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KBO 리그에서의 트레이드를 사건별로 기술한다.
세부 제목은 트레이드의 중심이 된 코어 선수 1명으로 최대한 줄여서 서술하고, FA이적이나 방출후 영입같은 선수 이동은 기술하지 않는다.
2 1980년대 초반
KBO 역사상 최초로 이뤄진 트레이드. 다만 현금을 댓가로 이뤄졌으며 최초의 선수 - 선수 트레이드는 바로 아래 나올 트레이드다.
KBO 역사상 최초로 선수 - 선수 간에 이루어진 트레이드.
KBO 역사상 최초의 1대 다자간 트레이드
3 1980년대 후반
트레이드의 사유에 대해서는 최동원항목의 선수협 관련 내용을 참고바람.
최동원, 김시진 트레이드의 후속타 형식으로 이루어진 트레이드.
4 1990년대 초반
- 이말년씨리즈에서 이말년이 싸인볼을 경품으로 주겠다던 바로 그 분.
김준환은 정작 선수로서 안 뛰고 타격코치로서 활동했다. 그나저나 해태는 선수를 주는 입장에서 왜 돈을 준걸까? 그것도 더 많이 아저씨 거슬러 주세요 그래 여기 1050만원
탈쥐효과의 원조.(...) LG로 넘어가기 직전 영입한 백인천 감독의 히트앤 런 전술과 맞지 않아 단행한 트레이드. LG는 그 해 우승했지만 최일언은 3승에 그쳤고 김상호는 OB 이적 후 잠실구장 구단 첫 홈런왕은 물론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일조했다.
같은 날 이와는 별개로 오영일이 LG에서 태평양으로 트레이드되었다.
고원부는 트레이드 직후에 싫었던 김영덕 감독 곁을 떠나 서울 팀에 가게 되어 상쾌한 입장을 보였으나 시즌 중 방출되고 말았다.
LG 프런트는 청룡과는 다르다는 점을 어필하려 했고 이 때문에 92시즌을 앞두고 이광환 감독 선임과 함께 MBC-LG의 프랜차이즈 스타 김재박을 태평양으로 보냈다. 이후 김재박은 1년만에 은퇴했고 코치로 95년까지 활동 후 후신 현대 감독을 맡아 현대왕조를 이끌었다. 그 후 김재박은 07시즌을 앞두고 LG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오랜만에 친정으로 돌아오긴 하는데...
4.12 김력
4.14 구윤
한대화가 비록 1년이긴 하지만 정신적 지주로서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일조했고, 신동수와 허문회도 괜찮게 활약한 반면에 김상훈과 이병훈은 그저 그런 결과를 내면서 LG가 완승한 트레이드.
올드 한화팬들 앞에서 절대로 말을 꺼내면 안될 최악의 트레이드. 당연히 이 트레이드를 주도 및 실행한 사람은 이글스의 금지어이다. 당시 한화팬들은 이정훈 트레이드 안 된다라고 트레이드에 반대한 팬들도 있었다.[1]
5 1990년대 후반
당시 퇴물이었던 류명선을 보내기 위해 김현욱도 보냈는데 정작 김현욱이 김성근 감독 체제 하에서 97년 구원 20승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이라 쓰고 혹사라 읽는다을 하여 쌍방울의 유일한 리즈 시절을 이끌었다.
백골프가 전력 강화를 위해 단행한 트레이드. 이 트레이드를 기점으로 동봉철이 저니맨으로 전락하고 만다.
조현은 2년 동안 그다지 활약을 하지 못하고 해태에 트레이드되었다가 더욱 별 볼일 없는 성적을 남기고 방출. 최훈재가 어느 정도 활약했지만 최향남이 LG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며 커리어 하이를 찍고 송유석도 LG에서 좋은 활약을 했기 때문에 이 트레이드는 LG가 재미를 봤다.
1994년 우승 이후 그저 그런 성적을 거둔 한대화를 보낸 트레이드. 결론은 둘다 손해.
트레이드 발표 직후 강기웅의 잠적으로 사실상 삼성에서 현대로 선수 이적은 없었음. 그리고 강기웅은 은퇴.
IMF 사태로 인해 모기업이 큰 타격을 받은 쌍방울 레이더스가 운영 자금이 궁해지면서 돈을 확보하기 위해 단행했던 일련의 트레이드들, 이들은 대부분 주축선수 ↔ 유망주,현금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쌍방울은 지명권 장사도 했으며, 이 때문에 쌍방울 해체 이후로 KBO에서는 지명권 트레이드가 금지되었다. 주 고객이 현대유니콘스이다
이 트레이드가 이뤄진 이후 김성근 당시 쌍방울 감독이 허탈해했을 정도.
이 트레이드의 결과로 현대에 입단한 선수가 마일영 되시겠다. 어쨌든 이 트레이드를 계기로 이후 KBO에서 지명권 양도는 금지되었다.
