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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6일 (목) 10:49 기준 최신판
- 상위 문서 : 대한민국
- 관련 문서 : 지역감정
목차
- 1 개요
- 2 사례
- 2.1 대(大)지역주의
- 2.2 소(小)지역주의
- 2.2.1 서울특별시 금.관.구./노.도.강. vs. 강남3구
- 2.2.2 경기도 북부[11] vs 경기도 남부[12]
- 2.2.3 경기도 성남시의 수정구-중원구(구 성남) vs. 분당구(분당신도시, 판교신도시)
- 2.2.4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vs. 동안구
- 2.2.5 경기도 중서부 경부선·경인선·수인선 연선지역[15] vs. 경기도 동부 신도시들[16]
- 2.2.6 강원도 춘천시 vs 원주시 vs 강릉시
- 2.2.7 강원도 철원군 vs. 구 김화군
- 2.2.8 대구광역시 수성구 vs. 그 외 지역
- 2.2.9 경남 사천시 삼천포 vs. 구 사천군
- 2.2.10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마산합포구 + 마산회원구) vs. 구 창원시(성산구 + 의창구)
- 2.2.11 부산광역시 해운대 권역(해운대구, 수영구, 남구) vs. 부산광역시 나머지 지역(원도심, 서부산, 동래)
- 2.2.12 전북 전주시 vs. 완주군
- 2.2.13 전남 서부 vs. 전남 동부
- 2.2.14 전남 목포시 vs. 무안군
- 2.2.15 전남 여수 vs. 순천 vs. 광양
- 2.2.16 경북 남부 vs 경북 북부
- 2.2.17 경북 영덕군 vs. 울진군
- 2.2.18 충북 충주시 vs. 청주시
- 2.2.19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vs. 서귀포시
- 2.2.20 제주특별자치도 서부 vs. 동부
- 3 논란
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사람이 갖고 있는 환경을 보고 먼저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미국인이라서, 흑인이라서, 또는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 사람이라는 등등의 이유로 선입견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내면이 아닐까요? 사람 자체가 좋으면 그만인 것을 어느 지역 출신이라서 싫어한다는 건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영호남의 갈등 뒤에는 항상 정치가 따라다녔다. 특히 1987년 전라도 출신의 김대중과 경상도 출신의 김영삼의 관계가 악화되고 김영삼이 노태우와 함께 한솥밥을 먹게 되면서부터 영호남은 이미 서로간의 적대감정을 가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라도의 김대중, 경상도의 김영삼 이 두 사람의 영향과 갈등이 결국은 영호남 지역민들에까지 서로간의 적대관계를 만들었고 할 수 있다.
1 개요
대한민국의 국민총화를 깨뜨리는 가장 큰 원인중 하나
199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에서의 지역감정은 전라도 대 경상도의 구도 중심이었다. 영남 출신의 나훈아[1]와 호남 출신의 남진[2]의 경쟁구도라든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상대 지역 번호판을 단 차에는 주유를 해 주지 않는다는 등의 풍문이 떠돌아다닐 정도로 매우 심했다. 심지어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1순위 공약 중 하나가 지역감정 해소였고, 정부 차원에서 영호남 신랑신부 맺어주기 프로젝트(…) 등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정책을 따로 추진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후반 이후 국민의식 향상과 지역간 경제/교통/통신 등의 격차 해소로 인해 서서히 약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오늘날에는 약주 한 잔 거하게 걸친 어르신들의 푸념(?) 외에는 지역드립을 현실에서 듣기 비교적 어려워졌다. 그 대신 최근에는 수도권과 지방 차별 문제가 새로 대두되고 있는 중이다.[3] 그러나 2010년 이후에 특정 사이트로 대변되는 현상에 의해, 노인층의 유물로 여겨지던 영호남의 지역감정 문제는 다시 재발굴(?)되어 심하게 드러나고 있다. 과거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어떤 면에서는 더 심각한 유사인종주의로 보기도 한다.
아래에서 설명하는 다양한 지역감정들 중 '영남 vs 호남'과 '서북 vs 기호'는 그 중에서도 특히 심각한 수준의 지역감정에 속한다.
1.1 2010년대 이후 온라인상에서의 지역감정
2010년대경부터 온라인상에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특정 지역 비하가 유행하고 있다. 옛날 지역 비칭이라 해봐야 보리문디/깽깽이/감자바우 정도의 귀여운(?) 편이었지만, 2006년 막장 갤러리에서 고담대구로 촉발된 지역별 마경이라는 신(新) 지역개드립을 시작으로 2010년 야구 갤러리에서 시작된 호성드립과 2011년 오오미가 유행했고, 비슷한 시기 유행한 홍어 드립과 여기에 대응하는 과메기 드립, 거기에 더 나아가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고인드립들[4]까지..또 전라도나 경상도의 지지 성향과 맞물려 정치적 성격을 띄기도 했다. 지역드립을 잔뜩 실은 스타크래프트 유즈맵까지 나올 정도. 특정 지역을 아예 타국으로 분리독립시키라는 분리주의적 성향의 악질적인 드립까지 나오기도 했다.
다만 대한민국 인터넷에서의 이러한 악성 드립들은 정확히 말하자면 진정한 의미의 지역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지역감정이란 지역 vs 지역 구도에서 형성되는 적개심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인터넷의 지역드립들은 순수하게 악의적으로 상대를 조롱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역간의 대립이라기보다는 단순한 특정 지역 비하에 가깝다. 예컨데 진짜 지역드립이라면 영남인과 호남인이 서로 비난하며, 제3의 지역에서 나오는 비난은 적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인터넷의 영호남 비하는 제3의 지역에서 나오는 드립이 비정상적으로 많다. 즉 단순히 네티즌들이 마음에 안드는 지역을 마구잡이로 욕하는 것에 가깝다. 예컨데, 디씨 야갤만 하더라도 홍어드립과 통구이드립이 둘다 엄청난 비중으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어느 정도는 보수성향 사이트에서 호남 비하가 많고, 진보성향 사이트에서 영남 비하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다음에서는 경상도 욕이 많고 네이버에서는 전라도 욕이 많이 나온다.[5] [6]
혹자는 이를 두고 온라인 지역에는 한계가 있으며, 대다수의 경우는 개그소재일 뿐이라고 옹호를 하는데, 설령 당사자가 단순히 장난으로 그런 농담을 하는 것이라도 이미 도의적인 허용량을 아득히 초월했다. 또한 온라인 특성상 출처를 알 수 없는 루머도 쉽게 퍼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선동글들이 특정 지역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크게 부추기는 주요인이 되고만다. 이러한 움직임은 젊은 세대들이 주축이 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사회가 퇴보되어 가고 있는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인터넷의 지역드립 대부분은 정말로 순수하게 상대를 조롱하는 의미에서 쓰이므로 지역vs지역 구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대에는 온라인의 영호남 비하보다는, 오히려 오프라인의 수도권 vs 지방이 훨씬 더 진정한 의미의 지역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까놓고 말해서 영호남의 직접적인 대립이라고 해봤자 이제는 지지하는 정당과 거기에 딸린 기타 등등 정도의 차이 밖에 없지만, 수도권 vs 지방은 규제에 관한 문제, 나아가서 국민들의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뜨거운 떡밥이다. 다만 그렇다고 영호남 비하가 문제가 없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오직 순수하게 상대를 조롱하는 의미에서 쓰이는 드립들이므로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다른 지역감정보다 훨씬 더하다.
현실은 경상도(전라도)에서일지라도 경상도(전라도) 사람이 전라도(경상도) 욕했다가는 이상한 놈으로 찍힌다.
2 사례
2.1 대(大)지역주의
2.1.1 영남 vs 호남
너무 길어져서 문서가 따로 분리되었다. 영남 vs 호남 문서 참조.
2.1.2 수도권 vs. 지방
조선시대, 붕당의 원흉이 된 남북한 통틀어 지역감정계의 콩라인.
위의 영남 vs 호남만큼은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심각한 지역감정. 과거에 비해 수도권의 비대화가 갈수록 진행되고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수도권이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게 된 반면에 비수도권은 위 영남 vs. 호남 단락의 경제적 갈등 기원설과 같이 비수도권 내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어느 정도 있지만 전략적으로 집중 육성된 수도권에 비해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종전의 '호남소외론'을 넘어 '지방소외론'이 대두되었다.
차라리 영호남의 경우에는 정치적 갈등때문에 생겨났다고 했지, 이쪽은 아래에 나올 서북 vs 기호만큼 역사가 깊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보다 한층 과격해진 인터넷 문화까지 맞물려 지방충, 지잡충, 지잡대[7] 같은 비하 용어의 사용이 늘어나고 있고, 상호 불신감은 점차 증폭되고 있다.
