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문서 : 야구팀 관련 정보, KBO 리그
- 관련 문서 : 롯데 자이언츠 2군, 롯데 자이언트, 치바 롯데 마린스, 대기업/대한민국
- 2016년 기록은 롯데 자이언츠/2016년으로.
- 현재 시즌 기록은 롯데 자이언츠/2016년/9월 이후로.
이 문서는 잦은 문서 훼손 및 수정 전쟁으로 인해 자동 인증된 사용자만 수정하도록 제한되었습니다.
?width=180 (참가구단) | |||
두산 베어스 | NC 다이노스 | 넥센 히어로즈 | LG 트윈스 |
KIA 타이거즈 | SK 와이번스 | 한화 이글스 | 롯데 자이언츠 |
과거에 참가했던 구단 보기 ➡ | |||
삼성 라이온즈 | kt wiz |
200px | 200px |
팀 엠블럼 | 팀 마스코트 누리[1] |
롯데 자이언츠 | |
Lotte Giants | |
창단 | 1975년 5월 6일[2] |
법인 설립 | 1982년 5월 10일 |
구단 법인명 | ㈜롯데 자이언츠 |
영문명칭 | Lotte Giants |
업종명 | 스포츠 클럽 운영업 |
상장유무 | 비상장기업 |
기업규모 | 대기업 |
연고지 | 부산광역시[3] |
구단 연고지 변천 | 부산광역시 (1982~) 경상남도 (1982~2011)[4] |
구단명 변천 | 롯데 자이언트 (1975~1981) 롯데 자이언츠 (1982~) |
구단주 | 신동빈[5] |
사장 | 이창원 |
단장 | 이윤원 |
감독 | 조원우 |
홈 구장 | 구덕 야구장(1982~1985) (13,000석) 사직 야구장(1986~) (28,500석) |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6](1982~2010) (13,000석) 울산 문수 야구장[7](2014~) (12,059석) | |
2군 구장 | 상동 야구장 |
워드 마크 | |
킷 스폰서 | 없음 [8] |
홈페이지 | > | width=20]] | width=20]] | > | > | > | > | > |
최종 우승 |
2회 |
1984, 1992[9] |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 ||||
1983-해태 타이거즈 | → | 롯데 자이언츠 | → | 1985-삼성 라이온즈 |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 ||||
1991-해태 타이거즈 | → | 롯데 자이언츠 | → | 1993-해태 타이거즈 |
롯데그룹 산하 스포츠단 | |||||||
파일:Attachment/lotte giants s.png | 롯데 자이언츠 (야구/KBO) | 40px | 치바 롯데 마린즈 (야구/NPB) | 롯데하이마트 골프단 | 롯데마트 골프단 |
1 상세
KBO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부산광역시. 홈구장은 사직 야구장. 현재 감독은 조원우. 팀을 상징하는 노래는 그 유명한 부산 갈매기. 팀의 상징색은 창단 초기부터 90년도 중반까지 파란색과 아이보리색, 90년도 중반부터 후반까지는 회색과 검정색을 사용하였으며 2000년도부터는 검정색이 중심이며 주황색을 부수적으로 사용한다.
별명은 꼴데. 롯데팬 왈 KBO의 주인공이라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치바 롯데 마린즈는 일본꼴데로 불린다. 그리고 2013년 8월 1일 KBO 최초 팀통산 2,000패와 2015년 5월 1일에는 KBO 최초 팀통산 2,100패의 대위업(...)을 달성하여 그 이미지의 정점을 찍었다. 꼴데는 정작 8888577 항목으로 연결된다 덕분에 자타공인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캐릭터'가 강한 팀. 꼴데로 별명이 끝나지 않고 성적에 따라 탑데부터 칠데까지 다양하다. 거기에 최근에는 '자이언츠'라는 팀명이 KBO리그, 메이저리그, 일본프로야구 3개 리그에서 모두 쓰고 있는 유이한 팀명[10]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반도의 자이언츠라는 별명도 생겼다.
2005년도 봄에 한창 잘 나가다 여름에 꼴아박은 적이 있으며 그 덕에 봄에만 잘한다고 봄데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실 봄성적이 좋지만은 않았지만 2005년 쇼크, 그리고 봄만 되면 숨어있던 롯데팬들이 뛰쳐나와 설레발을 치기 때문에 봄데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봄데 상대로는 뉴욕 양키스도 못 이긴다는 말이 있는데, 봄데보다 더 무서운게 '시범데'다. 2011년 시즌 시범경기에서도 3년 연속 1위를 하며 V9을 달성했다! 물론 시범경기 V9.
그러나 2012년 시범경기는 꼴찌(...) 아마도 지구온난화로 봄이 사라진 것 같다고(...) 슬프다 그후 시범쥐가 대두
1.1 마스코트
마스코트는 팀 이름에서 보듯 '거인'[13]이었지만 2004년 팀 분위기 쇄신차원과 일본의 자매 구단인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로고[14] 및 마스코트 통합으로 갈매기를 쓰고 있다. 근데 생김새가 갈매기보다는 오리에 가깝다고 '오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50px |
롯데 자이언츠의 마스코트인 누리(야구헬멧 쓴 갈매기), 아라(여자 갈매기), 피니(작은 갈매기). |
바다건너 팀 항목에서 비슷한 걸 본 것만 같은데
마스코트 이름은 누리 & 아라 & 피니.[15] 오해하는데 아빠-엄마-아들의 가족 관계가 아니다. 2006년부터 사용했는데 그래서 얘네들 생년월일이 모두 2006년이다. 이 마스코트가 처음 공개 되었을때 일본 구단과 같은 마스코트와 로고를 쓴다고 까는 안티도 있다. 일단 구단쪽에서는 일본의 마스코트들과 먼 친척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피니의 원정 유니폼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사용한 유니폼이고, 누리의 유니폼은 LOTTE가 안 붙어있는 2003년 부터 2008년까지 사용한 홈 유니폼.
- 최훈 카툰에서는 한화 이글스와 새 이미지가 겹치기 때문에 푸르딩딩한 거인으로 나온다. 그 거인이 처음 나왔을 때에는 비누라던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놀림도 받았다. 여담으로 당시 한화는 병아리나 닭으로 놀림받았고(...) 현재 치킨이라는
멸칭별명의 기원(또는 확산계기)이 된다.
파일:양아치누리by샤다라빠.png
참고로 샤다라빠가 누리를 양아치 버전으로 그림을 그린적이 있다(...)
1.2 인기
연고지는 부산광역시 일대[16]이며, 부산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인기와 지지를 받고 있다. 구도(球都) 부산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관중 동원 경쟁을 벌이는 두산과 LG가 타 팀 원정 팬의 덕을 보는데 비해, 롯데는 동원한 관중의 95% 이상이 롯데의 팬이니 말 다했다. 심지어 2009년 K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사직구장 경기가 있는 날이면 갑자기 부산광역시 지역 GDP가 급증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이 현상을 롯데 자이언츠 효과라고 명명하기까지 했다.
KBO 최고 인기팀으로서 KBO, K리그, KBL, e스포츠 등을 합쳐서 충성심 높은 열성팬들이 가장 많은 한국 내에서 최고 인기의 프로 스포츠팀이다. NC 다이노스가 생기기 전까지는 경남 지역 대부분에 롯데 팬들이 깔린 상황이었다. 부산 지역에서 롯데의 위상은 종교나 다름없다는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그리고 실제로 그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KNN 라디오에서 롯데 자이언츠 전경기 생중계를 한다. TBC라디오 에서도 삼성라이온즈 전경기를 중계한다. 그래도 부산과 비교는...이성득 해설위원의 나무위키 정보를 보면 알겠지만 이 중계가 정말 어떤 의미로 대단하다. 이성득 항목 참조바람. 촛불집회때 야구장에서 쏟아져나온 시민들이 거리에 주저앉아 부산 갈매기를 부르거나, 전경들에게 "마!!!"를 외쳤다는 얘기도 있다.
여기엔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2008년 촛불시위 기간 중 가장 위험했던 시기가 바로 롯데가 졌는데 마침 시위대가 그 주변을 지나가는 바람에 시민들이 합류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ㅎㄷㄷ. 게다가 심지어 롯데 경기가 있는 날에 촛불시위가 일어났을때, 전투경찰과 대치중이던 시민의 분위기가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달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맨 앞줄에서 라디오를 듣던 한 시민이 "아이 씨X!!"하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동대 중대장이 와서 "오늘 갱기 우째 됐십니꺼?"라고 하자 그 시민은 "졌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의욕을 잃은 시민들이 모두 귀가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반대로 롯데가 이겼을때 경찰과 시민이 하나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중대장과 시민의 대화는 들은 사람이 많아 사실이지만 직접적 해산사유는 아니다. 애초에 화끈하게 관중동원(?)을 할 줄 알았던 서울쪽과 달리 1987년 이후 대규모 시위가 없던 부산은 집회 내도록 시위대가 길거리를 왔다갔다만 하다가 제풀에 지쳐서 집에 간 게 크다.응원단장들이 전부 사직에 있으니...
2010년 월드컵중계를 해운대 바닷가에서 했는데, 당시 응원단장이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틀어주지 않겠다고 하자, 마!를 외치는 등 활용범위가 매우 다양하다...
부산에서 롯데를 욕하면 그대로 다진 육회꼴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카더라. 만일 부산 지역의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이 타지역 구단을 응원할 경우[17] 동급생들은 물론 교사들에게까지 갈굼받을 각오를 해야한다. 물론 요새는 져서 원정팬 유니폼을 입고 사직에 앉아 있다고 해서 바로 큰 일이 나지는 않는다. 1980~90년대에는 사직에서 원정팀 응원 자체를 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특히, 롯데 측 응원석에 상대팀 유니폼을 입고 앉아있으면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이는 마산구장도 마찬가지, 아니 마산이 더 심하면 더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단 1980년대에는 예외가 있었다. 상대가 해태 타이거즈일 경우 3루쪽 원정응원석은 해태 팬들이 대부분 점령하고 있었는데, 이때까지는 부산이 현재와는 다르게 공업도시의 모습이 상당했고, 그로 인해 시골에서 올라와 돈을 버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당시 부산의 인구 중 전라도 출신 비율이 상당한 편이었고, 그들의 단결력으로 홈팬들의 핍박 속에서도 세력과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해태와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롯데 팬들도 3루쪽 접근은 피하는 편이었는데, 롯데가 이기든 해태가 이기든 투기장이 열릴 확률이 상당했기 때문이다.[18][19] 이런 모습은 1990년대 초 신발산업의 사양화 기타 공업지구의 이전 등으로 부산이 관광상업도시로 변모하면서 현재와 같이 관중석 전체를 롯데팬들이 점령하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러나 지역 특성인지, 성적이 바닥을 칠 때와 잘 나갈 때의 편차가 대단히 심하다. 아래 잃어버린 세월 관련 내용을 읽다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묘하게도 부산 대우 로얄즈 시절 프로축구도 그랬다. 이상하게 롯데 관중수 하면 편차가 심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이 글을 보면 그건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롯데 역대 관중
2010년까지는 한 시즌 홈경기 중 6경기는 사직 야구장이 아닌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치렀었다. 그리고 그 경기 열리던 날이면 부산 시민들이 아예 창원까지 원정와서 롯데 응원했고, 경기 끝나고 나면 그날 마산시외터미널 출발 부산(사상, 노포동, 해운대)행 시외버스는 막차까지 가축수송 할 정도였었다(…). 물론 마산/창원에서 밤샘 음주를 하기도 했었고. 물론 마산아재나 부산아재나 전투종족 성향이 극도로 높아서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롯데의 상대팀을 감히 응원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러나 창원지역에 NC 다이노스가 새로 창설되면서, 경남권의 팬들은 상당수 NC 팬으로 갈아탔다. 두 지역 팬들의 성향상 치열한 경쟁이 될 것 같았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사고는 일어난 적이 없다. 2010년대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스포츠 뉴스가 아니라 9시 뉴스 범죄꼭지에 나올 것 같은 건 기분 탓이다.
