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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군의관이 어린 딸에게 보낸 편지였다.이 군의관은 딸에게 앞으로 살아가면서 살생을 하지 않도록 잠자리 같은 미물일지라도 잡으면 바로 놓아주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이 군의관은 연합군 포로들을 학대한 죄로 결국 사형 판결을 받아 처형되었다.
- (존 다우어 저, 최은석 옮김 "패배를 껴안고", p.682.)
...그런데 독일을 악하게 그려내는 건 일본 게임으로선 좀 위선적인 거겠죠.그래, 네 녀석들이 2차 세계대전 때 누구 소시지 빨아댔는지는 전 세상이 다 안다고.
- 게임 평론가 얏지, Zero Punctuation 전장의 발큐리아 리뷰에서
목차
- 1 개요
- 2 주의점
- 3 실제 사례
- 4 일본이 피해자 행세를 하게 되는 까닭
- 5 일본의 피해자 행세를 바라보는 외국의 시각
- 6 클리셰
1 개요
일본의 가해자였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피해자인 척 행동하는 역사 왜곡의 일종이다. 더 비극적인 점은 이걸 실행하는 녀석들은 자기들이 애국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외부에 입힌 피해 자체를 부정하고(난징대학살 같은 것들), 규모가 컸던 전쟁범죄는 축소하며(731 부대 ,치치지마 식인 사건 같은 것), 피해자 드립만 치면서 미국을 포함 우방국들 전체까지 이를 갈도록 만들고 있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의 위키 사이트까지 넘어들어와서 자신들의 과거사에 대해서 집요하게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과거 인조이 재팬에서도 365일 상주하며 혐한 날조 자료를 한국인들에게 제시하며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켜왔었다.
단순히 독도 문제 등으로 한국만 자극하면 그나마 한국과의 사이만 나빠지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본이 독도 문제만 걸고넘어진다고 해도 일본은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문제랑 쿠릴 열도 분쟁으로 중국, 러시아와도 영토 분쟁 중이다. 따라서 한국만 고립시키려면 중국,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한데 이들과의 영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렵다. 게다가 중국은 일본에 대해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조금 더 나아가서 보면 당시 연합군 측의 국가들이 거의 죄다 일본의 전쟁범죄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이나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일본의 각종 매체에는 과거 일제의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받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것 자체만으로는 반전 사상을 강조하는 순기능적인 면도 있으나 문제는 이러한 묘사를 통해 일제의 전범행위를 희석시키게 된다는 결과이다. 일본의 현대사에서 공습, 원폭 등의 피해만을 부각시켜 전범으로서의 행위를 덮어씌움으로써 작가의 의도야 어쨌건 독자로 하여금 역사관의 왜곡을 일으키는 것이다. 여기서 피해'만' 강조한 게 아닌 작품인 맨발의 겐 등은 해당되지 않는다. 맨발의 겐은 일본의 원폭 피해와 미국의 흑심을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오히려 그것보다 더 강조하는 게 일본 군부의 막장성에 대한 성토다. 대놓고 전쟁 책임을 천황에게 묻고 있는 몇 안되는 작품이다.
물론 '공습이나 원폭을 당했음을 묘사하는 것'은 그 원인을 감추거나 엉뚱한 쪽으로 돌리지 않는 한은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가령 원폭에 의해 피해를 입은 어떤 일가의 모습을 그린다고 해서 "원폭 맞았으니 일본은 불쌍하고 전쟁을 일으킨 것에도 책임이 면제된다!"라는 주장이라고 무조건 간주할 수 없다. 만화 맨발의 겐에서는 원폭 피해자를 중심에 두면서도 그 원인이 전쟁 도발이라는 자국의 책임에서 기인함을 분명하게 시인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된 원인을 애써 도외시하여 피해자로서의 모습만 강조하는 작품이 일본 창작물은 매우 많은 것이 사실이며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에서 침략자, 가해자로서의 책임은 등한시하여 균형을 잃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는 노골적인 책임회피는 아니더라도 피해 결과를 유발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외면과 방조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이는 침략자, 가해자로서의 모습을 묘사하면 우익 세력의 테러를 받고 국가 권력은 이를 방조하는 일본 정치의 구조적인 문제에도 크게 기인하고 있다. 하지만 외압에 굴해 휘둘리는 이들 작가들이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극우 미디어물처럼 극단적이고 분명하게 일본 우익사관과 역사왜곡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잠재적으로 우익사관의 영향을 받은 이데올로기를 퍼트리기 때문에 이러한 피해자 행세 역시 경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범죄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러한 약소민족 행세는 침략자, 가해자로서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중화기술이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을 전쟁의 피해자로 생각하여 책임을 부정하고, 구한말 및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 또는 동남아 여러 나라에 이바지하였다고 하여 가해를 부정하고, 가난하고 못 사는 나라를 자기들이 다스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 또는 위안부는 자발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여 피해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나치 독일의 만행만 강조 또는 미국과 중국과 영국과 프랑스 등 연합국에게 입은 피해만 강조하여 비판자를 비난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을 중심으로 서양 열강의 식민 지배를 몰아내고 서로 번영과 평화를 누리자'고 하는 이러한 일련의 주장들과 같이 자신들의 죄의식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을 사용하여 더 높은 충성심(가치)에의 호소를 한다.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있다면 태평양 전쟁에서 만큼은 미국 역시 피해자라는 점이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곤 하나 일본에 의하여 약 10만여명의 미군장병들이 전사했고 참전으로 인한 경제력 소모역시 상당한 수준이다. 일본의 중일전쟁과 동남아 침략에 대한 미국의 자원을 통한 제재는 정당한것이었고, 이것 때문에 일어난 진주만 공습역시 미국은 피해자일 뿐이다. 미국이 전쟁을 유도한적도 없고,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선빵을 때린건 당연히 일본 잘못이다.
물론,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나 도쿄 대공습 같은 경우 미국의 잘못이 있다고 판단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은 전쟁 종식을 앞당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실행한 일들이다. 도쿄 대공습은 폭격의 의의에 군수 공장의 파괴 및 가내 수공업의 파괴/확산 방지가 있다. 당시 일본은 군수물자의 상당부분을 가내 수공업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파괴하지 않으면 전쟁은 필연적으로 장기화될 수 밖에 없고 그에 따라 미국의 피해 역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작전을 입안했다. 원폭 투하 역시 전쟁의 단기 종식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사건으로, 미국의 잘잘못을 따지기 힘들다.
최종적으로 만약 전쟁이 장기화 됐을 경우 피해가 가장 큰건 다름아닌 일본인 그 자신들이다. 그 시기는 일본인들에게도 상당히 힘들었던 시기인 만큼 그것에 대한 불만이 안 나올 순 없긴 하지만.
만약에 원폭 투하로 일본이 항복하지 않고 몰락 작전이 실행됐으면 어땠을까? 진짜로 일본어는 지옥에서나 듣는 소리가 될 수도 있었다.
그 외에도 일본의 동남아 침략에 대하여 미국 역시 동남아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화를 행하고 있었다고 반론할 수 있다. 확실히 미국 및 서방국 들이 동남아에서 각종 문제를 일으킨건 사실이나 미국이 그랬다고 일본도 그럴 수 있다는 건 피장파장의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은 동남아 국가에 대해 훨씬 심한 수탈과 침략을 자행했으며 이 점은 태평양전쟁 당시 현지 주민들이 미국, 호주 등의 연합군들에게 협력했다는 점에서 증명이 된다.
주의할 점은, 일본의 피해자 행세는 리그베다 위키와 그것을 계승한 나무위키 등의 엔하계 위키에서만 쓰이는 용어라는 점이다. 일본인이 피해자인 척 한다는 비판 자체는 흔하지만, 일본의 피해자 행세라는 용어 자체는 학술적인 용어가 아니며, 이런 용어를 반복적으로 쓰는 경우는 십중팔구 엔하계 위키를 하는 사람들이다.[1] 이 문서명은 일반적인 스타일과 위화감이 있게 느껴질 텐데[2] 이 문서명은 설명이 아니라 집단연구에서 출발한 개념에 대한 지칭에 가깝다. 다소 거리감이 있는 표현이지만 웬만하면 표현에 등장하는 의도는 추론할 듯.
2 주의점
당연하지만 이러한 피해자 행세는 일본의 주류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다루지는 않고, 대다수 일본인들의 의견과도 동떨어져있다. 한일교류가 매우 활발한 21세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일제가 한창 패악질을 하던 시절에조차 정상적 사고가 가능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심지어 일본의 피해자 행세에 심심하면 등장하는 원폭 투하에 대해서도 본토 결전을 준비하던 일제의 의욕을 꺾어놓은, 즉 미국이 일본인을 구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은 상황이다.
다행히 모든 일본인들이 이런 피해자 행세를 하는것은 아니고 일본 제국의 범죄와 그 책임에 대해서는 하나도 기억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이 일본이 일으킨 침략 전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이 잘못이었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고, 당시 일본 국민의 여론도 태평양 전쟁에 우호적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며 쇼와 덴노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현재는 일본 국민 과반수가 쇼와 천황에게도 전쟁 책임이있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한일기본조약,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이 분명히 남아있고 교육과정상에 식민지배에 대한 서술 역시 포함되어 있으므로 일본이 '역사를 마냥 부정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 극우들이 주구장창 날조라고 주장하는 난징 대학살의 경우에도 대학살임을 인정하는 여론이 대다수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물론 최근에는 아베 신조 정권의 고노 담화 재평가나 교과과정 변경 등으로 인한 어느정도 있을 수 있는 통념이긴 하나 시민 사회의 반발로 무산되고 기본적으로 일본 정부의 교과서는 국정 교과서가 아니고 논란이 되고 있는 극우 교과서를 채택하는 학교는 의외로 그렇게 많지 않다. 일본의 일부 출판사에서의 교과서 극우화는 대한민국의 교과서 국정화 사태처럼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의무 교육에 개입하려는 시도였다기보단 사실상 표심을 위한 제스쳐에 가까운 행위였기에...
과거에 실상을 모르던 시민들은 둘째치더라도 실상을 안 지식인 중에는 한국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건 사람까지 있었다. 심지어 일본군 군의관으로서 소장까지 달면서 생체실험은 커녕 조선인 환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위대하신 분들도 있다. 바로 소록도의 손양원이라는 별칭을 가졌던 하나이 젠키치.
어쨌든 결론은 이 문서 자체의 날선 서술 자체는 일본에 있는 극우 꼴통들의 의견이 대다수이므로 이를 일본 전체의 의견으로 단정짓지 말자는 이야기.
3 실제 사례
일본은 연합국의 연합군으로 부터는 피해자 행세를, 침략한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일종의 조력자 행세를 하고 있다. 후자는 대동아 공영권 문서 참조. 같은 추축국이었던 독일에게는 나치 독일을 강조하여 일본의 침략행위를 희석시키려는, 일종의 물타기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3.1 일본은 조선을 근대화 시켰다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은 일본을 침략자로 여기고 그들을 자신들에게 위해와 고통을 준 적대세력이라고 평가를 내렸다. 이는 매우 당연한 이야기인데 자신의 국가를 멸망시켜서 식민지로 만들고 그 식민지에서 한국인을 수탈한 자가 일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일각에서는 식민지 시혜론이라는 주장을 한다. 대강 요약하자면 우리는 가난하고 못 사는 나라인 조선을 발전시켜주고 먹여 살리는데 총력을 기울였는데 조선인들은 배은망덕하게도 이러한 은덕을 베풀어 준 일본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일본에게 독립운동과 같은 저항으로 일본과 일본인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것인데 이는 애초에 도와달라는 요구 자체를 하지도 않고 멀쩡히 잘 있는 이웃 국가를 침략해서 점령한 침략자라는 입장을 망각한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말해 침략을 수혜로 바꾼 웃기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적용하면 살인은 구원이라는 헛소리도 가능하다 마치 깡패가 때리고 맷집 좋아졌으니 감사하라는 꼴이다.
아쉽게도 이런 논리 같지도 않은 논리는 확대되어서 구한말 때도 철도, 전기 등을 조선에 공급해 줘서 광명천지(光明天地)를 준 것도 일본의 은덕이라며 힘없고 무능한 조선인들은 이러한 일본의 은덕에 감사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이러한 은덕을 모른 채 일본인을 침략자라고 무시한다며 조선인들은 일본의 이러한 감사에 보답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도 애초에 구한말 때 일본이 만든 시설 자체가 조선의 정부로부터 받을 돈은 다 받고 시설 근방에 있는 조선 백성을 강제로 잡아다가 무보수로 강제노동해서 만든 시설이며 그 목적도 쌀이나 물자를 일본으로 실고 나르는 등 일본의 대륙 침략을 위한 것이니 조선 핑계를 대기도 힘든 몰상식의 극치다. 그렇게 좋은 시설이면 일본에나 설치하라고 그리고 전구는 우리나라가 동아시아 최초로 설치했는데?!
이런 주장을 따르는 작품의 경우 선량하고 기술이 발전된 일본이 무지몽매한 이웃 국가인 조선에 대해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접근한다는 스토리를 주로 내세우는데 실제 상황을 생각하면 역사왜곡의 극치라고 보면 딱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모르는 제3자의 입장에서는 일본이 자원봉사자처럼 보이게 될 수 있다. 실제로 유튜브 등지에서 일본 우익들의 프로파간다 영상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조잡한 것들이 많으나 상당히 절묘하여 당시 상황을 알 리 없는 한국의 젊은 세대들도 낚일 정도의 선동 영상들도 꽤 보이며, 작정하고 한국인들을 낚으려고 한글 자막까지 넣은 영상도 많다. 이러한 영상들이 더욱 더 양성되면 많은 외국인들을 낚을 가능성이 크고 이에 대한 체계적인 논리로 무장한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다만 이는 국가를 주체적인 입장으로 삼았을 때나 가능한 논리인데, 근대국가는 기본적으로 기업을 성립시키기 위한 조건에 맞춰서 움직이게 되어 있다. 돈으로 정치인이 만들어지고 돈으로 정치가 가능하기 때문인데, 특히 19세기나 20세기에는 참정권 자체가 돈을 가진 사람들을 위주로 해서 형성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3] 식민지라는 것도 그 과정의 연장선에 있었던 것이었다.
무엇보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대한제국이 외세의 간섭 없이도 충분한 근대화를 할 수 있다는 뜻과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수도를 중심으로 근대화를 추진했다. 대표적으로 전기사업과 일본보다 빠르게 도입한 전철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다만 대한제국은 일본의 야욕과 기울어지는 국세에 의해 그 세를 길게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한 걸 딱 한 줄로 정리하자면 "도살장 설비를 최신식으로 해준다고 돼지가 감사해줘야할 이유는 없다."라고 정리할 수 있다.[4]
3.2 일본은 을사조약을 통해 조선과 조선인들을 보호하려고 했다
아, 조선 보호하려고 무장시킨 일본군들을 회담하는 곳에 주둔시키셨나? 회담중에 누구 쳐들어올 일 있나?
식민지 근대화론 같은 주장이 일본인 일각에서 전개된 주장인 것과는 달리 을사조약과 경술국치는 일본 정부에서 직접 공식적으로 공표한 주장이라는 것에서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이 주장을 그대로 따라하는 작품은 일본의 피해자 행세를 하는 작품을 넘어서 당당히 극우 미디어물에 속할 수 있다.
좀 더 자세하게 들어가서 그 당시의 일본 정부의 주장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 1905년에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것이 아니고 조선을 일본이 서구 열강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 보호차원 하에 평화적으로 체결한 것인데 이를 모르는 어리석은 조선인들은 을사조약을 가지고 잘못된 조약이라느니 강제로 체결한 조약이라고 왜곡하며 일본인들을 공격하였다는데 이것 때문에 일본인들이 억울한 피해를 입었다.
- 1910년 경술국치에 대해서는 '한일병합'은 일본의 국역(國域) 확장과 조선과 일본은 평화적으로 한 국가임을 알려주는 정당하고 축하할 일인데 이 역시 무능하고 어리석은 조선인들은 그게 다 일본인의 잘못이라며 억지로 일본과 일본인에게 화살을 돌리고 어리석고 포악한 조선인들 때문에 일본인들이 억울하게 죽거나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애초에 멀쩡하게 잘 있는 이웃 국가를 강제로 식민지로 만들면 당연히 해당 국가는 격렬하게 저항하며 전쟁할 권리가 있다는 상식을 씹어 먹는 것부터가 문제며 을사조약에서 경술국치까지 연이은 조약 체결과정에서 당사자에 대한 협박, 문서위조, 인장위조 등의 행위가 발생하여 국제법상 조약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도 싹 잊어버린 어이없는 주장이다.
그리고 을사조약도 당시 고종 황제가 헤이그 특사까지 2차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하며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려 했던 건 뭐가 되느냐는 문제도 있는데, 이 문제만 놓고 논해도 을사조약이 정상적으로 채결된 조약이 아닌, 강압적이며 일방적으로 맺어진 늑약이란 사실이 증명된다.
그러면서도 조선인의 피해에 대해서는 일절의 언급이 없다. 당장 을사조약 이후 경술국치까지의 시기는 가히 의병 전쟁이라 할 만큼 조선에서의 저항이 대단했다. 그러나 일본은 남한 대토벌 작전이라는 학살 계획을 세워 조선의 의병들을 짓밟아버렸다. 이 과정에서 일반인에 대한 학살은 당연히 일어났다. 국내 의병 활동은 경술국치 이후에도 얼마간 지속되었다. 하지만 1915년 7월 사실상 마지막 의병장이었던 채응언 장군이 포로로 잡힌 이후로는 이러한 무장 투쟁 활동은 국내가 아닌 해외로 옮겨지게 된다. 이런 것은 싹 지우면서도 일본인의 피해는 끈질기게 언급해대며 일본과 일본인이 상처를 입게 된 것은 모두 무능하고 어리석은 조선인들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였다. 남의 나라를 멋대로 침공하면 피 본다는 사실은 까먹었냐?
게다가 관동대지진 때는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조선인이 지진을 틈타 일본인을 해치려 한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하거나 유언비어가 퍼지는 것을 알면서도 방조했으며 그것 때문에 수많은 무고한 조선인들이 최소 6,000여 명이나 살해당했다. 이승만 정부 당시 국가기록원의 작성에 따르면 290명이긴 하다.
하지만 이건 피해자가 명백히 밝혀진 경우고 여기에 일본에서 지내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광복 이후에도 일본에 잔류했음을 고려해야 한다. 즉 이들의 존재까지 다 고려하면 피해자 수가 6,000명이라는 것도 100% 틀렸다고 단정할 수 없다.#, # 조선인들이 살해당할 때도 일본 정부가 나 몰라라 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아니 조선인들을 보호했다면서?
물론 나중에는 경고문도 뿌리는 등 대책에 나서긴 했다. 그런데 이것도 주변국의 압력이 심해지고 참상이 조선에도 전해지면서 조선인들의 분위기가 매우 나빠지자 마지못해 한 것이다.
3.3 일본은 테러를 당한 피해자다
3.3.1 안중근은 암살자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일어났던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대해서 "이토 의장은 당연히 피해자이며 어리석고 무례한 조선인 괴한에 의해서 억울하게 암살당했다"고 주장한다. 지랄도 풍년이다
당시 매국노이자 초악질 친일파(2번 항목)인 이완용, 송병준 등도 안중근이라는 놈은 대일본제국에 반역한 역적이자 대일본 이토 히로부미를 요절하게 만든 괴한이라며 이토는 그 괴한놈에 의해 죽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안중근은 일본의 정치가를 저격한 살해범이자 괴한으로 보였던 것이 당연하였으며 한국에서 이를 의거라고 하는 반면 일본에서는 당연히 암살, 저격, 테러라고 규정지었고 안중근에 대해서도 한국에서는 구국의 영웅, 애국자로 칭송하는 반면 일본에서는 우익 시각으로 일국의 정치가이자 원수를 저격하고 살해한 괴한, 정치 테러리스트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일본의 입장에 대한 주장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에 불과한 것이다. 반복해서 언급하지만 멀쩡히 잘 있는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식민지로 삼는 순간 당연하게도 피해를 당하는 국가인 조선과 일본 간에는 전쟁 상태에 돌입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한제국이 나라 운영이 정상적이지 않은 측면도 있기는 했으나, 그것이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해 주지는 못한다. 이 부분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은 대한제국, 청일전쟁 문서를 참조.
어찌되었든, 일본은 먼저 다른 나라에 침략을 함으로써 아무리 늦게 잡아도 1905년부터는 전쟁상태에 돌입한 셈인데, 요인에 대한 암살이 행해지는 것은 당연한 전쟁 수행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이에 더해서 이토 히로부미는 단순한 일본의 정치가가 아니라 조선을 침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 중인 인물이라 당연한 제거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본이 항일의병장과 독립군 지휘관들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고 지속적으로 사냥을 한 것만 봐도 일본도 열심히 조선의 주요 인물에 대한 암살 및 테러를 수행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으며 이미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를 살해하여 먼저 스타트를 끊은 것도 일본이다. 시작도 일본이 했고 피해도 일본이 더 많이 주었는데 반격하면 안 된다는 건 그야말로 엉터리 논리다.
