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연대순으로 나열한 전투의 목록입니다. 나무위키에 해당 항목이 있는 항목을 소항목 등록하세요. 전투가 시작된 연도를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기 1000년 이후의 세계사의 유명 전투를 5분 길이로 압축한 영상.[1][2] |
목차
연도 | 이름 | 설명 |
1 기원전
1.1 ~200 BCE
1274 BCE | 카데시 전투 | 이집트군과 히타이트군의 전투. |
490 BCE | 마라톤 전투 | 아테네군이 아케메네스 왕조군을 격퇴. 1차 페르시아 전쟁 종결. |
480 BCE | 테르모필레 전투 | 아케메네스 왕조군이 그리스 동맹군을 격퇴. |
480 BCE | 살라미스 해전 | 그리스 동맹 해군이 아케메네스 왕조 해군 격퇴. |
479 BCE | 플라타이아이 전투 | 그리스 동맹군이 아케메네스 왕조 군 격퇴. 2차 페르시아 전쟁 종결. |
424 BCE | 델리온 전투 | 아테네가 스파르타&보이오티아 연합군에게 완패. |
406 BCE | 아르기누사이 해전 | 아테네 함대가 스파르타 함대를 격파. |
405 BCE |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 | 스파르타 함대가 아테네 함대를 격파. 펠로폰네소스 전쟁 종결. |
401 BCE | 쿠낙사 전투 | 크세노폰을 비롯한 그리스 용병들이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위 계승 전쟁에 고용된 전투. |
371 BCE | 레욱트라 전투 | 테베의 에파미논다스가 사선진을 활용해 스파르타 정예군을 섬멸하여 그리스 세계의 패권을 일시적으로 잡음. |
342 BCE | 마릉 전투 | 제나라 손빈의 군대가 야간 매복을 활용해 위나라 방연의 군대 섬멸. |
333 BCE | 이소스 전투 | 마케도니아군이 아케메네스 왕조군 격퇴. 시리아 서쪽의 모든 페르시아 영토 획득. |
331 BCE | 가우가멜라 전투 | 마케도니아군이 아케메네스 왕조군 격퇴. 이후 다리우스 3세의 사망과 아케메네스 왕조의 멸망. |
260 BCE | 장평대전 | 백기의 진군이 조괄의 조군을 격파하고 포로 30만을 생매장. |
218 BCE | 트레비아 전투 | 카르타고군이 로마군 격퇴. 한니발 바르카의 이탈리아 원정 시작. |
217 BCE | 트라시메누스 호수의 전투 | 카르타고군이 로마군 격퇴. |
216 BCE | 칸나이 전투 | 카르타고군이 로마군 격퇴. 한니발 최대의 승리. |
215 BCE | 데르토사의 전투 | 로마군이 이베리아에서 카르타고군 격퇴. 한니발에게 전달되는 지원 차단. |
212 BCE | 실라루스 전투 | 카르타고군이 로마군 격퇴. |
211 BCE | 베티스 고지의 전투 | 카르타고군이 로마군 격퇴.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 이외의 다른 카르타고 장군이 로마에게 거둔 유일한 승리. |
207 BCE | 메타우루스 전투 | 로마군이 카르타고군 격퇴. 사실상 2차 포에니 전쟁의 판도를 로마 쪽으로 결정지은 전투로 평가받는다. |
207 BCE | 거록대전 |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 군이 진나라 군을 격파. 진나라의 멸망을 사실상 확정지었다. |
205 BCE | 팽성대전 |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 군이 한나라 군을 격파. |
202 BCE | 자마 전투 | 로마군이 카르타고군 격퇴. 제2차 포에니 전쟁 종결. |
202 BCE | 해하 전투 | 유방군이 항우군 섬멸. 초한쟁패가 끝나고 한 왕조 성립. |
1.2 200 BCE ~ 기원후
190 BCE | 마그네시아 전투 | 로마군이 셀레우코스 왕조군 격퇴. 셀레우코스 왕조 패권의 몰락. |
168 BCE | 피드나 전투 | 로마군이 안티고노스 왕조군 격퇴. 로마가 안티고노스 왕조를 멸망시키고 마케도니아에 속주 설치. |
109 BCE | 왕검성 전투 | 한무제의 위만조선을 침공해 위만조선의 수도에서 펼처진 2차례의 전투. 결국 왕검성은 함락되었고 위만조선은 멸망했다. |
53 BCE | 카르헤 전투 | 파르티아군이 로마군 격퇴. 크라수스의 사망과 삼두정치의 파탄. |
52 BCE | 알레시아 전투 | 로마군이 갈리아군 격파.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 완성. |
48 BCE | 파르살루스 전투 | 카이사르군이 폼페이우스군 격퇴. 카이사르 독재의 시작. |
46 BCE | 탑수스 전투 | 카이사르가 북아프리카에 남은 소 카토 등 공화파 토벌. |
45 BCE | 문다 전투 | 카이사르가 히스파니아에서 폼페이우스 잔당 토벌. |
42 BCE | 필리피 전투 | 옥타비아누스&안토니우스 연합군이 마르쿠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롱기누스의 공화정군을 격파. 공화정파 소멸. |
31 BCE | 악티움 해전 | 옥타비아누스 측 해군이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측 해군 격퇴. 로마 내전 종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멸망. |
2 기원후
2.1 기원후~10세기
8 CE | 토이토부르크 전투 | 게르만 연합군이 로마군 격퇴. 로마 제국의 게르마니아 정복 포기. |
170 CE | 1차 좌원전투 | 신대왕 5년 후한 현도 태수 경림이 고구려를 치려다가 좌원에서 패배. 이와 유사한 기록이 신대왕 4년, 8년 기사에 존재함. |
194 CE | 2차 이소스 전투 |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동방의 대립황제 페스케니우스 니게르와 싸워 승리. 세베루스가 단독 황제로 등극. |
200 CE | 관도대전 | 후한 말기 유력 제후였던 조조와 원소의 무력충돌. 조조의 승리. |
208 CE | 적벽대전 | 후한 말 중국 북부를 제압한 제후 조조가 남쪽으로 세력확대를 꾀하나 유비, 손권 연합군에게 패배. 남부 진출에 실패한다. |
217 CE | 니시비스 전투 | 마크리누스의 로마군과 파르티아군 사이의 전투. 파르티아에 유리한 강화협상으로 마무리되었으나, 파르티아측도 큰 피해를 입어 224년 파르티아 멸망의 단초가 된다. |
221 CE | 이릉대전 | 촉한 황제 유비가 죽은 관우, 장비의 복수를 하고 형주를 수복하기 위해 오를 침공하나 패한다. |
244 CE[3] | 비류수 전투 | 고구려의 동천왕이 위나라의 관구검에게 패배한 전투. 가히 고구려 역사를 통틀어서 최악의 패배 중 하나라고 말 할 수 있으며, 그 파급력만큼은 쌍령 전투, 현리 전투 같은 한국 역사상의 기라성 같은 패전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
378 CE |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 고트족이 동로마 제국의 황제 발렌스의 군대를 절멸. 이후 로마 내에 게르만족의 대 이동을 불러옴. |
