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시즌 기록 : LG 트윈스/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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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th=180 (참가구단) | |||
두산 베어스 | NC 다이노스 | 넥센 히어로즈 | LG 트윈스 |
KIA 타이거즈 | SK 와이번스 | 한화 이글스 | 롯데 자이언츠 |
과거에 참가했던 구단 보기 ➡ | |||
삼성 라이온즈 | kt wiz |
200px | 200px |
팀 엠블럼[1][2] | 팀 마스코트 근성이, 팀웍이[3][4] |
LG 트윈스 | |
LG Twins | |
창단 | 1982년 1월 26일 |
법인 설립 | 1983년 11월 7일 |
팀명 변경 | 1990년 3월 15일 |
구단 법인명 | ㈜LG스포츠 |
영문명칭 | LG Sports |
상장유무 | 비상장기업 |
기업규모 | 대기업 |
연고지 | 서울특별시 |
구단 연고지 변천 | 서울특별시 (1982~) |
구단명 변천 | MBC 청룡 (1982~1989) LG 트윈스 (1990~) |
한국시리즈 우승 | 1990, 1994 |
정규리그 우승 | 1990, 1994 |
구단주 | 신용삼(구단주 대행)[5] |
사장 | 신문범 |
단장 | 백순길 |
감독 | 양상문 |
홈 구장 | 동대문야구장 (1982)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1982~) (25,553석) |
2군 구장 | LG 챔피언스 파크 (874석) |
킷 스폰서 | " />?width=60 |
워드 마크[6] | |
관련 홈페이지 | > | width=20]] | > [7] | width=20]] | > | width=25]] | > |
공식 애플리케이션 | > | > |
최종 우승 | |
2회 1990, 1994 | |
역대 우승 엠블럼 | |
파일:Attachment/lgtwinsks1990.png | 파일:Attachment/lgtwinsks1994.png |
1990년 | 1994년 |
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 ||||
1989-해태 타이거즈 | → LG 트윈스 → | 1991-해태 타이거즈 | ||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 ||||
1993-해태 타이거즈 | → LG 트윈스 → | 1995-OB 베어스 |
목차
LG스포츠 | |||
LG 트윈스 (야구) | 창원 LG 세이커스 (농구) |
1 개요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의 서울특별시 연고팀[8]
MBC 청룡의 후예
KBO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서울특별시. 서울을 연고지로 하는 3개 구단 중 하나이며, 최초로 서울을 연고지로 사용한 프로스포츠구단이다. 모기업은 LG그룹으로, 산하 스포츠 법인인 LG스포츠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홈 구장은 서울특별시 잠실 야구장.
1.1 구단 소개
서울의 자존심! LG 트윈스![9]
2002년의 경기 시작 영상이다. 매년마다 영상은 바뀌지만 이 BGM 만큼은 창단 시절부터 현재까지 사용 중이다.
럭키금성그룹이 문화방송의 MBC 청룡을 1990년 1월 18일 150억 원에 인수하여 그 해 3월 18일에 재창단, LG 트윈스 시대가 시작되었다. 로고나 유니폼은 팀이름도 그렇고 미니애폴리스의 야구팀과 매우 흡사하다. 팀명인 LG는 모기업 이름인 Lucky + Goldstar의 약자. 트윈스라는 애칭은 당시 럭키금성그룹의 상징과도 같던 여의도 트윈타워[10] 사옥에서 유래했으며, 미국에도 같은 애칭의 야구팀이 있으므로 야구팀 이름으로 못 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11] 팀의 상징색은 MBC 청룡 시절에는 파란색을, LG 트윈스 시절부터는 검정색이 중심이며 빨간색과 매우 진한 핑크색[12]을 부수적으로 사용한다. 다만 TV 중계나 스카우팅 리포트같은 서적 등에서는 LG 트윈스를 소개할 때 검정색보다는 진한 핑크색을 주로 사용한다.[13]
2000년대 성적은 6668587667으로 좋지 않은 편(2003~2012년)이다. 롯데 자이언츠가 가지고 있던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기록을 경신하며 신기록을 달성하고 말았다. LG가 21세기 들어서 가을야구를 한 시즌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2002년,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2013년, 최하위에서 4위로 대반전에 성공한 2014년, 처음부터 리빌딩을 선언하고 잠시의 추락 후 2014년의 재현을 이루어낸 2016년 네 번 뿐이다.
경기 스타일에서 드러나는 팀컬러는 강력한 한방의 장타보다는 호타준족으로 치고 달리는 야구를 구사한다. 시대에 따라 팀컬러가 바뀌곤 하는 프로야구이지만 트윈스는 전성기 시절부터 장타보다는 연속 안타와 빠른 발을 기본으로 한번 점수를 내기 시작하면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신바람 야구로 유명했다. 단 한번 흐름이 끊기면 답이 없는 단점이 있어 내려가면서 암흑기엔 팀 전체가 롤러코스터를 타기 일쑤였다. 이를테면 어제는 두자릿수 득점을 했는데 오늘은 안타 한두개에 그쳐 빈타에 허덕인다거나. 거포가 없는 팀이기도 하다. 때문에 우타거포 영입을 오랜 숙원으로 두고 거포 유망주를 수집하기도 했다. 2016시즌을 준비하면서 거포 유망주를 전원 내보내면서 팀의 타격 방향을 90년대의 호타준족으로 수정했다.
전통적으로 좋은 투수가 많이 배출된 팀이지만 특이하게도 투수 쪽에서는 전통적으로 선발보다는 불펜진이 강해서 잘되던 때가 많았으며 팀의 전설이자 유일한 영구결번인 노송 김용수 역시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활약한 투수. 우연인지 이런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팀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투수는 꾸준히 나타나 김용수-이상훈-봉중근으로 그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14] [15]
매해 겨울철에 기사거리를 쏟아내는 특성이 있어, 봄데, 여름성, 가을솩의 뒤를 이어 겨울쥐로 불리기도 한다. 이것을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단어가 올해는 다르다. 이 단어는 10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기사에 등장했다. 이제는 기자들이 놀리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이 10년 넘게 지속되면서 지금은 LG구단이 겨울에 기사를 내보내도 LG팬들은 아무도 안 믿는다. 2014년 겨울부터 겨울칰이 시작되면서 그나마 비뚤어진 관심은 줄어든 상황이 되었으며, 2014년 이후로 Sk의 가을 DNA 속칭 가을솩이 이식되면서 6668587667을 극복해 나가며 가을야구에 도전하고 있다.
대도시의 팀이 잘한다며 한국의 뉴욕 양키스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까지 받은 팀이 10년을 넘게 삽질을 해대며 이제는 놀림거리가 되어버렸다. 한국의 뉴욕 양키스가 아니라 한국의 시카고 컵스가 되버렸다. 한 예로 나무위키 내에 존재하는 긴 암흑기를 깨지 못하고 쩔쩔매는 팀들[16]의 항목에는 빠짐없이 LG트윈스가 언급되고 있다. 한 도시에 한 팀이라 지역민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롯데나 KIA와는 다르게 수도권에 다른 팀이 많아 유독 어그로 끄는 사람도 많고 놀림도 죽도록 당하는. 매년 가을마다 눈물밖에 준 것이 없는, 우승이라는 기억조차 희미해진 지금도 그래도 팀을 버리지 못하는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야구를 하고 있다. 이 죽일 놈의 LG 트윈스 다만 이 기사는 2013년에 나왔다. 즉 2003년 이후 LG 트윈스가 제일 잘했을 때의 기사.
구단의 운영이 상당히 엉망인 구단이기도 하다. 야구를 잘 모르는 인사들이 절반이며 명확한 비전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기사 같은 서울연고지인 두산이 화수분야구를 표명하면서 쉴 틈없이 신인들을 배출하고, 넥센이 이상적인 리빌딩으로 대규모 선수이탈에도 성적과 육성 모두를 잡고 있는 것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모습. 이에 항의하는 LG팬들도 상당히 많다. 사실 유망주는 잘 나오는데 그 유망주를 못 써먹는다.
1.2 팬
서울특별시를 연고지로 하며, 기나긴 암흑기 끝에 빠질건 다 빠졌던 시기에도 관중수 3위권 정도는 너끈히 찍었다.[17] 키보드워리어도 종종 출현하나 롯빠보다는 전투력이 부족.[18] 리즈시절에는 롯데, 해태가 와도 잠실에서의 관중 숫자에서 전혀 안 밀렸다. 오히려 LG가 잘 나갈 때는 롯데가 망한 경우가 많아서 롯데가 잠실로 원정 온 경우에는 인원수로 압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비밀번호를 깨버리자 6년만에 관중 동원 1위를 탈환, 128만명[19]을 동원하며 95년에 세워졌던 최다관중 기록을 갈아치웠고, 2014년에도 118만명을 동원하며 1위를 유지했다. 더불어 2015년 기준 롯데 자이언츠, 두산 베어스와 같이 통산 관중이 2천만 명을 넘은 구단이기도 하다.
특히, 리즈 시절의 LG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서울 내 최고의 인기팀으로 전국구 인기 구단에 상당히 근접했던 서울의 두 팀 중 하나이다. [20] 이후,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부당한 대우로 시작되는 구단 내 삽질과 자율이 방종이 돼버린 선수들의 무기력한 모습들이 성적부진으로 귀결되어 팬이 많이 떨어져나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팬 숫자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구단 중 하나이다. 이는 14년 준플레이오프를 봐도 알 수 있는데, 홈팀이었던 NC를 누르고 3루 쪽까지 전부 LG를 응원하는 노란 수건으로 뒤덮어 버렸다! -그리고 2016년 옆집 두산베어스가 또다른 신생팀 kt를 상대로...- 물론, NC가 신생구단임을 감안해야 하지만, 팬덤이 얼마나 거대한 지를 보여줬던 사건. [21]
팬들의 충성도 또한 리그 탑급이다. 특히, 2014 시즌 무렵부터 응원단이 가지 않는 장거리 원정 경기[22]에 반드시 북과 응원도구를 들고 나타나는 LG 단체 팬들이 선수단과 거의 동행하다시피 따라다니고 있다. 엘롯기로 묶이는 롯데와 KIA도 모든 원정 경기에 따라다니는 단체 팬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LG 팬의 충성도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같은 수도권팀인 sk,넥센,kt는 당연히 없고 그나마 두산팬들이 많이 다니지만,LG가 성적이 좋을때는 비교가 안된다.-
야빠 만화가인 최훈이 가장 까는좋아하는 팀. 예전부터 팀이 삽을 푸면(...) 팬들이 명문장과 명작들을 쏟아내는 경향이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 클럽이란 소설까지 꼽지 않더라도 야구의 추억의 저자 김은식, 인천 야구에 대한 책을 펴낸 고 이종남 기자, 그리고 이런 네임드까진 아니라도 삼미계열이나 쌍방울 팬들의 한탄이 담긴 인터넷에서 흘러다니는 글은 정말 구구절절한데, 이게 21세기 들어서는 엘롯기에서 보인다는 이야기(...). 하지만 본래 하대리로 떴고, 야구 만화조차 국내가 아닌 MLB카툰으로 먼저 성공한 터라서 망한 팀의 팬이 각성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사례이긴 하다.
