 암흑기를 훨씬 넘어섰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6월 초순까지도 탈꼴찌를 못하고 있다. 2014년 엘지 트윈스와 비교하는 사람도 있지만 당시 엘지와 달리 한화는 반등 요인 자체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5강은 포기하고 정상적인 팀을 만들면서 탈꼴찌... 아니 세자릿수 패배걱정이나 해야 할 지경이다. 그나마 5월 말 이후 상승세(2910일 만의 5연승, 롯데전 스윕, SK전 위닝 시리즈)라는 게 희망적이랄까...현재 성적은 17승 1무 32패 승률 0.347로 꼴지 KT와의 게임차는 3.

6월 8일 기준으로 6연승에 성공하며 9위 KIA와의 경기차를 1경기로 줄였다, 즉 탈꼴찌가 코앞이다! 6월 8일까지 12게임 11승 (5연승-1패-6연승)이라는 상승세를 보이면서 중위권 싸움에 끼어드는 모양새가 되었다. 6월 11일 현재 3위 넥센의 승률이 0.500이고, 4위부터 10위까지 전부 승률 4할대다. 5위 SK와 3게임차이므로 이런 상승세를 계속 이어간다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6월 18일 현재 다시 꼴찌로 내려갔다...가 6월 21일 NC의 연승을 15에서 중단시키며 고춧가루 다시 탈 10위에는 성공했다.

6월 23일 NC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였으나 공동 9위였던 KT가 두산에 승리한 탓에 반게임차로 10위가 되었으며, 24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패배하여 그대로 10위이다.

돈을 수백억 써가면서 탈꼴찌를 하네마네 이야기가 도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건 넘어가자

6월 30일 기준 여전히 10위. kt가 한화와 반 게임 차라서 잘하면 탈꼴찌를 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kt가 1승을 거두며 1.5 게임 차로 달아났다. 대신 극심한 부진을 겪고있는 삼성과 반 게임차로 좁혀졌다.

김성근은 혹사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음을 CBS 라디오 방송의 인터뷰에서 "한화가 혹사라면 대한민국 전체가 다 혹사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입을 털며 인증했고 7월 2일 두산 전에서 불펜 송신영을 선발로 쓰다 심수창으로 내린 뒤 선발 이태양을 중간계투로 올리는 등 한 이닝에 투수 셋을 등판시키며 온갖 야구 커뮤니티를 폭소와 함께 충격과 공포로 몰고 간 끝에 두산에 7전 전패를 기록하고야 만다. 그룹 회장이 직접 앉힌 데다가 여전히 표 매진을 기록하는 터라 경질은 요원하고...한화! 나는 감독임을 포기하겠다! 백인천을 초월하겠다!

7월에는 에스밀 로저스 퇴출 이후 무려 현역 메이저리거였던 에릭 서캠프를 영입했다. 이 정도 수준의 지원은 소싯적 '돈성'으로 불리며 현대에서 심정수, 박진만 등을 거액에 데려온 2000년대 삼성 라이온즈조차 넘어설 정도로 엄청난 수준. 김성근 감독에게 최대한의 지원을 다 해준 후 그래도 결과가 안 좋으면 책임을 지게 하려는 듯한 전폭적인 지원이다.

7월 8일, 시즌 초반에는 상상하기 힘든 기적의 탈꼴찌에 성공했다.한화 펜들은 2014년 LG를 회상하며 가을야구 기적을 기대하고있다.

7월 10일, 삼성과 단두대 매치에서 결국 승리하여 8위까지 올라섰다. 7위 엘지와의 경기차는 고작 0.5경기. 7월 12일은 마침 또 LG전(...)

7월 14일, LG전에서 위닝 시리즈를 거두면서 7위로 전반기를 마무리 하였다.

2.9.3 후반기

작년과 마찬가지로 기아,SK,LG와 가을야구를 경쟁하고있다시즌 초에는 100패 걱정했는데ㄷㄷ작년과 다른건 삼성의 몰락으로 티켓이 2장이라는 점이다. 6~7월같은 모습만 보여준다면 가을야구도 해볼만하다. 단 2015년에도 투수진의 혹사로 후반기에 퍼졌다는 점을 감안할 경우 성적이 다시 추락할 수도 있다.

그리고 예상을 져버리지 않고 8월 26일 현재 5강권과는 4경기까지 벌어졌다. 동시에 당연하게도 살려조부상으로 이탈하거나 페이스가 떨어지며 타자들에게 얻어맞고 있다. 역대급으로 총체적 난국을 겪고 돈질하곤 거리가 멀어진 삼성이랑 1.5게임 차이다. 수백억을 썼는데도. 김성근 감독은 31경기 남은 시점에서 20경기를 이기면 된다고 하는데 사실상 비현실적인 목표다. 가을야구는 커녕 8위, 9위로 내려갈 걱정부터 해야할 처지. 588689969하게 생겼다 이놈들아 그리고 9월 둘째주에 8위로 내려 앉았다가 다시 7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9월 20일 즈음에는 4,5위인 LG와 KIA에게 내리 깨지면서 5위와 5게임차를 기록, 8위로 내려앉으면서 비밀번호 연장이 거의 확실시 되었다.6~9중에서 뭘 받는지가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9월 29일에는 9위까지 곤두박질쳤다.

10월 2일, KIA가 KT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9년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되었으며, 어차피 한화도 넥센에 졌기 때문에 KIA가 kt에 졌어도 탈락은 확정되었다. 따라서 세 번째 문서 갱신이 확정되었다.

올해의 순위는 6위조차 SK가 전패하고 한화가 전승해도 불가능하다. 한화의 남은 경기는 10월 2일 시점에서 두산, kt, 기아전이라 현실적으로 8~9위로 마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졌으나, 한화가 두산과 kt를 연달아 잡으며 2연승을 기록하여 비밀번호에 7이 추가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결국 기아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5-6으로 이기고 삼성이 SK에 패하면서 7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2.10 여담 : 588689967 기간 중 일어난 일

