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특별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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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명칭
정체 한자中華人民共和國香港特別行政區
中華人民共和國香港特别行政區
[1]
간체 한자中华人民共和国香港特别行政区
영어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약칭
표준중국어Xiānggǎng [ɕjáŋkàŋ][2]
광동어Hoeng1gong2 [hœ̂ːŋkɔ̌ːŋ]
한국어홍콩[3]
한자香港(향항)[4]
영어Hong Kong[5]일본어香港(ホンコン)
러시아어Гонконг(간콩그)에스페란토Honkongo(혼콘고)
상징
100px-Flag_of_Hong_Kong.svg.png100px-Hong_Kong_SAR_Regional_Emblem.svg.png
특별행정구기휘장
위치
450px-Location_of_Hongkong_by_Guangdong_%28China%29.png
정부형태
주권중화인민공화국특별행정구
행정부 수반홍콩 행정장관 렁춘잉
임기2012년 7월 1일 ~ 2017년 5월 26일 (예정)
ISO 3166 -1
HK, HKG
국가코드 최상위 도메인(ccTLD)
.hk .香港[6]
중국 성급행정구역 지역코드
[7]

1 개요

동아시아의 국가 및 지역
50px-Flag_of_South_Korea.svg.png
대한민국
50px-Flag_of_North_Korea.svg.png
북한
50px-Flag_of_Mongolia.svg.png
몽골
50px-Flag_of_Japan.svg.png
일본
섬네일을 만드는 중 오류 발생: 파일이 없음

중국

중화민국
50px-Flag_of_Hong_Kong.svg.png
홍콩
(중국)
50px-Flag_of_Macau.svg.png
마카오
(중국)
APEC 가입국/지역
?width=45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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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width=45
말레이시아
?width=45
미국
?width=45
브루나이
?width=45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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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width=45
인도네시아
?width=45
일본
?width=45
캐나다
?width=45
태국
?width=45
필리핀
?width=45
중화 타이베이*
?width=45
중국
?width=45
홍콩
?width=45
멕시코
?width=45
파푸아뉴기니
?width=45
러시아
?width=45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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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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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
*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의 압박으로 '중화 타이베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함.
섬네일을 만드는 중 오류 발생: 파일이 없음
중국의 제1급 행정구역 [행정 약칭]
화베이 지방베이징 시 [京] · 톈진 시 [津] · 산시 성(山西省) [晋] · 허베이 성 [冀] · 내몽골 자치구 [内蒙古]
화둥 지방상하이 시 [沪] · 산둥 성 [鲁] · 안후이 성 [皖] · 장쑤 성 [苏] · 장시 성 [赣] · 저장 성 [浙] · 타이완 성 [台] · 푸젠 성 [闽]
중난 지방광둥 성 [粤] · 하이난 성 [琼] · 허난 성 [豫] · 후난 성 [湘] · 후베이 성 [鄂] · 광시 좡 족 자치구 [桂] ·
마카오 특별행정구 [澳] · 홍콩 특별행정구 [港]
둥베이 지방랴오닝 성 [辽] · 지린 성 [吉] · 헤이룽장 성 [黑]
시베이 지방간쑤 성 [甘/陇] · 산시 성(陕西省) [陕/秦] · 칭하이 성 [青] · 닝샤 후이 족 자치구 [宁] · 신장 위구르 자치구 [新]
시난 지방충칭 시 [渝] · 구이저우 성 [贵/黔] · 쓰촨 성 [川/蜀] · 윈난 성 [云/滇] · 티베트 자치구 [藏]
홍콩 섬 빅토리아 피크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본 홍콩 섬 북부와 까우룽반도.홍콩의 야경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中华人民共和国 香港特别行政区, 中華人民共和國 香港特别行政區; 독음: 중화런민궁허궈 샹깡터볘싱정취)는 중국 광둥 성 끝자락에 위치한 중화인민공화국특별행정구다. 까우룽(九龍)반도와 홍콩 섬을 비롯한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 느리고 영국보다는 정확히 8시간 앞서 중국 본토와 동일한 시간대에 속한다. 광둥 성(廣東省) 선전(深圳)과 마주보는 지점에 있고, 또다른 특별행정구인 마카오(澳門)에서도 그리 멀지 않다.

아시아의 금융, 물류허브이자 쇼핑메카인 도시. 인구는 약 720만 명이고 면적은 1104㎢(서울의 1.82배)로 인구 밀도정말 높다. 1㎢에 5만에서 8만 명이 거주한다. 다만 홍콩 섬 북단과 까우룽 반도 정도가 초고밀도로 개발되어 있고 나머지 지역(신계)은 인구밀도가 비교적 낮다. 엄밀히 말하면 체감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것이다. 2004년 조사에선 홍콩의 각 도심이 세계 인구밀도 1~9위를 석권할 정도였다. # 2012년 홍콩 정부가 다시 산출한 도심의 인구 밀도는 26000명으로 세계 7위 수준이다.(마카오-4위 포함) 그나마 신계를 개발해서 홍콩 전체의 통계가 6000명 정도. 참고로 교외 지역인 신계가 홍콩 전체 면적의 8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앞의 26000명은 홍콩에서 신계를 제외한 지역(면적 127㎢에 인구 약 340만 명 정도)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2 정치

간혹 빅토리아 시티를 홍콩의 수도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정확하게는 홍콩의 행정적 중심지 역할을 하는 지역, 즉 홍콩 섬을 속칭 빅토리아 시티라고 일컫는 것으로 홍콩 내 법적 행정구역 상 빅토리아 시티는 존재하지 않는다. 홍콩특별행정구 내 도시 구분은 있어서 크게 까우룽 반도와 홍콩 섬, 신계로 나누고, 이 산하에 구역(District)이 존재한다. 고도의 자치권을 가진 홍콩의 특성상 싱가포르처럼 도시국가와 비슷하게 굴러간다.

홍콩의 최고 법률은 홍콩기본법으로 중국 헌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정부조직은 권력분립 원칙에 의거하여 행정부인 행정의회와 입법부인 입법회, 그리고 사법부인 홍콩법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베이징의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전국인민대표대회, 최고인민법원과는 엄연히 분리되어있다.

홍콩의 정치제도는 영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영국 식민지 시절 정치, 입법, 사법 체제를 반환 후 최소한(at least) 50년간(1997년~2047년) 유지할 수 있고 사회주의 체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한 덩샤오핑의 일국양제(1나라 2체제) 원칙에 따라 외교군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것들이 중국 본토와는 따로 돌아간다. 여권 또한 따로 나오며 출입국 정책도 크게 다르다. 이 정도면 자치구 정도를 넘어서 아예 보호국 수준의 자치를 하고 있는 셈. 외교 또한 원칙적으로 중국이 전담해주기로 되어있지만, 중국 정부는 홍콩 정부에게 '중국 홍콩(Hong Kong China)'이라는 명칭을 갖고 자율적으로 외교 활동을 하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홍콩은 주권만 없지 사실상 독립국가처럼 굴러간다. 행정부의 최고 수반은 홍콩 특별행정구 행정장관(香港行政長官, HKSAR Chief Executive)으로 임기는 5년이며 1차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현재 행정장관은 3대째로, 2012년에 당선된 친중파 렁춘잉(梁振英, 표준중국어로는 량전잉)이다.

2.1 입법부


2011년 정부청사와 함께 지어진 입법회 청사. 정부청사 옆에 위치하고 있다.

총 의석 70석의 입법회(Legislative Council, LegCo)가 설치되어 있다. 지역 직접선거 의석과 직능별 간접선거 의석에 각각 35석이 배분되어 있다. 임기는 4년. 식민지 시절이었던 1843년에 설치되었으며 1995년에 완전 민선화되었지만 홍콩이 중국에게 반환되면서 완전 민선화는 물건너갔다. 각 구에는 구의회가 설치되어 있다.

가장 최근 선거는 2016년 9월에 있었으며 친중파 계열 정치세력이 40석, 민주파 계열 정치세력이 29석[8]을 차지했다. 이전에 비해 친중파 의석이 3석 줄고 민주파 의석이 2석 증가했으며[9], 무엇보다 민주파 중에서 홍콩 우산 시위를 이끌었던 학생운동가들과 홍콩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급진 인사들이 당선되어, 고조된 홍콩의 반중 감정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2.2 행정부

홍콩 특별행정구의 행정조직 항목 참조.

2.3 사법부

1.4.5.1.12-Old-Supreme-Court-Building.jpg

홍콩 종심법원의 모습.

중국 본토와는 다르게 삼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또한 홍콩기본법에 따라 중국본토의 법률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적용되지 아니한다. 대표적으로 최고법원인 종심법원(Court of Final Apeal)과 2심법원인 고등법원(High Court)과 3심법원인 구역법원(District Court)과 형사상 경범죄를 약식 재판하는 재판법원(Magisrates 'Court)이 있다. 이외에도 토지 및 부동산 분쟁을 담당하는 토지법정, 노사 분쟁을 조정하고 심판하는 노동법정, 특정 상품이나 전시품의 음란성 여부를 심판하는 음란물품법정과 소액청구법정, 자연사 이외의 사인을 심판하는 검시법원과 소년법원 등도 있다.

홍콩 반환 이전에는 현재 2심법원인 고등법원이 최고법원(Supreme Court)이였고, 상고재판은 영국 본토에 있는 추밀원에서 담당했다.

홍콩의 헌법인 홍콩기본법의 해석 등은 중국 본토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서 하고 있다.

2.4 청렴도

홍콩 경찰, 관료들의 부정부패는 아예 100%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99% 없다. 염정공서, 영어로 ICAC(廉政公署)란 행정장관 직속의 초법적 독립수사기구가 있어서 내부감찰도 있는데다 혐의가 있는 건 말이 필요 없을 정도고, 공무원이 자신의 재산 형성을 입증하지 못 할 경우에도 뇌물로 간주한다.

이게 생길만 한게, 1970년대 홍콩 사회의 부정부패를 보다 못한 당시 홍콩인들의 요구로 만들어진 기관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초기엔 경찰들이 수사권을 이유로 반대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홍콩행정장관이 직접 지휘한다!! ㅎㄷㄷ. 한국에도 국민권익위원회(구 국가청렴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ICAC는 1974년에 개설된데 비해 권익위는 2002년에 개설되어 커리어도 아직 부족하고, 실질적인 머릿수도 넘사벽으로 ICAC 1300명에 비해 권익위는 절반도 안된다. 인구는 7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 말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FBI식의 특별수사청이나 홍콩식 공직비리조사처가 자주 화제가 되지만 검찰이 반대하고 있어 검찰 스스로부터 무언가 두려워할만한 것이 있거나 직수권(직접수사권)을 박탈당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 아닌가 싶은 의혹을 많이 제기한다.

2.5 문제점

중국 본토에 비하면 홍콩의 정치는 상당히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편이다. 그러나 일단 독재국가 중국의 특별행정구라 이런저런 절차상의 문제점이 많다.

우선 행정장관은 선거로 선출되고 있기는 하나 이 선거가 홍콩 시민에 의한 직접 선거가 아니라 선거위원회라고 하는 ‘투표인단 1200명에 의한 간접선거’[10]이다. 이 투표인단은 직능단체와 홍콩 입법회 의원 등으로 구성[11]되어 있는데 중국 중앙 정부에 우호적인 직능단체(예: 중의사)의 의석 비중이 인구에 비해 지나치게 크고[12] 중국 중앙정부에 적대적인 직능단체의 의석 비중이 낮아 선거 자체가 친중파에 유리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홍콩 행정장관으로 있었던 퉁치화(董建華)와 도널드 창(Donald Tsang, 曾蔭權), 현임인 렁춘잉 모두 친중파이다.

때문에 홍콩의 민주파는 행정장관의 직선제화를 계속해서 주장해왔으나, 중국 정부는 이를 들어주기는 커녕 설령 홍콩 의회에서 직선제 개헌안이 통과되더라도 중국 전인대에서 승인이 되어야 직선제 개헌을 인정할 수 있다고 못박아버렸다. 그러다가 중국 정부도 결국 이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2017년부터 홍콩 행정장관을 직선제로 선출하는 데 동의했는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과반수 지지를 얻은 후보자 2~3인을 내보내면, 홍콩 주민은 이 중 1명을 직접 선거로 뽑아야 한다. 당연히 전국인민대표대회는 민주파·반중파 인사가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반길 리가 없으니 직접 선거를 하더라도 친중파 후보 1·2·3 중 한 사람을 뽑어야 하여, '어용 선거'나 다름없다. 당연히 홍콩 민주파는 이 무늬만 임명직선제에 반발하고 있다.

홍콩 입법회 역시 구조적으로 친중파가 유리하게 되어 있다. 지역구 선거에서는 친중파보다 민주파가 늘 우세한 편이다. 2012년 총선에서 지역구 선거에서 친중파는 40.3%를 득표한 데 비해 민주파의 득표는 57.3%에 달했다. 그러나 홍콩 입법회는 70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35석은 지역구 의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머지 35석은 5명의 직선제 직능대표 의원과 직선제 선거로 뽑히지 않는 '30명의 간선제 직능대표 의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간선제 직능대표 의원 선출은 특정 기업이나 그 기업의 중역 등이 과대표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고, 그 결과 이 간선제 직능대표 의원 대다수(12년 총선 기준 30명 중 24명)가 친중파이다. 결과적으로는 친중파들은 득표 자체는 민주파보다 밀려도 입법회에서는 다수를 점하게 된다. 2012년 총선 결과 친중파는 43석, 민주파는 27석의 의석을 얻었는데, 이들 간선제 의원들을 제하고 보면 지역구에서는 친중파가 35명 중 17명, 직선제 직능대표 의원에서도 5명 중 2명으로 전부 민주파에 밀렸다. 홍콩 야권은 이것 때문에 의원 전원을 직선제로 선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대륙 정부가 듣지도 않고 있다. 대륙 정부의 입장은 일단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무사히 치른 다음 논의해 볼 사안이라는 것이다.

삼권분립의 또 다른 한 축인 사법부 역시 최근 들어 대륙 정부의 사법권 침해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사실 영국령이었을 때부터 식민지의 한계로 인해 홍콩의 정치 체제가 완전히 민주적이었다고 하긴 힘들다. 홍콩의 의회 역할을 하는 홍콩 입법회 의원선거가 완전 직선이 된 게 1991년이었고, 이나마도 60석 중 17석은 총독이 임명했다. 행정권과 홍콩 주둔 영국군의 군령권까지 가진 홍콩 총독은 반환 직전까지도 영국에서 임명해 내려보냈다. 겉모습만 보면 차라리 행정장관을 간선으로나마 뽑아왔고 2017년부터 행정장관 무늬만직선이 시행될 예정인 오늘날 홍콩 특별행정구의 정치체제가 아주 조금 더 민주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겉모습만 그렇고 실제로는 언론 자유 침해나 은근한 출판의 자유 제한 등 영국이 하지 않았던 민주주의 침해를 오늘날 중국 정부는 자행하고 있다.

2047년까지 홍콩은 기본법 및 중-영 간 합의에 따라 체제를 보장받으며, 중국 영토이되 자체적인 통치를 하고 있다. 2007년 반환 10주년을 맞아 후진타오 정부가 "홍콩, 마카오 일국양제 지속"으로 천명했고 시진핑 현 정부도 입장은 동일하다. 중국 법조계 역시 자동 연장으로 본다. 그러나 갈수록 중국 정부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어 홍콩의 민주주의는 쇠퇴한다는 우려가 많다. 대만 관련 뉴스에 관한 중국 공산당의 보도지침 하달, 홍콩 기본법 23조[13] 관련 논란 등 일국양제 원칙이 조금씩 손상되고 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아예 중국 중앙정부는 2014년 6월 '홍콩특별행정구에서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실천’ 백서에서 '중앙정부가 홍콩에 대한 통치권을 가진다'라는 언급을 하여 홍콩의 자치권을 제대로 존중할 의사가 없고 일국양제는 껍데기에 불과함을 밝히기도 했다. 관련 기사

대륙 중국인들과 비교해 역사적 경험이나 기본적인 시민교육수준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홍콩 시민들의 정치 의식은 넘사벽으로 높은 편이다. 천안문 사태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면서 중국 정부의 정치 탄압을 비난하고 '중국에도 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쓰투화(司徒華)[14]라는 사람마저 있었을 정도로 중국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홍콩의 이런 진보적인 성향을 억누르려고 시도하고 있다. 게다가 홍콩 정치권 내에서도 갈수록 진보 성향의 민주파보다는 친중파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라 홍콩 민주주의의 미래는 암울해지고 있다.

법리적으로 일국양제 원칙이 2047년이라고 폐지될 가능성은 적지만[15], 만약 중국 공산당이 현 추세를 유지하며 행정장관 선거나 홍콩 사법부의 임명에 대한 간섭을 계속할 경우 사실상 일국양제는 껍데기만 남고 홍콩의 민주주의나 자유주의의 실질적인 요소들은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위험성이 있었다.

때문에 계속 시위를 해왔고 결국 2014년 홍콩인들은 이러한 일국양제를 훼손하려 하는 중국 중앙정부의 방침에 반대하여 집단행동을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우산 혁명이다. 우리에게는 우산 시위가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도 민주 시위가 상당히 자주 일어나는 편이었다. 2011년 8월 리커창 중국 부총리가 홍콩 방문 도중 시위대와 맞닥뜨리는 경우도 있었고, 2013년 6월말 보아의 페이스북으로 7월 1일에 열리는 홍콩 돔 페스티벌의 불참을 요구하는 탄원성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기사 1 기사 2

홍콩에서는 이런 식으로 베이징 정부가 민주주의/자치 보장을 안 해준다면 차라리 떨어져 나가겠다는 홍콩 독립운동이 있다. 지지자들은 아직 적은 편이지만 대학이나 중고등학교에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베이징 정부와 홍콩 정부가 긴장하는 중이다. 물론 국제적으로 보는 눈이 많아 대륙에서 하듯이 무조건적으로 때려잡기보단 홍콩인들을 달래는 방식으로 무마할 가능성이 높다.[16]

3 언어

홍콩 기본법에 따른 법정 공용어는 중국어영어다. 법에서는 그냥 중국어라고 되어 있고 어떤 방언을 표준으로 하는지까지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사실상 표준중국어광동어가 그 '중국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표준중국어는 중국 대륙과 같은 보통화(普通話)로 지칭하게 하고 있으나 민간에서는 국어(國語)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다.이것은 오랫동안 중화민국과 교류가 많았던 까닭에 중화민국에서 정한 표준중국어인 '국어'로 지칭하던 게 굳어진 것.[17] 정확히는 중화민국 백화문에 기초한 언문일치 표기체계를 쓰는 광동어가 국어, 영국식 영어표준중국어가 공용어 노릇을 하는 이중언어 체계다.

현실에서는 중국어 방언인 광동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게 말이 방언이지 여타 중국어의 방언들과 마찬가지로 표준중국어와 상당히 다르다. 문법조차 서로 다르기 때문에 아예 외국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2003년부터 중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표준중국어(국어, 만다린)를 보급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어 학교에서도 표준중국어를 가르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반 홍콩인들 사이에서 표준중국어로 의사소통하는 경우는 잘 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우선 홍콩 태생 홍콩인들에게 모국어는 표준중국어가 아니라 광동어인데 반해 아직 표준중국어 보급의 역사가 오래 되지 않아 홍콩인들에게 어려울 수 있고, 표준중국어는 중국 정부 정책에 따라 외국어와 같이 학교에서만 가르치는 말이라 익숙하기 어려우며, 혹은 표준중국어로 간단하게 의사소통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지만 대륙에 대한 심리적인 반감, 거부감 때문에 꺼리는 경우도 있다. 다만 사정이 비슷한 마카오도 표준중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은 극소수이지만 표준중국어가 그런대로 잘 통용되는 걸 보면 대륙에 대한 반감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홍콩 사람 중에서도 광동어 말고 표준중국어를 일상언어/모어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9만명 이상, 홍콩 전체 인구의 1.3% 이상 있다. 관련링크의 usual language(일상언어)의 putonghua(보통화) 부분 참고. 그리고 홍콩에는 광동어도 표준중국어도 아닌 다른 방언[18]을 모어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꽤 거주하고 있고 홍콩 인구의 약 4%에 해당한다. 광동어가 아닌 다른 방언을 일상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중국 그것도 북부 내륙이나 상하이 등의 비광둥권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며 이 중에는 홍콩에 거주하지만 홍콩인이 아닌 사람들도 있다.[19]

표준중국어 보급정책은 홍콩 정부가 열심히 펴고 있고 교사 및 교수 등 교육직, 경찰관이나 소방관 등 제복 공무원, 항공사나 해운사, 철도회사 등 운수 담당직, 홍콩 내 기업들, 공항이나 항만 근무자들은 영어와 함께 국어가 주요 언어다.

결론은 홍콩 사람들에게 표준중국어 자체가 같은 백화문을 쓰는 문어로는 쉽지만 구어로 써놓으면 꽤 차이가 있고,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 아니라 대외 공용어일 뿐이라 간단한 소통은 가능하지만 모어는 아니라 차라리 대외적으로는 영어를 쓰는게 더 나으며(중국 대륙이나 대만을 상대할게 아니면) 무엇보다 홍콩인의 대륙에 대한 반감도 심해 표준중국어를 잘 안쓰는 것이다.

영어의 경우는 영국인인도인, 유대인, 일본인 등 외국인들이 5% 정도로 공존하는 현실적인 이유로도 일상에서 많이 쓰인다.

홍콩 섬의 경우 국제 업무단지인데다 외국인 밀집 지역이라 영어가 잘 통한다. 영국, 미국, 호주, 프랑스, 독일 등 외국학교가 몰려있는 타이쿠 및 사이완호 등 동부 홍콩섬은 국제화된 곳으로 영어가 구멍가게에서조차 통할 정도다. 한국 교민들이 사는 코리아타운은 이 타이쿠-사이완호에 몰려있다.[20] 홍콩 교민이 쓴 다음 글을 참고해 보는것이 좋다. 홍콩에서 영어만 하고 살기.

반대로 중국 대륙인이 주류인 까우룽 반도는 영어가 잘 안 통한다. 본토 중국인이 주류인 몽콕이나 야우마테이, 침사추이 일부 지역의 경우 표준중국어가 더 많이 들릴 정도의 수준이다. 중국 반환 이후 중국 본토인이 늘어나고 이들이 주로 까우룽 반도에 정착해서 그렇다. 단 국제학교가 많고 외교관이 많이 사는 카우룬통의 경우는 영어가 잘 통한다. 현재 홍콩 인구의 30%는 본토 출신의 이민자다. 이들은 모어인 광동어와 학교에서 배운 표준중국어만 할 줄 안다.[21] 까우룽 반도의 주민들 중 과반수가 광둥 성 출신들이고, 이들이 중국본토인 여행객들이나 보따리상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국어가 광동어보다 자주 들린다. 영어 통용율은 당연히 낮아진다.[22] 중국 본토 출신들이 많아진 현재 까우룽 반도신계의 홍콩 현지인들의 영어 구사력이 대한민국과 비슷해진 정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고 한다. 사례로 비교를 하자면 까우룽 반도 등 중국 대륙인들이 주류인 곳에선 침사추이를 빼곤 맥도날드 가서 뭐 주문하려 하면 차라리 보디랭귀지가 더 낫다고 느껴질 정도로 못알아듣는 계산원들이 많거나 계산원들 대부분이 영어만 하면 자신감과 함께 목소리가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침사추이 스누피 카페의 경우 영어 못 하는 점원 수가 꽤 많다는 얘기도 있다. 반대로 홍콩 섬 지역인 센트럴이나 완차이의 스타벅스에선 영어 통용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면적이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만한 동네에서 지역마다 언어 통용 정도가 다르다는 것은 꽤 큰 문제기에 홍콩 정부도 중국 대륙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다.[23]

비교적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나 외국인에게도 물건을 팔아야 하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영어구사율이 높지만, 택시와 미니버스, 로컬 식당이나 로컬 미용실 등 현지 서민이 주로 찾거나 중국 본토인이 종사하는 곳은 영어를 못 알아들을 확률이 높고, 차라리 표준중국어가 약이다. 때문에 과거 영국 식민지였다는 사실만 생각하고 간 사람들은 당혹해하기도 한다. 지하철에 방학동안 영어를 정복하자고 선전하는 영어학원 광고도 있을 정도이다.