[23]
마스코트는 팀웍이와 근성이.[24] 몇몇 팬들 사이에선 오리갑을 마스코트화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럼 구단명을 덕스로 바꿔야 해 그럼 오리인 브레이비를 마스코트로 쓴 한큐 브레이브스는? 그림판 마스코트는 다운로드에 엠블럼을 클릭하면 볼 수 있다. 팀 상황이 워낙 시궁창이다 보니 야구팬들 사이에선 마스코트 이름만 근성과 팀웍이고 현실은 시궁창이라며 비웃는 상황.
선수들 응원가의 퀄리티가 평균적으로 굉장히 좋은 편이란 것도 인기몰이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쉽게 따라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동요를 많이 차용하는 타 팀과 달리 대중가요를 적극적으로 개사하는 편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LG 경기에 간 상대팀 팬들이 LG 응원가에 중독되어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오죽하면 삼성 라이온즈 팬들은 LG에서 응원단장만 데려오면 된다고 하던 때도 있었다.[25] 2007년부터 LG의 응원가 노래엔 패티 김 선생의 노래가 많이 쓰인다. '서울의 찬가', '서울의 모정', '그대 없이는 못살아'[26]가 그 예.
응원도구로는 현재 빨간 응원방망이(2,000원)와 노란색 응원수건(4,000원)이 사용된다. KBO리그에서 처음으로 입으로 불어서 막대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응원도구(일명 '막대풍선')를 사용한 구단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노란색 응원방망이가 사용되기도 했으나 1997년 가을부터 응원방망이 색깔이 현재의 빨간색으로 바뀌었다.[27] 가끔 노란색 응원수건과 비슷한 크기의 노란색 응원종이를 경기 도중 나눠줄 때가 있다. 그리고 LG팬들의 영혼의 친구(...) 유광잠바가 있다.
잠실야구장 LG 홈경기에 가보면 파랑+노란색의 잠바나 모자를 쓰고 있는 팬들이 많은데 이 것은 LG의 전신인 MBC 청룡의 유니폼이다. LG 구단에서는 자체적으로 청룡과 관련된 행사를 많이 하고 있지는 않지만, 상당수의 팬들이 주문제작 등을 통해 청룡 관련 상품들을 소유하고 있다.
2013년과 2014년에도 여전한 관중 동원력을 보여준 LG이지만 너무나 길고 긴 암흑기의 탓으로 대부분 신생 서울팬을 두산에게 빼앗긴 상태다. 여전히 LG의 팬이 두산보다 많긴 하지만 더 이상 90년대의 영광만 바라볼 수 만은 없는 상황. 야구팬들의 신규유입을 위해서는 구단의 노력과 자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제로 많은 LG팬들이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LG팬들의 평균 연령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고, 반대로 두산은 팬 평균 연령이 낮아지는 추세다.
최근들어 LG팬들 사이에서 사건사고가 다발하고 있다. 구단의 오리발식[28] 대응도 겹쳐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성숙한 팬덤으로의 발전을 위해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다. LG 트윈스/사건사고 참고. [29]
1.3 신인 육성과 FA 잔혹사
한 마디로 요약하면... 거물급 유망주를 데려왔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못 키우고 다른 팀에 내다 판 뒤 후회하는 구단.
FA 선수를 사와도 하나같이 사온 뒤에 가열찬 삽질 내지는 아파서 드러눕는 잔혹사의 연속
FA 계약한 선수들이 하나같이 삽을 푸는 불쾌한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명 FA 잔혹사.(홍현우, 진필중, 마해영, 박명환.) 특히 정성훈을 제외한다면 해태-KIA 타이거즈를 거치고 FA로 이적한 선수들이 꼭 먹튀가 된다는 것. 문제는 외부 영입 선수뿐만 아니라 프랜차이즈 선수에게 FA를 안겨 줘도 그렇게 되는 것이(조인성[30], 김재현) 구단과 팬 양쪽 모두에게 적극적인 영입 공세를 꺼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계속 질러댄 덕분에 드디어(?) 무난한 케이스가 나왔으니, 바로 이진영과 정성훈이다. [31]]
선수 자체 육성이 된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현실은 시궁창. 유망주는 최소 10년을 숙성시켜야 한다는 게 언제부터인가 이 팀의 전통. 그나마도 그걸 못 기다려서 다른 팀에 넘기면 박병호나 이용규처럼 포텐셜 대폭발...2009년 시즌 끝나고 박종훈 감독을 영입해 유망주 양성에 힘을 기울이기로 했는데 그 새를 못 참고 2년만에 사퇴하여 김기태 수석코치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그리고 김기태도...
돌아보면 FA 영입과 유망주 육성이 계획대로만 성공했어도 포스트시즌은 물론이고 왕조 구축까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팬들로서는 이래저래 배 아프고 속상한 일.
1990년대 라이벌이었던 해태 타이거즈와는 정 반대로, 빼어난 왼손잡이가 넘쳐나는 전통이 있다. 특히 전성기 시절 타선은 뭐 유지현과 한대화, 김동수 정도 빼면 죄다 왼손잡이. 넓은 잠실 야구장과 빠른 발, 그리고 2루타 정도는 노릴 수 있는 갭 파워를 겸비한 타선은 한번 불 붙으면 정신없이 휘몰아쳐서 상대의 혼을 빼놓는 야구를 했었고 그게 바로 LG의 상징과도 같은 신바람 야구의 근간이 되었다. 투수진에서도 이상훈을 비롯한 좋은 좌투수들이 있었고 지금도 봉중근, 박용택같은 좋은 왼손잡이들이 있지만...해태 타이거즈가 왼손잡이 찾으려고 그렇게 눈에 불을 켠 것처럼 이 팀은 우타 거포가 정말 징글징글하게 안나온다. KIA 타이거즈가 최희섭, 이용규, 양현종 등등 왼손잡이에 대한 갈망을 한시나마 푼 것과 다르게 이 팀의 우타 거포 워너비는 현재 진행형이다[32]. 한대화는 사실 해결사였지 거포는 아니었고, 그나마 제 몫을 한 건 우승했던 그 시즌밖에 없으며[33] 홍현우를 데려왔지만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박병호가 매년 1군에 들락날락했던 이유. 하지만 박병호도 트레이드했다. 결과는....
그래도 외야수 유망주만큼은 MBC 청룡 시절부터 미스터리하게도 화수분이다. 외야수가 없어서 고민해 본 적은 극히 드물다. 여기서 마르지 않는 LG외야라는 말도 나왔다. 1순위든 하위 지명이든 신고선수든 좌타외야수는 계속 나온다. 근데 투수 좀....
LG 트윈스 2군 구장이 위치한 구리시 아천동의 챔피언스파크가 훈련하는데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의견이 LG 팬/타 팀 팬들을 가리지 않고 나온다. LG 트윈스 2군 구장의 위치가 유흥가 지역이랑 너무 밀접해 있어서 젊은 선수들이 훈련에 집중 못하는 게 당연하고 노는 데에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중론이다. 이 야구장은 사실 LG 축구단의 훈련장이었는데, 그 중 1면을 야구장으로 개조하여 쓰고 있다가 걸렸다. 의정부 법원에서 다시 축구장으로 돌려 놓으라는 판결과 함께 LG 구본준 구단주도 이런 의견을 인지했는지 이전을 추진했고 선택한 장소가 이천시의 남쪽인 대월면 부필리로 결정되었다. 이후 2014년 8월 22일부터 구리를 떠나 이천 챔피언스 파크로 훈련장을 옮겼다.이천식물원
다만 이전 결정이 나왔을때 그조차도 LG 선수들에게는 사치라는 의견도 많다.[34] 아예 2군 구장을 전라북도 무진장 지역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까지 있었을 정도[35] 우스개 소리로 아예 연평도로 옮기자는 얘기까지 있다. 물론 연평도로 갈 일은 없겠지만 LG 유망주들의 느린 성장속도와 유흥을 즐긴다는 소문에 질린 LG팬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건 사실이다.
한때 넥센의 2군 구장이 전라남도 강진군의 강진베이스볼파크를 임차하여 사용하고 있고 계속 좋은 유망주가 나온다는 걸 생각하면[36] LG도 2군 구장은 아예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지방 군단위 지역쪽으로 옮기는게 어떨까 하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있다.[37]
여담으로 LG 트윈스 2군 구장을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구리식물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김기태가 2군 감독을 거쳐 정식 감독이 된 이후 타자 유망주들이 2군과 군경팀에서 날아다니며 폭격기 소리를 듣는 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2014년에 경찰청과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선두 경쟁을 하자 구리동물원이라는 말이 LG갤에서 생겨났다. 그래서 팬이랑 전문가들은 이들이 제대할 시기인 2015년~17년이 팀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거라고 예측하고 있는데, 2014년 군 복무를 마친 서상우, 김재율, 유강남, 윤정우, 나성용과 현재 군 복무 중인 강승호, 정주현 등이 자리를 잡아 세대교체가 된다면 2013년~2014년 시즌에 세운 강팀의 기반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LG 트윈스 2군 선수들 멘탈을 관리하는 코치나 고참 선수가 없다는 것도 문제. 이형종, 서승화, 이승우 등이 감독을 대놓고 디스하는 글을 SNS에다 올린 것들을 보면....다만 2012년 시즌 종료 후 계형철 전 SK 와이번스 투수코치가 재활군 코치로 임명되면서 이 문제는 다소 해결되었다. 그리고 야생마 이상훈이 돌아왔다.
또한 용병들도 이 삽질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는데,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이후로 투수는 데니 해리거, 크리스 옥스프링, 타자는 로베르토 페타지니를 제외하면 성공작이 없다.코치로서는 지못미스럽게 천년만년 장수할 수 있을 정도로 욕을 먹는 염경엽의 유일무이한 업적. 사실 스카우터로서의 염경엽은 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유능하다는 평판을 받았고, 결국 LG를 떠나고 넥센으로 가서 성공했다. 외국인선수라는 게 특성상 1,2년 잘하면 일본으로 가든가 기량이 하락하든가 하긴 하지만 그런 걸 감안해도 1년 평작 친 선수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2000년에 잘해준 데니 해리거 이후 2008년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오기 전까진 그저...전설의 용병 매니 아이바도 있었고. 서울 라이벌 두산 베어스[38]가 타이론 우즈, 다니엘 리오스 등 KBO 역대급 용병을 최소 3,4년 이상 아주 단물 쪽쪽 빼먹은것과 매우 비교된다.[39]
여기에 한이 맺혔는지 2011년 시즌을 앞둔 스토브 기간 동안 외국인선수 영입에 꽤나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장신 좌완 기교파 투수 벤자민 주키치와 시즌 종료 후 일찌감치 계약하였고, 이는 강상수 당시 스카우터가 성사시켰다. 2011년 1월 7일에는 2008년 시즌 최고 구속인 162Km를 달성한 기록이 있는 고무팔 레다메스 리즈를 영입하였다. 레다메스 리즈의 이름값과 경력만 놓고보면 일본프로야구 요코하마 & 요미우리를 거쳤던 강속구 투수인 마크 크룬이 초창기 요코하마에 입단했을 당시보다 훨씬 뛰어난 커리어인 건 분명하다.[40] 결국 2년 연속으로 둘 모두 괜찮은 활약을 보이면서 간만에 평작 이상의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포스트 시즌 봉인이 풀린 2013년에 벤자민 주키치는 부진했지만 레다메스 리즈는 최다 이닝에 탈삼진왕을 차지하였고 3,997일 만에 LG의 포스트 시즌 첫 승을 이끌었다.