어째 이 항목이 염소가 떠오르는 건 기분 탓이다

추가바람

3 문제점

가장 큰 문제점은 근 5~10년 동안 신인 육성, 인프라 개선 등 기본적인 투자가 너무 미비했다는 것이었다. 2004년~2009년 동안 다른 구단이 신인 드래프트에서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행사했던 것과 달리 한화 이글스의 경우에는 1년에 겨우 4~6명의 선수만 뽑고 패스했을 정도로 근시안적으로 팀을 운용했고, 그러다 보니 그 때 뽑은 선수들이 성장해 전력을 형성하고 있어야 할 현재 기본적인 전력조차도 없는 게 당연하다.[47] 오죽하면 한화에 FA 정근우를 빼앗긴 SK 와이번스는 FA 보상 선수가 아닌 정근우의 연봉 300%를 FA 보상금으로 수령했을 정도다.[48][49] 정병희, 윤규진, 신주영, 안영명 등 싹수가 보였던 쓸만한 신인들은 김인식 시절 혹사로 빠르게 전력에서 사라졌다. 특히 김인식 감독 초기에 혹사당한 정병희는 이제는 제대로 기억하는 팬들조차 없는 게 현실이며, 결국 FA로 풀린 김민재를 영입하면서 SK 와이번스에 보상선수로 지명되어 이적한 뒤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2010년 말 SK에서 방출당했다. 혹사 - 재활의 반복을 거친 윤규진은 팬들에게 새가슴 의혹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방출생 또는 외국 출신인 정원석, 강동우, 이대수, 박찬호를 데려와[50] 1~2년 정도 잘 써먹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게 신인 선수 육성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이런 선수들은 나이가 있었던 탓[51]에 언제 부진해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신인 지명이나 관리도 엉망이었는데 기껏 뽑은 선수들은 박상규최우석같이 멘탈이 문제가 되는 선수들이 여럿 있었고, 신민기처럼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거나 최진호처럼 뺑소니 사고를 저질러 흑역사가 된 케이스도 있었다. 또한 김용주윤기호같이 자질이 모자라고 몸 상태에 문제가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북일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지명한 경우도 있었는데, 윤기호는 부상이 있는 걸 알면서도 북일고 출신이란 이유 하나로 전준우를 지명할 기회를 버리고 뽑았다. 김용주는 북일고 시절의 혹사도 있었고, 고교 야구에서도 한계가 빤히 보이는 선수였는데도 1지명으로 뽑았다.

결국 저 선수 중에서 김용주를 빼면 모두 한화에서 방출당했다. 망했어요 신인 육성.

특히 투수진 육성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실패했는데, 김인식 시절에 신인 드래프트에서 야수 지명을 줄이고 투수만을 집중적으로 모았음에도 선발 투수의 경우 2007년 세드릭 바워스가 10승, 정민철이 10승과 2.90의 평균자책을 기록한 이후로 2008 시즌부터 류현진을 제외하고 풀타임으로 평균자책 3점대 이하를 기록한 선발 투수가 단 한 명도 없다. 그나마 류현진을 제외하고 2008년 이후 유일하게 시즌 10승에 성공한 안영명이나[52] 양훈, 김혁민 등이 한 시즌이나마 희망을 보여주나 했지만 혹사 등으로 인해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면서 바로 원상 복구되기를 반복. 그렇다고 불펜진 육성은 성공했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닌 것이 같은 기간 동안 한화에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불펜 투수는 2010 - 2011 시즌의 '노망주' 박정진과 2012 시즌 이후의 송창식 정도밖에 없다. 그나마 저 둘 모두 기존의 자원을 어찌어찌 키운 수준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박정진은 나이 때문에 언제 부진해도 이상하지 않고, 송창식은 2013 시즌의 혹사 후유증으로 2014 시즌을 완전히 말아먹었다.

야수 지명을 줄여 부족해진 야수진을 타 팀 방출선수나 신고선수로 때웠지만 그것도 2009년을 끝으로 한계에 이르렀고, 이 와중에 투수진조차도 붕괴되면서 결국 현재의 빈약한 팀 전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나마 매 년 한 명씩을 지명한 포수진에서도 주전 포수 육성에 실패하면서 노장 신경현이 계속해서 포수 마스크를 써야 했을 정도였다.[53]멀리 보면 이 신인 육성의 문제점이 1990년대부터 보였는데, 실제로 한화가 1996년 홍원기, 이영우, 송지만, 임수민으로 대표되는 신인 4인방 이후부터 제대로 육성에 성공한 선수는 끽해야 김태균, 이범호, 류현진, 최진행 정도에 불과하며, 특히 상위 순위로 지명해서 키워낸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54]

군 입대 선수 관리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타 구단의 경우 2004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 이후부터 신인 선수들의 병역 문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선수 육성에 힘쓰고 있었다. 보통 신인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 일찌감치 병역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며 미래를 내다보기 마련인데, 한화의 경우에는 2년 연속으로 드래프트에서 4~6명의 선수만 뽑은 걸로도 모자라 김인식 시절부터 쓰지도 않을 유망주를 군대도 보내지 않고 썩혀놓으면서 기본적인 선수 군 복무 관리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가 2010년 송광민의 시즌 도중 현역 입대 해프닝.[55]

또한 팀 특성 상 이상군, 강석천, 이정훈, 이강돈, 한용덕, 장종훈,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 이영우, 신경현, 제이 데이비스[56]와 같은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굉장히 많았고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 선수들이 1990년대 후반~2013년에 모두 은퇴를 선언하면서[57][58] 전력에 균열이 생겼고, 가뜩이나 신인 육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상황과 프랜차이즈 스타의 은퇴가 겹쳐져 기나긴 암흑기가 시작된 것이다.

감독 선임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모습들이 드러났는데, 일단 김인식 시절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과 1번의 준우승을 달성했지만, 믿음의 야구, 재활 공장장 이미지에 가려진 무차별 투수 혹사와 노장 선호[59]로 인하여 이미 주축 선수들의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던 한화에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다. 한대화 경질 이후 선임된 김응용 또한 2004년 이후 10년 가까운 현장 공백으로 인해 어제 등판한 투수를 다음날 선발투수로 등판시키는 등 1980~1990년대 야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2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고, 팬들의 성원 속에 취임한 김성근 역시 불펜 투수에게 100이닝 이상을 소화시키는 등의 혹사와 무리한 작전/팀 운용 등으로 최신 야구관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여전히 팀의 평균 연령층이 높고 뒤늦은 리빌딩에 나서고 있는 한화와는 처음부터 전혀 맞지 않는 인물임을 증명했다.

