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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9일 (일) 01:38 기준 최신판
- 2016년 전적은 두산 베어스/2016년, 이번달 전적은 두산 베어스/2016년/9~10월로.
?width=180 (참가구단) | |||
두산 베어스 | NC 다이노스 | 넥센 히어로즈 | LG 트윈스 |
KIA 타이거즈 | SK 와이번스 | 한화 이글스 | 롯데 자이언츠 |
과거에 참가했던 구단 보기 ➡ | |||
삼성 라이온즈 | kt wiz |
200px | 300px |
팀 엠블럼 | 팀 마스코트 철웅이 |
두산 베어스 | |
DOOSAN BEARS | |
창단 | 1982년 1월 15일[1] |
법인 설립 | 1983년 3월 24일 |
팀명 변경 | 1999년 1월 5일 |
구단 법인명 | ㈜두산베어스 |
영문명칭 | DOOSAN BEARS Inc. |
업종명 | 스포츠 클럽 운영업 |
상장유무 | 비상장기업 |
기업규모 | 대기업 |
연고지 | 서울특별시 |
구단 연고지 변천 | 충청남도, 충청북도[2] (1982~1984) 서울특별시 (1985~) |
구단명 변천 | OB 베어스 (1982~1998) 두산 베어스 (1999~) |
구단주 | 박정원[3] |
사장 | 김승영 |
단장 | 김태룡 |
감독 | 김태형 |
홈 구장 |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1982~1984)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4](1982~1984) 동대문야구장(1985)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1986~) (25,553석) |
2군 구장 | 베어스 파크 (400석) |
킷 스폰서 | " />?width=120[5] |
워드 마크 | |
관련 홈페이지 | > | width=25]] | width=20]] | > | width=25]] |
공식 어플리케이션 | > | > |
최종 우승 | |||
4회 1982, 1995, 2001, 2015 | |||
역대 우승 엠블럼 | |||
파일:Attachment/obbearsks1982.png | 파일:Attachment/obbearsks1995.png | 파일:Attachment/dusanbearsks2001.png | |
1982년 | 1995년 | 2001년 | 2015년 |
두산그룹 산하 스포츠단 | |||
50px | 두산 베어스 (야구) | 두산[6] (핸드볼) |
1982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 ||||
프로야구 출범 | → | OB 베어스(1982) | → | 해태 타이거즈(1983) |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 ||||
LG 트윈스(1994) | → | OB 베어스(1995) | → | 해태 타이거즈(1996) |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 ||||
현대 유니콘스(2000) | → | 두산 베어스(2001) | → | 삼성 라이온즈(2002) |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 ||||
삼성 라이온즈 (2014) | → | 두산 베어스(2015) | → | 2016년 우승팀 |
목차
1 개요
KBO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서울특별시를 연고지로 하는 3개 구단 중 하나다.[7] 대한민국 창단 1호 프로야구 구단. 한국프로야구선수권대회라는 명칭을 쓴 원년(1982년)과 KBO 리그라는 명칭을 쓴 원년(2015년) 우승팀이며 최초의 10개 구단 체제의 원년(2015년) 우승팀이다.
1.1 구단 소개
한국 원년 프로 야구단 중 하나인 두산 OB 베어스로 창단된 구단으로,[8]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와 같은 프로 야구 원년팀이다. 연고지는 1982년~1984년 대전시, 1985년엔 서울의 동대문운동장, 1986년부터 홈구장은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마스코트는 팀 이름에서 보듯 곰이다. 팀의 상징색은 남색, 빨강색과 흰색.
역대 우승년도는 1982년 원년과 1995년, 2001년, 2015년[9]으로 총 4번이며 준우승은 2000년, 2005년, 2007년, 2008년, 2013년으로 5번. 한화 이글스와 함께 삼성 라이온즈 다음으로 준우승 횟수가 많은 구단이다.[10]
2 팀의 특색
2.1 미라클 두산
팀 마스코트인 곰에 비유해 뚝심의 야구, 김인식 감독 시절엔 우동수 트리오를 위시한 거구 타자들이 즐비했던 터라 뚱산 베어스 또는 두산 씨름부라고 불렸지만 김경문 감독 체제 하에 발야구를 비롯한 급격한 팀 컬러 변화를 겪으며 두산 육상부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2010년 이후로는 투수조를 중심으로 더스틴 니퍼트, 장민익 같은 장신 선수들이 많아지면서 두산 농구부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엄밀히 따지면 두산 베어스 소속으로는 이 사람도 있다. 팀에서 미는 구호로 "Hustle Doo(허슬 두)"[11]도 있는데 이를 응용한 '허슬Doo Go! 봐라 2013!'은 개그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근성있는 강팀, 업셋[12], 극적인 역전승[13]도 있었으며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전패로 준우승을 할 뻔한 위기에서 7차전까지 가기도 했다. 하지만 7차전에서는 현대의 외국인선수 톰 퀸란의 원맨쇼로 아깝게 준우승에 머무른다. 두산팬들은 이를 미라클 두산이라고 칭한다. 다만 그 별명답게 미라클하게 시리즈를 내준 경우도 의외로 많았다는 게 함정(...) 어어??
앞서 언급한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3패 뒤 3연승으로 리버스 스윕 직전까지 갔다가 마지막에 무릎을 꿇는다던지,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SK에게 2승 후 4연패를 당하지 않나(...) 2009년 플레이오프 때도 그 SK에게 2승 후 3연패라는 리버스 스윕도 당하고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도 2승 → 3승 1패 뒤에 3연패로 우승을 내주는 등(...) 여러 의미에서 미라클 두산 답다 그런데 이쯤되면 테러블 두산인데
2.2 짠돌이 줍산? 쏠때는 쏜다!
FA를 잘 안 잡는데도 불구하고 성적이 잘 나오는 희한한 팀. 2012년 기준, 지난 11년간 FA를 잡는데 36억 밖에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초반 우승 1회 준우승 4회를 보면 강훈련과 무한경쟁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2군 시스템 하에서 키워내는 유망주들의 성장으로 이뤄낸 깊은 뎁스와 성공적인 외국인 선수 영입, 그리고 잘 짜여진 팀 조직력으로 강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반면 한화 이글스는... 2012년에는 김승영 사장, 김태룡 단장 체제로 조직을 개편하며, 당해 FA로 풀렸던 외야수 임재철, 투수 정재훈, 그리고 두목곰 김동주를 넉넉한 조건으로 잡는 이례적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우리 두산이 달라졌어요 이러한 움직임이 계속될지는 앞으로 두고봐야할 일.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거의 매년 투수진이 구단운영에서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특히 고질적인 좌완투수 부족으로 신인지명 시 좌완이면 억대 계약금에 모셔오기부터 하는 좌완성애 구단. 불펜진은 선발보다는 사정이 양호해 2009년까지는 KILL 라인[14]고도 불렸지만, 선수들이 각각 부상, 재활, 보직전환 그리고 그 사건 등의 풍파를 겪으며 사실상 해체(...) “신은 베어스에게 좌완 투수를 뺏어가고 포수만 잔뜩 주셨다.”라는 푸념이 있었다. 그런데 2015년에 좌완 투수들이 우수수 쏟아져나온 데 비해[15] 우완이 없다(...) 니퍼트는 부상으로 인해 시즌 내내 드러눕다시피 했고, 노경은은 여러가지 악재와 불운이 겹치며 너무나도 안타까운 한 시즌을 보냈다. 윤명준은 직전 시즌 IS 개새끼의 혹사 여파가 남아있었고, 시범경기 때부터 팬들을 설레게 했던 김강률은 불의의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 시즌 초반에 시즌아웃.
운영적인 면에 있어서는 큰 돈을 막 푸는 것보다는 유망주 및 트레이드로 쏠쏠하게 실속을 챙기는 편. 구단이 선수 영입에는 정말 돈 안 쓰는 걸로 유명하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외부 FA를 잡은 적이 없는 유일한 구단이었다. 2012년 시즌이 끝나고 구단 최초로 FA를 선언한 홍성흔을 롯데에서 영입했지만 엄연히 두산에서 데뷔했던 선수이므로 FA라 치지 않는 시선이 강하다.
그런데 2014-15 오프시즌에 장원준을 84억에 FA로 잡아서 더 이상 유일한 구단이 아니다. 이젠 유일하다면 이 곳이겠지
그리고 타 구단이 쓰다 내보낸 선수들은 가끔 줍는다. 예를 들면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당한 크리스 니코스키나, KIA 타이거즈에서 방출된 다니엘 리오스가 두산에서 성공, 줍산이라 불리기도 했다.약산 그러나 2009년 취임한 두산그룹 CEO 박용만과 2012년 취임한 김승영 사장은 쓸 땐 쓰는 면모를 보여주어 팬들로 하여금 돈산이라는 감탄사를 자아냈다. 대신에 돈 써서 선수 데려오면 시망인데 그 대표적인 예가 금민철+10억을 주고 데려온 이현승. 두산팬들이 그를 현퀴나 10억 군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2015년 두산 베어스의 마무리로 두자릿수 세이브를 따내고 국가대표에도 승선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진작 이럴것이지
창단 당시에는 의외로 돈을 투자해서 박철순을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데려와 우승하기도 했으며 그런데 그 덕분에 박철순은 허리부상에 쓰러졌다(...) 2011년에는 3개 구단의 감독이 OB 베어스 원년 소속이기도 했다. 당시 투수코치 김성근, 포수 김경문, 조범현, 한대화와 1대 신인왕 박종훈의 경우 원년 OB베어스 소속은 아니지만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 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의 신임감독 양승호도 베어스를 거쳐갔다. 2011년 감독대행을 맡았던 김광수도 팀을 한번도 떠나지 않은 베어스맨이었다. 1997~98년에 KBS 해설위원으로 잠시 활동했으나 선수-코치 생활을 한 팀에서 계속 이어오고 있다. 2011년 시즌이 끝나자 감독대행직을 내려놓고 2012년 고양 원더스를 거쳐 2015년에는 한화에 둥지를 틀었다.
2.3 유명한 포수 사관 학교
두산은 원년서부터 쟁쟁한 포수들이 많았기 때문에 포수 사관학교, 포수왕국, 또는 포수 덕후 구단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아래는 두산 주전포수 일대기.
김경문 & 조범현 → 김태형 & 이도형 → 진갑용 & 최기문 → 홍성흔 → 채상병 → 최승환 & 용덕한 → 양의지 물론 이외에도 많다.
1982년 OB 베어스 원년에 1977년 공주고의 대통령배 우승 주역인 고려대 출신의 김경문, 역시 77년 충암고의 봉황대기 우승 주역인 조범현, 1976년 선린상고에서 봉황대기와 황금사자기 우승을 이끈 정종현이 그 대표 인물들이라 할수 있겠다. 당시 김경문과 조범현은 포수 수비에서, 정종현은 타격에서 각각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16] 1990년대 초, 팀에 암흑기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주전 이도형과 김태형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이도형은 장타력에서, 김태형은 수비력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여기서 시간이 점점 흐르고 1990년대 중반이 되었을 때 팀 역사상 포수 자리경쟁이 가장 치열했다고 한다. 이미 김태형과 이도형이 주전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뒤로 1996년 최기문, 1997년 진갑용, 1999년 홍성흔이 열 맞춰 주르륵 들어오면서 경쟁이 엄청나게 심해졌다. 게다가 위 3명의 지금 네임밸류만 보더라도... ㅎㄷㄷ. 2016년 현재 두산 베어스 1군 감독으로 있는 김태형이 스프링캠프 삼자토크에서 했던 증언에 따르면, "내가 주전일 때 이도형과 최기문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단에서 진갑용을 또 뽑더라. 솔직히 난 그 때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구단 프런트에서는 좋은 포수가 나오면 일단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라고 한다.
이 당시 두산 배 나는 포수다 경쟁에서 최종우승을 거머쥔 선수는 다름아닌 홍성흔이었다. 루키시즌에 0.258의 타율에 16홈런, 63타점을 기록하였고 역대 포수로서는 두 번째로 1999년 신인왕을 수상하면서 최기문을 롯데 자이언츠로, 진갑용을 삼성 라이온즈로 보내버렸다. 그러면서 2007년까지 주전포수로 군림했다.