383 CE | 비수대전 | 북중국을 통합한 전진이 남중국의 동진을 침공했다가 패배. 이후 전진은 공중분해되어 북중국은 여러 이민족 왕조들이 다시 난립했고, 동진은 이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유유의 유송에 멸망. |
395 CE | 참합피 전투 | 북위가 후연의 화북 지배를 끝냄. |
451 CE | 카탈라우눔 전투 |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가 이끄는 서로마 제국, 서고트 연합군이 갈리아를 침공한 아틸라의 훈족 군대를 패배시킴. |
507 CE | 부예 전투 | 서고트 왕국과 프랑크 왕국이 루아르 강 유역을 두고 충돌. 패배한 서고트 왕국은 이베리아 반도로 영역이 축소되었고 프랑크 왕국은 아키텐 일대까지 영역이 확장되어 서유럽의 패자로 거듭남. |
552 CE | 타기나이 전투 | 동로마 제국의 나르세스가 동고트족의 군대를 격파하고 로마를 수복. |
612 CE | 살수대첩 | 제2차 고구려-수 전쟁에서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군대를 격퇴. |
622 CE | 3차 이소스 전투 | 동로마 제국 황제 헤라클리우스가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에게 승리. |
624 CE | 바드르 전투 |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추종하는 무슬림 군대가 메카와 메디나[4] 사이의 바드르에서 반대파 부족을 물리침. 이슬람 문명권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
636 CE | 야르무크 전투 | 이슬람 제국 군대가 시리아의 야르무크 강변에서 동로마 제국 군대 격파. 레반트 지역의 이슬람화. |
636 CE | 까디시야 전투 | 무슬림 아랍 군대가 이라크의 알 까디시야 근교에서 사산 왕조 이란 군대 격파. 사산 왕조 멸망의 단초가 되었다. |
644 CE | 니하완드 전투 | 무슬림 아랍 군대가 이란의 니하완드에서 사산 왕조 군대 격파. 사산 왕조의 실질적 멸망. |
645 CE | 안시성 전투 | 고구려-당 전쟁에서 고구려군이 안시성을 포위한 당나라 군대를 격퇴.[5] |
660 CE | 황산벌 전투 | 백제 계백이 이끄는 백제의 5천 별동대가 보급을 맡은 신라군에게 전멸. 이로서 나당연합군이 결성되어 백제 멸망. |
663 CE | 백강 전투 | 백제 잔당을 이끄는 풍왕과 이를 지원하기 위해 보내진 왜(일본]) 4만8천 연합군이 18만 나당연합군에게 패배해 옛 백제 세력이 완전히 멸망하였다. |
663 CE | 대비천 전투 | 토번이 설인귀 휘하의 당군을 궤멸. 간접적으로 나당전쟁의 판세에 영향을 준 전투. |
698 CE | 천문령 전투 | 대조영 휘하의 고구려 유민들이 당의 추격대 격파. 발해 건국에 성공. |
722 CE | 코바동가 전투 |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칸다브리아에서 이슬람군의 북진을 저지, 이베리아 북서부 지역은 기독교 국가의 점유 하에 남게 된다. |
732 CE | 투르-푸아티에 전투 | 투르 및 푸아티에에서 샤를 마르텔의 프랑크 왕국 군대가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 군대를 격파. 이로서 카톨링거 가문의 입지가 확고해져 프랑크 왕위를 차지하는 발판이 되었다. |
751 CE | 탈라스 전투 | 당나라 고선지가 이끄는 당나라 군대가 중앙아시아 탈라스강 유역에서 아바스 왕조군에게 전멸. 이 과정에서 중국의 제지술이 이슬람 문명과 유럽 문명으로 전파된다. |
899 CE | 비뇌성 전투 | 후삼국시대의 호족 양길과 궁예가 비뇌성(경기도 가평)에서 충돌한 사건으로 이 전투에서 승리한 궁예는 한반도 중부지방을 석권하고 후고구려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다. |
927 CE | 팔공산 전투 |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지금의 대구광역시 팔공산 일대에서 벌인 전투. 견훤의 승리. 위 승리로 견훤은 후백제 건국 후 가장 넓은 세력 판도를 갖게 된다. |
930 CE | 고창 전투 |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지금의 경북 안동인 고창에서 맞붙은 전투. 왕건의 승리. 사실상 후삼국 시대의 승패를 결정 지은 전투이다. |
954 CE | 고평 전투 | 후주군이 요나라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침공 방어. |
955 CE | 레히펠트 전투 |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오토 1세가 다뉴브 강[6]지류 레히강에서 마자르족(헝가리인)을 격파 |
2.2 11~16세기
1010 CE | 통주 전투 | 요성종의 주력군이 강조의 고려군을 격파. 고려는 야전 주력군을 잃고 수도 개경까지 내주게 됨. |
1019 CE | 귀주 대첩 |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이 소배압의 거란군을 격멸함. 이로 인해 여요전쟁의 최종 승리자는 고려가 된다. |
1040 CE | 단다나칸 전투 | 셀주크 왕조가 가즈니 왕조를 격파하고 트란스옥시아나 일대의 지배권을 획득. |
1066 CE | 헤이스팅스 전투 | 윌리엄 1세가 이끄는 노르만 군이 잉글랜드 군을 격멸함. 이로 인해 노르만 정복이 실질적으로 시작되었다. |
1071 CE | 만지케르트 전투 | 셀주크 제국의 술탄인 알프 아르슬란이 동로마 제국의 군대를 궤멸시키고 총사령관인 황제 로마누스 4세를 생포. 동로마 제국이 소아시아를 상실하고 쇠퇴하기 시작. |
1114 CE | 출하대첩 | 완안아골타가 이끄는 3700명의 여진족이 27배나 많은 요나라 군대를 섬멸시켰다. |
1176 CE | 미리오케팔론 전투 | 마누엘 1세가 이끄는 동로마 제국군이 소아시아 회복을 위해 출정하였으나 실패. 이후로 다시는 회복하지 못하였다. |
1187 CE | 하틴 전투 | 살라흐 앗 딘이 이끄는 이슬람군이 예루살렘 왕국군을 괴멸시킴. 이로 인해 90여년 만에 예루살렘이 이슬람의 손으로 넘어감. |
1212 CE |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 | 기독교 연합군과 무와히드 왕조간의 전투. 이 전투 이후 무슬림 세력은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최종적으로 1492년 나스르 왕조의 멸망으로 레콘키스타 종결. |
1223 CE | 칼가강 전투 | 몽골의 러시아 침공. |
1231 CE | 철주성 전투 | 고려군과 몽골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 고려군은 치열하게 항전했지만 몽골군에게 패배함. |