수도권과 달리 '지방'이라는 분류는 상호 교류도 적고 별 상관없는 지역들을 수도권이 아니라는 하나의 공통점만 가지고 한데 묶은 정체성이 모호한 용어이기 때문에[8] 이러한 지역감정 구도는 지역별로 체감차가 크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사태 당시에는 영남은 물론 직접 이 문제와 관련이 없는 호남 인사들까지 목소리를 합쳐 '수도권 패권주의'라며 공공연히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이를 악용하여 지방 지자체의 침체 원인을 전적으로 수도권 집중에 화살을 돌리거나 뜬금없이 수도권 비토성 발언을 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인천광역시가 3위 도시 순서 변경을 행정안전부에 요청했었는데 이에 대해 대구광역시 지역 언론, 주민들이 지역비하를 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지방이라는 하나만으로 까임방지권 같은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이 문제를 다시 돌아볼 필요성도 있다.
그러나 다른 소모적 지역감정에 비해 이 쪽은 실질적 생계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수도권 규제 해제나 행정수도 사태 때처럼 이권이 충돌할 때마다 다시 부각되고 있고, 지역감정에 이미 염증을 느끼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신지역주의의 발현을 억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실체화되고 있다. 사실 앞에서 언급한 성적문제로는 비유하기 어려운것이. 이건 누가 더 능력이 있거나 노력을 더하고 덜하고의 문제와는 하등 관계가 없이 일방적으로 단지 서울에 거주한다는것만으로 이익을 본다는 명백한 사실관계가 실재한다는 문제도 있다. 익명성이 특징인 인터넷 공간에서 특히 그러한데 지방충, 지잡충 같은 비하표현을 쓰는 사람은 상식적으로 지방과 대척점에 있는 수도권 지역 주민일 공산이 크다.
다만, 수도나 최대 도시와 그 인근 도시들 VS 나머지 지역들간의 지역 감정은 단지 대한민국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게 심각하게 볼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2.1.3 기호 vs. 서북+개성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무려 반 천년이 넘게 지속된 대한민국의 지역감정의 주축이자, 현재 남북관계로까지 계승된 남북한 통틀어 지역감정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백제 멸망 이후 몰락해서 흔적이 옅어진 백제의 수도들이나 옛 신라의 수도로서 많은 유물들과 사적들이 존재하지만 영향력을 많이 잃었던 경주와는 달리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은 고구려 계승을 내세운 고려 왕조가 매우 아끼는 도시였으며 이때부터 수도에 이은 제 2의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조선시대 때도 제2의 도시로 번영하고 있었으며 이 덕분에 그에 기인한 자부심이 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한 지역감정이 정치적인 감정으로 번지는 경우가 있었고, 결국 고려 때에 묘청의 난이 일어나기도 하였고, 조선시대에 서북 지역은 중앙에서 벼슬 임용 등에 차별 대우를 받았고, 결국 홍경래의 난 같은 극단적인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심지어 독립운동가들끼리도 서북파와 기호파로 나뉘어서 갈등했다고 하니 장난이 아닌 셈이다.
그리고 개성은 서울과 같은 기호지방에 속하지만 개성이 고려 왕조의 수도여서 조선 왕조가 개성의 왕족들을 많이 죽이거나 탄압했기 때문에 조선시대 때 개성 사람들은 조선 왕조에게 매우 적대적이었다. 심지어 조선 후기 때에도 여전히 적대적인 감정을 유지했을 정도였다.
이 지역감정은 일제강점기 시기에 위대한 독립운동가들까지도 단결하지 못하고 편을 갈라 충돌하는 원인이 되었다. 사례 중 하나로 도산 안창호 선생이 만해 한용운 선생에게 "독립을 하면 나라의 정권은 서북이 가져야 한다"고 하기에 만해가 왜 그러냐고 질문하니 "기호(서울 경기권) 사람들이 500년동안 정권을 잡고 일을 잘못했으니 그 죄가 크고, 서북(평안도 일대) 지역은 500년간 박대를 받아왔으니 그렇다."고 주장했다가 만해 선생이 뒤도 안 돌아보고 인연을 끊어버렸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
분단 이후 북쪽과의 인적 물적 교류가 끊기면서 지금은 상대적으로 잠잠해진 상태이지만[9] 남북통일 이후에는 경제적, 사상적, 문화적 가치관의 차이 등으로 인해 다시 부활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감정이며 오히려 지금까지 위에서 서술한 다른 여러 지역감정과는 비교를 불가할 정도로 매우 심각한 지역감정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게다가, 이 지역감정은 단순히 기호 VS 서북으로 끝나는게 아닌 남한지역 전체 vs. 북한지역 전체의 지역감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의 서북지방이 너무 심각하게 못 살기 때문에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도 있다. 왜냐하면 투자를 많이해서 평안도를 발전시켜주면 되니까. 게다가 오히려 인적 물적 교류가 너무 오래 끊기는 바람에 오히려 서북 애들이 기호 지방에 붙어버릴지도 모를 일. ..[10] 적어도 일제강점기 때는 서북지방이 경제적으로 상당히 잘 살기라도 했었지
2.1.4 대경권(TK) vs 부울경(PK)
경상도는 조선팔도 중 남한에서 가장 넓은 도이며 옛 경상북도권과 옛 경상남도권은 문화와 정치성향 등 이질적인 부분이 많으나 같은 경상도라는 인식 하에 갈등이 억제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주민들은 일상에서 서로 느끼는 감정은 크지 않은 편이지만, 지역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쌓인 것이 많다.
낙동강을 두고 여러 가지의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 특히 유명한 것은 대구 vs 부산의 갈등으로 90년대 위천산업단지의 조성을 두고 갈등을 빚은 것이다. 특히 페놀 유출, 다이옥신 유출 사건 같은 굵직굵직한 환경오염 사고가 터지면서 부산시민들 사이에선 '점마들 때매 우리가 똥물 다 마시는 거 아이가?'라고 불만을 터뜨리는 것. 또, 대구가 상류지역인 구미 지역에 취수원 이전을 추진하면서 구미시와도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 심지어는 4대강 사업의 보 이름을 두고 싸우기도 했다. 80~90년대 야구에서도 TK와 PK는 각각의 팀 vs 호남팀 정도까진 아니지만 은근히 경쟁심리가 강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단 정치적으로는 90년대 초 우리가 남이가로 어느정도 봉합된 상태였으나 2010년 이후 PK와 TK는 정치적색을 달리 하게 된다. PK는 보수/진보 사이에서 보수진영이 약간 앞서는 것으로 나오나 TK의 경우는 보수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호남분쟁에 묻혀서 그렇지 잘 살펴보면 TK와 PK사이에서 라이벌관계를 형성하는 분야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낙동강 문제 때문은 아니지만 낙동강이 지나는 창원, 김해도 부산과 갈등을 빚고 있다. 창원은 부산신항 명칭과 관할구역 조정 문제로 다툰 바 있고 김해는 본래 과거 김해군에 속했으나 부산 강서구로 넘어간 지역 환원 문제, 김해국제공항 명칭 변경 문제 등으로 다투었다. 결국 경상동도
결국 일련의 사태로 도청이전은 미루어졌고 2008년이 되어서야 안동-예천으로 이전이 확정됐다. 아직도 나이가 지긋한 경북 북부 사람과 경북 남부 사람들은 서로 탐탁치 않게 여기며, 갈등의 도화선이 되었던 안동과 포항은 아직도 사이가 서로 좋지 못한 편이다.
위의 내용은 좀 과장된 면이 있다. 경북의 남부, 북부의 갈등은 행정적인 면이 강하다.(공무원이나 도의원들끼리 치고 박을 뿐,,,) 도청 이전 시 지역감정이 좀 격해진 적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도 (충남이나 전남)의 갈등 수준을 넘어서지는 않았다. 물론, 포항과 구미, 포항과 안동, 구미와 안동의 사이가, 포항-경주, 구미-김천 처럼 좋은 것은 아니나, 일단 같은 경북이라는 마인드가 매우 강한 편이며, 같은 경북 지역이면, 대체적으로 우호적으로 바라본다. (경주 사람이 문경 사람을 우호적으로 보며, 김천 사람이 울진 사람을 우호적으로 본다.)
위에 내용에 의하면 구미, 포항을 중심으로 한 경북 남부권과 안동을 중심으로 한 북부권의 갈등으로 보이지만, 일단 구미와 포항이 거의 교류가 없다는 점... 땅이 넓은 경북 특성상 경북 북부, 경북 남부로 획일적으로 나누어 지는것이 불가능하다. 오히려 누가봐도 경북북부가 될 울진군, 영덕군은 포항시와 비슷한 입장이 많으며 역시 누가봐도 경북북부지방인 문경시는 경북 남부지방으로 분류되는 상주시와 비슷한 입장이 더 많다.