2008년 이후 홍성흔이 완전히 지명타자로 전향하면서 채상병이 포수주전을 꿰찼다. 하지만 2009년 시즌에 들어 LG 트윈스에서 트레이드로 온 최승환과 용덕한 등의 팀내 다른 포수들의 경쟁에 밀려 1군 경기보다는 2군 경기에서의 출전이 잦아지게 되었고, 2009년 7월 16일 삼성 라이온즈의 좌완 투수인 지승민을 상대로 한 1:1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였다.
2010년 양의지가 타율 0.267, 20홈런, 68타점을 기록, 그 해 신인왕에 등극하면서 최승환과 용덕한을 밀어내고 주전자리를 확실히 굳히며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잡았다. 당시 두산 감독 김경문에 따르면 양의지가 제대 후 출장했던 첫 경기에서 "오늘 한 번만 경기에 세웠다가 2군으로 내려서 경험을 더 쌓게 하려고 했었다"는데, 양의지가 그 경기에서 홈런을 2개나 때려내면서 주전자리를 쟁취해낸 것이다. 이는 2011년 상무에서 복귀한 김재환이 수비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부상 때문에 2군에 내려가 있어서 그런 것도 있고, 최승환과 용덕한같은 백업포수들이 양의지의 기량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랬었을 수도 있다.[17] 그리고 2011년 최승환이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한화로 트레이드되었다.
2012년 최재훈이 군에서 복귀 후 수비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양의지에 이은 새로운 포수 유망주로 떠올랐다. 타격은 아직 부족하지만, 뛰어난 송구 능력에 힘입은 도루 저지 능력이 돋보인다. 거기다가 군 시절 타율 3할 5푼에 도루저지율 8할을 찍으며 퓨쳐스를 씹어먹고 제대 후 2016년 1군에서까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박세혁까지 등장. 정말 마를 날 없는 두산 포수진이다.
다만 이 '포수왕국'이란 용어는 반만 맞는 말이라는 주장도 있다. 주전급 포수가 쏟아진 건 맞지만 대부분이 타격 안 되는 수비형 포수들이었고 공수겸장으로 리그 수위를 다툴만한 포수는 홍성흔과 양의지 단 둘 뿐이었다는 것. 그나마 이들의 시대에도 각각 박경완과 강민호라는 1인자가 있다는 것이다.[18] 하지만 이 말에 따르면 꾸준히 1인자를 배출하지 못한 구단은 해당 부문에서 풍족한 자원을 가졌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두산은 공격형 포수인 이도형, 홍성흔, 양의지와 수비형 포수인 김경문, 조범현, 김태형, 진갑용 등 고루고루 뛰어난 선수들을 배출했다. 그리고 타 구단과 비교해봐도 이만수에 진갑용이 끝인 삼성, 강민호에 잘 쳐줘봐야 최기문 정도가 끝인 롯데, 게다가 진갑용과 최기문은 두산 출신. 해태 시절 김무종, 장채근 정도가 끝인 KIA, 박경완 밖에 없던 현대와 SK 등 모든 구단을 압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김영신이라는 포수가 경쟁에서 밀려나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 이후 그의 배번은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끊임없이 주전포수감이 발굴되는 탓에 OB/두산 소속이었던 이도형, 진갑용, 최기문, 채상병, 최승환 그리고 홍성흔과 용덕한까지도 두산에서 오래 있지 못하고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적극적인 트레이드로 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선수 개인에게도 앞 길을 터 주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무조건 나쁜 사례라고만 보기는 힘들다. 즉 트레이드한 선수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트레이드로 얻게 될 실리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2.4 외국인 선수들의 성공 무대?
팀에서 외국인 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나 높았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이후로 전통적으로 외국인 선수 덕을 많이 본 팀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면 타이론 우즈(타자), 다니엘 리오스, 맷 랜들, 캘빈 히메네스 등.
다만 이것만 보고 두산 프런트가 선수 보는 눈이 좋다고 오해하면 안된다. 우즈는 트라이 아웃으로 뽑았고 리오스, 레스, 키퍼는 이미 다른 팀에서 검증을 마친 선수들, 랜들은 레스의 추천선수였다. 두산은 외국에 스카우터도 파견하지 않고 스탯과 현지에서 보내준 자료만 보고 뽑는 막장 짠돌이 구단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들이 터지는 해에는 국내 선수들이 죽을 쓰고 국내 선수들이 분발하는 해에는 외국인 선수들이 폭망하는 등, 외국인과 국내선수들의 사이클이 묘하게 안 맞아서 15시즌 전까진 외국인이 잘하건 못하건 꾸준히 2~3위권에서 머물렀다는게 함정. 그리고 외국인투수 대폭발+국내선수 각성이 터진 두산 베어스는....
다른 구단에 비해 용병 농사를 잘 짓는 편이지만 용병들이 몇 해 맹활약하다 몸값을 불린 뒤 일본프로야구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서 일본프로야구의 팜 아니냐는 자조섞인 말이 나돈다. 이러한 연유로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 용병들이 많았는데, 그 예로 타이론 우즈, 게리 레스, 다니엘 리오스, 켈빈 히메네스가 있다. 하지만 2016년 까지 우즈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일본 리그에서 실패해서 한국으로 다시 유턴하거나 똥망. 레스는 2003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지만, 1년 만에 방출. 리오스는 일본 첫해 2승 7패로 부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5월 21일 도핑 테스트 결과, 금지 약물인 스테로이드계 약물 복용 사실이 밝혀지면서 방출을 통보받았다. 또한 우즈도 2년 연속 홈런왕을 거머쥐는 등 대체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2005년 5월 5일 나고야 돔에서 열린 야쿠르트와의 시즌 6차전 경기 중 5회말 타석 때 후지이 슈고의 몸쪽 위협구에 분노, 그의 오른쪽 뺨을 구타하여 10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50만 엔의 중징계를 받았던 적이 있다. 그리고 히메네스는 감독과의 불화와 도호쿠 대지진때문에 지금은 자신의 고향인 도미니카에서 개인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 2011년 시즌 중반 한국 복귀설이 떡밥으로 나돈 적이 있었다. 2군 로스터에 포함되어 있었긴 하지만 방출된 듯. 참고로 더스틴 니퍼트는 2011년 영입 당시 인터뷰에서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일본에서 뛸 자신은 없다"라고 언급했다.
정말 신기한 건 이렇게나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높았던 팀이 2015년에는 용병빨 없이 우승을 차지했다는 점이다.[19] 마야, 스와잭, 루츠, 로메로 등은 입단 후 죽만 쒀대면서 제대로 한 번 써먹질 못했고, 에이스 니퍼트도 부상때문에 정규시즌엔 거의 뛰지 못했다. 여러모로 두산의 두터운 선수층을 보여줬던 시즌이자, 아무리 외국인 선수들이 잘 해도 엔트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토종 선수들의 활약 없이 좋은 성적을 내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해낸 시즌이다. 물론 레스 왈론드, 데릭 핸킨스도 포스트시즌에 반짝 활약을 해 주긴 했다.
분명 우즈나 리오스, 히메네스 등 용병덕을 많이 본 구단이지만 2011년 이후로는 가장 용병빨을 못받고 있었다. 2011년 이후 더스틴 니퍼트를 제외하곤 스캇 프록터와 호르헤 칸투를 제외하면 모두 평균 이하의 용병들이었고, 프록터와 칸투마저도 우즈와 니퍼트에 비하면 만족스러운 성적을 낸 건 아니었으며 재계약에도 실패하였다. 다행히 2016년에는 기존의 니퍼트는 커리어 하이를 달성하고 있고, 두 외국인 선수들도도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주며 외국인 선수 잔혹사를 청산하였다.
KBO 리그 사상 최초의 순수 일본인 용병이 뛴 적도 있다. 바로 이리키 사토시. 그런데 이리키 사토시의 경우에는 선수 생활보다 은퇴 후가 좋지 못해 은퇴 후 10번이나 이직을 했다고.
2.5 왼손 투수 잔혹사
해태 타이거즈 못지 않게 왼손잡이와는 지독할 정도로 인연이 없는 팀이다. 단, 이는 투수만 가지고 이야기한 것으로 야수의 경우 빼어난 왼손 타자들이 어느 정도 있었고 또 있는 편이다. 원년 시절 팀의 상징 선수와도 같았던 윤동균이 왼손 거포였고 잠깐 거쳐갔지만 전설의 우동학 트리오를 결성한 심재학이 있었으며, 10년 가까이 팀의 프랜차이즈이자 중심 타자로 활약했던 김현수가 있고, 2016년 기준으로 주전급 야수로는 오재원, 정수빈 등이 있으니 양호한 편이지만...
정작 문제는 왼손잡이 투수. 이는 OB 베어스 시절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88년 신인 지명때 두산(당시는 OB)는 국가대표 좌완 에이스였던 김기범을 거르고 비교적 무명이었던 이진을 지명했는데, 뽑은 이유가 "현재 실적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였다. 그리고 김기범은 LG(MBC 청룡)에 입단했는데 그 후로 김기범은 LG의 에이스가 되면서 특히 OB에게 가장 강한 면모를 보였고, 그에 반해 이진은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그대로 증발하여 이 선택은 OB에 있어서 최악의 삽질이자 희대의 병크로 남고 말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는 것.
1993년 신인 지명에도 LG에게 주사위 싸움에서 완패해 당시 서울 팜의 최대어인 이상훈을 빼앗겼으며, 1994년 신인지명도 야수 최대어인 유지현을 거르고 좌완투수 류택현을 지명했다. 그러나 류택현은 OB에서 별 활약이 없었고 얼마 안 지나서 LG로 트레이드되었지만, 그 류택현은 김성근 감독을 만나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로 각성하여 2014년까지 리그 최고참급 투수로 901경기에 등판한 뒤 은퇴했다.
2013년 유희관의 깜짝성공 이전에 OB-두산 베어스에서 좌완투수로 가장 성공한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핵폐기물로 욕을 먹고 있는 이혜천. 정말 믿기지 않겠지만 베어스 통산 역대 좌완 투수 승리 1위다. [20] 2012년 기준으로 통산 55승(...)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그나마도 이혜천은 커리어 내내 한 번도 10승을 못해봤다. 베어스 역사 내내 좌완 투수가 얼마나 씨가 말랐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케이스. 또한 두산에서 그나마 활약한 좌완투수로 차명주가 있는데 롯데에서 트레이드된 후 김인식 체제에서 좌완 불펜요원으로 쏠쏠하게 활약했지만 킬인식이 너무 굴려서 퍼지고 말았고(...) 2004년에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게 된다. 그런데 그 한화 감독도 하필 킬인식(...)이었으며, 거기서도 혹사당하다가 2006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얼마나 좌완 투수에 목이 말랐는지 타 구단(롯데)에서 지명권을 포기한 선수(강관식)를 데려오기까지 했고 근래에도 진야곱 등 재능 있는 좌완투수를 지명했을 뿐더러 넥센 히어로즈에서 반짝 에이스로 각성한 이현승도 데려왔다. 하지만 모두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안습.
이렇게 좌완투수가 지지리도 안나오는 전통을 깨뜨린 선수가 바로 2013년 시즌의 유희관이다. 1988년에 윤석환 이후로 25년만의 베어스 토종 좌완 10승을 달성했고, 2013년 포스트시즌에서도 괜찮은 활약을 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쓸만한 좌완 불펜이 없는 점은 아직 진행형이다.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에게 우승을 넘겨 준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 좌완 계투의 부재도 한몫을 했다. 5차전부터 삼성 좌타진의 타격감이 상승하면서 계속 맞아나가기 시작했고, 그것이 3승 1패 후 3연패로 귀결되었다는 시각이 많다. 그 전에 준플, 플옵을 연달아 피터치게 치룬 체력 소모가 가장 컸지만 사실 선수풀이 좁은 한국 사정상 제대로 된 좌완 불펜이 리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인 건 사실이긴 하지만, 두산은 그나마 좀 뎁스가 두텁다는 서울팜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고질적으로 좌완 불펜 문제로 시달리는 게 일상이다. 다만 이 2013년 시즌 이후부터는 조금씩 좌완투수가 나오고 있는게 위안거리.
