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파일:Mohammed vi abdelaziz bouteflika.jpg
표정이 영 좋지 않다(…)
[1]
1 개요
이웃나라들 중 사이가 좋지 않은 선례를 정리하는 문서... 지만, 이 상위 문서에서도 서술된 내용과 같이 붙어있는 나라들이 사이가 좋은 경우는 애초에 거의 없다. 따라서 사실상은 각 이웃 국가의 사이가 나쁜 이유를 개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삼각관계
2.1 한중일 3국
여백이 생길 수가 없을 정도로 할 이야기가 많은 탓에 따로 목차를 분리하기로 한다.
2.1.1 어떤 관계인가?
- 한중일 3국은 국가적 자존심과 전쟁(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병자호란, 중일전쟁, 한국전쟁등), 삼국의 역사교과서 사관 문제(동북공정, 새역모의 역사교과서 등), 이념과 영토에 관련한 사안이 수시로 충돌하면서 서로 갈등을 빚은 일이 많았다.
- 하지만 아래의 몇몇 이웃나라들에 비하면 오히려 이쪽은 운명 공동체라 불러도 좋을 정도. 진짜 관계가 막장을 치닫는 곳과 비교해 보면 오히려 이쪽이 절친한 친구 사이(…)로 보일 수도 있을 지경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사이가 좋지 않은 건 맞는데 각자의 생존을 위해서는 협력이 필요한 관계 정도(?) 이런 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하는 고사성어로는 오월동주가 있겠다. 엘롯기같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일단 문화적으로도 같은 한자문화권이라서 서로 관련이 깊고 (동문동종(同文同種), 즉 문자와 인종이 같다는 말로 흔히 표현된다. 굳이 진지하게 이야기한다면, 가나는 한자로부터 영향받은 문자이며, 한글은 한자와의 차별점이 뚜렷하지만 이 역시 한자와 같은 방형(사각형) 문자이며 결구법 등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자와 친근한 문자이다. 로마자 알파벳 텍스트에 한자가 섞여 있으면 어색한 데 반해, 국한문 혼용 텍스트는 보기에 자연스럽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 이러한 역사적 배경의 공통점 때문에 국민 서로간의 왕래율은 여타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중국에 방문하는 외국인 1, 2위도 일본과 한국인이 엎치락뒤치락. 일본의 해외 교포 중 중국 거주자 또한 압도적인 1위. 우리나라에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숫자는 중국, 일본이 압도적 1, 2위 를 차지할 정도로(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발표 기준)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이 때문에 한일관계는 온갖 불편한 점이 많긴 해도 지리상 가장 가까운 나라이기에 국민 개개인적으로는 싫다는 사람이 많을지 몰라도 서로 교류를 자주 하는 편이며, 중국과도 동아시아 3국이라는 명분으로 서로 뭉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서로 갈등이 많기 때문에 동맹을 맺을 정도로 친해지긴 어렵고 우호적 중립이 한계다.
- TPP, 한중일 FTA, RCEP, FTAAP 같은 대규모 자유무역협정 등으로 역내 경제 통합을 시도중이다.
2.1.2 관계 변천사
- 한반도가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난 후, 1950년대에는 한중일 모두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일단 세 나라 모두 서로 외교관계를 맺지 않기도 했고. 그나마 중화민국이 같은 자본주의 진영 국가인 대한민국 및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은 게 전부였다. 한국과 일본은 재일교포 북송이나 니가타 일본 적십자 센터 폭파 미수 사건 등으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다.
- 이후 1963년 한국과 일본은 한일기본조약으로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중국과 북한에 대항하여 반공전선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김대중 납치사건이나 1974년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에 조총련계 재일교포인 문세광이 범인이었음에 밝혀지는 바람에 한일간의 관계가 험악해지는 등 갈등의 씨앗은 아직 남아 있었다.
- 1980년대에는 한일관계가 가장 좋다고 여겨지는 시기였다. 공산주의 진영에 속해있던 북한은 전두환 대통령 암살을 기도하려 하였고(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항공기를 납치하기까지 하였으며(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소련 전투기가 대한민국 민항기를 격추(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시킨 사건 등으로 인해 반공 정서가 매우 강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전두환-나카소네 야스히로, 그리고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의 한미일 삼각보수동맹은 공산주의 진영에 대항하며 각별한 관계를 지냈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1982년과 1986년에 일어난 두 차례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이 일어나 돈독했던 한일관계에 금이 갔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1982년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때문에 이에 열받은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충청남도 천안시에 한 박물관을 짓기 시작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독립기념관이다.
- 1990년대에는 중국이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에 따라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면서 경제발전을 이루어 나가기 시작하였고, 대한민국도 1992년에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맺기에 이른다.(일본이 중국과 수교한 것은 1972년이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1998년에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짐으로써 약 50년간 닫혀 있었던 일본문화 유입금지의 빗장을 풀기 시작하였던 시기이기도 했다.
- 2000년대 초에는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취임하여, 우익 노선을 걸은 데다가, 새역모에서 발간한 역사교과서 파동으로 인해 한일관계가 불편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도 아베보다는 낫지만.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으로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으로 인해 한국에 일본 애니메이션 오타쿠 문화가, 반대로 일본에 한류 문화가 정착되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 2010년대 한중일 관계
- 2010년대에 들어오면서 한중일 관계는 다음과 같은 구도로 재편되었다.
그리고 이 일이 일어난 건 다 누구 때문이다, - 한중 VS 일본 : 2013년 이전의 한VS중VS일 구도에서 현재 한+중VS일 구도로 가고 있다. 일본의 아베 신조 내각은 우경화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박근혜 정부의 친중정책과 시진핑 지도부의 한국에 대한 친근한 접근으로 한중간의 관계개선 및 대일 공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반대로 한일관계 중일관계는 회복되기 힘들 정도로 떨어진 수준. 동일본 대지진 2주기 추도식에서도 한국과 중국만 불참했을 정도. 한중일 3국 내부에서는 회복될 수 있을 때에 관계개선을 이루자고 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다. 한일수교 50주년을 맞아 한일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나 아베 신조일본 총리나 관계 개선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중국은 2012년 중일국교정상화 40주년 기념식도 취소했으며 관계개선은 일본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질 것을 먼저 요구하고 있어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아무튼 한중+일의 구도는 몇년간 이어질 듯.
- 한국 VS 일본: 임진왜란, 경술국치, 독도, 한일전. 이 네 가지로 압축이 가능하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나마 냉전때는 소비에트 연방, 현재는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항해서 미국을 중심으로 우호관계를 맺고 있지만 분위기는 그런거 없다.[2] 한때 월드컵 공동개최, 한류 열풍 및 양국간 무비자로 다녀올 수 있게 되어서 관계가 정말 좋았던 시절도 있긴 했다. 물론 역사 문제 앞에서는 버로우..
- 중국 VS 일본: 청일전쟁과 21개조 요구, 중일전쟁 등으로 양국간의 관계는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난징 대학살도 큰 영향을 끼쳤다. 전후에 일본은 중국과 절대 접촉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으나[3] 1972년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 취임 이후 본격적으로 관계개선에 나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수교했다. 이 때는 사실 좋은 사이 범주에 넣어야 할 정도로 관계가 좋았으며, 반중을 견지하던 한국에서 일본을 비판하기도[4]. 물론 지금은 정반대로 일본이 반중 스탠드를 취하는 등 사이가 매우 나빠진 상태. 아베 신조 총리는 중국위협론을 세계에 설파하는 중이다. 센카쿠 문제도 있고 하니 가까운 시일 내에 관계 개선은 어려울듯 하다.
- 한국 VS 중국: 반일이라는 공통점때문에 얼핏보면 협력관계나 좋은 이웃 관계로 보이기도 하나 역사적으로도 한나라, 당나라, 원나라, 청나라 등 중국의 통일 제국들과 고조선, 고구려, 신라, 발해, 고려, 조선 등 한반도의 여러 왕조 국가들끼리 전쟁을 치른 적도 있는 등 역사적인 측면에서 그리 좋은 감정만 있는 것도 아닌데다 한국전쟁에서 북한을 도와 참전한 것부터 시작해서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때 일관되게 북한을 감싸는 모습을 보여줬기에 한국인들의 반중감정이 한층 높아졌고 이 외에 동북공정과 서해에서의 불법조업 등으로 역시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끌어들이려 하는데다 중국조차도 최근들어 심각한 막장국가인 북한에 대한 지원을 대폭 축소하는 중이기 때문에 관계 개선의 여지는 있다. 하지만 2016년 초에 벌어진 북한의 4차 핵실험의 여파로 각국이 북한재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와중에도 중국은 은근히 북한의 편을 들면서 북한의 메인 스폰서처럼 행동하고 있고 한국에서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THAAD를 도입하려 하자 반대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원색적인 비난까지 서슴치 않아서 관계가 다시 틀어지고 있다.
- 2010년대에 들어오면서 한중일 관계는 다음과 같은 구도로 재편되었다.
2.2 영국-프랑스-독일 3국
말이 필요없는 전통적인 앙숙관계. 한중일 관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유럽쪽 사람들에게, 이 세 나라의 관계가 한중일 관계와 비슷하다고 하면 바로 이해한다는 말도 있다.
다만, 한중일관계에 비해서는 사이가 훨씬 좋은 편이다. 한중일은 말그대로 오월동주에 가까운 사이인 반면 영프독은 한중일관계에 비하면 단순한 지역감정에 불과하다.
- 유서 깊은(?) 앙숙. 많이 알려져 있듯 백년 넘게 싸워댄 적이 있다. 그리고 몇백 년을 걸쳐 육지와 바다에서 서로를 털고 털린 관계. 파쇼다 사건으로 아프리카에서마저 충돌했고, 눈앞의 적인 독일 때문에 20세기부터는 협력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의외로 2차 대전 때도 서로 이를 가는 경우가 많았다.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할 당시, 프랑스가 보유한 군함들이 독일군에 넘어갈 것을 우려한 영국군이 동맹국인 프랑스의 전함들을 격침시켜버려 적잖은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아프리카 전선에서 연합군이 (독일에 항복한) 프랑스 식민지에 상륙할 당시 어떤 지역 지휘관은 일단은 독일에 항복한 현재의 프랑스 정부의 명령에 따라 저항하기도 했고, 어떤 지역 지휘관은 함께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하여 연합군을 반갑게 맞아들이기도 했으며, 어떤 지역 지휘관은 미군이 상륙한다면 무저항이지만 아군에게 폭탄을 던지는 망할 영국놈들이 상륙한다면 결사항전을 하겠다는 태도를 비친 지휘관도 있었다. 현대에도 일단은 우방국이지만,[5] 정치적 이해관계부터 시덥잖은 루머까지 온갖 핑계를 들며 서로를 본능적으로 까며 심지어 사라지면 깔 대상이 없어 허전할 정도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역시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를 까야 제맛인가 보다. 그런데 영국인인 디스크월드의 작가 테리 프랫쳇이 인터뷰에서 한 얘기로는, 자신의 프랑스인 아내에게 "영국과 프랑스가 서로 전쟁을 시작하려면 얼마나 걸릴까?"라고 묻자 20초(…)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 한때 2005년, 2012 하계올림픽 유치 때에도 런던과 파리 두 국가 수도간의 올림픽 유치경쟁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졌던 적이 있었는데 결국에는 런던이 승리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날 바로 테러가 발생하고 말았다.
- 물론 현대의 이러한 대립 관계는 '어이구, 저 개구리나 먹는 놈들', '이 X발, 이게 무슨 X같은 음식이야' 같은 느낌으로 과거에 비해서 많이 순화된 상태다. 영국인이 프랑스와 전쟁을 하자고 주장하거나 프랑스인이 영국에 전해준 문화 유산을 탈환하자거나 하는 소리를 하면 당장 자국인들에게도 정신나간 놈 소리를 들을 것이다. 애초에 서로 두 번 씩이나 세계대전을 벌이느라 유럽 전체를 말아먹을 뻔한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6] 서유럽은 이웃나라를 함부로 증오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농담 차원이라면 다르겠지만.