다만, 을미사변을 주도한 것이 흥선대원군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 부분은 을미사변의 주동자로 의심되는 유길준 한 명의 주장에 근거한 것으로 그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 부분이다. 을미사변 당시 흥선대원군은 주도가 아니라 얼굴마담 비슷하게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설도 있어서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라는 이야기.
안중근 본인이 이토를 살해한 이유라는 이토의 죄목을 보더라도 최소한 조선 입장에서는 범죄자가 명백한 인물이다. 다음은 안중근 본인이 주장한 이토 히로부미의 죄목이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가 이런 죄를 지어서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 한국의 명성황후(明星皇后)를 죽인 죄
- 고종 황제(高宗皇帝)를 왕의 자리에서 내친 죄
- 을사조약(5조약)과 한일신협약(7조약)을 강제로 맺은 죄
- 독립을 요구하는 죄 없는 한국인들을 마구 죽인 죄
- 정권을 강제로 빼앗아 통감 정치 체제로 바꾼 죄
- 철도, 광산, 농림, 산지를 강제로 빼앗은 죄
- 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하여 경제를 혼란에 빠뜨린 죄
- 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킨 죄
- 민족 교육을 방해한 죄
-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키고 한국을 식민지로 만든 죄
- 한국사를 없애고 교과서를 모두 빼앗아 불태워 버린 죄
-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 현재 한국과 일본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한국이 아무 탈 없이 편안한 것처럼 위로 일본 천황을 속인 죄
- 대륙(중국)을 침략하여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 일본 일왕의 아버지를 죽인 죄
지폐 이전에 사용된 동전의 경우, 구한말 조선 왕실이 마구잡이로 찍어내는 등의 폐해가 컸다는 점과 휴대가 용이한 지폐가 보급되자 민중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는 점, 안중근이 과거 집필한 동양 평화론에서 한중일 삼국의 화폐 통합을 주장한 점을 근거로, 일본 은행권 강제사용이라는 주장에 대해 안중근이 되는대로 핑계를 댄 것이라 주장하는 친일파(2번 항목)와 일본 학자들이 소수 존재한다. 그러나 삼국 화폐통합은 어디까지나 한중일 삼국의 대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며 화폐 정리 사업을 진행할 당시 일본의 행보는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과는 거리가 멀어진 상태였다.
분명히 의무교육의 도입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크게 개입하였으나 이 교육이 '민족 교육'이냐고 묻는다면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안중근은 이것을 이유로 제시한 것.
안중근이 근거로 제시한 일왕을 속인 죄는 물론 메이지 덴노의 실권은 실권이라는 게 거의 없었다지만, 메이지 일왕이 정말 아무 것도 몰랐을 리가 없다. 게다가 일본군/인물 항목에도 알다시피 일본군의 전략을 결정하는 자리는 일왕이 임석한 어전회의였다. 게다가 이를 빌미로 "흑흑 우리 일왕께서는 나쁜 군부 놈들 거짓말에 속으셨스므니다. 흑흑흑."이라는 일본 측의 변명을 정당화 시킬 수도 있다.
일본 일왕의 아버지를 죽인 죄는 메이지 덴노의 아버지 고메이 덴노는 1867년 급사하였는데 공식적으로는 자연사지만 막부 측의 독살 혹은 그가 토막에 있어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존왕파의 독살이라는 설도 있다. 즉 위에서는 존왕파의 이와쿠라 토모미가 코우메이 일왕을 독살했다는 설을 취한 것이다. 이 부분은 지금도 진상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
추가로 안중근은 "내가 이토를 살해한 것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이 이상 멀어지게 하는 것을 막고자 하여 대한제국 의병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이토를 처단한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 그의 개인적 원한이 아니라 그가 살아있음으로 인해서 대한제국과 일본이 끝없이 반목하기 때문에 이를 막기위해 살해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이토를 살해한 이유를 해명했다. 즉 안타까운 소리지만 안중근은 죽을 때까지 일본 정부의 의도는 선하다고 믿고 있었던 것. 그랬으니 일왕을 이토 히로부미가 속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즉, 살인자는 맞으나 그냥 무고한 일본인을 죽인 범죄로서의 살인이 아닌 조선 침략의 일등공신을 처단한 독립 투쟁의 일환인 것이다. 안중근 의사도 그 때문에 사형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도망치거나 자결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된 것이다. 목표가 이토의 처단을 통한 독립 의지 표현이었기에 도망칠 수 없었고, 그가 믿고 있던 종교인 가톨릭은 자살을 어떤 이유로도 허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자살할 수도 없었다.
만약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단순한 살인이었으면 애당초 안중근을 독립투사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이판능이 그냥 묻지마 살인범이지 독립운동가 취급을 못 받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따라서 위에 언급한 암살자 논리를 펴는 일본의 작품도 상황을 잘 모르는 제3자가 보기에는 '무고한 정치가가 흉악한 테러리스트에게 당했다'라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충분히 일본의 피해자 행세에 포함된다.
3.3.2 강우규, 나석주, 이봉창, 윤봉길 등은 폭탄 테러리스트다
이것도 모자라 1932년에 일어난 이봉창의 도쿄 의거와 윤봉길의 훙커우 의거를 가지고도 말이 많았는데 일본의 입장에서는 그 두 놈은 대일본제국 폭파를 강행했던 사악한 테러리스트들이며 이봉창이라는 놈 때문에 하마터면 일왕폐하께서 서거하실 뻔 하셨다, 윤봉길이라는 놈 때문에 무고한 대일본 고위인사들과 일본 신민들이 폭탄 테러로 피해를 봤다는 무지막지하고 어이없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천하의 개쌍놈들 참고로 국내에서도 어떤 역사교과서에서 이 주장을 고스란히 실으려다 논란이 된 적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주축국으로써의 일본제국의 입장을 현대 민주시민사회로서의 일본국에 계승한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안중근 의거에서처럼 이봉창, 윤봉길 이 두 의사는 일왕과 침략을 주도하였던 일본 정치인과 군 인사들을 향해 응징을 하였던 것뿐이었으며 이들 이외에 민간인들에게는 아무런 폭해(爆害)를 가하지도 않았고 살상(殺傷) 또한 했던 적이 없다. 특히 이봉창 의사는 주변의 일본인들이 용의자로 몰려 두들겨 맞자 사형당할 게 분명함에도 내가 했다고 당당히 밝히기까지 했다.
또한 일본은 1930년대 들어서 침략의 마수를 개시하였고 이봉창 의거를 핑계로 중국에 선전포고를 하며 상해사변을 일으키고 중일전쟁을 벌이며 난징 대학살까지 주도한 만행을 저질러왔다.
3.3.3 일본인은 전후 한국인에게 피해를 입었다
전쟁 중에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볼 꼴 못 볼 꼴 다 당한 건 싹 입 닦고 전쟁 이후의 혼란기에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감정적으로 보복한 소수의 사례만을 강조하여 한국인을 악당으로 몰아간다. 요코 이야기나 김완섭이 어느 소설 가지고 날조한 카즈오 이야기 같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전반적으로 남한 지역에서는 미군정의 통제 때문에 심각한 폭력은 자행되지 않았고, 잔류 일본인들의 철수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물론 부동산과 사업체는 모두 몰수되었지만.
이 당시 잔류 일본인들의 수기를 보면 패망한 시점에서도 조선인에게 우월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경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서, 피신하면서 조선인의 집에 묵게 되었을 때 조선인이 밥을 주면서 "김치는 영양가가 좋다."고 자랑을 하자 "그렇게 영양이 좋으면 너나 먹어라.", "자랑할 게 김치 밖에 없냐?"고 지껄였다는 수기가 존재한다. 도망치다가 밥 얻어먹는 주제에 말이다.
당연하지만 패배감에 열폭한 일본인들의 난동이 일본 본토에서는 훨씬 더 심했다. 이 열폭감에 저지른 꼴사납고 창피한 짓들을 한국인들에게 덮어씌우고자 이런 날조가 행해진 감도 있고.
오히려 제2차 세계 대전 중 태평양 전쟁기에 벌어진 공출이란 미명하에 저지른 약탈, 지금도 지지부진하여 떠들썩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과 등의 문제만 봐도... 물론 보상 문제는 한일기본조약으로 청산되었으나 사과는 별개의 문제이다.[5]
아래는 일제 때 유행했던 노랫글이다.
신고산이 우르르 화물차 가는 소리에지원병 보낸 어머니 가슴만 쥐어뜯고요
어랑어랑 어허야
양곡배급 적어서 콩깻묵만 먹고 사누나신고산이 우르르 화물차 가는 소리에
정신대 보낸 어머니 딸이 가엾어 울고요
어라어랑 어허야
풀만 씹는 어미소 배가 고파서 우누나신고산이 우르르 화물차 가는 소리에
금붙이 쇠붙이 밥그릇마저 모조리 긁어 갔고요
어랑어랑 어허야
이름 석자 잃고서 족보만 들고 우누나
이 노랫글 중 마지막은 공출이란 미명하에 벌어진 약탈과 창씨개명에 대한 거다.
3.4 독도에서 강치가 멸종한 원인
강치 문서의 2번 단락만 봐도 나오니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 역시 일본은 아직도 대한민국에 책임을 떠넘기려 하고 있다.
3.5 전쟁범죄의 부정 및 미화와 전쟁범죄자들에 대한 신격화
야스쿠니 신사나 순국7사묘만 봐도 답이 나오는데 이 시설들은 전부 전쟁범죄자들을 신으로 받들어 섬기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특히 야스쿠니 신사의 경우 살아있는 사람에 심지어 일본의 전쟁범죄의 피해자들조차 강제로 합사하고 그 당사자들이 빼달라고 해도 요지부동이다. 정작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할 수 있는 전몰자 추모지가 이미 있음에도 저러고 있다.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 참고.[6]야스쿠니 신사만 전몰자 묘원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어 좀 하는 일본 극우가 있다면,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을 알려주면 된다. 게다가 순국7사묘는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 그렇지 위험도는 야스쿠니 신사보다 더하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식의, 전범들을 섬기는 신사나 사묘들이 일본 내 각지에 퍼져있어서 이런 곳에서 참배를 하면서도 참배 받는 대상이 누군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 대표적으로 에히메현에는 호국신사란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받들어 섬기는 대상 중 하나는 치치지마 식인 사건의 주동자 다치바나 요시오다.
게다가 전쟁범죄자들을 신격화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 전쟁범죄의 부정이다. 일본 내 극우 인사들이 심심하면 동아시아 국가들을 격노하게 만드는, 전쟁범죄를 부정 내지는 비호, 미화하는 망언들 역시 피해자 행세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3.6 일본은 연합군에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다
3.6.1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의 전반적인 내용들을 은폐
전쟁을 다루는 작품에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공세를 벌이던 시기는 쏙 빼놓고 일본이 참패를 거듭하여 패망 직전에 몰린 상황만을 중점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면서 이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남방작전의 쾌진격 같은 건 또 서구 열강들에게 고통 받던 동남 아시아인들을 해방시켜준 작전으로 포장하며 찬양한다(...). 이 와중에 나온 바탄 죽음의 행진은 절대로 인정 안하면서 중한의 날조라고 박박 우기는 것은 기본. 그런데 바탄에서 죽은 사람은 중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이거든요?[7] 당연히 미국 측에 객관적인 기록이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바탄 죽음의 행진에 대해서는 가급적이면 말을 안 꺼내려고 무진장 노력한다. 가끔씩 말이 나오면 위에 언급한대로 날조라면서 덮으려들고...[8]
이러한 방법으로 일본이 먼저 미국, 필리핀, 파푸아뉴기니 등에 공격을 퍼붓고 점령지에서 잔학 행위를 한 역사적 사실을 흐지부지 얼버무리거나 감추고 일본이 공격당하고 있는 상황만을 집중적으로 부각한다. 특히나 상대가 어느 정도 전력을 갖추고 있었던 연합군에 대한 공격보다 전력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었던 중국, 인도를 멋대로 침략하고 조선,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멋대로 점령하고 한참 수탈하던 시절에 대한 부분은 거의 다 생략된다. 전쟁물로써 제대로 된 전투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도 있고 연합군에게 시원하게 얻어터지는 일본의 모습은 서양 측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 어필하는 부분도 있으니(이에 대한 표현은 어떻게 하는지는 넘어가더라도) 일본이 동남아시아를 합병하는 부분을 세세히 묘사한 일본 작품은 미디어의 종류를 통틀어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이로서 마치 "일본은 침략을 당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형성하고 일본이 공격받는 것이 먼저 전쟁을 일으킨 탓에 생겨난 당연한 결과가 아니라 무고하고 평화로운 일본이 일방적으로 미국 등 연합국에게 공격받는 것으로 왜곡한다. 우리는 그저 평화롭게 이웃 국가들을 침략하고 있었을 뿐이무니다.
그리고 일본군을 과대망상과 침략 욕구에 물들어 일방적으로 침략한 끝에 패배하고 밀려난 꼴사나운 침략자가 아니라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싸우는 수호자들로 왜곡하는 것이다. 애초에 일본군이 왜 일본 본토가 아니라 머나먼 태평양, 인도양, 남방군도에 있는지는 언급하지 않는 센스
물론 이것들은 일본 내에서만 통하는 내수용 주장이고, 해외에서는 이미 역사책에도 기록되어 있고 영화화까지 몇 번 씩 된 바 있는 진주만 공습과 난징 대학살이 매우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인터넷 와패니즈들 말고는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 상식적으로 일본의 영토는 기본적으로 일본 열도였다는 걸 세계인들이 아는데,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영토가 어째서 그렇게 불어났는지는 외국인들의 입장에선 도서관 가서 역사책 한번만 들춰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이 주장하는 헛소리들이 단 한 글자도 없는 진짜 역사책 말이다.
3.6.2 일본이 받은 피해만 과장, 강조
이렇게 위에 언급한 것처럼 태평양 전쟁의 전반부를 짤라내더라도 태평양 전쟁 말기까지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은 엄청나게 많지만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묘사하지 않고 도쿄 대공습 같이 일본의 민간인이 피해를 본 것만 중점적으로 취급한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지? 물론 자신들이 당한 피해를 지적하고 지나쳤다고 비난하기도 하는 건 독일도 마찬가지지만, 독일은 최소한 자기가 먼저 잘못했다는 사실은 떳떳하게 인정하고 중립적으로 취급한다.
이런 것을 통해 마치 연합군만 만행을 저지른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서 자신들이 피해자인 양 보이게 만든다. 또한 그 당시의 전투를 묘사한다는 핑계를 잡아서 일본 본토에서 벌어지는 방어전을 언급하면서 일본군이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만 중점적으로 언급함으로서 일본군의 침략자 이미지를 수호자 이미지로 바꾼다. 애초에 침략 전을 걸면 밀릴 경우 본진이 털리는 것은 생각도 안하지?
그리고 마침내 2013년 5월에 이르러서는 대놓고 도쿄 대공습이 인도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미국을 에둘러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공습 자체가 인도주의에 위배될 소지가 충분한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국제적으로도 비판이 많지만 그 이전에 자기들이 잘못한 것은 왜 언급하지 않는가? 참조 기사. 일본으로서도 이건 극우들 내부에서조차도 잘했니 못했니 의견이 엇갈릴만한 도박에 가까운 발언이다. 그러나 이건 도쿄 대공습을 진두지휘한 미 육군 항공대 공인 쑥 재배업자 겸 미 공군 공인 고고학자 커티스 르메이의 명언 하나로 잡을 수 있다. "사실 저 밑에 스즈키 네는 군용 볼트를, 옆집 하루노보 네는 군용 너트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이런 걸 가내수공업이라고 하지."[9][10]쉽게 말해 커티스 르메이는 당시 일본의 산업구조가 전쟁의, 전쟁에 의한, 전쟁을 위한[11] 군수산업 최우선으로 굴러가고 있었으며, 일반 가정에서조차 이를 보조하고 있는, 이른바 간접적인 전범이란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미국은 도쿄 대공습 이후의 일본 본토 공습 때 어느 도시를 폭격한다는 경고문을 일본인들이 당연히 읽을 수 있는 문자로 써서 해당되는 도시들에 삐라로 날려서 해당 도시 시민들에게 공습이 오기 전에 대피하라고 미리 알려주는 친절함(?)마저 보였는데, 그건 뭐가 되는가?
커티스 르메이의 또 다른 명언(?)인 "무고한 민간인 따위는 없다." 역시 같은 맥락. 게다가 도쿄 대공습 전에 커티스 르메이가 참고한 것이 연합군이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한 드레스덴 폭격과 일본이 중국에서 한 충칭 대공습을 포함한 중국 대륙에 대한 무차별 폭격이었다.자기들이 먼저 대 민간인 폭격을 저질러 놓고 상대방이 그걸 따라 하니 비인도적이라며 사과하라고 하는 클라스[12] 특히 충칭 대공습의 경우 일본군이 이 공습에서 민간인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소이탄을 쓰면서 도쿄 대공습에서 커티스 르메이가 네이팜탄을 사용하는데 결정적인 모티브가 된다. 즉 일본군은 자기가 쓴 방법에 자기가 그대로 보복 당했다는 거다. 참고로 일본은 아직도 충칭 대공습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다가 엄밀하게 도쿄 대공습의 책임론을 따지면 오히려 일본 제국이 자국의 민간인들을 인간방패로 내세웠다는 판단도 가능해진다. 추가로 그 당시 일본의 도시 구역을 보면 공장과 주거지의 구분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훌륭한 뒷받침이 된다. [13]
당장 미국이 "바탄" 한 단어만 말해줘도 단박에 일본이 깨갱하게 만들수 있다.[14] 게다가 굳이 바탄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는 것이 태평양 전쟁의 서막을 연 진주만 공습만 언급해도 끝난다. 애시당초 먼로 독트린에 의거, "무의미한 전쟁은 할 필요가 없다."며 고립주의를 고수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초반만 해도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던 미국이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대통령의 유명한 '치욕의 날 연설'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로 한 결정적인 원인이 이 진주만 공습이다.[15] 미국으로서도 당장 대중국 최우선 동맹인 일본을 거둬들이고 있어야해서 일본과의 직접적인 역사충돌을 잘 안하는 것뿐이지 일본 쪽에서 먼저 덤벼온다면, 위안부 개정 법안 통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짤 없다. 미국은 단박에 일본을 침묵시킬 수 있는 무수한 일본군 전쟁범죄 증거들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 이를테면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전 대통령이 해군 조종사로 있을 때 일본 근해에서 미군 잠수함에게 구조받지 못했으면 당할 뻔 했던 치치지마섬 식인 사건 같은 거.
게다가 똑같이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일본이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또는 무시하려고 애쓰는 중국과는 달리 미국은 현재도 일본의 혈맹이자 사실상 상전이다. 그래서 일본이 중국에는 대들어도 미국에는 좀처럼 대들 수가 없다.
3.6.2.1 원자폭탄의 피해만 과장, 강조
이것 말고도 일본은 원자폭탄 공격의 피해만 강조하기도 한다. 원자폭탄 자체는 실전에서 사용된 것은 일본에 투하된 2발 외에는 없으며 그리고 냉전의 영향으로 핵공격=세계멸망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이런 반전적인 측면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일어난 일을 꾸준히 기억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은 이걸 이용해서 자신들을 민간인이 핵공격을 받은 불쌍한 나라로 포장하는 것이다.[16]
이런 주장은 알게 모르게 일본의 저명한 정치가나 노벨상을 받은 석학들도 자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일본 극우주의자들만 주장하는 지엽적인 주장이 아니라는 문제가 있다. 박유하의 저서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브로(박유하는 번역가라면서 오에 겐자부로를 저렇게 쓴다)가 한국에서 강연했을 때 한 청중이 힐난조로 물었다. "당신이 원폭 피해에 대해서 쓰는 일은 일본이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일이 아닌가? 일본이 원폭 투하를 당한 것은 당연한 일 아니었나?" 오에는 조용히 대답했다. "글쎄요... 그런데 한국인 피해자들도 그렇게 말할까요?"
이를 해석할 때, '일본인은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전제가 깔린 질문이었는데 위의 답변에서 한국인 피해자를 거론했다는 것은 전제를 전혀 읽지 못했거나 통째로 무시한 것과 같은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진보기질이 강한 그의 성향상 아무리 봐도 일부러 무시한 것 같진 않아보인다.
다만 이에 대한 반론으로 물론 이 단락만 놓고 본다면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에 관해서 피해자 행세를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오에의 경우 단순히 '피해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굳이 피해자라 한다면 그것은 국가에 의해 희생당했다고 하는 한 개인으로서의 피해자다.
