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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7일 (화) 03:08 기준 최신판
볼드체는 그 당시 인기를 많이 받았던 가수들이다. 전투기도 아닌데 세대별로 구분해놨다.
목차
1 1세대 아이돌 이전 (1984년 ~ 1996년)
1세대 아이돌 이전 | |
구분 | 팀명 (데뷔년도) |
보이밴드 | 들국화 (1985) 시나위 (1986) 소방차 (1987) 제3세대#s-1 (1988) 야차[1] (1989) 015B (1990) 서태지와 아이들[2] (1992) 노이즈, 듀스, 솔리드, 잉크, 모자이크, 전람회 (1993) YB, 토이, DJ DOC (1994) R.ef, 터보, 벅#s-3, 패닉, 드렁큰타이거[3] (1995) 클론, 구피, 아이돌(IDOL), 킵식스 (1996) |
걸그룹 | 세또래 (1987) 코코#s-1.1 (1994) 비비#s-2 (1996) |
혼성그룹 | 세대교체 (1988) 철이와 미애, 1730[4] (1992) 잼 (1993) 룰라, 투투, 마로니에, 뮤#s-7, 쿨[5] (1994) 마운틴[6](1996) |
남성솔로 | 김승진 (1984) 박혜성[7], 이승철 (1986) 변진섭 (1987) 박남정, 신해철[8] (1988) 김현철, 이승환[9] (1989) 윤상[10], 심신, 신승훈, 이현우, 윤종신, 현진영 (1990) 임재범 (1991) 김민종[11], 김건모, 김원준, 신성우, 손지창, 이덕진 (1992) 강산에 (1993) 故 서지원, 박진영[12], 김경호[13] 김정민 (1994) 박지원, 임창정[14], 故 김성재 (1995) 포지션#s-5 (1996) |
여성솔로 | 박미경 (1985) 김완선 (1986) 이미키, 이지연 (1987) 안혜지, 김혜림, 이상은, 양수경 (1988) 강수지 (1990) 이재영 (1991) 하수빈, 최연제, 윤영아, 박준희 (1992) 이소라, 엄정화[15] (1993) 이예린[16] (1994) |
대한민국 아이돌, 나아가서 K-POP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 시대상의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그래서, 목록에 적혀있는 가수들의 명단에는 아이돌 컨셉이 아니었던 가수들도 포함되어있다. 이는 1980년대 후반을 포함한 2010년대 이후 현재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시대배경을 모두 설명하기 위함이다.
1987년 소방차와 세또래를 시작으로, 노이즈, 잼이 있었고, 여성 가수쪽은 김완선을 필두로 하여 이지연#s-1, 이상은, 강수지, 하수빈 등의 솔로가수들이 엄청난 팬덤을 구성했다. 물론, 위에서 언급된 가수들이 데뷔하기 이전에도 1970~80년대의 포크음악을 주도한 세시봉과 신중현을 중심으로 락음악이 뿌리를 내렸던데다, 트로트 가수들이 군웅할거로 경쟁하던 가운데에는 가왕 조용필이 있었고, 1970년대의 남진-나훈아의 라이벌 구도와 1980년대의 김승진-박혜성의 라이벌 구도가 존재했지만, 이들은 10대~20대뿐만 아니라 전연령층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했다.
1980년대 초반~1990년대 당시의 영미권 팝음악은 다양한 장르의 탄생[17]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같은 대스타의 등장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국내에서도 이들 영미권 팝스타의 인지도는 한국의 10~20대 연령층에게도 영향력이 엄청났었다. 동네 레코드샵에서 빌보드 싱글 핫 100 복사판을 나눠줬을 정도였고,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유로댄스 가수[18]들의 내한공연에서도 만석을 채웠을 정도였다.
1980년대의 10대~20대들은 신디 로퍼, 마돈나같이 유명한 가수들은 알고 있어도 당대 대한민국의 대중문화를 비롯한 유명한 가수들은 트로트 장르를 비롯한 연령층이 높은 기성세대의 가수들이 대세였던 시대였다. 당대와 지금의 인구구조를 보면 뭔가 거꾸로 되었다. 청소년층이 많았을 때는 음방에서 10대들을 위한 음악을 듣기 힘들었고, 이들이 성장하면서 장노년층이 다수가 되었을 때는 주요 음방에서 기성세대들을 위한 음악을 듣기 힘들어졌다...
물론, 1980년대 당시에도 댄스 곡을 부르는 가수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미, 윤시내, 민해경 같이 댄스 곡을 부르는 가수들이 있긴 했지만 이들은 10대~20대만 타겟으로 하는 가수들이 아니었다. 특히, 윤시내는 그 유명한 "공부합시다"를 불렀던 가수였다. 이런 가사를 부르는 가수들이 과연 나이어린 학생들의 취향에 맞았겠는가? 공교롭게도, 민해경은 "공부합시다"와 안티테제의 가사를 담고 있는 "내 인생은 나의 것"을 부르면서 메가히트를 기록했다.
이 노래의 안티테제라고 할만한 노래는 민해경의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공부합시다와는 달리 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4주 연속 1위를 했을 정도였지만,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 부모님들은 더 이상 간섭하지말고 노터치!"라는 가사[19]의 내용 때문에 빡치신 일부 부모님들의 압력으로 금지곡 크리를 맞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어휴... 적당히 좀 하시오! 적당히들! 민해경 시절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적당히 한 거 같은데?
이처럼, 1980년대 당시의 10~20대는 그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에 목이 말라있었다.
1980년대 초반~후반의 10~20대 연령층은 미국의 마이클 잭슨, 컬처 클럽, 듀란 듀란, 프린스같이 유명한 외국 가수들은 알고 있었지만 당대의 유명했던 10대~20대 사이에서 취향에 맞았던 한국의 가수들은 사실상 가왕 조용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트로트나 포크같은 음악이 대세였던 시대였기 때문에 이미 한 물 가버린 노래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고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20]
그리고, 1980년대에는 헐리우드 유명 여배우이자 당대 최고의 섹스심볼이었던 브룩 실즈나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 등등 이른바 책받침 3대 여신이라 불리면서 남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책받침에 사진을 붙이고 다녔던 시대였다. 그러나, 한국 영화계는 군사독재정권의 영향으로 검열을 비롯한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그야말로 암흑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 이후 3S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애마부인, 산딸기 시리즈 같은 한국형 에로영화가 주류였기 때문에 어린 학생들은 당연히 영화관에 쉽게 드나들기 어려웠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안 그래도 헐리우드 영화나 홍콩 영화같이 외국 영화에 밀렸던데다, 국내 영화계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가장 떨어졌던 1980년대에서 그나마 나오는 한국 영화들은 청소년 관람불가 투성이였으니.... 그래서, 한국의 영화 배우들은 10대~20대들 사이에서 대중문화계의 아이콘이 되기에는 살짝 부족했던 시대였다.
결국, 국내의 음악시장은 군사독재 시대의 병크나 다름없었던 검열 등의 영향으로 새로운 장르의 탄생보다는 기성세대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 위주로 만들어졌었다. 한 마디로, 댄스나 랩, 힙합을 비롯한 새로운 장르[21]를 받아들일 토양은 이미 1980년대 초중반부터 무르익었지만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영미권의 영향력이 강했어도 검열같은 제도적인 미비와 음악인들의 역량이 부족해서 10대~20대의 취향에 맞는 수준으로 맞춰주지 못했던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기 이전, 한국의 기성세대 음악인들은 "한국의 대중음악은 한국어의 한글 구조상 절대로 랩이 불가능하다."는 선입견[22][23]이 있었던 것과, 1990년대 대중가요계의 판도를 뒤바꿔놓은 데뷔곡 난 알아요를 혹평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음악성을 겸비한 대한민국 아이돌 그룹의 태동은 10~20대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대중음악의 수요에 불을 당긴 셈이다. 땔감은 이미 1980년대 중후반부터 충분히 쌓여왔지만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가수들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오죽하면, 10~20대의 취향에 맞는 컨텐츠의 부족은 당시에는 합법적으로 수입이 전혀 금지되었고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J-POP까지 손을 거치면서 쿠와타 케이스케, 코무로 테츠야, 오자키 유타카 등 당대 일본에서 유명했던 음악들 또한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때에 암암리에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했었다. 참고로, 그 시절은 반일감정이 지금보다 훨씬 컸을 때였고 인터넷 같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들이 많지 않았을 때였는데도 그런 불리함을 딛고 J-POP이 암암리에 유행했을 정도였다. 이처럼, 1980년대~1990년대 당시의 10~20대들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비롯한 대중문화 컨텐츠에 목말라하고 있었다.[24]
그리고,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이후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10대~20대에게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하는 그룹들이 만들어졌고, 미국발 음악이었던 힙합을 중심으로 한국 대중가요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 뉴 에디션, 뉴 키즈 온 더 블록(NKOB) 등 10대에서 20대 초반을 묶어서 만든 가수 그룹들[25]이 대한민국 아이돌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으며, 1990년대 이후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에서는 뉴 잭스윙, 힙합, R&B 시대가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K-POP이 태동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대한민국 아이돌은 10~20대를 비롯한 대중문화계의 아이콘이 되기 시작했다.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대표가 김완선(발탁나이 83년 14살, 86년 데뷔)을 3년 동안의 혹독한 스파르타 훈련으로 데뷔시킨 한백희(전 가수이자 김완선의 이모)에게 조언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26] 1990년에 데뷔한 현진영의 경우, 이 대표의 지시로 2년 정도의 트레이닝을 거치고 데뷔했다. 한편 한때 SM엔터테인먼트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DSP미디어의 이호연 대표는 한밭기획 전무이사 시절 소방차를 기획해 성공을 거둔바 있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한밭기획에서 독립해 대성기획(후에 DSP미디어로 명칭변경)을 설립했다. 소방차의 성공을 보고 한국에도 아이돌이 뜰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고 살던 집을 털어 창업했다고 한다.