- 천 년 넘는 세월을 숱하게 치고 박던 나머지 두 경우와는 달리 영국과 독일은 20세기 이전에는 전쟁을 치른 적도 거의 없었고,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 족은 따지고 보면 게르만 족이었는데다(특히 색슨족은 독일 북부 출신[7]), 100년 넘게 독일계 하노버 왕조가 영국 국왕이 되는 등 여러모로 관계가 영불/ 불독 관계에 비하면 온건한 편이었는데... 두 번 세계대전을 치렀다. 제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앙숙이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같은 편에 서서 두 번씩이나 독일과 전쟁을 치뤘던 것. 그래도 2차 대전 이후로 이미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보니 앙금은 많이 가라앉은 편. 다만 영국 측 언론에서 심심찮게 독일에게 어그로를 끄는 편이다.
- 거슬러 올라가면 로마제국 시절 게르만족의 갈리아 침공부터 시작해서 신성로마제국 시절에도 싸워왔고, 프로이센 시절에도 싸웠고, 1,2차 세계대전 때도 싸웠다. 흔히 30년전쟁 이후의 극심한 분열부터 프로이센 주도의 통일 이전까지의 독일은 그야말로 프랑스의 빵셔틀이었기 때문에, 비스마르크 이전에는 독일이 당하기만 한 것으로 아는 경우도 있는데 파비아 전투에서 보듯 신성로마제국 시절에는 프랑스를 관광태운 적도 여러번 있었다.
단, 신성로마제국은 독일만으로 치기는 어렵긴 하다. 카를 5세 참조.프랑스가 나폴레옹 전쟁 때 베를린을 털고 라인 동맹으로 독일의 절반을 예속국화하였고, 신성로마제국을 붕괴시켰으며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연합을 영혼까지 털어줬고, 독일은 근대 국가 성립 후 파리를 두 번(보불전쟁, 제2차 세계대전) 털었다. 프랑스령과 독일령을 오락가락한 알자스-로렌이 양국 사이의 단골 떡밥이다.[8][9] - 다만 이런 악연도 이제 다 옛날 말인 것이, 유럽 내 민족주의가 절정이었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야 정말로 극악의 사이였지만 독일연방공화국의 수립 이후로 독일이 적극적인 친서방 외교정책, 그 중에서도 친 프랑스 정책을 펼쳐서[10] 현재는 영혼의 파트너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당장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밀월관계를 빗대서 메르코지라는 신조어가 유행했을 정도이니.. 단순히 외교관계 뿐만이 아니라 양국 국민 사이의 감정도 많이 누그러들어서 2011년의 여론 조사에서는 프랑스 국민이 가장 호감을 느끼는 국가로 독일이 뽑히기도 했었다.
정작 영국은 한번도 뽑히지 않음
3 아시아
- 인도네시아 VS 말레이시아 : 종교도 같은 이슬람을 믿고 언어도 비슷한데도[11] 워낙 사이 나쁜 나라들이다. 1960년대 보르네오섬에서 전쟁에 가까울 정도로 크게 싸운 적도 있었고, 1965년에는 말레이시아가 UN 비상임이사국이 되자 인도네시아가 항의 차원에서 탈퇴를 했다[12] 다시 복귀한 일도 있었다. 전통 무용이나 음식, 옷감 염색 방식 등을 놓고 원조전쟁까지 벌인 사이. 단순 국력에서는 인도네시아가 우세하다. 일단 인구수에서 9배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1인당 국민 소득으로 따지면 말레이시아가 거의 3배 가량 높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 말레이시아에 허드렛일하러 건너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러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불법체류자도 발생하기 마련인데, 말레이시아에서는 불법체류자를 태형에 처하므로 이런 가혹한 처벌도 당연히 가뜩이나 악화된 양국간의 감정을 더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13]
- 태국 VS 말레이시아: 현재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접해 있는 태국 남동부 나라티왓과 얄라,파타니 지역은 태국에게 정복당하기 이전 이슬람교를 믿는 말레이계 민족들이 대다수를 이루던 지역이었다. 근데 이 지역들을 태국이 무력으로 침략하여 태국 땅으로 만들어버렸고, 태국 정부의 통치에 저항하는 말레이계 지역들에 대해 차별, 억압, 인권 탄압을 벌여서 말레이시아와는 사이가 무척 나쁘다. 태국 측은 이런 소요가 말레이시아의 지원으로 이뤄진다고 주장하고, 말레이시아는 무턱대고 무슬림들을 죽여놓고 국내 문제를 덮으며 나아가 국경 문제에서 더 유리한 주장을 하려는 심보라고 맞받아친다. 당연히 국경선에서 총질도 종종 벌어진다. 게다가 말레이시아는 태국과는 앙숙관계에 있는 미얀마나 캄보디아, 라오스 같은 다른 태국 주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태국을 견제하기도 한다.
- 태국 VS 미얀마: 인도차이나 반도의 패권을 놓고 충돌했던 역사적 라이벌.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등은 과거 시암에 지배당했지만, 버마는 오히려 아유타야 왕조를 멸망시키고 시암 북부를 유린한 적도 있었다. 버마는 괜히 인도에 있던 영국군을 자극해 식민지배를 당할 빌미를 제공했던데 비해 태국은 국왕들의 외교력으로 주권을 유지했는데, 이러한 근대사는 양국 국민감정을 자극하는데 기여한다.(식민지배 당한 바보 vs 굴종외교로 살아남은 겁쟁이) 현재 태국과 미얀마는 국가 차원에서는 친구 사이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태국 사람들은 미얀마 사람들을 불법 이주 노동자로, 미얀마 사람들은 태국 사람들을 거만한 졸부로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국경지대에선 미얀마 출신의 불법 월경자라 여겨지는 사람들을 상대로 태국 국가나 태국어 글자를 순서대로(ㄱ부터 ㅎ까지 식) 읊는 즉석 테스트를 하는 경찰들을 볼 수 있다..게다가 심지어 미얀마는 태국과는 사이가 나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등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손을 잡고 태국을 견제하려고 하기도 한다.
- 태국 VS 캄보디아: 이 두 나라는 과거에도 국경 분쟁으로 갈등을 빚었으며 유적 문화재 앙코르와트 영유권 분쟁을 놓고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14] 또한 쁘레어 비히어(Preah Vihear) 사원을 두고도 교전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리고 캄보디아의 옛 수도 시엄리업(Siem Reap)의 뜻은 대놓고 '시암(타이) 격파의 땅'이다. 게다가 군사 쿠데타로 실권한 태국의 딱신 전 수상이 캄보디아로 망명하자 이에 태국 정부가 딱신을 내놓으라고 캄보디아를 비난하기까지 하는 등 딱신의 처리 문제를 놓고 양국이 갈등을 빚기도 했었다.
- 몽골국 VS 중국 : 과거 몽골이 몽골 제국 후에 원나라로 중국을 지배한 적이 있었으며[15] 이후 명나라에 의해 중국에서 쫓겨나지만 명나라가 약해지는 틈을 타 다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내몽골은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16]에게 정복당했으며 지금의 몽골인 외몽골도 건륭제가 준가르를 멸망시켜 반 독립 상태로 복속되었다가 20세기 들어 적백내전에서 승리한 소련을 대동한 수흐바타르 장군에 의해 독립을 쟁취하고 후금 시절부터 중국과 호흡을 같이 해온 내몽골은 중국의 자치구가 된다. 냉전 시대에는 같은 공산국가 동지로써 잘 지냈지만[17] 냉전 체제 몰락후 내몽골자치구를 놓고 중국과 사이가 상당히 안 좋아졌으며[18] 역사적인 구원 때문에 몽골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을 호자[19]라고 부르며 혐오한다. 물론 내몽골의 몽골인도 한족과 대립하는 입장이지만 독립 의사는 없으며 외몽골인을 더 싫어한다. 내몽골인은 차하르, 외몽골인은 할하 부족으로 내몽골인은 칭기즈 칸 혈통의 자부심이 있어 외몽골 할하인을 깔보며 할하인은 차하르인을 중국 앞잡이 정도로 생각하고 역시 깔본다. 역사적으로는 칭기즈 칸이 같은 몽골인인 할하 족을 몰살한 적도 있는 등 수틀릴대로 수틀린 관계다.
- 몽골국 VS 러시아 : 중국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관계도 좋지는 못한 편이다. 유일하게 인접한 두 나라가 초강대국에다가 둘 다 몽골과 안 좋은 사이다(...) 안습...
그러고 보니...러시아 입장에서는 12세기부터 15세기까지 몽골과 그 후신국가들의 지배를 당한 뼈아픈 기억이 있고 몽골 입장에서는 냉전시대때 소련 위성국 시절 몽골이 자신들만의 자랑인 칭기즈 칸을 악마로 그려내고 모든 민족 관련 문화를 부정하게 했던 70년 가까운 역사가 있기 때문. 심지어 1960년대, 몽골의 교육부 장관이 조상의 역사를 알자며 칭기즈 칸 유적지를 발굴하고 논문을 펴내자, 관직에서 박탈하고 시골로 쫓아냈다가 죽여버리기까지 했다. 소련은 유목을 금지하고 몽골의 전통을 파괴했는데 할힌골 전투를 계기로 몽골과 만주 지역의 유목민들에게 반제국주의, 몽골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자 몽골 전체인구의 5%나 되는 몽골인들이 숙청당했다. 지금도 몽골은 러시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닌 셈. - 인도 공화국 VS 파키스탄 : 힌두교, 이슬람 종교 문제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종전후 영국 식민지배에서 독립 후 파키스탄과 인도로 분열되었고 카슈미르, 동파키스탄에서 세번씩이나 전쟁을 벌였으며 미국, 영국, UN 등 국제 사회의 반발을 무시하고 핵개발도 강행했다. 워낙 유명한 앙숙이라 항상 국제적인 이목을 끌고 있다. 게다가 파키스탄은 중국 인접국 중에서 유일한 동맹국이고 인도는 미국의 절친한 동맹국이기까지 하니 가히 앙숙관계(...).
- 방글라데시 VS 인도 공화국 : 인도와 파키스탄 관계에 비해 그리 유명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쪽도) 정치적, 외교적으로 앙숙이다.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동파키스탄(지금의 방글라데시)이 독립할 수 있도록 인도가 지원해줬으나 독립 후 영토 문제, 종교 문제 등으로 대립하면서 관계가 많이 악화되었고 1979년과 2001년에는 국경 지역에서 양국 군인끼리 무력 충돌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방글라데시는 먼 나라이자 옛 지배국인 파키스탄에 더 이를 갈고, 인도랑 외교,경제적으로 많이 의존하기에 함부로 맞서고자 하지 않는데다가 인도 역시 방글라데시와 우호적으로 지내려고 하기에 2015년 방글라데시와 인도가 양쪽에 속했던 마을들을 각각 인도와 방글라데시로 반환하면서 국경문제도 해결되었고 영토 분쟁도 해결되었다. 또한 현 집권당인 아와미연맹도 친인도 성향이 있어 인도에게 우호적이다. 하지만 국력상으로 인도가 더 강대하고 경제적으로 더 잘사는지라 경제적으로 가난한 빈국인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인도인들이 차별대우하고 방글라데시인들이 인도로 넘어와 불법 체류와 범죄등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양국간 국민감정은 그리 썩 좋다고는 볼수 없다.
- 베트남 VS 캄보디아 : 베트남인들의 남진 과정에서 과거 캄보디아의 영역이었던 사이공 등 지금의 남베트남 땅 대부분을 베트남에 의해 빼앗기기도 했었고 또 1979년에는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무력 침공해 크메르 루주 공산 정권을 전복시키고 친베트남 괴뢰 국가를 캄보디아에 세운 적이 있었다.
