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학교 출신인물 | ||
육군사관학교/출신 인물 | 해군사관학교/출신 인물 | 공군사관학교/출신 인물 |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유명 인물들을 정리한 항목입니다. 본 항목은 기수별로 정리되었습니다.
목차
- 1 1기
- 2 2기
- 3 3기
- 4 4기
- 5 5기
- 6 6기
- 7 7기
- 8 8기
- 9 9기
- 10 10기(생도1기)
- 11 11기
- 12 12기
- 13 13기
- 14 14기
- 15 15기
- 16 16기
- 17 17기
- 18 18기
- 19 19기
- 20 20기
- 21 21기
- 22 22기
- 23 23기
- 24 24기
- 25 25기
- 26 26기
- 27 27기
- 28 28기
- 29 29기
- 30 30기
- 31 31기
- 32 32기
- 33 33기
- 34 34기
- 35 35기
- 36 36기
- 37 37기
- 38 38기
- 39 39기
- 40 40기
- 41 41기
- 42 42기
- 43 43기
- 44 44기
- 45 45기
- 46 46기
- 47 47기
- 48 48기
- 49 49기
- 50 50기
- 51 51기
- 52 52기
- 53 53기
- 54 54기
- 55 55기
- 56 56기
- 57 57기
- 58 58기
- 59 59기
- 60 60기
- 61 61기
- 62 62기
- 63 63기
- 64 64기
- 65 65기
- 66 66기
- 67 67기
- 68 68기
- 69 69기
- 70 70기
- 71 71기
- 72 72기
- 73 73기
- 74 74기
- 75 75기
- 76 76기
1 1기
2 2기
- 권오태
- 김재규 : 10.26 사건을 일으킨 바로 그 사람이 맞다.
- 문형태
- 박경원
- 박정희 : 전 대통령(5~9대) 10.26 사건으로 사망.
- 박재열
- 심흥선
- 이백일
- 이세호
- 이소동
- 전부일
- 조재미
- 최영두(1923)
- 한신
3 3기
4 4기
- 김종환 : 12.12 군사반란 당시 합동참모의장
- 조시형
- 황인성
5 5기
6 6기
- 1928년 함흥 출생으로 1946년에 월남하여 군인이 됐고, 67년에 거의 막차로 준장으로 진급했다.
- 3사단장 시절 휘하 장병들이 DMZ 표지판 보수작업 중 북한의 사격으로 중상을 당하자 박정인 장군은 이에 엄중히 경고를 했다. 그러나 북한이 듣지 않자 사단포병을 동원하여 포를 발사했고, 표지판 근처에 백린탄을 퍼부어 대원들을 구출했다. 또한 사단 내의 모든 트럭을 동원하여 헤드라이트를 켜고 왔다갔다하여 북한을 겁먹게 하였다. 이산가족 평양방문단원이 평양에 방문했는데 북한 노동당 정치보위부의 고위간부가 찾아왔다. 그는 “함경남도 신흥군 출신의 박가 성을 가진 요란한 사단장 요즘 뭘 하오?”라며 원한이 서린 표정으로 질문했다.
평양방문단원 오줌 지렸을 듯그만큼 북한이 무서워하는 맹장이다. 그 당시 포 1발이 북한군 막사에 강타하여 30여명이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박정인 장군은 보직해임를 당하였고, 육본에서 무보직으로 5개월 있다가 전역하였다.[1] 1998년 1월에 박정인 장군의 아내가 신장투석으로 투병하다가 향년 68세로 별세했고, 2016년 2월 3일에는 박정인 장군도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3대가 육군 장교인 집안으로 장남 박홍건 예비역 대령(육사 31기)과 쌍둥이 손자 중 장손 박선욱 현역 대위(육사 64기. 현재 3사단 복무 중)가 있고, 박 대위의 쌍둥이 동생도 현직 회계사지만 병역은 육군 장교로 마쳤다.
참고로 MBC 문화방송 제5공화국 드라마에서 특전사령관 정병주 장군이 육사6기[2]라고 나오지만 잘못된 것이며, 정 장군은 육사 9기다.
7 7기
- 고정훈
- 김영선
- 류병현 : 주미대사.
- 오용운
- 이건영
- 이병옥
- 권영길 : 중앙정보부 감찰실장. 육군첩보부대(HID)장. 2011년 별세.
- 윤태일
- 정래혁
- 최영구 : 예비역 중장. 2014년 별세. 향년 89세.
- 이건영 : 예비역 중장. 12.12 군사반란 당시 3군사령관.
- 이대용 : 주월공사.
8 8기
- 강창성
- 길재호
- 길전식
- 김상년
- 김동환
- 김종필 :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사람이자
원조 만년 콩라인 - 김종호
- 김형욱
- 류승원
- 정무식
- 백석주
- 서상린
- 안병하
- 안춘생
- 오치성
- 오학진
- 윤필용 : 예비역 소장. 일명 '윤필용 사건'의 핵심 인물.
- 이범준
- 이병희
- 이석제
- 이종근
- 이희성
- 정진권
- 조창대
- 조철권
- 진종채
- 차규헌 :12.12 군사반란 핵심 참여자
- 채영철
- 홍종철
9 9기
- 강상욱
- 김진기 : 12.12 군사반란 당시 육본 헌병감
- 류범수
- 정병주 : 12.12 군사반란 당시 특전사령관
- 윤성민 : 12.12 군사반란 당시 육참차장. 육군참모총장이 납치된 상황에서 진압군의 총 책임자였다.
- 최명헌
- 하중원 : 故 하일성의 부친으로 유명하다.
10 10기(생도1기)
- 김윤호 : 1군단장, 합참의장 역임. 2013년 향년 84세로 별세.
- 소준열 : 육군종합행정학교장, 육군교육사령관, 1군 사령관 역임. 2004년 향년 75세로 별세.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윤흥정 전남북 계엄사령관을 대체해 진압을 지휘했다.
- 양창식
- 이상익
- 황영시 : 12.12 군사반란 당시 핵심 참여자. 경북 영주 출신으로 1군단장, 육군참모차장, 육군참모총장 역임. 감사원장 역임.
10.1 생도2기
11 11기
이 기수부터 육군사관학교는 4년제가 된다. 당시 설치 장소는 진해. 1951년에 입학해 1955년에 임관했다.
- 권익현
- 김복동 : 육사 교장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전역하였다. 2000년에 향년 68세로 별세하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손윗처남이다. 즉, 김옥숙 여사의 오빠.
- 김성진(1931년 11월)
- 김식(1933)
- 노태우: 전 대통령(13대), 반란군 수괴
- 12.12 군사반란 당시 핵심 주동자.
- 1955년 졸업과 동시에 보병 병과 소위로 임관, 1981년에 대장까지 진급 후 같은 해 전역했다. 생도 시절 100m 달리기를 11초에 주파할 정도로 빨랐기 때문에 별명이 '태릉 타잔'이었다. 또한 영어도 매우 잘하여 영어시험은 항상 100점이었다고 한다[3]. 그래서 그는 나중에 임관 후 대위였던 1960년에 '군사정보대 영어번역장교'란 보직을 거치기도 했다.
- 12.12 군사반란 당시 핵심 주동자.
- 1955년 졸업과 동시에 병과 소위로 임관, 1980년에 대장까지 진급 후 같은 해 전역했다. 본인이 직접 밝힌 바로는, 사실 육사의 1차 합격자 발표엔 끼지 못했고 한 달뒤 결원이 생기면 집어넣는 보충생으로 들어갔다고 한다(1990년 1월 1일 백담사에서 측근들에게). #
그렇게 들어가서 대통령까지 됐다생도 시절 그는 땜장이(대구공고) 출신이었기 때문에 학창시절에 영어를 충분히 배우지 못해서 육사 입교 초기에는 영어시험 성적이 항상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 당시는 6.25전쟁 때라서 성적 미달로 퇴교당하면 곧바로 사병으로 전방에 투입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전두환 입장에서는 매우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모든 생도들이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훈련을 받는 사관학교의 특성상 깨어있는 시간에 따로 짬을 내어 공부를 할 여력도 없었다. 고민 끝에 그는 다른 생도들보다 잠을 줄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고, 타 생도들이 곤하게 잠든 새벽 3시에 몰래 내무반을 빠져나와 판초우의와 영어 책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그러고는 화장실 바닥에 우의를 깔고 희미한 30촉 백열등 아래서 부족한 영어를 공부한 다음 기상 10분 전인 5시 50분에 몰래 내무반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니 타 생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좋아하여 생도가 되고 나서도 축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했다. 포지션이 골키퍼였다고.