좌완투수에 대한 갈증이 심했는지 2014년 시즌이 끝난 후, 역대 투수 FA 최고액으로 장원준을 영입했다! 4년 84억의 조건. 더 구체적인 FA 내막은 이 기사를 참조. 이 유희관과 장원준은 15년과 16년 선발진의 두 축으로 패넌트레이스를 끌어가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된다.[21]
선발진에서 두명의 A+급 좌완 투수가 자리는 지키는 가운데 좌완계투는 부침이 반복되었다. 14시즌에 이현승, 정대현(좌완투수), 함덕주, 장민익 등이 번갈아가면서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15시즌에는 이현승이 마무리로 자리잡고, 함덕주, 이현호, 진야곱, 허준혁 등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16시즌 후반기부터 이현승이 극심한 부진으로 마무리에서 내려오고, 함덕주는 부상으로 사실상 시즌아웃되다시피 했으며, 이현호와 진야곱, 허준혁도 안정감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좌완투수 잔혹사를 완전히 털어내는데는 실패했다. 앞으로 이런 어린 투수들을 얼마나 성장시키는지가 과제로 남을 듯 하다.
2.6 철밥통 코치들의 재평가 무대
감독을 제외한 코칭스탭을 타 팀에서 철밥통이면서 무능하다고 까인 코치들로 영입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2010년대 들어서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그런데 이렇게 들여온 각 구단 공무원들이 어째 일을 잘 한다...? 코치마저 키워쓰는 화수분의 위엄 입돡효과
- 삼성 라이온스 시절 한대화와 선동열이 고향팀 술친구로 부른거라며 까이던
조닭조계현을 영입했었고, 2010년은 말아먹었지만 2011년은 정 반대로 투수진 안정화에 큰 도움이 되었다.[22] 두산을 나간뒤로 LG 트윈스 수석코치를 거치고는 KIA 타이거즈의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 LG-KIA는 김기태 감독과의 인연이기도 하다.
- 한화 이글스에서 주루, 수비, 작전코치를 두루 거쳤으나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욕을 먹었던 김민재가 두산에 왔을 때, 역시나 팬들의 반발은 극심했다. 게다 이전 코치가 김민호[23]였으니.... 정작 김민재는 무난하게 시즌을 보냈고, 그 해(2013년) 두산은 준우승을 했다. 그 뒤로 kt wiz코치로 건너갔다.
- 유지훤도 OB시절 선수관리에 대한 책임으로 한 번 잘렸던 적이 있고, 한화 이글스에서도 김인식[24] 감독이 물러나면서 세트로 잘렸다. 그런데 2013년 두산에 복귀했고, 14년 시즌 도중 뜬금없이 수석코치로 승진하더니 15년 수석코치로 우승을 거머쥔다.
- 2014시즌 종료 후, 칰무원으로 유명한 강석천과 조경택[25]까지 영입했다. 이로 인해 터져나온 두산 팬들의 경악 속에서... 두산은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다.
칰무원 vs 미라클에서 미라클이 이겼다.특히 1군 수비코치로 남은 강석천은 2016시즌들어 팀의 놀라운 수비력과 경기 도중 덕아웃에서 화면에 잡힐 때마다 나오는 선수들과의부담스러운스킨십으로 이미지가 싹 바뀌었다.
- 그리고 2015 시즌이 끝나고... 이번엔 롯무원 공필성까지 영입했다. 무능하다고 팬들한테도 까였던 한화 출신 코치들을 데리고 성적을 낸 뒤로 이번엔 롯무원들을 이끌고 갱생을 시키려는 듯 한데... 실제로 공필성이 2군감독으로 부임하고 나서 정석적인 2군 운용을 보여주면서 이마저도 성공하고 있다. 선수들 사이에서의 평판도 좋은 편이다.
두산이 아무리 선수 공장이라지만 그렇다고 누가 위에서 코치들에게 코칭 능력을 가르치는 것도 아닐 테고, 두산 자체도 권명철이나 전형도같은 돡무원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어쩌면 칰무원, 꼴무원 등으로 대표되는 무능한 코칭 스태프 문제는 사실 코치 개인의 문제보다도 팀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이들이 안 그래도 시스템에 관련해서 잡음이 많은 팀들에서 온 걸 생각해 보면...[26]
2.7 순혈주의
모 기업이 워낙 보수적 성향을 띄어서 그런 건지 한국프로야구 구단 중 유독 순혈주의가 강한 팀이었다.[28][29] 여태껏 타 팀 프랜차이즈 출신이 감독을 맡은 경우를 정말 찾기 힘들다. 심지어 코치들마저 대부분 두산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인물들로 가득하다. 예를 들면 윤동균은 같은 팀에서 뛰었던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선수 출신 감독. 예외라면 최장수 감독(1995~2003)이자 2회 우승을 안겨준 김인식 감독이 거의 전부로, 감독생활 이전까지는 두산과 인연이 없던 외부 영입인사.
게다가 1999년 FA 제도가 도입된 후 2012년에 이르기까지 13년 동안 외부 FA영입을 안 한 유일한 팀이다. 하다 못해 한화랑 넥센도 FA영입은 하는데...[30] 공식적으로는 2012시즌을 마치고 FA를 선언한 롯데 홍성흔을 영입한 것이 최초의 외부 FA지만, 이게 실질적으로는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보냈다가 다시 업어온 것이다 보니 사실상의 내부 FA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실질적인 외부 FA는 2015 시즌을 시작하면서 84억을 주고 들여온 장원준이 처음인데, 선수와 팀 모두에게 도움이 된 모범 FA라는 평가를 받으며 좋은 선례가 되었다.
1, 2군 코치진이 전부 OB 또는 두산 베어스 프랜차이즈 출신이었니 말 다했다. 투수코치를 지냈던 조계현도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보기 힘들지만 두산 베어스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었고 2001년 우승 멤버에 은퇴도 두산에서 했으며, 2군 코치인 문동환조차도 한화로 트레이드되기 전 하루 동안 두산 소속이었을 정도였으니... 2011년 코치진을 봐도 장원진 등 팀에서 뛰었던 코치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역대 팀 주장도 두산에서만 뛰었던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김동주, 손시헌, 안경현 같은 선수들은 대부분 두산 프랜차이즈 출신. 단 94년 주장 김상호의 경우는 데뷔와 은퇴는 LG 트윈스(MBC 청룡 시절 포함)에서 했다. 하지만 김상호도 베어스 프랜차이즈에 들어가는 정도. 2013년도 주장 홍성흔 역시 비록 FA 영입선수지만, 베어스 프랜차이즈에 가깝다. 그 외에, MBC 청룡의 간판스타였던 이종도가 OB로 이적하여 주장을 맡은 적이 있다. 그런데 거의 은퇴 직전의 일. 이후 15시즌 주장 오재원, 16시즌 주장 김재호 역시 두산에서만 뛴 선수들이다.
김인식 감독 이후로 차기 감독도 외부영입보다는 내부승진으로 뽑는 것 같다는 얘기가 많다. 예를 들면, 김경문 감독이 6월 중순 자진사퇴함에 따라서 수석코치였던 김광수가 감독 대행을 맡았다. 그리고 2012시즌부터 새 감독으로도 팀의 암흑기 에이스이자, 불펜코치인 김진욱이 맡으면서 순혈의 전통으로 이어나갔다. 송일수를 거쳐[31] 15시즌 우승 감독인 김태형 감독도 12-14시즌 SK에서의 코치생활을 제외하면 선수-코치를 모두 OB-두산에서만 이어간 사실상 순혈이라 볼 수 있다.
조성민과 인천소방서 서장님 정명원을 제외한, 권명철, 김경원같은 OB 베어스 프랜차이즈 출신 코치들이 2012년 코치로 부임하면서 코치진이 거의 두산맨으로 채워졌다.
이와 같은 순혈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고 예상되는 가운데, 다만, 2012년에는 수석코치로 일본의 세이부 라이온스 출신 이토 쓰토무, 불펜 코치로 일본 독립리그에서 지도자로 활약했던 전 니혼햄 파이터즈 투수 고마키 유이치를 영입했다. 전임 김경문 감독지휘 아래 오랜 시간 단련된 선수단 내부 환기 및 초보 김진욱 감독 보좌역이라고 보이며, 두산베어스로서는 대단히 이례적인 인사. 타팀 팬들로부터는 이토 쓰토무가 실질적인 감독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32] 그러나 이토 쓰토무 코치는 2012년 단 한 시즌만을 마치고 지바 롯데 마린스 감독에 선임되어 일본야구계로 복귀하였다.
이래서 한국의 아틀레틱 빌바오 & 요미우리 자이언츠라고도 하지만 그나마 두산은 매우 유한 편이다. 스페인 축구팀 아틀레틱 빌바오는 바스크 출신과, 팀내 유스 출신 빼고는 절대 영입불가 방침으로 유명한 팀이다. 우리나라에 비유하면 LG에서 서울 출신이나 서울팜에서 직접 키운 애들 아니면 안 쓰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요미우리는 정말 100% 순혈이 아니면 요미우리 감독이 되진 못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요미우리가 아닌 타 구단에서 단 1초라도 뛴 경력이 있다면 감독 자리에 앉는 게 불가능할 정도.(...) 국내 다른 종목에서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윤성효감독 이래 '리얼블루'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순혈주의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이쪽도 감독과 코치진이 모두 수원 삼성 선수 경력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이 정책이 구단의 쇠락을 가져왔다고 팬들에게 대차게 까이고 있다는 것.(...)
그래도 2013시즌 김민재, 조원우, 강성우, 황병일 등의 코치를 영입하면서 이전보다 순혈주의는 약해진 편. 특히 황병일 코치는 수석코치다! 근데 2014년에 김진욱이 경질되자 줄줄이 빠져나가버렸다.(...)
2015년을 앞두고 칰무원들을 시작으로 한용덕, 야생마 등 두산과는 인연이 없는[33] 외부 코치가 줄줄이 코치로 들어오고, 시즌 후 공필성마저 들어와서 두산의 순혈주의는 사실상 종말을 향해가는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아이러니한 건 이렇게 코칭 스태프 순혈주의가 강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팀내 프랜차이즈 스타들에 대한 대접은 상당히 박한 편이라는 것.(...)
OB 시절부터 김우열, 최일언, 신경식, 박노준, 김광림, 김경원, 김상진 등 많은 선수들이 끝까지 이 팀과 함께하지 못한 채 트레이드되었으며, 이후에도 정수근, 진필중, 박명환, 홍성흔, 이종욱, 손시헌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FA자격 취득 후 계약이 결렬되어 줄줄이 팀을 떠났다. 안경현은 코칭스태프와의 갈등으로 SK로 떠밀려나갔고, 김동주도 2013년 이후 1군에서 거의 잊혀지다시피하다가 쓸쓸하게 은퇴했다. 근데 김동주는 본인 탓이 크기에(...)
이렇게 많은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팀을 떠나고보니, OB/두산에서 은퇴경기 또는 은퇴식을 가진 선수는 윤동균[34], 박철순, 김민호, 장원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2011 시즌부터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데, 구단과 대판 싸웠던 김상호가 시구를 한다던가, 이런저런 이유로 팀을 떠났던 홍성흔, 정재훈 등을 다시 영입하여 나름 프랜차이즈 스타로 예우한다거나 하는.