- 우즈베키스탄 VS 카자흐스탄 : 우즈베키스탄과의 사이는 좋지 못한 편이다. 중앙아시아의 맹주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 사실 이 두 나라는 1991년 이전까지만 해도 나란히 같은 소련의 한 지역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이 훨씬 발전된 지역이었다. 타슈켄트는 소련 중앙아시아의 중심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였고 인구도 많고 소득도 높았다. 그러나 독립 이후 우즈베키스탄이 막장 독재국가가 된 반면 카자흐스탄은 (물론 이쪽도 독재자가 통치하지만) 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이뤘기 때문에 지위가 역전되었다. 현재 소득수준에서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카자흐인은 우즈벡인을 농사짓는 촌놈이라고 욕하고 음흉하고 거짓말 잘하는 장사꾼 사기꾼이라고 한다. 그리고 4촌간의 결혼이 가능다는 낭설도 있기 때문에 근친상간에 의한 바보들만 산다고 극단적으로 깐다. 카자흐스탄은 위로 7대까지 혈연이 없어야 결혼 가능. 우즈벡은 카작을 유목민이라 대인관계시에 오늘보고 내일 안볼 사람이라는 마인드라 거짓말을 쉽게하고 사기 잘치고 거짓말이 들통나도 죄책감 이 없다고 조심하라는 충고를 하곤 한다. 인구 백만을 헤아리는 카자흐스탄 3의 도시 쉼켄트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와 가깝고 우즈벡족이 많이 산다고 해서 서북쪽 카자흐인들은 대놓고 무시한다. 영화 보랏에서 괜히 까는 게 아니다. 어느 정도 경쟁의식도 있고 생김새를 보면 민족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우즈벡은 페르시아인이 많이 섞여 반쯤은 백인 같고 순수 돌궐 후손인 카자흐는 덜 섞여서 북방 황인종의 얼굴이다. 영토는 카자흐스탄이 훨씬 크지만 인구는 우즈베키스탄이 많다.(카자흐스탄 1,700만, 우즈베키스탄 2,800만 정도) 과거 소련 시절에는 우즈베키스탄 쪽에 일자리가 많고 소득도 높았지만,
- 우즈베키스탄 VS 키르기스스탄 : 소련에 의해 인위적으로 그어진 국경 때문에 키르기스스탄 남부에는 우즈벡인이 많이 거주하게 되었는데, 상대적으로 생활 수준이 높은 우즈벡인과 키르기스인의 대립으로 분쟁이 일어났고 양국 간의 사이가 극단적으로 악화되었다.
- 우즈베키스탄 VS 타지키스탄 : 소련 시절, 소련의 독재자였던 스탈린이 민족 분포는 고려하지 않고 인구 분포만 생각하여 공화국들의 국경선을 일방적으로 그렸고 결국, 이로 인해 타지크인들이 살던 땅이 우즈베키스탄 땅이 되었고, 반대로 우즈베크인들이 살던 땅이 타지키스탄 땅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민족 갈등으로 이어진 것은 물론, 1991년 소련 해체 과정에서 독립 후 국경, 영토 분쟁으로도 이어져서 지금까지 중앙아시아에서 서로 사이 좋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 실제로 타지키스탄 북부 지역의 우즈베크인들은 한 때 우즈베키스탄과 합병을 하겠다고 주장한 적도 있었고 반대로 타지키스탄은 사마르칸트 등 우즈베키스탄 남부를 과거에 타지키스탄의 영토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아니 왜 다들 우즈베키스탄만 싫어하는 걸까?
- 이라크 VS 이란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적대관계를 자랑하는 이웃나라. 이라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로 세계에서 가장 일찍 문명을 꽃피웠는데, 이때부터, 그러니까 BC 4000여년 때부터 이란 산악지대의 엘람 문명인들과 서로 적대관계여서 한쪽이 강성할 때 한쪽을 정벌하는 그런 관계였다. 이후 이라크는 지금의 이란 땅을 기반으로 제국을 세운 페르시아에 흡수당하면서 본격적으로 원한의 싹을 틔우게 되고, 같은 이슬람 영향권에 놓이면서도 줄곧 주변 제국에 병합당한 이라크와 달리 이란은 페르시아라는 민족적 자신감에 바탕한 독립 세력을 유지하여 역사적 노선이 판이하게 다른 편. 좀 이상하게 보이지만, 이란인들은 이슬람을 믿으면서도 아랍인들이 쳐들어와서 '자기들의 종교를 강요한' 일에 대한 민족적 분노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게다가 이란은 골수 시아파여서 이웃 이라크의 수니파를 눈엣가시로 삼았으며 국경선의 샤트 알 아랍강을 놓고 영토분쟁까지 벌어졌다. 이렇게 계속 쌓여가던 양국의 악감정은 1980년 두 나라간 전쟁으로 폭발하였었으며 전쟁이 지속된 8년간 100만명이나 되는 사상자를 낳았으며 이라크는 생화학 무기를 풀어 이란을 지원하던 수많은 쿠르드족을 학살하기까지 했다.[20]
- 이라크 VS 터키 : 같은 이슬람권 국가지만 과거 오스만 제국 시절 터키에게 지배당한 역사가 있어서 양국 사이는 그리 좋지 않다. 덕분에 이라크는 역사, 외교적인 이유로 터키와 적대적 관계에 있는 그리스와는 상당히 우호적이다.
- 이라크 VS 쿠웨이트 : 같은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계 국가들이지만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촉발된 걸프 전쟁으로 인해 두 나라의 관계는 철천지 원수지간이다..오죽하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 당시 다른 아랍 국가들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할때 쿠웨이트 한 나라만 이라크 전쟁에 찬성했을 정도였다.
- 이스라엘 VS 이집트, 팔레스타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한 이집트, 팔레스타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 중동 아랍 국가들은 전부 이스라엘의 적성국으로 간주된다. 게다가 심지어는 이라크, 알제리,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리비아, 튀니지 등 국경을 접하지 않은 다른 아랍 세계 국가들도 이스라엘과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이들 사이에는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 이래 4차례씩이나 중동전쟁이 발생했으며 전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그나마 이집트와 요르단과의 관계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에게 점령된 영토를 반환하고 포기한 대신 이스라엘을 정식국가로 인정하면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과는 현재까지도 서로 전투기 폭격하고 미사일 쏘고 서로 매일 같이 전쟁급으로 싸우고 있다. 게다가 레바논, 시리아는 현재도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이웃 아랍 국가들의 공격에 대비해 비공식적으로 핵무기까지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 중국 VS 베트남 : 같은 유교국가에 한자 문화권에 공산주의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늘 엇박자를 보이는 관계. 역사적으로 중국의 팽창주의에 맞서 가장 격렬한 저항을 보였고, 심지어 몽골까지 격퇴한 전적이 있기에 중국에 대한 한 동남아의 방파제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그래도 베트남전 와중엔 중국이 동맹 관계를 유지하며 물자를 원조해주는가 싶더니 미국과의 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중월전쟁을 도발하여 뒤통수를 쳤다가 열세에 몰려 철수, 양국이 결코 우호적이기 어려운 관계임을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결국 2014년 5월 중국에서 베트남 국경에 원유 시추선을 설치하면서 이에 반발하여 베트남에서 대규모 반중 시위가 일어나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금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때는 박터지게 싸우던 미국, 호주, 한국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내고 마찬가지로 중국과 사이 안좋기로 유명한 강대국인 인도에게 군사 훈련을 부탁할 정도. 베트남인은 홍콩인에게 동족 의식이 있는데 이는 홍콩이나 광둥 성, 광시좡족자치구, 하이난 성은 원래 남월의 영토로 북부 베트남과 같은 나라여서이다. 지금도 베트남 극우들은 광동 및 광서를 중국에 빼앗긴 땅이라며 고토 회복을 주장하기도 한다.
환빠?그래서 우산 혁명 및 남중국해 분쟁으로 중국이 홍콩/베트남과 갈등을 빚자 베트남 극우들이 군대를 보내 홍콩을 독립시키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현실적 국력은 베트남이 딸리지만 일종의 연쇄 반응으로 홍콩-광동-광서-하이난에서 잇달아 베이징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고, 베트남인과 연대 주장이 나오면 어찌될 지 모른다.[21]
- 중국 VS 필리핀 : 2012년 필리핀 서부지역에 있는 섬 지역인 스카버러 섬을 두고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데 중국은 이 섬을 황옌다오라고 부르며 필리핀을 자극하면서 결국에는 중국이 필리핀산 바나나와 파인애플 등 열대과일 수입을 금지시키고 국민감정으로도 악화되어 필리핀에서 반중(反中) 및 혐중(嫌中)감정이 일어났다. 게다가 2012년 7월 4일 필리핀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한 기자가 "미국에 대한 지원 요청을 놓고 중국 언론이 도발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어떻게 보는가?"라고 묻자 중국계 출신의 대변인 라시르에다가 "중국에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샤오신이디앤.(小心一点; 조심해라)"라고 말해버린 것. # 이로 인해 중국에서도 반(反) 필리핀 운동이 격화되어 중국 정부가 중국인들의 필리핀 방문 및 여행을 금지시키기도 하였다. 여기에 필리핀이 미국에게 군사기지를 제공함에 따라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중인 중국을 자극시키기도 해서 관계가 악화일로에 치달았다. 특히 2016년 상설중재재판소 판결로 전쟁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사이가 험악해 졌으나 필리핀 대통령인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마약 범죄와의 전쟁을 위해 인권을 외치는, 미국을 위시한 서방 진영에 등을 돌리고 친중노선으로 갈아탔다. 이에 대한 답사로 중국이 필리핀 과일에 대한 무역 제재도 풀어주는 등, 양국이 화해모드로 돌아서고 있다.
- 터키 VS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등으로 인해 사이가 정말 나쁘다. 그나마 2000년대 들어서 터키가 우호적 제스처도 보이고 옛 아르메니아 땅에 있는 유적 및 문화재를 복구하기도 하며 악다마르 아르메니아 대성당을 복원해 아르메니아 주교 및 신도들의 예배를 매해 허용하면서 쬐끔은 우호적인 면도 있다. 물론 여전히 아르메니아인 학살이나 아라라트 산같은 영토적 문제같은 일로 갈등은 크지만.
- 아르메니아 VS 아제르바이잔 : 이름은 비슷한데, 둘 사이는 그렇지 못하다. 독립할 때부터 치고받는 중. 서로 종교도 다르고, 아제리인은 아르메니아가 이를 박박 가는 튀르크계 민족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 영토 안에 괴뢰정권을 세워서 화해의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사이가 너무 나빠서 유로 챔피언십 축구경기 같은 국제 행사에서도 서로의 홈에는 가지를 않아 경기를 못한다. 두 민족 다 고유 종교가 특히 민족정 정체성에 큰 영향을 발휘하는 나라라 아르메니아 쪽에서는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이슬람 모스크와 수피 유적들을 싸그리 밀어버렸고, 아제르베이잔 쪽에서는 나흐체반의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수백년 된 유서 깊은 교회들과 수도원들을 죄다 박살내고 군대 사격장으로 쓰고 있는 실정이다. 터키가 우호적으로 아르메니아를 대하는 태도를 보이자 아제르바이잔이 격렬히 반대했을 정도. 2016년 4월에는 양측이 서로 국경분쟁을 벌여 서로 수백여명 사상자를 냈으며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군 전사자 목을 잘라 이걸 당당하게 웹상으로 사진을 올리기까지 했다가 국제적 비난으로 삭제하는 일도 벌어졌다.
- 인도 공화국 VS 중국 : 카슈미르 지역이나 인도 점령지 아루나찰프라데시 국경분쟁도 원인이고 티벳관련 문제도 원인으로 이 두 나라는 서로가 서로의 훼방을 놓는 사이이다. 카슈미르는 파키스탄과 더불어 갈등을 빚고 있는 사이이며 티벳 문제는 티벳의 망명정부를 인도에서 마련해줬다. 게다가 파키스탄은 인도와 핵개발 병림픽을 벌이다가 중국과 손을 잡을 정도.