흔히 한화의 암흑기를 이 588689967이 시작되는 2008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경우가 많으나, 그 조짐은 이미 2000년대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60] 2년 연속 우승을 노렸던 2000년에는 정민철일본 진출로 인한 투수진의 붕괴로 인해 전체 7위에 그쳤고, 2001년에 잠깐 4강에 들기도 했지만 승률은 겨우 4할 후반에 불과했고 당시 최하위였던 롯데 자이언츠와는 단 2경기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던 상황[61]이었다. 보통 같으면 이 무렵에 리빌딩에 착수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프런트에서는 당장의 성적만을 바라보며 내일이 없는 팀 운용을 감행했다.[62] 그래도 2002~2004년에는 깔아주는 팀들(두엘롯)이 있어서 그럭저럭 꼴찌만은 하지 않으며 적당히 중위권에서 놀았다. 이후 2005년부터 3년 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고 2006년 류현진의 포텐이 제대로 터지며 1번의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지만 딱 거기까지. 들의 고령화가 심각했고, 결국 이 선수들이 모두 은퇴하면서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무엇보다 한화 이글스는 2012년까지 8개 구단 중 유일하게 2군 전용 훈련장이 없었다! 친환경 구장이라고 까였던 KIA 타이거즈도 어쨌든 함평군에 2군 훈련장이 있었고[63], 심지어 당시 매년 선수 팔아서 운영하던 넥센 히어로즈조차도 연고지에서 머나먼 강진군이라 해도 자기네 2군 훈련장을 가지고 있었다.[64] 이 때문에 한화 2군은 계룡대 연병장이나 인근의 대전고등학교 운동장을 전전하면서 연습을 했다. 다른 팀들은 전용 구장에 웨이트 시설에 기숙사에 식당에 재활 센터까지 갖춰놓고 1년 내내 연습시킬 때 한화는 그때그때 남의 운동장 빌려서 눈치보면서 연습하고, 심지어 구장을 못 구해서 퓨처스리그 경기가 연기되는 경우도 있었다. 설령 2000년대 중반 패스했던 신인지명을 모두 행사했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선수 육성이 된다면 그건 기적. 비슷하게 암흑기를 헤메던 롯데 자이언츠가 2007년 상동야구장이 완공된 이후 유망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구단이 얼마나 투자에 미비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65]

단, 한화도 조금은 할 말이 있었던 것이 2군 훈련장 건설이 늦어진 것은 대전광역시 대덕구의 탓이 크다. 2007년 대덕구 신탄진동에 2군 훈련장을 짓기로 양해 각서까지 체결해 놓고 행정 절차 핑계대며 무려 4년 넘게 질질 끌어 삽마저 못 뜬 것. 결국 팀 성적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참다 못해 서산시에 짓겠다고 발표해 버리니 그제서야 대덕구는 양해각서까지 체결해놓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했다며 반박 보도 자료까지 돌렸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다행히 2012년 초 서산시 성연면 서산테크노밸리에 2군 훈련장 착공 계획이 수립되었고, 2012년 12월에 드디어 서산 야구장이 문을 열었다.

거기에다 앞에서 얘기한 몸 상태, 기량 미달 선수임에도 북일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명하는 것과 같이 선수 시절 이름을 날렸거나 프랜차이즈 출신 선수들을 대우해 준다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연수도 없이 코치진에 무혈 입성한 이상군, 송진우, 조경택, 정민철 등 능력 없는 코치들인 속칭 칰무원 때문에 제대로 된 선수 육성이 이뤄지지 않은 부분도 문제를 키웠다.[66][67] 대표적으로 정민철은 투수 기용, 교체 타이밍 등에서 문제점을 드러냈으며, 이상군은 투수 코치로 있으면서 선수들의 구위, 제구, 투구폼 등을 망가뜨리고, 용병 스카우터로도 배스션 헨 같은 수준 미달 용병을 데려와 무능력함을 증명했다. 송신영의 FA영입은 덤. 그리고 송신영은 4년만에 복귀. 조경택 또한 배터리 코치로는 무능력해서 명포수라는 반어법[68]이 등장할 정도였으며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외에도 타이거즈 출신 등 팀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외부에서 수혈한 코치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신인 드래프트의 실패와 무능력한 코치진의 시너지가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게 바로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 매년 마무리 훈련과 스프링캠프에서 지옥 훈련을 한다고 하는데 시즌 초에 보면 오히려 퇴보해 있고, 시즌 말 즈음 가면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싶다가 다음 해에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희망고문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69]

여기에 2011년부터 신생팀 NC 다이노스, kt wiz가 창단하는 변수가 발생하면서 꼴찌하고도 전체 1순위로 신인을 지명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고 있는데, 그렇게 북일 팜의 윤형배, 유희운, 청주고의 주권을 NC, KT가 지명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70][71] 강승호심재윤 등 북일팜 야수들을 LG 트윈스에 뺏기고 나서 지명한 야수들 중 조정원이나 한승택 등을 빼면 1군 경험이 없으며 그나마 한승택은 경찰청 입대를 앞두고 KIA 타이거즈에 FA 보상선수로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조정원 역시 김성근이 제대하는 하주석, 오선진을 써먹겠다고 고집을 부린 탓에 경찰청이나 상무는 못가고, 현역으로 가야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또한 2013년 드래프트에서도 제주도 + 대졸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신인 지명에서도 문제를 드러냈다. 이것은 한일 월드컵 특수로 인해 당시 체육계 유망주들이 전부 축구로 몰려가 버린 탓에 특급 신인이 씨가 마른 상황에서 현재의 하위권 팀들은 치고 올라가는 데 몇 년의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화는 2군 구장 부재, 군 입대 선수 관리 부실 등 팀의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조차도 제대로 짜여 있지 않았던 팀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현재진행중인 암흑기 탈출을 위해서도, 대한민국 야구의 존립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부족한 시스템을 보강하는 등의 노력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 행각을 옆의 실내체육관을 홈으로 쓰는 모 팀이 그대로 재현 중[72]이라는 카더라가 있다.

여담으로 한화 2군은 천안북일고에게 털렸던 전례가 있다(...). 어느정도 막장인 지 알려주는 셈. 그리고 한화의 대한 주변 프로선수들의 인식 악화로 인하여 리빌딩 자체는 앞으로 더 힘들 전망이다. 한화가 우선 지명할 신인 선수들이 패널티를 감수하더라도 지명을 거부하는 사례가 나온다면 한화의 이미지만 더더욱 나빠질 것이다. 말 안듣는 선수들에게 구단이 선사하는 최고의 특효약이 되었다.

팬과 회장도 문제인데 리빌딩을 하려고만 하면 성적이 안나온다고 온갖 비난을 해대고 야구계 사정에 잘 모르는 기업인인 김승연회장이 여론만 듣고 마음대로 해대니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레전드 트레이드 하지말라고 전화로 훼방놓고 결국 돈먹는 잉여가 되버린 사건은 유명하다. 가장 최근 사건이 김성근 감독 영입건인데 프런트의 의견은 무시하고 김성근사단을 어마어마한 거액을 주고 앉혀왔는데 당연히 김성근은 30년간 해왔던 본인스타일대로 하고 한화는 그걸 버틸 팀이 아니었다. 리빌딩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팀에 단기적으로는 강한 듯 보이나 장기적으로는 팀 뎁스를 아예 때려부수는 자칭 야신을 명장이랍시고 앉히고 절대 권력을 줘버렸으니...

