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tenance script (토론 | 기여) |
(차이 없음)
|
2017년 2월 2일 (목) 12:22 기준 최신판
{{틀:다른 뜻2| other1=이 말의 어원이 된 13세기의 사건| rd1=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 other2=동음이의어·다의어| rd2=카미카제(동음이의어)}}
목차
1 개요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인류 역사상 가장 비상식적인, 국가 레벨에서 한 전면전에서의 대규모 자폭명령 및 시스템
귀중한 파일럿[1]과 전투기만 낭비시킨 일본 제국의 희대의 삽질
Kamikaze, カミカゼ, 神風[2]
파일:Attachment/alba04200910201736380.jpg
파일:Attachment/japanese-holdout-1.jpg
출전하기 전 신사에 참배하는 카미카제 대원들.
#
카미카제 영상
神風. Kamikaze 또는 Divine Wind. 일본어로는 글자 그대로 신풍(신푸), 즉 신바람'신의 바람'이라는 뜻이다. 본래 정식 명칭은 신푸톳코타이(神風特攻隊, 신풍특공대)이다. 神風를 음독한 것이 '신푸'이고 훈독한 것이 '카미카제'인데[3] 어떤 미국 기자가 어설픈 일본어 실력으로 카미카제 특공대라고 읽고 그렇게 써버려서 저 이름이 더 유명하게 알려졌고 나중에는 일본 뉴스의 내레이션에서도 '카미카제' 라고 읽게 되어 'Kamikaze' 로 정착되었다. 그 뒤로 Kamikaze는 자살공격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게 되었다. 대한민국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비꼬는 말로 '병신바람 특공대'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선 뒤의 카제까지 탁음을 붙인 가미가제라는 표기로도 알려져있다. 이 카미카제만을 전술로 삼아 발족한 부대가 바로 저 유명한 카미카제 특공대(神風特攻隊). 요즈음의 일본 창작물에서 특공(特攻)이 곧 자폭 공격을 의미하는 것은 대부분 이것의 영향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구사한 자폭 전술. 자살폭탄공격의 최종형이자 항공기 자살돌격이 아닌 자살폭탄공격의 시초. 미군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여 일본어 단어임에도 당당하게 영어권 사전에 등재되는 비범함을 자랑했지만 실체는 정부가 나서서 주도한 강제 인간폭탄, 혹은 행정살인에 불과하다.
비슷한 전술로는 반자이 어택이 있다. 반자이 어택은 근접 총검 돌격이라는 점은 우라돌격과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개념부터 다르며[4] 수준면에서 차원이 다른 전술이다. 무엇보다도, 1) 국가가 주도하여 조직한 2) 전체주의 인간폭탄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어떤 사례와도 다른 악랄한 의미를 지닌다. 게다가 다른 전투 행위와는 달리, 충분히 교육받은 엘리트인 조종사들을 단순폭탄으로 소모한다는 점에서, 전쟁의 역사를 통째로 역행하는 막장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심지어 제대로 미친 걸로 유명한 그 초막장 일본군부 내부에서조차도 처음 카미카제 특공에 대한 작전 계획을 받아들고는 "이게 무슨 미친 짓이냐! 말도 안 된다!!"고 따질 지경이었으니 말 다 했다. 인명경시라는 윤리적 문제도 문제지만 그 이전에 효율이... 파일럿+전투기라는 인적, 물적 자원을 철통에 폭약 채운 폭탄 하나 취급한 거다. 전투기가 있으면 폭탄을 몇 번도 떨굴 수 있고 적 전투기/폭격기 상대로 공중전도 할 수 있는데 그걸 일회용 유인유도 폭탄으로 사용하겠다니... 오죽했으면 일본의 만행을 은폐했던 사카이 사부로 조차도, 카미카제에 대해선 신랄하게 비난했으며 전후 대놓고 대본영에게 개X끼들이라고 일침을 가했을 정도였겠는가? 게다가 이와모토 테츠조 같은 사람은 아예 대놓고 항명까지 했을 정도이며, 생존한 특공대원들도 국가가 강제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자폭했던 특공대원들이 남긴 유서도 국가에 대한 원망 혹은 조롱조가 강했다.
즉,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어차피 위험한 상황이라면 자폭으로나마 더 큰 피해를 주자"가 아닌, 군에서 자폭만을 위한 훈련을 시키고 전쟁터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전투기로 자폭 공격하여 목숨을 일회용품처럼 버리게 하는 것이다.
2 유래
몽골,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이 주도한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에서 이들이 바다를 건너오던 중 태풍에 싹 쓸려버린 것을 말 그대로 신의 가호라고 생각해서[5] 생겨난 말로 두 번에 걸친 원정 모두 이 태풍 때문에 개작살났다. 물론 일본 역시 거세게 저항했지만, 사실은 기후+멍청한 원나라의 병크가 더 컸다.
여기에 원나라의 원정군이 엿먹길 원했던 고려의 음모가 숨어있었다는 설도 있다. 굳이 태풍이 있는 늦여름에 대규모 함대를 보냈다는 무리수 때문인데, 실제로 일본 정벌을 위한 선박 건조 등 온갖 뒤치닥거리를 담당한 것은 고려였으며 이에 대한 원한이 꽤나 깊던 상태. 그나마 고려군은 생존률이 높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꽤 훌륭한(?) 음모론이다. 한편 원나라 쪽도 노리고 출전시켰다는 음모론으로는, 10만이나 되는 남송의 잔당군을 원정에 보낸 것으로 보건대 귀찮아서 처리하기 곤란한 남송 잔당을 태풍을 빌어 고기밥으로 던져준 것이 아닌가 하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음모론이며, 실제로는 시급한 정벌 일정에 맞춰 독촉된 무리한 건조로 인하여 선박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명분도 실리도 없이 억지로 남의 나라 전쟁에 동원된 양산형 공밀레의 최후.
일본은 이 사건 이후로 오랫동안 "일본은 신이 지켜주는 나라다!"라면서 자축했지만, 정작 그 시발점인 당시 가마쿠라 정권은 침략이 아니라 방어전인 만큼 몽골&고려 연합군과 싸운 무사와 영주들에게 별다른 봉토를 내려줄 수 없어서 무사나 영주들의 불만이 쌓이다 보니 얼마 안 지나서 몰락했다.
징기스칸 4에서는 한반도나 중국 대륙에서 일본으로 쳐들어갈 때 가끔 걸리는 재해로 여기 걸리면 병사는 사실상 모두 전멸하는 끔찍한 재해이다. 일본으로 하면 훌륭한 방어막이나 발동 조건이 우연이라서 일정하지 않고 무엇보다 가끔이라 그렇게 유용하지는 않다. 사실 쳐들어가는 입장에서도 여름만 피해서 일본에 쳐들어가면 되고 여름에 쳐들어가더라도 병사들을 물 위에 띄우지만 않으면 그만이다.
(한반도 남부나 대마도에 한번 들르면 물 위에서 턴을 마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 이름을 자폭공격작전에 붙임으로서 현대적인 최악의 막장 카미카제가 탄생하게 된다.
3 상세
카미카제는 전쟁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미사일이었다. 유도장치 역할은 조국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고 나선 파일럿이 맡았다. 사실 카미카제의 작전 성공률은 지극히 낮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적에게 겁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또한 눈에 보이는 성과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이들이 자아내는 공포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영국 크롬웰 프로덕션, <2차대전사> '항공모함전' 편.[6]
아직까지도 이들 카미카제 조종사들을 광신적인 국수주의자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애국심보다는 그저 의무감과 강요에 못이겨서 어쩔 수 없이 출격했다.- 히스토리 채널, <컬러로 보는 2차대전사> '항공모함과 카미카제' 편
4 시작
병사 개인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차피 죽을 거 너 죽고 나 죽자식 자포자기 자살공격 사례는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태평양 전쟁을 예로 들면, 진주만 공습 당시 일본 해군 조종사 이이다 후사타 대위가 탑승기가 피탄당하자 미 해군 항공대 기지 격납고를 향해 돌진한 사례가 있다. 결국 실패하고 땅에 처박혔지만, 전사한 이이다 대위는 그의 기체 추락을 목격한 미군들에 의해 용맹한 적으로 인정받아 비교적 정중히 장사 지내졌다. 애초부터 죽으려는 미친 놈이 아니라, 어차피 기체 피탄으로 살 가능성이 없던 와중에 최후의 수단으로 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적군인 미군에게도 인정받은 것이며, 이런 식의 최후의 자폭은 어느 문화권에서도 용맹한 죽음으로 칭송된다. 비슷한 예로 산타크루즈 해전 당시 일본군의 급강하폭격기가 비행불능 상태에 빠지자 호넷에 돌진해 함교에 화재를 일으킨 사례도 있다. 마찬가지로 미드웨이 해전 때 요크타운에 돌진한 사례가 있다고는 하는데, 이는 정작 미군 측에선 기록이 없어서 불분명한 편(일본함대 공습에 나섰던 미군 B 25 중 한대가 격추되면서 일본군 기함 아카기의 함교에 충돌할 뻔 했다는 증언이 있으나 조종사의 자폭 시도였는지는 불명)자세한 것은 미드웨이 해전 항목을 참고하기 바란다.
미군도 마찬가지였는데, 미드웨이 해전만 해도 먼저 공격한 미군 뇌격기 부대들은 자신들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돌입했다.[7] 그러나 이러한 뇌격기 편대의 전멸을 각오한 돌입에 일본군 전투기들은 고공을 비워둔 채 저공에 몰려있었고,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들은 아무런 방해 없이 일본 항모를 잡아낼 수 있었다. 후에 뇌격기, 급폭기편대의 시간차 공격이 의도된 것이었냐는 언론의 질문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답하기를 "죽을 것을 알면서 공격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은 없다.자발적으로 돌입한 그들에게 우린 큰 빚을 졌다"라고 술회했다.[8] 군인이 매우 위험하거나 죽을 확률이 높은 작전에 투입되는 것과, 병사를 죽이기 위한 작전에 투입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미군이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이라고 부르는 1944년 6월의 필리핀 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기동부대가 괴멸당한 이후, 일본군 일선 지휘관들은 알아서 부하들에게 자살공격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1944년 7월 21일, 일본의 군령부는 '대해지 제431호' 에 의거하여 특공작전을 정식으로 채용하였으며, 급기야 1944년 10월 5일 군령부는 지시하지는 않겠지만 현장의 자발적 공격은 반대하지 않겠다면서 자살공격을 정식으로 허가했다.
10월 20일에는 최초로 신푸 특별공격대가 편성되었다. 이후에는 아예 카미카제가 주공격이 되고, 기존 전투병기가 호위병력으로 전락한다. 아예 그냥 일단 닥돌해서 죽어야 하는 가이텐, 신요, MXY-7 오카 같은 특공병기를 주력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주로 태평양 전선에서 카미카제가 실시되었으나, 만주 쪽에서도 소련군을 상대로 간간히 실시했다는 말도 있다. 쿠릴 열도에 상륙하는 소련 해군의 상륙정을 대상으로 자폭한 전투기도 있었다고 한다.상륙정 정도면 신참이라도 기총사격으로 충분히 잡을수 있을텐데...
5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생각을 했어요?
어쨌든, 이러한 극단적인 발상을 한 이유는 아래와 같다.
- F6F 헬캣, VT신관을 대표로 하는 연합군(특히 미군) 방공능력의 비약적인 향상. 설상가상으로 여기에 더해 미해군의 방공전술이 무르익어 대공원형진을 내놓게 되면서 더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그 결과 전함 한 척이 수십 대의 일본군 전투기를 가볍게 학살해버리는 참극이 연출되었다.
- 과달카날 전역을 거치면서 조종요원 손실이 계속 늘어난 반면 조종사 양성능력은 당시 다른 참전국들에 비해 상당히 낮았다. 애초에 일본군은 함대결전사상에 취해서 단기결전만을 염두에 둔 전략 때문에 장기적인 조종사 수급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양성기관 수도 적었던 데다 폐쇄적이었고 거기에다 조종 능력과는 상관 없는 사안에도 교육생을 탈락시키는 등의 병크까지 더해졌다.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의 전형. 그런데 이렇게 소수정예로 뽑아놓고서는 정작 일선에서의 발언권은 매우 적었다. 그리고 조종사의 계급을 조종사 지원 전의 계급으로 묶고 진급에도 소태같이 굴었다. 일례로 이와모토 테츠조, 사카이 사부로 같은 에이스 조종사들도 계급은 장교가 아닌 병 계급이었다![9] 조종사의 손실을 키운 간접적인 원인. 덕분에 숙련된 조종사의 보충이 어려웠다.
- 항공기 연료의 품질 악화가 발생했다. 이는 제해권 상실과 더불어 미군 잠수함들의 방해 같은 전황의 악화로 인해 동남아에서의 연료수급사정은 점점 악화되었으므로 송진등을 이용한 대체연료를 사용할 실정이므로 정상적인 연료를 쓸 때보다 엔진 출력도 약하고 자주 꺼지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이런 것은 항공기를 만들 재료에도 적용되므로 전쟁 후반기의 일본군 항공기는 세심하게 만들어도 저질 재료로 인해 상당히 위험했다.
- 설상가상으로 항공기 관련 공업능력이 저하되었다. 여기에는 공장의 숙련공들조차 일선의 총알받이로 보내버린 일본군의 병크도 한 몫 했다.
건설로봇일선 전투원 못지 않게 숙련공의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던 미국과는 아주 대조적인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투기의 설계, 제작이 난항을 거듭하여 원하는 성능을 낼 수 없게 된 것이다.그리고 지금 일본이야 자동화로 유명하다지만 그떄는 프레스기가 없어 쇠깍아 무기 만들었을정도로 자동화 수준이 매우 떨어졌다. 그런 나라에서 숙련공을 갈아먹었다는게 일본군부가 얼마나 전쟁수행에 무지했는지 알수잇는 부분.
- 초기에 밀어넣은 숙련된 베테랑 조종사들이 카미카제를 하면서 제대로 미 함대에 한 방 먹였다. 그래서 일본군 수뇌부는 이게 먹히는 작전인 줄 알고 계속 했는데 문제는 이 짓거리로 숙련된 조종사가 계속 죽어나갔으며 나중에는 갓 징집한 신병한테 꼬라박을 시키는 꼴이 되었다.[10]
결국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군이 품고 있는 부조리함의 결정체. 어찌나 말도 안 되는 작전인지, 처음 작전 계획을 들은 해군 장관부터 어이가 없어서 "이딴 걸 작전이라고 내놨냐?" 고 따졌으며, 첫 카미카제 출격 때는 호위를 요청받은 부대의 지휘관이 그딴 미친 짓에 붙일 호위 따윈 없음이라며 대놓고 씹었다. 기어이 카미카제 전술이 정식으로 채택된 회의에서도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꽤 많은 지휘관들이 반대했으나 전황이 너무나 막장이었던지라 결국 통과되고 말았다고 한다.
더 기가 막힌 점은, 이딴 자폭 행위는 중세 무사도를 기준으로 보아도 가장 금기시하는 행동이었다. 할복이나 옥쇄는 어디까지나 "명예를 택했다면 최후의 한 사람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어라" 였지 목숨은 내다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메이지 시기를 거치면서, 추신구라 같은 광기를 진짜 무사도로 착각한 '사이비 무사'들이 생겨나고, 근대시기에 무사도의 의미가 순수한 인명경시에 대한 경외로 변질되었다. 거기에 더해 자신들의 체통과 보신주의에 목 말랐던 군부는 자폭 행위를 미화하면서 매우 적극적으로 장려했다.[11]
6 반응
6.1 일본인의 반응
전술했다시피 처음에는 천하의 그 일본군부조차도 "이딴 미친 짓을 작전이라고 내놓은 거냐!?"고 따졌다. 당연히 이러한 정신 나간 공격 방법을 모두 찬성한 건 아니라서 일본 에이스 이와모토 테츠조 같은 이들은 카미카제에 대해 강력히 비난했다. 또한 아래 관련 어록 목록의 세키 유키오나 전후의 사카이 사부로처럼 아예 "일본이 드디어 망하려고 작정했구나" 라던가 "대본영은 미친놈들이다"라는 등의 욕을 퍼붓는 경우도 많았다. 그뿐 아니라 카미카제를 보내려 한 상관에게 대놓고 항명까지 하며 자기 부하들에게도 카미카제를 시키지 않은 이와모토 테츠조, 시가 요시오 같은 이들도 있다. 그래서 이들은 그들 자신부터가 카미카제를 미친 짓이라고 봤기 때문에 본인들이 지휘하는 부대에서 부하 개개인이 자의로 하겠다면야 몰라도 절대로 본인들이 나서서 부하들에게 카미카제를 하라고 지시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또 후술하겠지만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 못하면서도 심리적으로 억압되어 자살 임무에 투입하게 된 조종사들도 많았다.
"죽으면 끝이야. 전투기에 오르는 건 '계속 날아올라서' 적기를 격추하기 위해서라고. 난 죽어도 이 전투기에서 싸우다 죽는다."
"카미카제는 일본 고래의 기습작전에 따른 것인데 한 번은 성공하더라도 10개월 동안 몇 번씩 시도하면 어떤 바보가 당하겠습니까? 덴노가 그걸 깨닫고 멈추도록 지시했어야 했습니다."-사카이 사부로가 카미카제에 대해 한 말.
"제가 선두로 출격하죠. 병학교 출신자도 전부 출격시키겠습니다. 예비사관은 출격시켜선 안되겠죠. 겐다 사령관님은 마지막에 와주십시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명령을 내린 사령부의 참모가 저와 함께 선두에서 출격한다면 343 항공대는 하겠습니다."- 필리핀 해 해전으로 해체됐다가 재결성된 343 해군항공대의 비행대장 시가 요시오가 자기 부대에 카미카제 명령이 떨어진 것을 상관인 겐다 미노루로부터 듣고 맹렬히 반발하면서.[12]
"아직까지도 눈을 감으면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눈에 선한데 수많은 제자들이 카미카제 특공대로 끌려갔다. 어째서 일본군 사령부는 그런 어리석은 작전을 10개월이나 지속했는가. 모든 이들이 카미카제에 지원했다지만 죽으라고 보낸 겐다 미노루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살아있다.[13] 모두 거짓말쟁이들이다."-일본군 비행학교 교관이 한 말.
"나 같은 우수한 파일럿을 죽이다니. 일본은 끝장이야.[14] 난 굳이 몸으로 들이받지 않아도 놈들의 갑판에 폭탄을 명중시킬 수 있다고. 난 덴노라든가 일본 제국을 위해서 가는 게 아냐. 사랑하는 내 마누라를 지키기 위해서 가는 거지. 전쟁에서 지면 미국 놈들에게 내 마누라가 강간당할 거 아닌가? 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으러 간다. 어때, 멋지지 않나?"[15]-첫 특공대원 세키 유키오가 기자에게 남긴 말.