- 부탄 VS 중국 : 부탄이 형님 국가로 모시던 티베트가 중국에 병합된 이후 부탄은 중국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골수 친인도 국가가 되었으며, 동시에 골수 반중 국가가 되었다. 현재도 부탄은 중국과 인접해있음에도 중국 식당을 찾기가 매우 힘든 나라인데다가 중국인의 입국이 매우 까다로우며[22] 현지인들은 중국 하면 아주 제대로 경기를 일으킨다. 사실 양국은 아예 수교조차 하지 않았으니 말 다했다. 심지어 대만과도 수교 안했다. 이 정도면 혐중을 넘어 혐한(漢) 수준
- 아프가니스탄 vs 파키스탄 : 인도와 파키스탄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렇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도 사이가 몹시 앙숙이다.그나마 종교적으로 힌두교와 이슬람으로 종교적 차이가 상이한 인도와 파키스탄 관계와 달리 종교적으로 같은 이슬람을 믿는 이슬람권 국가이지만 두 나라의 관계는 가히 앙숙이다. 현재 파키스탄이 차지하고 있는 발루치스탄 등 파키스탄의 서부 해안 지역은 원래는 아프가니스탄의 영역이었지만 국경을 제대로 설정하지 않았고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영국의 외교관이었던 듀란드가 아프가니스탄의 영토를 200km에 달하는 내륙 영토로 줄이고 발루치스탄 지역을 옆동네의 식민지령 국가였던 파키스탄에 귀속시키면서 아프가니스탄은 내륙국가가 되어버렸고 이 때문인지 본래 자국 영토였던 곳을 옛날 영국의 끄나풀이었던 파키스탄이 삼켰다고 파키스탄과는 몹시 사이가 나쁘다. 게다가 현재는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 반군 단체인 탈레반 문제를 놓고서도 갈등이 심한데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 정권의 폭정을 지원, 방조하고 뒤에서 내전을 선동하는 악질 국가라며 파키스탄을 비난하고 있으며[23] 파키스탄은 툭하면 우리 땅에서 테러, 학살 등 행패부리는 탈레반들이나 단속하라고 아프가니스탄을 비판한다.[24]
- 바레인 VS 카타르 : 본래는 영국의 중동 식민지였으나 1971년 왕정국가로서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그러나 독립 후 카타르와 인접한 하와르 섬을 놓고 영토 분쟁을 겪고 있다. 바레인은 하와르 제도가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데 반해 카타르는 하와르가 지리적으로 카타르와 가깝다는 이유로 카타르의 땅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국제사법재판소까지 이 문제를 끌고 갔지만 국제사법재판소는 바레인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여전히 바레인보다는 카타르와 더 가까워 하와르를 둘러싼 두 나라의 갈등과 논란은 현재 진행중이다. 또한 카타르는 바레인 왕실 부조리 등을 카타르 국영 방송사인 알 자지라를 통해 심심할때마다 깐다.
- 사우디아라비아 VS 쿠웨이트 : 페르시아 만 해역의 섬 2개를 놓고 영유권 분쟁이 현재 진행중이다. 실질적으론 쿠웨이트가 지배하고는 있지만 막상 영유권 분쟁이 무력 분쟁으로 이어질 경우 군사력 전력차에 있어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상당히 월등한 편.
- 키프로스[25] VS 터키 : 터키는 그리스계가 다수인 키프로스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스와 터키의 좋지 않은 관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같이 참고하자.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도 같이 보자.
4 유럽
- 그리스 VS 마케도니아 : 마케도니아의 국명을 가지고 충돌하고 있다. 특히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의 독립 당시 국기에 대해서도 문제삼았던 적이 있었는데 이유인 즉 마케도니아의 국기에 그려져 있는 빨간 바탕에 금빛 햇살 무늬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무늬를 본딴 것이라며 인정 불가를 내세웠기 때문. 그 때문에 국기 수정을 요구함에 따라 결국 마케도니아가 이를 받아들여 국기의 햇살 무늬를 일부 수정하기도 했다.
- 그리스 VS 불가리아 : 발칸 반도의 대표적인 국가들이고 같은 기독교 동방정교를 믿는 정교권 국가들에 19세기까지 오늘날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에게 식민지배를 당한 공통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언어적으로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없다.[26] 게다가 그리스를 지배했던 동로마 제국과 불가리아 제국은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수백년간 치고 박고 싸웠으며 동로마 황제의 머리를 도금해 술잔으로 사용한 불가리아, 불가리아 포로들의 눈을 뽑아 불가리아로 돌려보낸 동로마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불구 대천의 원수였다. 이후 양국 모두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후 오스만 제국이 차지하던 발칸 반도 영토들을 놓고 발칸 전쟁을 치르는 등 서로 대립하였으며 제1,2차 세계대전때 연합국과 추축국으로 적국이 되어 서로 싸우기도 했고[27] 제2차 세계대전 종전후 그리스는 미국 등 서방 세계 국가들의 영향을 받아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고 불가리아는 소련의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서 냉전시대때 자본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로 갈라져 이념적으로 대립하면서 아예 원수지간이 되었다. 그러나 1989년 냉전이 종식되고 불가리아가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 자본주의로 체제를 갈아타고 냉전 이후 힘을 키워가는 적국인 터키를 견제하고자 두 나라가 같이 군사훈련도 하고 협력하는 등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두 나라의 국가관계는 여전히 안 좋다..심지어 축구에서도 라이벌 전이 벌어지며 같은 유럽연합의 회원국이면서도 발칸반도의 지역 주도권을 놓고서도 서로 대립할 정도..게다가 불가리아는 그리스가 재정위기에 빠지자 부정부패와 무리한 유로존 가입으로 국가 경제를 망친 그리스를 비판하기까지 했다.
- 그리스 VS 이탈리아 : 그리스는 고대 그리스 시기에 현재 이탈리아의 영토인 시칠리아섬과 이탈리아 반도 남부 지역 일대에 아그리젠토, 크로토네, 카타니아, 메시나등 식민도시들을 세워 점령한 적도 있었으며 146년 이탈리아 반도 중부에서 시작된 로마 제국의 침공을 받아 로마에게 지배당하기도 했었고 제2차 세계대전때 추축국과 연합국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기까지 하는 등 질긴 대립을 이어왔으며 같은 남유럽권 국가에 종교적으로 같은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그리스는 동방정교,이탈리아는 가톨릭을 믿는 등 기독교의 종파가 크게 갈려있는데다 역사적,종교적인 이유 때문인지 그리스인들은 이탈리아를 역사적 앙숙관계인 터키나 같은 정교 국가이지만 민족,언어적으로 다른 나라에 동로마, 냉전 시절 내내 대립하던 불가리아, 유고 연방 해체 후 국명 문제로 죽어라 싸우는 마케도니아보다 더 크게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참고로,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터키와 그리스,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불가리아와 그리스처럼 서로 육지 방면으로 국경으로 맞대고 있진 않으나 지중해 너머로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과 이탈리아 반도 남부 지역과 서로 마주보고 있고 거리도 가까운 이웃나라이다. 한국과 일본의 거리와 비슷하게 볼 수 있다. 물론 이탈리아 문서와 그리스 문서의 지도에는 둘 다 잘려서 안 나오지만 알바니아 문서에 있는 지도와 남유럽 문서에 있는 지도를 같이 보면 알제리와 프랑스 간의 거리보다 가까운 이웃나라이다.
- 노르웨이 VS 스웨덴 : 나폴레옹 전쟁의 혼란을 틈타 북방의 강자로 맹위를 떨치던 스웨덴이 1814년 이웃 노르웨이를 전격 병합해버린 것이 국민적 앙금의 시작. 이후 노르웨이는 꾸준한 항쟁을 통해 덴마크의 지원을 받아 1905년 스웨덴의 통치를 청산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중 스웨덴은 나치 독일의 노르웨이 점령을 묵인했으며,[28] 현재 노르웨이 국왕 하랄 5세의 어머니인 스웨덴 공주 출신의 마르타가 아이들을 데리고, 스웨덴으로 입국하는데 스웨덴인들이 이에 대해 엄청난 반감을 표시하면서 관계가 악화되었고 결국 마르타 왕비와 그녀의 아이들은 미국으로 망명한다.[29] 이 일은 지금까지도 양국간 악감정의 떡밥으로 회자된다. 다만 1960년대 이후 노르웨이 영해에서 유전이 터지면서 1970년대 이후부터는 1인당 국민소득은 노르웨이가 더 높다. 스웨덴 국민이 노르웨이로 일하러 온다고도 한다. 참고로 노벨상도 평화상만 노르웨이에서 시상하고 있고 나머지 분야는 모두 스웨덴에서 시상한다.
- 네덜란드 VS 독일 :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국이었던 네덜란드를 나치 독일군이 중립을 무시하고 무력으로 침공, 점령한 역사가 있다. 게다가 총독으로 앉힌 게 얼마전까지 폴란드를 지옥으로 테라포밍하던 어떤 안경잽이 악마새끼라... 덕분에 네덜란드 사람들은 독일 소리만 나오면 거의 미친듯이 경기를 일으킨다. 안네의 일기가 바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로 피신해 있던 유대인인 안네 프랑크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참고로 2차대전 당시 나치가 전쟁 물자로 쓴다고 네덜란드의 국민 교통 수단인 자전거를 강제 징발한 사례가 있어 네덜란드인들은 흔히 독일인들을 두고 자전거 도둑 드립을 종종 친다. 여담으로 네덜란드어와 독일어[30]는 꽤 유사한 언어이다. (…)
- 보스니아 VS 크로아티아 : 네움이란 이름의 바닷가 마을와 그 인근 해안가 지역들을 두고 서로 영토 분쟁을 빚고 있다.[31] 거기다 1995년에는 종족간 내전으로 헬게이트가 되어버린 보스니아에 크로아티아군이 국경을 넘어 침범하기까지 했다. 거기다 같은 슬라브 민족인데도 종교도 달라 종교적으로 융화할 수 없는 사이기도 하다.[32]
- 불가리아 VS 세르비아 : 종교가 동방 정교에다 민족도 남슬라브족으로 같지만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후 1885년 세르비아-불가리아 전쟁을 시작으로 1913년 제2차 발칸 전쟁, 제2차 발칸 전쟁 이후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까지 겪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쟁에서 패배한 불가리아의 땅을 뜯어 세르비아 영토에 흡수시킨 전례가 있다. 더욱이 2008년 2월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일방적인 독립을 선포하자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할 수 없다며 세르비아를 지지하는 척하다 약 한 달만인 2008년 3월 20일에 코소보의 독립을 승인하여 세르비아의 뒤통수를 때렸다..거기다가 같은 민족,종교적으로 같은 이웃나라들이지만 20세기 후반기에 불가리아는 냉전 붕괴되는 과정에서 공산당 독재 정권에서 평화적으로 민주주의로 체제를 전환하고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룩하는데도 성공하여 2007년에 유럽연합에도 가입한데 반해 세르비아는 공산주의 체제 붕괴 이후 유고슬라비아가 분열,해체되던 과정에서 유고슬라비아 주변국들과 벌인 전쟁과 학살 행위로 전범국가,학살국가의 오명을 남기고 유럽연합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등[33] 동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에서도 한 나라는 전쟁,학살국가로 한 나라는 경제적으로 가난하기는 해도 비교적 살기 좋은 국가로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이러한 20세기 말 탈냉전 과정에서 두 나라가 겪은 역사적인 행보 때문인지 불가리아 사람들은 세르비아를 멍청한 막장국가라고 비웃는다(...)
마치 중미의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관계 같다.세르비아는 아이티, 도미니카는 불가리아인가?[34]
- 슬로바키아 VS 헝가리 : 슬로바키아는 헝가리에게 아주 오랫동안 지배받아 오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가 되었다가 1993년 독립했다. 슬로바키아가 독립국이 되긴 했지만 인구의 10% 가까이는 헝가리인이었고, 슬로바키아인과 헝가리인 사이에 분쟁이 계속되었다. 슬로바키아가 언어법을 제정해 소수민족 인구가 20%가 안 되는 곳에서 헝가리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자 헝가리인들이 반발하기도 했고, 이중국적 문제로 양국이 충돌하기도 했다.
