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게임 도미네이션즈에 등장하는 유닛 및 건축물에 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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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반 병사
1.1 보병 계열 유닛
- 창병 : 창은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도구 중 하나로,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그 역사는 약 5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선사 시대에는 주로 사냥에 사용되었다지만 전쟁의 여명에서는 창의 끝이 인류를 겨누었던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 전사 : 역사 속 대부분의 군대는 농부 출신들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고대 전쟁들은 병사들이 추수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모두가 굶주려야 하는 수확기에 갑작스럽게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병사 : 문명이 점차 발전하면서, 전쟁을 위한 직업군인이 생겨났습니다.
- 장갑보병 : 장갑 보병은 고대 그리스의 훈련된 시민군이었습니다. 장갑 보병의 용맹함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적의 보병을 끊임없이 물리치며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 팔랑크스 : 팔랑크스는 큰 방패와 긴 창으로 무장한 견고한 군사 대형으로, 스파르타가 처음 도입했습니다. 부대의 제1열이 방패를 단단히 이어 벽을 만들고, 그 뒤로 대여섯 열의 병사들이 긴 창을 방패벽 위로 내밀어 방어합니다. 평평하고 넓은 지역에서 효과적인 전술이며 고도로 훈련된 병력으로 배치하면 적의 기병과 보병들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 장창병 : 장창병은 금속봉이 달린 긴 나무창을 휘두르며 2.5~7.5m에 이르는 공격 범위를 갖고 있습니다. 장창은 중세 유럽에서 가장 먼저 사용되었고 화약이 등장하기 전까지 수 세기 동안 사용되어 온 필수 전쟁 무기였습니다. 장창병은 날카로운 창끝을 사방으로 향한 채 주로 방진형으로 배치되는데 특히 기병에게 위협적입니다.
- 미늘창병 : 쓰임새가 다양한 미늘창은 긴 막대 끝에 도끼가 달려 있고, 반대 쪽 끝에는 대못이 달려있습니다. 14, 15세기에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전투에서 창병을 밀어내거나 창을 난도질하는데 사용되었고 도끼 반대 쪽의 대못은 기병을 찔러 말에서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 수발총병 : 수발총병은 초기 수발총과 총검으로 무장한 보병이었습니다. 영국군에서 수발총병은 기병과 보병의 공격에 취약한 포병대를 호위하기 위해 배치된 정예부대였는데요, 이후 훨씬 더 우수한 무기들이 수발총을 대체했지만 군대에서 '수발총병'은 명예로운 호칭으로 불려오고 있습니다.
- 전격 보병 : 전격 보병은 영토를 점령하기 위한 선발 전방 병력입니다. 이들은 일반 소총을 사용하지만, 전차 같은 무장 차량을 부수고 무력화시키기 위한 무기도 사용합니다.
- 강습 보병 : 반자동소총 M1 개런드는 2차 세계대전 중 미 보병에 지급된 개인 화기입니다. 가스 작동식으로, 격발 시 팽창한 가스가 공이치기를 잡아당겨 다음 탄환을 약실에 밀어 넣는 방식입니다. 탄창의 마지막 탄환이 발사되면 개머리판에서 탄창이 분리되며 독특한 팅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1.2 궁병-총병 계열 유닛
- 투석병 : 투석끈은 인류 역사 상 가장 오래된 발사식 무기입니다. 끝 가운데에 탄환을 싸는 가죽이나 천이 있고 그 안에 둥근 돌이나 진흙 덩어리를 넣은 후, 양쪽 줄 끝을 잡아 빠르게 원을 그리며 휘둘러 공격합니다. 이 때 가죽 끈의 한쪽 끝을 놓으면, 안에 있던 돌이 목표물의 머리를 향해 날아갑니다. 투석끈은 사용하기 어렵고 공격 거리가 짧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에서처럼 이 무기에 능숙한 사람은 거대한 적도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 사수 : 궁술은 1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왕조 이전부터 사용하였고,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다른 고대 문화들도 역사의 초기부터 궁술을 사용하였습니다. 화약이 등장할 때까지 궁수는 전장에서 가장 주요한 장거리 병력이었습니다. 궁수들의 속도와 저지력, 공격 거리는 초라한 투석끈과는 비교할 수 없고, 창이나 투창보다 훨씬 우월했습니다.
- 강화 사수 : 합성궁은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지는데, 흔히 나무, 뿔, 동물의 힘줄을 여러 겹 붙여 만든 끈을 사용합니다. 일반 나무로 만든 활보다 강한 힘을 내는데 효율적이며 작은 크기로 동일한 사거리와 저지력으로 화살을 발사할 수 있습니다. 최초의 합성궁은 기원전 2000년에 실전에 투입되었으며 그리스와 로마 궁수들 대부분이 이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 궁수 : 중세 시대에 장거리 진영을 담당한 궁수들은 합성궁과 날카로운 쇠가 달린 화살을 들고, 철투구와 가죽 또는 비늘 조끼를 착용했습니다. 다만 이 부대의 가장 큰 단점은 훈련 과정이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입니다. 적의 기병대가 휩쓸고 지나가면 부대를 재정비하는데 비용이 많이 듭니다.
- 석궁 사수 : 석궁 사수는 기계식 무기인 석궁을 사용합니다. 활시위를 당길 때 지레나 장치를 사용하고 방아쇠를 당겨 활을 쏘는 방식을 사용하는데요, 석궁은 활보다 느리고 공격 범위도 그리 넓지 않지만 장전과 발사가 수월하여 점차 대부분의 군대가 석궁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 화승총사 : 화승총은 15세기에 처음 선보였으며 탄환을 장전하는 화승식 무기입니다. 사용이 번거롭고 느리지만, 갑옷을 뚫을 정도로 강력하며 기마병을 공격하기에 효과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재장전 시간이 길어 기마병의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에 화승총사들은 창병들과 함께 부대로 구성되고는 했습니다.
- 총사 : 머스킷 총은 화승총의 발전된 버전입니다. 일반 화승총보다 가볍고 총검이 달려 있으며 기존 총보다 훨씬 안정적인 부싯돌식 발화장치를 사용하였습니다. '일제 사격' 전술의 개발로 인해 총사들은 고대 창병, 궁수, 검사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보병과 궁수 부대에 비해 훨씬 강해졌습니다.
- 소총수 : 소총은 강선(라이플)이 새겨진 총으로써 총알을 회전시켜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발사되도록 고안된 무기입니다. 보병들의 주무기가 활강총이라면 소총은 주로 저격수나 소규모 접전을 위해 배치되었습니다. When rates of fire significantly increased with innovations like breech-loading, enriched massed riflemen became very difficult to dislodge.[1][2]
- 기관단총 : 이탈리아제 베레타 M1938 기관단총은 널리 보급되지 못했던 화기였습니다. 그러나 1943년 이후, 2차 세계대전 중 추축군과 베레타 사를 점령한 연합군 측 모두가 애용하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이 총은 방아쇠가 2개로, 반자동 사격을 위한 앞쪽 방아쇠와 자동 사격을 위한 뒤쪽 방아쇠로 설계되었습니다. 베레타 M1938은 일명 토미 건이라 불리는 톰슨 사의 기관단총과 독일군이 처음에 사용했던 MP40을 포함해 2차 세계대전에 널리 사용된 기관단총 중 하나입니다.
1.3 돌격대 계열 유닛
- 기마 돌격대 : 마상 돌격대는 전쟁사에서 뛰어난 족적을 남겼습니다. 한 예로 몽골은 초기에 마상 돌격 전술을 개발하였습니다. 양 끝이 거꾸로 휘어진 짧은 활로 무장한 대초원의 돌격대는 말을 탄 채 적을 향해 돌진하면서 정확하게 화살을 쏜 다음, 적이 대응할 새도 없이 공격을 반복하였습니다. 이런 전술 덕분에 몽골은 중국에서 동유럽까지 가로먹는 모는 적들을 물리쳤습니다.
- 중장갑 기마 돌격대 : 좋은 장비를 갖춘 중장갑 기마 돌격대는 실크 속옷과 두꺼운 코트 위에 가죽이나 사슬, 철로 만든 비늘갑옷을 입었습니다. 화살이 비늘갑옷을 관통하더라도 실크 재질이 엉켜 화살의 속도를 늦춰주고 뽑아내기 쉬워졌습니다. 돌격대는 말들이 지치지 않도록 3~4마리의 말을 번갈아 타면서 이동하였습니다. 돌격대는 탁월한 기동성을 갖추었지만 이동 중에도 넓은 목초지를 필요로 했습니다.
- 기병 돌격대 : 몽골 전술의 피해자들는 한눈에 기마 돌격대의 가치를 알아보았습니다. 기마 궁술에 있어 아시아의 기술에 맞설 자는 없겠지만 기술이 발달할수록 독창적이고 효율적인 돌격대가 만들어졌습니다. 기마 돌격대는 침략한 지역을 정찰하고 소나 다른 식량을 빼앗고, 적군을 위협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 중장갑 기병 돌격대 : 전투가 시작되면 군대의 중장갑 기병 돌격대는 측면으로 이동해 적의 저장고를 약탈하였습니다.
- 용기병 돌격대 : 원래 용기병은 말을 타고 이동하지만 공격할 때는 말에서 내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화약 무기가 작아지고 사용하기 쉬워지자 용기병은 말 위에서 무기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정예 기병 돌격대에 비해 더 얇은 갑옷을 입고 하급의 말을 탔습니다. 무장을 한 중장갑 장창병에 비해 훈련과 전쟁 투입을 위한 비용이 저렴했습니다. 용기병은 화약 기술이 발전하면서 일반 기병과 동일한 힘을 갖게 되었고 결국 전체 기병을 대체하였습니다.
- 기총병 돌격대 : '기병총'은 표준규격 배급 무기보다 총열이 짧은 소총 또는 머스킷 총입니다. 말 위에서는 일반 길이의 전장식 무기를 장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병들은 이 총을 사용하였습니다. 기병총은 보병의 머스킷 총이나 소총에 비해 사거리가 짧고 위력도 약했습니다. 19세기에 들어서 약실 장전 무기와 탄창의 개발로 기병용 소총수들이 더 강해졌으며, 발사속도가 빠른 보병 무기들 때문에 말들은 전장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 오토바이 돌격대 : 오토바이는 적지를 정찰하고 광속[3]으로 돌격하는데 사용됩니다. 오토바이는 4륜 차량보다 훨씬 빠르고 필요한 경우 쉽게 앞지를 수도 있습니다. 초기 오토바이에는 사이드카가 장착되어 한 사람 더 데리고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시내에서 주로 유용하게 사용되던 오토바이는 비포장 도로에서는 사용이 어렵습니다. 전차가 쉽게 오갈 수 있는 참호나 방어선들도 오토바이에게는 역부족이었습니다.
- 중장갑 오토바이 돌격대 : 1940년, 할리 데이비슨 사는 본래 민간용 오토바이였던 WL 모델을 개조해 군용 할리 데이비슨 WLA를 개발했습니다. 이 모델은 진흙이 튀는 것을 방지하는 흙받이와 탄약 상자의 무게를 버틸 만한 견고한 선반, 그리고 톰슨 시관총을 휴대할 수 있는 크기의 전면 보관함을 장착했습니다.
1.4 기마병-전차 계열 유닛
- 기마병 : 말은 전투 역사상 중요한 이동수단이자 공격수단이었습니다. 서기 2세기 경, 중국 금나라[4]에서 발명된 한 쌍의 발걸이는 기병이 말 위에서 활이나 창 사용 시 안정감을 높여주어 군대에서 기병대의 입지를 더 강화시켰습니다.
- 중장갑 기병 : '카타프락트'(중장갑 기병)는 봉건 시대 이전의 중장갑 가병으로, 파르티아에서 로마를 거쳐 비잔틴 제국까지 고대에 고용되었습니다. 말과 기병 모두 비늘갑옷을 착용하였고 기병은 창을 사용하였는데요, 비늘갑옷 기병들은 나중에 등장했던 기사들보다는 약했지만 전투에서 보병대를 공격하는데 상당히 효과적이었습니다.
- 기사 : 기사는 마상 전사로서 국왕이나 봉건 영주를 섬겼습니다. 이들은 중세 시대의 부흥기에 전장을 지배했는데요, 가장 견고한 갑옷을 입고 힘이 넘치는 말을 타고 검(또는 근접 무기)과 위협적인 긴 창을 들었습니다. 사기충천한 기사 중대는 적군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견고한 수비병들은 기사 중대를 믈리칠 수 있지만 방어가 뚫리거나 불안하면 기사들의 폭주(...)에 맥없이 무너졌습니다.
- 창기병 : 창기병은 17-19세기의 기병으로, 보통 3미터 정도되는 긴창으로 무장했습니다. 1898년 옴두르만 전투에서 21대 창기병 400명이 적 보병 2,500명을 물리쳐 역사상 위대한 기병 전투로 기록되었습니다.
- 흉갑기병 : 15세기 유럽에 처음 등장한 흉갑기병은 판금 투구와 몸통 및 허벅지를 덮는 판금 갑옷(흉갑)을 입었습니다. 이들은 나폴레옹 전쟁 동안 활약하였고 최고의 전사들은 1차 세계대전 초반까지도 전장에서 활약하였습니다.
