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문서 : 롯데 자이언츠, 흑역사/목록/야구
- 관련 문서 : 야구 관련 기담, 포스트시즌, 우용득, 백인천, 양상문, 강병철, 제리 로이스터,
양승호,김시진[1], 이종운 , 조원우
이 문서는 비속어, 욕설, 멸칭에 관해 설명하는 문서입니다. 따라서 읽는 이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열람하실 때 주의하시고, 읽고 싶지 않으시면 문서를 닫아주세요.
KBO 리그 끊어진 비밀번호 | |||||
삼청태 6366677 1982~1988년 | 롯데 8888577 2001~2007년 | LG 6668587667 2003~2012년 | |||
KBO 리그 진행중인 비밀번호 | |||||
한화 588689967 2008년~현재 |
목차
1 개요
파일:Attachment/8888577/lotte.jpg
"최근 7년 롯데 순위" 심지어 이 색(색코드 888857)도 저 배경과 유사하다!! 이쯤 되면 방송국 관계자가 롯데 안티 라는 멘트로 봐서 2008년쯤에 나온 자료화면으로 추정된다
롯데 자이언츠의 2001년[2]부터 2007년 성적으로, 저 속에 4연속 꼴찌라는 위업도 들어있는 위대한 숫자이다. 그 시절 동안 올린 패배수는 무려 538패이다.[3][4]
롯빠의 마지막 보루이자 타팀의 영원한 놀림거리. 하지만 타팀 팬[5]들이 자기가 응원하는 팀 성적이 나쁘다며 아우성칠때 옆에서 조용히 8888577의 주문을 외우면 닥치고 버로우하게 되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 사실 4연속은 아니어도 3연속 꼴찌를 한 팀도 롯데를 제외하면 2014시즌에 899를 달성하며 3연속 꼴찌를 달성한 한화밖에 없다는 점에서 어떤 팀에서도 깨기 힘들 것이 확실한 대망의 기록. [6] 바다 건너에서는 어느 구단이 2008년 부터 4년 연속 기록중...이긴 하지만, 이 구단은 1954년부터 1959년에도 6년연속 최하위1600!! 888888!! ○○콜 대리운전~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나선 1960년 리그우승, 일본시리즈우승. 어?
파일:LvNSkgy.jpg
당시 꼴빠들의 심정를 대변해주는 짤방. 삼성역사상 최악의 성적이었던 6위도 사실은 백인천 재임시절.[7] 쥐팬과 돈팬은 싱글벙글 하지만 쥐팬도 어느 모 금지어 때문에... 똑같은 상황이었던 건 안 자랑
2 안습한 역사
2.1 2001년 : 불운한 시작
2001년은 롯데에 있어 너무나도 불운한 해였다. 일단 마해영은 트레이드로 삼성에 이적했으며,[8] 주형광도 신인 시절부터 지속됐던 무리한 투구 혹사 탓에 시즌 아웃됐다.
게다가 2001년은 유례없는 중하위권 팀들의 치열한 순위싸움이 벌어진 해였는데, 이 치열한 상황에서 악전고투하던 김명성 감독이 시즌 도중 7월 24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상 유례없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삼성 라이온즈 감독을 맡았던 우용득 감독대행 체제로 어떻게든 수습하려 했고 후반기에 김주찬이 톱 타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며 팀에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해 시즌 막판까지 4강 싸움을 벌였으나, 2001 시즌 막판 펠릭스 호세가 마산구장에서 배영수의 빈볼성 투구를 참다 못하고 참교육죽빵을 날리며헤이 영쑤돈두댓 잔여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으며 팀이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한화는 물론 LG, SK에게마저 역전당해 득실차가 +를 기록하고도 4위와 2게임 차이로 아쉽게 8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호세가 출장정지 먹고 나서 1군에 갓 올라온 선수가 훗날 롯데의 주전 강타자
2.2 2002 ~ 2003년 : 백골프의 등장, 절정기
2001년 8위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다른 해의 8위와 달리 이 해의 4~8위간 성적은 2게임차로 거의 도찐개찐에 가까웠기에 꼴지를 했다고 뭐라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듬해 김민재의 FA 이적, 펠릭스 호세의 이중계약 파동이라는 악재를 맞았다. 특히 호세는 2002년에 재계약이 사실상 확정되었으나 휴식을 한다면서 스프링캠프에 오지않다가 갑자기 애리조나와의 계약을 하면서 이중계약으로 프로야구 최초 외국인선수 영구제명을 받게된다.[9]물론 KBO와 롯데구단이 항의를 안한건 아니었다.메이저리그 사무국에 항의 팩스를 몇번 보냈으나.실패로 돌아가게된것.[10]
이렇게 전년도의 주축 전력들이 이탈하기 시작하며 롯데는 나락으로 빠져들기 시작했고, 대행에서 승격한 우용득 감독은 이러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최악의 성적을 찍고 중도 사퇴하였고 동시에 새롭게 부임한 금지어라는 단어도 아까운 백인천 감독이 롯데 7년 암흑기를 확정짓는다.
백인천은 부임하자마자 시즌 포기와 리빌딩을 선언하며 온갖 무리수를 던져댔고, 그 결과 2002년 롯데는 구단 역사상 최악+모든 구단 역사상 뒤에서 3등[11]이라는 찬란한 성적인 35승 1무 97패, 승률 0.265를 내면서 독보적인 최하위를 한다. 7위 한화의 승률인 0.461와도 2할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 롯데 때문에 2002년 시즌은 역대 최악의 승률 인플레를 자랑했다. 순위 경쟁이 치열하면 페넌트레이스 1위와 최하위의 승률 차이가 2할도 안 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바로 전 해에는 한국시리즈 우승팀과 리그 꼴찌팀이 1할도 차이 안 났었는데... 동네북 그 정도면 차라리 고딩들하고 하는거 어때요? 참고로 이 때 롯데는 청보 핀토스 시절 허구연의 최하의 승률 기록인 0.273을 깼다...
이해 롯데의 홈 최종전이었던 2002년 10월 19일 한화전의 유료관중은 겨우 69명이었다.
이 당시 관중동원이 얼마나 안습이었느냐를 증명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2002년 9월 14일, 부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참가국들을 응원하는 시민 서포터즈가 결성되었는데, 원래 주경기장에서 발대식 행사가 예정되어있었다. 3만명 이상의 서포터즈가 모이고 행자부장관, 부산시장, 각국 대사가 참가하는 성대한 행사였다. 롯데는 침체된 프로야구붐을 되살려보겠다는 생각으로 사직야구장으로 장소를 변경하길 요청했고, 행사 이후에 서포터즈가 그대로 공짜 야구경기를 관람하게 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5년만의 만원관중 예상이라며 보도자료를 돌렸다.관련기사#1 그리고 야구장은 오랜만에 사람들로 붐볐는데... #2 하지만 그 날 관중수는...514명...행사가 끝나고 경기시작 시간이 되자 귀신같이 관중들이 다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3 당시 운영팀장은 "사람들이 돈 받는 줄 알고 다 갔나봐요."라며 씁쓸해 했다.과연 돈받는것때문에 우르르 나갔을까 공짜 야구도 소용없는 지경이었다.
새감독이 대놓고 시즌포기를 선언하고 다음 시즌을 제대로 준비하겠다고 했으니, 2003년 시범경기까지는 구단과 팬들도 나름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2002년에 남발했던 무리수의 후폭풍으로 개막 후 13경기동안 1무 12패를 서막으로 충격적인 시즌이 시작 된다. 2002년부터 시작된 백인천의 온갖 무리수가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하며 안좋은 결과들을 쏟아내자, 백인천은 책임은 고사하고 아예 감독직 수행을 거의 포기하고 배째모드로 들어갔다. 2003 시즌이 되며 유니폼을 새롭게 바꾸는 등 다름 새롭게 준비를 하려 했으나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그렇게 롯데는 2003년에도 바닥을 기다 결국 8월 백인천을 해임한다. 대행으로 부임한 김용철이 그나마 팀을 어느정도 수습하고 승률을 끌어올렸으나 이미 때는 늦어 39승 3무 91패, 승률 3할로 전년도에 이어서 압도적인 꼴찌를 차지했다. [12]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3년 연속 꼴찌.거기에다가 관중수가 2년연속으로 엄청난 삽을 푸다가 이승엽의 56호 홈런을 잡겠다는 부산 야구팬들의 일념(...)에 사직구장이 갑자기 만원구장이 되는 굴욕을 맛봐야했다.
