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문서 :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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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마절도사
- 삼도수군통제사, 수군절도사
- 워해머 히스토리컬: 조선군
- 환국(조선)
- 횡간
- 4군 6진
2 조선의 왕들
- 조선/왕사 참고.
3 조선의 왕비들
- 조선/역대 왕비 참고.
4 조선의 궁궐들
5 조선의 유적들
6 정치, 행정, 군사 제도
6.1 법률
6.2 신분 계급
공식적으로는 양인과 노비 두 계급만 있었으나 이후 분화한다.
6.3 정치 행정 군사 조직
- 내금위: 지금의 대통령 경호실에 해당.
- 내명부: 궁녀 관리 부서.
- 내수사:
- 내시부: 환관 관리 부서.
- 비변사: 지금의 국가안전보장회의에 해당. 그러나 이후 권한이 확대되어 의정부를 대체하는 지경까지 간다.
- 삼사: 항목 2 참고.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 서운관→관상감(세종대왕 때 개칭): 지금의 기상청에 해당.
- 성수청:
- 승정원: 지금의 대통령비서실에 해당.
- 의금부: 지금의 검찰+국가정보원에 해당.
- 의정부: 지금의 국무회의에 해당.
- 춘추관: 조선 시대에 둔 시정의 기록을 맡아보던 관아. 지금의 국가기록원에 해당.
- 충훈부: 조선시대 공신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던 관서. 지금의 국가보훈처에 해당.
- 한성부(판윤): 조선왕조 수도(首都)의 행정구역 또는 조선왕조 수도를 관할하는 관청의 명칭. 지금의 서울특별시청에 해당.
6.4 지방 행정 조직
- 조선/행정구역 항목 참조
- 8도(道): 감영 소재지[3]
- 부(府): 부윤(府尹)
- 목(牧): 목사(牧使)
- 군(郡): 군수(郡守)
- 현(縣): 현감(縣監)
- 관찰사(감사)
- 23부제
- 육방관속
7 교육, 학술
7.1 교육 기관
7.2 역사
7.3 사상
7.4 기타 서적
- 가곡원류
- 가대인시탕시일기
- 각사등록
- 간양록
- 간이집
- 감재일기
- 갑진일록
- 강도일기
- 개국원종공신녹권
- 거영일기
- 고금소총
- 고대일록
- 고려사
- 고려사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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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현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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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산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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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갑일록
- 계암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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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원사화 - 규합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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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천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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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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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 혼천의
- 환도
- 활인서
9 조선을 배경으로 한 작품
- 조선/창작물 문서를 참고.
- ↑ 본래 제도 상 양반, 서얼, 중인 모두 양인에 속한다. 즉, 양인 이상부터 과거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졌으며 이론상 양인도 재능과 시간만 있다면 경전을 공부해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는 소리.
- ↑ 이 계급은 공식적인 것도 아니었고 인조 이후에는 4대를 지나면 서자 딱지를 뗐다.
- ↑ 훗날 일제 강점기 및 대한민국 도청 소재지로 굳어진 곳도 다수 있다. 사실 감영이 현재의 도청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 ↑ 돈의문 밖에 있었다.
- ↑ 상주에 있다가 선조 34년(1601년) 대구로 이전.
- ↑ 순조 때 2차례, 철종~고종
- ↑ 충주에 있다가 선조 35년(1602년) 공주로 이전.
- ↑ 이시애의 난 이후 예종 때 쓰다가 성종 1년(1470년) 다시 영안도로 복귀. "함흥 사람 이중호 등이 이시애의 당류(黨類)가 되어 차마 악역(惡逆)을 저질렀으므로 그 죄가 깊고 중한데, 그 고을 이름을 그대로 두었으니 악(惡)을 징계하는 뜻에 어그러짐이 있습니다. 영흥(永興)은 본래 계수관으로 우리 태조가 탄생하신 땅이고 어용을 봉안한 곳이니, 청컨대 길주(吉州)의 예에 의하여 함흥은 호를 강등하여 군을 삼아 전일에 나누어 붙인 토지와 인민(人民)을 각각 본고을에 돌려보내고, 영흥은 승격하여 부(府)로 만들어 부윤(府尹)을 차정(差定)하고, 다시 토관(土官)을 설치하고, 인하여 영흥(永興)과 초면(初面)의 대관(大官)인 안변(安邊)의 호를 들어서 본도를 개칭(改稱)하여 영안도(永安道)라 하는 것이 어떠합니까?"(성종 1년 기사).
- ↑ 연산군 4년 함경도로 굳어짐.
- ↑ 함흥에 있다가 선조 33년(1600년) 영흥으로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