오늘날과 같은 본격적인 대한민국 아이돌 그룹의 효시로 여겨지는 가수는 1990년대 초반의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로 보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로, 이 두 그룹이 대한민국의 대중음악계에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났다. 물론 소방차, 박남정, 김완선 등이 한국의 댄스 가수, 아이돌의 효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팝과 뉴 잭 스윙, 힙합 등의 흑인음악을 기반으로 한 현대 댄스뮤직과는 다른 기존의 성인가요를 빠른 템포로 바꾼 것에 불과한 음악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으며 흑인음악을 기반으로 한 첫 남성 솔로 댄스 가수로는 현진영이 있긴 했었지만... 활동기간 내내 원톱을 찍었다고 보기는 힘들었으며 이들은 모두 다 당시의 트로트와 포크음악으로 대표되는 한국음악계의 주류문화를 완전히 바꿔놓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 데뷔 이전의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주도권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30~40대의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었지만, 두 그룹의 충격적인 데뷔는 10~20대에게 대중음악계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는 획기적인 변화가 불기 시작한다.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한국의 대중가요계는 성인가요같은 트로트와 포크음악 위주에서 10대~20대 취향의 댄스 음악 위주로 재편되었으며, 노이즈, 듀스, DJ DOC, 룰라와 같은 댄스 그룹들이 점점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듀스는 미국발 흑인음악이었던 힙합이라는 장르를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발전시킨 아이돌이자 뮤지션이었다. 듀스가 현역으로 활동했던 시기에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노이즈 등과 같은 소속사의 그룹 룰라의 그늘에 가려져서 활동기간 내내 정점을 찍었다고 하기엔 약간 모자란 면이 있는데, 1위 경력은 거의 없는 편이고 실제로 당시 한국의 빌보드 차트라고 불리울만큼 공신력이 컸던 가요톱10에서도 1위 경력이 전무하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테디 라일리의 주도로 만들어진 뉴 잭 스윙을 받아들여서 대중적이고 세련된 힙합 음악으로 대중화를 이끌었고 듀스가 데뷔한 이후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힙합이라는 장르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섞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성재의 세련된 힙합 패션스타일과 이현도의 천재적이고 뛰어난 작곡능력이 여러모로 시대를 많이 앞서간 탓에, 활동 당시보다는 김성재 의문사 사건 이후부터 재평가가 되면서 후배 가수들과 힙합 마니아들에게 레전드로 추앙받고 있다. 실제로 1990년대 중, 후반에 데뷔한 1세대 아이돌 그룹들도 듀스나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실제로 그들을 자신들의 우상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그래서 현재 활동하는 연예인들 중에서도 듀스나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이 정말 많다.
비록, 듀스는 동시대에 활약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룰라, 김건모, 신승훈의 명성에 가려진 면이 있었지만, 트렌드를 앞서 간 김성재의 세련된 힙합 패션스타일과 이현도의 뛰어난 작곡능력은 후배 힙합 가수들에게 끼친 영향력이 매우 강하며, 1995년 7월 듀스의 해체 이후 김성재의 솔로 앨범과 이듬해 1996년 이현도의 솔로 앨범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다가, 1997년 이후의 힙합계는 DJ DOC, 지누션, 1TYM, 드렁큰타이거, 가리온, 업타운 등으로 활발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아이돌 그룹의 특징인 짧은 활동기간과 컴백 시스템[27], 무대 구성, 격렬한 안무, 아이돌 멤버들의 캐릭터 기믹 부여, 그리고 립싱크 등 현재 대한민국 아이돌의 기원이 되는 모든 시스템들은 이 두 팀으로부터 시작되었다.[28] 그리고 이 당시에는 연습생 개념이라는 것은 희박했다고 하더라도, 백댄서 등의 기회로 연예계로 입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정도로 연습생 시스템의 기반을 다졌다고도 볼 수 있다.
이후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에서도 10대~20대를 대상으로 하는 시장이 굉장히 발달하였으며, 이들은 10대들의 자긍심과 저항을 표현하면서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대중가요계는 댄스가수 위주로 재편되기 시작했으며 비교적 나이가 어린 가수들이 대중음악의 주도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전의 70~80년대는 30, 40대의 가수들이 대중음악의 주도권을 갖고 있었다.
아이돌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상에서 특정인에게 최초로 아이돌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차범근이며, 여성의 경우는 김완선.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년도인 1992년 이후 처음 사용된 사람은 손지창. 아이돌, 아이돌 스타, 틴아이돌 스타, 하이틴 스타[29], 틴에이지 그룹, 인기 댄스 그룹 등의 표현이 중복되어 사용되었다. S.E.S,까지만해도 "아이돌 그룹"이라는 말은 찾아보기 힘들며 "인기 아이돌 스타" "인기 그룹" "인기 댄스그룹"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아이돌'이라는 용어가 고착된 것은 인터넷 신문 등에서 2000년 초부터 10대들에게 인기를 얻는 가수를 지칭하는 단어로 '아이돌'을 자주 사용하면서부터다.
2 1세대 아이돌 (1996년[30] ~ 2002년[31])
1세대 아이돌 | |
구분 | 팀명 (데뷔년도) |
보이밴드 | H.O.T.[32], 구피, 언타이틀#s-2, IDOL, 하모하모[33] (1996) 젝스키스, NRG#s-1, 지누션, 태사자 (1997) 신화, OPPA, 이글 파이브, 팬클럽#s-2, EVE, 1TYM, 스피드, 포맨 (1998) god, 플라이 투 더 스카이, 클릭비, Y2K, A4, 피플크루, 야다, 플라워 (1999) |
걸그룹 | 뚜띠[34] (1996) 베이비복스[35], S.E.S, 디바 (1997) 핑클, 한스밴드[36], 써클[37] (1998) 클레오, 티티마, O-24, 애즈 원, 타샤니, See U (1999) |
혼성그룹 | UP[38], 콜라[39], 자자#s-2, 주주클럽[40], 영턱스클럽 (1996) 줄리엣[41], 자우림, 스페이스A, 소호대 (1997) 샾, 코요태, 비쥬 (1998) |
남성솔로 | 김연우, 이현도, 이지훈 (1996) 홍경민, 박완규, 얀, 유승준 (1997) 조성모[42], 최창민 (1998) 강현수, 김범수 (1999) |
여성솔로 | 소찬휘, 에코, 양파 (1996) 박지윤 (1997) 김현정, J.ae, 박정현, 이소은, 박기영 (1998) 유채영[43], 이정현, 백지영[44], 소냐, 채정안, 이수영[45] (1999) |
※ 1990년대 Kpop Idol History. |
1997년 8월, 당시 1세대 아이돌 댄스그룹의 조상격이자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H.O.T와 젝스키스의 공연장면이다. |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되고 1996년 하반기 이후 H.O.T.의 데뷔를 기점으로 현재 말하는 아이돌 전성시대의 정의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46] 특히 1997년~2000년 사이인 1990년대 후반~말기에서 2000년 밀레니엄 시기부터 1세대 아이돌의 활동이 가장 많이 뚜렸했던 전성기였는데 보이밴드 쪽은 젝스키스, 신화, god 등의 경쟁구도를 가지고 왔으며, 여성쪽은 1997년 11월 S.E.S의 데뷔를 기점으로 1998년 핑클과 양강구도를 형성하며 걸그룹 경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라이벌이 없는 3인자 베이비복스가 있었다.[47] 그리고, 기타 다른 걸그룹으로 경쟁구도를 확립하면서, 오늘날의 걸그룹 형태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다만, 1980년대 초중반생들은 서태지와 아이들과, 1세대 아이돌의 문화를 둘 다 향유하였다. 1980년 이전 세대를 "서태지 세대"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고, 통상적으로 1980년생~1986년생들이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베이비복스 등을 보고 들으면서 자란 세대이며, 1986년생보다 2살 어린 1988년생까지 국민학교의 마지막 입학세대[48]로 "윈도우 98 세대", "국초딩 세대", "이해찬 세대", "7차 교육과정 이전 세대", "중학교도 의무교육없이 돈 내고 다니던 세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49]
1990년대 중후반 당시 국민→초등학교 고학년~중고생이었던 1980년생~1986년생들도 나이가 어렸을 때이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늦게나마 듣고 자란 경우가 많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거의 없었으므로...[50] 그 국민→초등학교 고학년~중고생들이 대학생, 20대가 되면서 1세대 아이돌 문화의 주축이 되었다. 1996년~1999년경 국민→초등학교 4, 5학년 정도였던 1987년 이후 세대들(1987년~1989년생)은 서태지와 아이들 등의 1세대 이전 아이돌의 문화는 거의 모르고, 그 이후 세대인 H.O.T, 젝스키스, S.E.S, 핑클, 신화, god 등 1세대 아이돌들의 음악을 조금씩 접하게 된다.
특히 1997년~2000년 당시는 그룹 못지않게 솔로 또한 아이돌 스타로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던 유일한 시절이다. 남성솔로의 경우 1997년에 김경호, 임창정, 조성모, 스티브 유가 1세대의 날고 긴다는 아이돌 그룹들과 가요순위에서 직접적으로 경쟁을 하면서도 엄청난 팬덤을 몰고 다니면서 이 시대를 풍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여성솔로의 경우 역시 1997년 엄정화, 박지윤, 김현정, 1999년 이정현, 백지영, 등이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2000년 보아를 기점으로 트레이닝은 더 혹독해지며 일본, 미국 진출과 관련해서 외국어도 공부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보아의 경우는 1세대와 1.5세대 사이인 과도기에 데뷔했지만 소속사의 물량공세를 감안한다면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 오히려 1.5세대 아이돌에 들어서면서 빛을 발하게 된다.