"대일본 제국 카미카제 특공대의 일원으로 선발된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짓이고 제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작전이다. 자살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과연 전체주의 국가다운 발상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 일로 반짝 효과를 볼 수는 있겠지만 패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카미카제 특공대원 우메하라 유지가 남긴 유서. 22세의 나이에 전사.
"전쟁 중 [덴노 헤이카 반자이', '대일본제국 만세'를 외치며 죽었다고들 하는데 난 그런 전우는 단 한 명도 보질 못했어요. 모두가 마지막 순간 '오카상'을 외치더군요."[16]-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로센 조종사였던 하라다 가나메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증언.
"그런가? 그러면 저 햇병아리 조종사들을 모두 이와모토 테츠조처럼 슈퍼 에이스로 만든 후 특공시키는 건 어떤가?"-노부히토 대령이 항공군 사령관을 설득할 때 한 말.
"그럼 병력을 소모하는 것밖에 안되잖아."-아키히토 덴노가 전쟁 중 피난처에서 카미카제에 대한 장교의 설명을 듣고 한 말이다. 당시 아키히토는 황태자 신분이었고, 초등학생이었다.[17]
보면 알겠지만, 전쟁 이후 아예 대놓고 대본영을 미친놈들이라고 신랄하게 깠던 사카이 사부로[18], 카미카제 명령을 받고 그걸 씹으면서 자기 부하들에게는 "죽으면 끝이야. 전투기에 오르는 건 '계속 날아올라서' 적기를 격추하기 위해서라고."라 하며 죽어도 카미카제를 시키지 않은 이와모토 테츠조, 뿐만 아니라 특공대원 당사자들조차도 대부분 미친 짓이나 병력만 낭비하는 무의미하기 짝이없는 바보짓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 어린아이도 아는 상식이었으니 말 다했다.
또한 폭탄이나 어뢰를 싣고 가서 평범하게 뇌격이나 급강하 폭격을 한 뒤에 그냥 돌아온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에 정신 나간 대본영과 일선 지휘관들은 "야 이 미친놈아! 가서 죽으라고 보냈더니 살아 돌아와? 그러고도 황군이냐!" 하면서 길길이 갈굼해댔다고. 심지어 계속 돌아오는 파일럿들을 총살시키기도 했다. 덕분에 광기에서 벗어나서 전쟁에 회의를 느낀 파일럿도 있었을 정도. 카미카제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우가키 마토메는 확실하게 명중할 자신이 있으면 그냥 폭격하고 귀환해도 되냐고 부하가 질문하자 "허가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고. 물론 일부 지휘관들은 카미카제가 상식을 초월한 미친 짓임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래, 잘했다" 면서 차마 카미카제를 실패하고 돌아온 이들을 질책할 수는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예외는 있는 법.
물론 지금까지도 논란이 많은 공격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 방법밖에 없었어요. 확실하게 적 함선을 공격하기 위하여 특공으로써 돌입한다, 그것이 베스트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꽤 널리 퍼진 이야기로 '카미카제 대원이 연합군 항모에 착함 후 항복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산호해 해전에서 귀함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 일본군 파일럿이 폭탄을 버린 후 요크타운에 착함해 항복했다는 이야기가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임에도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이 특공대원의 일화는 그냥 소문으로 보인다. 혹시 자료를 찾게 되면 추가바람.
6.2 미국인의 반응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 자기 목숨을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지 말이예요.
조종사라는 고급인력을 무의미하게 소비하다니. 나였으면 그런 명령을 내린 놈을 그 자리에서 쏴 죽였을 것이다.
쪽바리들도 끝이군- 윌리엄 홀시
카미카제 전술은 실패한 전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5천여 명의 군사가 주 목표인 항공모함을 위해 달려들었지만, 정작 항공모함은 1척밖에 격침시키지 못했죠.- 네셔널 지오그래픽 채널 '히틀러의 메가프로젝트, 카미카제 편'[20]
미합중국 해군 장병들도 이러한 비상식적인 전술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카미카제 전술이 등장한 초반에는 '엔진이 고장난 비행기가 운 나쁘게 우리 배를 들이받았다' 이렇게 생각했다고. 이렇게 생각하는게 정상적인 반응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군 군부가 바랐듯이 겁을 먹기는 커녕, 카미카제에 대한 경계감과 전투의지만 더욱 상승했다. 큰 위협요소를 발견하면 어떻게든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안 그래도 개전 직후부터 일본인들을 "Japs" 혹은 "Yellow Monkey"라고 부르며 무시하고 경멸하던 차에 이러한 상식외의 행동까지 일삼자 일선 장병들은 일본군을 더 이상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7 조종사들의 심리
일반인들에게는 보통 "절망적인 상황에서 천황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 하던 광신도들" 쯤으로 인식되고 일부 일본 극우세력은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젊은이들" 쯤으로 선동하기도 하는데 물론 진심으로 일본 제국과 천황을 위해 죽으려 하는 광신도도 있었을지도 모르지만,대부분은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끌려온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즉, 정말 자원으로 지원한다기보다는 심리적으로 억압된 상태가 더 많았다는 것. 이를테면 행진식에서 카미카제에 지원하지 않을 조종사들을 보고 앞으로 나오라고 하는 등. 만약 나선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죽였을 수도... 안 그래도 소집 받기 전부터 황국신민 사상으로 온갖 세뇌를 당했을 사람들인데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앞으로 나갈까?[21]
거기에 일본군 특유의 가혹행위와 겹치고 갈굼받다가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 불명예나 해코지가 오지 않을까 두려워하다가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리고 결국에는 나라를 위해 죽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나서게 된 것이다. 아래에도 나와있듯이 당시 특공대원들의 어록이나 일기를 읽어보면 당시 조종사들의 심리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오히려 자신을 이런 상황에 몰아놓은 조국을 원망하면서 가는 조종사들도 꽤 많았다.
이들 중에는 외국어를 능숙히 구사하고 독일과 프랑스 철학을 전공하는 등 상당히 교육받은 대학생들도 있었다.그 당시에 저정도로 교육받은 청년들이라면 그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2] 맨발의 겐에서도 이런 식으로 반강제적으로 끌려나온 카미카제 조종사들[23]이 잠깐 나온다.[24] 결국 희망 없는 미친 짓으로 아까운 젊은이들을 날려버린 셈.
일본은 당시 청소년들에게 비행기와 파일럿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파일럿이 비행기를 타고 학교에 방문한다거나 소년잡지의 삽화, 소학교[25] 부터 교과서 등지에 비행기 그림이 나오고 현재의 고무동력기마냥 만드는 법도 가르쳤다. 한마디로 파일럿=엘리트 라는 관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절의 많은 조선의 소년들도 비행학교에 입학하여 훈련을 받다가 특공대로 끌려갔다. 몇몇은 전쟁이 끝나서 운이 좋게 살아돌아왔지만 죽은 이들은 일제의 A급 전범들과 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최악의 모욕이다 진짜
일본 극우들은 조종사들이 자랑스럽게 자폭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애국심이 넘치는 조종사들이 없잖아 있었겠어도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연히 조종사들 상당수는 군중심리와 압박, 연좌제의 공포에 마지못해 임무에 참여하여 돌아버릴 판이었고, 죽기 직전에 내뱉은 말이 텐노 헤이카 반자이가 아니라 오카상이라는 사실만 봐도 억지로 이 미친 짓을 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군중심리도 심각한 수준이었어서, 카미카제 부대에 차출당했으나 출격 몇일전에 부상을 당해 부대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한 병사는, 그 뒤에 몸이 회복되어 건강하게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해피 엔딩인 상황이었으나, 고향으로 돌아가자 부끄럽지도 않나며 돌부터 맞았다는 사례도 있다. 집안에서도 사지 멀쩡한데도 병신취급 당했다고 하는 등 전쟁 후 몇년간은 굉장히 힘들게 살았다는 모양. 일반 군중들도 비 이성적인 시대였기에, 이런 분위기에 자살하라고 위에서 명령하는걸 일개 개인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8 카미카제가 안 되는 이유
전투기로 충돌 테스트도 한다.[26]
그냥 자살시키는 거랑 뭐가 달라
처음부터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짓이지만, 일본군은 그런 짓을 하고도 아까운 목숨만 내다버렸다. 그 이유를 소개한다.
8.1 수준 미달의 조종사
카미카제를 하는 조종사는 대다수 긴급양성된 나는 법만 배운 초보 조종사였다. 실제로 카미카제 대원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수가 훈련 중 착륙 등 비행과정에서 사망했을 정도인데다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이착륙도 제대로 안 되는 병아리 조종사들이 바다에서 방향을 잡고 항로유지하는 고난이도의 교육을 제대로 받았을 리가 만무하다.
'어차피 가서 죽을 건데, 항로유지나 돌아오는 방법은 몰라도 되지 않냐?' 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목표까지 가는 길을 못 찾으면, 당연히 끝없는 태평양 수면에 카미카제 하는 결말이 된다. GPS 같은 건 당연히 없던 시절이었고[27] 태평양의 망망대해 위에서 나침반의 방향과 몇 가지 측량법만 의지해서 목표물을 찾는다는 건 상당한 숙련도가 필요했다. 그리고 태평양전쟁말기에는 카미카제용 양성 조종사도 대단히 귀한 존재였다.
결국 선도기로 숙련된 조종사의 선도가 미군의 촘촘한 초계망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필수였다. 즉, 카미카제를 시도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칠면조들을 선도해서 적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까지 선도해야 했는데... 비숙련자들을 이끌면서 자폭하러 가는 비행이 쉬운 일인지 어려운 일인지는 상상에 맡긴다.
심지어 숙련된 조종사도 고속기동하는 군함을 명중시키기 어려운데, 신참 조종사들이 폭격에 성공하는 것은 사실상 기적에 가까웠다. 하지만 닥돌하게 만들면 비슷한 수준의 조종사가 폭격하는 것보다는 명중률이 더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명중률이 고작 10% 정도. 게다가 쇼미더머니에 한술 더 떠서 더는 기다릴수 없다까지 치면서 물자를 쏟아내고 압도적인 인적자원을 가지고 있던 미국과 정상적인 대결을 펼쳐서는 이렇게 해도 도저히 승산이 없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냥 미친 짓이었다!
8.1.1 목표에 대한 인식 제로
카미카제 특공대의 임무는 미 해군 항공모함에 자살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초음속으로 날아드는 대구경 함포탄에 얻어맞아도 작전이 가능하게끔 설계된 전함을 상대로 카미카제용 비행기의 폭약과 속력 따위로 충돌하면 아스팔트 위에 내던져진 달걀 신세가 된다.
문제는 조종사들이 날아가다가 아무 배나 보이면 그냥 헤딩했다는 것. 나는 법만 간신히 배운 신참 조종사들에게 까마득히 멀리 보이는 조그만 점이 어떤 배인지 알아보는 적 함선 식별 등, 고급 행동이 가능했을 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 전방에서 레이더 피켓(picket) 임무라고 해서 레이더를 장착한 구축함들이 항모의 외곽을 둘러싸고 대공경계를 맡았는데[28] 해당 임무를 하던 구축함들이 더 큰 피해를 본 편이다.[29] 몸빵도 원래 레이더 피켓함의 임무 중 하나긴 했지만... 심지어 이 함선들은 나 항모 아님 이라고 써붙여 놓기까지 했다고 한다. 안습. 게다가 미군의 대공화력은 압도적이었다.[30] 카미카제가 공격하려고 해도 그 전에 전투기와 대공포로 이뤄진 철벽을 뚫어야 했다.
그나마 카미카제 특공대의 성과를 키운 것은 바로 미 해군 항공모함의 비행갑판이 목재였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실제 같은 시기 작전에 참여한 영국 항공모함도 카미카제 공격을 받았지만 피해는 미 해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이유는 영국 항공모함은 비행갑판에 장갑판이 깔려있었고 그 덕분에 카미카제 전투기가 들이받아도 그냥 납작한 팬케이크가 되고 말았으니 팬케이크 된 잔해를 치워버리고 갑판 살짝 보수하고 물청소 한 번 하면 바로 작전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프라이팬에 뛰어드는 달걀' 이라는 비유도 있다.
대신 미군 항모는 현지에서의 응급수리가 가능했지만 영국 항모는 제대로 된 항공폭탄이 명중하는 등 일단 한 번 크게 손상되면 귀항해야 수리를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영국 항모들은 그 충격이 용골까지 그대로 전해지던 탓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뼈대가 뒤틀어지기 시작해서 결국 얼마 안 가 전부 폐기처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게 개방식 격납고와 폐쇄식 격납고의 차이이기도 하다.[31][32]
한가지 더 있는데, 미군의 정규 항모들... 카미카제 맞고 격침 당한 항모가 있을까, 없을까?
미국이 진주만 공습 직전에 건조한 에식스급 항공모함들...카미카제 맞고 비행갑판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항모는 있어도[33] 카미카제로 격침당한 항모는 한 척도 없다.(...) 일본군 입장에서는 문자 그대로 현실은 시궁창이다.[34] 그뿐 아니라, 전쟁이 시작되기도 한참 전에 건조한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2번 함 CV-6 USS Enterprise의 경우 전쟁 끝나고 나서도 한참을 살아남아서 결국 스크랩 처리 되면서 그 전설적인 활약상으로 인해 이 함명 자체가 미 해군의 상징이나 마찬가지가 되고 있으니...
8.2 수준 미달의 비행기
말기에는 본토 결전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쓸 수 있는 기체를 온존하기 위하여 남아있는 95식 1형 복엽 연습기[35]를 자살 특공작전에 투입하였으며 석유 부족 상황에서 가솔린이 아닌 알콜 연료로도 가동시킬 수 있다는 점도 이 기체를 쓰기 좋았던 것 같다. 덧붙여서 이 연습기를 이용한 자폭으로 구축함 1척을 격침시켰는데 이러한 구식 복엽기의 경우에는 VT신관이 작동하지 않거나 기관포탄이 명중해도 관통할 뿐이고 워낙 속도가 느려서 돌입이 용이해 의외로 전과를 올리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반면 워낙 저속기인 데다가 무거운 폭탄을 억지로 탑재했기 때문에 손쉬운 표적이 되었다.
사실 원래 자살공격용이 아닌 병기를 임시로 땜빵질한 것에 불과하여 문제점이 속출한 것이었고, 이는 일본군 수뇌부도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막장 일본군답게 이들이 선택한 방안은 이런 미친 짓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카미카제 전용으로 만들어진 자폭병기를 정식 편제하는 것이었다.
오카의 경우에는 자폭 공격에만 중점을 맞추고 기존의 카미카제가 폭탄 적재까지 해서 안 그래도 느린 비행기가 더 느려진다는 단점을 개선했다고 만든 유인유도식 미사일이지만, 결론적으로는 조종하기 엿 같으며 사정거리도 짧았고, 무엇보다 이걸 싣는 비행기가 허구한 날 격추당하는 저질기였다! 결국 오카는 발사까지 안전하게 자신을 호송해줄 수단조차 확보하지 못해서 이걸 싣고 날아오른 폭격기 모기와 함께 격추당하는 결말을 맞았다.
8.3 수준 미달의 명중률
카미카제는 80~90도 사이의 고각에서 내려꽂힐 때 가장 높은 효율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사실상 급강하 폭격이나 다름없는데 이게 가능하면 이미 베테랑 파일럿이다. 이착륙하는 것만 배운 신참 카미카제 대원이 급강하 폭격하듯 내리꽂는 데 성공한다면 그는 결코 일회용으로 굴려선 안될 인재다. 1945년 4월 도미야스 슌스케(富安俊助) 중위는 엔터프라이즈의 엘리베이터에 충돌하기 직전에 폭탄을 격납고로 가도록 조준해 분리하여 피해면적을 늘리는 [36] 신묘한 재주를 부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엔터프라이즈는 동부 솔로몬 해전과 산타크루즈 해전에 이은 3번째 사상자를 내고 본국으로 돌아가 수리를 받게 된다. 물론,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군대라면 이런 재주를 부릴 수 있는 유능한 조종사에게, 평범하게 공격하고 어떻게든 생환해서 다시 싸울 명령을 내려야 한다(...).
이에 차선책으로 45도로 내려꽂는 방법이 나왔다. 카미카제 조종사들의 안습한 숙련도를 생각하면 이 정도가 그나마 확률이 높았다. 문제는 그 각도로 가면 대공포에 영락없이 요격당한다는 점. 동료들의 희생 속에 간신히 연합군 전투기의 요격을 뚫고 들어갔다 치더라도 대부분의 햇병아리 조종사들은 본능적으로 이 각도를 잡고 달려들다가 대공포의 식사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다.
최종적으로는 수면에 최대한 붙어서 대공포의 사각으로 들어가 그 낮은 각도에서 그대로 격돌하는 방식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참조. 이는 햇병아리 조종사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공격 방식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벽지에 모기 찍힌 거 같다.
일본 육군항공대의 Ki-51의 자살 공격을 받은 직후의 영국 해군 카운티급 중순양함 HMS 서섹스(Sussex) 함[37]
다만 이 공격 방식은 장갑이 두터운 함선의 옆면, 즉 때려달라는 곳을 때리는 꼴이기 때문에, 설령 제대로 박는다 하더라도 의미 있는 피해를 주긴 어려웠다. 애초에 당시 항공기에 의한 폭격은 고공에서의 낙하 에너지를 이용해서, 함선의 장갑을 뚫고서 피해를 늘리는 방식이었는데, 전투기 자체의 질량 에너지와 별 거 없는 자폭용 폭탄 한두 발 따위로는 수백 kg급 전투함의 포탄이 초속 수백m의 속도로 직격해오는 충격을 견뎌내기 위해 설계된 함선의 측면장갑에는 흠집밖에 낼 수 없었다.[38]
9 최후의 발악
카미카제가 나타나기 전부터 일본은 자원이나 병력이 미국과 비교하자면 터무니 없이 밀리기에 진주만 공습을 감행한 이유도 직접적인 전투는 불가능하기에 기습으로 치고 들어갈려는 방식 밖에 없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진주만 공습 이전에 이미 중일전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안 그래도 부족한 인적, 물적 전쟁 수행 역량을 두 개 이상으로 분리시켜버린 것. 문제는 저렇게 전쟁수행 역량을 두 개 이상으로 분리시켜버린 것도 일본군 특유의 병크인 육해군 대립이 낳은 삽질중 하나라는 것.
이런 이유로 자원도 병력도 더욱 부족한 상태인 태평양 전쟁은 두말 할 것도 없이 패배뿐인 싸움이기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보자는 것과 혹은 적군에게 항복하는 것은 자신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며, 자신들의 비참한 최후가 될 것이니 자포자기로 있는 것보단 미친 짓거리지만 조금이라도 때려보자는 심리로 이 짓거리를 했을 가능성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히트 앤드 런식으로 게릴라전을 벌였을 것이 더 효율적일 것으로 주장이 있기에 위의 주장에 대한 의문이 있다.