- 전차 : 전차는 추적 및 장갑 전투용 차량으로 대형 주포가 장착 되어 있습니다. 다른 대형 지상용 차량들을 파괴하고 느린 보병을 공격하기에 적합합니다. 1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처음 배치된 프랑스의 르노 FT는 기존의 전차들보다 훨씬 가볍고 빨랐습니다. 최초의 현대식 전차인 FT는 전방향 회전 포탑을 장학하였고, 전방에는 병사를 배치하고 후방에 엔진을 배치한 구조였으며 2차 세계대전까지도 전방에 투입되었습니다.
- 중형전차 : M4 셔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두 번째로 많이 생산된 전차입니다. 이 전차는 종전까지 약 40,000대가 생산되었습니다. M4 셔먼은 유지 보수가 쉬웠으나, 더 긴 사정거리와 관통력을 갖춘 판처 IV[5]나 티거 I와 같은 독일 전차에게 밀렸습니다.
- 전투 전차 - 소비에트 T-34 전차는 2차 세계대전에 한 획을 그은 전차 디자인으로, 당시 가장 많이 생산된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40년에 도입된 T-34의 장갑은 독일군의 철갑탄으로도 뚫을 수 없없습니다.
하지만 호랑이와 아흐트아흐트가 나온다면 어떨까? 사상 최대 규모의 전투였던 쿠르스크 전투에서 소련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T-34 때문이었습니다. T-34는 빠르고 화력과 방어력이 띠어나 전쟁 후에도 꾸준히 생산되었습니다.
1.5 공병 계열 유닛
- 지뢰공병 : 지뢰공병은 적의 요새를 공격하기 위한 특수 훈련을 받았습니다. 훈련에는 포병과 보병 부대를 안전하게 전진시키기 위해 참호를 구축하는 기술도 포함되었습니다. 지뢰공병이 적군의 요새 아래 지뢰를 매설하여 벽을 무너뜨리면 공격군이 내부로 진입하여 놀란 수비병들을 제압하였습니다. 수비병들은 공격군이 벽을 무너뜨리기 전에 굴을 파서 방어하는데 두 진영의 굴이 서로 연결될 때에는 더 없이 잔인한 전투가 지하에서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 숙련 지뢰공병 : (위의 지뢰공병 항목과 내용이 같다. 다만 이 항목에서는 위의 항목에서 '진입'이라는 어휘 대신 '진격'이란 어휘를 쓴다.)
- 토목공병 : (위의 지뢰공병 항목과 내용이 같다. 다만 이 항목에서는 '지뢰공병'이란 어휘 대신 '공병'이라는 어휘를 쓴다.)
- 숙련 토목공병 : (위의 항목과 내용이 같다.)
- 엔지니어 : 전투 기술자들은 전장에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훈련된 병력입니다. 도로와 다리, 비행기 이착륙장 건설, 지뢰 설치 혹은 제거, 적군 요새 파괴 등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 전투 엔지니어 : 전투 엔지니어들은 교량 건설, 폭발물 설치, 지도 제작, 위장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30이나 50 구경의 칼리버 기관총, 대전차로켓, 수류탄 발사기 등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전투 엔지니어들이 2차 세계대전에서 올린 주요 성과 중 하나는 독일 국경의 관문이었던 지크프리트 전선의 삼엄한 방어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1.6 공성병기 계열 유닛
- 발리스타 : 발리스타는 거대한 석궁 장치로 대기 중인 적의 위치에 결정적인 탄환을 발사했습니다. 힘 센 군인들이 이 장치를 원하는 위치로 옮겨와 조립한 다음 여럿이 조준을 하고 레버를 당겼습니다. 대형 탄환도 장전되어 발사되었구요. 고대 발리스타의 사거리는 180~450미터 정도였습니다. 하나의 탄환은 볼링핀처럼 수십 명의 병사들을 쓰러뜨리고 전함의 철판도 종잇장처럼 관통시켰습니다.
- 사석포 : 사석포는 초기 대포로 적군을 향해 돌덩이를 발사했습니다. 12세기 무렵 중국에서 발명되었고 약 200년 후에 유럽에 도입되었습니다. 1449년 부르고뉴 공작은 '몬즈 메그' 사석포를 만들어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2세에게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몬즈 메그는 총열이 폭발하기 전까지 200년 넘게 사용되었고 56cm 구경으로 역사상 가장 큰 대포였습니다.
- 대포 : 선진 금속공학으로 만들어진 대포는 기존의 사석포보다 더 작고 안정적이었습니다. 금속 덩어리(폭발물)를 발사하여 먼 거리에서도 성을 붕괴시킬 수 있었습니다. 대포 때문에 성벽은 쓸모가 없게 되었고 대신 낮고 각이 진 벽으로 둘러싸인 요새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구조의 요새는 포탄의 방향을 바꿔 위로 빗나가게 만들었습니다.
- 포병대 : 1차 세계대전 중의 대부분의 사상자는 그 어떤 전투보다도 더 격렬했던 포격 전투로 인해 발생한 사상자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지지부진한 참호전 대신에 전방을 향해 엄청난 포탄 세례를 퍼부어 일제히 사격을 가하는 공격을 퍼붓는 전술을 펼쳐, 퇴역 군인들의 대부분이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 곡사포 : 곡사포는 비교적 짧은 총열과 높은 발사 고각이 특징인 야전 화포입니다. 다수 인원으로 이루어진 포대에서 주로 운용했습니다.
- 박격포 : 화약 시대 초기
게임과 역사를 구분 못하는 제작자들, 대부분 군대에는 원시적인 도화선을 사용하는 폭탄 투척병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초기 수류탄은 무겁고 다르기 힘들었기 때문에 힘이 센 남성이 투척병으로 차출되었습니다. 이후, 손으로 다룰 수 있는 수류탄이 보병 개인 화기로 보급되었고, '척탄병'이라는 이름은 정예 군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보병 중대에서 수류탄 발사기를 지급받는 병사는 손으로 던질 수 있는 수류탄의 최대 사거리와 박격포의 최단 사거리 사이의 화력 자원을 담당합니다. - 참호 박격포 : 박격포는 폭탄이나 포탄을 포물선으로 발사하여 성벽과 같은 장애물의 후방을 포격하는 무기입니다. 초기 형태의 박격포는 굉장히 무거워 옮기기 힘들었기 때문에 주로 포위전에서 쓰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윌프레드 스톡스 경은 서부 전선의 교착 상황을 타개하고자 휴대 운반할 수 있는 최초의 전술용 박격포를 개발했습니다. 바로 그의 이름을 딴 스톡스 참호 박격포입니다. 이 박격포는 재래식 화포보다 참호 포격에 효과적이었고, 적 보병을 사살하는 데 특히 유용했습니다. 병사들은 참호의 한 부분이 포격당했을 때 발생하는 직접적인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갈지자[7] 형태의 참호를 구축했습니다.
- 야전 박격포 : (참호 박격포와 동일)
1.8 지원병 계열 유닛
- 군수품 수레 : 병사들은 식량을 많이 휴대하지 못했습니다. 의학이 발전한 현대와는 달리 옛날 병사들은 의약품도 거의 없었습니다. 훌륭한 지휘관들은 병사들이 항상 식량과 의약품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였습니다. 특히 전투 직전이나 전투 중에는 더 그러했습니다.
- 군수품 마차 : 군수품 마차는 시기와 무게에 따라 말, 당나귀, 노새, 거세한 수송아지 등이 끌었습니다. 각 부대는 군수품 열차와 부대 사이를 오가는 마차를 지정받았습니다. 지휘관에게는 개인용 마차가 있어 갑옷과 무기, 개인 식량 상자, 보물, 막사에서 긴 밤을 지샐 때 필요한 특별한 친구들
그게 누구인지는 상상에 맡긴다을 운반하기도 했습니다. - 군수품 열차 : 군수품 열차는 식량, 의복, 여분의 무기와 갑옷, 의약품 등 모든 보급품과 부상병을 운반했습니다. 행군 중에 군수품 열차를 보호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었고 적지에서 군수품을 잃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이 임무는 기병대가 담당했는데 화려한 임무는 아니지만 대단히 중요한 임무였습니다.
- 군수품 트럭 : 군수품 트럭은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차량입니다. 현대전에서 군대는 수 백 킬로의 거리를 최대한 빨리 신속히 이동해야합니다. 전차와 장갑차는 연료가 떨어지면 더 이상 이동 할 수 없고, 상당히 먼 거리의 경우 비행기로 보급하는 일도 불가능합니다. 트럭은 연료, 탄약과 식량, 전선에 필요한 필수품 등을 수송하는 중요한 운송수단입니다.
- 중장갑 보급 트럭 : '2.5'라고 불렸던 GMC CCKW는 노르망디 침공[8] 이후 연합군의 동진에서 주된 수송 역할을 맡았던 군용 트럭입니다. GMC 사의 모델 명명법에 따라, CCKW라는 모델명의 C는 디자인 연도인 1941년을, 다음 C는 컨벤셔널 캡을, K는 전륜 고동임을 그리고 W는 듀얼 리어 액슬을 의미합니다.
2 공장 유닛
2.1 기관총병 계열 유닛
- 게틀링건 :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기관총은 게틀링 건이며 1861년에 특허를 받었습니다. 다관식 무기인 게틀링 건은 수동으로 조작 가능하며 탄약통을 신속하게 재장전시 분당 200발 정도를 발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총은 1864~1865년 미국 남북전쟁 도중 버지니아주 피터스버그를 포위하는 과정에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 중장갑 게틀링건 : 게틀링 건은 리차드 게틀링 박사가 설계하였고 탄실에 탄환을 장학할 때 중력을 이용한 공급법을 채택하였습니다. 여러 개의 총열이 총대에 달린 중심축 주위를 회전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이후 반동에 대한 저항력이 더 강하고 가스로 작동하는 무기로 대체되었습니다.
- 기관총 : 발사시 매번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반자동식 무기와는 달리, 기관총은 누르면 연속으로 발사되는 놀라운 성능의 자동 무기입니다. 최초의 자동 기관총은 물로 열을 식혀주는 방식으로 1차 대전때 최초 등장하였으며, 수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 중기관총 : 추가바람
2.2 특공대 계열 유닛
- 게릴라 : 게릴라군은 비정규적인 전쟁이나 '게릴라'전에 참여하였습니다. '게릴라'라는 용어는 19세기 스페인 농민들이 나폴레옹이 이끄는 침략자들에 대항할 때 방해 공작, 기습 및 야간 공격, 다양한 색다른 전술 등을 사용하며 만들어졌습니다. 게릴라군은 번개같이 잠입하여 돌격하고, 적을 빠르게 치고 데미지를 입힌 다음 상대가 전열을 가듬어 보복하기 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 방해 공작원 : 방해 공작원들이 사용하는 간단한 전술에는 적군 차량의 연료통 바닥내기, 바퀴 구멍내기, 전자 시스템 망가뜨리기 등이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베두인족은 기차 선로의 일부를 폭파시켜 와지 항구 근처에 있는 터키 기관차를 탈선시켰습니다.
- 특공대 : 추가바람
- 베테랑 특공대 : 영국 특공대는 1940년 윈스턴 처칠의 요청으로 창설되었습니다. 이들은 지중해와 중동에서 북극권 한계선과 유럽에 이르기까지, 2차 세계대전의 수많은 격전지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왕실 해군 제3특공여단을 제외한 특공여단 대부분은 전쟁 이후에 해산되었습니다.
2.3 바주카 계열 유닛
- 바주카 : 1차 세계대전 시기에 초기의 튜브 발사식 로켓을 개발한 인물을 현대 로켓 공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고더드입니다. 현대적 형태의 로켓 무기는 2차 대전 발발 당시 메릴랜드의 애버딘 프로빙 그라운드 지역에서 개발되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대전차용 무반동 로켓포로 알려져 있었지만, 이 무기는 외형이 비슷한 트럼본 악기인 '바주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본래 이 무기의 개발 기술은 연합군이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일군이 노획한 모델을 분해하여 탄두를 확대하고 개량한 무기가 바로 '판처슈렉'입니다. 발사하고 난 뒤에 나는 연기는 바주카를 사용하는 보병들에게 큰 단점으로 작용했으며, 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2.4 중전차 계열 유닛
- 중전차 Mk1 : 참호전의 감소로 인해 장갑 전술은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급격히 발전했습니다. 초기에는 전차가 느리고 동력이 부족하거나 기계적 결함이 많았으나. 전쟁 후반기에는 연합군은 영국의 '마크 5'와 같은 중전차를 이용하여 프랑스의 '캉브레'와 '아미앵'에서의 주요 핵심 전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주도하였습니다.
- 중전차 Mk2 : (위 Mk1 내용과 동일)
- 중전차 Mk3 : 티거 II[9]는 2차 세계대전중 활약한 독일군의 중전차입니다. 무게는 약 70톤에 달했고 10~17cm 두께의 전방 장갑을 장착했으며, 주포는 길이 6m에 달하는 8.8cm KwK43을 채택했습니다.
3 비행장 유닛
3.1 전투기 계열 유닛
- 복엽기 : 1차 세계대전 초반, 양 진영 모두 신규 개발한 항공기를 사용하여 병력 이동을 정찰하였습니다. 정찰용 복엽기가 투입된 초기 공중 전투에서는 직접 무기를 손에 들고 전투에 임했지만 이후 기체 위에 기관총을 직접 장착한 최초의 전투기가 탄생하였습니다.
- 삼엽기 : (복엽기와 내용이 같다.)
- 전투기 : 메서슈미트 Me 262는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가장 진화된 전투시 중 하나입니다. Me262는 정찰, 폭격 및 실험적인 야간 비행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연합군 조종하들은 제공권 열세를 극복하기 위래 이착륙하는 Me 262를 요격해야 했습니다.