2014년부터는 울산광역시 남구 옥동에 새로 만들어진 울산 문수 야구장을 롯데 자이언츠의 제 2홈구장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롯데, 2014년부터 울산구장 '제 2홈구장'으로
골수팬들은 대구 원정은 기본이며, KTX가 뚫리게 되어 경부선 라인 원정경기가 열리면 대전이나 서울도 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삼성 라이온즈 홈 구장은 대구역이 지척에 있으며, 대구 가는 기차는 부산역/구포역에 많이 있다. 버스 타면 동대구역 근처에 있는 고속터미널에 내리게 되기 때문에 거리가 좀 있다. 대전이나 서울행 기차는 부산역에서 상시 대기중. 특히 주말에는 정도가 더하다. 열차 증편이 상당히 많은데다가 주말 경기는 17시 시작이라서 잠실이나 목동에서 봐도 다 보고 여유있게 부산행 KTX를 탈 수 있으니까. 부산행 KTX 막차는 매일 밤 11시에 서울역에서 출발한다. 경기가 빨리 끝나거나 자신이 최대한 서두르면 평일 잠실/목동 원정도 가능하다. 다만 문학구장과 광주구장은 거리가 애매해서 주말에만 가는 경우가 많은 듯. 광주는 기차보다 고속버스가 더 빠르다.근데 호남고속선이 열렸다 자기 차가 있는 골수팬이나 창원으로 가는 것이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 본진인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에도 팬이 엄청나게 많다. 특히, 서울에서 경기를 하면 매번 잠실 야구장 절반을 채우는 위엄을 자랑하며 목동 야구장에서는 넥센팬보다 오히려 롯데팬이 많을 정도. 명실상부한 전국구 구단이다. 왕년의 KIA 타이거즈도 비슷했다. 서울에 지방 출신자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벌어지는 현상
게다가 몇몇 유명인사들도 롯데 팬이라고 대놓고 밝히기도 했다. 배구선수 한선수는 본인 트위터에 롯데 팬이라고 밝혔으며, 매주 토요일 로또 추첨방송을 진행한 적이 있는 SBS의 아나운서 박찬민은 "로또이 사람말고가 거액으로 당첨되면 당첨금 전액을 부산광역시청에 돔 야구장 건설비로 기부하고 싶다"라고 말할 정도로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한다고 한다.
엄청난 인기 덕분에, 2008년 7월 10일 국내 야구 구단중 최초로 디시인사이드에 단독 갤러리인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가 개설되었다. 롯데팬이 만들어달라고 한 것은 아니다. 야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저놈들 제발 내쫓아주세요...'라고 만들어진게 롯데갤러리. 물론 아직도 야갤의 지분 중 상당수는 롯데팬들이 가지고 있다. 단 5일만에 글수가 45,000개를 돌파했으며. 2012년 8월기준 약 76만개의 글이 올라와 있다.
만약에 롯데가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는 날[20]이라면, 우승한 날 밤은 부산시 기능이 완전히 마비될 가능성이 농후할 정도로, 롯데의 우승은 모든 부산 시민들의 염원이다(…). 특히, 만에 하나 사직야구장에서 롯데가 우승 컵을 거머쥐기라도 하면... 헬게이트 오픈 상상도자세히 보면 팀 린스컴이 있다 아마 천조국의 팀도 이럴듯...시카고 컵스 39년만에 우승처럼...시카고 컵스나 롯데나 우승하면 이렇게 될 게 분명하다. 광고긴 하지만...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롯데 자이언츠의 부산 지역 경제에 미친 파급 효과는 2,313억원에 달한다고 하며, 이는 같은 해 한국프로농구 전체가 전국에 미친 경제적 파급 효과인 1,970억 원을 뛰어넘는 수치다.##
1.3 막장 프런트
승부조작과 한감두[21]마저 있었다면 야구판 망국생명[22] 대신 CCTV가 있다
한 단체가 FC 바르셀로나를 모티브로 한 "부산 자이언츠"를 표방하며, 롯데 자이언츠를 인수하려 하는 이유. 그러나 하단의 설명과 각종 관련 기사에도 나오듯이 이 단체도 문제가 상당히 많다.
그러나 롯데의 가장 큰 마이너스 요인이 있으니, 구단 외부적으로는 꼴리건, 구단 내적으로는 바로 KBO 최악 수준의 막장 프런트. 팬들은 다른 팬들과 싸우는 횟수보다 프런트와 싸우는 횟수가 더 많다고 할 정도로 롯데 프런트의 막장력은 알아주는 편이다.
비밀번호 8888577 찍던 시절에는 KBO 총재 박용오로부터 "관중이 찾지 않는데도 경기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일부 구단이 바로 프로야구 부흥의 걸림돌이다. 내년 시즌부터 수준 이하의 경기 내용으로 관중 동원력을 상실한 프로야구단의 경우 구단주 총회의 의견을 모아 강제 퇴출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라는 야구판 전무후무한 비공식 경고를 받았을 정도로 바닥 Of 바닥 운영 실력을 보여주었다. 기사 나중에는 9,10번째 구단 창단을 앞장서서 반대하는 등의 사건으로 몇십 년이 지났어도 그닥 이미지는 나아진 게 없다. 그런데 이게 롯데 프런트의 이미지때문에 '밥통 줄어들까봐 그러는거 아냐?'라고 마냥 까대는 타팬들이 많은데, 장병수 사장의 명분을 들어보면 맞는 말도 상당히 있다. 설명한 대로 롯데 프런트라서 안 믿는 것일뿐 결국 NC는 창단된지 1년도 안된 2012년 1월경 신구장 건설을 놓고 대립하는 정치인들의 고래싸움에 골머리를 썩혀야 했다.[23][24]
그러나 최근 NC에서 일어난 여러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장병수가 재평가 받는다고 하지만 롯데라고 그닥 나은 건 없다는 게 문제.
구단 최고의 레전드 최동원을 푸대접한 것, 故 임수혁 선수가 쓰러졌을때도 '재판까지 가서' 등 떠밀리듯 보상금을 지급한 것, 2010년 시즌 '7관왕 타자' 이대호에게 기어이 7,000만원의 의견차이로 연봉조정신청까지 간 사건 등 선수 대우면에서는 당연 말할 것도 없다. 연봉 문제로 선수들과 대립하는 것은 거의 연례 행사 수준. 이런 프런트에게 매년 협상에서 승리를 거둔 김주찬에게 경의를... 2008년 야구판 황금기 이전에는 시설이나 환경면에서도 덜 떨어진 수준으로 방치, 임재철은 한화를 떠나면서 '롯데보다 X같은 곳은 처음 봤다.'라는 말을 남겼다. 당시 한화는 얼마나 안좋았길래 그리고 임재철은 2015년부터 다시 X 같은 감독의 부탁으로 X같은 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X같은 성적을 남겼다
야구팬들은 '롯데라는 기업 자체도 쓰레기인데 야구단도 그에 지지 않는다.'며 마구마구 까고 있는 실정.
여담으로 지바 롯데 마린스도 프런트가 최악인 구단중 하나인데 지바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나루세 요시히사가 2014년 시즌 종료후 FA 계약조건으로 "구단의 개혁"을 뽑기도 했다.그리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했다.
1.3.1 2012년 이후의 성과 : 투자 증가와 스카우팅 성공 사례
2012년에는 프런트가 완전히 달라졌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시즌 전에는 이승호, 정대현 등 외부수혈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20년 동안 우승 못하면 프로구단으로의 존재 이유가 없다.' 등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결국 해체하게 됐... 시즌 후에는 김주찬, 홍성흔의 FA 계약에서 섭섭치 않는 대우를 약속하여 결과적으로 두 명다 놓쳤음에도 오히려 팬들에게 할만큼 했다며 칭찬을 받았고, 보상선수를 다각도로 분석하여 두 구단의 뒷통수를 쌔려버리는 신의 한 수를 세번이나 보여주며 '이게 정말 롯데 프런트가 맞냐?'며 야구팬들을 감탄시켰다. 그리고 양승호가 입시비리로 감옥에 가면서 이것 역시 신의 한수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이건 그냥 얻어 걸린 거다(...).
이 모든 것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장병수 대표가 2010년 부임하면서 구단의 우승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앞서 말한 '존재의미' 드립을 포함해 '20년동안 우승 못하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등의 직설적인 말들이 그 증거이다. 그런데 결국 20년 채웠다
결국 2012년 12월, 프런트진은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로 부터 감사와 격려의 의미가 담긴 떡 조공까지 받는 초유의 사태 일이 일어났다. 중간에 보이는 모 갤러가 쓴 멘트처럼 보내는 쪽도 받는 쪽도 감개가 무량했을듯...하지만 김주찬, 홍성흔 등 스타급 선수가 동시다발적으로 나가버리자 관객수가 급감하게 되었고, 또한 김시진 감독의 삽질, 돈독 오른 프런트의 모습들에 2013년 시즌 들어서 이런 반응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때까지 병신짓으로 선수들 못잡는다고 까이던 롯데가 다시 한 번 달라졌다. 강민호를 심정수의 60억을 아득히 뛰어넘는 75억+α[25]라는 KBO 역대 최고 금액으로 강민호를 팀에 눌러 앉힌 것. 롯데팬들은 막장 꼴런트 강민호 몸값이 카더라로 80이라는 추측이 나돌던 시절 그냥 그 돈 2군에 써서 장성우, 용덕한을 키우자는 입장과 그래도 강민호인데 잡아야 하지 않겠냐며 싸우던 롯데팬들도 강민호를 잡자마자 꼴렐루야 한마음으로 롯데에게 감사인사를 남겼다. 만일 여기서 FA라도 잡는다면 다시 갱생했다며 용서받을 분위기. 롯데팬들은 내심 정근우가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상황에서 SK와 정근우의 계약 난항 소식이 전해질때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카더라 그런데 정근우는 한화로 가버렸다 그래서 까이긴 까였으나...
여기에 강영식마저 우선협상 마지막날에 4년 17억에 계약을 완료했으며 유먼, 옥스프링마저 재계약 성공, 또한 FA로 풀린 최준석을 34억원으로 영입함으로써 7년 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용병타자 히메네스도 영입하였다. 꼴빠 롯데팬들은 일제히 "우리 꼴런트가 달라졌어요"를 외치고 있다. 알고보니 스토브리그에서만 제정신이라 카더라
이후 연봉계약에 난항을 겪는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또 다시 이대호 연봉조정사건이 재현되는듯 했으나 손아섭에게 첫 협상자리에서 1억 9천만원을 인상한 연봉 4억을 제시, 손아섭이 수용했다는 기사가 나오며 다시한번 칭찬받는 중. 배스트 댓글이 월드콘 많이 먹고 있다.다 이 와중에 댓글은 자일리톨을 시작으로 롯데호텔, 롯데아파트까지 나오고 있다
최하진 사장 취임 이후 적극적인 투자 외에도 다면적으로 야구단에 신경쓰는 모습들이 나오고 있다.
2014년 1월 7일 기사에 따르면, 명예의 전당을 만든다고 한다.
2014년 1월 20일, 상동구장 증축공사를 완료하여 숙소 수용인원을 늘리고 편의시설을 확충하였다.
사도스키가 MLB 구단을 상대로 공개 테스트를 치루고 싶었는데 치룰 장소가 여의치 않자 롯데에서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 불펜 피칭장을 대여해줬다고 한다. 기사
2014년 6월 17일, 현역 은퇴를 선언한 조성환을 코치로 육성하면서 레전드 선수들에 대한 대우를 확실하게 보강하겠다고 한다.
다만 1차지명 및 고교 스카우트 픽의 경우에는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1.3.2 프런트의 현장 개입과 철밥통 코치 문제
2012년 양승호 경질후 옐로우 카드 - 롯데 높은분들…'단디해라, 쫌!!'
2000년대 초반의 문제가 투자 부족과 관심 결여였다면, 2008년 이후에는 프런트의 지나친 현장 개입으로 인한 선수단 및 코치진의 분열이 나타나고 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직접 데려왔을 때는 이런 논란이 없었으나 2009년부터 구단주 대행체제로 다시 회귀하면서 이런저런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고, 양승호 감독 부임 당시 권두조 수석코치를 프런트에서 꽂으면서 불거졌다. 권두조 코치가 양승호 감독보다 나이도 많고 야구관도 다르면서 서로 충돌하는 문제가 생겼다.
이후 김시진 감독이 권영호 영남대학교 감독을 수석코치로 발탁하자 권두조 수석코치를 2군 감독으로 보직 이동했다. 그러나 한 시즌 만에 다시 권영호 1군 수석코치와 보직을 맞바꾸어 다시 1군 수석코치로 돌아왔고, 권영호 수석코치를 2군 감독으로 내린 뒤 1주일만에 경질(…)하는 막장 운영을 보여줬다. 이것은 김시진 감독에 대한 경고 차원이었다는 것이 중론.= #
이후 2014년 5월 27일 항명사태가 일어나 권두조 코치가 사임하였다. 여기서 이후 보도에 따르면 권두조 코치가 프런트의 입장을 들먹이면서 감독과 선수단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했다고 하며,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사임한 코치가 이후 스카우팅 팀으로 이동하는 회전문 인사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루이스 히메네스의 대체용병을 찾는 일이 꼬여버리는 등 프런트에서 특정 코치진을 두둔하는 문제는 상당했다. 상세한 부분은 권두조 항목 참조.
이후 김시진 감독을 해임하려 했으나 최하진 사장의 의중을 무시하고 프런트에서 감독경질을 단행하려다 사장과의 충돌로 무마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김시진 사퇴미수사건
이 일로 최하진 사장과 배재후 단장과 이문한 부장을 축으로 한 프런트의 마찰, 최소한 소통부재가 표면화되었다. 팬들은 김시진 감독 경질 소문에 호응하는 분위기였으나, 이후 공필성 감독대행 체제로 가려고 했다는 것에 경악했다.