그리고 윗부분에 나온말처럼 정말로 명예를 택했다면 계속 싸우다가 생환할 가능성이 없을때 적함으로 들이받는것이 그냥 들이받는것보다 훨씬 더 명예로운 죽음이었을것이고, 미군을 더 공포로 몰아넣었을것이다.[39]
10 결론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할 둘도 없는 병크
차라리 자살성 폭격이였으면 미군은 기겁했을 거다.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드는 급강하 폭격이 오히려 굉장히 효과적이다.실패하면 카미카제, 성공하면 폭격. 그냥 일회성 폭격(?)인 카미카제보다 월등히 효과적이다. 실제로 이런 방법을 썼던 게 미드웨이 해전 때의 미군 뇌격기 부대다. 뇌격기 부대가 이런 방법을 써서 일본군 전투기들과 견시원들의 시야 범위를 저공으로 묶어뒀기에 노틸러스 잡으려다가 급히 본대로 귀환하던 아라시가 남긴 항적을 추적해서 온 급강하폭격기 부대가 끼어들어서 전세를 뒤집은 것이다.이것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그 유명한 운명의 5분의 내막.
일본이 너무 급한 상황이라서 신형기 양산도 물 건너간 상황이었겠지만 인력과 자원으로 시덴카이 같은 신형기를 만들었으면 결과가 나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신형기들은 B-29를 격추시키러 올라갈 수 있는 기종들이었다. 적어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하러 오는 폭격기를 손가락만 빨면서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위에 언급한 시덴카이를 비롯한 신형기들은 오히려 최우선적으로 밀어주고 있던 기체들이었는데, 대부분 개발 이후에도 제대로 된 물건을 양산할 기술 자체가 안 되었거나 만들고 있는데 종전하는 식으로 빛을 보지 못한다. 간혹 카미카제 전용기와 신형기 개발을 나치 독일의 전차 생산라인들이 서로 달라서 38(t)를 안 만든다고 4호 전차를 더 만들 수 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과 동일 선상으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독일의 38(t)는 이미 있던 라인을 재사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일본의 카미카제 전용기는 MXY-7 오카의 경우만 봐도 알수 있듯이, 자폭기용 생산 라인을 별도로 만들고 있어서 그 원점부터 다르다.
결국 카미카제 대원의 유서에 나온 대로 카미카제는 언 발에 오줌 누기였을 뿐 절대로 현명한 타개책이 아니었다. 제로센으로 미군의 대공포화와 전투기를 피하면서 그 화망을 뚫으면서 한 대도 맞지 말라고 시키는데? 전함에 충돌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 있는 조종사라면 자살돌격 따위가 아닌 정상적인 공격으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자살공격이라는 특성상 베테랑 조종사를 잘 해봐야 1회의 공격 성공으로 소모한다!!! 따라서 숙련된 조종사를 인간 미사일로 써버리고 훈련이 별로 안 된 신참 조종사만 양산하는 전략은 국가 규모로 따지자면 우리 공군 좀 빨리 소멸시켜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하는 자해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합군의 응전 태세도 더욱 경각심을 주어서, 결국 일본은 하늘에서부터의 재앙을 두 번이나 겪는다. 정권 유지를 위하여 국민들의 목숨을 패전의 제물로 바치는 인간방패 전략으로 연명한 것이다. 그리고 망했어요. 상식적으로 인간이 알보병이든, 총알받이든 뭔가에 쓰려면 최소한 10년에서 20년이 필요하다. 즉 시간적 측면으로 보면 가장 귀중한 자원이자 무기인 것을 갖다 버린 것밖에 안 된다... 총알받이로 쓰려해도 10년에서 20년이 필요한데, 파일럿은 오죽하겠는가?
뿐만 아니라 일본은 미국에 비해 훨씬 적은 인적, 물적자원 때문에 이런 식으로 병력을 낭비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짓에 엄청난 자원과 시간을 낭비해 버렸다. 자치령이 저그군단에게 소모전을 시전한꼴 감히 자치령을 일본군 따위와 비교하다니!!!반면에 오히려 인적, 물적 자원이 훨씬 풍부한 미군은 전투 중에 추락한 조종사나 침몰한 배의 장병을 구하기 위해 주변 해역을 샅샅이 뒤져 구조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40][41][42][43]결과적으로 이러한 인명에 대한 인식이 전쟁의 승패로 나타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유능한 인재가 전후까지 살아남았더라면 이후 재건될 때에도 그들의 노하우를 그대로 이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그야말로 국가를 운용하는 데 있어 필요한 최소한의 상식조차도 없었다는 것이다.
11 전술적 의미
카미카제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CV-17 USS 벙커힐. 카미카제의 정말 몇 안 되는 성공 사례이다. 하지만 후술하는 것처럼 이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였으며 그나마 효율성 자체도 더욱 떨어지는 결과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한가지. 저래도 격침은 안 됐다. 거대한 구멍 하나 생기고 끝. 참고로 에식스급 항공모함 중 카미카제 공격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진 항공모함이 CV-11 인트레피드인데 이 배는 기념함으로 남아있다.
카미카제 이야기가 나올 때는, 보통 형언할 수 없는 비인간성에 중점을 둔다. 하지만 카미카제도 일본군이 전술로 사용한 만큼 전술로서의 의미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 해군의 공간전사에서도 일단 엄연한 전술로서 인정하고 그 가치를 다짜고짜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참조하자. 물론 그들이 겪은 정신적 충격이 가시고 나서 느낀 인간적인 경멸을 빼놓지는 않는다.
1942년 과달카날 전투 이전까지의 일본군 조종사의 숙련도는 대단히 높았다. 미 해군 함재기들의 공격을 뚫고 미칠 듯이 솟구쳐 올라오는 대공포의 사격과 미 해군 함정들의 현란한 회피기동 속에서도 30~40% 명중률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다. 물론 미군 함재기의 조종사들도 만만찮은 솜씨를 보였으니 대등한 전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1942~1943년을 거쳐 솔로몬 제도 상공에서의 처절한 소모전과 1944년 6월의 필리핀 해전을 거치며 숙련된 일본 조종사들은 말 그대로 죽어나갔다. 반면 미군은 300,000명(...)[44]3만명도 아니고!? 조종사만 가지고 야전군을 만들어보아요 의 조종사들을 본토에서 양성하고 있었다. 이 숫자는 14,000명 수준의 사단 20개 이상을 구성할 수 있는 수다.
더 무서운 건 1944년도부터 '연합군은 이미 보유한 조종사만으로도 몇 년 간은 문제 없다' 는 판단으로 비행학교 수를 줄이고 훈련 시간을 늘려서 베테랑 조종사 양성을 도모하고 있었으며, 수십 회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베테랑들은 무조건 일선에서 물러나 후배들에게 자신의 생생한 노하우를 하루종일 훈련시키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중간탈락율은 비슷했고, 따라서 44년부터 미 해군의 신규 조종사들은 선배들보다 더욱 치열한 경쟁을 뚫고 조종사가 되었으며 최종기량도 더욱 훌륭했다. 물론 신형 전투기의 개발/생산에도 적극적이었고[45]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과 같은 일방적인 학살은 일본군부의 카미카제 전략에 대비되는 당연한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11.1 최악의 군사적 교환비
반면 카미카제의 명중률은 숙련 조종사가 소규모로 동원되었던 1944년 말 필리핀 전역(戰域)에서는 40~50%, 카미카제로 쓸 숙련 조종사마저 고갈되어 꼬꼬마 조종사들을 대규모로 투입했던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14%의 명중률을 기록한다. 350기의 함재기가 출격하여 220기가 격추되고 명중탄은 단 1발밖에 기록하지 못한 1944년 6월의 필리핀해 해전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나아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오키나와 전투에서 총 1,900대의 특공기가 돌입해 33척의 적함을 격침시켰다고 한다. 일단 자료에 따라서 차이가 난다. 침몰한 미군함도 21척 내지 26척에 불과하다는 자료도 있다. 그 밖에 280척 내지 360척에 피해를 주었다. 다만 이 피해도 대부분은 작은 상륙정이다. 그러나 이 자료를 순수하게 믿더라도 이오지마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는 당연하게도 특공기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특공기만으로 이루어진 편대를 조직했다면 당연히 돌입하기도 전에 모조리 격추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폭격기를 호위하는 전투기 편대처럼 특공기를 호위하기 위한 편대도 출격했고 자폭이 아닌 폭격만을 위한 항공기도 출격했다.
문제는 여기서 1,900대라는 것은 순수한 특공기만을 의미하는 것이고 호위 전투기 편대와 폭격을 하기 위해 출격한 항공기는 제외한 수치라는 점이다. 애초에 공습의 성과란 투입한 항공기와 손실된 전체 항공기와 적의 피해를 비교해서 따지는 것이지 순수 특공기만의 손실만 계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
그럼 특공기와 호위기를 합친 전체 일본군의 손실은 얼마일까? 놀랍게도 오키나와에서만 모두 7,830대 이상의 항공기를 손실했다. 약 8,000대의 항공기를 소모품으로 말아먹고 겨우 33척을 격침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단순 비교로도 항공기 280대와 겨우 1척을 맞바꾼 셈이다.항공기 280대면 전멸당한다고 해도 항공모함을 통상적인 공격으로 충분히 잡을수있는 숫자인데...
더 중요한 건 격침시킨 33척 대부분이 군함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작은 상륙정들이고, 나머지도 전략적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구축함이라는 것. 정말 위협적인 항공모함은 제대로 격침시키지 못했다. 그나마 경항모보다도 못한 호위 항모 2척에 큰 손실을 준 건 사실이고 이 2척의 호위 항모는 종전 뒤 폐기처분되긴 했다.
이것은 경제적으로도 전혀 남는 장사가 아니다. 항공모함만 100척이 넘어가던 당시 미 해군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감안하면 거의 피해를 주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자료도 역시 자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미 공군 홈페이지에 의하면 2,800기의 특공기[46]의 공격에 의해 34척의 배가 침몰했다고 되어있다. 반면 일본학 연구자인 Bill Gordon에 의하면 47척이라고 한다. 이런 차이는 수리 중 침몰한 군함도 포함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한다. 그래봐야 오십보 백보. 일본군이 뻘짓을 했다는 진실을 뒤엎는 정도는 절대로 아니다.
오키나와 전투 기간 전사한 미군은 12,281명인데 이 중 4,907명이 카미카제에 의해 전사한 해군 함정 승조원, 항공 요원들이다. 이것이 대단한 수치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전쟁의 냉정한 전략적/경제적/객관적 측면"에서 이미 이것은 삽질 of 삽질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참고로 나치 독일군의 삽질이라고 평가받는 보덴플라테 공세에서 독일군은 연합군기 340기를 격파하고 독일군기 304기를 잃었다. 그럼에도 실패라고 평가받는데 이것과 비교하면 8,000기나 손실했다는 건 무엇을 말하겠는가?[47]
수백톤에서 천톤이 넘어가는 함정과 5톤이 채 안되는 비행기, 수백명의 수병과 한두명의 조종사를 단순 숫자로 비교하면 카미카제가 이득인거 같지만 실제 전투기제작과 파일럿 양성에 드는 비용을 따져보면 어마어마하다. 값비싼 신형 전함조차 전투기 2~300대의 가격과 비슷하며 조종사는 그 전투기보다 비싸고 오랜시간을 들여서 만드는 인재라 일반적인 수병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1만에 가까운 항공기와 조종사를 들이박아서 소형 함정 몇대와 죽은 조종사의 절반정도의 수병을 죽였다는건 정말 끔찍할 정도의 삽질이 아닐 수 없다.
시기상 전력적으로 크게 차이가 나므로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과달카날의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일본군은 통상공격만으로 99대의 비행기를 손실하고 정규 항공모함인 호넷을 격침시키고 엔터프라이즈를 중파시켰다. 이것과 비교하면 참으로 안습한 수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밖의 다른 요소는 별로 고려할 필요가 없다. 카미카제를 대비하기 위해 함재기들이 함대방공에 힘써 오키나와의 공중지원이 힘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이건 카미카제가 아니라 통상공격이라도 마찬가지이다. 8,000기가 통상공습을 해왔다고 생각해보자. 카미카제가 아니라도 지상지원을 할 수 있을까? 이건 카미카제의 전술적 효과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공습의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펄펄 뛰는 커티스 르메이를 여러 장군들이 간신히 제지하고 B-29를 도시폭격을 잠시 돌려 비행장 폭격으로 돌린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카미카제가 특별히 대단해서가 아니라 공습의 규모 자체가 워낙 커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확실히 해군력 서열 2위인 영국 해군과의 비교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압도적인 전력을 지닌 미군이 아니라면 이만한 규모의 공격을 버티지 못했겠지만(...) 이 또한 통상공격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약간 더 효과적이었다고 해도 그 성과라는 것이 고작 상륙정 몇 척, 구축함 몇 척에 불과했을 뿐이니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었던 짓인지는 알아서 판단하자. 이런 초라한 결과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압도적이기 그지없는 미군의 전력, 비숙련자 집단&쓰다 버린 비행기들을 닥닥 긁어 모인 기체의 성능 등 카미카제 자체의 한계를 감안하면 뻔한 결과였다.
굳이 더 의미를 찾자면, 미 해군 장병들 중 후송되는 전투피로증 환자를 조금 늘렸다는 정도겠지만 사실 이것도 카미카제가 무서워서라기 보다 공습의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미군에겐 카미카제의 명중률 10여%는 승조원들 눈에 보이는 카미카제 2기 중 1기는 자신의 배로 날아든다는 의미였겠지만 사실 카미카제가 아니라 통산 폭탄을 썼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2기 중 1기는 자기 배로 폭탄을 떨어뜨리려 했다는 건 마찬가지니까. 물론 미 해군의 전체적인 운용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11.2 승리하는 법을 잊어버린 자들의 전술
무엇보다도 카미카제가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이딴 전술에 의지함으로서 일본군 스스로 더 효과적인 방법을 망각해버렸다는 점에 있다. 카미카제를 작전으로서 사용한다는 건 조종사의 기량 향상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으며 항공기 발전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48] 애초에 적의 군함에 들이받을 항공기를 뭐하러 발전시킬 필요가 있을까?
확실히 처음 베테랑 조종사들에 의한 카미카제 작전은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급한 일을 막기 위해 미래의 가능성을 팔아버린 일종의 돌려막기나 다름 없었다. 게다가 일본군은 "여차하면 카미카제를 쓰면 되니까(...)" 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항공기 발전과 조종사의 기량 향상에 힘을 쓰지 않았다.[49] 카미카제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건 1944년 10월부터지만 작전상으로서의 검토는 1942년 미드웨이 해전부터였고 특공병기가 처음 만들어진 건 1944년 3월이다. 일본의 함상전투기는 끝까지 제로센 뿐이었는데 이처럼 기술 발전이 뒤처진 데는 이런 안일한 생각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 카드깡[50]
애초에 카미카제 같은 전술에 의지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항공기 기술을 발달시키고 조종사 기량을 향상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좀 더 효과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오래 미군을 막아낼 수 있었을 테지만 일본군은 카미카제에 의지함으로서 이런 가능성을 스스로 부정해 버렸다.
나라를 위해 죽지 말고, 적들이 나라를 위해 죽게 만들어라.- 조지 S. 패튼, 미 육군 제 6사단을 상대로 한 연설 中
반면 연합군에서는 전쟁광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호전적이었던 인물이었던 조지 S. 패튼조차 전술행동에서 적군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입히는 것 못지않게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라는 명언을 남긴 석기 시대 매니아, 폭격 덕후 커티스 르메이조차 도쿄 대공습을 야간에 한 이유가 아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였다는 것만 봐도 답이 나온다. 사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아군의 피해는 줄이고 적의 피해는 늘리는 것이 전투, 나아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론이라는 것을 감안하면[51], 적에게 확실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으면서 아군의 피해는 무조건 발생하는 카미카제는 극히 비효율적인, 아니 절대로 국가라는 인간의 집단이 정식 시스템으로 편재해서는 안 되는 전술이다.
요약하자면 '인명과 장비를 경시하는 군대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는 명제의 매우 휼륭한 증명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으레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군대의 목적은 불필요한 희생을 줄여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병사들이 궤멸된 군대가 제 일을 못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11.3 구체적인 전술적 성과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카미카제는 얼마나 미국에 피해를 주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자세한 연구 결과가 나왔고 미국과 일본 학자들 모두 이에 대한 자료를 내놓았으므로 교차검증도 잘 되어있다.
호위항모 3척[52], 구축함 14척, 소해정 3척, 수송선 3척, 상륙정 14척, 화물선 9척, 탄약수송선 1척. 합계 47척. 출처. 전함이나 순양함은 물론이고 정작 일본 군부가 기대하고 있었던, 그리고 특공대가 잡아주기를 바랐던 정규항모는 단 한 척도 없다(...). 뭐 후술하다시피, 이미 수십 척의 항모전단을 굴리던 미국 앞에서는 정규 항모 한두 척을 격침시켜도 전황조차 바꿀 수 없었지만(...) 위에서도 언급됐지만, 카미카제로 격침당한 미 해군 정규 항모가 한 척도 없는 이유가 한가지 더 있는데,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운용한 정규 항모들은 격납고가 개방식이다. 즉 애초에 카미카제가 아니라 대형폭탄이 비행갑판에 떨어져도 그 충격은 거의 전부 함체 밖으로 다 새어나간다는 뜻이다.
이 47척이 3,800 여기의 비행기와 파일럿을 100% 확률로 폭사 시킨 카미카제 전략에 의한 최종성과다.[53]
이 피해는 이오지마, 오키나와 전투만이 아닌 1944년부터 집계된 카미카제로 인해 격침된 모든 미군함의 수를 포함한 숫자다. 참고로 일본 연구가인 나가츠카는 49척, 야스노부는 49척으로 미국측 집계보다는 2척이 많으나 큰 차이는 없다. 오키나와의 전투에서 카미카제로 격침된 군함으로 한정한다면 그 성과는 더더욱 초라해진다. 고작해야 구축함 10척, 화물선 3척, 소해정 2척, 상륙정 8척, 수송선 2척에 불과하다.
이 정도 피해는 압도적인 미군이 아니라, 훨씬 전력적으로 떨어지는 영국군이라 해도 별 피해가 아니다. 그나마 의미 있는 건 상선을 개조해 임시땜빵으로 만든 호위항공모함 3척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시 미해군은 항공모함만 100척을 넘었고 정규 항모로만 한정해도 28척이었다. 참고로 일본의 경우는 개전시부터 종전시까지 잠시도 보유한 경항모, 정규항모를 모두 합쳐서 26척 정도였고[54] 그나마도 준공과 손실이 계속됐으므로, 일본군이 동시에 보유한 숫자는 보통 15척 이하 정도에 불과했으며, 카미카제가 본격적으로 행해진 1945년 초에는 6척 정도[55]만 남아있었으며 이나마도 연료 부족과 함체 손상으로 정상적인 활동은 대부분 불가능한 상태였다.