프롭기 그려놓고 Me262라고 우기고 있다
3.2 폭격기 계열 유닛
- 비행선 : 민간 목표물을 상대로 이뤄진 최초의 전술적 공습은 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체펠린 비행선'이 런던 및 영국의 도시 상공을 습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공습들로 전력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지는 못하였으나 사람들에게 대규모 도시 공습의 공포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하지만 폭발[10]과 바람에 취약한 비행선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 폭격기 : (한글판에선 위 비행선과 내용이 같다.)
- Of all Of the bombers used during World War II, the Boeing B-17 Flying Fortress was one of the most feared aircraft in the American Allies' fleet. Not only did they drop over 640.000 tons of bombs during the war, but each was equipped with six different 12.7mm machine gun turrets to defend against enemy fighters. These bombers would fly in a box formation, giving gunners the ability to aim their turret at any position needed.
- 제2차 세계대전에 사용된 폭격기 중, 날아다니는 요새라 불리는 보잉 B-17 폭격기는 미국 연합국측 비행대에서 가장 두려운 항공기였습니다. 전쟁 중, 총 640,000톤 이상의 폭탄을 투하했을 뿐 아니라, 각 폭격기에는 적 전투기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6개의 12.7 mm의 기관 포탑이 장착되어 있었습니다. 이 폭격기들은 기관 포탑의 사수가 어떤 방향으로든 사격할 수 있도록, 컴뱃 박스(combat boxes) 대형으로 비행하였습니다.
- 수송기 : 군 지도자들은 하늘에서 병력을 투하해 적의 고정된 방어 시설을 우회하고 보급로를 끊는 일을 오랫동안 구상해 왔습니다. 이 같은 구상은 2차 세계대전 역사에 길이 남을 오버로드 작전이나 마켓 가든 작전, 그리고 독일의 대대적인 크레타 공습에서 성과를 이뤘습니다. 현재는 헬리콥터 공습이 낙하산병의 역할 대부분을 대체했지만, 공수부대원들은 분쟁 지역 곳곳에서 여전히 활약하고 있습니다.
4 국가별 고유 유닛
4.1 중국 고유 유닛
- 추코누 : 기원전 4세기 추코누는 중국전사들이 사용하던 독창적인 연발 석궁이었습니다. 지렛대를 한번 당긴후 화살을 위쪽 탄창에 장전한 다음 발사하는 구조입니다. 숙련된 전사는 20초만에 화살을 10대까지 쏠 수 있었습니다. (탄창에 10대까지 장전가능)화살은 다른 석궁 화살보다 가벼워서 두꺼운 갑옷을 뚫지는 못하였지만 발사속도는 탁월하였습니다.
- 정예 추코누 : 정예 추코누는 무기를 더 개량하여 한 번에 화살을 3대까지 발사할 수 있었습니다. 사거리와 정확성은 어느 정도 떨어졌으나, 발사 속도는 놀랄 만큼 향상되었습니다. 적의 보병 부대처럼 크고 느린 목표물을 상대로 많은 수를 발사하면 상당한 파괴력을 보였습니다. 일부 전사들은 여러 대의 화살촉에 독을 발라 효과를 더하기도 했습니다.
- 왕실 추코누 : 특정 부대는 더 강력하게 강화된 추코누를 사용하였습니다. 19세기 1895년 중일전쟁[12] 당시 중국은 일본군을 상대로 상당수의 왕립 추코누를 파견하였지만 신식 소총과 대포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맥없이 패했습니다.
- 화창 기병 : 초기 화약 무기 중에서 중국의 화창은 화약을 채운 대나무 통을 창에 묶어 발사하는 단순한 구조였습니다. 근접 전투 시 화창병들은 화약을 채운 대나무 통을 발사해 위협한 후 날카로운 창 끝으로 적군을 죽였는데요, 공학이 발전하면서 화창은 진정한 화기로 거듭났습니다. 창 대부분은 쓸모가 점점 줄어 결국에는 없어졌습니다.
- 파이어 드래곤 : '수저용왕포'[13]는 17세기 중국에서 발명된 놀라운 무기입니다. 2단계 발사체로 마치 용처럼 생겼으며, 포의 길이는 약 1.5미터였습니다. 측면에 장착된 4개 이상의 발사체를 적에게 발포할 수 있었는데요, 이 중 도화선 하나가 더 많은 관에 연결되어 불이 붙으면 폭발물이 채워진 발사체가 적을 향해 날아가 결정적인 공격을 가했습니다. 바다에서 사용되었으며 먼 거리에서도 적의 함선에 불을 질러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었습니다.
- 만주 소총수 : 청 왕조(1644-1911)는 만주족이 중국을 점령하여 탄생하였습니다. 만주족이 개발한 깃발 시스템은 군대를 체계화하였고 여진족의 단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몽골과 중국의 일부 깃발 군대도 청의 군대에 흡수되었습니다.[14]
- 장정 소총수 : 중국 국공내전이 발발 시, 1년 동안 약 6,400km 이상의 '대장정' 행군을 하였습니다. 이 행군은 장시성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서중국의 가장 거친 지역을 통과한 대장정이었습니다.
4.2 영국 고유 유닛
- 대궁 사수 : 영국이나 웨일스 대궁 사수들은 단순하지만 치명적인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주목으로 만든 이 활은 커다란 D모양의 나무와 대마 끈으로 만들어졌습니다.(향후 주목이 고갈된 뒤로는 다른 재료로 대체되었습니다) 대궁의 강도는 36~113kg 정도였으며 (현대 대궁의 강도는 보통 최대 27kg 정도.) 이 무기로 훈련한 궁수는 중세 시대 가장 견고한 갑옷까지 뚫을 수 있었습니다.
- 정예 대궁 사수 : 정예 대궁 사수는 광범위한 훈련을 수행하였습니다. 영국의 왕들은 군대 징집을 대비하여 백성들에게 무기 연습을 시켰었는데요, 실제로 유흥을 싫어했던 유명한 왕인 에드워드 1세는 일요일에 스포츠를 금하고 농민들이 대궁 연습으로 하루를 보내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정예 대궁 사수는 5초 이내에 장전, 조준, 발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 국왕 대궁 사수 : 백년 전쟁 중인 1415년 성 크리스핀의 축일 (10월 25일), 헨리 5세는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 대군을 상대로 대승을 하였습니다. 아군 병력의 70% 이상을 정예 대궁 부대로 집중 배치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죠. 영국군의 병력이 1/4 정도로 열세였지만 정교한 장거리 일제 사격을 지속적으로 퍼부어 프랑스군을 무너뜨렸습니다.
- 기마 의용병 : 18세기 후반에 처음 등장한 기마 의용병은 영국의 소지주들이 보낸 자원 연대로, 나폴레옹이 다스리던 프랑스의 공포스러운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조직되었습니다. 지역 귀족의 지휘를 받았던 이 병사들은 방어군의 역할만 하였으며
이제는 침략군의 역할만 한다 병사 개개인의 동의가 없이는 국외 전투에 참가할 수 없었는데요,이제는 개개인의 의견조차 깡그리 무시한다. 영국 기마 의용병은 '브라운 베스'로 알려진 전장식 활강총으로 무장하였습니다. - 왕립 기마 의용병 : 특히 뛰어난 성과를 거둔 영국군 유닛
유닛...?에게는 '로얄(왕립)'이라는 칭호가 수여되었습니다. 제 42 왕립 하이랜드 보병 연대는 스코틀랜드 보병 연대로, 나폴레옹 전쟁 동안 활약하였습니다. '블랙 워치'라고 불렸던 이 연대는 영국군 내에서 가장 악명높은 보병 부대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이끄는 '무적' 군단의 깃발을 빼앗고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 영국 특수 부대 : 블랙 워치는 스코틀랜드 보병 부대로 전장의 포화 속에서의 흉폭함과 용맹함으로 유명합니다. 자코뱅 혁명 이후 1731년에 결성된 블랙 워치는 대영제국의 모든 주요한 작전에서 전투의 화신으로 불리며 엄청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또한 전쟁 역사상 가장 쿨한 좌우명으로도 유명합니다. 'Neo me impune lacessit!'(나를 건드린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 왕실 소총수[15] : 왕실 소총 부대(KRRC)는 원래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 배치되었던 영국 원정군의 일부로, 지중해 지역에서도 활약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아른헴 전투와 베비 전투, 크레테 전투에도 참여했습니다. KRRC는 이후 옥스 앤 벅스 경보병대와 함께 그린 재킷 연대로 재편성되었습니다.
4.3 프랑스 고유 유닛
- 슈발리에 : 추가바람
- 중장갑 슈발리에 : 재력을 갖추었거나 군주의 총애를 받는 슈발리에는 더 견고한 장비로 무장하였습니다. 도금된 미늘갑옷, 말갑옷을 착용하여 말 위에서도 허점이 없었습니다. 이런 중장갑 슈발리에들은 전투 도중 말에서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 자신을 보호할 종자를 데리고 전투에 참가하였습니다. 보병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장면이 바로 말에서 떨어져 진흙에 처박힌
(...) 적의 기사들일 테니까요. - 정예 슈발리에 : 정예 슈발리에는 숙련된 기사로, 여러 전투에서 살아남았고 돌격에 능숙했습니다. 보통 예비 인력으로 대기하다가 적에게 치명타를 가하는게 사용되었습니다. 다리키온 전투(1081)에서 양쪽 군대가 모두 무너지자 노르만 기사들은 비잔틴의 중심부를 공격해 적의 보병을 부수고 적 전체를 섬멸했습니다.
- 슈발리에 근위병 : 슈발리에 근위병은 전투에서 군 지휘관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지휘관이 주로 군주였기 때문에 근위병은 가장 위협적인 전사였고 당대 최고의 기술로 생산한 가장 좋은 갑옷과 무기로 무장하였습니다.
- 경기병[16] : 18세기에 머스킷 총은 거의 모든 갑옷을 무용지물로 만들었고 '경기병'이 검과 긴 창으로 무장한 기병대에 제공되었습니다. 경기병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용맹함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나폴레옹이 전투에서 서른 살이 넘은 경기병을 본다면 정말 놀랄 일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경기병들은 샴페인 병을 기병도로 여는 기술인 '사브리지'를 발명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 생샤몽 전차 : 생샤몽 전차는 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프랑스에서 400대가 넘게 생산되었습니다. 본래 디자인 상 궤도가 전차 자체 길이보다 많이 짧아 결함이 있었는데요, 결국 이 전차는 서서히 사라졌고 영국의 중장갑 전차로 대체되었습니다.
- R35 전차 : 르노 R35는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프랑스군의 경보병 전차입니다. 보병 작전을 지원하는 데 적합한 무기로 무장되어 있었지만 , 37mm 주포뿐이였고 대전차를 상대할 무기가 부족했습니다. 이러한 취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더 강력하고 사정 거리가 긴 포를 탑재한 르노 40이 개발되었습니다
- S35 전차 : SOUMA[17]
S35는 2차 세계대전의 프랑스 기병 전차로, 생산 비용이 많이 들고 지휘관이 포탑 외부에 있어야 했지만 화력과 방어력이 모두 뛰어났습니다. 프랑스군은 이처럼 뛰어난 전차를 보유했지만 효율적인 전략과 통신수단을 가진 독일군에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4.4 독일 고유 유닛
- 반달족 : 반달족은 원래 동유럽 출신의 거친 게르만 전사 부족이었습니다. 훈족에 의해 서쪽으로 밀려나 독일에 정착한 반달족은 수 세기 동안 로마와 주변 여러 부족들을 상대로 전쟁과 동맹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북아프리카 연안에 강력한 왕국을 건설하였습니다[18]. 서기 455년에는 로마를 약탈하기도 했습니다.
- 중장갑 반달족 : 정예부대인 반달족 중장갑 전사는 여러 개의 창과 검으로 무장하고 나무 방패를 들고 철모를 썼습니다. 뛰어난 전사들은 죽은 적에게서 빼앗은 쇠사슬 갑옷을 입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게 세련미나 감수성 따위는 기대하기 어려웠으며, 반달족이 로마를 약탈한 이후,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물건을 부수는 자를 반달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반달 탄생 비화 - 독일 보병 : '란츠크네흐트'(독일 보병)은 15~16세기의 게르만족 용병이었습니다. 1500년대에 이들은 자신을 고용했던 신성 로마 제국이 더 이상 임금을 지불하지 못하게 되자 결국 로마를 약탈하였습니다(교훈: 무기를 가진 자들의 월급은 절대 체불해서는 안됩니다).
- 중장갑 독일 보병 : 란츠크네흐트 최고의 전사는 중장갑 정예군사로 주로 거대한 칼을 사용하고, 적의 창을 잘라버리고 대형을 무너뜨렸습니다. 이들은 부대의 기수를 보호하는 임무도 맡았습니다. 기수가 쓰러지면 병사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질서도 파괴되어 부대가 중대한 위기에 처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전투에서 완전한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에 기수를 지키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고 위험한 임무이기도 했습니다.
- 융커스 : 게르만 귀족들의 아들들인 융커스들은 안타깝게도 장남으로 태어나지 못해 부모의 재산과 칭호를 상속받지 못하고 군인이 된 자들입니다.[19] 대신, 이들은 적의 재산을 빼앗아 부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부잣집 가문 출신이다 보니, 이들은 최고의 무기와 갑옷으로 무장하여 자신들을 뽐냈습니다.
- 독일 국방군 : 베어마흐트(독일국방군)는 1935년부터 1946년[20] 패전까지 독일의 통합 3군으로 조직된 군대였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공격하는 브리츠크리그(전격전)으로 유명하며 기계 보병, 전차, 근접 항공기 지원까지 동시에 투입하여 적을 압도하였습니다.