2016년 9월 기준 한화 선수진의 나이는 31세다.[73] 그나마 올해 주목받은 젊은 선수는 양성우, 하주석, 이태양, 김민우, 김재영 정도로 아예 없지는 않지만, 양성우와 하주석은 최진행의 부상과 권용관 등 내야진의 부진이 아니었다면 올라와보지도 못했을 선수들이고, 둘 다 군대에서 몸을 만들어 온 것이지 김성근이 딱히 뭘 해준 것은 없다. 이태양은 김응용이 밥 지어 먹이며 키운 걸 2015년 김성근의 과도한 훈련으로 토미 존 수술을 받아 시즌 아웃된 뒤 바로 다음 해에 재활 등판의 명목으로 올렸음에도 겨우겨우 잘 던져주는 것이고, 불펜 알바를 간혹 할 때마다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한화의 10년을 책임질 수 있었을 김민우는 안 그래도 두 번의 수술과 부상 위험이 큰 투구 폼과 구종을 가진 선수임에도 작년부터 보직없이 굴려지고 특투와 투구 폼 교정을 받다가 '우완 류현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어깨 관절와순 손상으로 고인이 되어버렸다. 5년간 어깨 재활로 신음하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전병두처럼.[74] 시범경기에서 4경기 15이닝 ERA 0.60의 무시무시한 피칭을 보여준 대졸신인 사이드암 투수 김재영은 잦은 퀵후크와 보직 변동으로 본래의 구위와 제구력을 잃고 2군에 주로 머물렀으며, 여러 차례 병살타를 유도하는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음에도 점수 차가 7~10점 정도로 크게 벌어지지 않으면 나오지조차 못하고 있다.

3.1 팀 홈런 7659885

분명 한화 이글스는 홈런을 못 치는 팀이 아니였다. 구장이 좁은 덕도 있었지만 빙그레 시절부터 장종훈을 배출했을 정도로, 꽤 홈런을 잘 치던 구단이였던 셈. 02년 3위, 03년 5위, 04년 2위도 모자라, 2005, 2006, 2008년에는 1위도 했었다!!! 심지어 투고타저 시기였던 2006년의 경우, 팀 홈런이 100개를 넘었던 유일한 팀이였다. 그후로도 2007년 2위, 2008년 1위, 2009년 2위로 적어도 상위권이였다. 하지만, 10년도부터 765988을 찍으며, 비밀번호를 찍은 게 재앙의 시작.

2010년부터 점점 줄어들더니, 10년 104개를 기록하며 7위로 어찌 저찌 탈꼴지를 면하긴 했는데, 11년에는 100개도 못 치고, 12년에도 마찬가지로 71개로 점점 줄더니, 13년에는 김응룡의 요구에 따라, 현재의 구장 확장을 했고, 47개로 꼴지를 찍고 만다 망했어요 근데 재미있는 건 2002년~2012년까지 한화는 좌우98, 중앙114로 엄청 작은 편이였다. 단지 구장 크기를 늘렸다고 못 치는 게 아니였다. 14년에는 다시 104개로 백의 자리를 회복했지만, 14년도가 역대 최고의 타고투저였는데도 팀 홈런이 적었다는 건... 2015년에도 130개로 8위로 마무리. 2016년엔 142개로 5위.[75]

3.2 팀 타율 6787877887

2002년, 2003년 7위, 2004년 4위, 2005년 1위, 2006년 3위를 찍고, 2007년부터 6787877887을 찍으며, 흑역사 진행 중. 기아 걱정할 입장이 아니다 이 점은 2016년인 현재까지 와서도 연습경기에서 조차, 일본 리그 꼴지팀인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라쿠텐 골든이글스 2군에게도 영봉패하는 수모를 안겨준 결과가 되었다(...) 2016년 최종 팀 타율은 0.289로 7위.

3.3 팀 평균자책점 688889999

한화 이글스의 가장 중요한 숙제이자 가장 안 풀리는 난제

2002년부터 8685로 안 좋았었다. 그러다, 2006, 2007년 잠시 3위를 찍었으나 2008년부터 6위로 떨어지더니 2009년부터 6년간 계속 꼴찌를 찍다가 2015년부터 겨우겨우 꼴찌를 면했다. 그런데 2년 연속 끝에서 2위. 게다가 2014년에는 역대 최악의 팀 평균자책점 신기록인 6.35[76]까지 달성하는 굴욕을 당했다. 이건 정말로 큰 문제로, 이런 막장 방어력에 덧붙여 류현진 이후 풀타임으로 3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은 투수가 단 한 명도 없다. 외인투수조차 3점대를 찍은 적이 없다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로, 14년 앨버스 5.89에 13년 이브랜드 5.54와 바티스타 4.20... 애초에 이닝이터 투수조차 전무한 게 한화의 막장 평균자책점이 직면한 현실이다.

게다가 이 문제점이 가장 심각하면서도 가장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데, 2015년의 데이터가 단적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100이닝 이상 던진 투수가 살려조까지 포함해서 5명이나 되지만, 탈보트 4.72에 안영명 5.10 찍고 배영수 7.04. 불펜으로도 나오던 송창식은 6.44이고, 마무리 겸 불펜 겸 살려조의 대표 투수였던 권혁은 4.98이었다. 그나마 윤규진과 박정진이 각각 2.66과 3.09를 기록하고 있는 정도였으나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의미가 없어졌다.

2016년에도 한화 이글스의 확실한 선발투수가 로저스와 안영명 정도고, 김민우나 김범수 등 신인 선수들이 연습경기에서 5이닝 가까이 던져주며 호투하는가 했지만, 역시나 정규시즌에서 잠수를 타니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하여 2016시즌을 마무리해 보니 팀 평균자책점 5.76을 찍고 4년 연속 9위를 달성하는 대망신을 당했다. 84억이나 들여 정우람을 산 보람이 전혀 없다. 뭐 너무 처참히 작살나서 나올 일이 거의 없던 4월을 제외하면 교통사고 후에도 별 생각없이 등판시키고 무작정 2-3이닝을 맡기고 허리통증에도 내보낸 코칭스태프들 탓이 적지는 않지만.

3.4 항상 일어나는 특유의 호구딜

한화 이글스는, 1999년 홍원기↔김경원 트레이드 이래로 말 그대로 호구딜을 일삼았다.