3 1.5세대 아이돌 (2000년 ~ 2004년)
1.5세대 아이돌 | |
구분 | 팀명 (데뷔년도) |
보이밴드 | 문차일드(M.C The Max), UN, 량현량하 (2000) K-POP, 5tion, D.Bace, 브라운 아이즈 (2001) 블랙비트, 악동클럽, 노을, F-iv[51], 4U[52] (2002) 동방신기[53], 버즈, 바이브, 더 크로스, 스맥스[54], 테이크, 브라운 아이드 소울(2003) V.O.S, SG워너비 (2004) |
걸그룹 | 샤크라, 파파야, KISS (2000) 쥬얼리, 밀크, 슈가#s-2.1, 투야, S[55], 걸프렌드[56], 보이스코[57] (2001) 스위티#s-2, 신비, 스위트, 이삭 N 지연, LUV#s-2, 데자뷰 (2002) 빅마마, 모닝 (2003) Shyne (2004) |
혼성그룹 | 더 자두, 거북이 (2001) 퍼니[58](2003) 클래지콰이 (2004) |
남성솔로 | 박효신, 은지원 (2000) 성시경, 싸이[59], 강타, 문희준, 강성훈, 이재진, 리치, 론 [60] (2001) 비, 휘성 (2002) SE7EN, 이정[61], JR (2003) 이승기, 테이 (2004) |
여성솔로 | 보아, 화요비, 왁스 (2000) 장나라, 故 하늘, 故 죠앤, 다나, 유리, 린, 페니 (2001) 별, 미나 (2002) 거미, 렉시, 이효리, 바다, 유진, 채연, 서연[62], 故 유니#s-1, 솜이 (2003) 럼블 피쉬[63] (2004) |
※ 2000년 ~ 2008년 Kpop Idol History. |
2001년 중학교 1학년의 나이에 가요계에 데뷔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가수 하늘. |
2001년 중학교 1학년의 나이에 하늘과 같이 데뷔한 친구였던 죠앤의 무대다. |
2000년대 초반, 솔로 여자 가수 양강구도의 한 축을 이끈 장나라의 고백. |
그리고, 또 다른 양강구도의 한 축이었던 보아의 Valenti. |
2000년에 들어서 정통 발라드 가수인 조성모의 인기가 절정에 도달하고 있었고, 1세대 아이돌을 이끄는 주역 4인방 중에 하나였던 젝스키스가 2000년 5월 18일 돌연 해체[64]를 선언하는 바람에 1990년대의 가요계를 주도했던 팬덤의 영향력이 예전보다 약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에도 1세대의 중심적인 아이돌 이외에 1990년대를 빛낸 다른 가수들도 주옥같은 명곡을 많이 발표해서 대중들은 더 많은 호응을 주었지만 2000년대 초반 당시에는 그런 양상이 더욱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그만큼, 1세대 이전 출신의 수많은 컴백 가수들이 명곡을 쏟아냈기 때문에[65] 음반시장은 대한민국 역대 최고 정점을 찍었지만 인터넷과 국민PC의 대중화로 소리바다같은 P2P 방식의 음원 공유 사이트가 활성화하면서 불법 다운로드 이용자가 점점 증가하는 바람에 음반 시장 규모의 수명을 단명시키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었지만 가수 제이의 2집 히트곡 '어제처럼'이 R&B 대중화의 서막을 알리기도 했다.[66]
결국, 2001년부터 1세대 아이돌의 영향력과 음반 시장의 규모마저 하락하기 시작했으며 1세대 아이돌의 1인자였던 H.O.T.가 2001년 5월 13일에 공식적으로 해체[67]되었으며, 6월 초부터 R&B 보컬 그룹 브라운 아이즈가 '벌써 일년'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되면서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흐름이 본격적으로 새롭게 바뀌기 시작했다.
게다가, 2002년부터는 음반 시장의 규모가 가파르게 축소되어 큰 타격을 받게 되자 수많은 음반 매장들이 문을 닫게 되었고 인터넷 발달로 인해 불법 다운로드는 멈출줄 모른 채 계속 확산되고 있었다. 2002년부터는 S.E.S의 해체와 핑클의 잠정적인 활동 중지로 1세대 아이돌 최후의 주역 걸그룹들마저 물러나게 되었다.
다른 솔로 가수들 및 일부 댄스 그룹들이 과거 1세대 주역 아이돌 그룹들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면서 음악시장의 대중적인 트렌드는 예전의 1세대 아이돌 스타일의 음악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동방신기와 쥬얼리가 각각 보이밴드와 걸그룹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이 시기부터는 특히 1세대 아이돌 그룹이 대부분 해체되거나 활동중단을 하게 되면서 기존 멤버들이 솔로로 데뷔했지만 그렇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 중에 가장 성공한 케이스는 다름아닌 핑클의 이효리였다.
남성솔로에서는 1세대에서 독보적 존재였던 유승준의 부재로 인해 신인으로 데뷔한 비와 SE7EN의 양강구도가 2003년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여성솔로 중에는 1세대 말에 데뷔해서 다소 고전하다가 1.5세대에 들어서면서 2002년부터 빛을 보게 된 BoA와 장나라의 양강구도를 중심으로 팬덤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었으며, 보아와 장나라보다는 약했지만 하늘, 죠앤이 엄청난 팬덤을 몰고 왔다. 그리고, BoA나 장나라와 차별된 스타일의 섹시코드를 주축으로 하는 미나, 채연, 유니 등의 여자 가수들까지 데뷔하게 되면서 2003년부터 여성 솔로 가수들의 치열한 경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한창 불어닥친 R&B 열풍을 바탕으로 휘성, 박효신, SG워너비, V.O.S, 브라운 아이즈, 브라운 아이드 소울, 플라이 투 더 스카이[68], 이정 등 가창력과 보컬을 강조한 남성 솔로 또는 그룹 R&B 아티스트들이 음악시장의 대세를 차지하면서 아이돌 그룹 가수들은 상대적으로 약세기를 겪게 된다. 여자 가수들도 또한 이수영은 1세대 아이돌 시절부터 데뷔했으나, 인기도에서 다소 밀려있었다가 발라드의 여왕으로 대성공을 거뒀으며 빅마마, 거미, 박화요비 등의 정통파 보컬리스트들이 이 시기부터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는 팬덤의 지지가 탄탄한 보이그룹보다 걸그룹의 타격이 커지게 되면서 사실상 궤멸상태였다. 밀크, 신비 등 SM엔터테인먼트에서 내놓은 걸그룹마저 처참한 실패를 겪은 시기다.[69] 보이밴드의 경우, 동방신기가 H.O.T의 빈자리를 채워가면서 1인자로 대동단결하는 와중에 버즈[70], SS501[71], 파란[72] 정도가 명맥을 유지했다.
또한, 혼성그룹의 대중적인 인지도와 인기는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으며 2000년대 후반부터는 뚜렷한 활동이 크게 줄어든데다가 일부 아이돌 그룹들이 발표한 새로운 형식의 음악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바람에 혼성그룹의 비중이 거의 공기화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시기를 대표하는 공전절후의 대히트곡을 불렀던 가수들은 SG워너비, 브라운 아이즈, 버즈, 엠씨더맥스, V.O.S, 빅마마가 대표적인 노래방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가진 가수들이었다. 사실, 2000년대 중반은 일부 평론가들이 한국 대중가요계의 암흑기라고 불리면서 유독 까였던 시기[73]인지라, 그에 따라 음악적 평가가 온당하게 이루어지지 않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문가들과는 다르게 대중들은 이 시기의 명곡들을 노래방에서 많이 부르는 것도 사실이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당시 대중가요계의 대세는 소몰이창법을 위시한 R&B와 발라드 열풍이 불게 된다.
그러다가 2000년대 후반에 들어 2세대 아이돌을 중심으로 대중가요계가 다시 재편되기 시작했다. 이는 R&B 열풍이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 변질되면서 R&B를 가장한 이른바 소몰이창법의 미디엄 템포 발라드를 조영수, 류재현 등 유명 작곡가들이 계속 확대재생산하는 이른바 '양산형 소몰이'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너도 나도 비슷한 음악들이 범람하게 되면서 대중들이 쉽게 식상해졌기 때문인데 발라드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급격하게 쇠퇴하게 되었는데, 천편일률적인 노래들에 대중이 염증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나, 1.5세대 아이돌 시대를 무조건 한국 대중가요계의 암흑기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극단적인 여론이다. 2007년의 2세대 아이돌 전성시대 이후 또 다시 너무 오랫동안 후크송만 외치는 양산형 아이돌 mk2만 나오는 것이 반복되어버리다보니, "이 시절의 가수들은 가창력도 좋았고 가사도 좋은 명곡들도 흘러넘친다!"라고 다시 그리워하는(...) 여론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세대 아이돌과 1.5세대 아이돌 시대의 음악을 들으면서 성장했던 (2016년 기준으로 현재) 20~30대들이 지금도 노래방에서 대중적으로 부르는 애창곡들은 현재 2010년대 3, 4세대 아이돌 시대의 노래보다 이 시대의 명곡들을 더 많이 부르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1세대 아이돌과 1.5세대 아이돌의 팬을 자처했던 사람들과 그 아랫세대에서도 노래방에서 이 시기의 명곡들을 많이 불렀으니 오랫동안 노래방 애창곡 순위에서도 최상위권으로 기록될 수 밖에 없었는데, 그저 추억보정 하나만으로 암흑기 시대의 명곡들이 노래방 애창곡 순위에서 10년도 훨씬 넘은 현재까지 기록될리가 있겠는가?[74]
4 2세대 아이돌 (2004년 ~ 2007년)
2세대 아이돌 | |
구분 | 팀명 (데뷔년도) |
보이밴드 | TRAX (2004) 슈퍼주니어, SS501, 먼데이키즈, 파란#s-2 (2005) 빅뱅, 배틀 (2006) FT아일랜드, 초신성, 티맥스, 타키온 (2007) |
혼성그룹 | 타이푼 (2006), 8eight (2007) |
걸그룹 | 천상지희, LPG, 레드삭스, 더 빨강[75], 가비엔제이, 다미앤주니어, i-13, 퍼퓸, 카사 앤 노바 (2005) 브라운 아이드 걸스, 씨야 (2006) 원더걸스, 카라, 소녀시대, 블랙펄, 써니힐, 베이비복스 리브[76] (2007) |
남성 솔로 | KCM (2004) 이루#s-2 (2005) 케이윌 (2007) |
여성 솔로 | 윤하[77] (2004) 아이비, 임정희, 제시카 H.O (2005) 레이디 제인, 장리인 (2006) 손담비, 지아#s-1, 서인영, XENO (2007) |
시작은 2007년 하반기 원더걸스의 Tell Me였다. 2007년 상반기까지 소몰이 창법을 구사하는 발라드 가수 또는 그룹이 인기를 끌고 있던 가요계에 Tell Me는 듣는 음악에서 보고 따라하는 음악으로의 변화의 시작점이었으며 후크송과 포인트안무라는 신개념 히트요소를 가요계에 처음 소개했다. 21세기 새로운 히트 공식을 창조한 것이었다. 이후, 카라, 소녀시대 같은 걸그룹들이 잇따라 원더걸스가 제시한 히트요소를 대거 반영하여 큰 인기를 끌면서 댄스 음악이 다시 가요계의 1순위 주류로 자리잡으면서 본격적인 아이돌 전성시대를 열게 된다. 아이돌의 음악과 춤은 단연 화제가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1위가 아이돌로 통일된 것도 이 시기다. 특히 2007~2008년 가요계를 석권한 동방신기[78], SS501[79], 슈퍼주니어[80], 빅뱅[81], FT아일랜드[82], 소녀시대[83], 원더걸스[84]카라[85]는 아이돌 시장을 이끌며 단연 끝판왕으로 자리잡았다.