1231 CE | 동선역 전투 | 고려군과 몽골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 고려군은 몽골군과의 야전(野戰)에서 처음으로 승리함. |
1231 CE | 안북성 전투 | 고려군과 몽골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 |
1231 CE | 제1차 자모산성 전투 | 몽골군과 고려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 |
1231 CE | 귀주성 전투 | 고려군과 몽골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 고려군이 승리하였으나, 결과는…. |
1232 CE | 처인성 전투 | 고려군과 몽골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고려군이 승리함. |
1236 CE | 제2차 자모산성 전투 | 고려군과 몽골군 사이에 벌어진 준톨, 몽골군이 성을 함락. |
1241 CE | 레그니차 전투 | 몽골 제국 군대가 폴란드, 모라비아, 튜튼기사단의 연합군을 슐레지엔에서 격파. 그러나 오고타이 칸의 사망으로 더 이상 유럽 진출을 포기. |
1260 CE | 아인잘루트 전투 | 맘루크 왕조가 몽골 제국의 군대를 시리아에서 격파. 몽골 제국의 아프리카 진출 저지. |
1346 CE | 크레시 전투 | 백년전쟁 초반의 |
1356 CE | 푸아티에 전투 | 에드워드 왕세자가 지휘하는 영국군이 장 2세의 프랑스군을 괴멸시키고 장 2세는 영국의 포로가 됨. |
1363 CE | 파양호 대전 | 주원장과 진우량의 전투.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수군 전투. |
1370 CE | 요동 전투 | 대한민국 역사상 마지막 요동을 차지하게 된 전투 |
1371 CE | 마리차 강 전투 | 오스만 제국이 세르비아군을 기습하여 완파. |
1380 CE | 쿨리코보 전투 | 모스크바 대공 드미트리가 이끄는 러시아 연합군이 킵차크 칸국 군대를 격파하여 몽골의 굴레에서 벗어남. |
1389 CE | 코소보 전투 | 오스만 제국과 세르비아·보스니아 연합군 간의 전투. 오스만 술탄 무라드 1세가 암살(또는 전사)당하나 세르비아군을 지휘하던 세르비아 공작 라자르 흐레벨랴노비치도 전사하였으며, 바예지드 1세가 곧바로 왕위를 승계. 오스만 제국이 발칸 반도를 점령하는 기틀 마련. |
1396 CE | 니코폴리스 전투 | 오스만 제국과 프랑스, 헝가리가 주축이 된 십자군 간의 전투. 오스만 제국이 발칸 반도의 패권 장악. |
1402 CE | 앙카라 전투 | 티무르와 오스만 제국간의 전투. 티무르의 승리. 오스만 제국 술탄 바예지드 1세가 포로로 잡힘. |
1410 CE | 그룬발트 전투 |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이 튜튼기사단의 동진을 타넨베르크(그룬발트)에서 격파. 튜튼기사단의 동진 저지 및 폴란드의 동프로이센 획득. |
1415 CE | 아쟁쿠르 전투 | 헨리 5세의 영국군이 샤를 6세의 프랑스군을 괴멸시킴. 이로서 영국은 프랑스의 왕위 계승권 획득. |
1420 CE | 비트코브 산 전투 | 소수의 후스파가 수천 명 규모의 십자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둠. |
1429 CE | 파타이 전투 | 라 이르의 프랑스 선봉부대가 영국의 존 탈보트의 주력 장궁병을 궤멸시킴. 이로써 백년전쟁 전세가 프랑스에 기울어짐. |
1444 CE | 바르나 전투 | 오스만 제국과 유럽 연합군간의 전투. 앙카라 전투 이후 오스만 제국이 다시금 발칸 반도에 대한 지배력을 재확인. |
1453 CE |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 오스만 제국의 정복왕 메흐메트 2세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7주간의 포위 끝에 함락. 로마 제국 완전 멸망. |
1456 CE | 베오그라드 공방전 | 오스만 제국의 메머드 2세가 공격했으나, 야노슈 후냐디의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후퇴함. |
1485 CE | 보즈워스 전투 | 랭커스더 왕가의 헨리 7세가 요크 왕가의 리처드 3세를 전사시키고, 튜더 왕가를 수립함으로써 장미 전쟁 종결됨. |
1503 CE | 체리뇰라 전투 | 남부 이탈리아의 패권을 두고 스페인과 프랑스가 벌인 전투. 총이 본격적으로 쓰인 최초의 전투이자, 스페인이 남이탈리아를 지배하게 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전투. |
1514 CE | 찰디란 전투 |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왕조간의 카프카스, 아나톨리아 지역의 패권을 두고 벌인 전투. 포병을 활용한 오스만 군이 기병 위주의 사파비 군을 격파하고 일시적으로 사파비 왕조의 수도인 타브리즈를 점령. |
1515 CE | 마리냐뇨 전투 | 프랑수아 1세의 프랑스와 베네치아 연합군이 스위스와 밀라노 격파. 스위스 용병 신화가 깨지기 시작한다. |
1516 CE | 마르지 다비크 전투 | 황제 셀림 1세가 지휘하는 오스만 제국군과 술탄 알 아슈라프 칸수 알 과리가 친히 이끄는 맘루크 왕조군이 벌인 전투. 이 전투에서 알 아슈라프가 전사하고 맘루크군의 주력이 궤멸당함. |
1520 CE | 슬픔의 밤 | 에르난 코르테스의 아스텍제국 정복이 한순간 좌절되다. |
1520 CE | 오툼바 전투 | 아스텍제국의 대군이 소수의 에르난 코르테스의 원정대를 궤멸시키고자 한 시도가 좌절되다. |
1521 CE | 베오그라드 공방전 | 천연요새였던 베오그라드가 오스만 제국에게 허무하게 점령당하다. |
1522 CE | 로도스 섬 공방전 | 성 요한 기사단이 오스만 제국의 공격을 받아 패배하고 로도스 섬에서 축출당함. |
1525 CE | 파비아 전투 | 신성 로마 제국, 스페인[7]과 프랑스와의 전투.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는 포로로 잡혔으며, 합스부르크 황가가 승리하여 카를 5세가 유럽의 패권을 장악. |
1526 CE | 제1차 파니파트 전투 | 무굴 제국과 북인도의 로디 왕조 간의 전투. 무굴 제국군은 화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로디 왕조를 무너트리고 인도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
1526 CE | 모하치 전투 | 오스만 제국이 헝가리의 모하치에서 기독교 연합군을 격파. 완전독립국이며 단일국가로서의 헝가리 왕국은 이로써 멸망. |
1527 CE | 사코 디 로마 |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 침공. 당시 황제에게 패배한 교황은 산탄젤로로 도주, 제국에 항복하여 결국 교황령을 위시한 코냑 동맹이 붕괴되는 것으로 종식된다. |
