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로봇물/애니메이션

1 일본에서의 거대로봇물

1.1 발단

일반적으로는 일본마징가Z를 거대로봇물의 시초로 보지만, 마징가Z 이전에도 인간이 탑승하는 로봇이나 거대 무인 로봇미국소설이나 영화에 종종 묘사되었다.[1] 물론 현재는 일본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다만 일본은 1972년 이후 거대로봇이 주인공과 일체화 하여 수많은 작품 속에서 사랑을 받으며 인기를 끈 반면에 북미를 위시한 서구에선 주로 코믹스의 영웅들과 대치하는 악당이나 코스믹 호러 분위기의 외계에서 온 미지의 기계 생명체 같은 적의 개념으로 주로 등장해 왔다.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거대로봇물슈퍼로봇대전 시리즈의 등장 이후 슈퍼로봇물, 리얼로봇물으로 갈라놓으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는데 자세한건 해당 항목들 참조.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인간이 탑승하는 수 미터 크기의 기계'는 로봇이 아니라 강화복 개념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2] 로봇의 개발의의는 '인간이 하기 힘들거나 위험한 일을 대신 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 이렇게 보자면 혼자 알아서 움직이는 트랜스포머용자들이나 철인 28호처럼 사용자가 외부에서 컨트롤 가능한 기계가 '거대로봇'에 가장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3]

전문 커뮤니티가 아닌 이상은 가볍게 메카물이나 로봇물 등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가끔씩 건담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엄연히 틀린 명칭이다.[4]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메카닉 작화는 2D에서 3D로 전환되는 추세이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마크로스 시리즈같은 작품은 3D로 전환되었다. 그래도 거대로봇물 작품이 10개이상이 나온 2005년에만 해도 2D 메카닉과 3D 메카닉이 비중을 각각 1:1을 맞췄기 때문에 2D 메카닉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지만, 2006년 이후로는 매년 거대로봇물 작품 자체가 적게 나오다보니 대다수 3D 메카닉 작화를 사용하고 있다. 그나마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처럼 아직 2D 메카닉 작화를 사용하는 작품들도 있으나 이런 작품들 내에서도 이미 상당수 작화가 2D화와 3D화가 혼합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아직 거대로봇물의 일부 팬들은 부정적인 감상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3D 쪽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현실이기도 하다. 2D 메카닉을 일일이 그린다는 것은 시간과 돈도 문제지만, 애니메이터들에게 있어 상당한 숙련도에다가 엄청난 인건비를 요구하기 때문. 그러므로 2015년을 기준으로 아직까지도 2D 메카닉을 그리는 회사는 이제 본즈선라이즈 만 남게 되었다.[5]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다른 제작사의 2D 메카닉은 정말 간간히 보이는 수준으로만 남은 상황.[6]

한편 관련업계의 자가진단에 따르면 2004년 이후로 라이트 노벨등으로 서브컬처의 트렌드가 바뀌고 다양화됨에 따라 로봇물 장르에 대한 인기가 슈퍼계/리얼계를 가리지 않고 크게 내려가는 쇠퇴의 추세에 있다고 한다. 2002년까지만 해도 거대로봇이 어린 남자아이들에게 크게 어필했음에 비해 현재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인데 실제로 로봇물의 시청층이 새로운 세대의 유입없이 점점 늙어간다는 우려가 매우 크며 시장에서의 입지 역시 점차 좁아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는 현실이다. 쉽게 말해서 '어른들만의 추억'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 다만 2000년대 초반까지 로봇물이 크게 떴던 이유에는 완구판매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스폰서의 영향이 매우 컸던 만큼, 현재의 흐름이 순수한 서브컬쳐 장르로서는 오히려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의견도 있다.

애니판에서의 메카물은 건담, 에바의 유니버설하게 높은 지분을 뺀다면 음악계에서 헤비메탈의 위치와 팬덤 특성이나 역사상 대강 비슷하다.