다행히 해외취업으로 가는 기업체는 거의 홍콩 섬에 사무실이 있다. 물론 주거지는 까우룽 반도신계일 수도 있기 때문에 간단한 생활용 표준중국어광동어는 좀 배워 두는게 좋기도 하다. 동네 구멍가게나 편의점 등을 이용하기 위한 용도 정도로 말이다.

아무리 표준중국어와 광동어가 차이가 크다고 해도 한국인과 홍콩인이 표준중국어를 배우는 경우를 비교하면 둘 중 그래도 더 수월하게 익힐 수 있는 쪽은 홍콩인이다. 광동어만 할 줄 아는 홍콩인들이라도 글에서는 표준중국어의 문법과 단어를 쓰기 때문에[24] 정 말이 안 통하면 필담을 하면 된다. 그리고 20대 및 30대 젊은 층은 국어와 영어 둘 다 잘 하기 때문에 중국본토인과 국어로 문제없이 대화가 가능하다. 어차피 취업하고 사회생활 하려면 국어와 영어 둘 다 잘해야 한다. 홍콩의 교육열을 보면 답이 나온다.

문자는 한국, 대만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는 정체자 한자를 쓰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글을 쓸 때는 표준중국어에 가까운 문체로 쓰므로 광동어를 몰라도 국어를 읽을 줄 알면 읽을 수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예 영어와 상관없는 지역이 된 것은 아니며 단지 중국 본토인의 증가로 영어가 적게 들리고 표준중국어가 많이 들린다던가 영어를 못 하는 본토중국인 육체노동자 수가 늘었다든가 하는 정도다. 그리고 육체노동자들도 공항이나 항만 등에서 일하려면 간단한 영어는 배워야 하기 때문에 아예 안 통하지는 않는다. 또 교육열이 전반적으로 강하다보니 특정 계층만 영어를 쓰는 무늬만 영어 쓰는 나라인 필리핀보다 오히려 낫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영국인이나 미국인들이 자국 취업난 등으로 홍콩에 건너와 사는 경우도 많다.

아직까지도 영국에 속해 있었을 당시의 영어 구사에 대한 엘리트 의식이 홍콩 상류층에 자리잡고있어 부모가 자식에게 광동어를 사용하지 않고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며, 자신들의 영어 실력이 형편없음에도 안되는 영어를 무리하게 가족의 소통에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25] 이 기현상이 조금 오랫동안 반영되다보니 일부 상류층에서는 아예 기본 언어로 광동어보다 영어가 많이 쓰이고, 광동어를 못하는[26] 사람도 생각보다 많다. 근래 들어선 조금씩 이러한 영어에 대한 상류층의 엘리트 의식이 줄어들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아직 영어회화는 상류층의 기본이다.

홍콩의 영어는 영국식 영어가 표준이며 철자법이나 단어 등도 영국식이다. 그래서 college는 고등학교이며 lift는 엘리베이터라서 미국식 영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헷갈릴 수도 있다. 그래도 젊은 층은 미국 유학생이 많아서 미국식 영어를 즐겨쓰는 사람도 많으며, 영국식 영어는 어딘가 노티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사회 전반적으로는 영국식 영어가 많이 통용되는 편이다.

관광객 기준에서 보자면, 외국인이 갈 만한 장소인 호텔이나 고급 상점, 레스토랑, 공항 등에선 영어 소통이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외곽인 신계에서도 말이다. 그리고 경찰관, 소방관, 구급대원 등 제복 입은 공무원은 도움을 요청하면 유창한 영어로 친절하게 도움을 준다. 즉 관광객이 갈만한 장소는 거의 다 영어가 통해서 본인이 영어를 할 줄 안다면 언어 문제로 버벅댈 일은 없다. 홍콩의 전 교원직이나 공무원 종사자, 철도 및 항공, 항만종사자와 회사원은 영어 및 국어 능력이 필수이며 애초 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종사가능한 업종이다. 영어를 못 하는 중국대륙인은 국어와 광동어만 가지고 막노동을 하거나 택시나 버스를 모는 기사를 하든가 식당에서 일하든가 기타 저소득 3D업종에 종사한다. 미국히스패닉대한민국조선족들이 저소득 육체노동을 주로 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다.

영어와 표준중국어를 둘 다 안다면 되도록이면 영어를 쓰는게 더 대접받는 길이며, 본토 중국인을 상대할게 아니면 영어가 낫다. 한국인이 표준중국어를 쓸 경우에는 중국 본토인으로 오해받는 경우도 있으며[27] 입국 심사시에도 심사관이 한국여권 소지자는 영어로 말하라고 할 정도다. 이는 홍콩에 불법 체류하는 중국 본토 사람들이 많아 중국 본토 사람으로 오해받으면 입국 심사가 몇 배는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영어와 중국어 외 일본어도 어느 정도 쓰이는 외국어다.[28] 일본에서 건너온 이주민도 많고 양측의 경제교류도 활발하기 때문.[29] 그리고 포르투갈어도 널리 배우는 외국어이다. 그래서 포어와 유사한 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와의 교역에서 홍콩 기업이 포어 구사자들 덕에 상대적으로 유리하기도 하다.[30] 참고로 포르투갈은 홍콩을 제일 먼저 발견한 유럽국가이며 가톨릭도 포르투갈인이 들여왔다. [31]

4 역사

홍콩의 역사는 구석기 시대까지 그 기원이 올라간다. 현재의 홍콩인과 광둥인은 한족이 맞지만, 원래 이 지역은 현재 베트남과 같은 월족이었다.[32] 그러다가 진나라한나라한족 왕조의 정복으로 인해 복속되고 한족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DNA도 홍콩이나 광둥 성, 광시좡족자치구, 하이난 성 쪽의 한족은 중원이나 화북 지방의 한족보단 오히려 동남아시아와 유사하다.[33]

역사시대에는 진시황에게 병합되었다가[34] 진시황 사후 이 곳에 파견되었던 임효와 그의 부관이었던 조타(베트남어로는 찌에우 다)가 광저우를 수도로 남월을 건국했다. 남월은 남쪽 월나라라는 뜻. 남월은 광둥 성, 광시좡족자치구, 하이난 성, 구이저우 성, 윈난 성 일부와 베트남 북부를 아울렀으나 대에 무제에게 정복당해 이후 중국의 영역에 들어가고 한족화된다. , 대에는 무역항과 해군 기지로서 활용되었다. 송나라 최후의 전투인 애산 전투가 이 근처에서였고 여기서 원나라에 패배한 조씨 황족들은 전부 까우룽 반도에서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했으며 원나라는 베트남미얀마를 정벌하는 기지로 사용했다. 명나라가 망한 뒤 남명이 잠깐 들어섰다가 강희제의 친정으로 청나라에 복속되었다. 원과 청 둘다 북방 계통의 정복왕조라 자신들의 고향인 내몽골, 만주나 수도인 베이징과도 심지어 강남의 중심지 항저우와도 멀리 떨어진 이 곳에 무관심했다.

1513년에 포르투갈인 조르즈 알바레스(Jorge Álvares)가 서양인으로써 최초로 홍콩에 상륙한다. 그리고 서양과의 접촉이 이어지다가 마침내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광동성 근처 도시에 무역항을 건설하면서 처음으로 홍콩과 영국의 접촉이 이루어진다. 제1차 아편전쟁홍콩 섬은 1841년 영국군에 의해 점령되었고, 다음해의 난징조약으로 청으로부터 정식으로 양도되었다. 이듬 해에 영국은 빅토리아시(Victoria City)의 건립과 함께 총독부를 신설하였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패배 이후 바운더리 스트리트(Boundary Street, 限界街)의 남쪽 까우룽 반도(몽콕 주변)와 스톤커터스 아일랜드(石環島)가 베이징 조약으로 영속적으로 영국에 귀속되었다. 영국의 식민지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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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지도.

1898년영국은 홍콩과 인접한 북부 섬과 산까이(新界, 신계)를 당시 충분히 영구 양도받을 수 있었음에도 99년간 조차했는데 유효기간은 1997년까지. 이는 후일 홍콩 반환의 원인이 된다. 뭐, 후일 중국 정부는 영국과 벌인 홍콩 반환에 관한 협상에서 공동강령 55조를 통해 영국과의 조약 자체를 인정하지도, 계승하지도 않겠다는 입장이긴 했지만 서방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존에 체결한 조약을 부정하는 건 무리였으므로 이 99년 조차만 아니었으면 영국은 홍콩을 지브롤터처럼 영구히 소유할 수 있었고, 99년 조차에 따라 신계를 돌려주더라도 1860년까지 귀속된 지역은 무조건 영국 영토로 영구 인정되는 상황이었다. 19세기의 홍콩은 영국의 주요 무역항이었다. 홍콩은 영국의 물산 집산지로써 활용되는 자유 무역항으로 선언되었고 까우룽반도에서 광동성 곳곳으로 운행하는 철도가 개통되었으며, 영국식 교육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홍콩은 아시아의 영국령 중에서 가장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문화가 개화된 지역이 되었다.

태평양 전쟁 개전 이후 홍콩은 일본군의 항복 요구를 거부하고 격렬히 저항했으나 정예군이 밀어붙인 일본군과 영국 해군 소속의 극소수의 수병해병캐나다군을 포함한 소수의 지상군(그나마 대부분이 식민지에서 모집해온 용병들)이 수비전력의 전부였던 영국군은 병력, 화력의 차이로 점령되었고 이때 홍콩 총독이 항복 문서에 서명까지 했다. 당시 영국이 홍콩에 보내던 총독들은 일본군의 장성급 장교들이 주로 가던 조선총독부대만총독부의 일본 총독과 달리 법관 등 문관 출신들이 많았으며, 당시 총독은 까우룽의 페닌술라 호텔에서 일본 군인들이 총칼로 위협하자 겁을 먹고 투항해 버린다. 사실 일본은 영일동맹을 통해 영국의 홍콩 영유권을 인정해주었으나 어느 순간 맛이 가서 중일전쟁에서 영국이 홍콩을 통해 중화민국을 지원해준다는 이유만으로 무단으로 쳐들어간 것이었다.

여튼 1941년부터 1945년까지 4년 동안의 짧은 일본 식민통치 기간 중 홍콩 경찰은 강제 해산되고 그를 대신한 일본군 헌병들은 현지인들을 잔인하게 억압했다. 민간인 학살 의혹도 있다. 그리고 홍콩 소방처 역시 해산, 영국 왕실이 직접 선물한 소방차는 일본에 고철로 팔려 버리고 일본 해군공병대가 이를 대신했다. 종교적으로도 일본의 억압이 지속되어 홍콩신사 등 신사를 짓고는 (그것도 기독교 교회를 뜯어고쳐서) 홍콩인들에게 여기 참배를 강요하기도 했다. 페닌술라 호텔은 토야 호텔로 이름이 바뀌었고, 영어 사용은 금지되고 대신 일본어를 보급하였으며 거리 이름도 빅토리아 등 영국풍을 최대한 없애고 일본식으로 고쳤다.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이 이 때 일본 해군에 의해 활주로가 확장되었었다. 그리고 화교계 주민은 물론 현지 거주 영국인들도 위안부에 끌려간 경우가 있다보니 홍콩은 대만과 달리 지금까지도 반일 감정이 꽤 남아있는 편이다. 물론 지금은 그와 별개로 경제 교류가 활발하다보니 일본인들이 많이 이주해있는 지역이기도 하지만.

종전 후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로 다시 돌아갔다. 이때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되면서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로 돌아서자 공산주의 사막 속 자본주의의 오아시스처럼 여겨져 수많은 중국 부호들과 공산당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홍콩으로 몰려오기 시작하여 인구밀도는 이때부터 세계 최고를 찍었다.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하여 제조업 중심의 경제로 성장하였으나 70년대 이후 지리적 장점과 정치적 안정의 덕을 보아 동아시아 금융권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된다.

물론 이곳도 격동의 현대사를 완전히 비껴간것은 아니어서, 1956년 쌍십폭동(雙十暴動), 1967년 홍콩67폭동(香港六七暴動)이 일어났다. 특히 홍콩67폭동은 홍콩 현대사의 분수령이다. #영어판 다큐 발단은 오랫동안 저렴한 노동력이 강점으로 여겨지던 홍콩의 경제구조가 한계를 맞이하면서 사회갈등의 불씨가 된 것. 1966년에 스타 페리 요금 인상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이 해결은 커녕 방치되면서 영국령 홍콩 정부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고, 다음해인 1967년, 산발적으로 일어나던 노사분규에 경찰이 강경진압을 시행하면서 일파만파로 퍼진것. 여기에 민주적 지식인들, 중고등학생들, 대학생들, 공산주의자들, 모택동주의자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합세하면서 대투쟁이 벌어진 것. 당시에는 문화대혁명이 중국본토에서 벌어지던 시기여서 굉장히 강력한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친중파로 규정되지만 현재의 친중파 정당과는 달리 좌파들이다.[35]

그러다 1997년 7월 1일 드디어 중국이 홍콩을 돌려받는다. 1984년 발표한 중영공동선언이 1997년 발효되었기 때문인데, 엄밀히 말하면 홍콩섬과 까우룽 반도 남부 등은 완전히 중국에게 양도받은 영국 영토이고, 까우룽 반도의 나머지 지역(신계)은 나중에 홍콩 섬 지역의 경제가 활성화되자 추가 조차한 곳이므로 까우룽 반도 지역은 돌려줘도 홍콩 섬은 중국이 받을 방법이 전혀 없었다. 처음 회담이 열린 1982년 중국 정부는 청나라 때 맺은 조약은 모두 불평등 조약이므로 조항의 원천적 무효를 주장하며 영국이 점유하고 있는 홍콩의 모든 지역을 돌려주길 요구했다. 일단 마가렛 대처는 중국에 조차한 홍콩 지역을 15년 더 연장해달라는 요구를 했지만 중국은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그 대신 서방을 적대시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홍콩 섬과 까우룽 반도의 영구적인 영국 소유권만큼은 일단 인정해 주었지만 어차피 홍콩 섬만으로는 제대로 된 경제 활동을 영위할 수 없었으므로 22회에 걸친 협상 끝에 영국이 여러 가지 조건을 추가로 받아내는 대신 같이 넘겨주기로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홍콩 섬과 까우룽의 공간은 매우 협소하고 전기 등의 인프라를 넓은 신계 지역에서 조달하였는데, 그 신계 지역을 상실하고 홍콩과 까우룽 지역이 자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만약 가정이긴 하지만 대처가 이 지역의 반환을 거부했다면 90년대 후부터 진행된 신계의 대규모 개발은 첫 삽도 못뜨고 모조리 백지화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36] 홍콩 섬과 카울룽 지역은 싱가포르 처럼 필수 인프라의 상당수를 외국에 의지해야 했을 것이다. 단, 식량의 경우 신계가 있건 없건 어차피 홍콩의 식량 자급률은 바닥을 기는 수준이고, [37] 식수의 경우 어차피 96년도 이전에도 전부를 중국 선전 댐에서 공급받고 있었으므로 홍콩섬을 못 돌려받은 덩샤오핑이 불만을 품고 강짜를 부리지 않는한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살 만한 시가지를 추가로 만들 남아있는 교외지가 신계 빼면 홍콩 섬 남부 말고는 거의 없어서 주거환경은 매우 열악해지고, 이렇게 되었다면 신계-홍콩 국경선은 샌디에이고-티후아나 국경선을 가볍게 뛰어넘는 세계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은 국경선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홍콩은 마지막 총독인 크리스 패튼의 임기를 끝으로 중국령이 되는데, 이 때 홍콩인들이 받은 충격과 불안감은 실로 대단한 것이였으며, 실제로 과거 베트남이 공산화 되었을 때 탈출한 남베트남인(보트피플)처럼 홍콩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버린 이들도 꽤 된다. 특히 많이 간 곳이 캐나다에서도 밴쿠버다. 물론 현재는 1국가 2체제가 정착되자 다시 돌아온 사람도 많다.(이 시기의 홍콩을 무대로 한 홍콩 97 같은 작품도 있을 정도) 물론 후술하겠지만 중국으로의 복귀를 환영, 지지한 홍콩인들도 꽤 있었다. 주로 대륙 출신들이었다.

중국이면서 동시에 영국 같은, 또는 외국 같은 특이한 동네. 중국 땅이라지만 제법 따로 놀고 거의 보호'국' 수준의 자치를 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중국령은 중국령인지라, 홍콩 반환 당시 타이베이중화민국과 수교하고 있으면서 홍콩에 영사관을 설치했던 16개국[38]은 영사관을 폐쇄해야 했다.[39]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당시 중화민국과 수교가 유지되고 있었지만 이미 1996년 11월에 1998년 1월 부로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겠다는 선언을 했었기에(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과도기 동안 영사관을 유지하는 것을 허락받았다.[40] 그리고 바티칸은 중화민국과 수교하는 관계로 아직까지 대사관을 홍콩에 두지 못하고 있고 대만을 거쳐 일을 처리하는 형편인데 중국과 수교한 뒤에는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홍콩 가톨릭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홍콩인 신도들의 신앙심도 깊어서 정식 교황청 대사가 파견되면 꽤 도움이 될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세계 각지에 이렇게 점거하고 있는 땅들이 있다.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제도, 스페인의 지브롤터, 인도의 차고스 제도 등이 있다. 그러나 반환한 건 홍콩밖에 없다. 아마 영국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이 무섭긴 무서웠던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중국은 워낙에 대국이고 청나라 말기야 상태가 안 좋았지만 덩샤오핑이 집권한 후에는 무섭게 떠오르며 옛 힘을 되찾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 재래식 군사력으론 아직 중국군이 현대화가 안 되어 영국이 우월했고 미국과의 동맹도 있었지만 이 추세가 오래 못 갈것이란 생각에 그냥 반환했다.

5 대외관계

현재는 중국령의 특별행정구이지만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던지라 서방 이권도 많이 몰려있어 중국과 서방 간 중재지 역할을 한다. 중화민국과도 교류가 많고 이권이 얽혀 있어 양안 간의 중재지로 기능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중국, 서방, 일본, 한국 모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5.1 중국 본토(대륙)

일국양제의 시행으로 중화인민공화국 본토와는 국방, 외교 부분을 제외한 많은 것이 분리되어 있으며, 서로를 오가는 데에도 출입국 심사에 준하는 행정구역 경계 출입 검문이 필요하다. 실상 국가간의 왕래 시 시행하는 출입국심사와 다른 점은 전혀 없다. 그래서 본토와 홍콩을 오갈 때는 여권을 사용해서 출입한다.[41] 홍콩 거주민이 대륙을 여행하려면 중국 정부에서 허가증을 발행받아야 하며 대륙 거주민도 홍콩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홍콩 거주민은 내륙 여행허가증이 비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륙을 오갈 때 이것이 여권에 부착되어 있어야 한다. 밑에서 말할 영국 해외여권을 가진 홍콩 주민 역시 마찬가지로 내륙여행 허가증이 있어야 한다. 첵랍콕 공항에서부터 수 많은 중국대륙인들이 중국 여권을 들고 대기한다.

외국 여권 소지자가 홍콩에서 중국 대륙을 가려면 정식으로 발급받은 중화인민공화국 비자[42]가 있어야 한다. 본토용 비자가 없을 경우 선전과의 경계인 로우 및 록마차우 등에서 도착비자를 발급하나 이 비자로는 내륙으로는 못간다. 중국 대륙에서 선전을 오가는 데에도 통행증이 필요하고 검문을 하기 때문에 선전 밖을 벗어날 수 없다.

외국인과 홍콩인 둘 다 내륙여행 허가는 중국 대사관 역할을 하는 중국정부 대표부 및 산하의 신화여행사가 발급한다. 스탬프의 경우 광둥 성을 통해 본토로 들어가면 중국본토의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가 발급하는 입국 스탬프가 찍힌다. 본토의 선전과는 지하철로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직통 방식이 아니라 선전 지하철MTR가 중국 본토와 홍콩의 경계에서 환승역 형태로 만나며, 검문을 거쳐 환승해야 한다.

반정부 정치인 등 중국 공산당의 심기를 거스르는 인물의 경우 비자/내륙여행허가가 떨어지지 않으며 이전에 발급받았다 하더라도 철회될 수 있다. 실제로 민주파 정치인 일부의 내륙여행허가가 당국에 의해 취소되어 베이징-홍콩 정계 간의 갈등을 빚은 바 있다.

홍콩 거주권이 있는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의 경우[43] 홍콩 특별행정구 여권(香港特別行政區護照, HKSAR Passport)을 받을 수 있는데 중국본토에 후커우(戶口)를 갖고 있는 중국 국민이 발급받는 중화인민공화국 여권(中國護照, Chinese Passport)과 다르다. 물론 홍콩여권도 국가코드가 CHN이라고 찍히긴 하지만 외국에 나가면 사실상 다른 나라 여권처럼 취급된다. 해외에서 외국인 등록을 할 때도 홍콩여권 소지자는 HONG KONG혹은 HONG KONG SAR로 등록하지 PEOPLE'S REPUBLIC OF CHINA로 등록하지 않는다. 중국본토와 홍콩은 같은 나라(중화인민공화국)지만 일국양제에 의해 정치체제가 분리되어 있으므로 홍콩을 주권국가에 준하는 취급을 하는 것일 뿐이다. 홍콩 독립운동과는 별개이며, 자신을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이라고 여기는 홍콩인들도 본토 여권이 아니라 홍콩 여권을 갖고 있으면 '중국'이 아니라 '홍콩' 국적으로 등록해야 한다. 홍콩 여권으로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나라가 대부분인 반면 중국대륙 여권은 거의 없다시피 하며 홍콩 여권 소지자에게 비자면제를 해 주는 싱가포르는 중국 여권 소지자에게는 최장 2시간이라는 까다로운 영국 입국 수준의 입국심사를 한다. 홍콩 여권으로 아직 미국비자가 필요하지만 미국비자의 악명이 무색하게 금방 나온다. 별 다른 질문도 없이 체류기간과 목적 확인하고 신분 확실한 사람인지만 확인하고 땡. 이쯤 되면 프리패스다. 비자 발급 문제만 나오면 한국, 대만에서 반미주의자를 양성한다는 소리를 듣는 미국재대협회(대만의 미국 대사관격)나 주한 미국 대사관을 생각해보면... 한국, 대만이 사증 면제 프로그램에 가입한 만큼 조만간 해줄 것으로 보인다. 법적으로 중국 국민인 만큼 해외에서는 중국대사관이 홍콩, 마카오 및 해협 동포과를 운영해 국외주재 홍콩 주민들을 위한 업무를 처리한다. 그런데 중국 본토 및 중앙정부에 반감을 가진 홍콩인들은 문제가 생기면 중국 대사관 안 가고 일부러 대만 대표부나 홍콩 상공회의소로 간다고 한다. 참고로 홍콩 정부는 세계 각국에 상공회의소를 운영해 특별행정구 주민들의 영사 업무를 처리한다.