참고로 오에는 1994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행한 '애매한 일본과 나'라는 제목의 노벨 문학상 수상소감 연설에서 "일본이 특히 아시아인들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또한 "전쟁 중의 잔학행위를 책임져야 하며 위험스럽고 기괴한 국가의 출현을 막기 위해 평화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이런 점을 봤을 때, 오에 겐자부로가 의도적인 논점 회피를 한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원폭 피해는 비단 일본인만 입은 것은 아니니 원폭 피해에 대해서 쓴다고 해서 일본이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은 '일본 정부가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게 취한 태도'를 본다면 같은 답이 간단히 나올 수 없다.
일본 정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자국이 입은 원폭의 피해를 강조하고 선전하면서도 피폭자의 1할에 달하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은 철저히 무시했다. 이들은 모국에서 물론 자발적으로 온 사람도 있겠지만 강제로 끌려와서 노예나 다름없이 일하다 불벼락을 맞은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결국 25년이 지난 1970년에 들어서야 재일거류민단에 의해 위령비가 세워졌다. 물론 일본 정부는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나마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외진 구석에 자리잡고 있으며 대다수의 현지 일본인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신세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이 위령비를 강제 철거하려 하고 있는 안습한 상황이다.[17]
그리고 침략 전쟁을 일으킨 추축국의 국민은 전쟁이 선수들만 경기하고 관중은 응원만 하는 스포츠 시합이 아니라는 점에서, 당시 폭정을 저지르던 해당 정부에 강력하게 반대하지 않은 한에는 좀처럼 협력자의 위치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강력하게 반대하면 잡혀가는게 함정 이런 의미에서 전투기를 만드는 군수공장이나 군용 타이어를 납품하는 시설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죄없는 민간인이라고 보긴 좀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18] 폭격광 커티스 르메이의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가 바로 이것. 하나 더 해서 도쿄 대공습 당시 도쿄 상공에서 민간인에 대한 폭격이라는 사실에 회의를 느끼던 부하들을 향해 한 말인 "저 밑 스즈키 네는 군용 볼트를, 옆집 하루노보 네는 군용 너트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이런 걸 가내수공업이라고 하지." 역시 같은 의미이다. 다만 모두가 군납일 하던 민간인은 아닌게 함정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모두 군수공장이 밀집된 도시들이었다. 우리가 전쟁을 일으켰지만 우리 군수공장에는 민간인들이 있으니 폭격하는 건 나쁘다는 건 억지로밖에 볼 수 없으며 무엇보다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행위의 피해자들을 망각하는 행위이다. 가해 행위에 동참해놓고서 나중에 손실을 보게 되자 자신은 국가에게 희생당했다느니 하면서 은근슬쩍 피해자인 척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 그럴거면 처음부터 민간인들 안 죽게 전쟁을 하지 말았어야지?
원자폭탄은 1개의 폭탄으로 많은 피해를 냈다는 점이 임팩트가 있을 뿐이지, 수천 개의 폭탄으로 도시를 폭격한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더군다나 2차 세계대전 당시는 지금처럼 스마트 폭탄이라도 있어 정확히 공장만 날릴 수도 없었다. 그리고 똑같은 전범국인 독일의 도시들은 일본보다 몇 배나 더 많은 폭격을 받았고, 훨씬 더 많은 민간인 사망자를 냈지만, 절대로 연합국의 폭격으로 인한 사망자를 희생자인양 포장하지 않는다.
물론 이들 중 원자폭탄을 맞은 나라는 일본 뿐인 것은 맞다. 원폭은 당시로서는 만든 당사자들도 경악할 만한 무기였고, 당시에 맞은 사람들도 방사능 때문에 세대를 걸러서 고통 받고 있기 때문에 원폭 투하에 대한 도덕적 논쟁은 떡밥으로 남아 있긴 하지만, 이는 일본에게 전쟁책임이 있는가, 없는가와는 엄연히 다른 이야기다. 고로 일본이 본인들의 만행에 대해선 상기하지 않은채 오로지 원폭 맞은 것만 되뇌이며 피해자 행세를 하는 행동은 잘못되었다는 것. 한 예로 일본 네티즌이 미국은 일본에 터뜨린 원폭을 사죄해야 한다는 글을 남겼다가 다국적 네티즌들에게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물론 원폭으로 비무장 민간인들까지 죽인 것 자체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기에 공감하는 이도 있긴 하나 전반적인 책임은 일본이 크다는게 중론.[19]
여담으로 2005년 아우슈비츠에서 홀로코스트 추모 관 야드 바셈 박물관의 개막식이 열렸는데, 이때 일본이 원폭을 운운하며 피해자 그룹에 참가하려다가 박물관 측에서 나치라는 비난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한국 웹에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이스라엘 현지 신문에 나온 외교부 대표의 말에 따르면 일본의 국가원수가 초대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주 이스라엘 일본대사관의 직원들은 초청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원폭을 홀로코스트에 비견하려 할까봐' 초대되지 않았다는 것은 루머이며, 단지 일본은 홀로코스트 해방에 기여한 국가도 아니고 홀로코스트에 딱히 관심이 있는 나라도 아니기 때문에 초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독일보다 더한 짓을 했으니 뭐... 글고 원자폭탄 이야기가 나온 마당에 한가지 더 쓰면 당시 일본은 뒤로는 강화 협상을 하자면서도 민중들에게는 1억 총 옥쇄 같은 터무니없는 조치들을 취하려 했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사용하기로 한 이유는 기존 추축국들 중 이탈리아[20]와 독일[21]은 이미 항복했는데 일본은 내부적으로 1억 총옥쇄를 외치며, 끝까지 버티고 있어서다. 즉,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 원자폭탄을 사용한 것이며, 만에 하나 그래도 계속 버텼으면 소련도 끼어들면서[22] 윌리엄 홀시 제독이 진주만 공습으로 박살난 해군기지를 보고 한 말대로 일본어라는 언어는 정말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언어가 됐을지도 모른다.[23] ,
3.6.3 일본은 지지 않았다!
일본은 내부로부터의 중상과 비슷하게 패배를 패배로 인식하지 않는, 인지부조화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일본은 미국에게는 졌지만 중국과 영국과 프랑스 등 다른 연합국에게는 지지 않았으므로 진 게 진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훌륭한 정신승리, 자기합리화 임팔 작전은 진 게 아닌가 보다.[24] 그 이전에 대한민국 독립군에게 진 청산리 전투는 뭐야?
물론 그런 식이면 독일도 미국과 소련에게만 졌을 뿐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에게는 진 적이 없으니 패배가 아니라는 게 된다. 독일은 공개적으로 그런 주장은 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그때 일본의 국가원수 겸 대원수가 무어라 했는지 읽어봐라. 수락한다는 공동선언을 내세운 게 어느 나라던가?
이런 부분은 중일전쟁의 묘사에서도 드러나는데, 사실 중일전쟁이 중국이 완벽히 승리했고 일본이 완벽히 패배한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일본이 이겼던 소소한 전투'만 중점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자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게 "중일전쟁은 중국이 이긴 전쟁이 아니라 일본이 이긴 전쟁입니다."라고 역사 왜곡을 시전해서 지금까지도 중일전쟁을 일본이 이긴 전쟁으로 잘못 알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25][26] 한편 소련군의 만주 작전은 은근슬쩍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거나, 관동군의 감투정신만을 강조해서 패배감을 희석시키고 있다. 철저하게 털렸던 노몬한 전투도 '사건'이라고 부르면서 축소하는 거 보면 뭐
3.7 해상자위대 군함 함명에 관해
해상자위대의 군함 역시 태평양 전쟁에 동원된 함정의 이름을 그대로 써서 논란이 되기도 한다.
2015년 진수된 헬기 항모의 이름은 카가다.[27] 그리고 같은 해 10월 27일에 진수된 소해함의 이름은 아와지.[28] 이 두 함의 이름은 전부 구 일본 제국 해군의 함 명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한자를 가나로 바꿨다는 것 정도?
3.8 나치 독일, 나치스가 제일 나쁜 놈들이다!
만약 당신이 나치 관련이나 나치를 모티브로 한 듯한 고증이 똑바로 되어있는 미디어물을 접했는데 알고보니 일본 작품이었다면 절대로 잘 만들었다고 칭찬'만' 하지는 말길 바란다. 그건 위선일 가능성이 상당하니까.
일본 미디어들은 나치 독일, 나치스의 만행, 특히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의외로 강조한다.히틀러, 무솔리니 : 야이 배신자 쪽발이 개샊 8월이 되면 홀로코스트 다큐멘터리 하나 정도는 틀면서 감성 자극을 꽤나 해댈 정도이다. 예전에는 특히 쉰들러 리스트를 주야장천 방송에서 틀어 댔다.[29]
하지만 이러한 미디어 선전에서 "일본도 나치스와 한 편을 먹고 세계를 위협한 사악한 국가"라는 진실은 찾아보기 어렵고 일본의 전쟁범죄 등 일본이 벌인 만행은 조금도 알리지 않는다.
또한 전쟁 도중 일본이 자행한 민간인과 포로 살해도 동맹인 독일의 요청이었다며 자신들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전범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내용상 독일의 요청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실행한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이고 애초에 그게 싫었다면 동의하지 않고 거부했으면 그만인 일이다. 이러한 해명은 일본이 독일의 식민지나 속국이 아닌 이상 성립할 수가 없는 내용이다.
이렇게 독일만 나쁜 놈으로 만들어서 2차 대전의 정세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퍼뜨리는 것이다. 2차 대전 때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이 했던 짓을 모두 인정하고 무한한 사과를 하는 독일이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을 지도 모르는 일인데, 일본의 이런 태도를 독일이 실제로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히 알려진 바가 없었다.[30] 과거에 독일은 별 관심이 없었지만, 2014년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독일을 예방한 이후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일본의 피해자 행세에 대한 문제점을 논의했었고 일본의 만행을 널리 알리는데 성공하자 지금 독일인들은 일본이 자국만 나쁜 놈으로 만든 모습에 엄청난 분노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핵심만 요약하면, 일본의 행동은 독일 등 뒤에 숨는 행동이자 모든 덤터기를 독일에게만 씌우려는 짓이다. 그런데 일본은 독일조차 하지 않은 일을 저지른 적도 있다.[31]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한국 등등...여러 나라에게 다양한 어그로를 끌고 있다
각종 일본 창작물에서 나치를 주된 악역으로 자주 설정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게임 리뷰어로 유명한 Zero Punctuation가 전장의 발큐리아 리뷰 할 때, 게임 자체는 고평가하면서도 노골적으로 독일을 모티브로 한 악역 국가는 일본의 가식이며 "너희들이 2차 대전 때 누구 소시지 빨아댔는지 세상이 다 알아"라며 깠다.
급기야 2014년 4월 30일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과거사에 관해 독일과의 비교 불허를 선언하셨다. 그 근거랍시고 들이대는 노랫가락을 한 번 들어보자.[32]
아이리스 장의 <난징의 강간>에 따르면 일본군이 나치 깃발을 불태우고 나치보다 더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중일전쟁이 터지자 일본군은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이 독일에 신경 쓰느라 중국에 대한 관심이 덜 해졌다."라는 식으로 중국 내에 있는 외국 기업들 자산을 약탈하였고 일본군 점령지에 거주한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여성들을 위안부로 공출한 혐의가 있다.
알아둬야 할 것은, 전장의 발큐리아같은 사례를 보면 컨텐츠를 즐길 때 내용만 따지지 말고 제작 국가까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전범국가가 같은 전범국가를 자기들과는 다르다는 식으로 깐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내용만 보고 칭찬하면 안 되는 아주 적절한 예시다. 어찌 보면 이런 콘텐츠를 즐기는 게 우익 성향이 들어가 있는 미디어물을 접하는 거 보다도 더 위험한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마치 일본도 이런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하고 만드는 거 보니까 반성의 기미가 있나 보네?라고 착각하기가 너무나도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일본의 위선에 대해 간단히 말하면, 뭐 묻은 개가 똑같이 뭐 묻은 개에게 덤터기 씌우기로 요약되겠다.
3.9 나치 독일, 나치스도 피해자다!
하지만 위에처럼 일본이 나치만 나쁜 놈으로 만들면 그러면 왜 너희는 나치랑 손잡았냐는 주장이 나오게 되는데, 이에 대한 반발로 아예 나치까지 정당화 시켜버리는 막장 주장도 많이 나온다. 밑에서도 이야기하는 마르코 폴로라는 극우지[33]의 나치 옹호 주장을 봐도 이런 논리이다.
요지를 정리하면, "나치가 착한 놈들은 아니지만, 필요 이상으로 욕먹는다. 유태인 학살도 너무 과장되었다. 그런 학살은 미국, 소련, 영국, 중국, 프랑스를을 비롯한 연합군들도 많이 저질렀으니까 나치도 결국 피해자다."라는 것이다.
이런 물귀신 논리에 대한 미국이나 영국 및 연합군 측 반응은 말이 필요없다. 차라리 나치만 악질이라고 하는 게 그나마 더 낫다. 이건 추축국 전체가 전쟁의 피해자라고 옹호하는 짓이다. 말 그대로 완벽한 자폭인 것이다.
이 자폭 성 주장은 현재 독일에서도 까고 있다.네오 나치같은 극히 일부만 제외하고[34] 독일은 나치를 흑역사라고 여기는데 나치도 피해자라능 이러며 같이 옹호할 건덕지로 써먹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4 일본이 피해자 행세를 하게 되는 까닭
4.1 원인
4.1.1 국가에 대한 일본인의 약한 소속감
이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생각보다 국가-개인 간의 연결고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연결고리로만 따지면 일본인들은 대개 지방을 중심으로 해서 해당 지역의 유지 같은 지방 유력자들이 구심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즉 국가 - 개인보다 지방 - 개인의 연결고리가 더 강하다. 간단한 예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중앙에서 잡으려 해도 잡지 못하는 야쿠자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된 원인 중 하나가 가마쿠라 막부로 시작해서 에도 막부까지의, 메이지 유신 직전까지 있었던 약 700년 동안의 막부시대, 즉 무신정권 집권기의 영향이다. 이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방의 다이묘만 신경 쓰면 중앙의 쇼군에 대해서는 사실상 신경 꺼도 됐기 때문. 간단히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만 봐도 알 수 있다. 군대도 해군과 육군의 기원부터 달랐을 뿐 아니라, 무기 체계도 완전히 달라서 사실상 일본과는 완전히 별개의 나라라는 별명을 붙였을 정도니.. 작전에 대한 정보공유조차 되지 않아서 서로가 상대방의 정보를 알아낼 때 스파이를 심어서 알아내지 않나,.해군에서나 쓰는 항공모함과 잠수함 같은 무기도 육군에서 해군과는 별개로 개발, 운용하지를 않나, 해군은 또 해군대로 육군에서나 쓸 중{中}폭격기 이상의 체급을 가진 폭격기를 육군용과는 별도인 해군용으로 개발 배치했을 정도라고 하면 답이 나온다.
민족의식이 강한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일본에서는 "국가는 국가고 나는 나"라는 의식이 2차 대전 패망 후 강하게 깔려있다. 애초에 이기면 관군이라는 속담이 널리 퍼진 곳이라 일본인이라는 공통의 의식은 작용하고 있지만 국가주의는 미국과 중국 등 연합국의 점령 후 상당히 희석된 것이다.[35]
또한, 일본인들에게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은 대부분 우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군부가 폭주해서 일반인들까지 다 동원당한 비극으로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의 군국주의는 서양의 파시즘, 나치즘과 달리 시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성립된 것이 아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랄들을 하고 있다.
일본은 1932년의 5.15 사건과 1936년의 2.26 사건을 통해 점진적으로 의회가 박살나고 정당정치가 실종되면서 국가 수뇌부를 군부가 장악하여 천황을 자기네 허수아비로 만들고 군국주의 국가로 변질하게 된다. 그리고 군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침공하여 중국을 침략 하는 계획을 세웠고 착착 실행에 옮긴다. 이는 임진왜란의 발발 원인과도 유사한 맥락이다.
시민의 지지가 없었다는 점은 바로 본 항목이기도 한 일본의 피해자 행세의 근거로도 이용되기 때문에 조심히 접근해야 한다. 실제로 KBS가 8월 15일 일본의 한 노인을 인터뷰했을 때 그 노인은 "(일본) 국민은 피해자잖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 영토, 주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 일제 일본인들의 책임은 명백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 국민들이 자기 스스로를 당시의 일본 군부 및 정부에 의해 이용당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일본이라는 국가에서 내부적으로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일본이라는 국가 외부의 수많은 전쟁피해국들을 상대로는, 설사 일본 국민들의 주장대로 그들은 이용만 당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먼저 진심어린 반성과 사죄를 하는 것이 옳은 태도이고 실제로 독일이 전쟁피해국들에 보여주고 있는 자세이다.[36]
4.1.2 피해국의 낮은 경제력
피해국들이 중국, 한국을 제외하면 제대로 경제력이 있다고 할만한 나라가 없다 보니 축소나 은폐를 한다고 비난해도 목소리가 필연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국제정치라는 것이 단순하게 도덕성에 기반해서 정치를 하는게 아니라 경제력과 같은 '국력'에 기반해서 흐르다 보니 일본 입장에서는 피해자 행세를 해도 경제/정치적으로 그다지 손해가 없으니 굳이 반성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에 반해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를 비롯한 서방 국가한테는 확실하게 사죄를 한다는 점을 보면 확실하다. 이건 독일도 비슷한 꼴이다. 독일도 경제적으로 막대한 힘을 가진 유대인 및 서방 유럽 국가들에게만 사죄하였을 뿐, 집시나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식민지배했었던 아프리카 국가들에게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최근에 과거 독일령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개선과 무역 교류 등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어서 식민지 시절 독일군이 식민지 흑인들에게 저지른 학살 만행에 대해 사과하려는 모습도 보이고는 있지만...
남는 건 만만한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국가들이다. 진정한 일본의 피해자는 이들인데도, 정작 중국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국력으로는 일본에 못 미치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라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을 대하는 일본의 태도는 말 그대로 안하무인이다. 이에 중국을 대응하기 위해 일본은 최근들어 러시아와 관계개선에 힘을 쏟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 공적개발기구(ODA)와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 현재까지 꾸준히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역시 1965년 한일협정때 일본 외환보유의 60%가 넘는 8억달러의 유/무상 배상금을 지급받아 경제발전을 일구어 냈다. 아프리카 나미비아 헤레로 족 6만 8천명을 학살한 독일은 식민지 지배가 정당하므로 배상할 이유가 없다며 거부하고 있으며 식민지였던 콩고 원주민 10만 명을 학살하고 그들의 손발을 잘라가며 할당량을 재촉하여 착취하던 벨기에는 배상과 사과는 커녕 언급 자체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안하무인이라 말 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나라 입장에서 일본의 뻣뻣한 태도가 입맛에 맞지 않을 뿐이다.. 실제로 많이 성장했다고는 해도 한국,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피해국가들의 GDP를 모두 합쳐도 일본의 GDP에 미치지 못 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략적으로 ASEAN에 대만, 한국까지 모두 합쳐야 겨우 일본을 앞서는 수준이다.
4.1.3 일본 민주주의의 특성
생각보다 일본의 민주주의는 많이 발달하지 못했다. 원체 일본의 근대화 자체가 근대화 이전에는 명목상의 지위에 있었던 덴노의 신격화를 포함한 전체주의+민족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설계되고 이루어졌기 때문이다.[37]
비단 제국시절의 일본이 아닌 현대의 일본만 봐도 그 잔재가 아직 남아있는 걸 알 수 있는데,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은 외국인이니까 그럴 수 있다 쳐도, 선주민인 아이누, 계급제가 있던 때의 부라쿠민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을 봐도 이런 것들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부라쿠민의 경우 제도적인 차별은 껍데기만이라도 사라지긴 했으나 실제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38] 부라쿠민의 경우, 부라쿠민 촌에서 태어나기만 했는데도 그 가족까지 차별을 당한다.[39] 게다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동북지방 사람들에 대해 또 다른 차별이 암암리에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화족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계급제 시절의 귀족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거 역시 법적으로는 폐지가 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라진 게 아니라 세습 정치인 같은 개념으로 계속 명맥을 잇고 있다. 아베 신조, 아소 다로 같은 정치인들이 대표적인 사례다.[40]
물론, 그에 대한 반동으로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에 민권운동이나 개혁운동,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긴 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의 원형이 되는 치안유지법이 발동하기 시작하면서 시망... 그 이후 일본은 국가의 통제가 한층 강화된 전체주의 국가가 되면서 이를 군부가 접수하면서 군국주의 테크트리가 완성된 것이다.
물론, 당장 일반인들도 일본군이 중일전쟁에서 중국의 주요 도시를 점령할 때마다 초롱을 들고 길거리에서 축하하는 행위를 거국적으로 벌였다. 이것도, 일본에서는 "그때는 무조건 동원되어야 했고 동원에 응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시대가 시대인 만큼 어쩔 수 없지 않았냐?"라고 한다. 하지만...