- 정호용 : 12.12 군사반란 당시 핵심 참여자. 하나회의 연락을 받고 당시 지휘관으로 있던 50사단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막상 본인은 대구에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 백운택 : 12.12 군사반란 당시 핵심 참여자. 1982년 1군단장 재직 중 사망.
12 12기
1952년에 입학해 1956년에 임관했다.
- 박세직 : 아래의 박준병, 박희도와 더불어 일명 '쓰리박' 중 한명.
- 박준병 : 12.12 군사반란 당시 핵심 참여자.
- 박희도 : 12.12 군사반란 당시 핵심 참여자. 가장 먼저 1공수여단을 동원해 육본, 국방부를 점령했다.
- 장기오 : 12.12 군사반란 당시 핵심 참여자.
- 안필준
- 한철수
13 13기
1953년에 입학해 1957년에 임관했다.
- 민태구
- 오한구
- 이우재
- 정동호 : 12.12 군사반란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 직무대리. 반란군 측 지휘를 받아 총리공관 무력화에 동조했다.
- 정진태
- 최세창 : 12.12 군사반란 당시 핵심 참여자. 부하들을 동원해 직속상관인 정병주 사령관을 체포했다.
- 우경윤 : 12.12 당시 정총장을 납치했던 사람 중의 하나로서 정승화 총장을 납치하던 중 같은편의 오인사격으로 피격당하여 하반신 마비장애를 갖게 되었다.
- 임동원 : 예비역 육군 소장.김대중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하였다.군인과 외교관,정치인을 넘나드는
- 다양한 직위를 수행하기도 하였다.2000년 8월 신동아 기사
14 14기
1954년에 입학해 1958년에 임관했다.
15 15기
1955년에 입학해 1959년에 임관했다.
- 고명승 : 12.12 당시 대통령경호실 작전담당관이었고, 87년 6.29 때는 보안사령관이었다. 그리고 89년 제3야전군사령관을 끝으로 대장에서 예편하였으며, 12대 성우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 권영해 : 93년 하나회 해체 당시 국방차관
- 권정달 : 12.12 군사반란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
- 김상구
- 나중배
- 이진삼 : 전 육군참모총장, 전 국회의원
- 2010년 4월 30일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있었던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 회의당시, 군번줄 발언과 경례 비난
딱! 못해?으로 구설수에 올라 유명해졌다. 그는 이 바로 다음 총선에서 한참 후배인 김근태 예비역 대장에게 밀려 재선에 실패했다.똥별의 프라이드! 상징! 심볼!
- 민병돈 : 1935년생으로 중학생시절 북한 인민군 학도병으로 끌려갈 뻔했지만 그를 아끼는 국어선생님이 심부름을 시켜 그 길로 빠져나온 적이 있다. 민 장군은 비록 하나회 명단에 있긴 하지만 올곧은 인물이었다. 1960년 부정선거 당시 소대장이었는데 소대원들에게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자유투표를 하라고 하였고, 1985년 20사단장 때 총선시즌이었는데 그 때도 부대원들에게 그렇게 말하였다.
실제로 85총선 사실상 패배때문에 청와대로 불려가서 일해거사에게 쪼인트를 까였다.그리고 1987년 6.29 때 특전사령관이었는데 시민들을 진압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4] 1989년 육사 교장을 끝으로 중장에서 전역하였으며, 현재는 칼럼을 쓰고, 저술 및 집필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계신다. 여담으로 육사 교장 당시 연설이 끝나고 노태우 대통령에게 경례를 생략하는 것으로 북방정책 등에 항의를 표시했던 사건이 유명하다. 이 사건으로 며칠 후 사임, 곧 예편했다.
16 16기
1956년에 입학해 1960년에 임관했다.
17 17기
1957년에 입학해 1961년에 임관했다.
- 김동진
- 김연각
- 김용갑 : 전 국회의원, 하나회와의 친분은 있었지만 하나회에 가입하지는 않았다. 대신 전두환 정권에서 민정수석을 지냈다.
- 김진영 : 12.12 군사반란 당시 33경비단장으로 장세동 30경비단장과 더불어 직속상관인 장태완 사령관을 배신했었다.
- 안현태 : 하나회 참여자로 전두환 대통령의 재임 시절 마지막 경호실장. 2011년 사망하자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논란이 됐다.
- 이문석
- 임복진
- 정선호
- 허삼수 : 12.12 군사반란 당시 보안사 인사처장. 정승화 육참총장 연행을 주도했다.
- 허화평 : 12.12 군사반란 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김진영 장군은 1991년부터 1993년까지 29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고 김동진 장군은 1993년부터 1994년까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당시 하나회 사건으로 스타들이 대량으로 날아간 탓에 생긴 일이었다. 31기, 34기에서도 참모총장이 두 명 배출되었다.
18 18기
1958년에 입학해 1962년에 임관했다.
- 구창회 : 12.12 군사반란 당시 9사단 참모장. 당시 사단장인 노태우의 명령을 따라 불법으로 병력을 서울로 출동시켰다. 3군 사령관을 끝으로 대장에서 전역하였다.
- 김재창
- 박흥주 :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수행비서. 10.26 사건 당시 현역 육군 대령이었기 때문에 군사법원 단심 재판으로 사형에 처해졌다.
- 오명
- 이학봉 : 12.12 군사반란 당시 보안사 수사과장. 5공화국 성립 전까지 왠만한 중요 인사들의 수사, 고문을 담당했다.
- 장성
- 조남풍 : 1군 사령관을 역임하였으나 하나회 소속이었기 때문에 김영삼 정권 때 숙청당했다. 재향군인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나 그에 대한 안 좋은 문제가 불거져 회장직에서 쫓겨났다.
- 편장원
- 최창윤
- 김정헌 : 육사 교장을 역임한 후 93년 11월 중장으로 전역하였다. 2004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재판이 기각되자 시국을 걱정하며 고민하다가 자살하였다. 향년 65세.
합참의장, 육참총장 모두 매출하지 못한 기수이다. 35기도 마찬가지 이유는 노태우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던 하나회 출신의 선두 주자들 (구창회, 조남풍, 김재창)이 합참의장과 육참총장을 눈 앞에 둔 때에 김영삼의 하나회 대숙청을 만나 군에서 쫓겨났기 때문.
19 19기
1959년에 입학해 1963년에 임관했다.
20 20기
1960년에 입학해 1964년에 임관했다.
21 21기
1961년에 입학해 1965년에 임관했다.
- 김척 : 1군단장, 3야전군 부사령관 역임. 아들은 김훈 중위.
- 김동신
- 유재열
- 오연덕
- 이재관
- 최승우 : 예비역 소장으로 17사단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을 역임하는등 승승장구하였으나 하나회소속이었기 때문에 육군교육사령부 참모장이라는 한직으로 밀려난 후 95년 육군본부 정책위원을 끝으로 전역하였다. 2006년 7월 1일부터 2014년 6월 30일까지 2선으로 민선 예산군수를 역임하였다.
- 이충석 : 예비역 소장으로 하나회 출신이다. 합참 회식사건 때 작전부장이었는데 하나회 척결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소란을 피우자 경질당했다.[5] 94년 신동아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그 당시 이충석 장군은 매일같이 군대 꿈을 꾼다고 하였다. 청춘을 다바쳤던 군대에서 예상치 못한 전역에 이르자 충격이 꽤 심했던 듯하다. 최근에는 특전동지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22 22기
1962년에 입학해 1966년에 임관했다.
- 1966년 임관하여 21년차인 1987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23 23기
1963년에 입학해 1967년에 임관했다.
- 1967년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 소장까지 진급해 학생중앙군사학교장을 역임하고 전역했다. 17대 대선에서 기호 9번으로 출마하여 유명해졌다. 물론 최저득표율로 낙선하는 굴욕을 겪었다. 전관 소장이 학군교장으로 재임할 당시에는 근무시간 후에 청바지를 입고 다닐 정도로 개방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24 24기
1964년에 입학해 1968년에 임관했다.
- 김인종 : 2군사령관을 역임하였으며,예편 이후 대통령실 경호처장(현 대통령경호실장)직을 수행하였다.