1.2 작가주의, 대세 흐름적 발전 방향

1.2.1 토에이의 시대 : 1972년 ~ 1974년

1967년, 일본의 거대 영화사인 토호가 만화 축제를 일본 최초로 개최하였다. 이로 인하여 토에이의 애니메이션 독점 제작 환경을 깨뜨려서 업계 종사자들과 일본인들의 시선이 집중받고 있었다. 이에 질세라 토에이도 1971년부터 가면라이더같은 특촬물들을 제작하면서 토호와의 경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안정적인 수요층을 계속 유지해나갈 수 있도록 예산을 쏟아붓고 기획을 세우는 등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마침내는 로봇 히어로물의 제작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캐릭터를 창작하는데 상황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코미컬라이즈를 맡아줄 원작자를 찾아나섰다. 그 상황 속에서 기용된 작가가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어시스턴트였던 나가이 고(를 필두로 한 다이나믹 프로덕션)였다.

그런데 제작 과정에 참여하게 된 나가이 고는 단순히 작가로만 머무지는 않았다. 차기작의 핵심적인 아이디어와 디자인들을 구상하였으며, 자유분방한 묘사와 스펙터클한 액션, 적 캐릭터 및 무기들의 기기묘묘한 디자인 등 자신의 작품 속의 테이스트들을 끊임없이 차기작 속에 도입해내었다. 물론 토에이계 특촬물에서 받은 영향도 적지 않았다.

이로써 1972년, 《마징가Z》가 방송된 이래 제작사인 토에이마징가 시리즈로 자그마치 5년뒤인 1977년까지 해외 판권 수출 및 관련 완구 상품의 판매 증대 효과로 매우 크고 아름다운 수익을 벌어들일수 있었다. 물론 동시기에 방송되었던 이시카와 켄이 나가이 고와 공동으로 원작을 담당한 겟타로보 시리즈의 쌍차적인 흥행도 그런 토에이의 수익 창출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1.2.2 나가하마의 출현 : 1975년 ~ 1979년

이런 현상을 목격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슬슬 기획을 마련해나가는등 제작 계획을 준비해가고 있었다. 그 중에서 토호쿠 신샤와 소에이샤의 제작, TV 아사히 방송으로 토미노 요시유키가 감독을 맡은《용자 라이딘》이 1975년에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중간에 지나친 오컬트 설정과 각본의 부진함으로 인한 시청률 하락으로 2쿨째에 들어오면서 감독나가하마 다다오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나가하마는 오컬트적이었던 설정을 일부 배제한 연극적 각본으로 《용자 라이딘》을 성공적인 작품으로 마무리해내게 되었다.

용자 라이딘의 성공으로 소에이샤는 여러 대기업방송국들한테 인지도를 넓힐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력 상태는 다른 제작사들에 비해서 규모가 매우 부족했던 상태였었다. 그래서 이듬해인 1976년 4월 토에이 본사 쪽에 연락을 취해서 차기작의 하청 작업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회사의 장기적 발전을 시작하는 첫 성과를 거두었다.

메인 감독을 맡게 된 나가하마는 초전자로보 콤바트라V, 초전자머신 볼테스V, 투장 다이모스, 미래로보 달타니어스를 제작하였다. 기존의 로마식이나 유럽식이 아닌 초과학적, 무술적, 야수적 갑옷과 무장을 등장하는 주역 메카닉들한테 속속 도입시켜 수용하게 되었다.

당시의 마징가 시리즈에서 보였던 특촬물스런 권선징악 대립 구도를 적이라도 주인공과 다르지 않은 면이 있다는 스토리 텔링을 활용해 완화시켰다. 또한 이전에 극단에서 경험을 쌓은 드라마성 각본가로서의 연출과 본격적인 필살기[7] 클리셰의 활용으로 1화 완결 구성을 지양화해나갔다.