4.2 비판
4.2.1 민간인은 책임이 없다?
커티스 르메이 장군의 무고한 민간인 따윈 없다는 명언도 있듯이 일본의 민간인들 역시 전쟁 책임에서 완전히 무고하다고 할 수는 없다.
간단히, 독일만 봐도 알 수 있다. 종전 후, 나치와는 반대되는 성향의 사람들이 독일을 이끌었지만, 이들은 나치 시절의 독일이 지은 죄를 외면하지 않았으며, 공식 석상에서 자신들이 억울하다고 코스프레를 하지는 않았다. 몇몇 소국에 대해서는[41] 부분적으로 사과는 했는데 배상을 하지 않고서 자신들은 그런 적 없다, 과장됐다라고 공식 석상에서 지껄이지는 않는다. 또한, 독일은 집시 족 학살, 유고와 그리스에서의 학살의 실체를 밝히는 것을 국가적으로 막지 않고 있으며, 집시와 유고/그리스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독일 정부를 비판한다고 고소하거나 감시하거나 억압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힘이 약하니 조사를 하던지 말던지 내버려두는 편이라 조작,축소,은폐를 하지 않는다. 단지 너무 관심이 없을 뿐이지. 더구나 일본같이 다른 나라에 책임을 떠넘기는 짓은 하지 않았다.
물론 당시 일본은 의회제도가 있기는 했지만 사실상 의회는 그냥 유명무실했으며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었으며 지도부의 선전 선동이 철저한 전체주의 국가였음은 사실이다. 따라서 일본인들의 정치적 권리는 상당히 미약했다. 1945년 이전의 일본은 "만세일계[42]의 천황이 지배하는 야마토 정신의 일본"이라고 자칭했다.[43] 1945년 이후에는 "주권재민의 시대"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대격변.
하지만 일본에서 군부와 정부의 지도층은 결코 민간과 완전히 유리된 존재는 아니었다. 재벌 등 일본의 거대 경제 집단은 군부에 동조하여 해외 침략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고, 그 밑의 일반인들 역시 해외 침략으로 얻는 떡고물을 받아먹으려고 여기에 동조하는 여론이 적지 않게 퍼져있었음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거기에 수탈한 물자를 통해서 어느 정도 경제이익을 챙기기 시작하자 민간인들도 더 많은 떡고물을 원하여 참전과 점령에 박수를 보냈고 부당한 침략일지라도 그 침략이 옳고 그른지는 다 무시하고 승리 가능성이 있는가, 승리 하였는가에만 매달리던 당시 일본인들이 대다수였다. 옳은 전쟁인가, 과연 전쟁을 할 필요가 있는가는 생각지 않고 오직 승전만을 외치던 사람들이었으니... 이런 경향으로 인해 대패한 전투조차 군부에서 대승한 전투로 포장해야 했으니 뭐. 심지어 해군의 경우 미드웨이 해전 당시 대패한 전투를 대승한 전투로 포장해서 열심히 우겨놓고 뒤에서 떨고 있는 걸 육군에서 "쟤들은 대승했다면서 왜 저렇게 떨고 있지?" 하면서 이상하게 여겨 스파이를 통해 진실을 알아내고 난 후 경악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니... 다른 예로 일본 본토 공습 당시 커티스 르메이가 도쿄에 네이팜탄으로 도배하다시피 해버린 도쿄 대공습을 하기 전에 일본 본토 공습을 담당한 제 21 폭격기 사령부 사령관 헤이우드 셰퍼드 핸셀은 공업지대에 대한 폭격만을 우선으로 하다보니, 고공에서의 정밀폭격만을 하고 있었는데, 제트기류 등의 문제로 폭격의 효율이 개판이라 당시 도쿄 시민들이 폭격을 마치 놀이같이 생각해서 폭격이 언제 오나 하며 날짜를 꼽아가며 기다리고 있었을 정도다.
승리 가능성이 있느냐는 부분 역시도 패전 시 자기들에게 큰 피해가 오기에 생각하던 부분이었고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전쟁 초반에는 엄청난 지지를 보내던 사람들이 당시의 일본인들이었다. 즉, 일본에 정치 체계의 한계가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당시의 모든 민간인들에게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항복 선언을 하고 나서 벌어진, 마츠에 소요 사건 같은 항복 반대 반란만 봐도 알수 있다.
다만 이것은 20세기 중반 당시의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공통된 시민의식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지금이야 제국주의의 해악이 당연한 상식으로 되어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식민사업 및 전쟁은 미개한 비문명국을 문명국이 개화시켜주는 백인의 의무로서 인식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일본인들은 높으신 분들이 떠벌리고 다니는 대동아공영권, 즉 "서구 제국주의로부터 아시아 국가들을 해방시켜준다"는 헛소리를 굳게 믿고 있었다. 게다가 현재처럼 인터넷 같은 매체를 통해 자국의 여론과는 반대되는 시각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일반 민중이 이러한 자국 우월주의적 사상에 훨씬 더 쉽게 계도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말하자면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주체사상을 맹목적으로 신봉하고 있는 일반적인 북한 주민에게 과연 주체사상 및 북한 정권의 해악의 죄를 물을 수 있는가 하는 것과 유사한 문제이다.
하지만 이는 범죄를 저지르고 몰랐다는 변명을 대는 수준이다. 결국 어찌됐든 그 나라의 시민으로서 전쟁범죄에 협조나 지지를 보내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방조했다는 것에서 결국 같은 공범인 것이다. 전후 대다수의 민간인들을 처벌을 받지 않았지만 그것이 결코 그들이 무죄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일반 민중들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올바른 역사관으로서 인식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이다. 게다가 이미 총력전으로 변화된 전쟁 양상으로 인해 누구도 전쟁수행에 관련이 없을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침략국의 시민은 전쟁 자체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 갖는다. 따라서 소위 '피해자 행세'란 그러한 역사적 성찰의 빈약함에서 기인하는 비판인 것이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의 피해자인 저자가 지은 맨발의 겐에서 당시 상황을 비판하는 것을 그리면서 제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것을 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비국민이라는 소리를 듣는 장면을 보면 민간인이라고 전혀 책임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경우는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안고 있는 공통된 문제로 ‘자기 책임 회피(성향)’가 있다고 언급했다. 비단 전쟁책임 뿐 아니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같은 경우도 언급하면서 '자신이 가해자'라는 인식이 희박하기 때문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4.2.2 부실한 역사교육
게다가 더 답답한 부분은 일본의 현대사 교육이 워낙에 허술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답이 없던 당시의 일본 제국시대의 상황을 일반인들이 잘 모른다."라는 것이다.
1980~90년대에는 너무 가까운 과거의 역사라서 잘 가르치지 않았고, 90년대 이후는 소위 말하는 유토리 교육 세대라서 최대한 간략하게 가르치는 풍조가 확산되는 바람에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유토리 교육 전후에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는 걸 봐서는 유토리 교육을 면죄부로 쓸 수는 없다. 쉽게 말하면, "1932년 대륙에 갔다. 1941년 대양에 갔다. 1945년 전쟁 끝났다. 근현대사 수업 끝" 수준으로 가르치고 있다. 무슨 짓거리야! 이런 식으로 축약, 왜곡해서만 가르치니 정작 역사 논쟁을 해선 답이 없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지 하면 제2차 세계대전의 경우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에서 벌인 전쟁이며, 그 세세한 내막까지 밝히자면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의 전쟁 범죄들을 모조리 까발려야 해서다. 자손들의 입장에서 전쟁의 실체를 알게 되면 망신살이 뻗치게 되는 셈이다.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실은 전범이며 자신이 그 아들, 손자 본인이라 생각해보자. 살맛이 나겠는가? 쉽게 말해 수치스런 역사니 밝히기 꺼려하는 것.
이것은 독일과도 다른데, 독일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가르치면 자신들이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전범국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두고 가르친다. 오히려 일본의 전공투 세대를 비롯한 60~70년대의 젊은 세대는, 이러한 "전범으로서의 구세대"에 대한 적개심과 세대의식으로 반전운동 및 평화운동으로 흘렀다는 해석도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비행기를 납치해서 북한에 가거나 미츠비시 중공업 등 일본 기업에 폭탄 테러를 하는 등 과격화의 바람이 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종의 역풍.
아버지의 깃발의 주인공 잭 브래들리는 전후 고향에서 장의사를 하던 중, 아들 중 하나가 일본으로 유학을 갔는데 그곳에서 일본인들이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건 미국과 중국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서였다!"고 주장하며, 자신은 그들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내용을 편지로 보냈다. 그런데 잭의 또 다른 아들은 누구도 잭이 편지를 받은 후만큼 분노한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의 피해자 내지 약소민족 행세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던 것이었던 셈.
이러한 일본의 과거 미화정책으로 아베 신조[44]를 지지하는 많은 일본인들이 예전 일제의 침략 행위를 어쩔 수 없는 세계적인 정세이거나 오히려 나라를 지키기 위한 행위로 진심으로 믿고 있다. 그래도 인터넷이 널리 퍼지고 한국과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피해 국가들이 침략 행위의 증거를 보여주면서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이 침략행위임을 알아채거나 침략전쟁이었음을 깨달은 일본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본의 현 자민당 정권의 수괴인 아베 신조는 이상한 궤변을 꺼내는데...
일본의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는 일본인들이 있다.그런데 이러한 죄책감은 일본을 절망으로 이끄는 감정이다.
일본은 1929년 세계대공황으로 많은 실업자들이 발생하고 그들의 절망이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으로 번지게 되었다.
따라서 일본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절망을 일으키는 죄책감은 현대 일본 사회에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응?
따라서 일본은 죄책감을 강요하는 국제적인 요구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역사적 반성을 죄책감으로 보고 이를 극복해야 군국주의로의 회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확대하면 미국과 중국 등이 아량한 마음을 갖고 먼저 과거의 일은 그럴 수도 있지 뭐하고 쿨하게 용서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일본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평화주의 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반성과 절망을 혼동하는 것부터가 답이 없다.
5 일본의 피해자 행세를 바라보는 외국의 시각
파일:Attachment/일본의 피해자 행세/wapanese.gif
외국에서_일본의_징징거림을_바라보는_시각.gif
제목부터가 '또 일본이 역사 왜곡하는 스레드 등장'이다. 4chan발 움짤. 2ch측 혐한·혐중 네티즌과 해외 와패니즈들이 대사를 되풀이하며 함께 춤추는(...) 엑스트라와 그들이 쓰는 재플리시가 포인트. 나오는 대사들이 죄다 "한국은 거짓말쟁이", "난징 대학살은 거짓", "위안부는 매춘부" 등 병맛이 철철(...) 넘친다. 웃음 포인트는 잠깐 초록으로 등장하는 "너네들은 지금까지 (한국과 중국의 중상모략에) 속아왔다(라고 주장)"→(증거를 대라고 하자) >네 다음 한국인 >일본어로 글 올리기(...) 부분.[45] 문제는 일본이 전쟁범죄를 저지른 국가가 한국과 중국만이 아니라는 거지만..
잘 알려진 대로, 4chan은 와패니즈 성향이 매우 강하다. 일본인도 매우 자주 보이고. 한국인이 일본의 과오에 대한 자세에 대해 비판하면 아직도 열폭하냐는 사람이 대부분일 정도.[46] 그런 사이트에서 이런 움짤이 나올 정도면 일본 유저들이 얼마나 어그로를 끌어 댔는지 말이 필요 없다.[47] gook는 인터넷 상에서는 한국인을 비칭 하는 단어라고 보면 된다.[48] 자세한 것은 세계인 비하명칭 참고.
일본이 적으로 삼은 미국 같은 상대 국가의 국력을 논외로 해도 과연 정당한 전쟁이었는지, 전쟁 목적이 뭐였는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생략해도 무방할 만큼 판단이 쉽다. 경제 발전과 1등 국민의 이득, 승전국 국민으로 누리는 자부심과 차별의식 등을 점철한 당시 일본 국민들의 모습을 본다면 결론은 뻔할 뻔 자. 거기에 수많은 국가들의 역사서는 폼으로 있는 게 아니다.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들만 나열해도 일본은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주장할 수 없다. 남의 돈을 빼앗아서 도박을 하다가 잃은 사람이 나도 피해자라고 징징거리면서, 나는 돈 못 갚겠고 나라에서 구제도 해달라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뻔할 뻔자요, 당장 돈 뺏긴 피해자(일본 침략의 피해국)에게 두들겨 맞지나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실컷 약자들을 괴롭히는 걸 보다 못해 '그만좀 해라. 너희같은 깡패랑 거래 못하겠다' 라는 말 듣곤 적반하장으로 '뭐 이자식아!' 라고 말하며 한대 쳤는데 되려 두드려 맞은 꼴이다
5.1 서방 측의 시각
일본의 이런저런 징징거림은 본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다지 큰 효과가 없다. 애시당초 일본은 이런 짓 하지 않아도 이미 냉전 시기부터 서방에 매우 중요한 동맹국으로 떠오른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이런 징징거림이 오히려 이미지만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 물론 최근 명백히 일본이 잘못한 사례임에도 일본을 두둔하거나 화해하라는 두루뭉실한 말로 양국을 디스하는 모양새를 보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도의적 책임론은 둘째치더라도 외교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일단 한국 측에 불리한 상황.
대신 최근 급성장한 중국이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 한국과 협력하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사실 중국도 일본에게서 당한 피해가 아주 막대한데, 만주국이라든지 731부대, 중일전쟁과 이 전쟁 도중에 벌어진 난징 대학살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심지어, 일본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대만에서도 이런 만행들을 절대로 부인하지 않는다.[49]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세계 질서인 국제연합 체계는 전쟁 당시 추축국에 대항하여 연합을 결성했던 미국, 중국, 영국, 소련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국제연합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인류의 적인 추축국을 격파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과 영국과 소련이 친목하고 전쟁 이후의 세계 질서를 다지는 목적으로 만든 국제기관이다.(UN의 중국어 번역이 "연합국"이다.) 요점만 간추리면 기본적으로 이들 국가들 주축으로 재건 된 2차 대전 후 보편적 민주주의 이념의 사상적 배경에는 반파시즘이 원칙적으로 깔려 있다는 말이다.[50]
따라서 나치스나 일본 제국은 현재 세계 질서에서는 곧 인류의 적이고, 국제연합의 구 적국 조항이 이를 반영한다. 적국조항이 독일이나 일본을 전쟁 피해국들이 마음대로 쳐도 좋다는 보증수표는 아니지만, 그건 이 두 나라가 나치스나 일본 제국으로 복귀하지 않는다는 엄연한 전제가 붙는 아래서다.
그 일본과 싸우던 나라들이 미국과 중국과 당시 무시하기 힘든 세력을 가진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같은 나라들이다. 현재도 국방과 정치력과 경제력에서 미국과 중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 영국이나 영연방 나라들이나 이때 일본에 맞서던 유럽 쪽 나라들 역시 여전히 쉽게 무시 못 하는 국가들이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반일 감정이 아시아에서만 부각 돼서 유럽엔 반일 감정이 전혀 없는 것처럼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엄청난 오해이다. 일례로 1960년대에 당시 일왕인 히로히토가 미국, 중국[51], 영국, 네덜란드 방문을 떠났을 땐 그야말로 난리였다. 미국, 대만에서는 그나마 조용히 넘어갔는데[52] 영국, 네덜란드에선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과 그 유족들로 구성된 반일 시위대가 몰려들어 히로히토에게 돌팔매와 화염병과 각종 오물을 거침없이 날려댔고 이들은 하나 되어 히로히토에게 "살인마는 우리나라에서 빨리 꺼져라!"와 "일본 왕을 즉시 전범 재판에 회부하여 사형을 선고하라!"와 "일본 왕이 죽인 우리 가족들을 살려내어 다시 우리들에게 돌려달라!" 등 피켓을 든 시위대가 히로히토가 가는 곳마다 몰려들어서 히로히토는 돌과 화염병과 오물을 맞으며 엄청난 수모를 당했다.[53] 그리고 히로히토가 뒈지자 죽자 영국 신문들은 히틀러와 무솔리니와 더불어 3대 전범이 이제야 죽었다, 지옥에서 축하할 잔칫날, 행복한 전범 히로히토 그는 44년이나 더 살았다라고 엄청나게 비판했다. 심지어 1990년대에 아키히토마저도 영국에 방문할 때 영국 노병들이 보상하라며 전범국가 일본이라고 휘파람을 불며 야유하고 콰이강의 다리 삽입곡으로 유명한 보기 대령 행진곡을 연주하며 비판했다. 당시 일왕 내외를 태운 마차는 찍소리 못하고 피하기만 했고 상이군인, 노병들이 거리를 두고 비판하니 영국 경찰도 직접적으로 테러를 가하지 않는한 뭐라고 하지 못하니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일본 극우들은 징징거렸지만
그리고 그 미국에 큰 영향력을 가진 유태인과 이스라엘도 나치와 한 패거리인 일본의 저런 징징거림을 안 참아주는데,[54][55] 그 이유는 나치에게 굽실거리며 무기 기술을 받고 같은 동맹국으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을 피해자라고 한다면 나치 독일이나 이탈리아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
다만 독일은 좀 무리수지만, 이탈리아는 인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56] 이탈리아는 애초에 전체적인 구심점보다는 자체적인 지방에 소속감이 컸고, 반 파시즘적인 저항세력인 안티파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 곳 가운데 하나라서다. 특히 1990년대를 분수기로 국내로는 렌조 디 펠리체, 죠반니 빠보네, 국외로는 스탠리 페인, 토니 주트 등의 현대 역사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은 비단 연합군의 상륙 같은 외부적 요소 뿐만 아니라 전쟁 이전부터 지하에 암약하여 지속적으로 반파시스트 저항 운동을 펼쳐오던 공산주의, 사회주의, 공화주의, 그리고 무솔리니가 이탈리아 왕실을 바지사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에 반발한 우파 내의 반파시스트적 인사들이 규합하여 터뜨린, 즉 이탈리아 내부의 반파시스트 요소들이 자체적으로 응집하여 터진 하나의 내전으로 보는 시각이 학계 내에서는 주류이다[57]. 그리고 내부 정치 외적인 군사적 측면에서도 최소한 이탈리아는 다른 두 추축국처럼 "인질은 없다!"를 대놓고 자행하진 않았다. 이런 행보 때문인지, 이탈리아는 독일과 일본과 달리 전후에도 전범국가 처우는 거의 받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이 피해자면 미국이 가해자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따위 주장은 네오콘을 필두로 한 미국 우익이 절대로 이걸 웃으면서 넘기지 않는다. 네오콘 상당수가 바로 2차 대전 참전 군인이거나 그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일본 극우들이 위안부 문제를 '미국도 그런 게 있다' 운운하며 물귀신 작전으로 끌어들이려다가 네오콘들이 폭발하여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문제 결의안 통과에 기여한 적도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노예와 군부대를 상대하는 성매매 녀가 똑같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서 다.
한편 이전 일본에 마르코 폴로라는 극우 잡지가 있었는데, 이 잡지는 한국과 중국 침략이나 학살도 부정하며 이것들이 모두 조작이라는 개드립을 일삼았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유태인 학살이 조작되었고 나치의 행동은 정당방어이며 그 나치와 아군이던 일본도 마찬가지라는 궁극의 개드립을 쳤다가 나치전범 추적으로 유명한 시몬 비젠탈이 이걸 알고 격렬하게 분노하여 미국 내 유태인 단체와 같이 항의하며 나아가 일본 정부에 책임을 따지겠다고 하자 데꿀멍하여 얼른 스스로 잡지를 폐간한 적도 있다.
물론 이건 유대인의 영향력이 국제적으로 상당히 강하다는 점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해석하지만, 그 점을 고려해도 당연한 행동을 해서니 실드쳐 주는 사람은 없다. 이처럼 일본이 징징거려도 본격적으로 미국이나 유럽 쪽 나라들에게 사과하라고 대놓고 나서진 못한다. 그것만이 아니라 엄밀하게 떠져 볼 경우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해서는 미국도 피해자다.
5.1.1 미국에 살고 있는 일본계의 시각
미국에 사는 일본계 미국인들도 몇몇은 이런 피해자 행세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대부분 일본의 이런 위선을 좋게 바라보지 않는다. 미국에 사는 처지이기도 하고, 이외에도 여러 가지 까닭에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처럼 나서거나 반대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2차 대전 당시 일본계 부하들을 이끌고 나치 독일에 맞서 최전선에서 맹활약한 故 김영옥 대령(1919~2005)의 활약이 컸다.
그가 살아있을 때 캘리포니아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결의를 하려고 하자 일본계들이 반대 로비를 했었다. 그러자 김영옥 대령이 부하이던 일본계 노병들을 찾아가 "우리가 유럽에서 싸운 게 뭘 위해서였냐?"면서 설득하자 이 노병들이 로비하던 일본계들에게 반대 로비를 그만두게 했다고 한다.