- 김판규 : 초대 항공작전사령관을 지냈으며,1야전군사령관,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 안주섭
- 이종옥
- 김희상 : 예비역 중장,수도기계화사단장,수도군단장,국방대학교 총장을 지내고,노무현 정부 시절 국방보좌관을 역임하였다.
25 25기
1965년에 입학해 1969년에 임관했다.
- 12,14,15,16,19대 국회의원. 19대 전반기 국회의장.
- 제17,18대 국회의원
- 1969년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 12.12 군사반란때 쿠데타군을 막고자 했던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의 비서실장이었다. 당시 신군부의 일원이었던 3공수여단장 최세창 준장은 전두환의 지시를 받아 휘하의 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 중령에게 무장 병력을 이끌고 정병주 사령관을 체포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특전사령관실에 있던 김오랑 소령은 권총 한 자루로 체포조에 맞섰으나 안타깝게도 반란군에게 6발의 흉탄을 맞고 현장에서 전사했다. 사후 중령으로 추서.
- 31대 합참의장을 지냈다. 육사 4기의 김종환과는 동명이인.
- 36대 육참총장을 지내고 전역한 후 국가정보원장을 지냈다.
- 18대 국회의원.
- 17, 18, 19대 국회의원. 연평도 포격 사태 당시 보온병 사건의 핵심 인물.
사람들은 안상수만 기억한다.
26 26기
1966년에 입학해 1970년에 임관했다.
- 김충배 예)중장, 육군사관학교장 역임.
- 신일순
- 양우천
- 이상희 : 32대 합참의장, 41대 국방장관.
- 한철용 : 예비역 소장으로 8사단장, 국정원 국방보좌관, 정보부대 5679 부대장을 역임하였다. 정우교 준장과 더불어 총각장군으로 유명했다. 94년 12월 준장(진)시절 10살 연하의 추순삼(예비역 대령) 당시 중령과 결혼하였고, 늦둥이 딸이 하나 있다.
27 27기
1967년에 입학해 1971년에 임관했다.
- 1971년 졸업과 동시에 보병 병과 소위로 임관, 2004년에 대장까지 진급 후 2006년 전역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 육군참모총장 → 국방부 장관 → 한나라당 국회의원 →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 →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역임한 인물. 여담으로 국방장관 시절에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함께 제2차 남북 정상회담차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과 악수를 하며 고개를 숙이지 않는
군기 바짝 든군인의 모범이라 할 만한 모습으로 '꼿꼿장수'라 세간에 회자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아들인 김용우 소령이 육사 62기라서 2대에 걸쳐 육사 출신인 집안이다.
28 28기
1968년에 입학해 1972년에 임관했다.
- 김관진 : 43대 국방장관 역임. 약 4년간 국방장관으로 재임했다. 현 청와대 안보실장. 참고로 김관진 장군이 국방장관ᆞ안보실장을 지내면서 대북제제가 생겨나자 북한에서는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과 묶어서 증오하고있다.
김관진이 북한을 싫어해도 북한 놈들은 할 말 없다. - 김병관 : 1군사령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했다. 손자병법의 전문가이자 대표적인 작전통으로 군내 신망이 매우 높았다. 박근혜 정부 첫 국방장관 후보에 올랐으나, 몇몇 이유로 인해 사임하였다. 결과적으로 동기이자 늘 그를 앞서간 김관진 장관이 유임되었다.
- 김종천 : 국방부 차관 역임.
- 박상돈
- 박흥렬 : 현 청와대 경호실장. 38대 육참총장. 먼저 대장 진급했으며 군내 신망이 두터웠던 김관진과 김병관을 꺾고 참모총장이 되었다. 또한 대장 2차 보직인 참모총장을 1차 보직도 없이 참모차장에서 바로 영전하는 대이변을 연출했는데, 이는 당시 국방부장관으로 영전한 김장수 참모총장의 힘이 컸다. 대표적인 김장수 라인으로 꼽힌다.
29 29기
1969년에 입학해 1973년에 임관했다.
- 김태영 : 34대 합참의장. 42대 국방장관.
- 백군기 : 예비역 대장. 특전사령관, 제3야전군사령관 역임. 19대 국회의원.
- 임충빈 : 39대 육참총장.
- 김규석 : 現 국가정보원 3차장. 육군정보통신학교장 역임.
30 30기
1970년에 입학해 1974년에 임관했다.
- 1974년 졸업과 동시에 보병 소위로 임관, 2007년 9월 대장으로 진급해 제1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후 2011년 이임과 동시에 전역했다. 32기인 박정이 예비역 대장이 20사단장에 재임하던 시절 그의 직속상관인 제7기동군단장을 역임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청남도 청양군-부여군 지역구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서 자신보다 15기나 선배인
딱 딱이진삼을 누르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당선무효 판결을 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이근안에게 모진 고문을 받았던 민주화 운동가와는 동명이인.
- 김중로 : 육군 준장 예편. 101여단장, 육군3사관학교 교수부장, 70사단장을 역임하였고,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비례대표 10번으로 출마하였고, 당선되었다.
- 이상의 : 합참의장을 역임하였고, 천안함이 침몰하던 시간에 음주상태여서 논란이 있었다.
- 이성출 :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하였고, 2016년 국민의당으로 입당을 선언하였다.
- 허평환 : 예비역 중장. 최종보직 기무사령관. 육군훈련소장 재임 시절 인분사건으로 경고조치를 받았다. 현재 국민행복당 대표로 있다.
- 백병춘 : 예비역 소장이었다. 충남 논산 강경 출신으로 수도기계화보병사단장, 1군 부사령관, 육군종합군수학교장, 육사 부교장을 역임하였으며, 2011년 6월 암으로 별세하셨다. 향년 62세. 여담으로 기독교를 믿으며, 사모님도 교회 권사님이셨고, 종군교 교장시절 일요일에 영내 교회에 자주 예배보러 오셨었다. 그리고 육사부교장으로 가기 직전 마지막 주일에는 백 장군의 아들 내외도 교회에 오셨었다.
- 이영계 : 예비역 중장.수도방위사령관,교육사령관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전쟁기념관 관장(전쟁기념사업회 회장)이다.
31 31기
1971년에 입학해 1975년에 임관했다.
- 한민구 : 예비역 대장. 40대 육군참모총장, 36대 합동참모의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44대 국방장관.
- 황의돈 : 예비역 대장. 한미연합군 부사령관, 41대 육군참모총장 역임.
- 김영후 : 예비역 중장. 7기동군단장, 병무청장 역임.
- 한기호 : 예비역 중장. 5군단장, 육군교육사령관 역임. 18,19대 국회의원.
- 김영석 : 現 영천시장. 항목은 동명이인
- 박홍건 : 예비역 대령. 철도공사(코레일) 비상계획관. 김일성의 간담을 서늘케 한 유명한 맹장이자 백골부대장인 박정인 장군의 장남이다. 박정인 장군은 2014년 11월 뇌경색으로 쓰러져 중앙보훈병원에 입원 후 투병 중 2016년 2월 3일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박 장군이 투병할 동안 장남인 박홍건 대령은 부인 김순실 여사와 매일같이 간병을 왔다고 한다. 또한 박 대령에겐 쌍둥이 아들이 있는데 장남인 박선욱씨는 육사 64기(04년에 입교, 08년에 소위 임관) 출신으로 현재 할아버지가 부대장으로 있던 백골부대에서 병참병과 육군 대위로 복무 중. 쌍둥이 동생은 현재 회계사로서 육군 장교로 병역을 마쳤다. 즉, 3대가 육사 출신이다.
- 백승도 : 1993년 4월 대령계급으로 교육사령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서울 모 군인아파트 일대에서 하나회 명단을 살포하였다. 31기생 중에서 준장을 1차로 진급하는 등 선두로 달리고 있었으나 소장진급에서 탈락하였다. 당시 남재준 육참총장은 소장진급에서 탈락한 3명[6]을 계룡대 인근의 식당에 불러 위로하였으나 백승도, 최광준 두 명의 준장은 끝내 전역지원서를 제출하였고, 2005년 1월에 전역하였다.
- 최광준 : 아나운서 최지인 씨의 부친이기도 하다. 2004년 하반기 장군 인사 때 당시 남재준 육참총장이 위로차 불렀던 세 명의 준장 중의 한명으로서 2005년 1월에 동기생인 백승도 준장과 함께 전역하였다.