오히려 경북 내부적으로는 북부, 남부의 갈등보다는, 특정 지역을 무시하는 것에 의한 갈등이 좀 존재하는 편이다. 시 단위 거주자가 군단위 거주자를 무시한다던가, 안동시거주자가 영주시거주자에게 거긴 뭐 안동 속국이잖아?라고 하며 무시발언을 한다는 식.
2.2 소(小)지역주의
2.2.1 서울특별시 금.관.구./노.도.강. vs. 강남3구
1963년 서울 대확장 이전까지 옛 광주군(단, 서초구는 시흥군 신동면)에 속했고 1970년대말 압구정이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농사짓는 깡촌이었던 지금의 강남3구 일대가 신시가지로 개발이 되면서 원주민중 몇몇은 땅부자가 되고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아 교육, 복지 등의 인프라가 엄청나게 좋아진 것에 비해 강북 지역은 정체 상태에 머물렀다. 생활 수준 격차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어떤 우월의식이나 자괴감 같은 것도 한가지 원인.
2.2.2 경기도 북부[11] vs 경기도 남부[12]
경기도는 크게 한강을 기준으로 남부와 북부로 나뉘고 한수이북-한수이남으로 부른다. 또한, 같은 수도권이면서도 경기북부는 경기남부와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꽤나 낙후되어 있다. 그러나 경기도 북부 인구는 웬만한 도를 뛰어넘고 면적도 상당한 편이지만, 경기도 내 주요 도시들과 신도시들이 대부분 경기남부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정부시의 경기도청 북부청사와 수원시의 경기도청 본청 사이의 업무단절은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그리하여 80년대 후반부터 경기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경기북도 신설이 진지하게 검토 중이다.
다만 통일 이후에는 낙후된 경기도 북부 지역이 발전할 가능성이 높으니 통일이 되면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2.2.3 경기도 성남시의 수정구-중원구(구 성남) vs. 분당구(분당신도시, 판교신도시)
위의 비(非) 강남 vs. 강남 구도와 비슷한 소득수준 격차 차원이다.
크게 광주대단지사업 때 개발된 구 도심지역과 1기 신도시 지역인 분당신도시 지역으로 나뉜다. 특히 분당신도시는 신도시 개발로 강남에 들어오지못한 중산층 내지 신흥부자들이 많이 이주하였으며, 이로 인해 고급아파트, 대기업 본사등이 분당에 자리하게 되었다.
이 와중에 일부 몰지각한 분당구민들이 수정구, 중원구에 대해 니들 못사는 동네잖아하는 식의 비하발언을 하여 어그로를 끌기도 한다.[13]물론 이에 맞서 수정구, 중원구(구성남)에서 분당을 까는 발언으로는 똥통(糞堂)[14]이 있다. 특이한 점은 이런 이야기는 10~20대는 물론, 나이 좀 있는 사람들도 많이 신경쓴다. 애당초 현재진행형인 '성남으로부터의 분당시 독립'주장은 10~20대가 아니라, 오히려 중장년층인 40~50대를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중이다.
더군다나, 갈수록 심해지는 성남시 당국의 분당구민에 대한 노골적인 '돈줄' 취급에 대한 분노로 덩달아 중원, 수정구민에 대하여 분당구민이 가진 악감정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편, 구시가지에서 거주하던 사람들이 분당구로 오게 되면 도시에 생기가 없다는 인상을 말하는데 계획적으로 나뉘어진 도시구획과 아파트 위주의 주거공간으로 번잡하지만 개성있는 난개발구시가지와는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구시가지 또한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그리고, 성남 구시가지와 분당구의 갈등은 한동안 일었던 성남시, 하남시, 광주시의 통합을 가로막은 걸림돌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세 도시가 생활권이 완전히 따로 놀고 있는데, 성남시가 이런 정도이니 통합을 한들 실효성이 별로 없다시피하기 때문이다.
2.2.4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vs. 동안구
면적이 비교적 작은 도시이지만, 평촌신도시(동안구)와 구시가지(만안구) 간에 지역감정이 존재한다. 만안구는 재개발 떡밥이 매년 나올 정도로 낙후된 아파트와 빌라가 많은데다, 군부대와 예비군 훈련장까지 있는 지역이라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치안과 사창가(...) 문제도 있다. 따라서 평촌신도시와는 집값, 소득, 교육환경 등에서 격차가 심하다.
그래도 중장년층 시민들은 별로 지역감정을 느끼지 못하나, 청년층 시민들의 지역감정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거 옆 산 너머에 있는 동네도 마찬가지던데?? 심지어는 청소년도 지역감정을 갖고 있는데, 평촌에 학원가가 발달되어 있다 보니 대학 진학 수준에서 평촌과 만안구 간에 격차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대학은 만안구에 있는 안양외고랑 신성고가 가장 잘 가는데 이는 신성고 학생의 대부분은 동안구 출신이기 때문이다. 안양외고는 외고라는 특수성도 있고.
2.2.5 경기도 중서부 경부선·경인선·수인선 연선지역[15] vs. 경기도 동부 신도시들[16]
마찬가지로 위의 비(非) 강남 vs. 강남 구도와 비슷하며, 비(非) 강남 vs. 강남의 경기도 버전이라 보면 된다.
이 쪽은 2000년대 들어 교통 인프라나 신도시 개발, 그리고 서울에 있던 대기업 본사[17]를 경부고속도로 인근의 신도시 지역으로 몰아주면서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는 지역감정으로, 경부선·경인선 인근 지역들이 1990년대 평촌신도시, 산본신도시, 중동신도시를 끝으로 대규모의 신도시 건설 없이 자잘한 소규모 신도시 개발[18]만 이루어지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구 시가지 지역이 낙후되고, 이 문제를 타파하기 위한 정책인 뉴타운 재개발이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지지부진한 것과는 달리, 경부고속도로 인근 신도시 지역에만 대규모 주택 공급이 이루어지면서[19] 감정의 골이 깊어져가고 있다.
이 지역감정은 2006년경에 있던 분당급 신도시 건설 발표 떡밥과[20] 그 떡밥이 동탄제2신도시로 결정되면서 경기도 중서부 경부선·경인선 연선지역과 경기도 동부 신도시들 간의 지역감정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아직 별다른 갈등 없이 2015년 현재까지 잠잠한 상태다. 다만 기름 상태인 이 지역감정에 불을 붙일 가능성이 있는 떡밥이 바로 GTX인데, 안양권 도시들도 GTX C선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잡아놨긴 했지만, KINTEX~동탄역 노선을 우선 착공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민국이 철도 건설에 예산을 잘 투자하지 않는 경향도 있어서...
2.2.6 강원도 춘천시 vs 원주시 vs 강릉시
강릉시는 본래 고대부터 영동지역의 거점 중 하나였고, 원주시와 춘천시는 영서지역의 거점 중 하나였다. 통일신라때 9주 5소경 중 강릉은 명주에 속했는데 당시 명주 자체가 강릉을 부르는 지명이었다.[21] 이는 춘천도 마찬가지인데 춘천은 삭주에 속했으며 이는 춘천을 부르는 지명이었다. 당연히 명주의 주(州) 치소(도청)은 강릉에 있었고, 삭주의 주 치소는 춘천에 있었다. 반면에 원주의 경우는 북원경으로 불렸고 이는 현재의 광역시에 해당하는 5소경 중 하나였다. 다만 이때의 5소경 역시 9주에 속했던지라 북원경 역시 삭주에 속했다.
고려시대에는 초기 동계에 영동과 영서지역이 모두 포함된적이 있었으나 곧바로 다시 영동은 동계, 영서는 교주도로 분리되었다. 동계의 병마사 치소는 당시 안변도호부[22]에 있었으며 교주도의 안찰사 치소는 교주[23]에 있었다. 그러나 강릉과 춘천 모두 영서와 영동지역의 거점의 지위를 계속이어가, 강릉의 경우엔 동계의 치소로 옮겨지고 고려 말기엔 강릉도로 개편되었다. 춘천의 경우에도 교주도의 치소로 옮겨졌고, 교주도를 당시 춘천의 지명이었던 춘주에서 딴 춘주도라고도 불렀다. 원주의 경우는 동계도 교주도도 아닌 충주와 함께 양광도에 속했다.
고려 말과 조선시대부터는 영동과 영서지역 그리고 원주가 다시 합쳐진 강원도가 생겼고, 이때부터 강원도의 관찰사 감영이 원주로 옮겨졌다. 그러나 1895년 전국 행정구역을 23부제 337군으로 정비할 때 강원도를 폐하고 2부(춘천부, 강릉부)로 개편되면서 원주는 충주부에 속해있는 군이 되었고, 1896년 다시 23부를 폐지하고 전국을 13도로 분할했을 때 감영이 있던 원주를 제치고 다시 춘천에 감영를 두게 되었다.