그 와중에 콤바트라v를 제작 중이었던 1977년, 소에이샤는 일본 선라이즈로 사명을 변경하고 토호쿠 신샤에서 독립하였다. 덩달아서 훗날인 1987년에 지금의 선라이즈로 최종적으로 회사의 이름을 개명하게 되었다.

1.2.3 선라이즈의 발돋움 : 1977년

이런 가운데, 토미노 요시유키는 나가하마에게서 어시스턴트 애니메이터로 경험을 쌓아나가고 있었다. 그는 라이딘을 제작하면서부터 모습을 드러냈던 최초의 오타쿠 메카닉 디자인 집단인 스튜디오 누에와 역동적인 표현으로 작화를 연출한 애니메이터 카나다 요시노리 등을 차기작의 스태프 팀에 포함시켰다.

그런 다음 콤바트라와 볼테스의 제작으로 막대한 자본금과 인지도를 얻어낸 일본 선라이즈 최초의 자주 제작과 소츠 에이전시 및 클로버의 완구 상품 판매, 나고야 텔레비전[8]의 방송으로 1977년, 무적초인 점보트3를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에 발표하였다.

주역 메카닉의 디자인으로는 일본식 사무라이의 형체와 그에서 따온 장갑과 무장들을 채택했다. 이런 디자인은 1970년대 후반 당시엔 대중의 전면적인 인식 부족과 스폰서의 간섭 및 고집, 상대적으로 인력과 자금이 부족했던 중소 규모 애니메이션 업체들과 타츠노코 프로덕션, 토에이 애니메이션, TMS 엔터테인먼트 등등 대형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양극화로 점쳐있었던 업계 환경에서 주역 로봇의 메카닉 디자인으로는 파격적인 형태였다. 이는 훗날 탄생한 수많은 작품들의 메카닉한테 응용되고 오마주되는 기반을 만들어냈다.

또한 해당 작품에서 드러나온 상징적 및 낭만적 전개를 타파하는 스토리텔링, 주역 메카닉들에게 전투 병기적 관점을 응용한 연출 표현, 주인공 집단과 적 집단의 본격적인 전쟁을 재현한 내용, 이로 인한 사람들과 주인공들의 대립, 적에게 도저히 낭만은 찾아볼 수 없는 섬멸 및 학살적 목표에 치중한(인간폭탄의 공포) 공격 작전, 마지막에 밝혀지는 적의 정체는 당시 일본의 애니메이터들과 애니메이션 제작사들, 스폰서에게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주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다.

거기다가 주역 로봇기지들은 마지막에 절대 부서지거나 파괴당하지 않는다는 공식을 타파한 연출은 시청자뿐만 아니라 당시 《우주전함 야마토》로 일본 사회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던 초창기의 평론가들과 오타쿠들, 애니메이션 잡지계[9]한테도 자연히 컬처 쇼크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충격적인 스토리텔링은 나중인 몇년 뒤에 전설거신 이데온에서 그 두각이자 절정으로 나타났다.

이 시점에 토에이 또한 여러 로봇 애니메이션들을 선라이즈에 하청을 맡기는 방식이 아닌 오리지널 제작으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몇몇 작품(지그, 가이킹, 단가드A)들을 제외하고는 수익면에서 쫄딱 망해버려서 자연히 로봇 분야에서 철수하고 다른 분야들을 모색하게 된다.

결국 그렇게 토에이가 성공한 방법은 기존의 나가이 고, 이시노모리 쇼타로, 마츠모토 레이지 같은 유명 작가의 작품들이 아닌 근육맨, 세인트 세이야, 드래곤볼, 미소녀전사 세일러문, 원피스, 토리코같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던 작가들의 원작 코믹스를 저연령층부터 청소년가족들까지 볼수 있도록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방법이었다. 그렇지만 이건 1980년대 초부터 기획을 시작해 맺어낸 결실이었다.