결국 시즌이 끝나고 김시진 감독이 물러난 이후 후임 감독을 두고 프런트 내부에서 충돌이 있은 뒤, 선수단과 코치진, 프런트 간의 심각한 갈등의 골이 표면화되었고, 봉합되기는커녕 너 고소까지 나오는 등,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프런트는 이 갈등을 해결할 생각도 없이 이종운 감독을 내정함으로써 1인 시위에 나선 팬들의 분노까지 더 가중시키고 있다.
끝내 이런 기사도 나왔다. 비교체험 극과 극
파일:Attachment/롯데 자이언츠/그거해봐그거.png
있잖아 롯데야 그거 해봐 그거 그리고 이 짤방은 옛말이 되었다.
해당 기사가 나온후 박동희가 대놓고 저격기사를 내놓았다. 충격과 공포의 롯데 CCTV 불법 사찰 이것이 사실이라면 범법행위를 구단 고위부가 지시를 한 셈이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 항목 참조. 이 사건으로 인해 롯데 자이언츠 프런트 인사들 중 배재후 前 롯데 자이언츠 단장, CCTV 사찰을 지시한 최하진 前 롯데 자이언츠 사장은 사임을 표명했다.
2015년 8월 31일, CCTV사태 이후로 남아있던 프런트 인사들은 신동주(기업인) 라인으로 분류되었던 신동인 前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대행이 롯데그룹의 '형제의 난' 사태에 사임하면서 결국 모두 프런트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롯데는 이후 차기 구단주 대행을 배정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1.3.3 우리 프런트가 달라졌어요...?
2015년 롯데 자이언츠의 프런트가 물갈이가 된후 새로운 프런트들이 훌륭히 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감독은... 심지어 롯데 팬들이 꼴런트를 찬양할정도.
1.4 홈 구장
홈으로 쓰는 사직 야구장은 3만석 규모 이 정도는 되야지 자리없으면 꼴빠들 문부수고 들어오는데[28]로 되어 있으며, 펜스 높이가 국내 모든 야구장 중 제일 높다. 담장 높이는 4.8m이고 철망에서 노란 선까지 길이가 1.5m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홈런왕 이승엽조차도 사직구장에서 친 홈런은 그리 많지 않았을 정도. 통산 324홈런 중 18개인데, 대구구장(193개)의 기록을 제외하면 잠실(30개), 광주(23개)에 이어 대전구장과 함께 세번째로 홈런을 많이 친 구장이며, 거기다 잠실은 원정경기 횟수가 2배로 많으므로 사실상 두번째이다. 이승엽의 홈런은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보다는 큰 포물선을 그리는 타구가 많기 때문에 펜스 높이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승엽 전성기때 꼴데 투수들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겠지.
오죽하면 외야담장이 높은 탓에 초반에는 담장에 장타성 타구를 맞아 다시 튕겨나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해 외야수가 펜스에 맞는 공을 미리 잡지 못하면 3루타를 내주는 사태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다행히 이를 간단히 해결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타구가 펜스에 맞을 곳 근처에 미리 대기해 있다가 펜스에 맞고 튕겨나오는 공을 그냥 잡아서 송구하는 방법'이 있어서 이 방법을 쓰면 2루타부터는 견제가 가능할 정도로 전략이 바뀌었다.
다만 구장 크기 자체는 좌우측 펜스까지 95m, 센터 펜스까지는 118m로 비교적 작은 편이다. 보조 홈으로 썼던 창원마산구장은 2만석으로 대한민국에서 4번째로 큰 구장이며 펜스 높이는 2M.
2군 경기장으로 구덕 야구장을 주로 썼다가, 2007년 말에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에 금송아지250억원을 들여 상동 야구장을 만들어, 2008년부터 2군 경기장으로 쓰고 있다. 김해 버스 상동공영2를 타면 구장 앞까지 갈 수 있다.
한편 부산역 인근의 부산 북항 재개발 계획에 야구장이 포함되면서 모기업인 롯데그룹과 부산시와의 협약을 야구장 신축 계획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어진다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AT&T 파크와 비슷한 해안가 옆 야구장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1.5 팀 컬러
1.5.1 소총부대 vs 거포부대
원년부터 롯데는 타선은 약한 소총야구에 투수왕국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1992년 우승 당시에도 타율 3할이 넘는 타자가 6명이나 됐지만 거포가 없어 소총부대의 이미지가 더욱 강해졌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잠실 다음으로 홈런이 안나오는 사직구장 특성도 여기에 일조했다. 그러나 비밀번호를 찍고 그 분이 오시면서 2008년 시즌 이대호의 부진이 있었지만 조성환, 카림 가르시아, 강민호의 강타선과 손민한이란 에이스를 내세워 포스트시즌에 진출, 2009년 시즌 이후에는 이대호, 홍성흔, 카림 가르시아의 존재로 인해 8개 구단 최강의 거포군단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그 위와 아래에 위치하는 조성환과 강민호도 언제든 홈런을 쳐낼 수 있는 강타자. 이 막강한 타선은 2010년 이후로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 황금기에도 뚜렷한 약점이 있었으니, 너무 정공법적인 방법만 구사한다는 것. 자잘한 작전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 팀 싸인도 못 알아 보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선구안 능력은 키우지 않았는지 팀 볼넷수는 4년 연속 7, 8위를 찍었다. 이 때문에 가을야구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셨다.
2011년엔 제리 로이스터가 계약 만료되고 양승호가 왔는데,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 정말 안 되는팀의 모범답안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러나 장원준, 송승준의 선전과 뜻밖에 율판왕 임천사[29] 랜디영식의 대선전으로 2위까지 진입. 허나 플레이오프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9회말 6:6 1아웃 만루 병살... 손아섭 개객기야
2012년엔 이대호의 일본 진출로 타선의 무게감은 줄었지만, 기존 선수들의 분발과 신인들과 만년 백업 선수들의 각성 그리고 양승호 감독의 끊임없는 성장 등으로 여전히 강팀 자리를 유지하였다. 홈런은 줄었지만 강력한 불방망이 타선은 여전하며, 약하다고 평가되던 계투진은 필승불펜 수혈과 기존 불펜투수들의 분투로 한층 더 탄탄해졌다. 전반기에는 필승불펜이 부상이나 부진으로 골골하며 고생을 했지만, 후반기 이들 모두 복귀. 하지만 뒷심 부족으로 포스트시즌에서 SK에게 2:3으로 패하고 말았다.
2012년 시즌 이후 홍성흔과 김주찬이 FA로 팀에서 나가며 타선의 무게감이 더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팀컬러 개편이 불가피해졌다. 대학 감독 시절 저지른 비리가 드러나며 불명예를 떠안고 퇴진된[30] 양승호에 이어 김시진 감독이 부임, 과거의 투수왕국의 팀컬러가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팬들의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리고 2013년 시범경기에서 팀 방어율 1위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안정된 마운드와는 달리 과거의 롸끈하고 씐났던 빠따는 시범경기동안 5위의 팀 타율[31]을 기록하였다[32] 2012년에 이어서 2년연속 시범경기 꼴찌. 이러다 시범경기로 8888577찍는 거 아닌가
1.5.2 호타준족과의 악연?
이렇게 홈런을 치는 타자는 많았지만 막상 도루 능력에 있어서는 의문부호가 붙은 타자들도 많았다. 이대호, 홍성흔이야 말이 필요없고(...)...2015년 현재의 최준석도 굳이 말이 필요없을 지경. 덕분에, 30-30 클럽은 고사하고 20-20 클럽 가입자도 2015년 짐 아두치 이전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김응국이나 전준우 등이 20-20의 문을 많이 두드리긴 했지만 홈런이나 도루가 꼭 조금씩 모자라서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2016년 황재균이 팀내 국내선수최초로 20-20을 달성하였다.
1.5.3 최강의 포수 왕국. 아니 왕국을 넘어선 제국
흔히들 포수왕국 하면 두산 베어스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롯데도 알게 모르게 양질의 포수를 대거 배출했다. 심재원 - 한문연부터 시작해서 92년 우승에 일익을 담당한 김선일, 95 플레이오프의 주역이었던 강성우, 마림포의 한 축이던 故 임수혁, 흔치 않던 스위치 히터 포수 최기문두산출신인데, 그리고 2010년대 KBO 대표 포수 강민호까지...오히려 롯데에서 주전이 되지 못해 타 팀으로 건너간 포수도 제법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제일 최근인 2015년 5월에 트레이드된 장성우.
90년대에는 김선일-강성우-임수혁의 트로이카를 구성해 타격이 강한 임수혁을 지명타자로 자주 활용할 정도로 포수층이 두터웠고, 김선일 은퇴 후에는 이 자리를 최기문이 채워줘 최기문-강성우-임수혁 트로이카가 99년 플레이오프의 기적을 만들어내는데 공헌했다. 이후 임수혁이 부득이하게 이탈하고 강성우도 트레이드되어 떠나 한동안 최기문에게 쏠린 시기가 있었으나 이 때 최기문은 포수로서 3할 타율을 기록할 정도로 최전성기. 이후 강민호가 일약 주전 포수로 발돋움해 강민호-최기문 체제가 2000년대 중반에 만들어졌고 여기에 장성우까지 가세해 2008년부터 강민호-최기문-장성우 트로이카가 또다시 결성되었다. 최기문 은퇴 후에는 용덕한이 이 자리를 채워줘 강민호-용덕한-장성우의 새로운 트로이카가 또 결성. 특히 용덕한의 존재 때문에 장성우를 안심하고 군복무를 보낼 수 있었다. 쓸만한 포수가 없어 쩔쩔매던 몇몇 팀 팬들 입장에선 허탈할 정도로 포수 걱정은 안해도 됐던 팀.
백업 포수들도 상당히 쟁쟁하고, 그 백업 포수들의 질도 우수하다.
장성우, 용덕한 역시 두산 출신...이라는 한방과 무지막지한 수비력의 포수 둘을 필두로 김준태, 김사훈, 안중열 등 공수 중 한 분야 이상은 확실하고 잠재성도 뛰어난 포수들이 계속 배출되었고. 포수난에 시달린 적이 없는 거의 유이한 구단이다.[33]
1.5.4 올스타전 최강팀
유독 KBO 올스타전과 인연이 깊다. 부산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팀의 인기가 많은 탓에 베스트 포지션을 뽑는 팬 투표에서 전 포지션을 석권한 적도 있다. 뽑히기만 잘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뽑혀 가면 괴물같은 활약을 선보여 올스타전의 슈퍼스타로 군림하기도 한다. 페넌트레이스에서나 그렇게 잘 하지
그 증거가 올스타전 최우수 선수인 '미스터 올스타'의 절대 다수가 롯데 자이언츠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33번의 올스타전이 열리는 동안 무려 15번이나 롯데 선수가 미스터 올스타에 선정되는 진기록을 낳았다. 이쯤 되면 이벤트 경기에서는 진짜로 우주 최강 수준.
올스타전에 독특한 유니폼을 입고 등장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주로 선데이 유니폼을 즐겨 입었고 2015년에는 기부와 연관된 행사 컨셉답게 유니세프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다.
출전 선수들의 유니폼 마킹도 독특하다. 2010년 올스타전에는 팬 투표 최다득표자로 선정된 홍성흔이 '최다득표'(...)라는 이름을 새기고 등번호에는 '감사'(...)라는 기괴한 마킹의 유니폼을 착용했다. 롯데 선수들로만 베스트 포지션이 꾸려진 2012년에는 송승준 대신 올스타전에 선발된 쉐인 유먼이 '양승호감'이라는 이름을 새기고 등번호에 '♥'(...)를 새겼고 팬 투표 최다득표자였던 강민호는 '가문의 영광'(...)이라는 이름에 등번호로 '쌩유'(...)라는 문구를 새기고 나왔다. 고만해 미친놈들아
1.5.4.1 역대 롯데 자이언츠 출신 미스터 올스타 목록
수상 연도 | 이름 |
1982년, 1984년 | 김용희[34] |
1989년 | 허규옥 |
1990년 | 김민호 |
1991년 | 김응국 |
1998년, 1999년 | 박정태[35] |
2004년, 2007년 | 정수근 |
2005년, 2008년 | 이대호 |
2010년 | 홍성흔[36] |
2012년 | 황재균 |
2013년 | 전준우[37] |
2015년 | 강민호 |
1.5.5 어린이날 최약팀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롯데 자이언츠/2015년/5월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롯데는 전통적으로 어린이날에게 OME스러운 경기력으로 패배하여 부산 어린이들에게 동심파괴를 안겨준 경우가 많다. 전체 전적이 12승 22패로 승률 0.352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경기 외적인 요인들 ─ 1998년 마산아재의 버스 뒤집어 사건이나, 2009년의 SK 선수단 습격사건 등 유독 어린이날에 트라우마가 많았다. 아래는 역대 전적.