2.3 2004년 : 리빌딩의 시작
3년 연속으로 꼴찌를 한 후 2004년부터 양상문 체제로 들어서면서 롯데의 본격적인 리빌딩 행보가 시작된다. 이상목, 정수근을 FA 영입하며 전력보강을 꾀했고둘 다 먹튀가 되었지만 이대호, 박기혁, 김주찬등을 중용하며 새로운 주축 전력들을 키워내려 애썼다. 그 결과 승률이 전년도에 비해 1할 넘게 올랐으나 그전까지의 누적 데미지가 워낙 컸던 탓에 50승 11무 72패로 다시 한번, 4년 연속으로 8위를 하게 되었다. 8888! 그로 인해 꼴데라는 별명 확정이게 다 백인천 때문이다!!![13] 안습.
2.4 2005~2007년 : 처절한 꼴데 탈출기
그렇게 리빌딩 행보를 밟아나간 양상문호는 2005년 초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1위까지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이후 팍 죽어버리며 한달도 채 안 되는 기간만에 또다시 나락으로 추락했고, 고군분투에도 불과하고 재활공장장 버프를 받은 한화에 밀려 5위라는 아쉬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이게 다 김재박때문이다! (참고항목 : 야구 명언 中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참조.)
그리고 2006년이 되어 팬들은 2년만에 팀을 5위까지 끌어올린 양상문 감독이 계속 감독을 맡을 거라 생각했지만[14] 구단주가 갑작스레 발표한 롯데 투자계획에 따라 새롭게 들어온 감독은 바로 강병철. 1984년 최동원, 1992년 염종석의 전성기와 그 후를 아는 팬들은 큰 우려와 혹시나 하는 작은 희망으로 그를 지켜봤지만 성적은 2년 연속 7위외쳐!! 77!!라는 기록과 함께 또다시 시궁창으로 빠지게 되고, 대망의 8888577이 완성된다. 동시에 팬들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던 강병철 감독은 주구장창 까이며 잠시 야인으로 지내다 08년 히어로즈 2군 감독직에 오르게 된다.
이시기 강병철 감독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해있어서,
파일:H3x4IdJ.jpg
잠실 구장에서 플랜카드가 걸리기도 했고[15] 사직구장에서도 "편파적인 강감독의 선수기용 반대한다" 라는 플랜카드를 걸기도 했다. 이 짤방만 봐도 이 시절 롯데 팬들의 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김성근 감독이 오기 전 한화 팬들의 심정도 아마 이 짤방과 비슷하리라. 그리고 김성근의 추악한 민낯이 공개되면서 한화팬들의 그 심정은 강제 재평가행.
2.5 롯데 자이언츠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이후(1992) 일어난 일들.
원본은 이렇다.(사이트 증발)
0. 강산이 2번 아니 2.4번 바뀌었다.
1. 케이블 TV 방송이 시작되어 스포츠 전문 TV가 등장했다.(1995) 그리고 PC 통신의 시대가 끝나고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었으며(1994) 스마트폰이 보편화되어 팬들이 롯데 자이언츠의 패배 경기를 TV 앞에서 컴퓨터 앞에서 그리고 길거리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2. 태평양 돌핀스가 현대 유니콘스에 인수되었으며(1995), 외환위기(1997)의 여파로 쌍방울 레이더스가 해체되고(2000), 7년 뒤에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됐다.(2008) 해태 타이거즈는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넘어가 KIA 타이거즈가 됐다(2001). 그리고 네 개의 새로운 프로야구 구단이 탄생했다. (2000-SK), (2008-히어로즈[16]), (2011-NC), (2014-KT)
3.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와 최초의 프리미어리거가 탄생했고(1994),(2005), 은퇴했다(2012),(2014). 국내 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투수와 타자가 나왔다.(2013),(2015)
4. 군인 출신 대통령이 물러나고(1993)[17] 새 정권을 무려 4번이나 거친 뒤[18] 그 전전 군인 출신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2013)
5. 모 반국가 단체의 초대 혹부리가 사망하고(1994) 그 아들 뽀글이가 권력을 누리다 사망하고 그 아들의 아들인 꿀꿀이에게 권력이 넘어갔다.(2011) 미국에서는 이 기간 사이에 부자 대통령이 탄생했고(2001) 그 뒤에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2009)
6.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1993),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4), 삼풍백화점 붕괴사고(1995), 인현동 호프 화재사고,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 (1999) 대구 지하철 참사(2003),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 (2013),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2014), 2015년 메르스 대유행 (2015)등 안전불감증이 원인이 된 안타까운 사건이 많이 터졌다. 특히 2014년은 게다가 이중에 학생들이 희생된 참사가 무려 6건이나 있다.
7. 한국 최초의 100만명 돌파 영화 서편제가 나오고(1993), 10년 뒤 최초의 1,000만명 영화인 실미도가 나왔으며(2003), 천만 명이 못 되던 한국영화 관객수가 2012년 1억명을 돌파했다. 2016년 현재 천만명 돌파 한국영화 13개[19]가 나왔다.
8.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작되었다.(1994)
9. 서울 지하철 3호선과 4호선이 확장되고 서울 2기 지하철(5호선~8호선)과 서울 지하철 9호선이 개통되었다. 부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부산 도시철도 2호선, 3호선, 4호선, 부산김해경전철이 개통되었다. 게다가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대전광역시 등 지방 광역시도 지하철을 개통했으며, 거기에 경부고속철도가 완공되어 KTX를 이용해 원정팀 응원단이 당일치기 응원을 오기 시작했다.
10. 주요 통신수단이 집전화+공중전화로 이루어지다가 무선호출기 삐삐가 등장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후 씨티폰이 짬깐 등장 하였다가 PCS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전 국민 휴대폰 보급율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이후 PCS는 사양길에 접어들고 현 핸드폰이 전 국민에 보급이 되고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스마트폰 열풍이 불었다. 이에 삼성전자는 갤럭시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초등학생까지 스마트폰을 보유하였다. 이후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특허소송이 시작되었고 몇 년간의 소송 끝에 이 소송전마저도 거의 종료가 되었다.
11.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작되었다.(1994)
12. 야후!가 설립되었으나(1994) 10년만에 구글에게 주도권을 넘겨줬고 한국에서는 다음이 네이버에게 주도권을 넘겨줬으며 프리챌(2011)과 나우누리(2013)가 서비스를 중단했다.
13. 대한민국의 대표 관문이 김포국제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이동하였다.(2001)
14. 주요 통신수단이 집전화+공중전화로 이루어지다가 무선호출기 삐삐가 등장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후 씨티폰이 짬깐 등장 하였다가 PCS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전 국민 휴대폰 보급율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이후 PCS는 사양길에 접어들고 현 핸드폰이 전 국민에 보급이 되고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스마트폰 열풍이 불었다. 이에 삼성전자는 갤럭시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초등학생까지 스마트폰을 보유하였다. 이후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특허소송이 시작되었고 몇 년간의 소송 끝에 이 소송전마저도 거의 종료가 되었다.
15. 대한민국 육군의 병 복무기간이 1993년 30개월에서 26개월로 감소하였다. 2003년 24개월로 감축된 후에 현 복무기간인 21개월로 다시 감축되었다. 그리고 저 때 태어난 남자아이들은 벌써 예비군이 되었다. 그 동안 88전차라 불리우는 K1전차는 K1A1형으로 개량되기 시작하였고, 세계 최정상급 성능을 가진 K2 흑표 전차가 순수 국산 기술로 개발/양산되었다. K9 자주포는 그 뛰어난 성능으로 터키에 기술이 수출되었고 그외에도 한국에서 개발된 온갖 무기들이 수출되기 시작하였다.
16. 대한민국 공군에서는 제공호라 불리우는 F-4팬텀 기에서 F-16으로 주력 전투기가 대체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F16보다 성능이 대폭 향상된 F15K가 도입 완료되었으며 T50 초음속 고등훈련기/경공격기가 개발되었다. 공중전의 핵심 공중 조기경보통제기 피스아이 4대가 도입되었고, 공중급유기와 최첨단 스텔스 성능을 보유한 F35 전투기 도입이 확정되었다.
17. 컴퓨터 저장매체가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에서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이후 CD 드라이버가 장착이 되면서 프로그램 실행은 CD가, 저장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가 수행을 했었다. 그러나 CD 드라이버에 WRITING 기능이 추가되면서 플로피디스크는 안드로메다로 떠나게 되고 CD가 대세가 될 듯 하였으나 이 역시 밀려나고 현재는 USB와 가상드라이버, 대용량메일이 자웅을 겨루는 중이 되었다. 이 사이 컴퓨터 운영체계는 DOS + WIN3.1에서WIN3.1은 1992년 출시 WIN95(서비스종료), WIN98(서비스종료), XP(서비스종료), WIN7, WIN8.1, WIN10으로 변경되었다.
18. 이승엽이 프로야구에 데뷔하고, 한 시즌 최다홈런을 롯데 상대로 달성했으며 일본리그에 진출했다가 복귀하고, KBO리그 최초로 통산 400호 홈런을 이번에도 롯데 상대로 달성했다.