현대 피닉스로부터 문동환을 받기 위해 계약금(약 4억원)과 그 이자(약 1억원)의 반환의무를 면제받는 조건으로 단행된 희대의 병신 트레이드.
크보 역사상 제일 불운했던 신인왕이자 사실상 최초의 저니맨 칭호를 받았던 이동수의 여정의 서막이 이 트레이드가 되겠다. 결과만 놓고 보면 양팀 다 이득을 챙긴 케이스. 삼성은 김종훈이 선동열 시절 중반까지 살아남아서 백업으로 꾸준히 나와 줬고, 롯데로 간 박석진은 1999년 플레이오프에서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다.
남두오성의 몰락으로 정의할 수 있는 트레이드. 트레이드 자체는 어느 팀도 제대로 이득을 보지는 못했다.
위의 조규제 트레이드와 같은 날 이루어진 트레이드. 결과적으로 볼 때 박종호를 들여온 현대의 완승이었으며 인천야구의 산 증인이었던 최창호는 그저 안습...
두산은 좌완 필승조를, 롯데는 주전 포수를 얻는데 성공한 윈윈 트레이드.
최익성이 본격적으로 저니맨이 된 트레이드가 이 트레이드다. 최익성은 1999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활약을 하여 팀 우승에 공헌했으나 바로 이듬해 LG로 트레이드 되었다. 트레이드 상대였던 노장진은 그놈의 사생활 문제 때문에 그렇지 삼성에서의 활약은 좋은 편이어서 이후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다.
해태의 자금난으로 인한 주축선수 트레이드와,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양준혁의 트레이드 후 행보가 문제가 되었던 대형 트레이드.
당시 두산의 자금난도 있었고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무은 LG는 우승을 위해 1995년 시즌 OB 우승을 견인한 김상호를 다시 데려왔지만 별 활약 없이 은퇴했다. 그 대신 OB가 유지현 대신 94년 1차로 지명한 류택현이 암흑기 투수진을 지탱하면서 LG도 잃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만수 은퇴 이후 포수난에 시달리던 삼성은 김영진 등을 기용해봤지만 신통치 않았고 때마침 1996년 베어스가 꼴찌를 하면서 얻은 진갑용이 홍성흔에 밀려 자리가 없자 긴급 트레이드 했다. 이후 삼성의 포수 문제는 적어도 2010년대 초반까지는 걱정 할 필요가 없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탈쥐효과의 또 다른 사례
6 2000년대 초반
송유석의 선수협으로 인한 보복 트레이드. 최익성은 이 트레이드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저니맨이 된다.
신생팀 SK의 창단으로 인한 보상 선수 트레이드.
장광호와 함께 신생팀 SK의 창단으로 인한 보상 선수 트레이드. 선수협으로 인한 보복성 트레이드이기도 해서 당시 두산 팬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흔히 양준혁의 선수협으로 인한 보복 트레이드로 알려져있는데 김응용 해태 감독이 양준혁에게 딱 1년만 뛰자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행한 트레이드다. 결과적으로는 손혁만 해태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냥 임의탈퇴되었다.
당시 신생팀으로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던 SK가 타선 강화를 위해 단행한 트레이드.
한창 부진하던 김종석은 이 트레이드 후 잠시 부활한다.
신생팀 SK에 대해 적응을 못한 인천야구팬들이 인천야구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김경기의 이적을 요구한 트레이드. 김경기 본인도 흔쾌히 수락했지만 이후에 입지가 좁아져서 2001년 말 은퇴를 선언한다.
마해영의 선수협 활동에 대한 보복 트레이드. 결과적으로 윈윈 트레이드가 되었다.
심정수의 선수협 활동에 대한 보복 트레이드.
삼성의 골칫덩이였던 김영진을 보낸 트레이드. 그나마 김승권이 그 해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FA 이적 1호이자 먹튀가 된 이강철을 고향으로 돌려보낸 트레이드이자 KIA 최초의 트레이드.
삼성은 장타력 있는 유격수와 천적 제거를 통해 이듬해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고, SK는 선수단 보강에 성공[3]한 윈-윈 트레이드.
롯데팬들 앞에서 절대로 말을 꺼내면 안될 최악의 트레이드. 당연히 이 트레이드를 주도 및 실행한 사람은 부산에 들어오면 시체로 나가실 분이다.
당시 김성근 감독이 김상현의 활약을 보고 트레이드 했지만 LG에서는전형적인 2군 본즈의 모습만 보여주고 이후 2009년 친정으로 반품되었다. 그리고...
현대는 정성훈의 영입으로 오랜 기간 구멍이었던 3루 보강에 성공하면서 한국시리즈 2연패에 성공한 반면 고향팀으로 간 박재홍은 본인과 팀에 서로 상처만 남기고 SK로 이적하게 된다.