2011년 4월 10일, 드디어 5,016일만에 선두로 도약했었다!![41] 이에 야갤에서는 5,016일 간 벌어진 사건들로 타임머신 놀이를 하며('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갈 듯', '베이징 올림픽 직관 가는데 우승할 듯') 13년이란 세월을 희화화하는 릴레이가 있었다. 위에 언급한 LG빠 만화가 최훈은 이런 만화로 LG 팬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42] 그러다 2013년 8월 20일 1995년 이후 18년만에 후반기 1위에 등극했으며 9월 22일 4개 팀 중 최초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고, 최종적으로는 10월 5일 정규리그 2위에 올라섰다.
2016년 거포 위주의 육성을 과감히 포기하고, 치고 달릴 수 있는 타자 육성을 위해 구단의 방향성을 새로 잡았다. 이천웅-서상우-양석환-채은성-유강남-강승호-정주현 등 많은 신인들이 기회를 받고 있다.
FA에는 큰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잇다른 먹튀들의 탄생으로 인해 구단에서도 소극적이 된 듯 하다.
1.4 구단이 그룹 이름을 바꾸다
사실 LG그룹은 KBO 리그에 더 일찍 참가할 수도 있었다. MBC가 추진하던 프로야구 창설 TF에서 럭키금성그룹에 "부산, 경남지역을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단을 만들지 않겠냐"는 의사를 타진했다.[43] 이때 당시 외유중이던 구자경 회장 대신 이헌조[44] 럭키금성그룹 기획조정실장이 "지금 오너가 부재중이니 돌아오신 후에 협의 후 확답하겠다"며 답변을 미뤘고, 당시 KBO는 프로야구 창단 목표일까지 시간이 촉박했던지라 서울 연고를 고집하던 롯데그룹을 부산으로 보내버리며 프로야구 원년 연고지 배치를 마무리지었다.[45]
이후 구 회장이 귀국하여 그런 일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자 무릎을 치며 "이 문디야, 그냥 하겠다고 받아 들였어야 안카나!" 라며 이 실장을 나무랐다고(...) KBO 리그는 구단주 회의로 대표되는 대기업의 카르텔 구조이기 때문에, 한번 때를 놓치면 마음대로 참여할 수도 없다. 그 돈 많던 현대그룹이 프로야구단을 만들려고 하자 8개 구단주들의 반대로 새로운 리그를 창설할 뻔한 일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1990년 새로운 통합CI LG를 채택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서 LG 트윈스를 창단했으나, 이후에도 공식적인 그룹이름은 럭키금성이었고 기존 계열사이름도 그대로였다. 수십년동안 써온 '금성(GoldstarGeumseong)', '럭키(Lucky)'로고 버리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LG 트윈스가 그룹에 준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야구단 인수 당시 그룹 이름은 LG가 아닌 럭키금성이었다. 당시 럭키금성 그룹은 (주)럭키(현 LG화학), (주)금성사(현 LG전자) 양대주력사를 주축으로 계열사 이름도 럭키xx, 금성## 식으로 일관성이 없었다. [46] 그러나 MBC 청룡을 인수하면서 럭키금성은 너무 길고, 줄여서 럭금은 어감이 별로라는 이유로 팀명을 럭키의 L과 GoldstarGeumseong의 G를 합쳐서 LG로 정하게 되었다.[47] 반도패션, 호남정유도 LG로 바뀌면서 명칭을 LG패션(현재는 그룹에서 분리), LG정유(현 GS칼텍스)로 통일했다. 또한 럭키금성 시절엔 편의점 이름을 LG25 (현 GS25) 라고 한적도 있었다.
이후 1994년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야구단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야구를 좋아하는 구본무 회장이 크게 기뻐하면서 그 다음해 그룹명을 정식으로 LG로 확정했고 돔구장을 지을 계획도 세우기까지 했다. 구단이 그룹 전체의 이름을 갈아버린 셈이다. 또한 1984년 창단된 프로 축구단 럭키금성 황소도 LG 치타스로 이름을 바꾸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 얘기는 무색할 정도로 안습 그 자체. 6668587667!
참고로 LG 트윈스 창단작업 때 만든 로고는 이후 편의점 체인인 계열사 LG25에서도 사용하게 되어 GS그룹으로 분리되어 GS25로 바뀌기 전까지는 매년 수익의 일정 %를 LG트윈스에 로열티로 지급했다.
그러나 LG그룹에서는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미 1984년에 그룹 계열사인 LG애드가 발족한 것을 보면 장기적인 프로젝트였을지도... 2007년에 발간한 LG 60년사에서는 야구단이 그룹 이름 변경에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이 단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다. 비밀번호 진행중에 발간되었으니.... 다만 최초는 LG애드나 LG카드에게 내어줬을지언정, LG라는 그룹명이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선 것은 90년대 초반 LG트윈스의 공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레전드
2.1 영구결번
LG 트윈스 영구결번 | |
No.41 김용수[48][49] |
2.2 상징적 인물
우선 늘푸른 소나무 김용수 선수를 빼놓을 수 없다. 마무리와 선발을 오가며 1999년 4월 19일에 국내프로야구 최초 100승 200세이브를 달성한 김용수 선수의 41번은 팀의 영구결번이 되었으며, LG 트윈스의 유일한 영구결번 선수이다. 하지만 코치 시절의 삽질과, 결정적이었던 조시카 사건으로 LG팬들이 현재 노송을 보는 시선은 굉장히 복잡하다. 한마디로 하자면 선수시절의 노송은 깔 수 없지만 코치로서는 이제 만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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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역시 "야생마" 이상훈을 빼놓을 수 없다. 특유의 등판 장면과 선발 - 마무리를 오가며 완벽한 활약을 한 그를 기억하다가 현재의 LG 투수진을 볼 때 LG팬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고 한다..., 야생마는 금지어 시절 LG구단과의 마찰로 석연찮은 이별을 한 후 2015년 겨울에 LG의 코치로 다시 돌아왔다. 등번호는 선수 시절과 같은 47번 [50] 다시 LG로 이상훈이 돌아온만큼 영구결번을 원하는 LG팬들도 많으나 실현가능할지는 아직 모른다.
LG 트윈스 | |
No.47 이상훈 |
이 밖에 1994년 LG의 신바람 야구를 이끌었던 김재현, 유지현, 서용빈[51] 3인방도 프랜차이즈 스타들[52]이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허슬 플레이어" 송구홍[53] 이나 "검객" 노찬엽[54]또한 추억의 선수들이다.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 중에는 이병규(1번 항목)와 박용택이 LG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기록될 수 있을 듯. 팀에 들어온지는 얼마 안 됐으나 봉중근 또한 팀의 에이스→마무리로 서서히 팬들의 마음속 입지를 넓혀가고 있었지만.....
LG 트윈스 | |||
No.7 김재현 | No.6 유지현 | No.90 최동수 |
포수 중에는 김동수가 레전드 대접을 받고 있다. FA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는 등[55] 당시에는 김통수(...) 등의 비난을 받았지만, 2014년 말 15년 만에 친정 팀 LG로 돌아온 뒤 현재는 2군에서 차근차근 차기 LG 트윈스 감독 수업을 받고 있다. 양상문의 처절한 야구를 보면서 김동수에게 기대하는 LG팬들도 상당히 있는 상황.
LG 트윈스 |
No.2 김동수 |
외국인 선수 중엔 2008년, 2009년 시즌 맹활약을 펼친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있다. 얼마나 활약이 대단했으면 LG팬들이 페타신, 페느님이란 별명을 붙였을 정도. 그가 남긴 충격이 대단했기에, LG팬들은 활약이 대단한 선수들에게 ~타지니라는 접미사를 붙이고 있다.[56] 그리고 2007년 시즌 중반 입단해 2008년 시즌 팀의 성적 부진, 특히 불펜진의 난조로 많은 승수를 챙기지 못해 옥크라이라는 별명을 얻으면서도 10승을 챙기면서 대인배급 성격과 상냥한 팬서비스를 보여줬던 크리스 옥스프링도 옥춘이라는 별명을 얻을만큼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LG 트윈스 | |
No.29 로베르토 페타지니 |
그렇지만, 2000년대 들어서 팀이 죽을 쑤다보니 다른 방면으로 상징적 인물이 된 이들이 많다. 특히 2006년 활약한 방화신기(등유규민, 휘발류택현, 경유헌호, 김민기름, 정유재복) 멤버들은 전설이 되었으며, 이 외에도 먹튀계의 영원한 아이돌 홍보살홍현우와 국내 프로야구계의 첫 먹튀 이정길이 있다. 부산 영도구청장에 취임한 어윤태[57]도 주목할(?) 만한 인물이며, 2000년대 후반에는 우규민이 KIA의 한기주와 화염 방사를 하고 다녔다. 파이야!~ 하지만 그랬던 우규민도 경찰청 제대 이후에는 선발투수로 전향하여 오랜기간 흔들렸던 LG 선발진의 한축을 담당하며 토종 에이스로 발돋움하며 국가대표에까지 뽑혔다.
앞으로 영구결번이 될 선수로는 이병규(9)나 박용택 등이 언급되고는 있지만 상당수의 팬들이 우승을 못 시켜준 선수에게 영구결번도 없다 라고 주장하고 있어 될 지 말 지는 알 수 없다. 커리어를 보면 이 선수들은 우승을 만들어 주고 싶어 하는데 구단이 걷어찬 거 같다
LG 트윈스 | |||
No.9 이병규 | No.33 박용택 | No.51 봉중근 |
MBC 청룡 시기의 상징적 인물은 백인천, 김재박이 있으나, 백인천은 롯데에서의 악명으로 당당하게 자랑하기가 힘들게 되었고, 김재박은 LG팬들이 듣기만 해도 피가 꺼꾸로 솟는 단어를 창시함으로서 오히려 LG팬들에게 기피당하는 인물이 되었다.
2.3 아름다운 과거, 1994 신인 3인방
위에서 언급되었지만 먼 옛날로 건너가면 LG에도 아름다운 과거들이 있었다. 특히 1994년 이광환 감독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때 가장 파격적인 활약을 보인 신인 선수 셋 김재현, 서용빈, 유지현의 모습은 아직도 많은 LG 팬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세 명의 1994년 기록은 다음과 같다.
- 김재현: 시즌 125경기 출장, 타율 0.289 134안타 홈런 21 타점 80 도루 21(20-20 클럽)
- 서용빈: 시즌 126경기 출장, 타율 0.318 157안타 홈런 4 타점 72(사이클링 히트 기록)
- 유지현: 시즌 126경기 출장, 타율 0.305 147안타 홈런 15 타점 51 도루 51 (신인왕 수상)
그러나 LG의 암흑기 이순철 시대에 김재현은 FA 후 SK로 이적하고, 서용빈은 병역비리에 연루된 후 은퇴, 유지현도 은퇴했다. 김재현은 2011년 SK에서 마지막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했으며, 서용빈과 유지현은 각각 LG 트윈스의 타격과 주루코치가 되었다.
다만 항상 셋이 나란히 언급되는 것과 달리 이 세 사람, 특히 김재현과 유지현은 사이가 굉장히 나쁘다. 선수협 결성 당시 김재현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에 반해 유지현은 구단의 편에서 선수협을 결사반대했고 김재현을 제외한 LG 선수들이 전부 선수협에서 나오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 당시 김기태, 이모 씨 등과 함께 오적으로 불렸다. 처음 데뷔했을 때부터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는 이 둘은 이 때 완전히 갈라섰다. 그러나 유지현도 나중에 LG 프런트에 뒷통수를 맞았다는 것은 좀 아이러니.