2.8 2군으로 대표하는 화수분 야구
경기도 이천에 있는 이천 베어스 파크는 한국 프로야구계의 대표적인 화수분. 2군 시스템을 일찌감치 도입한 팀답게 2군 육성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사서 쓰기보다 키워서 쓰는 두산 베어스 야구의 특징을 대표한다. 대표적으로 김현수, 손시헌 등은 신고선수 출신으로 2군에서 올라와 1군에서 대성공한 사례 중 하나다. 잠실라이벌 LG 트윈스가[35] 2012년에 훈련장을 구리에서 이천으로 옮기겠다는 카더라가 있는데, 두산팬들은 이것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빌고 있었으나, 2014년에 결국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비교적 베어스의 감독들이 두산 베어스 2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각별한데, 김경문 감독 뒤를 이어 취임한 김진욱 감독은 본래 하고 싶던 일이 2군 감독이며 여전히 한 번쯤은 2군 감독으로서 유망주들을 키워보고 싶다고 말할 정도. 그래서인지 팀 내부 분위기는 남들이 뭐라 하건 비교적 인간적, 가족적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15시즌 중 최훈 카툰 中 마리 돡두아네트
김경문 감독이 지휘봉을 잡을 때 즈음 이래로 생겨난 이미지로, 두산 베어스 하면 선수를 잘 키우기로 유명하다. 장원준과 홍성흔을 제외하면 외부 FA를 잡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것과는 달리, 선수가 부족할 때가 되면 꼭 어디선가 아마도 이천에서 계속해서 필요한 선수들을 뽑아서 온다. 신인 드래프트를 해서 2군에서 키운 선수들도 잘 써먹고, 타 팀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선수들을 데려와 잘 써먹으면서 중고 신인으로 발돋움 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정말 예외적인 상황[36]이 아니라면 신인들의 군 문제도 재깍재깍 잘 해결시키기 때문에 고졸이라면 20대 초중반, 대졸이라면 20대 중후반 군필 유망주들이 거의 매년 돌아온다. 제대 직후 터진 양의지나 민병헌이 대표적이다. 대체로 투수 쪽보다는 야수 쪽에서 더 많은 선수 자원이 발굴되는데, 고영민, 김재호, 박건우, 김동한, 최재훈, 양의지, 정수빈 등의 선수들이 대표적이다. 투수 쪽에는 노경은, 유희관, 고창성, 홍상삼, 금지어, 이용찬 등이 있다. 이와 같은 풍부한 선수 자원 덕분에 베어스는 늘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고 훈련해 내면서 주전 선수들의 공백을 금방 메우며 지난 20년 동안 KBO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일수강점기로 팀이 와해되었다고 우는 소리 나오기가 무섭게 다음 해에 코시 우승을 하는 회복력은 타 팀이 따라올 수 없는 베어스만의 강점이다. 2016년 7월 20일 기준 1군 엔트리 연령대가 투수 평균 만 28.8세, 야수 평균 만 26.7세인데 이 연령대로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러한 화수분야구의 원천은 신인 드래프트 픽에서부터 나타나는데, 두산은 신인드래프트에서 선수들을 지명할 때 기본적으로 포지션 안배를 하지 않고, 당해 좋은 선수가 있으면 팀에 충분한 자원이든 아니든 데려온다. 위의 포수사관학교 문단에서 김태형 감독이 "내가 주전일 때 이도형과 최기문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단에서 진갑용을 또 뽑더라. 솔직히 난 그 때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구단 프런트에서는 좋은 포수가 나오면 일단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라는 말을 했다고 나와 있는데 사실 굳이 포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포지션이 다 그렇다. 다른 년도에 비해서 유독 좋은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는 년도가 있는 마당에 좋은 선수 자원들이 항상 포지션별로 골고루 나오는 건 당연히 아니다. 어떨 땐 좋은 투수 유망주들이 유독 많이 보일 때가 있고, 좋은 야수들이 쏟아져나올 때가 역시 있기 때문에 그때 그때 선수들을 봐서 포지션 상관없이 좋은 자원들을 데려오는 것이다.
2군에서의 무한경쟁 역시 이유 중 하나다. 2군에서도 엄청난 경쟁을 시키는데, 1군에서와 마찬가지로 지명순위는 물론 연차 그런 거 없다. 퓨쳐스리그에서 육성선수들과 신인들을 제일 많이 기용하는 팀이 바로 두산이고, 2016년 현재도 퓨쳐스리그에서 홍영현, 강동연, 최용제 등 육성선수 출신들과 조수행, 황경태, 고봉재, 홍성호, 서예일, 이찬기 등 2016년 입단한 신인들이 줄줄이 활약하는 중이다. 이 중 최용제, 고봉재, 서예일은 2016년 퓨쳐스리그 올스타전에도 출전했었다. 두산의 2군 홈구장이자 클럽하우스인 이천 베어스 파크의 숙소도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며 경쟁에서 밀리면 출퇴근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이 선수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 구단 입장에서는 무한 경쟁을 통해 팀의 전력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좋겠지만 선수들 입장에서는 좀만 부진하거나 다쳐서 못 나오게 되면 다른 사람이 자기 자리를 빼앗아갈지도 모른다는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실력있는 신인 선수들이 끊임없이 발굴되어 나온다는 건, 바꿔 말하면 베테랑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그만큼 적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두산 베어스는 유난히 베테랑을 홀대하는 구단으로 악명이 높고, 외부 FA는 물론이요 내부 FA조차 잘 잡지 않는다. FA 안 잡아도 신예 선수 키워다가 빈 자리 메우면 되니까. 이러한 베테랑 선수 홀대는 두산이 4강은 가도 우승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곤 했다.
또한 2군에도 유망주가 하도 많다보니 2차 드래프트와 같이 타 팀에 자유이용권이 주어질 때 뻑하면 전도유망한 기대주들이나 준주전급 선수들이 털린다(...) 실제로 2차 드래프트가 열릴 때마다 삼성 라이온즈와 함께 계속 선수가 유출되고 있다. 2016년 현재까지 있었던 세 번의 2차 드래프트 전부 다섯 명 꽉꽉 채워 털렸다(...)
구단은 이러한 2군 경쟁 시스템을 통해 여러 선수들이 잠재력을 끄집어내려고 하고 있다. 결과로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이어 2016년 통합 우승에 한걸음 다가왔다. 또한 선수들은 이 시스템에 대해 자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래 선수들은 이러한 두산 시스템을 통해 터진 선수라 할 수 있다.
- 대표적으로 두산의 좌완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투수 유희관은 2012년 전역 후 2013년 불펜으로 시작했다가 니퍼트의 땜빵으로 올라와서 데뷔 첫 승을 선발승으로 장식하더니 당해 10승을 찍었고 4시즌 연속 10승을 찍는 이닝이터 선발이 되었다.
- 2016년 현재 주전 내야수이자 국가대표 경험까지 한 김재호, 오재원, 허경민은 모두 내야 포지션 안 가리고 출장했다. 김재호는 손시헌의 부진및 이적, 오재원은 고영민의 하락세, 허경민은 이원석의 입대와 외국인 선수들의 미미한 활약으로 온 기회를 잡아챘다.
- 준국대급 외야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는 민병헌, 박건우, 김재환의 경우[37], 민병헌은 2012년 전역한 뒤 2013년부터 타격이 터지면서 주전행, 박건우는 2015년 2군을 후려패다가 콜업되고 터질 기미를 보이더니 2016년 제대로 폭발, 김재환은 2016년 시즌 자체를 대타로 시작해서 4번타자로 끝냈다.
주전이 아닌 백업 멤버들을 봐도 2군에서는 더 이상 보여줄 게 없거나 신인이어도 수비 혹은 주루같은 툴은 확실히 있는 선수들이다.
2.8.1 시즌별 요약
14시즌 스토브 리그에서 선수 대량 방출로 선수층이 얇아지면서 두산표 화수분 야구도 한계에 봉착한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5시즌 투수 쪽에서 야생마의 작품 허준혁이라는 화수분이 또 등장했다. 2차 드래프트에서 그동안 유망주 유출이 극심했던 두산이 이번엔 2차 드래프트 덕을 톡톡히 본 셈. 또한 이현호나 진야곱같은 군필 좌완들이 펑펑 터져주면서 좌완 왕국이라는, 그동안 두산 팬들로서는 차마 꿈도 못 꾸던 상황이 오게 되었다. 야수 쪽에선 그동안 김재호에 밀려 백업으로 있었던 허경민이 주전 3루수를 꿰차며 공수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만년 유망주였던 박건우가 시즌 중반 이후 1군 콜업 이후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며 포텐이 터질 기미를 보여주었다. 거기에 돌아온 연어 고영민의 부활 낌새에 오재일이 장타 포텐과 개선된 선구안을 보여주며 팀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진짜 마를 만 하면 끝도 없이 나온다.
16시즌에는 말라가는 게 아니었나 싶었던 화수분은 또다시 꾸역꾸역 선수를 뱉어내고 있다. 첫 풀타임을 치르는 박건우와 김재환이 타격이 폭발하면서 무려 작년 한국시리즈 MVP인 정수빈을 백업으로 밀어냈다 여기에 용병 돌려막기를 하던 1루에 오재일이 완전히 자리를 잡으며 김현수의 공백을 메웠고, 시범경기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던 류지혁과 조수행도 정규시즌에 들어서까지 내외야 백업으로서 공수 양면으로 상당히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8월들어서 대졸신인 고봉재가 프로 첫시즌부터 두산 불펜진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2.8.2 사랑해요 광주팜
연고지는 서울인데 유독 호남 출신 선수들이 화수분에서 빛을 발하는 경우가 꽤 많다.
사례를 보자면
이원석 → 광주 동성고 출신으로 롯데 시절 4년동안 통산 4홈런을 기록하고 있던 선수가 홍성흔의 FA 보상선수로 지명된 뒤로 '09시즌 2할 후반대의 준수한 타율에 9홈런 통산 4홈런이던 타자가 잠실을 홈구장으로 쓰는 팀에 이적하고 한 시즌 9홈런이라니 53타점을 찍으며 준수한 실력의 내야수로 성장했다. 거기에 1루, 2루, 유격, 3루를 가리지 않는 멀티롤 내야수로 포텐이 터지면서 이천쌀밥 두산 2군 육성능력의 위엄을 보여줬다.
양의지 → 광주 진흥고 출신으로 06년 드래프트에서 2차 8라운드로 지명되었다. 2007년 경찰청에 입대해서 제대한 뒤 2010년 1군 풀타임에 신인왕을 거머쥐었고, 잠실구장을 홈으로 20홈런을 친 시즌 두 번, 3할 타율 시즌 두 번, 골든글러브 2연속 수상에 빛나는 KBO 리그 최고의 포수 중 하나로 성장했다.
허경민 → 광주일고 출신의 내야 멀티플레이어로, 2015년 포텐이 터져 3할 타율의 수비 잘하는 내야수로 성장해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최주환 → 광주 동성고 출신의 내야수로 2군 시절부터 두각을 보이다 본격적으로 활약하고 있다.
윤명준 → 광주 동성고 출신[38] 투수로 2013년부터 불펜에서 활약하고 있다.
KIA 팬들이 이 글을 싫어합니다[39]
3 마스코트: 철웅이
고전게임 갤러리의 필수요소에 대해서는 철웅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원년 마스코트는 아기곰이었다. 간혹 갈색곰, 회색곰 등의 여러가지 마스코트가 많았었는데. 사진은 OB 베어스 문서 참조.
그리고 1999년 두산 베어스로 이름이 바뀌었을 때 회색곰으로 마스코트를 바꾸었다.
(사진 출처 : 두산 베어스 홈페이지)
두산 베어스의 유니폼을 입은 곰돌이라고 한다. 나중에 얼굴은 인형탈에도 쓰였다.
반달곰깡패곰
(사진 출처 : 두산 베어스 홈페이지) 회색곰과 2009년까지 마스코트로 같이 나왔다. 반달무늬곰으로 역대 마스코트 중 웅장하고 가장 강력한 포스를 자랑했던 마스코트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전 아기곰 마스코트에 익숙해져있던 당시 팬들은 "우리 귀여운 곰돌이를 돌려주세요!라고 격하게 항의했다고(...)