단 홍콩 주민이어도 중국 국적자가 아니면 홍콩 여권을 받을 수 없다. 무국적자는 여권 대용으로 비자목적용 신분증(Document of Identity for Visa Purposes)을 발급받을 수는 있지만 이 외의 경우에는 자신의 국적에 맞는 여권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44] 중국 국적으로 귀화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부모 대에 중국 국적자 혹은 청나라, 중화민국 국적자가 없을 경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중국 본토와의 육상 경계에서 사실상 출입국 검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으로 중국 본토의 공항에서는 홍콩, 마카오, 대만 방향 여객기 타는 곳을 국제선 탑승구와 겸용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정책 상 중국 본토의 공항에서는 '국제선 및 홍콩, 마카오, 대만행 노선'이라고 써져있다. 홍콩, 마카오의 경우에는 어차피 영역 밖으로 나가는 노선밖에 없으니 그냥 국제선으로 퉁치고 안내한다. 중국 본토와 홍콩 간, 홍콩과 마카오 간에는 주파수가 서로 달라서 휴대폰이 터지지 않으며 양측 지역으로 이동한 경우 로밍해야 한다. 차량통행은 영국, 일본과 같은 좌측으로 우측통행인 대륙이나 대만과 다르다. 비슷하게 영국령이었던 싱가포르도 좌측통행이다.

1997년 홍콩 반환식 영상. 2년 뒤 마카오에서도 비슷한 반환식을 실시하였다.

물론 홍콩의 중국 복귀를 지지한 사람도 있었지만, 홍콩 사람들은 홍콩 반환 이후 자신의 정체성에 큰 혼란을 느꼈다. 백년 가까이 영국인으로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중국인이 되었으니, 정체성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쉬운 게 아니다. 이 때문에 중국 본토에 반대하는 감정을 갖고 있는 홍콩인들이 존재한다.

사실 민주적인 선거제도가 도입되기 전인 70년대까지는 영국에 반대하고 중국을 지지하는 것을 '애국'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의외라면 의외라고 할 수 있겠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홍콩의 선거는 간선제 형태였고 민주적인 형태의 선거가 처음 시행된건 1982년도였다. 본토에서 문화대혁명이 발발하자 그에 응하여 1966년 4~5월에 꽤 큰 규모의 반영(反英) 폭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 사건에 영향을 받아 작품이 폭력적인 성향을 띄게 된 감독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장철. 그러나 70년대 이후에 문화대혁명의 실체가 드러나자 홍콩인들이 중국 본토에 대해 적잖이 실망했으며, 개혁적인 성향의 덩샤오핑이 중국을 개방하고 자본주의를 도입하자 중국의 개혁, 민주화에 기대를 걸었지만 1989년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고 중국의 정치개혁이 좌절되면서 홍콩인들이 크게 실망하게 된다. 실제로 중영공동선언 당시 일국양제의 원칙이 발표되었음에도 천안문 사태 등에 데인 홍콩인들이 대거 영연방 국가로 이민가기도 했다.

일단 1국가 2체제와 특별행정구 지정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중국의 급속한 성장을 지켜보면서 중국본토와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앨빈 토플러 등도 홍콩이 광둥성과 함께 중국에서 독립할 것이라고 예측하거나, 쿼런틴 같은 SF소설에는 탈주한 홍콩인들이 호주 북부에 뉴 홍콩을 세운다는 설정도 있는 등 90년대에는 각종 예측들이 난무했으나[45] 그럭저럭 일국양제가 잘 돌아가는 걸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본인의 정체성을 홍콩인(지방)이자 중국인(국적, 혹은 민족)으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다.

100년 이상을 중국과 분리되어 살아왔으니 홍콩인들의 대륙에 대한 반감은 어쩔 수 없는 문제다. 그래도 , 사이판. 하와이호주 북부 등에 뉴 홍콩이 들어설 것이라니 하는 예측이 난무했던 1990년대보단 낫다.

상당수의 홍콩 주민들은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 혹은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정부의 일국양제 훼손 시도에 비판적이다. 유커들의 추태와 싹쓸이 쇼핑까지 더해져 중국 본토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홍콩 경제는 이미 완전히 중국에 종속된 상황이라 홍콩 주민들도 그저 말로만 반감을 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홍콩 독립운동이나 영국령 복귀 같은 극단적인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지지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으며 실현될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 대다수 홍콩 주민들의 요구는 그저 행정장관 직선제와 중국이 홍콩 반환의 조건으로 영국에 약속한 고도의 자치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홍콩에 완전한 자치를 허용할 경우 홍콩과 인접한 광둥 성으로 민주화 운동이 확산될 우려가 있어 홍콩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 공산당이나 중앙정부에 대한 반감은 강하지만 홍콩 주민들이 모두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주장은 '중국은 중공이 아니며 애국은 애당이 아니다.(中共不等於中國, 愛國不愛黨)'라고 한다. 홍콩에서 중국 공산당을 비난하고 천안문 민주화 운동 추모대회를 개최한다고 해서 모두 홍콩 독립주의자는 아닌 것이다. 홍콩의 주민들 중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독재를 피해서 망명한 중국인들도 있고 이들은 중국 공산당의 통치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중국본토가 민주화되어야 한다라는 발언을 하며 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추모하는 대회를 개최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홍콩이 중화민국의 통치 하에 들어가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으며, 이들은 당연히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나 그 주체가 중국 공산당이 아닌 중국 국민당일 뿐이다. 자세한 설명은 아래 타이완과의 관계 문단을 참고. 홍콩 독립운동 지지자들은 중국의 민주화에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중국의 민주화가 홍콩 정체성을 훼손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완전독립을 추구하는 것이고.

중국 본토에서는 영국에 의한 홍콩 점령을 보통 흑역사로 친다. 현대에서나 자본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체제가 의미를 가지지 당시 경위만 놓고 보자면 엄연히 외부세력에 영토를 뺏긴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본토 중국인들, 특히 분청들이 서양인들의 홍콩을 띄우면서 중국본토를 은근히 디스하는 관련 영상매체나 발언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국 본토인들은 홍콩에 딱히 악감정은 없다. 대만처럼 홍콩도 특별행정구로 본토와는 다른 체제로 돌아가며 중국을 구성하는 귀퉁이 변방의 좀 사는 섬으로 본다.

홍콩인들은 대부분 자신을 소개할 때 I'm Chinese나 I'm from China보다 I'm Hongkongese 혹은 I'm from Hong Kong(, China)[46][47]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많은데[48], 대부분의 홍콩 주민들이 중국대륙인으로 오해받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일화 참고. 이는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 자신을 캐나다인(Je suis canadien)보다 퀘벡인(Je suis quebecois)이라고 소개하거나, 스코틀랜드인이나 카탈루냐인, 바이에른인이 본국인 영국, 스페인, 독일보다 지역 이름으로 소개하는 경향이 더 큰 것과 비슷하다. 멀리 갈 것 없이 분당구민이 자신을 성남시민이라 하는 경우가 드물다. 실제로 중앙정부와 갈등이 큰 지방에서는 본국보다 지역 정체성을 더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홍콩도 비슷한 케이스. 절충안으로 Hong Kong Chinese(중국홍콩인, 중국인이면서 홍콩인, 홍콩인이면서 중국인)라는 개념도 있으나 홍콩이 국제도시인 만큼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독립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이 아닌 홍콩주민들)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홍콩 정부에 따르면 홍콩 시민 중에서는 8% 정도가 영국계 홍콩인과 인도인, 한국인, 조선족, 일본인 등 비한족계 홍콩인이다. 특히 무려 5%나 차지하는, 비한족 중 과반을 집어먹는 영국계 백인이 가장 메이저한 소수민족 집단이다. 이들의 이주 역사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식민지 때는 지도층이기도 했고 지금도 경찰 간부 등이 백인인 경우도 있다. 필리핀 이주민도 1% 정도이고 일본계 이주민도 2% 정도이니 생각보단 비한족계 이주민들이 있는 편. 그래서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은 다민족 팀을 표방한다. 영어가 공용어인 이유가 단순히 영국령이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현실적으로 외국인이 공존하는 곳이라 필요할 수밖에 없다.

중국 본토인과 홍콩인들의 격차는 무시못할 수준인데, 시민의식 특히 공중도덕이나 위생관념은 크게 차이가 난다. 중국 본토인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홍콩인과 중국 본토인을 직접 보면 바로 체감할 수 있을 정도. 전철 안에서 담배를 핀다거나 공공장소에서 침을 뱉는 행위 등 홍콩에 온 중국본토인들의 무개념한 행동 때문에 홍콩 사람들 뿐 아니라 대만 사람들도 대륙인들은 왜 저렇게 무식하냐? 하면서 멸시할 정도. 참고로 홍콩에서 감기에 걸렸는데 마스크를 안쓰고 다니거나 공공장소에서 시원하게 재체기를 해버리면 미개인 취급을 받는다 사스효과 솔직히 조선족과 북한인을 대하는 남한인 일반을 생각해보면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한국인도 중국에서 온 조선족을 이미 비슷하게 대하고 있다. 북한 주민의 경우에도 '김씨정권에 세뇌된 굶주리고 가난한 빨갱이들'이라는 인식이 박혀있고 북한이탈주민도 비슷하게 여기는 통에, 이런 격차를 해결하지 못하면 통일 이후 한국 사회는 헬게이트가 열릴 지도 모른다. 홍콩과 가장 가까운 본토의 도시가 선전인데, 선전 또한 경제특구에다 중국 내 1인당 소득이 홍콩, 마카오 다음으로 높은, 나름대로 잘 사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홍콩과의 이런저런 수준차이를 무시못할 수준[49]. 이럴진대 하물며 다른 지역과의 격차는...[50]

정확히는 홍콩의 시민의식이 대륙은 물론 한국보다도 2~30년 정도 빠르다고 보는게 맞다. 옛날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1970년대만 해도 현재 일부 대륙인들이 하는 무개념 짓을 일부 홍콩인들도 잘만 하고 다녔기 때문. 그래서 홍콩인들의 본토인 멸시를 우월의식, 선민의식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51] 물론 동시대인 6~70년대 일본인도 어글리 재패니스라 불릴 정도로 가관이었다. 1973년 클린 홍콩 캠페인 당시의 광고를 보면 파리괴수가 튀어나와 사람을 공격하는 쓰레기 투기 금지광고도 있었다. 어글리 재패니스라 불린 1970년대 일본인은 클리키 등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불리며 놀림감이었다. 홍콩, 일본 양국이 한국이나 중국본토보다 30년 정도 앞섰다고 보면 편하다. 한국 중국이 홍콩보다 낫다는 얘기는 아니고 이 때는 한국 중국은 세계에서 듣보잡 국가였다. 홍콩에서 살아보면 중국대륙은 당연하고 나름 선진국인 한국, 대만과의 격차도 꽤 크게 느껴진다. 생활 수준이 일본, 싱가포르와 비슷하다. 어글리 코리안 어쩌고는 어글리 재패니즈, 어글리 홍콩이즈들보다 한참 늦은 1980년대 말~1990년대 얘기다.

홍콩 도심 지하철에서 발생한 중국대륙인 여행객과 홍콩인의 말다툼이 원인이 되어 베이징대 교수란 작자가 홍콩인들을 개(...)라고 비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베이징 중앙인민정부의 홍콩 정치 간섭이 심화되고, 본토인이 대거 홍콩으로 밀려들면서 일자리를 뺏기고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부동산 가격도 덩달아 올라버려서 홍콩인들의 본토에 대한 감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특히 그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서민층, 청년층의 반 본토 정서가 심해지고 있다.

홍콩의 작가나 언론인들의 일부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52] 이들이 중국대륙에 수감되어 있음이 확인되어서 중국 공산당이 배후라는 소문이 퍼져서 중앙인민정부에게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홍콩인들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데 예전에는 베이징이 일국양제를 준수하여 홍콩에서 중앙인민정부를 비판해도 구속, 감금하지 않았으나 이번 일을 계기로 본토 내에서처럼 중앙정부에 대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땅이 좁은 홍콩의 특성 상 본토로의 월경이 어떤 식으로든 불가피해, 보는 눈이 많은 홍콩 내가 아닌 중국본토에 들어오길 기다렸다가 국경 등에서 몰래 잡아가 버리면 그만이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본토에서 석방되어 홍콩으로 귀환한 출판업자 처벌 경고로 논란을 빚고 있다.#

중국 본토의 풀뿌리 민주주의 지역 우칸 촌에서 당국, 주민간의 대립을 취재하던 홍콩 기자가 불법적으로 구금, 연행하자 홍콩에서 우칸 촌 주민들을 지지하고 기자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었다. #

2016년 10월 태국으로 출국했던 홍콩 우산 시위의 주동자 조슈아 웡이 태국 방콕수완나품 국제공항에서 밤새 억류되었다가 입국 거절을 통보받고 홍콩으로 돌아갔다. 태국 학생운동가들의 초청을 받아 방문하려던 것이었는데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애 따르면 중국 외교당국이 태국에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물론 태국도 현재 군부가 지배하고 있는 독재 국가이기 때문에 중국과 태국 양 국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중국 정부가 국제사회 감시가 덜 한 제3국행이나 본토행에 있어서 홍콩 독립운동가들이나 대만 독립운동가들, 중국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현재 중국 정부는 이를 극구 부인하며 주권국가 태국의 결정에 불과하다고 한다.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기율위)는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에 대해서 공개 비판을 해 홍콩에 대한 통제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홍콩 정부가 본토주의 등에 대해 경찰력 동원 등으로 좀 더 강경책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뜻. 애초 중국이 말하는 일국양제 지속이라는 것은 홍콩에 대한 강력한 통제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한편 홍콩 자체는 중국과 서방, 혹은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의 양안 간의 중재지로서 우스갯소리 반 진담 반으로 미국과 중국, 혹은 양안 간 전쟁이 날 경우 평화협정을 이 곳에서 맺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까지 있다. 홍콩 경제가 계속 튼실한 이유도 바로 한국이나 대만, 터키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없기 때문이다.

5.2 마카오

마카오와는 배로 한시간 거리이며 서로 간의 왕래도 많은 편이다. 참고: 홍콩에서 마카오로 페리타고 가기. 물론 출입국 심사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법적으로 같은 나라이므로 말은 '준'하는 절차지만 한국인이 일본 가듯이 사실상 다른 나라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마카오 주민이 홍콩으로 출퇴근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경제적으로는 마카오보다 홍콩이 더 발달해서이다. 홍콩 및 마카오 시민은 입국 심사대에서 같은 라인을 이용할 수 있다. 홍콩-마카오 슌탁 페리터미널에 가면 실제로 마카오 및 홍콩 시민용 레인은 중국대륙인, 외국인과 별도로 지정되어 있어 신속 통과가 가능하다. 현재는 홍콩 국제공항에서 출발해 마카오, 주하이를 잇는 30km에 가까운 교량(일부 구간은 해저터널)인 홍콩-주하이-마카오 대교(강주아오 대교)를 짓고 있어 이 페리도 버스 등으로 대체될 것 같다. 공사는 전 노선 연결작업이 마무리 되었다. #

5.3 대만

중국본토가 공산화되고 나서 타이완 섬 즉 대만이 중화민국의 중심지로 자리잡았고, 영국령 홍콩에도 공산화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오면서 중화권 반공진영의 양대 축과 같아진 홍콩-타이베이간 교류가 급증했다. 지금도 홍콩-타이베이 항로는 세계에서 복잡한 항로 중에 하나다.

일관되게 대만을 중국 영토로 규정하는 중국 중앙정부의 방침에 따라 홍콩 정부 또한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 반환 이전부터 교류가 많았던 관계로 양측 정부끼리 대표부를 교환하고 있다. 영국이 중국 신정부를 승인한 이후 국민당 정부가 주홍콩 영사관을 철수하면서 "중화여행사"라는 여행업체를 설립하여 영사 업무를 맡겼고, 반환 이후 10여년이 지나서야 양안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중국-대만 양측 당국의 의지에 따라 타이베이 경제판사처를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홍콩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타이완사무판공실 및 해협양안교류협회와는 별도로, 타이베이에 홍콩 경제대표부를 두고 있다.

정부 방침과는 별도로 일반 홍콩 주민들에겐 본토인이나 대만인이나 외국인에 준하는 시각으로 바라본다. 법적으로야 같은 나라 국민이지만 홍콩이 중국령이 된 지 20년이 채 안 되어서 완전한 동질성 회복을 이루지 못했고, 출입국관리도 본토 및 대만과 따로 하며, 결정적으로 홍콩 정부가 지나치게 주민들에게 친본토 의식을 주입하려고 해서 이에 대한 반감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중국 공산당에 반대하는 민주파 홍콩인들 중에 중화민국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에겐 본국 정부가 소재한 곳이 타이베이이므로 본토인보다는 대만인(정확하게는 중화민국 국민)과 동류 의식을 갖으며, 엄연히 중화인민공화국령인 홍콩에서 대놓고 청천백일만지홍기를 걸고 중화민국의 기념행사를 열기도 한다. 당연하지만 중국본토와 달리 코렁탕을 먹이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차라리 중화민국을 지지하는 범람연맹 지지자들이 더 다루기 편하고 코드가 맞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어쨌든 홍콩이 "중국"의 일원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나름 독자성을 유지하는 일종의 절충책인 만큼 비교적 이들의 주장은 대륙과의 마찰의 여지가 없다. 중화민국도 결국 중국이기 때문이다.

중화민국 정부는 영국과 단교한 이후 일관되게 홍콩을 자국령으로 바라보았으며, 중국계 홍콩 주민의 영국 국적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당시 홍콩 주민이 대만으로 유학, 취업 등의 이유로 6개월 이상 장기체류를 할 경우 자국민으로 간주되어 호적 등록 및 남성의 경우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6개월을 채우기 전에 홍콩으로 귀국한 뒤 다시 대만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홍콩의 독립주의자들은 대만 독립주의자들과 연대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대만의 독립주의자들이 홍콩에서 입국금지를 당하기도 한다. 실제로 시대역량의 대표 황궈창이 홍콩 국제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되어 대만으로 돌려보내졌다. 고도의 자치를 누리지만 어차피 중국의 일부인 만큼 중앙인민정부의 심기를 거스르는 인물을 홍콩 자의로 입국을 허가하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대놓고 입국금지당하는 사례는 드물고 대개는 홍콩에서 광둥 성으로의 내륙여행허가가 안 떨어져서 타이베이/홍콩과 베이징 간 마찰 요인이 된다. 대놓고 입국금지 사례가 계속 나오면 국제 문제가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국제사회 간섭이 덜한 중국본토 입국을 틀어막는다.

홍콩은 중국과 서방의 관계처럼 양안관계의 중재지 역할도 수행한다. 실제로 중국 국민당중국 공산당의 3차 국공합작이라 불린 2005년 정당 간 회담은 홍콩에서 열렸다.

5.4 영국

영국은 과거 식민지배 종주국으로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여러가지로 홍콩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홍콩 반환 협정에 따라 일국양제와 함께 영국이 합법적으로 홍콩 내정에 개입할 수 있기 때문. 다만 반환 이후 주권에 대한 입장은 단호하며 분리주의자들의 영국 재편입 요구에 대해 "영국은 홍콩이 중국령임을 인정한다."라고 하며 선을 그었다. 어쨌든 반환 협정으로 인해 자기들 이권도 지키고 이래저래 나름 이익을 건진데다가 애초 시작이 제국주의 침략전쟁인 아편전쟁이라 계속 버텨도 관타나모나 지브롤터처럼 국제사회가 욕을 한 바가지 할 판이었다. 물론 초강대국으로 깡패 짓이 얼마든지 가능한 미국이라면 중국에 사용료를 내거나 해서 뻐티기가 가능했겠지만 문제는 1982년 당시 영국은 영국병을 앓으며 상태가 안 좋아서 문제...

과거 식민지 시절에는 영국 해외여권(BN(O) Passport)을 썼는데 영국령 해외영토의 주민들에게 발행하던 일종의 식민지 여권으로[53] 무늬만 영국여권이라 영국 영주권이 없고 솅겐조약 대상도 아니었다. 현재는 정면에 중국 국장이 찍힌 홍콩SAR 여권을 대신 쓴다. 홍콩인들 중 20~30대 이하 세대는 전원 홍콩 여권이라고 보면 된다.

5.5 한국

1940년대 설립된 한국의 총영사관이 있으며 중국의 공산화 이후에도 남아서 영사업무를 수행했다. 엄밀히 말해서는 1997년 이후 중국 대사관 휘하의 영사관이 되는 것이 맞으나 사실상 따로 놀고 있다. 이는 다른 주홍콩 영사관도 마찬가지로 베이징의 대사관과는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냉전 시대 한국과 같은 자유진영에 속해 있었기에상당히 오래 전 부터 민간교류가 활발했고, 영국령이라는 특수한 환경속에서 서구문물을 빠르게 수용하며 경제성장을 이루었기에 한국에서의 이미지는 상당히 좋은 편. 종주국인 영국군이 6.25전쟁 때 파병되기도 했고, 이후에도 자유진영의 입장에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왔다. 단교이후의 한국-대만과 달리 홍콩의 경우는 여전히 호감을 느끼는 한국인이 많으며 진보 성향의 한국인들 중에서는 우산 혁명 당시 지지를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한국에서도 6월 항쟁민주화 투쟁을 벌였던 역사가 있기에 중앙인민정부의 홍콩 민주주의 훼손시도에 대해 비판적일 수 밖에 없으며, 홍콩 측에서도 한국의 민주화운동 역사를 벤치마킹 하고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투쟁을 지지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한 모양이다. 실제로 홍콩의 한인 유학생들이 우산 혁명에 많이 참여하기도 했다. 블로그 리뷰 특히, 해외여행이 어려웠던 시절에도 항공편이 일찌감치 개설되어 상류층들의 해외쇼핑 단골 여행지로 자리매김하면서 지금까지도 쇼핑천국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대한항공의 전신 대한국민항공사가 김포-쑹산-카이탁 노선을 개설한 적이 있으며, 캐세이퍼시픽 항공중화항공(1992년 단교 이전까지)도 일찌감치 김포-카이탁 노선을 걸어두고 있었다. 특히 캐세이퍼시픽 항공의 경우에는 항공편 개설 이후 단 한번도 단항한 사실이 없다. 침사추이의 경우에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쇼핑의 성지 취급이다.

1970년대부터 홍콩 영화가 한국에 많이 수입되어 성룡, 홍금보 등의 액션배우들이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으며, 성룡의 경우 무명시절 끝자락이던 1970년대 중반에 한국-홍콩 합작 영화를 다수 촬영하며 한국에서 장기체류 하기도 했을 정도.[54] 중국으로 반환된 후인 21세기에 들어서는 중국대륙이나 일본 등 다른 동아시아처럼 홍콩에서 한류가 유행하는 역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원더걸스, 소녀시대 등 한국 걸그룹이 인기가 많다.