덧붙이자면, 1994년 LG의 신인 중엔 위의 세 선수 말고도 주목할 만한 선수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투수 인현배. 그는 위의 세 선수와 함께 혜성처럼 등장하여 94년 전반기에만 10승을 쓸어담으며 LG 마운드의 희망으로 떠올랐지만, 부상 등의 악재가 겹쳐 남은 기간 동안 1승도 못 올리고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어쨌든 프로에 갓 입단한 신인이 10승을 올렸으니 수치상으로는 성공했다 볼 수 있겠지만, 그 후로 거의 활약을 못하고 은퇴함으로써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허나 1994년 LG의 최전성기를 지켜본 올드팬들 중엔 신인 3인방에 인현배가 더해진 신인 4인방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30대의 늦은 시기에 기량이 만개한 최동수 역시 94년 신인으로서 LG에 입단했다. 당시엔 별 활약도 없었고 주목도 받지 못했지만... 2013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때 까지 노장으로서 묵묵히 팀을 이끌었다. 이래저래 94년 LG의 신인 농사는 프로야구 사상 최대의 대박 농사였다고 볼 수 있겠다.
그 결과...
저 당시에는 LG가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14년 후 2008년, 순위는 정 반대로 바뀌는데...
이 사진들의 웃긴 점은 정말 정확히 대칭이 되었다는 점이다. 8구단이 짜고 순위를 저렇게 대칭으로 만들기도 힘들텐데 물론 쌍방울과 태평양[58]은...그냥 넘어가자.
하긴 그걸로도 모자라 옆집 1차지명 투수 류택현을 빼와서 한참 동안 잘(...) 굴리고 있으니... 노인학대.
오랜 시간이 흘러 김재현은 구단과의 극심한 갈등으로 팀을 떠나 SK에서 활약하고 은퇴했고, 유지현은 주루코치, 서용빈은 타격코치를 맡고 있다. 그러나 박병호 폭행사건과 지속적인 탈쥐효과로 인해 서용빈은 예전만큼의 레전드 대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3 엘레발
희한하게도 시즌 전 훈련 관련 기사올해는 다르다가 타 구단의 3배 이상은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LG프런트 쪽에서 적극적으로 기사거리를 언론사에 배포하기에 그런 것 같은데... 문제는 그런데도 악성 댓글은 타구단 선수가 깽판쳐서 사고친 기사보다 3배 이상 많이 달린다는 것이다. 그 대부분의 악플내용은... 사진으로만 훈련한다는 비아냥, 또 엘레발친다, 입훈련한다, (2010년까지)봄데 여름성 가을슼 겨울쥐 이런 식이다. 윈터리그???
사실 알고보면 단순한 이유인데, 일단 LG 트윈스는 서울의 구단이고, 기자들은 상대적으로 서울에 더 많이 산다. 그러니 기자들이 입수할 수 있는 정보가 타 구단에 비해 많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스포츠 신문의 1면 사진은 각 지방별로 따로 뽑힌다. 즉, 헤드라인 기사 내용은 같아도 1면 사진은 서울이면 LG, 광주면 KIA, 대구면 삼성이라는 식. 따라서 LG의 성적과는 별개로, 대부분의 서울사람들은 지하철 등지에서 LG나 두산 관련 사진이 전면에 부각된 스포츠 신문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성적은 나쁜데 언론에는 자주 노출된다는 인식이 형성되는 것.
이런 일이 10년+1년(2015) 반복되다 보니, 겨울에 LG기사가 뜨면 댓글란은 분노를 넘어 체념한 LG팬들과 이를 놀려먹는 다른팀팬들로 인해 개판이 되기 일쑤다. 이런 꼴을 두고볼 수가 없어서 겨울에는 아예 야구기사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리는 LG팬들도 많다.
4 팀의 역사
MBC 청룡 시기의 최고 성적은 1983년의 준우승이다. 이후 LG 트윈스는 1990년, 1994년에 우승을 했다. 특히 이광환 감독의 신바람 야구를 내세운 1994년 우승은 현재까지도 LG 트윈스의 상징이자, 한국프로야구 발전에도 중요한 분수령이다. '뉴욕 양키스가 될만한 팀' [59] 현실은 뉴욕 메츠이자 한신 타이거즈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1990년대 중반의 LG 트윈스는 그야말로 잘 나갔으나, 1997년과 1998년 2연준(2연속 준우승)에 그치고, 2002년에는 객관적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김성근 감독의 '원조 벌떼 마운드'운용으로 투혼의 준우승을 일구어 냈으나 시즌 후 준우승 감독을 경질하는 우를 범하고[60] 1994년 우승 감독인 이광환 감독이 다시 지휘봉을 잡았으나 이 때부터 LG에 암흑기가 도래했다. 1년 만에 짤리고(...) 수석코치 이순철이 감독으로 임명되면서 창단 첫 최하위의 수모를 겪게 된다.[61] 2007년 시즌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김재박이 화려하게 친정팀으로 돌아왔으나 결과적으로 주전들의 철밥통 포지션 운영과 조공성 트레이드 등으로 비밀번호가 늘어났을 뿐이었다. 이 시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LG 트윈스/1990~2008년 참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의 암흑기를 보내면서 얻은 별명이 칠쥐(7위 + LG)이다.
2007년 시즌에는 시즌 막판 삽질쇼로 인해 화끈하게 100억 지르고 5위라는 성적을 거두었으며[62], 2008년에는 결국 2번째 최하위의 성적표를 받았다.[63] 참고로 2008년의 2번째 꼴찌는 팀 역대 최저 승률 기록이기도 하다. 하필 쥐띠해에 쥐가 이렇게 부진하다니...[64] 몇년째 100억단위로 돈을 쏟아부으며 굴하지 않고 매 홈경기를 관전하는 구단주인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천사임이 틀림없다는 게 야구관계자나 팬들 사이에서 정설로 통했다.
실제로 엘롯기 중 기아 수뇌부는 아예 야구에 관심이 없어FIFA월드컵 스폰서의 위엄 운영은 현장과 프런트가 알아서 하고 롯데 수뇌부는 구단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데 반해 LG 수뇌부는 꼬박꼬박 직관에 스프링 캠프때도 찾아가며 2군까지 꿰고 있을 정도로 야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다. 그러나 그게 꼭 좋은 건 아니다. 야구를 잘 모르는 구단주의 지나친 관심은 자칫 필요 이상의 간섭과 구단주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사장, 단장의 삽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그리고 실제로 LG의 팀 성격이 엉망이 된 것을 그 때문으로 보는 입장도 상당하다. 이상훈+이광환 체제에 대한 미련으로 김성근 축출도 그렇지만, 리빌딩에 들어가야할 팀에 포지션까지 중복되는 즉전급 선수를 몇 년 동안 사들여서 팀 목표가 리빌딩도 아니고, 우승 도전도 아닌 애매하게 흘러가는 이유가 된 것이 그 이유.카드수집? 이런 케이스가 미국 메이저리그에도 있으니 바로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5년 준우승 이후 지속적인 영입을 통해 대권을 노렸으나 번번히 실패하고, 계속 좋은 유망주들도 놓치자 성적이 수직으로 추락한 것이 닮았다. 에스트로스는 하다하다 관조를 피해서 2013년 지구를 옮기라도 했지[65]
그러나 2011년 방영된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LG 특집에서 그 충격적인 실상이 알려졌다. 구단주가 임명한 사장이라는 인간이 "야구에 대해 문외한"이며 그저 술만 좋아해서 스프링캠프 때 박종훈 감독과 기자들 앞에서 추태를 부렸다 하니... 그나마 이 보도 덕에 그룹에서 직접 감사팀을 파견하여 대대적인 재정비 작업에 들어가면서 현재는 그래도 팬들을 고려하는, 평타는 치는 프런트로 바뀌었다. 비록 능력 부족으로 인해 지탄받는 점은 있으나, 2011년부터 시작된 백순길 단장 체제가 4년 이상 지속되는 것만 해도...[66]
이시기에는 10년 동안 도무지 발전이 없는 팀성적과 구단의 철밥통 코치와 스카우터들, 이러한 답답한 LG 트윈스의 구단 경영에 실망을 넘어 염증을 느낀 팬들 사이에서는 정말로 진지하게 GS그룹에 팀을 매각하는 것이 어떨까하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FC 서울과 GS 칼텍스 여자배구단 등 GS 그룹이 운영하고 있는 스포츠단은 LG 그룹보다 괜찮은 성적과 운영을 하고 있기 때문. 물론 실제로 LG 그룹이 야구단을 GS 그룹에 매각할 확률을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2013년[67]과 2014년[68] 연속으로 가을야구에 진출하면서 10년의 비밀번호를 끊어내는데에 성공했다. 특히 2014년에는 김기태 감독의 사임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양상문 감독이 부임한 뒤 5할 -16 꼴찌에서 기적같이 4위에 안착하는 데 성공하면서 LG팬들을 기쁘게 했다.
2015년 구단 역사상 첫 9위로 최악의 한해를 보냈으나 2016년 젊은 선수들의 성장과 함께 2년 전처럼 5할 -14에서 후반기 대반전을 만들어내며 4위에 안착, 2년 만에 가을야구에 복귀하였다.
4.1 역대 감독
구단 홈페이지에서는 LG로 바뀐 이후의 감독만 카운트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전신인 MBC 청룡 시절의 감독까지 포함한다.