- 국민척탄병[21] : 국민척탄병 사단은 1944년 중반, 최소의 인원으로 병력손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설되었습니다. 통상적인 9열 대신 6열 보병 대대 체제를 도입했으며, 주로 사정 거리가 짧은 기관단총이나 가벼운 자동 화기, 그리고 판처 파우스트 같은 대전차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4.5 그리스 고유 유닛
- 컴패니언 기병대 : 추가바람
- 왕립 컴패니언 기병대 : 왕립 기병대는 마케도니아 최고의 기병 부대였습니다. 이들은 알렉산더 대왕으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았으며 가장 신뢰하는 동료들과 병사들로 조직된 역사상 가장 위협적인 단일 기병 부대였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쐐기 대형으로 이 부대를 이끌었으며 선봉에 서서 적을 맞이하였습니다.
- 중장갑 왕립 컴패니언 기병대 : 알렉산더 대왕의 서거 이후 거대한 제국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이후 일부 군대는 계속 알렉산더의 기병 대형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고 무기와 갑옷이 발달함에 따라 대형을 조정하기도 하였습니다. 후기 중장갑 헤타이로이는 중장갑 기병과 유럽 초기 기사들처럼 말에 일부 갑옷을 입히고 기병의 팔과 다리에도 보호장구를 착용하였습니다.
- 정예 왕립 컴패니언 기병대 : 10세기에 비잔틴 제국은 '더 컴퍼니(The Company)'라는 정예 부대를 전장에 투입했습니다. 이 부대는 대부분 외국인으로 구성되었고 제국 근위병의 역할도 일부 수행하였습니다(군주가 백성들을 얼마나 불신했는지 보여줍니다.). 이 부대는 12세기까지 활약하였습니다.
- 로마 용병 : 스트라디오티(로마 용병)는 15세기 동유럽 발칸 지역 출신의 정예 기병 용병대입니다. 이 용병대는 약 300년 동안 유럽 전역의 전쟁에서 활약하였습니다. 이들은 헨리 8세의 요청을 받아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을 위해 영국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이들은 갑옷을 입고 투창, 검, 철퇴 그리고 간혹 석궁을 사용하였으며 기병 전술의 최고 전문가였습니다. 또한, 사망하거나 생포한 적군의 목을 베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 컴패니언 전차(X) :
이거 실제로 있긴 한 건가 당연한 걸 왜 물어 알렉산더 대왕의 지휘하에 승전을 거듭해온 그리스 전사들은 전투시 기동성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적의 취약점을 공략해 결정적인 공격을 하는 강력한 유닛인 '컴패니언 전차'를 개발하였습니다. 그 그리스 문명을 가지고 산업까지 끌고간 이름모를 플레이어에게 박수를 쳐주자 물론 계몽시대때도 설명은 볼수있다 - ELAS 전차[22] :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 마틸다같이 생겨먹은 게 그리스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애초에 그리스 전차는 영국 거 옮겨놓은 게 아닐까 하는데
- 크레타 전투와 추축국의 그리스 점령 이후, 그리스 공산당은 국가적 저항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 인민해방군(ELAS)이 창설되었는데, 이들은 소규모 병력을 동원한 게릴라전에 특화되어 있었으며 독일과 이탈리아 점령군을 상대하기 위해 전차를 운용하기도 했습니다.
4.6 일본 고유 유닛
- 무사 : '무사'는 일본 귀족을 섬기던 전사 계급인 '사무라이'를 부르던 초기의 칭호입니다. 일본 왕은 서기 7세기 경부터 전사 계급을 만들고자 하였는데요, 최초의 무사들은 곧은 검을 사용했지만, 900년대에 들어서면서 날이 살짝 휘어진 전통검인 '카타나'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창을 쓰는 무사들도 많았으며 특히 대규모 전투의 경우 창을 사용하였습니다.
- 사무라이 : 사무라이는 세계 역사상 최고의 전사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도의 훈련과 무장을 통해 죽음을 불사하는 철학으로 유명한데요, 에도 시대 사무라이인 야마모토 츠네모토는 "무사도는 죽음을 마주했을 때 완성된다. 즉, 삶과 죽음에 갈림길에 서면 반드시 죽음을 택하겠다는 뜻이다. 다른 길은 없다."와 같이 말했습니다.
- 중장갑 사무라이 : 15세기 들어 초기형 소총이 등장하자 사무라이는 신체를 보호할 수 있는 판금 갑옷을 착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후대에 화기 기술이 발달하면서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지만요.) 갑옷 덕분에 빈약한 농민의 무기는 사무라이에게 전혀 통하지 않게 되었고 그들은 주변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 노다치 사무라이 : '노다치'는 1미터가 넘는 위대한 일본도입니다. 워낙 거대하다 보니, 휘두르다 주변의 아군이 다칠 수도 있어 부대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다치를 들고 다니는 사무라이는 지상에서나 말 위에서나 혼자 싸웠는데요, 이들은 전장에서 가장 위험한 전사였습니다.
- 아시가루 : '아시가루'는 일본 보병입니다. 원래 긴 막대나 창, 검으로 무장했었지만, 16세기가 되면서 '타네가시마'[23]로 알려진 화승총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일본의 '유미(활)'가 초기 화기들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했었지만, 화승총 사용 습득 시간이 활 쏘는 법을 배우는 시간에 비해 훨씬 짧아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 시조쿠 : 중무장 보병인 시조쿠는 검과 활보다 소총과 수류탄을 사용하였지만 스스로 일본 사무라이의 후계자로 자부해 왔습니다. 이들은 두려움 없이 전투에 임했으며 지휘관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자살공격대는 아니었지만 적군의 목숨을 서슴없이 빼앗았습니다.
- 화족 : 화족은 1884년의 일본 귀족 법안에 의해 제정된 사회 계급입니다. 이 지위는 국가에 특별한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수여되었습니다. 화족은 5등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쌀 수확량에 비례하여 더 좋은 지위를 받았습니다.
4.7 한국 고유 유닛
- 화랑 : 신라의 청렴하고 훌륭한 가문 출신의 멋진 청년들을 선발하여 만든 조직인 화랑은 처음에는 군사적 목적이 아니라 젊은 귀족 청년들의 심신을 훈련시키기 위한 조직이었습니다. 화랑은 삼국시대(기원전 75년~서기 676년)에 들어와 신라 왕조의 전사가 되었으며 검술과 마상전투 훈련도 받았지만 특히 최고의 궁술로 유명했습니다.
- 정예 화랑 : 정예 화랑은 최고의 무기를 지원받았으며 불교 승려들에게 무술 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삼국시대의 경쟁국가들은 물론 중국과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신라(기원전 57년~서기 935년)를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화랑은 마침내 고구려를 물리치고 한반도에 통일신라의 시대를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서기 676년 중국 당 왕조를 축출하는 데에도 기여하였습니다.
- 풍월주 : 신라의 귀족사회에는 '골품제'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 제도는 결혼 대상자 선택, 집안 재정 규모, 왕위 계승에 이르기까지 신라 귀족 생활 전반을 규제하였습니다. 국선 화랑은 보통 '진골'이었습니다. 국선 화랑은 무기 사용과 무술 연마 외에도 불가사의한 적들로 부터 신라를 지켜줄 신적인 존재를 찾기 위해 산으로 순례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 신기전 부대 : 신기전(마법의 기계활
(...)알라의 요술봉?) 은 초기형 로켓입니다. 조선이 13세기에 중국으로부터 화약의 비법을 배운 직후 발명한 신기전은 어깨에 맬 수 있는 둥근 관 형태의 로켓입니다. 이런 로켓들은 대부분 정확성은 높지 않지만 발사하는 것 자체로 상당한 파급력을 가져왔습니다. - 중장갑 신기전 부대 : 중장갑 신기전은 휴대용 신기전의 업그레이드 버전입니다. 발사 거리도 길어지고 타격력도 높아졌지만 정확성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이와 유사한 무기들이 그러하듯이, 중장비 신기전은 주기적으로 사용되며 화려한 폭발을 선보이는 심리적인 전쟁무기입니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불화살이 두렵지 않은 병사는 없기 때문입니다[24].
- 독립군 의병 : 독립군 의병은 외세의 공격을 받을 위기의 시대에 자발적으로 생성된 병력입니다. '의병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가 거란과 몽골에 맞서 싸웠던 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의병대 투쟁의 역사는 20세기까지 이어졌습니다. In 1907 during the War of Liberation over 10.000 Righteous Riflemen marched on Seoul. They continued to fight guerilla actions until Japan was finally driven out of the country at the end of World War II.[25][26]
- 광복군 보병 :
북한군 게릴라처럼 생겼다(...) 한국 광복군은 1941년에 창설된 군대로, 초기에는 30명에 불과했으나 당시 한반도 북쪽에서 형성된 여러 게릴라 무장 단체들과 연합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광복군은 영국군과 함께 희대의 명장 무타구치 장군님을 따라 남동부 격전지로 군사를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종전 무렵에 광복군의 병력은 1,000명에 달했습니다.
4.8 로마 고유 유닛
- 레기온 : 추가바람
- 중장갑 레기온 : 중장갑 로마 레기온은 최고의 장비를 갖출 여력이 있는 로마 시민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아들은 투창(필룸)을 사용하였는데 적군의 목숨을 노리기보다 방패에 던져 박살내는데 효과적이었습니다.
- 카이사르 레기온 : 율리우스 시저는 자신과 함께 유럽과 아프리카 전역에서 싸웠던 제9레기온으로 유명하였습니다. 시저가 죽은 후, 옥타비아누스는 레기온을 이끌고 반란군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그 다음에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상대하였습니다. 이 정예부대는 영국에 주둔하면서 켈트족 전사 여왕 부디카의 출현에 맞서 싸우기도 했습니다. 로마 군단은 이후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요, 스코틀랜드 침략 중에 전멸하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이 부대의 소멸은 군사 역사상 가장 큰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 집정관의 근위병 : 집정관 친위대는 로마 황제의 개인 경호원으로, 로마에 주둔하며 황제의 통치 권력을 내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만든 이 군단은 로마의 외곽에 주둔했으나, 이후 티베리우스에 의해 시내로 들어와 주요 정치 권력을 형성하였습니다. 이들은 세계 최고의 군인들로 알려져 있으며 로마 제국기 동안 주로 반란군을 진압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 집정관의 수발총병(X) : 화승식 무기로 무장한 집정관의 친위대입니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는 화기가 발명되기 한참 전에 로마 제국이 멸망했지만, 만약 당시에 화기가 있었다면 집정관의 친위대에서는 틀림없이 효과적으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 이탈리아 산악 특수 부대 : 로마의 중무장 보병인 알피니는 험준한 알프스 산맥의 지행과 날씨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특수 훈련을 받은 전투 전문가들입니다. 자신들을 정통 로마 군대의 후예라고 자부하며 훈련해왔습니다. 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산악 부대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카이저예거에 맞서 싸웠는데 이 전투는 '눈과 얼음의 전쟁'으로 불리는 유명한 전투입니다.
- 왕립 이탈리아 산악 특수부대 : 1940년 6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탈리아 왕립 군대는 알프스에서 프랑스군을 상대로 첫 전투를 치렀습니다. 또한 이집트, 케냐, 수단과 같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영국군에 맞서기 위한 한정적인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동안 이탈리아 왕립 군대가 거둔 유일한 승리는 영국령 소말릴란드 점령뿐
(...)이었습니다.
- 누비아 궁수 : 누비아는 이집트와 수단의 국경을 가로지르는 나일강 지역이었습니다. 누비아인들은 당시 최고의 궁수였습니다. 당시 획기적인 엄지 반지를 사용해 손가락을 다치지 않고도 활 시위를 끝까지 당길 수 있어서 상당히 먼 거리까지 활을 쏠 수 있었습니다. 고대 역사 동안 누비아와 이집트는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누비아인과 이집트의 파라오가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서로 점령하기도 했습니다. 수 년 동안 누비아 용병들은 이집트 도시의 경비대와 경찰로 일했습니다. 이는 두 나라가 서로 얼마나 가까웠는지, 누비아 전사들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 히타이트족 전사 : 히타이트족은 기원전 1600년에서 1100년까지 지금의 터키와 비슷한 제국을 소아시아에 건설했던 고대 전사 부족입니다. 권력의 절정기에 히타이트족은 시리아를 관통하는 무역로를 장악하고 위대한 이집트와 경쟁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제국은 주변에서 힘을 기르던 아시리아에 의해 패망하였습니다.
- 아시리아 기마 돌격대 : 아시리아는 기원전 9세기에 이미 원거리 경기병을 파견하였습니다. 아시리아 궁수들은 단순하고 짧은 활을 사용하며, 말 등에 안장이나 등자 없이 담요 한 장만 걸치고 말을 탔습니다. 사거리는 짧았지만 무장이 얇았던 보병을 상대로는 상당한 효과를 보았습니다. 카르카르 전투(기원전 853년)에서 아시리아 왕 샬마네세르 3세는 왕 12명의 연합군(아랍과 이스라엘 포함)을 격파하고 적군 사상자는 25,000명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증거가 없고 샬마네세르 3세의 증언 뿐이라 역사학자들 대부분은 사상자 수를 크게 부풀린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리스 투창병 : '펠타스트'로 알려진 투창병은 그리스 군대의 척후병이었습니다. 이들은 적군을 방해하고, 아군의 이동 흔적을 감추며, 통제하기 어려운 그리스 팔랑크스의 측면을 보호했습니다. 펠타스트는 여러 개의 투창, 고리버들/가죽 방패, 비상용 근접전 무기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스 투창병은 장갑 보병보다 무장이 저렴하였고 고용주의 요구에 따라 페르시아인이나 동료 그리스 군인들을 상대로 싸우기도 하는 인기 있는 용병대였습니다.