한화에서 일어난 굵직굵직한 트레이드를 살펴보자면,

연도한화에서 이적한화로 이적상대구단
1999홍원기, 전상렬김경원두산 베어스
2000최익성송유석, 신국환LG 트윈스
2004송지만권준헌현대 유니콘스
채상병문동환두산 베어스
2005조영민조원우SK 와이번스
2006정병희(보상선수)김민재(FA)
2009조규수, 김창훈이대수두산 베어스
2010마정길마일영넥센 히어로즈
안영명, 박성호, 김다원장성호, 김경언, 이동현(1979)KIA 타이거즈
이범호안영명(보상선수)
2011유원상, 양승진김광수LG 트윈스
2013장성호송창현롯데 자이언츠
이상훈(외야수)길태곤삼성 라이온즈
한승택(보상선수)이용규KIA 타이거즈
2014이대수, 김강석조인성SK 와이번스
김민수(보상선수)권혁삼성 라이온즈
임기영(보상선수)송은범KIA 타이거즈
2015양훈허도환, 이성열넥센 히어로즈
김광수, 유창식, 노수광, 오준혁임준섭, 이종환, 박성호KIA 타이거즈
박한길(보상선수), 최영환(영입)[77]심수창롯데 자이언츠
조영우(보상선수)정우람SK 와이번스

이 트레이드의 결과를 살펴보자면 매우 참혹한 편이다.

일단 1999년의 트레이드를 살펴보자면, 홍원기는 두산 가서 내야유틸로 포텐이 터졌다. 그리고 전상렬도 백업으로 쏠쏠한 활약을 보였다. 반면에 김경원은 부진끝에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조기은퇴했다.

그리고 2000년 트레이드 역시 암울한데, 최익성은 LG로 가서 백업으로 밥값을 했다. 반면에 신국환은 소리없이 묻혔으며(...), 송유석은 해태 시절의 혹사 여파 + 노쇠화가 겹쳐서 1년 반만에 유니폼을 벗었다.

2003년 트레이드는 문동환이 2006년에 부활했으며 채상병이 홍성흔이 지명타자가 되자 짧게나마 주전 포수로서의 구실을 했기에 윈윈이라고 볼 수는 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권준헌↔송지만 트레이드는 한화의 역대급 호구딜이었는데, 권준헌은 2년밖에 못 써먹었었다. 반면 현대로 간 송지만은 모든 타선을 오가면서 팀의 4번째 우승을 이끌었으며, 42살까지 현역에서 활약했다.

조영민과 조원우의 트레이드는 한화의 승리라고 볼 수 있겠고, 김민재 FA도 한화가 득을 본 경우이다. 또한 김창훈, 조규수를 이대수와 바꿔온 트레이드 역시 한화가 큰 이득을 봤다.

장성호, 김경언, 이동현을 기아에서 받아온 트레이드도 결과적으로 보면, 김경언의 대폭발로 한화가 큰 이득을 봤다. 물론 트레이드의 메인인 장성호는 퇴물이 됐지만, 결과적으로 나중에 롯데에서 송창현과 바꿔왔으니(...). 반면 기아로 간 안영명은 불을 지르다가 반년만에 돌아왔으며, 김다원은 0툴 플레이어라고 까이고 있다. 박성호도 후술할 트레이드로 다시 돌아왔다.

2011년에 김광수와 유원상+양승진을 바꾼 트레이드를 보면, 김광수는 LG에서 그럭저럭 던지던 투수가 말 그대로 한화에서는 김광숯으로 전락했다. 반면 유원상은 LG 불펜에서 밥값을 하였다.

그리고 장성호와 송창현을 바뿐 트레이드는 한화가 이득 본 트레이드 이다. 첨에는 2천안타의 장성호를 웬 듣보잡 신인 투수와 바꿨나 싶었지만, 어차피 장성호는 1루와 지타 밖에 볼 수 없었고 김태균, 김태완 등의 1루, 지타 자원은 많았기 때문에 교통정리의 필요성이 있었다. 혹자는 1+1을 생각하는데, 트레이드라는게 말처럼 딱딱 맞아 떨어지는건 아니다.

2013년에 이상훈과 길태곤을 바꾼 트레이드는 둘 다 이득이 없는 트레이드 였지만, 그나마 삼성이 약간은 이득인게 길태곤은 2군 신고선수로 강등되었지만, 이상훈은 삼성에서 신고선수로는 강등 안되었다는 정도이다.

2014년에 조인성과 이대수를 바꾼 것은 한화가 이익을 봤지만, 조인성의 경우는 고령인지라 언제 은퇴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게 문제이다. 그러나 하주석, 강경학 등이 돌아올 시 포지션 중복 등의 문제로 인해 교통정리가 필요한 시점에서 잉여 자원과 베테랑 포수의 교환은 한화의 무조건 적인 이득이다.

문제는 암흑군주 김성근이 온 후 희대의 호구딜이 2번이나 터졌다.

시즌 초에 넥센과의 트레이드부터 시작해보면, 양훈은 이지풍과 손혁이 다시 살려낸 후 넥센의 토종 선발로 활약했다. 이성열과 허도환은 대타와 백업포수의 위치를 부여받아 1할 후반~2할 중반대에 머무르고 있다. 양훈이 2016시즌에 부진했다는 이유 만으로 이 트레이드가 한화의 손해가 아니라 이득이라는 의견도 일부 팬들이 내놓기는 하는데 가끔 나오는데 당연히 장기적으로 선발투수의 가치는 대타와 백업포수에 비해 높으니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그러나 어찌 보면 기아와의 트레이드가 더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다. 일단 김광수는 기아 불펜의 수호신이 되었고 2015와 2016시즌에 한화전에서 구원승이나 세이브 등을 가져갔다. 특히 이 트레이드가 한화 팬들에게 어마어마하게 까인 계기가 2015년 7월 31일부터 8월 2일까지의 3연전이었는데 이 기간 동안 김광수와 최영필이 기아 불펜을 캐리했기 때문. 둘 다 공교롭게도 한화에서 나온 투수들이다. 여기에다가 오준혁과 노수광은 김기태 감독 아래에서 1군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기아 외야의 미래가 되었고 특히 노수광은 김주찬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외야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했다. 물론 메인 카드였던 유창식이 망테크를 타긴 했지만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78]

반면 임준섭은 부상으로 인해 몇 번 모습만 드러내다 군입대했고, 박성호도 부상으로 육성선수 전환, 이종환은 몇 경기 반짝하고 다시 잠수를 타버리면서 기아에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조공해버렸다.