2010년대에 가요계가 아이돌 전국시대가 되면서 이 시기의 그룹들, 특히 소녀시대에 대해 "걸그룹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막 생겨날 때 일찍 데뷔한 선점효과로 빈집털이를 했다."라고 비판이 있는데, 살펴보면 당시 쟁쟁했던 가요계 선배들 사이에 있음에도 신드롬을 일으켰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소녀시대(8월)보다 원더걸스(2월)와 카라(3월)가 먼저 데뷔를 했다. 걸그룹 자체에 대한 관심이 지금만큼 많지 않았던 시기에 대중적 관심의 불을 지펴서 걸그룹 전성시대를 이끈 첫번째 폭풍이 원더걸스였다. 당시의 대세 걸그룹인 원더걸스는 멸종되다시피하고 관심도 없었던 한국 걸그룹 시장을 크게 부활시켜서 어마어마하게 키워 놓은채로 미국으로 떠나면서 팬덤이 위축되어 버렸고, 카라는 Pretty Girl로 인기를 얻고는 있으나 아직 미스터로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전이며 2NE1은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은, 천상의 타이밍에 때마침 나온 소원을 말해봐와 Gee의 퀄리티까지 매우 좋아서 국민 걸그룹으로 입지를 다졌다고 할 수 있으니 소녀시대가 시기를 매우 잘 탄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한편, 슈퍼주니어의 경우 데뷔는 생각보다 빠르지만(2005년) 멤버들의 예능에서의 활약을 통해 롱런하고 있고,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경우 잘 알려져있다시피 애초에는 보컬그룹으로 데뷔했으나, 가열차게 실패한 뒤(...) 멤버들의 얼굴을 튜닝하고(...) 일렉트로니카를 장착한 뒤 아이돌 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원더걸스는 Tell Me - So Hot - Nobody로 이어지는 복고 3부작으로 사실상 천하를 통일했으나, 무리한 미국 진출의 후유증으로 개점휴업상태가 길었다. FT아일랜드의 경우, 아이돌보다는 음원 중심의 발라드 그룹으로 노선을 변경한 듯 하다.
5 3세대 아이돌 (2008년 ~ 2013년)
3세대 아이돌 | |
구분 | 팀명 (데뷔년도) |
보이 밴드 | 샤이니, 2AM, 2PM, 유키스, 에이스타일, 스매쉬 (2008) 비스트, 엠블랙, SHU-I (2009) 씨엔블루, 제국의 아이들, F.cuz, 인피니트#s-2, 틴탑, 대국남아, 레드애플, 엑스크로스 (2010) B1A4, 블락비, 보이프렌드#s-2, 마이네임, M.I.B (2011) B.A.P, BTOB, EXO, 빅스, 뉴이스트 , 에이젝스, 빅스타, 크로스진, 백퍼센트 (2012) SPEED, 방탄소년단, 탑독, HISTORY, 소년공화국 (2013) |
걸그룹 | 다비치[86] (2008) 2NE1, 4minute, 애프터스쿨, 티아라, f(x), 레인보우, 시크릿, JQT, HAM, 브랜뉴데이 (2009) miss A, 나인뮤지스, 걸스데이, 씨스타, 걸스토리, 바닐라루시, 베베미뇽, VNT (2010) 라니아, Apink, 브레이브 걸스, 쇼콜라, 파이브돌스, 스텔라, 달샤벳, 치치, 코인잭슨, 벨라 (2011) EXID, 스피카, AOA, 크레용팝, FIESTAR, 더 씨야, 갱키즈, 타이니지, 헬로비너스, 타히티, 15& (2012) 레이디스 코드, 베스티, 2EYES (2013) |
혼성 그룹 | 남녀공학 (2010) |
남성 솔로 | 태군[87], AJ[88], 청림[89], 서인국 (2009) 허각 (2011) 노지훈, 백청강(2012) |
여성 솔로 | 아이유, JOO, 문지은, NS윤지, 김소리 (2009) G.NA (2010) 한그루 (2011) 에일리, 주니엘, 이하이, 백아연, 안다 (2012) 앤씨아, 혜이니, 지헤라 (2013) |
2009년 12월 2일, 2PM은 KBS공개홀에서 열린 청룡영화상 시상식 무대에 올라 타이틀곡 '하트비트(Heartbeat)'의 축하공연을 가졌다.(그 유명한 짐승돌 찢기 퍼포먼스)
My Top 50 Kpop songs (2008-2013) |
3세대 아이돌의 특징이라면 그룹에 확실한 캐릭터가 있다는 점, 애초부터 일본이나 중국 등 해외 진출을 노리고 기획되었다는 점, 멤버별 파트가 보다 체계적으로 나뉘었다는 점 등이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특징은 일렉트로니카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며 소위 'K-POP 사운드'를 만들었다는 것. 이전까지의 아이돌 음악은 현재와 같은 일렉트로니카 중심은 아니었다. 소녀시대의 데뷔곡은 팝/락인 '다시 만난 세계'였으며, 슈퍼주니어는 SMP인 'Twins', 팝/락인 'Miracle'이었다. 카라 역시 팝/락인 'Break It'이었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빅뱅의 데뷔 당시 컨셉은 힙합. 그러나 재미를 못 보다가, 원더걸스의 뒤를 이어 일렉트로니카를 도입하면서 하나둘씩 대박을 내기 시작했다. 한편 이 일렉트로니카 도입에 있어서 절대 빠지지 않는 팀은 보컬그룹으로 데뷔했다가 걸그룹으로 변신한 브라운 아이드 걸스.
2000년대 후반~말기의 가요계는 아이돌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이 없으면 한국 가요시장 자체가 망할 정도로 이들은 불법 공유로 신음하고 있는 한국 가요계에서 특정 소비층을 가지는 가수들이다. 가온차트 기준으로 2010년 앨범 판매량 1위부터 12위까지가 전부 아이돌 가수이다. 2012년 들어서도 한터차트 기준 10만 장 이상 앨범판매을 판매한 가수 8 팀(or 솔로) 중 7팀이 아이돌[91][92]이었다. 하지만 이 앨범 판매가 노래를 듣기 위해서가 아닌, 팬질의 일환으로서 단순히 소비하기 위해, 또는 아이돌의 순위를 높여서 대리만족을 얻기 위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특히 대형기획사의 경우 머친다이징, A.B.C 버전앨범 등의 상술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여기서 음반형 아이돌과 음원형 아이돌이 갈라지게 되는데[93], 전자는 거대 팬덤을 가지고 팬덤을 통한 수익을 위주로 하는, 거의 대부분의 보이그룹들이 속하며 후자는 팬덤 기반은 미약하지만 노래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데 주력하여 거기서 나오는 음원 수익을 주로 하는, 거의 대부분의 걸그룹들이 속한다. 허나 보이 그룹인데도 음원 성적이 좋은 그룹도 있고[94] 걸그룹인데도 음반 성적이 좋은 아이돌도 있다.[95] 아이돌의 음원 성적은 사건 사고로 인한 이미지 하락, 그룹 자체의 하락세 등등 으로 쉽게 떨어지고 한 번 궤도에서 떨어지면[96] 회복이 거의 불가능 하나 음반(팬덤) 성적은 위와 같은 이미지 하락, 하락세의 영향을 받아도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이돌 중 중견 아이돌이 된 10년 이전에 데뷔한 그룹들은 음원 사이트 연간 차트에 못 들 정도로 음원 성적이 안 좋으나 음반 성적으로 유지 하고 있거나(동방신기, 2PM 등), 전성기에 비해 떨어 졌으나 평균은 유지 하고 있는 음원 성적(포미닛) 거기에 팬덤도 갖춘 그룹(소녀시대, f(x)) 음원 성적도 음반 성적도 안 좋아 사실상 활동 중단인 그룹(애프터스쿨, 시크릿 등) 아직도 전성기에 필적하는(빅뱅)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또한 아이돌이 범람하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한류. 동아시아권에서 한국 아이돌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고, 이에 편승해 시장성이 넓은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 수익을 얻기 위한 아이돌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덕분에 명백하게 국내의 아이돌 수요(?)에 비해서 공급과잉이 된 상황. 동아시아권에서 '한국의 인기 아이돌'이라는 타이틀로 활동하고 있는 몇몇 아이돌 그룹들을 보고 있자면 정작 한국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인지도 바닥의 아이돌 그룹인 경우도 꽤나 있을 정도다.
나이 많은 남성팬, 일명 '삼촌팬'들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여성 아이돌들의 선정적인 의상/안무 등이 늘어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남성 아이돌 역시 나이 많은 여성팬들의 인기를 끌기 위해 짐승돌이니 뭐니하면서 노출이 많이 늘어난 편. 이 탓에 선정성 논란도 많이 불거졌다. 이러한 아이돌들의 나이가 대체적으로 어린 것이 가장 큰 문제. 그나마 TV쇼에서는 규제로 인해 많이 점잖은(?) 편이지만, 규제를 받지 않는 행사에서는 기본이 쫄티, 초미니스커트, 핫팬츠, 이런 식이다. 몇몇 아이돌들이 도끼자국 노출(?) 등으로 화제가 되고 인터넷에 도끼자국 사진이 돌며 유명세를 타게 된 이후로는 이것도 홍보전략이 되어 의도적으로 도끼자국이 잘 보이도록 꽉끼는 옷을 입고 하반신을 강조하는 춤을 추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덕분에 직캠이라고 검색해서 나오는 물건들은 쇼걸들의 란제리쇼 같은 느낌이 대부분(…).
뮤직뱅크등의 TV 음악방송 1위를 기준으로 유망 아이돌과 듣보 아이돌 등으로 나뉘기도 하는데. 과거에는 음반 점수로 1위가 가능했기 때문에 음반형 아이돌이 유리했다.
본업인 가수 이외에 연기나 예능 프로그램으로도 활발히 진출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외모와 연예인적인 요소의 중요성이 강화되어 가고 있다. 이 때문에 오히려 가수에게 중요한 요소들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고, 아이돌에게 제대로 된 가수 자격이 있느냐는 논란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 KPOP TOP 30 september 2013년 (week 1). |
해외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유튜브와 같은 UCC의 발전도 한 몫하고 있다. 동방신기 시절 오로지 일본 활동 자체만으로 인지도를 쌓았던 것과 달리, 이러한 UCC의 발달을 기반으로 카라와 소녀시대가 일본에서 인지도를 얻고 오리콘 위클리 차트 1위를 달성한 것이 대표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국내 언론이 "점령했다"라는 식으로 자극적인 표현을 쓰며 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실제로 한국 아이돌들이 세계 시장에서 신선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편견에 휩쓸려 무조건 노래 못한다고 까지만(...) 그래도 (해외 아이돌들에 비하면) 한국 아이돌들의 실력은 상당히 인정받고 있다. 현지화가 대세였던 BoA나 동방신기 시절과 구분하여 최근 아이돌 그룹의 해외진출 열풍은 일본에서 "신한류"로 부르며 이전까지의 한류와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2011년 기준 성공적으로 일본에 입지를 쌓은 한국 아이돌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카라, 빅뱅[97], 소녀시대, 샤이니 정도 뿐이며, 2012년 들어서는 2PM, 인피니트가 여기에 합세한 정도다. 여러 방송사에서 우후죽순으로 한류라는 미명하에 해외에서 K-POP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으나[98] 이의 실질적인 성과에는 거품이 끼어있다는 비판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도 아이돌 음악이 잠시 쇠퇴하는 시기가 있을 순 있으나 아이돌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MTV의 등장 이래로 비주얼을 내세우는 가수들은 항상 존재했었다. 요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깨속.