19. 롯데 우승 직후에 김영삼 정부에 의해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었다.(1993) 또한 민법에서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법률, 줄여서 부동산 실명제가 시행되었고(1995) 자동차 손해배상 특별법이 시행되었으며(1999) 제조물에 대한 책임법률이 제정되었다.(2000) 또한 상가 임대차 보호법이 시행되었고(2001)명목상이지만 보증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2008)이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형법에서도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되었으며(2004) 그 놈의 헌법 불소급의 원칙 때문에 반병신이 되었지만 강력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2011)되었다. 게다가 일명 태완이 법으로 인해 2000년 8월 8일 이후의 모든 강력범죄의 공소시효가 정지되었다.(2015) 공법상으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과(1995) 친일 및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4)이 만들어졌다.
20. 국제적으로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끝나고(1995)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및 슬로베니아 등 여러 소국으로 분리독립 되었으며 코소보 사태가 벌어졌다.(1999) 911 테러가 일어났으며(2001) 이를 계기로 아프가니스탄 전쟁(2002)과 이라크 전쟁(2003)이 벌어졌다. 게다가 이집트, 리비아 등지서 민주화 혁명이 일어났으며, IS가 발흥하였다. (2014)
21. 하계 올림픽이 다섯 번 (1996, 2000, 2004, 2008, 2012)[20]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 그리고 동계 올림픽은 여섯 번 (1994, 1998, 2002, 2006, 2010, 2014)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열 두번 치루어졌다(1993, 1995, 1997, 1999, 2001, 2003, 2005, 2007, 2009, 2011, 2013, 2015). 그 중 아시안 게임 두 번과 월드컵 한 번,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한 번은 우리나라에서 개최했다. 가능성만 놓고 볼 때는 우리나라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릴 때 까지도 롯데가 우승 못할거 같긴 하다.
22. 롯데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이후 엑스포가 8번 개최되었고 9번 폐막되었다.[21] 이탈리아 제노바 (1992)[22], 스페인 세비야 (1992), 대한민국 대전 (1993), 포르투갈 리스본 (1998), 독일 하노버 (2000), 일본 아이치 (2005), 스페인 사라고사 (2008), 중화인민공화국 상하이 (2010), 대한민국 여수 (2012), 이탈리아 밀라노 (2015). 이 중 우리나라에서만 엑스포가 두 번이나 개최되었다.
23. 그동안 삼성 라이온즈는 무려 7회 우승했다. (2002, 2005, 2006, 2011, 2012, 2013, 2014) 게다가 삼성은 정규리그 연속 우승 횟수를 5로 늘렸다.(2015) 또한 타이거즈는 4번이나 우승했으며(1993, 1996, 1997, 2009) 두산 베어스 또한 3번 우승했다.(1995, 2001, 2015) 게다가 2000년대에 재창단 된 SK 와이번스는 우승을 3번 하였으며(2007, 2008, 2010), 해체된 현대 유니콘스는 V4를 기록했다(1998, 2000, 2003, 2004). 즉 롯데가 우승 못할동안 삼청태현도 롯데 보다 더 많이 우승했다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2015년 현재 최악의 비밀번호를 만들고 있는 한화 이글스(1999)도 심지어 롯데와 막장매치더비로 유명한 LG 트윈스도 적어도 한번 쯤은 우승했다.(1994) 그냥 롯데 빼고 다 우승했다고 해라. 더욱 암울한 것은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마산아재의 귀여움을 받는 NC 다이노스과 수원아재의 귀여움을 받는 KT 위즈가 더 빨리 우승할 것 같다는 점이다. 2016년 현재 상황에서는 kt 위즈의 우승이 가능성이 없겠지만 LG의 22년 만의 우승,NC의 창단 첫 우승, 두산의 5번째 우승은 실제로 가능성이 있다는 게 함정
24. 그전까진 20-20클럽 가입자는 김성한, 이호성, 장종훈 단 3명에 불과했다.(92년 제외) 박재홍, 이종범, 홍현우, 제이 데이비스, 이병규 등 5명의 30-30클럽 가입자가 나왔고, 2015년 드디어 40-40가입자가 나왔다.
25. 장종훈 이후 12명의 40홈런 타자[23] , 3명의 50홈런 타자가 나왔다. 아시아 최초로 60홈런 타자도 나왔다.
26. 1992년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8,140$였다. 2014년 현재는 28,739$로 약 3.5배 증가했다.
27. 롯데 우승 뒤 태어난 1992년생[24]은 수능을 마치고 재수를 하지 않는다면 대학생이 되었으며(2011), 11학번의 경우 남학생은 군대를 갔다와서 휴학을 전혀 하지 않았으면 4학년 여학생의 경우 졸업하고 바로 취직 했으면 회사생활 2호봉이 된다. 게다가 1992년 생이 만약에 고졸취업을 했다면 회사생활 5호봉, 즉, 주임이나 대리를 달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28. 11명이 12번에 걸쳐 이팀 감독을 맡았다. 강병철-김용희-김명성-우용득-금지어-양상문-강병철-제리 로이스터-양승호-김시진-이종운-조원우[25]
29. 주기율표에서 110번 이상의 원소가 1992년 이후 새로 발견되었다. 110번 다름슈타튬 (Ds, 1994), 111번 뢴트게늄 (Rg, 1994), 112번 코페르니슘 (Cn, 1996), 113번 니호늄 (Nh, 2004), 114번 플레로븀 (Fl, 1998), 115번 모스코븀 (Mc, 2004), 116번 리버모륨 (Lv, 1998), 117번 테네신 (Ts, 2010), 118번 오가네손 (Og, 2006)이 그것이다 이로써 7주기를 모두 채우게 되었다. 1992년 이전에 발견되었지만 명명이 1992년 이후에 이루어진 원소는 103번 로렌슘 (Lr, 1997), 106번 시보귬 (Sg, 1997)이 있다. 또한 중성미자가 발견(1995)되었고, 그 존재가 입증(2002)되었다. 또한 헬륨-3라는 물질도 발견되었다.(1996)
30. 체세포 복제기술의 발전으로 복제양 돌리 (1996), 복제견 스너피 (2000), 복제소 영롱이 (2003), 복제낙타 인자즈 (2009)가 태어났다.
31. 1992년 이후 많은 종류의 호모속이 것과는 상관이 없다. 음란마귀??들이 발견되어 진화론을 더욱 보강하는데 일조하였다. 1993년에는 북경 원인의 한 분파인 남경 원인이, 1994년에는 호모 세프렌시스와 호모 안테세소르가, 1997년에는 호모 사피엔스 이달투, 2001년에는 호모 게오르기쿠스, 2003년에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2008년에는 데니소바인, 2013년에는 호모 날레디의 화석이 최초로 발굴되었다. 또한 1992년 이후에 발견된 호미니드[26]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편의상 A라고 약칭한다.) 아르디피테쿠스(1992)[27], A. 아나멘시스(1995), A. 가르히(1996), 케난트로푸스 플라티옵스(1999), A. 세디바(2008)가 발굴되었다.
32.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로 유명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공식사면 되었다.(1992) 또한 교황청이 진화론을 인정하였다![28](2014)
33.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2000) 그리고 세월따라 사망했다. (2009)
34. 태양계의 10번째 행성을 찾으려다 명왕성이 행성에서 제외되었고(2006), 최초의 외계 행성이 발견되었다(1992).[29]
35. 보스턴 레드삭스가 86년간 이어졌던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월드시리즈를 3번 제패하였다. (2004,2007,2013) 그리고 시카고 화이트삭스도 88년간 이어졌던 검은 양말의 저주를 깼다. (2005)
36. 1992년 기준 도스판이었던 코에이사의 삼국지 2가 최신 삼국지 시리즈였다. 2015년 말 조만간 삼국지 13이 출시될 예정이다.
37. NASA가 화성탐사로봇인 소저너(1997), 스피릿과 오퍼튜니티(2003), 큐리오시티(2012)를 보냈으며, 화성에 미생물의 흔적과 지금은 해프닝으로 끝난 인면암이 발견되었다.
38. 보이저 탐사선이 모두(1호, 2호) 태양계를 떠났으며 아직도 우주를 향해 항해하고 있다. 심지어 카이퍼 벨트도 떠났다. 또한 2006년에는 명왕성 탐사선 뉴 호라이즌스 호가 발사되어 9년만에 명왕성에 도착하였다.
39. 1993년에는 김건모가 핑계를 대히트를 쳤으며, 2년 후에는 잘못된 만남을, 1996년의 다음 앨범 타이틀 곡 스피드가 대히트를 쳤다. 이 세 앨범은 연속으로 100만장 이상 팔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특히 잘못된 만남은 280만장이 팔려 기네스북에까지 올라간다. 아쉽게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는 1992년 4월에 나왔기 때문에 패쓰 게다가 음반시장의 트렌드가 앨범에서 디지털음원으로 바뀜에 따라 조성모의 가시나무와 아시나요를 끝으로 음반 판매량 백만장시대가 끝난다.