격침이 아닌 연합군의 전체 피해를 집계하면 300~400척 정도, 피해자는 10,000명 정도 된다고는 하지만, 대다수가 수송선이나 중요도가 떨어지는 중소형 함정이었고, 정규 항모를 격침시켜도 전황을 뒤엎기도 모자를 판이므로 사실상 카미카제로 격침시킨 호위항공모함 3척은 별다른 피해조차 아니었다는 소리다. 뭐? 호위항모 3척이 격침됐다고? 상관없어. 본국에 주문하면 3일만에 배달되니까.
카미카제의 명중률이나 피해도가 통상 공습보다 그럭저럭 높지만, 전술적으로는 별반 이득이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성과라고 할 만한 교환비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예를 들어 아군 10,000명을 자폭시켜서 10배가 넘는 적들 중에서 105명을 죽이는 전과가 그냥 싸워서 100명을 죽이는 전술보다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심지어 가려 뽑은 특공대원의 성공률이 14% 미만이며, 100% 확률로 소멸한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만약에, 일본 군부가 그 병력과 인재들을 아껴서, 지속적으로 저항하는 방향으로 주전략을 편성했다면, 도쿄와 구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하늘을 그토록 허무하게 바라보기만 했을까? 일선 병사들의 치열한 투쟁심은 그렇다 치더라도, 카미카제를 정식으로 편제했을 뿐만 아니라, 대대적으로 홍보한 시점에서 일본 군부가 국민들의 생명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56]
유럽전선의 나치 독일이 연합군에게 제공권을 잃은 것도 연합군 항공 기술과 항공레이더 기술이 발전한 것도 있지만 격전을 거치면서 많은 배테랑 조종사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때문에 히틀러와 나치도 부랴부랴 노인, 소년, 극소수이지만 여성 파일럿도 양성하여 연합군 전투기를 상대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새내기 파일럿이 처음으로 이륙하여 바로 전선을 나가는 사태였지만, 적어도 이 파일럿들이 전쟁 결과를 떠나서 소중한 국가 자산인 것을 알고 있던 히틀러도 이들에게 항공기 추락시 필요한 낙하산을 꼭 지급하였고, 일부 공군 장성들은 낙하산 사용 훈련을 받지 않은 새내기 파일럿은 출동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만큼 파일럿을 중요한 인재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카미카제 전법으로 베테랑 파일럿들이 제대로 활약하기도 전에 소멸시켰고 이는 당연히 제공권을 잃는 결말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11.4 그들이 자살특공을 선택한 이유
어디까지나 도덕적인 측면이나, 인력을 낭비한다는 측면을 제외하고 보면 일본이 카미카제를 실행한 것도 단기적 관점에서는 나름대로 효율(?) 이랄게 있어서이다.
사실 대전말 일본의 상황이라면, 카미카제가 아니라 통상적인 공격을 시도했어도 효과는 저조했을 게 뻔하다.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단순히 적함에 들이받는 것보다는 적함의 이동경로를 예측하고 정확히 어뢰를 날려 명중시키는 것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단편적으로 오키나와에서 1,900대의 특공기가 미군 함선 180척에 충돌해 26척이 침몰했고, 이 중 2대의 특공기가 1척의 군함에 부딛힌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격돌에 성공한 숫자 자체는 280대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항공어뢰로 전투함을 상대로 이 정도의 명중률을 내려면, 승무원의 숙련도가 상당히 높아야 하고 손실률도 높을 수밖에 없다.
말레이 해전 이후 1942년 말까지 미 해군과의 전투에서 일본군 조종사들은 보통 시속 250에서 280km 속도로 항공어뢰를 투하했는데, 숙련된 조종사들이 이 정도 속도로 떨궈도 맞출까 말까하는 수준이었다. 말레이 해전 당시 일본의 육상공격기들은 어뢰 51발을 투발해서 9발이 명중했다. 약 18%의 명중률인데, 이는 오키나와에서 카미카제 공격의 명중률과 대동소이하다.
여기에 적에게 본격적인 전투초계세력이 존재할 경우 손실률까지 극심해지는데, 산호해 해전에서 18대의 뇌격기가 투발한 어뢰 중 렉싱턴에 2발이 명중했다. 반면, 이 중 10대가 손실되었으므로 명중률은 11%에 손실률은 56%가 된다.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토모나가 공격대에 소속된 10대의 뇌격기가 요크타운에 2발을 명중시켰던 반면, 5대가 격추되고 3대가 파손이 심해 폐기된다. 이 당시엔 일본 해군에 숙련된 조종사들이 상당수 있었지만, 그 조종사들마저도 어뢰를 명중시키기는 힘들었던 반면, 그렇게 맞춰놓고서도 손실이 극심했다. 하물며 대전 말의, 나는 것만 배운 조종사들이 뇌격을 실행해 명중탄을 낸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필리핀 해 해전에서는 48대의 뇌격기가 참여했고 이들이 낸 명중탄은 없었다. 반면 손실률은 대략 60~70% 수준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944년 말엽에는 미 항공모함의 함재기 중 전투기의 비중이 40%에서 70%까지 확대되어 공중초계능력이 대폭 강화되었다. 지속적으로 고갈되어가는 일본의 숙련병 자원들을 경험이 부족한 조종사들이 채워나가고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들에게 뇌격을 시키더라도 결과적으로 돌아오는 전과는 사실상 제로가 될 뿐더러 카미카제 공격을 하면 무조건 죽는다 뿐이지, 통상공격을 실행하더라도 어차피 살아돌아오는 조종사는 2~3할 남짓일 뿐이다. 즉 일본이 시간을 끌기 위해 뭐 하나라도 격침시키는 발악을 해보기 위해서는 카미카제가 그나마 해답이었던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전부 항공어뢰를 이용한 공격 사례지만, 급강하 폭격 역시 뇌격과 마찬가지로 웬만큼 숙련된 조종사가 아니면 명중을 기대하기 힘든 공격방식이었으므로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통상공격을 실행했더라면 돌아오는 조종사는 몇 있었을지언정, 미 해군에 준 손실은 카미카제 공격을 할 때보다 훨씬 적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실제로 계산해보면 같은 인력을 소모시킨다고 가정했을 때, 통상공격보다 카미카제로 격침시킬 수 있었던 군함의 숫자가 얼추 4~5배가 더 많다. 문제는 4~5배 많은 숫자가 47척 정도라는 거고, 이 정도는 대전시기 750척에 가까운 함정을 뽑아낸 미군에겐 별 타격도 안된다(...)
12 전략적 의미
12.1 일본
전략적 의미에서 보자면 대본영을 위시한 군인/관료/재벌들의 체면과 기득권을 잠깐이라도 더 유지해보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자살공격이었을 뿐이다. 다른 방송도 아닌 NHK 특집 다큐멘터리에서도 지적한 내용이다. 전략적 의미고 뭐고 일본은 필리핀 해 해전에서 사실상 해군 전력이 궤멸당해버렸기 때문에 제정신이 박혀있었다면 이 시점에서 미국에게 항복선언을 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이었다. 하지만 이미 악 밖에 남지 않은 일본 군부 눈에는 그런게 보일 리가 없었다.
카미카제로 뻗댄 자들은 외교관 등 그나마 제정신 박힌 사람들이 "이제 다 끝났으니 인정하고 항복하자" 고 했을 때도 "1억을 다 죽여서라도 항복할 수는 없다" 며 자존심을 세우는 시늉만 하다가 핵 맞고 덴노가 GG 치자 바로 닥치고 버로우해서 살아남은 자들이다. 즉 일본 군부는 국민을 지키기 위한 군대가 아니라 덴노를 명분으로 삼아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국민을 이용했던 집단이었을 뿐이다.
결국 '카미카제'란 일본 군부의, 일본 군부에 의한, 일본 군부를 위한, 일본 군인들에 대한 대학살 명령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사람을 죽인 이 연쇄살인마들이 알량한 자기 목숨을 가지고 할복을 하거나, 간에 씨알도 안먹힐 도게자라도 한 책임자들은 극히 일부였고, 대부분은 종전 후에도 잘 먹고 잘 살고 출세도 했으며, 지금도 카미카제로 죽인 부하들 팔아먹으면서 극우 행세로 잘 살고 있다. 실제로 정치계에 진출하거나, 책을 써서 잘먹고 잘사는 놈들도 많다.
1945년 일본의 상황은 누가 보아도 닥치고 항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그리고 상대국이 자국의 완전한 파멸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57] 조국을 재건하기 위한 젊은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하는 것이 위정자들의 의무이다. 더구나 자동차 운전면허 소유자도 그리 많지 않았던 일본에서[58] '미숙하게나마 비행기 조종이 가능한' 젊은이가 지니는 의미는 상상 외로 큰 것이다. 군사전략 이전에 정치전략적으로 도저히 정식 편제가 되어서는 안 되었던 선택지가 카미카제였던 것이다.
심지어 이때 징집된 파일럿 대다수는 대학교 재학생, 졸업생 등 고등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었다.[59] 그나마 미국이 일본을 항복시키려고만 했을 뿐 일본인 자체를 멸종시키려 들지는 않았고, 결정적으로 무지막지한 미국의 자본이 일본에 흘러들어가게 된 원인인 한국 전쟁이 일어났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이런 막장짓 한 번에 일본이라는 나라의 재건이 영영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커티스 르메이가 한국전쟁을 싫어합니다
만일 일본이 원폭을 맞고도 항복을 하지 않고 끝까지 1억 총옥쇄를 계속해서 주장했다면, 연합군측은 일본 본토를 향해 총공격을 하는 계획인 몰락 작전을 진행했을 것이고, 그렇게 일본은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맞이했을 것이며, 모 제독의 말마따나 일본어는 저승에서나 들어볼 수 있는 언어가 되었을 것이다.[60]
12.2 미국
카미카제는 전략적 의미에서 중대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미군은 1945년 7월 30일에 작성한 '일본의 비밀무기:자살'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일본군이 '죽으면 야스쿠니 신사에 간다'며 자살공격을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덕분에 일본인의 완전 소멸 또는 국가존속이 위협받아야 일본이 항복한다고 결론내렸다. 그래서 미국의 높으신 분들은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하기로 결정했다.
원자폭탄 투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참조할 것.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무차별 공습을 막아낼 에이스와 신병기들은 바로 군부가 다 바다에 묻어버렸다.
결국 카미카제는 일본 군부가 일본 국민들과 군인들의 죽음을 앞세운 자해공갈이었고, 당시 이러한 비인도적인 카미카제 전략에 미국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는 연합국과 미국 측에서 도쿄 대공습과 원폭 투하에 대한 반감을 사라지게 만들었다.[61]사실 당시는 원자폭탄을 그냥 '좀 쎈 신형폭탄' 정도로 인식했으니 굳이 카미카제에 대해 몰랐더라도 별로 거리낄 것이 없었다(...).
13 이야깃거리
카미카제 특공대원으로 지명되어서 출격했다고 다 죽은 건 아니라서 간혹 생환해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시기를 놓쳤거나 기계 고장, 컨디션 불량, 기후 불량 등으로 출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간혹 목표를 못 찾아 그냥 돌아온 경우도 있었으나 미쳐 돌아가는 상부는 이들을 갈군 뒤 다시 출격시켰다. 때문에 9번에 걸쳐 출격했으나 적을 찾지 못해 돌아온 특공대원이 있었다. 결국 그는 끌려가서 총살당했다. 여담으로 그는 와세다대학 졸업생이라고. 이쯤 되면 자국민을 갈아마신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
이에 관련된 도시전설에 가까운(?) <고추잠자리>라는 전후 반전동화도 있다. 한 카미카제 파일럿은 적을 향해 날아가다가 우연히 계기판 안에 자리잡은 벌레를 보았고 찰나 생명의 귀중함을 깨닫게 되어서 자신과 벌레가 살기 위해서 원래 적기까지 갈 정도로 넣은 얼마 안 되는 연료를 적기가 아닌 무인도로 향해 돌려서 무인도에서 살기 시작했다는 카미카제 파일럿의 이야기도 있고(...).
특공대원으로 생환한 이들 중 유명한 사람으로는 니시무라 아키라(탤런트), 내각 관방장관 겸 외무대신과 후생성 장관을 역임한 소노다, 항공자위대 교관 및 전일본공수 기장으로 반전단체 대표인 시다 등이 있으며 반사회적인 행동을 한 사람 중에는 <천하제일회>의 우치무라 켄이치, 특공대원으로 자신을 포장한 범죄자로는 <3억엔 보험금 살인사건>의 아라키 호미, 츠루타 코지 등이 있다.
1944년 10월 12일~15일에 대만 앞바다에 미 제3함대가 나타나자 역시 카미카제 공격을 시행했고 제26항공전대 사령관 아리바 소장이 직접 카미카제 대원이 되어 전사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게 아래에 나오는 명언으로 유명한 대만 항공전이다. 그런데 이 전투 결과 일본은 카미카제 공격=격침으로 여겨버려 '항모 11척 격침, 8척 대파' 라고 선전해 일본 국민들을 잠깐 환호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 소식을 윌리엄 홀시 제독은 코웃음을 치며
"도쿄 로즈가 전멸했다고 하는 제3함대는 현재 해저에서 무사히 인양되어 적을 향해 급속 퇴각중"
라는 유명한 전문을 보내기도 했다. 실제로 미군의 피해는 극히 미미했다.
기쿠스이 작전 등 카미카제 공격을 일선에서 총지휘했던 우가키 마토메 제독도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의 소식을 듣자 몇 명의 부하를 이끌고 카미카제 공격에 나섰고 당연히 사망했다. 이 때문에 이 사람에 대해서 카미카제를 입안하고 실행했던 '책임자' 중 '진짜로 최대한 책임을 진'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 같지만은 사실은 부하 조종사에게 그 자살 폭격기를 조종하게 했고 자기는 그 뒷좌석에 타서 자살 돌격했다(...). 이 때문에 그 부하 조종사의 유가족은 물론 오자와 지사부로 제독 등에게 "정말 책임을 지고 싶었다면 혼자 가서 뒈질 것이지 왜 죄 없는 부하들을 끌고 갔냐?" 면서 대차게 까였다.
조선인도 카미카제기에 태웠다고 한다. 귀촉도, 화사 등 1940년대 시인 중 한 명인 말당 서정주는 '다츠시로 시즈오(達城靜雄)' 라는 필명으로 '매일신보' 에 '오장 마쓰이 송가(松井五長 訟歌)' 라는 시를 발표하여 레이테 만 해전 배경의 전시선전 및 카미카제의 우월성을 찬양하는 병크를 터뜨렸다. 그리고 레이테 만 해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시의 모델인 마쓰이 히데오는 해방 후 멀쩡히 살아서 귀국했다는 오보까지 실리면서 두번 죽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는 카미카제 특공대원들을 훈련시킨 이와키 비행장이 있던 곳에 세워졌음이 밝혀졌다. 이와키 비행장 기념비가 방사능 오염수 탱크 옆에 세워져 있다고. 기념? 그리고 원전도 자폭했다
13.1 진짜 카미카제?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12월 8일, 필리핀 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급유중이던 미 태평양 함대 제3함대가 세력이 비교적 약한 열대성 저기압으로 잘못 예측한 태풍 '코브라' 의 직격을 받았다. 실제론 당시 코브라의 최저 기압은 최소 907hpa(...)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국에서 최악의 피해를 입힌 사라의 최저 기압이 최저 908.1 hpa, 한반도 상륙 당시 945hpa 수준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태풍이다.
당시 레이더로 촬영한 코브라의 영상. 윗부분의 동그란 점처럼 생긴 부분이 태풍의 눈이다.
이로 인해 홀시의 3함대는 함대의 구축함 3척 침몰, 21척 대파[62], 소속 항공모함들의 함재기 150여 기 손실, 전함, 순양함 등 대형함들도 크고 작은 손상을 입고 약 800명의 사상자를 낸 후에 예정되었던 필리핀 작전 항공지원 계획을 중단하고 전열에서 이탈해야 했다. 게다가 이건 홀시 제독이 기상예보를 생까고[63] 위치를 고수하다가 입은 피해라서 레이테 만 해전 때 오자와 지사부로 제독한테 낚인 것과 더불어 더 까였다.
항공기 150기와 구축함 24척의 손실에 대형함들 역시 크고 작은 손상을 입은 이 피해는 웬만해서는 결코 간과할 수 없었고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카미카제라 불러줄 법 하겠으나 상대는 바로 쇼미더머니 미국. 구축함 24척과 함재기 150기는 본국에서 몇 주면 찍어내는 물자에 불과했다. 물론 이로 인해 태풍 정보의 수집과 대응이 해군의 중요한 숙제가 되었고 이것이 현대 태풍예보체계 구축의 중요한 토대 중 일부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때 죽을 뻔한 인물 중 한 명이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는 제럴드 포드. 당시 포드는 해군 장교로 복무하고 있었는데 풍랑과 싸우다 떠내려갈 뻔하고 타고 있던 선박에 화재까지 나는 등 크게 고생했단다.
그리고 1945년,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 때와 같은 카미카제가 일어날 뻔 하기도 했다. 종전식이 끝난 10월에 오키나와 동부에 정박한 미 해군 선단을 태풍이 덮쳐서 꽤 피해가 났는데 문제는 이 정박지는 일본 본토로의 침공이 시작될 경우 큐슈 침공 부대가 머무를 정박지라는 것이다. 만약 계획대로 상륙이 이루어졌다면 미군의 피해가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 큐슈 침공에 대해서는 몰락 작전 항목 참조.
13.2 미화
이게 얼마나 쪽팔린 일인지 파악이 안되는 일본 극우들 사이에서 카미카제를 미화하는 사례가 다수 있다. 물론 전쟁 직후에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였기 때문에 이 일을 미화시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지만, 전쟁이 끝나고 반 세기 이상이 지난 지금은 극우 젊은층을 중심으로 카미카제를 미화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64]
대부분의 클리셰는 나라를 위해 자신 한 몸 바쳐서 일본을 구한 구국영웅 식. 물론 위의 사례를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카미카제 조종사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카미카제 폭격기에 탑승해야 했으며, 어찌어찌 생환해서 돌아오면 사형을 시키는 케이스도 있을 정도로 당시 일본군 수뇌부들은 인간이 아니였다. 조종사들은 사실상 국가에 의해 살해당한 거나 마찬가지이며, 이런 결정을 내린 당시 일본군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
즉 이들이 카미카제를 미화하는것은 살인자를 옹호하기 위해 그 피해자의 명예를 들먹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2014년에는 [65] 아예 이 카미카제 또한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올렸다(...). 무슨 지거리야 일본의 지자체인 카고시마현에서 카미카제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로 등재하려 시도했으나, 유네스코 일본 위원회에서 부결시켰다. 사유는 '일본 관점으로 기술된 기록밖에 없어서 자료의 편중이 심해 형평성에 어긋난다' 였다. 참고로 이 일을 추진한 카고시마는 2년 뒤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한다. 답이 없다 세계적인 쪽팔림을 당하고 싶다는 걸까[66] 전세계적으로 병신이란 걸 증명하고 싶단다
13.3 일본 제국의 전쟁범죄
물론 조종사 개개인이 용감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애국심만으로 이루어진 상황은 아니었다. 애초에 일본 군부는 자신들의 권세를 위하여 병사들이 개인 의지를 펼칠 수 없도록 세뇌한 사회였다. 카미카제는 개개인의 의사를 떠나서 어엿한 국가의 행정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이었기에 격하게 까이는 것이다.