한국 한정으로 아이돌 할때 "아이"(I)를 "어린 아이들"할때 "아이"로 알아듣는 경우도 있는데 이 점을 이용해 '어른돌' 등의 농담이 나오기도 한다. 가끔 나이는 30대 이상인데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혹은 아이돌 포지션으로 활동하는 연예인을 농담삼아 이렇게 부른다. 2011년부터는 △△돌 하는 식으로 특징에 접미사를 붙이는 식으로 쓰이고 있다. 드라마에 출연하면 연기돌, 예능활동이 활발하면 예능돌 등.
6 4세대 아이돌 (2014년 ~ 현재)
4세대 아이돌 | |
구분 | 팀명 (데뷔년도) |
보이밴드 | GOT7, WINNER, JJCC [99], 전설, B.I.G, 빅플로, 매드타운 (2014) iKON, 세븐틴, 몬스타엑스, 로미오, 업텐션, 엔플라잉, 빅브레인 (2015) ASTRO, 임팩트, 크나큰, NCT, SF9, 펜타곤(2016) |
걸그룹 | 마마무, 배드키즈, 포엘, 레드벨벳, 러블리즈, 소나무, 라붐, 멜로디데이, 베리굿 (2014) CLC, 여자친구, 마이비, 오마이걸, DIA, APRIL, TWICE, 디아크 (2015) 우주소녀, I.O.I, 믹스, 구구단, 블랙핑크 (2016) |
혼성그룹 | 악동뮤지션 (2014) |
남성 솔로 | 로이킴, 유승우, 정준영, 에릭남 (2013) 에디킴 (2014) MC그리, 힙합 대통령 (2016) |
여성 솔로 | 샤넌, 박보람 (2014) |
2012년 당시에는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2같은 가요 서바이벌이나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케이팝스타같은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2011년까지 승승장구하다가 식어버리기 시작하면서 反아이돌 성향이 대두되었는데 안 그래도 레드오션으로 고착화한 아이돌 시장에 또다른 문제점이 나타났으니 소속 기획사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경쟁력으로 수익 모델과 음악성을 비롯한 가창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그랬기 때문에 해외에서 유행했던 음악적인 기법을 국내에서 너도나도 사용되었는데 이것이 그들이 가요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성향이 너무 빨리 퍼졌고 그건 그것대로 문제인데다가, 세계구급 강적이 나타나서 대중가요계를 잠식해버렸으니...
하지만 아직 4세대로 분류하기에는 애매모호하며 3세대 아이돌과 활약시기가 겹치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4세대 아이돌로 분류할 정도로 맥락이 잡히지는 않는다. 그냥 3.5세대라고 불러도 될까 말까 할 정도 하지만 슈퍼주니어(05), 소녀시대(07), 샤이니(08), f(x)(09)에서 볼 수 있듯 일 년에 한 그룹 별로, 또 보이밴드와 걸그룹을 번갈아가며 데뷔시키던 전통의 아이돌 명가 SM엔터테인먼트가 2009년에 f(x)가 데뷔한지 약 3년 후 EXO 데뷔 시기부터 4세대 아이돌로 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견해가 많다.
실제로 SM의 전성기를 열었던 네 그룹은 각각 동방신기(5인체제)-소녀시대(정통파 아이돌 노선), 샤이니-f(x)(실험적인 일렉트로니카 도입)로 컨셉을 짝지을 수 있기도 하다.
EXO는 처음부터 한국과 중국시장을 동시에 공략하기 위해 기획되었고 이전까지의 아이돌과는 약간 다른 홍보 방식을 보이고 있다. EXO가 정식 데뷔 1년여만에 '으르렁'으로 팬들을 많이 모으면서부터 본격적인 4세대 아이돌의 전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지도. 이에 대응해서 샤이니와 2PM이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듯이, JYP에서 GOT7을, YG에서 WINNER를 출격시키는 상황.
이로써 보이그룹은 4세대 전투가 시작되었지만 4세대 걸그룹은 반년 넘게 더 늦어졌다. 한 소속사 내에서 보이밴드가 걸그룹보다 먼저 데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면 보이밴드의 경우 팬덤 화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보다 안전하기 때문. 걸그룹의 경우 음원에는 강하지만 보이밴드보다는 팬덤이 약하기 때문에, 성공하면 말 그대로 대박이지만 자칫 내리막길을 타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100]
그러던 2014년 8월. SM엔터테인먼트에서 f(x)이후 5년만에 걸그룹 레드벨벳을 내놓았다. 얼마뒤 JYP에서도 SIXTEEN 서바이벌 프로를 열어 새 걸그룹 멤버를 선발했으며, YG 걸그룹도 4년째 나온다는 소리만 하지만 데뷔 준비를 하고 있다. 큐브에서도 포미닛이후 다음 세대를 준비할 걸그룹 CLC가 2015년 초 데뷔했으며, 그외에도 2010~2011년경 3세대 아이돌로 흥한 소속사들이 2014년 후반 - 2015년을 기점으로 신인 걸그룹을 속속 데뷔시키면서 이들을 기점으로 4세대가 시작된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레드벨벳 필두, 러블리즈·소나무 등 신예 러시…′걸그룹 4세대′ 열릴까
한편 2010년대 중반부터는 걸그룹들이 음원차트에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015년 가온 연간 최종순위에선 10위 내에 걸그룹 노래가 안보였을 정도. 이는 앞으로 나올 4세대 걸그룹들이 2007~08년 Kissing You 시절 소녀시대만큼의 커리어를 뽑아내지 못할경우 걸그룹 침체기가 다시 시작될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걸그룹이 너무 많이 쏟아져나오다보니 곡 제작자와 안무가의 풀이 거의 말라비틀어져버린 상황이라는 모양.[101] 덕분에 걸그룹들은 데뷔를 앞두고 받는 노래와 안무만 보고서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할 수 있는 지경이라고 한다. 다만 아직도 대다수의 기획사들이 걸그룹의 혁신과 방향성을 모색하는 만큼 마마무, 레드벨벳, 러블리즈, 여자친구, TWICE등등의 신세대 걸그룹도 롱런 노래들을 뽑아내는 등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앞으로 이루어질 걸그룹들의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레드벨벳이 14~15년 4세대 아이돌 기근현상 속에서도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해내며 맥을 잇고 있던 상황에서 2016년 여자친구와 마마무, 트와이스까지 터졌다!![102][103]
2016년 9월경에 이어서 레드벨벳이 음원강자들 사이에서 버티며 음악방송 1위를 챙겼다 2016년 걸그룹 성공가도는 현재진행중
오히려 4세대 아이돌만 놓고 따졌을 때 2016년에는 보이그룹이 밀리는 추세이다. 마마무 레드벨벳 여자친구 트와이스 러블리즈를 통칭하는 4세대 슈퍼 5를 필두로 블랙핑크 우주소녀 아이오아이 등 신흥 걸그룹도 매섭게 달려나가고 있다. 이에 비해 4세대 남자 아이돌은 주춤하는 중.[104]
7 세대 구분의 모호성
[추가 서술 환영]
- 아이돌 세대 구분을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되는가?
- 아이돌이란 태생부터 미디어환경(라디오, TV, 인터넷 등)에 따라 변화해왔으므로, 어떤 매체를 통해 비추어지고 인기를 얻었는가를 우선으로 해야한다. 특히 레드벨벳, 여자친구 등의 세대는 개인 인터넷방송(V앱, 아프리카 등)이라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방식을 통해 팬들과 양방향으로 소통하며 인기를 끌고있다. 또한 십여년전 일본 인기아이돌들이 '칸무리'라는 단독 예능방송을 했었듯이, 그룹이름을 걸고 단독출연하는 리얼리티예능을 거의 보편적으로 하고 있다는점 또한 이전과 크게 다른점이다. 예능쇼의 1회 게스트에 불과했던 시절에서, 이젠 아이돌에 의한 아이돌을 위한 방송이 만들어지게 된것이다. (이런 아이돌방송은 아이돌산업의 위상과 규모가 커지기전엔 불가능하다.)
- 해외진출계획이 아닌 실제 해외활동과 실적을 기준으로 삼아야한다. 계획이야 누가 못세우겠느냐만은, 요즘 최정상 아이돌은 실제로 국내보다 해외에서의 수익이 클 정도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고있다. 여기서 중요한건 이러한 시장구조로 인해 아이돌의 음악과 퍼포먼스 등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점이다. 앨범의 수록곡은 해외 지향을 넘어서 아예 외국인 작곡가와 협력하는경우가 많아졌고 퍼포먼스 또한 기존 국내 안무,연기,컨셉과 다르게 다소 이질적으로 바뀌어가고있다.
- 사실 1세대와 2세대를 특별한 기준을 긋지않아도 명백히 구분할수 있는것은 1세대 아이돌의 시스템이 너무나도 후진적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제대로된 계약서가 존재하질 않았고 수입분배도 불투명할뿐더러 육성 또한 비효율적이고 열악했다. (그냥 굶기고 굴렸다, 몇몇은 맞아가며 연습을 했다고 십여년후 밝히기도 했다.) 오랜 시간 연습생으로 지내며 보컬,춤,화술을 기본은 준비해 데뷔하는 2세대와는 크게 다른점이라고 할수있다. 역으로 이런 1세대가 있었기에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이 만들어진것일까... 또한 사회전반의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었기에 자유로운 행동, 발언, 치장(염색, 노출) 또한 불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유닛활동 또한 불가능했고 예능이나 드라마에 단독으로 출연하는것 또한 불가능, 이성그룹과 버라이어티쇼에서 만나는것도 있을수 없었던 일.
- 2세대와 3세대는 거의 구분도 안 될 뿐더러,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3세대 아이돌의 특징이 멤버별 확실한 캐릭터 설정, 애초부터 해외 진출기획, 멤버별 파트배분의 체계성. 일렉트로니카라고 서술되어있지만, 그 모든 특징을 2세대 아이돌이 갖추고 있다는게 문제다. 심지어 해외진출 기획은 1세대부터 이미 있어왔던 것이었다. 일렉트로니카 또한 트렌드 였을뿐이어서 2,3세대 아이돌 대부분이 거쳐갔던 장르 중 하나일뿐이다. 애초에 4~5년 주기로 세대를 구분하는 분야가
자동차를 제외하면있긴 하는건가? 우리는 기획사와 언론에 의해 생각이 지배되어가고 있는건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비판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기존그룹과 차별성을 두어 그룹의 존재감을 명확히 하려는 기획사와, 자극적이고 눈에띄는 단어를 사용하려는 언론사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이젠 5세대 아이돌이 탄생했다는 기사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세대(世代)의 사전적의미를 되새기자.