(사진 출처 : 두산 베어스 홈페이지)
2010년 2월 11일 새 마스코트를 공개했는데 기존의 곰에 나사로 철판을 연결한 것처럼 보이는 사이보그 로봇 곰이다. 일단 유니폼을 입은 마스코트니 그래도 온통 퍼런색에 벌거벗은 곰보다 나은 듯. SKT T1이 임요환 컨셉의 벙키를 마스코트로 하는 것처럼 기계곰 김현수를 마스코트로 한 캐릭터라 문신곰,로봇곰인 건 아닐까? 정작 김현수는... 엠블럼 수정해야겠네 이름은 철웅이. 배번은 V. 그런데 캐릭터 디자인이 마스코트를 그리다가 실수로 오른쪽 손가락을 하나 더 그리는 바람에 육손곰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위 사진에서 찾으려 들지 말자. 금방 수정되었기 때문. 하여간 못생긴 편이라서 두산팬들 가운덴 만화가 최훈의 두산 곰 캐릭터가 차라리 낫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철웅이 인형탈 알바가 적재적소에 터져나오는 깝을 시전하면서 이걸 살렸다(!) 매일매일 베어스포티비에 올라오는 철웅이 영상을 찾아보는 깨알같은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카메라에게 과자를 건내고 브이 공연에 난입해서 브레이크 댄스 추는 철웅이
뜬금 드립 시전하다가 친구에게 얻어맞는 철웅이 깨알같은 홍성흔 턱
올스타전 철웅이
요런 짓들을 한다
4 영구결번
두산 베어스 영구결번 | ||
박철순[40] | 김영신[41] |
베어스의 영구결번은 총 2명인데, 불사조 박철순 선수의 21번과, 1986년 사망한 포수 故 김영신 선수의 54번이다.
5 팀의 역사
팀 이름이 OB 베어스[42]였을 때의 시즌은 OB 베어스 문서 참조.
5.1 연표
5.1.1 시즌 1999 ~ 2003 : 김인식 체제와 팀의 세번째 우승
1999년 1월 5일, 구단 명칭을 두산 베어스로 바꾼다. 이 해 우즈의 활약과 3할 20홈런의 김동주, 김동주는 1998년에 데뷔, 즉 OB베어스 마지막 년도에 데뷔. 3할3푼5리의 타율에 31홈런을 친 심정수(일명 우동수)의 활약으로 드림리그/전체 승률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한화에 4연패로 탈락한다. 2000년, 우동수 트리오는 99홈런 308타점을 기록했으나 현대의 91승에 밀려 드림리그 성적은 2위. 플레이오프에서 매직리그 1위 LG에게 4승 2패로 승리하고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고, 한국 시리즈에서는 1~3차전을 통틀어 3점 밖에 내지 못했으나 4~6차전을 모두 쓸어 담는다.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한국시리즈 리버스 스윕이 일어날 뻔 했으나 결국 7차전에서 톰 퀸란에게 연타석 홈런을 맞고 패배.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 당시 두산의 준우승에 대한 반향은 상당해서 많은 야구팬들이 베어스의 플레이를 일컬어 미라클 두산으로 불리웠고, 팀컬러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43]
2001년 심정수가 선수협 사태로 심재학과 트레이드 되었으나 심재학은 그해 3할4푼4리에 24홈런 88타점으로 대폭발하면서 심정수의 빈틈을 메운다. 페넌트레이스 3위를 기록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는 한화 이글스를 2승으로 가볍게 제치면서 1999년의 한을 풀어버린 데 이어 플레이오프에서 현대 유니콘스와 한국 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연달아 꺾고 팀의 세번째 우승을 이룩한다. 이것은 92년 롯데 자이언츠와 함께 시즌 3위 팀이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한국시리즈를 전부 승리하고 우승한 두번째 사례이며 .508[44]의 승률은 역대 한국시리즈 우승팀 가운데 최저승률 기록이기도 하다.[45]
김인식 감독이 한때 두산의 종신 감독 보장설까지 있었으나 당시 자금난에 시달리던 구단이 연달아 주력선수를 FA, 트레이드로 내보낸데 이어 외국인선수 타이론 우즈마저 구단의 섭섭한 대우에 계약을 거부하고 일본에 진출. 결국 2002년 5위, 2003년에는 7위로 추락한데다 당시 지도자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선동열에 대한 각 구단의 영입 전쟁에 말려들어 9년간 이끈 두산 베어스 감독을 사임했다.
5.1.2 시즌 2004 ~ 2011 : 김경문 체제와 강팀으로의 재도약
2003년 말 김인식 감독이 물러난 이후, 두산은 원래 일본에서 코치 연수를 받던 선동열을 감독으로 영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영입에 실패하면서 그 대안으로 김경문을 감독으로 선임했다.신의 한수 2004년, 두산은 정규 시즌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 기아에 2연승하고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1승 3패로 탈락한다. 2005년에는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해 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 3연승하여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지만 삼성에게 내리 4연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머문다. 이때부터 콩산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2007년 두산은 22승을 거둔 약쟁이 외쿡인 노예 다니엘 리오스와 12승을 거둔 맷 랜들의 원투펀치정지훈의 잦은 등판의 활약으로 정규시즌 2위로 한화와의 플레이오프를 3연승으로 가볍게 이기고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SK 와이번스에게 2연승 뒤 4연패로 준우승, 2008년 두산은 일본으로 리오스를 떠나 보내고 선발진에 약점을 드러냈고 정규 시즌 2위로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1승 뒤 4연패로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면서, 한때 콩산 베어스, 콩돡, 豆산이라고 불리기도... 삼성팬: 겨우 그정도 준우승 가지고? 요즘 애들은 물러터졌네[46]
이 기간 서울 라이벌 LG 트윈스를 제치고 수도권 인기 구단으로 급성장했고 시장 규모도 상당히 커졌다. 관중수에서도 앞서는 등 두 팀의 상황이 슬슬 역전되는 분위기. 이제 두 팀의 인기는 적어도 동급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인기가 많아진 편이다.
- 두산 베어스/2010년 : 흔들리는 뚝심의 야구, 포스트 시즌 명승부
- 두산 베어스/2011년 : 흔들리는 뚝심과 화수분 야구, 김경문의 몰락
5.1.3 시즌 2012 ~ 2013 : 김진욱 체제
- 두산 베어스/2012년 : 김진욱 감독 체제에서의 새 시작
- 두산 베어스/2013년 : 돌아온 미라클 두산, 마지막 불꽃의 복선인가
5.1.4 시즌 2014 : 일수강점기
- 두산 베어스와 두산팬에게 2014 시즌은 없는 시즌이라고 보면 된다.
- 두산 베어스/2014년 문서 참조.
5.1.5 시즌 2015 ~ : 김태형 체제
V4의 염원을 이루어내다!
이현승 지못미
- 두산 베어스/2015년 : 강제안식년(...)을 거치고 14년만에 팀의 4번째 우승을 이루다.
- 두산 베어스/2016년 : 김태형 체제 2년차, 21년만에 페넌트레이스 우승. 왕조의 문 앞에 서다.
6 팬
OB 베어스 시절에도 팬 수 자체가 적진 않았고 프로 원년에는 강팀이어서 좋아하는 팬들이 꽤 있었다. 서울 이전 후 팬이 늘지 않던 제일 큰 이유는 OB가 꼴찌를 3번이나 하던 암흑기였기 때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OB는 바로 다음 해인 95년도에 우승한다. 오너캐에 옛날 OB 모자를 그려 넣을 정도로 유명한 OB팬인 최의민도 레전드 열전 김용수 편에서 "학교에서 OB 좋아하면 매우매우 아웃사이더 냄새 나는 그런 시절로 기억된다"라고 말했을 정도. 여러 모로 넥센 히어로즈와 비슷한 포지션 그 대신 코어팬층의 충성도는 최강이다. 특히 원년부터 1980년대 말 암흑기가 찾아오기 전까지 어린이팬들이 많았던 구단 중 하나로, 이 때의 어린이팬들이 장성하여 두산 베어스의 오래된 팬임을 자부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서장훈.
두산 베어스의 두터운 팬 층은 2000년대 초중반에 들어와 올림픽 및 WBC에서 야구 국가대표팀이 호성적을 거두면서 야구라는 스포츠에 처음으로 입문한 젊은 팬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의 1/3이 수도권에 모여 있는 한국 지리상 야구에 입문하려는 새로운 팬층들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팀은 서울 팀이다.
두산은 다른 서울 팀들과는 달리 결정적인 입덕 포인트 몇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 두산 베어스는 이미 김인식 감독 시절부터 상위권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고, 공중파 중계가 이뤄지는 포스트시즌에서 "가을 사기단"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명경기를 많이 배출했기 때문에 대중에게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일 기회도 많았다.
- 엘롯기같은 거대팬덤이 없었을 뿐, 꽤 탄탄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프로야구 원년 구단이라 인지도도 높은 편이었다.
- 국제 경기에서 국가대표팀이 훌륭한 경기를 펼칠 때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선수들이 대개 베어스 출신이었다. 나갔다 하면 유독 미쳐서 활약해대는 이런 선수들도 있고, 베이징 올림픽에서 야구 금메달을 이끌었던 김경문 감독도 있다. 게다가 이런 게 한두 번도 아니다. 올림픽, WBC, WBSC 프리미어12 모두 베어스 선수들이 주력으로 활약한 일이 많다 보니 타팀 팬들도 베어스에 대한 인식이 괜찮은 경우가 많고, 야구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에게 어필하기에도 좋다.
한 마디로 두산은 프로야구 재부흥기 당시 야구 입문자들이 제일 접근하기 좋았던 팀이다. 야구 인기의 반등과 서울 팀의 이점이라는 호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팀이다. 2006년에 두산은 처음으로 KBO 관중 동원력 1위를 기록했다. 이후 2007년부터 2014년까지는 콩산답게 8시즌 연속으로 동원력 2위를 기록하다가[47] 2015년 들어서 다시 동원 순위 1위를 달성했고, 동시에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KBO 최초 8년연속 1백만 관중을 돌파했다.
다만 2000년대에 입문한 팬들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되어 있다 보니 OB 시절부터 응원하던 최의민같은 골수 OB팬들들과는 좀 상이한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골수팬들과 새로운 팬들 사이에 갈등이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두산 야구를 오래 본 정통 오비아재들은 경기장에 와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진중하게 보고 가거나 집관하는 편이다.[48] 하지만 김인식 감독 시절에 이어 기나긴 김경문 감독 시절, 김진욱 전 감독 2년, 송일수 1년, 이제는 김태형 감독 시절을 맞이했고 WBC 및 베이징 올림픽으로 유입된 팬들도 이제 다년간의 적응기간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야구 정보의 접근성 증가로 인해 나름대로 경험 있는 야덕들이 되었다. 그리고 2014년 새로 부임한 응원단장 한재권이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며 무려 외야석 관중들까지 응원에 참여하게 유도해내며[49] 타 팀 팬들까지 놀라게 만들고 있다. 신생팬이 많이 유입된다는 것 자체는 장기적으로 좋은 현상이다.[50]
제일 고무적인 것은 2015시즌의 기적같은 우승에 힘입어 2016년 현재 부모님과 같이 오는 두린이들, 삼삼오오 무리지어 오는 10대 청소년 팬들, 20대 대학생 팬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직관을 가 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게 팬덤 연령층이 낮다는 점인데 두산이 몇 년간 이 기세를 유지한다면 최소한 향후 20년간 팬덤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
2015년 페넌트레이스까지만해도 평일에는 응원석쪽에만 관중들이 있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이후, 2016년부터는 응원석은 물론이며 응원단상에서 떨어져 있는 관중석에도 자리가 꽉 찰 정도로 팬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51]
외국인 팬도 적지 않다.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인의 상당수가 서울에 모이고, 한국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야구장에 들렀다가 경기장 문화(열성적인 팬들, 단체 응원 등)에 반해 팬이 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하는데, 특히 유튜브 등지에 한국의 야구장 문화를 소개하는 외국인들의 영상을 보면 팬들이 열광적이기로 유명한 팀과 함께 두산의 영상이 상당히 많은 걸 볼 수 있고, 두산 팬임을 자처하는 업로더도 자주 보이는 편이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2016년 구단 측에서도 '인터네셔널 데이'를 신설하여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를 시구자로 초청하고, 두산 외국인 선수들의 팬사인회를 여는 등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6.1 여성 팬덤
KBO 리그에서 가장 많은 여성팬을 보유한 구단 열도에 자매구단도 있다
2015 시즌 KBO 리그의 여성 관중 비율은 43.1%였는데, 두산 베어스는 여성 관중 비율이 리그 평균보다 약 10% 높은 53%를 기록했다. 즉, 두산 홈 경기에는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이 온다. 두산 응원석만 한정했을 땐 남자 20 안쪽 : 여자 80 이상이라는 현장 평도 있다. 관중 수가 적은 평일에는 여팬이 압도적으로 많은 경우도 허다하며, 원정 단관 팬도 대개 여자가 남자보다 많다.[52]
정수빈 응원가, 일명 잠실여고 교가 |
양의지, 정수빈 응원가처럼 KBO에서 유일하게 남/녀 파트가 따로 있는 선수 응원가가 있는데, 원래는 일반적인 응원가였다가 점차 여성 팬 전용으로 특화되자 나중에는 팬들이 암묵적으로 남/녀 파트를 나눴다. 특히 이 선수의 응원가를 들으면 확실히 인원수 파악이 가능하다. 실제 응원 영상에서 두산측 관중들의 응원소리를 들어보면 야구 붐 초반인 2008년까지는 타 구단과 마찬가지로 남자 목소리가 압도적이었는데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여자 목소리가 남자 목소리를 뚫고 나오더니 그 후로는 마치 아이돌 콘서트장을 방불케하는 소리가 나온다. 여성팬이 많다는 건 새로운 팬층이 형성되기 좋은 조건을 갖췄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여길 수 있다. 여성팬은 자식이던 애인이던 한명의 새로운 팬을 생산하기 떄문. 그래서인지 여성들을 위한 행사들도 많으면서[53][54] 프런트도 여성 팬서비스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다만 여성팬들은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반면 젊은 남성층의 유입이 적다보니 KBO리그에서 유례없이 남자팬 유치를 위한 행사를 진행하는 구단이기도 하다. 다행히 먹산억제기가 물러나고한재권 응원단장이 오면서부터 남성팬들도 많이 유입되고 증가하고 있다고.