미국 내 일본계들에게도 2차 대전 참전자들은 '큰 어르신'이라서 존경과 같이 발언권이 컸기 때문인데 김영옥 대령이 별세하고 나서도 살아있는 일본계 노병들은 그의 뜻을 존중하여 혼다 하원의원을 비롯한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에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 더구나 일본계 미국인들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1, 2세대들이 모조리 수용소로 직행한 적이 있어 이런 우익적인 망언을 경계하는 경향이 어느 정도 나온다.
5.1.2 최근(2016년)의 경향
최근에는 아베 신조 총리를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우경화 행보 탓에 오히려 전 세계의 강대국들에게 안 좋은 의미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서양 권에 위안부 문제가 제대로 드러났다. 게다가 아베 정권의 우경화 행보는 기존 일본의 태도와는 급이 다를 만큼 미친 모습이라, 그 사이 일본에게 더 우호적이었거나 무관심했던 미국도 지속적인 경고를 주는 등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중국과의 대결을 가정했을 때, 미국은 정 안되면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고[58] EU와 손잡아 잠시 서태평양에서 물러난 뒤 반격에 들어가도 괜찮지만, 일본은 도망갈 곳이 없다. 그게 아니라도 미국은 필리핀-인도네시아-호주 등을 주축으로 서태평양 연안 방어선을 세우고 미군의 주둔 비중을 좀 더 늘린 뒤 러시아와 타협하는 것으로[59] 충분히 대처할 수 있어 일본의 존재가 절박하게 필요한 것도 아니다.
결정적으로 일본은 대체적으로 쇠퇴 추세인 반면, 일본과 척을 졌던 나라들은 급상승 추세이다. 특히 중국! 2013년 동남아시아 지역 회의에 끼어든 아베가 싱가포르에게 중국 견제를 위한 요구를 하자 싱가포르에서 미친 소리를 한다는 투로 대했고, 회의 의장이던 브루나이 국왕이 헛소리 한다는 얼굴로 쳐다봤으니 반일성향이 적은[60] 동남아에서 조차 정치적, 외교적으로 매도를 겪어도 그걸 못 느낀다. 중앙일보 기사
그러나 2015년 중국 주도로 이뤄진 AIIB에 영국과 여러 해외 나라들이 연이어 가입하면서 이걸 개 무시했던 미국과 더불어 일본도 초비상이다. 일본이 우려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중국 주도로 금융 투자가 이뤄지면서 그동안 미국과 일본 주도로 이뤄진 ADB에 타격을 주면서 일본이 공들여서 이런 자본 투자로 아시아 여러 나라에 친일적인 시각을 주던 노력이 박살난다는 것인데 이게 아직 시작 초반임에도 상당수 들어맞고 있다. ADB가 이거저거 다 따지는 통에 반발하던 아시아 및 여러 대륙 나라들이 우르르 AIIB에 가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5.1.3 개별 사례
5.1.3.1 스티븐 스필버그의 선택
실제로 유대계 미국인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설립한 드림웍스 영화사의 아시아 지역 배급권 계약을 할 당시 나치 독일과 함께 전쟁한 일본 업체는 처음부터 배제했다. 당시 아시아 지역 엔터테인먼트 산업 규모는 일본이 압도적이고, 한국의 산업 규모는 일본의 1/10 정도였다. 그런데도 일본 기업을 쌩까기로 했다니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다 보니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기업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는 한국 기업에 우선적으로 접근했다. 처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게 접근했는데 당시 스필버그 측 인사의 증언으로는 이건 뭐 반도체 얘기만 하고, 영화 산업의 이해가 없었다카더라. 영화광 이건희 의문의 1패 물론 표면적인 까닭이며 실제로는 다른 속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끝내 이 정보를 입수한 범 삼성계 대기업인 CJ가 접근, 드림웍스의 아시아 지역 배급권을 따냈다.
이런 CJ의 드림웍스 판권 계약에 충격을 받은 삼성그룹은 그제서야 부랴부랴 영화 산업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고. 그래서 부작용은 있었지만 1999년 이후 한국 영화가 대기업들의 집중 투자에 큰 성장을 하게 된다. 물론 티겟값도 같이 올랐다는게 함정
5.1.3.2 미국 하원의 위안부 문제 결의안 통과
미 하원에서 이 결의안 통과를 묘하게도 일본계 미국인 3세인 민주당 소속의 마이클 혼다(Michael Makoto Honda, 애칭은 Mike) 하원의원이 지지했다. 그는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일본계로서 사죄하고 유엔 결의안을 비롯하여 더 강력하게 위안부 문제를 따지자고 주장한다. 당연히 일본 극우들은 마이크 혼다를 두고 매국노, 일본의 수치 등 비난하며 싫어하는데 구로다 가쓰히로는 혼다 의원이 한국 정부에게 매수를 당했다는 식의 개드립을 날리기도 했다.(...)
사실 이것도 모자라 "미국도 성노리개 같은 게 있었다"는 투로 말한 일본 극우들의 자폭이 이 사태를 촉발시켰는데, 넷 우익들은 이런 건 생각치도 않고 있다(...). 참고로 혼다 의원이 네오콘 내 일본 지지파 의원 설득에도 바로 이 점을 어필했다. 일본의 이런 주장은 네오콘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네오콘의 상당수가 2차 대전 참전 군인이거나 참전 군인을 아버지로 두고 그걸 자부하는 이들인데, 일본의 주장은 자신들에게 위안부란 이름으로 성노리개가 있으며 미국이 자신보다 더 나쁘다느니 참전군인은 강간범이라는 개소리일 뿐이다. 당연히 네오콘들은 이에 분노해 결의안 통과를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 무릇 상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으면 심기를 맞춰야 하는데 일본으로서는 가장 초보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셈이다. 딴에는 물귀신 작전이랍시고 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미국은 그런 성적 모욕에 관대하지 않았다(...).[61]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전에 이주 온 일본계 미국인 2세들은 병적으로 조국인 일본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2차 대전 당시 미국 정부에서 다른 추축국 출신들에 비해 일본계를 격리 수용하는 등 차별 받은 기억이 있는데[62], 이 때문에 자신들이 일본 출신임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일례로 미국인들이 일본계 미국인 2세들을 보고 "Are you Japanese?"라고 물으면 "I'm not Japanese. I'm Chinese."라고 해서 중국인이라고 거짓말을 치는 등 일본 출신이 아님을 명확히 강조한다. 일본계 미국인들의 이러한 특징을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그들은 일본이 아닌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미국인의 정체성이 훨씬 크면서 일본인 특유의 국가에 복종하는 경향이 들어가 그렇다는 연구가 있다. 확실한건 아니니 맹신하진 말자.(...)
물론 일본계라고 다 그런 건 아니라 일본 극우를 지지하며 위안부 결의안을 반대하던 일본계 정치인들도 있긴 하다. 대니얼 이노우에 연방 상원의원(1924~2012)이 대표적으로 2차대전 때 유럽전선에 참전하여 팔을 하나 잃었던 그는 일본 극우를 편들어 미국 하원 결의안을 반대했으나 네오콘들이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물타기를 하는 일본 극우들에 분노하여 반대하지 않았고,역시 도움이 안되는 일본우익들 결국 결의안이 통과되어야 하는 걸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우습게도 극우 일부는 이노우에를 무능하다고 되려 적반하장으로 욕하기 이르었고 이노우에도 분노하여 "자폭한 게 누군데 나에게 책임을 넘기느냐?"라고 대응하고 은거하다가 병사했다.
5.2 아시아 국가들의 시각
일본공: 글치 얘들아?
폴란드공에서 표현한 일본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시각.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뻑↗유↘ 깨알같은 yuo 사실은 이것보다 더 심한데 ......
유럽 쪽 국가들처럼, 다른 아시아나 오세아니아 나라도 일본의 저런 징징거림에 동참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일이 절대 없다. 정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모두가 일본에게 짓밟혀서다.[64]당장 전쟁 시기 일본에 협력했던 자들조차도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모두 "마지못해 협력했다, 일제는 아주 나쁜 놈들이다."라고 변명하는 판이다.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의 재무장을 지지(?)한다고 알려져 있는 동남아 국가들도 일제 침략 자체는 절대 옹호하지 않고 철저히 깐다. 여기에 자신들의 친일 경력을 덮고자 반일 이데올로기를 적극 사용한 때도 있었다.
한국의 경우, 반민특위가 열렸을 때 친일파(2번 항목)들의 변명을 보면 하나같이 일제를 찬양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고 "당대에는 다 친일했다!"식의 물타기나 "광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실수로 일제하에서 민족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 친일했다!"식의 변명이 대부분이다. 특히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나 경찰, 관료 등을 맡았던 자들은 자신들의 친일행적을 "그 때의 경력을 살려서 민족을 위해 쓰겠다!"고 말하며 선처도 호소했고, 실제로 친일파(2번 항목)의 일부는 반공이 애국이라고 주장하며 공산세력 토벌에 앞장서기도 했다.
일본이 과거를 묻어버리려는 의도로 아시아 나라들에게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해줘도, 아시아 국가들은 역사적으로 일본도 다른 식민지 제국주의 국가와 똑같다고 확실히 인식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못 가리는 법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지금 당장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에 마지못해 협력해도, 과연 일본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도 전적으로 일본을 돕지는 않을 터. 일본이 정말 개 막장 수준으로 나아간다면 그 때는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과 척을 지고 오히려 중국과 협력하려고 들 것이다. 이러면 아시아의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미국이 두려워하는 사태가 오게 된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도 일본을 암암리에 압박하고 있다. 하다못해 한국처럼 반일 친미로 갈 정도. 무려 전쟁까지 치뤘던 베트남이 갈 정도면 말 다했다.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 편을 보면 일본이 2000년대 들어서 유로화를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이나 달러화 강세에 밀려 엔화의 국제 값어치가 사라지자, 엔화를 중심으로 아시아경제연합을 이루려다가 무시당하고 더불어 실패했다고 그린 바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에 동아시아 경제회의에서 일본 대표가 이런 제의를 하다가 한국, 중국은 물론 심지어 대만조차도 일절 지지하지 않고 무시했다. 거기다 그 자리에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대표가 "당신들은 아직도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학살자, 침략자임을 부정하면서 무슨 염치로 아시아 나라들의 중심을 한다고 그러오? 아시아 나라들의 중심은 엄연히 중국이거늘!"이라며 대놓고 비웃은 바 있다. 이게 현실이지만 일본 극우는 현실을 부정하고 언제라도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각국들이 모두 일본을 추앙하며 따른다는 뜬구름 속 망상에 젖어 있다. 당연하지만 택도 없는 소리.
사실 따지고 보면 모두 일본의 자업자득이다. 만약 일본군이 동남아에 진주한 뒤 일본군을 해방자로서 환영하던 동남아인들의 처우를 좋게 해주고 약탈도 안 저질렀다면 일본 제국은 적어도 동남아 교과서에서만큼은 '해방자'로 남았을 것이다. 연합국도 자신의 식민지 착취를 일본 못지않게 해댔으니. 하지만 일본은 그냥 본색을 드러내 있는 대로 마음껏 수탈하고 학살했다. 동남아인들이 그런 일본의 편을 든다면 자신의 부모를 죽인 살인자를 옹호하는 것과 똑같다.
그럼에도 일본 극우들은 자기 잘못들을 조금도 안 말하고 동남아 나라들의 저런 일본 혐오가 왜곡이라며 동남아에 영향이 큰 중국이 왜곡시켰다든지 한국이 로비해서 그렇다는 찌질한 반응으로 열폭한다. 반대로 말하면 일본의 국제적 영향력이 중국이나 한국보다 못하다고 인증하는 꼴이니, 자폭 감사!
일본의 이런 개차반 왜곡은 답이 없는 악성 친일반민족행위자나 돈으로 매수한 이들만 지지함을 보면 대충 견적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고 젠카나 김문학 형제, 김완섭, 한승조 같은 이들이 좋은 예시가 된다. 황문웅 같이 대만계 작가 중에서도 그들도 비슷한 짓거리를 하다가 국적 박탈로 일본에 귀화한 경우도 있다. 황문웅은 공자식인설을 진짜 있었던 일인 마냥 책을 냈다. 이런 악성 친일파(2번 항목)들은 끝내 조국에서 비판과 무시를 받으며 잊혀 진다.
5.2.1 현재(2016년)의 경향
최근 대두되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 문제는 중국의 영향권 팽창 시도에 주요 각국의 공조가 제대로 안 되는 사태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미국에게 있어서 중국에 대한 일본의 역할은 더 커지고 있고, 군비 확장 등을 용인하며 더 크게 부담을 시키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막장 행보 덕택에 동아시아의 대중국 포위망이 금이 가고 있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일단 중국 대처가 우선이니 일본에 일반적인 규탄만 한다고 쳐도, 이전처럼 협조하지 않으려고 한다. 멀리 갈 것 없이 한국만 해도 일단은 일본과 협력 관계이지만, 점점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단적인 증거로, 한국은 아베 신조의 막장 행보와 연관된 과거사 문제만큼은 중국과 협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는 한국이 중국과 협력 관계가 될 만한 드문 요소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당장 그 미국과 소련도 정치적으로는 적국이지만 나치 문제만 나오면 바로 그런 반인륜 악질들은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고 위 아 더 월드를 외쳤는데, 일제 관련 문제가 그와 비슷하다.
좀 심하게 말해서 서독이 냉전 시절 나치드립 치면서 친 나치 인사를 총리로 앉히고 나치 계승 정당을 집권당으로 만들었다면 어땠을 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그런데 누군가가 독일의 어떤 이웃나라에서 실제로 비슷한 행동을 했었다니 흠좀무.
애초에 일본이 지금 내세우는 식민지 시혜론을 비롯하여 역사적 사실성보다는 죄의식의 희석이 주목적인 주장들은, 일본 외의 열강이 내세우던 주장을 끼워 맞춰 만들어졌다. 따라서 일본과 비슷한 역사적 오점을 지니는 나라들의 일각에도 저런 주장이 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 나라들에서 저런 주장은 헛소리 취급받는다. 즉 역사수정주의의 비판의식은 각자 구체적 형태가 달라도 세계적으로 공유한다. 비단 역사적 상처가 있는 피 침략국뿐만 아니라 강대국들 사이에서도.
프로파간다의 제작자들은 빈번하게 수용자를 백지에 가까운 이상적 청취자로 설정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그러나 실제의 인간은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새로운 것을 수용하기 마련이다.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어떻게 약탈하고 피폐하게 만드는지는 자신들의 경험으로 잘 아는데, 세계에서 유독 일본만은 식민지에 헌신했다는 소리를 한다면?[65]
5.2.2 개별 사례
5.2.2.1 베트남
베트남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를 일시적으로 뭉개고 쳐들어온 일본군을 환영했으나, 국부인 호치민은 박헌영을 비롯한 한국인들을 만나 친하게 지내면서 일본 이야기를 들어왔기에 처음부터 일본도 프랑스 못지않은 제국주의 침략자라고 견제했다. 호치민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일부 베트남 독립 세력이 그래도 같은 아시아인이라고 일본을 좋게 보자, 호치민은 일본의 지배를 받는 조선인들이 행복하다고 하더냐?프랑스나 일본이나 차이가 없음을 알아둬라!"라고 꾸짖은 것도 유명하다.
애초에 베트남은 반불 식민 투쟁 시기부터 중국, 소련 등지를 통해서 다른 아시아 각지의 혁명가들과 교류를 유지했고, 이 와중에는 많은 조선인 독립 운동가, 망명객들과도 비공식적인 친분이 있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식민지 초기부터 판 보이 쩌우가 조선인들의 처지와 자신들을 같이 비교하며 한탄하는 시를 쓰는 등, 독립 운동을 주도했던 초기의 유생들과 후기의 사회주의자들 모두 일제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뜻은 지금도 베트남 교과서에 남아 일본의 식민 지배를 비판한다. 무엇보다 베트남 국부인 호치민도 2차 세계대전 당시 항일 무장투쟁하면서 공산당 세력을 키웠다. 더이상 설명이 필요한지?[66]
이렇게 강력하게 규탄한 까닭은 태평양 전쟁 시절 베트남을 점령한 일본은 조선에게 그러했듯 베트남에게도 일본군의 각종 민폐세트와 더불어서 당연히 쌀을 강제로 수탈해서였다. 그러다가 1945년 수탈과 더불어 대기근이 일어났다. 당시 북베트남 인구는 1,000만 정도였는데, 일본군의 쌀 공출과 홍수-가뭄 크리로 온 흉년, 미군 잠수함 크리로 온 남부 베트남 쌀 수송의 난항은 기록적인 대기근으로 돌아왔다. 이 대기근에서 굶주림으로 죽은 사람만 200여만 명.[67]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인들은 일본에게 증오만 넘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호치민은 세력을 크게 늘렸고 일본 항복 직후 일시적이나마 베트남 전토를 를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인구 1/5이 굶어 죽었는데 강제적인 쌀 공출을 하면 당연히 분노할 것이다. 미국의 잠수함 작전으로 남부 베트남에서 북부로 쌀 수송이 마비된 것도 큰 원인이지만 그렇지 않고 쌀 수송이 원활했더라도 그만큼 더 삥뜯었으리라고 본다.
참고로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베트남인의 체험문학작품을 보면 쌀을 가져갈 때 "안 돼! 가져가지 마라!"라고 울부짖는 여인을 칼로 베어 죽이고 억지로 쌀을 공출하는 일본군의 모습이 보인다. 참으로 일본군다운 행동일 따름. 출처 출처2 당연히 베트남 교과서에서는 악랄하게 이 시절의 일본을 깐다. 하긴 베트민을 비롯한 반 프랑스 저항군이 일본군에게도 맞서 싸웠을 정도이니. 본격적인 미국과의 악연일 때도 이때는 일단 추락한 미국 조종사들을 구해주거나, OSS가 전술 교육, 물자 지원을 해 주는 등 협력 관계로 시작했다. 이 시절에 OSS가 베트남에 파견했던 미군 지원단, 군사 고문 등이 미국인들 치고(...) 현지 문화에 빨리 적응하고, 베트민에게 좋은 인상을 주며 결국 1945년 8월 일제가 철수 할 때 터진 베트남 8월 독립 혁명때 명예 국빈으로 참석 하는 등 좋은 무드를 형성했으나 냉전이 진행되고 미국의 정책이 바뀌면서 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여하튼 이 시절 일본의 착취와 약탈로 죽어간 베트남인들에 대하여 베트남 교과서나 언론, 책자로 분명하게 기재하고 일본을 비판하며 침략자, 학살자로서 분노하고 있다. 이에 일본 극우들은 모른다는 변명과 부정만 하고 베트남 역사 교과서로 일본을 침략자로 비난하는게 한국과 중국 탓이라고 개드립을 하며 발광할 뿐이지만 밑에 아시아 나라 대부분의 반일적인 역사교육에 대하여 늘 이렇게만 억지부릴 뿐이다. 이러니 해당 나라 여론은 당연히 싸늘하다.
5.2.2.2 필리핀
필리핀은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에 맞서 싸우던 필리핀 군인들을 영웅시하며 지금도 기리고 존경하며 역사적으로 배운다. 예를 들어, 필리핀 독립 영웅이자 대통령인 라몬 막사이사이(1907~1957)만 해도 항일 저항군 지도자로 알아주는 영웅이다. 독재자인 마르코스도 비록 엉터리임이 정설이지만 대통령 시절 항일 저항군에 들어가 싸웠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일본 극우들의 미국의 식민 지배를 해방시키고자 도우려던 일본군이라는 소리는 필리핀에서는 모조리 깔끔하게 무시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필리핀은 2차 대전 때 태평양의 이탈리아 전선 소리 들으며 학계의 추산으로 70만~100만, 인구의 5~9%가 2차 대전으로 인한 파괴, 학살, 기아로 죽으며, 수도인 마닐라만 하더라도 유서 깊은 스페인 식민 시절부터 보존 되었던 구시가지가 가루가 되어 버리는 마닐라 대학살을 당했다. 이렇게 물질적으로 태평양 전선의 핵심 중 하나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당장 바탄 죽음의 행진 같은 전범 행위가 대거 발생한 곳인 만큼, 정치적 상황이 혼잡해서 대립이 극심한 나라임에도 항일 투쟁만은 공산당이나 신인민군 같은 좌익, 막사이사이 같은 우익, 모로 해방 전선 같은 소수 민족 분리주의 계열마저도 협력하며 공유하는 역사이다. 이런 나라에서 일본이 영향력 발휘하겠다고 드는 시도 자체가 본인들이 얼마나 피해를 끼치고 갔는지 자각을 못한다는 반증이다.