도청이 춘천으로 다시 오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춘천이 구한말에는 영서 지역 중 가장 인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발생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국가 변란 등 유사시에 대비한 피난처를 물색하였다. 그 중에서 춘천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고 이에 따라 이궁이 춘천에 위치함으로써 원주에 있던 강원감영이 폐쇄되고 1896년에 춘천이 강원도의 수부(首府)가 되어 오늘날과 같이 강원도청 소재지가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결국 애당초 영동과 영서는 태백산맥 때문에 별개 지역심이 강하게 유지됐고 이 때문에 영동의 최대 거점도시였던 강릉은 영동을 대변하기 위해, 원주는 전통적으로 충주와 함께 중부지역의 핵심 거점이었고 조선시대때는 강원도 감영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춘천 역시 영서지역의 상당한 거점 도시였고 통일신라와 고려, 현재의 강원도 도청 소재지인 점을 내세우기 위해 이들 간의 견제심은 고무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강원도는 춘천, 원주, 강릉이 트로이카를 이루며 왕초 노릇을 하고 있고, 실제로 선거철마다 강원도내의 판세를 분석할때 이 세 도시들은 표심을 좌지우지 하는 big3 지역으로 표현되곤 한다. 도지사선거에서 한 정치진영이 영동출신을 후보로 내세우면 다른진영에선 춘천 또는 원주 출신을 후보로 내세운다. 요즘은 춘천, 원주에서 민주당계열 세력의 힘이 강해지고 있어서 영서출신 더불어민주당 vs 영동출신 새누리당으로 가는 모양세다. 영동지방은 원래 TK 못지않게 보수성향이 짙은 편이다.
2.2.7 강원도 철원군 vs. 구 김화군
현재의 철원군 지역은 과거의 철원군과 김화군이라는 2개의 독립된 군[24]이었다. 그러다가 8.15 광복 이후 북한 지역(38선 이북)이었으나, 6.25 전쟁으로 중부전선과 동부전선이 38선 이북으로 북상하여 휴전선을 그으면서 철원군과 김화군 모두 두동강이 나 버렸다.
남한에서 수복한 철원군과 김화군 지역이 1963년 병합되었고[25] 신서면이 연천군에 편입되면서 현재의 철원군이 되었고, 북한 쪽의 철원군은 현재도 철원군이며(하지만 대부분의 영역은 근처 군에서 빌려온 것이다) 북한 쪽의 김화군은 김화군과 창도군으로 쪼개졌다... 지못미 김화군. 다만 김화라는 명칭은 현재도 철원군 김화읍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철원군의 경제 중심은 동송권 & 갈말권 두곳인데, 김화권 지역 인사들이 철원지역에서 파워그룹을 형성한 탓에(국회의원 & 군의회 & 군수 등등) 안그래도 철원권 & 동송권 & 갈말권 주민들은 김화권 주민들을 거의 증오에 가까울 정도로 적대하고 김화권 주민들은 나머지 권역 철원주민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커서 선거때마다 이런 소지역주의가 발동하곤 한다.
철원지역에서 군대를 마치고온 사람들이나 철원출신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봐도 철원 & 동송 & 갈말 지역하고 김화권 지역은 주민들 정서도 완전히 다르고 김화권 주민들이 유난히 보수적이고 깐깐하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동송권 & 갈말권과 김화권이 나누어져 있는 지역의 강원도 철원군이지만 도청소재지인 춘천시[26], 강원도에서 가장 큰 도시인 원주시[27][28]보다 경기도 연천군[29], 포천시[30] 쪽에서의 접근이 훨씬 쉬우며 심지어는 춘천시보다 의정부시, 노원구나 도봉구가 더 가깝다.(...) 법원, 검찰, 세무 업무는 모두 의정부지법, 의정부지청, 의정부세무서[31] 관할일 정도로 실생활권이 경기도[32]이기 때문에 경기도로 편입하자는 떡밥이 돌기도 한다.
그러나 군민들 여론은 경기도 편입을 바라고 있지만 경기도에서 반응이 시큰둥한데다 강원도는 철원군을 그렇게 홀대하고도 철원이 경기도로 가는건 필사적으로 막고(...)새침데기? 철원군민들 사이에서도 김화권 주민들은 경기도 편입을 반대해서 철원 & 동송 & 갈말권 주민들과 싸우기도 한다.
현재는 김화 지역에서도 편입 여론이 높아져 있다. [33] 김화권과 화천군간 도로의 경우 빗길에 다니기 위험하거나(56번 국도 수피령) 민통선 안에 있어서 낮에만 다닐 수 있거나(5번 국도 말고개) 중심지를 잇지 않는다(463번 지방도 하오터널) 다들 여기서 과속을 하죠
특히, 경기도 편입 논란은 소지역주의가 배타적으로 강한 케이스다. 자세한 것은 행정구역 개편/경기권과 철원군 문서 참고.
2.2.8 대구광역시 수성구 vs. 그 외 지역
서울의 강남vs비강남과 마찬가지의 모습. 수성구가 대구의 강남이다보니 수성구쪽으로 편의시설 및 오락시설등등이 주로 유치됨으로써 이로인해서 지역적 불균형을 주장하며 수성구와 그외의 대구시 지역구 간의 갈등구조가 생겨났다. 특히나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문제에 관해서 애초에 수성구로 이전할 계획이었으나 달성군 쪽에서 클레임을 걸며 화원으로의 이전을 강력히 주장하고있다.
2.2.9 경남 사천시 삼천포 vs. 구 사천군
1956년 사천군 삼천포읍이 삼천포시로 분리 승격되었다가 1995년 도농통합 때 다시 통합되었으나, 통합 당시에도 삼천포 주민들이 시명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고 2014년 기준 2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서로를 다르게 생각하는 인식이 강하다.타지역사람들이 사천사람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삼천포 지역은 삼천포에서 왔다고 하고, 사천 지역은 사천에서 왔다고한다. 다른곳도 그렇지않나?
사천시청은 허허벌판인 면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유는 사천과 삼천포가 시청 유치로 아웅다웅하면서 결국 중간 지점에 세우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매 선거 결과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2010년 지방선거와 삼천포 출신 후보와 사천 출신 후보의 지역간 득표율을 보면 삼천포 출신 후보는 동 지역에서, 사천 출신 후보는 읍면 지역에서 모두 우위를 보였다.
2011년에는 사천 부분을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삼천포에 대한 비뚤어진 사랑얀데레을 표출하는 낙서가 곳곳에 발견되기도 했다.[1]
2.2.10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마산합포구 + 마산회원구) vs. 구 창원시(성산구 + 의창구)
지방자치단체를 통합론이라는 정부 정책에 억지로 휩쓸려 어거지로 인근 지역을 합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
일제강점기 전까지 한몸이었던 창원부가 국권 피탈 후 마산부로 명칭이 변경되고 비도심 지역을 창원군으로 분리한 이후 옛 마산시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큰 도시로 성장했고, 경상남도 및 남부지방 전체의 중심도시 중 하나였지만, 옛 창원시 지역은 1990년 이전만 하더라도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그러다가 한국 최초로 계획도시로 지정되어 공단이 들어서고, 마산이 원조 경남도청소재지인 진주와 도청 이전 싸움을 벌였으나,(이전에는 부산에 있었다) 결국 창원시로 이전함에 따라 마산에 있던 한국은행 마산지점을 비롯해 법원, 검찰청 등 공공기관들이 모두 창원시 지역으로 이전함에 따라 마산시에서 창원시로의 인구이동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인구역전 현상이 일어나 마산은 창원은 물론 김해시에게도 뒤지게 되었다.
통합당시 진해쪽에서는 큰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유독 창원과 마산 사이에서 잡음이 많았다. 결국 정치적 요인에 의해 2010년, 창원과 마산, 진해가 통합하게 되었다. 통합 합의에 의해 창원시라는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마산시, 진해시에게 창원시 측에서 지원금을 주는 형태로 합의했다. 즉 창원시는 명예를 택하고 진해, 마산시는 실리를 택한 셈.
그리고 창원시에서는 마산이라는 명칭을 유지해 달라는 마산시의 요청을 받아들여 과거 마산시에서 폐지되었던 구 이름에 '마산'을 붙여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라는 이름으로 구를 신설했다. 그러나 통합시 시청사 위치 문제, 창원에 새로 유치한 프로야구팀 'NC 다이노스'의 주경기장 위치를 지역적 안배라는 이유로 진해에 지을 뻔한 일 등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결국 창원시 의회에서 마산지역을 재분리 하자는 건의가 통과되었으나 중앙정부가 절대 동의할 일이 없어 흐지부지된 상태.
한편, 구 진해시와 구 창원시간의 간극도 심화되었다. 과거 창원시의 경우 방위산업과 백색가전을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세수가 높았고 구 진해시는 해군기지로 인한 서비스업, STX조선을 통한 산업이 발달하였다. 하지만, 해군이 기지를 부산으로 이전함에 따라 진해의 세수 부족으로 적자기조를 보였었다. 이후 부산북항이 폐쇄되고 진해와 중첩된 부산신항으로 물류가 이전이 되자 진해에 산업기지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부산신항의 행정구역 문제로 잠시 갈등이 있었을때 나왔던 내용이 진해를 부산으로 편입하는 방안이 었다.