1529 CE | 1차 빈 포위 | 전성기의 오스만 제국이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 빈을 공격하나 실패한다. 이로 인해 오스만 제국의 동유럽에서의 팽창은 헝가리에서 멈추게 되었다. |
1538 CE | 프레베자 해전 | 하이르 앗 딘이 이끄는 오스만 제국 함대가 안드레아 도리아 휘하의 신성동맹 함대(스페인, 베네치아, 교황령)를 격파. 오스만 제국이 지중해에서의 패권을 장악. |
1545 CE | 카와고에 성 전투 | 호조 우지야스가 카와고에 성에서 우에스기와 아시카가 연합군을 상대로 대승리를 거둠. |
1552 CE | 카잔 전투 | 러시아의 이반 4세가 카잔 칸국을 공격하여 멸망시킴. |
1556 CE | 제2차 파니파트 전투 | 무굴 제국이 아프가니스탄의 침공을 저지. 이후 무굴 제국은 인도 아대륙의 북부 지역을 석권하여 전성기를 개막하게 된다. |
1560 CE | 오케하자마 전투 | 오다 노부나가군이 이마가와 요시모토군을 격파. 10배의 병력차를 극복한 전투 |
1566 CE | 시게트바르 공방전 | 오스만 군이 시게트바르 성을 10여 차례에 걸쳐 공격했으나 모두 격퇴당하고, 친정에 나섰던 슐레이만 대제가 병사하자 오스만 군은 철수함. |
1571 CE | 레판토 해전 | 베네치아, 스페인, 교황령 등 신성동맹 함대가 오스만 제국 함대를 레판토에서 물리침. 오스만 해군은 이후 팽창을 지양하고 북아프리카 해적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
1573 CE | 미카타가하라 전투 | 다케다 신겐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전투. 이에야스가 대패하여 위기에 몰리나 그 이후 다케다 신겐이 급사하여 오다 노부나가측이 유리하게 된다 |
1575 CE | 나가시노 전투 | 다케다 가쓰요리와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간의 전투. 오다와 도쿠가와의 연합국이 승리하고 이를 계기로 다케다 가문은 몰락하고 오다 노부나가는 천하포무의 기회를 잡게 된다. |
1584 CE |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 | 도쿠가와 이에야스군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군대를 격파. 결국 정치적으로는 패배하지만 실력과 세력을 인정받는다. |
1590 CE | 하치오지성 전투 | 도요토미 히데요시군이 후호조씨의 하치오지성을 함락한 전투. 도요토미의 승리. |
1592 CE | 부산진 전투 | 임진왜란 최초의 전투. 왜군의 승리. |
1592 CE | 동래성 전투 | 임진왜란 때 동래성에서 벌어진 싸움. 왜군의 승리. |
1592 CE | 다대포진성 전투 | 임진왜란때 다대포에서 벌어진 싸움. 왜군의 승리. |
1592 CE | 금산 전투 | 임진왜란 때 금산에서 벌어진 두차례의 싸움. 왜군의 승리. |
1592 CE | 용인 전투 | 임진왜란 때 용인에서 벌어진 싸움. 조선군은 자기들의 후방으로 일제히 돌격하는 위엄을 보여준다. 이에 자신을 얻은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남쪽으로 내려가... |
1592 CE | 한산도 대첩 | 임진왜란 때 한산도 근역에서 벌어진 싸움. 사실상 임진왜란의 승부를 결정지은 전투로 평가된다. |
1592 CE | 진주 대첩 |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벌어진 싸움. 왜군의 전라도 공격을 사실상 좌절시켰으나 진주목사 김시민은 총탄에 맞고 사망. |
1592 CE | 연안성 전투 | 임진왜란 때 최초로 수성전에서 조선이 승전한 전투. |
1593 CE | 행주 대첩 | 임진왜란 때 행주산 일대에서 벌어진 싸움. 권율이 이끄는 조선군의 승리. |
1593 CE | 제2차 진주성 전투 |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벌어진 싸움. 왜군의 승리. 이로인해 전라도 일대는 왜군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
1597 CE | 칠천량 해전 | 임진왜란 때 칠천량 인근 해역에서 벌어진 싸움. 왜군의 승리. 이로 인해 조선수군은 사실상 괴멸. |
1597 CE | 명량 해전 |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왜군을 격파. 이후 전라도의 제해권은 다시 조선군이 장악. |
1598 CE | 노량 해전 | 조선 수군이 퇴각하는 왜군을 격멸함. 임진왜란을 마무리 짓는 전투 중 하나로 기록. 이순신 전사. |
1600 CE | 세키가하라 전투 |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난세의 일본을 평정하고 쇼군으로 취임하여 에도 막부를 수립한다. |
1600 CE | 니우포르트 전투 | 네덜란드 독립군이 스페인 테르시오를 가까스로 격파한다. 선형진이 실험되었으나 아직은 시기상조임이 밝혀진다. |
2.3 17~20세기 초반
1619 CE | 사르후 전투 | 명나라와 누르하치의 후금이 벌인 대전. 이 전투에는 조선의 군대도 파견되어 명군을 위해 싸웠으며, 후금군의 대승으로 끝나 요동 지역의 패권을 만주족이 손아귀에 완벽하게 쥐게 되는 결과를 남기고 말았다. |
1620 CE | 바이센베르크 전투 | 30년 전쟁의 전투 중 하나. 안할트-크리스티안이 지휘하는 2만명의 보헤미아 군과 용병들이 카렐 보나벤투라 부쿼이가 지휘하는 2만 5천명의 신성로마제국의 페르디난트 2세와 틸리 백작 요한 체르클라에스가 지휘하는 가톨릭 동맹군에게 궤주당함으로써, 보헤미아의 시대는 끝이 났다. |
1626 CE | 영원성 전투 | 명나라의 원숭환(袁崇煥)과 후금의 누르하치(努爾哈赤)가 영원성(寧遠城)을 놓고 벌인 공성전. 이 전투가 명나라의 승리로 끝남에 따라, 명의 요동 방어선은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이듬해인 1627년, 홍타이지가 다시 한번 공격해 들어왔지만 원숭환의 방어에 물러나야 했다. |
1631 CE | 브라이텐펠트 전투 | 30년 전쟁의 전투 중 하나. 프로테스탄트 진영의 지휘관이자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로마 가톨릭 진영의 지휘관 틸리 백작 요한 체르클라에스를 격파함. |
1632 CE | 뤼첸 전투 | 30년 전쟁의 전투 중 하나.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이 이끄는 스웨덴군과 독일 개신교 제후 연합군과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이 이끄는 신성로마제국 및 로마 가톨릭 동맹 연합군과 교전함. 스웨덴군은 전술적으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으나,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흉탄을 맞고 전사함. |