5.2.2.3 인도네시아
한편, 일본 극우들이 메르데카라는 극우 찬양 영화를 만들자 이 영화의 배경인 인도네시아도 반발하여 일본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고 일제 불매 운동까지 벌였다. 인도네시아 교과서도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식민 지배를 일본이 해방시키려고 했다는 일본 극우의 주장은 무시하며 "2차 대전 당시 일본도 침략자 중 하나로 쳐들어왔다"고 언급한다. 원자탄 맞고 쫓겨났다고 꼴좋다고 적어놓은 건 덤.
사실 인도네시아는 일본군이 처음 들어오던 시절에는 정말로 일본군을 해방군으로 알고 대대적으로 환영하던 나라였다. 그동안 인도네시아를 지배하던 네덜란드 식민지군을 격파하고 동양인들을 위한 대동아 공영권을 실현하러 왔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다. 이 때문에 당시 인도네시아의 지도자 수카르노는 일본군에게 인도네시아의 자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인도네시아 청년들도 징병시켜 일본군에 합세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일본군이 인도네시아에서 온갖 깽판을 치면서 180도로 바뀌게 된다.(...) "네덜란드가 차라리 나았다!"는 소리가 현지인 입에서 나올 정도니 더 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 사실 인도네시아 말고도 러일전쟁 당시 일본이 러시아를 이긴 걸 두고 황인이 백인 이겼다며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무척 기뻐했으며(심지어 중국 일부에서도 좋아했다!) 베트남이나 여러 동남아시아 나라 및 오세아니아 섬나라에서도 처음에는 무척 일본군을 반가워했다. 그러나 죄다 오래가지 않아 치를 떨며 차라리 예전 식민지로 착취하던 백인이 낫다고 편들어줬다. 지금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일본 놈들이 다짜고짜 몰려와선 죽도록 사람들을 부려먹고 약탈하고 가서 무고한 인도네시아 인들만 엄청 죽었다고 일본에 이를 간다.
일본 극우들은 일부 일본군 패잔병이 인도네시아 독립군에 들어갔다능 징징거리지만 이건 극히 일부이고 이들에 대해서는 인도네시아 측이 우대를 해주지만 그거랑 일본군이 저지른 해악을 덮을게 있느냐는 비아냥에 묻혀버린다. 여담으로 조선인 양칠성(1919~1949)도 인도네시아 독립군으로 네덜란드군과 싸우다가 잡혀 총살당했다가 1970년대 들어서야 한국에 유골이 돌아오게 되었다.
일본 소설인 비탄의 아리아에서는 난데없이 이걸 거론하며 인도네시아 독립에 일본군 잔당이 기여했다고 발광을 하고 있다...일부 도움이 된 건 사실이지만 주도는 개소리이다. 어디까지나 인도네시아인들이 스스로 주도한 것이거늘.
5.2.2.4 말레이시아 및 라오스, 캄보디아
표절작이긴 하지만 일본은 없다를 보면 지은이 전여옥이 본 일화로 말레이시아 외교부 인사가 일본에 관하여 2차 대전 당시 동남아를 쳐들어와 학살과 약탈을 벌였다면서, 차라리 영국이 조금은 낫다는 말까지 대놓고 하여 일본인들을 무안하게 만든 일이 있으니 여기도 일본에 어떤 시각인지 알 만하다.
일본에게 직접적인 침략을 겪었던 라오스나 캄보디아에서 선생으로 봉사했었던 한국 봉사단체 KOICA 교사들 증언에 따르면 라오스 세계사 교과서도 '일본은 2차 대전 침략국가로 아시아 여러 나라를 쳐들어가 학살을 벌였다'고 집필 했다고 한다.
5.2.2.5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중국계들이 워낙 기득권이라 그렇고 2차 대전 당시 일본에게 겨우 4년 지배당했음에도 무수한 중국계들이 일본군에게 학살을 겪고 말레이계와 이간질시켜 일본군이 물러나고 골머리를 앓아서인지 교과서가 꽤 반일적이다. 싱가포르 중학교 세계사 교과서에선 당시 "일본군이 길을 지나는데 갑자기 당신의 배를 발로 찼다면 '아리가토 고자이마스'라고 고마워해야 한다. 일본도로 당신을 베지 않았으니까"라고 나올 정도다.(출처-아시아 역사교육. 동남아 편)
물론 일본 극우는 싱가포르는 중국의 꼭두각시 나라라 그렇다고 징징거리겠지만 중국계가 아닌 말레이계나 인도계도 일본을 옹호할 까닭은 전혀 없다. 그저 중국계보다 조금 덜 비판할 뿐. 참고로 싱가포르는 중국보다는 대만과 더 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수교는 중국과 했지만 1992년까지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간 보기 줄타기 외교를 했고 이후 총리가 대만을 방문도 해서 중국이 항의했다. 지금도 미국에게 무기를 사오고 있고, 미국제 무기 좀 보자는 중국에게 '즐 쳐드삼'을 시전하며 미국 눈치를 보는 싱가포르다.
5.2.2.6 미얀마
다른 설명 다 필요 없고 기무라 헤이타로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68] 애초에 이 나라에서 친일 발언하면 무기징역, 사형을 받을 수도 있다. 미얀마가 친일 발언에 대해 이 정도로 적대적인 이유 역시 기무라 헤이타로 때문이다.
5.2.2.7 태국
일본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는 않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의 강압적인 위협에 굴복해서 억지로 추축국에 가담한 태국 역시 일본에 대해 결코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다. 만일 당시 일본에게 대항해서 싸웠다면 태국 역시 이 문서의 다른 나라들처럼 일본의 점령지로 전락했을 것이고[69] 그랬다면 일본군에 의해 수많은 태국인들이 학살당하고 물자 역시 닥치는 대로 약탈당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게다가 당시 군사 독재자였던 쁠랙 피분송크람의 친일 행각으로 인한 병크도 겹쳐서 이 시기에 대한 태국인들의 감정은 다른 아시아인들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나중에는 일본에게서 돌아서서 연합국과 함께 일본에 대항해 싸운 역사도 있다.
5.2.2.8 인도 공화국
인도 공화국도 마찬가지. 일본은 찬드라 보세 같은 인도 독립 운동가를 열심히 띄워주지만 정작 인도 세계사 교과서에도 일본은 침략 국가다. 위대한 영혼(마하트마)'으로 일컬어지는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와 같이 국부로 존경받는 인도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1889~1964)가 영국이 교도소에 그를 가뒀을 때 딸인 인디라 간디(1917~1984)에게 보낸 편지를 봐도 3.1 운동을 찬양하며 한국을 억누르는 일본도 영국과 똑같은 제국주의 침략자라고 비판했다. 그런 자와할랄 네루가 초대 인도 총리였으니 인도 세계사 교과서에선 일본은 영국과 똑같은 침략자로 비판적으로 서술되어 있다.[70] 참고로, 그의 편지는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긴 편지이기도 하다. 한국에선 세계사 편력이란 이름을 달아 책 3권짜리(!)로 나왔다.
일본 극우들은 반일파(?) 네루가 아니라 찬드라 보세가 인도 총리를 했더라면 일본과 인도 공화국은 사이가 더 좋아졌을 것이라는 헛소리를 하는데, 사실 찬드라 보세는 친일파라고 할 수 없는 인물로, 심지어는 나치에게까지 힘을 빌려 영국에게 맞섰던 것뿐이다.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때 자기에게 협력하면 독립을 약속했는데 도와주니 씹고 총칼로 판을 엎어버린 국가가 참 곱게도 보이겠다. 그래서 나치에게 협력을 요청했었지만 나치는 점점 인도에서 멀어지고 오히려 일본이 인도에 가까이 접근하자 나중에 일본에 협력을 요청한 것뿐이다. 즉 나치에 대한 환상은 전무하고 오직 필요한 데 써먹기만 했으며 지킬 건 그럭저럭 지키려 노력한 칼 되니츠와 마찬가지로, 일본에 환상은 전혀 없었고 그저 필요한 데 써 먹었다. 인도 입장에서는 영국이 인도에 한 짓이 일본과 비교해서도 만만치 않게 극악무도했지만[71], 찬드라 보세도 그놈이 그놈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지라... 그저 적의 적은 나의 친구이니 이용하려 했을 뿐. 진짜로 보세가 친일반민족행위자였다면 오늘날 그를 인도 사회가 애국자로도 대우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네루의 후손들은 지금도 인도에서 영향력이 막대한 정계 인사이다. 그러니 "네루는 반일이지만 죽었으니 무시하자~!"라는 이 따위 개드립을 해봐야 되레 일본에게 해롭다.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넷 우익들이나 인터넷에서 헛소리를 하는 것일뿐, 실제로는 일본 정치인들이 인도를 방문할 때마다 네루의 무덤에 헌배하러 가는 수준이다.
5.2.2.9 대만자유중국
심지어 친일국가라고 일본 극우들이 홀로 생쇼하는 대만조차도 일본의 식민 지배를 좀 좋게 봐줄지언정, 2차 대전 및 난징 대학살 사건과 같은 만행에는 매수된 일부 친일파를 빼면 절대로 일본의 만행을 부정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현재 대만을 실효지배 중인 중화민국의 경우에는 일본의 침략을 받아 실제로 전쟁을 치렀던 국가였다. 난징 대학살의 경우를 봐도, 중화민국의 수도가 난징이었기 때문이다. 중일 전쟁은 바로 이 중화민국이 중국 대륙을 통치하던 시기의 일이고, 게다가 후계 국가 또는 그를 자처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은 현재 입장에선 중국 대륙을 통치하고 있다.
핵심은 두 국가 모두 일본과 전쟁을 한 적국이었다는 것. 특히, 마잉주 정부부터 교과서에서 본격적으로 일본의 이런 전쟁범죄에 대하여 비판한다. 반면에, 리덩후이 등 독립파들은 친일성향이 강해서 통하지도 않다.## 애초에, 대만은 청일전쟁 뒤에 일본으로 넘어갔으나 도로 중국에 돌아왔으니...
5.2.2.10 오세아니아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크고 강대국인 호주도 1942년에 일본에게 당한 다윈 공습(Bombing of Darwin)같은 여러 침략을 받아서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2차대전 동남아 전선에 파병하여 열심히 싸우다보니 일본의 이런 피해자 행세에 대하여 대단히 불쾌하게 반론한다.
오세아니아에서 호주에 이어 큰 나라인 파푸아 뉴기니만 해도 90년대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 <기미가요의 포트 모르즈비>를 보면 당시 일본의 지배를 받아서 기미가요를 부를줄 아는 현지인 노인들이 나올 정도였다! 노래를 잘안다고 하자 노인이 노려보듯이 쳐다보며 하는 대사가 섬찟한데 "안 외우면 죽어라 얻어맞았고 여러번에 걸쳐 못 부르면 죽여버린게 당신들 일본인이거든." (출처- 월간 키노) 이렇게 나올 정도라면 말이 더 이상 필요없다.
다른 오세아니아 작은 섬나라들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백인 양놈보다 낫겠지' 하면서 일본군을 환영했으나 가만 보니 학살에 약탈, 징용...더 악랄한 놈들이었다.젠장! 양놈들보단 나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웃 놈한테 당했군! 끝내 분개한 원주민들이 호주 애버리지니도 양놈 싫어하지? 및 영국군 같은 백인 군대를 편들어준 일도 유명하다. 당연히 교과서 및 인식으로 일본의 피해자 행세에 굉장히 싫어한다. 권주혁이 쓴 책자인 핸더슨 비행장에 따르면 일본인들이 세운 일본인 사망자 추모비에 지들이 억울하게 피해자로 학살당했다는 투로 새기자 현지인들이 우리야말로 피해자라면서 격분하여 추모비에 테러를 감행했다고 한다. 이후 그냥 전쟁에서 죽은 피해자를 순수하게 추모한다는 뜻으로 세우고 나서야 겨우 수습했다고.
5.3 대중 매체
5.3.1 일본이 피해자라는 입장에 경도된 작품들
전범으로서의 과오를 인정하거나 가해자 입장을 피해 못잖게 강조해서 다룬 작품, 예를 들어 후술할 맨발의 겐같은 작품들은 예시화하지 말 것.
5.3.1.1 만화
- 고마니즘 선언: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1992년작. 90년대 이후 일본의 젊은 우익들을 결집시킨 만화로 유명하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오히려 이쪽 방면에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이 작품은 아예 대놓고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를 이야기하고 있다(...).
- 나츠코의 술: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일본의 국운을 살리고 대동아 공영권을 위한 바른 전쟁이며 나라에 충성한다고 묘사한다. 양조장을 하던 사람들도 피해를 본다고 나오지만 정부나 전쟁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냥 피상적인 형태의 피해만 그리고 있고 국외의 전쟁 피해자에 대해선 일언반구의 말이 없다.
- 더 파이팅: 압천 관장의 회상씬에서 미국을 악의 집단처럼 묘사하고 본인들은 정당한 전쟁을 했는데 졌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고생하는 것처럼 묘사하였다. 한 장면에서는 캐릭터가 제로센을 찬양하는 대사가 나온다.
- 불꽃의 눈: 오시키리 렌스케의 만화. 숄골이라는 가상 적국에게 점령당한 일본인이 독립투쟁을 하는 모습을 그린 만화인데, 공습 장면이나 숄골 통치 하의 상황을 그린 걸 보면 영락없이 도쿄 대공습과 GHQ 통치 하의 일본. 이걸 과장되게 일본이 피해자인양 묘사하고 있다.
- 안녕 절망선생: 일본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과를 강요받는 피해자라는 입장을 강력히 견지하고 있다. 아예 그 입장을 형상화한 카가 아이가 메인 캐릭터에 들어가 있을 정도. 한술 더 떠서 단지 자기들이 피해자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일본의 침략에 보상을 요구한 나라들을 '피해자 행세하는 나라'라고 매도했다. 이 정도면 작가인 쿠메타 코지가 뼛속까지 극우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 용(만화) : 굉장히 노골적인 극우 만화답게, 초반부터 일본의 중국 침략을 미화하다가 소련군이 만주로 진공하는 결말부에서는 포악한 소련군에게 짓밟힐 위기에 처한 일본 민중을 구해내는 주인공의 영웅적인 활약상이 그려진다. 작가의 미화 솜씨가 워낙 뛰어나서 일본 만화중에서는 드문 개념작이라는 평을 받는 것이 어처구니 없는 작품.
- 저녁뜸의 거리: 노골적일 정도로 원폭 피해자라는 메시지에만 치우친 신파물.
5.3.1.2 애니메이션
- 길티 크라운: 방영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당시엔 일본이 피해자라는 설정(일본이 GHQ의 통치를 받고 있다.)과 다릴 얀이 일본인을 죽이는 모습이 나오는 등 논란이 많았다. 이후의 스토리 전개가 워낙 막장이라서 묻혔지만.
- 바람의 검심 성상편: 원작에서 일본의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주인공의 행동을 제작진은 180도 바꿔버렸으며, 청일전쟁을 대륙에서의 불순한 움직임인 것처럼 표현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다.
-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 태평양 전쟁에 참전해 아시아 국가들에게 피해를 끼친 과거의 언급이 없이, 이 작품에서 야마토는 외계 제국들을 물리치는 정의의 전함으로 활약한다. 시리즈 중 한 작품인 안녕히 우주전함 야마토 사랑의 전사들에선 문제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많이 연출된다.
- 콕피트 3부작: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품. 전반적으로 주축군 참전 군인들도 어쩔 수 없이 동참했고, 어려운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는 인식과 파시즘의 피해자들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특히 2부에서 자살제트기 큐슈 오카를 수송하는 폭격기의 엔진의 상태가 좋지 않자 파일럿이 여자 중 고등학생들이 숟가락, 솥단지 녹여서 만든 부품으로 만들어서 어쩔 수 없다고 농담조로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완전히 피해자 코스프레. 단, 마츠모토 레이지의 경우는 다른 작품에서 보여주는 사상이 콕피트와는 다른 경우가 많고 아예 정반대의 사상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래저래 논란이 많다.
- 치비마루코: 애니메이션에서 태평양 전쟁과 관련한 피해자적 메시지를 시청자에게 부각시키는 에피소드가 방영된 적이 있었다.
5.3.1.3 영화
-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8월의 광시곡" (八月の狂詩曲, Rhapsody in August)이 일본을 원폭 피해자로 묘사했다. 감독 문서 참고.
5.3.1.4 소설
- 꽃피는 에리얼포스: 작중에 나오는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아닌 가상의 전쟁이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와 인명경시 사상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천황 국체 이론, 자살 특공, 야스쿠니 등을 대놓고 미화하고 있다. 게다가 작중에서 저런 짓들을 태연히 벌이는 '황국'은 '불의의 침공을 받은 피해자'로, 적국인 '민국'은 '의장국'의 사주를 받아 '선전포고 없이 침공을 개시한 비열한 가해자'로 묘사하는 것을 볼 때 빼도 박도 못 할 자위용 피해자 행세. 내용상으로 볼 때 이것은 진주만 공습을 뒤집어서 왜곡한 걸로 보인다.
- 형사의 아이: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작중 주요 등장인물의 회상 속에서 도쿄 대공습이 등장하는데, 공습에 휘말려 희생된 시민들의 참혹한 모습을 묘사하면서도 정작 전쟁의 원인에 대해선 그 어떠한 언급도 없다. 만약 세계사에 무지한 독자가 본다면 그야말로 일본인들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고밖에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5.3.1.5 게임
- 끝나지 않는 미래로부터: FrontWing이 극우 인증을 한 작품이다
- 대제국: 여기 나오는 일본 제국은 현실의 일본 제국과는 이름만 같고 세부사항은 180도 다른 정의의 세력으로 나온다. 현실의 일본이 했던 온갖 잔악행위를 비틀고 비틀어서 미화시킨 악질적인 내용이 일품(...).[73]
- 슈퍼로봇대전 OG1, 슈퍼로봇대전 OG2: 하가네 부대가 DC의 본거지를 기습하는 작전에서 진주만 공습 당시의 구호인 도라도라도라가 나오거나 2차대전 일본이 활용한 자살병기인 오카에서 이름을 딴 캐릭터가 있으며, 군국주의 성향을 가진 캐릭터들을 극중에서 상당히 미화한 장면이 있다. 단 리메이크작인 OGS에선 이런 요소를 대부분 수정했고 이후 OG 시리즈에선 그런 요소가 크게 부각 되지거나 표현되지는 않는다. 더불어 OGS가 나오면서 문제점이 존재했던 GBA판 OG 프로젝트는 종결되었기에[74] OG 시리즈는 이 논란에서 완전히는 아니어도 어느정도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 천의 인도, 도화염의 황희: FrontWing에 이어 August도 사실상 극우 인증을 한 작품.
- 다케시마 탈환! : 제목부터.
5.3.2 일본이 피해자라는 입장에 경도되었다고 오해받은 작품들
- 개구리 중사 케로로: 이런 주장 때문에 투니버스에 방영 중지를 요청하는 청원이 일어난 바 있었다. 그러나 작품에서 묘사된 여러 장면들을 보듯이 원작자는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입장에 가깝다. 작품 자체도 침략자 입장인 케로로 소대의 허당스럽고 용두사미스러운 면모와 케론별의 나사빠진 작태가 구 일본군을 비꼬는 느낌까지 준다.
- 경계선상의 호라이즌: 현실과는 다르게 극동인(주인공 그룹)은 옛날에 2차 대전을 능가하는 사고를 쳐버려서 자신이 잘못한 걸 알고 있고 200여 년 동안 보상을 하며 비교적 온건한 정책을 피고 있어서 정당성을 부여하긴 하지만 현실(일본)은 잘못도 인정 않고 보상은 모르쇠 일관이니... 말 그대로 현실은 소설보다 더 시궁창인 거다.
- 낙제 기사의 영웅담: 작중 설정이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이겼으며, 그 외에 설정들이 극우스러운 느낌을 주자 한국에서는 굉장히 반발감을 일으키며 논란이 됐는데, 작가의 인터뷰라던가 이후 연재가 진행되면서 오히려 일본 정부가 제국주의의 부활을 획책하는 악역으로 나오고,[75] 주인공 일행은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으로 가면서 극우 논란은 일단 잠잠해졌다.
- 맨발의 겐: 전후 일본의 피해를 다뤄서 오해를 빚었는데, 이 책은 애초 기획부터가 반전, 반독재, 반핵을 다룬 작품이다.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주인공이 원폭 피해에 대한 사과를 받기 위해 천황을 찾아가겠다고 하는 등 오히려 일본 극우들에게는 반일 작품이라며 40년 넘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는 작품. 미국에 대한 비판이 있기는 하나 이는 점령 과정에서 GHQ의 레드 퍼지라든가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보도 통제, 표본수집 등 다분히 비인간적이고 비인도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피해자 행세와는 질적으로 다른 반제국주의적 작품이다. 실제 내용을 보면 맨발의 겐은 원폭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음에도 그 책임 소재를 전범인 조국에 돌린다. 이 작품은 원폭 피해자인 작가 자신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그런데 주인공도 그렇고 주인공의 아버지도 애초부터 "평화를 이야기해야지 미국하고 싸우려면 못 쓴다"라거나 "비국민, 비국민 하면서 전쟁에 젊은이들을 내몰고 있는 정신 나간 것들"을 성토하다가 순사에게 붙잡혀서 치도곤을 당하는 등 전전 일본의 제국주의/군국주의에 상당히 비판적인 작품이다.[76] 1970년대 작품임에도 한국인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는 등 여러 모로 진보적인 작품이며 주인공의 가장 큰 조력자로 등장하는 사람은 한국인이다.