이후 창원-마산간이 갈등이 심해지면서 창원시의 선심성 예산으로 마산으로 재원이 돌려지자 진해구 시민들의 갈등이 쌓여갔던 것이다. 진해구 시민들은 부산신항으로 인해 세수와 고용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통합창원시보다는 독립하거나 부산시로 편입하는 것도 좋다고 여기는 것이다. 부산신항 개발에 따른 부산-김해-창원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는 중요 지역으로 개발됨에 따라 경데패러다임이 서구 부산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마산지역은 과거 '마산연합'이라고 불리는 고등학교 연합체계를 이루었는데(과거 200점 만점에 180점 이상 맞아야 들어갈 수 있는) 과거 마산이 경남의 정치/경제적 중심지였을때 연고 학교들이 연합고사 형태로 치루었던 것에 기인한다. 반면, 옛 창원지역은 80~90년대 계획적으로 개발되다 보니 인문계 학교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고 정치/경제적인 학연구성이 약했다. '창원 특수지역'이라고 해서 상대적으로 마산지역보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진학하는 곳이었다. 이 학교들은 공립, 사립을 불문하고 연합체계가 아니라 학교별로 학생을 선발했다.(그 중에서도 예외는 있었다. 옛 창원지역에 위치한 창원고등학교와 경상고등학교는 처음부터 이 마산연합에 속했다, 나중에는 공립인 창원중앙고등학교와 창원여자고등학교가 합류) 하지만 2000년 이후 지역경제 주도권이 마산에서 창원으로 넘어가면서 마산연합의 지위는 급속도로 힘을 잃어 갔다.
1990년 초기 이 학교들을 한데 통합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마산지역이 극렬히 반대했다. 그리고 창원과 마산을 아예 분리하여(창원시 소속인 창원고, 경상고를 창원으로 보내고) 연합을 만드는 방안도 논의되었지만, 여기에 마산이 또 반대했다. 이유인즉 마산의 상권이 죽어버린다고... 지금도 학군은 마산은 마산지역 평준화, 창원은 창원지역 평준화로 각각의 지역학생은 다른 지역으로 지원할 수 없다. 반면 진해는 비평준화 지역으로 남아 있어 마산, 창원 지역으로 지원 가능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2.2.11 부산광역시 해운대 권역(해운대구, 수영구, 남구) vs. 부산광역시 나머지 지역(원도심, 서부산, 동래)
2000년대 들어서 부산광역시 내부에서 해운대 권역과 나머지 지역의 경제적, 문화적, 환경적인 격차가 커지며 점점 두 지역 사이에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중이다.
일단 다른 지역에서 생각하는 부산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나 명소들이 대부분 해운대구나 수영구 일부에 몰려 있기에 해운대가 부산의 정체성을 독차지 한다는 다른 지역들의 불만이 어느정도 있는 편이다. 당장 전국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보통 부산하면 떠오르는 것을 물어보면 대부분 해운대, 광안리, 광안대교, 마린시티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그래도 구도심의 명소 중에도 알려진 장소가 꽤나 있었으나 최근에 들어서 부쩍 해운대와 광안리일대의 장소들만 유명하게 알려지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적지않은 관광객들이 해운대와 수영구 일대만을 둘러보고 부산을 다 둘러보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동부산 지역은 여름철 대규모 피서객을 수용할 수 있는 해수욕장이 많고, 또한 그에따라 숙박업소나 음식점, 유흥문화가 다른 지역에 비해 풍부하기에 더더욱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동부산 권역으로 집중되게 된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관광객의 방문이 해운대 권역에 집중되게 되고 이는 각 지역 상인들 사이의 소득에 있어서 차이를 유발하며, 또한 부산시의 지원도 해운대구와 동부산 해운대 권역 일대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경제적 격차도 크게 작용한다. 모든 해운대 권역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해운대권에는 마린시티, 센텀시티와 같은 부산의 다른 지역과 비교하였을 때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높은 가격의 상류층 주거지가 많다. 또한 해운대 신시가지도 입주한 지 20년 정도 된 아파트들만 있지만, 집값은 부산에서 엄청 비싼 편은 아니라도 신시가지로 개발된 지역이라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고 학군도 좋다고 알려진 편이기에 충분히 평균 이상의 가격대를 형성하며 중산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또한 같은 해운대 권역인 남구에도 LG메트로시티, GS하이츠자이, 오륙도 SK뷰등의 대단지 고급 아파트들이 많은 편이다. 즉, 해운대 권역 지역이 전반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서 고소득층, 중산층 거주자가 다른 지역보다 많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로인해서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문화시설이나 인프라적인 측면에서 큰 격차가 발생하며 이것 또한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큰 원인이다.
게다가 이러한 부의 격차나 지명도의 차이에 따라 부산시가 지나치게 해운대 및 동부산을 지나치게 편애한다는 점이 지역감정의 가장 큰 발생 원인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추가 예정.
2.2.12 전북 전주시 vs. 완주군
원래 같은 전주군이었다가, 1935년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되어 분리되고 전주군은 완주군으로 개칭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고질적으로 여러번이나 시도되었던 전주-완주 시군간 통합문제를 놓고 일부 지역민들끼리 갈등과 분쟁을 벌였다.
전주시는 전북도의 맏이격 도시인 전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완주와의 도농통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완주군은 굳이 통합을 한다고해도 도농 지역민간 갈등과 앙금만 남으며 전주 원주민들만을 우대하고 완주 출신들은 배척할 가능성과 산간 및 농촌지역 보수성향 노인들의 강력한 반대로 현재까지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고 2013년 통합 선거에서도 통합 무산이 확정되면서 일부 지역민들간의 갈등과 앙금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전주에서는 양 지역 통합을 못한 것이 완주 농촌놈들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완주에서는 전주 도시놈들이 우리 완주군 농촌과 농민을 죽일려고 환장하더라라며 비난하였다. 완주 농촌지역 일부에서는 또다시 전주와의 시군 통합론이 나온다면 그 때도 결사적으로 반대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전국에서 유이한 시군급 월경지인 완주군 이서면의 경계와 구도 등을 두고도 말이 많은 편.
완주군은 전주와 통합하면 농어촌 지역으로서 혜택이 사라지고 전주만 좋은 일 시켜주는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전주시는 완주군민들이 전주에 상업/문화적인 면을 의지해서 살고 전주시 세금으로 만든 인프라나 시설을 이용하면서 막상 통합하자고 하면 지역 독립성을 운운하는 데 상당한 불쾌감을 느낀다.
2.2.13 전남 서부 vs. 전남 동부
이 쪽은 정치와 경제의 괴리로 인해 생긴 현상이다. 즉 단순히 역사적, 문화적 갈등이 아니라 양 지역들 사이의 이익 문제로 인한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대략 2000년대 이후로 떠오르고 있는 갈등이다.
전라남도에서 정치적인 중심지는 보통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 기반인 목포시, 무안군 등 서부권 지역이 그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당장 호남권 정치세력만 하더라도 전남 서부권이 비중을 거의 독차지하다시피 하는 중이다.
하지만 경제력은 여수국가산업단지, 광양항, 포스코 광양제철소 등 거대 공업단지들이 위치한 전남 동부권이 거의 독차지하다시피한 상태이다. 그리고 이 지역의 평균 소득이 굉장히 높아서 광역지자체 기준으로 소득평균을 내면 전라남도가 인식에 비해 생각보다 높은 소득값을 나타내는데 역할을 한다. 물론 서부권인 영암군에 대불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어느 정도 경제력이 늘어났지만 아직 동부권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대표적으로 전라남도청 이전 문제가 갈등의 시작이라는 주장이 있다. 전라남도청은 광주에 있었으나 광주가 1986년에 직할시로 승격되어 전라남도에서 분리되면서 광주에 있는 전라남도청을 전라남도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뒤 전라남도 여러 지역들이 도청 유치 운동을 벌였으나 최종적으로 무안군 남악신도시[34]가 도청 자리로 결정되어 결국 2005년에 전라남도청이 무안군 남악신도시로 이전되었다. 그런데 무안군은 전라남도 내에서 서쪽으로 치우친 곳이라서 동부권에서는 접근성이 불편했었다. 영암순천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이전에는 교통이 불편한 편이었다. 물론 이전할 때에는 영암순천고속도로 개통을 전제로 이전했겠지만.