1.2.4 토미노의 출현 : 1979년 ~

점보트3로 인하여 토미노는 애니메이션계에서 널리 이름을 알렸다. 이어서 새로 배정한 애니메이터들과 함께 《무적강인 다이탄3》를 제작해 스폰서인 클로버를 돈방석에 오르게 해주었다. 결국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시나리오로 《기동전사 건담》을 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존 거대로봇물의 스토리 방식을 너무 벗어난 내용[10]과 완구 상품 판매방식의 전략 응용 실패로 인하여 조기종영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건담 오타쿠잡지들의 재조명, SF 설정에 대한 논란으로 인하여 건담의 인기도는 서서히 불어나갔다. 이것은 3부 극장판 제작으로 절정에 달하기에 이르렀다. 해당 작품의 제작으로 리얼로봇물 애니메이션이 일본에서 활발하게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SF에 대한 논란과 관련해서 1960년대의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 초창기 때 만들어졌던 철완 아톰철인 28호에 대한 대중들의 재조명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얼마 안 돼서 리메이크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 바 있으며, 추후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전면적인 시장 증대에도 단단한 한몫을 남겼다. 물론 슈퍼로봇물 애니메이션의 제작이 끊겼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러던 1980년 업계 시장으로 불어닥친 프라모델 신드롬을 선라이즈와 소츠 에이전시가 감지하였다. 이후 반다이와 상품 권리에 대한 계약을 체결해 반다이에서 주역 집단(지구연방)뿐만 아니라 적 집단(지온)에서 나왔던 메카닉들까지 활용해 건담 프라모델 제품들을 만들어냈다. 1982년 공개 당시 압사 사고가 일어났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1.2.5 제작 환경 다면화 : 1982년 ~ 1984년

이러한 건담의 연출을 받아서 1982년, 제작 시기의 유행하던 대중문화 코드들(아이돌, 연애, 노래 등)을 적절히 삽입해 제작한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는 스튜디오 누에가 본격적으로 오타쿠들한테 인지도를 알린 작품이 되었다. 카와모리 쇼지, 미키모토 하루히코, 이즈부치 유타카 같은 스태프들이 여러 작품에서 활약하게 되는 시작점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같은 해에 개봉한 우주전사 발디오스의 극장판 개봉[11]마크로스의 흥행과 더불어서 기존의 토에이와 선라이즈 투톱 체제의 거대로봇물 제작환경을 벗어나도록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스튜디오 누에와 토미노 감독뿐만 아니라 선라이즈에서 활약한 여러 애니메이터들 또한(타카하시 료스케, 칸다 타케유키, 야스히코 요시카즈, 나가노 마모루 등) 각자의 실력으로 198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수많은 슈퍼로봇 및 리얼로봇 애니메이션의 감독을 맡고 제작을 지휘해나갔다.

1.2.6 끊임없는 건담의 후속작 발표 : 1985년 ~

점차 리얼로봇의 몰락이 예상되고 있었던 1985년에 반다이의 요청으로 토미노 요시유키기동전사 Z건담을 제작해 다시 건담시장에 발표하게 되었다.

이후에 제작된 더블제타 건담과 더불어 제타건담이 전작과의 관계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다른 인물 설정 및 스토리 텔링으로 인해 오타쿠들간의 반복되는 설정충돌로 전체적인 팬층의 분열 조짐이 일어나고 있었다. 스폰서 업계의 끊임없는 제작요청 또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영향들을 느껴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던 토미노는 결국,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1988년, 극장판으로 제작해 공개해서 모든 전투의 시작이 되었던 주인공들을 사실상 죽여버리기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의 제작은 그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많은 설정 충돌과 팬들간의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서 매우 아이러니해졌다.

그 작품에서 보조 제작진으로 활약하고 있었던 애니메이터가 있었다. 그는 바로 안노 히데아키였다.