1634 CE | 뇌르틀링겐 전투 | 30년 전쟁의 전투 중 하나. 가톨릭 황제군은 스페인의 카르디날 인판테 페르디난트가 이끄는 1만 8천명의 스페인 용병대의 지원을 받아 스웨덴군과 작센군이 연합한 프로테스탄트 군대를 격파함. |
1637 CE | 광교산 전투 | 병자호란에서 몇 안되는 승리. 전라도 근왕병과 청군이 격돌하여 청군이 패주한다. |
1637 CE | 자모산성 전투 | 병자호란에서 몇 안되는 승리. 평안도 근왕병이 청군을 격퇴시킨다. |
1637 CE | 쌍령 전투 | 병자호란 중 경기도 광주에서 4만의 조선군이 수천의 청군과의 접전에서 초기 300여의 기병돌격에 당황하다가 패퇴하였다. |
1642 CE | 네이즈비 전투 | 제1차 영국 내전의 전투 중 하나.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군이 왕당파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둠. |
1643 CE | 로크루아 전투 | 30년 전쟁의 전투 중 하나. 앙갱 공작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프란시스코 데 멜로가 이끄는 스페인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둠. |
1644 CE | 일편석 전투 | 청·오삼계 연합군이 이자성군을 완파. |
1645 CE | 얀카우 전투 | 30년 전쟁의 전투 중 하나. 황제군이 프라하 근교에서 스웨덴군에게 대패하고, 황제 페르디난트 3세는 빈으로 도망침. |
1683 CE | 2차 빈 포위 | 오스만 제국이 다시 한번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 빈을 공격하나 패한다. 이로 인해 오스만 제국은 유럽 영토의 상당수를 상실하며 몰락하기 시작한다. |
1702 CE | 프리들링겐 전투 |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의 전투 중 하나. 바덴-바덴 마르그레브 루트비히 빌헬름이 지휘하는 황제군을 상대로 클로드 루이 엑토르 드 빌라르가 지휘하는 프랑스군이 승리를 거둠. |
1707 CE | 알만사 전투 |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의 전투 중 하나. 제임스 피츠제임스이 이끄는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이 골웨이 경이 이끄는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연합군을 격파하고 스페인의 동부 지방을 부르봉의 영토임을 선언함. |
1708 CE | 오우데나르데 전투 |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의 전투 중 하나. 영국, 네덜란드, 신성로마제국 연합군이 프랑스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둠. |
1709 CE | 폴타바 전투 | 대북방전쟁의 전투 중 하나. 스웨덴이 러시아로 진격해 벌어진 전투. 러시아가 승리하여 북유럽 지역의 패권을 획득하였으며, 스웨덴은 이후 열강의 반열에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됨. |
1712 CE | 드냉 전투 |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의 전투 중 하나. 사보이의 외젠 공이 이끄는 오스트리아-네덜란드 군을 상대로 빌라르 원수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
1713~1714 CE | 바르셀로나 공방전 |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의 마지막 전투. 펠리페 5세가 카를 대공을 상대로 승리를 거둠으로써, 부르봉 왕가가 최후의 승자가 됨. |
1781 CE | 요크타운 전투 | 미국 독립 전쟁을 사실상 종결시킨 전투 |
1796 CE | 아르콜 다리 전투 | 프랑스 혁명 직후 이탈리아 북부에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충돌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활약했던 초기의 전투. |
1800 CE | 마렝고 전투 | 제2차 이탈리아 전쟁에서 다시 맞붙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위기에 처한 나폴레옹이 여기서 기사회생한다. 해당항목 참조. |
1805 CE | 트라팔가르 해전 | 호레이쇼 넬슨의 영국 해군이 빌뇌브가 이끄는 나폴레옹의 프랑스 해군 격파. |
1805 CE | 아우스터리츠 전투 |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이끄는 연합군을 격파. 삼제회전 |
1815 CE | 워털루 전투 | 벨기에의 워털루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군과 아서 웰즐리가 이끄는 영국, 프로이센의 대불동맹군이 맞붙음. 이 전투로 나폴레옹은 완전히 패배, 나폴레옹 전쟁이 종결. |
1854 CE | 발라클라바 전투 | 크림 전쟁에서 영국군과 러시아군이 충돌한 전투. 영국군의 무모한 닥돌로 유명하다. |
1862 CE | 앤티텀 전투 | 남북전쟁 중 로버트 E. 리가 이끄는 남군과 북군 사이의 전투. 하루만에 각각 1만 5천씩의 전사자가 나는 끝에 무승부. 이로써 남군의 진격은 저지된다. |
1863 CE | 챈슬러스빌 전투 | 남군의 장군 스톤월 잭슨이 사망. |
1863 CE | 게티스버그 전투 | 미군(북군)이 남부연합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둠. 이후 남북전쟁은 북부에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 |
1863 CE | 카메론 전투 | 나폴레옹 3세의 멕시코 원정으로 파견된 프랑스 외인부대가 멕시코군에 맞선 전투. |
1876 CE | 리틀 빅혼 전투 |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의 '인디언 진압대'가 아메리카 원주민군에게 몰살된 전투. 이후 커스터 중령은 미국에 의해 영웅시되나 실상 그는 무능하고 잔인한 장교였을 뿐이다. |
1904 CE | 뤼순 공방전 | 러일전쟁 중 일본군이 요새도시 뤼순을 공격해 함락. 그러나 강력하게 요새화된 뤼순을 쉽게 점령할 수 있다는 오판은 막대한 인명피해를 수반하였다. |
1905 CE | 봉천 전투 | 러일전쟁 중 일본군과 러시아군 사이에 벌어진 최대규모의 지상전. 일본군은 약전고투끝에 승리를 거두었으나 러시아군의 섬멸에는 실패했다. |
1905 CE | 쓰시마 해전 | 도고 헤이하치로의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의 발트 함대를 격파하였다. |