뿐만 아니라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J프로젝트, F1 등 여러 개발 사업들이 서부권에서 이루어지고 그 외의 SOC 유치 등 예산 편성에서 서부권이 더 예산 유치를 받는듯한 현상이 일어나자 동부권에서 차츰 전남 동부권 소외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그러나 서부권 입장에서 볼 때 동부권 소외론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동부권에는 산업단지들이 들어서면서 고속도로가 일찍이 개통되었지만 서부권에는 대불산업단지가 세워지기 전에는 대규모 산업단지가 없었고 2001년 말에 서해안고속도로가 완전히 개통되기 전까지는 고속도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면에서도 전남 동부권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데, 전라남도 전체 국회의원 선거구 중에서 전남 동부권에 해당하는 선거구가 여수시 갑, 여수시 을, 순천시, 광양시-구례군-곡성군 으로 10석 중에 4석을 차지하고 있다. 서부권, 중부권의 선거구가 3~4개 행정구역을 합친 선거구임을 감안하면 매우 이질적인 모습이다. 전남도의회 지역구에서는 전체 52석 중에서 동부권 3개시에서만 14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전라남도에서 목포시 중심의 전남 서부권이 정치를 주도하지만 동부권의 존재가 만만치않고, 서부권 중심으로 끌고 다니는 정치에 매우 큰 불만과 반감이 쌓여왔다.
박지원 의원이 광양으로 이사가고, 이정현 의원은 목포로 이사가면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이 갈등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대표 사례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벌어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였다. 이때의 전남 동부권과 서부권의 지역구 당선사례를 보면 이 간극이 극명히 벌어졌다. 당시 순천시를 중심으로 한 전남 동부권에서는 탄핵을 주도한 기존 호남 정치권인 새천년민주당을 심판하면서[35] 친노 성향인 열린우리당에 몰표를 쏟아냈는데[36] 목포시를 포함한 서부권에서는 열린우리당이 힘을 못 쓰고 새천년민주당이 그대로 대거 당선되어서 선거 결과 전남의 정당 구조가 반으로 쪼개지는 모습을 보였다.
전남에서 친노 성향의 여부를 따진다고 하면 서부권보다 동부권 지역이 상대적으로 친노 성향이 강한 편이다.[37] 이 내용은 평가가 엇갈리고 반박이 들어오지만, 전남 동부권이 서부권보다 노무현에 호의적인 이유로 영남권 민주정당 지지자들이 겪어온 지역에서의 멸시와 차별, 공격에 동병상련을 겪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3당합당 이후 영남권에서 민주계열 정당 지지자들은 빨갱이당, 전라도놈이라는 조롱과 공격을 많이 받아왔는데[38],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케이스가 노무현이다. 전남 동부권에서는 같은 민주계열 지지자이지만, 지리적으로 인접한 경상도와 인적, 물적인 교류가 이뤄지면서 양 지역의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정체성 때문에 노무현, 영남권 민주계열 지지자들에게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
결국 순천에서 이정현이 당선되면서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것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순천시/정치 항목 참조.
현실성이 낮은 이야기임에도 동부권 3개 시가 단일시로 통합해서 힘을 키우자는 주장이나 전남 동부권이 분리 독립하여 광역시를 출범하거나 경남 서부권의 소외지역과 손잡고 광역지자체를 만들자고 하는 일명 섬진광역시 이야기가 단순한 떡밥이나 헛바람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2.2.14 전남 목포시 vs. 무안군
위의 전주시 vs. 완주군 구도와 비슷하며, 전주시 vs. 완주군의 무안반도 버전이라 보면 된다.
원래 목포시-무안군은 구한말까지 같은 무안부였던 걸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이를 목포부-무안군으로 재편한 뒤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고,[39] 신안군은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무안군으로 통합된 이후 1969년 신안군 분리가 있을 때까지 무안과 같은 지역으로 있었으니[40] 역사적으로 연원이 깊고, 남악신도시가 목포시와 무안군 양쪽에 걸쳐있기 때문에 행정이 서로 맞지 않으며, 2005년 전라남도청까지 이전하면서 더욱 머리가 아프다는 게 목포시의 주장. 게다가 목포시는 인구에 비해 면적이 너무 좁아 뭘 하려고 해도 할 땅이 없고, 무안군-신안군은 독자적으로 발전하긴 이미 글렀으니 통합으로 난국을 타개하자는 것.
이에 무안군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목포와 통합할 경우 농촌 지역인 무안이 개발에서 소외돼 변방으로 전락하고, 시 타이틀을 얻게 된다는 이유로 시세(市稅) 부과 등 각종 세금이 증가하며, 혐오시설도 모조리 무안으로 들어오고, 농어촌 혜택이 사라진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41]
2.2.15 전남 여수 vs. 순천 vs. 광양
전남 동부권 3개 도시들인 여수, 순천, 광양 사이의 갈등이다. 전남 동부권이 단합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전남 동부권의 여수와 광양은 여수국가산업단지, 광양제철소와 같은 산업단지들이 들어서면서 경제적으로 더욱 발전하기 시작했고 현재도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 개발로 산업단지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로 인해 많은 발전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서지 않은 순천은 전남 동부권의 중심지라는 지리적인 장점 때문에 주거단지, 문화시설, 소비시설들이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옆 동네 광양은 대규모 산업단지가 있어도 내내 발전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순천은 지금도 도시 규모에 비해 대형 소비시설들이 발달했고 심지어 코스트코도 입점하려고 눈독을 들이기도 했지만 광양은 지금도 제대로 된 영화관 조차 없어서 영화를 보려면 순천으로 가야한다.
때문에 순천시에서 여순광 통합을 추진하려고 하면 여수시나 광양시는 반대 입장이고 특히 광양시가 크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2.2.16 경북 남부 vs 경북 북부
경상북도는 면적이 넓은데다가 도내의 도시 권역들마다 발전도에 상당한 차이로 인해 시쳇말로 강원남도 소리 들을 정도로 상대적으로 낙후된 북부와 1970년대 이후 발전된 경북 남부권과의 감정은 껄끄럽다.
불과 197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전국 15대 도시 내에서는 경북 안동이 들어가 있었고 농업이 주 산업이었던 시절에는 경북 북부권도 나름대로 사정이 나쁘진 않았으나, 1970년대 반도체 산업과 철강 산업 육성으로 인해 구미-포항권역이 발전되기 시작하면서 경북 북부와 경북 남부의 사정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갈등이 증폭되었던 시기는 1980년대 대구가 직할시로 분리되면서 그에 따른 도청 이전 문제로 북부와 남부의 갈등은 증폭되기 시작한다, 도청 이전은 수많은 갈등을 겪었고, 최고 갈등으로 치달았던 시기는 1996년이었는데, 드디어 안동으로 도청 이전이 결정되고 공단까지 유치하자, 남부권 시의원들은 낙후와 타당성을 들고 일어나 안동 이전을 반발했고 안동은 이에 반발해 가두행진과 삭발시위, 급기야는 안동댐을 일시 단수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결국 도청이 안동으로 이전되면서 갈등이 많이 누그러졌다.
2.2.17 경북 영덕군 vs. 울진군
이쪽은 대게 전쟁으로 지역간 갈등과 경쟁이 심한 편이다. 영덕군은 한국 대게의 원조는 영덕이며 역사적으로도 영덕대게가 가치를 인정받고 대게 생산도 활발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울진군도 한국 대게의 원조는 울진이며 역사적으로 울진대게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며 서로 대게문제로 분쟁중이다. 이들 지역은 대게를 모태로 외지 관광객 유치에도 경쟁을 벌일 정도로 치열하다.
2.2.18 충북 충주시 vs. 청주시
충주시랑 청주시는 충청도(충북도)의 유력한 도시로써 충청도의 이름 유래부터 충주랑 청주를 합친 것이다. 충주시랑 청주시는 충북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대립을 벌여봤는데 최근 청주시가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통합을 진행하여 청주광역시로 승격할 수 있을 정도까지 커진데다가 충주시를 비롯한 충청도 동쪽이 개발이 부진함에 있어 소외되고 있어 극단적인 일부는 강원남도 분도를 언급하기까지 한다.
2.2.19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vs. 서귀포시
그다지 넓다고는 할 수 없는 이 섬의 남북 간에 지역감정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도내 고등학교 축구 대회인 백호기가 있다. 고등학교 축구대회인데 3학년까지 전교생이 참가해서 사관학교에서나 하는 카드섹션보다 몸으로 하는 바디섹션을 한다... 강릉의 농일전/일농전과 함께 가장 응원열기가 뜨거운 고교축구 이벤트. 이때 보면 라이벌 전이라든가. 산북VS산남 하면 경기장 채운다. 제주 축구 팬은 백호기 출전 학교로 나눠져서 단합이 안된다는 말도 있다 산북 VS 산남보다 오현고 VS 제일고의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는 말도 있다. 아니, 최강이다. 90년대 까지만 해도 백호기 경기 끝나고 학생들끼리 경기장 인근에서 대놓고 각목들고 맞섰다는 흑역사가 있다. 2000년대까지도 일부 학생들끼리 충돌이 암암리에 있었는 듯. 축구에서 비교적 약체인 D모 고등학교의 경우 패배한 후 응원을 총지휘하는 학생회장이 수능때 두고보자고 일침(?)을 놓은 적이 있으며, 실제로 도내 남자고등학교 중에서 수능평균점수가 가장 높은편이다.[42] 현재 바디섹션 응원은 제주도 내 중·고등학교 여러 학교에서 한다. 다만 중학교 바디섹션은 교복을 가지고 하지만, 고등학교부터는 응원복[43]을 가지고 더욱 전문적으로 진행한다. 우리학굔 교복가지고 하던데?