40. 원조 한국 아이돌 1세대라 할 수 있는 H.O.T.가 데뷔하였으며(1996) 그 이후로 여러 남자여자 아이돌들이 탄생하였다. 그 들 중 1998년에 데뷔한 신화는 현재도 해체하지 않고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신화가 해체될까, 롯데가 우승할까?
41. 1992년 당시의 DRAM 용량은 64메가바이트였으며 2015년 현재는 16기가바이트에 이른다. 이와 연관되어 2002년에는 메모리 반도체의 집적도는 1년에 두 배씩 늘어난다는 법칙인 황의 법칙이 당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겸 메모리사업부 사장이었던 현 kt 위즈 구단주인 황창규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그 와중에 이병철의 지시에 의해 1983년도에 최초로 개발된 64킬로바이트의 DRAM이 2013년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된건 함정.
42. 우승 다음해 양준혁과 이종범이라는 두 야구의 신이 데뷔한 이후 모두 은퇴했다.(1993~2010/2012)그 두 선수의 커리어 쌓기에 크게 기여했다.
43. 20세기 가 끝나고 21세기가 시작되었다.(2001)
44.1994년 미국의 어느 한 회사에서 게임하나(1994)가 만들어져서 대박을 쳤으며 2년후 디아블로 시리즈(1996)가 또 2년후 다시한번 전설(1998)이 만들어 지고 대한민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다.그리고12년후 후속작(2010)을 개발하나 실패한다.그로부터 6년후 처음으로 FPS(2016)를 만들고 다시 대한민국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온다.
45. 듀크 뉴켐 포에버가 개발 14년만에 (1997~2011) 출시되었다. / 유의항목 : 듀크 뉴켐 포에버/개발 중 일어난 일
46.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30년만에 우승했다. (2015)
47. 시카고 컵스 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중 한 팀이 야구계의 저주들 중 한 개를 깨고 우승한다. (2016) 세상에나
48. 롯데가 17년동안이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는 사이 NC 다이노스가 2016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더욱 비참한 것은 KT 위즈를 제외하고 21세기에 존속하거나 존속했던 팀 중에 유일하게 21세기에 한국시리즈를 진출하지 못한 팀이 롯데이다.
3 2008~2012년 : 제리 로이스터의 등장과 비밀번호 종료
2008년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영입하여 시즌 최종순위 3위로 8년만에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해 드디어 이 주문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게 아쉬웠던 안티들은 888857737758888의 장엄한 데칼꼴마니를 찍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기대는 그냥 기대. 하지만 2011 시즌 꼴데롯데팬은 양레기 감독의 호구짓 시행착오를 보며 꿈이 아닌 현실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으나 이후 7월 이후로 각성한 롯데 자이언츠의 미칠듯한 대약진으로 2위(!!)까지 올랐다!!! 더불어서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확정! 2012 시즌도 1위자리를 넘보다가 DTD를 시전하며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만들 위기에 빠졌으나 10월 2일 KIA전 승리로 간신히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확정! 흠좀무.
이 기간 동안의 성적을 간단히 보자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시작한 2008년에는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3연패로 스윕당했고, 2009년에는 준플레이오프에서 1승 후 3연패로 역스윕당해 탈락했으며, 2010년 준 플레이오프에서도 두산에 2연승을 거뒀다가 다시 연패를 당하면서 2승 3패로 탈락. 이 때문에 8888577이 아니라 부산은행 8888577-03-1323[30] 예금주 : 로이스터라는 말이 나왔었다.
결국 로이스터 감독은 포스트시즌 성적의 책임을 지고 2010 시즌 후 경질되었으며, 다시 데칼꼴마니비밀번호 시대가 시작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롯데 팬들 사이에서 만연했다.
결국 2011 시즌 개막 1달만에 꼴지까지 떨어지게 되면서 새로운 비밀번호 시대의 서막을 여는가 했으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여름 이후 미친 듯이 각성한 롯데 자이언츠의 대약진으로 2위까지 올랐다. 오히려 성적은 로이스터 시절보다 더욱 좋았다. 더불어 롯데의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도 사상 처음이고. 게다가 페넌트레이스 2위하고 플레이오프 직행! 존나좋군? 그리고 어느 팀은 작년(2010년)에 달성한 최다 비밀번호 경신이 2011년에도 달성되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SK에게 2승 3패로 패배하면서 최종 순위는 3위로 마감했다.[31][32] 8888577-03-132323
2012 시즌에는 시범경기에서 레알 꼴데가 되었지만 페넌트레이스에서는 의외로 선전하더니 4월 20일자로 단독 1위까지 올라섰다! 그리고 털리는 탑 갤러리 단독 1위 후에는 두산과 1위 싸움을 신나게 하였다. 그러다 잠시 중위권으로 내려가다 영남 라이벌인 삼성과 1위 다툼을 치열하게 하였고, 7월 7일 단 하룻동안 탑데로 되돌아간 적도 있었지만 다음날 패배로 다시 2위가 되면서 삼성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다.
그 이후 다시 두산 베어스와 치열하게 치고박기를 하다가 9월 9일 시점에서 2위 굳히기에 나선 상황이었다. 당시 롯데가 가을야구 걱정할 때가 아니라 20년 만의 우승을 걱정할 때라고 롯데팬들은 설레발을 쳤으나, 결국 롯데는 10월 1일 KIA와 4강 싸움을 하였다. 당시 4위였던 롯데는 9월 29일부터 KIA와 경기를 치렀기 때문에 만약 KIA에게 스윕당하면 5위 KIA와의 승차가 1.5경기차로 줄어들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몰랐었다.
그런데 롯데가 포스트시즌 진출 매직넘버를 0으로 만드는데,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을 3승 1패로 꺾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함으로써 비밀번호를 종결한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차기 라운드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일은 없었다. 롯데는 이어지는 플레이오프에서 거짓말처럼 패배했다 2년 연속 SK에게만 꺾였다
어쨌든 과거의 안습한 시절을 청산하고 거인은 드디어 강팀의 반열에 정착하게 되는 줄 알았다.
그 러 나
4 2013년~ 또다시 비밀번호 찍는 꼴데?
4.1 2013 시즌 : 최고 승률의 가을야구 좌절
FA들이 떠나고 감독의 작전들이 모두 호구가 되면서 탑데부터 7데까지 롤러코스터를 탔다. 삼성과 LG에게 나란히 제쳐지더니 9월 들어 질주하는 두산과 넥센을 끝내 잡지 못하고 결국 9월 28일자로 가을야구를 6년만에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감독님 데려오라고 했잖아 사실 13시즌에는 하위권이 졸라게 못 했기 때문에 승률 인플레가 발생해서, 승률 5할 3푼 2리를 찍고도 5위를 한 것이다. 이 승률도 한화에게 14승2패[33]로 찍어 눌렀기 때문.양학 그리고 SK하고 유종의 미를 위한 5위 싸움 끝에 결국 5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승률은 2012시즌보다는 정작 2013시즌(.532)이 더 높다. 그리고 이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역대 최고 승률 가을야구 실패. 그렇기 때문에 이때까지만 해도 롯데가 망한다는 생각은 어느 누구도 하지 않다. 어찌됐든 5할은 넘었기 때문에.
4.2 2014 시즌 : CCTV가 불러온 재앙
2014년 시즌 화요일 20경기중 1승 1무 18패(승률5%) 이란 기적적인 승률을 기록했으며 7위로 마감했다. 로이스터가 끝내고 양승호가 부활시키자 김시진이 다시 암흑기를 열었다. 결국 8888577을 종결한지 7년만에 다시 7데로 돌아왔다. 롯데는 어떻게 다시 7데가 되었나 럭키 세븐
시즌 후 일본의 복수구단이 장원준을 노린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정말로 장원준이 복귀 1년만에(...) 해외진출을 해버리면 선발진은 더욱 암울해질 전망. 결국 장원준과의 협상은 결렬되었다. 장원준만 붙잡았으면 그래도 전력, 특히 선발진과 타선은 타고투저를 감안해도 제법 괜찮다는 점에서 희망이 있었지만 롯데 팬들은 이것으로 점점 희망을 접고 있다.
거기에다, 시즌 후 감독 선임 문제로 시작되어 터진 프런트의 막장행각으로 인해 구단 내부 및 구단과 선수단 간의 불화가 만천하에 드러나기까지 해, 이로 인한 후폭풍이 팀에 미칠 악영향을 생각하면 더욱 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다. 당연히 이번에도 FA들은 다 놓쳤다.(...)