이 외에도 한화가 내다버린 최영필이 SK를 거쳐서 KIA에서 부활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6668587667 시절의 LG 트윈스와 더불어 아낌없이 타 구단에 선수를 조공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즉전감이랍지고 노장 선수를 사오면서도 호구딜이 자주 일어나는데 2015년엔 송은범-임기영, 권혁-김민수[79] 건이 굵직하게 있었고, 2016년에도 스윙맨 81년생 심수창을 사온답시고 유망주 1994년생 박한길을 롯데에 조공했고, 데뷔 이래 단 한 차례의 선발 등판 기록도 없는 1985년생 정우람SK에서 빼오면서 1995년생 조영우[80] 를 건네주는 등 팀의 미래 따윈 닭 모이로 주는 기프티콘 딜이 또 일어났다. 이들이 전역하거나 혹은 2군에서 기량을 쌓고 1군에서 펄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게 되면 팬들에겐 정신적 고통이 찾아올지도...[81]

  1. 한편, LG 트윈스6668587667 종결도 이날 확정되었다.
  2. 이것도 2011년 한대화 감독 체제에서 6을 LG와 같이 찍어서 망정이지 2011 시즌마저 꼴찌였더라면 롯데 자이언츠8888577을 뛰어넘는 6년 연속 꼴찌라는 대기록이 쓰여질 뻔 했다.
  3. 2017년에도 비밀번호를 찍게 될 경우 LG와 10자리로 동률이 된다.
  4. 게다가 SK 와이번스 시절을 제외하면 김성근 감독이 맡은 팀의 순위는 해가 갈수록 점점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김성근 혹사의 후유증을 대표하는 김성근의 저주라 불리는 징크스도 있다.
  5. 게다가 그 1986년 이후 8년 동안 4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뭐...
  6. 류현진 - 정민철 - - 비 - 비, 류현진 - 정민철 - 세드릭 - 비 - 비...대신 불펜은 필사마, 멍멍이, 쿠옹을 혹사시키는 식으로 때웠다. 그리고 류현진에겐 이 시즌이 한화 시절에 맞이해 본 마지막 가을야구 시즌이었다.
  7. 이 해의 한화는 유난히 우천 순연 경기가 잦았다. 심지어는 9월에도 잔여 경기가 우천으로 계속 연기되어 KIA와의 잔여 1경기는 플레이오프 탈락 후에야 치를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슈퍼 한국시리즈 참고.
  8. 그 막장이라던 2013시즌의 승률과 비슷하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지?
  9. 당시 삼성과의 상대전적에서 뒤졌기에 동률이었어도 4강 진출은 불가능했다.
  10. 빙그레 창단 당시에는 7개 구단 밖에 없었으므로 8위는 이번이 처음. 꼴찌 경험은 빙그레 원년에 한 번 있었다.
  11. 셋 다 모두 2006 WBC 국가 대표였다. 김민재는 2루수 등 내야 유틸리티이긴 했어도 애초에 수비 때문에 뽑힌 만큼 수비 능력은 탁월했다.
  12. 시즌 중 입대라는 해프닝도 문제지만, 현역 군복무에도 부적합한 선수를 주전으로 올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13. 사실 초반에 마무리 보직에서 헤메다가 다시 선발로 전업한 케이스다. 2년 후에 이런 일이 또 벌어진다
  14. 사실 2007년 한국프로야구 미스터리양준혁, 김동주의 도루를 제외하면 세이버메트리션들은 엄청난 플루크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반해 한화의 6위는 진짜 설명하기 힘들다. 실제로 팀 득실점으로만 승률을 예측하는 피타고리안 승률은 압도적으로 최하위였다. 이해 한화의 피타고리안 승률은 .387인데, 실제 승률은 무려 .452. 질 때는 아주 개발살(...)이 나고 이길 땐 간신히 이겼다는 소리. 이론상 최강의 전략
  15. 이런 플루크의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 것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대타 성공율이었다. 한동안은 한대화 감독이 대타만 쓰면 무조건 적시타였다. 그것도 이양기, 한상훈, 오선진, 김경언 등등 전혀 타격이 기대가 안되던 선수들이 나오면 무조건 치니까 한화팬들은 열광했고, 야왕신드롬이 폭발했다. 하지만 다음 해가 되자 대타 성공율도 팀 타율에 수렴해버렸고, 위의 선수들도 본래의 타격식물 모드로 회귀했다.
  16. 2007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에서 유일하게 한화만 지명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구단들이 지명 절차를 생략한 박찬호 입단에 순순히 동의해주었다.
  17. 여기에 뒷이야기가 있는데, 2012시즌 직전 자체 전력평가에서 한대화 감독 이하 코칭스탭들은 불안한 센터라인 수비(특히 포수)와 불확실한 선발로테이션을 고려해서 대략 6~7위를 예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야구 모르는 프런트와 모기업의 높으신 분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발끈하면서 작년에 공동 6위였고, 올해 박찬호 김태균이 가세했으니 4강은 기본이고, 가급적 우승을 목표로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실제 한화 이글스 2012년 신년회에선 사장의 선창에 따라서 우승을 외치면서 건배를 했다. 그야말로 선수단 전체가 부담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환경이였다. 프런트는 5월달이 되어서야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았다고 하나, 이미 팀은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18. 정확하게는 2012년 한화의 승률은 0.4076923…이었으며 2013년 기아의 승률은 정확하게 0.408.
  19. 이 때 나온 드립이 시장 질서 드립. 수 많은 한화팬들이 코웃음을 쳤다!
  20. 의외로 해태는 김응용 감독 시절 단 한 번도 꼴찌는 안 했다. 98년에 5위, 99~00년엔 드림리그 4위였지만 전체성적에선 각각 7, 6위를 기록.
  21. 아이폰5 2012년 말 한국 출시, 2013년 프로야구 신생팀 출범, 개막 13연패(...)
  22. 시범 경기 9위는 삼성 라이온즈(...). 근데 삼성은 원래 시범 때 못하는 팀이라...그리고 결국 시범 경기의 뒤에서 1등을 3년 연속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으로 바꿔 버렸다.