즉 카미카제 조종사들을 죽인 1차적인 살인자는 일본 제국이다. 카미카제가 나쁜 이유도 그것의 본질이 '행정살인'이며, 살인의 주체가 다름 아닌 일본 제국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때문에 카미카제 조종사들이 단순한 군국주의의 광신도가 아닌 희생자라는 점을 알아줘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항목에 있는 일본 제국을 옹호하는 관점으로 서술된 기록밖에 없는 카미카제 조종사들의 유서가 기각되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일본 극우들이 자신들의 아집으로 희생시킨 카미카제 조종사들을, 현대 정치공세에 써먹는 것을 비판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카미카제 = 전체주의자들의 기득권을 하루라도 더 연명하기 위한 인간 폭탄이었기 때문이다.
즉 일본 군부의 실세들은 국민들이 얼마나 죽든지 상관없이, 군국주의 체제에서의 권세와 식민지의 자원을 지키고 싶었고[67] 카미카제 조종사들은 군부 기득권층의 충실한 자살방패가 되었다. 이 단락만 읽어봐도, 일본 제국과 카미카제의 엉덩이 뒤에 숨어서, 병사들의 죽음의 값으로 권세를 누린 자들이 왜 가증스러운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극우파들은 도리어 군국주의를 까는 인사들을 카미카제 조종사들에게 부끄럽지 않냐고 조롱한다. 답이 없다 애초에 누가 죽게 했는데? 대체 누가 무엇을 위해서 그 많은 인명을 방패로 삼았을까?
카미카제를 미화한 영화가 공개되었을 때 일본인 기자가 중국인 기자에게 "카미카제로 조국을 지킨 일본 청년들이 자랑스럽다" 라고 하자 중국인 기자 왈, "카미카제가 조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했다고 하는데 애초에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일어나지도 않을 비극이었다. 오히려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연합군 청년들에게는 미안하지 않느냐?"라고 하자 그 일본 기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14 카미카제를 거부한 부대
당연한 소리지만, 일본군 중에도 제정신이 박힌 지휘관이 없지는 않았기에 카미카제가 아닌 통상공격을 계속한 부대도 있기는 했다.
14.1 343 해군항공대
第343海軍航空隊.
이런 이름을 쓰는 부대는 2개가 있다. 첫 번째는 1944년 1월 1일에 창설된 하야부사 부대(隼部隊)이지만 이 부대는 필리핀 해 해전에서 칠면조 사냥의 대상이 되어 개발살나고 해체되었다.
그 후에 창설된 것이 검부대(剣部隊)라는 별칭을 가진 343항공대로 사카이 사부로가 잠시 소속됐었던 바로 그 부대이다. 산타크루즈 해전 당시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을 대파시켰던 시가 요시오가 비행대장이었으며, 이 사람이 비행대장으로 있을 당시 부대에 카미카제 명령이 떨어지자 "너희 윗사람 중 한명이라도 특공에 동승할 사람이 있다면 카미카제 명령에 동의하겠다."며 반발, 이후로 한번도 카미카제 명령을 받지 않았다. N1K-J 시덴 카이를 주력기로 삼았으며 베테랑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상당한 전과를 기록했지만 대표적인 예로 7월 24일, 343 해군 항공대의 기체 21기가 출격해 미군기 16기를 격추했다. 문제는 그날이 구레 군항 공습이었다. 미군 기록에 의하면 1747기가 출격한 그 전투 맞다. 아무리 격추비가 좋아도 저래선 티스푼으로 바닷물 퍼내기.
14.2 그 외
도쿄 방공임무를 맡은 302 해군항공대와 야간폭격과 정찰 등의 임무를 맡은 634 해군항공대도 카미카제 전법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634 해군항공대는 원래 이세와 같은 항공전함에서 운용될 부대였지만 관련 항목에 나왔듯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별도로 운용되었다.
이런 부대가 카미카제보다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일본군도 이런 부대를 육성하는 데 힘을 써야 하겠지만 개막장 일본군은 당연하게도 그러지 않았고 그리고 망했어요.
버마의 64전대도 카미카제를 하지 않았으나 이 부대는 3식전 쇼키를 받기로 되어있던 게 자꾸 지연되어 허리케인이나 워호크랑 싸우다가 머스탱, 리버레이터, 슈퍼 포트리스 등 괴물들이 나오는데도 신형기 보급을 못 받아서 대본영이 "어... 미안... 니들은 대신 카미카제 빼줄게" 한 특이케이스.
일본의 해군항공대인 부용부대도 카미카제를 하지않았는데.이는 해당항공대 재량권이 미노베 타다시 소좌[68]에게 있었던 터라 면했다.추가로 해당부대가 주력으로 굴리던 기체는 카미카제에도 안 쓸 정도로 안 좋기로 유명한 D4Y 스이세이와 내구도가 약한 A6M이었다.
15 또다른 사례들
15.1 일본 육해군
카미카제용으로 육해군 공동으로 만든 자폭 항공기가 있다. 바로 위에서도 수차례 언급된 나카지마 Ki-115 츠루기인데... 여기서 츠루기(剣)는 육군에서 붙인 이름이며, 해군에서는 이걸 토카(藤花, 등나무 꽃)라고 불렀다. 그리고 Ki(キ 번호)라는 형식명에서 알 수 있듯 육군에서 주로 사용한 것이다.
15.1.1 인간어뢰
비행기 외에도 일본군은 신요, 가이텐이라는 해군용 자폭병기를 개발했다.
신요는 한마디로 말해서 폭탄을 가득 실은 자살용 모터보트인데 조종하기가 힘들며 파도가 조금만 쳐도 운항을 못하고 무게중심이 너무 앞으로 쏠려서 제멋대로 움직여서 팀킬이나 하는 병기였다.
그 외에도 어뢰를 이용한 자폭 공격도 심도 있게 논의되었는데 그 결과 개발된 것은 남아도는 어뢰를 약간 개조하여 만든 가이텐. 사실 유인 어뢰 공격은 이탈리아의 마이아레나 영국의 채리엇 등이 이미 있었으나 이것들은 저속으로 추진되며 운반자가 어뢰 위에 올라탄 뒤에 이걸 쏘고 도망가는 개념이라 생존률이라도 어느 정도 보장되었지만 가이텐의 경우는 내부 탑승식이라 외부에서 문을 닫아버리면 탈출이 불가능했으며 방수가 충분히 되지 않거나 구조 자체가 약하여 우그러든다거나 혹은 산소부족으로 조종불능 상태에 빠진다거나 해서 명중률조차 앞선 둘보다 훨씬 떨어졌다. 결정적으로 개조에 소모되는 자원은 별 차이도 없었다고 하니 이뭐병.
이와 관련해서는 인간어뢰 항목 참조.
15.1.2 달려라 카미카제
지상전에서도 카미카제 전법이 사용되었다. 원래부터 일본군의 장비가 빈약해서 전투 능력이 떨어지므로 반자이 어택이나 대전차총검술 같은 막 나가는 작전이 수행되었지만 전쟁 말기에 이르자 자돌폭뢰나 갈고리 폭탄 같이 사용하면 바로 터져서 저승 가는 티켓을 발급하는 무기가 등장하더니 드디어 아무 폭탄이나 들고 전차에 돌격해서 자폭하는 대전차 자폭조가 정식으로 등장하게 된다.[69] 고만해 미친놈들아 만주 작전에서 소련군은 관동군에게 전차 및 자주포, 돌격포 78대와 야포 및 박격포 232문을 잃었는데 소련군의 대부분의 대전차 손실은 일본군 대전차 자폭조에 의한 것으로 소련군은 대전차 자폭조를 스메르트니키(smertnik)라고 부르며 치를 떨었다. 소련군은 이 망할 자폭병들을 막기 위해 보병들의 평균수명 2주의 위엄을 자랑하는(...) 탱크 데산트 전술을 다시 꺼내들어야 했다. 문제는 탱크 데산트는 탱크 데산트지만 이들에게는 PPSh-41과 노획한 MP계열 기관단총이 충분히 있었다는 거(...).
15.2 외국
타국에서도 병기를 충돌시켜 적의 병기를 파괴하는 개념은 있었다.
그러나 타국의 자폭병기들이 일본의 카미카제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는데, 다른 나라의 '비슷한' 것들은 인간이 직접 몰더라도 인간은 폭탄을 '수송'만 하는 개념이었지 충돌 직전엔 반드시 탈출을 상정하고 있었던 것들이거나[70], 아니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원자를 받아서 현장의 판단에 의해서 이뤄진 일이었던 반면, 일본은 아예 병기에 인간이 타고 그대로 꼬라박는 병기를 정식 편제로 운용했다는 것. 당시 일본군에게 가혹행위와 더불어 얼마나 인명경시 풍조가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덕분에 기본적으로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심한 편이던 서양인들에게 그걸 더 심어주는 역효과만 낳았다.
사실상 이 항목의 제목과 가장 부합하는 건 미드웨이 전투에서 격추되는 와중에 일본 전함에 돌진한 미군 조종사들 정도다. 여기 나온 예시는 대다수 카미카제와는 관계 없는 것들이다. 엄연히 특수작전, 유도 병기에 해당하는 것들을 자살 공격이라고 하는 건 어폐가 심하다.
15.2.1 독일
이 항목에 가장 부합하는 사례가 있는데,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서약서를 받고 연합군 폭격기를 들이받는 임무에 투입했다. Sonderkommando Elbe, 특수사령부 엘베가 이를 위해 만들어졌었다. 장갑 등을 다 뜯어낸 메서슈미츠 Bf 109를 사용했으며, 무장이라곤 기총 하나에 60발 넣어둔게 다였다. 말로는 일단 충돌 후 낙하산을 이용해 생환할것이라고 기대되기도 했고 낙하산을 이용해 살아 돌아온 조종사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죽은 경우가 더 많다. 자원병을 대상으로 한 작전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이 자원이었는지 아니면 반강제였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게 사실 어중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게, 당시 독일군은 소년병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다. 이 부대원 생존자들도 갓 20세 혹은 그보다 안 되는 청년들[71]이었다고 증언하고 있었고, 그 당시 상황상 14-15세의 대공포병들이[72] 지천에 널려있었다. 가치관 정립도 안 된 애들을 세뇌해 밀어넣는 상황이었다는 의미다. 소년병 참조.
그 외에는 유선 혹은 무선으로 만든 무인 자폭차량[73]인 골리아트라는 무기가 존재했다. 주로 공병용 목적으로 사용되었고 필요하면 전차 밑에 굴러들어가서 폭발하거나 적군이 배치된 건물을 파괴할 때 쓰이거나 필요하면 적군 탐색에서 적 앞에서 자폭까지(...) 일본의 카미카제식 자폭 공격과 거의 같았다. 그러나 차이점은 이건 사람은 조종만 하고 자폭은 무인기계가 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독일군들은 자폭 외에도 사격유도나 전선 설치 그리고 연합군 장난감 용으로 아주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이건 따지고 보면 자폭 병기가 아니고 그냥 바퀴 달린 유도 폭탄인데? 그냥 유도병기잖아
항공기 쪽으로는 이와 비슷한 아이디어가 제시됐는데 다행히도 이쪽도 유인 항공기가 아니라 폭탄을 가득 실은 무인 폭격기 위에 전투기를 얹은 디자인으로 목표 지점까지 다다르면 조종을 하던 전투기가 폭격기와 분리되어 귀환을 하고 폭격기는 목표에 충돌해서 자폭하게끔 하는 방식이었다. 일명 미스텔이라고 불리며 주로 Bf109나 Fw190에 Ju88 폭격기를 결합하는 것이었지만 Me262 제트전투기에 Ar 234 제트 폭격기를 결합하는 계획도 존재했다. 이것 또한 비행기 몸체를 쓴 미사일이지 자폭 병기가 아닌데(...) 이게 자폭 병기면 A-10은 훌륭한 자폭병기플랫폼이다
또한 V-1 로켓을 개조해 유인으로 조종하는 것도 있었다. 유인 V-1 로켓을 주장한 사람은 독일의 유명 여성 조종사 하나 라이치(Hanna Reitsch, 1912.3.29 – 1979.8.24)와 오토 슈코르체니. 하나 라이치는 세계 최초의 여성 테스트 파일럿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종을 조종한 여성으로 수륙양용기, 헬리콥터, 제트추진비행기, 로켓추진비행기, 심지어 V-1까지 조종했다. 특히 V-1은 실험 단계에서 자꾸만 발사 직후 추락하는 일이 이어지자 원인 및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탑승했던 것. 그 결과 V-1의 비행 불안정성이 확인되어 대대적인 설계 개수 끝에 실전 투입을 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 아줌마는 히틀러를 마지막으로 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당시 제6항공군 사령관 로베르트 폰 그라임 상급대장과 함께 히틀러를 탈출시킬 작정으로 비행기를 소련군이 바글대는 베를린에 뛰어들어 총통관저 앞 공터에 비행기를 착륙시켰던 것.
유인 자폭 항공기를 사용하지 못한 것은 아돌프 히틀러가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유인항공기 계획은 '충돌 직전에 조종사가 탈출하는' 개념이었는데도 인명 존중 문제로 반대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자살 공격은 독일 민족과 맞지 않다." 후퇴의 '후' 자만 들어도 게거품을 무는 그 히틀러가 말이다. 히틀러조차 반대한 걸 좋다고 만들어 소모하는 일본군의 위엄
그러나 실험은 해본다고 V-1 로켓을 개조한 것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1945년 전쟁 종결 직전 연합군이 베를린 가까이 진격하던 시점에도 계속 설득을 했고 히틀러도 패전이 눈 앞이라 전황만 돌릴 수 있으면 될 대로 되라면서 동의해서 엘베 특별공격대가 조직되어 히틀러가 반대했던 유인 항공기에 의한 "자살공격 비슷한 시도" 가 감행되기도 하였다. 다만 일본처럼 조종사와 함선이 황천길 길동무로 동행한다기보다 아군기를 적기와 충돌시키면서 조종사는 낙하산으로 탈출한다는 방식이라 그나마 동반자살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물론 작전 개념상 그렇다는 것일 뿐 현실은 다르지만, 애초에 탈출을 전제로 해서 운용하려 한 것이었다. 시작부터 다르다. 게다가 이것조차 TV 카메라를 장착한 무인 버전을 제작하기도 했다. 현대식 SAM의 조상.
일단 미스텔의 경우 사실 2차대전 말기에 나온 아이디어인 만큼 독일측에선 불필요한 존재인 남은 폭격기의 유일한 활용 용도였을 테고 또 잘만 맞춘다면 꽤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었겠지만 활약 기록이나 그런 건 찾긴 힘들다. Action 24라는 이름으로 비스와 강의 소련군 도하를 막기 위한 교량 파괴 계획이 수립되었으나 흐지부지되고, 성공 사례는 1945년 3월 오데르 강에서 소련군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교량 파괴에 투입된 것들 중 일부밖에 없다. 많은 미스텔들은 실질적으로 투입되지 못했거나 투입되더라도 극소수의 희생과 훨씬 적은 전과만을 거둔 채 끝났다. 애초에 독일군은 조종사를 아깝게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고, 조종사가 교량을 폭격한 후 스스로 강에서 헤엄쳐 돌아오는 식의 자살공격 같지만 자살공격이 아닌 애매한 작전만 짜다가 끝난 것이다.
15.2.2 러시아
소련 공군에서는 여성 조종사로만 이루어진 폭격기 부대인 제588폭격연대가 한밤중에 독일 비행장을 습격하던 전술을 구사했다. 하지만 이쪽은 생환을 전제로 한 통상공격이다. 처음부터 자살 공격을 전제로 한 일본군과는 개념이 다르다. 이 공격에 사용된 기체인 폴리카르포프 Po-2는 시속 152km 수준의 초저속 비행기였지만 야간인 데다가 나무로 만들어져 독일군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았고 이렇게 저속, 저고도 비행을 하니 고속인 독일 전투기들이 제대로 요격을 할 수 없어서[74] 생각보다 생존율이 높았다. 그래서 유명한 An-2가 이 비행기의 개념을 가지고 만들었다. 독일군은 이들을 '밤의 마녀들(Nachthexen)' 이라고 말하며 두려워했고 이 비행대에서 소련 영웅이 여러 명 나왔다. 신비한 TV서프라이즈에서도 이를 다룬 이야기가 나왔으나 몇회였는지는 불명. 여담이지만 한국에서 많이 쓰던 러시아어 강독 교재(русский язык для всех)에도 이들의 활약상이 나온다. 또한 수리부엉이에도 이들의 활약상이 나온다. 나중에 한국전쟁 당시에도 Po-2가 성가시게 만들어서 이때의 별칭은 불침번 찰리. Po-2기를 주제로 한 동명의 한국 단편 문학도 존재한다.
소련 육군에서도 자폭 병기를 운용했는데 사람이 아니라 개였다.[75] 전차 하단은 장갑이 매우 얇다는 것과 파블로브의 조건반사를 이용한 것으로 개에게 폭탄을 매달고 이 개가 조건반사적으로 독일군 전차 밑에 파고 들어가게끔 훈련시킨 것이다. 그러나 소련군 전차를 이용해서 훈련시키는 실수를 범하는 바람에 실전에 투입된 개들이 소련군 전차 밑으로 파고 들어가는(...) 대참사를 가져왔으므로 이 계획은 포기되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위키피디아 대전차견 영문판을 참고하자.
15.2.3 영국, 이탈리아
이탈리아 해군도 가이텐 비스무리한 특수 어뢰를 만들었다. 이쪽은 카미카제나 가이텐처럼 돌격해서 적과 충돌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적함 밑에 가서 자석이 붙은 기뢰를 배 밑바닥에 부착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76] 어뢰의 탄두는 당연히 제거되었고 단지 이동용 택시로 쓰기 위해 만들었으며, 말 그대로 어뢰라 잠수함에서 발사되었기 때문에 귀환할 수는 없지만 적당히 근처 육지에 상륙할 수는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에 이 어뢰가 투입되었을 때 붙잡히지 않은 나머지 4명은 상륙하여 적당히 외국인인 척을 하다가 연락책과 만나기 전에 잡혀서 포로가 되었다.