김시진 감독이 자진사퇴하고, 4강에 들지 못한 5팀 중 준플레이오프 기간에 KIA가 먼저 선동열 감독 계약 2년 연장을 발표하고(하지만 선동열은 재계약 포기, 2014 시즌 중 LG 감독직에서 자진사퇴한 김기태가 선임된다) SK는 김용희 감독을, 두산은 김태형 감독을 선임하고 뒤이어 한화가 김성근 감독을 선임했다. 하지만 유독 롯데만 새 감독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가 공필성 감독 내정설이 나오고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까지 터져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가운데 플레이오프 4차전이 되어서야 이종운 감독이 선임되었다는 발표가 난다. 하지만 팬심은 이종운 감독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고, 암흑기를 다시 연장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4.3 2015 시즌 : 델동강점기 다시 비밀번호를 찍다
시범경기에서 봄데답게 선전하고 4월까지는 승패마진 +2로 선방하면서 이종운 감독의 평가가 좋아지는 듯 했다. 5월 시작하자마자 한화를 상대로 루징시리즈를 당한 후 SK와 NC를 상대로 연속 스윕패를 당해 침체되다가 kt 상대 스윕승을 포함한 6연속 위닝시리즈로 반등에 성공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러나 6월 들어 귀신같이 연패행진을 거듭하며 순위가 8위까지 떨어졌다.[34] 게다가 6월 한 달간 성적도 10개 구단 중 꼴찌, 9위 LG와 0.5게임차로 추격당하며 6월을 마감해야 했다.
그리고 7월 14일 한화에게 패배하면서 기어코 9위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아직 꼴찌 kt 위즈가 시즌 초반 연패를 거듭하면서 바닥 수준의 전력을 보여줬지만, kt가 6월부터 제대로 된 프로야구팀의 실력을 발휘하는 탓에 kt와의 게임차는 10경기 내외에서 점점 좁혀지고 있는 상황. 만약 kt에게 역전당하는 사태라도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무관중 운동이 시전될 가능성도 높은데다가 최근 롯데家 소송분쟁으로 한창 시끄러운 가운데 기업 이미지 자체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된다.[35]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8월 사이 한화,기아,SK가 모두 하향세를 타버리면서 그 사이 롯데는 9월 5일 현재 5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결과론적으로 현재 5강 티켓의 마지막 주인공은 개싸움이 된 상황.
그러나 다시 도로 내려갔고 결국 9월 30일 트래직넘버가 0이 되면서 가을야구에서 탈락 확정이 되었다. 그리고 10월 2일 패배하면서 최종 순위는 8위가 되었다. 팀 수가 10개로 늘어났으므로 꼴찌는 아니지만 어쨌든 11넌만의 8위.
여기에다가 시즌 후 2015 프리미어 12 기간 전에 손아섭과 황재균[36]이 모두 MLB포스팅에서 모두 0원이 나와버리면서 각 구단들의 비웃음을 사게 된 건 덤이다.
578 어째 여기가 떠오른다.
그 외의 내용은 롯데 자이언츠/2015년, 이종운, 이종운/평가 항목 참조.
4.4 2016 시즌 : 승부처 찾다가 말아먹은 시즌, 4자리 번호를 찍다!
NC를 제외한 상위팀들이 모두 전력 약화가 되면서 1~2팀정도 가을야구가 물갈이가 될것으로 보인다. 윤길현, 손승락을 영입했는데, 가을야구의 가능성이 충분히 보인다. 롯데팬:내년 2위하면 좋겠다
모 기사에 따르면 3강-4중-4약 중 4중에에 속한다고 한다. 3강 4중이라면 그중에 2팀이 포스트시즌에 못 간다. 그 2팀 중 하나가 롯데……
7월 14일 전반기가 종료된 시점 롯데는 39승 43패(승률 .476)으로 5위이며 4위 SK와는 2.5게임차, 6위 KIA와는 1게임차로 가을 야구의 희망을 이어나가고 있었으나....
머지 않아 DTD가 시작되었다!
일단, 7월 마지막 주 엘 꼴라시코에서 루징이 나온 이후 KT원정에서 스윕을 당했다. 그리고 여기서 족발게이트가 터져버리면서 팀 분위기가 뒤숭숭해지게 된다. 이후 강팀인 두산-넥센과의 홈 6연전에서 3승 2패로 선전했다.[37]
헌데 그 이후 2연전 체제로 재편되면서 이 기간동안 투수진은 더 무너지고, 타격이 급격하게 나빠졌다![38] 하는수 없이 백업멤버들로 시즌을 운영해나갔다. 그러다가 8월 4주차에서 KT전 1승 1패 이후 두산 원정에서 결국 우취가 떠버려 이기고 있던 경기가 날아가면서 1패만 추가해버렸고, 대구 원정에서도 우취 1경기 제외하고 다시 1패를 추가, 결국 8월 29일 현재 삼성과 승차없는 8위에 랭크되어있는 상황이다. 이러는 와중에 감독은 전준우를 제대하자마자 복귀시키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39] 그리고 진짜 전준우와 같이 제대한 신본기, 김사훈까지 등록하면서 현실이 되었다.
결국 10월 2일 NC에게 지면서 가을야구 탈락을 확정 지었다.[40] 가관인 건 NC와의 전적이 무려 1승 15패라는 것.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시즌 압도적 1위였던 두산에 유일하게 열세를 면한 팀이 바로 롯데다.[41] 같은 엘롯기 멤버인 LG와 기아가 가을야구에 진출, 그것도 와일드카드전에서 맞대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충격적인 결과.[42]
결국 10월 9일 넥센전에서 이기게 되면서 작년에 이어 최종 8위를 확정짓게 된다. 결국 5788 생성 안습
그 외의 내용은 롯데 자이언츠/2016년, 조원우/2016년 참조
4.5 2017 시즌 : 다가오는 중심타선의 공중분해, 그리고 남겨진 숙제.
일단 2016 시즌 이후 황재균[43]이 FA로 풀리게 되고, 이 시즌을 끝으로 손아섭, 강민호, 강영식, 최준석이 FA로 풀리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내년에 황재균을 반드시 재계약에 성공해야 하고,[44] 올해의 문제점을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일단 홍성민과 김준태는 내년 시즌에 군 입대 관계로 없을 예정이다.
참고로 내년 시즌에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겠지만, 만에 하나 NC상대로 5연패를 추가하게 될 경우 특정팀 상대전적 19연패를 달성하여 이 분야의 신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45]최악의 경우 NC전 상대 전패 시 특정팀 상대전적 30연패도 될 수 있는 상황이므로 이 상황이 결코 가볍게 넘어 갈 수가 없다!
4.6 원인
4.6.1 경기 외적인 원인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꼴런트 프런트에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2014년 시즌부터 일부 코치들끼리의 권력 쟁탈전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특히, 2013년 시즌 당시 벌어진 모 코치와 강민호 이전의 안방마님의 다툼으로 인해 최기문 코치는 NC 다이노스로 가버렸으며, 2014년에는 CCTV 사건의 방패막이였던 권두조 수석코치와 공필성 코치 역시 문제가 있었다. 결국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으로 대표되는 프런트의 병크가 안습한 성적의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평이 많다. 그 결과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롯데 자이언츠는 CCTV 사찰 사건이 터진 2014년에 FA 선수들을 단 한 명도 단속하지 못했다. 여기에 2015년 손아섭과 황재균의 잇다른 메이저리그 진출 선언 또한 롯데를 탈출하기 위한 시도로 보는 해석이 많다. 나아가 FA로 풀리는 4명의 선수들사실 잡을만 한 선수는 송승준밖에 없지만[46]을 한 명도 잡지 못한다면 전력 악화는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2016년 족발게이트 사건 이후로 벌어진 DTD로 인해서, 이제 부산아재들은 락커룸의 분위기가 놀자판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 상황이다. 특히 홍성흔, 이대호와 같은 베테랑들이 떠난 이후 무게를 잡아줘야할 일부 고참들의 자기관리 부실로 인해서 선수들에 대한 팬들의 신뢰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 덤이다.[47] 작년의 부산 아이파크가 강등당했던 것처럼 청문회를 한번 해야할 판이다.[48]
실제로 2016년 시즌 홈경기 승차가 41승 31패로 +10이지만, 원정 경기 승률[49]은 25승 47패로 -22이였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이들이 CCTV 폐지 이후 호텔에서 어떤일을 했는지는 사실상 안봐도 비디오인 상황이다.[50] 즉, 족발게이트 사건 자체는 필연적이었던 것.
게다가 이런 식으로 비밀번호가 연장된다면, 팬들은 사직구장으로 가는 발길을 점차 끊을수 밖에 없는 상황이며, 마산의 라이벌은 이제 창원 야구장마저 완공된다면 관중동원 수[51]도 타 구단과 엇비슷해지므로 부산에 거주하는 자이언츠 팬들의 엑소더스는 계속될수 밖에 없다. 아니 시즌 총관중수에서 NC에게 역전당할게 뻔하다.