- 김형수 : 연합작전전문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2004년 8월부터 2년간 미 중부사령부의 협조단장으로 있었다. 전역 후에는 예비역 준장 신분으로 육군교육사령부 전투지휘훈련단에서 작전관찰관으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32 32기
1972년에 입학해 1976년에 임관했다.
- 1976년 졸업과 동시에 보병 병과 소위로 임관, 2009년 9월 대장으로 진급해 제3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하고 2010년 12월 제42대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했다. 22개월간의 총장 임기를 끝으로 2012년 10월 한 기수 후배인 조정환 대장이 후임 참모총장에 오르면서 이임과 동시에 전역했다.
- 1976년 졸업과 동시에 보병 병과 소위로 임관, 2010년 6월에 대장으로 진급해 제1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후 2011년 10월 이임과 동시에 전역했다. 2010년 4월 30일 국회 국방위에서 있었던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 회의당시, 자유선진당 이진삼 의원의 '군번줄 발언' 중 인식표를 차고 있다고 손든 몇 안되는 장성으로 유명하다.
- 1976년 졸업과 동시에 보병 병과 소위로 임관, 2009년 9월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1야전군사령관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하고 2011년 10월 제37대 합동참모의장에 취임했다. 24개월간의 의장 임기를 끝으로 2013년 10월 해군참모총장 최윤희 대장이 후임 합참의장에 오르면서 이임과 동시에 전역했다.
- 정승조 장군과 고향 불알친구로서 중학교(전북 백산중), 고등학교(전북 백산고), 대학교(육사)도 동창이다. 정승조 장군과 소장(사단장)까지는 모두 같이 진급하였으나 장종대 장군은 더 이상 진급하지 못하고, 2009년 12월 소장으로 전역하였다. 육군훈련소장, 1군 부사령관을 역임하였다.
- 예비역 중장. 군수사령관, 육군사관학교 교장 역임.[7] 참고로 이봉원을 누르면 개그맨이자 박미선 개그우먼의 남편이 검색된다.
- 예비역 중장.1군단장과 합참 작전본부장을 역임했으며,소장 시절 이라크 자이툰 부대 사단장을 지냈던 적이 있다.
- 육군 역사상 최고의 작전통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천안함 피격사건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재직중이었기 때문에
- 진급을 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책임으로 예편해야만 했다. 여담으로 선친이 교회의 장로셨고, 친형과 친동생이 목사고, 친동생은 군목으로 15년동안 복무하였었다. 전역 후 황중선 장군 본인도 교회장로로 활동하는 듯하다.
33 33기
1973년에 입학해 1977년에 임관했다.
- 1977년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 소장시절 32사단장, 국방부 정책기획관, 대통령 외교안보실 국방비서관을 역임하였으며, 2008년 하반기에 중장으로 진급하여 6군단장, 합참 작전본부장을 역임하고, 2010년 12월 대장으로 진급해 제3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후 2012년 10월 이임과 동시에 전역했다.
- 1977년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 2011년 4월 대장으로 진급해 제2작전사령관을 역임하고 2012년 10월 제43대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했다. 12개월간의 총장 임기를 끝으로 2013년 9월 한 기수 후배인 권오성 대장이 후임 참모총장에 오르면서 이임과 동시에 전역했다.
- 1977년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 2009년 중장으로 진급하여 3군단장, 합참 군사지원본부장, 국방대학교 총장을 역임 후 11년 말에 전역하였다. 전역 후 한국가스공사 상임감사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4년 7월 안전행정부 2차관으로 임명되었다.[8] 그 후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신설된 국민안전처의 초대 차관이 되었고, 현재도 활동중이다.
- 2010년 6월부터 2013년 4월까지 국군기무사령관으로 재직했었다.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의 전임자다.[9]
- 1977년 졸업과 동시에 방공포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1991년 소령 시절에 방공포병이 공군으로 전군함에 따라 권 장군도 공군으로 전군되었다. 방공포병여단장, 방공유도탄사령관을 역임하고, 공군 소장으로 전역하였다. 전역 후 현재는 군인공제회 감사로 재직 중이다.(2014년 11월 27일에 임명)
34 34기
1974년에 입학해 1978년에 임관했다.
- 권오성 :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육군참모총장 역임하였으나 윤일병 사건으로 사실상 자진전역 하였다.
- 권혁순 : 3군 사령관 역임.
- 김요환 : 2작전 사령관, 육군참모총장 역임.
- 박종선 : 육군사관학교장 역임. 항목은 개설되지 않았다. 군복무중 별들의 무덤으로 악명높은 28사단사단장직을 역임했고, 육사의 성폭행 사건도 후임 교장 역임중 일어났을 만큼 불행을 비켜가는 의문의 사나이.. 현재 상명안보통일연구소 소장으로 상명대 군사학과 교수를 맡고있다고 한다.
- 배명헌 : 육군항공병과로서 2010년 소장계급으로 14대 육군항공작전사령관 및 육군항공 병과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성우회에서 안보강사를 하고 계신다.[10]
- 윤광섭 : 예비역 소장. 55사단장, 육군보병학교장, 특전사 부사령관 역임.[11]
- 서길원 : 예비역 중장. 수도포병여단장, 육본 전력기획처장, 31사단장, 육본 인사참모부장, 6군단장. 1야전군 부사령관 역임.
- 이재영 : 육군사관학교 기계&시스템공학과 교수. 현재도 재직 중이다.
17기, 31기에 이어 육군참모총장을 두 명 배출하게 된 기수이다.
35 35기
1975년에 입학해 1979년에 임관했다.
- 박선우 : 최종보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 신현돈 : 최종보직 1군 사령관. 특별경계태세 기간 중 음주 논란으로 전역조치됐다.
- 황인무 : 예비역 중장. 現 국방부 차관. 32사단장, 육군대학 총장[12], 육군교육사령관, 육군참모차장 역임.[13]
- 류제승 : 예비역 중장. 現 국방부 국방정책실장(1급. 고공단 '가'급). 독일 보훔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소장 시절 젓가락 부대장(11사단장),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였고, 11년 전반기에 중장으로 진급하여 8군단장, 육군 교육사령관을 역임 후 13년 10월 전역과 동시에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으로 임명되었다.
- 오윤성 : 순천향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 이종명 : 12사단장, 합동참모본부 전력발전부장, 국가정보원 3차장 역임.
- 김학주 : 現 국방부 군구조·국방운영개혁추진실장. 항공작전사령관 역임.
- 송재익 : 강남대학교 안보학 교수.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다고 한다.
- 이계성 : 예비역 준장. 2008년에 준장으로 진급하여 육군종합군수학교 수송학부장, 국군수송사령관 역임하고 2011년에 전역.
- 박남수 : 예비역 중장.수도방위사령관,육군사관학교장을 지냈으며 육군사관학교 여생도 성폭행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 물러났다.
- 전동운 : 예비역 중장. 35사단장,군수사령관을 역임하였다.
여담으로, 육사는 6기를 제외[14]하고는 모든 기수에서 합참의장 혹은 육참총장을 배출한 역사가 있었다. 4년제 정규육사인 11기 이후부터는 모든 기수에서 합참의장이나 육참총장을 배출했는데, 18기랑 35기만 합참의장 뿐만 아니라 육참총장도 배출하지 못했다.
36 36기
1976년에 입학해 1980년에 임관했다. 2005년에 처음 준장으로 진급했다.
- 김현집 : 예)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차장, 제3야전군사령관 등을 역임. 참고로 하나회의 마지막 생존자이다. 나머지는 YS때 강제예편 당하기도 하고 정년을 맞아 전역한 경우도 있고....여하튼 김현집 장군을 마지막으로 모두 전역했다.
- 장준규 : 대장, 현재 육군참모총장. 21사단장,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 특전사령관, 1군 부사령관, 1군사령관 역임.
- 김성회
- 김종배 : 예) 중장, 육군부사관학교장, 육군교육사령부 훈련부장, 육군교육사령관 역임.
- 김유근 : 예) 중장, 육군참모차장, 합참차장 역임.
- 모종화 : 예) 중장, 제1군단장. 인사사령관, 제6군단장 역임
- 박삼득 : 예) 중장, 국방대학교 총장, 2작전사령부 부사령관 역임.