어린이날에 가장 많이 만나는 팀은 삼성 라이온즈로, 9경기 중에서 겨우 2승밖에 거두지 못했다. 그 다음으로는 SK 와이번스로 6경기 중에서 겨우 1승. 한화 이글스는 빙그레 시절까지 포함해서 5경기 중에 3승을 거뒀다.
년도 | 장소 | 상대팀 | 점수 | 결과 | 승리투수 | 패전투수 | 세이브투수 | 비고 |
1982 | 춘천 (원정) | 삼미 슈퍼스타즈 | 10 : 16 | 패배 | 김동철(삼미) | 노상수(롯데) | - | - |
1983 | 대구 (원정) | 삼성 라이온즈 | 7 : 8 | 패배 | 성낙수(삼성) | 천창호(롯데) | - | - |
1984 | 경기없음 | |||||||
1985 | 구덕 (홈) | 해태 타이거즈 | 13 : 4 | 패배 | 조도연(해태) | 양상문(롯데) | - | - |
1986 | 경기없음 | |||||||
1987 | 잠실 (원정) | OB 베어스 | 3 : 5 | 패배 | 계형철(OB) | 김정행(롯데) | 김진욱(OB) | - |
1988 | 대전 (원정) | 빙그레 이글스 | 7 : 8 | 패배 | 이동석(빙그레) | 노상수(롯데) | 이상군(빙그레) | - |
1989 | 경기없음 | |||||||
1990 | 잠실 (원정) | LG 트윈스 | 9 : 6 | 승리 | 김시진(롯데) | 이국성(LG) | 서호진(롯데) | - |
1991 | 잠실 (원정) | OB 베어스 | 2 : 1 | 승리 | 윤학길(롯데) | 박형렬(OB) | - | - |
1992 | 대구 (원정) | 삼성 라이온즈 | 4 : 10 | 패배 | 이태일(삼성) | 윤학길(롯데) | 김태한(삼성) | - |
1993 | 잠실 (원정) | OB 베어스 | 3 : 1 | 패배 | 김상진(OB) | 윤학길(롯데) | 김경원(OB) | - |
1994 | 전주 (원정) | 쌍방울 레이더스 | 3 : 5 | 패배 | 박성기(쌍방울) | 윤동배(롯데) | 조규제(쌍방울) | 더블헤더 |
9 : 4 | 승리 | 주형광(롯데) | 김석기(쌍방울) | - | ||||
1995 | 대구 (원정) | 삼성 라이온즈 | 4 : 9 | 패배 | 박충식(삼성) | 가득염(롯데) | - | - |
1996 | 인천 (원정) | 현대 유니콘스 | 1 : 13 | 패배 | 전준호(현대) | 주형광(롯데) | - | 더블헤더 |
6 : 11 | 패배 | 안병원(현대) | 강상수(롯데) | - | ||||
1997 | 대전 (원정) | 한화 이글스 | 8 : 2 | 승리 | 차명주(롯데) | 정민철(한화) | 박보현(롯데) | - |
1998 | 마산 (홈) | 쌍방울 레이더스 | 8 : 7 | 패배 | 김현욱(쌍방울) | 가득염(롯데) | 김기덕(쌍방울) | [38] |
1999 | 대전 (원정) | 한화 이글스 | 9 : 1 | 승리 | 주형광(롯데) | 정민철(한화) | - | - |
2000 | 마산 (홈) | 한화 이글스 | 13 : 3 | 패배 | 한용덕(한화) | 박지철(롯데) | - | - |
2001 | 대전 (원정) | 한화 이글스 | 13 : 1 | 승리 | 박석진(롯데) | 송진우(한화) | - | - |
2002 | 광주 (원정) | KIA 타이거즈 | 12 : 11 | 승리 | 강상수(롯데) | 리오스(KIA) | - | - |
2003 | 대구 (원정) | 삼성 라이온즈 | 3 : 9 | 패배 | 김진웅(삼성) | 박지철(롯데) | - | - |
2004 | 문학 (원정) | SK 와이번스 | 6 : 5 | 승리 | 이상목(롯데) | 제춘모(SK) | 임경완(롯데) | - |
2005 | 마산 (홈) | 삼성 라이온즈 | 0 : 5 | 승리 | 손민한(롯데) | 해크먼(삼성) | - | - |
2006 | 문학 (원정) | SK 와이번스 | 1 : 3 | 패배 | 조웅천(SK) | 이왕기(롯데) | - | - |
2007 | 사직 (홈) | 삼성 라이온즈 | 1 : 5 | 승리 | 최대성(롯데) | 윌슨(삼성) | - | - |
2008 | 광주 (원정) | KIA 타이거즈 | 6 : 3 | 승리 | 송승준(롯데) | 서재응(KIA) | 임경완(롯데) | - |
2009 | 사직 (홈) | SK 와이번스 | 4 : 0 | 패배 | 김광현(SK) | 조정훈(롯데) | - | - |
2010 | 대구 (원정) | 삼성 라이온즈 | 2 : 13 | 패배 | 장원삼(삼성) | 이명우(롯데) | - | - |
2011 | 사직 (홈) | 삼성 라이온즈 | 7 : 0 | 패배 | 정인욱(삼성) | 사도스키(롯데) | 오승환(삼성) | [39] |
2012 | 문학 (원정) | SK 와이번스 | 3 : 1 | 승리 | 이용훈(롯데) | 로페즈(SK) | 김사율(롯데) | [40] |
2013 | 사직 (홈) | 삼성 라이온즈 | 6 : 1 | 패배 | 밴덴헐크(삼성) | 송승준(롯데) | - | - |
2014 | 문학 (원정) | SK 와이번스 | 5 : 9 | 패배 | 김광현(SK) | 김사율(롯데) | - | [41] |
2015 | 사직 (홈) | SK 와이번스 | 11 : 4 | 패배 | 채병용(SK) | 이상화(롯데) | - | - |
2016 | 광주 (원정) | KIA 타이거즈 | 1 : 17 | 패배 | 지크(KIA) | 이성민(롯데) | 배힘찬(KIA) | - |
1.6 외국인 선수
초기였던 1998년에 덕 브래디를 데려와서 뛰게 하였으나 여러모로 신통치 않아 재계약을 하지 않고, 이후 펠릭스 호세라는 사기급 외국인 선수의 존재가 워낙 컸다. KBO에 뛴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1999년, 2001년 시즌 단일 시즌의 임팩트는 KBO 역대 최고의 타자 중 1명이었다. 같은 시기 호세의 소개로 영입된 에밀리아노 기론도 평작 정도의 투수는 되었다. 그러나 이후 흉작에 흉작을 거듭. 매니 아이바, 숀 헤어와 함께 KBO 막장 용병의 한축을 당당히 꿰차고 있는 존 갈과, 희대의 대수비 용병으로 존갈에 버금가는 명성을 날렸던 에두아르도 리오스가 바로 롯데에서 뽑은 선수.
2008년 이후로는 카림 가르시아, 존 애킨스, 라이언 사도스키 등 준수한 외국인 선수를 선발해 외국인 선수 선발에 대해서는 별 말 없는 상태.[42]
2012년에는 라이언 사도스키와 쉐인 유먼이 외국인 투수로 뛰었다. 사도스키는 그리하여 한국말을 마스터하고 특히 유먼은 2012년 들어 2% 부족한 롯데 선발진에서 에이스 대접을 받았다. 워낙 성적이 좋아 류먼진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2012년 시즌 후 좋은 모습을 보여준 쉐인 유먼과는 당연히 재계약을 했고, 부진했던 사도스키가 고향으로 떠나게 되었다. 사도스키의 자리에는 스캇 리치먼드가 왔는데, 스프링캠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퇴출되었다. 대신 크리스 옥스프링이 롯데와 계약하였다. 그리고 옥스프링도 2013년 시즌에 13승을 거두면서 성공적인 한국 복귀시즌을 치루었다.
2014년에는 쉐인 유먼과 크리스 옥스프링과 다시 재계약 하였고, 외국인 선수의 추가 영입이 가능해짐에 따라 베네수엘라산 거포 루이스 히메네스를 영입하게 되었다. 이로써 2012, 2013년 시즌에 치명적인 단점으로 손꼽혔던 타선 공격력을 확보하게 된다...였으나 그 히메네스가 후반기들어 타자 카리대 2호기가 되어버리며 폭망해버렸고 결국 암흑기 탈출이후 최초로 망한 용병이 되어버렸다. 유먼과 옥스프링도 영 좋지 않은데, 유먼은 방어율이 폭등했고 옥스프링은 타자들의 지원을 못 받는 상태이다.
한줄로 요약하면 암흑기를 빠져나간 이후로 부터 투수 용병 농사의 폭망은 없는 상황.타자는 히메네스 때문에...
한편, 라이언 사도스키는 야구계에서 은퇴를 했지만 롯데 자이언츠에서 해외스카우터 코치가 되어 한국야구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2015 시즌에 영입한 짐 아두치, 조쉬 린드블럼, 브룩스 레일리가 준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어 사도스키의 능력이 조명되고 있다.
2016년에는 린드블럼과 레일리는 작년만은 못하지만 여전히 준수한 성적을 올려주는 반면에, 아두치는 허리부상으로 골골대다가 금지 약물 복용으로 퇴출되고 저스틴 맥스웰이 왔지만 그럭저럭하다가 번트연습중 부상으로 시즌 아웃 되어버리며 먹튀로 전략했다.
2 팀의 역사
- 실업 야구시절은 롯데 자이언트 항목으로
2.1 간략한 역사
390px | |
1984년 우승 당시 모습 | 1992년 우승 당시 모습 |
인기에 비해 실제 성적은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원년부터 이어져왔음에도 불구하고 '리그를 압도하는 강팀'이라는 모습을 보인 해는 없다. 그나마 1999년 2위를 차지했지만 1위 한화보다 투타에서 안정된 전력을 보였다는 것. 이 해가 그나마...압도적인 전력이었다. 심지어는 우승한 년도조차도 드라마틱하기는 했지만 우승 전력이라 꼽히진 않았다. 1982년, 해태와의 개막전에서 14-2로 대승을 거두지만 이 해 0.388[43]의 승률로 5위에 그쳤고, 이듬해에는 아예 최하위를 차지하였다. 1984년에는 삼성의 져주기 논란으로 후기리그 우승을 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우승[44], 1992년에는 정규시즌 3위로 마감하여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하여,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 빙그레의 다이나마이트 타선을 상대로 꽤나 드라마틱하게 우승을 차지했다.[45] 공교롭게도 우승할 때의 감독은 강병철이었으며[46], 두 번 다 안경잡이 신인 에이스 최동원과 염종석을 혹사시켜 우승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 우승다툼에 참가한 것은 2번 뿐이다. 롯데가 한국 시리즈 우승하면 남북통일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점점 롯데로 말미암은 남북 통일이 가까워 지고 있다. 하지만 매미 야구가 지속되는 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적이 1번 뿐이다. [47] 2위도 2011년 창단 30년 만에 최초로 단일 리그 2위를 차지하기 전 까지는 삼성의 전후기 통합 우승으로 끝난 1985년과 양대리그 체제였던 1999년 단 2번 밖에 차지하지 못했다.[92년은 3위로 우승, 그리고 99년에는 4위 한화에 밀려서 준우승. 2011년 시즌은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으나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는 바람에 최종 순위는 3위.] 그에 반해 꼴찌는 8번(1983, 1989, 1997, 1998, 2001, 2002, 2003, 2004) 뒤에서 2등을 4번(1982, 1990, 2006, 2007) 차지해 이 분야에서 대적할만한 팀은 사라진 삼미 슈퍼스타즈 밖에 없는 실정이다. 특히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저지른 4년 연속 꼴등은 해태(現 KIA), 삼성의 4년 연속 우승(해태:1986~1989, 삼성:2011~2014)에 버금가는 대기록이다. OTL 앞뒤가 똑같은 비밀번호 8888 여기서 꼴데라는 용어가 나왔다.[48] 콩산보단 낫다 거긴 희망고문 아닌데 2015년 우승했는데
참고로 시즌 최다패 타이기록도 가지고 있고(2002년 97패[49]) 통산 최다패팀(1843패) 현존 팀 최다연패 타이 기록(2002년 16연패)도 가지고 있다.[50] 개막 후 연패 2위[51](2003년, 12연패), 특정팀(삼성 라이온즈)에게 제일 많이 패한 기록도 있다. 특정팀 상대 연패 기록(KIA 타이거즈, 18연패)삼미는 OB 상대로 시즌 전패를 달성했는데 뭐 이것 갖고과 특정 투수 상대 연패(선동열. 20연패. 선동렬은 최동원이 선발로 나온 한경기를 제외하고 롯데를 상대로 져본 적이 없다.)도(…). 간단히 2001년부터의 성적을 요약해 8888577이라는 비밀번호도 가지고 있다. 그외에도 삼성의 성준이라는 최대의 적도 있었다. 그리고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첫 2000패[52]를 달성하며 명문구단의 입지를 다졌다. 그리고 2015년 5월 1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패배를 기록하며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첫 2100패를 달성했다.