1.2.7 리얼로봇의 몰락과 슈퍼로봇의 재조명 : 1985년 ~ 2000년

결국 80년대 중반에 이르게 되면서 소비 계층의 고령화(...) 및 닌텐도의 등장 등으로 프라모델의 수요가 줄어들어 업계 전반에 타격을 입게 되자 리얼로봇물의 생산은 자연히 하락하게 된다. 이어서 불어온 버블경제의 몰락(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20년)과 경기 하락까지 겹치게 되자 그 작품들의 속편들과 신작들을 때마침 유행하고 있었던 OVA 방식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한편 1980년대 후반, 슈퍼로봇물 애니메이션은 다시 시장에서 활발하게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외면받고 있었던 초월적, 무한적인 메카닉의 파워 및 기본적인 무장 설정과 야수적, 서양적, 마신적스러운 로봇의 디자인 형태 설정, 왕국, 제국 체제 같은 악역 캐릭터 세력 구도 설정 등이 로봇 애니메이션에 다시끔 응용하게 되는 복고풍이 업계에서 불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시점부터 2세대 애니메이터들의 제작현장 투입(타카마츠 신지, 후쿠다 미츠오, 이마가와 야스히로, 이마이시 히로유키, 오오바리 마사미, 카토키 하지메 등)으로 인해 2000년대 초까지 활발하게 제작이 이루어진다.

1.2.8 안노의 출현 : 1995년 ~

본래 왕립우주군 제작이 끝나면 해체되었어야 했던 가이낙스를 고민 끝에 유지하기로 결정지어져 미래에 대한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일단 선라이즈 본사로 연락해서 하청 작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톱을 노려라!,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등등 작품들로 성공해 가이낙스가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안노 또한 토미노의 작품[12]들에서 나오는 여러 연출의 영향과 특촬물, 기독교에서 따온 다양한 오마쥬 등등을 만들어낼 차기 작품의 구상도에 도입해나갔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스폰서를 모집해서 저예산으로 짜여진 환경을 어느 정도 탈피하기 위해 제작위원회 방식으로 만들기로 결정한 작품이 바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었다.

당시 에반게리온의 영향은 성인 오타쿠뿐만 아니라 청소년 시청자들에게도 대중적인 인지도가 매우 높아져서 여러 미디어 믹스들을 활발히 전개시켜서 많은 팬층과 매니아들을 전세계에 퍼뜨리는 성과를 알렸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 유지되고 있었던 선라이즈 체제의 독점적인 거대로봇물 제작환경을 서서히 무너뜨리는데 일조하였다. 그리고 제작위원회 방식이 애니메이션 제작의 주 방식으로 자리잡는데 단단히 한몫을 하였다.

1.2.9 마니아적 다변화 : 2006년 ~

2006년 이후로 오타쿠 성향의 애니메이션이 시장에서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이전부터 점차적으로 심야 시간대에 방송된 성인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들이 없었다고 하는 건 비상식적인 주장임에 다름없다. 그런데 이런 애니메이션들의 제작 양성화를 바라던 일부 마니아한테 그 시작으로 다가온 작품이 바로 레전드급으로 회자되는 교토 애니메이션 제작의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였다.

그러자 애니메이터들 또한, 굳이 시청률 감소로 인해서 손실을 볼 필요 없었던 전연령대 로봇 애니메이션 대신 새벽 시간대에 방송되는 2쿨 형식으로 이루어진 심야 애니메이션과 아예 그 작품들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중견적 규모의 제작사들[13]로 인력들을 이동시키는 전략으로 거대로봇물의 제작 방향을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1.2.10 일본 사회와 내수 산업 생산에 미친 영향

1.2.11 거대로봇물 애니메이션 흥행의 실패와성공 어두운 그림자

2 한국에서의 거대로봇물

1975년MBC가 수입해 방영한 《마징가Z》는 폭발적이라는 말도 부족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것을 본 여타 방송사들이 《아스트로 강가》, 《그레이트 마징가》, 《그렌다이저》 등을 수입해 방영하는데 이들 거대로봇물 또한 큰 인기를 얻었으며, 《로보트 태권브이》의 등장 이후 어린이들을 수요로 한 국산 로봇 애니메이션들이 연속해서 극장에 등장하면서 한국에서 거대로봇물은 입지를 구축했다.