- 박성우 : 제 46대 육군훈련소장
- 장경욱 : 예) 소장, 기무사령관 역임
- 기무사령관을 소장 계급으로 지냈다. 2013년 10월에 취임 6개월 만에 경질되었다고. 장군 인사 당시에 기무사 직원들은 그가 중장으로 정식 진급할 줄 알고 꽃다발까지 준비했는데 한 기수 후임인 이재수 중장의 기무사 보임이 결정되었고 장소장은 이임식도 하지 않고 전역했다. 참모장이었던 김선일 준장(육사40기)도 전역했다. 기무사 간부는 거의 대부분이 싹 다 갈려나갔다고. 어른의 사정이라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군 수뇌부 출신들의 인사 문제를 대통령에게 올리는 보고를 올렸고 대통령이 해당 인사들의 편을 들어준 것이란 후문이 돌고 있다.
- 최익봉 : 예) 중장 특전사령관 재임 중 23사단장 시절 성추문 사건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해임.
- 강호동 : 육사 36기 출신으로 87년 대위로 예편 후 사무관으로 특채. 충북도의회 사무처장(2급), 충북도 재난안전실장(2급) 역임 후 명예퇴임. 현재 충북중소기업진흥원장 재직 중. 현재 나무위키에 강호동 관련 문서는 우리가 아는 씨름선수이자 MC인 강호동 밖에 없다.
- 김의수 : 1958년 충남 예산군 삽교출신으로 보문고, 육사 36기 출신으로 87년 대위로 예편 후 사무관으로 특채. 대전시 공보관. 대 전시 인재개발원장, 교통행정국장, 자치행정국장, 대전시의회 사무처장 역임 후 2014년 7월 후배들을 위하여 명예퇴직하였으나 5개월만인 2014년 12월 26일 새벽에 급성간암으로 안타깝게 별세하였다. 향년 56세.
- 원정희 : 1959년생,야전 부대 장교로 복무중에 지난 1987년 국세청 특채사무관 시험(10기)에 합격하여 국세청에 입문했다.
이후 영덕세무서장과 영등포세무서장을 지냈으며,지난 2014년 국세청 조세국장에 오르게 된다.이후 불과 7개월만에 1급 공무원
보직인 부산지방국세청장에 임명되면서 군 특채 출신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 1급 공무원이 되었다.지난해 연말을 끝으로 국세청에서
명예퇴직하였다.
37 37기
1977년에 입학해 1981년에 임관했다. 2006년에 처음 장성급에 진출했다.
- 고명현 예비역 준장.
- 前국군체육부대장. 남재준 육군참모총장 시절에 수석부관을 지냈다. 남재준 총장이 당시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운 탓에 진급에 불이익을 받았다는 얘기가 장교단 내에서 돌았다. 남총장이 국정원장이 되자 부사단장으로 재직 중이던 고대령을 국정원 국방보좌관[15]로 불러들였고 2013년에 13차 진급으로 준장을 달았다. 이 해에 육사 43기가 처음으로 준장에 진출했다. 본래는 3차 진급 이상 떨어지면 진급을 시키지 않으나 관행에서 벗어나 4차 이상의 진급 대상자들도 포함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13차 진급이라는 위엄은 다시 쉽게 나오지 않을듯 하다.[16]
- 1981년 졸업과 동시에 방공포병 소위로 임관하였으나 1985년 3월 교통사고로 후유증을 얻었고, 결국 5년차인 1986년 3월 대위로 예편했다.
- 현재 육군 제2작전사령관. 7군단장을 지냈으며, 독일 육사 유학생 출신이다.
- 수방사령관과 합참 작전본부장을 역임했다. 육사 37기 중 1차로 중장 진급한 2인 중1인.
- 2군단장과 육사교장을 역임했다. 육사 37기 중 1차로 중장 진급한 2인 중1인.
- 기무사령관 역임. 위의 박지만 EG회장과 중앙고 동창이다. 기무사령관 맡기 전에 반년 정도 육군인사사령관도 지냈다. 장경욱 소장이 그가 기무사령관을 달기 전에 잠시 기무사령관을 지냈다. 이재수 중장이 37기라 워낙 주목을 받기 쉬운 터라 좀 시간을 고르란 의미에서 이런 인사를 했다는 얘기도 있다. 현재 3군 부사령관.
- 전인범 예비역 중장.
- 1981년 졸업과 동시에 보병 병과 소위로 임관, 2013년 10월 중장으로 진급하여 특수전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생도 시절 후배들을 엄하게 교육해 그의 별명은 ‘잔인범’이었다. 다음은 월간조선 2013년 12월호에 실린 육사 37기생들을 다룬 기사의 원문. 1군 부사령관을 마지막으로 전역하였다.
박지만 씨에 대해 특별대우는 없었을까. 동기생들은 입을 모아 “특혜는커녕 대통령 아들과 동기생이라는 이유로 곤욕을 치른 경우가 더 많았다”고 했다. 육사 38기의 한 대령은 “당시 37기의 선배 기수들은 박지만 선배가 포함된 37기에 편견을 갖고, 다른 기수라면 그냥 넘어갈 일도 더 엄격하게 얼차려를 줬다”며 “특히 시골에서 올라온 선배들은 정의감에 불타 유명인사 자제들의 잘못은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영웅심리를 갖고 있었다”고 했다.
37기 동기회의 한 간부는 “1979년 여름, 포천 8사단 신병교육대 훈련장에 갔는데 대통령 아들 기수가 왔다며 쓸고 닦고 했다고 들었다”며 “우리는 처음 가는 야전부대라 부대가 원래 이런가 보다 했고, 삼계탕을 주면 부식이 원래 이런가 보다 했다. 훈련을 마치고 육사에 복귀하면서 선배들이 37기 동기 전체를 집합시켰다”고 했다. 그는 “해당 부대의 갓 졸업한 육사 선배들이 육사 선배들이나 훈육관들에게 전화를 걸어 ‘박지만이 때문에 하사관학교 학생들이 교육도 못하고 쓸고 닦는다’고 해서 얼굴을 못 든다고 했다”며 “우리들은 대통령 아들이 지원한 줄도 모르고 육사에 들어왔는데, 선배들은 ‘유사 이래 너희가 훈련소에서 삼계탕을 처음 먹었다’고 말해서 속상했다”고 했다. 그는 “하도 36기 선배들에게 들볶이다 보니 38기 후배들을 교육시킬 여력이 없어 동기들 사이에선 38기들이 기어오른다는 이야기도 했었다”며 “동기생 중 전인범 특전사령관이 ‘잔인범’ 소리를 들어 가며 후배들 교육을 시키지 않았으면 선배 노릇도 못할 뻔했다”고 했다.
- — 오동룡. 2013. “朴志晩 同期 陸士 37期生들.” 『月刊朝鮮』 2013년 12월호, 98-115.
- 국방정보본부장 역임. 군내에선 정보통으로 유명하다. 임기제 진급으로 중장 진급.
- 7기동군단 비서실장(소령)이었으며, 1992 제7기동군단 헬기추락 사건으로 순직하였다.
38 38기
1978년에 입학했고 1982년에 임관했다. 2007년 10월에 준장 1차, 2010년 12월에 소장 1차가 있었다. 그리고 중장 1차 진급자가 2013년 10월에 나온 김용현 중장 1명 이고, 2차는 2014년 4월에 정연봉, 최병로, 정항래 중장이, 2014년 10월에는 3차로 임호영, 조현천, 위승호 중장이 진급했다.
38기의 입학생은 377명이었고, 입학 경쟁률은 137:1 이었는데 경쟁률이 이렇게 높았던 건 대위 복무 후 공무원 5급으로 채용되는 유신사무관이란 제도 때문이었다. 1988년에 유신사무관이 폐지되는 바람에 육사 38기부터 인사적체가 심각해졌다.
- 김용현 중장 : 現 합참 작전본부장. 17사단장, 수방사령관 역임(중장1차).
- 고성균 예)소장 : 2016년 1월 31일에 전역[17]. 육군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 육사교장 역임[18]
- 위승호 중장 : 現 국방대학교 총장(중장3차). 합참 전략기획차장, 36사단장, 합참 신연합방위추진단장 역임,
- 조현천 중장 : 現 기무사령관(중장3차).
- 최병로 중장 : 現 육사 교장(중장2차). 수도군단장 역임.
- 정연봉 중장 : 現 육군참모차장(중장2차), 8군단장 역임.
- 정항래 중장 : 現군수사령관(중장2차).
- 임호영 대장 : 5군단장.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중장3차) 역임 후 現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에 임명.
- 오정일 예) 소장 : 現 합참 정책발전위원. 합참민군작전부장. 28사단장, 육군포병학교장 역임. 광운대에서 2015년 안전분야 박사 학위.