2.4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1914 CE | 국경 전투 | 1차대전초,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평시에 준비한 전쟁계획을 서로를 향해 발동한다. 끔찍한 피해를 낳은 대결끝에 프랑스군은 패배하고 1차 마른 전투를 벌일 때까지 후퇴한다. |
1914 CE | 탄넨베르크 전투 | 독일군이 공세에 나선 러시아군 2개 군을 섬멸함. 그러나 전투 지원을 위해 독일군이 서부전선에서 병력을 차출하면서 전력공백이 발생해 서부전선이 고착된다. |
1914 CE | 1차 마른 전투 | 파리로 향하던 독일군이 연합군의 반격에 막혀 진격이 좌절됨. 슐리펜 계획이 실패하면서 서부전선의 전황은 참호전으로 교착화된다. |
1915 CE | 갈리폴리 전투 | 오스만 제국이 영국 해군의 공격을 격퇴함. |
1916 CE | 베르됭 전투 | 독일군이 서부전선에서 공세를 시도하나 좌절되며 양군에 막대한 피해를 낸다. |
1916 CE | 유틀란트 해전 | 영국 해군과 독일 해군의 주력함대가 격돌해 독일 함대가 승리함. 그러나 독일 함대는 이후 외해 진출을 포기하였기에 전략적으로는 영국의 승리. |
1916 CE | 솜 전투 | 영국군이 베르됭 공세에 맞서 독일군에 대해 공세를 시도하나 양군에 막대한 피해를 낸다. |
1916 CE | 파스샹달 전투 | 니벨 공세 실패 이후 연합군의 공세. |
1917 CE | 카포레토 전투 | 독일-오스트리아군이 이탈리아군에 대규모 반격을 개시하여 승리한다. |
1918 CE | 백일 전투 | 1차 세계대전 연합군의 최후 공세 |
2.5 전간기(1919~1939)
1920 CE | 봉오동 전투 | 홍범도 등이 이끄는 독립군 부대가 일본군과 교전한 뒤 김좌진 부대와 합류 하였다. |
1920 CE | 청산리 전투 | 김좌진, 홍범도 등이 지휘하는 독립군 부대가 일본 추격군을 상대로 용맹히 교전하였다. |
1920 CE | 바르샤바 전투 |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의 일부. |
1921 CE | 사카르야 전투 | 터키 독립전쟁의 일부. |
1922 CE | 더블린 전투 | 아일랜드 내전의 일부. |
1937 CE | 보천보 전투 | 김일성이 인솔하는 부대가 일제로부터 시골마을을 하루동안 해방한 사건. |
2.6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 제2차 세계대전/전투목록 참고.
1939 CE | 할힌골 전투 | 몽골 영토에서 일어난 소련군과 일본 관동군 사이의 무력 충돌. 소련군의 승리.[8] |
1939 CE | 폴란드 침공 |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올린 전투. 나치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분할 점령. |
1940 CE | 프랑스 침공 | 6주만에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 독일 승리. 이후 됭케르크 철수작전에서 33만 명의 연합군이 탈출에 성공한다. |
1940 CE | 아라스 전차전 | 영국 대륙원정군 소속 전차 부대가 독일군과 교전. |
1940 CE | 캐터펄트 작전 | 프랑스가 항복하자 프랑스 해군이 독일에게 넘어갈 것을 우려한 영국은 프랑스 해군을 습격한다. |
1939~45 CE | 대서양 전투 | 대서양에서 전개된 독일과 연합국 해군 간의 일련의 전투. 영국의 항로 봉쇄 및 유럽과 미국을 연결하는 병참 보급로 차단이 독일측의 목적이었으나 실패한다. |
1940 CE | 영국 본토 항공전 | 영국 공군이 독일 공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함. 이후 독일군은 영국 본토 침공을 포기. |
1940 CE | 타란토 공습 | 영국 해군이 이탈리아 해군 기지 타란토를 공습. 이로 인해 이탈리아군은 지중해 재해권을 상실.[9] |
1941 CE | 비스마르크 추격전 | 독일 해군과 영국 해군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
1941 CE | 유고슬라비아 침공 | 유고슬라비아에서 친영국 쿠데타가 발생하자 추축국은 유고슬라비아를 공격한다. |
1941 CE | 바르바로사 작전 | 독소전쟁의 서막. 독일군은 전투에서는 승리하나, 전쟁에서의 승리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
1941~2 CE | 모스크바 공방전 | 바르바로사 작전의 궁극적인 목표를 저지하는데 성공한다. |
1941~2 CE | 세바스토폴 공방전 | 독일군이 소련의 군항인 세바스토폴을 3배의 병사로 포위, 점령하고 10만에 달하는 소련군은 전멸한다.[10] |
1941~44 CE | 레닌그라드 공방전 | 871일동안 지속된 전투. 44년 전황 악화로 독일군이 퇴각. |
1941 CE | 진주만 공습 | 일본 해군이 진주만에 위치한 미 태평양 함대의 모항을 기습공격하였다. 이로 인해 미국은 중립을 포기하고 추축군에게 선전포고를 선언한 뒤 연합군으로 참전한다. 이로써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 |
1941 CE | 말레이 해전 | 영국 동양 함대가 일본 항공대에 의해 궤멸당한다. |
1941 CE | 웨이크 섬 전투 | 일본군의 공격에 수적 열세인 미군이 분투한다. |
1941~2[11] CE | 싱가포르 전투 | 동남아시아의 영국군 거점 싱가포르를 일본군이 점령한다. |
1942 CE | 산호해 해전 | 오스트레일리아 북동부 산호해에서 미-일 해군 기동부대가 충돌한다. 항모 기동부대 간의 첫 교전 사례. |
1942 CE | 스탈린그라드 전투 | 붉은 군대가 독일 제6군을 스탈린그라드에서 포위 공격, 섬멸함. 이로 인해 독일군은 수십 만 병력과 물자를 잃음. |
1942 CE | 미드웨이 해전 | 미국 해군이 미드웨이 근해에서 일본 해군을 괴멸시킴. 이로 인해 태평양 전쟁의 주도권은 미군의 손으로 넘어간다. |
1942 CE | 엘 알라메인 전투 | 에르빈 롬멜이 이끄는 독일 아프리카 군단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서부 엘 알라메인에서 버나드 로 몽고메리가 이끄는 영국 제8군에게 저지당한다. |
1942 CE | 사보섬 해전 | 과달카날 인근 사보섬에서 미일 함대가 충돌. 순양함을 다수 상실한 미군 측의 패배로 평가. |
1942~3 CE | 과달카날 전투 | 미군이 과달카날에서 일본군을 괴멸시킴. 이로서 일본 육군 역시 미군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줬다. |
1942 CE | 횃불 작전 | 영미 연합군이 비시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에 상륙. |
1942 CE | 바렌츠 해 해전 | 북극권 바렌츠 해에서 소련을 향한 연합군 병참 항로를 저지하려는 독일 해군 수상 함대의 "마지막 저항다운 저항". |