동무로 불리는 김원섭은 원래 타이거즈 출신 선수가 아니었다. 그러다 이 트레이드를 통해 KIA 유니폼을 입었고 이후로는 롱런하며 기아 외야의 한 축을 지키는 타자가 되었다. 반대로 이동수는...
송지만은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보이며 통산 300홈런의 금자탑을 달성한 반면 권준헌은 2시즌 정도 불펜에서 잠깐의 활약을 끝으로 공두오로 대표되는 방화범이 된 후 은퇴했다.
문동환은 FA 정수근의 보상선수로 지명되어 롯데에서 두산 선수가 된 지 하루만에 한화로 떠나게 되었고,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를 뒤엎고 팀의 2006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일조했다. 채상병은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그후 복귀하여 홍성흔의 부상공백을 매우 쏠쏠하게 메꿔준 윈-윈 트레이드의 사례.
박석진과 김대익은 쏠쏠한 활약을 보이며 2005년, 2006년 2연패에 보탬이 되지만 노장진은 1년 후 불미스러운 사건과 함께 나락의 길을 걷는다.
홍현우를 처리하기 위해 단행한 트레이드이지만 이용규가 이적 직후 대성장을 이루면서 KIA의 완승으로 끝난 트레이드.
7 2000년대 후반
당시 KIA는 창단 첫 꼴찌를 찍고 있던 상황이라 유망주를 필요로 했고 두산은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 유력해지자 강력한 외국인 선발이 필요했기 때문에 단행한 트레이드. 리오스는 이 트레이드 전까지만 해도 부진했으나 트레이드 후 3년간 명실상부한 두산의 1선발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KIA 정재공 단장은 1:2 트레이드가 아닌 2:2가 맞다고한다. 두산이 보유한 외국인 선수 슬롯[4]까지 포함한다는 것 이다.
7.4 조현근 ↔ 김덕윤
신명철은 2009년에 20-20 클럽에 가입하는등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고 강영식 또한 이적 후 오랫동안 셋업맨으로 활동하며 100홀드 이상을 달성하게 되는 윈윈 트레이드.
7.7 SK 와이번스 왕조의 트레이드 사례
김성근 감독의 트레이드 중 드물게 성공한 트레이드이자 조범현 감독이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아팬들에게 까이는 이유 중 하나. 그리고 이 트레이드 후 전병두의 선수인생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두산이 그런대로 쏠쏠했던 트레이드. 이성열은 2010년 토종 타자 20홈런 5인방으로 맹활약 했으나 2012년에 넥센으로 트레이드 되었고 2016년에는 한화로 또 트레이드 된다. 최승환은 2009년 까진 좋았으나... 다만 LG도 실패한 건 아닌 게 김용의가 대주자로 잘 쓰인데다가 2016년에는 1번 타자로 괜찮은 활약을 했다.
LG는 투수가 필요했고 KIA는 강타자와 내야유틸이 필요해서 이뤄진 트레이드. 그러나 이 트레이드는 희대의 트레이드가 되었다. 김상현은 이적 후 중심타선을 지키며 시즌 우승 및 트레이드된 선수 최초로 시즌 MVP를 받는 영광을, 박기남도 내야 백업으로 소금같은 활약을 했지만... 강철민은 사이버 투수로 전락했다.
후일 타어강 기사 초반에 이 트레이드의 뒷이야기가 있다.
당장은 두산의 이득이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삼성이 이득을 본 트레이드. 이득을 봤다고?
7.11 넥센 히어로즈의 현금 트레이드들
현대 유니콘스의 선수단을 승계받은 우리 히어로즈가 2008년 7월, 메인 스폰서였던 우리담배가 히어로즈 구단의 가입금 미납부를 이유로 스폰서 계약을 해지하는 등 여러 문제로 운영 자금이 궁해지면서 돈을 확보하기 위해 단행했던 일련의 트레이드들, 이들은 대부분 주축선수 ↔ 유망주,현금 이었다. 그 외 넥센발 트레이드가 두어 개 정도 더 있었는데, 이들 트레이드도 뒷돈이 오간 거 아니냐는 추측이이라 쓰고 사실이라 읽는다 무성했다.
7.11.1 이택근 ↔ 박영복,강병우
그러나 이택근은 LG에서 2년 먹튀한 후 2011년말 친정팀과 계약을 하며 LG 팬들에게 비수를 꽂아 넣었다.
구단에 돈만 있었어도! 이현승은 트레이드 이후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군대행. 두산팬들에게 10억 군인이라고 까였다(...) 물론 금민철도 활약은 도긴개긴. 그러나 이현승이 제대 이후 마무리로 성공적으로 자리잡고, 끝내 2015년 두산의 우승 주역이 됐지만 금민철은 아직도 기회를 줘도 못받아먹는 실정.