- 조성직 예)소장 : 2015년 12월에 전역하였다. 前사이버사령관. 노크귀순사건이 발생한 22사단장 역임.
- 신만택 예)소장 : 국방전직교육원장
- 정주교 예)소장 : (주)해안건축 부회장. 국방시설본부장 역임.
- 연제욱 예)소장 : 국군사이버사령부 사령관을 지냈다. 임기제 진급으로 2011년에 준장, 2012년에 소장에 올라갔다.
- 옥도경 예)준장 : 국군사이버사령부 사령관을 지냈다.
- 박형진 예)대령(추서계급) : 네팔로 파병되어 유엔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던 중 2008년 불의의 헬기추락 사고로 순직하였고, 대령으로 추서되었다.
- 윤완선 소장 : 3사단장, 現 2작전사령부 부사령관. 합동군사대학 총장, 육군종합행정학교장 역임.[19]
- 이승호 (예)준장 전 9공수여단장
39 39기
1979년에 입학했고 1983년에 임관했다. 2008년에 처음 준장에 진출했다.
- 김규하 소장 : 56사단장, 육군훈련소 소장 역임, 현 육군종합행정학교장.
- 김용우 중장 : 2015년 중장진급(2차). 現 1군단장
- 김완태 중장 : 2015년 중장진급(3차). 現 수도군단장
- 류성식 : 現 육군부사관학교장. 인사참모부장 시절 육사 동기인 윤모 (예)소장의 전역지원서 조작을 지시하여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으나 불기소.
- 변재선 소장: 육군본부 정보화기획실장 역임. 現 사이버사령관 겸 국방부 원광사 금강회장[20].
- 이진원 소장 : 現 미사일사령관. 육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 27사단장 역임.
- 장경석 중장 : 2015년 중장진급(2차). 26대 특전사령관
- 장광현 소장 : 항공작전사령관.
- 장재환 중장 : 39사단장 역임. 2014년 중장진급(1차). 現 7군단장
- 제갈용준 중장 : 1군사령부 참모장 역임. 2015년 중장진급(3차). 現 5군단장.
- 하창호 소장 : 6군단 참모장, 1사단장, 합참 전력기획부장 역임. 현재 교육사령부 부사령관 .
- 이종명 대령 : 現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 前 합동군사대학 교관
- 2000년 6월 27일 경기도 파주 인근 비무장지대(DMZ)에서 수색작전에 나섰다가 지뢰 폭발로 두 다리를 잃었다. 수색대대장(중령)으로 후임 대대장(설동섭,육사 40기, 중령 예편)에게 임무 인수인계를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작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후임 대대장이 지뢰를 밟았고, 함께 있던 중대장도 관통상을 입었다. 이 대령은 두 사람이 쓰러진 곳까지 갔다. 수년 동안 수색작전을 하며 파악해 놓은 이 지역 지리에 대해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음하는 후임 대대장을 업으려고 쪼그려 앉는 순간 그의 발 아래에서 다시 지뢰가 폭발했다. 수도 없이 다녔던 길이라 지뢰가 없다고 확신했던 곳이었다. 전날 비가 왔지만 지뢰가 떠내려 올 정도는 아니었다. 북한군이 우리 군 동선을 파악해 의도적으로 지뢰를 매설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이 대령은 두 다리를 잃었다. 다리를 잃은 뒤 이 대령은 2년 반 동안이나 치료를 받았다. 전역할 줄 알았지만 군은 하반신이 절단된 그에게 정년까지 복무토록 했다. 2015년 9월 전역.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시구자로 나왔다. 그리고 이번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21]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2016년 5월 30일부터 그의 국회의원 임기는 시작될 것이다.
- 이기덕 준장 : 50사단 모 여단(대구관할) 여단장 역임. 2013년 하반기 임기제 준장으로 진급하여 전투지휘훈련단장 역임 후 전역.
- 공회식 준장 : 방공병과 출신으로 수도방위사령부 1방공여단장, 육군방공학교장을 역임하였다. 참고로 현 육군방공학교장 정용담 준장의 전임자다.
40 40기
1980년에 입학했고 1984년에 임관했다. 2009년에 처음으로 준장, 2015년 10월에 첫 중장 진급.
- 구홍모 : 수방사령관취임. 특전사 여단장 및 참모장, 7사단장 역임. 중장1차진급
- 김상철 : 20사단장
- 김선일 : 예)육군준장. 기무사 참모장을 지냈다.
- 김대열 : 김선일 장군에 이어 기무사 참모장을 지냈다. 김선일 장군과는 같은 경기고를 나왔는데 재수생 출신이라 고교는 선배다.
- 김병주 : 2015년 10월 1차 중장 진급. 現 3군단장.
- 김해석 : 제50향토보병사단장, 육본 인사참모부장 역임. 2015년 10월 1차 중장 진급. 육군인사사령관 취임 예정.
- 김황록 : 2015년 10월 1차 중장 진급. 現 국방정보본부장.
- 박병기 : 31사단장 역임.
- 박주성
- 서상국 : 現 육군훈련소장.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당시의 사단장이었으며 임관 25년만에 준장을 단 엘리트 출신이었다.
- 송유진 : 17사단장 재직 중에 부사관 성추행 혐의로 구속되었다.
- 이문석 : 육군보병학교장 역임.
- 이붕우 : 육군본부 정훈공보실장 역임. 환송회 당시 정훈과장인 A대령이 B중령의 머리를 맥주 컵으로 때려 B중령이 병원으로 치료를 받았다.
- 이순광 :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 당시의 사단장. 본인은 병영 생활 개선에 상당히 노력을 기울였지만 안타깝게도 사고가 터졌다. 현 국군복지단장.
- 양병희 : 35대 제26기계화보병사단장 역임. 現 합동참모본부 전력기획부장
- 정용담 : 現 육군방공학교장.
- 주창환 : 제5보병사단장 역임. 現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참모부 처장
- 선종출 :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 당시 헌병실장. 보고누락으로 경질되었다.
- 탁부영 : 공병병과 출신으로 현재 국방부 시설본부장을 맡고 있다.
- 윤국 : 수송병과 출신으로 현재 국군수송사령관(준장). 대령 때는 육군종합군수학교 00처장, 국군수송사령부 항만운영단장을 역임하였다.
- 최록하 : 포병병과 출신이다. 1군단 1포병여단 X 포병단장을 역임하였으며, 한미연합사 인사처장을 역임하였다. 준장 진급 대상자에 없는 것으로 보아 끝내 별을 달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올해 하반기 정년퇴직 할 가능성이 높다.
2014년에 온갖 사고가 터져 선두로 장군을 단 인물들 셋이 자리를 잃게 되어 격동을 겪고 있다. 여기에 헌병병과 선두주자 선종출 예)준장까지 포함하면 병과별 1차 진급자들 네명이 날아갔다.
2015년 10월 인사에서 처음으로 중장으로 진급했다.
41 41기
1981년에 입학했고 1985년에 임관했다. 2010년에 처음 준장에 진출했다.
- 서 욱 : 합참작전부장 ,25사단장역임
- 이석구 : 합참작전기획부장, 수기사사단장 역임
- 문상균 : 예) 준장. 현 국방부 대변인.
- 손순호
- 이형석 : 아내인 김귀옥(여군 31기) 대령이 2014년에 준장으로 승진하면서 소장인 본인과 같이 장관급 장교에 오름에 따라 창군 이래 첫 장성 부부가 되었다.
- 장경수 : 제1보병사단사단장을 역임.현재는 국방부 정책기획관으로 활동중이다.
- 이정근 : 2013년 소장 진급. 육군본부 물자처장. 37사단장 역임. 현 육군본부 군수참모부장.
- 조인희 : 빠른 63년생으로 국군 통신분야 전문가다.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전기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4년 10월부터 국군지휘통신사령관(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 강천수 : 수도포병여단장 역임,현재 9사단장.
- 이정기 : 32사단장 역임,현재 제2작전사령부 참모장.
- 오영한 : 육군공병학교장
- 장세욱 : 1996년 육군 소령 예편, 동국제강 부회장
42 42기
1982년에 입학했고 1986년에 임관했다. 42기부터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하는데 2011년부터 기간이 4년에서 5년으로 늘어남에 따라 2012년에 처음 준장을 배출했다.