  23. 참고로 이 때 탈꼴찌 매직 넘버가 소멸된 팀은 KIA 타이거즈가 아니라 NC 다이노스였다. 기아가 당시 7위이기는 했지만 잔여경기가 많이 남은 탓에 탈꼴찌 확정을 NC보다 늦게 했는데, 결국 최종 순위에서 마저 NC에게 밀렸다.(...)
  24. 심지어 85패는 구단 역사상 한 시즌 역대 최다패 기록. 승률 또한 역대 프로야구 사상 최저승률 10위에 해당한다.
  25. 1986년 이후: 1988년에 바로 한국시리즈 진출. 2013년 이후:(...)
  26. 한화는 빙그레 창단 시절부터 매 시즌 10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가 꼭 있었다. 이것도 김태균이 1002 대첩에서 홈런을 쳐서 망정이지 자칫하다가는 이 전통마저 끊어질 뻔했다.
  27. 실제 한화 이글스 전화번호는 042-630-8200이다.
  28. 더불어서 LG 트윈스는 2014시즌 꼴찌를 완전히 면하게 되었다.
  29. 이걸로 롯데는 10년 연속으로 최하위를 면했다.
  30. 17일 KIA와의 맞대결은 제외
  31. 더불어 2015시즌부터는 kt wiz가 참가하기에 최하위 팀의 순위가 9위가 아니며 당연히 9위로 최하위를 기록할 수 없다. 따라서 한화 이글스는 KBO 역사상 유일하게 9위로 최하위를 기록한 팀이 되었다.팀 하나가 해체되면 또 _모른다
  32. U는 21번째 알파벳, 9+21=30. 물론 진지빨고 말하면16진수는 0부터 F까지이므로 30은 1E가 맞다.
  33. 삼미 슈퍼스타즈가 6.23의 팀 방어율 기록을 갖고 있었는데, 10월 13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무려 22실점을 내주면서 팀 방어율 6.35를 기록해 한화가 삼미의 기록을 뛰어넘게 되었다.아무리 2014 시즌이 워낙 심한 타고투저 시즌이긴 했으나...
  34. 팀 홈런 9위는 LG 트윈스지만 LG는 대전보다도 규모가 큰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데다가 같은 잠실 야구장을 쓰고 있는 두산 베어스와는 다르게 팀 컬러 자체가 소총병이기 때문에 이걸로 위안을 삼기에는 너무 처참하다.게다가 LG는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다.
  35. 16진수로 바꾼다면 가능해진다. 한 자릿수밖에 표시할 수 없는 전광판에서 두자릿수를 표시하는 방법과 동일하다.
  36. 공항철도의 역번호는 A로 시작한다. 1호선 서울역이 133이듯, 공항선 서울역은 A01.
  37. 애초에 이것 자체도 거의 불가능한게 기록상으로도 장명부의 한해 30승같이 비정상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전년도 최하위에서 바로 순위권에 들어간 팀 자체가 없는데다가, 팀 자체가 유래없을 만큼의 심각한 내분 상태라(1992년의 경우는 잘나가기라도 했다.) 내년에 4강간다는 말을 농담으로도 하는 사람 자체가 김성근 감독 취임 이전까지는 아예 없었다. 최하위는 아니지만 전년도 8팀중 7위가 다음해 우승한 적은 있다.
  38.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시기까지 한화는 kt와 만나지도 않고 이 승률을 달성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kt 3연전에서는 루징시리즈
  39. 한화 선수들도 싫어한다고...
  40. 근데 다른 사람이 차기 감독으로 다 김성근 외칠때 한용덕 외쳤다는 건 함정
  41. 10월 5일 경기결과 KIA 의 마지막 1경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한화는 최소 공동6위가 확보되었기에 이미 58868996으로 업데이트 되었다.
  42. 3루수가 약해서 오죽하면 김성근 감독이 로사리오를 3루,김태균1루를 쓰려고 했다. 로사리오가 3루 수비에 적응못하면서 흐지부지됬지만 박석민이 FA로 한화에 왔다면 이용규-정근우-김태균-로사리오-박석민으로 이어지는 강타선이 구축될수 있었다.
  43. 박석민을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김성근이 크게 화를 냈다는데, 정우람, 박석민 둘 다 잡았다면 외부FA영입 만으로도 당해 200억을 가볍게 넘긴다. 오죽하면 친 김성근 기자인 박동희조차 박석민까지 잡았다면 한화 투자액은 천문학적으로 뛰어올랐을 것을 인종할 정도다.
  44. 멀리갈 필요도 없이 당장 2게임차 5위인 SK에서 정우람을 빼왔다. 반대로 작년 비슷한 순위의 경쟁팀인 SK와 KIA는 스토브에서 거의 손놓고 있었다.
  45. 하지만 연습경기는 어디까지나 연습경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이때부터 승리를 얻기위해 무리했다간 오히려 승리가 필요한 정규시즌을 망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규시즌전 개최되는 시범경기도 그저 시범경기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게 말이 되려면 시범경기 최강자인 롯데가 정규시즌을 그정도 우승해야 말이 된다.
  46. 만약 2016년에 꼴찌를 할경우 번호의 확실한 구별을 위해 10진법으로 10이 붙는게 아니라 16진법으로 A가 붙는다. 물론 0이 붙으면 그 앞에는 1이 붙는 게 뻔하기 때문에 0만 쓰거나 10으로 써도 구분은 가능하다. 물론 11팀 이상으로 넘어가버리면 불가능하다.
  47. 2005 - 07년 충무로역(423)시절이 오히려 독(588689967)이 된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48. 본래 SK는 한승택을 지명하려고 했지만 KIA 타이거즈에서 이용규의 보상선수로 먼저 선택하는 바람에 별 수 없이 보상금으로 받았다고 한다.#
  49. 배영수를 보낸 삼성 라이온즈 역시 결과적으로는 보상금 300%를 받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상선수 정현석의 건강 문제로 인해 정현석을 지명해 놓고 지명 취소를 할 수 없어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배영수 연봉만큼의 돈을 더 받아간 것이라 경우가 약간 다르다.
  50. 사실 엄밀히 보면 강동우와 이대수는 방출생 출신은 아니다. 그러나 강동우의 트레이드 상대인 신종길의 경우는 한화 시절에는 잉여자원에 불과했으며, 이대수의 트레이드 상대인 조규수, 김창훈 역시 먹튀 신인 1,2 정도의 선수였다.
  51. 사실 저 중에서 이대수의 경우는 당시 젊은 축에 속했었다.
  52. 말이 10승이지, 5.18에 달하는 평균자책점 등 세부 기록은 처참했다. 물론 2009년은 타고투저시즌이였다는걸 감안해야 하며 당시 한화의 불펜진이 불이나 질러대던 탓에 분식회계를 당하기도 했다.
  53. 당장 이 시기에 박노민, 최연오, 이희근, 정범모 같은 젊은 포수 자원은 많았지만 모두 신경현에 비해서 '못해서' 신경현이 계속해서 나와야 했다.