한편 조선족들도 꽤 있다. 국공내전때 한족들을 따라 이주한 조선족 말고도 최근 들어 대륙에서 건너오는 조선족들도 많다. 이들은 주로 한식당에서 설거지 및 배달 등의 잡일을 하며 일당은 한국보다 소득수준이 높은 만큼 꽤 비싼 편이다. 홍콩인들은 중국본토인의 일종으로 여기고 별로 안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국공내전 후 이주한 한국예라 불리는 조선족 후손들은 홍콩화되어 영국식 영어광동어가 주요 언어이고 한국어를 못 한다. 표준중국어야 학교에서 배워서 할 줄 알지만 딱히 조선족이라는 자각은 안 하고 철저히 자신을 홍콩인으로 본다. 그리고 본토에서 내려오는 광둥 성 출신 조선족들을 철저히 외국인 취급하며 못마땅해 한다.

북한인의 입국은 한국인과 달리 까다롭게 제한을 걸어 놓았다. 홍콩인들도 여행경보만 없을 뿐 사실 상 여행금지 내진 철수권고에 준하게 취급해 반드시 비자를 받아야 북한에 들어가도록 제한했고 비자 발급에 대한 타당한 사유가 있어야 발급된다. 북한인이 입국하려면 비자를 받아야 하며, 그것도 working permit 즉 정규 취업용이나 practice permit 즉 인턴비자는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수단, 소말리아 등과 함께 발급이 금지되어 있다. 한마디로 관광 비자만 된다는 얘기이다. 최근엔 UN제재가 강화되고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가 자국내 무역회사들이 몰래 북한과 거래하지 못하게 단속하면서 더 까다롭게 틀어 막고 있다. 현재 북한인은 사실 상 입국 금지, 북한 선적내진 편의치적 선박은 물론 북한에 기항한 제3국 선박도 콰이청 부두 기항 금지, 고려항공 여객기도 사실 상 취항 금지 조치가 내려졌고[55], 실제로 북한 선박의 홍콩 입항이 해사처에 의해 거부당하기도 했다.

한편 한중 관계에서도 일종의 중재지 역할을 한다. 한중수교 이전에도 홍콩에서 양국 외교실무자들이 접촉을 해 왔다.

최근에는 새로운 탈북 루트로 떠오르고 있는 지역으로,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출전했던 18세의 남학생이 한국총영사관으로 진입한것이다. 옆 기사 남학생은 9월 초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무엇보다 홍콩 경찰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와 달리 북송하지 않고 보호하다가 한국에 조용히 넘기는 걸로 처리한다. 기존 탈북 루트인 러시아나 중국본토, 캄보디아가 북송 위험도가 높고 외몽골이나 태국도 은근히 북송 위협이 있어서 대체 루트로 홍콩과 싱가포르 등이 떠오르고 있다.

5.6 미국

미국은 홍콩에 총영사관을 두고 있으며 베이징의 주중 미국대사관 휘하에 속해 있으나, 사실상 별개의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홍콩 정부는 중국의 주미 대사관과는 별개로, 워싱턴 D.C에 홍콩 상공회의소를 두어 비자 발급 등 영사 업무를 본다.

홍콩의 고등학생들은 유학을 결정할 경우 영국과 함께 미국을 많이 간다. 그 까다로운 미국 비자도 홍콩 여권 소유자에게는 매우 간단해 주홍콩 미국 총영사관에서 간단히 신분만 확인하고 바로 발급해준다. 특히 한국, 대만 학생에게 유독 까탈부리는[56] F-1과 J-1비자도 홍콩 학생은 발급이 더 쉽다. 입국 절차에서도 입국 거절은 기본이요 심지어 공항에서 추방(Expedited Removal)[57]당하는 사례까지 있는 한국인에 비하면 홍콩 여권 소지자는 홍콩 지역의 생활 수준이 선진국 수준일 뿐만 아니라 영어가 공용어라서 국토안보부 직원의 영어 질의에 성실히 응답하며 따라서 싱가포르 국적자와 함께 매우 간단하게 들어온다.

한국의 송탄역 근처 미7공군 오산비행장에서 열린 오산 파워데이 행사에서 중국 국적자는 러시아, 쿠바, 이란, 시리아, 미얀마, 리비아, 예멘, 소말리아, 수단 국적자는 입장을 못 했으나 중국 국적자라도 홍콩, 마카오 영주권자인 경우에는 입장이 허용되었다. NASA의 우주여행 프로그램도 중국 국적자는 미국 우주선 탑승을 러시아 국적자와 함께 금지했으나 홍콩과 마카오에 거주권이 있을 경우 상관이 없다.

1세기 이상을 서방 국가인 영국의 식민지로 지냈던 관계로 미국에 대한 시각은 중국 본토인과 비교했을 때 홍콩인이 좀 더 우호적이다. 극단적인 민족주의자가 아닌 이상에야 본토인들도 미국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봤을 때 홍콩인들이 더 우호적이라는 것. 1999년 주베오그라드 중국 대사관이 미군의 오폭으로 파괴된 일이 있었는데 본토에서는 격렬한 반미 시위가 일어났지만 홍콩은 조용했다.

홍콩의 분리주의자들은 미국이 계속 중국을 포위하고 견제해서 어느 정도는 독주를 막아야 독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더욱 미국을 지지한다. 홍콩 독립운동에 따르면, 홍콩이 영연방 도시국가로 독립한 뒤 미국, 영국, 한국, 대만, 일본, 싱가포르. 호주 등을 최우방국으로 삼게 된다.

5.7 일본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제국이 홍콩에 저질렀던 만행 때문에 일반 홍콩인의 대일 감정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특히 홍콩 학계와 일본 학계의 갈등은 한일, 중일간 갈등은 저리가라 할 정도다. 그래도 홍콩-일본간 교류는 꽤 많고 일본인들을 배척하는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다. 대만처럼 홍콩 내에서 주요 외국어로 일본어가 많이 쓰인다[58].더구나 러일관계 및 양안관계와 함께 동북아에서 험악한 기류가 흐르는 걸로 악명 높은 중일관계에 있어서 중일 간 중재지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기도 한다.

홍콩 정부는 주일중국대사관과 별개로 도쿄에 홍콩경제무역대표부를 두고 있으며 한국을 관할지역으로 둔다. 한국에 여행 온 홍콩 관광객들이 문제가 생기면 주한 중국대사관이 아닌 이쪽으로 갈려고 김포국제공항에서 하네다 국제공항으로 비행기 타고 가기도 한다. 어차피 1시간 반이면 가는 가까운 거리라서 그렇게 해도 된다. 사실 중국대사관의 홍콩, 마카오, 해협 동포과는 대륙 출신이 아닌 바에는 거의 파리 날리는 곳이라고 봐도된다. 중국 정부에 대한 반감 때문에 이쪽으로는 안 엮이려고들 한다. 대만의 외성인들도 대만대표부로 갔으면 갔지 중국대사관으로는 안 간다.

5.8 베트남

홍콩은 동남아시아로 가는 주요 관문 중의 하나로서 기능하고 있다. 당연히 베트남과의 교류도 많다. 베트남인들 중에는 경제 사정이 어려운 자국을 떠나 홍콩에서 공사판 막노동이나 음식 배달, 택배 배달 등 육체노동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다.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중국대륙,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 네팔과 함께 홍콩에 거주하는 외노자 중 최대 그룹이 베트남인이다

현 광동지방에 살고 있던 민족들은 북베트남의 민족과 같은 월족이었고 생김새도 말도 비슷하다. 광둥 성이나 윈난 성의 경우 베이징상하이 등 중국대륙 중심지들보다 하노이가 더 가깝다. 광동어표준중국어와는 차이가 크지만 베트남어와는 상당히 유사하게 들린다. 물론 광동어는 중국티베트어족이고 베트남어는 오스트로아시아어족이다. 즉 다른 계열. 정확히는 원래 오스트로아시안이던 원시 광동인이 한족화되어 한장어족에 흡수된 것이며 반대로 베트남어도 중국어 영향을 받게 된것이다.

참고로 홍콩인 중 독립 성향의 극우들은 베트남인들처럼 남월(南越)의 1대 황제인 고조 조타(찌에우 다)를 선조로 모신다는 얘기가 있다. 베트남 사람들만이 하는 주장이긴 하지만 역사를 생각하면 좀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리고 홍콩의 호스텔에 가면 베트남 비자 수속을 대신 해주기도 하고 여행사들도 베트남 비자 수속을 대신 해 준다. 한국인의 경우 베트남 무비자 방문이 가능하지만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는 아직 비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홍콩을 들려 비자를 받아 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59]

5.9 국제기구

홍콩의 외교 업무는 중국 외교부가 전담하기로 되어 있으나, 국제기구에 한해 홍콩의 참여를 허락하고 있다. 외교적으로 베이징의 압박을 크게 받는 대만과 달리[60] 홍콩은 '국호' 선택에 있어서 자유로우며 국제기구 가입시 국호는 'Hong Kong, China' (중국홍콩) 혹은 'Hong Kong SAR, PRC' (중국홍콩특별행정구)가 원칙이나 그냥 'Hong Kong'이라고 쓰기도 한다. 그래서 중국-홍콩의 관계를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둘이 다른 나라 아니냐고 오해하기도 한다. 홍콩의 대외 활동은 꽤 활발하며, 홍콩은 세계무역기구(WTO),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 14개의 국제 단체에 가입되어 있다. 모든 스포츠 대회에 중국 본토와는 별개의 팀을 꾸려 출전한다. 올림픽위원회도 홍콩은 중국 본토인 "중국올림픽위원회"와 별개로 "중국 홍콩 체육 협회 올림픽위원회"가 따로 있다.

6 종교

홍콩은 법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말로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고 실제로는 탄압하는 중국 본토와는 완전히 다르다. 한 예로 가톨릭의 경우 중국 본토에서는 공산당 관제교회인 애국교회 소속의 교회만 공식이고 로마의 정상 수위권 내 교회는 지하교회이지만 홍콩은 정식으로 로마 교황청 수위권에 놓인 교회이다. 그래서 홍콩마카오, 대만의 추기경이 중국 추기경으로 인정되고 중국대륙은 아직 인정 안 된다. 개신교도 중국과 달리 활동이 자유롭고 파룬궁도 활동이 자유롭다.

총 인구의 60%가 무종교 내진 무신론이고 40%는 종교인이다. 종교인은 기독교, 도교, 불교가 각각 20%씩 차지하는 모양새를 보이며, 젊은 세대로 갈수록 무종교화되거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경향을 보인다.

총 인구 중 40%를 차지하는 종교인 중에는 불교도교 그리고 기독교신자가 많은 편인데, 특히 도교 사원을 접할 기회가 드문 한국인 입장에선 도교사원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2010년 통계에 따르면 불교도가 21.2%(약 150만명), 도교 신자가 14.1%(약 100만명)로 집계되며 불교와 도교 사원이 무려 600여개 정도 있다고 한다. 포린 사원의 거대 청동좌불상 등 홍콩의 영화촬영지나 관광지로 유명한 곳도 많다. 단, 현재 도교 및 불교는 교세가 쇠퇴하는 중이다. 집안 전통만 불교나 도교인 젊은 층이 대거 무신론자로 갈아타버렸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도 2014년 기준으로 로마 가톨릭정교회, 개신교 등을 모두 합하여 87만 명으로, 700만 인구 기준 12% 이상으로써 교세가 만만찮게 크다.[61] 이 쪽은 2005년 72만에서 2010년 84만 명으로 확실히 수가 늘고 있다. 한국처럼 반기독교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민 오는 중국 대륙인들 중에 광둥 성의 지하교회 교인도 많아서이다. 물론 1997년 홍콩 반환으로 인한 불안감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대거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등으로 이민가고 그 자리를 본토 중국인이 차지하면서 교세가 쇠퇴했으나 2000년을 기점으로 다시 이민자들이 귀국하고 중국 본토인들 중에 개종자가 생기면서 수가 다시 늘고 있으며 현재 셀교회(cell church)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홍콩은 중국 대륙이나 일본과 달리 기독교가 보편화된 곳으로 중국인들의 교회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성공회의 유일한 동아시아 대교구가 홍콩 교구다.

그 중 개신교도가 6.7% 정도로 제일 많으며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 루터교 등 다양한 종파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영국의 영향으로 장로교성공회 교회가 제일 많은 편이다. 침례교는 침례대학 및 침례교 병원을 보유하고 있다. 홍콩 개신교는 미국 개신교가 들어와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 개신교와 다르게 영국 개신교가 들어와 복음주의이지 근본주의는 아니다. 한국에서 마이너 한 성공회루터교, 감리교가 여기서 흔하며 한국이나 미국 개신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로마 가톨릭 교도는 인구의 4.9% 정도로 한국, 마카오, 싱가포르, 필리핀, 레바논과 함께 아시아에서 그나마 가톨릭 영향력이 큰 지역에 속한다. 애초 아시아 최초로 가톨릭을 받아 들인 곳이기도 했다. 2014년 교황의 방한 당시에도 홍콩은 마카오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 중국 남부에서 홍콩, 마카오, 일부 대만인으로 추정되는 트위터 맨션들이 이 당시 폭주했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은 트위터를 틀어막는 곳이라.(...) 가톨릭은 다수의 사립학교를 갖고 있으며, 완차이에는 가톨릭교도 묘지도 있다[62]. 또 홍콩은 아시아에서 대한민국, 마카오, 중화민국,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레바논, 시리아와 함께 성탄절이 공휴일인 몇 안되는 곳이기도 하다.[63]

극소수의 정교회도 있다. 주로 아르메니아계 이민자들이 영국계 홍콩인의 일부로 자연스레 들어왔고 일부 중국인들도 믿는다. 망명 러시아 정교회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영국을 거쳐 들어온 소련 공산화 이후 난민들이다.

2014년의 우산 혁명은 모두 기독교인들이 주도했다. 학생 지도자인 조슈아 웡[64]도 그렇고 운동을 주도한 단체가 개신교가톨릭 계열 시민단체들이었으며 가톨릭 신자들의 참여가 특히 활발해, "예수의 사랑"이라고 쓰인 피켓과 예수상을 앞세운 천막들도 많았다. 참고로 홍콩 기독교인들은 대륙에서 망명한 파룬궁 신자들과도 연대하며 공산당의 종교 탄압에 반대한다.

까우룽 반도 침사추이에는'耶蘇是主"(예수는 주. 중국어로 야소가 예수를 뜻한다)이라고 한문으로 쓰인 대형 빌보드가 있다. 동아시아에서 기독교 색이 강한 빌보드를 보기 힘들단 점에서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내용 자체가 미국의 남부 바이블벨트에나 붙어 있는 신앙고백이다. [65]

그리고 홍콩 국제공항이 있는 란터우섬에는 노아의 방주라는 기독교 테마파크도 존재한다. [66] 역시 동아시아에서 찾기 힘든 곳이다. 한국에서도 몇몇 교회에서 이 곳을 답사하기도 했다.

홍콩 교회는 대형 교회가 흔한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아파트 안에 십자가 하나 달랑 세우고 天主敎堂 내진 生命堂 등의 간판만 세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큰 교회는 오래된 교회로 영국인이나 포르투갈 정복자들이 세운 교회이며 전부 성공회가톨릭, 루터교 교회들이고 크다고 해도 한국의 대형교회에 비하면 아기자기한 수준이다. 이렇게 아파트 내 교회가 흔한 이유는 바로 땅값이 비싸고 부지도 협소해 대형교회를 지을 터가 통 안나와서이다. [67]

무슬림 비율도 3.1%로 집계되며, 덕분인지 이슬람 성원이 5개나 있다.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인도, 이란에서 온 이민자들과 회족 출신 중국인들이 주축이라고 한다. 그 외 힌두교도, 유대교도, 시크교도 등 국제도시답게 다양한 종교가 분포해 있다. 유대교는 인구 중 극소수를 차지하는 유대인 계통의 홍콩 사람들이 신자로 숫자는 적지만 이들 유대인은 홍콩 경제에 화교와 함께 영향력을 행사한다. 영국계 홍콩인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유입되어서이다. 카두리 가든을 운영하는 바그다드 출신 영국계 유대인인 카두리 가문이 유대인이며 홍콩 회사 중 영국계 유대인 소유 기업도 많다.

대륙에선 금기시되는 파룬궁 신도들과 일본인들이 들여와서 주로 믿는 천리교 등 일본계 신흥종교도 극소수 존재한다. 이런 기타 종교들과 무종교인들이 50% 정도를 차지한다. 조사마다 좀 달라서 무종교인들은 그 이상을 보기도 한다. 무종교인은 일본처럼 전통종교를 미신으로 여기는 젊은 층에 많은 편이다.

7 경제

무디스 국가 신용등급Aa12011년, 2등급[68]
S&P 신용등급AAA
Fitch 신용등급AA+
명목 GDP3077억 $35위2015년, IMF
1인당 명목 GDP$42,09618위2015년, IMF
GDP(PPP)4144억 $44위2015년, IMF
1인당 GDP(PPP)$56,68910위2015년, IMF

[69]

홍콩은 한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릴만큼 성장한 글로벌 무역항이다. 또한 도심전체가 거대한 쇼핑센터를 방불케해 쇼핑의 천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음식은 꽤 싼편인데, 웬만한 음식이 20~30불 대이며 140원 환율을 기준으로 하면 3000~4000원인 셈이다. 외식 값이 이렇다. 우리나라에선 이 돈 갖고 김밥천국밖에 못 간다. 다만 홍콩을 포함한 중화권 국가들은 외식 문화가 발달해 있어 식사를 집에서 해결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2014년에서는 물가상승 때문인지 일반적인 대중음식점인 차찬텡의 음식가격대가 25~35불대(비싼건 50불+)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도 특가메뉴의 경우는 딱 30불 전후로 제공되고 밀크티/커피가 덤이다. 그리고 차찬텡같은경우 해당 점포에서 비싼 메뉴라고 해도 굉장한 가성비를 보장한다. 일례로 2015년 기준으로 후술할 차찬텡인 맥심MX의 고가 메뉴 중 54달러(홍콩)짜리 스테이크세트중 하나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다리, 베이컨, 소세지, 구운옥수수, 감자튀김, 구운 토마토, 빵으로 덮은 스튜, 소스로 구성되어있는데 고기들이 그릇에 꽉꽉 들어찰 정도. 참고로 그게 어느정도냐면 2015년 11월 환율 기준으로 8000원 짜리 메뉴에 저 정도 구성이면 미쳐 날뛰는 수준의 가성비다.

대신 의료비나 주차비, 집세는 엄청 비싸다. 의료비야 의료보험을 적용받으면 어느 정도 싸지기는 하지만 개인병원은 비싸다. 그래서 홍콩인들도 정부 병원에 간다. 정부 병원은 홍콩 시민은 공짜이고 외국인도 미국 달러 기준 1달러 정도의 싼 진료비로 진료받는다. 영국식 사회복지제도의 좋은 점으로 최소 미국처럼 돈없어 아파도 진료 못 받는 경우는 상상도 못 한다. 물론 그만큼 홍콩인들로 붐비는 건 감안해야 한다. 영국이나 호주, 캐나다도 마찬가지. 그러나 구급차에 실려 오면 당장 의료진이 본인에게 다 달라 붙는다! [70]

집세의 경우 일본 보다 훨씬 비싸서[71] 홍콩의 콩알만한 집에서도 월세가 400, 500이 나온다. [72] [73] , 보통 월세가 시내의 경우엔 300 전후로 나온다. 이 미친... 이렇게 집값이 비싸기 때문에 중국 대륙과의 경계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중국대륙-홍콩 간 경계인 로우역에는 매일 아침마다 헬게이트가 오픈. 전세는 없다.[74] 홍콩의 집들이 죄다 거대한 젓가락 같은 이유가 다 그런데 있다. 물론 상당수의 홍콩주민들은 공공임대아파트에서 살며 이런 아파트의 경우에는 월세비가 그리 많이 들지는 않는다. 다만 임대주택도 상당히 좁기는 마찬가지이며[75] 신청한 뒤에 받을려면 몇년이 걸리기 일쑤이고 2005년에 정책이 노년층 우선배정으로 정책이 바뀌면서 청년층이 공공주택을 받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 된데다가(우산혁명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을정도) 민간주택 임대료 상한제같은 정책이 없기때문에 공공주택을 배정받지 못한다면 일반적으로 벌어들이는 돈 가지고는 괜찮은 집을 구하기 힘들어서 상당히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돈이고 뭐고 없는 계층이나 이민자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쪽방촌에 거주하는데 쪽방촌은 그야말로 악명이 높아서 화장실이나 주방을 공용으로 쓰는 집도 월세비가 상당하다.

홍콩의 경제는 상당 부분이 서비스업에 의존한다. 1차산업2차산업은 정말 안습. 슈퍼마켓의 공산품과 식품은 중국산과 수입산이 대부분이다. 홍콩산은 까우룽유업, 가든제과, 비타쏘이(維他奶, 두유/음료업체) 같은 일부. 일본산이 꽤 많으며 아예 일본산 공산품을 전문으로 파는 얏뿐씽(日本城, Japan Home Centre)이라는 체인점도 있다. 요즘에는 한국산 공산품 역시 만만찮게 보인다. 일종의 수입식품점인 759스토어에는 일본식품과 한국식품의 지분이 비등하며, 특히 화장품 업계에서는 한류 영향인지 한국 화장품들을 많이 밀어주는 모양.

금은 시계 보석상이 굉장히 많다. 중화권 최대의 보석상 체인인 차우따이푹(周大福, chow tai fook)[76], 차우생생(周生生, Chow Sang Sang), 룩푹 보석(Lukfook Jewelry)이 3대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어지간한 번화가라면 저 보석상들이 발에 채일정도로 많이 입주해있다. 이외에도 보석 및 명품시계등을 취급하는 상점은 한두군데가 아니다.

특히 은행업이 발달되어 있어 홍콩은 뉴욕, 런던, 도쿄와 함께 세계 금융 중심지들 중 한 곳이다. 홍콩을 본거지로 삼는 회사에는 HSBC, 스와이어 그룹(Swire Group, 캐세이퍼시픽 항공의 모회사. 본사는 런던에 위치), 허치슨 왐포아(Hutchison Whampoa, 왓슨스의 그곳) 등이 홍콩을 아시아에서의 중심지로 삼고 있다. 특징으로, 지폐를 발행하는 은행이 한 군데가 아니다. 예를 들자면 화의 경우 전부 한국은행권, 화의 경우 전부 일본은행권, 미국 달러의 경우 전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은행권이지만, 홍콩달러의 경우에는 HSBC[77]스탠다드차타드[78], 중국은행(홍콩법인)의 3군데에서 화폐를 발행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똑같은 액면금액의 지폐도 3종류가 존재한다.