- 의견을 반영한 세대구분 (추가 특징 서술바람.)
- 1세대 (1990년대까지) - TV, 라디오를 중심으로 활동, 일방향 소통, 허술한시스템, 팬덤문화탄생
- 해당그룹 :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
- 2세대 (2000년대) - PC 인터넷의 영향을 크게 받음(디지털음원, 스트리밍, 팬사이트/카페, 유튜브[105]), 라디오의 영향력 쇠퇴, 유닛 및 개인활동 활성화, 시스템을 통한 매니지먼트, 해외차트 상위권진입, 해외콘서트'투어'
- 해당그룹 :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SS501, 빅뱅, 원더걸스, 카라, 소녀시대 등
- 3세대 (2010년대 이후) -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플랫폼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인터넷의 영향력이 TV와 대등해짐(인터넷에서 화제가되어 TV에 출연하게되는 사례들), 인터넷방송(V앱, 아프리카TV) 활성화(거의 매주 방송), 아이돌시스템의 완성, 단독버라이어티 보편화, 연습생의 미디어출연, 데뷔초부터 해외팬들의 주목(2세대 덕분)
- 해당그룹 : exo, 레드벨벳, WINNER, iKON, GOT7,TWICE, 여자친구 등
- 1세대 (1990년대까지) - TV, 라디오를 중심으로 활동, 일방향 소통, 허술한시스템, 팬덤문화탄생
어떠한 특징은 앞세대에도 있던거라고 한다면 부정할순 없겠지만,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라는 말을 곰곰히 생각해주길 바란다. 널리 퍼지지않아 보편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세대의 특징, 아이콘으로 표현할수 있을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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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AM의 조진수가 이 그룹으로 데뷔했었다.
- ↑ 사실상 대한민국 아이돌계를 비롯한 대중가요계의 레전드이자 최종보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영원한 우상이자 아이콘같은 위치였다.
- ↑ 드렁큰타이거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탄 때는 1999년 1집 정규 앨범 이후부터다.
- ↑ 배우 이혜영이 '로미'라는 이름으로 데뷔했었다. 해체 이후로는 윤현숙과 같이 여성 듀오 '코코'에서도 활동했다.
- ↑ 1994년에 데뷔를 했지만, 당시 음악적 스타일은 어설픈 힙합 스타일로 완전 딴판이었던데다 여자 멤버 또한 당시에는 유리가 아닌 유채영이었다. 그리고, 유채영이 쿨에서 탈퇴를 하고 1995년 그룹 US에서 활동했으며, 나중에 솔로로 다시 데뷔한다. 그리고, 영입된 유리가 활동하는 시점인 1996년부터 지금의 쿨의 음악적 이미지를 갖췄고, 1세대 아이돌 시대부터 큰 인기를 얻으면서 활동했다.
- ↑ 김준희, 원투 오창훈이 당시 활동했던 혼성듀오.
- ↑ 김승진과 박혜성은 1980년대 여학생들의 우상으로 군림했으며, 남성 솔로 "하이틴 스타"의 원조격으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었다. (물론, 남진과 나훈아가 라이벌 구도이긴 했지만...) 영화 품행제로에서도 "이 둘 중에 누가 더 멋있냐?"라면서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 ↑ 못 믿겠지만 무한궤도 때와 솔로활동을 할 때만 해도 거의 아이돌 포지션에 가까웠다. 물론, 신해철 본인은 이 시절을 흑역사 아닌 흑역사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팬들은 넥스트 때보다 이 때의 신해철을 더 좋아한다는 게 함정(...)이다.
- ↑ 한창 절정의 인기를 자랑하던 시기에는 사실상 아이돌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10대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었고, 당시의 1990년대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도 장난아니었던 시기였다.
- ↑ 실질적인 음악활동은 1987~88년부터. 작곡가▶아이돌(...) 루트를 탄 거의 유일무이한 케이스다.
- ↑ 김민종은 가수 데뷔 이전부터 탤런트로 유명했지만, 발라드 가수로도 같이 활동했으며 히트곡도 많이 남겼다. 발라드 장르로서는 신승훈이나 이승환 정도는 아니지만 가수로서도 존재감이 컸고 가요계에 큰 족적을 남겼던 케이스다.
- ↑ 박진영은 데뷔 컨셉부터 현재까지 10대보다 노골적으로 20대 이상을 노리는 컨셉이다.
- ↑ 1997년 가을, 김경호는 2집 후속곡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다만, 김경호는 아이돌적인 요소보다 아티스트적인 면이 강했다.
- ↑ 1995년, 1집 앨범 "이미 나에게로" 타이틀곡으로 데뷔를 했지만 실질적인 메가 히트곡의 시대가 스티브 유나 H.O.T, 그리고 발라드의 황태자 조성모가 활약했던 시기가 겹친다. 물론, 임창정은 아이돌 컨셉이 아니라 이미 영화배우로 유명했으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데뷔를 했지만 10대 소년들을 비롯한 소녀팬들도 정말 많았었다. 1세대 아이돌이 피터지게 경쟁하던 시절이었던 1997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3집 앨범의 '그때 또 다시'가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여 상반기 골든컵을 거머쥐게 되고, 하반기에 '결혼해줘'로 다시 한 번 골든컵을 타게 되면서 한 해에 단일 앨범의 수록곡들로 골든컵을 두 번씩이나 수상하는 진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그리고 1997년 KBS 가요대상을 거머쥔다. 실제로 1위곡을 두번 연속으로 차지한 골든컵의 기록을 보유한 가수들로는 임창정 이외에 조용필, 박남정, 김민우, 변진섭, 서태지와 아이들 등이 있다.
- ↑ 물론, 엄정화는 1993년에 이미 가수로 데뷔를 했었고, 이미 탤런트나 영화배우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가수로 활약했던 리즈 시절 히트곡의 시대는 1990년대 중후반이었다. 그 유명한 1997년 3집의 배반의 장미, 4집의 포이즌부터 5집의 몰라, 페스티벌 등으로 연달아 히트곡을 냈다. 오히려 다나, 하늘같은 아이돌 가수보다 실질적인 여자 싱글 가수로서 톱을 차지했던 가수는 역시 엄정화, 김현정, 박지윤, 이정현, 백지영, 채정안이었다.
- ↑ 1994년 1집 LEE YE RIN을 통해 가수로 데뷔했다. 당시는 아이돌적인 컨셉도 있었고 타겟을 10대보다는 20대 이상을 노렸다. 이 당시는 청순녀 컨셉으로 발랄한 미드 템포의 포크 곡 '포플러 나무 아래'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냥 반응만 있었을 뿐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1996년 2집 때 머리를 숏컷으로 자르고 컨셉을 섹시 노선으로 변경한 뒤 발표한 2집 Impression의 타이틀곡 '늘 지금처럼'이 대박이 터졌다. 노래 자체도 좋았지만 이예린의 골반 댄스가 제대로 먹혔었다. 대한민국 여가수의 섹시 컨셉 전환의 대표적 성공사례다. 3집 용서, 4집 변심등의 댄스곡으로 인기를 끌었고 2003년까지 활동하다가 소속사 문제 등으로 오랫동안 공백기를 가졌다. 2007년에 싱글을 발표했지만, 2008년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재즈를 공부했다. 2011년에 귀국한 후에는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다.
- ↑ 1970년대 후반 디스코 열풍이 저물면서 이를 대체할 뉴에이지 등 다양한 장르가 등장했다. 특히 해당시기 MTV의 등장으로 영미권에서도 비주얼이 중심이 된 아이돌 음악이 융성하기 시작했다.
video kills the radio star - ↑ touch by touch의 조이, atlantis is calling의 모던 토킹, bambina의 데이비드 라임. 영미권에서는 전혀 인지도가 없으며 유럽 일부지역에서만 인기였었다. 물론 유로댄스는 80년대 전반 국내에서 대유행했다. words의 F.R. 데이비드, I like chopin의 가제보 등.
- ↑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냥 나에게 맡겨 주세요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나는 모든 것 책임질 수 있어요 사랑하는 부모님 부모님은 나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원하셨어요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따라야 했었지요 가지 말라는 곳에는 가지 않았고 하지 말라는 일은 삼가 했기에 언제나 나는 얌전하다고 칭찬받는 아이였지요 그것이 기쁘셨나요 화초처럼 기르시면서 부모님의 뜻대로 된다고 생각 하셨나요 부모님은 사랑을 다 주셨지만 나는 아직도 아쉬워 하는데 이렇게 그늘진 나의 마음을 그냥 버려 두지 마세요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냥 나에게 맡겨 주세요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나는 모든 것 책임질 수 있어요
- ↑ 대표적으로,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와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가는 길에 기차와 버스 안에서 영미권의 영향력이 컸던 시대에 맞는 팝송을 부르고 경쾌한 댄스 곡에 맞춰서 춤을 추는 장기자랑을 하는 것이 당시의 상황에 맞는 고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386세대 중에서 춤 좀 춘다는 사람들은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흉내내보지 않은 사람 거의 없었다.
- ↑ 물론, 락의 역사는 1980년대 이전에도 있었지만 대대적으로 정부의 탄압을 당했던 암흑기였다.
- ↑ 이게 코메디인게, 서정적인 샹송 정도나 어울린다고 생각한 프랑스어 노래도 국내에서 프랑스어로 된 랩 음악인 debut de soiree의 nuit de folie가 이미 80년대 후반 클럽에서 대 유행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일본어로 된 랩이 있는 쿠보다 토시노부의 TIMEシャワーに射たれて도 국내에서 암암리에 유행했었다. 당대 프로듀서들이 뭘 몰라도 너무 몰랐던가, 아니면 높은 사람들의 검열을 뚫을 수 없어 그렇게 말했던 것.