2016년 기준 팀 통산 승률이 역대 팀 중 뒤에서 3등인[53] 0.470로 같은 원년팀인 삼성의 통산 팀 승률이 0.564이라는 것과 대비되는 성적을 나타낸다.
2.1.1 1992년 우승 이후 일어난 일들
롯데 자이언츠가 마지막으로 우승1992한 이후 일어난 일들.
이 항목은 8888577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1. 케이블 TV 방송이 시작되어 스포츠 전문 TV가 등장했다.(1995) 그리고 PC 통신의 시대가 끝나고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었으며(1994) 스마트폰이 보편화되어 팬들이 롯데 자이언츠의 2. 태평양 돌핀스가 현대 유니콘스에 인수되었으며(1995), 외환위기(1997)의 여파로 쌍방울 레이더스가 해체되고(2000), 7년 뒤에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됐다.(2008) 해태 타이거즈는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넘어가 KIA 타이거즈가 됐다(2001). 그리고 네 개의 새로운 프로야구 구단이 탄생했다. (2000-SK), (2008-히어로즈[54]), (2011-NC), (2014-KT) 3.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와 최초의 프리미어리거가 탄생했고(1994),(2005), 은퇴했다(2012),(2014). 국내 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투수와 타자가 나왔다.(2013),(2015) 4. 군인 출신 대통령이 물러나고(1993)[55] 새 정권을 무려 4번이나 거친 뒤[56] 그 전전 군인 출신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2013) 5. 모 반국가 단체의 초대 혹부리가 사망하고(1994) 그 아들 뽀글이가 권력을 누리다 사망하고 그 아들의 아들인 꿀꿀이에게 권력이 넘어갔다.(2011) 미국에서는 이 기간 사이에 부자 대통령이 탄생했고(2001) 그 뒤에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2009) 6.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1993),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4), 삼풍백화점 붕괴사고(1995), 인현동 호프 화재사고,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 (1999) 대구 지하철 참사(2003),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 (2013),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2014), 2015년 메르스 대유행 (2015)등 안전불감증이 원인이 된 안타까운 사건이 많이 터졌다. 7. 한국 최초의 100만명 돌파 영화 서편제가 나오고(1993), 10년 뒤 최초의 1,000만명 영화인 실미도가 나왔으며(2003), 천만 명이 못 되던 한국영화 관객수가 2012년 1억명을 돌파했다. 2016년 현재 천만명 돌파 한국영화 13개[57]가 나왔다. 8.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작되었다.(1994) 9. 서울 지하철 3호선과 4호선이 확장되고 서울 2기 지하철(5호선~8호선)과 서울 지하철 9호선이 개통되었다. 부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부산 도시철도 2호선, 3호선, 4호선, 부산김해경전철이 개통되었다. 게다가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대전광역시 등 지방 광역시도 지하철을 개통했으며, 거기에 경부고속철도가 완공되어 KTX를 이용해 원정팀 응원단이 당일치기 응원을 오기 시작했다. 10. 주요 통신수단이 집전화+공중전화로 이루어지다가 무선호출기 삐삐가 등장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후 씨티폰이 짬깐 등장 하였다가 PCS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전 국민 휴대폰 보급율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이후 PCS는 사양길에 접어들고 현 핸드폰이 전 국민에 보급이 되고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스마트폰 열풍이 불었다. 이에 삼성전자는 갤럭시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초등학생까지 스마트폰을 보유하였다. 이후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특허소송이 시작되었고 몇 년간의 소송 끝에 이 소송전마저도 거의 종료가 되었다. 11.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작되었다.(1994) 12. 야후!가 설립되었으나(1994) 10년만에 구글에게 주도권을 넘겨줬고 한국에서는 다음이 네이버에게 주도권을 넘겨줬으며 프리챌(2011)과 나우누리(2013)가 서비스를 중단했다. 13. 대한민국의 대표 관문이 김포국제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이동하였다.(2001) 14. 주요 통신수단이 집전화+공중전화로 이루어지다가 무선호출기 삐삐가 등장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후 씨티폰이 짬깐 등장 하였다가 PCS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전 국민 휴대폰 보급율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이후 PCS는 사양길에 접어들고 현 핸드폰이 전 국민에 보급이 되고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스마트폰 열풍이 불었다. 이에 삼성전자는 갤럭시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초등학생까지 스마트폰을 보유하였다. 이후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특허소송이 시작되었고 몇 년간의 소송 끝에 이 소송전마저도 거의 종료가 되었다. 15. 대한민국 육군의 병 복무기간이 1993년 30개월에서 26개월로 감소하였다. 2003년 24개월로 감축된 후에 현 복무기간인 21개월로 다시 감축되었다. 그리고 저 때 태어난 남자아이들은 16. 대한민국 공군에서는 제공호라 불리우는 F-4팬텀 기에서 F-16으로 주력 전투기가 대체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F16보다 성능이 대폭 향상된 F15K가 도입 완료되었으며 T50 초음속 고등훈련기/경공격기가 개발되었다. 공중전의 핵심 공중 조기경보통제기 피스아이 4대가 도입되었고, 공중급유기와 최첨단 스텔스 성능을 보유한 F35 전투기 도입이 확정되었다. 17. 컴퓨터 저장매체가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에서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이후 CD 드라이버가 장착이 되면서 프로그램 실행은 CD가, 저장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가 수행을 했었다. 그러나 CD 드라이버에 WRITING 기능이 추가되면서 플로피디스크는 안드로메다로 떠나게 되고 CD가 대세가 될 듯 하였으나 이 역시 밀려나고 현재는 USB와 가상드라이버, 대용량메일이 자웅을 겨루는 중이 되었다. 이 사이 컴퓨터 운영체계는 DOS + WIN3.1에서 18. 이승엽이 프로야구에 데뷔하고, 한 시즌 최다홈런을 19. 롯데 우승 직후에 김영삼 정부에 의해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었다.(1993) 또한 민법에서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법률, 줄여서 부동산 실명제가 시행되었고(1995) 자동차 손해배상 특별법이 시행되었으며(1999) 제조물에 대한 책임법률이 제정되었다.(2000) 또한 상가 임대차 보호법이 시행되었고(2001) 20. 국제적으로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끝나고(1995)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및 슬로베니아 등 여러 소국으로 분리독립 되었으며 코소보 사태가 벌어졌다.(1999) 911 테러가 일어났으며(2001) 이를 계기로 아프가니스탄 전쟁(2002)과 이라크 전쟁(2003)이 벌어졌다. 게다가 이집트, 리비아 등지서 민주화 혁명이 일어났으며, IS가 발흥하였다. (2014) 21. 하계 올림픽이 다섯 번 (1996, 2000, 2004, 2008, 2012)[58]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 그리고 동계 올림픽은 여섯 번 (1994, 1998, 2002, 2006, 2010, 2014)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열 두번 치루어졌다(1993, 1995, 1997, 1999, 2001, 2003, 2005, 2007, 2009, 2011, 2013, 2015). 그 중 아시안 게임 두 번과 월드컵 한 번,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한 번은 우리나라에서 개최했다. 22. 롯데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이후 엑스포가 8번 개최되었고 9번 폐막되었다.[59] 23. 그동안 삼성 라이온즈는 무려 7회 우승했다. (2002, 2005, 2006, 2011, 2012, 2013, 2014) 게다가 삼성은 정규리그 연속 우승 횟수를 5로 늘렸다.(2015) 또한 타이거즈는 4번이나 우승했으며(1993, 1996, 1997, 2009) 두산 베어스 또한 3번 우승했다.(1995, 2001, 2015) 게다가 2000년대에 재창단 된 SK 와이번스는 우승을 3번 하였으며(2007, 2008, 2010), 해체된 현대 유니콘스는 V4를 기록했다(1998, 2000, 2003, 2004). 23-1. 21세기 이후 한국시리즈조차 못나간 팀은 2014년 창단한 kt 위즈 밖에 없다. 현대의 정통성은 없지만 간접 계승자인 넥센은 2014년에 한국시리즈 진출했고, 1982 프로 출범이후 우승많이한 순서대로 하자면 기-삼-넥(현)=두-S-L-한이다. 쌍방울을 물려받은 SK조차 우승 3회이다. 한화가 비록 우승은 한번 밖에 못했지만... 이 팀은 김영덕 시절 한국시리즈에서만 약했지 페넌트레이스를 주름잡았다. 89~92 빙그레 이글스를 롯데와 비교하는건 굉장히 이글스팬에게 결례다. 23-2. 1992이후 한국시리즈 우승팀의 1차전 선발은 조계현, 이상훈, 김상진, 이대진(96, 97), 정민태(98, 03), 정민철, 김수경, 빅터 콜[61], 나르시소 엘비라, 마이크 피어리, 팀 하리칼라, 배영수, 레이번, 김광현(08, 10), 아킬리노 로페즈, 메티스, 윤성환(12, 13), 벤덴헐크, 유희관 등 23년동안 총 19명의 투수가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을 맡았다. 롯데 소속 투수중 올해도 맡을일은 없으면 23년동안 롯데는 한국시리즈1차전에 나간 선발이 염종석, 박보현 뿐이다.[62] 그것도 모두 20세기때 일이다. 24. 그전까진 20-20클럽 가입자는 김성한, 25. 장종훈 이후 12명의 40홈런 타자[63] , 3명의 50홈런 타자가 나왔다. 아시아 최초로 60홈런 타자도 나왔다. 26. 1992년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8,140$였다. 2014년 현재는 28,739$로 약 3.5배 증가했다. 27. 롯데 우승 뒤 태어난 1992년생[64]은 수능을 마치고 재수를 하지 않는다면 대학생이 되었으며(2011), 11학번의 경우 남학생은 군대를 갔다와서 휴학을 전혀 하지 않았으면 4학년 여학생의 경우 졸업하고 바로 취직 했으면 회사생활 2호봉이 된다. 게다가 1992년 생이 만약에 고졸취업을 했다면 회사생활 5호봉, 즉, 주임이나 대리를 달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28. 11명이 12번에 걸쳐 이팀 감독을 맡았다. 강병철-김용희-김명성-우용득-금지어-양상문-강병철-제리 로이스터-양승호-김시진-이종운-조원우[65] 29. 주기율표에서 110번 이상의 원소가 1992년 이후 새로 발견되었다. 110번 다름슈타튬 (Ds, 1994), 111번 뢴트게늄 (Rg, 1994), 112번 코페르니슘 (Cn, 1996), 113번 니호늄 (Nh, 2004), 114번 플레로븀 (Fl, 1998), 115번 모스코븀 (Mc, 2004), 116번 리버모륨 (Lv, 1998), 117번 테네신 (Ts, 2010), 118번 오가네손 (Og, 2006)이 그것이다 이로써 7주기를 모두 채우게 되었다. 1992년 이전에 발견되었지만 명명이 1992년 이후에 이루어진 원소는 103번 로렌슘 (Lr, 1997), 106번 시보귬 (Sg, 1997)이 있다. 또한 중성미자가 발견(1995)되었고, 그 존재가 입증(2002)되었다. 또한 헬륨-3라는 물질도 발견되었다.(1996) 30. 체세포 복제기술의 발전으로 복제양 돌리 (1996), 복제견 스너피 (2000), 복제소 영롱이 (2003), 복제낙타 인자즈 (2009)가 태어났다. 31. 1992년 이후 많은 종류의 호모속 32.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로 유명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공식사면 되었다.(1992) 또한 교황청이 진화론을 인정하였다![68](2014) 33.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2000) 그리고 세월따라 사망했다. (2009) 34. 