그런데 1980년 제5공화국 시대에 들어가면서 공중파를 통한 일본제 거대로봇물의 방송은 완전히 끊기고 만다. 다만 제5공화국 시대에 국가적인 탄압[14]으로 한국에서 거대로봇물이 몰락했다고 하는 말들이 종종 보이지만 그것은 기억의 변조에서 나온 말일 뿐 사실과는 꽤나 거리가 멀다. 공중파를 통한 일본제 거대로봇물의 방송이 끊어졌다 해도 극장용 한국산 거대로봇물(표절 문제가 있는)의 제작은 탄압이고 뭐고 없이 계속 이어졌으며, 한국산 거대로봇물은 공휴일만 되면 공중파에서 몰아서 방송해주기까지 했다. 이 당시 한국산 거대로봇물에 나오는 로봇들의 90퍼센트는 표절이었다는 게 문제지만. 이게 누가 탄압해서 표절한 것도 아니지만 이건 뭐.

한편 제5공화국 시기에 들어와 폭발적으로 보급이 늘어난 비디오데크 시장을 위해 온갖 비디오테이프들이 쏟아졌으며, 이 와중에 별별 거대로봇물들이 다 수입되어 주로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거대로봇물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늘려갔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 지역유선방송에선 고정적인 시간대를 두고 비디오테이프로 나온 애니메이션들을 방송해 줬는데, 이를 통해 비디오데크가 집에 없는 사람들까지도 거대로봇물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제5공화국 시기인 1980년대에는 정말 별별 작품이 한국에 비디오로 등장했다. 콤바트라V나 볼테스V, 갓마즈 같이 저쪽에서도 메이저 축에 속하는 것도 들어오는 한편, 은하선풍 브라이거를 비롯한 J9 시리즈도 한국에 수입되었으며,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나 기갑창세기 모스피다, 특장기병 돌박 같은 리얼로봇물 계열도 들어오고, 거기다 X봄버나 초공속 가르비온 같이 물 건너에서도 그게 뭔가요 하는 소리가 나오는 작품들까지 수입되는 등, 70년대 중반 작품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제작된 당시 최신작까지 온갖 작품들이 들어오는 카오스를 연출했다.

여담이지만, 묘하게도 이때 수입된 작품들을 보면 토에이 동화나 타츠노코 프로덕션 같이 메이저 축에 속하는 회사들의 작품이나 도쿄 무비 신사 같은 곳의 로봇물도 들어오는 한편, 아시 프로덕션이나 국제영화사같이 상대적으로 마이너 축에 속하는 회사들의 거대로봇물들이 많이 수입되었는데 비해,[15] 선라이즈 작품 중에 수입된 건 단 하나도 없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선라이즈의 거대로봇물 중 최초의 국내 수입작인 마동왕 그랑조트가 들어온 시기는 5공화국 시대가 끝나고 나서였다.)

5공화국 말기에 들어가면서 일본산 거대로봇 애니메이션은 7년만에 공중파로 돌아오는데, 그 첫 작품은 합신전대 메칸더 로보였다. 메칸더로보는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이어서 혹성로보 단가드A, 사이코아머 고바리안이 그 뒤를 이었다.

요즘에는 또봇과 카봇의 성공으로 자체적으로 만드는 국산 거대로봇물이 강세다. 특징이라면 주 고객층인 아이들에게 어필하기 좋은 차량으로 변신하는 로봇들이 대부분이라는 것. 특히 이 로봇물은 일본에서도 좋은 반응을 일으켜서 급기야는 한국이 이제 우리 일본보다 거대로봇물을 더 잘 만든다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지경까지 왔다.