1년 전 KBO한테 거절당했던 트레이드를 현금 10억을 낮춰서 다시 단행했다. 넥센은 궁한 자금을 번데다가 박성훈은 2012년 필승조로 맹활약을 했고, 김상수는 상무 제대 후 맹활약을 하고 있으며, 삼성도 장원삼 꿀을 제대로 빨아먹으면서 다음 해부터 무너진 선발진을 재건, 2010년 준우승 및 이후 2011년부터 통합 4연패를 달성한다.
8 2010년대 초반
이들 중 안영명, 박성호(야구선수) 는 본 소속팀으로 다시 복귀했다. 그리고 김경언은 한화로 가서 혜자경언이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말이 없었으나 무게감으로 보았을 때 분명 뒷돈이 오간 트레이드. 위의 히어로즈 주축 선수 삼인방 트레이드의 연장선이다. 그러나 이 트레이드 자체는 결국 김수화를 뺀 나머지 두 명이 팀 내 주전 3루수 또는 내야 유틸리티가 되어 국대 승선과 금메달로 군면제를 받으며 성공.
이 또한 비공식적으로 뒷돈이 오갔으리라 짐작되는 트레이드. 넥센으로 트레이드 된 선수 중 한 명이 기대 이상으로 성공하고, 한 명은 출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팀에서 나가게 된 것 또한 같다. 그러나 황재균과 달리 정작 고원준은... 그리고 이 트레이드는 황재균과 달리 당시 감독 김시진의 판단이 작용한 트레이드였다. 자세한 이유는 서면술사고원준 참조.
LG는 미래를, SK는 현재를 보고 한 트레이드. LG 입장에서 박현준은 10승 투수. 소속팀에서 거의 출장하지 못했던 윤요섭과 김선규는 활발한 출장으로 LG에 보탬이 되고 있었다.트레이드 승자는 LG의 것이 예상되었지만,박현준이 제명당하고 안치용이 2011년 후반기 난세영웅,이재영도 2011년 볼펜의 축으로 활약하고 최동수도 대타요원으로 활약하며 LG 이득 또는 윈윈 트레이드로 평가받았었다. 하지만...
김광수(야구선수)는 한화에 아무런 보탬도 못 되고 기아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유원상은 LG에서 중간계투로 한 시즌 때 2점대를 찍음으로서 LG의 승리인 것 같으나 이후 도로묵... 양승진은..사이버투수는 아니고, 공익갔다가 돌아왔고 15시즌 이후 소리소문 없이 방출되었다.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스틸 트레이드
이장석의 신의 한 수, 박병호 인생의 터닝 포인트
성사 직후의 반응은 이장석 개XX라는 반응이 주였으나 박병호가 탈쥐효과로 포텐이 터지며 팀의 4번타자 자리에 안착. 게다가 LG로 간 투수 2명 중 1명은 저니맨 생활 끝에 넥센에 되돌아왔고 1명은 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으로 퇴출 크리... 넥센이 이 트레이드에서 압승을 거뒀다. 심수창마저 승리투수로 이미지 개선 후 맛이 갔지만 롯데에 2차 드래프트로 팔아먹어서 또 이득. 덧붙여서, 이 트레이드 이후 넥센이 야구판에 안착하며 넥센마켓 논란도 없어지게 되었다.
넥센은 심수창을 이후 2차드래프트로 3억을 챙겼고, 박병호의 서비스 타임을 2년 남기고 쓰고난 후 147억을 받았다. 선수의 활약을 제외하더라도 단순 금액으로만 이 트레이드로 넥센은 150억을 벌여들였다.
전유수는 이후 SK 와이번스 불펜의 축으로 자리잡았지만 최경철은 바로 이듬해에 다시 한 번 이장석의 매물(...)이 된다.
롯데로 간 용덕한은 강민호의 백업으로 쏠쏠했으며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을 벌였다. 반대로 김명성은......
김희걸은 삼성 라이온즈 불펜에서 어쨌든 한 자리를 차지하였다.물론 애매한 추격조로. 조영훈은 처음에는 만루홈런 등으로 제2의 김상현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결국 NC로 갔다.
트레이드 당시에는 나이도 2살밖에 차이가 안 나고 이성열의 홈런수가 오재일의 안타수보다도 많았기 때문에 균형이 안 맞는다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성열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공갈포로 전락해 한화로 다시 트레이드 된 반면, 오재일은 2015년을 기점으로 포텐이 터진 모습을 보여 두산의 중심타자로 자리 잡았다. 결과적으로만 본다면 넥센이 실패한 몇 안되는 트레이드. 그러나 결과적으로 양훈을 얻게 됐으니 넥센이 손해본 것만은 아니다. 결정적으로 오재일을 도저히 넥센에선 쓸 수가 없었던 것이 그 포지션에 있었던 선수가...
NC 다이노스의 창단 첫 트레이드. 임창민이 NC의 핵심 불펜으로 활동하는 동안 김태형은 2016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로 LG로 통해 이적하며 NC의 승리가 되었다. 차화준은 13시즌 초반에 잠깐 기용됐지만 사람 환장하게 하는 미숙한 수비로 인해 이후 1군에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역시 14년도 2차 드래프트로 삼성으로 이적했다.