이걸 타고 알렉산드리아에 잠입했던 이탈리아 해군 승무원 6명[77] 중 어뢰가 중간에 고장나 붙잡힌 2명은 자기들이 폭탄을 설치한 군함에 포로로 잡혀서 구조되어 심문을 받다가 폭탄이 터질 때가 다 되자 "5분 후 이 배는 폭발합니다" 라는 명언을 남겼고 정말로 5분 후에 배가 폭발했으며[78] 이 공격으로 영국군은 전함 2척이 대파당했고 동지중해의 제해권을 상실할 뻔했다. 이때 대파된 게 바로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의 1번함인 퀸 엘리자베스와 3번함인 밸리언트이며 영국군은 "이탈리아 해군의 용기는 타고 있는 배의 크기에 반비례한다" 는 말을 남겼다. 모든 이탈리아 해군이 이런 짓 하면서 연합 해군을 괴롭히면서 지중해를 방어했으면 북아프리카 전역이 망할 일은 없었다(...). 이 작전에 참가한 이탈리아군 승무원들은 포로수용소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이탈리아가 추축국에서 탈락한 후에는 신생 이탈리아 해군의 일원이 되어 독일군에 대항해 싸웠다.
이후 영국 해군도 윈스턴 처칠이 펄펄 뛰는 바람에 이탈리아군 어뢰정과 비슷한 물건을 만들어 채리옷이라고 명명했고 비스마르크급 전함 2번함 티르피츠를 앉은뱅이 오리 꼴로 만드는 데도 나름대로 공을 세웠다.
그러니까 콜옵에 나오는 수중 잠수 스쿠터(?)와 같은 용도인 것. 애초에 가이텐은 자폭 용도로 대량생산을 한 것이고, 이건 전장에서 임시로 때운 것에 가깝다.
그리고 이는 잘 읽어보면 자폭병기가 아니라 현대의 SDV 같은 특수부대 수송용 이동수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5.2.4 한국
6.25 전쟁 당시에는 많은 육탄전이 있었는데 이때 국군이 처한 상황이 37mm포를 탑재한 M8 그레이하운드가 최강의 기갑차량이었다는 건 감안하자. 당시 국군에서는 장갑차건 자주포건 진짜 전차건 구분 없이 탱크라고 불렀을 정도로 기갑차량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실정이었다. M1 바주카도 T-34/85를 잡기에 부족해서 부랴부랴 M37 슈퍼 바주카를 도입한 뒤에 겨우 상대할 수 있었고 심지어 지휘차량용으로 보내준 그레이하운드 보고 "포달렸으니 전차잖아? 막아!"하고 대전차 임무에 투입하는 일선 지휘관들이 비일비재했다. 대전차포도 화력이 부족했고 장비는 없는데 안 막을 수도 없으니 답이 없다.
그러나 춘천-홍천 전투에서는 매복한 57mm 대전차포로 적 기갑차량 측면 10m 거리에서 발포해서 전과를 올린 경우도 있고 육탄 11용사가 시체로 위장하고 있다가 적 전차를 기습, 11대의 기갑차량을 파괴하고 모두 살아서 돌아왔다.[79] 육박전을 하더라도 자살 공격만 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항공쪽에서는 6.25전쟁때 대한민국 공군이 해인사 폭격 명령을 받았으나 팔만대장경판을 파괴를 막기 위해 무기를 사용하지않고 일부러 가까이 접근해서 프로펠러로(!!!) 위협해서 북한군을 쫒아냈다는 일화가 있다. 다만, 이건 항공기의 몸체 자체를 무기로 쓴건 비슷하다만 자폭공격은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추가바람
북한 공군도 전쟁 후반기에 몇몇 조종사들이 인천의 유류저장시설에 자폭공격을 시도한 적이 있다.
15.2.5 미국
미국의 경우에는 폭약을 가득 채운 폭격기에 일단 승무원이 탄 뒤에 이륙, 일정 고도에서 탈출한 뒤 이 무인상태가 된 폭격기를 뒤따르는 항공기가 무선으로 조종하여 목표물에 들이받게 한다는 아프로디테 계획이 연구된 적 있다. 이 역시 유도병기지 자폭병기가 아니다.
9.11 테러 당시 테러범들에게 납치당한 유나이티드 93편을 격추시키기 위해 긴급 출격했던 미 공군의 F-16 전투기도 자폭 공격을 감행하려 했다고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당시 출격했던 전투기들은 훈련 비행을 마치고 귀환했다가 바로 출격한 상황이라 정말 답이 없던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현대의 전투기는 사출좌석이 있어서 설령 자폭 공격을 했더라도 날개만 서로 부딪치는 식으로 하고[80] 사출좌석으로 탈출하면 거의 100% 생존 가능하다. 우지끈 하는 순간 사출좌석을 당겨버리면 조종사는 훈련 받던 대로 내려오면 되는 것. 게다가 여객기는 속도가 빠르지도 않기에 생존율에 문제가 생길 이유도 없다. 당시 조종사들도 이런 날개로만 부딪히는 방식을 쓰려 했으나, 정말 불가피할 때 동체충돌할 각오는 했었다고.
15.2.6 알 카에다
대형 여객기로 타워를 자폭공격하는 정신 나간 짓을 벌였다.
이전에는 에어 프랑스 항공 8969편 납치 사건을 제외하곤[81] 비행기 납치는 자폭공격에 쓰이는 일은 없었다. 문제는 이 녀석들은 이걸 실행했고, 결국 성공했다는 거다.
제로센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하고, 멀리 가기 위해 연료를 가득 채운 항공기는 무게도 상당하고, 폭발할 경우 화염도 엄청날 거란 걸 계산하고[82] 이를 실행에 옮겨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16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16.1 실제 카미카제
16.2 게임
-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의 기획안에는 정식판에서 삭제된 팩션별 킬스트릭이 있었는데, 다른 진영들이 폭격이나 미사일을 쏟아붓는 것에 비해서 일본군은 카미카제가 나올 예정이었다. 상세는 콜 오브 듀티 시리즈/킬스트릭 문서로.
- IL-2 슈투르모빅 1946이라는 전투비행 시뮬레이션에도 구현돼 있는데 이쪽은 맞추기가 무진장 어렵다.
-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워 썬더의 싱글 플레이 미션 중 '만세!'라는 미션이 있는데, 직접적으로 언급은 하지 않지만 제로기에 폭탄 1개 달고 미군 함대를 무슨 수를 쓰더라도 격침하라 한다.[83] 거기에 '고도 100m를 넘기지 말라'라는 말로 확인사살.
16.3 영화
- 호타루 - 카미카제에 동원되어 전사한 조선인 이야기를 다룬다.
- 영원의 제로 - 이 영화에서는 이 카미카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다만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 이 영화는 국가의 카미카제 강요와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조 바람.
16.4 애니메이션
- 마츠모토 레이지의 OVA 단편 모음집 더 콕피트에서 주인공이 오카를 타고 미 항공모함에 들이박아 격침시키는 장면이 있다. 카미카제에 대해 부정적 시각도 보고 있지만 해당 장면에서 인류 최초로 음속을 돌파했다(...)는 병맛나는 자막과 함께 실제로는 해내지 못했던 항모 격침이라는 설정을 넣은 걸로 보아 좋게 봐주기 힘든 내용.
16.5 기타
- VOCALOID 곡 爾今の洋洋この蛍光にあり(이금의 양양 이 형광에 있으리)도 이걸 소재로 만들었다. 덕분에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천본앵보다 더한 논란이 되고 있다.
- 김별아의 소설인 가미가제 독고다이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군 가미가제에 동원된 조선인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위에서 언급된, 일본군 지휘관들의 막장스러운 인식도 등장한다.
17 모티브를 따온 듯한 각종 자폭
RTS 게임에서도 가끔 나오긴 하나 인간을 바탕으로 한 자폭병은 아주 드물고 대부분 기계형이나 짐승형으로 나온다. 게다가 자폭병이 나오는 게임은 매우 드물다. 여기 있는 예시들에는 진짜 카미카제 보다는 어자피 죽을거 같이 죽자는 식의 동귀어진이나 아주 급한 상황에서 다른 이들을 구하기위해 들이박는 경우도 섞여있다.
17.1 게임
- 194x 시리즈에서 플레이어 기체에 충돌하러 덤비는 기체들을 볼수 있다. 이거 영락없는 카미카제다.
- 놈4에서도 카미카제로 공격하는 적이 나온다.
- 디아블로3에서는 '몰락자 미치광이' 라는 새 몰락자(폴른) 종이 등장한다. 이놈들을 처치하는 수에 따라서 업적도 있다. 체력은 약한 편.
- 도타2도올과 도타2에 나오는 영웅 중 하나인 기술단의 기술 중 하나가 자폭이다. 모티브는 아래 나온 워크래프트3의 '숏더바이더빔'. 당하는 입장에선 자살로 취급되어 골드도 안 들어오고 동시에 엄청난 데미지가 들어오기 때문에 허탈해 진다.
- 메탈슬러그2(X 포함)의 마지막 미션에서 라그네임에게 많은 데미지를 주면 갑자기 라그네임이 지구를 날려버리기 위해 에너지를 충전한다. 이때 플라잉 타라를 조종하고 있던 한 모덴군 조종사가 라그네임의 중앙부에 충돌. 그 여파로 라그네임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퇴각한다. 영락없이 아래 인디펜던스 데이 항목의 패러디.
- 메탈슬러그3 2스테이지에는 자폭하는 좀비 모덴군이 전술적인 면에서 카미카제를 활용하고 있다. 4스테이지 몰락한 일본군 요새 루트를 이용하면 제대로 볼 수 있다. 몰락한 일본군이 다 부숴져서 날지 못하는 전투기를 천장에 매달아 묶인 실로 운영하면서 탄환을 흩뿌리는데 사실상 이러한 점에서 카미카제는 아니다. 동굴에 실로 매단 거라서 착륙지점 없어 총알만 냅다 갈긴 다음에 도착지쯤 되는 동굴 벽에 꼬라박고 사망하는 것 뿐이다. 주인공이 총알이라도 다 피하면 그냥 자살해버리는 것. 전술상으로 카미카제라 하긴 어렵다.
-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 태사다르가 기함 간트리서를 몰고 초월체에 들이받아 자폭한다. 다만 함체를 들이받는 좁은 의미의 카미카제가 아니라 사이오닉 에너지로 간트리서를 먼저 부순 다음에 간트리서 돌격의 관성으로 초월체에 그 에너지를 내리꽂는 것. 이 역시 답이 없던 상황에서의 마지막 선택지.
- 저그 유닛 스컬지와 인페스티드 테란은 공격 방식이 자폭이다. 갈귀, 그러니까 스컬지는 아예 유닛 설명부터가 인류 역사상 가장 야만스러운 공격 운운한다.
- 스타크래프트 2의 저그 유닛 맹독충 역시 자폭 유닛인 데다가 자폭 명령 버튼이 있다! 저그의 특성상 이런 소형 유닛들의 자폭 공격은 적에게는 무시무시한 악몽이다. 지능이 없는 짐승인 데다 워낙 저그에 대한 충성심이 골수까지 사무쳐 있는지라 현실의 카미카제와는 정반대. 애시당초 군단의 저그는 인격을 가진 생명체라기보단 거의 생체 부품 수준인데다 죽어도 다시 살릴 수 있고 생산속도도 매우 빠르므로 죽음에 큰 의미가 없다(...).
저그 군단의 수뇌부는 적어도 지능이 있지만 일본군의 수뇌부는 최소한의 지능조차 버린 듯한 게 가장 큰 차이다 - 소설인 플래시포인트에서는 발레리안 멩스크와 짐 레이너의 함대가 아크튜러스 멩스크의 자치령 함대와 교전을 벌이던 도중 발레리안의 퇴로를 확보하겠다며 휘하의 전투순양함이 자발적으로 아크튜러스 멩스크의 기함에 돌격해 충돌한다. 다만 이는 도청으로 작전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속임수를 쓴 것으로 실제로는 미리 승무원들을 대피시킨 다음 빈 함선으로 한 작전이었다.
- 공허의 유산 캠페인 '구원'에서 아몬의 세뇌를 받은 황금 함대 함선들이 아둔의 창에 돌진해 기능을 마비시켰다.
- 쉐도우 워리어에서도 Coolie라는 이름의 카미카제가 등장하는데 일격사급의 폭발 피해도 문제지만 높은 확률로 망령도 나오므로 상대하기 힘든 적.
- 시리어스 샘의 명물이나 다름없는 유닛. 1편에선 상체를 벗어제낀 근육질의 남자가 양손에 폭탄을 들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데 문제는 머리가 없다. 2편에선 왠지 마라톤 선수의 머리를 잘라내고 스프링 달린 폭탄 머리를 달아놓은 듯한 것이 마찬가지로 소리지르며 달려든다. 머리도 없는데 어찌 소리지르는지 신기. 다만 피가 조루고 폭탄이 스플래시 데미지라서 많은 수가 달겨들 때 적당히 살짝 갈겨주면 몰살당한다. 하지만 기동력이 매우 빨라 다른 유닛과 섞여 사방에서 달려들 경우 방심한 틈을 타 뒤통수를 맞는 경우도 많아 요주의. 그저 아아아아아아 소리만 들리면 긴장하게 만든다. 같은 종류로 촌스러운 보라색 셔츠를 입고 양손에 총이 달려 사격하는 역시 머리가 존재하지 않는 적이 존재한다.
- 1편 이전의 이야기를 다룬 3에서도 출현하는데 형태가 1탄의 그 녀석으로 돌아왔다. 사격하는 보라색 티의 유사품과 함께. 자세히 보면 1탄에서는 절단면이 빻갛게 드러나있는 그냥 머리 잘린 사람이였던 것이 3에서는 기술 떡칠로 절단 부위에 조종장치로 추측되는 기계가 붙어있는 것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1탄에서의 카미카제 출현 씬도 그대로 재현되어있다. #
- 에이스 컴뱃 어설트 호라이즌에서도 구현되었다. 미션 16 "아쿨라" 초반에 Su-35들이 구축함 "안치오"에 때려 박는다. 결국 "안치오"는 굉침한다.
굉침 맞나? 대파 아냐?아니 그런데 애초에 "안치오"도 구축함은 아닌데 모양새로 봐선
- 아트록스에서 인텔리언 종족의 유닛인 정커는 자폭 유닛인 데다가 클로킹까지 할 수 있다.
이건 거미 지뢰잖아그나마 최후의 양심은 있는지 클로킹하면 데미지가 절반으로 줄긴 한다.그 절반의 데미지로도 어지간한 유닛을 떼죽음시킬 수 있는 게 문제지만또한 크리티스 족 유닛인 파이어와 크로우는 에스코모이드에서 만든 봄거와 쇼거를 들고 매설하거나 자폭이 가능하다.[84] 봄거는 데미지를, 쇼거는 적을 단시간 마비시킨다.
- 임진록 2에서 일본군 공중 유닛들 중 카미카제라는 유닛이 있다. 공격력이 초월적이며 공중 유닛이기에 기동 제한도 없고 지상, 공중 전부 다 그 높은 공격력으로 스플래시 데미지를 주는데 단점으로는 값이 비싸고 체력이 시궁창이며 생산 된 이후 자폭을 할 수 있기까지 쿨타임이 조금 있는 편이란 거다. 즉 생산 즉시 공격이 안 된다는 것. 물론 꼼수를 쓸 수 있다. 먼저 쿨타임이 끝난 자폭병기와 묶어서 잘만 컨트롤하면 쿨타임 씹고 자폭한다. 이때 알 수 있는 건 쿨타임과 공격력은 관계가 없다는 것. 다만 여기서 나오는 카미카제는 설정상 무인 풍선폭탄이라 실제 카미카제처럼 사람이 죽을 일은 없다.
- 워 썬더의 유저 대다수(...). 도저히 손이 안 따라가서(...) 부딪히는 사람도 있고, 격추를 못 시키니 그냥 들이받는 축도 있다. 근데 이 방법이 효율적인 게 싸구려 기체로 충돌해 적기를 격추하면 그의 희생으로 아군이 상대팀의 위협에서 좀 더 안전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특히 이 행동이 가슴 찡하게 느껴지게 하는 건 리얼리스틱과 시뮬레이터 모드이다. 수리비가 대폭 싸지긴 했지만, 그래도 당한 쪽과 시도한 쪽은 수리비 때문에 멘탈이 붕괴(...)
이래서 수리비가 저렴한 러시아 기체들이 충돌에 자주 쓰인다[85] 헌데 가끔 1기 잡는다고 3대가 몰려다니다가 4기 전원이 동체추돌로 전멸할 때도 있다. 안습.
- 카미카제를 하면 지상과 해상목표에도 데미지가 들어가던 때가 있었지만 항의 때문인지 없애버렸다. 그래도 종종 기체가 되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거나 기체에 불 붙었을 때 되나 싶어서 시도하는 사람도 없잖아 있다. 간혹 멀쩡해 보이는 기체가 카미카제를 시도하는 때가 있는데 대부분은 그 유저가 지상공격이나 급강하폭격 후 상승에 실패한 거다(...). 초보들 많은 저티어 방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근데 이 게임은 B-17도 급강하 폭격하는 게임이라 티어 높은 방에서도 간간히 일어난다. 특히 산악지형
- 워크래프트 3의 오크 유닛인 트롤 뱃라이더는 공중 유닛에게 스플래쉬 자폭 공격을 한다.[86] 자폭하면서 하는 대사가 그 유명한 '숏더바이더빔(The end justify the means :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87] 그 외에 중립 유닛으로는 고블린 연구소에서 고용 가능한 고블린 셰퍼가 적 유닛, 건물은 물론 나무 등 맵상의 장애물을 상대로 자폭이 가능하다.
- 월드 오브 워플레인의 유저들 역시 조종 미숙 혹은 헤드온 상황에서 물귀신 작전으로 이런 짓을 자주한다. 내구도의 차이가 얼마가 나든, 부딪치면 서로 킬 수 올린 걸로 치고 같이 죽는다.지상/해상 타겟에는 그다지 큰 데미지가 안 들어가서 의미 없는 자살이 되는 게 워 썬더와의 차이점. 하지만 너무 이걸 악용해대니 이에 따라 불만이 제기었고 마침내 1.5 패치를 통하여 기체 내구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자폭은 통하지 않는다. 다만, 기체 내구도가 비슷할 경우만 동시자폭으로 간주되고 그 외의 경우로 기체내구도가 낮은 상대가 높은 상대를 들이받는 시도를 할 경우 들이받은 쪽만 파괴되고 피해를 받은 쪽은 적기의 내구도에 따라 충돌 데미지만 받는다. 월드 오브 탱크와는 달리 이쪽은 충돌공격 업적 따윈 없다.