- 페르시아 중장갑 기병 : 페르시아는 멀리서 활을 쏘는 것이 아니라 적군과 직접 맞서 싸우면서 활을 사용하는 '중장갑' 기병을 최초로 만든 민족입니다. 아케네메스 제국(기원전 550~330년)에서 선보인 페르시아 기병은 판금 갑옷을 입었고 말도 가죽을 둘렀습니다. 페르시아 군대는 나중에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두 세기 동안 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상당한 부분을 지배했었습니다.
- 훈족 전사 : 훈족은 아시아에서 서쪽으로 이동해 동유럽으로 유입된 유목 부족이었습니다. 훈족 전사는 땅 위에서와 말 위에서 활과 투창, 철검을 사용해 싸웠습니다. 이들은 동서유럽, 로마 제국, 그리스에서부터 갈리아, 이탈리아 북부까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수년 동안 대륙의 상당 부분을 정복하였습니다. 위대한 아틸라가 로마를 손에 넣지 못했던 유일한 이유는 굶주림 때문이었습니다. 훈족은 굶주림 때문에 철수해야 했습니다.
- 대초원 기마 돌격대 : 역사상 최고의 경기병 궁수는 칭기즈칸을 따라 아시아의 대부분과 유럽 및 북아프리카의 상당 부분을 정복한 대초원의 기마병일 것입니다. 궁수들의 말들도 기병들처럼 얇은 갑옷을 입었고, 안장과 등자가 있어 사격하기에 안정적이었습니다. 기마병의 궁술은 최고 수준이었고 현존하는 그 어떤 기마병도 이들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 전투 코끼리 : 전투 코끼리는 무자비한 힘을 가진 무기입니다. 이들의 임무는 적에게 돌격해 병사들을 짓밟고 말들을 공황 상태에 빠뜨리는 것이었습니다(말들은 흔히 코끼리를 보자마자 두려워합니다.). 코끼리들이 취약했던 대포와 기관총이 개발되기 전인 19세기까지 인도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전투에서 이 거대한 짐승을 처음 만난 유럽인은 알렉산더 대왕이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을 파괴하던 도중 전투 코끼리 부대와 마주쳤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이후 자신의 군대에 편성하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더가 인도로 진군하지 못한 이유는 수천 마리의 전투 코끼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 중국 수포 : 10세기 중국에서 처음 선보인 화창은 가장 최초로 발명된 화약 무기 중 하나입니다. 화창은 화약을 넣은 대나무 통과 창에 걸어놓은 발사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연속으로 발사하는 화창은 다수의 공격군이 수비병에게 근접하였을 때 상당히 효과가 있습니다. 기술이 발달하고 치명적인 발사체들이 개발되면서 화창은 화승총과 같이 긴 무기들로 변화하였습니다.
- 성전 기사 : 기독교 전사의 수도회인 성전기사단은 십자군 전쟁 동안 성지를 방문하는 순례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유럽의 재력있는 후원자를 많이 갖고 있던 기사단은 좋은 무기와 갑옷을 사용하였으며 세계 최고의 중장갑 기병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기습부대로 활약했던 기사단은 적진으로 돌격하고 보병대를 박살냈습니다. 몽기사르 전투에서 375명의 성전기사단과 2,000명의 보병은 10배가 넘는 위대한 살라딘의 군대를 격파했으며 살라딘은 겨우 목숨을 건져 탈출했습니다.
- 로닌 : 로닌은 지도자가 없는 사무라이 전사였습니다. 자신의 스승이 죽으면 사무라이들은 자살을 해야만 했습니다. 자살에 실패한 사무라이들은 사회적 지위와 명망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살아남기 위해 로닌들은 보수를 받고 싸우거나 노상 강도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로닌들이 상인들과 마차의 경호원이 되어 다른 로닌들에 맞서 자신의 보수를 지켜야 했습니다. 비록 사무라이처럼 무장하진 못했지만, 로닌 또한 검과 창을 사용하는 훌륭한 전사였습니다.
- 이탈리아 용병 돌격대 : 콘도티에리(이탈리아
뭐?! 용병)는 중세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 고용되어 투입된 용병입니다. 이 중 '화이트 컴퍼니'는 존 호크우드 경이 이끌었던 유명한 용병대였습니다. 이들은 30년 동안 이탈리아 주변에서 싸웠는데요, 가장 유명한 승리는 1387년 베로나와 파두아 사이의 카스타그나로 전투일 것입니다. 파두아를 위해 싸웠던 호크우드는 대담한 기병 돌격대를 이끌고 숲을 가로질러 베로나의 측면을 잔인하게 공격하였습니다. 그 날 호크우드의 전쟁 슬로건은 카르네(살코기)였다고 전해집니다. - 코끼리 사육사 : (위의 전투 코끼리 항목과 내용이 같다.)
- 테르시오 : 테르시오는 16세기에 처음 나타난 스페인 군대입니다. 창기병과 검사의 지원을 받는 화승총사(후에는 총사)로 구성된 이 연합 부대는 기병과 일반 병사를 모두 상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함께 효율적으로 일하고 다양한 무기를 편성해야 하는 복잡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테르시오의 병사들은 상당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17세기에 스페인 전군(보병 포함)은 모두 테르시오 부대로 조직되었습니다.
- 헤센 기병: 헤센은 독일의 지역입니다. 18세기 동안 많은 헤센 병사들이 지도자 프레드릭 2세에게 용병으로 고용되었으며 미국 독립혁명 중에는 영국 편에서 싸우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머스킷 총아 철갑옷을 무용지물로 만들었기 때문에 헤센 기병들은 가벼운 갑옷을 입은 '경기병'으로서 적진을 정찰하고 척후병과 포병대를 방해하며 혼돈에 빠진 보병대를 완전히 무찔렀습니다. 미국 독립혁명 이후 영국은 헤센 군대를 북아일랜드에서 사용하였는데, 역시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 구르카족 : 구르카는 네팔 소수 산악부족 출신의 전투용병입니다. 강력한 힌두 전사들로 전통 무기인 쿠크리를 사용하여 엄청난 사상자를 내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이 용맹함으로 19세기 서양 열강들의 침략으로부터 조국 네팔을 수호한 이래 영국, 인도, 싱가포르 등의 용병으로 현재까지 고용되어 오고 있습니다.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군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며 각종 전투에서 엄청난 기세를 보여 왔습니다.
- 베두인 돌격대: 베두인은 북아프리카와 아라비아 사막에 사는 유목민입니다. 전통적으로 낙타나 말을 타고 사막을 이동하며, 염소와 소를 목축하거나 대상이나 교역에 종사하거나 약탈을 생계수단으로 삼아왔습니다. 이들 또한 말 위에서 칼과 소총을 쉽게 다루는 최강의 기마 전사들입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한 모험가인 T. E. 로렌스는 1차 세계대전 중 베두인 부대를 이끌고 오스만 제국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 화염방사 전차 : '플램판처'는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전차입니다. 이 불지옥 전차는 공격범위가 매우 한정되어 있어 개방된 공간이나 차량에는 취약하지만, 요새나 건물, 좁은 공간에 있는 적군에게 화력이 미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전장에서 엄청난 심리적인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 외인부대원 : 프랑스 외인부대는 그 작전 기록이 1831년 알제 점령서부터 최근 아프가니스탄이나 말리에서 있었던 분쟁에까지 이르는 군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활동한 부대중 하나입니다. 프랑스 외인부대는 '보 제스트' 등의 유명한 소설이나 창작물에서 국적이나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외인부대원은 'Français par le sang versé' 즉 '피를 흘린 프랑스인'의 원칙에 따라 프랑스 국민이 될 수 있었습니다
- 야크트판처 :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여러 군대 가운데 독일군은 가장 발전된 기갑전 기술과 전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야크트판처는 구축 전차, 즉 적 전차를 격파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전차였습니다. 구축 전차는 회전 포탑을 없애
목고자 더 강력한 주포를 탑재 할 수 있었고, 매복에 적합한 낮은 차체 높이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발전된 장갑기술과 제공권 장악에 힘입은 독일군은 브로디나 쿠르스크 등 동부 전선에서 벌어진 큰 전차전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었습니다. 생긴 건 딱 헤처인데 야크트판처로 나와버렸다... 차라리 구축전차라고 내놓지
6 이벤트
6.1 -암살자의 표식-
오케하자마 전투로부터 2년이 지난 1562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마가와 가문의 잔당 소탕을 명령받았습니다. 이마가와 잔당들이 카미노고 성에서 항전하고 있어 성을 공략하기 어려워지자, 도쿠가와는 토모 스케사다가 이끄는 닌자 80명을 고용했습니다. 스케사다와 닌자들은 어둠을 틈타 성에 잠입했고, 탑에 불을 지른 후 성주를 비롯한 200명의 수비대를 암살했습니다. 군주님은 어떤 비장의 전략은[27] 갖고 계신가요?
- 닌자 : 오랜 세월 베일에 싸여 무수한 전설과 소문을 낳은 닌자는 봉건시대의 일본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정찰 대원이었으며, 스파이였고, 파괴 공작원이었으며, 잔인한 암살자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닌자는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충신, 핫토리 한조입니다.
6.2 -무역왕-
말리 제국은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서아프리카 지역의 무역 강국이었습니다. 먼 거리를 오가는 캐러밴 상인들이 말리 제국의 여러 도시를 중간 기점으로 이용했고 말리 제국은 금, 소금, 구리 무역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군주님의 도시는 제국 확장을 위한 충분한 무역품을 보유하고 계신가요?
- 코끼리 궁수 : 코끼리는 고대 전장에서 중장갑 탱크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잘 훈련된 전투 코끼리는 남동아시아와 브리튼 제도[28]에 이르기까지 많은 전장에서 활약했습니다. 현 시대의 한 역사가는 로마의 브리튼 침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시저에게는 전투 타워에 궁수와 투석병을 태운 거대한 전투 코끼리가 있었다. 이 미지의 괴수가 강에 발을 내딛자, 브리튼인들과 그들의 말은 달아나 버렸고, 로마 군대는 피를 보지 않고 강을 건널 수 있었다.'
6.3 -칸의 연단-
테무친은 몽골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방대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역사상 가장 광대했던 제국을 건립하였습니다. 그는 명석한 전술과 냉혹함, 적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으로 여러 몽골 부족을 하나의 대군으로 통일했습니다. 이들을 통치하면서 서서히 힘을 모은 테무친은 어린 나이에 많은 권력을 거머쥘 수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전투에서 잇달아 승리하여 적대 부족들과 화평 조약을 맺었고 1206년, 마침내 '칭기즈칸'의 칭호를 얻어 대몽골제국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칭기즈칸이 당신의 든든한 아군으로 참전합니다! (군주님의 다음 정복자는 어디이신가요?)
- 칭기즈칸 : 칭기즈칸(1162~1227년)은 유목 기마병을 이끌고 아시아와 동부 유럽을 너머 아프리카까지 정복[29]한 몽골 제국의 창건자입니다. 그는 평지 전투뿐만 아니라 공성전에서도 뛰어난 전술을 발휘했습니다. 그가 거느린 몽골군은 무자비했습니다. 항복하는 적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대신 자치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었지만, 계속해서 저항할 경우 도시를 파괴하고 국민들을 학살했습니다. 그가 사망할 무렵 몽골 제국의 크기는 이란에서 한국까지 이를 정도였습니다.
6.4 -약탈왕-
티무르는 14세기부터 15세기에 살았던 투르크 몽골계의 군사 지도자로, 칭기즈칸의 대제국을 재건하고자 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중앙 아시아, 파키스탄과 이라크에 걸쳐 정복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가 약탈한 전리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 티무르 제국의 수도인 사마르칸트로 전리품을 수송하는 데 코끼리 군대가 동원될 정도였습니다. 군주님은 얼마나 많은 전리품을 약탈할 수 있나요?
- 공성 코끼리 : 코끼리는 고대 전장에서 중장갑 전차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화약 시대인 16세기 후반에는 코끼리 등에 컬버린 화포와 회전식 진걸총을 장착하여 전장에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코끼리를 기계적인 역할에만 한정시켰고 19세기 무렵 공성 코끼리는 결국 전장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6.5 -위대한 사냥꾼-
미국 개척 시대는 유명한 사냥꾼이었던 다니엘 분과 같은 개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도 쇼니족이나 체로키족 등과 마찰을 빚었지만, 결국 미 원주민들의 인정을 받아내었습니다. 다니엘 분은 지금까지도 미국의 민중 영웅으로 여겨집니다. 군주님의 사냥 실력을 보여주세요!
- 개척자 : 대영제국을 떠나 대서양을 건넌 생존자들에게도, 초기 개척 시기의 삶은 힘겨웠습니다. 굶주림과 질병, 고향을 지키려는 원주민들의 습격으로 고통받았습니다. 그러나 강한 정착민들은 더 좋은 사냥과 무역 기회를 찾아 미대륙 안쪽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미국 특유의 개척 정신은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소설, <모히칸족의 최후>와 <길을 여는 사람>에도 묘사되어 있습니다.