남북만 있는게 아니고 은근히 권역별[44]로 쪼개져서 지역감정이 있다. 한라산을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 간의 감정이 제일 큰거는 맞지만... 특히 북서풍의 영향을 덜 받는 산남지방의 경우 아열대지방의 느긋한 생활습관이 어느 정도 남아있어서인지 산북지방사람들로 부터 게으르다는 편견을 받으며, 이런 이유로 산북지역[45]의 사람들이 산남지역[46]사람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제주도 주민들에게 들어본 결과 이들 사이의 어느지점은 전투종족으로 취급받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2.2.20 제주특별자치도 서부 vs. 동부
외지인이 보았을 때 눈에 띄게 드러나는 제주도내 지역감정은 산남 지역과 산북 지역 - 또는 과거 제주시와 그 외 지역[47]이다. 그러나 실제 제주도 내에서 가장 심한 지역 감정은 제주 동부와 서부 간의 지역 감정이다. 평소에는 '도시와 시골'이라는 구도의 산남-산북 지역감정처럼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티가 나지 않는다. 제주도는 동서로 긴 형태이고 가운데를 한라산이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 동서간 교류는 남북간 교류보다 매우 적다. 또한 도시-시골간 갈등 형태가 아니어서 쉽게 보이지 않는다. 도시-시골간 갈등은 도시에서는 시골보고 촌스럽다고 하고 시골에서는 도시를 보고 싸가지 없다고 하는 전형적 패턴이 존재하지만 동서 갈등은 도시-시골 갈등 형태가 아닌 데다 서로 교류도 많지 않아 평소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제주도에 사는 외지인들이 산남-산북 지역감정은 잘 알고 있지만, 동서 지역감정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런데 제주 동서 지역 감정이 표출되면 산남-산북 지역 감정은 그냥 아이들 말장난 수준. 과거부터 제주 서쪽이 동쪽보다 훨씬 잘 살았고, 개발도 꾸준히 서쪽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제주도는 동부와 서부의 풍경이 확연히 차이난다. 서쪽은 완만하고 평지가 많으며 오름들이 둥그렇고 낮은 반면, 동쪽은 높은 오름들이 다수 자리잡고 있으며 평지가 많지 않다. 더군다나 일주도로변 주변 밭의 색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부는 땅이 모래흙인 경우가 많아 서부보다 농사짓기 어려운 지역이 넓다. 당장 주요 농작물만 비교해 보아도 서쪽은 감자, 동쪽은 당근...제주 감자는 타지역 저장 감자가 거의 떨어져갈 때 출하되어 높은 가격에 팔리지만 당근은 가격 폭락 뉴스가 종종 떠서 수확하지 않고 엎어버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 또한 제주시가 성장하기 전 북제주군 한림의 오일장이 제주시 오일장보다 규모가 더 컸던 적도 있었다. 서쪽 사람들은 동쪽 사람들을 억세고 거칠고 사납다고 하며 싫어하며, 특히 김녕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투종족 취급을 한다. 예컨대 3.1 운동의 제주 버전인 '조천 만세 운동'도 동쪽 지역인 조천에서 일어난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되기 전, 타지역 사람들이 제주도의 지도를 보고 왜 '동제주군, 서제주군'으로 가르지 않을까 종종 궁금해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에서 분리-승격되었기 때문에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은 지역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래서 북제주군청은 제주시에, 남제주군청은 서귀포시에 위치했다. 동제주군, 서제주군으로 행정구역개편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경제적 격차 및 지역감정 심화 때문이었다. 동서 지역감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심지어 제주시내에서도 동서갈등이 심하다. 이는 신제주 개발 이전부터 이어져왔다. 제주시에 가보면 중앙로라는 길이 있는데 이 길을 기준으로 동서간의 갈등이 상당했다. 지금은 신제주-구제주간 갈등이 심하지만...
사실상 농업위주의 구 북/남제주군과 관광 인프라 중심인 서귀포시가 경제/교육/문화등 여러 방면에서 제주시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에 제주시내 중고교생들은 약간의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가장 단적인 예로 제주시내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4곳인대 비해서 서귀포시내 멀티플렉스 영화관 1곳, 구 북/남제주군내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없다. 또 서귀포시의 경우 서귀여고를 제외한 고등학교들의 경우 평균수능성적이 제주시내 인문계 고교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편이며, 심지어 중학교 성적이 상위권인 남학생들이나 제주시에 연고가 있는 일부 여중생들의 경우 제주시내 인문계 고교에 많이 진학한다. 하지만 서귀포시는 조용하지 그점이 좋아서 오는 사람이 많지! 이촌향도 현상의 제주판인 제주시 과밀화 문제가 원인이다.
3 논란
3.1 지역감정은 한국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의 경우만 하더라도 당장 내일 아침부터 나라가 분열돼도 전혀 신기할 것이 없을 정도로 지역 간의 반목이 매우 극심해서 아예 동족의식 자체를 찾기 힘들어진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은, 워낙 광대한 영토와 인구 수 탓에 조금만 떨어지면 언어조차 외국어 수준으로 달라지고 러시아에서도 동서간 동질성이 워낙 옅다 보니까 아예 지방을 자치공화국으로 뚝 떼어서 특별 관리하며, 지금은 갈갈이 찢어진 소련 시절엔 지역감정이 훨씬 더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는 동-서 지역의 국민들이 구 소련 시절부터 현재까지 역사적, 정치적으로 인해 지역감정이 극심해졌고 결국 나라가 갈라지는 최악의 사태인 우크라이나 내전까지 일어났다.
그러니 지역감정이 꼭 한국만의 폐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지역이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그에 맞는 지역감정이 발생하기 마련이며 심지어 읍면 단위에서도 서로 간에 경쟁의식을 갖는 예가 흔하다. 한국보다 인구든 면적이든 훨씬 조그만 벨기에 같은 나라도 자기들끼리 나라가 "쪼개지네, 마네" 이야기할 정도로 치열하게 다투고 있으니 말이다.
3.2 한국의 지역감정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한반도의 특수성을 생각하면 절대로 지역감정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그러나, 일부 외국 사례들에 비하면 대한민국 내에서의 지역갈등 주체들은 운명 공동체에 가깝다. 비록 아무리 사람 사는 곳에 편가르기와 갈등이 없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한반도처럼 작고 예민한 국제적 요충지에서 도를 넘게 집안싸움하다간 정말로 나라가 망할 수 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도를 넘는 지역감정이 없어져야 한다.
지역감정은 가벼운 경우에도 나라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국민 개개인간에 인신공격거리를 유발하기도 하며, 지역감정보다 더 중요하고 발전적 담론인 양성갈등, 세대갈등, 노사갈등, 학력격차 같은 것보다 쉽게 우선 의제로 떠올라 가로막는 악영향도 매우 크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자들은 어느 나라든 지역감정은 다 있다면서 입버릇처럼 지역감정을 정당화하는데, 한국의 지역감정은 그들이 예로 드는 외국은 가벼운 경멸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국가의 국민이라서 처음부터 개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거의 증오 수준으로 이 과정에서 온갖 루머가 생겨나고 그걸 그대로 여과 없이 믿어버리고 있는 과정에서 실제로 갈등과 피해가 생기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같이 좁은 면적의 국가에서 극단적인 지역감정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들이 예시로 드는 외국의 경우는, 처음부터 다른 국가의 국민이었던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고조선 건국 이래, 고구려, 백제, 신라,[48] 통일신라, 발해, 고려, 조선, 그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도 모두 한민족의 역사로 기록하지 않는가?
결국, 대한민국은 운명공동체이며 지역감정은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악습이라고 할 수 있다.- ↑ 부산에서 태어났다.
- ↑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다.
- ↑ 사실 아래에서 해외의 지역감정 사례들을 보면 알겠지만 제1도시권과 그 외 지역간의 갈등은 없는 나라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은 서울공화국 현상으로 유독 심한 편.
- ↑ 광주학살 피해자와 대구 지하철 참사 피해자 관련
- ↑ 다음은 기승전 박근혜 병에 걸려서인지 특히나 경상도 비하가 강하다. 네이버에 경우는 그린일베라는 말처럼 전라도 욕이 나오기는 하나 요새는 다음이 좀더 강력하게 비하적인 모습을 보인다.