- 안영호 : 2015년 소장 진급.제25 보병사단장(3차.11월), 합참합동조사단장
- 구원근 : 2015년 소장 진급. 동원분야 전문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2작전사령부 동원전력처장, 육군본부 동원참모부 차장을 역임하고,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36향토보병사단장을 맡고 있다.(2차.4월)
- 김정수 : 2015년 소장 진급. 제27보병사단장.(4월)
- 김종문 : 2015년 소장 진급. 제2보병사단장.(4월)
- 김혁수 : 2015년 소장 진급. 제13공수특전여단장, 제21보병사단장.(4월)
- 송희섭 :2013년 준장 진급. 국방정신전력원장 21사단 포병연대장 6포병여단장
- 박주경 : 2015년 소장 진급. 제11기계화보병사단장.(4월)
- 신인호 : 2015년 소장 진급. 제26기계화보병사단장.(4월)
- 이종화 : 2015년 소장 진급. 제1보병사단장(4월)
- 정진경 : 2015년 소장 진급. 제5보병사단장.(4월)
- 유무봉 : 2014년 소장 진급.제20기계화보병사단장(1차10월)
- 김갑수 : 2014년 소장 진급.제8기계화보병사단장(10월)
- 김성일 : 2014년 소장 진급.제23보병사단장(10월)
- 이국재 : 2014년 소장 진급.제6보병사단장(10월)
- 임종문 : 2014년 소장 진급.제17보병사단장(10월)
- 서정천 : 2014년 소장 진급.제50보병사단장(10월)
- 김승겸 : 2014년 소장 진급.제28보병사단장(10월)
- 조한규 : 2014년 소장 진급.제30기계화보병사단장(10월)
- 장세훈 : 2013년 준장 진급. 육군훈련소 참모장(10월)
- 최세환 : 2014년 준장 진급.
- 이종협 : 2015년 준장 진급. 현 국방부 조사본부장
- 이철원 : 현 대령. 파병부대 아라우 부대장 역임. 현 미8군 한국군지원단 단장. 이 대령은 예산중학교 1학년인 1976년에 캐슬린 스티븐슨 씨의 제자이기도 하였다. 참고로 캐슬린 스티븐슨 씨는 08~11년에 주한 미국대사로 재직했었다.
43 43기
1983년에 입학했고 1987년에 임관했다. 2013년에 첫 준장을 배출했다.
- 김선호 : 2015년 10월 소장 진급(수도기계화보병사단장), 1차 ,병영혁신팀장역임
- 성 일 : 2015년 10월 소장 진급(제12보병사단장)1차
- 안준석 : 2015년 10월 소장 진급(제15보병사단장)1차
- 정형희 : 2015년 10월 소장 진급(제32향토보병사단장)1차
- 문병호 : 2015년 10월 소장 진급(제39향토보병사단장)1차
- 김경수: 2016년 04월 소장 진급(제35향토보병사단장)2차
- 김정수 : 2016년 04월 소장 진급(제22보병사단장)2차
- 김한태: 2016년 04월 소장 진급(제23보병사단장)2차
- 윤의철: 2016년 04월 소장 진급(제28보병사단장)2차
- 이상호: 2016년 04월 소장 진급(제52향토보병사단장)2차
- 인성환: 2016년 04월 소장 진급(제56향토보병사단장)2차
- 황대일: 2016년 04월 소장 진급(제9보병사단장)2차
- 이영철: 2016년 04월 소장 진급(국방정보본부 정보기획부장)2차
44 44기
1984년에 입학했고 1988년에 임관했다. 2014년에 첫 준장 진출했다.
- 서천규
- 연경흠
- 이장근
- 이시천 : 병과는 공병, 직능은 군수로 추정된다.[22] 현재 3공병여단장이고, 2015년 상반기에는 대령, 2015년 하반기에 준장(진)이 되었으며, 2016년 1월 1일 준장으로 진급하였다.
- 이정수 육군준장 제1포병여단장 :2014.10
45 45기
1985년에 입학했고 1989년에 임관했다.
46 46기
1986년에 입학했고 1990년에 임관했다.
- 김흥석 : 육사 졸업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위탁교육으로 군법무관이 됐다. 그 때문에 동기들보다 4~5년 빠른 2012년에 준장으로 진급했다. 준장으로 진급 후 육본 법무실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고등군사법원장이다. 하지만, 군법무관의 특성상 준장이 계급상한선이므로 준장 위로의 진급은 힘들다.
- 황일웅 : 육사 졸업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위탁교육으로 군의관이 됐다. 전공은 정형외과다. 그 때문에 동기들보다 4~5년 빠른 2012년에 준장으로 진급했다. 現국군의무사령관. 군의관의 특성상 소장이 계급상한선이므로 소장 위로의 진급은 힘들다.
47 47기
1987년에 입학했고 1991년에 임관했다.
- 천안 북일고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를 3등으로 졸업하고, 뒤에 위탁교육으로 서울대 의과대학에 갔다. 전공은 피부과다. 군의관으로 근무하였고, 2000년 대위시절 유엔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동티모르에 파견된 적이 있다. 2014년에 준장을 달았다. 2014년에 준장에 첫 진출한 기수는 44기였다. 1차로 준장 다는 인원들보다 3년이나 일찍 진급한 것. 현재 안종성 장군은 육군본부 의무실장을 맡고 있다.
국군고양병원장, 국군춘천병원장, 국군양주병원장, 미육군사관학교 교환교수 역임.
48 48기
1988년에 입학했고 1992년에 임관했다.
49 49기
1989년에 입학했고 1993년에 임관했다.
- 김경욱
소위 임관 후 군법무관이 되기 위해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위탁교육을 받았으나 군법무관 시험에 탈락하고 은행강도를 하다가 붙잡혀서 육사 동문회에서 영구제명 당했다.
50 50기
1990년에 입학했고 1994년에 임관했다.
- 입학은 했으나 한달만에 퇴교하여 졸업자는 아니다. 다만 동문을 넓은 의미에서 보는 일이 많은 한국의 특성상 육사와 연관이 있는 인물로 보고는 있다.
- 94년 53사단 장교 무장탈영 사건의 주인공이다. 비록 탈영은 했지만 이 분 덕택에 '소대장길들이기'라는 악습이 없어졌으며, 군의 질서가 바로 잡힌 순기능이 있다. 수감 중에 95년 3월 중위로 진급한 후 징역이 확정되자 현 계급에서 제대하였다. 그 후 육사에서 수학을 전공한 것을 살려 입시학원 및 논술학원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51 51기
1991년에 입학했고 1995년에 임관했다.
52 52기
1992년에 입학했고 1996년에 임관했다. 동기인 김훈 중위의 죽음에 군에 실망한 사람이 많아 5년차에 33명이 대거 전역했다. 보통은 10명 내외이다. 관련기사[24]
- 김훈 중위 사건의 바로 그 희생자이다.
53 53기
1993년에 입학했고 1997년에 임관했다.
54 54기
1994년에 입학했고 1998년에 임관했다.
55 55기
1995년에 입학했고 1999년에 임관했다.
56 56기
1996년에 입학했고 2000년에 임관했다.
57 57기
1997년에 입학했고 2001년에 임관했다.
58 58기
1998년에 입학했고 2002년에 임관했다. 처음으로 여성 사관생도를 받아들인 기수이다.
59 59기
1999년에 입학했고 2003년에 임관했다.
60 60기
2000년에 입학했고 2004년에 임관했다.
61 61기
2001년에 입학했고 2005년에 임관했다.
62 62기
2002년에 입학했고 2006년에 임관했다.
- 27기인 김장수 예비역 대장의 아들. 프랑스 육사 위탁생 출신인 그는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가 되었다. 링크를 타고 가면 동명이인만 있으며 아직 본인 항목은 없다. 복싱과 헬스를 취미삼아 한다고 한다.
63 63기
2003년에 입학했고 2007년에 임관했다.
64 64기
2004년에 입학했고 2008년에 임관했다.
65 65기
2005년에 입학했고 2009년에 임관했다.
66 66기
2006년에 입학했고 2010년에 임관했다.
67 67기
2007년에 입학했고 2011년에 임관했다.