6.6 -D-day-
1944년 6월 6일, 세계 2차 대전 중 연합군의 가장 유명한 D-day가 벌어졌습니다. 독일 나치 세력으로부터 유럽 본토를 되찾고자, 프랑스 노르망디에 16만 명 이상의 아군 부대들이 투입되었습니다. 역사 상 최대의 상륙 침공 작전이며 이 전투로 인해 서부 전선의 승리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여러분은 도미네이션즈에서 얼마나 많은 중요 전투에 참여 해 보셨나요?
- B-17 폭격기 : 보잉 사가 설계한 B-17기는 높은 고도에서 원거리 폭격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략 폭격기였습니다. 대공 기관총으로 무장한 이 폭격기는 '플라잉 포트리스', 즉 '하늘의 요새'라는 별명을 어디고 했습니다. B-17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전투기 중 하나로, 1938년부터 생산이 중단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총12,731기가 생산되었습니다.
6.7 -동맹 결성-
프랑스는 공고한 동맹 관계를 구축하기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18세기 후반, 미국 독립 혁명 때도 무기와 탄약, 군대를 독립군에 지원하여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마르퀴스 드 라파예트 제독[30]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미국 혁명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길드원에게 병력을 기부하고 공고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세요!
- 도약병 : 1803년, 나폴레옹 황제는 도약병이라는 이름의 보병 부대를 창설했습니다. 도약병은 원래 기병의 말에 함께 올라타 전장을 빠르게 이동하는 보병을 의미했으나, 이는 실제 전투에서 불가능한 이론이었습니다. 정예 척후 보병인 도약병 부대에는 최고의 명사수들이 배치되었습니다.
6.8 -과달카날 전투-
과달카날 전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일본 제국이 벌인 첫 대규모 전투입니다. 1942년 8월 7일, 연합군은 미국, 호주, 뉴질랜드 간의 보급로와 통신로를 차단하려는 일본을 저지하고자 과달카날 섬에 상륙했습니다. 연합군은 결국 일본군을 급습하여 제압했고, 태평양의 전략적 요충지를 탈환할 수 있었습니다. 군주님은 적을 압도할 만한 전력을 갖고 계신가요?
- 화염방사기 : 고전 시대, 그리스 해군 함대는 '그리스의 불'이라는 액체 화약을 펌프로 분사하는 형태의 화염방사기를 사용했습니다. 사람이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최초의 화염방사기가 발명된 때는 1차 세계대전 발발 전인 1901년경입니다. 이 때의 화염방사기는 인화성 기름과 압축 가스가 각각 들어있는 2개의 탱크와 점화용 장치가 달린 고무 튜브, 그리고 분사량을 조절하는 레버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 이르러 화염방사기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벙커와 같이 참호로 둘러싸인 지대에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6.9 -위대한 약탈품-
1532년 스페인의 콘키스타도르(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180명의 병사와 함께 잉카제국의 중심지인 페루로 향했습니다. 내분으로 권력을 잃은 잉카의 왕 아타우알파는 카하마르카에서 피사로와 접견하였습니다. 아타우알파의 군대는 대다수가 도시의 성벽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일부만 의식용 무기로 무장한 채 아타우알파를 수행하였습니다. 카하마르카의 대광장에서, 피사로는 잉카 제국의 카톨릭 개종, 그리고 스페인의 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칼 5세를 군주로 섬길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아타우알파가 거절하자 교섭의 장은 폭력의 장으로 변모하였고, 결국 힘없는 잉카의 왕은 스페인 병사들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아타우알파는 자신의 몸값으로 자신이 수감된 방을 금으로 채우고 옆의 작은 방들은 은으로 채울것을 약속하였습니다. 피사로는 이 제안을 수락하였고, 잉카는 금과 은으로 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하지만 피사로는 약속을 무시한 채 잉카의 왕을 사형시켰고, 결국 페루는 피사로의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군주님에게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철의 심장이 있습니까?
- 이벤트 보상이 자원뿐이라서 특수 유닛이 없으며, 따라서 유닛 설명도 없다.
6.10 -해적 약탈-
해적은 악명 높은 약탈자입니다. 1668년 7월 10일, 해적 모건 선장과 그의 선원들은 파나마의 포르토벨로 시를 침략했습니다. 포르토벨로는 페루로부터 스페인 금화를 수송하는 데 이용되던 교역항으로서, 산티아고와 산게로니모, 산펠리페 성으로 둘러싸여 있어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1년 넘도록 입항 예정된 교역선이 없었지만, 모건은 500척의 쾌속정에 해적을 가득 태우고 포르토벨로를 습격했습니다. 재빨리 산게로니모를 장악한 후 주요 인질을 인간 방패 삼아 산티아고로 진격하는 동안 다른 해적들은 사다리로 성벽을 올랐습니다. 결국 세 곳의 성을 점령했고 산펠리페 군대는 모건과의 교섭에 응했습니다. 그러자 모건은 세 곳의 요새 위에 영국 국기를 걸어 바다에서 대기 중이던 함대에 신호를 보냈습니다. 함대는 총공세를 펼쳤고, 모건은 몇 주간 도시를 점령하여 엄청난 금액의 몸값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군주님은 얼마나 많은 경제 건물을 약탈해 보셨나요?
- 해적 : 해적의 역사는 아주 깊으며, 그것은 상선의 등장 시기와 거의 비슷합니다. 1650년부터 해적들의 '황금기'가 10년 동안 지속되었고, 그 기간동안 해적들은 신세계의 바다에서 가장 큰 위협으로 군림하였습니다. 하인들과 농노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면서, 이들에게 해적의 길은 매력적인 삶으로 비춰졌습니다. 적어도 바다에는 가고 샆은 곳으로 마음껏 갈 수 있는 자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해적들은 투표제도로 우두머리를 선출했으며, 그것은 유럽의 군주제도와 상이한 초기 민주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바솔로뮤 로버츠, 에드워드 '검은 수염' 티치, 앤 보니, 메리 리드 등이 해적의 길에 그 이름을 남겼습니다.
6.11 -닌쟁호투-
후마 일파는 일본 호조 일족의 닌자들입니다. 혹독한 수련을 완료한 닌자들은 '란파', 혹은 '전장의 방해자들'이라 불렸습니다. 후마는 정보를 수집하고, 첩보활동을 펼치며, 적의 중요시설을 방화로 무력화시키는 역할을 도맡았습니다. 1580년, 호조 일족은 타케다 군의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후마 일족은 타케다 군의 야영지에 침투하였습니다. 신호에 따라, 그들은 기지에 불을 지르고, 보급품을 태우며, 마구간의 말들을 풀어주고 타케다군의 병사들을 암살하였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과 연막탄에 타케다 기지는 큰 혼란에 빠졌고,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지 못한 타케다군의 병사들을 서로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군주님은 적의 방어를 뚫고 상대의 기지를 함락 시킬 수 있으신가요?
- 시노비 : 시노비 또는 닌자는 근대 이전의 일본에서 영주가 고용한 스파이이자 암살자입니다. 이들의 고용주인 사무라이는 일반적으로 무사의 도를 중시했던 계급이었지만, 시노비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잠입, 독살, 변장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시노비들은 수백 년의 전통을 가진 전문 양성 기관에서 '인술'이라 불리는 다양한 특수 기술을 연마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쿠노이치'라는, 간첩 활동과 암살 임무를 맡던 여성 시노비도 있었습니다.
6.12 -아즈텍 종교의식-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 아즈텍 문명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현 멕시코의 중앙을 지배하였습니다. 아즈텍 종교는 신께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중요시 하였으며, 인간이야말로 최고의 제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즈텍의 신은 하나가 아니었으며, 신마다 다른 제물과 의식 절차가 필요하였습니다. 비를 부르기 위해, 틀랄록 신에게 아이들의 눈물을 제물로 바쳤던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수 많은 노예들과 전쟁의 포로들이 제물로 바쳐졌지만, 제물이 되는것은 아즈텍 사람들에겐 대단한 영광으로 여겨졌습니다. 군주님은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으신가요?
- 재규어 전사 : 힘과 용맹을 나타내는 재규어는 미대륙 발견 이전 메소아메리카 문명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재규어 가죽을 입은 재규어 전사는 군부 중심의 아즈텍 문명에서 가장 높은 계급을 대표했습니다. 당시 평민들의 신분 상승 수단 중 하나는 전투에서 적군을 생포해 뛰어난 무용을 떨치는 것으로, 잡힌 포로들은 대부분 신성한 종교의식의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이들은 천국으로 가는 사자의 역할이라 생각하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재규어 전사들은 나무와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칼과 깃털로 장식된 방패로 무장했는데, 여기에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6.13 -위대한 약탈품-[31]
페르시아의 왕자 키루스는 왕좌를 차지하기 위하여 1 만명의 그리스 용병들을 고용하였습니다. 키루스는 쿠낙사 전투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1 만명의 그리스 용병들은 전장에서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페르시아의 태수 티사페르네스는 화해의 만찬을 미끼로 용병들의 수장들을 사로잡아 처형하였습니다. 또 한번 갈 곳을 잃은 용병들은 새로운 수장들을 내세웠고 그들을 따라 그리스의 해양도시들이 위치한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새로운 수장들 중 한명은 역사가인 크세노폰이였스며, 그의 대표작 "아나비시스"에서는 용병들의 모험이 기록되어 있습니다.[32] 용병들은 눈보라, 적들의 공격, 고된 행진 등의 어려움을 이겨내야만 했습니다. 어느 한 산의 정상에 오르자마자, 용병들의 선봉대는 큰 아우성을 질렀습니다. 후방의 병사들은 처음에 적의 공격을 받는 줄 알았으나, 곧 선봉대가 "바다다, 바다야!"라고 외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행진이 거의 끝이 보이기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흑해의 해안가에 위치한 그리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를 탈 수 있었습니다. 군주님은 이 수 많은 용병들을 이끌었던 새로운 수장들 만큼 통솔력을 갖추고 계신가요?
- 이벤트 보상이 자원뿐이라서 특수 유닛이 없으며, 따라서 유닛 설명도 없다.
6.14 -작전명 허스키-
추가바람
7 영웅
- 알렉산더 :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323)은 20세에 아버지 필리포스에게서 마케도니아 왕국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리스를 제압한 후에 그는 소아시아, 북아프리카, 아시아를 거쳐 인도에까지 걸친 페르시아 정복 전쟁에 착수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의 팔랑크스를 이용해 적을 한 곳에 유인하고 뛰어난 '헤타이로이'를 이끌고 대담하게 측면 공격 전략을 쓰는 연합작전의 전문가였습니다. 비록 3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지만 그는 서양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 클레오파트라 : 클레오파트라(기원전 69~30)는 고대 이집트를 통치한 마지막 파라오였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일원인 클레오파트라는 알렉산더 대왕 아래 이집트를 정복한 그리스인의 계승자였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의 지도자 율리우스 시저와 동맹을 맺었고 시저의 아들을 낳아 유일한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시저가 죽은 다음 그녀는 마크 안토니우스와 동맹을 맺었고 그의 아이도 낳았습니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함께 시저의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와 맞섰지만 패하게 되었고 안토니우스는 자살을 하고 클레오파트라도 그 뒤를 따랐습니다.
- 잔 다르크 : '오를레앙의 소녀' 잔 다르크(1412~1431)는 프랑스의 통일과 구국을 상징하는 영웅입니다. 소작농의 딸로 태어난 잔은 영국군으로부터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아무런 군사 훈련을 받지 않은 잔은 발루아 왕가의 샤를 왕세자를 찾아가 자신이 프랑스군을 지휘해 포위된 오를레앙 시를 탈환하여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돕겠다며 설득했습니다. 영국군의 포위에서 벗어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9일이었습니다. 이 기적적인 승리는 프랑스 곳곳에 알려졌고, 프랑스군의 사기에 불을 붙여 마침내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부르고뉴군에게 붙잡혔고 마녀로 몰려 19살의 나이에 화형당했지만, 그로부터 25년 후 교황 칼릭스투스 3세가 그녀의 무죄를 선고했고 이후 그녀는 순교자이자 프랑스의 수호 성인이 되었습니다.
- 노부나가 : 오다 노부나가(1534~1582)는 뛰어난 일본의 장군으로, 일본 영토의 ⅓을 제패하였습니다. 그의 성공 비결은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결정적인 전투였던 나가시노 전투에서 노부나가의 화승총사는 일제사격으로 적의 기병대를 무너뜨렸습니다. 노부나가는 비록 자신의 부하에게 배신당하고 할복 자살을 해야 했지만 그의 후임자들인 히데요시[33]와 도쿠가와는 일본 통일을 완수했습니다.
- 나폴레옹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는 프랑스 포병대의 소위였습니다. 탁월한 정치력과 천재적인 군사력으로 프랑스를 지배하고 유럽을 거의 모두 정복했습니다. 프랑스 혁명 중 나폴레옹은 공화주의를 지지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와 이집트에서 프랑스 군대를 지휘한 다음 자신이 쿠데타를 꾸미고 혁명을 전복시킨 프랑스로 돌아왔습니다.이후 15년이 넘는 동안 나폴레옹은 유럽을 가로질러 진군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모든 연합 군대를 격파했습니다[34]. 하지만 결국 러시아의 눈보라에 패배한 후 워털루에서 영국과 프로이센 군대에 패했습니다.