1943 CE |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 | 독일군 승리. 스탈린그라드에서의 피해를 만회 |
1943 CE | 쿠르스크 전투 | 역사상 최대규모의 단일전투.붉은 군대가 나치 독일군을 상대로 승리. 특히 프로호르프카에선 양군 도합 900여 대의 전차가 격돌한 전무후무한 사상 최대의 대(大)전차전[13][14] 이며, 이로 인해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공세 전력을 상실. |
1943 CE | 타라와 전투 | 태평양의 작은 섬 타라와에 주둔한 일본군을 미군이 섬멸함. 태평양 전쟁에서 전개된 미군의 도서 상륙과 고립된 일본군의 전멸 양상은 사실상 여기부터 시작된다. |
1943 CE | 몬테카시노 전투 | 독일군을 잡겠답시고 중세 시대에 지어지고 방대한 양의 고문서들을 보관 중이던 역사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던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수만 톤의 TNT로 날려 버리면서 시작. 문제는 독일군은 케셀링 원수의 명령으로 수도원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는 것. 수도원 내의 일반 피난민들과 성직자들만 피해를 입었으며 결과적으로 폐허가 된 수도원 터에 독일군이 자리를 잡고 연합군을 몇 개월 간 괴롭힌다. 나중에 독일군이 철수하자 연합군 중 일부(자유 폴란드군과 자유 프랑스군[15] )는 약탈, 학살, 강간등 온갖 병크를 터뜨렸다.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전투 중 가장 막장이던 전투. |
1944 CE | 코르순-체르카시 포위전 | |
1944 CE | 카메네츠-포돌츠크 포위전 | |
1944 CE | 임팔 작전 | 일본군의 역사적인 최악의 병크. 무타구치 렌야의 작전 입안 하에 일본군은 보급받지 못하는 상태로 정글을 가로질러 임팔을 기습하고 격퇴당해 총 7만 2천의 사망자를 낸다. |
1944 CE | 노르망디 상륙작전 |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 프랑스 해방을 위한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간다. |
1944 CE | 빌레르보카쥬 전투 |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프랑스에 상륙한 연합군에 맞서 미하일 비트만 휘하 독일 전차대가 싸운다. |
1944 CE | 필리핀 해 해전 | 괌과 북마리아나 제도 상륙을 앞둔 미군이 일본군 항공 전력을 말 그대로 사냥했다! |
1944 CE | 사이판 전투 | 타라와 전투의 확대 버전(…). 전쟁의 비극을 대표하는 충공스러운 절벽 투신 장면이 바로 여기에서(…). |
1944 CE | 레이테 만 해전 |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전. 필리핀 상륙을 앞둔 미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일본군 사이의 "제대로 된" 해상 작전 임무. 동원 함선 톤수로는 최고기록. 여기서 괴멸한 일본 해군은 기댈 곳이 없어 결국 정신줄을 놓고야 말았다! |
1944 CE | 바그라티온 작전 | 소련군이 동유럽 지역에 대한 일대 공세를 실시함. 독일의 동맹국들이 항복하고 동부전선의 독일군은 저항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
1944 CE | 마켓 가든 작전 | 연합군의 오만이 참극을 가져왔다. |
1944 CE | 휘르트겐 숲 전투 | 서유럽을 거의 해방시키고 독일 국경까지 접근한 미군은 휘르트겐 숲 지크프리트 선에서 독일군의 저항에 직면한다. 여기서 시간을 벌어 반격의 준비를 마친 독일군은 마침내... |
1944 CE | 아르덴 대공세 | 독일군이 서부전선의 연합군을 상대로 최후의 공세를 시도하나 좌절됨. 이로서 독일군은 서부전선에서도 여력을 상실한다. |
1945 CE | 람리섬 전투 | 람리섬에서 영국군과 일본군 간에 벌어진 전투. 일본군은 악어가 득실거리는 늪을 가로질러 반자이 어택을 시전해 악어밥이 되는 병크를 저지른다. |
1945 CE | 베를린 전투 | 제3제국의 수도 베를린이 포위되고, 히틀러가 자살했으며 되니츠가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유럽의 전쟁이 끝났다! |
1945 CE | 이오지마 전투 | 미군이 이오지마에 틀어박힌 일본군을 전멸시킴. 일본의 영토에서 벌어진 첫 지상전. 미군 역시 피해가 컸기에 일본 본토 진공에 고심함. |
1945 CE | 오키나와 전투 | 미군이 오키나와 섬에 상륙해 일본 방어군을 섬멸함. 이오지마 전투에 이은 참상을 경험한 미국 정부는 소련에 대일 참전을 요청한다. |
1945 CE | 만주 작전 | 미군의 요청에 따라 붉은 군대가 만주의 관동군을 공격, 일본이 믿고 있던 소련 협상과 관동군 전력 둘 다 소멸해 버린다. 결국 일본 제국은 항복, 전세계의 전쟁이 끝났다! |
2.7 냉전기(1945년~1991년)
1950 CE | 춘천-홍천 전투 | 한국전쟁 발발직후인 1950년 6월 25일에서 30일 사이 대한민국 국군 제6보병사단이 강원도 춘천에서 홍천 방면으로 남하하던 북한군 제2군단의 공세를 저지하여 진격속도를 늦춘 전투. |
1950 CE | 다부동 전투 | 대한민국 국군 제1보병사단이 북한군 상대로 낙동강 전선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는데 성공. 반격의 기틀을 마련하게 됨. |
1950 CE | 인천 상륙작전 | 미군이 대한민국 인천에 투입되어 서울까지 진격. 이로 인해 한국전쟁 초반 밀리던 한국군이 압록강까지 반격할 수 있게 됨. |
1950 CE | 장진호 전투 | 함경남도 장진군 장진호에서 중공군의 공세에 직면한 미 해병 제1사단이 함흥/흥남항 방면으로 진군한 사건.[16] 흥남 철수는 이 전투의 연장선상에 있다. |
1951 CE | 1.4 후퇴 | 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으로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은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철수한다. 1950년 6월 28일에 이은 두번째 서울 함락이었다(…). |
1951 CE | 횡성 전투 | 한국전쟁 시기, 1951년 2월 펼쳐진 중공군 3차 공세에서 한국군 제8보병사단이 중공군 13병단의 공격에 궤멸당한 전투. 이 전투로 중공군의 공세는 계속되었다. |
1951 CE | 금양장리 전투 | 경기도 용인군 용인읍 금양장리(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일대에서 터키군이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한 전투. |