- ↑ 물론, 정상적인 진보 보수성향 사이트에서는 영남이든 호남이든 지역비하를 금기시하고 있고 자정작용이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막장 성향 사이트에서는 사실상 영남이든 호남이든 지역 비하를 방조하고 있다.
- ↑ 항목에서는 '지거국이나 일부 지방사립대는 지잡대에서 제외된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구글에서 'xx대 지잡대'로 검색해보면 심지어 경북대학교, 부산대학교를 비롯해 지방 소재 대학교 전체를 지잡대로 싸잡는 용례는 넘쳐나며, 처음에 어떤 의미로 정의되었든 지방대 자체를 잡스러운 대학으로 비하하는 용어로 점차 의미가 확산되고 있다. 과거 리그베다 위키 시절 경북대, 부산대 등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비하면 다닐 가치도 없는 쓰레기같은 곳이라고 비하하는 사용자가 큰 물의를 일으킨 바가 있었다.
- ↑ 대한민국과 이라크가 문화적으로 거의 접점이 없지만 같은 아시아로 묶여있는 것과 비슷하다. 지금의 아시아라는 분류 자체가 유럽인들이 '유라시아에서 유럽이 아닌 부분'을 대충 다 모아서 정의한 용어이기 때문.
- ↑ 물론 미수복 경기도와 황해남도는 예외
- ↑ 수정 전에는 황해도와 개성도 기호 지방이라 북한에서 차별받았다고 적혀 있는데 엄밀히 기호의 의미는 경기도와 호서 지방, 즉 충청도로 황해도 지역은 포함되지 않으며 조선 시대에는 황해도 역시 평안도와 함께 고위 관직으로의 등용은 거의 막혀 있었다. 그리고 개성은 조선 시대에 고려의 수도라 하여 역시 고위 관직 진출에서 차별을 받았다.
- ↑ 의정부시, 고양시, 남양주시, 구리시, 파주시 등
- ↑ 수원시, 성남시, 부천시, 용인시, 안양시 등
- ↑ 이에 대해 많은 말이있는데, 경제 규모로 봐서는 맞는 말일수는 있는데 설령 그렇다고 쳐도 이런식의 비하는 절대 해서는 안된다
- ↑ 똥 분 + 집 당.실제로는 분당(盆唐)(동이 분 + 당나라 당)이다.
- ↑ 인천광역시, 부천시, 광명시, 안양시 만안구, 군포시, 의왕시, 수원시 권선구·팔달구·장안구, 시흥시, 안산시 등
- ↑ 성남시 분당구(분당신도시, 판교신도시), 안양시 동안구(평촌신도시), 화성시(동탄신도시), 수원시 영통구(광교신도시), 용인시 수지구·기흥구 등
- ↑ 판교테크노밸리 입주 기업들, 네이버, 두산그룹(두산그룹은 2019년 이후 일부 계열사들이 분당구 정자동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등
- ↑ 광명시 광명역 역세권과 시흥시 목감보금자리지구, 능곡지구, 연성지구 등. 광명시흥보금자리지구라는 분당신도시급 도시개발 계획이 있긴 했으나 무산되었다.
- ↑ 다만 용인시 수지구, 기흥구는 정부가 수수방관하는 사이 사기업 건축회사들이 무분별하게 아파트를 건설함으로써 난개발 문제가 부각되는 곳이 되었다.
- ↑ 당시 신도시 건설 후보지로 舊 광명시흥보금자리지구 지역이나 안양시-과천시 사이의 그린벨트 지역 등이 후보로 올랐었다.
- ↑ 1995년 도농통합시 이전에 명주군이 있었는데, 원래 명주자체가 강릉과 하나였던 셈이다.
- ↑ 현재 강원도(북한) 안변군
- ↑ 현재 강원도(북한) 회양군
- ↑ 현재 갈말읍에 속해 있는 정연리는 원래 평강군 남면이었다.
- ↑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김화군을 철원군에 편입하였다. 단, 이북 5도 체계 하에서 김화군은 여전히 명목상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 ↑ 철원군청에서 춘천시청까지 75km, 1시간 40분 ~ 2시간 소요. 참고로 철원군청 옆에 있는 신철원터미널에서 동서울터미널까지 85km, 1시간 40분 소요.
강원고속이 일반 국도에서 110km/h씩 쏘면서 가는건 넘어가자. - ↑ 철원군청에서 원주시청은 170km, 3시간 소요. 경기도 서남쪽 끝인 평택시와 비슷하다.
- ↑ 강원도 제 3의 도시인 강릉시까지는 직선으로는 140km에 불과하지만 길의 상태가 안 좋고 구불구불 돌아가기 때문에 실제 강릉시청까지의 최단시간 루트는 260km(소요시간 3시간 50분)이 나온다.(게다가 경기도 가평군에서부터 고속도로를 이용한다.) 김화 지역에서도 강릉까지 최단시간에 가려면 춘천까지 내려와서 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김화에서 강릉시청까지도 245km(소요시간 3시간 40분)이 나온다. 참고로 철원군청, 김화읍사무소에서 대전시청까지의 거리가 230km, 245km(소요시간 3시간 40분, 3시간 50분)이다.
- ↑ 철원군청에서 전곡읍까지 1시간.
- ↑ 철원군청에서 포천시청까지 1시간, 소흘읍까지 1시간 20분
- ↑ 2013년 5월부로 의정부세무서에서 분리된 포천세무서에서 관할하지만 종전과 그다지 차이는 없다.
- ↑ 내비게이션 기준으로 최소시간으로 맞췄을 때 철원군청에서 양주시청까지 1시간 20분(약 53km), 의정부시청까지 1시간 30분(약 56km), 노원구청, 도봉구청(약 64km)까지 1시간 40분.
- ↑ 김화 지역에서 포천시와 붙어있는 곳이 서면에 있는데 47번 국도로 연결된다.
- ↑ 행정구역상 무안군이지만 실질적으로 목포 생활권으로 여겨진다.
- ↑ 본문의 탄핵 사태 문서에 보면 나오지만, 한나라당이 탄핵한 것이 아니라 대선 경선 당시의 악감정이 쌓여서 기존 정치권이던 서부권 기반의 새천년민주당이 탄핵소추를 먼저 제안함.
- ↑ 이때 순천시 선거구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는 서갑원이, 새천년민주당 후보로는 노관규가 서울에서의 낙선 이후 순천으로 출마했었다. 순천시/정치 항목의 역사가 이때부터 본격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 ↑ 20대 총선의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보면 전남 서부에서는 더민주의 득표율이 27.0%에 그쳤으나 전남 동부에서는 33.6%를 득표했다. 특히 순천시에서는 더민주 35.81% vs 국민의당 41.78%로 5.97% 차이가 나왔는데 전남 전 지역에서 국민의당과 더민주의 비례대표 격차가 가장 적게 나왔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7대 총선 당시에는 전남 서부에서는 열린우리당이 43.3%를 득표했으나 전남 동부에서는 50.8%를 득표.
- ↑ 가장 최근에는 팟캐스트 이이제이 2016년 4월 30일자 내용에서 경북 안동 출신의 진행자 이동형이 자신의 경험을 증언했다.
- ↑ 무안군의 경우 1968년까지는 군청이 목포시 내에 있기까지 했다! 1969년 신안군이 분리되면서 기존 무안군청은 신안군청으로 전환되고(이후 2011년 압해도로 이전), 새 무안군청을 무안면(이후 무안읍)에 설치하여 현재에 이른다. 또한 목포시의 법정동 중에도 '무안동(務安洞)'이 있는데, 일제 때 목포 개항장에서 옛 무안 읍내로 가는 길목이고 목포도 원래 무안의 일부였다는 의미로 '무안통(務安通)'이라 불렸던 것을 해방 이후 일제 행정구역 단위명인 '통(通)'을 '동(洞)'으로 바꾸어 이어진 것이다.
- ↑ 13도제 이전까지는 무안현 관할이 아니라 영광, 나주, 광주 등의 월경지로 존재했다. 그리고 13도제가 시행되며 '지도군'으로 분리된다.
- ↑ 그러나 이는 신빙성이 심히 의심되는 근거이다. 아예 거짓말이라고 봐야할 것도 있으니 말이다. 자세한 설명은 아래에 있다.
- ↑ 근데 이것도 2000년 이후 이야기. 그 전까진 오현고와 제주일고가 성적마저 압도했다.
사실 지금이 리즈시절이고 그때까진 듣보잡 맞잖아... - ↑ 사실 그냥 체육복
- ↑ 마을별
- ↑ 구 북제주군을 포함한 제주시지역
- ↑ 구 남제주군을 포함한 서귀포시지역
- ↑ 북제주군, 남제주군, 서귀포시
- ↑ 다만, 삼국간의 갈등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나, 신라와 백제는 이 때부터 이미 견원지간같은 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