68 68기
2008년에 입학했고 2012년에 임관했다. 졸업자는 199명(남 179, 여 20). 관련기사
69 69기
2009년에 입학했고 2013년에 임관했다. 졸업자는 205명. 관련기사
- 김용 : 국무총리상
- 양주희 : 대통령상(2년 연속 여성생도 수석졸업)[27]
- 윤성원 : 대표화랑상
- 한동윤, 한지윤 : 남매로 육사에 동기로 입학했다. 오빠가 재수해 입학했고 동생은 현역으로 입학. 동생 한지윤은 한미연합사령관상을 수상
- 윗사루 루왕스리 : 태국 출신 수탁생도(아버지가 육군 중령)
70 70기
2010년에 입학했고 2014년에 임관했다. 198명 임관. 관련기사
71 71기
2011년에 237명(남214/여23)[28]이 입학했다. 2015년 220명(남201/여19)이 임관했다.
72 72기
2012년에 입학했다.
73 73기
2013년에 입학했다.
74 74기
2014년에 입학했다.
75 75기
2015년에 입학했다.
76 76기
2016년에 입학했다.- ↑ 그의 회고록을 보면 전역 때 장군용 권총을 반납하는데 피가 거꾸로 솟는 심정이라고 밝혔다.
- ↑ 전두환이 장태완, 정병주, 김진기를 붙잡기 위하여 요정으로 초대하는데 정병주 장군(배우 : 민욱)이 요정에 도착 후 차에서 내리는 씬
- ↑ 박철언 전 국회의원의 회고에 따르면 그의 사촌 누나인 김옥숙에게 영어를 가르쳐 준다는 명목으로 자주 만나다가 결혼하였다고 한다.
- ↑ 제5공화국 드라마를 보면 6.29 진압을 놓고, 민병돈 장군과 동기인 보안사령관 고명승 장군이 서로 상의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그랬다고 한다. 당시 민 장군은 "자네는(고명승 장군) 각하와 독대를 할 수 있는 위치이니 자네가 각하께 말씀드리게"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군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자 전두환 대통령이 분노해하면서 장세동 안전기획부장에게 누가 거절하냐고 했는데 장 부장은 "특전사에 민병돈이입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건 고증 오류다. 민병돈 장군은 육사 15기고, 장세동 안전기획부장은 육사 16기로 후배다. 후배가 선배한테 그렇게 지칭할 수 없으며, 이것은 MBC제작진 측이 모르고 한 실수다.이전 작성자가 존칭 사용법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민병돈 장군은 육사 15기이고 장세동 안전기획부장이 육사 16기인건 맞지만 전두환이 육사 11기로 저 둘보다 한참 선배다. 군대로 따지면 소대장이 대대장에게 보고할 때 "오늘 당직사령은 2중대장입니다."이게 맞는 것이지 "오늘 당직사령은 2중대장님이십니다."는 대대장을 뭉개는 발언이 되기 때문에 틀린 것이다. 자신이 보고를 해야 할 대상이 제일 높을 경우 이렇게 지칭해야 맞는 거다. - ↑ 소란을 피운 다음날 당시 이양호 합참의장에게 사과해서 별 일이 없을 줄 알았으나 결국 청와대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어 이 장군은 군복을 벗게 되었다.
- ↑ 백승도, 최광준, 김형수 준장
- ↑ 대개 군수사령관을 하고, 전역을 하지만 이봉원 장군은 전역을 하지 않고, 육사교장을 하고, 전역하였다.
- ↑ 사실 이 때부터 정부조직법 개정에 대한 떡밥이 있었고, 국민안전처에 대한 구상과 계획이 어느정도 완료되었기 때문에 이성호 장군을 안전행정부 2차관으로 임명한 듯하다.
- ↑ 기무사령관은 배득식-장경욱-이재수-현 조현천 중장이다.
- ↑ 아마 이분의 안보강연 들으신 예비군대원들 제법 있을 겁니다.
- ↑ 최익봉 특전사령관이 여군하사 성군기 문제로 보직해임 당했을 때 특전사 부사령관 윤광섭 장군이 직무대리를 했었다.
- ↑ 황인무 장군이 32사단장까지는 진급라인을 잘 탔으나 소장 2차보직을 육군대학 총장으로 발령받음으로써 꼬이게 되었다. 또한 중장 1차보직이 육군교육사령관이었는데 이것이 군단장급 야전지휘관을 역임하지 못한게 되어 13년 말 1군사령관 자리를 놓고, 동기생 신현돈 장군과 경합을 벌였으나 대장진급에 실패하고 예편하였다.
- ↑ 여담이지만 2015년 11월 20일 대전광역시 유성구 지족동에 있는 황인무 차관의 자택에서 화재가 나서 소방서 추산 900여 만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당시 자택에 황인무 차관의 사모님이 계셨지만 다행이도 대학병원에서 안정을 취하면 회복될 수준의 부상을 입었었다.
- ↑ 육사 6기이자 백골부대장으로 유명했던 박정인 장군의 자서전에서는 육사 6기는 5.16 쿠데타에 참여하지 않았고, 박경원 같은 유능한 장군이 일찍이 공직분야로 차출되는 바람에 대장을 배출하지 못했다고 써져 있다. 또한 육사 5기와 육사 8기가 주축이 된 5.16이기 때문에 낀세대(?)인 육사 6기는 찬밥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 본래는 준장이나 소장이 보임된다.
- ↑ 종전에는 8차 진급이라고 되어있었는데, 육사 37기 동기가 2007년 10월에 최초로 준장으로 진출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13차 진급이 맞다. 1년에 장군인사가 4~5월, 10~11월 두번 있으므로. 육사 37기 신원식은 2006년 10월에 준장 진급이 결정되어 준장(진)을 달았으니까 실제로는... 거의 15차...
- ↑ 네이버 인물검색에서는 현역으로 교육사 교육훈련부장을 맡고 있다고 하지만 육사38기 동기회카페에서 전역했음을 알 수 있다.
- ↑ 육사에서 생도간 성폭행 사건으로 육사교장 박남수 중장이 자진전역하고, 후임으로 육사 교장을 임명하였는데 이례적으로 소장계급의 고성균 장군이 맡게 되었다.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기관징계(?)형식의 인사스타일인 듯하다.(참고로 윤일병 사건때 국방부 조사본부도 이와 같은 징계를 당했다. 당시 조사본부장이었던 백낙종 소장이 전역하고, 이종협 준장(진)이 조사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 3사단장까지는 진급코스를 잘 밟았으나 그 다음 보직인 합동참모대학 총장때부터 진급이 꼬이기 시작했으며, 총장 역임 후 육군종합행정학교장으로 발령받음으로써 중장 진급에 완전히 밀리게 되었다.
- ↑ 독실한 불교신자인 듯하다.
- ↑ 비례대표는 여자는 홀수, 남자는 짝수 순번이기 때문에 이종명 당선자는 사실상 비례 1번이나 마찬가지였다.
- ↑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08년 당시 중령 때 사단 군수참모를 맡고 있었다.
- ↑ 15년 12월에 2포병여단장으로 취임하였는데 준장(진)이었다. 고로 15년에 준장(진)이 되었고, 16년에 정식으로 준장으로 진급했다고 볼 수 있다.
- ↑ 생도들이 이런 식으로 대거 전역한 사례는 해외에서 1991년 방위대학교 35기의 임관포기가 있다. 걸프 전쟁 당시 자위대 파견을 두고 일본 사회의 여러 논쟁을 겪으면서 자위대에 실망했다며 떠난 사람이 많았다. 졸업생 494명 가운데 95명이 임관을 포기했다. 관련기사
- ↑ 갑종장교 출신으로 대장까지 진급하였고, 현재 새누리당 국회의원(경북 경주시) 겸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이다.
- ↑ 현재 계급은 알 수 없지만(09년에는 소령인 것으로 확인. 정수성 장군이 18대 재보궐선거에 출마함으로서 알 수 있게 됨.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후보자의 장남, 차남의 병역을 공개하게 되어 있으므로) 특별한 이상이 없는 한 중령일 가능성이 높다. 위키러 중에 경주시민 있으면 정수성 의원이 경주에 왔을 때 물어봤으면 합니다.
- ↑ 사실 탈락했는데 가입교 2일 전에 추가합격으로 합격하는 바람에 짐도 제대로 못싼 채 몸뚱이만 가입교훈련 입소를 하러 갔고 그렇게 입학해서 수석으로 임관한 입지적인 인물. 입학은 꼴찌로 했지만 임관은 수석으로 했다. 양주희의 전례로 인하여 이후 기수부터는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적성 합격으로 수능을 무시하고 선발하는 티오가 생겼다.
- ↑ 외국수탁생 합치면 24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