4.6.2 경기 내적인 요인
그러나 이것은 엄연히 외부의 사정이고, 실질적으로 감옥님 시절 이후 불펜 혹사 및 불펜에 대한 잘못된 투자가 주 원인이다. 실제로 이명우, 임경완, 김사율 등을 무리하게 썼고, 이 혹사가 김시진 때 절정에 달하는 바람에 김성배, 김승회와 같은 투수들이 14년 8월부터 줄줄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불펜진이 순식간에 붕괴된 것도 한몫하고 있다.[52] 혹사에 대한 자세한 사항[53]은 기타 꼴빠아재분들의 서술에 맡기겠다.
그렇다고 불펜 FA가 잘했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닌지라, 정대현의 경우에는 이적 후 부상으로 인해 눕는 기간이 더 많았으며 2016년에는 아예 몰락해버렸다. 작승호의 경우는 2012년 활약이 미진하여 NC로 넘겨졌고, 결국 NC에서 연봉 도둑으로 각성해버렸다. 윤길현의 경우 족발게이트 이후 완전히 몰락했으며, 손승락의 경우 아직까지 나쁘지는 않지만 먹은 돈이 크다보니 문제. 이렇게 불펜진이 붕괴된 상황에서 땜질 처방을 할려다보니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두번째, 2014년 장원준의 두산 이적 이후, 현재 자이언츠는 선발 투수 용병의 의존도가 굉장히 높은 팀이 된 상황이다. 멀리 볼 것 없이, 2016년 9월 30일 기준 레일리의 WAR는 3.91, 린드블럼의 WAR는 2.85이다. 이에 반면 토종 선발진[54] WAR의 합은 3.64로 평균으로 따진다면 1.0도 되지 않는다. 여기에 4월 이후 급격하게 무너진 이성민과 올 시즌 먹튀화가 된 송승준까지 계산한다면 아예 승수기여도가 -대로, 이 둘의 WAR 합은 -0.49이며, 6인 총합이 3.15으로 평균 0.53에 불과하는 수준이다. 또한, 이마저도 박세웅이 1.99로 하드캐리해서 나온 수치다. 더하자면 앞에 말한 장원준은 혼자 4.65를 찍고 있다(...) 당장 주형광 코치와 옥스프링 코치가 2군 육성에 힘을 기울이고는 있으나 리빌딩에는 시간이 걸리는 지라... 일단 제 2의 족까고마가 탄생하지 않기를 빌어보자.
세번째로는 전성기에 취해 있던 나머지 제대로 된 백업 멤버를 육성하지 못한 부분에 있다. 각 포지션 별로 사례를 살펴본다면 이렇다.
1루수 :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박팡야 선생 되시겠다. 그나마 이 부분은 김상호가 2016년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문제가 해결될 듯 하다. 단, 그 김상호도 1루수 평균 OPS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 함정. |
포수 : 강민호[55]선수가 부상 당했음에도 안중열, 김준태 같은 백업 포수들이 있어서 해결되긴 했다. |
2루수 : 조성환의 은퇴로 정훈이 주전이 되었는데, 정훈 이외에 특출난 멤버가 거의 없어 공, 수 양면에서 실력이 퇴보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2016 시즌 김동한이 성장 중에 있으니 다행. 이여상의 경우는 조커 카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상황이라 애매하다. 정 안된다면 문규현의 2루 전향도 고려해봐야하는 상황. |
3루수 : 2016년 스토브리그 때 황재균이 나가게 된다면 외인타자밖에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만에 하나 이 자리에 외인타자가 들어가있지 않으면 이 분을 보게 된다. 그나마 오승택이 있긴 하나 수비가 워낙 헬인지라... |
유격수 : 그나마 신본기와 문규현이 평균 이상은 해주고 있으니 다행. 김대륙은 가끔 올라올 정도다. |
외야수들 : 김문호, 전준우를 제외한다면 믿을만한 선수가 없다.[57] 나이가 많은데다가 수비만 잘하는[58] 이우민, 아직 변화구 대처가 약한 나경민, 16년 후반기까지 선풍기만 돌리고 있는 박헌도, 손가락 골절 이후 별다른 활약이 없는 김민하, 그리고 나이가 어린 김재유 정도가 외야 백업으로 있는 상황이다. |
이런 상황에서 144경기를 모두 버텨내기란 매우 힘든 일인 상황이다.
네번째로, 2017년 시즌 이후에는 손아섭, 강민호, 최준석, 강영식이 모두 fa가 된다. 즉, 이들의 타팀 이적인용 오류: <ref></code> 태그를 닫는 <code></ref>
태그가 없습니다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이들을 잃게 된다면 별 말 안해도 알 것이다.</ref>은 타선의 약화를 가져오고, 좌완 불펜의 수요 부재로 인해 동시에 남아있는 팬심마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갈 지도 모른다. 이 부분은 이제 보상선수를 얼만큼 잘 뽑아오느냐, 김문호,전준우,신본기,김사훈같은 최고참으로 올라갈수 있는 선수들이 놀자판을 만들지 않고 윤성빈,나종덕 등의 곧 올라올 신인들을 잘 이끄냐에 에 따라서 갈릴 것이다.
5 동병상련의 심정
가장 비슷한 예로 LG 트윈스의 2003년 이후 성적인 6668587667이 언급되기도 한다. 다행히(?) 강산이 바뀐 2013시즌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며 이전에 비해 크게 개선된 모습을 보였고, 4강을 나눠먹던 단골팀들이 추락하여 사실상 재기불능의 상태였기에 2013년 9월 22일에 가을야구를 확정지었다.
이 외에 이와 비슷한 비밀번호를 찍기 시작한 팀으로는 한화 이글스와 넥센 히어로즈가 있다. 이 중에서 한화의 경우 2008년부터 4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실패 및 2연속 최하위를 자랑(...)했으며, 지나치게 약화된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선수조차 잡지 않고(혹은 못하거나) 리빌딩만을 외치며 전력증강에 실패하여 2010년 시즌까지만 해도 롯데나 LG를 뛰어넘는 비밀번호[59]의 서막을 알리는 듯 싶었다. 여기에는 리빌딩에 대한 의지가 전무한 프론트의 투자 부족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2011년 프런트가 물갈이 되고, 야왕 한대화 감독 또한 승부사의 포텐셜이 터지면서 약한 전력으로도 끈끈하고 포기하지 않는 팀컬러를 보여주며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게다가 카림 가르시아를 영입하는 등 타선도 더욱 강해졌다. 몇 년 더 봐야 알겠지만 롯데나 LG의 비밀번호를 뛰어넘기는 쉽지 않을듯.(좋은 일이지만) 자세한 것은 한화 이글스 항목 참조. 어쨌든 2011시즌을 6위[60]로 마감함으로써 일단은 비밀번호가 5886이 되었다.
2011시즌이 끝나고 한화는 더욱 희망적이었던 일이, 박찬호와 김태균이 복귀한 데다가 골든글러브 유격수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한대화의 삽질과 투타 양쪽에서 몇몇 선수가 말아먹는 분위기로 인해 이러한 트레이딩도 소용이 없어서 한화는 2012년 내내 꼴찌를 면치 못했으며 결국 시즌 도중에 한대화 감독이 경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2년 시즌 후 김응용감독이 부임하며 잠시나마 기대를 갖게 했지만 그것도 잠시, 류현진은 포스팅으로 해외진출, 박찬호는 은퇴, 장성호는 트레이드로 나가면서[61] 2013시즌을 앞두고 시름이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결국 2013년 시즌도 꼴찌이자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9위 확정, 588689 항목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2014년 시즌에도 8월에 잠깐 반짝하다가 9위, 5886899로 비밀번호가 연장되었다.
2011년에 한화 이글스가 이른바 '야왕 신드롬'으로 분위기가 좋았던데 비해, 빌리장석이 있는 넥센은 선수 팔아 연명하고 있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무난하게 꿈도 희망도 없다고 믿었던 상황이었다. 넥센 히어로즈는 한화 이글스와 달리 경제적 여력 자체가 열악하여 선수층이 얇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팀의 재정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고 타 구단에서 주축선수를 대거 영입하기 전까지는 비밀번호 시대를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나마 주축 선수 몇몇은 1군급이고 박찬호를 영입한 데다 김태균까지 돌아온 한화와 달리 넥센의 전력은 그 자체가 타팀의 2군에 준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2013년 한화이글스가 4월 14일 13연패를 기록하며 2003년 롯데가 세운 도저히 깨질것 같지 않았던개막 12연패를 경신하게 되었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일본프로야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난카이 호크스 시절에 20년 연속 B클래스(4~6위)를 기록했다. 미국에서는 시카고 컵스가 38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6 자이언츠는 어째서 이런 안습한 성적이 이어졌나
백인천이 이 모든 결과를 초래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치열했던 99시즌 이후 연이어 터진 유망주 유출, 주축선수 이탈, 구단의 소극적인 투자의 합작품이라고 볼수 있다.