태양계의 10번째 행성을 찾으려다 명왕성이 행성에서 제외되었고(2006), 최초의 외계 행성이 발견되었다(1992).[69] 35. 보스턴 레드삭스가 86년간 이어졌던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월드시리즈를 3번 제패하였다. (2004,2007,2013) 그리고 시카고 화이트삭스도 88년간 이어졌던 검은 양말의 저주를 깼다. (2005) 36. 1992년 기준 도스판이었던 코에이사의 삼국지 2가 최신 삼국지 시리즈였다. 2015년 말 조만간 삼국지 13이 출시될 예정이다. 37. NASA가 화성탐사로봇인 소저너(1997), 스피릿과 오퍼튜니티(2003), 큐리오시티(2012)를 보냈으며, 화성에 미생물의 흔적과 지금은 해프닝으로 끝난 인면암이 발견되었다. 38. 보이저 탐사선이 모두(1호, 2호) 태양계를 떠났으며 아직도 우주를 향해 항해하고 있다. 39. 1993년에는 김건모가 핑계를 대히트를 쳤으며, 2년 후에는 잘못된 만남을, 1996년의 다음 앨범 타이틀 곡 스피드가 대히트를 쳤다. 이 세 앨범은 연속으로 100만장 이상 팔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특히 잘못된 만남은 280만장이 팔려 기네스북에까지 올라간다. 40. 원조 한국 아이돌 1세대라 할 수 있는 H.O.T.가 데뷔하였으며(1996) 그 이후로 여러 남자여자 아이돌들이 탄생하였다. 그 들 중 1998년에 데뷔한 신화는 현재도 해체하지 않고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41. 1992년 당시의 DRAM 용량은 64메가바이트였으며 2015년 현재는 16기가바이트에 이른다. 이와 연관되어 2002년에는 메모리 반도체의 집적도는 1년에 두 배씩 늘어난다는 법칙인 황의 법칙이 당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겸 메모리사업부 사장이었던 42. 우승 다음해 양준혁과 이종범이라는 두 야구의 신이 데뷔한 이후 모두 은퇴했다.(1993~2010/2012) 43. 20세기 가 끝나고 21세기가 시작되었다.(2001) 44.1994년 미국의 어느 한 회사에서 게임하나(1994)가 만들어져서 대박을 쳤으며 2년후 디아블로 시리즈(1996)가 또 2년후 다시한번 전설(1998)이 만들어 지고 대한민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다.그리고12년후 후속작(2010)을 개발하나 실패한다.그로부터 6년후 처음으로 FPS(2016)를 만들고 다시 대한민국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온다. 45. 듀크 뉴켐 포에버가 개발 14년만에 (1997~2011) 출시되었다. / 유의항목 : 듀크 뉴켐 포에버/개발 중 일어난 일 46.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30년만에 우승했다. (2015) 47. 시카고 컵스 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중 한 팀이 야구계의 저주들 중 한 개를 깨고 우승한다. (2016) 57. |
2.2 2000년 이전
2.3 2000년 이후
2.4 관련 기록
2.4.1 역대 감독
역대 | 이름 | 재임기간 | 성적 |
초대 | 박영길 | 1982 ~ 1983 | 130전 53승 76패 1무 |
감독대행 | 강병철 | 1983년 | 50전 21승 29패 0무 |
2대 | 강병철 | 1984 ~ 1986 | 318전 159승 151패 8무 |
3대 | 성기영 | 1987 | 108전 54승 49패 5무 |
4대 | 어우홍 | 1988 ~ 1989 | 228전 105승 116패 7무 |
5대 | 김진영 | 1990 | 96전 36승 56패 4무 |
감독대행 | 도위창 | 1990 | 24전 8승 15패 1무 |
6대 | 강병철 | 1991 ~ 1993 | 378전 194승 180패 4무 |
7대 | 김용희 | 1994 ~ 1998 | 559전 249승 292패 12무 |
감독대행 | 김명성 | 1998 | |
8대 | 김명성 | 1999 ~ 2001 | |
감독대행 | 우용득 | 2001 | |
9대 | 우용득 | 2001 ~ 2002 | |
10대 | 백인천 | 2002 ~ 2003 | 163전 41승 119패 3무 |
감독대행 | 김용철 | 2003 | |
11대 | 양상문 | 2004 ~ 2005 | 259전 108승 139패 12무 |
12대 | 강병철 | 2006 ~ 2007 | 252전 105승 141패 6무 |
13대 | 제리 로이스터 | 2008 ~ 2010 | 392경기 204승 185패 3무 |
14대 | 양승호[73] | 2011 ~ 2012 | 266전 137승 118패 11무 |
15대 | 김시진 | 2013 ~ 2014 | 256전 124승 127패 5무 |
16대 | 이종운 | 2015 | 144전 66승 77패 1무 |
17대 | 조원우 | 2016~ |
<역대 감독 통산 성적-2011년 6월 24일 기준>
파일:Attachment/롯데 자이언츠/20110624-Lotte-Manager.jpg
승률이 0.600을 넘는 감독은커녕 0.550도 없다!
양승호 감독은 2011-2012 2년간 정규시즌 266전 137승 118패 8무로 승률 0.5310을, 포스트 시즌 포함 275전 142승 122패 8무로 0.5318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역대 17명의 감독(감독 대행 포함) 중에서 롯데 선수 출신은 김용희, 김용철, 양상문, 김시진, 이종운 5명이다.
2.4.2 역대 성적
| 우승 |
| 준우승 |
| 포스트시즌 진출 |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
연도 | 정규시즌 순위 | 최종 순위 | 팀이름 | 경기수 | 승 | 패 | 무 | 승률 |
1982 | 전기 5위, 후기 5위 | 5위 | 롯데 자이언츠 | 80 | 31 | 49 | 0 | 0.388 |
1983 | 전기 4위, 후기 6위 | 6위 | 100 | 43 | 56 | 1 | 0.434 | |
1984 | 전기 4위, 후기 1위 | 우승 | 100 | 50 | 48 | 2 | 0.510 | |
1985 | 2위/6팀[74] | 준우승 | 110 | 59 | 51 | 0 | 0.536 | |
1986 | 전기 3위, 후기 5위 | 5위 | 108 | 50 | 52 | 6 | 0.490 | |
1987 | 전기 3위, 후기 3위 | 3위 | 108 | 54 | 49 | 5 | 0.523 | |
1988 | 전기 4위, 후기 공동 3위 | 3위 | 108 | 57 | 49 | 2 | 0.537 | |
1989 | 7위/7팀 | 7위 | 120 | 48 | 67 | 5 | 0.421 | |
1990 | 6위/7팀 | 6위 | 120 | 44 | 71 | 5 | 0.388 | |
1991 | 4위/8팀 | 4위 | 126 | 61 | 62 | 3 | 0.496 | |
1992 | 3위/8팀 | 우승 | 126 | 71 | 55 | 0 | 0.563 | |
1993 | 6위/8팀 | 6위 | 126 | 62 | 63 | 1 | 0.496 | |
1994 | 6위/8팀 | 6위 | 126 | 56 | 67 | 3 | 0.456 | |
1995 | 3위/8팀 | 준우승 | 126 | 68 | 53 | 5 | 0.560 | |
1996 | 5위/8팀 | 5위 | 126 | 57 | 63 | 6 | 0.476 | |
1997 | 8위/8팀 | 8위[75] | 126 | 48 | 77 | 1 | 0.385 | |
1998 | 8위/8팀 | 8위 | 126 | 50 | 72 | 4 | 0.410 | |
1999 | 드림2위/4팀 | 준우승 | 132 | 75 | 52 | 5 | 0.591 | |
2000 | 매직2위/4팀 | 4위 | 133 | 65 | 64 | 4 | 0.504 | |
2001 | 8위/8팀 | 8위 | 133 | 59 | 70 | 4 | 0.457 | |
2002 | 8위/8팀 | 8위 | 133 | 35 | 97 | 1 | 0.265[76] | |
2003 | 8위/8팀 | 8위 | 133 | 39 | 91 | 3 | 0.300 | |
2004 | 8위/8팀 | 8위 | 133 | 50 | 72 | 11 | 0.410 | |
2005 | 5위/8팀 | 5위 | 126 | 58 | 67 | 1 | 0.464 | |
2006 | 7위/8팀 | 7위 | 126 | 50 | 73 | 3 | 0.407 | |
2007 | 7위/8팀 | 7위 | 126 | 55 | 68 | 3 | 0.447 | |
2008 | 3위/8팀 | 3위 | 126 | 69 | 57 | 0 | 0.548 | |
2009 | 4위/8팀 | 4위 | 133 | 66 | 67 | 0 | 0.496 | |
2010 | 4위/8팀 | 4위 | 133 | 69 | 61 | 3 | 0.519 | |
2011 | 2위/8팀 | 3위[77] | 133 | 72 | 56 | 5 | 0.563 | |
2012 | 4위/8팀 | 4위[78] | 133 | 65 | 62 | 6 | 0.512 | |
2013 | 5위/9팀 | 5위 | 128 | 66 | 58 | 4 | 0.532 | |
2014 | 7위/9팀 | 7위 | 128 | 58 | 69 | 1 | 0.457 | |
2015 | 8위/10팀 | 8위 | 144 | 66 | 77 | 1 | 0.462 | |
2016 | 8위/10팀 | 8위 | 144 | 66 | 78 | 0 | 0.458 | |
KBO 통산 35시즌 | V2 | 4339 | 1992 | 2243 | 104 | 0.470 |
같은 원년팀인데 삼성 라이온즈와 정 반대의 성적이다.
심각한 것은 스탯을 보면 알겠지만 역대 리그에서 원년팀임에도 단 한 번도 6할을 넘기는 승률이 없다. 더욱 심각한 건 프로팀이냐 깔보던 넥센은 창단 6년만인 2014년 승률 0.619를 찍었다. 또한 정규리그 우승이 원년팀들 중(계승 팀 포함) 유일하게 "전무"하다.(이러다가 "후무"까지 될 듯하다. 지구 멸망 특집:롯데는 왜 지구 멸망 전까지 우승을 못 했나) 팬심이라도 단결되면 모를까, 심지어 반대하던 신구단 NC는 창단 2년에 포스트시즌을 가고, 프런트 내부에서 터지는 온갖 병크가 팬심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쇄신이 절실하지만 프런트가 할 리가...롯데 팬들:이제 됐어. 꿈도 희망도 없어.
그외 사항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항목 참조.
2.4.3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삼성 라이온즈 | 84KS : 4승 3패 91준PO : 1승 1무 2패 92준PO : 2승 99PO : 4승 3패 00준PO : 1승 2패 08준PO : 3패 | 준PO 1승 3패, PO 1승, KS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12승 1무 13패 |
KIA 타이거즈 | 92PO : 3승 2패 | PO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3승 2패 |
한화 이글스 | 92KS : 4승 1패 99KS : 1승 4패 | KS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5승 5패 |
LG 트윈스 | 95PO : 4승 2패 | PO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4승 2패 |
두산 베어스 | 95KS : 3승 4패 09준PO : 1승 3패 10준PO : 2승 3패 12준PO : 3승 1패 | 준PO 1승 2패, KS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9승 11패 |
SK 와이번스 | 11PO : 2승 3패 12PO : 2승 3패 | PO 2패 개별 경기 총 전적 4승 6패 |
2.4.4 역대 유니폼
2.5 영구결번
롯데 자이언츠 영구결번 |
최동원 |
프로 참가 30년만에야 겨우 첫 영구결번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당연히 84년 롯데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 최동원(No.11). 84년 한국시리즈 4승 1패라는 거짓말같은 역투를 앞세워 팀의 우승을 이끄는 등 롯데에서 6시즌간 96승 67패 25세이브를 거둔 최동원은 2011년 9월 14일 지병인 암으로 타계한 후 9월 30일 공식적으로 영구결번되었다. 생전 고향팀의 감독으로 돌아오고자 의지를 불태웠던 그였지만, 결국 친정팀과의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롯데가 얼마나 레전드 대접에 소홀했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
아직까지 추가 영구결번을 진행할 조짐은 보이지 않지만 팬들은 대부분 윤학길, 염종석, 박정태 등이 적절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2.6 독특한 응원 문화
롯데 자이언츠는 다른 구단과 달리 매우 독특한 응원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한번이라도 사직구장이나 잠실구장에 가면 이 독특하고 재미있는 응원문화에 매료되어 또 야구장에 가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 게임만 이겨주면 더 재미있을 텐데
- 신문지를 갈기갈기 찢어서 술처럼 만들어 응원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다른 팬들이 막대 풍선을 가지고 응원하는 것과 다르다.[79] 준비해오거나 입장할때 파는 신문지를 사거나. 이렇게 응원하다가 끝부분을 뜯어내서 바람불 때 날려주면 꽃가루(!!!) (조선일보같은 큰 일간지 사이즈는 잘 안찢어지고 잡기도 불편하다. 중앙일보나 교차로같은 타블로이드 사이즈가 쓰기 좋다.)
- 그런데 최근 2012~2013년 이후부터는 구단 차원에서 응원 봉을 나눠 주며 물타기(...)를 시전한 탓에, 2015년 현재는 많은 팬들이(거의 대다수) 신문지를 들고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응원봉이라도 들고 오느냐? 전혀 아니다. 응원봉 역시 없고, 그냥 맨손이다. 그나마도 소리 지르는 것도 예전만 못해서 많이 심심해졌다.