6.2 시구
여자 연예인 시구가 많은 편이다. 여자 연예인 중 절반 이상은 이 팀 홈경기에서 할 정도. 특히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들이 시구를 많이 했는데, 레드벨벳의 경우 LG 시구를 했다. 야구인기 증가로 야구장 시구가 효과적인 프로모션 수단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연예인 시구가 전체 구단 사이에 증가하였는데, 두산은 특히 그 시구자 라인업이 화려하다. 연예인들이 지방까지 시구하러 가는 일은, 그(또는 그녀)가 해당팀의 팬이 아닌 이상 드물기 때문에 두산 베어스 홍보팀에 항상 시구를 희망하는 제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개념시구로 이름높은 홍수아. 근래에는 비교적 자주 오는 소녀시대, 2011년 잠실에서 개막식 시구를 한 시크릿의 전효성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여자 연예인이 시구를 하면 이긴다는 징크스가 있지만 JYP 소속 여자 연예인이 시구를 하면 진다는 징크스가 있다. 단 JYP 소속 남자 연예인인 박진영, 닉쿤, 택연이 시구나 시타를 하러 왔을 때는 전부 이겼다. 초아는 JYP 오디션 참가자 출신이다. 그리고 초아는 2015년 개막전에도 시구했는데, 이 날은 이겼다. 2013년 승리의 여신(&남신) 라인업은 조정석, 신수지[55], 미란다 커 등이다.
아울러 연예인 팬들도 꽤 많은 것(개중 시구자만도 있으니 확실친 않다)으로 알려져 있다.
6.3 먹산
2015년 들어서는 팬들의 먹성이 좋아서 돡오후 먹산 베어스의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먹산의 명성이 굳어진 계기는 2015년 9월 28일 kt wiz와의 경기로, 이날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는 관중석이 매진되지 않았는데도 매점의 음식을 매진시키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 참사의 여파로 마르테는 밥버거를 못 먹었고, 옥스트링의 딸은 핫도그를 못 먹었다고 한다(...) "추석이라 주변 식당이 문을 닫아서 그렇다", "kt wiz 팬들도 먹성이 좋다"는 등의 원인분석도 있지만 두산 팬들의 먹성이 너무 좋아서 그렇다는 게 야구팬 대다수의 의견. 관중석이 매진되지 않은 건 먹을 게 모자라서였다
이후에도 그 명성은 이어져서, 목동 야구장에서도 음식을 매진시켰고 NC와의 플레이오프전에서는 마산 야구장의 매점을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마산 어시장의 횟집 사장님이 "회 뜨다가 세상 뜨겄네"라는 말을 남겼다고. 도장 깨기
잠실 야구장의 매점도 두산이 홈경기를 할 때의 매상이 LG 때보다 많다고 한다.
두산의 전 응원단장인 오종학이 두산 팬들에게 미움받는 원인 중 하나가, 응원석 주변의 두산 팬 앞에서 치킨 먹지 마십쇼!, 햄버거 먹지 마십쇼!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토 쓰토무 치바 롯데 마린스 감독이 2015년 낸 책에서는 두산 수석코치 시절에 선수들도 식탐이 많았다라고 회고했다. 그리고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리츠칼튼 호텔에서 열린 축송회 때 호텔 음식을 잔반 하나 없이 싸그리 먹어치운 것도 모자라 2차에 가서 더 먹었다는 걸 보면... 이건 2군이나 용병도 다를 바가 없다고.
2016년 4월에 두산이 kt와 3연전을 할 때, 두산 팬들의 습격(?)에 대비해서 단기 알바를 모집한 식당도 나왔다.(...)
2016년 5월 15일 고척돔 원정경기에서는 막대풍선 대신 땅콩크림빵을 들고 응원하는 팬이 목격되기도 했다.
2016년 9월 17일에도 어김없이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 매점을 습격, 먹산의 위엄 을 보여주었다.
6.4 유명인 베어스 팬
가나다순으로 정리[56]
- 강민경
- 강원래
- 강화연 - 수업 도중에도 자주 언급한다.
- 곽시양
- 김규리 - 舊 김민선
- 김민교
- 김보성
- 김소혜 - I.O.I
- 김연경 - 흥국생명 시절 주장인 이영주를 따라 두산 경기를 보게 된게 두산 팬이 된 계기였다.[57]
- 김장훈 [58]
- 김지호(배우)
- 김지호(코미디언)
- 김창렬
- 김현정
- 김환
- 나영석
- 노홍철
- 마동석
- 마크 리퍼트 - 기사
- 박선영 - SBS 아나운서
- 박시은
- 박중훈
- 박희본
- 배성재
- 베이빌론
- 블레어 윌리엄스
- 서장훈 - 국민학교 시절 야구 선수로 활약하면서 OB베어스 주최 야구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 석주일 - 농구 비시즌에 아프리카TV에서 두산 편파방을 틀어준다.
- 소이현
- 수지(miss A)
- 신수지 - 2015년 개막전까지 포함해 잠실 직관승률10전 전승을 자랑한다.
- 싸이
- 아이유 - 참고로 그 금지어 팬이었다고 한다.
- 안신애
- 유민상(개그맨)
- 유영진(작곡가)
- 유재석 - 어린시절 OB 베어스 어린이 팬클럽이었다고 무한도전에서 인증했다. 다른 방송 자료
- 윤아
- 윤시윤
- 윤태영
- 은지원
- 이광용- 본인 트위터에서 인증했다
- 이다해
- 이다희
- 이민우
- 이병진
- 이서진
- 이성경[59]
- 이세준
- 이수근
- 이채영[60]
- 이하늘
- 임창정
- 장수원
- 전인택
- 정보석
- 정운찬[61]
- 정재용
- 정진호 - 닉네임 홀스. 나이스게임TV의 사장 겸 캐스터.
- 주상욱
- 지진희
- 진태현
- 최의민 - 만화가, 필명 최불암
- 최현석
- 케이윌 - 자타칭 두산 승리 요정이다. 줄여서 승요.
- 한석준
- 한정수
- 한채영
- 홍수아 - # 이렇게 선수들을 위해 편지까지 썼다.[62]
- 황정민
7 관련 기록
7.1 역대 감독
두산 베어스 | |||
역대 | 이름 | 재임기간 | 성적 |
초대 | 김영덕 | 1982 ~ 1983 | 180전 100승 79패 1무 |
2대 | 김성근 | 1984 ~ 1988 | 534전 274승 250패 10무 |
3대 | 이광환 | 1989 ~ 1990[63] | 166전 69승 93패 4무 |
4대 | 이재우 | 1990 ~ 1991[64] | 153전 45승 103패 5무 |
5대 | 윤동균 | 1991 ~ 1994[65][66] | 419전 198승 210패 11무 |
감독대행 | 최주억 | 1994 | 6전 3승 3패 |
6대 | 김인식 | 1995 ~ 2003 | 1168전 579승 556패 33무 |
7대 | 김경문 | 2004 ~ 2011 | 960전 512승 432패 16무 |
감독대행 | 김광수 | 2011 | 76전 38승 38패 |
8대 | 김진욱 | 2012 ~ 2013 | 261전 139승 116패 6무 |
9대 | 송일수 | 2014 | 128전 59승 68패 1무 |
10대 | 김태형 | 2015 ~ |
- 두산 베어스의 역대 감독으로는 초대 김영덕부터 현 10대 감독인 김태형까지 총 10명의 감독들이 있다. 굵은 글씨는 우승 감독
- 감독 대행 체제로 시작해서 정식 감독이 될 때까지 그 사이의 전적도 포함.
7.2 역대 성적
| 우승 |
| 준우승 |
| 포스트시즌 진출 |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
연도 | 정규시즌 순위 | 최종 순위 | 팀이름 | 경기수 | 승 | 패 | 무 | 승률 |
1982 | 1위/6팀[67] | 우승 | OB 베어스 | 80 | 56 | 24 | 0 | 0.700 |
1983 | 5위/6팀[68] | 5위 | 100 | 44 | 55 | 1 | 0.444 | |
1984 | 1위/6팀[69] | 3위 | 100 | 58 | 41 | 1 | 0.586 | |
1985 | 4위/6팀[70] | 4위[71] | 110 | 51 | 57 | 2 | 0.472 | |
1986 | 4위/7팀[72] | 4위 | 108 | 56 | 48 | 4 | 0.538 | |
1987 | 4위/7팀[73] | 4위 | 108 | 55 | 52 | 1 | 0.514 | |
1988 | 5위/7팀 | 5위 | 108 | 54 | 52 | 2 | 0.509 | |
1989 | 5위/7팀 | 5위 | 120 | 54 | 63 | 3 | 0.463 | |
1990 | 7위/7팀 | 7위 | 120 | 35 | 80 | 5 | 0.313 | |
1991 | 8위/8팀 | 8위 | 126 | 51 | 73 | 2 | 0.413 | |
1992 | 5위/8팀 | 5위 | 126 | 56 | 66 | 4 | 0.460 | |
1993 | 3위/8팀 | 3위 | 126 | 66 | 55 | 5 | 0.544 | |
1994 | 7위/8팀 | 7위 | 126 | 53 | 72 | 1 | 0.425 | |
1995 | 1위/8팀 | 우승 | 126 | 74 | 47 | 5 | 0.607 | |
1996 | 8위/8팀 | 8위 | 126 | 47 | 73 | 6 | 0.397 | |
1997 | 5위/8팀 | 5위 | 126 | 57 | 64 | 5 | 0.472 | |
1998 | 4위/8팀 | 4위 | 126 | 61 | 62 | 3 | 0.496 | |
연도 | 정규시즌 순위 | 최종 순위 | 팀이름 | 경기수 | 승 | 패 | 무 | 승률 |
1999 | 드림 1위/4팀 | 3위 | 두산 베어스 | 132 | 76 | 51 | 5 | 0.598 |
2000 | 드림 2위/4팀 | 준우승 | 133 | 76 | 57 | 0 | 0.571 | |
2001 | 3위/8팀 | 우승 | 133 | 65 | 63 | 5 | 0.508 | |
2002 | 5위/8팀 | 5위 | 133 | 66 | 65 | 2 | 0.504 | |
2003 | 7위/8팀 | 7위 | 133 | 57 | 74 | 2 | 0.435 | |
2004 | 3위/8팀 | 3위 | 133 | 70 | 62 | 1 | 0.530 | |
2005 | 2위/8팀 | 준우승 | 126 | 72 | 51 | 3 | 0.585 | |
2006 | 5위/8팀 | 5위 | 126 | 63 | 60 | 3 | 0.512 | |
2007 | 2위/8팀 | 준우승 | 126 | 70 | 54 | 2 | 0.565 | |
2008 | 2위/8팀 | 준우승 | 126 | 70 | 56 | 0 | 0.556 | |
2009 | 3위/8팀 | 3위 | 133 | 71 | 60 | 2 | 0.534 | |
2010 | 3위/8팀 | 3위 | 133 | 73 | 57 | 3 | 0.549 | |
2011 | 5위/8팀 | 5위 | 133 | 61 | 70 | 2 | 0.466 | |
2012 | 3위/8팀 | 3위 | 133 | 68 | 62 | 3 | 0.523 | |
2013 | 4위/9팀 | 준우승 | 128 | 71 | 54 | 3 | 0.568 | |
2014 | 6위/9팀 | 6위 | 128 | 59 | 68 | 1 | 0.465 | |
2015 | 3위/10팀 | 우승 | 144 | 79 | 65 | 0 | 0.549 | |
2016 | 1위/10팀 | 144 | 93 | 50 | 1 | 0.650 | ||
KBO 통산 35시즌 | V4 | 4339 | 2188 | 2063 | 88 | 0.515 |
그외 사항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문서 참조.