보통 사자 얼굴이 비스듬하게 그려진 HSBC의 지폐가 가장 많다. 중국 은행은 중국 은행 빌딩이, SC는 물고기, 용 등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있다. HSBC의 개명 전 이름인 HongKong and Shanghai Banking Corporational limited가 적혀있는 사자 측면 얼굴 권도 가끔 있다. 그러나 액면가가 같으면 같은 색상을 사용하기 때문에 헷갈릴 염려는 없다. 가장 신기하게 생긴 2007년 이후로 나온 10달러 짜리 지폐는 종이가 아닌 플라스틱권으로 왼쪽 중간이 투명한 플라스틱이다. 10달러는 정부에서 발행하는 듯. 정부기관 중에서도 사실상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홍콩금융관리국에서 발행한다. 홍콩은 참고로 독립된 중앙은행이 없다. 동전은 10달러부터 5달러, 2달러, 1달러와 가끔 50센트와 20센트, 10센트를 볼 수 있다. 센트들은 모두 노란색이고 크기가 작다. 2달러와 20센트는 별처럼 뾰족뾰족 돌기가 나있다.

마카오에서도 홍콩 달러를 쓸 수 있다. 사실 마카오 돈인 파타카는 한국에서 현지 환전이 힘든지라. 교환율은 거의 1대 1이나 홍콩 달러는 마카오에서 쓸 수 있는데, 역은 불가능하다. 홍콩 달러의 가치가 마카오 파타카에 비해 미세하게 높기 때문이다. 근데 마카오에서 웬만한 가게는 홍콩 달러를 구비하니까 홍콩 달러로 받고 싶으면 그렇게 말하면 된다. 사실 대체적으로 관광객이 홍콩 달러를 주면 알아서 홍콩 달러로 잔돈을 주긴 한다. 그리고 웬만하면 마카오에서 홍콩 달러를 쓰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일단 홍콩달러가 조금 더 비싼데다 호텔 등지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의 값은 홍콩과 같기 때문에, 마카오에서 쇼핑하는 것이 어쩌면 조금 더 쌀 수는 있다. 그리고 마카오 카지노에서는 자국 화폐는 취급 안하고 홍콩 달러만 통용된다. 마카오 파타카 밖에 없다면 카지노 내 환전소에서 환전해야 한다(...).

빈부격차가 심한 편이다. 심지어 중국 본토보다도 지니계수가 높은데, 2012년 기준으로 홍콩에서 하위 10%의 월소득은 2,070홍콩달러(약 30만 원)에 불과했으나 상위 10%의 월소득은 95,000홍콩달러(약 1,300만 원)에 달해 그 격차가 무려 45배에 육박한다. 세금과 복지를 고려해도 지니계수가 0.475로 세금과 복지를 고려하지 않았을 때의 미국 지니계수와 비슷한 수준.출처 1인당 GDP 자체는 42,437 달러정도 되며 평균임금은 2015년 기준으로 221만원[79] [80]정도 한다. 홍콩 경제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튼실하다는 증거가 바로 청년실업이 한국처럼 심하지 않다는 것. 3차산업이 전체 산업의 99%를 담당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남아돈다.[81] 실제로 한국에서 해외취업으로 본국 취업난을 피해 홍콩으로 가기도 한다. 한국과 비슷하게 취업난으로 몸살을 앓는 영국포르투갈 젊은이들도 홍콩으로 향한다. 그래서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홍콩에 서양인이 흔히 보이는 것이다. 과거 식민지배 상전이었던 유럽인이 옛 식민지에 와서 일자리를 구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같은 구 영국령인 싱가포르호주, 구 포르투갈령인 앙골라, 브라질, 카보베르데, 마카오에서도 흔히 보인다. 앙골라나 브라질이 개도국인데도 불구하고 워낙 양질의 일자리가 없는 나라가 포르투갈인지라 이들 나라는 졸지에 백인 비율이 늘어나 대박이 터졌다.[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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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조사한 홍콩의 경제 규모. GDP(국내총생산)가 3,504억 달러로 총 19위를 차지하였다. 홍콩은 도시권(메트로폴리스)이 없는 단일 도시란 것을 감안한다면 단일 도시로서는 세계에서 열 손가락 내에 충분히 드는 경제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그 외 중국 도시는 상하이가 5165억 달러로 전체 10위, 베이징이 4272억 달러로 전체 13위를 기록했고, 톈진은 3087억, 광저우는 3204억, 선전은 3024억이다. 즉, 홍콩은 중국 내 3대 경제권 중 하나다. 홍콩증권거래소의 규모는 아시아에서 도쿄증권거래소,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이은 3번째이다.

8 교육

알려진 것처럼 한족들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이다. 물론 대학을 가지 않는 청년들도 꽤 있다. 한국보다는 대학 진학률이 낮은 편인 70% 정도 진학률을 보인다. 물론 대학 진학 희망자들 사이에는 경쟁이 치열하며, 대학 자체가 8개 정도뿐이고 이마저도 다들 한 가닥 하는 명문들이라 들어가기가 빡세서 80%는 영국, 미국으로의 유학을 택한다. 영국에서는 1997년 이전에 태어난 학생의 경우 영국 국적자로서 영국/EU/EEC 국적 학생들과 같은 저렴한 학비 (9 000파운드로 비 EU/EEC 출신 학생이 내는것의 반 정도 된다.) 를 내고 대학에 다닌다. 캘리포니아뉴욕 소재 혹은 보스턴 소재 대학에서 홍콩 유학생이 꽤 보인다.[83] 그리고 학력이 상대적으로들 높은 편이지만 취업난은 한국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애초 대학 나올 정도면 사무직 등 3차산업 위주인 곳이라 직장 잡는 건 일도 아니다. 심지어 자체 인력이 모자라 외국인도 수입하는 곳이 홍콩이다.[84]

8.1 초/중등 교육

영국식 학제를 적용하며, primary school(小學) 및 secondary school/college(中學. 미국과 달리 대학이 아닌 중고등학교를 뜻하며 영국식 영어이다)의 2가지로 나뉜다.

특이하게도 영어 교육 시 작문교육을 중요시해 초등학교 때부터 영작문을 제대로 배운다. 중국어도 마찬가지로 작문을 중요시한다. 어차피 말로 하는 광동어표준중국어 둘 다 작문은 동일한 중문법을 쓰는 백화문이라 가르치는 데 문제가 없다. 회화 교육 역시 싱가포르처럼 원어민이 직접 해당 언어를 가르친다. 영어미국인영국인 강사들이 주류고 일부 호주뉴질랜드 출신들이 있으며[85] 공식적으론 영국식 영어를 가르치나 구어로는 미국식 영어를 가르친다. 미국인 강사들이 많아서 그렇다.

수학 교육은 한국, 일본, 대만, 중국, 싱가포르 등과 마찬가지로 꽤 어렵다. 영국본토에서 이민 온 영국인들이 자녀들을 홍콩 학교에 보냈다가 수학 점수가 뒤쳐지는 일이 많다고들 한다. 물론 그 만큼 수학 잘 하는 학생들도 많다. 원래 황인 자체가 서양에선 수학 잘 하는 족속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홍콩의 중고딩들도 교복을 입는다. 디자인은 한일 양국과 같으며 학교에 따라 예쁜 교복도 얼마든지 있다.

8.2 고등 교육

2010년대 들어 학벌의 영향이 많이 완화된 일본과 달리 아직고 학벌직장을 잡는 데 좋은 역할을 하고 심지어 중국보다도 빈부격차가 크기 때문에[86] 대학입시 열기가 미치도록 높다. 동네마다 입시 학원이 꼭 하나씩은 있는 편이고, 우리나라의 메가스터디같이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기업 학원들이 여러군데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과는 다르게 학원 이름보다도 스타 강사를 내세우면서 광고를 많이 하는 편이다. 수많은 광고들이 버스에도 붙여져 있는걸 볼 수 있을 정도. 홍콩대[87], 홍콩중문대, 홍콩과기대에 진학하기 위해 많은 학생들이 혹사를 당하고 있다.

홍콩의 대입 시험인 HKALE은 흔히 현존하는 국가주관 대학입시시험중 가장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적어도 홍콩인들은 그리 주장한다.[88] 일단 1950년대 영국 식민지 시절 본국의 제대로를 그대로 도입해 온 것이 시초. 그 뒤로 영국 본토나 싱가포르 등에서는 구조가 많이 바뀌었지만 홍콩의 경우는 아직 그때의 모습을 가장 온전하게 보전하고 있는 케이스다. 일단 수능보다도 얼핏 보면 훨씬 어려운 것 같지만 일단 HKALE은 한 과목당 6시간동안 시험을 치룬다. 시험지가 두개로 나눠져 있어 첫번째 시험지는 오전에 치르고 두번째는 오후에 치르는 것. 당연히 시간 배분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문제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만... 그걸 따져도 일단 어려운건 맞다.

특히 사회과목의 난이도는 타국 대학교 1,2학년 수준과 맞먹는다고 보면 쉽다. 더군다나 문과과목의 특성상 에세이를 6시간 동안 쓰는 경우가 많은데 당연히(!) 영어로만 정답을 쓸 수 있는데다가 문법이나 철자도 읽는데 지장을 준다고 생각되면 감점처리 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한국과 정 반대로 문과가 시험이 어려운 케이스. 그렇다고 이과가 쉬운 것도 아니다! 일단 무엇보다 시험 범위가 기절하게 넓은 편이다. 명문고라는 학교에서도 고등학교 정규 교육시간만 사용해서는 진도마저 다 못나가는 상황까지 종종 발생한다. 학원에 의지하지 못하면 사실상 시험 치르는 자체가 불가능한 것. 주로 문과 과목이나 생물등에서 일어난다. 2때 생물은 고사리책을 끝내며, 수학은 테일러급수를 배우는데 그게 정규교과과정이다 이로 인해 자살같은 사회문제가 가면 갈수록 크게 대두되어 결국 2013년이 HKALE이 치뤄지는 마지막 년도가 될 예정이다. 새 시험인 HKDSE는 범위는 전과 비교하면 절반 정도로 줄어들게 된다. 그래도 수능보다 매우 어렵다 이러한 감축이 가능한건 대학 과정이 대신 1년 늘어났기 때문이긴 하지만...

여전히 대입 경쟁이라는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범위가 줄어들어 공부할 양이 줄었다 해도 홍콩에 위치한 대학 정원 숫자는 그대로이기 때문. 홍콩에 있는 4년제 종합대학교8군데 뿐이고 평균적 정원조차 한국 대학들보다 적은 편이다. 홍콩 인구의 7배 가까이 되는 한국의 경우는 종합대학교가 300개 가량 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흠좀무.[89] 한국에 인서울 대학만 있다고 생각해보면 되겠다.

이러한 특이한 점 때문에 해외로 유학을 하는 학생이 많은데 홍콩 고등학생 중 매 3명의 학생이 홍콩내 대학 진학을 할 때마다 2명의 학생이 해외대학교 진학을 하는 엽기적인 곳이다. 어느 해에는 미국 대학 진학을 한 홍콩 고등학생의 숫자가 홍콩내 대학 진학생 수보다 많은 적도 있었으니..그래서 캘리포니아뉴욕 등에서 홍콩에서 온 유학생을 볼 수 있다. 물론 중국 본토인 유학생에 비해 쪽수에서는 밀려서 별 존재감은 없지만 확실히 자신들을 구분해서 인상 자체는 깊게 남는다. 이 점은 대만인 유학생도 마찬가지이다.[90]

아시아 최고 명문대학들인 홍콩대학, 홍콩과기대학, 홍콩중문대학등이 있으며 홍콩이 아시아의 금융 허브라는 점 때문에 홍콩으로 유학 오는 외국인 유학생도 많다.

9 군대와 경찰

홍콩 시민들은 병역 의무가 없다. 국방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맡는다.

9.1 군대

영국 식민지 시절에는 물론 영국군과, 영국군에 의해 창설&훈련된 현지 홍콩인 부대가 홍콩의 수비를 맡고 있었다. 홍콩 반환 이후에는 철수한 영국군 대신 중국 인민해방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중국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 참고.

9.2 경찰

중국의 공안과는 별도의 조직인 홍콩 경찰(Hong Kong Police, 香港警察)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다. 홍콩 경찰은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만큼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자세한 것은 후술된 내용과 홍콩 경찰 참조.

SWAT 같은 개념의 경찰 특공대도 있는데 이름은 영어로 Special Duties Unit. 줄여서 SDU로 불러도 되지만 영문 이름보다는 '비호대(飛虎隊)'로 자주 불리운다.[91] 설립 자체는 1962년에 이뤄졌지만 진짜 경찰특공대다운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70년대 후반부터다. 조단역 근처 대로변에서 적대하는 갱들이 AK소총으로 총격전을 벌였는데...여기 휘말린 민간인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터지자 영국 SAS에서 교관까지 초빙해서 단기간에 특공대다운 부대를 만들었다. 8,90년대 전성기 때는 지금의 러시아 알파팀 못지 않은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벌였는데, 그래도 알파팀보다는 인권 존중 개념이 있어서 인질이 있을 경우에는 웬만하면 강경진압은 안한다.(...) 중국 꿍안(공안)과는 다르다! 꿍안과는!

여담으로 비호대는 아직까지 여성대원이 없다고 한다. 또 2000년대 후반에 이들의 얼굴이 홍콩언론에 한번 공개가 되어서 홍콩경찰이 난리가 났었던 적도 있다.

9.3 치안

80년대 홍콩영화를 빛냈던 느와르 영화나 흑사회의 존재, 지금은 없어진 구룡성채 같은 공간 때문에 치안이 좋지 않다는 느낌이 많지만 왜곡된 사실. 실제로 홍콩의 치안은 상위권을 다투는데, 2010년 세계 경쟁력 보고서에 의하면 홍콩의 치안은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과 함께 아시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일 정도이며[92], 인구 10만명 중 범죄횟수 1108건[93], 살인 미수도 10만명중 0.06건[94], 강도 행각도 10만명 중 15.8건[95]. 물론 조심해야 하기는 한다만 대개는 밤 시간대에도 경찰들이 돌아 다녀서 미국 수준으로 위험하지는 않다. 오히려 밤 늦은 시간에 특히 남자가 혼자 돌아다니면 100% 경찰들에게 불심검문을 받는다. 넌 뭔데 이 늦은 시간에 어슬렁거리냐는 것. 홍콩의 밤은 유흥가를 제외하면 굉장히 조용한데 다들 집에 빨리들 들어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려 밤에 혼자 돌아다니면 수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런 경우 대게는 약쟁이이거나 소매치기 같은 부류이기도 해서 수상하면 그 자리서 체포해 간다.

1960~80년대에는 범죄가 진짜로 상당히 많아서 1985년~1996년까지 홍콩 RTHK와 홍콩 경찰과 합작, 공개수배 사건25시의 원조격에 해당되는 繩之於法이란 프로그램을 방송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당시 방송 영상.

한국과는 달리 홍콩에서는 경찰에서 직접 TV를 통해서 범죄에 대한 모방 영상을 보여주고 그것을 통해서 범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직접 보여주면서 범죄 예방을 위해 제작한[96] 프로그램(警訊)이 있다. 방송 전에 모방영상(模擬片段)이라는 문구 달랑 보여주는 게 전부. 그럼에도 범죄율이 낮다는 것 자체가 충공깽.

관광객이 길 찾을 때 경찰에게 물어봐주면 능숙한 영어와 함께 잘 도와준다. 아니, 이 동네의 웬만한 제복 입은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들은 죄다 잘 도와준다. 최소 불친절하고 강압적인 미국 경찰이나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소속 본토 공안들보단 훨씬 낫다. 물론 다들 지리는 잘 모르는지 무전기로 물어보곤 한다. 그래도 영어표준중국어, 심지어 일본어도 구사 가능해서 이 중 한개 언어를 알면 도움 받기는 쉽다. 소리라도 지르면 순찰 중이던 경찰들이 죄다 달려 온다.

홍콩 경찰을 총괄하는 기관은 경무처다. 이 경무처의 예하에는 삼합회 등을 수사하는 중안조가 있는 형사조사국(CID) 및 마약사건을 다루는 마약조사국이 있어 미국의 FBI, DEA를 방불케 한다. 홍콩 경찰은 영미법계로 영국식 경찰제도를 택해서 수사권은 경찰이 전담하며 부정사건만 염정공서가 담당한다. 검사는 공소유지 및 기소만 할 뿐이다. 소방조직은 소방처가 한국의 중앙소방본부 역할을 하며 산하에 화재 및 구조업무를 맡는 소방국(소방서의 중국어 표현)과 구급업무를 맡는 구급센터(앰뷸런스 디포)가 있다.

다만 홍콩에서도 서유럽이나 일본처럼 아이를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납치가 적지 않다고 한다. 중국본토 및 베트남 등에서 건너온 범죄조직의 소행으로 이들이 중국대륙이나 동남아시아에 아이들을 팔아 넘기는 것이다. 심지어 사람 많은 대형 쇼핑몰 한가운데서 벌어질 정도다.

경찰은 홍콩 경찰 참조.

소방은 홍콩 소방처소방차구급차 항목 중 중화권 소방 부분 참조. 홍콩 소방은 사실 상 별도 정부라 중국 본토와 따로 돌아가고, 호출번호도 영국과 같이 999이다.

10 의료 및 보건

홍콩 소방처 소속 구급서에서 구급차가 나가며 999가 호출번호로 영국본토 및 아일랜드와 같다! 중국본토나 대만, 마카오와는 다르니 주의. 그리고 의료보험의 경우 개인병원 용 보험은 영국 회사들이 제공하는 민간보험이라 비싸다. 대신 정부병원에 가면 홍콩 시민권자는 납세를 하는 만큼 무료 진료고 외국인도 싼 값에 진료해준다. 대기시간이 긴 게 문제라서 되도록이면 비응급환자는 정부병원 이용을 자제하라는 조언도 있다.[97] 한국이랑 가까운 거리라서 취업 등으로 나간 장기체류자들은 그냥 주말 틈타 한국 와서 진료받고 간다. 저가 항공사들의 범람으로 이게 더 싸다. 치과는 한국처럼 보험적용이 안되 비싸다. 물론 미국이나 필리핀 같이 100% 민간 의료보험만 있는 쓰레기 의료체계에 비해선 낫다. 돈 없으면 죽으라는 것이 미국식 의료체계인데 여긴 그건 아니다(...)

홍콩의 의술은 높은 편이라 안심하고 진료받아도 된다. 정부병원은 퀸 메리 병원, 퀸 엘리자베스 병원, 프린스 에드워드 병원, 킹 조지 병원 등 영국 왕/여왕이나 왕족들의 이름이 명명되어 있으며 전술한 것처럼 홍콩 소방처에서 나오는 999구급대를 이용하면 이 곳으로 100% 온다. 본인이 따로 다니는 사립병원이 있다면 돈 주고 세인트 존(ST.JOHN)이라는 구급차 회사에 문의해 그 쪽으로 옮겨 달라고 해야 한다. 이 회사는 999 구급대와 달리 환자 셔틀 역할을 하고 대형 재난 발생 시 소방처 보조를 위해 대기 의무도 있다.

위생수준은 한국이나 대만, 중국본토에 비해 높은 편이며 일본, 싱가포르, 영국본토와 비슷한 감각으로 생각하면 된다. 사스신종플루, 메르스 덕분에 거리에서 기침이라도 하거나 침 뱉는 히드라리스크 같은 행위를 하면 야만인으로 여기며 비웃는다(...) 특히 한국에서 메르스가 대량 발병한 뒤 한국인이 기침하면 메르스 환자로 오인할 수 있으니 조심하자. 2015년 메르스 사태가 고스란히 보도되는 바람에 한국 보건행정 및 공중위생에 대해 대놓고 불신이 팽배해 그렇다. 물론 그 원인은 한국 정부가 제공한 것이므로 억울해도 할 수 없다. 자업자득인 셈.

그리고 주방은 영미법을 따르는 나라답게 100% 오픈해서 공개하게 되어 있는데 이것도 싱가포르와 똑같다. 세관도 깐깐하게 검사를 해서 무작위로 여행객을 검문하기도 하니 행여나 검문에 걸려도 따지지 말고 순순히 협조하자. 괜히 안되는 영어로 따지면 더 의심받고 추가 조사를 위해 사무실로 끌려가는 불상사도 일어난다. 규정이 그런거니 이해하고 협조하자.[98]

흡연자가 대부분인 남성 위키러를 위해 조언하자면, 담배 피고 꽁초 버리다 걸리면 최대 한국돈으로 50만원 넘는 벌금 폭탄을 뒤집어 쓴다! 그리고 실내 흡연도 마찬가지로 무조건 금지다. 중국본토나 일본, 대만처럼 실내흡연에 관대한 곳이 아니니까 본인이 꼴초라면 담배는 최대한 흡연장소에서 다 태우고 보내주자. 사스의 폭격을 된통 맞은 원인이 흡연자들의 가래침이었기 때문에 실내흡연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11 수도와 전기

홍콩은 공기업이 아니라 사기업이 전기, 도시가스 사업을 한다. 그래도 영국 같이 전기요금이 괴악하진 않다. 특히 홍콩섬 쪽에 전기를 공급하는 홍콩전등 홍콩 최고의 재벌 청쿵실업(회장 리카싱) 소유.[99] 홍콩 최대 통신기업 PCCW는 리카싱 아들 몫. 홍콩의 도시가스 독점회사인 Towngas는 헨더슨랜드디벨롭먼트(恒基地産)라는 부동산회사 소속.

전기 규격이 한국과 달라 변환기가 필요하다. 콘센트 모양이 type G로 영국 표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압은 똑같은 220v를 쓴다. 반면 일본, 대만, 필리핀, 태국미국식의 110v를 써서 홍콩에서도 어댑터가 필요하다. 노트북PC나 맥북은 프리볼티지 제품이 대부분이라 어댑터만 있으면 변압기는 필요 없다. 마찬가지로 일본산 및 대만산, 미국산 가전제품 내수용을 홍콩에서 쓸 경우에도 어댑터 필수. 중국대륙과도 콘센트가 다르다.

식수를 선전(도시) 댐에서 공급받는다. 영국령 시절부터 계속 식수를 중국에 의존해왔다. 그래도 싱가포르같이 물기근국가로 분류되진 않는다.[100]

12 구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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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영국의 점령 및 조차 시기의 차이에 따라 홍콩 섬, 까우룽 반도,[101] 신계로 구분된다. 홍콩은 총 18개의 구(區, district)로 나뉘어 있는데 위의 지역 구분에서 다시 세부적으로 나뉜다. 각 구는 1982년에 홍콩에 민주주의가 도입될 때 생겨났으며 모두 구 의회(區議會, council)를 갖추고 있다.