- 월드 오브 탱크의 전차들은 서로 충돌시 충돌한 차량 간의 상대 속도 및 서로의 중량에 따라 피해를 받는다. 이것으로 자신보다 고급 티어의 전차를 파괴하면 '카미카제' 라는 훈장을 받는다. A-20은 사실 이거 아니면 딱히 마땅한 전법이 없다 하여 '소련의 유인미사일' 이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근데 틀린 말이 아니다(...).
- 웜즈 시리즈에서는 격투계열 무기로 머리띠를 묶고 '카미카제!' 라고 외친 후 날아가 자폭한다.
- 팀 포트리스 2에서 솔저의 카미카제라는 도발이 있다. 탈출계획이나 등가교환기로 도발을 하면 근접무기를 던지고 C'mere cupcake라고 말하며 가지고 있던 수류탄 하나를 까서 위로 치켜올려 자폭한다. 주변에 있는 적들에게 500의 피해량을 주어 폭사시킨다.
- 폴아웃 시리즈 중 클래식 시리즈 및 폴아웃:뉴 베가스에 등장하는 재주(Trait). 클래식 시리즈에서는 시퀀스 수치를 5나 올려주기 때문에 사실상 무조건 첫 턴에 가지만 반면 방어력이 0이 되는 병맛 재주이다. 뉴 베가스에서는 액션 포인트가 10 추가되는 대신 데미지 내성이 2 낮아진다고 한다.
- 홈월드 시리즈에도 이런 명령이 있다. 기본은 K키이며 콜벳 이하에게만 지시가 가능하며. 홈월드 캐터클리즘에는 감염 물질을 넣은 자폭 미사일이 있다. 홈월드2에선 짤렸지만, 내부 시스템 상으로 존재하며, 미션 중 AI가 사용하기도 한다.
- 히토가타핫파에서는 플로우 게이지가 꽉 찬 상태에서 적과 충돌하면 폭발이 일어나면서 적에게 큰 데미지를 주게 되면서 해당 기체(인형)를 잃게 된다. 게다가 보스 전에선 기본 공격이 강력한 일부 기체(인형)를 제외하곤 이 자폭공격을 적극 활용하지 못하면 데미지를 제대로 주지 못하여 클리어 할 수 없다.
- 제목에 카미카제가 들어간 것으로 clochette의 에로게 카미카제☆익스플로러!는 제목에 카미카제가 있다.
- 바인딩 오브 아이작에서도 아이템 중 자폭공격을 하는 카미카제 아이템이 있다.
- 플래닛사이드 2에서는 클로킹 능력이 있는 플래시라는 사륜오토바이에 C4를 붙이고 자살테러를 해대는 사람들이 있다.
- 배틀필드 4에서도 카미카제가 있다 헬기에 C4를 붙혀 자리잡은 아군 AA건을 죽이거나(...) 차량 앞부분에 C4를 부착해 적 전차에 돌진후 같이 폭사하거나 내려서 적군만 폭사하게 하는법도 있다 그리고 ATV 앞부분에 대전차 지뢰를 설치하는법도 있다
심지어 그냥 전투기가지고 전차레 꼬라박을때도 있다
근데 전투기 앞에 대전차 지뢰를 달아놨다면 정말 효율적이다(...)
17.2 애니메이션 & 라이트노벨 & 소설
- 유희왕 GX(만화) 유희왕GX 코믹스 특별편에 등장하는 유희왕 카드군 마스크드 히어로 중에 하나. 카드명은 마스크드 히어로 카미카제 였으나 한국 입장에 볼 때 불쾌한 면이있어 국내 스트럭처덱 히어로즈 스트라이크 에서는 마스크드 히어로 신풍으로 카드명을 바꿔서 표기하였다.
- 꽃피는 에리얼포스 - 해당 항목 참조.
-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 기동전사 건담에서는 류 호세이가 건담을 파괴하려는 크라우레 하몬의 마젤란 톱을 막기 위해 코어 파이터로 돌격해 산화한다. 그 외에 가르마 자비, 슬렛거 로우도 자폭 공격을 감행한다.
- 기동전사 건담 UC 7화에서 갈루스 J의 파생형인 슈트룸 갈루스가 등장한다. 강습용 MS이며 적함에 뛰어들어 백병전을 펼치는데, 우주용이면서 추진기가 없다. 적함을 격파하고 나면 아군이 구조해주지 않는 한 꼼짝 못하고 우주미아가 되어 죽는다(...). HGUC 설명서에도 특공병기의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고 소개할 정도다. 게다가 그런 와중에 풀아머 유니콘 건담이 날려보낸 프로페런트 부스터에 맞고 우주미아 신세(...).
- 기동전사 V건담에서는 올리퍼 이노에가 V2건담의 코어파이터로 적의 기함 아드라스테아에 자폭 공격을 행했지만 아무 피해도 없었다. 전함의 진격 시간을 아주 조금 늦추었을 뿐. 주인공 입장에서는 소중한 동료를 잃고 소중한 지휘관을 잃고 소중한 전력까지도 잃은 것. 참고로 올리퍼는 임신한 애인도 있다. 보통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자폭 공격은 미화와 보정으로 인해 무엇인가 결과를 남기는 것에 반해서 올리퍼의 자폭은 절박한 상황에서 한계에 치달아서 행한 아무런 이득도 없는 개죽음 그 자체였다.
- 건담 시드 데스티니 28화에서 오브군의 무라사메 파일럿 바바 일좌(소령에 해당한다)가 전투를 저지하려는 카가리 유라 아스하를 밀어내고 곧바로 미네르바에 돌진해 트리스탄(미네르바의 무장)에 피해를 주었다.
- 기동전사 건담 00에서는 아예 가가라는 유인 & 자폭 & 양산 모빌슈트가 등장한다. 저 자폭용 기체에 사람을 태운 이유는 단지 트란잠 발동 용이었다(...). 이 가가에 태운 이노베이드 디바인 타입은 넘쳐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인명경시를 하는 리본즈를 까기 위해서 넣은 장면인 듯.
- 기동전사 건담 AGE에서 10화 UE와의 전투에서 전황이 불리해지자 돈 보야지가 전함에 돌격한다. 부하들까지 죽어가며 겨우겨우 전함에 돌격하지만 거둔 성과는 전혀 없었다. 주 타깃이 아동인 애니메이션에서 대놓고 자폭을 미화해서 방송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상당히 많았다.
거둔 성과가 없다는 점에서 미화가 아니라는 변명이 가능하다그 후 13화에서 라크트 엘파메르의 자폭을 막아서는데 원래 이렇게 기획된 것인지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고 수정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 신기동전기 건담 W에서 자폭 장치는 모든 건담에 들어있지만 딱 한 번 카미카제짓을 했었다. 우주로 올라가려 하지만 올라가기 전에 전멸될 위기에 처하자 카토르 라바바 위너는 스스로 건담 샌드록을 자폭시키려 했지만 H교수가 미리 장치를 썼기에 카토르는 탈출하고 OZ 병사들만 죽어나갔다. 일명 너네는 죽고 난 죽을 것 같았는데 산다.
- SD건담 삼국전에서 황개 구프가 조조의 수군 함대에 향해 자폭했다. AGE처럼 따지자면 이쪽도 문제가 있는 거다.
- 그림자 자국에서는 바이서스군이 아일페사스를 상대로 카미카제 공격을 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일페사스가 공중에서 바이서스 군에게 경고하는 동안 비행기 편대가 권총사격[88]을 가해 아일페사스의 방심을 이끌어낸 후 연료 대신 폭약을 가득 실은 비행기가 아일페사스에게 카미카제 공격을 가했다. 그 공격으로 인해 아일페사스는 꽤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며 결국 지상에서의 후속 공격으로 지면에 추락하게 된다.
- 무적초인 점보트3에서는 인간폭탄을 남발한다. 급기야는 히로인까지 원격폭발 당한다. 토미노 요시유키한테 '몰살의 토미노' 라는 악명을 안겨준 작품 중의 하나. 물론 이 애니메이션 자체가 겉보기와는 완전 딴판이기는 하다. 자세히 봐야 할 점은 자폭이 아니라 원격폭발 당한 것이다. 외계인에게 납치당해서 인간폭탄으로 개조되어 풀려나진 것이지 스스로 지원해서 한 것도, 그 폭발 사실을 알고 있던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납치당해서 친족 머리에 총구 겨누고 자폭조끼 입고 자폭하라고 명령받은 것과 같은 수준이지 절대 원해서 한 게 아니다. 작중에서 몇 군데 인간폭탄으로 피해를 입은 후 자신들이 폭탄으로 개조된 걸 알아버린 사람들이 스스로 인적 없는 곳에서 죽고 싶지 않다고 흐느끼다 폭파 당한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이게 현실의 카미카제와 가장 유사하다
- 우리들의 모지 쿠니히코전에서 극도로 불리한 상태에서 모지가 딱 한 번 사활을 다해 날린 공격이 완전히 먹히지 않고 죽을 위기에 처하자 세키 마사미츠가 공군에게 요청해 파일럿 한 명이 자폭해 승리를 이끌어낸다. 이에 모지는 그 분들이 없었다면 이길 수 없었다고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 제로의 사역마에서 히라가 사이토가 자위대 항공기지에 있는 F-2를
불법탈취한 뒤마방에 올인하고 물방 안 찍은드래곤을 물리친다. 근데 사이토의 연기로 인해 다들 추락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멀쩡한 상태인데 카미카제를 시전했다. 그것도 1600억에 해당하는 항공기로.에라이
-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극장판 1화에서 알레이버크급이 시전한다.(...)
- 우리나라의 김준기 감독의 환이 카미카제를 다루고 있다. 밀덕들이 봐도 지릴 정도의 철저한 고증과 수준높은 영상미를 보여주며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를 비판하고 있는 보기 드문 명작.
17.3 영화 & 드라마 & 특촬
- 스타워즈 6 제다이의 귀환에서 이제큐터급 슈퍼 스타 디스트로이어가 반란 연합군의 A-wing 1기에게 카미카제를 당했다. 그러나 이는 처음부터 자폭 공격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기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A윙 조종사가 "어차피 죽을 바에 적들과 같이 간다" 하는 심정으로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다.[89] 이는 전투기가 등장한 1차 세계대전 때부터 지금까지 흔히 있는 일이다. 이제큐터와 A윙의 크기를 비교해보면 수박과 쌀알 정도로 사이즈차가 엄청나게 커서 별 효과 없었을 것 같았지만 하필이면 들이박은 곳이 수뇌부가 바글바글 모여있던 함교였다. 결국 이제큐터는 마비 상태에 빠져서 데스스타의 중력장에 끌려가 처참히 개발살났다.
- 인디펜던스 데이에도 등장하는데 영화 끝무렵에 컴퓨터 바이러스로 EMP 맞은 캐리어 꼴이 된 외계인의 함선에 UFO에 납치당했다고 믿는 주정뱅이 아저씨가 비행기를 몰고 돌진하여 영 좋지 않은 부분을 얻어맞고 그대로 추락하고 만다. 영화판에서는 은퇴한 지 30년은 된 아저씨[90]가 F/A-18을 몰고 나오지만 소설판에서는 그런 거 없이 농약살포 비행기에 멍텅구리 폭탄을 달고 들이박는다.
- 워터월드에서는 보트를 탄 채로 그대로 마을을 습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문제는 굳이 끝까지 타고 있을 필요가 없고 탈출도 간단한 제트스키였다는 것
- 택시 2에서는 야쿠자들이 장관이 탄 다니엘의 택시를 추격하다가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고, 야쿠자들이 자살을 각오하고 정면충돌하려 하자 이를 눈치챈 장관이 카미카제라고 외치며 놀래고, 야쿠자 운전수 또한 충돌 직전 눈을 질끈 감고서 반자이를 외친다. 물론 다니엘의 천부적인 운전 센스로 실제 사고 없이 다니엘의 택시는 야쿠자 차량을 따돌리고 도망간다. 영상보기.[91]
- 혹성대전쟁에서는 함장이 드릴 미사일을 몰고 자폭 공격을 가한다.
-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 등장하는 워보이들은 스스로를 "카미크레이지(Kami-crazy)"한 워보이라 부르며 죽음을 무릅쓰는 저돌적인 공격을 한다. 다만 임모탄 조가 그런 카미카제를 미화하는 워보이식 발할라 문화를 만들긴 했으나, 작중 임모탄 조가 직접 카미카제를 명령한 적은 없다. 죄다 워보이들이 자발적으로 뛰어들었을 뿐. 작중 카미카제식 공격은 딱 두번 등장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진짜 카미카제는 딱 한번 나왔다. 먼저 모르소프의 자폭씬에 경우, 모르소프는 이미 목 부위에 석궁이 꽂혀서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었던 관계로, 어자피 죽을거 멋진 모습으로, 적들과 같이 저승에 가겠다는 식으로 뛰어들었던 것.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카미카제라기 보다는 동귀어진에 가깝다. 모래폭풍 속에서 눅스가 자폭하려다 실패한 부분은 말 그대로 카미카제라고 볼 수 있다.
18 관련 링크
- ↑ 숙련된 조종사들과 베테랑 조종사들을 다 잃었다.
- ↑ 밑에서도 설명하겠지만 카미는 신, 카제는 바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 ↑ 일본어를 읽는 법은 크게 한자의 소리를 읽는 음독과 뜻을 읽는 훈독이 있다. 음독은 한자의 음으로 읽은 것이고 훈독은 한자의 뜻으로 읽은 것. 같은 한자라도 위치에 따라 읽는 방법이 매우 달라진다.
- ↑ 실제로 독소 전쟁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묘사한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서 우라돌격을 반자이 어택처럼 묘사했는데, 이걸 본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소전쟁의 소련군 참전 용사들이 어찌 우리가 싸운 걸 저 따위로 묘사했냐며 격노했다고.
- ↑ 일본은 예전부터 신토를 강하게 믿고 있었다. 아시아권 지역에서 불교열풍이 불었을 때도, 또한 성리학 열풍이 불었을 때도 신토는 어김없이 믿을 정도로...
- ↑ 신참 조종사가 몰았던 카미카제의 명중률이 14%에 불과했고 카미카제가 주는 공포심은 초반에나 좀 통했지 나중에는 좀 익숙해진 미군 수병들이 낄낄거리며 사냥하는 시늉까지 했던 점을 보자면 과장된 면이 있다. 무엇보다 갑판에 들이받지 못하고 현측에 충돌했을 경우 함의 페인트만 좀 벗겨지고 마는 안습한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99식 습격기의 경우 영국 해군의 순양함인 HMS 세섹스 호에 그을음으로 도장마냥 찍힌 사례도 있었다.
- ↑ 이 당시 미군의 상황도 영 좋지 않아서 1대의 호위전투기도 없이 뇌격기 편대들이 축차투입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 ↑ 물론 불특정 다수가 죽는 것을 염두에 둔다는 뜻이 아니라 작전에서 특정 인원이 확실히 죽는다는 의미다.
- ↑ 참고로 사카이 사부로는 종전 직전에 장교가 되긴 한다.
- ↑ 중요한것은 베테랑 조종사나 에이스들은 좀 됐다 싶으면 비행학교에서 후배들을 양성하라고 군에서 비행학교로 보내버린다. 근데 그 베테랑들이 일회용 폭탄마냥 갖다 꼴아박으면 누가 신참들을 가르칠건가? 실제로 발지전투에서 보텐플라테(철퇴)작전에서 독일군은 항공전력을 올인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베테랑들을 거의 다 잃어버리는 바람에 파일럿의 기량이 뚝 떨어졌다.
- ↑ 하지만 전쟁 끝난후 군부에서 고위직들중 자결한 이는 손에 꼽을정도이다. 진정한 치킨호크
- ↑ 사실 겐다 미노루 자신도 카미카제 반대파였다.
- ↑ 실제로는 우가키 마토메가 카미카제 찬성론자이자 신푸특공대 작전을 입안한 장본인이었고 겐다 미노루는 카미카제 반대론자였다,
- ↑ 자뻑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뒤에 이어지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자신이나 위의 이와모토 테츠조, 사카이 사부로 같은 유능한 에이스들, 베테랑 조종사들 그 이전에 조종사라는 귀중한 인력을 이따위로 낭비한다면 절대로 미국을 이길 수 없다는 자조적인 뜻에 가깝다. 또한 이 사람은 레이테 만 해전 항목을 참조해 보면 알겠지만 실제로 경험과 조종 실력 하나는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에이스 파일럿이었다. 오히려 이 정도의 에이스가 작전을 수행한 바람에 그야말로 제대로 들이받아서 크게 성공해 버린 탓에 상부에서 자살 공격이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여, 카미카제가 단발성이 아닌 지속되게 된 원인이라는 소리도 있을 정도.
- ↑ 당시 일본 제국은 귀축영미라 해서 '미국과의 전쟁에서 지면 여자들은 강간당하고 남자들은 학살당한다'고 국민들에게 세뇌를 했다. 사이판 전투에서 민간인들의 대규모 자살극이 이 때문에 벌어진 것이며,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일본인 민간인들이 미군 병사가 자신이 마셔서 독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난 뒤에야 물을 받았을 정도였다.
- ↑ 어찌 보면 국가가 외치는 전쟁의 영광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뼈저리게 보여주는 명언이기도 하다.
- ↑ 1945년 당시 13살
- ↑ 사실 사카이 사부로가 전시중에 카미카제에 대해 비난했다든가 거부감을 보였다는 일화는 없다. 사카이 사부로의 카미카제 비난은 전쟁 이후 '전쟁연구가'를 자칭하며 활동하던 시절에 나온 것들.
- ↑ 자기의 자서전에서 카미카제에 대한 감상.
- ↑ 무슨 이유여선지 모르지만 히틀러의 메가 프로젝트 시리즈 중 하나는 맞다... 음? 그런데 문제는 정작 독일에서 이것과 비슷한 작전이 입안됐을 때는 히틀러도 반대했다는 거. 항복이란 말이 나오면 히스테리를 일으키던 그 천하의 히틀러조차도 비인도적이라며 반대한 것을 작전이라고 한 일본군은...
- ↑ 거기에 패배주의자로 낙인 찍히게 되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들 까지도 이지메를 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 ↑ 조선인 출신 카미카제를 들먹거리는 경우도 있는데 조종사는 예나 지금이나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서 당시 카미카제로 끌려간 대다수 조종사들이 고등 교육을 마친 고학력자 일본 본토인들이었다. 나라의 미래를 이끌 인재들을 무참히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
- ↑ 참고로 이 병사들은 이공계 대학원생이였다. 일회성 소모품으로 쓸만한 인력이 아닌 것. 작중에서도 자신이 대학에서 진행중이였던 연구라도 끝내고 죽고싶다는 언급이 나온다.