7.3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삼성 라이온즈 | 82KS : 4승 1무 1패 86PO : 2승 3패 01KS : 4승 2패 04PO : 1승 3패 05KS : 4패 08PO : 4승 2패 10PO : 2승 3패 13KS : 3승 4패 15KS : 4승 1패 | PO 1승 3패, KS 3승 2패 개별 경기 총 전적 24승 1무 23패 |
KIA 타이거즈 | 87PO : 2승 3패 04준PO : 2승 | 준PO 1승, PO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4승 3패 |
LG 트윈스 | 93준PO : 1승 2패 98준PO : 2패 00PO : 4승 2패 13PO : 3승 1패 | 준PO 2패, PO 2승 개별 경기 총 전적 8승 7패 |
롯데 자이언츠 | 95KS : 4승 3패 09준PO : 3승 1패 10준PO : 3승 2패 12준PO : 1승 3패 | 준PO 2승 1패, KS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11승 9패 |
한화 이글스 | 99PO : 4패 01준PO : 2승 05PO : 3승 07PO : 3승 | 준PO 1승, PO 2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8승 4패 |
현대 유니콘스 | 00KS : 3승 4패 01PO : 3승 1패 | PO 1승, KS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6승 5패 |
SK 와이번스 | 07KS : 2승 4패 08KS : 1승 4패 09PO : 2승 3패 | PO 1패, KS 2패 개별 경기 총 전적 5승 11패 |
넥센 히어로즈 | 13준PO : 3승 2패 15준PO : 3승 1패 | 준PO 2승 개별 경기 총 전적 6승 3패 |
NC 다이노스 | 15PO : 3승 2패 | PO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3승 2패 |
7.4 역대 주장
두산 베어스 | |
기간 | 이름 |
1982 | 김우열 |
1983 | 윤동균 |
1984 ~ 1985 | 이홍범 |
1986 ~ 1987 | 이종도 |
1988 ~ 1990 | 김광수 |
1991 | 김형석 |
1994 | 김상호 |
1995 ~ 1997 | 이명수 |
1998 ~ 2000 | 김태형 |
2001 ~ 2002 | 안경현 |
2003 | 김민호 |
2004 | 안경현 |
2005 | 김동주 |
2006 ~ 2007 | 홍성흔 |
2008 ~ 2009 | 김동주 |
2010 ~ 2011 | 손시헌 |
2012 | 임재철 |
2013 ~ 2014 | 홍성흔 |
2015 | 오재원 |
2016 ~ | 김재호 |
7.5 역대 유니폼 변천사
8 사건 사고
9 선수단, 등번호
10 응원단
두산 베어스 역대 응원단장 | ||
순서 | 이름 | 기간 |
초대 | 김정환[74] | 1991년 ~ 1997년 |
2대 | 송창훈 | 1998년 ~ 2002년 |
3대 | 김주일[75] | 2003년 |
4대 | 송창훈 | 2004년 ~ 2007년 |
5대 | 오종학 | 2008년 ~ 2013년 |
6대 | 한재권 | 2014년 ~ |
11 베어스포티비 (BearSpotv)
유튜브 페이스북
두산 베어스와 SPOTV의 제휴로 만들어졌다. 롯데 자이언츠의 GIANTS TV와 같은 개념.
담당자의 영상제목 드립과 굉장한 열일로 유명하다. 스프링캠프나 신인드래프트장에는 당연히 따라가고 가끔 원정경기도 따라가며[76] 시시때때로 진행되는 라이브 스트리밍[77], 방송 영상으로는 볼 수 없는 실시간 경기 하이라이트 <잠실직캠>, 각종 스케치 영상[78], 시상식 영상, 한 달에 한 번씩 올라오는 <온더레코드>, 치어리더 및 관중석 응원 직캠, <백투더덕아웃>이라 부르는 기존 선수들 인터뷰나 신인∙이적생∙군 전역 선수들의 입단 혹은 복귀 소감 인터뷰 영상[79], 시구 비하인드를 담은 <오늘의 시구> 등 그야말로 별의 별 영상들이 다 올라온다.
이외에도 2016년 올스타 투표기간동안 최시은 리포터[80]를 데려다가 선택 2016이라며 선거 방송도 찍었고 #, 니퍼트가 서울시 복지상을 탔을 때도 시상식장에 따라갔었으며 #, 유희관을 데려다 앉혀놓고 잠실구장 먹거리를 깔아놓은 뒤 먹방을 찍은 적도 있다 #. 2016년 정규시즌이 끝난 뒤에는 미야자키 교육리그 캠프까지 따라가면서 한국시리즈까지 기다리다 지치기 직전인 두산 팬들을 구제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찍다가 두산 선수들한테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시는 응원가 부르는 정진호 허구한 날 쿠사리 먹이는 오재원과 양의지 그리고 카메라 뺏어 도망다니는 박건우가 있다.
12 두산 베어스 관련 커뮤니티
- 곰들의 대화
- 두산 베어스 갤러리
- 대한민국 야구 대표 두산베어스 (통칭 대야베)
- 카카오톡 오픈채팅 두산베어스 10번타자
13 지역 연고 학교
서울연고 야구팀인 넥센 히어로즈,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는 지역연고학교를 합동 관리한다. |
14 관련 문서
15 기타
- 두산 오너일가에서 내려오는 말로, '두산 그룹이 망하지 않는 한 프로야구단은 운영하라'는 명언이 있다. 실제로 박용곤 전 회장은 프로야구 창단에 깊숙히 참여했다. 하지만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구단주를 맡은 시절 야구 외적인 일에 치중하느라 구단 지원에 소홀하기도 했는데, 이 당시 외국인선수라고 사다준 선수가
키워쓰는 용병세데뇨일 정도로 안습한 적이 있기도 했다. 물론 진짜로 외국인 선수를 키워서 쓰는 곳은 도미니카에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야구학교를 연 히로시마 도요 카프.그러나 이 학교 출신의 모 선수는 모 구단에 핵폭탄을... - 前 응원단장 오종학이 꽤 미남인 것으로도 유명. 클릭비 오종혁의 사촌형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 알려진 것으로 가수 오종혁이 라디오에서 해명하기도 했다. 원빈 닮은 꼴로 TV에 출현한 적도 있다.
응원만 잘하면 되는데 그걸 못해... - 다른 구단에 비해 충암고 출신 야구선수가 비교적 많다.충암고 따까리 라인업!
이 선수만 오면 충암고 풀덱이 완성될 거라 카더라 -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첫 8년 연속 100만 홈관중 달성 구단.#
- 역대 감독들중에 김광수 감독대행을 재외한 김씨 성을 가진 감독. 초대 김영덕, 2대 김성근, 6대 김인식, 7대 김경문, 8대 김진욱, 10대 김태형은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 경력이 있는 반면, 김씨 성을 가지지 않은 감독들이 있었던 시즌에서 두산은 단 한 번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81] 이광환, 이재우, 윤동균, 최주억, 송금지어이들 모두가 김씨가 아니다. 또한 네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 모두 김씨 감독이[82] 이루어냈다.
- 선수들의 앞길을 열어주는 상당히 대인배스런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선수협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 심정수 등을 보내버리며
강병규도 이거 때문에 방출시킨 거니까레전드 대우가 부실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였다. 2012년 FA자격을 다시 얻은 김동주와 재계약하며 17년 연속 두산맨으로서 해외진출 없이 국내에서만 100억 이상의 수입을 보장받아 신인들에게 '야구만 잘하면 레전드 대접 받을 수 있다'는 좋은 선례를 남기나 했다. 하지만 2014년에 김동주 1군 기용 여부를 두고 김동주 본인과 코칭스태프간에 마찰이 생겨 이적 파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역시 두산은 레전드 대우를 거지같이 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83] - 미라클 두산이라고 불리는 만큼 가을, 포스트 시즌에 성적이 좋은데 유독 SK 와이번스에 약하다.
김경문 보고있나?김성근님이 이 글을 좋아합니다
- ↑ OB 베어스는 원년 6개 구단 중에서 가장 먼저 프로 구단으로서의 구색을 갖추고 창단식을 마무리한 팀이다. 1982년 1월에 창단 작업을 마친 팀은 OB 베어스와 MBC 청룡 뿐이며 나머지 4개 팀은 1982년 2월에 창단됐다. 팀 자체를 설립한 시기로 보면 롯데 자이언트가 7년이나 앞선다.
- ↑ 리그 출범 당시 광역 연고제 였고, 충청남북도 전역이 연고지였다. 대전은 당시 충청남도 대전시. 1989년 직할시 승격, 1995년 대전광역시로 명칭이 개칭.
- ↑ ㈜두산 지주부문 회장. 박용만 회장의 조카이자 박용곤 명예회장의 아들. 창업주 박승직의 증손자. 2016년 박용만 회장에 이어 두산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참고로 야구를 굉장히 좋아해서 LG 트윈스와의 잠실시리즈 경기는 시간이 날때마다 챙겨본다고.
- ↑ 제2구장
- ↑ 1994년부터 킷 스폰서로 두산 베어스와 인연을 맺고 있다. 이는 한국의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긴 킷 스폰서 계약기간이다.
- ↑ 참고로 모기업이 장부상으로는 두산 베어스가 맡고 있다.
- ↑ 원년에 서울 연고를 배정받고 3년동안만 한정적으로 충청 지방을 연고로 했다가 약속대로 1985년에 서울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 베어스는 삼성, 롯데와 마찬가지로 창단 이래 계속 두산그룹 산하에 있다. 현재의 팀명으로의 변경은 1999년에, 두산의 OB맥주 매각은 2003년에 있었다.
- ↑ 1982, 2001, 2015년은 모두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우승을 한 것이다. 현재까지 모든 프로야구 팀 중에서 80년대, 90년대, 00년대, 10년대 모두 우승한 팀은 두산이 유일하다
KIA가 남은 10년대에 우승한다면 두 팀 - ↑ 5번의 준우승 중에 3번(2005, 2007, 2008년)이 이 분의 작품이다.
- ↑ 2015년 허슬두데이 등 구단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 ↑ 2001년 포스트시즌에서 정규시즌 3위로 시작,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를 모두 통과하고 한국시리즈에서 당연히 우승이라고 누구나 믿어 의심치않는 삼성을 4승 2패로 꺾었다. 2015년에도 정규 시즌 3위로 시작해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를 모두 통과하고 한국시리즈에서마저 삼성을 4승 1패로 꺾었다. 그리고 2013년에도 정규 시즌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서 출발해 넥센과 LG를 모두 꺾고 한국시리즈에서 삼성마저 3승 1패로 몰아 넣어서 2015년 전에 이 때 이미 업셋 우승이 가능했을지도 몰랐으나 그 뒤에 3연패 당하며 준우승을 했다.