- 슬로베니아 VS 크로아티아 : 옛날 유고슬라비아연방에 속해 있었던 나라들이었으나[35] 1991년 유고슬라비아에서 분리 독립한 이후 아드리아해 피란만의 영해를 놓고 영해 분쟁이 불거졌다. 본래는 이 피란만의 바다를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반반씩 나누어 가지려고 했었지만 슬로베니아는 크로아티아가 차지하고 있는 영해까지 자국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피란만의 영해를 둘러싼 외교 분쟁이 시작되었다. 결국 이것 때문에 슬로베니아는 크로아티아의 유럽연합 가입을 결사반대할 정도였다. 그러나 존재감에 있어서는 슬로베니아보다 크로아티아가 더 높아 유럽의 관광객들 대부분이 슬로베니아보다는 아드리아 해안을 왕창 끼고 있는 크로아티아를 자주 가 실질적으로 슬로베니아가 경제적으로 잘 사는데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크로아티아에게 밀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36]
- 헝가리 VS 루마니아 : 헝가리와 루마니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기 루마니아가 헝가리의 지배를 받은 적도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때 트란실바니아 등 헝가리가 차지하고 있던 동유럽 영토들을 루마니아가 흡수한 적이 있어 서로 감정이 좋을 일이 전혀 없다.[37]
- 포르투갈 VS 스페인 : 과거 스페인의 전신이었던 카스티야 왕국의 지배를 받다 독립전쟁을 일으켜 독립에 성공했고, 거기다 대항해시대엔 중남미 식민지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체결하면서 포르투갈의 브라질 영유를 상호 합의했다. 스페인의 패권이 강성해지자 1580년에는 왕관에 나라 주권까지 스페인에게 바치고 스페인의 보호령을 자처하다 스페인 세력이 몰락하자 전쟁을 일으켜 다시 독립을 선언했다. 역사적으로 스페인의 지배와 간섭을 여러 차례 동안 받아왔는지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제 경기에서도 운동 경기 시합 벌어지면 그야말로 라이벌전이며, 특히 비교적 당한게 많다고 할 만한 포르투갈 측에서는 이를 바득바득 갈고 덤벼든다. 다만 국민 감정이란 측면에서는 양국 사이 국력과 국제적 존재감 차이가 워낙 크고, 두 나라 모두 영영 사라진 영광의 세월(...)인 대항해 시대 이후 유럽 열강의 자리에서 비껴나 있어 서로 싸움질 할 일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감정의 골이 그다지 깊다고 보기는 힘들다. 애초에 두 나라가 공유해온 역사적, 문화적 동질감을 생각해 보면 [38] 이상하리만치 이베리아 반도의 두 나라는 감정적으로나, 실제 외교적으로나 의외로 참 접점이라 할게 없다. 유럽 연합으로 한꺼번에 묶이기 전까지는 서로 딱히 경제적 협력을 한 것도 아니고, 외교적으로도 나폴레옹 이후로는 스페인은 혼자 노는 반면 포르투갈은 영국을 따라 다니니 별로 부딪힐 일도 없고(...)...
- 스페인 VS 프랑스 : 위의 스페인-포르투갈 관계가 포르투갈 쪽에서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관계라면, 이 쪽은 반대로 프랑스인들은 무덤덤하게 생각하는 편이지만 스페인인들은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제이다. 역사적으로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의 동군 연합으로 스페인이 형성 되기 이전인 중세 부터 프랑스는 아라곤, 카스티야 양쪽에게 왕위 계승권 문제로 심심찮게 간섭, 개입을 했고, 특히 아라곤 왕국의 핵심 지배층을 형성했던 카탈루냐 쪽에서는[39] 원래 자기들 권역이었던 피레네 산맥 이북의 영토를 알비 십자군 때 빼앗기기도 했다. 스페인 제국의 부상과 패권 또한 지정학적,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양쪽의 합스부르크 가문이 이베리아 반도, 이탈리아, 중부 유럽에서 온갖 자원과 인력을 다 긁어 내어 15세기 말~16세기 중반 유럽의 정치적 판도를 뒤집어 놓은 이탈리아 전쟁에서 무려 50년에 가까운 전쟁을 통해 프랑스를 꺾어서 이룬 것이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스페인 제국 리절 시절이었던 16세기~17세기 초반까지 스페인 외교의 지상과제는 위그노 전쟁에 개입하든, 사보이 대공과 편을 먹든, 교황을 구워 삻던 프랑스가 다시 패권 국가로서 영향력을 발휘 못 하도록 재정신 못 차리게 대내외적으로 압박하는 것이었고, 프랑스 또한 자국 내 가톨릭 매파를 선동하고, 프랑스의 그로기 상태를 최대한 지속 시키려는 스페인의 영향력을 미워했다. 결국 이런 스페인의 유럽 패권을 깬 것 또한 안그래도 네덜란드, 영국, 독일 내 개신교, 지중해 대오스만 전선에서 동시에 싸우느라 이미 한계에 달한 스페인의 국력의 허리를 부숴 버린, 르크루아 전투로 대표 되는 30년 전쟁 당시 프랑스군의 참전이었다. 프랑스 자신 또한 가톨릭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국가들과 편먹어 스페인을 다굴 놓은걸 보면 당시 스페인 패권 분쇄가 프랑스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와중에서 루시용, 세르다뉴 같은 역사적 카탈루냐 영토를 뺏어간 건 덤이다. 근대로 넘어 오면서도 프랑스에 대한 스페인의 악감정은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연관하여 지속 되었다. 일단 이베리아 반도 전쟁에서 스페인이 당한 피해는 모두가 공유했고, 보수파는 프랑스 혁명의 급진주의와 '불순한 사상'의 씨앗을 스페인에 뿌렸다고 싫어하고, 반대로 자유주의자나 좌파들은 나폴레옹 실각 이후 1823년 무능한 페르난도 7세 대신 입헌군주제와 헌법에 의한 통치를 추구한 자유주의 내각을 샤를 10세의 프랑스군이 개입하여 박살냈다고 미워했다. 20세기 들어서도 반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스페인 좌파는 프랑스의 중앙집권적 공화주의 이념 자체가 체질에 안 맞다고 경원시하고, 우파는 프랑코 정권 당시 공화파 망명객이나 ETA를 비롯한 반체제 인사들을 프랑스가 비호해 주었다고 프랑스의 영향력을 원망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스페인에게 '당했다'고 인식할만할 역사적 사건이 늦어도 17세기면 끝났으니 별로 악감정이 없지만, 스페인 내부에서는 카스티야와 카탈루냐인들이 일치단결하여 통일 된 의견을 내는게 프랑스에 대한 불신일 정도이다. 게다가 이런 역사적 원한 관계 빼고도 스페인도 어디 남부럽지 않을 만한 찬란한 예술적, 문화적 유산을 자랑하지만 프랑스란 거대한 덩치가 바로 옆에 있으니 항상 2등이로 비교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어쩌면 열폭성의 질투 또한 강한 편이다. 나머지 서유럽 내에서의 악감정 비슷하게 여기도 어디 감히 전쟁 운운할 만큼의 긴장 관계는 아니지만, 적어도 스페인에서 함부로 불빠 행세하고 다니면 바르셀로나에서든, 마드리드에서든 어디선가 돌이 날라 올 것이다.
- 프랑스 vs 이탈리아 : 이탈리아 통일 이전 이탈리아 반도 북부 지역에 난립되어 있던 소국들이 프랑스의 침략과 간섭을 받기도 했고 이탈리아 반도 통일 운동 당시 프랑스가 이탈리아 일대에 통일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저지하려고 하는 등 역사적으로도 반감과 애증이 심한데다 유럽문화의 종주권을 놓고 서로 대립하기도 한다.
사족으로 프랑스는 14세기에 이탈리아의 정신적 구심점인 교황청을 자국 영내로 강제 이전시키고 반세기 이상 묶어놓았다.
- 아일랜드 VS 영국 : 이 기나긴 앙숙관계는 본래 영국 본토에 있던 켈트족이 앵글로색슨의 침입으로 아일랜드로 쫓겨간 것이 시초로, 한때는 그 땅마저 빼앗겨 버린 적도 있다. 특히 잉글랜드의 직접 통치가 강화된 16세기 부터는 아일랜드의 반란→영국의 진압→보복성 학살의 패턴이 수 십년이 멀다고 반복됐다. 게다가 영국이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던 19세기 중엽에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무려 수백만 명이 굶어죽었고(...)[40], 또한 100만 가량의 인구가 고향을 뒤로 하고 아메리카로 떠나게 되었으니. 이 경이로운 재난의 주원인은 흔히 알려진 감자마름병 못지 않게 영국 당국의 부적절한 대응과 착취 또한 큰 요소였다. 꾸준한 투쟁으로 독립을 달성한 지금도 북아일랜드는 영국이 점유하고 있어 완전 독립 달성을 위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현재는 북아일랜드 지방의 다수가 친 영국 성향 주민들로 이루어져 있고, 양국의 협의로 테러 활동도 많이 줄어들었지만. 또한 과거 영국의 식민 국가들이 구성한 영연방에서도 아일랜드는 빠져나가 있다. 겸손한 제안이나 피의 일요일 항목을 참고하자.
- 아이슬란드 VS 영국 : 아이슬란드 대구 전쟁으로 앙숙을 넘어 원수가 되버렸다. 이 당시 조업권 문제는 갈수록 쪼들고 말라 죽어가는 많은 영국 어부들에게 핵심적인 문제였는데, 아이슬란드 측에서 '저 나쁜 영국놈들 보소! 아직도 제국주의 시절 버릇 못 고치고 약소국을 못 살게 괴롭히네!'라는 식으로 일방적인 언론 플레이를 하여 그나마 관심을 가지던(...) 국제 여론이 분쟁 자체의 자세한 내부적인 사항은 고려 안하고 일방적으로 아이슬란드 쪽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영국 측에서 굉장히 억울해했다. 실질적으로 이 지역에 그나마 이권이 걸쳐진 덴마크, 노르웨이 등 다른 노르딕 국가는 문화적, 역사적 측면에서 아이슬란드 편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던지라...
- 폴란드 vs 체코 : 같은 서슬라브족 계열 국가들이지만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독일,러시아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이후 폴란드인들이 다수를 차지하던 톄신 지방을 놓고 영토분쟁을 벌이는 등 서로 갈등을 빚었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뮌헨 협정에 가담하여 체코가 차지하던 톄신 지방을 뜯어먹은 적이 있었다.결국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국경 재조정으로 문제의 영토를 폴란드령과 체코령으로 갈라 통치하는 선에서 끝냈으나 영토분쟁으로 싸웠던 역사 때문인지 두 나라 간의 감정은 여전히 안 좋다. 프라하의 봄 당시에는 폴란드군이 체코로 물밀듯 들어와 체코의 민주화 열기를 탄압하기도 했다. 물론 소련의 압박이 크긴 했지만.
- 폴란드 VS 독일 : 16세기 폴란드 최전성기에는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이 폴란드에 복종할 정도였지만, 러시아와 18세기부터 강성해진 프로이센, 그리고 오스트리아가 폴란드를 분할 통치하는 바람에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패하기 전까지 폴란드는 주권을 잃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또다시 독일에 점령당했다. 당시 유럽에서 처음으로 독일의 침공에 희생된 나라가 폴란드였으며(강제 합병된 체코와 오스트리아는 제외),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되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학살로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폴란드에 있다(폴란드 발음은 오시비엥침). 종전 후에는 1971년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폴란드를 직접 방문해 무릎꿇고[41] 사과한데 이어 폴란드가 가져간 구 독일 영토[42]의 영구 포기 선언 및 공동으로 역사 교과서를 편찬하는 등 조금은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양국간 감정은 마냥 좋다고 할 수 없다.
- 러시아 VS 폴란드 : 러시아 본토와는 국경이 없으나,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끼어 있는 러시아의 월경지 영토인 칼리닌그라드 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폴란드와 국경을 맞댄 다른 인접국가인 벨라루스가 친러시아 성향이 강한 국가이다 보니 사실상 국경 이웃나라 사이와 진배 다를 바 없다.같은 슬라브 계열 국가이지만 둘 사이는 그야말로 불구대천의 원수. 물론 러시아의 국력이 매우 강하다 보니 폴란드가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을 수는 없다. 과거 폴란드가 강성했을 때 러시아는 심심하면 폴란드에게 털어먹히는 국가였지만[43] 폴란드가 약해지자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와 함께 3국 분할에 참여하여 폴란드란 나라 자체를 아예 지도상에서 지워버렸다. 이후 폴란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을 되찾았다. 독립 직후 폴란드는 러시아에 복수할 기회를 얻게 되는데,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덕분에 러시아가 막장으로 치닫자 러시아를 침공하여(소비에트-폴란드 전쟁) 우크라이나의 반을 먹어 복수 성공. 소련은 이에 이를 갈고 있었고, 이후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어 폴란드를 분할하기로 밀약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 직후 폴란드는 동서 이웃의 강대국에게 순식간에 분할되었으며, 이후 KGB의 전신인 NKVD에게 폴란드의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장교, 지식인 등이 무참히 학살당했다. 그러다 독일이 패망하고나서 전후 44년 동안 폴란드는 소련의 위성국 신세로 지내야 했고, 탈냉전 이후 1999년에는 NATO 가입, 2004년에는 유럽연합에 가입함으로써 러시아에 대한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유로 2012에서는 양국 국대 서포터들끼리 싸우는 추태까지 보여주었다. 다만 유로 2012 양국 서포터들 중 러시아가 더 병크를 저질러서[44] 러시아가 더 까이는 분위기다.