기병총 쓰는 주제에 탱크보다 사거리가 길다
- 맥아더 : 미군 역사상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 장군보다 높은 명성을 떨친 장교는 드물며, 적에게는 그만큼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제1차 세계대전에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초반에 발발한 세 차례의 대규모 전쟁에 참여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선에서의 활약으로 가장 유명합니다. 그는 필리핀 방어 전장을 지휘했지만, 진주만 공습 이후 일본의 필리핀 침략을 저지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3년 후, 맥아더 장군은 "내가 돌아왔다."라는 명언과 함께 필리핀 레이테 섬에 상륙하게 됩니다. 전쟁 이후 맥아더 장군은 일본 재건을 감독했습니다. 평화주의와 혁신적 양성평등에 입각한 전후 헌법 역시 맥아더 장군 휘하에 이뤄진 일본 재건 시대의 산물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그는 UN군 총사령관으로 부임했으며, 인천상륙작전을 과감히 단행함으로써 적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결국은 명령 불복종[35]으로 해임되었으나, 맥아더 장군은 그의 마지막 미의회 연설에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갈 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혼자 전차를 타고 있다[36] 업데이트 이후로 처칠의 등장으로 전차 동지가 생겼다.
- 처칠 : 후대에 큰 업적을 남긴 윈스터 처칠은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자주 회자되는 지도자 중 한 명입니다. 군인이자, 작가이며, 정치인인 처칠은 약 60년간 대영 제국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1894년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쿠바, 인도, 노스웨스트프런티어(현재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접경 지역), 수단, 남아프리카, 그리고 1차 세계대전 때 서부 전선에서 종군했습니다. 1940년대 초, 영국은 브리튼 전투에서 독일의 무자비한 공습을 받게 되고 처칠은 불같은 연설과 글을 통해 결사항전 의지를 밝혔습니다. 그 중 1940년 6월 영국 하원에서 한 연설은 명연설로 꼽힙니다. "우리 모두 굳은 의지로 맡은 임무를 다하여 대영제국과 영연방이 천 년간 지속된다면, 후대 사람들은 '이때가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8 유니버시티 지도자
9 불가사의
9.1 청동기 시대 불가사의
- 아크로폴리스 : 그리스 도시 아테네 위 고원에 있는 아크로폴리스는 아름다움과 품격으로 유명한 고대 건물과 유적의 결합체였습니다. 아테네의 세력이 정점에 달했을 때 위대한 지도자 페리클레스의 지도 아래 만들어진 이 건축물은 도시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위한 신전과 함께 광장, 극장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은 아테네를 위한 파르테논 신전입니다. 오스만 병사들이 아테네를 점령해 파르테논 신전을 탄약 폐기장으로 사용할 때까지 수 천년 동안 대부분 온전하게 보존되었습니다. 1687년 파르테논은 베니스의 대포에 맞아 폐기된 탄약이 폭발하였고 내부 구조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지만 외부 기둥은 놀랍게도 남아있습니다.
- 공중정원 :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네부카드네자르 왕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전설에 따르면 자신의 아내인 메디아의 아미티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고 합니다. 아미티스는 바빌론의 평평한 사막 지형에서 살면서 고향의 푸른 산들을 애타게 그리워했고, 네부카드네자르는 공중정원을 만들어 그녀를 달래주었습니다. 당시 작가들에 따르면 정원은 놀라운 경관이었고 거대한 기둥 위에 여러 개의 테라스가 생생한 초록 식물과 나무들로 뒤덮여 있었다고 합니다. 바빌론은 강우량이 매우 낮은 건조한 사막에 있어, 끊임없이 유프라테스 강에서 물을 끌어와야 했고 노예들은 독창적인 양동이 사슬로 구조물의 꼭대기까지 옮겨야 했습니다. 이후 정원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2세기에 지진으로 파괴되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 스톤헨지 : 스톤헨지는 돌로 이루어진 거대한 원으로, 기원전 3000년에서 2000년 사이 영국에서 건설되었습니다(기자의 위대한 피라미드의 건설 시기와 동일). 돌은 그 기간동안 여러 번 재배치 되었는데 가장 큰 돌의 무게가 22톤일 정도로 엄청난 작업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중대한 종교적 의의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고고학자들은 거대한 돌들이 수백 개의 작은 기념물과 많은 고대 무덤들로 둘러싸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스톤헨지를 만든 사람은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아서 이 돌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천문학 도구? 망자를 기리는 기념물? 치유를 위한 장소? 아니면 그 당시 자주 출몰했다는 고대 외계인을 위한 착륙장?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 피라미드 : 기원전 2560년에 20년 이상 걸려 완공된 위대한 기자의 피라미드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며 상당한 가치를 가졌습니다. 위대한 피라미드는 225만개의 석회석 벽돌로 만들어졌는데, 벽돌 하나의 무게는 25톤에서 80톤에 이릅니다. 4대 왕조 파라오 쿠푸와 그의 아내를 위해 만들어진 무덤인 피라미드는 놀라운 수학적, 공학적 능력과 엄청난 노동력 위에 건설되었습니다.
9.2 고전 시대 불가사의
- 콜로세움 : 콜로세움은 로마의 중심에 서있는 거대한 돌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원형극장입니다. 서기 70년에 시작하여 10년 이상 건설한 콜로세움은 검투사의 전투, 동물 사냥, 연극, 처형 그리고 군중들이 좋아하는 다른 행사를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원형극장으로 70,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지루한' 중세 시대에 콜로세움은 주택으로 변형되었고 교회와 묘지가 경기장에 들어찼습니다. 그러던 중 1349년 끔찍한 지진으로 손상되었고, 대부분의 돌들은 로마의 다른 구획을 재건하기 위해 약탈당했습니다[37]. 하지만 그 잔해는 여전히 경외심을 불러일으킵니다.
- 병마용 : 추가바람
- 자금성 : 자금성은 중국 북경 중심에 위치하며 여러 종류의 궁전들과 지원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5세기에 지어졌고 500여년 동안 중국 통치자와 그 가족들의 궁전이 되어왔습니다. 해자와 성벽으로 둘러싸인 자금성은 725,000 평방미터를 둘러싸는 직사각형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자금성은 의례 행사를 위한 바깥뜰과 황제의 가족이 생활하고 제국을 운영하는 업무가 이루어지는 안뜰로 나뉘어졌습니다. 500년이 된 아름다운 건물들은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격동의 20세기를 보낸 중국에서 화재로 소실되지 않은 것이 거의 기적입니다. 자금성은 아마도 '천상의 상제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노트르담 : 프랑스 파리의 중심부에 있는 센 강의 섬에 지어진 노트르담 대성당은 로마 가톨릭 성당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12세기에 건설이 시작되어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어진 이 거대한 건축물은 혁신적인 플라잉 버트레스와 뛰어난 조각상,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합니다. 성난 위그노 교도의 공격, 분별없는 현대화의 시도, 프랑스 혁명 무신론자들에 의한 '이성예찬의 성전'으로의 일시적인 전환, 두 번의 세계대전에도 불구하고 이 성당은 프랑스의 정신과 징그러운 괴물 석상의 보호 아래 굳건히 버텨오고 있습니다.
9.3 화약 시대 불가사의
- 티칼 사원 : '재규어의 사원'으로도 알려져 있는 티칼 사원 I은 거대한 계단이 있는 피라미드로 과테말라에 있는 고대 마야 도시의 유적에 있습니다. 석회석으로 만들어졌고 높이가 약 46m인 이 사원은 야소 찬 카와이
결코 일본어가 아니니까 신경쓰지 말자...의 통치 기간(서기 682~743년) 동안 그의 무덤으로 사용되기 위해 건축되었습니다. 4세기에는 테오티와칸이 이 도시와 무덤을 정복하였고 10세기에 버려졌습니다. 이 유적지는 원주민 가이드가 유럽 탐험가들을 오래된 도시로 안내하면서 19세기에 다시 한 번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시간에 의해 풍화되고 국내외 약탈자들에 의해 유린되었지만, 티칼 사원은 위대한 마야 왕의 휴식지 이상으로 고대 바위투성이 위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베르사이유 : 베르사이유 궁전은 파리 근교에 있는 프랑스 왕궁 건물입니다. 궁전과 정원 건축은 1664년에 시작되어서 1710년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1789년 혁명 때까지 군주들이 대를 이어 이 건축물을 계속 개조했습니다. 혁명 이후 1837년 박물관으로 변신할 때까지 베르사이유는 한동안은 시시한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베르사이유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멋진 복도와 무도회장, 시선을 사로잡는 방들, 넓고 우아한 정원은 수 세기 동안 왕정주의나 공화주의에 상관없이 역시 '왕으로 사는건 최고다'라는 메시지를 모든 방문객들에게 경외심과 함께 전해줍니다.
- 타지마할 : 타지마할은 분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입니다. 이 건물은 황제 샤 자한이 14번째(!) 아이를 출산하다 사망한 세 번째 부인인 뭄타즈 마할을 기리기 위해 지었습니다. 1632년에 시작되었고 약 20년 뒤에 완공되었습니다. 8면의 본관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거대하고 우아한 아치와 깔끔한 반구형 지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건축물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각 코너에는 높은 뾰족탑이 있어 성자들이 신도들과 기도를 올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건물은 분수대, 연못, 가로수가 가득한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부인에 대한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기 위해 매년 2백만 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타지마할을 찾고 있습니다.
- 앙코르와트 : 12세기 캄보디아, 수르야바르만 2세의 통치 기간 중 만들어진 앙코르와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적인 기념물입니다. 본래는 성전으로 힌두의 신 비슈누에게 헌정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불교 성지로 전환되었습니다. 대부분 사암과 홍토(자연 벽돌)로 만들어진 이 건축물은 중요한 역사와 종교의 장면들과 함께 아름다운 수만 개의 신들이 얕게 새겨져 덮여있습니다. 특별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이 고대 건축물은 지금도 여전히 순례자들에게 경외감을 느끼게 합니다.
9.4 산업 시대 불가사의
10 싱글 플레이어 캠패인
10.1 비옥한 초승달 지대
이 지역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둘러싸고 멀리 지중해 동부 연안과 나일 강의 북부도 감싸고 있습니다. '문명의 요람'으로도 알려진 이 지역은 기원전 9000년에 유목 수렵 채집 민족이 정착 농민이 되는 변화를 목도하였고 이후 인류 문명의 시초를 함께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
- 기지 : 본거지입니다.
- 비옥한 초승달 지대 : 문명의 요람입니다.
- 아시리아 : 왕들이 텐트에 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 니네베 : 아시리아 여신인 이슈타르를 숭배하는 종교 중심지입니다.
- 유프라테스 강 상류 : 바바리안의 소굴입니다.
- 바빌로니아 : 함무라비가 율법서를 만든 곳입니다.
- 디얄라 : 반 유목족 바바리안입니다.
- 수메르 : 최초로 기술이 발전된 곳입니다.
- 티그리스 강 하류 : 바바리안의 거주지입니다.
- 우르크 : 세계 최대의 도시이자 길가메시의 수도입니다.
- 수사 : 여신 이난나의 숭배자들의 도시입니다.
우르의 위대한 지구라트 기지를 파괴하여 약탈해오게!
- 우르 : 부유한 도시이자 위대한 지구라트가 있는 곳입니다.
10.2 나일 통치 시대
나일 강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입니다. 동아프리카 사막을 관통하여 흐르는 나일 강은 위대한 문명의 흥망성쇠의 역사를 함께 해왔습니다. 이곳에 위대한 흔적을 하나 더 남기는 것이야말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까요? |
- 메드야 : 파라오 왕가를 수호하는 사막의 유목 정찰병인 누비아인들의 본거지입니다.
- 아부 : 람세스 사원의 본거지입니다.
- 베레니체 : 번영을 이룬 도시입니다.
- 아비도스 : 세티 1세의 사원의 본거지입니다.
- 테베 : 아문라 신을 숭배하는 도시입니다.
- 다클라 : 내부의 오아시스입니다.
- 사우 : 홍해의 항구도시입니다.
- 카르가 : 외부의 오아시스입니다.
- 아마르나 : 위대한 아톤 신전이 있습니다.
- 바하리야 : 광업과 농업이 공존하는 해안가의 오아시스입니다.
- 다만후르 : 호루스 신을 숭배하는 도시입니다.
- 아바리 : 북적이는 무역 중심지입니다.
아, 기자 피라미드 요새로군. 난공불락의 요새이지.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도시 국가 아테네와 그 동맹국 대 스파르타와 그 동맹국 간의 전쟁으로 26년 간 지속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아테네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시칠리아 침략전에서 군대를 잃은 후 스파르타가 승리를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
- 트라키아 : 예술에 대한 사랑과 뛰어난 군사적 기량으로 유명합니다.
- 트로이 : 유명한 트로이 목마에 의해 무너진 도시입니다.
- 밀레토스 : 그리스 전통 철학의 기원입니다.
- 로도스 섬 : 로도스 거상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 크레타 섬 : 신화속 미궁이 있는 신비로운 곳입니다.
- 코린트 : 폭군의 지배를 받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마케도니아 : 후일 알렉산더 대왕이 탄생하는 곳입니다.
- 에피루스 : 그리스 주변 국경 지역입니다.
- 테살리아 : 신화 속 켄타우로스의 고향입니다.
- 아이톨리아 : 외딴 곳에 위치한 산악지역입니다.
- 테르모필레 : 죽음의 신 하데스의 입구라고 알려진 지역입니다.
- 테베 : 그리스의 가장 중요한 도시국가로, 후일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파괴됩니다.
전능한 아크로폴리스가 자네의 승리를 막고 서있네!
10.4 세 개의 왕국
특히 번역오류가 많은 부분이므로 번역오류가 있는 부분은 각주를 통한 바른 해석을 바람.