- ↑ 작중 주인공 겐의 맏형 고오지가 해군에 입대하러 가던 도중 카미카제 병사들을 만나는데 이 중 한 명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이런 망할 세상을 만든 놈들을 저주하며 죽을 테다"라며 울부짖는 장면이 나온다.
- ↑ 현재의 초등학교
- ↑ 저 실험은 원자로 벽에 쓰이는 특수 콘크리트 내구성 실험이다. 일종의 홍보용 영상인데 '이만큼 튼튼하니까 안심하세요' 라는 의미로 배포한 영상이다. 하지만 안전불감증처럼 아무리 좋은 재료에 좋은 시스템이라도 관리하는 사람 혹은 명령권자인 높으신 분들이 병크를 저지르면 저런 거 다 소용 없다(...).
- ↑ GPS가 위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걸 생각하면 이 시대에는 택도 없었다! 최초의 인공 위성이라 할수 있는 스푸트니크도 발사된 건 1957년이었다.
- ↑ 이 임무를 맡은 함을 피켓(picket)함이라고 하며 포클랜드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 전투기의 엑조세에 맞아 침몰한 셰필드도 피켓함이었다.
- ↑ 그 중 유명한 배가 바로 USS 래피. 자그마치 50기의 카미카제 공격기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FM2 와일드캣과 F4U 콜세어 부대의 지원도 있었고, 래피는 카미카제를 견뎌냈다.
- ↑ 레이테 만 해전 이후의 1944년 하반기 동안 미 해군 항모의 전투기 비율은 항모 전체 함재기의 70%까지 증가했고 각종 함정의 대공화기도 엄청나게 증설되었다. 또한 필리핀 해 해전에서 보여준 미 해군의 함대 방공 관제시스템은 전투초계기를 더욱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끝판왕 근접신관까지...
- ↑ 개방식 격납고는 비행갑판에 폭탄이 떨어져도 충격은 거의 전부 밖으로 다 새나가지만, 폐쇄식 격납고는 비행갑판에 폭탄이 떨어질 경우 충격파로 인해 배의 속을 뒤틀리게 만들며 수리하기도 어렵다.
- ↑ 영국이 전후 항공모함을 대거 퇴역시킨 것은 재정상황의 악화로 군축의 길을 걸은 것과, 장갑항모의 격납고 높이가 낮아 제트기를 운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 ↑ 에식스급 항공모함 3번 함 CV-11 인트레피드, 7번 함 CV-15 랜돌프, 9번 함 CV-17 벙커힐 등등
- ↑ 다만 CVE-63 세인트 로 등 호위항모를 격침한 전과는 있다. 그런데 아래에도 나오지만 미군에서 호위항모는 1주~2주 꼴로 한 척씩 건조 → 취역시키고 있었다는 게 함정. 그것만이 아니라 미 해군이 운용한 호위항공모함들은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 문서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원래 리버티선이나 유조선 같은 수송선을 개장해서 만든 것들이다. 전투함이 아닌 수송선을 기반으로 만든 것들이니 당연히 물장갑이었다.
- ↑ キ9九五式一型練習機. K5Y, 연합국 코드명 Willow, 이른바 '고추 잠자리(赤とんぼ)'
- ↑ 폭탄으로 인한 피해면적+항공기로 인한 피해면적
- ↑ 윈스턴 처칠의 지시로 아시아 극동지역의 영국 해군력을 재건하기위해 1944년 하반기에 영국 해군 태평양함대가 신설되었고 유럽에 있던 영국 해군 주력함들이 배속되어 태평양에 전개되어 태평양 전쟁의 마지막 8개월동안 미국 해군과 합동작전을 펼쳤다.
- ↑ 게다가 저 때는 거함거포주의때라서 자기 주포를 맞아도 견디는 만큼 지금과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함선의 옆면을 엄청나게 두껍게 만들었다.
- ↑ 그냥 자신을 보자마자 들이받는 적과 끝까지 싸우다가 죽을것 같은 상황이 닥치면 자신을 향해 돌진해오는 적중 누가 더 무서울지는 안봐도 뻔하다.
- ↑ 이러한 노력은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된 두 명의 해군 장교(존 F. 케네디(어뢰정 정장)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뇌격기 조종사))를 포함한 많은 인적 자원을 구해냈다.
- ↑ 1944년 하반기, 미 공군(약칭)의 B-29 폭격기 부대들이 마리아나 제도에 전개되어 일본 본토공습을 펼쳤을때 기체 고장 or 전투 손상으로 무시못할 숫자의 상당수의 승무원들이 태평양의 망망대해에 불시착했었다. 미군은 여러가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불시착한 B-29승무원들을 구조하기위한 육,해군 합동조직을 신설하고 구조 체계를 완성시켜 불시착한 승무원의 과반수이상을 구조하는데 성공했다. 불시착한 승무원은 근처에 있는 해군 수상함, 잠수함, 육군 항공대의 정찰기, 구조용으로 개조된 주력 전투 항공기들과 어렵지않게 접촉할수 있었다.
- ↑ 그보다 시기적으로 더 전인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 때도 마크 미처 제독이 아이스크림(!?)을 걸고 바다에 불시착 혹은 격추당해 물에 빠진 생존 조종사 구출을 독려했던 적도 있다.
- ↑ 물론 미군도 완벽했던 건 아니었고 온갖 병크로 점철되어 대형 참사로 일을 키운 것도 모자라 책임을 억울한 사람에 떠 넘기고 덮어버리는 흑역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세한 것은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 항목 참조.
- ↑ 1939-1945년까지 양성된 전체 미 공군(약칭),해군 조종사이다.
- ↑ 일례로 제로센킬러로 알려진 F6F 헬캣과 한국 전쟁에서도 활약한 바 있는 대전기 최강의 함재기 F4U 콜세어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 개전과 함께 미국이 연합군측에 참전, 추축국들과 본격적으로 싸우게 되는 진주만 공습보다 훨씬 이전인 1938년부터 각각 개발되고 있던 것들이다.
- ↑ 오키나와만이 아니라 일본의 모든 특공기 공격을 포함한 수치
- ↑ 여담으로 전쟁 기간 동안 항공기는 독일군이 일본군보다 훨씬 더 많이 만들었다. 독일군이 총 119,307대, 일본군이 76,320대 정도. 그럼에도 대전 말기 독일군의 항공기 손실이 일본군보다 적었던 건 일본처럼 항공기를 적에게 들이박는 삽질을 하지 않았기 때문.
- ↑ 사실 일본군도 항공기 발전에 대한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다만 1943년부터의 자원난과 공업기술의 열화가 불러온 고질적인 엔진기술 관련 문제로 신형기를 양산하려 해도 여의치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육군의 Ki-84 하야테, 해군의 A7M 렛푸다.
- ↑ 무엇보다도 숙련된 경험자들을 저딴 식으로 낭비하고 난 뒤엔 숙련 노하우를 전수할 사람이 없다. 현대 한국군으로 치면 어떤 대대에 일병부터 병장까지 다 죽고 이등병만 남았고, 그 이등병마저 좀 숙련됐다 치면 다 죽어서 결국 신병들로만 대대를 이루는 셈인데, 이 대대가 과연 대대급에서 기대할 수 있는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까?
- ↑ 실제로 일본도 제로센을 어떻게든 개량하거나 대체하려고 노력을 하기는 했다. 허나 그리 적극적이지는 않아서 제로센을 대체할 신형 함재기 렛푸같은 경우는 1940년에 개발계획을 잡았음에도 1941년 1월에 백지화시키고(당시 제로의 설계자였던 호리코시 지로가 제로 양산형인 A6M2b의 초기고장 문제로 바빴기 때문이지만 정말로 일본해군의 의지가 강했다면 다른 설계사를 쓰던가, 아니면 덜 중요한 부분부터라도 개발을 지속하지 폐기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시 개발을 시작한건 1942년이 4월이 되어서야 였다. 참고로 미군의 F6F 헬캣과 F4U 콜세어같은 경우는 무려 1938년부터 개발을 시작해서 1942년에는 이미 양산되기 시작한 상태였다.. 게다가 뒤늦게 개발이 재개되었어도 설계미스와 일본 공업 능력의 부재로 시원하게 말아먹히면서 결국 대전 말기까지 제로센 개량하면서 때워야 했다. 그리고 제로센의 성능적 한계는 명확했기에 일본은 함재기 분야에서는 신형기를 개발할 가능성이 사라져버렸다.
- ↑ 사실 군사적으로 봤을때 아군이 죽더라도, 반드시 적군을 잡아야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제한적이다. 괜히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전선사수 명령이 멍청하다는 말을 듣는게 아니다.
- ↑ 미군의 호위항모들은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거의 대부분 유조선이나, 화물선, 리버티선 같은 수송선을 기반으로 해서 만든 것이다. 그랬기에 전형적인 물장갑이었다.
- ↑ 이는 호위기를 제외한 숫자이다. 오키나와 해전에서는 자폭기만 1,500대 이상, 이들의 호위기를 포함하면 8,000기 가량이 자폭공격을 위하여 상실되었다. 이때를 전후로 사실상 카미카제는 주요 타격무기가 되고, 노후화된 기존 전투기들이 보조적인 위치로 역전되고 있었다.
정말 끔찍하다 - ↑ 그 중에서도 50기 이상을 탑재 가능한 정규 항모는 11척 정도에 불과했다(쇼카쿠급 2척(쇼카쿠, 즈이카쿠), 운류급 3척(운류, 아마기, 카츠라기), 히요급 2척 (히요, 준요), 히류, 소류, 카가, 다이호, 아카기). 여기에 시나노가 42기 정도 탑재 가능했고,
그런데 시나노는 마지막 작업하러 가다가 (울프팩도 아닌 단 한 척의) 레이더가 고장난 잠수함에게 걸려서 용궁행 편도티켓...나머지는 20~30기 정도만 탑재할 수 있는 경항모였다. 그마저도 산호해 해전, 미드웨이 해전, 필리핀 해 해전, 레이테 만 해전 등에서 격침되고, 특히 필리핀 해 해전에서 미드웨이 해전 패배 이후 긁어 모았던 항공 부대가 모조리 작살남에 따라 항공모함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상황까지 되어버렸다. - ↑ 호쇼, 카이요, 류호, 준요, 아마기, 카츠라기
- ↑ 그 이전에 카미카제 따위를 정식 전술로 채택할 정도였으면 이미 그 전쟁은 진 거나 다름없는 거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얼른 항복하고 이후 국가 재건을 위해 파일럿 같은 고급 인력은 보존하는 편이 훨씬 낫다.
- ↑ 이 점은 의외로 중요하다. 만일 미국이 '일본의 멸망' 을 목표로 했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마지막까지 저항하려 한 일본의 행동은 타당성이 있다. 그렇지만 미국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고 그저 일본의 항복 및 식민지 포기를 원했을 뿐이다. 일본의 수뇌부 역시 모르진 않았겠지만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보신, 그리고 덴노의 안위를 위해 자국민에게 미국과 영국을 '귀축영미' 라고 표현하면서 자국민에겐 마치 이들이 일본의 완전한 파멸을 바란다는 듯한 프로파간다적 선동을 했고 사정을 알 리 없는 많은 일본인들이 이에 선동되어 "항복하면 우리는 무자비한 미국인들에게 다 죽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어 이러한 자살 공격에 이용당했다.
- ↑ 이와 관련하여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미국을 자동차로 여행하던 야마모토가 차가 퍼진 적이 있었는데 누가 보아도 여고생(!!!)에 불과한 미국인 소녀가 공구를 들고 와 자신의 자동차를 수리해주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한 것이다. 자원의 차이 이전에 '기계' 에 익숙한 사람이 이토록 수두룩한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하면 백전백패라고 느꼈다 한다. 실제로 미국의 이러한 저력은 전시 체제로 들어서자 1~2년 후 익히 알려진 '쇼미더머니' 의 전설을 찍어내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쇼미더머니' 는 단순히 자원만 많고 사람만 많다고 할 수 있는 짓이 절대로 아니다.
이건 이오지마 방어사령관 쿠리바야시 타다미치의 일화 아닌가?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에서 비슷한 내용을 본 것 같은데 - ↑ 1960~70년대 우리나라만 해도 대학교나오면 출세보장되고 엘리트 인정을 받았는데 1930~40년대면 오죽하겠는가? 그땐 대학도 얼마 없었다.
- ↑ 참고로 저 1억 총옥쇄를 주장한 건 덴노인 히로히토가 아니라 군부다. 히로히토는 1945년 3월의 도쿄 대공습 이후 사실상 대본영 자체에서 손을 떼 버렸다.
- ↑ 실제로 원폭투하로 일본이 항복했을때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원폭투하로 전쟁 종결이 빨리 된 점을 매우 기뻐했다.
- ↑ 이 중 9척 수리불가로 폐함 처리
- ↑ 그러니까 "태풍? 그 정도 태풍에 별 일 나겠어?"
- ↑ 그런데 더욱 웃긴 것은 무서명 형식으로 '카미카제에 지원하겠냐' 라는 질문란에 모두 "아니오"를 선택하였다. 즉 본인들부터가 하지 않을 것을 남들도 하라고 미화하는 형식이다.
- ↑ 하시마 섬과 더불어
- ↑ 이게 정말 상식에도 안 닿는 이야기인 게, 막말로 표현하면 카고시마 현에서 등재요청한 카미카제가 만약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 알 카에다가 9.11 테러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신청해도 된다는 결과가 나온다.
- ↑ 일본에서 망언으로 국제사회에서 욕을 먹는 아소 다로와 아베 신조의 증조부나 조부들도 일본 패망 후 연합군에게 점령지에 약탈한 보물과 국가기밀 정보를 거래하여 살아남은 비겁자들이었다. 물론 자신들이 벌인 전쟁범죄는 자신의 직속 부하나 죽은 부하들에게 덮어씌웠다.
- ↑ 상부가 카미카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을때 반대하고 통상공격을 주장했다.그리고 본사에 정비병들을 보내 정비 교육을 시키는가 하면,똑같은 양의 연료라도 필수적인 내용만 교육시키고 효율성을 중시해 타 부대 부럽지 않은 베테랑들이 나왔다.또한 출격조와 후방조를 만들어 운영해,에이스들은 휴식은 물론,신참들 교육까지 할 수 있어 당시 일본에서는 매우 파격적일 정도의 정상적인 운영을 했다.
- ↑ 뿐만 아니라 폭탄을 안고 땅 속에 파묻힌 채로 차량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투쾅! 해버리는 복룡이라는 전술도 있었다고 한다.
- ↑ 취소된 독일의 자폭돌격기
- ↑ 그나마 머리에 피가 마르기 시작한 나이
- ↑ 5-60세 할아버지들과 같이 투입된
- ↑ 현재는 무인 지뢰라고 분류한다. 애초에 폭발해야지만 효과를 발휘하는 무장에다가 '자폭병기'라는 요상한 분류를 붙이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
- ↑ Po-2의 순항속도(110km)로 독일 전투기가 날았다가는 실속으로 추락하고 그렇다고 높은 고도에서 낮은 고도로 강하하면서 공격하다가는 아차 하면 땅바닥에 들이박고 더 낮은 고도로 날면 지표면에 충돌. 이게 문제가 되었던 이유는 야간 작전이었기 때문이다. 날도 안 좋고 야간이면 그야말로 버티고 현상 일어나기 딱 좋으며, 그 당시 전투기들은 HUD 같은 것도 없었다.
- ↑ 구일본군약소열전을 보면 "(미국의 본토상륙 시)일본군이 가진 유일한 대전차 수단은 폭탄을 안은 여고생이라고 말한 뒤, 일제만큼 인명을 경시한 소련에도 비슷한 게 있었는데 바로 폭탄 개"라며 대전차견을 보여준다. 일본 극우 역은 이를 보고 "일본인의 목숨은 소련 개 수준이란 거냐!" 라고 거품을 문다.
맞구만 뭐 - ↑ 이런 형태의 작전을 위해 따로 설립된 부대가 있는데 현대 UDT의 원조격인 부대다.
- ↑ 1기당 2명씩 총 3기.
- ↑ 불행인지 다행인지 폭탄이 선체에 제대로 붙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탄 군함은 대파당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갑판이 물 위에 떠있을 정도는 되었고, 그들이 갇힌 구획이 바로 폭탄 근처였음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부상만 입고 살아남았다.
- ↑ 당시 교전지역이 절벽이었는데 11용사 중 1명이 폭발에 의해 절벽 아래로 떨어졌으나, 절벽의 나뭇가지에 걸려 구조되었다.
진정한 극적인 장면 - ↑ 이 정도로도 격추하긴 충분하다
- ↑ 이것도 에펠탑에 자폭공격을 하는 계획만 짜놓았지 다행이 실행되진 않았다.
- ↑ 속도도 빨라 파괴력이 증대될 것도 예상했는지는 추가바람
- ↑ 게다가 죽으면 계속 부활할 수 있다!
- ↑ 파이어는 자폭과 매설만 가능. 크로우는 자폭과 매설 외에 지상 유닛/건물에 한해 폭탄을 투하한다.
- ↑ 그렇다고 복엽기로 들이받으려 해봐야 복엽기는 애초에 기체 강도가 약해서 피해를 주긴 힘들다. 고테크 떡장갑 비행기일수록 피해가 제대로 들어가고 어떤 경우는 들이받으면 들이받은 상대 비행기만 격추되고 본인은 멀쩡하게 날아다니는 경우도 있다. 물론 들이받고 살아남으면 무조건 비행장 가서 수리해야 한다. 날개나 몸통, 엔진 셋 중 하나는 빨간불이나 검은불이 뜬다.
- ↑ 이 유닛을 확대해 보면 박쥐 위에 폭발물을 싣고 트롤이 한 명 타고 있다.
- ↑ 'The end----- justify the means!' 하는 식으로 외치는 바람에 The end 부분을 빼고 들리는 게 숏더바이더빔(justify the means).
- ↑ 그림자 자국 세계관에서는 1차대전 수준의 비행기가 갓 나온 상태였다. 아일페사스를 공격한 것이 첫 번째 전투.
- ↑ 그 장면에서 충돌한 A-wing의 꼬리에 연기가 나고 있으며 비틀거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충돌한 A-wing이 이미 피해를 입었다는 증거다.
- ↑ 하긴 미국 대통령이 파일럿 출신이라고 전투기를 몰고 출격하는 판국이니... 뭐, 이 아저씨도 베트남 전에 참전한 해군 F-4 조종사였다고 잠깐 언급된다.
- ↑ 야쿠자 차량은 뭣 모르고 계속 악셀을 밟다가 다니엘의 뒤를 쫓던 경찰들과 다시금 충돌할 뻔하다 겨우 피하고, 경찰차들은 엉켜서 연쇄추돌 사고를 당하는데 단순한 추돌을 넘어 차 위로 차가 올라타는 진기명기를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