양 구단 간 22년만에 벌어진 최초의 트레이드였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트레이드를 금기로 여기고 있었는데 이를 깼다는 점이 특이점. 여담이지만 LG에 갔던 세 선수들은 한시즌이나마 활약을 해주며 LG의 비밀번호 차단에 도움을 줬고 삼성 역시 노진용을 제외한 2명이 깨알같은 활약을 벌였다. 그러나 이후 손주인이 LG의 주전으로 안착하면서 LG가 결과적으로 이득을 본 트레이드.
메인 칩이었던 두 선수가 모두 상대 팀에서 주전급 활약을 해주면서 윈윈 트레이드가 되었다. 다만 나머지 세명의 선수가 상당기간 별 활약이 없었던 것이 흠. 박정준은 김경문 감독이 기회를 꽤 많이 줬지만 지석훈과 달리 정착하지 못하며 2015 시즌 이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이창섭 역시 16시즌 도중에 소리소문 없이 홈페이지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등번호도 이상호가 가져가며 방출됐음을 간접적으로 알렸다.
하지만 2016년 군대를 갔다온 신재영이 1군 무대에서 데뷔 후 선발의 한축이라고 쓰고 사실상 제1선발을 맡으며 전반기에만 10승 3패 3.33에다 최다 연속이닝 무볼넷기록을 세우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고, 그 활약에 힘입어 올스타전 선발투수로도 뽑혔으며 신인왕도 거의 확정되었다는 분위기다. 따라서 서서히 이득이 넥센 쪽으로 기우는 상황이다.
LG의 포수난, 넥센의 좌타 부재를 해결한 두 팀간의 유일한 윈윈 트레이드. 다만 이 트레이드의 대상자 중 한명인 서동욱은 3년 뒤에 고향팀인 기아 타이거즈로 조건 없이 트레이드되었다.
재미있게도 당시 양 팀 감독이었던 염경엽과 김기태는 3년 후에 서동욱을 다시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다만 이때는 김기태 감독이 속한 팀이 바뀌었다.
역대급 루즈-루즈 트레이드.
트레이드 사상 최초로 개별 항목이 생겼다! 김상현, 진해수 ↔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 항목 참고.
장민석의 경우 가을야구 끝나기 전까지는 장기영이었으나, 이 트레이드 며칠 전에 자신의 개명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렸다. 또한 윤석민의 경우 김진욱 당시 두산 베어스 감독이 극렬히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드가 이뤄졌고, 그 결과 김진욱 감독은 경질되었다. 윤석민은 2014년 스토브리그까지만 해도 다시 매물로 내놔야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2015시즌 들어서는 그 답이 없다던 3루수비를 완벽하게 개선하고 준수한 타격까지 선보이면서 결과는 다시 한 번 넥센 히어로즈의 압승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장민석은.... 게다가 2016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로 장민석이 두산에 3억을 안기고 떠나면서 두산의 완패로 끝나고 말았다. 애초에 이건 급이 달랐잖아... 여담으로 이 트레이드는 커피감독을 내치기 전에 수족을 자르는 트레이드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김병현은 일찌기 해태가 아닌 KIA에는 가지 않겠다고 발언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KIA행에 많은 팬들이 놀랐다. 투수진이 총체적 난국에 빠진 KIA로서는 지역 프랜차이즈 베테랑 스윙맨을 얻은 트레이드. 넥센은 고질적인 좌완부족 해소를 위해 대졸투수인 김영광을 영입했다. 그리고 영수증이 되어 사라졌다
정범모의 기량 부족과 이준수, 엄태용, 김민수의 경험부족으로 인해 포수난에 시달리던 한화가 내야 유틸 베테랑 이대수를 주고 SK에서 마침 이만수와 갈등을 빚었던 조인성을 영입한 트레이드. 결과적으로 조인성은 한화의 주전포수로 자리잡으면서 다른 후배들의 기량향상에 도움을 준 반면, 이대수는 SK 내야의 두터운 벽을 넘지 못하고 1군과 2군을 오가는 신세가 되었다.그렇지만 후반기 막판 좋은 활약으로 팀의 와일드카드 진출을 이끌었다. 덤으로 딸려온 김강석은 소리소문 없이 선수단에서 사라졌다...