순서 | 이름 | 재임 기간 | 전적 | 승률 |
초대 | 백인천 | 1982년 ~ 1983년 | ||
감독대행 | 유백만 | 1983년 | ||
감독대행 | 한동화 | 1983년 | ||
2대 | 김동엽 | 1983년 | ||
3대 | 어우홍 | 1984년 ~ 1985년 | ||
4대 | 김동엽 | 1985년 ~ 1987년 | ||
감독대행 | 유백만 | 1987년 | ||
5대 | 유백만 | 1988년 | ||
6대 | 배성서 | 1989년 | ||
순서 | 이름 | 재임 기간 | 전적 | 승률 |
7대 | 백인천 | 1990년 ~ 1991년 | ||
8대 | 이광환 | 1992년 ~ 1996년[69] | ||
감독대행 | 천보성 | 1996년 | ||
9대 | 천보성 | 1997년 ~ 1999년 | ||
10대 | 이광은 | 2000년 ~ 2001년[70] | ||
감독대행 | 김성근 | 2001년 | ||
11대 | 김성근 | 2002년 | ||
12대 | 이광환 | 2003년 | ||
13대 | 이순철 | 2004년 ~ 2006년[71] | ||
감독대행 | 양승호 | 2006년 | ||
14대 | 김재박 | 2007년 ~ 2009년 | ||
15대 | 박종훈 | 2010년 ~ 2011년 | ||
16대 | 김기태 | 2012년 ~ 2014년 | 135승 138패 5무 | 0.495 |
감독대행[72] | 조계현 | 2014년 | 6승 10패 | 0.375 |
17대 | 양상문 | 2014년 ~ | 118승 123패 3무 | 0.490 |
4.2 역대 성적
| 우승 |
| 준우승 |
| 포스트시즌 진출 |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
드 = 드림리그, 매 = 매직리그 * = 공동순위 |
연도 | 정규시즌 순위 | 최종 순위 | 팀이름 | 경기수 | 승 | 패 | 무 | 승률 |
1982 | 3위/6팀[73] | 3위 | MBC 청룡 | 80 | 46 | 34 | 0 | 0.575 |
1983 | 1위/6팀[74] | 준우승 | 100 | 55 | 43 | 2 | 0.561 | |
1984 | 4위/6팀[75] | 4위 | 100 | 51 | 48 | 1 | 0.515 | |
1985 | 5위/6팀[76] | 5위 | 110 | 44 | 65 | 1 | 0.404 | |
1986 | 3위/7팀[77] | 3위 | 108 | 59 | 41 | 8 | 0.590 | |
1987 | 5위/7팀[78] | 5위 | 108 | 50 | 51 | 7 | 0.495 | |
1988 | 6위/7팀[79] | 6위 | 108 | 40 | 64 | 4 | 0.389 | |
1989 | 6위/7팀 | 6위 | 120 | 49 | 67 | 4 | 0.425 | |
연도 | 정규시즌 순위 | 최종 순위 | 팀이름 | 경기수 | 승 | 패 | 무 | 승률 |
1990 | 1위/7팀 | 우승 | LG 트윈스 | 120 | 71 | 49 | 0 | 0.592 |
1991 | *6위/8팀 | 6위 | 126 | 53 | 72 | 1 | 0.425 | |
1992 | 7위/8팀 | 7위 | 126 | 53 | 70 | 3 | 0.433 | |
1993 | 4위/8팀 | 4위 | 126 | 66 | 57 | 3 | 0.536 | |
1994 | 1위/8팀 | 우승 | 126 | 81 | 45 | 0 | 0.643 | |
1995 | 2위/8팀 | 3위 | 126 | 74 | 48 | 4 | 0.603 | |
1996 | 7위/8팀 | 7위 | 126 | 50 | 71 | 5 | 0.417 | |
1997 | 2위/8팀 | 준우승 | 126 | 73 | 51 | 2 | 0.587 | |
1998 | 3위/8팀 | 준우승 | 126 | 63 | 62 | 1 | 0.504 | |
1999 | 매3위/4팀 | 3위[80] | 132 | 61 | 70 | 1 | 0.466 | |
2000 | 매1위/4팀 | 4위[81] | 133 | 67 | 63 | 3 | 0.515 | |
2001 | 6위/8팀 | 6위 | 133 | 58 | 67 | 8 | 0.464 | |
2002 | 4위/8팀 | 준우승 | 133 | 66 | 61 | 6 | 0.520 | |
2003 | 6위/8팀 | 6위 | 133 | 60 | 71 | 2 | 0.458 | |
2004 | 6위/8팀 | 6위 | 133 | 59 | 70 | 4 | 0.457 | |
2005 | 6위/8팀 | 6위 | 126 | 54 | 71 | 1 | 0.432 | |
2006 | 8위/8팀 | 8위 | 126 | 47 | 75 | 4 | 0.385 | |
2007 | 5위/8팀 | 5위 | 126 | 58 | 62 | 6 | 0.483 | |
2008 | 8위/8팀 | 8위 | 126 | 46 | 80 | 0 | 0.365 | |
2009 | 7위/8팀 | 7위 | 133 | 54 | 75 | 4 | 0.406 | |
2010 | 6위/8팀 | 6위 | 133 | 57 | 71 | 5 | 0.429 | |
2011 | *6위/8팀 | 6위 | 133 | 59 | 72 | 2 | 0.450 | |
2012 | 7위/8팀 | 7위 | 133 | 57 | 72 | 4 | 0.442 | |
2013 | 2위/9팀 | 3위 | 128 | 74 | 54 | 0 | 0.578 | |
2014 | 4위/9팀 | 4위 | 128 | 62 | 64 | 2 | 0.492 | |
2015 | 9위/10팀 | 9위 | 144 | 64 | 78 | 2 | 0.451 | |
2016 | 4위/10팀 | 4위 | 144 | 71 | 71 | 2 | 0.500 | |
KBO 통산 35시즌 | V2 | 4339 | 2052 | 2185 | 102 | 0.484 |
그 외 사항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문서 참조.
4.3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KIA 타이거즈 | 83KS : 1무 4패 97KS : 1승 4패 02PO : 3승 2패 16WC : 1승 1패 | WC 1승, PO 1승, KS 2패 개별 경기 총 전적 5승 1무 11패 |
삼성 라이온즈 | 90KS : 4승 93PO : 2승 3패 97PO : 3승 2패 98PO : 3승 1패 02KS : 2승 4패 | PO 2승 1패, KS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14승 10패 |
두산 베어스 | 93준PO : 2승 1패 98준PO : 2승 00PO : 2승 4패 13PO : 1승 3패 | 준PO 2승, PO 2패 개별 경기 총 전적 7승 8패 |
현대 유니콘스 | 94KS : 4승 98KS : 2승 4패 02준PO : 2승 | 준PO 1승, KS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8승 4패 |
롯데 자이언츠 | 95PO : 2승 4패 | PO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2승 4패 |
NC 다이노스 | 14준PO : 3승 1패 16PO : 1승 3패 | 준PO 1승, PO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4승 4패 |
넥센 히어로즈 | 14PO : 1승 3패 16준PO : 3승 1패 | 준PO 1승, PO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4승 4패 |
4.4 2009년 이전
4.5 2009년 이후
- LG 트윈스/2009년
- LG 트윈스/2010년
- LG 트윈스/2011년
- LG 트윈스/2012년
- LG 트윈스/2013년
- LG 트윈스/2014년
- LG 트윈스/2015년
- LG 트윈스/2016년
- LG 트윈스/2017년
5 LG 트윈스 선수 관련
6 트윈스 관련 커뮤니티
6.1 I love Twins
6.2 LG 트윈스 갤러리
7 역대 유니폼 변천사
- LG 트윈스/유니폼 참조.
- 참고로 2014년부터
헬롯키티헬로 키티와 제휴를 맺고, 키티와의 콜라보레이션 제품들을 판매하는 헬로 트윈스라는 쇼핑몰을 오픈했다. 잠실 야구장에도 매장이 있으며 특히나 여성 팬들이 반응이 폭발적이라고 한다. [82]
- 2016년부터는 무려 스타워즈와 어벤져스와의 콜라보레이션 굿즈 상품이 출시되었다. 스타워즈는 시범경기 때 매장에 나왔고, 어벤져스는 5월에 출시. 트윈스샵이 아니라 헬로트윈스 관련 홈페이지에 들어가야 상품을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5월부터는 국산 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와의 콜라보레이션도 진행되었다.
8 사건사고
- LG 트윈스/사건사고 참조.
9 지역 연고 학교
서울연고 야구팀인 넥센 히어로즈,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는 지역연고학교를 합동 관리한다. |
10 관련 문서
- MBC 청룡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잠실시리즈
- LG 챔피언스 파크
- 1983년 한국시리즈 [83]
- 1990년 한국시리즈
- 1994년 한국시리즈
- 1997년 한국시리즈
- 1998년 한국시리즈
- 2002년 한국시리즈 [84]
- LG 트윈스/트레이드
- 사랑해요 LG(야구)
- 유광잠바
- 엘롯기
- 두엘롯
- 엘넥한
- 엘 꼴라시코
- 오리갑
- 6668587667
-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 이 팀은 솔직히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안 됩니다
- 탈쥐효과[85]
- 추격쥐
- 방화신기
- 윤세호
11 네임드 팬
- 최훈[86]
- 하정우[87][88]
- 안재욱
- 홍경민
- 박성웅[89]
- LG그룹 오너 가문(…)[90]
- 故 박제찬(1965~2014)[91]
- 故 박기홍(1911~1999)[92]
-
윤세호 기자[93] - 주영훈
- 김형준(기자)
- 김광현[94]
- 미하마 치요(...) [95]
- 임찬규[96]
- 오리갑
- 허영만[97]
- 이문세
- 이적(가수)
- 유희열[98]
- 이종혁
- 김소연(배우) [99] [100]
- 데니 안[101]
- 최강창민
- 박용우
- 최정원
- 김동욱
- 이상윤
- 최효종[102]
- 이동건
- 이승기[103]
- 신화 신혜성[104]
- 신화 에릭
- 공형진[105]
- 이영자
- 이지영(강사) [106]
- 홍서범[107]
- 신소율
- 이승우[108]
- 진세연
- 윤박
- 손나은[109]
- 윤보미
- 오하영
- 손연재
- 백호
- 류철민[110]
- 전상규[111]
- 윤서인
- 이명학
- 이민혁
- 윤종신[112]
- 이광섭
- 무적핑크 [113]
- 아웃사이더
- 김현태(아나운서)
- 박보미
- 정승제
- 은가은[114]
- 남궁민
- 김문호
- 이윤아
- 김세희
- 김택용[115]
12 응원
2016시즌 기준으로 LG 트윈스의 치어리더는 남궁혜미, 김민지, 이지수, 정다혜, 신수인, 김유나, 김은정의 7명이 있다. 응원단장은 최동훈이며, 장내 아나운서는 일번 타아자아 허지욱이다.
KBO 구단 최초로 막대풍선 응원을 도입하고, 선수별 응원가를 도입했을 만큼 KBO의 응원문화를 선도하는 팀이었으나 2008년 롯데 자이언츠의 약진으로 이 분의 명작들이 주목받으면서 신규 야구 팬들에게는 그닥 주목받지 못했다. 2009년 어떤 요정이 응원단장이 되면서 지금도 불리고 있는 박용택, 정성훈, 이진영[116]의 응원가가 나오면서 KBO 응원 no.1 자리를 놓고 몇년째 롯데와 다투고 있다. 응원가도 명곡이 많아 비슷한 포지션, 또는 비슷한 캐릭터의 후배 선수들이 대대로 내려받는 전통이 있는데, 예를 들어 유지현의 응원가는 차세대 대형 유격수(...)로 입단한 박경수가, 조인성의 응원가는 같은 성씨의 후배 포수가 물려 받았고, 손인호의 응원가는 같은 성씨라는 이유로 손주인이 물려 받았다. 외국인 선수도 마찬가지로 페타지니의 응원가는 스나이더와 히메네스에게 대물림되었다. 자세한 것은 여기 참조
다만, 타 팀으로 이적한 선수의 요청에도 절대 응원가를 내주지 않는다. 2012년 FA로 SK에 이적한 조인성이 LG시절 응원가를 쓰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지만, 구단은 단호히 거절, 결국 조인성은 SK에서 이상한 응원가(...)만 듣다가 한화로 이적해 병맛 좀 돋아도 중독성 있는 응원가를 받았다. 2015년에는 KIA를 거쳐 kt로 이적한 이대형이 LG시절 응원가를 사용하고 싶다고 밝혔고, 이번에는 승낙했다는 말이 기사화까지 됐지만 결국 안 쓰게 되었다. 그 노래는 이미 이 분이 가져가셨다카더라
유명한 치어리더로 강윤이[117]가 있었으나 SK로 이적해버렸다. 김기태 감독의 리더쉽을 다룬 책에 개인인터뷰도 실린 적이 있었고, 2014년 포스트시즌 예고편에서 LG대표로 나갔던 치어리더인지라 그녀의 이탈에 팬들이 느낀 상실감도 상당했다. 부상으로 인한 은퇴라고 말하면서 그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SK로 쏙 가버린 모습에 분노한 팬들도 많다. 그녀의 사진이 가끔 LG게시판에 올라오지만 주로 뒷통수, 배신자라는 반응만 돌아온다.