3 자료집 및 시리즈 같이 보기

4 거대로봇 애니메이션 연표

4.1 1963 ~ 1980

4.2 1981 ~ 1985

4.3 1986 ~ 1990

4.4 1991 ~ 1995

4.5 1996 ~ 2000

4.6 2001 ~ 2005

4.7 2006 ~ 2010

4.8 2011 ~ 2015

4.9 2016 ~ 2020

4.10 시기 미정

  1. 대표적인 작품이 1953년작 영화 우주전쟁트라이포드나 1957년작 영화 "크로노스"에 등장하는 거대로봇.
  2. 단 어디까지를 강화복으로 보고, 어디까지를 로봇으로 할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파워드 슈트, 강화복이라는 명칭 때문에 일종의 복장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좁게는 몸에 완전히 밀착되는 것만 강화복이라 부르기도 하고, 건담처럼 거대한 기계 장치를 모빌슈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결국 강화복이든 로봇이든 만든 사람 마음대로 부른다.
  3. 용자로봇 중에서도 타 거대로봇물의 주역로봇처럼 자아 없이 조종사에 의해 움직이는 마이트카이저, 인간이 몸을 영체화하여 기계에 깃드는 식으로 융합하는 용자지령 다그온의 용자로봇들(라이안건키드 제외), 사이보그가 기계 내부에 수납되어 물리적으로 융합하는 가오가이가킹 제이더는 강화복 개념에 가까울 듯 싶다. 다만 인간 사이즈의 순수기계인 안드로이드(정확히 말하자면 외계인의 영혼이 안드로이드에 깃든 거지만)가 거대한 기계와 융합하는 파이버드는 다소 애매하다.
  4. 라이트 노벨NT노벨이라 부르는 것과 비슷한 맥락.
  5. 선라이즈도 혁명기 발브레이브, 크로스 앙쥬 천사와 용의 윤무, 코드 기아스 망국의 아키토 등 2010년 이후로 이미 3D로 갈아타고 있다. 건담 역시 유니콘, 오리진 등 매년 조금씩 3D로 교체 중인 상황. 본즈는 초대형 회사인 선라이즈에 비하면 로봇물을 굉장히 조금만 만들고 있지만, 오직 2D만으로 그리고 있다.
  6. 학전도시 애스터리스크의 알디, 레갈리아 The Three Sacred Stars 등.
  7. 이후의 다른 작품들이 뱅크신으로 대충 필살기 공격 씬을 활용하는 형태가 많지만, 나가하마는 필살기 장면 연출을 새롭게 그려넣도록 일일이 스태프들한테 요청하였다고 한다.
  8. 당시엔 오사카도쿄를 제외한 방송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은 매우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9. 아니메쥬, 아니메디아
  10. 인간과 인간(적군과 아군)끼리의 싸움, 지나친 사람들의 죽음, 아이들에게 맞지 않던 SF 설정 등
  11. 사실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제작의 점차적인 활성화는 1979년1980년, 《은하철도 999》와 《도라에몽 - 노비타의 공룡》이 흥행 대성공으로 애니메이션 영화가 일본 정부에서 주요 산업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 유력한 원인이기도 했지만.
  12. 물론 토미노가 나가하마의 작품에 비판적으로 영향을 받아낸 것과 매우 흡사한 형태로 볼 수도 있다.
  13. 자세한 회사들은 차후에 추가바람.
  14. 사실 1980년 8월에 국보위의 사회정화운동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방송협회 측이 TV프로그램 가을 개편 시에 불량 만화영화 등 폭력 프로그램 배제를 한 적이 있다. 이는 단순히 폭력성만을 문제삼은 것이라고 한다.
  15. 이런 마이너 스튜디오의 작품들은 판권가가 낮았을 가능성이 높고, 결국 수입사가 싼걸 지르는 바람에 묻어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16.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에반게리온 자체는 로봇이 아니라 생체병기이다. 그치만 제트 얼론이 있으니까 상관없잖아?
  17. TV방영을 위해 피가 튀는 장면의 혈색을 바꾼다거나 여캐들의 노출을 가린다거나 해서 내놓은 버전. 내용 변화는 사실상 없고, 베터맨과 내용이 알게모르게 연결되는 장면들만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