9 2010년대 후반
넥센 히어로즈의 입장에서는 2년 5억이라는 창렬저가성비의 이성열과, 전년도부터 불성실한 플레이와 기량퇴보로 부쩍 팀과 팬들의 공분을 샀던 허도환을 일거에 치워버린 트레이드. 선발요원으로 기대하고 데려온 양훈은 아직도 헤매고 있지만 팬들은 그저 영수증(...) 정도로 생각하는 분위기다. 윈-윈 트레이드로 초기에는 이성열은 이적 후 첫 경기부터 강력한 뽕포 홈런포로, 허도환은 정범모가 정신 못 차리는 한화 배터리의 한 축을 메워주며 무난하게 안착. 2015년 9월경에 이지풍 매직으로 양훈까지 살아나 투수 부족에 시달리는 넥센에서 준수하다 못해 뛰어난 성적의 투수를 얻은 윈-윈 트레이드가 됐다. 트레이드 초기에도 네이버 스포츠의 여론조사에서 윈윈트레이드50% 넥센손해25% 한화손해25%의 의견이 나왔는데, 이성열과 허도환이 모두 후반기로 가면서 한계에 부딪친 반면[5] 애초에 페이롤을 줄인 데에서부터 넥센은 손해본 게 없는데 양훈도 살아나면서 후반기로 갈수록 넥센의 이득이라는 평가가 높아지고 있다.....였으나 2016년 양훈이 도로 부진에 빠지면서 평가하기가 다시 애매하게 되었다.
이성열을 3억에 벌벌 떨고 미적대서 얻지 못하자 황급하게 kt가 추진한 트레이드. 2013년 이후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던 윤요섭은 포수수비 부담이 덜한 kt에서 지타요원으로 쏠쏠하게 활약하고 있다. 이준형은 2016년 현재 팀의 5선발을 맡으며 쏠쏠하게 활약해주고 있다.
델동님의 업적 KBO 리그 트레이드 사례 중 가장 이동 규모가 큰 트레이드다. 규모와 함께, 다른 선수도 아니고 장성우가 롯데를, 그리고 kt가 프랜차이즈 스타로 밀던 박세웅이 떠난다는 사실에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롯데에서 강민호의 그늘에 가려 자리를 잡지 못하던 장성우는 이 트레이드를 통해 명실상부한 KBO리그의 주전포수 반열에 올라섰고 박세웅도 시즌 중반이 넘어가면서 5이닝 정도는 기대할 수 있는 선발 투수가 되어서 윈윈 트레이드가 될 줄 알았으나...
장성우 사생활 폭로 사건이 터지면서 완벽한 롯데의 이득으로 끝나버린 트레이드가 되었다.
박세웅 ↔ 장성우 트레이드 문서 참고. 송은범-김상현에 이어 두 번째로 개별 항목이 생성된 트레이드이다.
트레이드의 핵심 축이었던 두 선수가 버로우타서 얼핏보면 실패처럼 보이지만 김광수는 KIA의 승리요정으로 자리잡으면서 팀성적 반등의 중심이 되었고, 이종환도 지타 및 대타요원으로 쏠쏠하게 활약해주며 한화 타선의 구멍을 메꾸어 준, 보충자원들이 더 활약해 준 보기드문 형태. 그러나 KIA가 팀 내에서 뚜렷한 포지션이 없는 똑딱이 대타로 군필 외야 유망주 둘을 얻었다는 점에선 장기적으론 기아에 이득인 트레이드라고 볼 수 있다.
...위의 말은 정말 좋게 설명한 거고 실상은 한화가 KIA에게 현재와 미래까지 조공해준 역대급 윈-루즈 트레이드. 김성근 감독의 실책 중 하나. 오준혁과 노수광은 모두 군필 외야수이므로 서비스기간이 매우 길고 김광수 역시 KIA에서 필승조로 2016년에도 쏠쏠한 활약을 하고 있다. 반면 임준섭은 투구폼 교정을 받고 2015년과 2016년 모두 시즌아웃 되었고 89년생 미필이라 병역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종환은 수비가 안 되는데다가 장타력이 매우 부족하다. 박성호는 패전처리 이상의 용도로는 쓰이지 않았고 이마저도 16시즌엔 육성선수로 전환되면서 메인 카드였던 유창식은 안 터졌지만 완벽한 KIA의 승리.
그러나 이 트레이드의 핵심 카드였던 유창식이 한화 시절 승부조작을 했음이 드러나면서 KIA도 마냥 웃을 수는 없게 되었다. 손절매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허나 2016년 7월 들어 기아의 핵심 축이였던 김주찬이 부상으로 결장을 하게되면서 KIA는 5강 싸움에서 최대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대체 자원으로 노수광을 기용하는데..... 김주찬을 잊을 만큼 너무 잘 메꿔주고 있다! 거기다 30일 신종길의 부상으로 오준혁도 충분히 기회를 잡을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또한 김광수로 부족했던 불펜을 메꾸고 홍건희를 선발로 기용할 수 있게 되면서 유창식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팀의 핵심이자 주요 전략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KIA는 이들을 앞세워 5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기 때문에 2016시즌 현재까지는 사실상 KIA의 완승.
장성우를 선발포수자원으로 영입한 kt는 용덕한을 NC로 보내고 불펜요원 홍성용과 외야수 오정복을 영입했다. NC로서는 주전포수 김태군의 군입대가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김태군의 빈자리를 메워줄 주전급 포수가 필요했다.