- 폴란드 VS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권 이웃 나라들 : 폴란드는 독일과 러시아, 체코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같이 과거 구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있었던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리투아니아같은 다른 이웃한 유럽 국가들과도 사이가 안 좋은데 이는 이 나라들이 과거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당시 폴란드에게 빌뉴스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서부 지역의 영토들을 빼앗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폴란드 분할 이전 폴란드가 강성했을 당시 폴란드의 지배와 간섭을 받은 적도 있었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이들 지역은 소련에 다시 편입되었지만
대신 소련에게 뺏어먹은 땅 소련한테 돌려주는 대신 동프로이센과 폼메른 같은 구 독일 영토들을 획득했다폴란드에게 영토들을 빼앗긴 적이 있던 이들 3개국들은 여전히 폴란드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고 한다.그나마 폴란드 국경 지역 변방 영토와 도시들만 잃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와 달리 리투아니아는 수도인 빌뉴스를 도시 시민 대다수 폴란드인이란 이유로 폴란드한테 강탈당하고 카우나스 시를 임시 수도로 삼았을 정도였다.
- 러시아 VS 우크라이나 : 사실 종교도 모두 동방 정교회를 믿고, 민족 혈통적으로 동슬라브 족인데다 러시아의 역사적 출발점이 우크라이나 땅의 키예프 공국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서로 뿌리가 같다고 볼 수 있지만, 18세기에 폴란드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반반씩 나눠먹었고 19세기에 폴란드가 망하면서 자연스레 러시아의 완전지배.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탈출한 귀족들, 백군들과 함께 독립을 시도했다가 붉은 군대가 밀고 들어오면서 망했어요. 소련 아래의 공화국으로 70년을 지내는 동안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 겨우 1991년에 소련 해체로 독립했으나, 친러시아파와 독립파 간의 정치적 다툼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다[45][46] 러시아 역시 NATO 가입을 희망하는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유럽 전역)를 길들이려는 시도를 자주 한다. 대표적인 것이 매년 겨울철마다 일어나는 가스관 봉쇄. 일단 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선거에서 친러파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서 친서방 정책을 열심히 예전대로 돌려놓고 있다. 그러나 2014년 유로마이단이 발생(...). 게다가 2014년에는 크림 반도를 놓고 두 나라가 전쟁까지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 핀란드 vs 러시아 : 러시아 제국 시기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적도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때 러시아와 두번이나 전쟁을 치르는 등의 갈등관계도 있었던지라 핀란드는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다.
5 아메리카
- 도미니카 공화국 vs 아이티 : 두 나라가 위치한 히스파니올라 섬은 원래 에스파냐령의 섬이었으나 서부에 프랑스가 진출하였고, 이후 1804년 서부의 아이티가 독립한 후 1805년 섬의 동부를 침략하였고 1821년부터 이십여년 간 아이티가 도미니카 공화국을 지배하기도 하였으며 아이티는 1850년대까지 도미니카 공화국을 침략했다. 20세기 들어 양국의 국력이 역전된 이후로는 아이티인들이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이주하기도 하였는데 1937년 도미니카 공화국에선 아이티인 2만 명이 대량학살당하기도 하였다. 또한 아이티의 경제난이 심해지면서 100만여 명의 아이티인이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들어왔으며 언어도, 민족도(아이티인의 피부색이 더 검다) 문화도 상이하며 도미니카 공화국 주민들은 아이티를 아프리카의 일부로 보며 멸시한다.
- 멕시코 VS 미국 : 19세기 중반에 멕시코 영토였던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텍사스, 유타, 네바다 등의 현재 미국이 영유하고 있는 서남부 지역 주들을 미국이 전쟁을 통해 강탈했다. 이 지역의 샌San이나 로스Los로 시작하는 지명은 멕시코 땅이었을 때의 흔적이다. 이때문에 멕시코 입장에서 그야말로 미국은 증오의 대상. 현재 미국은 멕시코에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나 마약 밀수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동시에 멕시코를 범죄자가 튀는 나라로 깔보고 있으며, 멕시코는 예전에 땅 훔쳐가서 발전한 새끼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미국을 노골적으로 적대한다.
- 미국 VS 캐나다: 미국 vs 멕시코, 쿠바, 러시아같이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는 정도는 아니고 상호 간에 연계도 잘 되어 있지만 사실 서로를 폭풍디스해대는 사이다. 미국은 캐나다를 얼음덩어리에 북극곰 사는 촌동네로 인식하고 있으며 실제로 캐나다하면 메이플 시럽과 북극곰, 아이스하키 정도밖에 생각 못한다. 캐나다는 미국인들을 무식하고 뚱뚱한 양키놈들이라고 까대면서 조악한 의료보험과 조지고 부시고가 만든 온갖 빚더미와 혼돈을 까댄다. 그야말로 애증의 관계. 역사적으로도 영국령 캐나다군이 백악관을 불태운 적도 있고, 미국도 미국대로 캐나다 토론토까지 육박하는 등 은근히 투닥거려온 사이다.
여기에 캐나다는 미국과 관계도 안 맺고 있는 쿠바와도 친하게 지내는 중(...).현재는 미국도 쿠바와 수교를 함으로써 이 말은 옛 말이 되었다. 참고로 이 두나라의 관계는 이웃나라/좋은 사이에도 있다.
- 미국 VS 쿠바 : 자본주의 국가 VS 공산주의 국가. 태생부터 서로가 서로를 싫어할 수 밖에 없는 사이다. 거기에 케네디 시절에 미국이 반카스트로들을 지원해서 쿠바를 전복시키려고 피그만 침공을 일으켰고 그 때문에 쿠바에서는 소련에게 부탁해서 핵 미사일을 배치해두려 했고, 그 때문에 미국은 경제봉쇄를 시켜놨다. 아직도 그렇게 사이가 좋지는 않으며, 공식적인 외교 관계도 없었으나, 2014년 12월 18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쿠바와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할 것임을 선언했고, 라울 카스트로 쿠바 최고지도자도 이에 호응하였다.
- 브라질 VS 아르헨티나 :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지배의 영향을 받아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등 언어도 다르고 인종 구성에서도 브라질은 백인, 인디오, 흑인 노예 후손, 여러 혼혈 인종들이 차지하는데 반해 아르헨티나는 건국 이후 백인 이민을 장려하여 백인들이 국민 대다수를 차지한다. 역사적으로도 1825년 스페인령이었다가 브라질에게 합병된 시스플라티나 주의 독립을 아르헨티나가 지원하여 브라질과 전쟁을 벌인 결과 브라질로부터 우루과이를 독립시킨 적이 있었고 심지어는 축구에서도 서로 으르렁거린다. 실제로 서로 상대 국가대표 선수가 다치면 좋다며 대놓고 공개하는 수준. 국력이나 인구면에서도 남미에서 서로 비교되고도 남을 나라들이기도 하다.
- 브라질 VS 우루과이 : 브라질의 입장에서 보면 빼도 박도 못할 반란군
놈의 시키이 우루과이이다. 원래 우루과이는 브라질의 속주였는데 아르헨티나의 도움으로 끝내 독립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브라질은 다시 우루과이를 병합할 기회만 엿보고 있고 우루과이는 국가보존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브라질과 맞서고 있다. 게다가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는 우루과이가 브라질에게 마라카낭의 비극이라는 희대의 빅엿을 먹인 과거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브라질에게는 우루과이만큼 얄미운 존재가 없다. 브라질에게 우루과이는 차라리 아르헨티나가 친한 이웃이라는 느낌마저 들 정도의 대앙숙이다. 우루과이의 입장에서는 호시탐탐 자국을 복속시키려는 국가의 중대한 적이 브라질이고 브라질의 입장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혐오하는 족속들이 우루과이이다. 우루과이에 대한 브라질의 증오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라 월드컵이나 코파 아메리카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 대회에서 브라질은 우루과이만 만났다 하면 네놈에게는 절대로 못져!로 일관하고 있다.
- 브라질 VS 페루 : 브라질과 페루도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양국관계는 따지고 보면 엄청 나쁘다. 1909년에 브라질에게 영토 일부를 반강제적으로 할양당한 적이 있었고 강대했던 잉카 제국의 후손을 자부하는 페루 입장에서는 브라질을 아마존 밀림지역에서 사냥이나 하는 변방 야만인들이라고 엄청 무시하기도 한다. 거기다 페루는 브라질과 라이벌 관계인 아르헨티나와는 상당히 우호적이다(...).
- 에콰도르 vs 페루 :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후 국경 사이에 위치한 내륙 열대림 지역을 놓고 영유권 분쟁을 벌였다. 이런 열대림 지역을 둘러싼 두 나라의 영유권 분쟁은 1941년 에콰도르-페루 전쟁으로 이어졌으나 결과는 페루군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에서 패배한 에콰도르는 브라질 리오에서 페루와 분쟁중인 열대림 지역 상당수를 페루에 양도하는 리오 조약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열대림 지역의 자원확보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던 에콰도르는 1960년 리오 조약을 파기했고 그 결과 다시 페루와의 영토 분쟁이 수면 위로 떠올라 1981년과 1995년 페루와 전쟁을 벌였지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 지역 강국들의 중재하에 평화협정이 맺어졌고 1999년 에콰도르 대통령이 페루를 방문하면서 지금은 많이 가까워졌지만 영토 문제로 전쟁을 세 번씩 치른 만큼 에콰도르 사람들의 페루에 대한 감정은 그리 좋지 못한 편이다.
- 콜롬비아 vs 베네수엘라: 과거에는 그란 콜롬비아 연방에 소속된 지역이었지만 갈라지고 나서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친미적인 국가와 가장 반미적인 국가가 되었다. 대부분의 남미 국가들이 코소보를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을 주권 국가로 인정할 때, 콜롬비아는 코소보를 인정하며 팔레스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사실 뭐하고 콜롬비아 카르텔이 베네수엘라로 진출해서 마약을 팔아넘긴다거나 베네수엘라 조폭들과 이합집산하거나 쌈박질을 벌이는 등의 문제도 있기 때문인 측면도 크다. 그래서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간의 관계가 안 좋아진 것이다.
- 엘살바도르 VS 온두라스 : 요즘엔 그나마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껄끄러운 관계. 축구를 빌미로 전쟁까지 했던 나라들이다.
6 아프리카
- 남수단 VS 수단 : 본래는 종교, 민족, 언어 모든 배경이 다른 지역들이었으나 영국의 잘못된 식민 유산에 의해 1956년 한 나라로 강제 통합되어 수단으로 독립되었다.[47] 독립 이후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계와 흑인 혼혈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북부와 흑인계 주민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남부간 내전이 발발. 1972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평화 협정을 맺고 남부 지역에 자치권을 주면서 좀 나아지나 싶었으나 1983년 수단 정부가 자치권을 박탈하고 남부 지역에 대한 강제적인 이슬람화 정책을 시도하면서 남부 주민들이 저항하기 시작했고 결국 존 가랑, 실바 키르 등 남부 출신 반정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수단 인민 해방군이 결성되어 수단 정부군을 상대로 무장 반정부 투쟁에 돌입하면서 다시 내전 상태로 돌입하였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무아마르 알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 등이 수단 정부와 수단 인민 해방군 지도부를 상대로 중재에 나서보기도 했지만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2005년 케냐 나이바샤에서 새로운 휴전 협정에 합의하면서 내전은 비로소 막을 내렸다. 그리고 2012년 남부 지역의 지위문제를 결정할 주민투표가 실시되어 남부 지역 주민들 대다수가 남부의 독립을 찬성하면서 수단 남부 지역은 남수단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아비에이 지역의 영유권을 둘러싼 영토 분쟁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지만 남수단의 일반 국민 감정은 수단 내전 기간 동안 민간인 학살과 인종 청소, 여성 강간을 자행한 수단군의 잔인한 만행을 잊지는 않되 수단을 용서해주자는 정서가 강한 편.