배낭여행을 생각하고 있다면 홍콩, 마카오/배낭여행 문서도 참고하자. 구글 맵스에서 한국어 설정시 홍콩의 구획명은 보통화 발음으로 표기된다. 몇몇 거리 지명들을 살펴보면 영어를 광동어에 음차해서 끼워맞추거나 그 역으로 끼워맞춘듯한 홍글리시스러운 지명들이 많다. (ex. 나단 로드 -> 彌敦道)

'백만불짜리 야경'이라는 별명이 있다. 마천루들도 계획적으로 세웠다. 호사가들은 나폴리, 하코다테와 더불어 세계 3대 야경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흥행한 영화 영웅본색에서, 싸움 끝에 도망쳐 빅토리아 언덕에 올라 홍콩 야경을 내려다보던 주윤발이 "홍콩의 야경은 참 아름답군"이라고 하는 대사가 나올 정도. 20:00~20:15에 펼쳐지는 레이저 쇼인 <심포니 오브 라이트>(Symphony of Lights)가 백미. 빅토리아 만의 양단에 있는 마천루들에서 레이저를 쏘아 보낸다. 통상 볼 수 있는 위치는 침사추이 스타페리 터미널 옆의 시계탑~스타의 거리, 완자이의 컨벤션 센터 앞, 빅토리아 피크, 빅토리아 만을 관광할 수 있는 유람선 등이 있다. 빅토리아 만의 양단이나 빅토리아 피크에서는 반대쪽의 레이저 밖에 볼 수 없으므로 돈이 충분한 사람은 침사추이에서 19:30, 센트럴에서 19:45에 출발하는 아쿠아루나를 탈 것을 권한다. 빅토리아 만의 해상에서는 양쪽의 레이저 쇼를 모두 조망할 수 있다. 단 <심포니 오브 라이트> 때문에 이 시간대의 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우므로 홍콩 가기 10일 전에는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12.1 홍콩 섬

12.2 구룡반도

12.3 신계

13 교통

영국령이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차량의 핸들이 우측에 있고 좌측통행이다.[102] 중국대륙이 우측통행인 것에 대비되는 모습이다. 도로망이 상당히 독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네이던 로드 등의 큰길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일방통행이다. 땅은 좁은데 차는 많다보니 어쩔 수가 없다. 때문에 설령 돈이 많더라도 렌트는 할 것이 못되며, 택시를 타면 코앞의 장소인데도 택시가 빙빙 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103] 특히, 섬이 아닌 까우룽 반도 방면은 지형이 평탄하지 못해 경사가 급한 곳이 몇 있어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해서, 운전하기 유리한 도시가 전혀 아니다. 간선도로를 비롯한 도로교통이 잘 정비된 편이라 교통량이 폭발하는 도심을 벗어나면 비교적 쾌적해지지만, 여행자들과는 별 상관이 없는 정보다.

서민=일본차, 부자=독일차라고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도로위의 대부분의 차량이 일본차 아니면 독일차 일색이다.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아시아에서 몇 안되는 우핸들 좌측통행 국가이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104] 때문에 미국차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한국차는 보면 깜놀하는 수준.[105][106] 홍콩은 빈부격차가 좀 심한 편이며, 일단 자가용을 굴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정 이상의 경제력이 있다는 뜻이다. 선진국을 찾아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자동차 소유율이 낮은 편인데 약 8% 이하.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보다 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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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또한 일본차 일색인데 특이하게도 대다수 택시가 토요타 크라운 컴포트. 닛산 세드릭도 굴러다니는데. 사실은 택시 전용 모델로 나온 차량을 일괄적으로 도입한 것으로, 홍콩 섬 & 까우룽 반도/신계지/란타우 섬 별로 택시의 색깔이 다르며 각 지역별로 혹은 지역에서 지역으로 넘어갈 때마다 택시요금도 조금씩 다르다. 이를테면 홍콩 공항에서 내리면 세 지역으로 가는 택시들이 각각 서있는데, 까우룽 반도로 가려면 무조건 빨간 택시를 타야 하는 식이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영어에 능통하고[107] 외국인에게도 상당히 친절한 편이며, 만약 기사 본인의 실수로 길을 잘못 들어 추가요금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배상을 해 주는 경우도 있다. 일본의 택시가 그러하듯이 홍콩의 택시도 대부분이 자동문이다.

살인적인 주차 비용 때문에 대중교통이 상당히 발달했다. 지하철-버스-미니버스로 이어지는 대중교통 라인이 도시내 전체 통행량의 90%를 책임진다.[108] 까우룽 반도와 홍콩섬 모두 버스가 집중적으로 홍콩의 거의 모든 지역을 연결한다. 그 유명한 2층버스도 있지만, 마을버스 혹은 지선 비슷한 개념의 미니버스도 운행한다. 2층버스같이 간선(?) 노선들이 안닿는다거나 MTR로도 접근이 안되는 지역들은 십중팔구 미니버스를 타고 가야 할 것이다. 홍콩 최대의 버스 운송업체로는 KMB(까우룽 모터버스, 약칭 九巴)가 있으며 이 업체는 주로 까우룽 반도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외에도 홍콩의 버스업체로는 홍콩섬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CityBus(씨티버스, 城巴)와 신계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New World First Bus(신세계제일버스, 新巴)가 있다.[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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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지하철은 MTR(Mass Transit Railway)이라 부른다. MTR은 총 10개 노선이 있으나[110], 홍콩섬 남쪽에는 아직 노선이 없다. 꾸준히 노선이 증설되고 있으며, 전체 도시의 꽤 넓은 면적을 포괄하고 있다. 홍콩 대중교통의 대표주자로서, 탑승환경도 쾌적하고 배차간격도 짧다. 더불어, 철저한 건설계획 덕분에 개념환승이 상당히 많아 시간지체없이 거의 항상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어떤 목적에서든지간에 홍콩 내부를 길게 이동할 일이 있다면 MTR이 거의 항상 우선순위를 차지하게 된다.

홍콩 버스의 경우 대부분 기사와 말을 할 일은 없다. 노선이 꽤 복잡하기 때문에 MTR이 안 닿는 곳에 대한 보충 개념으로나 파악하자. 교통당국도 정책 리포트에 버스노선은 MTR의 보충역할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교통정체가 심한 편이라서 버스가 MTR보다 소요시간이 더 걸리기도 하고 특히나 까우룽 에서 홍콩으로 넘어가는 이스턴 해저터널은 거의 막혀있다고 봐도 된다. 공항버스는 AEL(공항고속철도)에 비해 돈을 아낄 수 있고 기사들도 영어를 잘한다. 미니버스의 경우 중국 본토인들이나 까우룽 반도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며 기사는 거의 표준중국어와 광동어만 가능하다. 정류장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하차 벨이 없기때문에 버스기사에게 내릴 의사를 표현하면 된다. 기사가 알아들었으면 손을 든다. 영어로 Stop Please 라고 해도 충분히 알아듣는다. 승차 시에는 자기가 원하는 버스가 정류장에 오기 몇 미터 전에 택시 잡을 때 처럼 손을 들지만, 종점이 아니라면 만차로 인해 기사가 탑승의사를 무시할 가능성이 있다. 운임도 싸고 거주민들에게는 편리한 교통수단이지만, 다음 정류장이 어느 정류장인지조차도 안 알려주기 때문에 여행객들은 실수없이 이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홍콩섬 북부에서는 2층 노면전차(트램)도 운행한다. 까우룽 반도의 침사추이와 홍콩 섬의 센트럴(Central) 및 홍콩컨벤션센터(HK Convention Centre)를 스타페리(Star Ferry)라는 배가 연결해준다. 시간적으로는 타봤자 지하철 타는거에 비해 별 이득이 없지만 홍콩에 여행온 관광객들은 누구나 타보는 관광용 페리이다.

홍콩 국제공항에서 들어올때 공항철도AEL을 타는 경우도 있는데 노선이 뚱충선과 거의 비슷하다. 100달러가 넘는 비용이 드니 부담된다면 30달러대인 버스가 있긴 하다. 게다가 홍콩역도 꽤나 소문난 막장환승역이라[111] 의외로 버스 이용객도 많은 편이다. 그러나 공항에 갈 때 AEL을 타면 홍콩섬이나 까우룽 반도에서 미리 비행기를 체크인하고 짐을 맡길 수 있다(in-town check-in). 기차 내부는 깔끔하고 배차 간격이 짧아서 늘 앉아갈 수 있다. 공항에서 홍콩 섬까지 30분이 안 걸린다. AEL역은 MTR역과 연결되기도 하고.
아니면 공항에서부터 시티버스 E23번을 타서 똥충역에서 내려서 똥충선을 타고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홍콩 시내버스 중에는 중국 본토로 가는 시계외(市界外) 노선이 있는데, 투엔문에서 선전까지 운행하는 B3X번 노선이 여기에 해당된다. 일종의 직행버스로 보면 되며 외국인의 경우 중국 비자를 받아야한다. 대륙-홍콩 간 경계에서는 홍콩 이민국과 중국 공안부가 합동으로 승객들의 출입국 수속을 맡고 다시 통과시킨다.

이러한 교통수단의 요금은 현금으로 낼 수도 있지만, 홍콩의 티머니라고도 불리는 옥토퍼스 카드(Octopus Card)를 시내교통카드로도 낼 수 있다. 구입시 가격은 보증비 포함 150HKD으로 100HKD가 기본 충전돼서 나오며, 공항이나 기차역 등에서 환불받을 수 있다. 홍콩에 존재하는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세븐일레븐 등의 편의점이나 요시노야나 맥도널드 기타 여러 소매점에서 결제 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주차장 요금을 이것으로만 받는 경우도 있고, 자판기의 경우엔 이게 없으면 못먹는 경우도 있다.[112] 어쨌든 여행객들은 공항에서 이것을 사는 것을 추천. 출국시 옥토퍼스 카드를 구입한 카운터나 역의 인포메이션에서 환불하면 된다. [113]

만약 대중교통의 노선을 잘 모르겠다면 구글 맵의 길찾기 기능일 이용해보자. MTR이나 버스뿐만 아니라 모든 미니버스의 노선을 포함하여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을 찾아준다.

항공교통으로는 홍콩 국제공항이 있다. 이 곳은 근교지인 란터우 섬의 첵랍콕 암초와 람차우 섬을 매꾸어 만든 곳으로 영종도를 용유도, 신불도와 합친 인천국제공항과 같다. 1998년 개항했다. 나무위키를 비롯한 덕후들에게는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이 잘 알려져 있는데 이곳은 까우룽 반도 외곽인 카이탁에 있었으며 현재는 페리 터미널이 지어지고 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MTR 공항선이 있으며 홍콩 섬은 30분, 까우룽 반도는 20분내에 온다. 단 신계 지역은 버스가 낫다.[114] 그리고 홍콩의 플래그 캐리어로는 캐세이퍼시픽 항공이 있다. 캐세이퍼시픽영국계 물류회사 스와이어 그룹이 모그룹이며 중국 국적기 중국국제항공도 20% 지분을 갖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며 영중협력 및 중국과 서방의 화해의 상징이다. 자회사는 부산 김해국제공항제주국제공항으로 오는 드래곤항공이 있다. 그리고 저가항공으로 싼 표를 제공해 주는 홍콩 익스프레스 항공이 있다.

14 언론

14.1 신문

부류가 다양하고 신문의 종류수도 많다. 자료출처는 여기.

  • 친중 신문 : 文匯報(문회보), 大公報(대공보), 상보(商報)
  • 주류 신문 : 東方日報(동방일보), 太陽報(태양보), 蘋果日報(빈과일보)[115]
  • 경제 신문 : 信報(신보)[116], 經濟日報(경제일보)
  • 지식 신문 : 明報(명보)[117], 星島日報(성도일보)
  • 영향력 적은 신문[118] : 新報(신보. 위에 경제 신문인 신보(信報)와는 한자가 다르다. 광동어로 信과 新의 발음이 달라서 가능한 일.), 성보(成報)
  • 무료 신문 : Metro, AM730, 頭條日報(두조일보)
  • 영자 신문 : South China Morning Post(南華早報, 남화조보)[119]

14.2 방송

홍콩의 지상파 방송국
공공방송RTHK
민간
상업
방송
라디오CRHK · Metro
해적방송: FM 102.8 · FM 101
폐국: 봉황 URadio (DAB) · DBC (DAB)
텔레비전TVB · HKTVE (ViuTV)
사업자 신청: HKTV · Fantastic TV · New Asia
폐국: CTV (경영난에 의한 폐업) · aTV (면허 취소)
같이 보기홍콩: 지상파 · 위성 및 인터넷 방송 · 유료방송 및 OTT 플랫폼
중국대륙 · 마카오 · 타이완


지상파TV 방송국 3개가 있으며 라디오 방송국 4개가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케이블 채널이 있다. 대개 시청률 조사는 CSM媒介研究에서 조사하긴 하지만, aTV에서 "시청률을 너무 낮게 잡는다"라며 까면서 홍콩 대학(香港大學)에서 조사한 자료를 실은 적 있었다. 아날로그 TV 표준으로는 PAL을 채택했으며, 디지털 TV 표준으로는 중국식을, 디지털 라디오 표준으로는 DAB를 채택했다.

홍콩의 음악 프로그램 순위는 대개 4곳에서 잡는데, RTHK, TVB, 新城라디오 997, 상업라디오 (商業電台) 903에서 잡는다.

공공방송RTHK는 홍콩 정부가 직접 소유하는 관영방송이지만 독립성은 보장되어있다. 라디오 방송으로 시작했으며, TV 프로그램은 자체 채널을 개국하지 않고 민영 방송사를 통해 내보내다가 디지털 TV 방송이 개시된 지 몇 년 뒤에 자체 채널의 시험 방송에 들어갔다. 이후 ATV가 2016년 4월 1일을 끝으로 폐국하면서 ATV의 아날로그 채널을 차지하는 식으로 아날로그 TV 방송에 진출했는데, 아날로그 시절에 개국했다가 디지털 방송을 개시하는 것과는 영 다른 모양새다. (참고로 홍콩은 아날로그 TV 방송을 아직 종료하지 않았다.)

민영 라디오 방송사로는 CRHK와 Metro, 디지털 라디오(DAB)로만 방송하는 DBC라는 곳이 있다. 디지털 라디오 방송을 개시하면서 봉황위성TV도 URadio라는 곳을 세워 진출했으나, 이후 폐국한다. 이 외에 허가를 받지 않은, 즉, 해적 방송인 곳이 두 곳 있다.

텔레비전 방송은 유선 라디오 방송을 운영하던 영국계 Rediffusion 사가 유선 TV 방송(ATV의 시초)을 개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홍콩 정부에서 지상파 TV 방송 면허를 발급하면서 TVBCTV(佳藝電視)[120]가 개국했는데, TVB는 승승장구했지만 CTV는 재정문제로 3년만에 폐국한다. 그 뒤 Rediffusion 사가 면허를 발급받고 지상파 방송을 개시하면서 유선 방송 사업 자체를 접었다. 80년대 초에는 Rediffusion 영국 본사의 사세가 기울어 홍콩 내 사업을 매각하면서 ATV가 됐다. ATV는 시청률이나 규모에서는 TVB에 뒤쳐졌지만 그래도 자리는 지켜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TVB의 독주는 심해지고, ATV의 시청률은 줄어들고 있었다.

한편, 90년대 초에는 워프 (Wharf) 그룹이 세운 신생 유선 방송 사업자인 홍콩 유선 TV가 종합 유선 방송을 개시했다. 이후 TVB는 위성 방송에 뛰어들었고, 홍콩통신(HKT)은 ITV라는 유료 플랫폼을 운영했는데 망했다가 HKT를 인수한 PCCW에서 Now TV라는 IPTV를 개시했다. 리키 웡의 시티 텔레콤(City Telecom)은 HKBN BBTV라는 IPTV를 열었다. 이후 Now TV는 가입자 수로 홍콩 유선 TV를 추월했으며, 홍콩은 세계에서 IPTV가 가장 성공한 곳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홍콩 반환 이후 한참 뒤, 홍콩 지상파 TV 업계를 TVB가 사실상 장악한 양상을 타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되었다. 이 때, 리키 웡은 통신 사업을 다른 곳으로 매각하고 시티 텔레콤의 사명을 홍콩 텔레비전 네트워크(Hong Kong Television Network. 이하 HKTV)로 바꾸고 지상파 방송에 진출할 준비를 하였다. 한편 PCCWHKTVE를, 홍콩 유선 TV는 Fantastic TV라는 회사를 세웠다. 이 중 HKTVE와 Fantastic TV는 2013년에 예비인가를 얻는데 성공했고, 리키 웡의 HKTV는 탈락했다. 이후 HKTV는 자체 제작 프로그램과 홈쇼핑 방송으로 구성된 인터넷 방송을 개시했으며, 한편으로는 지상파 TV 방송 면허를 다시 신청한 상태이다.

ATV가 경영난과 삽질로 고전하던 중에 2015년 4월 1일, 도저히 만우절 장난같지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홍콩 정부가 1년이라는 유예기간을 두고 ATV의 지상파 방송 면허를 말소하고 HKTVE에 정식 면허를 부여하였다. 이후 1년간의 준비기간이 지나고, 2016년 4월 1일/2일 사이 자정을 끝으로 ATV는 방송중이던 모든 채널의 프로그램을 완전히 끝내지 않은 채 지상파 TV 방송을 종료했으며, ATV가 사용하던 아날로그 TV 채널들은 RTHK가 차지하였다. 한편, HKTVE는 3월 31일에 인터넷 실시간 방송과 Now TV를 통해 광둥어 채널 ViuTV의 시험방송을 개시했으며, ATV가 방송을 종료한 이후에 디지털 지상파 방송을 개시했고, 4월 6일에 정식으로 개국했다.

2016년 5월 31일에는 Fantastic TV가 정식으로 면허를 부여받았다. 초기에는 모회사인 워프 그룹의 통신부문이 구축한 케이블망으로 방송할 예정인데, 해당 통신 단자를 케이블로 연결해 TV 안테나 선에다 그냥 꽃으면 된다고 한다. 지상파 채널은 추후에 확보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면허 발급 이후 1년 안에 광둥어 채널을 개국할 예정이다. 한편, ATV의 후예를 자처한 Forever Top (Asia) Ltd.라는 회사가 New Asia라는 이름으로 지상파 TV 방송 면허를 신청한 상태이다.

홍콩에 진출한 외국의 스트리밍 서비스로 Le.com, 아이치이 (이상 중국), 넷플릭스(미국)가 있으며, 이 중 Le.com은 홍콩에 실시간 채널을 들고 나왔고 스포츠 경기 중계권도 확보한 상태다.

15 문화

15.1 영화

5~60년대까지만 해도 멜로 영화와 호금전, 장철 감독의 무술 영화가 강세를 보였지만, 70년대 그 이름도 유명한 이소룡의 사실적인 액션 영화와 허관문, 허관영, 허관걸로 이루어진 허씨 3형제의 코미디 영화 '미스터 부 시리즈[121]가 등장하여 크게 히트하면서 액션과 코미디 영화가 홍콩 영화의 주된 장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두 장르를 적절히 조화시킨 성룡, 홍금보가 뜨면서 이러한 경향은 정점에 달했다. 그러다 80년대 말 그 유명한 영웅본색으로 대표되는 액션 느와르물이 대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암흑가와 속시원한 총격씬이 주가 되는 영화가 대세를 이루게 된다. 특히 이때 오우삼, 왕가위, 주윤발, 장국영 등의 명감독, 명배우들이 많이 등장했다. 90년대 초반에는 도신, 도협, 도성 시리즈로 대표되는 도박물과 특유의 병맛 코미디를 내세운 주성치가 인기를 끌었고, 중국으로의 홍콩 반환이 결정된 후에는 임청하동방불패이연걸 주연의 황비홍 시리즈로 대표되는 무협물 붐이 일어났다.

더불어 홍콩 배우나 감독들의 헐리웃 진출도 많았는데, 배우 중엔 주윤발, 성룡, 이연걸, 감독 중엔 오우삼이나 서극, 임영동, 당계레, 우인태, 양보지[122] 같은 사람들이 진출했다. 다만 성룡이나 오우삼, 우인태 등 몇몇를 빼곤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홍콩으로 돌아왔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와 합작으로 영화를 자주 만들기도 했었다.[123] 다만 당시 한국영화사의 외화 수입 규제[124] 때문에 진짜 합작품도 있었지만 후시 촬영만 하고 홍콩이나 대만영화를 짜집기해서 합작품으로 둔갑시킨 괴작들도 꽤 된다.[125] 어찌됐든 이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걸출한 무술 배우들이 배출되었는데 합기도 특유의 독특한 꺾기 기술로 파격적인 액션씬을 보여준 황인식이나 가위차기의 달인 왕호, 신묘한 발차기 솜씨를 자랑하는 태권도 고수 황정리 등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필름이 홍콩 측에 가있는 탓에 한국말 더빙이 사라져 버려서 광동어나 영어 더빙으로나 구해 볼 수 있는 게 대부분이다. 정창화감독의 천하제일권의 경우 중국어판으로 DVD가 정발되었지만 TV를 통해 한국어판을 방영해준 바 있다.

15.2 만화

격투천왕이니 스트리트 파이터 가두쟁패전이니 하는 괴작 만화들의 빛나는 산실(…)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만화강국이다. 주로 일본만화와 서양의 극화풍이 혼합된 것이 특징.

15.3 음식

광동 요리 위주인데 그 중 유독 완탕면이라는, 새우 육수 국수딤섬에 특화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홍콩식 완탕면과 딤섬을 먹을수 있는 청키면가(忠記麵家)라는 식당이 홍대에 있었으며 현재는 이태원역 근처에 있다.

디저트로는 에그 타르트가 유명하며 영국 영향을 주고받아서인지 밀크티 티타임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또한 허이라우샨(허유산, 許留山)이라는 망고 주스 체인점도 유명한데 주스에 망고 젤리를 끼얹어서 큰 빨대로 다 빨아먹을 수 있다. 근데 가끔 마시다가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 나온다. 사실 홍콩 사람들은 허이라우샨에 안 간다고 한다.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 코스. 서양의 팬케이크 문화가 유입되어 생긴 빤켁이라는 요리도 있다. 보다시피 "팬케이크" 를 광동어로 발음한 것. 대략 "반으로 잘라 먹는다"는 의미라고.

차찬텡(茶餐廳)이라고 간단한 디저트에서 값싸고 다양한 요리까지 파는 대중음식점이 있는데 대개 프랜차이즈로 운영된다. 홍콩의 3대 차찬텡 체인점은

  • 카페 데 코랄(따이꼬록, 대가락. 大家樂.)
1985년 장국영을 기용한 CF를 찍은 적도 있으며 # 근래에는 한국식 퓨전 메뉴를 내놓을 때 강남스타일을 활용한 광고도 낸 적이 있다. # 이것과 별개로 같은 폰트에 마지막 한 글자가 다른 大家食(...)이라는 브랜드도 존재한다.
  • 맥심(메이섬)
차찬텡 브랜드로만 한정하면 美心MX가 대표적이나, 사실 메이섬 식품 유한 공사(Maxim's Catering)라는 요식업 그룹의 일원이다. 제빵사업(美心西餠)에도 진출하거나 홍콩 내 스타벅스 운영권을 따낸 등 사업 영역이 넓은 편. 대가락이 한류 메뉴를 내놓자 이쪽도 역시 한류 메뉴를 내놓은 바가 있다. (광고)
  • 페어우드(따이파이웃, 대쾌활, 大快活)
주성치 주연의 식신에서는 페어우드(대쾌활)와 대가락이 융합한 대쾌락(...)이라는 차찬텡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비체인 차찬텡도 많은데 그 중엔 야우마테이에 있는 미도 카페가 있다. 1950년대부터 있었던 곳이며 홍콩 영화 촬영지로 쓰이기도 하였다.

15.4 창작물 내에서의 취급

블랙 블러드 브라더스에서는 1997년도 쿠롱쇼크라고 해서 홍콩이 박살난다. 이 도시도 만만찮게 동네북이다.(...) 그리고 블랙 블러드가 처음으로 인류에게 대대적으로 나타난 도시라고도 할 수 있다. 쿼런틴사이버펑크류의 SF소설이나 국제 폭력조직을 다루는 작품에도 자주 나온다. 구룡성채의 영향 때문인듯 하다. 삼합회가 나오는 작품에도 필수요소처럼 등장한다. 다크 나이트에서는 마피아들의 돈세탁 장소로 등장한다.