- ↑ 2000년의 507 대첩, 1986년 최종전의 '김형석의 운명의 한 방 등. 최근의 예를 들면 2013년의 912 대첩이나 2015년의 1014 대첩도 있다.
- ↑ 고창성,
임태훈, 이재우, 이용찬의 이니셜을 따서 만든 명칭 - ↑ 베어스포티비(BearSpotv)의 시즌결산에도 나왔던 7인의 좌완: 유희관, 장원준, 이현승, 이현호, 함덕주, 허준혁, 진야곱
- ↑ 특히 김경문과 조범현의 주전포수 경쟁은 상상을 뛰어넘을만큼 치열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김경문이 먼저 치고 나가면, 그 다음에는 부상을 틈타 조범현이 주전으로 올라서고, 나중에는 다시 김경문이 자리를 되찾는 식이었다고. 김경문이 1990년 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되며 끝나는 것처럼 보였던 이 싸움은 2000년대 후반 두산과 KIA의 대결을 통해 이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김경문과 조범현은 고교 시절부터 라이벌 관계로 유명했고, 이들의 경쟁은 곧 팀 내 코치였던 이광환(김경문의 대학 선배)과 김성근(조범현의 고교시절 감독)의 자존심 싸움이기도 했다고.
- ↑ 최승환과 용덕한 같은 경우에는 투수리드나 수비면에서는 양의지보다 다소 앞서지만 공격력에서 상당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 ↑ 강민호와 양의지 중 누가 1인자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한 편이다. 대개 강민호가 타격이 더 강하고 양의지는 투수 리드가 더 좋다고 하는 편. 투톱이라고 보는 의견이 많다.
- ↑ 2015년 정규시즌 팀 토종 선수 합산 WAR은 1위(51.62)인 데 반해 외국인 선수 합산 WAR(4.08)은 꼴찌다.
- ↑ 유희관과 함께 공동 1위
- ↑ 2015년, 유희관은 에이스로 각성하여 18승이라는 엄청난 승수를 쌓았고, FA로 이적해온 장원준도 조금 불안한 구석은 있어도 매 경기마다 6이닝씩은 먹어주면서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키며 12승을 찍었다. 특히 이 두 명은 전반기를 2위로 마칠 수 있었던 최고의 공신들이며, 실질적인 원투펀치로서 딱 둘밖에 없는 시즌 내내 로테이션을 지켜준 투수들이다. 둘이 합쳐 정규시즌의 359.1이닝을 책임져줬다는 게 이것을 증명한다. 유희관 189.2이닝 리그 6위(국내선수 2위), 장원준 169.2이닝 리그 15위(국내선수 6위)
- ↑ 11년 당시 두산 투수진을 망친 김경문-윤석환과는 반대되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 ↑ 롯데 출신의 이 사람과는 다르다. 두산 프랜차이즈 김민호는 게다 이후 간 팀이 하필...
- ↑ 사실 이 둘은 거의 세트로 움직였다.
- ↑ 강석천은 주루코치로 거하게 욕먹고 시즌 도중 수비코치로
왜???보직이 변경되었고, 조경택은 배터리 코치가 아닌 재활코치다. - ↑ 실제로 공필성의 경우 현역시절 수비에서 좋은 평을 못받았음에도 롯데에서 수비코치를 역임한 바 있다. 근데 그렇게치면 강석천도 현역시절 돌글러브였는데 두산과 한화에서의 수비코칭능력 평가가 확연히 다른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보직 문제는 아닌것같기도 하다.
- ↑ 요미우리는 두산 베어스의 순혈주의와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순혈을 따진다. 특히나 요미우리 감독직을 맡으려면 선수생활을 오직 요미우리에서만 보내야하고 자의든 타의든 트레이드 되어선 안되며(해외진출은 예외), 다른팀 코치나 감독직은 절대로 맡아선 안된다.(단 1981, 1989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끈 후지타 모토시는 다이요 훼일즈의 투수코치를 맡은 뒤 감독을 맡기도 했다.) 그래야 요미우리 감독 후보군에 오를 자격이 주어진다.(...) 자세한 내용은 요미우리 자이언츠 문서 참조.
- ↑ 두산 이외에 순혈주의를 지향하는 팀으로 삼성 라이온즈나 KIA 타이거즈도 있다. 하지만 삼성의 경우 김응용-선동열 감독 체제를 밟으며 순혈주의가 어느 정도 희석되었고, KIA도 OB 출신 조범현 감독의 취임으로 감독 순혈주의에서 벗어났다.
- ↑ 그 이후로 구단 프랜차이즈였던 류중일과 선동열이 취임하면서 순혈주의가 이어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두산은 역대 감독들을 보더라도 두산에서 뛰지 않은 선수 출신 감독이 거의 없다.
- ↑ 김선우는 96년 고졸우선 지명으로 OB/두산이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고, 이혜천도 OB/두산 프랜차이즈였던걸 다시 복귀시킨 거라 타팀 출신 FA영입과는 다르다.
- ↑ 송일수도 13시즌 2군 감독이긴 했다.
- ↑ 그런 의혹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게 이토 쓰토무는 감독 첫 해였던 2004년 세이부를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토 코치 자체가 1980~90년대 세이부 라이온즈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포수였던데다가 선수 말년에는 거의 세이부의 '예비 감독'이나 다름없었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였다.
- ↑ 다만 조경택은 OB에서 선수생활 경력이 있다.
- ↑ OB 시절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은퇴경기.
- ↑ LG 트윈스는 2012년 1월경에 축구장으로 써야 할 부지를 20년 동안 야구장으로 써온 게 발각되어 조만간 훈련장을 옮겨야 하는데, 그 후보 중 하나가 이천이다.
- ↑ 입단 1년차부터 외야백업 애니콜로 굴렀던 정수빈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 ↑ 2016년 리그 외야수 OPS 2, 4, 6위다
- ↑ 동성고-고려대
- ↑ 실제로 KIA 타이거즈 갤러리나 엠팍등지에서는 두산이 자기네 팜 털어가서 키울 동안 우리 프런트랑 코치들은 뭐하냐? 하는 욕을 수시로 볼 수 있다.
- ↑ 잠실 야구장 두산 홈 경기시 우측 외야 가운데 깃대에 박철순의 등번호 21을 상징하는 깃발이 올라간다.
- ↑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최초의 영구결번이다
- ↑ 1982년 ~ 1998년
- ↑ 1995년 시즌 말미 두산의 전신인 OB가 잔여 경기 14경기중 12승 2패를 하며 당시 선두 LG를 반게임차로 꺾고 페런트레이스1위를 확정하면서 부터 기적의 OB라고 불리워지게 된다.
- ↑ 심지어는 포스트시즌을 탈락한 2006년의 승률(.512)보다 낮다!!
- ↑ 덤으로 10승 이상의 투수가 한 명도 없는 팀의 유일한 우승이기도 하다. 그 해 두산의 최다승 투수는 마무리투수인 진필중의 9승.
- ↑ 1982년부터 1993년까지의 '콩성'이 준우승을 6번 하는 동안 OB는 준우승이 없고 1994년부터 2001년까지는 똑같이 1번이고 '콩성'을 벗어났다는 2002년부터도 삼성은 3번 두산은 4번을 기록, 겨우 한 번 차이다.
- ↑ 2007, 2013~2014년은 LG가, 2008~2012년은 롯데가 1위.
- ↑ 물론 매년 시즌권 끊고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분들도 당연히 있다.
- ↑ 2016년 kt 위즈와의 원정경기에선 평상복 차림으로 경기 관람하다가 단상에 올라가기도 했다.
- ↑ 그 어떤 분야든 덕질이라는 것에 조금이나마 발을 담가봤다면 팬덤은 일단 크고 봐야 한다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팬덤이 커지려면 유입층이 있어야 한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다.
- ↑ 2016년 정규시즌 우승 확정 경기였던 kt wiz와의 경기에서는 중앙석, 응원석, 외야석은 물론이고 3루 내야까지 전부 포진했었다.
- ↑ 대개 팬덤에서 남녀비율이 비슷하면 여성팬들이 더 열정적으로 덕질하는 경우는 어떤 장르를 가든 꽤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 ↑ 2009년부터 시작된 '퀸즈데이'. 본래 특정 달 목요일에 감독 이하 선수 전원이 핑크색 유니폼을 입고 나와 경기했으나 그러고서 이긴 경기가 하나도 없는데다 팬들의 반응도 그리 좋지 않아서 현재 유니폼을 입고 경기하는 이벤트는 사라진 상태다.
- ↑ 2014년부턴
훈남 응원단장을 아저씨로 바꾸는 대신훈남 비보이가 마스코트와 함께 비보잉 공연을 주말 경기마다 선보이고 있다. - ↑ 이후로도 신수지 시구 또는 직관시 미칠듯한 승률을 자랑한다.
- ↑ 두산그룹 오너일가는 제외, 시구자만도 있으니 확실친 않다
- ↑ 여담으로 2012년 한화 이글스에서의 시구는 JT 마블러스 시절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뛰던 박찬호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 ↑ 그래서 LG팬인 유희열과 야구 얘기하면 으르렁거린다고 라디오에서 유희열이 밝힌 바 있다.
- ↑ 트위터. 두산 홈경기에서 시구도 했다.
- ↑ SK 와이번스 모델을 포기하고 두산 베어스의 경기를 보러 갔을 정도. 사실 SK의 병크가 맞다.
- ↑ 실제로도 두산 경기에 자주 직관을 가는 편이다. 다음에서 두산 팬으로 유명한 모 네티즌의 직관 후기에서도 종종 등장하곤 한다.123
- ↑ 여담으로 2016년 한국시리즈에 직관을 한다고 한다!
- ↑ 시즌 중 사퇴. 잔여 경기는 이재우 감독대행
- ↑ 시즌 중 사퇴. 잔여 경기는 윤동균 감독대행
- ↑ 프로선수 출신 1호의 감독.
- ↑ OB 베어스 항명파동으로 인해, 중도 사퇴. 잔여 경기는 최주억 감독대행
- ↑ 전기 1위, 후기 2위
- ↑ 전기 6위, 후기 5위
- ↑ 전기 2위, 후기 2위. 통합 승률 1위.
- ↑ 전기 2위, 후기 5위
- ↑ 삼성 라이온즈가 전·후기 통합우승을 달성하며 한국시리즈 자체가 열리지 않았다.
- ↑ 전기 5위, 후기 1위
- ↑ 전기 2위, 후기 5위
- ↑ 기록상으로 확인되는 OB-두산 베어스 최초의 공식 응원단장.
- ↑ 이 때 김주일이 소속된 이벤트 업체가 KBL 서울 삼성 썬더스 응원단 운영권 입찰에서 송창훈 팀에게 밀리자, 보복으로 두산 베어스의 운영권을 따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두산 팬들은 송창훈의 복귀룰 외쳤고, 결국 2004년에 김주일이 KIA로 가면서 송창훈이 복귀한다.
- ↑ 2016년 8월 사직 원정에 따라가서 평소와 다름없이 워밍업 라이브를 진행하다가 역대급 업적을 하나 남기셨다.
- ↑ 경기 전 워밍업 라이브, 경기 후 수훈선수 인터뷰 라이브, 원정길 라이브(!) 등
- ↑ 경기 전 스케치, 경기 스케치, 퇴근길 스케치, 우천취소 스케치 등. 스케치 BGM 선정 능력도 두산 팬들 사이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는 다름아닌 이 영상.
- ↑ 신인 선수들의 경우 이복근 스카우트 팀장의 코멘트까지 딴다..
- ↑ 베어스포티비 공식 리포터 #
- ↑ 1993년 윤동균 감독 시절.
- ↑ 원년 김영덕, 1995년과 2001년 김인식, 2015년 김태형.
- ↑ 다만 김동주의 경우 본인의 자업자득이라는 평이 많다. 자세한 건 김동주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