- 남아프리카 공화국 vs 나미비아 : 나미비아는 본래 독일의 식민지였으나 제1,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패전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수의 백인계 인종들이 정권을 쥐고 있었던 남아공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본국에서 실시하고 있었던 흑백 인종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적용하며 나미비아의 흑인들을 폭압적으로 억눌렀고 1960년대 이후 나미비아의 흑인들이 남아공의 지배에 맞서 게릴라 독립전쟁을 일으켜 국제사회와 유엔의 지지를 받아[48] 남아공 군대과 싸워 1990년 남아공에서 독립하는데 성공했다.허나 나미비아가 독립한 이후 남아공도 지배하던 주체 세력이 백인 정권에서 흑인들이 정권을 잡게 되면서[49] 갈등의 소지는 많이 줄어들었고 양국간 경제 교류도 활발해 다른 나라들보다는 좀 많이 나은 편
- 리비아 VS 이집트 : 고대 이집트 시기 나일강을 젖줄삼아 찬란한 문명 간지 뿜던 이집트에게 매일 같이 침략받고 두들겨 맞은게 지금의 리비아였고, 이집트와 리비아가 아랍화와 이슬람화를 거친 이후 한동안 잠잠해지나 싶었더만 1977년에 사하라 사막 국경 한복판에서 전쟁을 벌였다. 결과는 몇몇 전사자만 낸 이집트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최근 카다피 정권 붕괴 후 리비아에서 IS,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이 발호하자 리비아가 이집트에게 IS 진압 지원 등의 도움을 청하면서 이전보다는 많이 가까워진 편..
- 이집트 vs 수단,남수단,에티오피아 : 이집트가 나일강 하류에 아스완 하이 댐 (Aswan High Dam)을 짓자 이집트보다 상류가 있는 국가인 수단, 남수단, 에티오피아 국가들은 물 문제로 각 이집트 대사관을 짱돌과 화염병으로 공격했고 비난 성명을 낸 상태.
- 이집트 vs 수단 : 이쪽도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앙숙. 고대 이집트와 누비아 시절부터 싸워댔으며 이집트가 누비아를 복속시켰던 적도 있었지만 이집트가 약해지자 누비아가 역으로 이집트를 정복하고 누비아 왕이 이집트 파라오를 겸한 적도 있다. 근대에는 이집트의 무함마드 알리가 수단을 정복하고 마흐디가 이집트에 저항하기도 했으며 둘다 영국 식민지가 되었는데 명목상 이집트는 영국의 보호령이었고 수단은 이집트와 영국의 공동통치지역이었다. 또 영국 식민지 시절 할라이브가 이집트의 영토가 됐다가 수단의 영토가 된 역사가 있는데 이 때문에 이집트와 수단이 할라이브를 놓고 영토 분쟁을 하는 과정에서 식민지 시절 서로가 할라이브와 맞바꾼 비르 타윌이 무주지로 남겨지게 되었다.
- 모로코 VS 알제리 : 알제리와 모로코는 영토 문제, 서사하라 문제로 갈등도 있고 국경에서 총격전도 치룬 바 있다. 더불어 지금도 알제리는 모로코에 저항하는 서사하라 독립군들을 지원하며 서사하라 망명정부를 받아주기에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 모잠비크 VS 말라위 : 모잠비크는 과거 1960-70년대 포르투갈 식민지였을 때 이웃나라였던 말라위가 포르투갈이 모잠비크의 독립 운동 억압, 진압하는 것을 지원한 역사가 있어 말라위에 대한 감정이 매우 안 좋다.
- 에리트레아 VS 에티오피아 : 에리트레아는 이탈리아와 에티오피아의 식민 통치를 경험했으며 반세기에 걸친 독립전쟁 끝에 독립을 성취했다. 그 뒤로 심심하면 서로 폭격과 포격을 주고받는 사이. 심지어 국경, 영공까지 폐쇄할 정도로 두 나라는 얼굴도 안 돌아볼 정도로 가히 앙숙.
7 오세아니아
- 오스트레일리아 VS 뉴질랜드 : 국가 대부분이 섬나라로 이루어진 영향 때문에 해당 사항에 거의 없으며 그나마 이것 정도이긴 한데(...) 이 두 나라 사람들은 사석에서는 상대국을 무시무시하게 조롱, 농담따먹기, 폭풍 디스질해가면서 까고 논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술좌석에서나 어울리는 농담일 뿐이고, 정말로 정치적인 비난이나 상대국에 대한 증오심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호주인은 뉴질랜드를 양떼밖에 없는 촌동네[50]라고 여기며, 뉴질랜드인은 호주인을 술에 쩔은 얼간이정도로 본다. 간혹 외국인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몰라서 혹시 사이가 나쁜 것 아닌가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자기네들끼리 낄낄대는 수준으로 막상 상대국 국민을 만나면 잘 지낸다. 이런 점에서 미국-캐나다와의 관계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더 사이가 좋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웃나라/좋은 사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다만, 이웃나라들이 다 그렇듯 스포츠 특히 럭비에 있어서는 상당히 경쟁심이 치열한 편(...).
- 참고로 호주에서는 뉴질랜드를 침략하자!(Invade New Zealand)
일본을 공격한다는 내용의 TV 광고를 내보낸 적이 있다.유튜브 뉴질랜드의 군사력이 호주보다 약한 것을 까면서 놀리는 내용인데, 호주인이건 뉴질랜드인이건 누구나 농담으로 여기지 이 광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뉴질랜드인이 대인배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원래 이들은 서로서로 이렇게 까면서 논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만약 일본에서 한국을 침략하자 또는 한국에서 일본을 침략하자는 내용의 TV 광고가 나온다면 어찌될지 한 번 상상해 보자(...).헬게이트가 열리는 거지 뭐
- 파푸아뉴기니 VS 피지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때 파푸아뉴기니의 부건빌 섬의 독립 문제를 두고 피지와 대립을 한 적도 있었다. 몇몇 피지 주민(용병으로 추정)들이 몰래 불법으로 들어와서 부건빌 섬의 분리주의자들을 도와주었다는 것이 밝혀지자 2005년 11월부터 긴장 관계에 놓여있기도 했다.
- 키리바시 VS 투발루 : 영국 식민지 시절 때는 엘리스길버트 제도로 통합되어있었으나 투표를 통해 1978년 투발루가 독립, 1979년에는 키리바시로 분리독립이 되었다. 같이 있었던 시절에는 그다지 서로 좋은 관계는 아니었고, 독립 이후 해양 국경 문제가 2012년까지 있었으나 2012년 8월 29일, 각각의 지도자들이 바다 경계에 대한 문제를 해결했고 서명함으로써 그래도 어느 정도 나아진 셈.[1] 게다가 둘 다 해수면 상승 및 해일 등의 자연재해를 겪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문제도 해결하려는 모습도 조금씩 보이는 듯하다.
8 두 대륙간
- 그리스 VS 터키 : 비잔티움 제국 몰락을 전후로 지배-피지배 관계가 역전되어 민족적 앙금이 굉장히 깊다. 터키 공화국 출범 당시엔 역사적 보복이랍시고 그리스군이 터키 본토까지 쳐들어가 전쟁을 벌인 적도 있다. 이런 역사적 원한의 골이 너무 깊어 TV에 그 국가 사람만 나와도 토마토를 던질 정도라고. 두 나라 정부는 서로 같은 NATO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가상 적국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실제로 지중해의 섬나라인 키프로스에서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51][52] 그리고 요즘도 유튜브에는 터키 vs 그리스 전투기들의 도그파이트 영상들이 올라온다.[53] 그리스-터키 관계 항목 참고.
- 러시아 VS 미국 : 러시아 극동의 추코트 반도와 알래스카가 베링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55] 특히 냉전 당시 소련의 주축이었던 러시아와 자유진영의 대장 노릇을 했던 미국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미러관계 참고.
- 러시아 VS 일본 : 러시아의 사할린과 쿠릴 열도, 일본의 홋카이도가 각각 라페루즈 해협과 네무로 해협을 끼고 있다. 200년이 넘어가는 역사적인 숙적 관계다. 러일전쟁과 쿠릴 열도 분쟁으로 설명 끝. 최근 일본 우경화와 군사대국화가 러시아에게 위협적이다. 쿠릴 열도 분쟁에서 러시아가 불리해 질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가장 원한관계가 없는 편에 똑같이 일본을 숙적으로 둔 대한민국과 군사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 러시아 VS 조지아 : 2004년 민주혁명으로 조지아에 친미파인 사카슈빌리 정권이 들어서면서 친미정책과 NATO 가입을 추구하면서 러시아와 갈등이 불거져 결국 2008년 8월에는 전쟁까지 일어나 버렸다. 조지아의 자치공화국인 남오세티아가 독립을 선언하자 이를 막기위해 조지아군이 남오세티아를 침공하여 점령하였으나 하필 상대를 잘못 만나버렸다. 결국에는 러시아군이 쳐들어와서 조지아를 5일만에 박살내버렸다.[56] 이 문제는 대한민국의 TV 프로그램인 미녀들의 수다에서 양국 미녀간의 설전으로 이어질 정도.
- 러시아 VS 중국 : 러시아는 중국과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 쪽도 청나라때부터 충돌한 역사적인 숙적으로 냉전 당시엔 공산권의 패권을 두고 다퉜고 국경분쟁도 있었다. 그리고 현재도 연해주가 큰 떡밥이 되며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었으나 양국의 주적인 미국,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협력하는 중이라 복잡한 관계다. 더 자세한 것은 러시아 VS 중국 참고. 소련은 중국과 분쟁 이후 장제스가 끊어놓은 중화민국과의 비공식 관계를 복원했고 현재도 유지 중이다. 그나마 중국계 중 쑨원 덕에 중화민국이 제일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중화민국 총통인 장징궈는 부인이 러시아인이라서 소련과 공동의 적 중국 제압을 목표로 가깝게 지냈다.
- 프랑스 VS 알제리[57] : 이슬람 국가 vs 기독교 국가. 알제리는 본래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나 알제리 전쟁을 통해 프랑스로부터 독립했고 프랑스는 그 와정에서 독립군, 민간인 할 것 없이 수많은 알제리 양민들을 학살했다. 그 때문에 알제리인들은 프랑스에 대한 반감이 몹시 심하고 프랑스인들을 공공연히 배척하고 있다.
- 동티모르 VS 오스트레일리아 : 원래는 오스트레일리아가 동티모르 독립시에 각종 인프라를 구축해주어 좋은 관계였다. 그러나 그 인프라에 오스트레일리아는 동티모르의 석유자원을 꿀꺽하려고 도청장치를 설치했다! 동티모르 정부 청사에서 도청장치가 발견되고, 즉각 동티모르 정부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변호사를 고용하여 국제사법재판소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자국에 대한 내정간섭 행위를 제소하였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는 적반하장으로 증인을 감금하고 해당 변호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관련 문서를 압수하는 등 수사를 적극적으로 방해했다. 당연히 두 나라의 외교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으며, 동티모르도 더 이상 오스트레일리아에 호의는 없다는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
9 관련 항목
- ↑ 아프리카 탭에 나오는 모로코-알제리 관계. 왼쪽이 모로코 국왕 모하메드 6세, 오른쪽이 알제리 대통령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 ↑ 현재는 물론 냉전시절에도 마찰이 없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제1공화국시절엔 독립 직후인 탓도 있고 해서 양국간에 정상적인 왕래조차 불가능했고, 박정희 대통령 재임 때에도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 이후로 일본과 단교를 고려할 정도로 그 사이가 나쁘기도 했다
- ↑ 중국대표권 분쟁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유엔내 중국대표권 획득에 반대했다.
- ↑ 실제로 중일수교 이후 중국 측에서 중국내 진출한 일본기업이 한국과 교류하는 것을 금지해서, 한국기업이 피를 많이 봤다.
- ↑ 영국-프랑스는 군사적으로 우방국이고 서로 합동훈련도 자주하기는 하는데, 미국/영국이 설치는 꼴을 보기 싫다고 꽤 오랜 기간 프랑스는 NATO에서 탈퇴한 상태였다. 하지만 NATO 통합군에서만 탈퇴한 것이었고, 1995년에는 군사위원회에 복귀, 2009년 통합군에도 정회원으로 복귀했다. 사실 프랑스는 전통적인 강국이었지만 최근 수십년들어 영향력이 약해지고 신흥강자 미국이 들어선데에 대한 반감이 없지않아 있는 편이다.