좀 뜬금없지만 일종의 가상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일본작품 풀 메탈 패닉에서는 중국장강을 기점으로 남북으로 나뉘어 내전 중이고 때문에 홍콩이 베를린 마냥 갈라져있다는 설정이다. 이를 이용해서 가우룽이 테러를 일으키고 소설 7,8권과 애니메이션 3기의 주 무대가 된다.

퍼시픽 림에서는 중반 이후에서 비중이 매우 큰 배경이다. 기지의 위치나, 영화가 영화니만큼 도시가 신나게 박살난다거나 여러가지 의미로.(...) 영화 툼 레이더 : 판도라의 상자(Lara Croft Tomb Raider : The Cradle of Life, 2003)에서 악당 조나단 라이스의 근거지로 나온다. 홍콩내 타임 스퀘어 쇼핑몰에 자신의 화학무기 연구소를 숨겨 놓았다.

게임에서는 격투게임에서 스테이지로 나오거나 전세계를 무대로 하는 게임에서 1~2 미션 나오는 정도였지만 슬리핑 독스에선 주무대로 나온다. 주인공 웨이 쉔은 미국인으로, 본디는 홍콩 출신이였으나 미국으로 이민갔다가 홍콩 삼합회에 잠입수사를 위해 다시 돌아왔다는 설정이라 주인공의 고향이기도 하다. 물론 실제에 비하면 게임이니까 현실 스케일에 근접한 구현을 기대하기에는 많이 아쉽긴 하지만, 주무대로 나온게 어디 나오니 그냥 넘어가자.(...)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의 중국 미션 2에서 GLA가 홍콩의 컨벤션 센터를 장악해 중국군이 이 도시를 탈환하는 미션이 등장한다.

워게임 레드 드래곤의 시나리오 동방의 진주의 무대로, 홍콩반환문제를 놓고 영국과 중국이 대립하다가 끝내 중국이 홍콩을 침공한다.

또한 절제할수 없는 끈적이는 기분을 느끼며 가버릴때 홍콩행 열차를 탄다고도 사용된다. 동음이의어 항목 참고.(...)

트랜스포머4에서도 후반부 주무대로 등장한다.

그리고 당연히 홍콩 영화에서는 대부분 주무대로 나온다.

배틀필드 4에서 빅토리아 하버가 맵으로 등장한다. 'DAWNBREAKER'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여명의 시작' 정도의 뜻을 '여명의 파괴자(...)'라고 오역.

15.5 스포츠

지금과는 달리 이래뵈도 축구는 1950~60년대만 해도 아시아에서 최정상급 리그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식민지 시절 영국 축구 영향이 커서인데 1908년에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축구리그가 열렸고 1945-46 시즌부터 아시아 처음으로 2부리그 체제를 가졌다. 그 시절 아시아 리그에서 유일하게 2부리그 체제 및 스폰서 체계를 잘 잡아서 한국에서도 첫 해외리그 진출 선수가 바로 홍콩 리그로 진출했다. 최초로 해외에 진출한 선수가 차범근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홍콩이든 말레이시아든 일단 바다 건너니까(...) 해외 맞고, 6~70년대 우리나라 경제사정을 고려해 보면 다들 선진국(...)이었다. 당연히 이 시기 뛰어난 선수들은 적극 외화벌이해외 진출에 나섰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60년대-차범근보다 10년 앞서- 최초로 해외-홍콩- 축구 리그에서 뛴 선수는 허윤정 선수로 1968년 Sing Tao(星島)팀에 입단했다. 이 선수는 공군사관학교 출신의 특이한 이력을 지녔던 선수로 이회택과 대표팀에서 같이 뛰었다. 연세는 이회택보다 훨씬 위. 하지만 이에 대하여 반론으로 허윤정 선수보다 훨씬 앞선 1952년 Kwong Wah(光華)팀에서 뛰었던 김규환 선수를 최초의 해외진출 축구선수로 이야기하는 의견도 있다.

물론 지금은 아시아의 승점 제조기 신세가 되었다.(...) 1998 월드컵 예선 당시 한국에게 2-0으로 졌을 당시 홍콩에서 선전했다고 기뻐할 정도이며, 2004 월드컵 지역예선에선 쿠웨이트중국에게 7-0으로 대패했다.사스가 홍콩

이런 가운데 한국 축구선수 출신이던 김판곤 감독이 이끄는 홍콩 사우스차이나 감독이 되어 2008-09, 2009-10 시즌까지 리그 2연패 우승을 거두자 그가 홍콩 대표팀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2009년 동아시안게임에서 오랜만에 홍콩이 우승하자 홍콩에선 월드컵 우승 분위기였고 당시 김판곤은 거스 히딩크 급 인기를 얻었다. 그 뒤로 김판곤은 2011년부터는 경남 FC 코치로 일했지만 1년도 안가서 홍콩축구협회의 끈질긴 애원과 부탁으로 돌아와 2012년 현재 홍콩 A대표팀 감독 겸 유소년 대표팀 총감독이 되었다.

2012년 4월 25일부터 30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14세이하 유스페스티벌에서 김판곤이 이끄는 홍콩은 6승 1무 2패로 3위를 차지했다. (우승은 9전전승인 한국, 2위는 7승 2패인 일본) 이를 두고 홍콩에서는 또 한번 김판곤 매직이라는 찬사를 받았는데 항상 5~6위에 머물던 홍콩 14세 이하 대표팀 역대 최고 성적이자 3~4위 단골 멤버였던 북한과 중국을 각각 4, 5위로 밀어버린 것이기 때문이었고, 게다가 2012년 중국과 갈등이 빚어진 가운데 바로 그 중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중국 14세 이하 대표팀 경기를 모두 이긴 것을 두고 유달리 홍콩에서 기뻐했기 때문이다. 경기를 본 AFC 관계자들이 홍콩 유소년팀이 놀랍게 성장했다면서 김판곤을 올해 아시아 유소년대표팀 최고의 감독 후보로 올리겠다고 할 정도였다.

참고로, 이 나라의 축구 국대에 대해서는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조하면 된다.

야구의 경우 하긴 하지만 약체이다. 아시안 게임에 몇번 나왔지만 좋은 성적은 올리지 못하였다.

스포츠와 거리가 있는 스포츠 도박(?)에선 홍콩 경마회[129]에서 발행하는 축구토토가 인기가 높다. 주 베팅 대상은 유럽 빅리그. 가끔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홍콩경마회 로고가 새겨진 건물이 자주 보이는데 이 건물이 스포츠토토, 경마베팅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시설인듯. 어느정도 큰 사단법인쯤 되는 모양인지 췬완쪽에 홍콩경마회 탁와(德華)공원이라는 지역 시민공원을 세운 적도 있다. 까우룽자이싱공원보다는 조금 작지만 중국식 정원 위주의 인테리어고 주로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러 나온다. 아예 커다란 장기판으로 이루어진 휴식공간도 있어서 커다란 장기말(...) 위에 앉을수도 있다. 잠깐 그러고보니 공원 이름이 이분과 같다. 관련성은 불명.

경마 또한 인기가 높아서 해피밸리라는 크고 아름다운 경마장이 애드미럴티 동쪽에 있다.

요트에서는 홍콩 유일의 올림픽 금메달도 땄다. 그 주인공은 리라이샨(李麗珊)으로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16 기타

  • 2007년 1월 1일부로 '완전 금연도시'를 선포하고 모든 실내 사업장과 공원이나 해변 등에서의 흡연을 금지하였다. 어길 경우 벌금이 5000홍콩달러(2015년 기준 약 75만원)에 이른다. 다만 흡연이 불법인 건 아니고 흡연구역에서의 흡연은 가능하다. 길거리에는 곳곳에 재떨이를 겸한 쓰레기통이 있어 흡연자들이 모여든다. 참고로 싱가포르는 이미 예전부터 실내 금연을 실시했다. 한국에서도 현재 실내 금연이 원칙이다.[130]
  • 위성지도를 보면 경상남도 통영시와 홍콩의 지형과 시가지 분포가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 국내 e-AMUSEMENT의 테스트 때, 드럼매니아 쪽은 지역명으로 '마카오'를 사용했었지만 유비트 쪽은 지역명을 '홍콩'으로 사용했다. 마카오 테마파크에서 5초만 움직이면 홍콩 테마파크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 중국집 이름으로 북경반점[131]이나 몽고반점 등과 함께 흔히 쓰이는 이름이기도 하다.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 사이트의 지도 검색에서 '홍콩'이라고 치면 홍콩XX, 홍콩반점 같은 중국집들이 많이 검색된다. 과거 중국대륙과 수교가 없었을때 홍콩과 대만이 중국의 대표였던 시절 흔적이다.
  • 건물의 층수가 0층부터 시작한다. 한국의 10층이면 홍콩에선 9층 이런식. 한국의 1층은 홍콩에선 G(Ground)라고 표현된다. 영국과 같은 방식. 그리고 중국인에게 불길한 숫자인 4와 영국인에게 불길한 13이 모두 빠져 있다.
  • 북쪽에 있는 중국 본토와 한국, 일본의 도시보다 한여름 기온이 5도 가량 더 낮다. 일단 해안도시여서 바다가 열 창고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대외적인 인식과 달리 구름이 많아 일조량이 연중 내내 부실하기 때문이다. 이 두 요인이 겹쳐 동절기에도 미미한 일교차가 하절기에는 1°C에도 못 미치는 기염을 토한다. 덕분에 이슬점도 밤낮에 따른 변동이 없고, 수증기는 바다에서 꾸준히 보급되므로 습도의 변동 역시 미미하다. 따라서, 5~8월 홍콩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섭씨 28도, 습도 85% 이상을 유지한다. 동남아시아의 자카르타, 방콕,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등의 도시들도 24시간 습도 85%를 찍는 날은 드물기 때문에, 아시아권 대도시 중에서 이 곳과 비슷한 기후인 오사카와 함께 고온다습의 교과서와도 같은 곳이다. 네이버 세계날씨를 통해 비교해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과 아주 가까운 곳이라서 한국 날씨의 영향을 받는데 특히 겨울에 심해 한국의 3한4온이 그대로 나타난다. 즉 한국에 한파가 닥치면 홍콩도 춥다는 것. 2014년 1월 전세계적인 이상한파 발생 당시 홍콩도 0도까지 내려가고 아주 추웠다.

17 홍콩의 명절

홍콩의 명절 항목 참조.

18 홍콩 출신의 캐릭터

  • 중국인 항목의 중국인 캐릭터를 참고할 것.