- 바람이 분다: 이 작품을 보고 한국에선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실망을 드러내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바 있으나, 직접적으로 일제의 행위들을 미화하는 장면은 연출되지 않으며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베 정권의 행각에 대해 여러 차례 비판하는 의사를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포스터에선 제로센이 처참하게 부서져 있는 버전도 존재하는데, 보통 일본의 피해자 의식을 강조하는 작품에서 제로센 같은 전투병기들이 미화되는 것을 비교해봤을 때 이 작품이 극우적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판단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 반딧불의 묘: 개봉 이후 한국에선 이 작품에 대해 (특히 초창기에) 무척 비난하는 여론이 높았다. 그러나 작중 주인공의 행동에 대해선 사람마다 의견이 엇갈리며,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는 한국 블로거의 문의에 대한 응답에서 이 작품을 불완전한 반전 애니메이션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원작자인 노사카 아키유키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였다.
- 애니멘터리 결단: 타츠노코 프로덕션이 1971년 제작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로, 작중에 일본군의 카미카제, 옥쇄, 할복 행위를 긍정하는 묘사들이 흠으로 꼽힌다. 하지만 일본 우익 입장에선 무척 껄끄러운 레이테 만 해전을 초반에 상세히 나타내거나, 미군 장교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장교들이 여러 명이나 나오는 등 극우 성향으로 평가할 수 없는 씬들도 적잖게 나온다.
- 은혼: 원작의 캐릭터인 쇼요 선생의 모티브를 두고 이런 오해가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선 쇼요 선생에 대한 묘사로 인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었으며, 우익 성향이 짙은 작가로 분류할 수 없는 요소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 침략! 오징어 소녀: 오징어 소녀가 연합군, 아이자와 일가가 일본 제국 등을 풍자한다는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
- 코드 기아스 반역의 를르슈: 프로듀서인 다케다 세이지의 일부 행보로 우익적인 의사가 녹아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는데, 이 사람과의 인터뷰로 미루어 보아 확실히 극단적인 피해자 행세를 하는 작품은 아니다.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기획의 방향성에 대해서 타케다씨는 어떤 발언을 합니까.
- 강대국의 지배에 대해서 테러를 그려도 좋지 않을까 라고 말합니다. 슈퍼파워가 한 나라뿐인 세계에서 일본이 유린당한다면 약자는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그리는 것이 알기 쉽지 않겠냐고.
- 결과적으로,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이 일본을 점령해서 일본은 에어리어 11, 일본인은 일레븐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세계관이 됩니다만, 그에 대한 인상은?
- 제가 대학에서 메이지부터 전후에 걸쳐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전공했습니다만, 브리타니아 제국이 일본에 대해서 한 것은, 한편으로 일본이 한반도에 대해서 한 것과 공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스쿠니 문제나 개헌논의가 적잖이 다루어지는 지금, 젊은이들이 코드 기어스 반역의 를르슈를 보고, 동시에 일본이 해 온 것을 상상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까 라고. 물론 엔터테인먼트 작품이니까 캐릭터의 드라마를 즐기고, 그 중에서 조금이라도 깊은 테마를 알아 차려주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 즉 다케다의 말에 의하자면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면서 일본인은 자국이 한반도에 저질렀던 만행을 다시 한 번 상기하라는 역지사지의 의미라는 것.
5.4 일본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묘사한 작품
5.4.1 소설
- 태양의 아이: 하이타니 겐지로의 작품으로 오키나와 학살을 처절하게 묘사했다. 107~115쪽과 364~368쪽에 있는 묘사가 특히 처절하다. 참고로 작가는 이 소설을 지은 덕택에 혐한에게 죽을 뻔 한 적도 몇 번 있었다.
- 토끼의 눈(兎の眼)[77]: 역시 하이타니 겐지로의 작품으로 위의 개념작을 초월한 최고의 명작. 전체 줄거리는 파리연구를 좋아하는 아이와 그 친구들, 그리고 쓰레기 소각장에서 일하는 빈민들의 일상을 그린 소설이다. 작중 주인공인 데쓰조의 할아버지와 데쓰조의 담임 선생님이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할아버지가 과거를 회상하는데, 일제가 자신의 친구였던 조선인 용생을 어떻게 고문하는지 상세하게 묘사한다. 다음은 이 책 내용 중 일부.
"나는 그 회사의 측량과라는 곳에 배치되었어요. (중략) 나중에는 아예 조선 농민들을 속이는 일까지 도맡아서 했지요. 나는 그런 속임수를 알아차리자 오히려 그 회사에 들어가길 잘했다 싶었습니다."(중략)
"저는 조선 사람 편에 서서, 몰수당하는 땅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건 안이한 생각이었죠. 3달 뒤 저는 헌병대로 끌려갔습니다. (중략) 헌병대의 고문은 경찰의 고문보다 몇 백배는 심했어요. (중략) 저는 끔찍할 뿐만 아니라 수치스런 고문도 받았죠. 몸보다 마음이 먼저 갈가리 찢기고 말았지요."
바쿠 할아버지는 그때의 고통이 되살아나는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고다니 선생님은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예요. 저는 사흘 만에 낱낱이 불어 버렸죠, 이틀쯤 뒤에 헌병이 저한테 그 결과를 보여 주었어요. 글쎄, 한 12~13채쯤 되었을까요? 집은 흔적도 없이 타 버리고, 시커멓게 탄 시체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더군요. 작은 시체도 있었으니까, 여자와 아이들까지 가차 없이 죽여 버린 모양이었어요. 아까 인간이란 쉽게 악마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그건 제 자신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그 시체를 보고 큰일을 저질렀다는 생각보다는 이젠 살았구나, 하고 기쁨이 솟구치더란 말입니다. 난 용생이한테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할까요. 용생이 어머님한테 뭐라고 사죄해야 할까요."
바쿠 할아버지는 눈물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은 한번 못쓰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지요. 입 다물고 있으면 누가 알겠냐 싶더군요. 그 뒤로는 흔히들 그렇듯이 술과 여자에 빠져 버렸습니다. 이 배, 저 배를 타고 다니며 유랑자가 되고 말았지요." 143p
(중략)
"과거에 대한 죗값이 그렇게 돌아왔다고 생각하실 테지만, 선생님, 그건 달라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용생이나 용생이 어머님, 그리고 조선 사람들에게 너무 죄송스러워요. 원한으로 따진다면, 저는 조선 사람의 원한을 사서 온몸이 구멍투성이가 되었을 겁니다. 용생이 어머님은 내 죄를 용서하신 대신 아들 몫까지 살아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여기서 살아나지 못한다면 김용생을 3번씩이나 배신하는 꼴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를 악물었답니다."
"선생님을 울려서 죄송합니다. 술내기를 하쟀다가 그만, 죄송합니다…"
고다니 선생님은 “아뇨.” 하고 말했다.
"할아버지 얼굴이 고우신 까닭을 알았어요. 눈매가 곱디고운 이유도 알았고요."
바쿠 할아버지는 벽장에서 커다란 꾸러미를 꺼내 왔다. 종이로 꼼꼼하게 싼 꾸러미였다. 속에서 첼로가 나왔다.
그러면서 바쿠 할아버지는 첼로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졌다.
"할아버진 지금도 첼로를 켜시나요?"
"아니오. 켜지 않습니다. 이제 곧 용생이하고 같이 켜야지요. 그때까지 이 첼로를 잘 보관해 둬야겠지요?"
고다니 선생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145p
5.4.2 만화
- 노다 사토루의 골든 카무이
- 데즈카 오사무의 단편 만화 '종이요새': 태평양 전쟁 발발 당시 미쳐가던 일본의 상황에 대해 데즈카 오사무 본인이 세세하게 표현해낸 장면들이 많다.
- 미즈키 시게루의 '총원 옥쇄하라!', 위안부 문제 관련 만화: 후자의 경운 미즈키 시게루 본인이 동남아시아에서 직접 목격한 위안부의 피해 배상에 대해 그 풍경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기 때문에 꼭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사를 밝혔다.[78]
- 아카츠카 후지오의 '일본국 헌법이다!': 나가이 켄이치와의 공동 저작으로 1983년에 출간되었으며, 아카츠카 후지오는 일본 정부의 헌법 해석과 자위대의 규모 확장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이 책에서 밝혔다.[79]
-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왕도의 개, 무지갯빛 트로츠키: 전자는 메이지 유신 당시 일본 제국이 향하던 패권주의와 그를 주장한 인물들을 맹렬히 비판하며, 후자는 작중에서 설정된 '트로츠키 계획'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와 그를 선동하는 수뇌부를 비판한다.
- 카리야 테츠의 맛의 달인: 원작에서 일본의 과거사 날조를 비판하고 수상이 개인적으로 사과했을 뿐 국가가 사과한 적 없다고 표현하거나,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를 만나고 나서 주인공 일행에게 자신이 당한 피해를 설명해주고, 이를 들은 캐릭터들은 무척 부끄러워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5.4.3 게임
- 메탈슬러그 3: 일본의 게임 명가 SNK의 게임. 4스테이지 지하층 루트를 선택하면 일본군들을 상대할 수 있다. 사람이 직접 박스처럼 쓰고 다니는 전차라든가, 땅에 탄환만 갈기다 별 다른 이유 없이 동굴 벽에 꼬라박을 수밖에 없는 전투기, 죽이면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려 자폭하는 자폭병, 팬티에서 폭탄을 꺼내 굴리는 폭탄병 등등 주로 전술이나 군사적 병크들을 풍자하고 있다. 게임 자체가 독일 국방군을 풍자한 모덴군이 벌이는 제3차 세계대전이 배경이기 때문에 재미삼아 넣었다고 보기가 어렵다.
근데 병크를 풍자한다고 했는데 전투력이 매우 강하다.[80]
- 사쿠라 대전 2: RED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게임으로, 모체인 사쿠라 대전 시리즈의 설정에서 일본이 러일전쟁에 패해 일본 열도에 틀어박힌 세계관이 나온다.
- 제독의 결단 시리즈: 코에이 테크모의 시뮬레이션 게임. 1편에선 플레이할 시 일본군의 강제노동 장면과 위안부의 묘사가 연출되며,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상황도 여러 차례 나온다.[81]
- 194X 시리즈 중 1942와 1943: 본격 일본회사에서 만든 일본을 공격하는 게임. 애초에 주인공 부터가 미군 항공기인 P-38에 태평양 전쟁 각 전장에서 일본군을 공격하는 스토리이며, 특히 1943의 경우 미드웨이 해전이 부제명에다[82] 게임 오프닝에서 일본군 폭격기 편대[83]가 요크타운으로 보이는 아군 항공모함을 반파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5.4.4 애니메이션
-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린의 날개: 직접 제2차 세계 대전을 겪고 그 시대의 문제를 알면서도 오히려 광기에 사로잡혀 일본을 과거로 바꾸려는 캐릭터의 행동을 미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난 캐릭터가 막는 전개가 연출된다. 이외에 토미노 요시유키는 기동전사 건담과 토미노 요시유키 4대비극 등의 애니메이션에서 전쟁에 대해 비판하는 연출을 삽입한 바 있었다.[84]
- 잔향의 테러: 작중에서 제작진이 일본 우익의 행태에 대해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연출이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 THE UNLIMITED 효부 쿄스케: 193,40년대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에피소드에서 경찰관이 무척 전체주의적 사고를 지니며 거들먹거리고 한 캐릭터가 일본을 맹렬히 비판한 장면이 있다.
- 조커 게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원작 소설가 이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원작과 애니메이션 모두 당시 군국주의와 파시즘으로 미쳐돌아가는 일본의 부조리와 광기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GATCHAMAN CROWDS insight: 직접적으로 일본의 피해자 행세에 대해 비판하는 모습은 아니지만 10화에서 게르사드라 진영에 대해 일본의 몇몇 선동가들과 언론들이 대중을 부추겨 군중심리를 향상하는 장면이 나오고,[85] 각본가인 오오노 토시야는 아베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개정안 날치기 통과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의견을 트위터에 게재하기도 했다.
6 클리셰
6.1 가해자 옹호와 피해자 비하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가 모두 이런 종류라고는 볼 수 없지만, 가해자를 이상한 핑계를 대고 옹호하면서 가해자에게도 정의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극적 관점에서 보면 어느 정도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기는 하지만, 유독 일본의 창작 작품에서 이러한 시추에이션이 상당히 자주, 그것도 밸런스가 무너져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의 과도한 가해자 옹호에 덧붙여서, 어떤 사죄도 배상도 없이 무조건적인 용서를 강요받는 피해자가 나타난다. 게다가 피해자가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행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 사죄와 배상을 요구한다 참고. 대개 주인공은 중립적인 입장을 가장하여 가해자를 옹호하고, 이러한 피해자를 모욕하면서 용서를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위와 합쳐서 "가해자 = 일본, 피해자 = 한국, 미국, 중국, 동남아" 등으로 대체해서 보면 이러한 클리셰가 자주 나타나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일본은 가해자의 입장에 서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극작가들 역시 가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내용을 쉽게 만들어내고, 피해자는 "한국, 미국, 중국, 동남아"으로 보고 '지겹게 사과와 배상을 강요하는 짜증나는 무리들'로 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정작 실제 가해자가 진정성이 담긴 사과를 하지 않은 건 함정이다. 그러니 극우 인사들의 망언이 그치지 않는 거고...
- ↑ 문서명이 이렇게 되어있다 보니 이것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용어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 ↑ 보통 위키의 문서명은 인명, 지명 등 고유명사이거나, 사물을 설명하는 일반명사, 그리고 기존에 학계나 일상에 자리잡은 개념명사들이다.
- ↑ 일정 재산 수준 이상이 되지 않으면 투표권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했다.
- ↑ 이런 논리의 대부분의 근거는 조선총독부 3기 통치 체제, 즉 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조선의 군수공장화와 착취가 이루어지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실제로 시인 이상, 소파 방정환 선생 등 우리가 알 법한 한국 근대 위인들과 신여성, 전차 등 근대문화 아이콘및 시설들은 조선총독부의 문화통치 시기에 도입되고 꽃 피웠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조선총독부 3기 시기의 가혹한 착취와 핍박으로 싸그리 날아간 셈이지만 조선 통치 전체를 일제의 핍박으로만 치부해 버리면 우리나라 근대 역사는 쓸 게 없어지는 허구의 세계가 되어 버린다.
- ↑ 사과를 했으면 더는 그걸 갖고 두 번 다시 망언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도 붙는다. 그러나 일본의 극우 인사들은 그걸 잊어버린 듯 망언쇼를 하니 문제.
- ↑ 애초 야스쿠니 신사와 치도리가후치 묘원은 시설의 성격과 봉납의도, 추모객의 성향 자체가 다른 별개의 시설이다. 우리나라에서 보수성향의 정치인이 봉화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러 가거나, 진보 또는 야당 정치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하러 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국가신토라는 보수성향의 종교시설이다. 그리고 치도리가후치 묘원은 정치적 성향이 배제된 순수 참배장소이다. 실제로 일본의 야당 인사들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러 가지 않지만 반대로 여당인 자민당 인사들은 가급적 야스쿠니 신사를 우선적으로 참배하며 치도리가후치 묘원은 야스쿠니 신사의 방문 횟수에 비하면 참배 횟수가 손을 꼽을 정도로 적다.
- ↑ 그것도 단순한 미국의 민간인도 아닌 연합군의 미국 측 포로들이다.
- ↑ 그런데 치치지마 식인 사건에 대해서는 덮으려고만 들 뿐, 날조라고 우길 수도 없다. 그 피해자가 될 뻔한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일명 아버지 부시)이기 때문. 바탄 죽음의 행진 역시 덮으려고만 들 뿐이지, 우길 수가 없다. 당장 미 해군의 와스프급 상륙모함 5번함의 함명이 바탄이다.
- ↑ 솔직히 도쿄 대공습 당시 일본의 내부 실상을 보면 커티스 르메이의 이 말은 사실에 가깝다. 자원 부족에 시달리다 못해 공출이란 명목으로 식민지이던 한반도에서 약탈해간 물자들만 계산해도 답이 나올 정도니.. 당시 한반도에서 유행했던 식민지 판 신고산 타령의 마지막 절에는 "금붙이 쇠붙이 밥그릇까지 모조리 긁어 갔다"는 가사가 있는데, 그게 이 때문에 붙은 것이다.
- ↑ 게다가 일본군의 무기체계를 보면 묘하게 아귀가 안 맞는 부분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의 원인이 이것이다. 항공기, 함선, 전차 등등은 기업체 공장에서 만든다 해도 거기 들어가는 볼트, 너트, 리벳 같은 기계요소들은 죄다 일반 가정에서 만들고 있었기 때문.
- ↑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을 링크 걸기에는 부적합해서 바로가기 마크를 걸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데다 게티즈버그 연설같은 걸 바로가기 걸면 그 자체로 모독 아닌가?
- ↑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드레스덴은 당시 추축국 중 하나인 독일 제3제국의 군수시설 밀집 구역 중 하나였으나, 충칭은 국민당 정부가 임시수도로 정하면서 시의 중심부에 군수 시설이 있었고 일본이 폭격한 곳은 민간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시의 외곽 지대였다. 충칭 대공습은 당시 국민당 정부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꺾기 위해 일부러 민간인 거주 지역에 폭격을 한 것이다.
- ↑ 일례로 도쿄 대공습을 하기 전에 일본이 자국의 민간인들 -수도 도쿄의 민간인은 물론이요, 문화적으로도 일본과는 거리가 있던 오키나와 주민들에게까지 포함-에게 신주불멸이라면서 귀축영미따위는 그냥 이긴다고 언론을 이용한 세뇌공작을 써서, 이후 히로히토에 의해 떨어진 옥쇄 명령으로 오키나와 전투 때 벌어진 참극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오키나와 전투보다 시기적으로 더 앞선 사이판 전투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이미 있었다.
- ↑ 당장 미 해군의 상륙모함인 와스프급에 이 이름을 가진 함선이 있다.
- ↑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하는, 현대 국가 간의 기본적인 전쟁 예를 들어도 진주만 공습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 ↑ 실제로 원자폭탄이 아닌 대규모 소이탄 폭격이 이루어진 도쿄 대공습때 민간인 피해가 더 심했다.
- ↑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참배 때, 우리나라에서는 내심 오바마 대통령이 불과 몇백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한국인 위령비도 같이 방문해 주기를 기대했었지만 끝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바마가 손수 접은 종이학만 더 이슈화 - ↑ 위에서도 몇 번 언급됐지만, 강제노동 중이던 한국인들은 얘기가 다르다.
- ↑ 현재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참배를 통해 당사국인 미국과 피해국인 일본과의 '공식적인' 역사적 앙금과 책임 논쟁은 거의 해소된 상황이다.
- ↑ 1945년 4월27일 항복문서 서명. 5월2일자로 발효.
- ↑ 1945년 5월 7일 항복문서 서명. 5월 23일자로 군이 해체되면서 발효.
- ↑ 1945년 8월이면 소련도 만주 작전과 함께 정식으로 대일 선전포고를 한 상태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직후긴 하지만 말이다.
- ↑ 나무위키의 동일 문서에서는 몰락작전의 결과에 대해 매우 낙관적으로 기록해 두었는데 당장 해방 후 겨우 미국과 소련 두 나라만이 개입된 신탁 통치시기에도 엄청난 정치적/사회적 혼란이 있었는데, 몰락 작전 후엔 무려 4개 국이 한반도에 개입하게 된다.2개 국만 개입한 신탁통치 시기때도 혼란이 엄청났는데 그 2배인 4개 국이 개입하게 되는데 다방면으로 유리하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다. 홍콩이나 마카오같은 자치정부 4개가 한반도에 생긴다고 생각하면 쉽다. 유리한 부분이 뭔지 생각해 보자.
4개국 언어는 기본으로 배워야 하니 취업 할 때 좋긴 할듯 - ↑ 이럴 수 밖에 없는 게, 임팔 작전은 일본에서도 그냥 흑역사 취급이라 잊으려 든다.