2015년 새로운 응원단장이 된 최동훈이 만든 양석환, 임훈 응원가가 퀄리티가 처참하다. [118] LG가 계속해서 엉망진창인 성적을 올리는 와중에도 LG팬들이 끊임없이 야구장을 찾았던 이유 중의 하나가 다른 구단들보다 뛰어난 응원가에 있었는데, 2015년에는 이 장점마저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2016년, 팬들로부터 응원가를 모집하는 등 변화의 노력은 보였으나...시범경기에서 공개한 응원가들의 퀄리티는 여전히 처참했던데다가, 서울 메들리나 서울의 찬가 등을 틀지 않고 새로운 단체 응원가만 주구장창 트는 바람에 [119], 경기 종료 후 밤 11시가 넘도록 최동훈은 LG 트윈스 갤러리, I love Twins에서 미친 듯이 까였다. [120] 다행히도 최동훈 응원단장이 서울응원가를 틀어달라는 피드백을 수용하고 새로운 응원가들 중에 몇 개가 재평가 받아 불만의견은 많이 잦아든 상태.
고려대와 연세대의 응원단에서 편곡한 응원가들을 멜로디는 그대로 들고가서 가사만 개사해서 쓰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고려대의 '민족의 아리아', 'Forever'라든가 연세대의 '연세여 사랑한다' 등. 간혹 LG 트윈스 팬 가운데서 양교의 응원가를 처음 듣고 LG 응원가를 표절해갔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보이는데, 적반하장이다. 양교 응원단이 먼저 편곡해서 만든 곡을 LG 응원단이 멋대로 갖다 쓰는 것이므로 오해하지 말자.
13 기타
- 22년째 우승을 못했다. 한국 시리즈에 오른 것도 2002년이 마지막! [121] 어느덧 최원호의 눈물을 대구시민야구장에 남겨두고 15년이 흘렀다. [122] 그 덕에 LG그룹 금고 속에 있는 8천만원짜리 롤렉스는 2016년까지 주인을 찾아가지 못했다.[123][124]
- LG카드로 구매시 입장권 할인제도가 있었다. 신한카드로 인수된 현재도 일부 상품에 한정 존재하니 해당문서 참고. 어째서인지 LG트윈스 공홈에는 언제인가부터 해당 내용이 삭제되었다... 최소 14년까지는 공홈에 존재했었음
- 응답하라 1994에서도 서울 쌍둥이의 모델이 되었고, 성동일이 구단 코치를 맡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1994년은 바로 LG 트윈스가 우승을 한 해이고, 드라마에서도 이걸 충실히 재현했다. 성동일은 기뻐하면서 인삼주를 담그면서 다음 해에도 우승하면 기념으로 따서 마신다고 했지만....드라마상에서는 이렇게 연출되었으나 언젠가는 열릴 것이다[125].
- 해체된 구단인 쌍방울 레이더스[126] 와 2013년, 2015년에 1군에 합류한 NC 다이노스[127] , kt wiz를 제외하면 KBO 리그 출범 이후 MBC-LG시절을 통틀어 단 한 번도 홈런왕과 MVP 수상자를 낸 적이 없는 유일한 구단이다. 홈런왕은 소총타선 이미지+국내에서 가장 넓은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없는게 어느정도 이해는 가지만[128] MVP의 경우 1995년 시즌에 20승을 달성한 이상훈이 높은 가능성을 보였지만, 결국 당시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 버프+홈런왕+100타점의 김상호에게 MVP를 빼앗기고 말았다. LG팬들은 이에 대해 굉장히 아쉬워 한다.
라이벌 팀에서 MVP-홈런왕을 가져갔거니와, 김상호도 사실은 MBC에서 데뷔를 해서 더더욱(...)
- 일본 위키에서는 월드컵이 개최되는 해마다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징크스가 있는 팀 이라고 적혀 있다.(...)
2002년 이후 일본 위키는 아예 갱신을 안한 듯 하다.(...)확실히 1990년, 1994년, 1998년, 2002년 시즌에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었고 그중 2시즌엔 아예 우승까지 하긴 했지만,[129] 그것도 이젠 옛날 이야기고 근래 들어서는 월드컵이 개최되는 해에도 부진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06년에는 창단 첫 최하위,[130] 2010년에도 6위에 머물렀으며 2014년에도 한화와 탈꼴찌 싸움을 하는 신세를 지기도 했다. 양상문이 취임한 6월 이후부터 무려 5계단이나 순위가 상승하며 2년 연속 가을야구를 하게 되었고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여 이 징크스가 다시 살아날 듯 보였으나 1승 3패로 플옵이 끝나 무효.
- 인디밴드 로맨틱펀치의 노래 TGIF(Thank Girl, It's Friday!)에 '이룰 수 없는 이루어질리 없는 트윈스의 우승에 건배를' 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로맨틱펀치의 보컬 배인혁은 LG의 골수팬이라고 한다...
해탈한건가...골수팬이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
- 2015년 들어 같은 구장 쓰는 팀이 우승을 한 반면, LG 프런트는 20년이 넘도록 여전히 답답하고 어리석고 무능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함에 따라서 LG그룹은 사실 야구를 하는게 아니라 옷장사[131]를 하는거다라고 욕하는 팬들이 늘고 있다. 근데 사실 이 말에 반박할 수가 없다.(...)
- LG 트윈스와 KBL의 농구팀 서울 SK 나이츠는 놀라운 평행이론을 이루고 있다. 90년대의 전성기, 2002년 대구광역시 연고 스포츠팀에게 져서 준우승[132], 그 후 바로 10년의 암흑기[133], 그리고 잠깐의 부활[134], 그리고 2015년 다시 추락한 모습까지 완벽하게 일치한다. 서울에서 가장 불행한 스포츠팬이 LG야구+SK농구팬이라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 [135]
- 암흑기 동안 생산된 LG트윈스의 어두운 별명들은 LG라는 이름을 썼던 모든 팀들이 함께 짊어지고 있다. 창원 LG 세이커스, GS칼텍스 서울 KIXX, FC 서울, 구미 KB손해보험 스타즈 모두 성적이 엉망이거나 경기 중에 굴욕적으로 지면 인터넷 게시판 등지에서 빠짐없이 언급되는 것이 LG 트윈스의 별명들이다. [136]
- 소속팀 투수 중에 유독 연예인을 닮은 선수들이 많다. 이 선수들의 별명에는 잠실 + 닮은 연예인 이름(또는 그의 별명) 이런 식으로 지어진다. 예를들어 잠실 납뜩이, 잠실 이연희, 잠실 지현우 등이 있다.
14 LG 트윈스 관련 도서
2013년 LG가 11년만에 가을야구를 한 시즌에 나왔던 책들로, 김기태가 RUN을 해버리면서 지금은 대부분이 불쏘시개화되었다.
- 볼수록 만만한 야구 - LG 트윈스 신바람 야구 / 저자(김윤정) /2010년 5월 / 어린이들을 위한 책으로 축구편(FC 서울[137]), 농구편(서울 SK 나이츠), 골프편과 함께 출간되었다. 학교 도서관이나 중고책방에서 가끔 눈에 뜨인다.
- LG 트윈스 때문에 산다. 저자(김은식) / 2013년 11월 / 표지부터 그 놈이 등장해 기분을 더럽게 한다. 속지에도 큰 그림으로 또 있기 때문에 적당히 그 부분만 접거나 찢은 다음에 보자.(...) 그 것만 빼면 MBC 청룡과 LG의 잘나가던 시절의 역사를 알고 싶으면 참고해 볼만한 책.
- 10년을 기다린 LG트윈스 스토리. / 저자(안승호, 김식) / 2013년 10월 / 런기태 사건 이후에는 완전히 불쏘시개화
- 김기태의 형님 리더쉽. / 저자(남도현, 정철현) / 2013년 8월 / 2014년 런기태 사건 이후에는 완전히 불쏘시개화
- 봉중근의 야구공 실밥 터지는 소리 / 저자(봉중근) / 2013년 1월
- ↑ 2015년 LG그룹 CI 변경에 따라 엠블렘도 약간 달라졌다. 그래봐야 LG 폰트 바뀐거뿐이지만...
오빠 나 뭐 달라진거 없어? - ↑ 200px
이전엠블럼 - ↑ 좌측에 있는 팀 엠블렘 위에 그려지기도 한다.
바로 이렇게. - ↑
여자 쌍둥이 마스코트인 사랑이, 행복이도 있다. 팀웍이와 근성이와는 다르게 분홍색 모자를 썼다. - ↑ LG유플러스와 LG경영개발원에서 사장을 지낸 인물. 당시 구단주이자 LG전자 대표이사였던 구본준 부회장이 LG전자 경영에만 전념할 의사를 밝히면서 구단주 대행으로 임명됐다...고 하지만 실상은 구본준 부회장의 형이자 LG家의 일원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KBO 총재로 선임됐기에 잡음을 줄이기 위한 차원으로 구단주에서 스스로 물러난 것이 맞다.
- ↑ 2015년 LG그룹 CI 변경에 따라 워드마크도 약간 달라졌다. 그래봐야 LG 폰트 바뀐거뿐이지만...
- ↑ 홈페이지를 제외하면 구단이 운영하는 SNS가 없는 유일한 구단이었다. 그러다 2016시즌을 앞두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 ↑ 두산 베어스도 원칙적으로 최초의 서울 연고팀에 포함되기는 한다. 그러나 1982년 시즌부터 3시즌 동안 KBO와의 약속 하에 충청도 연고 팀으로 뛰었다는 것이 옥에 티.
- ↑ 1990년에 제작된 경기 시작 음악 중 가사 부분. 이 노래의 유일한 가사다.
- ↑ 당시에는 63빌딩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었다.
- ↑ 참고로 LG는 건물, 마스코트에 쌍둥이를 좋아하는데, 구씨와 허씨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회사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현재는 허씨일가는 GS그룹으로 분리되어 나갔기 때문에 LG와 LG 트윈스는 구씨 일가 소유다. 그렇지만 현재까지도 좋게좋게 헤어진 케이스이기 때문에 현재도 양 그룹간의 교류는 이뤄지고 있으며, 양 구단이 각각 서로 스포츠단을 운영하는 스포츠에는 구단 창단을 하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LG는 야구와 남자농구, GS는 축구와 여자배구를 소유.
- ↑ 연분홍색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 ↑ 2015년부터 kt wiz가 검은색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진한 핑크를 사용할듯 하다.
- ↑ 헌데 이상훈이 2004년 금지어인 그분과의 갈등으로 SK로 이적 이후 이렇다할 선발-마무리를 오가는 투수를 찾기 힘들었고 팀의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2012년 봉중근의 마무리 전환은 결과적으로 2013년의 선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 ↑ 그러나 2015년 시즌 초 봉중근은 블론을 거듭하면서 마무리 투수로서의 부담감을 호소했고 결국 선발로 전환되었다. 이후 마무리 투수는 이동현과 임정우, 정찬헌이 나누어 맡고 있다.