1951 CE | 현리 전투 | 강원도 인제군 현리 일대에서 대한민국 국군 제3군단이 중공군의 춘계공세로 붕괴, 후퇴한다. 이로 인해 한국군은 독자적 작전능력을 상실한다. |
1951 CE | 용문산 전투 | 대한민국 국군 제6보병사단이 경기도 가평군 용문산 일대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을 격파. |
1952 CE | 백마고지 전투 | 한국전쟁 중 단일 최다 포탄을 쏟아부었던 전투. 그리고 중국군이 한국전쟁당시 유일하게 국군에게 패배했다는걸 인정한 전투다. |
1953 CE | 금성 전투 | 한국전쟁 막바지에 대한민국 국군과 중공군이 강원도 금성군 일대의 돌출부를 놓고 벌인 전투. |
1968 CE | 구정 공세 | 베트남 전쟁 당시 사실상 관례화 되어 있는 뗏(베트남말로 구정, 1월 1일) 휴전 중 베트콩이 일제히 공격을 가하였다. 공세는 실패하나 미국의 반전여론에 불을 붙였다. |
2.8 냉전 이후(1991년~)
1990 CE | 걸프 전쟁 |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격퇴하기 위해 미군을 위시한 다국적군이 벌인 전투, |
1993 CE | 모가디슈 전투 | 요인 납치 작전 도중 소말리아의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미군과 민병대 및 아이디드 군벌 간의 전투. |
1999 CE | 제1연평해전 |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해군의 선제공격으로 벌어진 남북 함정간의 해전. 대한민국 해군의 승리 |
2001 CE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미국이 9.11 테러 직후 탈레반을 축출하기 위해 벌인 전투. |
2002 CE | 제2연평해전 |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해군의 선제공격으로 벌어진 남북 함정간의 해전. 대한민국 해군의 승리로 추정 |
2008 CE | 남오세티야 전쟁 | 러시아와 조지아 간의 전쟁 |
2009 CE | 대청해전 | 서해 대청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 선박의 NLL 침입으로 벌어진 교전, 대한민국 해군의 승리 |
3 가공 매체에서의 전투
3.1 스타워즈
- 야빈 전투 : 에피소드 4에서 루크 스카이워커를 위시한 저항연합의 기습으로 제국의 결전병기 데스스타가 파괴되었다. 이 여파로 저항연합은 유지될 수 있었고, 제국의 영향력이 약해지게 되었다.
- 호스 전투 : 야빈 전투 이후 제국을 피해 변방의 호스에 은거중이던 저항연합의 기지를 발견한 제국군이 대규모 보복을 가한 전투. 이 전투의 여파로 저항연합은 세력이 흩어져 제국에 대항할 힘이 약화된다.
- 엔도 전투 : 저항연합이 보탄, 이워크 등의 도움을 받아 엔도의 달 궤도에 건설중이던 데스스타2를 파괴하였다. 이 전투에서 팰퍼틴과 다스 베이더가 사망해 제국이 와해된다.
3.2 마하바라타
- ↑ 이 영상에 나오는 전투는 대부분이 유럽이나 아랍, 터키, 아메리카, 일본 등 서양인에게 유명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지극히 서양 중심적으로 편집되었기 때문에 가려서 볼 것을 권한다. 1440년대부터 폭발 규모가 조금씩 커지며, 1700년대부터는 대부분 폭발 규모가 큰 전투들만 나타난다(...). 절정은 1792년~1802년~1805년~1815년, 1870년~1871년, 1914~1918년, 1939~1945년.
- ↑ 하지만 서양 중심적이라서 서양이 얼마나 전쟁광들인지 알 수 있다(...)
미국 독립 전쟁(1775년~1783년), 남북전쟁(1861년~1865년), 미영전쟁(1812년~1815년), 크리크 전쟁(1813년~1814년), 베트남 전쟁(1956년~1975년)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티베트와 중국에서 터진다(...)여담으로 한국은 1592년~1598년과 1950년~1953년에 폭발한다.병자호란이 없잖아!그런데 솔직히 동양도 사료를 자세하게 남긴 중국의 기록을 보면 엄청나게 싸운다. 고대만이 아니라 근세인 명청전쟁만 해도 전투 목록이 엄청나다. - ↑ 삼국사기에서는 246년이다. 244년은 관구검기공비의 기록
- ↑ 메카에서 박해받던 무함마드와 무슬림들이 이주한 도시로 이슬람 제2의 성지가 되었다.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겨간 '히즈라 هِجْرَة Hijrah / 헤지라 Hejira'(성스러운 이주)를 실행한 해(622 CE)는 이슬람력의 원년으로 정해졌다.
- ↑ 흔히 알려진 안시성주의 이름 양만춘은 야사로 전해질 뿐이고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 ↑ 로마 시대의 국경선으로 유명한 도나우 강으로도 알려져 있다.
- ↑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합스부르크 황가의 카를 5세는 카를로스 1세라는 이름으로 스페인의 왕이기도 했다.
- ↑ 일본은 이를 노몬한 사변이라고 축소해 사실을 은폐했다.
- ↑ 진주만 공습에 상당한 영향을 준 공습 작전이다.
- ↑ 이때 그 유명한 구스타프 열차포가 동원되었다. 지휘관은 에리히 폰 만슈타인.
- ↑ 싱가포르 함락 자체는 1942년 2월이지만 이를 최종 목표로 하여 사전에 전개된 말레이 반도 상륙은 1941년 12월이었다. 싱가포르 전투의 범위를 싱가포르 지역에만 국한할 것인지, 말레이 반도 전투 전체를 포함할 것인지에 따라 전투 개시 연도가 달라진다.
- ↑ 사실 그 비행체의 정체는... 항목 참조
- ↑ 걸프 전쟁에서도 메디나 리지 전투에서 대규모 전차전이 벌어졌지만, 미 제 1기갑사단이 보유한 전체 전차가 348대인 거지 해당 전차전에 사단 전체 병력이 가담한 게 아니다. 이라크의 경우도 메디나 사단 휘하 연대급 부대들이 참가했으며 참가 규모는 미 육군보다 크긴 했고 현대전치고는 유례 없는 대규모 전차전이긴 했으나. 쿠르스크, 특히 프로호로프카와 비교할 규모는 아니다.
- ↑ 쿠르스크 일대에 독일군은 전차 및 자주포 2,700대를, 소련군은 전차 및 자주포 3,600대 (기록에 따라 8천대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를 배치하였다.
- ↑ 이 두 나라는 전쟁 초기 독일에게 가장 크게 피해를 입은 나라들이었다. 당연히 추축국에 대한 원한이 하늘을 뚫고 나갈 지경이었으며, 때문에 그 어떤 연합군 지휘관도 이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았다.
- ↑ 미 해병 1사단장 올리버 프린스 스미스 소장은 후퇴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후퇴라니? 빌어먹을, 우리는 다른 쪽으로 공격 중이라고!"라 대답했다.