  54. 안영명이나 윤규진 정도도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안영명의 경우는 나름 이닝은 먹어주지만 방어율이 높고, 윤규진은 잔부상 때문에 시즌 중간에 어디론가 사라진다.
  55. 결국 이것도 SK에서 방출된 손지환을 급하게 데려다가 쓰는 선에서 대충 마무리를 지었다.
  56. 말이 용병이지 2003년을 제외하고는 1999년부터 2006년까지 한화에서만 무려 7년을 뛰었다. 그리고 데이비스가 있을 때 그만 믿고 외야수, 특히 중견수 육성엔 손 놓고 있었고 이는 이용규가 오기 전까 외야수비에 문제가 생기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57. 그나마 이강돈과 이정훈의 자리는 1996년에 입단한 송지만과 이영우가 대체했다. 그러나 그 이영우도 은퇴한 시점에서 그의 대체자원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장종훈 역시 2001년에 입단한 김태균이 공백을 메꾸었지만, 그 김태균도 벌써 30대 중반의 노장선수인지라, 거포 육성이 필요한 현실이다. 그나마 이 야수진의 상황은 나은편이다.
  58. 이상군, 한용덕,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이 은퇴한 투수진의 경우는 신인투수들이 대체해 주어야겠지만, 문제는 조규수, 김창훈, 유원상, 양승진, 김혁민 같은 투수자원들의 성장이 영 좋지 못했다는 것이다. 윤규진과 안영명이 두각을 드러내나 싶었으나, 혹사로 인해서 전성기의 기량에 비하면 아쉬운 상황이다.
  59. 사실 이건 2005년 당시에 가장 효과적인 작전이었다. 그게 도를 지나쳐서 문제가 된 것이다.
  60. 사실 한화는 빙그레 이후 1994년부터 2007년까지 1번의 우승과 함께 포스트시즌 진출을 7번 정도에 성공했지만 그것도 정규리그 3~4위 턱걸이에 불과했고, 그 외의 시즌은 대개 하위권에 그치고 있었다.
  61. 이 해는 하위권 싸움이 박터졌기로 유명했었다. 1위와 3위의 승차가 3위와 8위의 승차보다 많았을 정도.
  62. 얼마나 근시안적으로 운용했으면 2001년 시즌 중 외국인 투수를 무려 5번씩이나 바꿔댔다. 결국 이듬해부터 한 시즌 팀당 외국인 선수 교체 횟수를 2번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생겼다.
  63. 심지어 2012년 기아 2군은 남부리그 1위를 차지하기도 했었다.
  64. 물론 재활시설이 부실하긴 했어도, 임창민 같은 사례를 보면 육성 자체는 정명원 코치가 잘 해내기라도 했다.
  65. 어느 정도였냐면 2003년에 한화 이글스에서 활동했던 임재철이 당시 개판 5분 전이었던 한화의 시설에 학을 뗀 나머지, 2004년 차명주를 상대로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될 당시 "롯데보다 X같은 곳은 처음 봤다"라는 임팩트 강한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참고로 임재철은 한화의 메인 팜이라고 할 수 있는 북일고 출신이지만 경성대로 진학했고, 롯데에 입단했었다.성골한테도 욕 듣는 구단
  66. 쉽게 말해서 으리축구로 까였던 홍명보호를 생각하면 딱 좋다. 김응용이 능력있는 일본인 투수 코치를 쓰자고 부탁하는 걸 능력도 없는 주제에 씹은 건 덤이다.
  67. 결국 투수코치는 정민철과 신용균이 맡았지만 마운드 상황은 기아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68. 조경택 항목 참고. 유래는 본인 스스로 명포수라고 자칭했던 인터뷰에서 시작된 것.
  69. 2014 시즌에도 8월 들어서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9월~2014 인천 아시안 게임 휴식기 이후 또 다시 시즌 초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70. 단, 윤형배의 경우 당시 신인 지명은 전면 드래프트였으며, 넥센이 맨 먼저 우선지명을 행사할 수 있었기에 애매한 감이 있다. 하지만 NC의 창단이 없었다면 북일고 윤형배나 대전고 조상우(동산고에서 전학왔기 때문에 순수 충청팜 출신은 아니지만) 중 한 명을 지명할 수도 있었던 상황.
  71. 그나마 한화로서는 다행인게 윤형배가 사이버 투수로 남았다는 것이다.
  72. 드래프트에서 매 시즌 단 한 명만 지명하고 보강은 특정 팀임의 탈퇴 안 걸고 풀어준 선수 주워먹기, 육성 계획 전무, 극한의 외국인 혹사 논란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한화보다 막장이다.
  73. 리빌딩을 외치고 각종 무리수를 일삼던 김응용이 물러날 시기의 한화 선수들의 평균 나이는 28,7세였다. 젊은 선수들로 채워도 시원치 않을 판에 무려 2살이나 선수들 나이를 불려버린 것이다.
  74. 물론 한화팬들은 재활에 성공해 다시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거지 최악이 되길 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감독 팬들이 자신들의 신이 실패한 감독이 되자 혹사 논란마다 '선수가 진짜로 아프길 바라는 거냐, 예의없는 것들아?' 투로 시비를 걸고 있는데 혹사 논란 후 선수들은 거의 다 부상에 시달리거나 구위를 잃어버렸고 설사 심수창처럼 포크볼을 주 무기로 5이닝을 먹어 전날 불펜 등판 후 선발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148km대의 속구를 뿌려준다 해도 무사히 경기를 하는 것이 다행인 것이지 절대로 걱정이 헛된 것이 아니다. 야구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75. 삼성과 공동 5위
  76. 종전 기록은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가 기록한 6.23
  77. 한화서 웨이버 공시 후 영입한 케이스. 공교롭게도 보상선수 지명 후 얼마 안 돼 영입되었다.
  78. 근데 유창식은 14년도부터 승부조작을 했고 김성근이 온 뒤로도 제구난조를 해결할 노력조차 않고 자동차에나 관심을 보이는 등 진짜로 태업을 한 거라 누가 왔어도 (...) 버렸을 카드다.
  79. 두 선수 모두 군 복무 후 기아/삼성에서 새로이 시즌을 시작한다.
  80. 사실 딜 가치로만 놓고보면 KBO 통산 홀드 2위에 10년 통산 방어율 2점대에 국대도 나가 본 정우람과 나이만 어린 조영우와의 비교는 불가능하다. 단지 클로저 하나 구한답시고 FA로 84억을 쏟아부어서 사온 게 문제.
  81. 특히 조영우는 2군에서 그럭저럭 던지며 내년에는 1군에서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저구를 거의 잡은 상태라 혈압 오를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