- ↑ 이 부분은 약간 후대에서 뭘 모르고 멋대로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80년대는 비교적 여러 장르의 음악이 유행했지만, 대부분의 가수들은 옛날 경향대로 아름다운 노랫말을 또렷하게 부르는 경향이 있었다. 시나위나 들국화 같은 80년대 중반의 일부 락스타들이 이상한 발음을 활용하긴 했지만 대중음악 전체로 볼 때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79년에 데뷔한 송골매의 경우만 해도 구창모나 배철수 모두 상당히 또렷한 발음을 구사했고, 여타 대중가요나 변진섭이 날아다니던 발라드, 마지막 맹위를 떨치던 민중가요 등과 비교하면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인 것이다. 서태지가 랩을 하려고 괜히 몇 달간 골방에 처박혀 사식처럼 들여다주는 밥먹으며 연구했던 것이 아니다. 프랑스어는 당연히 영어랑 훨씬 비슷한 언어고, 일본어는 평탄어가 아니라 억양이 분명히 있다. 난 알아요의 랩은 잘 들어보면 한국말이면서도 약간 교포처럼 억양이 희한, 혹은 뚜렷한 것을 알 수 있다. 서태지에 뒤이어 나온 거목인 듀스만 해도 억양 자체는 대단히 평탄해서 마치 나레이션을 방불케 하지만, 초보적인 각운이 있고 평탄하나마 가사가 리듬에 딱딱 맞춰가거나 괜찮게 엇박을 타는 부분도 있어서 랩이 성립된다. HOT나 젝키의 랩도 들어 보면 노래 못하는 70년대 출생자 멤버를 대강 랩으로 돌린 것이기 때문에 그나마 외국물 좀 먹어본 은지원 빼면 가관도 아니다. 무한도전에서 이재진이 랩을 바비 킴이 짜줬다고 고백해 주는 바람에 대강 바비 킴의 원형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어쨌든 한국어로 랩을 못한다고 하는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평론가들이 괜히 했던 얘기가 아니라는 것.
- ↑ 사실 지금 아시아 지역에서 인기를 끄는 K-POP의 성공 배경 역시 30년전의 한국 상황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으로 10~20대들은 새로운 음악을 원하고 있었지만, 각국의 사정으로 자국 내에서 그러한 컨텐츠를 만들어 낼 역량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공백을 K-POP이 뚫고 있는 것이다. 당장에 국내 3대 기획사(SM, YG, JYP) 수장부터가 80년대 중후반 10~20대 시절 국내의 문화컨텐츠가 부족했던 시절을 직접적으로 겪었던 세대였다.
답답해서 내가 만든다. 그 결과가 지금 아시아를 휩쓰는 케이팝..... - ↑ NKOB는 90년대에 국내에서 대 유행했으며 이 여파로 1992년 내한공연까지 했다. 참고로 국내 엔터사가 공연장 관리를 개판으로 해서 관객 중 사망자가 나왔다. 당연 당시 주류 언론에서는 공연장 관리 이야기 보다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공연장에 드나드는 10대들이 이상하다 같은 뉘앙스의 언론보도가 대부분이였다. 지금 와서 보면 대중문화의 발전이니 뭐니 하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얘기다. 도시에서 자란 친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하는 것이 이 시대 청소년들이고, 부모 세대는 대부분 시골에서 자랐고 서울도 일부를 제외하면 뭐 대단히 번화하진 않았다. 당시 부모 세대는 공동체 문화를 위주로 열심히 일해서 잘 살기 시작했고 더욱 나라를 잘 살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고 형누나 세대는 옳은 가치인 민주화와 독재 타도에 한 몸 바쳤으니, 대중가수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이 세대 청소년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일지도 이해할 만하다. 반면 이 시대의 청소년들이야말로 본격적인 서구인, 도시인, 대한민국의 시민이다. - ↑ 김완선은 2011년 활동을 재개하면서 출연한 프로그램 등에서 혹독한 감금훈련, 13년동안의 노예같은 생활 등 많은 일화를 공개했다. 문나이트 출신들이었기 때문에 교류하기에도 수월했다.
- ↑ 이전에는 컴백, 휴식기 같은 개념이 없었다. 트로트 같은 경우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한 번 신곡을 내면 몇 년 동안 쉬지 않고 활동한다.
- ↑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였던 양현석은 YG 엔터테인먼트를 창립하고 아이돌 후배가수들을 키우면서 거대한 회사로 성장시키는 성공적인 음반기획자가 되었다. 여러모로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레전드인 셈이다.
- ↑ 이 경우엔 가수와 배우를 모두 포함.
- ↑ 1996년 상반기까지는 H.O.T. 이후의 90년대 후반 가요계보단 90년대 초중반 가요계의 연장선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1996년 하반기야말로 일종의 과도기였던 셈.
- ↑ 보아가 데뷔한 2000년부터 음반 시장이 급격하게 축소될 2002년까지는 1세대 아이돌 이전의 선배 가수들과 1세대 아이돌 출신 그룹의 영향력이 황혼기로써 여전히 존속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주역이었던 S.E.S의 해체 시기와 핑클의 활동 중단 시기를 마지막 연도로 구분한다.
- ↑ 대중적인 영향력은 1997년 초부터 해당된다. 1996년엔 김건모, 클론, 솔리드 등의 선배 가수들이 H.O.T.와 비교도 안 될만큼 훨씬 더 많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H.O.T.를 비롯한 아이돌 그룹들이 대중가요계를 이끌게 될 줄은 아직까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 했을 시절이다. 종종 서태지와 아이들과 비교되는데, 단순 파급력은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더 강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국 아이돌의 시초였고 영향력을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중가요계에 새로운 변화와 쿠데타를 일으켰다면, H.O.T.는 아이돌 전성시대의 왕조를 세웠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 ↑ NRG의 전신으로 이성진, 천명훈이 속한 2인조 남성듀오였다. 당시에는 노유민, 문성훈이 백댄서로 활동했었다.
- ↑ 노정현, 노현정 일란성 쌍둥이로 구성된 듀엣. '대리만족'이라는 노래가 조금 알려지기는 했지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고 몇년 뒤 트로트로 전향했다.
- ↑ 1집이 실패해서 그렇지, 데뷔는 S.E.S., 핑클, 디바보다 먼저 했다.
- ↑ 대한민국 걸그룹 역사에서 거의 유일한 걸밴드 컨셉으로 데뷔했다.
- ↑ 대한민국 사상 최초 다국적 걸그룹이다. 당시 이지현, 한보람이 소속되었던 팀이다.
- ↑ 이켠이 속해있던 혼성그룹으로 쿨과 비슷한 이유로 1997년부터 점점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 ↑ 1996년에 모기야, 우울한 우연이라는 곡을 불렀다. 이 중 우울한 우연은 베이비 복스가 나중에 리메이크해서 유명해졌다. 본래 3인조로 데뷔했었지만 후에 5인조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강원래의 배우자로 유명한 김송이 과거 소속되었던 혼성 그룹으로만 기억할 뿐.
- ↑ 비록 아이돌적인 요소는 부족하지만, 10대~20대를 대상으로 강하게 어필하였고 아티스트적인 요소가 강했다. 1집 뿐이었지만 락밴드로서는 드물게 국민적인 히트곡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1990년대 후반 1세대 아이돌 전성시대였기 때문에 사실상 경쟁이 치열한 죽음의 조나 다름없었던 시대에도 데뷔곡 '16/20'과 '나는 나'가 가요차트에서 1위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모던 락의 붐을 지속적으로 일으킨 선구적인 공로가 인정된다. 실제로, 해외에서도 주주클럽의 곡을 리메이크한 사례가 많다.
- ↑ 공전절후의 히트곡 기다려 늑대를 부른 가수다.
- ↑ 발라드 가수지만 프로듀서가 아이돌 프로듀서였기 때문에 리즈시절에는 아이돌 가수와 유사한 방식의 활동을 했다.
- ↑ 혼성그룹 쿨 출신이었다.
- ↑ 백지영은 1999년 데뷔 1집보다, 2000년에 들어서 전성기를 맞는다. 2001년 이후 침체기를 겪다가 5년 후에 복귀했다.
- ↑ 데뷔는 1999년이었지만, 이수영의 실질적인 전성기는 2003~04년이였다. 역시, 아이돌적인 컨셉보다 발라드 가수같은 면이 강했다.
- ↑ 공교롭게도, H.O.T를 비롯한 1세대 아이돌 가수들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하는 1998년부터 가요톱10이 종영하고 뮤직뱅크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 ↑ 1세대 아이돌 중 1군 걸그룹으로 통하는 S.E.S.-핑클의 양강구도로 라이벌이었고, 베이비복스는 사실상 2군 걸그룹으로 군림했지만, 히트곡 수는 이들에게 꿀리지 않았고, 걸그룹 중에서 거의 최초로 섹시컨셉을 시도한 걸그룹이다. 히트곡은 <야야야>, <Change>, <Get Up>, <Killer>, <Missing You>, <Why>, <배신>, <인형>, <우연>, <나 어떡해> 등, 히트곡이 많았다. 현재로 비교하면 전성기 시절의 2NE1 정도로 비슷한 위치였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당시 베이비복스는 2000년 이후 같은 시기에 활동한 샤크라나 디바, 클레오등과는 크게 격차를 가지고 있었으며 팬덤이나 대중성, 음반 판매량 역시 S.E.S. 핑클을 바로 이어서 항상 3위를 기록했었다. 그야말로 라이벌이 없는 걸그룹계의 3인자였다. 또한, 총 음반 판매량이 100만장을 돌파한 몇 안되는 걸그룹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역대 걸그룹 총합 판매량 4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1위는 S.E.S, 2위는 소녀시대, 3위는 핑클이다.
- ↑ 국민학교는 1995년 명칭이 폐지된다. 다만, 시기상으로 완전히 폐지가 된 것은 사실상 1996년 3월 1일 부터다. 1986년생은 초등 3학년까지는 국민학교였다가, 4학년이 되어서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보다 2살 어린 1988년생은 국민학교의 마지막 입학세대였다.
- ↑ 참고로 중학교 의무교육시작, 중학교 7차교육과정은 2002년 1989년생부터 시작되었다. 2004년 1989년생들이 중3 무렵에 중학교 의무교육과정, 7차 교육과정이 완료되었다.
- ↑ 당시의 초등학교 고학년~중고생들도 성인들 못지않게,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되었다는 사실에 전국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은 똑같았다.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 이후 H.O.T는 1996년, 젝스키스는 1997년에 데뷔했다. 비록 H.O.T의 팬들과 젝스키스의 팬들이 서로 반목하는 관계로 유명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하고 H.O.T의 팬들과 젝스키스의 팬들로 서로 갈라졌기 때문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약하던 시기에는 너 나 할것 없이 모두 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 ↑ 이 팀의 멤버인 장해영은 이전에 키드라는 그룹에서 활동한 바 있다.
- ↑ 원티드 김재석이 당시 활동했었다.
- ↑ 정식 데뷔는 2004년
-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집 타이틀곡 One Love가 펌프 잇 업 EXCEED에 수록된 적이 있다.
- ↑ 강성진의 아내인 이현영이 당시 활동했었다.
- ↑ 립싱크로 인한 부작용이 해체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 걸그룹으로 이후로 립싱크 무대는 전멸하게 된다,
- ↑ 트로트 가수 연지후가 속해 있었던 걸그룹
- ↑ 배우 박하나가 당시 활동했었다.