- ↑ 대표적으로 뉴욕 닉스. 뉴욕 레인저스
- ↑ 팀은 6668587667을 찍어도 같은 시기 관중집계는 1112133332이다. 다시 말해서 3위권 밖으로 밀린 적이 없다는 소리.
- ↑ 다만 디씨 한정으로 LG 트윈스 갤러리는 절륜한 삽질력을 자랑한다. 주니어 야갤 취급까지 받기도 한다.
- ↑ 참고로 2013시즌은 타 시즌보다 비교적 적은 128경기 체제 시즌이었다. 즉, 못가도 1경기당 최소 1만명은 왔었단 소리.
- ↑ 다른 한 팀은 이상민을 영입하면서 동시에 팬덤이 유입되어 2007~2010년의 인기팀으로 급부상한 서울 삼성 썬더스.
- ↑ 10년에 한 두 번 구경할 수 있는 포스트 시즌이라 몰렸다는 점도 있다.
- ↑ 대전, 광주, 대구, 사직, 마산 경기.
- ↑ 가운데 여자는 2014년 4월 2일 경기에 시구를 하러 온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박승희.
- ↑ 과거에는 쌍둥이 로보트였다. # 이후 2006년 CI교체 이후 그냥 사람(...) 캐릭터로 바뀐 상황.
- ↑ 김용일 응원단장을 겪어본 삼성팬들이 특히 그러했다. 그러나 2013년부터 김상헌이 응원단장이 되면서 삼성 팬들 사이에선 이 말이 들어간 듯 하다.
- ↑ 이 노래는 KIA 응원가에서도 들을 수 있다. 야구에서는 KIA가 '그대 없이는 못살아'를 조금 먼저 썼지만, 사실 같은 LG 스포츠단 산하의 프로농구단인 창원 LG 세이커스가 이 노래를 쓴 것을 KIA가 베낀 것이다.
- ↑ 응원방망이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색깔이 바뀐 건 이유가 있다. 해태 타이거즈와 붙었던 1997년 한국시리즈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타이거즈는 그 당시에도 노란색
단무지응원방망이를 썼다. 이 경우 당연히 두 팀의 응원방망이 색깔이 겹치게 된다. 이에 LG가 그룹의 상징 색깔이기도 한 빨간색으로 응원방망이 색깔을 바꿨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 ↑ 엘지 유니폼을 입어도 엘지팬은 아니다라는 홍보부장의 대응이 일품이다
- ↑ 무엇보다 팬 관련 사건이 많다.
구단이나 선수 관련 사건도 가장 많다. 뭐든 1등이 아니면 못 견디는 엘지 - ↑ 그나마 2010년에 지난 2년간 부진으로 인해 까인 것을 풀어내듯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 골든 글러브까지 받았다.
하지만 2011년 이후 2번째 FA에서 이견을 보여 SK로 이적 - ↑ 이진영마저도 2차 드래프트로 팀을 옮겼으며 탈쥐효과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 ↑ 2010년에 조인성이 기록한 성적이 이 팀의 우타자 최고 성적이다. 물론 2010년 들어 KBO 리그판에 우타거포 자체가 희귀하긴 하다.
- ↑ 물론 허문회의 지명권까지 갖고 온 트레이드 자체는 대 성공이었다. 신동수도 괜찮은 투수였지만, 김상훈과 이병훈이 LG를 떠나 해태에서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보고 오자.
- ↑ 두산 베어스 2군 구장인 두산 베어스 필드가 이천시의 북쪽의 백사면 경사리에 있다. 이천시에 이미 두산이 자리잡고 있는데 굳이 2군 구장을 두산과 같은 위치에 두는 것이 불만인 LG 팬들도 많다. 그런데 대월면과 백사면 두 지역은 무려 남북으로 20km 떨어져 있어서 가까운 편도 아니다.
- ↑ 무주군, 진안군, 장수군
- ↑ 유망주가 잘 나오는 이미지 때문에 묻히지만 강진 2군 캠프의 상태는 심각하다. 오히려 1군(서울 목동)과 너무 떨어져 있어서 1군과 2군 코치의 소통이 힘들며, 2군 코치 수 자체도 2012년까지는 감독 포함 4명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며, 특히 재활 시설이 매우 열악해 넥센 선수들은 부상을 당했다 하면 회복이 매우 느리다. 조용준도 이런 재활 시설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래서 히어로즈프로야구단 측은 경기도 화성시와 협약을 맺고 2군 팀명을 화성 히어로즈로 정해 2군 구장 및 훈련장을 신축했다.
- ↑ 구리시의 별명이 오죽하면 구리베가스이다. 유흥가 & 술집이 밀집한 지역이고 여기서 차로 좀만 더 가면 서울의 유흥가도 갈 수 있다. 한마디로 2군선수들이 술이나 유혹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란 얘기다. 막말로 공부하라고 큰 돈 들여 독서실 보냈는데 그 주위에 PC방 & 유흥시설 있으면 공부할 수 있겠는가? 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환경에서 음주 관련한 사고가 없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
- ↑ 하지만 이 팀은 드래프트로 뽑은 타이론 우즈 정도를 제외하고는 중고품(...) 알뜰구매.(...) 그걸 보여 준 게 크리스 니코스키, 빅터 콜, 마크 키퍼 등.
- ↑ 타 팀에서 뛰던 중고 용병(특히 삼성제, 매니 마르티네스는 예외)을 사와도 100% 망한다.
- ↑ 2010년 1승도 못 올리고 웨이버 공시된 에드가 곤잘레스의 사례 때문에 리즈와 주키치와 계약했을 때 두 선수에게 윈터 리그 & 멕시칸 리그 출전 금지를 제시했으며 출장하게 되면 계약 취소란 강수를 두었다. 그 대신 훈련 수당으로 달러를 더 줬다. 그리고 열심히 훈련한 결과 둘 다 선발 축을 이루어 재계약에 성공했다. 특히 제구력 나쁜 리즈는 가면 갈수록 제구력이 늘고 있다.
- ↑ SK와 공동 선두. 팀당 5경기 이상 소화한 시점 기준이다. 약 13년 8개월이며 이 부문에는 롯데의 13년 10개월 기록이 있다.
- ↑ 하지만, 다음 경기인 2011년 4월 12일 삼성 라이온즈전 패배 이후 다시는 1위로 올라오지 못했고, 가을 야구조차 실패했다!
- ↑ 구자경 당시 럭키금성그룹 회장을 비롯한 LG그룹 오너 일가는 모두 경남 진주시 출신이다. 구본무 회장을 비롯한 3세대 경영인 형제들도 모두 부산광역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게다가 LG그룹의 뿌리이기도 한 락희화학공업사 공장이 부산 온천동에 있기도 했다.
- ↑ 금성사 창업 시절 원년멤버로 우리나라 전자산업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12월에 별세.
- ↑ 지금이야 휴대폰으로 전화 통화나 메신저 등으로 세계 어디서든지 연락이 가능하지만, 80년대 초반에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휴대폰 해외로밍도 2000년대 들어서야 가능했다.
- ↑ 럭키금성이라고 그룹명을 사용한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로, 그 이전에는 그냥 럭키그룹이었다. 그룹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기업이 '락희화학공업사-(주)럭키-LG화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상대적으로 나중에 창업한 금성사가 주력으로 같이 부각되면서 이같이 부르게 된 것.
- ↑ 그룹에서는 1984년 그룹 계열 광고회사 LG애드에서 'LG'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소비자들에게 LG라는 브랜드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럭키금성그룹에 인수된 코리안익스프레스카드가 LG카드로 이름을 바꾼 직후부터다.
- ↑ 잠실 야구장 LG 홈 경기 시 1루 내야석과 우측 외야석 사이 계단에 김용수의 등번호 41번과 영구결번일인 1999.4.19가 박힌 대형 현수막이 걸린다.
- ↑ 여담으로 2004년까지만 해도 잠실구장 외야 관중석 한 편에 김용수의 등번호 41번이 새겨진 유니폼 모양의 영구결번 기념판이 있었으나, LG의 공식 금지어인 그 분께서 김용수 코치와의 껄끄러운 관계를 이유로 김 코치를 내친 뒤, 영구결번 기념판까지 철거해버렸다.
- ↑ 이 번호는 이상훈이 떠난 후 여러 선수들이 달았었지만 그 누구도 이상훈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던 번호다. LG팬들 사이에서는 거의 영구결번급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조시카따위가 달 번호가 아니다 - ↑ 그러나 코치로서는 완전히 말아먹었다...
- ↑ 이 중 김재현은 팀을 떠났다. LG팬들은 지금도 캐넌을 계속 기다리고 있다. 2016년, 김재현이 코치로 재직하고 있는 한화와의 개막전에, 김재현을 소개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가장 큰 함성이 나온 곳도 LG의 응원석 1루였다.
- ↑ 그러나 스카우터로서는 완전히 말아먹었다...
- ↑ 그러나 코치로서는 완전히 말아먹었다...
- ↑ 삼성의 템퍼링 의혹까지 있었다.
- ↑ 예) 깝타지니, 잉타지니
둘 다 이젠 딴 팀 선수다등등 - ↑ 얼마나 LG팬들이 증오하는 대상이면 리그베다 시절엔 작성금지 처리가 되어있었다(..)
- ↑ 쌍방울-SK 와 태평양 & 현대-넥센은 공식적으로 다른 팀이다.
- ↑ 언론에서 하도 한국의 양키스라고 보도하는 바람에 최근의 LG팬들은 이 별명을 싫어한다. 최근 보여주고 있는 성적이 하늘과 땅 차이니.....
- ↑ 당시 사장 어윤태의 "이건 김성근의 야구지 LG 야구가 아니오."라는 멘트는 당시 프런트의 삽질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2011년 어느 팀에서 또다시 재현된다다만 몇몇 올드팬들 사이에서 김성근의 평가는 최악. 이동현과 장문석을 굴리면서 이 두 선수의 커리어를 상당부분 말아먹었고, 이병규의 타격 폼을 개조시키려다 실패해 슬럼프의 원인을 제공했으며, 신인 드래프트를 말아먹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의 일. - ↑ 이 시기 이순철의 행태는 KTF 매직엔스(現 KT 롤스터) 시절의 김철 감독과 더불어 삽질의 대명사로 남는다.
- ↑ 이때의 평가는 의외로 좋았던 편. 전년도보다 더 약해진 전력임에도 성적이 좋아졌기에 팬들은 다음시즌을 기대하게 했지만, 더 질러야 할 상황에서 프런트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는... 딴거 다 필요없이 큰 돈주고 산 박명환이 2008년에 그렇게 무너질줄 누가 알았겠는가...
- ↑ 하지만 LG그룹은 이걸 광고로 사용했다(…).
- ↑ 공교롭게도 같은 쥐띠해였던 1996년에도 크게 부진하여 팀 사상 최초 꼴찌를 이 때 달성할 뻔하기도 했다. 실제로는
같은 잠실 팀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가 2.5게임차로 꼴찌를 하면서 가까스로 꼴찌를 면하긴 했다만... 그 전 쥐띠 해인 1984년 MBC 시절에도 6팀 중 4위로 좋은 성적을 보이지 못했다.그렇다면 2020년에도..? - ↑ NL 중부리그에 2000년대 강호 홍관조가 있어서 와일드카드 빼고는 성적내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이사온 AL 서부가 낫다(...)