신인선수들의 경우 부산 팜에는 백차승, 이승학, 송승준,추신수라는 걸출한 신인들이 등장했지만, 이 선수 들은 메이저리그로 떠나버리고 롯데는 손가락만 빨아야 했다.
또한 선수협 파동이 터지며 롯데의 중심 선수였던 마해영이 괘씸죄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며 타선의 무게가 상당히 가벼워졌다는 것도 한 몫 했는데 당시 전성기였던 마해영이 떠나고 펠릭스 호세도 떠나버린 상황에서 중심타선으로 쓸수 있는 선수가 전무했던 상황. 박정태와 김응국은 노쇠화로 중심타선으로써 활약을 해주지 못했다.
그나마 조경환이 2001시즌에 마해영의 공백을 메꾸나 싶었으나, 백골퍼가 자기말 안듣는다고, SK로 보내서 타선이 더 약화되었다.
거기에다 문동환 입단을 위해 계약/위약금을 포함해 현대 피닉스에 줘야 할 위약금 5억원이 아까워서 팀의 테이블세터인 전준호를 넘기는 실책을 범했고, 그렇게 데려온 문동환은 98, 99시즌에는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얼마 안 가 부상으로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또한 부산고 에이스 출신의 염종석과 주형광이 부상 여파로 2000년~2001년 활약을 거의 하지 못하며 투수진에 큰 구멍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롯데는 좌완투수가 없어서, 가득염을 빼면 1군에서 뛴 좌완은 김영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전설의 2승 18패만 남기고 조용히 SK행(...). 그나마 있던 가득염도 불을 지르고 있었는데, 부상에서 복귀한 주형광이 합세하여 같이 불을 지르는 상황이 일어나고 만다(....) 한술 더 떠 롯데의 고질적인 마무리 부재로 선발투수감이었던 강상수마저 마무리로 구르다 퍼져버리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거기다 외부선수 영입은 꿈도 꾸지 못했고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로 01시즌 막판 김명성 감독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 선수단 분위기가 뒤숭숭해지기에 이른다.
그런 와중에 김명성 감독의 뒤를 이은 감독이 바로 마왕 백인천. 불난집에 기름을 끼얹어 버린 격으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02~03시즌에는 아주 혹독한 댓가를 치름에도 구단측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그결과 처참한 관중 동원과 그룹 이미지 손상이라는 성적표를 안게 되자 이상목과 정수근을 둘이 합쳐 100억이라는 거액을 들여 선수 보강을 했지만 선수 두명가지고 팀이 바뀔리가 있나(...) 거기다 이상목은 그럭저럭 결과를 내 주긴 했지만 몸값에 비해선 아쉬운 성적이었고 정수근은 이미 전성기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한 지경에 이르렀기에 팀 성적에도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이후 양상문과 강병철이 감독을 맡으면서 어린 선수들에게 경험치를 몰빵, 비록 성적은 밑바닥이었지만 선수들의 실력을 향상하는데에는 어느정도 도움을 주었고 이후 어느 외국인 마법사가 부리는 마법에 의해 이 비밀번호가 깨지게 된다.
7 기타 이모저모
-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에서 인터넷 방송을 할 때 가끔씩 이 번호로 비밀번호를 설정하는 듯. 근데 요새는 LG가 찍은 비밀번호에 좀 밀리는 감이 있다. 그래도 외우기 쉽고 짧아서
뉴비 거르기용으로자주 쓰는 편.
- 여담으로 이 시기에 한화한테 유독 약했다. 항상 상위권만 있다가도 한화에게 덜미를 잡혔었던 시절이 이때였다. 특히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롯데는 한화한테 철저하게 밟혔고 이 시기 한화가 가을야구 즐기는걸 구경만 해야 했다. 이러다 보니 이때 통합야갤시절, 한화팬들이 "칰키워"라고 불릴정도로 굉장히 강세였고 롯데 팬들만 보면 냄새난다고 욕을(...) 했었다. 그래서 생겨난 게 바로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하지만 2009년 이후로는 한화의 암흑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반대로 롯데가 한화를 철저하게 밟았다. [62]
- 원조(?)인 051-888-8577도 있는데, 부산광역시의회 2층 방송실의 전화번호라고. 여기에서 부산시청 전화번호 pdf파일을 다운받아보자. 부산시청 행정전화는 888국으로 시작한다.
대검찰청 공식 트위터에서는 동네 밀면집 드립을 쳤다
- ↑ 이쪽은 프런트에 의한 간섭도 심했던 탓에 크게 문제삼지는 않는 편이다.
- ↑ 2000년 성적까지 합치면 58888577로 비밀번호가 여덟자리 수가 되지만, 양대리그가 시행되었던 2000년에는 매직리그 2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드림리그 3위였던 삼성 라이온즈보다 승률이 낮아 준플레이오프를 치렀고 여기서 삼성에 패배하며 시즌을 마감해서 최종 순위가 5위로 되었다.
- ↑ 참고로 7년간 치렀던 경기 횟수는 총 910회다. 특히 8888을 찍던 2001년부터 2004년때는 무려 532전 183승 19무 330패. 한 시즌 평균 패배수가 80패를 넘어갔다.
- ↑ 이 기록은 한화가 58868996을 기록하고 있던 2008년부터 2014년까지 7년 동안 539패를 기록하며 깨졌다(...). 2015년도 포함하면 600패(...)가 넘어가지만 비교를 위해 같은 시즌 횟수로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제외되었다.
- ↑ 특히, 삼성이나 KIA 등 상위권과 하위권을 왔다갔다하는 팀.
- ↑ 그리고 그 한화마저도 15시즌 김성근을 영입해서 혹사 논란, 후반기 DTD 등이 있었지만 어쨋든 꼴지는 면했다.
- ↑ 다만 삼성은 백인천이 취임하기 전 2년도 55를 찍으며 나름대로는 답이 없던 상황이었고 백인천은 결국 KBO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리빌딩으로 팀을 97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고 이 리빌딩이 결국 2000년대 삼성의 토대가 되었기에 그때를 본 삼성팬들에겐 여전히 평이 좋은 감독이다.
- ↑ 익히 알려진대로 선수협 사태의 주동자로 찍혀 트레이드됐다. 1988년 최동원과 김용철의 사례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 ↑ 사실 이중계약 파동으로 논란을 겪은건 롯데만이 아니었다.한화도 2002년 프란시스코 캄포스라는 투수용병을 영입했으나 밀위키로 뒤통수치고 가버렸다(...)그리고 대체선수가 바로 레닌 피코타이다.
- ↑ 그후 2004년에 겨우 투자를 시작한 롯데에선 부상으로 약간 안좋았던 이시온을 포기하고 호세를 다시 대리고 오는게 낫지 않나라는 의견이 쏟아져나왔다. 이걸 반영해서 호세영입을 강력하게 원했던 롯데는 호세만 무조건 영입하려한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영입하려 노력했으나 이중파동으로 당시 KBO영구제명을 당하고있던 호세는 오지못했다.물론 나중에 제명이 풀려서 한국에 2006년 돌아오긴한다.
- ↑ 모든 구단 역사상 뒤에서 1등은 1982년 승률 0.188의 삼미 슈퍼스타즈, 2위는 주전을 모조리 팔아치웠던 1999년 승률 0.224의 쌍방울 레이더스
- ↑ 이 해 롯데는 시즌 시작부터 두산과 함께 땅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시즌 13게임까지 롯데 1무 12패, 두산 1승 12패(...). 게다가 두 시즌 합쳐서 190패라는 막장기록까지는 아니어도 188패이기 때문에 거기서 거기고 무엇보다도 두 시즌 연속 90패를 기록했다는 점이 뼈아픈 기억이다.
- ↑ 8888의 임팩트 때문에, 최근 11년간 롯데는 꼴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꼴데 별명을 이어가게 된다.
- ↑ 지금이야 양상문은 크보 최악의 투수코치로 욕먹고 있지만 이 당시에는 만년 꼴찌 롯데를 단기간에 중위권으로 상승시키는 등 감독으로서의 평판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뒤에 롯데 투수코치로 돌아오고 나서는..이하생략 그런데 후에 양상문 감독이 -16의 엘지를 4강에 올려놓은 다음 이 때 8888577의 5가 양상문 업적이었다는게 재발굴되었다.
- ↑ 통합 야갤시절 야갤에서 활동하던 꼴빠들이었다.
- ↑ 야구팀 자체가 팀 명만 유지한채 스폰서를 계약 형식으로 영입하기 때문에 팀 명을 붙임. 창단 당시에는 우리 히어로즈
- ↑ 이분은 현재 건강악화로 병원에서 겨우 삶을 유지하고 계신 상태.