- ↑ 사실, 성시경이나 싸이는 아이돌로 생각하기에는 살짝 부족하고, 아티스트적인 면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10~20대를 타겟으로 하는 음악들을 많이 냈고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 ↑ 이글파이브 출신 론은 유승준을 닮아 당시 제 2의 유승준으로 불렸다.
- ↑ 솔로 이전에 남성그룹 세븐데이즈의 멤버로 먼저 데뷔한 바 있다.
- ↑ 듀스의 명곡으로 유명한 '여름안에서'를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 ↑ 일본의 ZARD처럼 초기에는 혼성밴드였으나 나중에는 여성보컬 1인 체제이자 여성 솔로 가수로 변경되었다.
- ↑ 인기댄스그룹 '젝스키스' 해체 발표
- ↑ 사실, 1세대 아이돌 전성시대로 유명했던 1990년대에 나왔던 노래들이 1세대 아이돌 데뷔 이전 시대보다 상대적으로 가창력을 비롯해서 음악성이 저평가를 받는 감이 있지만, 그 시절에도 음악성이나 가창력이 뛰어났던 가수들은 많았다. 얀, 야다, 플라워, 김상민, 이브, 김경호, 박완규, 더 크로스 등등... 이 때 당시 유명해졌던 명곡들은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 ↑ 미디엄템포 R&B는 아니지만 미디엄템포 자체는 혼성그룹 쿨의 정규 5집 수록곡이자 응답하라 1997의 메인 OST의 원곡이었던 All For You도 해당된다.
- ↑ 댄스그룹 H.O.T 해체됐다... 장우혁등 3인 소속사 옮겨
- ↑ 원래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아이돌로 데뷔했으나 독자노선을 걷게 되면서 스스로 R&B 보컬그룹으로 성격을 전환했다. 후일의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는 정반대의 케이스다.
- ↑ 물론, 블랙비트 등 보이밴드도 실패한 것은 사실이긴 하다. 이 시기는 이수만이 경영에서 손을 떼던 시기였는데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 ↑ 사실, 버즈는 아이돌로 보는 시각과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갈린다. 하지만, 버즈는 스스로 아이돌을 자처하지 않았으며 보컬리스트 민경훈이 잘생긴 외모로 마치 조성모처럼 아이돌과 비슷한 방식의 인기를 얻긴 했지만 아이돌과 같은 팬덤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또한, 보컬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별로 각광받지 못했으며 밴드의 구성을 취하고는 있지만 2집의 대히트 이후 사실상 SG워너비나 김종국 등의 당시 인기 발라드 가수들과 비슷한 테크를 타면서 활동을 했다. 그리고, 창법은 당시 유행했던 소몰이창법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나중에 버즈가 잠정 해체된 이유도 본인들이 하고 싶은 형태의 활동보다 아이돌과 비슷한 방식의 활동들을 강요당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했다. 해당 문서 참조.
- ↑ DSP에서 동방신기의 대항마로 내놓은 보이밴드로 김현중이 이쪽 출신이다. 전성기 시절은 동방신기에 못지 않게 많은 인기를 누렸다.
- ↑ 국내에서의 인기는 그저 그랬지만 아시아권에서는 꽤 인기가 있었다.
- ↑ 이 시기는 이효리와 비가 가요대상을 탔을 때였다. 그런데, 앨범 판매가 다른 전성기를 차지했던 가수들보다 판매량이 낮았기 때문에 당연히 대중들의 반응은 "왜 이효리나 비가 대상을 했지? 미쳤냐?"라는 반응도 많았다. 심지어 이효리가 없는 가수 시상식이 열린다고 말이 많았던 때였다.
- ↑ 대표적으로 버즈 역시 발라드 계열의 노래로 득세했기 때문에 이들과 같이 엮여서 취급받는 경우가 많으나 버즈는 어디까지나 군입대로 인해 해체한 것이지, 이들처럼 약빨이 다 되어 몰락했다고 보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면 테이의 공전의 히트곡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와 버즈의 '겁쟁이'의 지금 위상을 생각해보자. 현재에도 노래방 애창곡 순위에서 버즈의 겁쟁이가 압도적으로 우세를 차지하고 있으며 테이의 노래와 비교를 해도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난다.
- ↑ 배슬기, 오승은, 추소영이 속한 걸그룹.
- ↑ 투야 출신 안진경과 양미라 동생 양은지가 당시 활동했었다.
- ↑ 국내 정식 데뷔는 이보다 2년 뒤인 2006년이다.
- ↑ 데뷔 시기는 2003년 말~2004년 초부터였지만 후배 아이돌 그룹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2008년에도 4집 활동을 통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줬다.
- ↑ 싱글 2집 스노우 프린스가 대박을 쳤고 2007년에는 정규1집 4CHANCE로 지상파 첫 1위를 하였으며 특히 암욜맨으로 활동당시 아이돌 유닛 최초로 1위를 했다.
- ↑ 2집 활동하면서 그나마 두각을 드러내고 2009년 3집 활동에서 전성기를 맞이하는 등 2007년 이후에 데뷔한 후배 아이돌 못지 않는 영향력을 지녔다.
- ↑ 2006년 싱글 LaLaLa로 데뷔(정규앨범은 Dirty Cash)한 후, 2007년에 낸 미니 1집 Always의 타이틀 거짓말이 전국적인 대히트를 치고 연타로 연말에 마지막 인사, 이듬해부터 하루하루, 천국, 붉은 노을 등을 제대로 히트시키며 자리를 굳혔다.
- ↑ 먼저 데뷔한 빅뱅보단 영향력이 낮지만 2007년 당시 데뷔한 남성 아이돌 그룹 중에 유일하게 성공적으로 데뷔한 그룹이었기 때문에 차세대 아이돌 시장의 자리를 어느 정도 선점할 수 있었다.
- ↑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소녀시대-Kissing you로 빅뱅과 원더걸스 사이에서 존재감을 알린 뒤, Gee로 입지를 굳혔다. 특히 Gee는 앞으로의 아이돌 시장 트렌드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 ↑ 2007년 싱글로 데뷔 후, Tell Me-So hot-Nobody 3연타로 2007~8년도의 가요계를 휩쓸었다. 이 당시만으로는 소녀시대를 압도하고 빅뱅, 심지어 동방신기와도 음원 판매량만으로 압도할 정도.
- ↑ 김성희의 탈퇴 이후 낸 Rock You가 좋은 반응을 얻고, Pretty Girl에서 카밀리아의 고무장갑 응원을 비롯한 열정적인 서폿, 인지도 급상승으로 Honey를 통해 자리를 매김했다.
- ↑ 완전한 아이돌 컨셉이라기 보단 가창력으로 승부를 보는 발라드 가수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 남성 듀엣으로 따지면 지금의 플라이투더스카이와 그나마 가장 가까운 격.
- ↑ JYJ 김재중의 고향 친구.
- ↑ 비스트 이기광이 과거 예명으로 잠시 활동했었다.
- ↑ 당시 제 2의 비로 불렸다.
- ↑ 여러가지 의미로 대한민국 아이돌 역사에서
충격과 공포의한 획을 그었던 가수였는데, 걸그룹 전성시대에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주목받기도 힘들 것이다. 자세한 것은 직접 항목을 확인해보자. - ↑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빅뱅, 지드래곤, 샤이니, 인피니트, 비스트가 10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버스커버스커가 비 아이돌 가수로는 유일하게 10만장을 넘겼다. 가온 차트 기준으로는 싸이도 10만장을 넘겼다.
- ↑ 2012년 들어서 버스커 버스커 외에도 나얼 등이 비아이돌로서는 상당한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 ↑ 참고로 여기서 음반형 아이돌과 음원형 아이돌의 구분은 그 아이돌의 음악성과는 전혀 무관하므로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대중 공략에 유리한 음악과 음악성이 높은 음악과는 (오히려 반비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 특히 후크송이 범람하고 쉽고 짧고 강렬한 반복소절로 수초안에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걸 목표로 하는 노래들이 대부분인 요즈음의 가요시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미국 빌보드에서 'K-pop이 지닌 혁신을 증명했다'며 '2012년 최고의 K-pop'으로 꼽은 곡은 인피니트의 "추격자"였다. 앨범형 아이돌의 경우 팬들의 고정 수요가 보장되기에 음악성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으며, 특히 타이틀 곡보다 부담이 적은 앨범 수록곡에서 음악성에 집중한 곡 선정이 가능하기도 하다. 물론 이것도 항상 그런것은 당연히 아니다. 형편없는 곡으로 트랙 개수만 채워서 앨범이라고 내놓는 그룹도 있다. 물론 이런 그룹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지만 말이다.
- ↑ 소위 1군 보이 그룹으로 평가 받으려면 팬덤 뿐만 아니라 음원 성적도 받쳐 줘야 한다.
- ↑ 이 쪽도 보이 그룹보단 덜 하지만 1군으로 평가 받으려면 어느 정도의 팬덤은 받쳐 줘야 한다.
- ↑ 멜론 같은 음원 사이트 연간 차트에 들지 못했을 때
- ↑ 단 빅뱅은 2007년부터 일본진출을 했다. 싱글(How Gee, With U) 등을 내고 일본 언더에서부터 데뷔해 시장을 개척했고, 이때부터 팬이 된 일본 팬들도 상당수다.
- ↑ 여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방송사한테 밉보이기 때문에 많은 기획사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해외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
- ↑ 성룡이 제작한 보이그룹.
- ↑ 보이그룹의 경우, 그룹 자체가 내리막이어도 팬들의 충성도가 강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JYJ.
- ↑ 하지만 그만큼 작곡가와 안무가, 뮤직비디오 감독 등 제작팀들의 역량이 쌓이면서 3세대보다 더욱 음악적 퀄리티가 높아지고, 질 좋은 K-POP을 즐길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디지페디, 손성득, 이기용배, SM의 해외 작곡팀들과 같은 새로운 스타 제작진들도 탄생했다.
- ↑ 2016년 초 여자친구가 '시간을 달려서'로 음악방송 1위 15회를, 이후 7월 경 '너 그리고 나'로 음악방송 1위 14회를 차지했다. 마마무 역시 2016년 전반기에 '넌 is 뭔들'로 음악방송 1위 8회를 차지했다. 트와이스는 음악방송 1위 11회 및 뮤직뱅크 5주 1위 등의 기염을 토해냈다.
- ↑ 사실 이 그룹들은 음원 쪽에서 롱런하며 자존심을 지키고 있던 그룹들이다. 다만 음악방송 1위라는 상징적 의미, 그것도 폭발적인 인기를 보여줬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 ↑ 이를 보여주는 예가 WINNER가 연초에 여자친구 신드롬에 밀려 음악방송 1위 1회에 그친 것.
- ↑ 2005년 이후 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