야구 열기가 식어서 그런지 사직구장이 만원관중인 날조차도 노래소리가 2008~2010년 르네상스 시기에 비해 매우매우매우 조용해졌다.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이냐 하면, 집에서 보던 신문이나 구장 앞에서 500원 주면 구할 수 있던 신문지라는 저렴한 응원 도구에 오랜 기간 익숙해져 있던 팬들은 돈 주고 응원 도구 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아예 안 사기 때문. 기껏 신문지 준비해 봤자 나만 흔드니까 재미 없고, 응원봉 사자니 돈 아깝고.차라리 계속 영구적으로 나눠 주던가, 아니면 신문지 다시 부활시키던가팬들 사이의 반응은 물론 청소하는 구단의 입장도 있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우리의 고유한 응원 문화가 사라져 상당히 아쉽다는 의견이 절대다수. 응원봉을 적극적으로 다시 구단 차원에서 밀든지, 팬들 차원에서 다시 적극적으로 신문지를 부활시키던지 하는 등의 노력이 있지 않고서야 앞으로도 응원 도구 하나도 없는 사직구장은 계속될 전망.일단 야구부터 좀 잘해라 이것들아 그래야 팬들이 사직구장 가서 응원을 하든 말든 하지
- 대략 7~8회 이후에 나누어주는 주황색
쓰레기봉지비닐봉투[80]를 머리에 써서 응원을 한다.[81][82] 2005년 이후에 이 문화가 정착된것으로 사실 현대 유니콘스가 먼저 한 것이었다. 2004 한국시리즈 때 이미 현대가 노란 봉투로 응원하는 짤들이 있다. 물론 경기가 끝나면 풀어서 차곡차곡 쓰레기를 채운다. - 상대팀 투수가 견제구를 던질때마다 "마!"라고 야유를 보낸다. 박찬호도 '마' 소리를 듣고 당황했고, 결국 송구실책을 범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 공이 파울지역으로 날아왔을때 "아주라!"(아이에게 주어라)라고 외치면서 부근의 유아나 어린이들에게 공을
뺏기는주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근처에 애가 없다면? 저멀리서 애 아빠가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달려온다.애 있는게 벼슬인가... - 롯데 수비시 투수가 탈삼진을 잡거나 야수들이 허슬플레이를 연출하면 위치스의 '떳다 그녀!!'의 전주곡이 나오는데, 전주곡이 끝나면 노래의 시작부분인 "어느날-!!!"까지만 부르고 딱 끊는 응원이 있다.[83] 2013년부터는 이 응원이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명대사인 "살아있네~"로 바뀌었다.
- 응원가로 부산 갈매기 &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는데 이 모습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큰 노래방이라고 하기도 한다. 흔히 이 두 곡의 경우, 승리가 유력해 질 때에 부르는 응원가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팀의 패배가 확실해질 때나 9회 마지막 공격때도 부른다. 무엇보다 '경기에는 지더라도 응원만은 지지 않겠다'라는 자이언츠팬의 응원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홈구장인 사직이나 대구,
11시 멀티잠실, 목동 같은 경우라면 이루어지지만 그 이외의 지방 구장은 롯데팬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므로 그냥 묻혀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 문화(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는 바다 건너 자매 구단인 지바 롯데 마린즈에 영향을 주었는데, 지금의 지바 롯데 응원단장인 진 토시오[84] 씨가 2000년대 초 한국 유학 시절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에서 일했고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롯데 자이언츠, 넓게는 한국 프로야구의 응원 문화를 받아들여 일본에 이식한 것. 지바 롯데의 응원가들 중 한국 노래가 있는 건 그 때문이다.
팀 응원가 리스트는 롯데 자이언츠/응원가를 참조하고, 선수들의 응원가는 각 선수 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2.7 선수단/등번호
3 사건 사고
4 지역 연고 학교
5 네임드 팬
- 가스파드
- 강소라
- 공유
- 김광규
- 김영민(개그맨)
- 김혜성(배우)
- 박상민
- 박은영
- 빅토르 안[85]
- 설리(배우)
- 쌈디
- 아린(오마이걸)
- 안재모
- 예정화
- 올라이즈 밴드
- 이경규
- 이동형[86]
- 장혁
- 정은지
- 정용화
- 정형돈
- 조진웅
- 한준희[87]
- 한해
6 관련 항목
- 8888577
- GIANTS TV
- 갈매기 마당
- 꼴리건
- 나는 갈매기 - 롯데 자이언츠 다큐멘터리
- 돌아와요 부산항에
- 로나쌩 클럽
- 로이스터 매직
-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
- 마(롯데 자이언츠)
- 모토니시 아츠히로
- 뭔데이
- 배재후
- 봄데
- 부산 갈매기
- 박기량(치어리더)
- 사직 야구장
- 아로요 매직
- 아주라
- 엘롯기
- 엘 꼴라시코
- 자이언츠네이션
- 조지훈(응원단장)
- 희망고문
- 매미
- 장병수
- 롯데 자이언츠/2군
- 거인사생
-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
7 기타
- 한국 사회에는 롯데그룹의 회장인 신격호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처럼 강한 팀을 만들고 싶어서 '자이언츠'로 지었다는 카더라 통신이 정설처럼 퍼져 있다. 원래는 실업 야구단이었으나 KBO 리그 출범을 앞두고 부산을 연고지로 하여 프로야구단으로 전환했다.
- 샤다라빠가 lezhin의 블로그에서 꼴데툰을 연재하고 있다. 자신의 블로그에도 연재 중.# 결국 공식 홈페이지에도 올라갔다! 제목은 "롯데툰". '롯데까지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신문지 흔들어봤느냐'라는 부분은 '롯데야 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2013년부터는 레진닷컴에서 연재된다.
- HIT 갤러리에 '꼴갤전도사'라는 갤러가 부른 우승할 수 있을까라는 노래가 등극했다.
우린 안될거야 아마
- 일본어 위키백과의 롯데 자이언츠 문서에는 열정적인 팬들의 성원에 비해 좋은 성적을 못 내는 것을 비관한 표현인 '신은 어찌하여 부산에 최고의 팬과 최악의 팀을 주셨나이까?'의 원문과 번역문[88]이 소개돼 있다(...). 뿐만 아니라 '가을에도 야구하자!'[89]도 소개돼 있다. 일본에도 안습한 실상이 알려졌다(...).
- 2011년부터 유니세프의 공식 후원사가 되었다. 스포츠 구단으로서는 국내 최초이며, 전 세계 야구단으로서도 세계 최초이다.# 매달 1회 유니세프데이 행사를 사직 야구장에서 가진다.
- 팀 주축 선수들 중에 불교 신도가 많은 편이다. 강민호, 손아섭 등.
- 모바일/온라인 게임에선 타팀에 비해 안 좋은쪽으로 평가되고 있다. 불펜이야 2012년도를 제외하고는 이해 할만하지만, 높은쪽으로 줘야 될 선수들이 낮게 책정 받는 등. 온라인 상에서 롯데팀으로 하는 유저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마구마구는 죄다 삼성 아니면 LG 또는 해태만 있다고 한다김민재 하점레전드;;10롯데 어쩔
- 20세기에 창설된 8구단(해체 후 재창단 포함하더라도, 넥센(2014)과 SK가 이미 한국시리즈를 밟았다.)중 유일하게 21세기 들어 단 한 차례도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롯데 유니폼을 입고 한국시리즈에서 경기를 했던 선수들은 불귀의 객이 되거나, 모두 현역에서 은퇴했다.[90] 이는 NC와 kt를 제외한 8개 구단 중 유일한 기록이다. 가장 오랫동안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 팀이기 때문.
- 2016년 이대호의 메이저리그 데뷔로, 드디어 롯데와 메이저리그에서 모두 현역생활을 하게 된 토종 선수가 생겼다.
추신수가 떡잎부터 포기한 팀이니까각 팀별로 최초의 기록을 살펴보면, 삼성-조진호(2007), KIA-최희섭(2007), 넥센-김병현(2012), 한화-구대성(2005), LG-이상훈(2000), SK-조진호(2003), 두산-김선우(2008)... 심지어 강정호가 2015년에 먼저 메이저리그를 밟으면서 이미 해체된 현대 유니콘스보다 메이저리그 진출 토종 선수를 늦게 보유한 구단이 되었다. - 여담으로, KBO 리그 참가 구단 항목들 중 이 항목과 kt wiz 항목이 비로그인 편집 제한 처리가 되어 있다(...). 이 항목은 2015년 12월에 회원수정 처리가 되었으며, 이어 kt wiz도 이듬해 7월, 역시 회원수정 처리가 되었다.
- 2016 시즌부터 GIANTS TV에 이어 또 다른 방송국 LGC, 즉 Lotte Giants Broadcast라는 방송국이 개국한다. 다만 이것은 구단에서 하는 것은 아니고 팬이 운영하는 방송국이다.
- 해태그룹이 프로야구에 참여하려 했을 때, 심하게 반발하였으나, 양보하였다.
- ↑ 아라, 피니도 있다. 참고로 일본프로야구의 치바 롯데 마린즈의 마스코트도 같은 모델인데 엄연히 저쪽이 원조다.
여기에 대해서 해명하기를 서로 멀리떨어진 친척관계로 해놨다 카더라. - ↑ 실업구단으로서의 창단일. 프로 전환은 1982년 2월 12일.
- ↑ 본래는 광역연고로 통칭 부울경이라고 일컬어지는 울산,경남을 포함하고 있었으나 NC 다이노스가 창단하면서 경남 쪽은 NC에게 넘어가서 현재는 울산광역시만 광역연고, 다만 울산광역시의 고등학교들을 대상으로 1차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NC 다이노스에게 넘어갔다.
- ↑ 창원시 연고의 제9구단 NC 다이노스가 창단하면서 경남 연고권을 양도했다.
- ↑ 1982년 창단 이후 2015년까지 33년간 신격호 총괄회장이 구단주를 맡았지만 실질적으로 그가 구단에 기여한 바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프로 초창기에는 신격호 회장의 친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당시에는 롯데제과 사장과 롯데건설 부회장을 지냈다.)이 구단주 대행으로 실질적인 구단주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신격호의 5촌 조카이자 전 롯데제과 사장이었던 신동인이 구단주 대행으로 앉아 있었다. 신격호가 힘들때 신동인의 아버지(신격호에게는 큰아버지)가 많이 도와줬다고 하며 그 때문에
땡보계열사 사장 자리를 준 것이라는 견해가 강하다. 그러나 지나친 경기 개입 논란 등으로 자이언츠 구단주로써의 모습은 평판이 좋지 못했다. 2015년 롯데그룹 왕자의 난에서 신동주 전 롯데 홀딩스 부회장의 편을 들었으나 신동빈이 권력을 잡는 바람에 처지가 난감해 졌고, 이후 2015년 8월 10일부로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 직에 사의를 표명했다. 롯데팬들에게 축제인셈. 이후 8월 31일 공식적으로 구단주 대행은 더 이상 두지 않고 신동빈 회장이 직접 관리하게 되었다. - ↑ NC 다이노스 창단 이전까지 제2홈구장으로 사용
- ↑ 2014년부터 제2구장으로 사용
- ↑ 2016시즌에는 메인 킷 스폰서 없이 시즌을 치른다. 전년도의 킷 스폰서 하드스포츠가 탱탱볼 논란(...) 등으로 이미지가 썩 좋지 못하자 계약 연장하지 않은듯. 선수용 유니폼은 마제스틱에서 지원해준다고 하나 위팬, 네포스등에서도 제작지원을 받는 등 마제스틱은 공식 스폰서와는 무관하다.
- ↑ 여담이지만 타 구단의 우승 챔피언 로고가 등록된 것과 달리 롯데의 경우 존재하지 않는데, 이는 애초에 구단이 챔피언 로고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 ↑ 'Tigers'도 3개 리그에서 모두 쓰이고 있다.
- ↑ 86, 90, 92, 95, 97, 00, 05, 09, 10, 11
- ↑ 88, 96, 99, 07
- ↑ 여기서 '거인'은 바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따왔다는 카더라 통신이 전해지고 있다(물론 롯데 구단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실업시절에는 무시무시한 강팀이었고, 프로 출범 전에 일본의 수도인 도쿄가 연고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처럼 서울을 연고로 삼으려고 했다.
- ↑ 2009년에 독자적인 로고를 만들며 도로 갈렸다.
- ↑ 참고로 누리와 아라는 국토해양부의 마스코트와 이름이 같다.
- ↑ 공식적으로 정해진 연고지는 부산광역시로 한정하지만 과거 광역 연고지 도입 시절에는 경상남도도 연고지로 포함됐던만큼 경남지역에서도 롯데의 인기는 여전히 상당한 편이다. 다만 제9구단 NC 다이노스가 2012년 창원시를 연고로 창단되면서 다수의 경남지역 롯데 팬들이 NC로 갈아탔다. 경남지역에서 롯데의 인기가 전보다 떨어진 것도 당연한 이야기.
- ↑ 주로 전학생들이
겁도 없이이런 경우가 많다. - ↑ 이때에는 아버지는 해태팬 아들은 롯데팬이라 해태랑 롯데랑 야구만 하면 집안 분위기가 뒤숭숭했더라는 이야기도 있다.
- ↑ 현재도 팬 수로 롯데에 대항할 수 있는 구단은 해태의 후신인 KIA 타이거즈와 엘롯기 일원인 LG 트윈스 정도밖에 없다.