- ↑ 여담이지만 군인 출신 대통령 시대를 마감하고 문민정부 시대를 연 대통령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 2015년 사망했다. 또한 그보다 몇 해 전 노무현 전 대통령도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는 우승을 못 하고 있다(...) 징하다 정말참고로 둘 다 동남권 출신이다. 야구팬이었다면, 롯데를 응원했을 가능성이.... - ↑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 해운대,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방의 선물, 변호인, 명량, 국제시장, 암살, 부산행
- ↑ 1992년 올림픽은 롯데 우승 전에 치루어졌으므로 제외한다.
- ↑ 폐막이 한번 더 많은 이유는 세비야 엑스포의 폐막일이 롯데 자이언츠 마지막 우승일 보다 1주일 뒤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 ↑ 같은 1992년이지만 폐막이 8월 15일이다.
- ↑ 타이론 우즈(1998), 이승엽,댄 로마이어,트레이시 샌더스,찰스 스미스(이상 1999), 박경완(2000), 심정수(2002), 이대호(2010), 박병호,강정호(이상 2014), 야마이코 나바로,에릭 테임즈(이상 2015)
- ↑ 1992년 10월 15일 ~ 1993년 2월 28일 사이에 태어난 걸로 기준을 잡을 때.
- ↑ 이것도 대행이었던 김용철은 제외한 수치이다.
- ↑ 사람과의 라틴어명. 호모보다는 유인원에 더 가까운 개념. 오랑우탄, 침팬지, 고릴라도 포함된다.
- ↑ 근데 발견 날짜가 1992년 12월 20일이다. 즉 롯데가 우승하고 나서 최초로 발견된 원시인류.
- ↑ 물론 가톨릭이 창조신화를 버렸다기 보다는 진화론을 포용했다고 하는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 ↑ 다만
아쉽게도외계 행성 발견은 롯데의 마지막 우승 이전인 1992년 4월이다. - ↑ 참고로 실제 부산은행의 계좌번호 체계와는 좀 다르다. 지방은행들은 대개 지점 번호가 계좌번호 앞에 붙는다. 롯데 스폰서 중 하나가 부산은행이라 이런 이야기가 나온 듯. 굳이 실제 체계를 따르자면 888-8577-0313-23이 된다.
- ↑ 최종 2위팀으로 기록되는 팀은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플레이오프에서 진 팀이 3위라고도 할 수 있으나 정규시즌 4위로 준플레이오프를 이겨서 플레이오프로 간 팀은 져도 3위가 안 된다.(결국 정규시즌 2위나 3위만 최종 3위가 될 수 있다.)
- ↑ 2008년에는 최종 순위가 3위였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스윕당해 최종순위는 4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준플레이오프는 최종순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3위에게 주어지는 약간의 어드벤티지. 그러나 만약 2008년에 삼성이 두산을 이기고 한국시리즈에 올라갔으면 롯데의 최종순위는 4위였을 것이다. 한국시리즈 진출 후 패배한 팀이 2위이기 때문에.
물론 실질적으로는 4위다. - ↑ 여담이지만 한화와의 마지막 맞대결에서 승리했지만, 넥센이 LG를 잡으면서 가을야구에 실패했다.
- ↑ 게다가 이 시기에 위닝시리즈 하나 못가져갔고, 이승엽에겐 400호 홈런을 허용, KT에겐 구단 최초의 피스윕팀이 되었다.
- ↑ 현재 부산에서도 롯데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걸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 ↑ 공교롭게도 황재균이 포스팅에서 0원이 나온 날, 부산 아이파크가 수원 FC를 상대로 0-2으로 패해버리는 바람에 K리그 챌린지로 강등이 확정되어버리면서 화가 난 서포터즈들이 버스를 엎으면서 농성을 벌였다! 여기에다가 농구 팀인부산 KT 소닉붐은 이날 울산 모비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패해버린 것을 기점으로 내팀내가 시작되어 결국 정규리그 7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게 된다.
- ↑ 넥센전 1경기가 우취되었다.
- ↑ 강민호와 맥스웰이 부상으로 빠진데다가 김문호가 대타자모드에서 대타 모드가 되어버렸다.
- ↑ 만에 하나 FA를 오프시즌 도중 영입하게 되면 보상선수를 묶을수 있는 폭이 좁아져 현재 많은 팬들이 우려하고 있다. 멀리 안 가고 이런 식으로 선수보호를 대충 처리한 한화에서 박한길과 최영환을 데려왔다.
- ↑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이미 기아가 kt를 이겨서 롯데의 트래직넘버가 소멸되었다.
- ↑ 그러나 시즌 마지막 대결에서 승락극장이 개봉하여 결국 두산에게 한 시즌 최다승(92승)을 선물해주고 말았다.
- ↑ 게다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가을야구가 유력했던 팀은 롯데였다. LG와 기아는 이번 시즌은 리빌딩 모드로 가기로 해 큰 기대가 되지 않은 데다가 롯데의 작년 투타 밸런스는 괜찮았으나 델동님이 말아드셔서 망했기 때문에 새 감독 하에서는 잘 될 수 있을거라는 기대도 있었기 때문. 뭐 결과는 잘 알다시피...
- ↑ 만에 하나 황재균이 마법사네로 가게 된다면 사실상 망했어요가 된다. 당장 20인에 들지 못하고 풀린 보상 선수중에서 쓸만한 투수는 거의 없기 때문.
~그렇다고 델련님이나 제구 안되는 파이어볼러를 다시 복귀시키는 말아야한다. 이 분도 마찬가지.~ - ↑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현재 모기업이 비리혐의로 수사를 받는 중이라 야구단에 신경쓸 겨를이 없기 때문.
- ↑ 종전 기록은 마찬가지로 롯데가 가지고 있는데, 기아를 상대로 2002-2003 시즌 사이 18연패를 당했었다. 다만 이때는 빼박 암흑기였다는 것이 함정.
- ↑ 그러나 그마저도 먹튀화되어버렸다.
- ↑ 특히 이는 승부처 시에 벌어지는 엉성한 수비와, 자이언츠 타자들의 득타병 성향 등과 맞물려 더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 ↑ 이때 아이파크 팬들이 했던 말들이 '아이파크 나가XX라'였다. 다만 아이파크 같은 경우에는 8888577의 예시와 같이 투자의 미비와 그 외의 프런트의 잘못된 판단이 만든 결과였다.
- ↑ 게다가 원정 성적 승률은 2015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추락한 상황이다.
- ↑ 더 심각한 건, 족발게이트를 신고한 사람이 박진형과 김준태도 밖에서 무언가를 먹고 들어왔다는 걸 목격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러한 악습이 후배 선수들에게도 옮겨갔을 확률도 있다.
- ↑ 마산구장은 11,000명이 최대 수용인원인데 경기시 평균 8,000명을 넘긴다. 즉, 약 73% 정도를 수용하는 셈. 신구장은 약 26,000명 정도를 수용한다고 생각한다면, 매 경기 19,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짱깨식수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몇 년째 관중동원 1, 2위를 다투는 두산과 LG도 평관은 15,000~16,000명 대에서 형성된다. 반면 사직은 총 2016 시즌 총 관중은 4위였으나, 평균 관중 수용률이 44%로 절반도 되지 않는 수치였고, 이는 10개 구단 중 최하위였다. 이마저도 앞으로의 암흑기를 생각하면 더 떨어질 확률이 있다. - ↑ 그나마 이정민 선수는 혹사의 틈바구니에서도 묵묵히 제몫을 하는 중이다.
- ↑ 연투 횟수 및 소화 이닝 추가
- ↑ 박세웅 + 박진형 + 노경은 + 박시영. 이 중 박시영이 선발등판한 경기는 딱 1경기다. 경기의 대부분을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 ↑ 후술하겠지만 17년 이후 FA가 된다.
- ↑ 다만 김준태의 경우 2018년 9월까지 입대가 예정되어 있어 그 사이에 실력이 늘 수도 있다.
- ↑ 손아섭은 2017년 이후 FA가 되니 논외로 한다.
- ↑ 물론 그 수비를 꽤 잘해서 살아는 남는거지만.
- ↑ 하지만 쌍방울도 68788찍고 포스트시즌으로 갔다. 하지만
흑역사1999년의 포스가 워낙 강해서... - ↑ LG의 비밀번호 보고 갸우뚱한 사람이 있을텐데, 4강 탈락팀의 경우 승률이 동률이면 그냥 공동순위 처리한다. 2011년 시즌 이전에는 1991년 LG와 쌍방울이 공동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다만, 신인 드래프트 등 순위 판가름이 필요한 경우에는 상호간의 전적 등을 참조하여 순위를 결정한다.
- ↑ 막상 2013년에는 트레이드로 내보낸 장성호보다 트레이드로 데려온 송창현이 더 잘했다.
- ↑ 특히 2013년은 롯데와 한화의 상대전적이 14:2였으며, 2015년이 되서야 양 팀의 상대전적이 8:8 동률이었다.
- ↑ 이날은 2011학년도 수능 다음날이었다.
- ↑
쌍슼빠쌍방울 레이더스-SK 와이번스 팬이다. 항목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