한 왕조가 멸망한 후 중국은 위, 촉, 오의 삼국으로 분열하였습니다. 전쟁이 난무하던 삼국시대는 청 왕조[40]가 위나라를 정복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
- 난하이: 고대 진나라의 도시로, 어업이 번성했습니다.
- 구이린: 구이린은 "목서나무의 숲"이라는 뜻입니다.[41]
- 창사: 마왕두이 한묘의 본거지입니다.
- 우한: 황학루가 서기 223년 이곳에서 만들어졌습니다.
- 수나라의 수도: 수나라[42]의 수도 청두는 유비가 세우고 통치한 도시입니다.
- 우나라의 수도[43]: 삼국시대 오나라의 초대 황제인 손권이 수도 지안예[44]에서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 우시: 장강 하류에 위치한 해안도시입니다.
- 샹양: 적벽대전이 치러졌던 주변 도시입니다.
- 장안: 한 왕조의 황제 도시입니다.
- 위나라의 수도: 뤄양은 위대한 군주 조조의 고향입니다.
- 실크 로드: 중앙아시아를 관통하여 뻗어 있는 활기 넘치는 무역로입니다.
- 양두: 와룡 제갈량의 출생지입니다.
- 타이위안: 펀허에 위치한 병주의 수도입니다.
이 고대 궁전에는 무시무시한 코끼리 용병 축사가 두 개나 있네!별로 무시무시하진 않던데
10.5 바이킹 점령지
바이킹은 북유럽에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북미, 그린란드, 중동까지 도달하며 새로운 도시를 발견하고 정복하였습니다. |
- 니다로스: 노르웨이에서 처음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왕들의 수도인 니다로스는 중세 시대에 가장 많은 기독교 순례자들이 다녀가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 오크니: 바이킹이 스코틀랜드를 원정할 때 본부가 된 작은 섬입니다.
- 린디스판: 바이킹이 처음 침략한 장소 중 하나입니다.
- 더블린[45]: 노르만 족이 아일랜드를 침략할 때까지 바이킹이 설립하고 다스리던 도시입니다.
- 런던: 영국의 수도이자 유럽에서 가장 큰 교회가 있는 도시 중 하나입니다.
- 도레스타드: 프랑크 동전을 주조한 것으로 유명한 작은 식민지 입니다.
- 함부르크: 북방의 사도, 성 안스가르의 고향입니다.
- 쾰른: 중세 쾰른은 프랑크 제국 내의 아우스트라시아의 일부였습니다.
파리에 우리 군대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게나!
11 도서관
11.1 레벨 1
- 도예 : 최초의 토기는 수확한 곡물을 저장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 도로 : 로마 제국은 바닥에 쇄석을 깔아 군대 행군에 필요한 단단한 길을 만들었습니다.
- 병력 증강 : 칭기즈칸의 군대는 종종 기만 후퇴 전략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의 군대는 도망치는 척 하며 지원군이 매복해 있는 장소로 적군을 유인했습니다.
- 용병단 : 1360년 경, 존 호크우드 경이 지휘한 백색 군단은 가장 유명한 용병단 중 하나입니다.
- 탐사 : 15세기 초, 유럽 국가들이 다른 대륙으로의 탐험을 시작하면서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 타워 건축술 : 감시 타워는 시각적인 신호를 전달하는 소통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 기계 공학 : 인류 최초의 기계 장치에는 지렛대, 도르래, 쐐기와 나사가 있습니다.
- 철기 주조 : 다리를 건설하기 위해 무기와 그릇, 쇠붙이를 강에 던지는 방법이 흔히 사용되곤 했습니다.
11.2 레벨 2
- 이모작 : 찰스 타운센드는 18세기 초 영국에 4윤작법을 도입했습니다.
- 무역 : 실크 로드는 중국과 유럽을 연결했던 무역로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 성벽 : 사람들은 산이나 언덕 등의 자연적인 장소를 나무와 돌로 강화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적군을 격퇴하였습니다.
- 기사도 : 증세 시대의 기사도는 기사가 그의 동포와 신, 여성을 위하여 수행해야 할 의무를 규정했습니다.
11.3 레벨 3
- 열의 : 현대의 축복이라는 단어는 게르만 이교주의에서 유래하였습니다.
- 요새 : 화약 시대에는 방어 시 십자포화를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는 별 모양의 요새가 유행했습니다.
- 전술 : 팔랑크스 대형은 가장 유명한 보병 전술 중 하나입니다. 군사들은 적군을 방어하기 위해 방패와 함께 창으로 장벽을 만들었습니다.
- 탄도 : 땅굴은 성벽 아래로 터널을 파서 성벽을 무너뜨리는 전술에서 유래했습니다.
11.4 레벨 4
- 사냥개 : 사냥에 주안점을 둔 견종 교배가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 게릴라 : 게릴라는 적 전선의 후방에서 후송대를 습격하거나, 통신을 방해하거나, 군수품을 탈취하는 등의 작전을 수행하던 군대입니다.
- 공학 : 마름쇠의 출현은 기원전 331년의 가우가멜라 전투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 깃발 : 군기는 사령관의 위치를 알리고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군대의 행군 기준점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11.5 레벨 5
- 은행업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은행은 방카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로, 1472년에 설립되었습니다.
- 상비군 :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는 그의 저서인 국부론에서 상비군은 근대 사회로 이행하는 징후라고 말합니다.
- 리더십 : 손자는 중국의 유명한 장수였으며, 전술서인 손자병법의 저자이기도 했습니다.
- 성채 : 바스티유 감옥은 왕국의 성채로 간주되어 프랑스 혁명 이후 철거되었습니다.
11.6 레벨 6
- 시추 : 북미 최초의 상업 유정은 1858년 온타리오 주의 오일 스프링스에서 첫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 저축 : 사람들은 많은 돈을 가지고 다니는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 대체 수단을 생각해냈습니다. 수표를 만든 것입니다.
- 민족주의 : 국가주의가 대두되기 이전의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지방의 수장에게 충성했습니다.
- 중장갑 무기 : 존 브라우닝은 1917년에 미 원정 부대를 위해 M1918 브라우닝 자동 소총을 설계했습니다.
11.7 레벨 7
- 국제주의 : 1차 세계대전 종료 후, 파리평화회의의 결과로 국제연맹이 창설되었습니다.
- 협상 : 세계화가 진행되고 비즈니스 관습이 변화함에 따라 팀 협상을 채택하는 비즈니스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 항공 방어 : 고폭탄과 유산탄 모두 대공화기에 사용되었습니다.
- 항공 : 오빌 라이트와 윌버 라이트는 3개 축(상하 기울기, 좌우 기울기, 좌우 회전)이 조정 가능한 비행기를 발명했습니다. 이 비행기의 원리는 오늘날까지도 쓰입니다.
11.8 레벨 8
12 부두
추가바람
- ↑ 한글 버전에서 생략된 부분. 주석에 번역 추가 바람. 공식적으로 해석이 업데이트 되면 전체 내용 교체 바람.
- ↑ 후장식 소총이 개발되는 등 여러 혁신적인 발전 발전으로 발사속도가 눈에 띄게 증가하자, 참호에 틀어박힌 다수의 소총수들을 몰아내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의역했습니다. 의미상 잘못 된 부분이 있으면 고쳐주세요
- ↑ 사실 광속을 돌파하는 것은 현대 과학으로도 불가능하지만...
- ↑ 금나라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번역오류이다. 영어 Jin을 금으로 해석한 듯한데, 사실 진나라를 오역한 것이다.
- ↑ 4호 전차를 말하는 것 같다.
- ↑ 글로벌 시대 업데이트로 새로 추가된 유닛이다.
- ↑ 之. 쉽게 말해서 지그재그 형태.
- ↑ 왜 침공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는지는 의문. 제작자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사건이었을텐데...
- ↑ 모습은 티거 1이다
- ↑ 헬륨이 들어갈 곳에 수소를 넣었으니...
- ↑ 글로벌 시대 업데이트로 새로 추가된 유닛이다.
- ↑ 청일전쟁을 중일전쟁으로 혼동한 듯. 중일전쟁은 1937년 일어났고, 이때는 일본군의 전력 한계 때문에 전선이 고착되다 일제가 패망하면서 종결된다. 청이 조선의 지배권을 두고 일본과 싸웠던 청일전쟁과는 엄연히 다르다.
- ↑ 오류. 수저용왕포는 과거 중국에서 사용된 수뢰며, 본문에서 설명하는 무기는 화룡출수다.
- ↑ 깃발 시스템이란 대목은 서술상 팔기군을 의미하는듯 하다.
- ↑ 스텐으로 보이는 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 ↑ 이 시대에서는 경기병=후사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 ↑ 원문에서도 한단락 띄운다
- ↑ 이 과정에서 카르타고가 점령당했다.
- ↑ 이는 균등상속이 원칙이었던 로마의 영향권 밖에 있던 북동 독일 지역의 특성 때문이다. 게르만 족은 장자상속이었기 때문이다.
- ↑ 독일 제3제국의 패전 날짜는 1945년 5월이다. 그러므로 독일 국방군의 존속 기간도 1945년까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 ↑ 어째서 나치의 발악에 가까운 국민척탄병을 특수유닛으로 넣어났는지는 의문. 사실상 정규군 보다 뛰어났다고 보긴 어려울텐데... 국방군 -> 국민척탄병으로 이어지는 시대흐름을
그럼 그 다음은 몰락 아냐? 반영했을지도. 하긴, 그렇다고 대놓고 슈츠슈타펠 같은 놈들을 특수유닛으로 넣어놓는건 다른 의미로 곤란해진다. 차라리 팔슈름예거 같은거라도 넣던가......아마 이 게임의 제작사인 빅휴즈가 만든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의 현대시대 독일특수보병으로 등장하는 국민척탄병을 넣은거 같다 당연히 군복에 스와스티카는 묘사되지 않았다.
- ↑ 전차의 기종이라기 보단 단순히 ELAS가 운용했던 전차라는 의미로 넣어놓은 듯 하니 대체역사 표시를 하지 않았음
오죽 넣을게 없었으면
- ↑ 가고시미 현 남쪽에 있는 섬. 현재는 JAXA의 다네가시마 우주센터가 있다.
- ↑ 사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조총을 쓰고 해당 병과가 유명해진 건 효종(조선) 때다. 이 당시에 양성된 조선의 조총 부대는 흑룡강 일대에서 러시아와 충돌했던 청나라의 요청으로 만주에 파병돼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 후에도 조선은 천보총이라는 긴 총신의 수성용/저격용 조총을 생산했는데, 이 또한 화승총 테크트리에서 나온 물건 치고는 괜찮은 성능을 냈다고. 물론, 신기전이 양덕후들에게 어필되는 부분이 더 커서 그랬겠지만 고증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라면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차라리 국내 한정이라도 '훈련도감/어영청 사수'나 '천보총 사수/부대' 같은 식으로 유닛 이름을 로컬라이징했다면 역덕들이 환장했을 텐데...
- ↑ 위의 소총수와 같은 맥락으로 한국어 버전에서 누락된 부분. 업데이트 되면 완전히 대체 바람.
- ↑ 1907년 독립전쟁 동안, 10000명의 저항군들이 서울로 진격했다. 이들은 세계 2차대전이 끝나며 일본이 완전히 한국에서 물러날때 까지 게릴라 활동을 하며 싸움을 계속했다.
- ↑ 실제 게임 내 오타이다.
- ↑ 영국 본토와 아일랜드, 그 주변의 여러 섬들의 명칭이다.
- ↑ 사실 몽골제국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북아프리카 지역인 이집트를 공격했던건 사실이나 정복까지는 완수하지 못했다.
- ↑ 라파예트 후작(Marquis de La Fayette)이 정확한 번역이다.
- ↑ 저번에 이어 2차로 등장한 이벤트이나 역사적 사실 설명글이 바뀌었다.
- ↑ 실제로 오타가 이렇다. 아나비시스는 아나바시스로 바로잡는다.
- ↑ 임진왜란을 일으킨 그 사람 맞다.
- ↑ 영국 제외. 어째서인지 영국이 빠져있는데, 나폴레옹은 해전에서 영국에게 패한 후 대륙 봉쇄령으로 영국을 고립시켜 항복하게 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러시아가 밥줄이 끊겨 대륙 봉쇄령을 무시하자 나폴레옹이 러시아로 원정을 떠났다.
- ↑ 지속적으로 만주 폭격 및 원자폭탄 사용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해임되었다.
- ↑ 사실 다른 영웅도 레벨 21 이상이면 전차로 갈아탄다. 맥아더 영웅 활성화되는 시대가 늦어서 그렇지...
- ↑ 지금의 콜로세움의 모습은 이 때 생긴 것으로 생각된다.
- ↑ 프랑스 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 ↑ 이 불가사의의 이미지를 잘못 그린 게 아니라면 이 불가사의의 이름은 성 바실리 성당이 맞으나, 실제로 이미지를 잘못 그린 것 같다.
- ↑ 번역오류. 청나라는 맨나중에 등장하는 왕조이고, 사실은 진나라가 통일하였다. 이외에도 시나리오 내부에 번역오류가 몇개 더 있다.
- ↑ 구이린(계림)은 계수나무 '계'자와 수풀 '림'자를 쓴다.
- ↑ 촉나라(영어로 Shu)의 오역.
- ↑ 세부설명에서는 오나라(영어로 Wu)로 맞게 번역해놓고는 기지명칭을 우나라로 오역해놨다(...)
- ↑ 원래 건업의 현대식 발음 표기는 지엔예(Jianye)이다.
- ↑ 현재 아일랜드의 수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