- ↑ 단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서로 반대편에 서서 전쟁했던 것은 아니고, 영국과 프랑스는 오히려 같은 편이었다.
- ↑ 색슨=작센
- ↑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이 이것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 독일이 프랑스 땅을 강탈해 생긴 일을 다루고있다.
- ↑ 한편 자를란트 역시 프랑스와 독일의 영향이 같이 미치던 곳이었다. 1959년 독일에 편입하기 전까지 자를란트의 화폐에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병기되기도 했다.
- ↑ 서독의 초대 수상 콘라트 아데나워가 대표적인 친프랑스 인사였다. 이 양반은 서독 수립 이전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때도 원체 친프랑스적인 행보를 보여서 1차대전 패배 이후 프랑스에 대한 원한이 뼛속 깊이 사묻혀있던 대다수 독일인들에게 매국노라는 비난까지 들었을 정도.
- ↑ 말레이시아어와 인도네시아어는 언어학적으로 보면 동일한 언어의 방언에 해당한다. 마인어 참고.
- ↑ 탈퇴와 관련된 규정이 따로 없어서 당시 UN의 골치를 썩혔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거기에 탈퇴한 것으로 쳐도 인도네시아가 재가입을 하게 되면 신규가입 절차를 밟아야 하니 이 또한 귀찮은 문제였기에 UN은 인도네시아가 복귀하자 그동안 탈퇴한 것이 아니라 출석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하였다. 이로서 재가입 절차도 치룰 필요가 없고 굳이 탈퇴에 대한 규정을 새로 만들 필요도 없게 되어 유야무야 넘어갔다. - ↑ 2005년부터 5년간, 말레이시아에서는 29,759명의 이민법 위반자가 태형에 처해졌으며 그 중 60%가 인도네시아인이다.
- ↑ 2003년 태국의 유명인사가 앙코르와트를 태국의 문화재라고 발언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 ↑ 물론 중국은 이를 자국 역사로 간주하지만(…).
- ↑ 물론 후금은 만몽연합정권의 성격을 띄기 때문에 한족 입장에서는 유목민족 지배기 시즌2(...). 그리고 제일 원흉(...)인 만주족은 조용히 버로우탔다(...).
- ↑ 사실 중국이 외몽골을 독립국가로 놔둔 것도 국공내전 당시 외몽골 공산당이 공산당을 지원한 덕택이다. 그 때문에 대만은 지금도 외몽골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 ↑ 그런데 사실 몽골은 중국 내몽골의 몽골인들을 몽골 사람으로 생각 안하고 중국 한족만큼이나 더 싫어한다(...)
동족혐오 돋네참고로 칭기즈칸의 일족에 가까운건 내몽골쪽이다. - ↑ 속칭 몽골말로 하면 돼지새끼.
- ↑ 이는 미국이 이라크에 생화학무기가 있다고 주장한 가장 강력한 근거 중 하나였으나, 다 때려부순 뒤 찾아보니 결국 발견되지 않아 아랍인들의 혈압 상승에만 크게 일조하고 말았다.
- ↑ 실제로 광동은 중국의 정치지형 변화의 근원지로 손 꼽힌다. 쑨원도 광동인이다. 그리고 광동은 베이징 등 북중국 위주의 현 중화인민공화국을 무작정 따라가기에는 너무 이질적이다. 말도 생김새도 너무 확연히 다르다.
- ↑ 거기다 중국인의 이민은 일체 금지되어 있다.
- ↑ 실제로 1990년대 후반 파키스탄은 개판이 된 아프간을 파키스탄의 괴뢰국가로 만들기 위해 정보부 ISI를 시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정권 장악을 지원한 적이 있었다. 괜히 블랙 옵스 2같은 게임에서 ISI가 악역으로 나온 게 아닌 셈.
- ↑ 하지만 현재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일대에서 탈레반 등이 일으키는 테러와 민간인 학살, 내란 등에는 1990년대 말 탈레반의 아프간 정권 장악을 지원 및 방조한 파키스탄 쪽에도 잘못이 매우 많이 있다.
- ↑ EU에 가입되어 있으므로 유럽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 ↑ 그리스는 헬라족, 불가리아는 남슬라브족과 남슬라브족에 동화된 튀르크인의 후손이다. 같은 백인 인도 유럽 민족에 이웃한 나라들임에도 민족, 언어적인 차이가 있다.
- ↑ 물론 불가리아는 추축국이긴 했으나 대전 기간 내내 독일에 의해 억지로 끌려가는 등 가해국으로 보기에는 다소 애매하다.자세한건 추축국, 상임이사국 항목 참고.
- ↑ 2차 대전 당시 스웨덴은 중립노선을 유지하여 나치의 침공을 면하였지만 노르웨이는 덴마크에 이어 나치의 침공을 받았다.
- ↑ 사실 마르타와 당시 스웨덴 국왕이었던 구스타프 5세는 조카로 그리 가까운 관계도 아니었기에 국왕 역시 이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노르웨이 왕실을 보호해주면 나치 독일이 스웨덴마저 침공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녀를 꺼렸다고 한다.
- ↑ 특히 표준독일어보다는 저지독일어
- ↑ 원래 네움 등 보스니아 남부 해안가 지역은 크로아티아의 영토였는데 두 나라가 유고슬라비아였을 당시 티토 유고 대통령이 이 지역을 보스니아에게 할양하면서 국경이 이상해졌다.
- ↑ 크로아티아는 가톨릭, 보스니아는 이슬람.
- ↑ 2009년에 유럽연합에 회원국 가입 신청서도 내고 2012년 후보국 지위도 받았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다..
- ↑ 그래도 세르비아는 아이티보다는 좀 낫다..
- ↑ 둘 다 가톨릭 국가이기도 하다.
- ↑ 이 때문에 슬로베니아는 '우리나라에도 블레드 호수같은 아름다운 명소들 많아요. 크로아티아놈들의 스플리트나 두브로브니크, 플리트비체 국립공원보다 훨씬 나아요!'라며 크로아티아를 비방, 공격하는 등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 홍보를 하고 있다. 크로아티아도 이에 뒤질세라 사악한 슬로베니아놈들의 혹세무민에 넘어가지 마세요. 우리 크로아티아에 자주 놀러오세요!'라고 맞선다.
- ↑ 예로 작곡가 바르톡의 출생지는 현재의 루마니아에 있다.
- ↑ 단적으로 스페인의 공식 언어 중 하나인 북서부 지방의 갈리시아어는 포르투갈어의 직계 조상인 반면 주류 스페인어인 카스티야어와는 별로 연관이 없다.
- ↑ 말이 좋아 아라곤 왕국이지, 애초에 아라곤 지방은 바위산으로 뒤덮힌 별로 영양가 없는 땅이라 늦어도 12세기 후반 부터 아라곤의 수도 사라고사는 대관식만 치루는 곳이고, 실제로 국력을 창출하는 부와 인구의 핵심은 지중해 교역망의 서부 관문 역할을 했던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 발렌시아 일대였다
- ↑ 대기근 이전의 아일랜드 인구는 900만 명이었는데, 15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남북 아일랜드 인구 합쳐봐야 600만 명 정도니 말 다했다(...)
- ↑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무릎을 꿇었다. 정확히는 비 오는 날에 바르샤바 봉기 기념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몇 시간 동안 참배했다. 이를 계기로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ostpolitik)이 탄력을 받았고, 나아가 독일 통일의 주춧돌까지 놓게 되었다.
- ↑ 보통 동프로이센(Ostpreußen)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종전 이후 재편된 현재 폴란드 영토를 구성하는 16개주 중 과반수인 9개에 달한다! 물론 원래 폴란드 땅이던 곳도 많고 더 오래전에는 전부 슬라브인 땅이었지만...
- ↑ 모스크바까지 먹힌 적이 있다. 물론 얼마 안 가 러시아가 재탈환하지만.
- ↑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체코전에서 훌리건들이 안전요원을 집단 폭행해서 징계를 받았다(...).
- ↑ 우크라이나 영토를 흐르는 드네프르 강의 동부는 러시아어를 쓰는 친러시아 성향이고 서부는 우크라이나어를 쓰며 독립 성향이 강하다. 이 갈등을 유발한 게 바로 니키타 흐루쇼프. 흐루쇼프는 우크라이나 사람이라 그 지역에 인심 쓰느라(…) 러시아인이 많은 지역까지 떼줬다.
- ↑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때 친서방계 후보였던 빅토르 유셴코(이 대선에서 대통령 당선)와 친러계 후보였던 빅토르 야누코비치와 그들의 지지자들 간의 갈등이 결국 오렌지 혁명으로까지 이어졌다.
- ↑ 물론 종족들의 구역을 무시하고 자기들 편의에 의해 획정한 것도 있지만, 종교의 경우 분열 정책을 써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종교와 민족을 초월해 단결해서 영국을 물리치자는 마흐디 운동을 진압한 후, 영국은 수단 통치 때 철저한 분열 정책으로 남북이 서로 다르다는 인식을 심었다.
- ↑ 유엔과 국제사회의 여러 국가들은 남아공의 나미비아 지배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나미비아를 남아공의 정식 영토로 인정하지 않았다.
- ↑ 애당초 남아공이 나미비아를 지배했을 당시 남아공의 권력층들이 백인 세력이었으니..
- ↑ 호주에는 뉴질랜드와 양에 관한 농담이 수백개도 넘는다.
- ↑ 키프로스는 두 나라 때문에 두 동강이 난 상태다. 1974년 키프로스의 독립 선언에 터키가 터키계를 보호하겠다고 그리스와 3일 동안 치고받고 싸웠으며 그 결과 터키계가 중심으로 된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이 형성되었다. 이 문제는 터키의 EU 가입에 발목을 잡고 있다. 북키프로스는 터키 정부만 승인하였고, 남키프로스는 EU는 물론 여타 다른 나라에서도 정식으로 인정하는 나라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키프로스는 정확하게 세 동강이 나 있다. 남, 북, 그리고 그 사이에 영국군 기지가 자리하고 있다.
- ↑ 사실 터키의 EU 가입 문제는 키프로스 문제보다는 터키의 국력과 지리적,종교적인 문제가 가입을 가로막고 있는게 진짜 원인이다.일단 인구 문제에서만 보아도 터키의 인구 7400만이 넘어 EU에 가입할 시 인구 비례로 뽑는 유럽연합 의회에 터키인들이 다수 대거 진출하여 EU의 주도권이 뒤집혀질 가능성이 크고 EU에 가입한 다른 유럽 나라들과 달리 지리적으로 약 3%만 유럽에 있고 수도 앙카라등 나머지는 대부분 아시아 쪽에 있어 유럽국가냐 아시아 국가냐 하는 논쟁이 있기도 한데 자세한건 유럽연합 항목 참고
- ↑ 물론 무장은 사용하지 않고 꼬리잡고 락온만 한다. 하지만 명백한 영공 침해일 경우 진짜로 날려버릴 때도 있다.
- ↑ 터키의 유럽 영토와 아시아 영토 양쪽으로 육지,해양 국경을 맞대고 있는 그리스와 달리 이 쪽은 터키의 유럽 영토로만 육지 국경을 맞대고 있어 두 대륙 이상 걸침에 넣기엔 조금 애매한 감도 있다.
- ↑ 알래스카는 괌이나 사이판, 미국령 사모아 같은 해외영토 자치령과 달리 엄연히 미국의 50주 중 하나이기 때문에 월경지이긴 해도 미국의 다른 주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진짜로 이웃나라 맞다.
- ↑ 이탈리아 AC 밀란 소속 선수 칼라제는 조지아인으로 시즌 중 징집(!) 당했다. 지금은 은퇴하고 부총리로 선임되었다.
- ↑ 이 두 나라를 이웃나라로 보기엔 좀 거리가 멀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두 나라는 지중해만 건너면 바로 마주보고 있고 그 거리도 가까운 편이다(부산에서 오사카 정도 거리이다). 그리고 알제리와 이탈리아 사이의 거리(알제리 동북부에서 사르데냐 섬까지의 거리), 알제리 서북부지방과 스페인 사이의 거리를 보면 훨씬 더 가까워서 논란의 여지없이 그냥 이웃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