- ↑ 백순길 단장은 단장을 맡기 이전에는 LG그룹 고객서비스 부문. CS(고객 만족) 경영팀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 경력 때문인지 팀 케미스트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을 차단하는 데 능하다는 평을 받는다.
- ↑ 3위
- ↑ 4위
- ↑ 96년 시즌중 중도사퇴
- ↑ 01년 시즌중 중도사퇴
- ↑ 2006년 중도 사퇴
- ↑ 2014년 김기태 감독이 중도 사퇴했지만 구단에서는 사퇴를 수리하지 않은 상태로 조계현 수석코치에게 실질적인 감독대행 역할을 맡겼다.
- ↑ 전기 3위, 후기 3위
- ↑ 전기 3위, 후기 1위
- ↑ 전기 3위, 후기 3위
- ↑ 전기 5위, 후기 6위
- ↑ 전기 4위, 후기 3위
- ↑ 전기 5위, 후기 4위
- ↑ 전기 7위, 후기 6위
- ↑ 전체 6위
- ↑ 전체 4위
- ↑ 종합운동장역 지하에도 매점이 있다
- ↑ MBC 청룡 당시 나갔던 한국시리즈
- ↑ 2015년 현재 LG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 ↑ LG팬이라면 심호흡을 하고 클릭하도록 하자
- ↑ 자타공인 LG광팬 중 하나여서 이로 인해 생긴 별명이 쥐훈. 다만 2013년 말 이후로는 SK에 보다 치중한 모습을 보여서 솩훈(…)이라 까이고 있다. 하지만 이만수 체제 붕괴 이후로는 그냥 구색 취급. 오히려 한화 쪽에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칡훈 - ↑ 어린시절 럭키금성 어린이 회원이였다고 한다
- ↑ 시사회 때 한 두산팬이 "두산 경기에 시구하러 오세요!"라고 요청하자 "죄송합니다, 저는 서울팀만 시구할겁니다."라고 단칼에 거절한 적이 있다.
당연히 쥐갤에서는 찬양받았다 - ↑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LG팬인 걸 밝히지 못한다고 울분을 토하였다(…).
- ↑ 구단 창단 당시의 그룹 회장이었던 구자경 명예회장을 비롯해 창단 당시 구단주였던 구본무 회장과 그의 동생인 구본준 前 구단주 등이 열혈 야빠로 유명하다. 심지어 구자경 명예회장의 차남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KBO 총재이기도 하다.
- ↑ 흔히 LG팬들 사이에서 달마 아저씨, 달마아재라고 불리던 열성팬이다. 생전에 박용택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는데 이분이 세상을 떠나자 박제찬 씨의 빈소에 박용택이 직접 조문하기도 했다.
감동택의리택 - ↑ 프로 원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잠실로 찾아와서 MBC청룡과 LG트윈스를 응원하셨다.당시 LG트윈스 선수였던 김재박은 박기홍옹이 보이지 않으면 반드시 경기가 끝난후 박기홍옹의 집에 직접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봤다.
- ↑ OSEN의 LG 트윈스 전담기자로, 2014년 7월경 LG를 중심으로 우주의 기운이 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쥐동설라는 역대급 기사를 썼다. 타어강과 다르게 실제로 우주의 기운인지 결국 4강에 가서 성지 취급을 받는 중이다. - ↑ SK 와이번스 소속의 투수 맞다. 물론 지금은 엄연한 소속팀이 있는 만큼 잘 어필하지도 않고 했다가는 큰일나지만, 어렸을 때부터 LG 특히 이상훈의 팬이었으며 데뷔 초에는 대놓고 LG 응원가 불렀다가 까였다(…). 이러한 에피소드로 인해 쥐갤에서는 흔히들 쥐광현으로 부르고 있다.
- ↑ 원작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팬이지만 현지화 과정에서 LG 트윈스 팬이 되었다. [1]
- ↑ 어렸을 때부터 LG팬이었으며 해당 문서를 확인하면 알겠지만 초등학생 시절에 조인성이랑 사진도 같이 찍었다.
- ↑ 전라도 여수 출생이다보니 같은 전라도를 연고로 하는 해태/KIA 역시 응원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MBC 시절부터 팬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LG 그룹과도 친분이 있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식객등의 작품을 보면 LG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정작 시구는 두산경기에서 했다(...).
- ↑ 라디오에서 LG 트윈스의 팬임을 밝혔다. 두산 팬인 김장훈과 야구 이야기를 할 때면 으르렁거린다고(…).
- ↑ 2015년부터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했는데 하필이면 상대가 두산팬인 곽시양이다.....9월 27일 잠실야구장에서 함께 LG와 두산의 경기를 직관하기도 했다
- ↑ 그리고 그날 두산의 선발투수 유희관은 1.2이닝동안 LG 타자들에게 난타당하며 8실점을 했고 바로 강판되었다. 이 날 경기는 LG 트윈스가 3-10으로 승리했다.
- ↑ 봉중근과 큰 이병규의 열렬한 팬이다. 20세기 미소년에서 매니저와 같이 두산전을 관람하는 것이 방송되었다. 경기 관람 전에 봉중근을 직접 봤는데 걸그룹 멤버를 보는 것보다 더 떨렸다고 한다. / 헌데, 유광잠바 조공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 ↑ 그런데 두산 베어스 민병헌과 사촌 지간이라고 한다.(...)
- ↑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의 사직구장 편에서 본인이 LG 트윈스의 팬이라고 밝힌 바 있다.
- ↑ 방송에서 가끔씩 LG 트윈스 모자를 쓰고 다닌다. 참고로 같은 팀 멤버인 이민우는 두산팬이다.
- ↑ LG 트윈스의 광팬이지만 필패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직관 오는 것을 싫어하는 팬이 많다. 마지막 경기로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를 가렸던 2013년 10월 5일 두산전에서는 공형진이 퇴장한 후에야 팀이 역전승을 거두었다고(…).
- ↑ EBS와 스카이에듀에서 사회탐구를 가르치는 강사이다. 그녀의 꿈은 한 때 최초의 여자 야구 해설자였다고 한다. 그녀의 블로그에는 LG트윈스와 관련된 글이 많다.
- ↑ 유자식 상팔자에서 조갑경과 자녀들이 밝히길 LG가 지거나 지고 있으면 가족들이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가족들에게 화풀이한다고 한다.(...)
가정불화가 10년이나 갔을 듯 - ↑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의 축구선수 그 이승우 맞다. 인터뷰에서 박용택과 이병규의 팬이라고 밝혔다. [2]
- ↑ LG에 자주 시구를 하러왔다. 그리고 94베이비. 참고로 팀 멤버 정은지는 롯데팬이다.
- ↑ SBS 라디오 PD이자 씨네타운 나인틴의 PD
- ↑ 락밴드 와이낫의 보컬
- ↑ 케이블 TV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 윤종신 편에서 참가자 중에 LG트윈스 유광잠바를 입은 사람이 있었다. MC의 질문에 윤종신은 LG팬 인증. 그러나 90년대부턴 야구를 잘 안 본다고 한다.(...)
그럼 청룡 팬 아닌가?여담으로 유광잠바를 입고 나온 이 참가자는 최후의 1인으로 선택됐고 실력자였다! - ↑ 2013시즌 중 블로그에 '엘지망가'라는 엘지 관련 만화를 그린 적이 있었다...
- ↑ 자신의 SNS에 잠실야구장에서 찍은 사진을 틈틈이 올리며, 임찬규 선수의 싸인이 있는 모자까지 갖고 있다.
- ↑ 자신의 아프리카 방송에서 야구 이야기를 하다가 밝혔다.
- ↑ 2009년 주니치로 이적한 이병규 응원가를 물려받았다가 2010년 이병규의 복귀로 지금의 응원가가 나왔다.
- ↑ 리즈시절에는 박기량과 김연정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유명했다! 은퇴선언 이후 3대 여신 자리를 이수진에게 내주었다.
- ↑ 동요같이 유치하다는 지적이 많다.
- ↑ 서울관련 응원가들은 LG의 자존심이라고 불릴 만한 곡들이기에 팬들의 불만이 더욱 컸다.
- ↑ LG트윈스 갤러리, 아이 러브 트윈스가 서로간에 거의 의견이 안맞는 커뮤니티인 것을 감안하면 두 커뮤니티에서 위 아더 월드로 까인 최동훈의 응원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알 수 있다.
- ↑ 한일 월드컵이 열린 후 다시 3번의 월드컵이 또 열렸다
- ↑ 대구시민 야구장은 2015년 부로 더 이상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는다
- ↑ 이게 무슨 얘기인지는 #기사 참조
- ↑ 해당 시계의 기념비적 성격, 그리고 감가상각이란 개념이 없다시피 한 롤렉스 데이토나 모델 자체와 1998년도부터 한번도 차지 않은 채 금고속에 고이 보관되어온 본 시계라면 지금쯤 8천만원의 가치는 이미 뛰어넘어있을 것이다.
- ↑ 사실 작중에서 집들이하러 모인 등장인물들이 몰래 따서 마셨다.
- ↑ 쌍방울은 김기태(1969)가 홈런왕을 차지하기는 했다.
- ↑ 2015년 에릭 테임즈 선수가 MVP를 수상함으로서 kt 위즈와 함께 유이한 구단이 되었다.
- ↑ 물론 구장이 큰것도 있지만 구단 자체가 홈런과 담쌓은 팀컬러인것도 염두에 둬야한다. 같은 구장을 쓰는 두산은 두번이나 잠실 홈런왕을 배출했고 선수 개인 기록으로도, 팀 통산 홈런으로도 LG에 비해 상당히 우위에 있다. 박용택이 LG 소속 선수로서 최다 홈런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는 273홈런의 김동주에 비하면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며 심지어 두산의 용병이었던 우즈가 5년동안 친 174홈런보다도 적다.
- ↑ 1990~2002년의 기간 동안 LG는 한국시리즈에 5번 진출했는데, 월드컵이 안 열리는 해였던 건 1997년 딱 한 번뿐이다. MBC 청룡 시절까지 확대해도 월드컵이 열린 1982년과 1986년엔 각각 6팀 중 3위, 7팀 중 3위로 성적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1982년과 1986년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단일리그에 계단식 포스트시즌이 아니라 전기리그 우승팀과 후기리그 우승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 그런 시절이었다. 82년과 86년에 종합 3위를 했더라도 두 해 모두 전기리그, 후기리그 우승도 못해보고 가을야구 진출을 못했으니 엄연히 말하면 이 두 해도 부진한 성적이다.
- ↑ 당시 감독이 금지어인 그분이었다...
- ↑ 극단적으로는 유니폼팔이라고 한다.
- ↑ SK나이츠는 당시 대구에 연고를 두고 있던 동양 오리온스에게 패배했다.
- ↑ LG 2003~2012년, SK나이츠 2002~2012년, 10년 동안 SK나이츠는 07-08시즌 딱 1번 포스트시즌을 나갔었다.
- ↑ LG트윈스 2013~2014년, SK나이츠 2012~2015년
- ↑ 하지만 SK나이츠는 LG보다는 사정이 그나마 낫다. 2013년에 11년만에 다시 KBL 파이널에 진출했기 때문. LG의 마지막 한국시리즈는 아직까지 2002년이다.
- ↑ 예외로 FC 서울은 연고이전 관련 다툼이 더 치열해서 이런 별명이 안붙는다
- ↑ 서울 이랜드 FC는 창단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