현재 상황에서는 kt가 승리한 트레이드. 오정복은 비록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긴 했지만, 3할 타율, 2홈런으로 쏠쏠한 활약을 해 주고 있고, 홍성용 또한 승리조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용덕한은 17타수 무안타로 패배의 아이콘이 되었다.
우타 거포 자원제2의 박병호이 필요했던 SK가 정의윤을 지목하고 카드를 맞추다가 그 외에 다른 선수들이 추가되었다. 미래는 모르지만 LG프런트가 호구딜을 했다는 의견이 대세. 여담으로 LG는 이날 노장 투수 이상열을 웨이버 공시했고 SK가 이상열을 영입하면서 사실상 4:3 트레이드가 되었다. 정의윤은 이적 이후 2015년 시즌에만 LG에서는 못 쳤던 홈런을 14개나 쳤고 타율도 3할대에 진입하며 탈쥐효과를 제대로 받았으며 임훈도 LG에서 리드오프 및 주전 중견수로 쏠쏠한 활약을 하고 있다.
결론은 둘다 이득을 가져가긴 했으나 지금 상황으로 볼 때 SK가 더 이득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SK에 간 선수의 war이 LG로 간 선수보다 높고, 여건욱은 몸상태가 악화되어 육성선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6년 진해수는 진해수소폭탄 으로 다시 돌아왔고.. 임훈도 부진하면서 WAR이 -0.29까지 떨어진다. 결국 임훈은 2군에 내려갔다 이와중에 백업 없어서 못 내려가는 오지환 군대가면 어쩌려고.. 신동훈이 복귀 후 활약하면 트레이드는 LG의 대패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신동훈이 못해도 이미 진거나 다름없는 트레이드이기는 한 게, 정의윤은 한 때 타점 1위까지 오르고 4번타자로서 어느정도 역할을 해주기 때문 일단 현재 임훈과 진해수는 안나오는게 차라리 나은 상황 그러나 한 팀은 올팀올 하고 한 팀은 내팀내 하면서 재평가 되기도 한다
9.7 신현철 무상 트레이드
기존의 이 선수들에 문제를 일으켰던 한 명이 더 추가되었다. 2016년 백업으로써 어느 정도 도움은 되지만.. 임창용 데리고 온 팀도 있는데 뭐
2016년에 일어난 첫번째 트레이드. 투수 보강이 급한 삼성과 1루+타선+(fa 보상금) 보강이 필요한 넥센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트레이드.
이적 이후 김대우가 영입 당시의 기대치보다 부진하면서 삼성 팬들 사이에서 원성이 크지만, 현재를 보고 영입했던 채태인이 컨택도 부진하고 장타생산력도 약해진 결과 덩치 큰 똑딱이화되면서 넥센 팬들의 원성도 만만찮다. 넥센은 채태인이 영입되면서 삼성 시절 등번호를 차지하고 있었던 서동욱을 내보냈는데, 정작 채태인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갈 정도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김대우가 필승조에 거론될 정도로 반등했고, 채태인은 베테랑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동시에 타격도 어느 정도는 회복하면서 시즌 초반의 루징 - 루징 트레이드 평가에서 서로 할 만 했다는 평가까지 올라서고 있다. 현재 2016년 9월 22일 그냥 그러한 트레이드가 되었다.
9.9 서동욱 무상 트레이드
채태인을 데려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넥센에서 단행한 트레이드. 넥센에서는 채태인의 합류 및 젊은 선수들의 맹활약과 신인 야수 지명 등으로 기회가 없어진 서동욱이 다른 곳에서라도 선수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하자는 의미에서, 보상선수도 보상금도 받지 않고 최초 입단 팀인 기아 타이거즈로 보냈다.
여담이지만 이 아이디어는 놀랍게도 구단주의 아이디어이고 김기태 감독이 염경엽 감독에게 자기 팀으로 넣어달라고 해서 성사된 거라고. 참고로 서동욱은 전술한대로 LG 트윈스에 소속되어 있던 2013년 최경철과 맞트레이드 되어서 넥센에 왔지만 3년 만에 기아 타이거즈로 넘어가서 김기태 감독과 다시 만났다.[6] 기아가 한화에서 트레이드로 받아 온 이 자식 주려다가 염경엽이 주지 않아도 되니 괜찮다고 했다는 썰이 있다. 하마터면 넥센 출신 선 수 들로 부터 조작 사건이 있었는데. 또 튀어 나올 뻔 했다고...
그리고 서동욱이 포텐을 터뜨리면서 KIA가 5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오재일, 김재환, 닉 에반스에 밀려 1군에 자리를 잡지 못했던 유민상이 kt의 육성선수 노유성을 상대로 kt로 이적한 트레이드. 이 트레이드로 두산은 1루수 교통정리와 유망주 투수를, kt는 왼손 1루수 백업 겸 대타요원을 얻었다. 누군가가 이 트레이드를 부러워합니다.