19 관련문서

  1. 양자는 別과 别이 다르다. 중국 대륙(본토)에서 번체자(정체자)를 써야 할 때 쓰는 표준 자형으로는 간화자와 동일한 别을 쓰지만, 대만(중화민국)에서는 別을 쓴다(대한민국과 일본에서도 別을 씀). 홍콩과 마카오에서는 둘 다 통용되고 있는데 관습상 대만처럼 別을 쓰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단 홍콩과 마카오의 여권 표지에는 别로 적혀 있다.
  2. '샹강' 또는 '샹깡' 비슷하게 발음됨.
  3. 중화인민공화국 내 지명은 표준 중국어 발음을 따라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홍콩은 자치권을 인정받고 있고 홍콩 자치정부가 표준어 '샹강'이 아닌 광동어 '홍콩'이라 지칭하므로 홍콩으로 표기한다.
  4. 이름의 유래는 향나무를 실어나르는 항구가 위치했던 곳. 중국어권(정체자·간화자 모두)의 폰트에서는 港의 밑 부분이 巳의 형태로 돼 있지만, 일본의 폰트(신자체 준거)들은 그 부분이 己의 형태로 돼 있다(단 구자체용 폰트는 巳). 대한민국의 폰트들은 폰트마다 제각각이다(...).
  5. 광동어 발음으로는 '횡꽁' 또는 '헝꽁' 비슷하게 발음된다. 이 '헝꽁'/'횡꽁'이 영국인들 귀의 몬데그린 필터를 거쳐서 홍콩으로 된 것. 1926년 표기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Hongkong이라고 썼다.
  6. .香港은 국제화 국가코드 최상위 도메인이다.
  7. 모든 성급 행정구역은 약칭을 갖고 있다. 홍콩도 특별행정구로서 성급 행정구역이므로 당연히 약칭이 있다. 표준중국어로는 , 광동어로는 이다.
  8. 홍콩 독립운동에 호의적인 정치인들을 홍콩에서는 본토파, 혹은 독립파라고 하는데, 이들을 빼면 23석이다. 민주파 정치인 대부분은 홍콩 독립운동에 부정적이기에 민주파에서 이들을 제외하는 경우도 많다.
  9. 허나 위에서 언급한대로 민주파에서 독립파를 빼버리면 오히려 4석이 줄었다. 독립파가 6석이나 가져간 탓.
  10. 반환 당시에는 고작 400명(...). 그러다가 800명이 되었고, 2010년부터 1200명으로 증가
  11. 자세한 것은 이 항목을 참조.
  12. 심지어 전인대와 정협의 홍콩 대표는 당연직 선거위원이다!
  13. 보안 관련 법안으로 조항은 있지만 아직 처벌 법령이 없어 이걸 어겼다고 처벌할 수는 없다. 대륙 정부는 국가안전법을 제정해 이를 어기는 자를 처벌하려 하지만 정치 탄압 도구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아 홍콩 주민들이 격렬히 항의하고 있다.
  14. 교사 출신으로 영국 식민지 시절에는 식민지적인 교육에 반대하였다. 2011년 1월 2일 향년 79세로 타계하였으며, 워낙 홍콩 시민들에게 명망이 높아 친중파인 행정장관마저도 공개적으로 추도했다. 1월 29일에 장례식이 열렸다.
  15. 전술한 것처럼 프레임 자체는 일국양제 지속으로 중국이든 홍콩이든 영국이든 법을 해석하는 법조계에서 2047년 이후 자동 연장으로 본다. 물론 특별행정구 설치로 인해 사회주의 체제 자체는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16. 물론 대륙으로 퍼져서 광둥 성의 도시들인 광저우, 선전 등 본토 연안도시들까지 이런 민주화 요구가 확산되거나 더 나아가 광동 분리 움직임이 보이면 즉각 반국가분열법을 적용, 때려잡는 게 가능하다. 본토는 국제사회 간섭이 덜하기 때문이고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는 항시 대기 중이다. 하지만 2015년 이후 경제난으로 통치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공산당이 언제까지 현재처럼 1당 독재로 대륙인들이라고 마냥 윽박지르기도 어렵다.
  17. 흔히 하는 오해가 대만의 표준어가 대만어라는 것인데, 대만어는 대만에서도 사투리다. 중국 본토의 보통화와 차이가 있긴 해도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국어'가 표준어이다(보통화 자체가 국어의 수정판이다). 애초에 현재 대만으로 천도한 '중화민국' 정부는 중국 본토의 중국 정부가 대만으로 이동(국부천대)한 것이니 이건 당연한 결과다.
  18. 민난어, 객가어, 차오저우어 등. 특히 객가치우차우는 두번째로 큰 집단의 중국계이다.
  19. 대륙에서 이주했고 표준중국어를 모어로 사용해도 홍콩 여권을 취득했거나 최소 영주권을 갖고 있다면 홍콩인이다.
  20. 홍콩에서 규모가 꽤 큰 한인교회도 이쪽에들 있다.
  21. 본토 출신이라도 광시좡족자치구나 광둥성 출신이 아니면 광동어가 아닌 다른 방언(민 방언, 오 방언 등)을 모어로 쓰거나 표준중국어를 모어로 쓴다. 다만 이들은 홍콩에 와서 광동어를 익혀서 광동어를 구사할 줄 알거나 또는 후손대로 넘어오면서 광동어를 모어로 쓰게 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홍콩 인구의 30% 정도가 본토 출신인데 광동어를 일상 언어로 구사하지 않는 본토 출신은 약 5% 정도밖에 안된다.
  22. 영어가 제1언어인 싱가포르도 차이나타운 일부 지역에선 영어가 안 통하기도 한다. 주로 100년 넘은 중국음식점이나 침술원 등. 굳이 외국인이 잘 안찾는 곳들이라 그렇다. 물론 나머지 지역은 영어 통용에 문제가 전혀없다. 심지어 택시나 소형 상점 등도 말이다.
  23. 비슷한 문제는 영어가 국어 노릇을 하는 싱가포르도 겪고 있다. 싱가포르 버스 기사들의 대부분이 중국 대륙인들인데 이들은 영어를 한 마디도 안 하려고 든다.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야 학교에서 중국계 간의 통용어로 표준중국어를 배워서 별 문제가 없지만 말레이인이나 인도인 등 다른 민족 혹은 외국 관광객들이 낭패보기 쉽다는 데서 문제가 있다. 원래 싱가포르 버스 기사들의 주류는 말레이인이나 인도인이었는데 어느 새 중국 대륙인들로 바뀌었고 영어를 못하는 이들이 많아져 꽤 큰 문제가 되고 있다.
  24. 광동어는 아직 언문일치가 확실하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런지 글은 표준중국어 양식으로 쓰고 그 글을 광동어 독음으로 읽는다. 물론 광동어 구어 그대로 글로 적는 경우도 더러 있다.
  25. 이는 조금 비싼 국제학교에 다니는 홍콩 학생들의 경우에 상당히 잘 나타나 있다. 심지어 한 학급에 광동어 사용자가 전혀 없는 기이한 현상이 가끔 나타나기도 한다.
  26. 전에는 할 수 있지만 안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웬만큼 구사할 수 있는 사람 수가 줄었다.
  27. 홍콩과 교류가 많은 대만의 경우, 대만에서 홍콩으로 입국하는 사람들은 입국심사 시 영어를 쓰거나 일본어를 쓴다. 분명 입국심사관이나 심사받는 대만 사람이나 모두 표준중국어를 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대만인의 경우 오래 전부터 홍콩과의 교류에서 일본어를 많이 쓴 데다가 최근에는 반중 감정으로 인해 대륙과 자신들을 분리하려고 하는 목적에서라도 영어나 일어를 쓴다. 즉 자신들은 중국인이 아니라 대만인이라는 것을 어필하는 것.
  28. 일본어가 꽤 쓰이는 일본 외 지역으론 홍콩 외에도 대만, 괌, 사이판, 하와이, 호주 케언즈 등이 있다.
  29. 홍콩 시민권을 보유한 3%의 비한족계 시민 중 2%는 백인 및 유대인, 인도인, 나머지 1%는 일본인이다. 유대인은 보통 영국계 백인 홍콩인으로 들어간다. 인도계 홍콩인은 19세기 영국군의 인도인 부대원으로 따라 온 편잡지방 사람들의 후손들이 남아있는 경우로 현재도 경비업체 등에서 종사한다. 나머지는 죄다 work permit을 얻고 단기체류하는 외국인들로 이들 중 한인들도 있어 한인회도 존재한다.
  30. 그래서인지 홍콩 기업과 남미국가들 간의 교역량이 은근히 많다. 물론 거리 상 미국캐나다를 거친다.
  31. 명나라때 홍콩의 투엔문에 포르투갈 해군이 상륙하여 까우룽 반도 일대를 포르투갈인이 잠시 점령했었다. 만일 이것이 지속되었다면 오늘날 홍콩은 신계 및 까우룽 반도는 포르투갈령, 홍콩 섬은 영국령이었을지도 모른다. 까우룽 반도 점령은 정식으로 마카오를 영구 조차하면서 끝나 철수했다.
  32. 언어도 "월어"라고 불렸다고 한다. 애초 광둥은 고대에 월지방 내진 남월 지방이라고 했는데 월나라보다 남쪽 또는 월나라의 영역 중에서 남쪽이라는 뜻이다. 사실 월나라와 산월의 영역을 고려해보면 광둥인 뿐만 아니라 복건인이나 저장성(절강성) 주민들도 원래는 월족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방언 차는 이쪽도 크다. 애초 한족 자체가 만들어진 아이덴티티로 중원의 한족, 북방의 한족 그리고 남방 한족은 생김새도 언어도 많이 다르다. 마치 아랍어를 쓰는 사람을 모두 싸그리 잡아다 아랍인이라고 정의한 것과 같다. 사실 민족이라는 것 자체가 19세기 이후 만들어진 자의적인 기준이기는 하다.
  33. 사실 이거는 홍콩, 광둥쪽 한족만 그런 게 아니라 화북, 만주 지방의 한족도 중원과는 DNA 차이가 꽤 다르고 오히려 몽골인만주족과 더 비슷해서 한족집단 내부의 DNA 차이가 크다. 한족 문서 참조.
  34. 진시황이 천하를 먹었다니까 홍콩도 접수했다는 수준의 이야기이지, 사실 그 당시 진시황의 통치권이 저 멀리 홍콩까지 닿았는지는 미지수. 당장 서복만 봐도 불노불사약 찾아오라고 명받고 동해바다 갔다가 먹튀로 돌아오지도 않는 형편이었다.
  35. 현재의 좌파는 민주파. 근데 홍콩 현지학생들은 중국공산당을 '좌파' 자신들을 '우파'라고 판단하더라
  36. 신계를 90년대부터 열심히 개발한 이유부터가 신계와 홍콩 도심이 함께 중국에 반환되기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1997년 되면 중국으로 넘어갈 땅' 취급당해서 영국령 홍콩 정부는 신계를 일부러 개발을 별로 안 했다.
  37.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게, 신계의 전체 면적은 울산광역시보다 작고, 그나마 모두가 경작지도 아니다. 이런 곳에서 홍콩 인구 700만을 먹여살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38. 감비아, 과테말라, 나우루, 니카라과, 도미니카 공화국, 도미니카 연방, 라이베리아, 벨리즈, 세인트루시아,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코스타리카, 파나마, 파라과이, 투발루.
  39. 파라과이는 영사관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일단 당시엔 아직 포르투갈령이었던 마카오로 이전시켰으나, 2년 후 마카오마저 반환되면서 결국 철수해야 했다. 라이베리아 영사관은 반환 후에도 버티고 있다가 1997년이 지나기 전에 쫓겨났다.
  40. 이때 쫓겨났던 나라들 중 감비아(2013-2016), 도미니카 연방(2004), 라이베리아(2003), 중앙아프리카 공화국(1998), 코스타리카(2007)는 후에 중국과 수교(괄호 안 연도, 감비아는 '13년에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16년에 중국과 수교)했지만 수교 후 홍콩에 영사관을 복구하지 않았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만이 2006년까지 홍콩에 명예영사를 두었을 뿐이다.
  41. 한 국가의 영토라 하더라도 자치령이나 속령 비슷한 지위를 가진 지역은 출입에 검문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미국 본토와 해외 속령인 , 북마리아나 제도, 푸에르토리코, 사모아,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등을 오갈 때와 비슷한데 미국 시민이라도 해외영토의 출입경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혹은 반대로 속령 주민이 미국 본토를 방문할 때에는 여권을 사용해야 한다.
  42. 중국 본토용 비자는 CHINESE VISA로, 홍콩용 비자는 CHINESE VISA (HONG KONG)으로 발급된다. 발급 주체는 본토는 중국 외교부가 발급하고 홍콩은 이민국인 입경처 명의로 발급하며 중국 외교부는 서류 상 이름만 빌려준다.
  43. 원래부터 홍콩에 거주한 홍콩 원주민과 광둥 성에서 국공내전 및 공산화 이후 이주한 중국대륙인의 두 부류가 있다. 둘 다 홍콩 거주권이 있으면 홍콩 주민으로 인정받는다.
  44. 그래서 대한민국 국적자는 한국 국적이 살아 있으며 홍콩 시민권은 국내 행사가 불가능하고 병역의무 대상인 성인 남자는 군입대를 해야 한다. 미국 시민권자와 다르다. 미국 시민권자는 국내에서 시민권 행사가 가능해 외국인으로서 여러 혜택을 누리고 간혹 행패를 부리기도 해서 검은머리 외국인 논란이 나오는 판이다.
  45. 심지어 타이완 섬의 부속도서인 펑후 열도나 오키나와의 최남단에도 홍콩사람들이 건너가 뉴 홍콩을 만든단 예측도 있기도 했다. , 사이판, 팔라우등도 마찬가지.
  46. 대부분 ', China'는 안 붙이는 편이다.
  47. 상하이선전 등 본토의 타 지역보다 잘 사는 지역에서도 지역 정체성을 좀 더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48. 마카오인들은 I'm Chinese라고 쉽게 수긍하는 편이지만, 나중에 마카오 출신이라는 말은 꼭 붙인다.
  49. 그래도 중국본토 전체를 놓고 봤을 땐 격차가 좁다.
  50.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대도시 주민들이라면 그나마 양반인 수준이고 내륙 시골로 들어가면 격차가 더 커진다.
  51. 단적인 예로 여아 노상방뇨 사건이 있겠다. 당시 현지 언론들은 무개념한 대륙 부부가 노상방뇨를 종용했다는 뉘앙스로 서술하였지만(이는 국내 뉴스도 마찬가지) 이후 반전 기사들이 뜨기 시작했는데, 당시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오줌은 급박한 상황이라는 어느정도 참작이 가능한 경우였고, 여아의 부모는 오줌을 봉지(또는 기저귀)로 받아내고 있었다. 현지 법으로 따져도 10살 이하의 유아는 법죄 의도가 없었다면 면책이 가능하다. 게다가 3세 여아의 소변 장면을 하체가 드러나게 촬영하는 현지인들 역시 개념찬 행위였는지도 의문.
  52. 이들은 중국본토로 여행갔다가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가 연행해서 잡혀간 것이었다.
  53. 이와 다르게 미국, 북마리아나 제도, 미국령 사모아, 푸에르토리코 거주 시민들에게 50개주와 특별구(본토가 아닌 지역도 있지만 그냥 뭉뚱그려 본토라 칭하자.) 거주 시민들과 동일한 미국 여권을 발급한다. 미국령 사모아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 국민들은 본토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한 미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다른 여권이 발급될 이유가 없으며, 미국령 사모아 주민은 미국 국민(National)이지만 시민권(Citizenship)은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로 다른 지역 시민들과 동일한 여권을 발급받고 다만 여권 내부에 시민권자가 아니란 내용이 기재된다. 본토에서는 외국인과 내국인의 중간 정도로 대우된다. 시민권자들과 동일한 여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여타 속령이나 본토에 아무 제약 없이 출입할 수 있고, 본토에서 아무 제약 없이 거주하거나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다만 시민권자가 아닌 관계로 선거권/피선거권이 없으며 시민권을 취득하려면 외국인이 귀화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을 밟아야 한다.
  54. 그래서 통영시 명예시민이기도 하다. 홍콩은 물론 중화권 자체에서 성룡 같은 수준의 친한파가 드물다. 또 한명의 친한파는 주윤발과 고인인 장국영으로 두 사람은 한국의 CF에도 등장했고 방문도 자주 했다. 박사학위를 가졌던 장국영은 생전에 독립기념관등 역사 유적지를 자주 찾았고, 고졸 학력인 주윤발은 주로 오락거리를 찾았다고 한다.
  55. 민간항공기 급유는 제재대상은 아니지만 과연 어떤 나라가 불량국가로 찍힌데다 실제로 핵 갖고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국적기를 좋게 볼지 모르겠다.
  56. 주한 미대사관과 주 대만 미 상공회의소의 경우는 거의 반미주의자(...) 양성소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주중 미대사관도 비슷한 소리를 듣는 판이다.
  57. 말 그대로 공항에서 추방명령(Order of Removal) 받고 돌아가는 것으로 몇 년간 입국 금지는 물론이요 수갑이 채워지고 수 시간~수 일 감금 후 국토안보부 직원의 감시 하에 돌아가는 비행기에 탑승하며 나중에 비자 발급 시에도 추방 해당란에 '예'라고 표시해야 하는 페널티가 있다. 이정도면 거의 범죄자 취급. 일반 입국 거절로 되돌려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며 출입국 기록의 심각성이 훨씬 강하다. 단순 입국거절인 줄 알고 '추방당한 적 있습니까?'에 아니요로 대답했다 위증으로 또 입국거절된 안습한 경우가 있다.
  58. 영어는 홍콩의 공용어이므로 제외.
  59. 한국인은 중국이나 미얀마 비자를 홍콩에서 받아 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60. 이쪽은 "대만"이라는 국명을 못 쓰고 중화 타이베이(中華臺北, Chinese Taipei)라고 써야 하며, 이것도 본토에서는 부족하다고 아예 중국 소속임을 나타내는 中國臺北이라고 쓰라고 강요한다.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는 당연히 못 쓴다.
  61. 현재는 더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만 해도 84만 명이었으며 6년이 지난 현재는 100만에 근접했을 걸로 추정된다.
  62. 특이하게 아파트 바로 뒷쪽에 있으며 중국식과 서양식이 섞여있다. 묘비가 중국식이라 겉으로는 가톨릭 교도 묘지인지도 모른다.
  63. 중화민국은 외성인인 장제스가 개신교 신자라 외성인뿐인 극소수의 개신교인이 있음에도(기독교는 외성인이 끌고 온 외래종교로 간주되었다) 성탄절이 헌법기념일과 겹쳐져 공휴일이었으며 최근 개신교 및 천주교인의 증가로 교세가 10% 이상이나 확산되어 성탄절이 정식 공휴일이 되었다. 마잉주 총통도 기독교인.
  64. 중국식 이름은 黃之鋒. 광동어로는 웡지풍, 표준중국어로는 황즈펑이라고도 한다. 홍콩 우산 시위를 주도한 인물이며 1996년생 대학생으로 당시 고3이었다. 여호수아라는 뜻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독실한 기독교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여자친구인 티파니 친 역시 기독교인이다. 이 커플은 2015년 봄 중국 대륙인으로 추정되는 괴한에게 공격당했던 적 있다.
  65. 기독교인이 많다는 대한민국 조차도 종교색 강한 기독교 빌보드는 찾아보기 힘들다. 붙였다가 당장 불교 단체나 반기독교 단체들부터 들고 일어나 욕 먹을 것이다. 일본은 인구 중 기독교인이 전 종파 합쳐 1%도 안 되니 논외. 북한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고, 중국 대륙은 공산당이 통치해 아직까지 종교의 자유가 제한된다. 대만은 인구 3%의 외성인만 기독교를 믿고, 본성인은 기독교를 믿는 장제스 같은 외성인 사회지도층을 싫어해 기독교 교세가 약했고, 워낙 도교세가 강해 불교도 소수였다. 현재는 10% 정도의 대만인이 기독교를 믿어 제법 교세가 늘었다.
  66.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angoholiday&logNo=220644587857
  67. 비슷하게 싱가포르도 90% 이상의 교회가 아파트 단지 내에 십자가만 세워놓은 수준이다. 오죽하면 이 나라는 물론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교회인 시티하베스트 교회(아시아에서 두번째로 크다. 아시아 1위는 다들 잘 아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이다)가 특이한 교회로 주목 받았을 정도.
  68.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credit_rating#cite_ref-moodys-list_18-71
  69. GDP 관련 순위는, 마카오와 홍콩을 독립국으로 간주했을때의 순위이다.
  70. 구급차의 경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소방처 소속 구급서에서 제공하며(소방서에 배치된 구급차도 있다. 번호마다 다 다르다) 999번으로 호출하고 공짜다. 미국같이 돈 내야하는 거 아니다. 물론 장난전화 못 하게 시스템이 걸려 있어 한국 및 일본처럼 장난전화 문제는 없다.
  71. 도쿄 아파트트보다도 더욱낡고 좁아 터지기로 악명높은 게 홍콩의 아파트이다. 싱가포르는 HBD라는 정부에서 무상으로 싱가포리언들에게 제공하는 국영 주택들이라 더 싸고 쾌적하다.
  72. 이전 문서에는 도쿄급이라 했지만 도쿄에서도 월세 400 500 급의 집은 절대 흔치않다. 홍콩의 집값은 도쿄, 서울에 비할바가 아니다. 집값이 세계정상급 수준이라 건물 한채도 아니고 아파트 한가구가 1000억원도 나오는곳이 홍콩이다. 일본이나 한국에서 아파트 한가구에 1000억을 본적 있는가? 100억 넘는 아파트도 매우 드물다.
  73. 추성훈네가 사는 도쿄 오다이바 최고급 주상복합 고층이 월세 800이였다. 한국도 강남이나 여의도 한복판에 초고층 주상복합이나 고급아파트 대형평수를 월세로 돌린다면 몇백만원 정도는 나올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일반적 일인가? 특별한 케이스 일뿐이다
  74. 애초에 전세 제도 자체가 한국에만 존재한다.
  75. 이건 1인 가구나 2인가구를 기준으로 잡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76. 보통화로는 저우다푸라고 하며 한국 언론상에서는 보통화 발음인 '저우다푸'라는 표기를 많이 쓴다. 보석기업이라기에는 자주 언론에 거론되며 홍콩에서는 가장 큰 기업 중 하나. 광둥 성에는 저우다푸 센터라는 중국본토내 지사빌딩을 보유하고 있다.
  77. 항셍지수의 그 항셍은행(恒生銀行)이 HSBC 자회사이다.
  78. 渣打, 사타. 한국의 금융덕들도 간혹 사타라고 부른다. SC제일은행의 모기업인 그 SC로, 2010년에는 은행 창립 150주년을 기념하여 150달러 지폐가 발행된 적이 있다. 한국에서 은행장 이상 직급을 가지게 되면 500 홍콩 달러를 케이스에 담아서 준다.
  79. http://www.statistics.gov.hk/pub/B10500092015QQ01B0100.pdf
  80. 1인당 gdp와 평균임금은 다르다. 화교쪽이 지배하는 국가는 주로 저임금정책을 주로 쓰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 대만은 무려 10년동안 임금동결을 한적도 있다. 그래서 1인당 gdp는 2만달러가 넘지만 평균임금이 120~140만원 사이
  81. 전의 문서에는 3차산업 비중이 역시 매우 높은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되어있었지만 일본의 서비스업 비중은 70% 정도이며 미국,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 다른 선진국들이 더 높다. 일본의 제조업 비중은 20% 정도로 세계 평균 이상, 주요 선진국들보다 높은 편이다. 다만 여기는 청년 인구가 줄어들어서 일자리가 남는(...) 이유가 더 크다.
  82. 포르투갈은 내수시장이 대한민국만큼이나 답이 없는 국가다. 그나마 한국은 인구라도 포르투갈의 5배가 되면서 가난한 국민도 수가 많으면 내수시장이 커진다는 원리에 따라 어느 정도의 자체 컨텐츠 구축 능력은 있지만 포르투갈은 자체 컨텐츠를 구축할 역량 및 수요 자체가 없어 브라질 텔레노벨라를 수입해 방영할 정도. 그나마 인구가 있는 이웃 스페인과 다른 점이다.
  83. 물론 쪽수에선 13억의 대륙 유학생에 압도적으로 밀린다.
  84. 취업난에 시달리는 영국인들이 그래서 호주싱가포르와 함께 고르는 곳이 홍콩이다. 한국 청년들 중에서도 이 곳으로 건너와 몇포 세대라 불리는 심각한 취업난을 피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삶의 질을 누리기도 한다. 호주 워킹홀리데이처럼 열악한 대우도 없고 한국인도 적은 편이라 적응도 더 쉽다.
  85. 싱가포르호주 출신이 주류이다. 거리 때문이다.
  86. 물론 중국 본토 이민자들의 영향이 크다.
  87. 아시아 전체로 따져도 도쿄대랑 수위를 다투는 유수의 대학이다.
  88. 이와 관련해서 홍콩인들의 부심은 대단하다 할 정도... 가끔 인도공대 입시시험이 더 어렵다고 주장하는 인도애들과 다투지만 일단 인도공대 입시시험은 일반적 대입시험이 아니고 HKALE보다 커트를 보건 뭐건 쉽다는 평이다.
  89. 다만 홍콩의 경우, 유입된 성인 노동인구의 비율이 높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굳이 우리나라에서 예를 들자면 광역시 규모로는 울산, 좁은 지역으로는 여의도를 들 수 있는데, 이 동네들도 고등교육시설들은 극히 부실하다.
  90. 애초 중국의 13억 쪽수와 홍콩의 5백만, 대만의 2천만 쪽수는 게임이 안 된다(...) 어딜가나 홍콩/대만인 유학생들은 중국인에 비해 밀리며 쪽수가 후달리는 관계로 학교마다 중국인과 어울리기도 하고 중국과 자신들을 구분해 따로 모임을 만들기도 한다. 대만 소사이어티가 따로 있는 미국대학들도 꽤 있으며 대만인과 홍콩인, 이민 간 한국 화교들이 이 소사이어티에 많이 가입하고는 한다. 참고로 중국인과 홍콩/대만인을 모두 겪어보면 홍콩/대만인이 훨씬 매너가 좋고 깔끔하다. 영어도 홍콩인 학생은 네이티브 수준으로 자유롭게 구사하고, 대만인 학생도 어느 정도는 할 줄 안다. 반면 중국본토 출신은 절망적인 경우들이 많다. 애초 토플 IBT부터 꼼수로 100점 가까이 찍고 오는 친구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91. 비호대를 다룬 홍콩 영화도 있는데, 제목도 비호대(...)
  92. 순위는 4위로, 중국은 물론 일본과 한국, 미국, 독일보다 높다.
  93. 도쿄가 1,814건, 뉴욕이 2,378건, 런던은 11,300건(!!)
  94. 홍콩 전 인구가 약 700만명이니 전체 인구수 중으로 쳐도 고작 4.2건(!!).
  95. 싱가포르가 19.9건, 뉴욕이 265.9건 등
  96. 참고로 제작은 홍콩 라디오 텔레비전과 합동 제작.
  97. 물론 구급차에 실려 오면 당연히 1순위로 진료받고 의료진 전원이 달라붙는 건 물론 열 있으면 격리당하고 의사와 1대1 채팅을 할 수 있다!
  98. 참고로 영어가 아닌 표준중국어나 기타 다른 언어를 쓰면 Speak in English!라며 영어 쓰라고 혼낸다...
  99. 세계적 이동전화 회사 3 Mobile(홍콩에 본사가 있다), 대형 슈퍼마켓 체인 파크앤샵, 드럭스토어 체인 왓슨스(Watson's,屈臣氏)도 사실 청쿵실업(長江實業) 계열 회사인 허치슨왐포아(和記黃埔) 소속이다. 한패들이야 한패들이야 모두가 한패들이야 청쿵실업그룹의 리카싱(李嘉誠)회장은 자산이 30조원. 공식 아시아 제일의 부자이다. 물론 실제 아시아..아니 전세계 제일의 부자들은 석유로 떼돈 버는 중동에 있는 왕족들이지만..
  100. 싱가포르는 옆나라 말레이시아와 식수 공급 문제로 계속 싸우고 있다.
  101. 구룡반도. 홍콩에서 까우룽 반도로 분류하는 지역에는 1898년 제2차 베이징 조약으로 신계 지역과 같이 조차한 신까우룽(신구룡)도 포함된다.
  102. 이웃 마카오나 같은 영국령이었던 싱가포르도 똑같다.
  103. 그래서 홍콩의 구급차는 거진 좁은 골목에 맞게 설계되어 있다. 미국산 차량은 핸들방향도 다르고 도로 폭에도 안 맞아 찾을 수 없다.
  104. 간단히 말해서 일본 입장에서는 자동차를 수출용으로 따로 설계할 필요 없이 내수용을 그대로 팔아도 별 문제가 없었을 정도다. 더구나 뱃길로도 멀지 않은 것까지 감안한다면 이건 그냥 바다 건너 있는 제2의 내수시장이나 마찬가지.
  105. 이는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우핸들 시장에까지 신경쓸 여력이 많진 않기 때문.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니고, 르노삼성자동차를 제외한 4사(현대, 기아, 대우, 쌍용)가 전부 진출해있다. 대우자동차가 영국령 말기인 1994년에 진출해 가장 오래되었으며, 대우자동차 자체는 망했지만 자일대우버스파일:/20141229 293/powershin12 1419837842085dzwj9 JPEG/SAM 1433.jpg 차가 들어가있다. 그 다음이 기아(1996), 현대(2003). 쌍용 진출년도는...추가바람(...)
  106. 한 위키러는 여행을 갔다가 무려 봉고 3를 파일:/20141229 179/powershin12 14198377726900X4jn JPEG/SAM 1420.jpg 발견했다!
  107. 홍콩섬 택시는 영어가 다 통한다. 국제업무지구이기 때문. 그렇지만 본토 중국인이 대부분인 까우룽 반도는 영어가 안 통할 때도 매우 많고 이 때문에 승차 거부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택시기사 나름인 듯. 그래도 가고자 하는 지역의 명칭을 글로 써 보여주거나, 그 지역만 알아듣게 말해도 대부분은 알아서 잘 간다. 참고로 택시기사들은 모두 본토 중국인들이다. 표준중국어에 능통하다면 영어 대신 활용하는 편이 훨씬 좋다.
  108. Hong Kong Climate Change Report 참조
  109. 씨티버스와 신세계제일버스 모두 홍콩의 부동산 회사인 신세계발전유한공사 소속이다. 아울러 시티플라이어라는 공항버스 노선도 이쪽.
  110. 짧은 디즈니 라인과 경전철(Light Rail)을 빼면 사실상 여덟개 노선.
  111. 구조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애초에 환승역으로 볼 지가 관점에 따라 애매하다. 막장환승/해외 참조.
  112. 어처구니없지만, 홍콩의 자판기는 대부분 지폐를 아예 받질 않고, 동전은 심심하면 뱉거나 먹어버리기 떄문에 옥토퍼스 사용이 반강제된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홍콩은 의외로 은행의 무인입출금기를 비롯한 공중생활기기의 아날로그 기술력수준이 상당히 병맛이다. 따라서 언제나 카드를 위시한 디지털 기술의 이용이 장려된다.
  113. 다만 9 홍콩달러의 수수료가 있다.
  114. 인천공항에서 송도국제도시연수구는 버스가 낫다. 이와 비슷하다.
  115. 역명은 사과일보. 2003년부터는 대만판도 발간중. 2012년 초 반중국대륙감정이 실린 네티즌의 광고를 전면게재하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이웃나라/한지붕 두가족 참조.
  116. 경영난으로 폐간
  117. 무협 소설가 김용이 창간한 그 명보 맞다. 신뢰도는 홍콩의 모든 신문 중 가장 높다.
  118. 원래는 주류 신문이었지만 재정 악화 등으로 영향력 하락.
  119. 과거 냉전시대에는 서방세계에 중국대륙의 동정을 알리는 거의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영자신문이었다. 이 때문에 그 시절에는 이 신문의 중국관련 보도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중국관련 보도가 이 신문의 입지를 확고하게 만드는 데 한 몫을 했다. 그 시절 한국의 뉴스에서도 중화권관련 뉴스를 전달할 때는 항상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지의 보도에 의하면...'으로 시작하곤 했다. 지금은 중국의 개방으로 중국관련(특히 중화인민공화국) 소식 의존도는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신뢰도는 여전히 상당히 높다. 예나 지금이나 홍콩 내부에는 영자신문인 점을 강조하는 듯, 1985년 CF 카피를 요약하자면 '영어를 배워야 홍콩사회에서 성공하니 닥치고 우리신문 보세염'이다. 뭐, 지금도 틀린 말은 아니다. 영국 지배하의 그 시절이면 더더욱 그랬고.
  120. 비록 생애는 짧았지만, 당시 김용 원작의 소설(사조영웅전, 신조협려, 벽혈검, 설산비호, 녹정기 등)을 최초로 드라마한 방송국이라는 것에 의의가 있다. 또 금도정협(金刀情俠; 고룡의 구월응비를 원작으로 한 작품. 일부 장면은 한국에서 찍기도 했다.)이란 드라마에서 서극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121. 귀마쌍성(鬼馬雙星), 반근팔량(半斤八兩), 매신계(賣身契), 천재백치(天才與白痴), 마등보표(摩登保鏢), 철판소(鐵板燒)의 6개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저 제목은 다 떼고 미스터 부 시리즈로 발매.
  122. 梁普智. 이름이 한국에서 그대로 쓰기엔 좀 그래서인지 보통화 발음인 리앙부지라는 감독 이름으로 개봉된 등대여명 같은 영화로 소개된 바 있다.
  123. 정통 중국 무협영화를 촬영해야 하는데 홍콩은 그럴 만한 고풍스런 사찰 등이 드물고 무엇보다 기후 조건이 안 맞는다. 사찰을 배경으로 무협영화 찍는데 배경으로 야자수나무? 뭥미? 본토에서 찍자니 당시는 문화대혁명 시절이라 아예 들어가지도 못한다. 대만에서 촬영하자니 거기도 아열대기후~열대기후다. 일본에서 찍자니 비용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이런저런 규제가 심하다. 그러면 어디서 촬영해야 하는지는 딱 답이 나온다. 이건 80년대 초반까지의 홍콩산 무협 드라마 쪽도 마찬가지. 물론 절대다수는 세트로 떼우긴 했지만 몇몇 작품은 한국에 촬영을 하러 가기도 했다(ex: 호해쟁패록(湖海爭覇錄)과 위의 금도정협. 이 중 호해쟁패록은 덕수궁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124. 한국영화 제작 수를 채워야 외화 수입을 허용했다.
  125. 대표적인 작품이 용지인자(龍之忍者)란 영화를 짜깁기한 남기남의 흑룡통첩장.
  126. 다만 위의 호금전, 장철 감독까지 포함해서 원체 시대가 옛날이다 보니 지금 보면 유치하다고 느낄 만한 장면도 있다. 다만 80년대쯤부턴 그런 부분이 많이 제거되어 지금 봐도 별 위화감이 없는 명작들이 많다.
  127. 인지도는 영웅본색 시리즈에 비해서 밀리는 감이 없지 않지만, 동시기에 나온 홍콩 느와르물의 숨겨진 명작이다. 총 4편까지 만들어졌으며, 3편에서는 유덕화가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1편을 제외한 모든 시리즈에 서금강이 주연 또는 조연으로 나오는 것도 특징.
  128. 장르가 원체 짬뽕이라 분간이 잘 안되긴 하지만(...), 여튼 명작이다. 왕조현 하나로 끝
  129. Hong Kong Jockey Club.도박산업 독점기관이다. 경마, 로또, 스포츠토토를 주최한다. 카지노가 없는 이유는 옆에 마카오가 있기 때문이지.
  130. 반면 중국본토는 아직까지는 실내흡연에 꽤 관대하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131. 정작 진짜 베이징 시에 있는 북경반점(北京飯店)은 호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