- ↑ 여담으로 이 걸그룹 멤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보게 된다. 다른 그룹의 멤버는 태어난 첫 해에 롯데의 KS 2번째 우승을 보았다.
- ↑ 승강제가 있는 리그에서는 이런 현상이 당연해 보일 수 있다만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승강제는 K리그 클래식 밖에 없음에도 이러면 문제. 물론 세번 감독이 바뀐 팀도 있다지만 거긴 전환 첫 시즌이라 생긴 문제
에 박종환의 병크라고 쉴드가 가능하지만. - ↑ 실제로 08-09시즌 강등제가 없는 V-리그에서 한감두를 실현했다. 심지어 그 교체가 비유하자면 지금 한화 이글스가 김성근 짜르고 이정훈, 김광수
선수 팔 갈아드시는 옹고집영감 보단 저 둘이 낫지, 심지어 북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인 이강돈도 아닌 북일고 체육교사가 차기 감독이라면? 이걸 실행했던 게 바로 이 구단이다. - ↑ 그런데 알고 보면 삼성 구단도 만만찮게 반대의 소리가 컸지만 롯데 프런트의 까임 수준에 묻혔다(...). 이것만 봐도 얼마나 이미지가 안 좋은지 알 수 있다.
- ↑ 그리고 고교야구 팀이 적으니 구단늘리는 것을 반대한다는 일부 롯데팬과 장병수 전 사장의 의견과 달리 NC 다이노스와 kt wiz 창단이후 고교야구 선수풀이 크게 확장 되었다. 자세한 것은 장병수 항목 참조.
- ↑ 마이너스 옵션은 아예 없다!
- ↑ 제2홈구장으로 2014년 시즌부터 사용
- ↑ 사직 야구장 이전에 사용했던 홈구장. 2007년 상동 야구장이 생기기 전까지 2군 홈구장으로도 사용 되었다.
- ↑ 나중에 개수해서 2만8750석으로 축소.
- ↑ 임작가 시절때 욕(...)먹어도 천사같이 웃는다고 붙은 별명.
- ↑ 다만 양승호의 비리가 언론에 드러난 것은 자진사퇴한 이후다. 당시 자세한 경황을 몰랐던 팬들은 성적 부진으로 자진사퇴한 줄 알고 아쉬워하기도 했지만, 내막이 밝혀진 후로는 구단 내부에서 낌새를 눈치채고 기민하게 뒷처리를 한 것이리고 보고 있다.
신의 한 수 - ↑ 0.239
- ↑ 이 와중에 팀 득점은 24점으로, 9개 구단중 아예 꼴찌를 찍었다(...).
- ↑ 이게 어느정도냐면 강민호가 부상으로 빠진 2016년 후반기에는 김준태가 주전으로 나오고 있는데, 다른 팀들 입장에선 충분히 쓸만한 포수지만 강민호에게 충분히 적응된 롯데팬들은 죽어라 까댔다. 기본기가 떨어지고 나은건 볼배합밖에 없다고... 결국 나중에 김사훈과 돌아가면서 출전하면서 김준태도 충분히 나아지자 자제하는중
- ↑ 초대 미스터 올스타로 선정된 덕에 매년 올스타전 때마다 '미스터 올스타'의 상징처럼 언급이 된다.
- ↑ KBO 올스타전 사상 유일한 미스터 올스타 2연패
- ↑ 2006년 올스타전 당시 두산 소속으로 받은 이후 2번째.
- ↑ 2008년 퓨처스리그 올스타전에서 MVP를 받은 적 있다. 1군과 2군 올스타전에서 모두 MVP를 수상한 선수는 아직 전준우가 유일하다.
- ↑ 이게 위에 서술된 마산아재 버스 뒤집어 사건. 롯데의 역전패로 경기가 끝나고 나서 마산아재들이 버스를 막고 당시 감독이던 김용희를 상대로 즉석 청문회를 벌였다.
- ↑ 홀드 : 권혁,안지만,권오준(이상 삼성)
- ↑ 홀드 : 김성배(롯데)
- ↑ 홀드 : 윤길현(SK)
- ↑ 하지만 2008년 이후 외국인 선수 선발은 로이스터 감독의 인맥이고, 제리 로이스터 해임 이후 2011년 코리는 대책없는 가르시아 방출 이후에 치바 롯데 마린스에서 보내 준 경우. 2008년 이후 롯데 스카우터진은 그야말로 숨쉬고 돈받아 먹었다.
- ↑ 삼미만 아니였으면 최하위였다. 2005년 KIA의 승률이 0.389였던 것을 보면 답이 나온다.
- ↑ 게다가 1984년 시즌 리그 통산 성적은 4위에 불과하다.
- ↑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92 롯데와 01 두산, 15 두산에서만 나온 기록이며, 일본의 경우도 10 지바롯데에서 사상 최초로 나온 기록이다.
- ↑ 상대 팀 감독도 공교롭게도 김영덕 감독이었다.
- ↑ 이전까지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적이 없다고 적혀 있었는데 84년 후기리그 1위도 정규시즌 1위가 맞다. 삼성의 져주기 덕분이라는 말이 있지만 삼성이 져주기 하기전에 이미 롯데가 정규시즌 1위인 상태이고 삼성의 져주기는 롯데의 1위를 확정시켜주는 경기였을 뿐이었다. 게다가 전기와 후기로 나눠진 시즌을 전기 후기 합쳐서 4위로 계산해서 적어놓은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다. 이런식이면 84년 정규시즌 1위는 두산이지만 당시 규정으로는 포스트시즌 진출권조차 없었다. 당시엔 전기 1위, 후기 1위팀이 한국시리즈 직행하는 제도였기 때문이다. 탈락팀을 1위라고 부르는 경우가 어디있는가?
- ↑ 이 임팩트로 인해서, 최근 9년간 꼴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롯데는 여전히 "꼴데"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 ↑ 그 안습의 1999 쌍방울과 타이기록.
- ↑ 역대 팀별 성적으로 따져도 공동 3위. 1위는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18연패, 2위는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17연패. 그나마 KIA와 공동 타이 기록을 작성.
- ↑ 안습의 13한화가 13연패로 그 기록을 10년만에 깨주었다.
- ↑ 2013년 8월 1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달성. 기사.
- ↑ 팀 승률 꼴찌는 kt wiz(0.368), 2위가 쌍방울(0.410).
- ↑ 야구팀 자체가 팀 명만 유지한채 스폰서를 계약 형식으로 영입하기 때문에 팀 명을 붙임. 창단 당시에는 우리 히어로즈
- ↑ 이분은 현재 건강악화로 병원에서 겨우 삶을 유지하고 계신 상태.
- ↑ 여담이지만 군인 출신 대통령 시대를 마감하고 문민정부 시대를 연 대통령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 2015년 사망했다. 또한 그보다 몇 해 전 노무현 전 대통령도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는 우승을 못 하고 있다(...) 징하다 정말참고로 둘 다 동남권 출신이다. 야구팬이었다면, 롯데를 응원했을 가능성이.... - ↑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 해운대,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방의 선물, 변호인, 명량, 국제시장, 암살, 부산행
- ↑ 1992년 올림픽은 롯데 우승 전에 치루어졌으므로 제외한다.
- ↑ 폐막이 한번 더 많은 이유는 세비야 엑스포의 폐막일이 롯데 자이언츠 마지막 우승일 보다 1주일 뒤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 ↑ 같은 1992년이지만 폐막이 8월 15일이다.
- ↑ 2001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두산 베어스의 승리였고, 빅터 콜 조차 5점대의 투수였다.
- ↑ 엘롯기중에서도 마지막에 2009년에 아킬레노로페즈가 KIA의 우승 선발투수가 되었으며, 2002년 LG에서는 1차전에 김민기가 선발로 나갔었다.
- ↑ 타이론 우즈(1998), 이승엽,댄 로마이어,트레이시 샌더스,찰스 스미스(이상 1999), 박경완(2000), 심정수(2002), 이대호(2010), 박병호,강정호(이상 2014), 야마이코 나바로,에릭 테임즈(이상 2015)
- ↑ 1992년 10월 15일 ~ 1993년 2월 28일 사이에 태어난 걸로 기준을 잡을 때.
- ↑ 이것도 대행이었던 김용철은 제외한 수치이다.
- ↑ 사람과의 라틴어명. 호모보다는 유인원에 더 가까운 개념. 오랑우탄, 침팬지, 고릴라도 포함된다.
- ↑ 근데 발견 날짜가 1992년 12월 20일이다. 즉 롯데가 우승하고 나서 최초로 발견된 원시인류.
- ↑ 물론 가톨릭이 창조신화를 버렸다기 보다는 진화론을 포용했다고 하는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 ↑ 다만
아쉽게도외계 행성 발견은 롯데의 마지막 우승 이전인 1992년 4월이다. - ↑ 시카고 컵스보다는 훨씬 적다고 해도 20년이 넘어가는 시간은 팬들이 지쳐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가령 2015년 현재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 난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할때까지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다와 같은 내용의 글을 쓰면 여지없이 글쓴이는 영원히 살 생각인가? 같은 식의 덧글이 줄줄히 달릴 정도니 말 다했다.
- ↑ 제주 유나이티드는 1989년에 마지막 우승, 리버풀 FC는 1990년이 마지막 우승이었다.
- ↑ 이 항목은 시카고 컵스 항목을 참조했다.
그리고 내용이 점점 늘어나는 건 기분탓이다. - ↑ 역대 롯데 감독 승률 1위
- ↑ 85삼성의 통합우승 덕분에 한국 시리즈를 치르지 못했다. 종합 준우승 트로피가 사직구장 내 박물관에 있다.
- ↑ 응답하라 1997에서 이 팀 감독인 시원의 아버지가 시원의 성적이 바닥이라며 다그칠때 시원이 자기도 꼴지하면서 왜 뭐라고 하냐고 언급하기도 한다.
- ↑ 팀 사상 최저승률 기록. 월드컵 붐과 맞물려 관중동원도 폭망했다.
- ↑ 정규시즌은 2위지만, 플레이오프에서 2승 3패로 정규시즌 3위 SK에 밀려 최종순위는 3위가 된 것이다.
- ↑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승리했으므로 최종 순위는 3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는 4위가 맞다. 최종 순위는 한국시리즈 진출팀을 제외하곤 시즌 순위를 기준으로 결정한다. 2008년 롯데가 준플레이오프에서 4위인 삼성에 패배했음에도 시즌 순위는 3위로 유지된 것도 같은 이유.
- ↑ 특이하게도 많은 롯데팬들은 막대풍선 응원을 시끄럽다고(...) 싫어한다.
- ↑ 최근에는 '응원도구'화 되면서 5회만 지나도 나눠주는 경우가 많다. 주황색 봉투에도 스폰서기업의 광고가 붙어있는 것은 덤.
- ↑ 그리고 주황색 봉투를 가지고 단순히 풍선처럼 부풀게 만드는 스타일 부터 시작하여 '꽃 머리띠'형태의 스타일을 만들거나 봉투 2개를 가지고 양갈래 머리 형태로 만드는 스타일 등 갖가지 바리에이션들이 존재한다.
- ↑ 같은 연고 농구팀 부산 KT 소닉붐도 KTF 매직윙스 시절에 이런 응원문화가 있었지만 사라졌다.
- ↑ 상대팀이 득점을 낼 수 있는 상황에서 병살타를 쳐 만회할 경우에도 전주곡이 재생되는데, 만일 더블플레이나 병살주자를 아웃시키고 뜻밖의 기회로 인해 진루 주자를 아웃시킬 경우 2번 연속으로 틀어준다.
- ↑ 레이지본에서 트럼펫을 연주하기도 했다.
- ↑ 러시아로 귀화한 후에도 롯데에 대한 애정을 종종 드러냈고, 2015년 4월 10일 부인과 함께 사직구장에서 직관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리고 그 경기는...
- ↑ 작가 겸 정치평론가. 경상북도 안동 출신임에도 롯데 팬이다.
- ↑ 축구 해설위원이고 서울 출신이지지만 연고 개념이 없던 실업야구시절부터 응원한 올드팬이다.
- ↑ 神はなぜ釜山に最高のファンと最悪のチームを同時にもたらしたのか
- ↑ 번역문: "(プレイオフが行われる)秋にも野球をしよう". 괄호 안에 있는 'プレイオフが行われる'는 '플레이오프가 행해지는'이라는 뜻.
- ↑ 2015 시즌 이후 임재철과 손민한의 은퇴로 롯데에서 코시를 갔던 현역 선수는 모두 은퇴하게 되었다. 그리고 1999년 당시 롯데를 누르고 우승했던 한화 이글스의 우승 멤버도
구대성을 제외하고모두 은퇴하였다. 박정진도 1999년 당시에 뛰었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엔트리에 들지 못해 우승반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