유민상이 현재 김상현이 불미스러운 일로 임의탈퇴 당한 후 kt의 주전 1루수로 자리 잡고 있다.
누가 더 이득일까보다는 누가 사고를 터뜨릴까의 트레이드 두산 입장에서는 팀케미를 완전히 박살내서 당연히 트레이드 돼야 할 노경은을 그보다 5살 어린 스윙맨과 바꿨고, 롯데의 입장에선 토종선발감이 필요한 상황에 딱 맞은딱 맞냐!선발투수를 하나 구했다.롯데 팬들은 사생활에 문제가 있고 포텐이 터지지 않고 있지만 뭣하러 33살 기량이 하락한 노경은과 아직 가능성이 남아있는 고원준을 트레이드 했냐며 논란이 일고 있다.
장기적으로 봐도 두산이 이득일 가능성이 높은 트레이드
기사 : #
6월 3일 vs SK 전에서 고원준이 5이닝 1실점을 기록하고 승리투수가 되면서...첫번째 승자는 두산이 되었다. 허나 고원준이 6월 11일 친정팀 롯데를 상대로 볼질을 남발하다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하여버렸다(...) 아직 롯데는 노경은을 사용하지 않아서 승자는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
6월 14일 롯데vs넥센에 롯데가 6:3으로 앞서는 가운데 노경은이 등판하여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3실점하고 강판당했다. 첫 판부터 망했어요
그후 노경은이 22일 선발 등판해 2년만에 승을 따내고, 28일날은 6이닝 7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윈 윈 트레이드로 굳어지는 모양새이다.
그러나 7월 들어 노경은이 포항 삼성전에서도 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고, 올스타 브레이크 다음 주에는 노경은 선발경기만 지면서 롯데팬들의 원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 7월 25일 현재 고원준도 2군에 내려가서 양팀 모두 득을 보지 못한 트레이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노경은이 후반기 들어 세 경기 연속 QS를 기록하는 등 전반기보다는 나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2년 2차 드래프트로 롯데로 이적했던 김성배가 4년 반만에 친정 팀으로 돌아왔다.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제구가 문제다 트레이드로 받아 온 선수는 912 대첩 수훈 선수였던 김동한
두산은 정재훈이 팔꿈치 부상을 당해서 이탈 이 후 5월 부터 6월 초 사이 불펜진이 뜬금없이 막장화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두산 특유의 불펜진들이 워낙 약하기 때문, 롯데는 내야진 강화를 위해 단행한 트레이드.
지금 봐서는 두산이 더 이득.
2016 시즌 트레이드 마감일에 성사된 트레이드이다. 기아팬: 아니 이게 무슨소리야?
SK는 선발진 보강을 위해, KIA는 좌완 불펜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트레이드가 이루어졌으며, SK의 민경삼 단장에 의하면 타 팀과 먼저 고효준을 내주고 다른 선수를 받아오려는 시도를 했지만 실패하다가[7] 7월 29일부터 31일까지 이루어진 KIA와의 3연전 기간에 트레이드 논의를 하다 카드가 맞춰졌다고 한다.
일단 트레이드가 이루어진 직후엔 SK가 이득이라는 의견이 대세였는데, 이적 후 둘 다 팀에서 제 역할은 해 주면서 윈-윈 트레이드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점차 임준혁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KIA가 이득이라는 평가도 슬슬 나오는 중이다. 고효준은 현재 선발에서는 조금 미치지는 못하지만 불펜에서는 단비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 ↑ 이정훈과 장정순은 각각 1996년~1997년 사이에 은퇴했고, 정영규는 저니맨 생활을 하면서 2001년 은퇴. 정경훈은 1999년을 끝으로 은퇴.
- ↑ 2000 신인 2차 지명이 실시된 날이다.
- ↑ 단, 김동수는 2002 시즌 후 방출되었으며, 김태한과 김상진은 2003 시즌 후 방출되었다. 이용훈은 2003 시즌 중 김영수를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다시 트레이드되었다.
- ↑ 그 후에 뽑힌 선수가 세스 그레이싱어
- ↑ 이성열은 고질적인 약점이 너무 많으며, 허도환은 체력 문제 때문인지 김성근 감독과 안 맞기 때문인지 후반기에는 1군에서 나오는 빈도가 확 줄었다.
- ↑ 2013년 당시 LG 트윈스 감독이 김기태 감독이었다.
- ↑ 이게 좀 의미심장한 것이, 2016 시즌 초반에 한화에서 젊은 내야수를 내주고 투수를 받아오려 했지만, 상대팀 투수가 한화에서 던지느니 은퇴하겠다라는 강력한 의사를 밝혀 트레이드가 취소되었다는 설이 돌았다. 이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인터넷 상에서 노경은이 발설했다고 하는데 이 는 진실이 아니므로 믿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