- ↑ 그나마 중국이 장쩌민 주석이 정권을 잡은 이후부터 장쩌민이 대대적으로 전 세계에 일본의 역사 왜곡을 강하게 비판하고 올바르고 중립적인 역사 인식을 전 세계 시민들에게 심어준 노력을 하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나아져 중일전쟁을 중국이 이긴 전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 ↑ 침략전의 경우 방어 측에서 잃은 영토가 없으면 원칙적으로 무승부가 아닌 침략 측의 패배다.
- ↑ 이 이전에 진수된 헬리콥터 모함으로 휴우가급도 있다.
- ↑ 이 함 명은 미쿠라형 해방함의 자매함중 하나에 붙은 바 있다.
- ↑ 그런데 이것도 반박은 자연스럽게 된다. 일본도 독일의 홀로코스트와 다를바 없는 만행을 저지른 적이 있으니 이시이 시로, 731 부대, 마루타란 말만 나와도... 둘 중 어느 쪽이 덜 나쁜지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 연합군 포로들을 대상으로 자행된 생체실험 기록도 있고 군대 지휘관이 식인을 주도한 사실도 있으니.... 그리고 군대 지휘관이 식인을 주도한 사건의 경우 독일군과 소련군도 한 적이 있긴 하지만, 독일군과 소련군의 경우, 식량부족이 워낙 심해서 어쩔 수 없이, 이미 죽은 시체를 대상으로 한 식인이라는 점에서 정상참작의 여지라도 주어지지, 일본군은 식량이 풍족한데도 술자리에서 안주가 떨어졌다며 특별한 술안주라는 명목으로 산 사람을 죽여서 저지른 식인이라 옹호할 건덕지도 없다. 물론 저 사건은 일본군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던 짓이었기에 저 사건을 저지른 것은 다른 일본군 장성에게도 미친 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얻어터졌다고 한다.
- ↑ 다만 독일의 태도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마냥 꺠끗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주로 사과한 대상도 유대인 학살에 집중된 편이라던가... 그래도 정부 수장이 나서서 헛소리를 하는 일본에 비하면 독일은 그래도 양호한 건 사실.
- ↑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을 침공하던 시기의 그 악랄하던 독일군조차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을, 그것도 술안주 삼아 죽여서 잡아먹은 적은 없다.
- ↑ 실제로 독일은 아프리카 나미비아 헤레로 족 6만 8천명 학살에 대해선 사과는 하겠지만, 식민지 지배는 정당했기 때문에 배상은 할 수 없다고 아예 못박았다. 일본은 총리가 바뀔때마다 한국에게 사과를 해왔으며 1965년 한일협정때 8억 달러(1965년 당시 환율로)의 배상금을 지불했다. 다만, 다른 건 몰라도 아베가 저말을 할 자격은 없는게, 고노담화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야스쿠니 참배등의 각종 망언 및 행동등을 예전부터 일삼던게 본인이라는 점이다. 일본이 식민지배에 대한 정부차원에서의 공식적인 법적 배상과 사과 자체는 했으나, 이후 아베 신조는 고이즈미나 아소같은 역대 일본의 극우성향 총리 중 하나로서 잊을만하면 극우적 언행으로 한국인들에게 어그로를 끌어왔다. 지금까지도 한국 내에서 반일감정을 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본인인 것이다. 고노나 무라야마 같은 사람들이 진정성있는 사과를 해도, 얼마 안 가 아베같은 일본 최고 권력자가 어그로를 끌어대니 한국인들 입장에서 이전 사과들까지 진정성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 ↑ 이 잡지는 별별 극우주의적 논평은 있는대로 다 갖다 싣다가 사실 나치의 유대인 학살도 조작된 거다 라는 핵폭탄급 어그로를 끌어서 미국의 유대인 단체들이 일본에 압력을 넣어 폐간시켜 버렸다! 자업자득인 셈. 물론 반유대주의 음모론자들을 이걸 가지고 '유대인들이 언론을 지배한다' 따위의 음모론을 펴기도 한다.
- ↑ 그런데 치치지마 식인 사건 같은 사건들은 네오 나치라도 깐다.
- ↑ 이는 최근 아베 신조의 안보법안 개헌에 따른 일본 시민들의 격한 반응에서도 잘 나타난다.
- ↑ 지속적으로 언급되지만 독일의 사과는 나치에 의한 전쟁 범죄 문제에 해당되며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는 식민지 제국주의 종주국-종속국 문제이다. 독일 역시 종주국-종속국 문제에 있어선 일본과 하등 다를바가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 ↑ 더욱이, 일본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시민혁명 같은 대다수 민중들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이고 다카모리, 사카모토 료마 같은 소수 존왕양이파 등을 중심으러 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약한 편이다. 이에, 일본인들의 소위 튀기 싫어하는 성향으로 인해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더해지고, 무라(村)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사회가 유지됨에 따라 지역구 의원과 토호들간의 유착으로 자역구 의원의 세습 등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일본의 민주주의는 지금의 미숙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긴 했으나, 민중들이 직접적으로 참가한 근대화가 아니기에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약하고 군국주의의 잔재와 동아시아 국가 특유의 민족주의가 혼합되다보니, 형식상으로는 민주주의 국가가 맞지만 실질적으로는 뭔가 애매한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 ↑ 일본인들을 욕할 때 쓰는 표현은 대개 japs. 혹은 쪽발이 정도가 알려져 있는데, 이건 대외적으로 알려진 욕이고, 가장 센 부류에 속하는 욕은 바로 부라쿠민이다. 일본인 친구들에게 이거 쓰는 순간 그냥 절교도 아니고, 얻어터지고 절교 당한다. 절대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이 '부라쿠민'이라는 말이 욕설로 쓰일 때 어느 수위의 욕설인지는 욕설/일본어 문서를 참고하자.
- ↑ 일본에서 이것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 있다. 하나다 소년사로 알려진 잇시키 마코토의 만화 피아노의 숲. 물론 배경에 등장하는 마을은 가상의 마을인 숲의 가장자리라지만, 묘사를 보면 영락없는 부라쿠민 촌이다.
- ↑ 세습 정치인은 일본의 경우 뿐 아니라 귀족 문화와 혈통이 남아있는 유럽 권의 국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미국에서도 상당수의 상/하원 의원들은 오랫동안 장기 선출되고 있으며 일부 정치 가문(힐러리, 케네디 등)은 큰 영향력을 갖기도 한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전 부인이 케네디 가문 일원이어서 그의 주지사 선출이 비교적 쉽게 될 수 있기도 했다.
- ↑ 대표적으로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집시족 학살이나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에서의 학살을 자행한 바가 있었으며 제1,2차 세계대전 이전 해외 식민지였던 나미비아나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도 흑인 학살을 저지른 이력이 있다.
- ↑ 일단 이 만세일계란 표현부터 엉터리다. 이것은 덴노가 하나의 정통성으로 계속 이어져왔다는 건데 당장 '일본의 남북조 시대'를 보면 남조 덴노와 북조 덴노로 둘이다. 그리고 덴노로써의 정통성은 멸망한 남조가 갖고 있었다. 숫제 덴노가의 보물인 삼종신기조차 남조가 갖고 있었을 정도니 더 이상의 말이 必要韓家? 북조는 정통성은 없이 그저 힘으로 밀어붙였을 뿐이다. 그 북조로부터 지금까지의 덴노 계보가 이어지니 만세일계라는 말의 만세부터 엉터리가 되는 셈.
- ↑ 사실 메이지 유신 이전, 즉 막부 시대의 덴노들은 거의 관심 밖의 존재였다. 무려 700년 동안이나! 이는 메이지 유신 초기 기록에도 잘 나오는데, 당시 덴노가 마을을 행차한다는 소식을 들어도 수백 년 동안 덴노의 존재조차 모르고 잘 살아왔는데, 갑자기 덴노가 튀어나오니 생활에 방해된다고 불평만 늘어났다는 기록도 있다. 그것에 충격 받은 군부 내 덴노제 지지파들은 덴노의 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게 되며 이것이 지금도 일본 내에서 덴노 이하 왕족들의 동태에 관한 기사가 자주 보이는 이유다.
- ↑ 참고로 아베 신조 역시 전범 후손에 해당된다.
- ↑ 엄밀히 말하자면 대개는 극우적인 주장을 하는 일본 사이트를 링크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로도 극우적인 주장을 적어놓은 사이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이트가 훨씬 많다. 어차피 어느 쪽이건 개소리를 싸지른다는 건 변함없고.
- ↑ 다만 이 부분은 와패니즈 성향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런저런 사건들로 인해 한국 네티즌들에 대한 이미지도 그리 좋지 못한 것+별 상관없거나 그들 관점에서 굳이 언급할 이유가 없는 쓰레드에 비판 글을 올리는 모습(문제는 헤타리아나 슈퍼 소니코 애니 같은 작품에서도 '만화는 만화일 뿐'이라는 시각을 보인다는 것. 특히 후술할 두 사이트는 매우 심각한 편.) 때문에 이러는 면이 강하다. 제대로 일본의 전쟁범죄에 관해 언급되는 쓰레드에서는 4chan이라도 일본에 대해 엄청난 성토의 글이 쏟아진다. 심지어는 한국이나 중국에서나 나올 법한 '핵과 미사일을 덜 맞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 정말로 심각하다 할 만한 곳은 Sankaku Complex나 코타쿠 같은 애니, 망가 관련 사이트들이다.
- ↑ 일본의 넷우익들이 증거가 확실한 전쟁 범죄나 전범 추모 문제까지 실드를 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중국의 프로파간다로 위장하려고 해도 설득력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쟁 범죄로 죽어간 이들에서 미국군이나 중국군 등 연합군 같은 백인들과 흑인들도 많은데 이들 죽음을 프로파간다로 몰아가려고 해도 증거가 개판이고, 엉터리 이론이나 논리인데다가 도리어 일본 극우의 실체만 드러내는 효과만 거두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도 일본 넷 우익의 이미지는 한국으로 치면 일베충 수준으로까지 떨어져 있다.
- ↑ 이긴 한데 인터넷상으로나 그렇지, 실제로는 겉으로 도무지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나 한국인을 구별 못하여 그냥 일본인을 비하할 때 국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국이라는 말은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인을 까던 욕이기도 하고 이후 중국인이나 다른 동남아인까지 싸잡아 까던 욕설이다. 1950년대 재미 일본인들까지 멸칭할 때도 이 말을 썼다.
- ↑ 사실 대만은 중화민국시절, 이미 일본과 싸운 적이 있는 나라다. 만주국, 731부대, 중일전쟁, 난징대학살, 충칭대공습 등은 중화민국 정부가 중국을 통치하고 있을 때 벌어진 일들이다.
- ↑ 원래 국제연합(UN)의 근원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제국주의에 대한 대책 겸 전쟁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된 국제연맹이다. 그러므로 반제국주의 이념을 내포하고 있다.
- ↑ 취소 선을 그은 이유가 히로히토가 원래는 중국도 방문을 하려고 했는데 중국에서 극렬히 반대했기 때문에 못 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히로히토가 중국을 방문한다면 그건 곧 엄청 분노한 중국 인민들에게 죽으러 가는 것이랑 똑같았기 때문.(만주사변, 중일전쟁 등 온갖 전쟁범죄를 중국에 저질렀고 게다가 일본은
미국의 빽을 믿고중국에 사죄와 반성조차 전혀 하지 않았기에 중국 측에서도 히로히토를 용서할 리가 전혀 없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대만을 갔다. 이후 히로히토가 뒈지고 지옥으로 떨어진 이후 히로히토의 아들이자 그 뒤를 이어 덴노가 된 아키히토가 1992년에 중국을 공식 방문하며 중국에 사죄와 반성을 하는 등 개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 물론 반일 시위대가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후술할 영국, 네덜란드에 비하면 그렇게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 ↑ 여기서 유럽, 아메리카 등 서양 권에서는 일본 천황이라고 안하고 일본 왕이라고 하는데 사실상 서양 권에서는 황제와 왕의 개념을 상하관계가 아니라 동등관계로 바라본다. 동양권에서는 황제가 왕보다 1단계 높은 존재이지만 서양 권에서는 황제나 왕이나 똑같이 높은 존재로 여겨 일본 천황이 아니라 일본 왕이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서양 제국들의 공식 표현은 일본 천황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나머지 국민들은 그냥 Emperor나 King이나 똑같으니까 구분 안 한다.)
- ↑ 근데 당연한 것이 일본의 침략전쟁 과정에서 적지 않은 유태인들이 직간접적이게 희생됐다. 그래놓곤 일본 극우들은 일본이 유태인 일부를 나치에게 지켜줬다는 등 개드립을 하며 정당화하지만, 오스카르 쉰들러라든지 나치에 협력한 이들이나 나치 장군이나 간부들도 유태인들을 일부 살려주거나 숨겨줬다는 걸 잊지 말자. 뭐 미국이나 이스라엘도 적어도 이렇게 한 나치 간부들은 관대하게 용서하거나 은혜를 입은 유태인들이 개별적으로 나중에 그들에게 보상하며 고마워했지만. 미국이나 이스라엘도 일부 유태인 구해준 일본군 간부들은 용서해줬지만 더 많은 유태인들이 죽은 상황에 일본에 오냐오냐 할 리가 없다.
- ↑ 일본군의 학살행위가 심각하던 때는 오히려 독일 사람이 일본군으로부터 아시아 사람을 지켜준 예도 있다.
- ↑ 심지어 이탈리아군은 유대인을 히틀러의 손아귀에서 구한 전과까지 있다. 항목 참조.
- ↑ 그리고 1944년 겨울 아직 파쇼의 지배가 굳건했던 살로 공화국 영토 내에 여러개의 동시다발적 무장 봉기를 일으켜 짦은 시간 해방구를 형성했다 추축군의 재침으로 진압 당했던 이탈리아 북부의 수 많은 임시 빨치산 공화국들의 존재는 이러한 이탈리아 반파쇼 빨치산들의 조직과 역량이 결코 연합군의 꼭두각시 수준이 아니라, 이탈리아 민중 내부의 자체적이고, 자발적인 지원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뒷바침한다
- ↑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황당하지 않다. 과거 중국이나 러시아나 공산권 동맹이었으니 미국과 러시아가 관계 개선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과거 공산권 동맹이었던 것은 맞지만 둘은 이념적 계통이 완전히 달라 자주 마찰을 빚었고 중국의 팽창에 러시아가 두려움을 느낀 적도 많다. (예를 들면 과거 중소 국경분쟁이나 러시아제 무기의 중국 수출제한 등)
- ↑ 미국과 더불어 전 세계 대제국이 되는 꿈을 꾸며 이를 차근차근 실행하는 중국과 달리 러시아는 완충지대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적당한 양보로도 별 어려움 없이 미국을 동맹으로 만들 수 있다.
- ↑ 적기만 할 뿐 없지는 않다. 당장 일본의 전쟁 범죄 피해자 국가들 중 상당수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다.
- ↑ 어찌 보면 당연한 게 미국은 각 주 별로 형법체계가 약간씩의 차이는 있어도 성범죄자에 대해서만큼은 살인범과 거의 맞먹는 형량을 때리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다.
- ↑ 위에 언급된 혼다 의원도 수용소에서 유아기를 보냈다.
- ↑ 위 그림에 나온 공들은 대한민국,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필리핀, 싱가포르, 동티모르.
- ↑ 정말 일본에게 안 짓밟힌 나라가 없다고 봐도 무방한 게 당시 일본은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 동안 그들이 거친 지역의 모든 주민들을 무참히 학대했다. (오죽하면 일본에게 박해받던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미국군과 중국군에 협력했을까?) 일본 사람 외에는 모두 무참히 학대한 셈. 그런데 더더욱 병맛나는 것은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 말기 일본이 한창 발악할 때에는 해외에 거주 중인 일본인 자국민도 비국민으로 몰아세우며 무참히 학대했다. 이뭐병... 쉽게 말해 최소한 일본 본토를 뺀 동아시아는, 거기에 일본 본토 출신 일본인이 있거나 없거나 전부 일본에 짓밟혔다고 보면 된다.
- ↑ 그런데, 비슷한 헛소리가 종종 나온다. 인도를 영국 지배로 발전시켰다고 개소리하는 연구가들도 있다. 영국도 인도 지배하면서 무수한 약탈과 학살을 벌였으며 그 여파가 지금도 남아있거늘.... 오죽하면 인도 관련 책자인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라는 책자에서도 일본 제국주의를 비난하는 한국 역사가 일부가 정작 인도는 야만스러워 영국 지배를 받아 발전했다는 헛소리한다면서 해외에서 일본 식민지 지배를 찬양하는 헛소리랑 같다고 깠다. 이원복도 미국에 대하여 이런 헛소리를 하는데 가로세로 세계사 필리핀 편에서 미국이 다른 제국주의 식민지랑 다르다고 그야말로 미국뽕같은 소리를 만화로 그렸다.
- ↑ 베트남 전쟁을 생각하면 믿기 어렵겠지만 호치민도 태평양 전쟁당시 중국 국민당과 미국의 보급을 받으며 일본군 상대로 게릴라 전을 벌였다. 이때 경험한 실전경험은 훗날 월맹이 프랑스,미국을 상대로 벌인 전쟁에서 요긴하게 쓰였다.
- ↑ 당연하지만 이 당시 일본군의 쌀 공출을 명령한 작자는 기무라 헤이타로. 비록 이자는 이 당시에 버마 방면군 사령관이었다만 실권이 어마어마한 관계로 이런 행보할 수 있었다.
- ↑ 참고로 기무라 헤이타로의 별명이 버마의 도살자다.
- ↑ 당장 태국처럼 같은 대륙의 다른 나라들이 열강들의 식민지가 되어가는 와중에도 주권을 유지하고 있었던 에티오피아가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에게 어떻게 짓밟혔는지를 보라.
- ↑ 다만 1960년대 초반, 중국 견제를 위하여 일본과 관계 개선을 하고자 노력했는데 이는 국가원수로서 당연한 거다.
- ↑ 2차대전 승전국에 강대국이라 묻어가는 거지 연합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식민제국들은 그야말로 추축국 못지않게 잔혹하였다. 당장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같은 연합국의 서방의 주요 국가들이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 시절 필리핀, 인도, 스리랑카, 아일랜드, 케냐, 마다가스카르, 나이지리아, 세네갈, 알제리, 이라크, 인도네시아, 베트남, 미얀마 등 식민지였던 국가들에서 자행한 짓거리들을 생각해보자...
- ↑ 굳이 설명을 하자면, 타국에 대한 편견(특히 동유럽 일부 국가 및 일본 극우 식 표현으로 특정 아시아 국가)들을 거침없이 배설해놓고서 자기 나라만 극우뽕이 섞인 미화적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 ↑ 이 게임 내에서 휘장을 들고 설치는 CG가 있는데, 숫제 대일본제국을 뛰어넘어 초 일본제국이라 쓴 휘장을 들고 설치는 CG도 있을 정도다.
- ↑ OGS에서 캐릭터가 크게 바뀐 인물과 새로 등장한 주요인물도 있고, 이들이 후속작에서 가진 비중이 크기에 종래의 OG1, OG2를 현재의 OG 시리즈 스토리 라인과 연결시키는 건 무리인 상황이 되었다.
- ↑ 거기에는 주인공 쿠로가네 잇키의 할아버지도 포함.
- ↑ 이 주인공의 아버지는 작가의 아버지가 모티브로 작가의 아버지는 실제로 히로시마에서 원폭으로 사망했다.
- ↑ 한국에선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 ↑ 미즈키 시게루는 태평양전쟁에서 라바울(뉴 브리튼 섬) 전선 증원부대로 참전한 참전자이고 연합군의 폭격으로 인해 심각하게 망가진 한쪽 팔을 절단해야 했다.
- ↑ 아카츠카 후지오는 만주국에서 태어난 히키아게샤 중 1명으로, 귀향했을 때 많은 집단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 ↑ 사실 이 일본군을 상대하는 지하층 루트는 메탈슬러그 전 시리즈를 통틀어서 가장 어려운 스테이지 중 하나로 꼽힌다.
- ↑ 사실 코에이는 일본 게임 제작사 중에선 역사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는 몇 안되는 회사로 꼽힌다.
- ↑ 물론 게임 내용은 실제 모티브가 된 해전과는 영 다르게 나온다.
- ↑ 게임 내에서는 다이히류(大飛龍)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 ↑ 점보트3와 V건담에선 캐릭터들이 특공과 자폭을 하는 묘사가 나온다. 하지만 전자는 메카가 파손되거나 전력 추세 약화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특공했으며, 종국에 주인공도 전투 결과에 대해 슬퍼하며 전투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후자에선 한 파일럿이 특공을 감행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으며, 성인 파일럿이 주인공 앞에서 충격과 공포를 느껴 자폭을 감행한 장면이 있다. 결과적으로 두 작품에서 해당 파일럿들이 대놓고 xx 만세 같은 대사를 하거나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미화하는 씬은 존재하지 않는다.
- ↑ 우회적인 풍자수준이 아니라 아예 대사로 군중심리의 폐해에 대해 언급할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